올림픽의 영웅 너마저 ‘미투’를 외치고 있다. 그녀가 올림픽 스타이기 때문에 더 놀라는 것이 싫지만 스타마저도 당한다면 나머지는 오죽하랴라는 생각을 끌어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용기가 더 값지게 다가온다. 그녀가 스타의 신화와 눈부심으로 가려진 장막을 젖히고 민낯을 보여준 용기에 더 부끄럽다. 무대 전면만 보고 환호해 온 어른으로서 하루 이틀도 아닌 장기간의 ‘폭력’을 방치해 왔다는 공범 같은 느낌이 든다.
‘미투’와 ‘갑질’의 사례가 봇물 터지듯이 등장한다. ‘미투’를 외치는 비명은 ‘갑질’을 폭로하는 저항의 용기와 일맥상통한다. 한 끗발만 더 유리한 고지에 있어도 상대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휘두르는 ‘갑질’은 ‘신분에서 계약’으로 이행했다는 근대사회의 논리가 허구인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왜 ‘미투’와 ‘갑질’을 함께 다루는 지 의아할지 모른다. ‘미투’의 문제를 성 대결의 특수성으로 잘 못 보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갑질’과 함께 다룬다. 그것은 사회발전의 지체가 응어리지고 곪아터져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건이 오랜 동안 잠복되어 왔던 사건들이다. 수면아래 잠자던 또는 ‘침묵의 카르텔’ 속에 봉인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만들어 준 작은 영웅들을 지켜주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내 아이를 위한 보호막을 일류학교 졸업장과 ‘갑질’할 수 있는 지위 획득이라고 생각하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가르쳐 왔다. 모든 사회문제에 눈을 감고 질주하라고 부추겨 온 어른으로서 젊은이들이 도처에서 마주치는 ‘갑질’의 폭력을 눈을 감고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갑을’관계는 모든 거래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설사 특정 상황에서는 갑이라고 해도 언제든 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갑질은 누군가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며 ‘사회문제’이다. ‘미투’와 ‘갑질’의 문제가 소송으로 귀결되고 있지만 해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대’와 사회적 합의 그리고 공론의 구성이 필요하다. 법정에서의 사실의 다툼은 가치 판단을 해체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더 많은 폭로와 ‘함께’를 외치는 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일단 확인 시켜주는 의미도 있고 무엇보다 피해자에게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사막을 혼자 걷는 것과 누구라도 함께 걷는 것을 비교해 보면 ‘함께’가 주는 위안의 깊이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면 예견된 일이었다.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유보해도 좋다는 사회적 묵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을 위해 권위주의 정권을 용인해야 한다는 담론이 오랫동안 정설로 자리 잡았다. 담론이 공론은 아니다. 냉전 속에 ‘열전’을 치르면서 ‘사회’ 또는 사회적이라는 단어를 금기로 만들었다. 1960년대부터 이어진 경제성장 중심의 담론은 정치발전의 과제를 미루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심지어 민주정권 통치 기간에도 정치 발전의 성패는 경제발전에 의해 재단되는 것을 수용하는 분위기다. 정치발전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언제라도 양보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만드는 담론이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다.
정치발전의 토대가 없는 상황에서 정치발전은 이익집단의 무한 경쟁, 정치적 대표성의 이름으로 다당제에 대한 예찬 등으로 이해되는 중이다. 민주화가 표현의 자유, 사유재산권의 신성불가침, 시장의 자유로 해석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정책 결정의 공공성 구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정당 이름이 변화무쌍 하여 정당의 정체성과 당명을 일치 시키는 것도 어렵다. 당원자격이 주어지는 방식, 당원과 선출직과의 관계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이런 차원에서 정당 투표를 강화하려는 주장이 정치적 올바름인 양 제시되고 있다.
정치발전이 장기적인 집합적 저항을 통해 틀을 갖추어가는 반면 사회 발전의 과제는 ‘ 전통의 미화라는 가면으로 위장 되어 수면에 드러나지도 않았다. 법인의 성격을 띠는 회사가 주인 노예의 관계의 관행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학교에서는 근대적 가치를 가르치고 헌법에서도 기본인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사회관계는 봉건제 이전의 노예제적 성격을 지닌다. 이 불균형 속에 발랄한 21세기의 미래 세대가 갇혀 있다. 그들의 단말마적인 외침을 외면한다면 미래는 없다. 사회발전을 기초로 정치 발전과 경제발전이 이루어지는 서구 근대사와는 반대로 선 경제 발전 정치발전 그리고 장기간 유보된 사회발전이라는 기형적 구조 속에서 터진 아우성이 바로 ‘미투’와 ‘갑질’의 폭로로 드러나고 있다.
이 폭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외면하는 가운데 이 외침은 지속적이었고 그 울림은 새로운 규범을 지구촌 차원에서 만들어 낸지 오래다. 1992년 1월 8일부터 시작된 수요 집회가 이제 26년을 넘겼다. 한주도 거르지 않고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어진 전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죄요구는 국경을 넘었고 지구촌의 규범을 만들어 내었다. 전시 성폭력 문제가 국제 형사 재판소에서 반인권적 전쟁 범죄로 규정된 것이 2000년이다. 2000년 10월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가 결의안 1325를 채택하였다. 성폭력 피해자인 여성이 평화프로세스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면서 지구촌은 21세기를 맞아하였다. 성폭력피해자가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지구촌의 침묵의 카르텔을 깬 것은 ‘살아남은’ 할머니 들이었다. 이 기간 동안 할머니들은 소녀가 되어 갔다. 할머니가 ‘소녀상’으로 바뀌면서 성폭력 피해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기 싫은 입장에서는 소녀상을 치울 수 있는 물건으로 보았고 소녀상을 세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기억해야할 역사였다. 어느 해 기록적인 한파가 찾아온 날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다. 영하 수십 도의 날씨에 일본 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천막을 치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았다. 시대의 과제를 그 때 그 때 해결하지 못하고 미뤄온 어른으로서의 부끄러움이 앞섰다. 그 생생한 기억 속에 떨리는 듯한 미투의 외침이 겹쳐 들려온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 그리고 드라마가 등장하고 있다. 지난 100년의 반성의 끝자락에서 폭로된 ‘미투’와 갑질은 100년 동안 미뤄온 사회발전의 지체된 과제를 이행하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이 명령을 외면하고 4차 산업의 화려한 어휘로 도피한다면 정말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는 없다.
더군다나 이 책에 대한 ‘서평(書評)’을 말이다. 만약에라도 이 글이 마무리되고 다른 이에게 읽히는 데까지 성공한다면 그것은 ‘서평’이 아니라 ‘독후감(讀後感)’으로 불리는 게 적당할 것이다.
고통스러운 책읽기
대학에 입학한 이후 수많은 서평을 써 왔다.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고 저자와 책에 대해 분석과 평가를 내리는 게 일이었고, 또 즐거웠다. 전공이었던 사회과학서적에 대해서만 아니라 각종 문학작품에서부터 영화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평’을 했다.
시험을 대신해 내야했던 과제물이 아닌 경우라면 그저 내 생각을 적었던 것이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것의 형식을 ‘서평’이라 하건 ‘독후감’이라 하건 그 역시 별 상관이 없었다. 다만 다 커서 독후감을 썼다고 말하는 게 쑥스러웠을 뿐.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거짓말이다』에 대해선 ‘서평’이 아니라 ‘독후감’을 쓰는 것이 맞을 듯하다. 이 책에 대해서는 ‘평(評)’ 아니라 ‘감(感)’을 말하는 게 훨씬 더 적절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은 내가 김탁환 작가의 오랜 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드라마로 제작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불멸의 이순신』은 읽어 보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은 나오는 족족 사서 읽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가 김탁환이다.
십 여 년 전 박사논문 쓰느라 정신없던 시절 우연히 대학도서관에서 접했던 『방각본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을 열일 제쳐 놓고 읽었다.
그 뒤 『밀림무정』을 읽던 순간의 짜릿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혜초』, 『노서아 가비』, 『리심』, 『나, 황진이』, 『허균, 최후의 19일』,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까지 찾아 읽었다.
조금은 색깔을 달리 하는 작품인 『뱅크』와 이원태 작가와 함께 쓰는 무블시리즈 『조선 누아르 : 범죄의 기원』, 『조선마술사』, 『아편전쟁』까지 모두 읽었다.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 또한 빼놓지 않았다.
언제쯤 그의 신작이 나올까, 이번에는 어떤 사건이 다뤄질까 내심 궁금해 한다. 말 그대로 ‘시공(時空)’의 경계를 맘껏 넘나드는 작가의 상상력과 성실함, 무엇보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깊은 천착은 내 소설읽기 취향에 가장 어울렸다.
그러던 중 작년 봄 『목격자들 : 조운선 침몰 사건』이 출판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명방과 김진이 등장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바로 사서 읽어야 했다.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이것이 실은 세월호 이야기라는 것을.
2권 마지막에 실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는 2014년 5월 중순부터 이 책을 썼다고 했다. 그 전 한 달 동안은 아무것도 쓰지 못했고, 예정된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덮었다고 했다. 김탁환은 ‘작가의 말’을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라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며 맺었다. 솔직히 말하겠다. 그때까지도 ‘세월호’가 김탁환 작가에게 얼마나 강렬한 의미일 줄 잘 몰랐다.
‘목격자’의 기록
다시 1년 반이 흐른 2016년 7월 『거짓말이다』가 출간되었다. 나는 그 책을 8월 11일에 샀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셈이다. 이번에는 어떤 내용인지, 누가 주인공인지, 그 주인공의 실제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미리 알았다. 읽고 싶어서 샀지만,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책읽기가 이토록 어려울 줄 몰랐다. 더군다나 내가 그토록 좋아 하는 김탁환 작가의 ‘장편소설’인데 말이다. 몇 번을 멈췄고, 몇 번을 덮었다.
나경수 잠수사의 일거수일투족과 한마디한마디는 나를 찌르고, 때론 베었다. 슬프고 아팠고, 불편했고 미안했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 지금까지 입버릇처럼 “잊지 않겠다”고 말했고, 습관처럼 “진실을 인양하라”고 외쳤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구경꾼’에 불과했음을, ‘목격자’가 되지 못했음을 아프게 자각했고, 자인해야만 했다.
작가는 그의 다짐대로 ‘목격자’가 되어 있었다. 이 책은 분명 소설이지만 목격담이고, 증언록이다.
그간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비롯해 『세월호, 그날의 기록』,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등 적지 않은 기록과 자료, 분석들이 책의 형태로 계속 나왔다.
정부와 여당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세 차례에 걸친 청문회를 열었고, 그를 통해 조금씩이나마 진실에 다가 가고 있다. 『거짓말이다』 역시 그런 사회적 노력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미 밝혀진 사실들만으로도 세월호의 침몰과 그 이후는 결코 단순한 ‘사고’라고 말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최소한의 ‘상식적 기대’는 온갖 ‘비상식적 이유’로 인해 망가졌고, 갖가지 ‘몰상식한 태도’에 의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변한 것이 없으니 ‘세월호 이전’은 있어도 ‘세월호 이후’는 어쩌면 아직 시작되지 않은 셈이다.
우리가 몰랐던 잠수사의 고통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어쩌면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바다 밑’ 그리고 ‘세월호 안’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소중하다.
그곳의 유일한 목격자들, 잠수사의 눈과 손, 입을 빌었기에 가능했다. 작가는 김관홍 잠수사가 지난 3월 ‘416의 목소리’ 팟캐스트 녹음실로 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의 목소리를 그날 듣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는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거짓말이다’라는 제목도 김관홍 잠수사가 가장 많이 한 말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열렸던 3차 청문회에서 민간업체 언딘의 대표는 당시 민간잠수사들이 도면 한 장 없이 구조에 임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소설’ 『거짓말이다』에서 나경수 잠수사의 입을 빌어 얘기한 ‘거짓말’ 같았던 바다 밑 상황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리고 정녕 ‘거짓말’처럼, 김관홍 잠수사는 지난 6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아니 우리 곁을 떠났다.
『거짓말이다』는 영웅담이 아니다. 주인공 나경수 역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수많은 시신을 찾아내는데 성공한 ‘베테랑 잠수사’로만 묘사되지 않는다.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던 류창대 잠수사 역시 ‘흔들림 없는 리더’가 아니었다. 류창대는 말한다. “맹골수도에서 함께 일한 잠수사들은 얼마든지 다시 일할 준비가 되어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상태라면 내가 말리고 싶어. 우리에게 명령을 내린 자들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라면, 잠수사가 죽고, 잠수사가 병들고, 잠수사가 누명을 뒤집어쓰고 법정에 서는 일이 되풀이될 거야. 난 그게 두렵네. 정말 두려워.”
나경수 잠수사의 괴로움과 두려움 역시 소설 곳곳에서 확인된다. 현실의 김관홍 잠수사도 다르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바다 속 진실을 볼 수 없었고, 바다 위 진상을 알 수 없었다. 소설 속 윤종후와 종후 아빠의 ‘그런 첫 만남’도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들은 이미 ‘다른 영웅’이었던 셈이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은 ‘금요일’
얼마 전 고등학생 딸아이가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수요일에 떠났다가 금요일에 돌아 왔다. 2014년 4월 16일도 수요일이었다. 세월호를 탔던 아이들도 금요일에 돌아온다고 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2016년 9월 9일 금요일까지 돌아오지 못했다. 금요일은 너무 많이 지나갔지만, 금요일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의 미귀(未歸)는 여전히 거짓말 같은 현실이다.
늦어도 7월에는 인양된다고 했던 세월호는 9월에도 여전히 바다 속 그대로이다.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특조위를 없애려 하고, 세월호 선체는 쪼개려 한다. ‘시신’과 ‘진실’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윽박지른다.
“이게 정녕 나라인가?”,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끝 모를 불신과 회의만 더더욱 깊어진다. 청문회에 나와 진실을 말해야 하는 자는 증언을 거부하고, 청문회에 나와 진실을 말하려 했던 이는 우리 곁을 떠났다.
“절대 국민을 부르지 마라”
칼보다 더 날카로운 말의 상처를 그의 온몸에 남긴 채 김관홍 잠수사는 떠났다. 그는 작년 국정감사에 나와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말고 정부가 먼저 알아서 하라.”
그만큼 분노했고, 좌절했고, 아파했다. 작가는 『거짓말이다』가 김관홍 잠수사의 ‘유서’가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의 아픔과 괴로움을 뒤늦게나마,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김탁환 작가도, 김관홍 잠수사도 『거짓말이다』가 그‘만’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 관한 얘기로 기억되길 바랄 것이다.
작가는 요청했다. “뜨겁게 읽고 차갑게 분노하라.” 나는 응답한다. “힘들게 읽었고, ‘함께’ 분노하겠다.”
김관홍 잠수사가 좋아하고 즐겨 썼던 말이 ‘함께’라 했기에. 종후 아빠 윤태식은 광화문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으며 나경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잠수사님, 가만히 계세요. 제가 막겠습니다. 지켜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소설 속에서, 현실 속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었다. 작가는 그것을 기록했고, 우리는 그것을 기억한다. ‘함께’
영화계에서는 몇 가지 원인을 꼽는다. 일단 8월 초 열린 리우 올림픽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뜨겁지 않았다. 반면 더위는 예상보다 뜨거웠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2시간 안팎의 시간을 시원하게 보낼 수 있는 영화관람은 관객에게 좋은 피서 계기가 된다.
하지만 대형 스포츠 행사나 날씨가 영화 흥행의 결정적 요소였을까. 영화의 흥행은 영화 안에서 우선 찾아야 한다.
1인당 평균 관람료 8000원을 지불하기 전에, 관객들은 자신의 취향, 욕망, 평판에 부합하는 영화가 어떤 것일지를 까다롭게 가늠한다. 그러므로 이 4편의 영화들이 무엇을 말하고 또 말하지 않는지, 관객들은 왜 이 영화들의 전언에 귀기울였는지 살펴야 한다.
4편의 영화는 거칠게 파악해 <부산행>, <터널>의 축과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의 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크게 보면 ‘재난영화’의 범주에 들어가며 동시대를 다룬 현대물이다. 반면 후자는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조선왕실의 수난 등 역사적 소재를 다룬다.
동시대 재난의 기록 <부산행>과 <터널>
먼저 올 여름의 재난영화를 살펴보자. <부산행> <터널> 같은 재난영화가 할리우드의 재난영화와 다른 점은 이 한국영화의 창작자들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사회적 맥락을 끝없이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할리우드의 재난영화에서 ‘사회’나 ‘국가’가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는 드물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정부는 불가항력의 재난(혜성충돌, 대지진, 기후변화, 외계인의 침공 등)에 맞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다가 실패하거나 가까스로 성공한다. 하지만 이런 재난영화들에서 국가는 재난에 대항하는 물적 자원을 가장 많이 동원할 수 있는 집단일 뿐이다.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창작자들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특정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마디로 이 영화들에서 국가는 투명하다.
<부산행>과 <터널>은 다르다. 이 영화들에서 한국 정부는 재난을 방어하는 최전선의 기지로 작동하기는커녕, 오히려 재난을 악화시킨다.
<부산행>의 ‘감염자’들은 민간 연구 단지에서 행한 모종의 실험 때문에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가는 이들 감염자들을 치유하거나 비감염자들을 지키는데 자원을 동원하기는커녕, ‘유언비어’ 확산을 막는데만 최선을 다한다. 미쳐 날뛰는 감염자들은 정부 발표를 의심 없이 보도하는 매체들에 의해 ‘과격 시위대’로 둔갑한다.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통해 등장하는 노란 옷을 입은 정부 관계자들은 사태와 동떨어진 알맹이 없는 정보만을 주고 사라진다. 생존은 오직 개인의 역량에 맡겨진다.
2016년 재난영화들은 허구의 사건을 다뤘지만, 그 이면에는 세월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재난영화들 속의 국가는 무능력하고, 언론은 이기적이고, 시민들은 무관심하다는 점에서 현실을 닮았다.
<터널>에서 ‘사회’는 좀 더 광범위한 방향에서 호출된다.
구조대장은 매몰된 터널에 갇힌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고위 관료들은 구조하는 시늉만 내는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장에 나타나 구조대원 혹은 피해자 가족과 사진을 찍는데 신경을 쓴다. 무너진 터널로 인해 인근 또다른 터널의 공사가 중단되고, 이에 따른 경제적 피해가 날로 가중된다.
이해관계가 상충하자 극중 국민안전처 장관은 “관계기관끼리 알아서 잘 협의하라”는 무책임한 말만 남긴 채 자리를 뜬다. 장관 역의 배우가 여성인 김해숙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객이 현직 대통령을 떠올리기도 했다.
미디어의 역할 역시 재난의 실상을 알리고, 재발 방지책을 찾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터널에 갇힌 피해자에게 전화해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같은 상투적 질문을 해대고, 피해자가 갇힌 날을 세며 ‘생존 기록’을 세울 수 있을지에 관심을 기울인다. 종국엔 많은 시민들조차 터널에 갇힌 자의 생사에는 관심이 희미해진다.
<부산행>과 <터널>의 창작자들은 하나같이 이 영화들이 세월호 참사와는 무관하게 기획됐다고 말하고 있지만, 대형 재난, 정부와 미디어의 무능, 시민의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세월호가 아니라 그 이전의 숱한 참사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결국 <부산행>과 <터널>은 허구의 대형 재난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여름 상업영화의 틀에서 소화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사에 대한 자부심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는 과거 한국 사회의 모습에서 자부심을 찾자고 제안한다.
<인천상륙작전>은 제목이 드러내듯, 한국전쟁의 분기점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의 전개를 담았다. 한국전쟁을 담은 2000년대의 한국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 <웰컴투 동막골>(2005), <고지전>(2011)이 전쟁의 참상을 그리거나 북한군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묘사했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자신이 ‘반공영화’임을 숨기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하나같이 이념을 위해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들로 그려지고, 국군은 모두 가족애와 동료에가 넘치는 용사들이다.
더욱 문제적인 인물은 유엔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다. 할리우드 스타 리엄 니슨이 연기한 맥아더는 공산주의자들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한반도에 강림한 신적인 인물로 보인다.
그는 가련한 한국 소년을 구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으며, 성공 확률이 거의 없다고 평가된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해 결국 성공시킨다. 유엔군의 뱃길을 열기 위해 먼저 인천에 상륙해 첩보 작전을 수행하다 죽은 한국군의 시신 앞에서 맥아더가 경례하는 것으로 <인천상륙작전>은 막을 내린다.
2016년 영화 속 역사적 인물들은 허구적이다. 맥아더는 한반도에 강림한 신처럼 묘사되고, 덕혜옹주는 독립운동에 관여한 것처럼 그려진다. 역사적 사실을 다뤘지만, 허구의 가공물이다.
<덕혜옹주>는 망국을 맞이한 조선왕실의 마지막 황녀인 덕혜옹주의 삶을 그린다.
나라의 기운이 이미 기울어진 시기였기에, 덕혜옹주의 행동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떠났고, 또 강제로 일본의 귀족과 결혼했다.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일본에서 지내다가 조현병으로 고생했고, 결국 1962년에야 온전치 않은 몸과 마음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덕혜옹주는 이렇게 시대의 거센 흐름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무기력하게 살아야했던 비극적 인물이지만, 영화 제작진은 그가 이 흐름에 맞서 최소한의 저항을 했다는 허구를 집어넣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덕혜옹주는 징용된 조선인 아이들을 위한 한글 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조선인 노동자들 앞에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연설을 한다. 심지어 영친왕 등 일본에 있던 조선 왕실 사람들의 중국 망명 계획에 적극 동참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덕혜옹주>에서 망국의 왕족들은 무능하거나 무책임하기는커녕, 나라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관객, 세대차, 투표권
흥미로운 건 <부산행>, <터널>과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의 관객 연령층이 크게 대비된다는 사실이다. CGV 리서치센터 자료를 보면, <부산행>과 <터널>의 30대 이하 관객 비율은 각각 65.1%, 65.8%였다.
반면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는 각각 56.1%, 60.5%로 떨어진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은 극장의 주요 관객층이 아닌 40대의 비중이 31.1%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노태우 820만, 김영삼 990만, 김대중 1000만, 노무현 1200만, 이명박 1100만, 박근혜 1500만….민주화 이후 대통령선거의 매직넘버는 1000만이다. 어떻게 대선에서 1000만명을 동원할 것인가. 어쩌면 그 해답은 1000만 관객 영화에 있을지 모른다.
30대 이하는 <부산행>과 <터널>의 흥행을 이끌고, 40대 이상은 <인천상륙작전>과 <덕혜옹주>의 흥행을 추동했다. 영화 관객의 특성상 20~30대가 다수긴 하지만, 40대 이상도 흥행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추세다. 누가 됐든 모든 관객은 1장의 티켓을 산다. 이는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를 닮았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는 최근 저서 <천만 관객의 영화 천만 표의 정치>에서 <변호인> <국제시장> <암살> 등 ‘1000만 영화’를 분석했다.
공교롭게도 2012년 대선을 제외하고 1997년 15대 대선 이후 당선자들은 1000만이 조금 넘는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됐다. 세대별로 좋아하는 영화가 다르고, 이 영화들이 드러내는 바가 다른 2016년 여름 한국 극장가의 풍경을 본다면 내년의 표심이 살짝 드러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법 대선자금의 책임을 짊어지고 그는 감옥으로 간다. 참여정부 내내 아무런 공직도 맡지 못했다. 대선 패배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지켜봐야 했던 그는 스스로를 포함한 친노 진영을 ‘폐족’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듬해 18대 총선에서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전력 때문에 공천심사대상에서 배재된다. 그럼에도 그는 깨끗이 승복했다. 대신 그해 최고위원 경선에서 당선돼 재기한다.
‘분노의 정치’에서 ‘통합의 정치’로 진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2009년 경남 양산 재선거에서 송인배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며 그는 투표로 ‘복수’하자는 말을 서슴없이 꺼냈다.
“노무현 대통령을 평생 모셔왔던 안희정 입장에서 제가 심판해달라고 이야기하면, 그건 뭐라고 들리십니까? ‘아, 저놈들 억울하게 죽은 자기네 대장의 복수해달란 이야기구나’ 이렇게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그 말에 대해서 굳이 다른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가 충남지사에까지 오르는데 그 ‘분노’가 한 동력이 됐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7년이 흐른 지금 그의 태도는 ‘분노’에서 사뭇 비껴나 있다. 페이스북 대권도전 선언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안희정의 정치는 분노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보수기득권세력에 밀려 극단적 선택을 했던 노무현은 그 분노의 진원지였다. 그러나 이후 안희정은 그 분노를 넘어 다른 세력과 사람을 품는 통합의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분노에서 통합으로 가는 길의 진정성과 깊이를 어떻게 평가받는지에 따라 안희정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국민 통합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 분들을 사랑하는 일이 타인을 미워하는 일이 된다면 그것은 그 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세도 아니며 스승을 뛰어넘어야 하는 후예의 자세도 아닐 것입니다. (중략) 나아가 나는 근현대사 백여 년의 그 치욕과 눈물의 역사를 뛰어넘을 것입니다. 그 역사 속에 전봉준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김구도 조봉암도 김대중도 김영삼도 노무현도 있었습니다.”
동교동, 친문, 비문의 차원이 아니라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갑작스런 것은 아니다. 현실 정치를 헤쳐가면서 자연스럽게 ‘분노’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체득을 해 나간 듯하다.
그의 페이스북 메인 이미지에는 “겸손은 모욕을 용서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써 있다. 감명 깊게 읽었다는 <사막의 지혜>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다.
안 지사는 이 책에 대한 독후감에서 “도지사 역할 중 상당 부분은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마주하는 일”이라며 “그 분들의 아픔을 온전히 살펴드리기 위해선 내 마음속 안식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2013년 내놓은 저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에서도 안 지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역대 대통령에 대해 덩샤오핑의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를 사례로 들며 ‘공칠과삼(功七過三)’ 정도는 인정하는 합리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2014년 안철수 의원이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직에서 사퇴했을 때 “안철수 대표는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갖던 세력이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큰 공을 세웠다”고 옹호하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스스로의 삶에서도 적지 않은 고충을 겪었을 터다.
2011년 현충일 기념 중도일보 기고에서 그는 “아버님은 6.25 참전용사이고 장인어른은 6.25 전쟁으로 북쪽에 재산을 다 놓고 오신 분”이라며 “그 분들 입장에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거리로 나섰던 아들이자 사위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서로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 차이는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안 지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김대중·노무현 집안의 장자가 되겠다고 했다. 사람은 늘 누군가를 몹시 존경하고 그분을 따라 배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거기에 갇혀 있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걸 뛰어넘어서 자기 인생을 사는 거 아닌가. 그게 자연진화의 법칙이고 인생의 진실이다. 그러니까 이미 흘러가고 있는 사람에 대해 노무현이다 김대중이다, 거기에 가두어 놓으면 안 된다.
(중략) 과거와 결별해 다른 형태의 민주당, 다른 형태의 진보, 다른 형태의 보수가 되자고 제안하는 거다.”
아직은 ‘가능성의 정치인’…구체적 비전 모호
안 지사의 이런 태도는 다소 두루뭉술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정치의 중심무대에 등장했을 때 어떤 정치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안 지사는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말솜씨로 진작부터 ‘대선후보감’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스스로도 광역자치단체장이지만 국가 단위의 이슈에도 열의를 보였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승전 국가’임을 선언하자는 연설을 내뿜는가 하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충남합동추모제’를 열어 7번에 걸쳐 사죄하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인간 노무현만큼이나 인간 안희정도 매력적이다. 첫 충남지사 선거에 나와서 유세활동 중에도 다른 후보들은 여러 절을 도는데 ‘스윽’ 지나다니지 못하는 성격 탓에 한 절에 쭉 머물렀다고 한다.
관용차에 지나가는 노인들을 태워 자식처럼 모셨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SBS 스페셜>에 출연해 도지사의 얼굴을 아무도 모르는 마을로 가서 ‘일일이장’이 돼 노인들과 시금털털하게 얘기를 나누고 마을 일을 도맡아 하는 모습은 많은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의 ‘철학’과 ‘호소력’에 비해 실질적으로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출마 선언이 나오자 충남도 내에서 “충남도정에 대한 고민보다 민주주의 철학과 원칙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 보인다”는 등의 언급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안희정이 끊임없이 잠재적 대권후보로 인식되는 것은 충남도지사로서의 직무수행 능력이 기대 이상으로 좋기 때문이다. 전국 광역단체장 평가에서 안희정은 항상 수위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럴수록 그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자료 출처: 리얼미터)
안 지사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도지사로서 무엇을 보여줬느냐는 질문에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얘기를 꺼낸다.
자신은 환경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발전소를 짓자는 목소리도 묵살할 수 없어 환경영향평가와 사전 타당성 조사를 엄격하게 한 뒤 결과에 승복하자고 제안했고 그대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진짜 건설하자는 쪽으로 나오면 어떡하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실제 결과는 건설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으며 모두 승복했고 그것이 바로 ‘새정치’라는 것이다.
몇몇 정책들도 눈에 띈다. 안 지사가 도입한 실시간 재정 공개 시스템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돼 전국적으로 도입이 추진 중이기도 한다.
트레이드 마크인 ‘3농 혁신’ 역시 일정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리얼미터의 시도지사 평가에서 5개월 연속 1위를 기록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스로도 얘기하듯 이런 성과들이 그다지 확연하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지사를 맡은 뒤 어떤 부분에서 달라졌냐는 질문에)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보통 이런 질문에는 ‘청계천 뚜껑을 열었다’든지 ‘(버스) 중앙차선을 했다’든지 ‘세빛둥둥섬을 했다’고 답하지 않나.”
‘새시대의 맏형’ 될까
안희정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10년 5월24일 충청남도 강경에서 벌어진 ‘눈물의 유세’ 현장.
그는 그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이 저한테 한 자리를 줬습니까. 저한테 돈을 줬습니까. 하지만 저는 노무현이 좋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충성했습니다. 노무현에게 충성하는 것은 제가 살아온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이요, 힘없고 빽 없는 이 땅의 보통사람들 어머님, 아버님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노무현·김대중의 ‘장자’를 자청하는 그가 새 시대를 열어젖힐 맏형이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말한다. “목재상에 있는 많은 목재가 나중에 어떤 용도로 쓰일 지는 집을 지어봐야 안다. 시대에 따라 용도가 정해지는 것 아닌가.”
최근 정부의 발표에 의하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3년간 박근혜 정권에서만 수 십조원의 관련 예산을 쏟아 부었지만, 2015년기준 역시 세계최저수준인 1.2에 머물렀다 한다.
1960년대에는 매년 100만명정도의 신생아가 출생하였으나 2015년에는 겨우 40만명 수준이다.
신중하다고 알려진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까지 조만간 경제가능 활동인구가 줄어들 것을 예상하면서 한국경제의 미래를 크게 걱정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정책당국자들만 아니라 진보적 진영 그리고 복지정책을 연구하는 분들까지 한국의 출생율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
예상되는 비난을 무릅쓰고 필자는 대한민국의 출산율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고백하고자 한다.
우선 이와 관련하여서 출산율 증대를 위해 한국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단시안적이고 지엽적인 정책에 대한 비판(“저출산은 문제가 아니라 질문“)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통계학적인 인구감소에 따른 걱정들에 대하여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선 흔히 사용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라는 용어는 잘못된 것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성격이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마치 ‘고령화’도 ‘저출산’처럼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느낌을 풍긴다.
이를 서로 분리해서 사용하는 것이 옳고, ‘고령화’는 예컨대 ‘평균수명개선’이라는 긍정적 단어로 바꾸어 사용했으면 한다.
온갖 출산장려책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출산율의 감소는 장기적으로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문제의 요점은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현상과 통계학적 구성에 있음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저출산 인구감소’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감소를 염려하는 주요 배경에는 1) 경제활동인구 또는 생산담당인구의 감소, 2) 소비주체로서 인구수 감소에 따른 시장수요 격감과 경기침체, 3) 연금을 포함하여 현재 제도화된 각종 사회복지정책의 지속성 붕괴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이웃한 일본의 장기적 경기침체의 주요 원인을 일차적으로 인구문제라고 진단한다고 하니, 앞으로 한국에 닥칠 상황을 우리에게 미리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저출산은 오히려 실업률 감소 요인
우선 경제활동인구의 감소에 대한 걱정은 앞으로 닥칠 미래의 모습인 제4차 산업혁명 및 알파고의 인공지능 시대와 매우 모순적이다.
신규 일자리는 고사하고 기존의 생산직뿐만 아니라 관리직과 전문직종까지 로봇과 인공지능 시스템으로 대치될 것을 예상하는 미래사회에서 경제활동인구감소는 걱정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로봇이 부족한 인간 노동력을 대체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사진 출처: Venturesafrica)
이제는 머릿수와 근육질의 과잉노동으로 생산과 서비스를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축척해온 과학기술과 사회경제적 시스템으로 일상에 필요한 서비스와 물적 수요를 생산하고 제공받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가 감소하면 실업문제는 자연히 해소될 소지가 크다. 출생율 1.5 수준의 독일과 일본 젊은층의 실업율이 절대고용수준 정도로 낮은 것에 주목해 본다.
소비자 권력 강화해야
인구감소에 따른 소비수요, 그리고 경제의 침체를 염려하는 것 역시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경제의 규모는 연간 만들어지는 부가가치의 총량이다. 되풀이하는 이야기이지만, 생산측면에서는 머릿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기술력과 시스템이 해결하는 만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배분과 순환과 소비의 과정이며 이는 전적으로 경제권력의 이해를 둘러싼 정치사회적 이슈이다.
대다수의 시민들로 구성되는 소비주체들에게 더 많은 경제권력을 배분하고 양도하면 해결할 수 있는 주제이다.
최저임금의 대폭인상과 동일임금제 적용 등 노동배분율을 상응하게 높이고, 복지체계를 강화하여 균형적 순환이 가능한 재분배 과정을 설계하고, 필요하면 헬리콥터-드롭( helicopter- drop)등의 재정정책을 도입하고, 장기적으로는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된다. 중앙대 김교성 교수가 지적했듯이 미래는 반드시 소비중심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사회변화 반영한 복지제도 설계해야
아래에 예를 드는 덴마크를 포함하여, 북유럽을 위시한 유럽 선진형 복지체계는 제2산업혁명과 2차세계대전 전후 50여 년간의 황금기에 형성된 것이다. 물론 이들의 경험과 사례는 매우 소중한 인류자산이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과 시대의 흐름에는 새로운 상상력과 상응된 정책의 도입이 요구된다. 산업구조와 경제활동의 내용이 근본적으로 변하는 미래가 다가오는데, 과거의 발자취에 머물러 연령과 인구통계학적 구조의 좁은 시야로 비탄력적인 복지체계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경제활동 가능연령이 18세부터 설정되여 있는 것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60-65세 이후에는 반드시 은퇴하리라는 것도 비논리적이다. 오히려 다가오는 21세기의 후반은 노인들의 경험과 지혜가 필요한 시대로 바뀔 것이다.
사회의 변화와 필요에 상응한 역할과 능력과 의사에 따라 경제와 사회복지의 정책이 탄력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물론 미래에서도 복지체계 또는 사회안전망으로서 교육, 의료, 주거 그리고 장애지원 등의 영역들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고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기본소득제도의 도입 여부와 수준이 복지체계에 대한 미래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본다.
인구감소 충격 최소화할 유연한 정책 필요
조만간 한국사회가 겪을 인구감소의 어려움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화석연료가 고갈이 되는 시점 이후 한반도라는 물리적 지리적 환경적 제약조건 속에서도 반드시 식량과 에너지의 자급, 그리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조건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수치를 제시하는 것조차 무의미한 1.1%로 OECD 국가들 중 최악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식량자급율도 오랫동안 2-30%에서 정체되고 있다. 지리적 한계로 65%이상이 산악지역인 남한의 가용면적당 인구밀도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스럽다고 용기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인구의 감소가 적응과 통제가 가능한 수준의 유연적 과정( adoptive & manageable flexibility)으로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고 정착되어야 한다.
인구문제의 핵심은 상황변화에 대응하는 경제권력 배분 및 유연한 사회안전망의 구축과 소비중심사회로 전환하는 과감한 정책적 합의와 결단이 필요한데,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한국정치의 후진성과 무책임한 관료들의 미개함에 있을 뿐이다.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암울한 현실도 소수에 닫힌 정치와 경직된 관료제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출산율 높이려면 ‘행복한 나라’ 만들어야
출산율문제로 돌아가 본다. 1.2라는 숫자는 물론 재앙적 수준이다. 정밀한 분석을 요하지만, 필자의 감각적 느낌으로는 1.5-1.7 정도이면 적응과 통제가 가능한 수준의 인구감소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출산율이 1.8을 넘어서게 되면 평균수명개선과 더불어 제3국의 이민유입 등으로 Stock 인구수가 계속 증가하면서 한반도라는 지리환경의 물리적 조건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본다.
물론 1.5-1.7 수준으로 출산율을 회복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것이 오늘 한국의 현실이다. 조한혜정 교수가 언급하였듯이 단편적이고 지협적인 정책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지구환경적 조건에서 포유류들은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 절대로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진화된 포유류종인 인간의 젊은 세대들도 불안하고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경제적 조건하에서는 자식을 낳는 않을 뿐만 아니라 결혼자체를 거부하게 된다.
세상 어디에도 우리가 찾는 유토피아는 없다. 가장 행복한 나라들이라고 평가하지만 나름대로 문제점과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각자가 겪어온 역사과정과 사회경제적으로 처한 조건이 서로 달라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나름대로 느끼는 행복의 조건 몇 가지를 적어본다.
행복한 나라의 조건들
우선, 3개국 모두 기본적으로 농업이 잘 발달되여 있고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생태조건이 매우 양호하다. 우리가 흔히 1차 산업으로 무시하고 소홀히 다루기 쉬운 농업기반이 환경의 생태적 순환을 유지시키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재확인 시켜준다.
삼면이 축복받은 바다로 둘러쌓여 있고 65%의 산림이 아름다운 휴식공간을 제공해주는 대한민국은 어머니같은 역할을 하는 농촌과 더불어 행복을 제공해주는 자연의 기본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두 번째 공통점은 모두가 인구가 적은 상대적인 소국들이다. 인구소국이 갖는 함의는 자신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와 행정의 과정에 스스로가 참여하고 함께 결정하고 스스로 평가를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정치시스템에 합의적 민주제를 도입하며, 국민투표와 국민청원 및 소환제를 활성화하고 시민의회의 도입과 주요사법권력의 주민직접선출 등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강화하고, 지방분권을 더욱 발전시켜 주민참여와 자치를 확대해서 이들 소국들이 지닌 효과를 갖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치와 자유가 행복의 기초가 된다.
세나라 모두 국가운영의 핵심 주제로 생태와 더불어 평화와 복지를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있다. 역사를 통한 교훈이다.
‘내 꿈이 이뤄지는 나라’는 각 개인이 행복을 누리는 나라이고, 그래서 아이의 고고성이 끊이지 않는 나라이다. 그런데 박근혜 집권 이후 어느 누구도 충분히 행복해졌다는 이야기는 없다. 내 꿈이 백일몽이 된 것이다.
동북아 중심으로 새로이 조성되는 미중 강대국간 군사력 대치 과정속에, 핵무기와 사드배치 논쟁으로 상처투성인 한반도가 궁극적인 지향해야할 방향은 끝없이 살상무기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위협이 없는 평화(협정)이어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당연히 장구한 역사를 지닌 민족국가로서 정치적 군사적 주권회복이 매우 중요하다.
복지국가라는 주제는 박근혜 정부에서 체험하듯이, 오로지 선거에 이기기 위하여 작성된 기만적 각본이 아니라 항상적으로 국정운용의 주요한 실천의제로 설정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이 처한 현실을 생각하면, 대통령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지리적 조건으로 형성된 공동체 의식과 가치가 매우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행복은 개인적인 내용이지만 혼자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모두가 손을 잡고 노력할 때 이루진다는 부탄의 국왕과 덴마크 작가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글을 맺는다.
북한이 5차 핵실험을 하던 9월9일 오전 9시(평양시간)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은 라오스에, 총리는 세종시에, 통일부 장관은 춘천에 있었다.
북한 도발 시 정부 대응 전략의 요점은 사전에 도발 징후를 포착해 선제 타격한다는 것이다. 육상·수상 킬체인, 한국형 미사일방어망,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가 그런 개념에 따른 것들이다.
그런데 9일 북한이 무엇을 할지 알고 있던 정부 인사는 없었다. 알았다 해도 마찬가지다. 공격하면 다 막을 길이 없다.
5차 핵실험은 성공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북핵은 날이 갈수록 고도화돼 현실적 위협이 되는데,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방법은 예방책뿐이다. 공격할 마음을 먹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최고 수준의 제재에도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고 남북 간, 북·미 간 적대와 대립은 심화되면서 북한이 언제 무슨 마음을 먹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위험의 실체다. 이 위험은 잘못된 대북정책에 기인한다. 스커드·노동 미사일에 핵탄두를 얹는 극적인 장면을 보지 않더라도 북한이 핵폐기할 때를 기다리는 정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그렇다면 북핵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북핵 문제를 돌파하려 나서는 나라가 없다. 미국은 앞장 설 이유가 없다.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하지 않는 한 북핵 문제에 정력을 낭비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드 논란이 말해주듯 북한이라는 문제 국가의 존재는 중국 견제의 도구로도 꽤 유용하다. 중국은 북한 비핵화와 북한 체제 유지라는 두 개의 목표가 충돌하면 체제 유지를 우선한다. 북한 정권 붕괴니 체제 전환이니 하는 목소리가 커질수록 대북 압박 수위를 낮출 것이다.
러시아·일본이 나설 일도 아니다. 유엔 안보리는 정당성을 부여할 뿐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결국 한국밖에 없다. 한국은 북핵의 최대 피해자이자 북핵 해결의 최대 수혜자다. 북한 변화를 이끌어낼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새 해법을 주도해야 할 직접 당사자다.
남 일처럼 구경하거나 다른 나라 따라갈 일이 아니다. 김정은의 정신상태가 어떠니, 평양을 지도에서 지워버리느니 하는, 기분 풀이는 미루어 두는 게 좋다. 북핵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 있다면 수사학으로 시민을 흥분시키는 일에 시간을 허비할 정신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나서 “전쟁의 위험” 운운하며 불안을 부추기는 것으로 봐서는 대결 말고 대책이 없는 것 같다.
대북 제재와 압박이 잘못이라는 말이 아니다. 현 북핵 정국의 문제는 제재가 너무나 정당하다는 데 있다. 북한의 도발에 국제사회가 압력을 가하는 것은 정의에 부합한다. 유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모두 북한을 제재할 마땅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이들이 북핵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와 상관없이 북한의 나쁜 행동에는 벌을 줄 자격이 있다. 게다가 김정은 정권은 지구를 대표하는 악당이 되었다. 당사국들로서는 그런 악당과 타협하는 불편함과 위험을 감수하느니 악당을 징벌하는, 안전하고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대화와 타협이 어렵지 제재는 쉽다.
이렇게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서는 당사국이 없는 상황에서 제재와 압박이 정당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지지받는다면 기존 북핵정책은 지속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이 제안한 제재·대화 병행론을, 북한에 시간만 벌게 해준다며 일축한 것 역시 정치적 자신감의 표현이다.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에서 미·영은 합동작전으로 케냐에서 테러리스트를 추적한다. 한 건물에 모여든 테러리스트들이 자살폭탄 조끼를 착용하는 장면을 포착해 드론으로 공격하려는 순간, 그 건물 담벼락에서 빵을 파는 소녀를 발견한다.
“80명을 살릴 것인가, 1명의 소녀를 구할 것인가” 결국 소녀 한 명을 살리는 결정을 한 것은, 그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북핵문제도 근본적 해결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유리한 결정만 한다는 점이다.
정책 결정권자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다. 건물을 폭격하면 테러리스트들이 쇼핑몰에서 자폭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는 80명을 살리지만 대신 소녀가 죽는다. 그러나 한 소녀를 살리기 위해 폭격을 포기하면, 80명이 희생된다.
한 각료가 소녀를 구하자는 의견을 낸다. “테러리스트를 쇼핑객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게 무고한 아이를 죽인 드론 공격을 옹호하는 것보다 낫습니다.”
소녀 구하기가 정치적으로 유리하다는 말이다. 무엇이 당면한 사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길인가가 아닌, 정치적 부담을 최소화하는 관점이다. 각료들이 결정을 못하고 총리의 판단을 구하자 총리 역시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사태를 해결하라는, 정치적 위험성이 제거된 모호한 지시를 내린다.
정치적으로 가능한 행동만 하는 북핵 상황도 소녀 구출론의 발상과 다르지 않다. 제재라는 도덕적, 정치적으로 올바른 행동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은 역설. 바로 이게 북핵 정국의 본질이다.
이에 대해 여혐 반대를 기치로 내 건 메갈리아(Megalia) 등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강남역에서 집회를 열었으며 이것이 여성혐오에 기초한 범죄임을 알리고자 하였다.
#사건 2. 소라넷과 ‘골뱅이’
소라넷은 일명 ‘골뱅이’라 불리는 인사불성의 여성을 함께 강간하는 일이 모의되고 실행되는 사이트. 해당 여성의 남자친구나 남편 등이 ‘초대남’ 혹은 ‘초대남편’이라는 이름으로 해당사이트 유저 남성들을 불러모아, 수 년 간 그 수조차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여성들에게 강간을 해 왔다.
메갈리아 등을 위시한 여성들이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고, 경찰은 마지 못해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소라넷 폐쇄라는 성과를 이끌어 냈으며 소라넷 운영자가 구속직전이라는 뉴스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10월 중으로 재오픈한다는 또 다른 뉴스가 들려오고 있다.
#사건 3. 만연된 몰카(몰래 카메라) 범죄
화장실과 탈의실, 언제부터인가 여성들이 옷을 벗는 곳에서는 온갖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올림픽 대표였던 수영선수마저 선수촌에서 동일한 범죄를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메갈리아를 중심으로 여성들은 몰카 반대, 여혐 중지를 위한 스티커 붙이기 등 각종 캠페인을 시작했고, 덕분에 이전의 ‘몰카를 조심하라’는 피해자 책임 전가형 문구 대신 ‘몰카는 범죄입니다라’는 가해자 각성 촉구형 문구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여성을 향한 폭력들
여성혐오(이하 여혐), 미소지니(misogyny), 바야흐로 21세기 한국의 초상이다. 여혐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지만, 최근 들어 여혐의 사건 사고들은 더욱 더 기승을 부리는 듯하다.
아울러 이에 대한 여성들의 충격과 반발, 염오 역시 깊어지는 듯한데, 이러한 작금의 상황은 그간 수면 아래 있었떤 여혐의 문제가 사회 일반의 의식적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는 징후라 할 것이다.
여혐이 공적인 아젠다가 될수록 이로부터 여혐과 그 해악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활발해질 수 있을 테니, 이는 차라리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희망이다. 쉽게 낙관하기에는 여혐의 역사와 뿌리가 너무도 공고하거니와, 이것이 과연 여혐 척결을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말지는 바로 지금부터이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여성혐오 현상이 만연해지면서 출간된 지 한참 뒤에야 뒤늦게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가 작금의 시점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이 책은 2012년 번역 출간되었으나 최근 앞서 말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올들어 더욱 주목을 받게 된 감이 없지 않다. 바야흐로 한국은 지금 여혐과 전쟁 중이기 때문이다.
여성혐오 사회의 등장
우에노 치즈코는 일본에서 여성, 돌봄, 가족 등에 천착해 온 페미니스트 사회학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브 세지윅(Eve Kosofsky Sedgwick)의 주요 개념과 이론적 틀을 차용해 여혐 사회 일본을 해부한다.
여혐 사회란 말 그대로 여성에 대한 혐오가 만연된 사회를 말한다. 즉 남성은 이를 ‘여성에 대한 멸시’로, 여성은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로 체험하게 되며, 따라서 여혐 사회에서는 누구도 여혐으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짐작하다시피, 여성혐오 사회는 근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근간으로 한다.
근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에서 남성들은 자신들만의 호모소셜(homosocial)한 연대(남성간 유대)를 기초로, 여성과 동성애자를 배제하고 멸시한다. 이 사회에서는 남성성만이 유일하고 보편적인 기준이 되며, 여성과 여성성, 여성적인 모든 것들이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남성들은 여성을 두 가지 상반되는 대립적 범주, 즉 정결한 성녀(성모 마리아)와 유혹하는 창녀(막달라 마리아)로 이분화한다. 이 때 성녀는 가부장제가 보호하고 할 현모양처이자 욕망이 거세된 정녀(靜女)로서, 반대로 창녀는 가부장제 바깥에서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위한 배설구로서 표상된다.
근대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성녀와 창녀라는 두 개의 이미지로 고착됐다. (윗단 사진). 이에 따라 그런 여성을 대하는 남성도 여성을 보호하는 신사와 그녀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바람둥이라는 두 가지 스테레오타입으로 굳어졌다.
따라서 ‘여자를 지켜주겠다’는 순정남들이나 ‘바람둥이’라 불리는 남자들이나 어느 쪽이건 실은 적극적으로 여혐을 체현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은 여성을 고유한 한 인격체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 하기에, 자신들을 구원해줄 이상향이나 성욕의 배설구로서 이해할 뿐이다. 곧 전자는 여성을 숭배함으로써, 후자는 멸시함으로써 타자화한다.
이러한 여성상 어디에도 여성은 없거니와, 여혐사회에서는 남성이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여성이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남성은 결코 여성을 알지도 이해하지 못하며, 여성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소외된다.
“엄마처럼 살지마”
여성들 역시 여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딸은 가부장제 하의 희생양인 어머니를 보면서 자라며, 어머니의 자기혐오를 물려받게 된다. 어머니는 딸의 ‘여자 같은 부분’을 증오함으로써 딸에게 자기혐오를 심어준다.
‘짧은 치마 입지 마라’, ‘늦게 돌아다니지 마라’, 여혐 사회에서 딸을 보호하기 위한 어머니의 모든 말들은 기실 딸에게 자기혐오를 촉발시킨다.
어머니처럼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의 모든 딸들은 어머니로부터 멀어지려 하나, 안타깝게도 지난 날 여성들의 역사는 이것이 거의 불가능한 가까운 기획이라는 것을 예증한다.
패배자가 되고 싶지 않은 어떤 딸들은 적극적으로 아버지 동일시 전략을 취하게 되는데, 즉 이들은 생물학적으로는 여성이지만 사회적으로는 남성이 되고 싶어 한다. 경제성장에 힘입은 고학력 여성들은 열등한 여성성을 탈피하여 아버지의 딸로서 가정 내에 갇힌 삶이 아닌 자아실현의 사회적 삶을 살고자 한다.
이른 바 ‘명예남성’으로 불리는 이들은 자신을 다른 여자들과 다른 ‘특권적 예외’로 설정하고 출세에 골몰한다. 그 결과 이들은 필연적으로 여자의 적이 되거니와, 이는 남성 기득권의 유구한 지배 전략 ‘분할하여 지배하라(divide and rule)’가 적용된 또 다른 예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들 명예남성들의 출세 전략은 여성 혐오를 확대 강화하게 될 것이며, 명예남성들 자신은 상징적 남근의 획득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결코 이해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여성혐오가 만연된 사회에서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은 미묘하고 복잡하다. 엄마는 딸이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지만, 또 남성세계에서 성공한 딸에 대해 질투의 감정을 느낀다. 사진은 양희은의 싱글 ‘엄마가 딸에게’의 표지 컷.
사회적으로 성공한 딸이 된 딸을 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할까.
자신이 딸이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누구보다도 더 열렬히 바랐으나, 막상 아버지의 딸이 된 딸을 보며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딸이 가부장제의 노예로 살지 않도록 딸의 교육과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어머니는 정작 자신이 이루지 못했던 딸의 성공 앞에서 기쁨과 질투를 동시에 경험한다.
딸이 어머니가 인정할 만큼 훌륭한, 그러니까 여혐이 덜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신랑감을 골라 결혼할 경우에도 이러한 양가적(ambivalent) 감정은 다르지 않다. 이 경우에도 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딸이지 자신이 아니며, 오히려 사회적으로 성공까지 한 딸 역시 가부장제 속으로 편입된다는 사실 앞에서 좌절한다.
아울러 그러한 딸을 질투하면서 동시에 질투하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되거니와, 딸이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행복하면 행복할수록 어머니는 질투와 비참, 우울과 죄책감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된다.
여혐사회에서 딸과 어머니의 화해는 이토록 지난하다, 이보다 더 완벽한 지배전략이라니!
근본주의적 설명의 한계와 대안적 실천의 가능성
인터뷰를 하는 이브 세지윅의 모습
이상의 내용들은 이미 페미니스트인 이들에게는 그리 낯선 이야기들이 아니다. 메리 울스튼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에서부터 시몬느 드 보봐르(Simone de Beauvoir), 베티 프리단(Betty Freidan), 슐라미스 파이어스톤(Shulamith Firestone),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의 역사는 1세대, 2세대를 넘어 3세대에 이르고 있다.
특히 어머니와 딸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을 비롯한 여성주의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서 논의되어 왔는데, 프로이트와 달리 이들은 오히려 초기 대상관계 형성에서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더 근원적임을 강조한다.
우에노의 논의는 미국의 페미니즘 비평가 이브 세지윅(Eve Sedgwick)의 이론적 틀을 그대로 가져왔기에 그의 한계 역시 고스란히 답습한다.
일찍이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라캉(Jacques Lacan)의 정신분석학이 남근을 선험적 기의로 파악함으로써 오히려 상상의 가능성과 변화의 단초를 봉쇄하였다고 비판했다. 마찬가지로 우에노 역시 라캉의 ‘욕망의 삼각형’을 차용함으로써 여혐사회의 선험성을 확증한다. 이러한 구조주의적 구도에서는 남성성에 종속되지 않는 여성적인 것의 발견이나 여성의 권능화(empowerment)를 개념화하기 어렵다.
즉 여성이나 여성성을 남성이나 남성성의 이항 대립항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상상하기 위해서는, 남근이성중심주의에 갇히지 않는, 그것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이론적 틀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빠-엄마-나의 오이디푸스 삼각형을 변형한 라캉의 L자 도식. 여기서 S(주체)와 moi(나, ego)는 분열된다. 나(moi, ego)의 정립은 소문자 타자(a’utre)와 상상적 관계 속에서 가능해진다. 또한 주체(Sujet)는 늘 대타자(Autre)와 관련돼 있는데, 이 대문자 타자가 곧 아버지의 법으로 불리는 상징화된 질서이다. 라캉은 인간의 욕망을 이러한 삼각형 구도 안에 가둬버림으로써 여기로부터의 탈출을 아예 봉쇄한 숙명론의 함정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는다.
뤼스 이리가레이(Luce Irigaray)와 엘렌 식수(Helene Cixous)는 남근과 남성성에서 출발하지 않는 여성적 주이상스(Feminine Jouissance)와 여성적 글쓰기 등을 논의해 왔으며, 주디스 버틀러는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는 보봐르의 언명을 한층 발전시켜 젠더란 어디까지나 수행에 기초하며 그것을 통해 창조되는 것임을 명시하였다.
이들의 엄밀한 이론적 지향과 입장은 각기 다를 수 있겠으나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문제의식이 있다면 여성/여성성이, 남성/남성성과 마찬가지로, 발명품(invention)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남근이성중심주의를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그 강팍함에 지속적으로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적 그리고 실천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여성/여성성을 상상하고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모든 투쟁과 마찬가지로 패배주의를 넘어 언제나 지치지 않고 즐거이 희망을 좇을 때,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려줄 것이다.
다른 관계, 다른 공동체가 소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규정하지 않는 다른 여성과 여성성을, 관계 와 공동체 속에서 상상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세상은 딱 그만큼 달라질 수 있다.
성적소수자(LGBT)와 동성애자 부부, 1인 가구와 비혼 가정, 이 모든 이질적 성정체성들과 공동체를 두 팔 벌려 환영해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를 넘어, 새로운 섹슈얼리티와 공동체의 땅으로 우리를 안내할 최전선의 척후병이기 때문이다.
여혐과 동성애를 둘러싼 오늘날 한국사회의 소란과 불화는, 그러므로 더욱 시끄러워야 하고 더욱 첨예해야 한다. 갈등과 투쟁 없이, 대안과 공존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 소란과 불화 속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자녀의 삼각형에 금이 갈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 했던, 그러나 언제나 바라왔던 그 곳으로 탈주할 수 있을 것이다.
OO녀…여성에 투사된 좌절된 수컷들의 욕망
이 책은 여성혐오라는 개념을 통해 일본사회를 미시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일찍이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모든 사회가 일본화되어 갈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이는 후기자본주의 일본 사회가 가진 모든 모순들이 자본주의의 궤도를 따라가는 여타의 사회에서도 발견되리라는 것을 말한다.
이 책 속에서 분석된 여혐 현상들은 상당 부분 오늘날의 한국사회에도 발견될 수 있는 대목들이기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여사, 된장녀, 맘충, 세대와 분야를 아우르는 각종 여성혐오적 언어들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요약한다.
운전에 서툰 김여사, 명품에 환장하는 된장녀, 남자 돈 빨어먹는 김치년 등 여성을 비하하는 각종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경제상황의 악화와 더불어 이전 시기 가부장들이 누리던 권력을 누리지 못하게 된 루저 남성들이 그 분노를 여성에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 최근 한국 사회 여혐 범죄의 근본적 배경이라 할 것인데, 일자리가 없기에 결혼이나 출산, 가정은 꿈도 꿀 수 없게 된 남성들이 그 분노와 좌절을 엉뚱하게도 가장 약한 고리인 여성을 향해 표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한국은 OECD 기준 여성의 임금이 남성의 70퍼센트를 넘지 못하며, 경제 위기에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는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이다. 가사노동과 생계를 동시에 책임지는 여성가장은 언제나 남성 가장 못지않게 많았으며, 경제 위기에 가장 먼저 퇴출되는 고학력 여성들(이른 바 경단녀, 곧 경력단절녀)’이다.
일자리를 가진 사회적 여성들은 직장 노동과 가사노동의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으며, 그 절대적 노동의 양은 오히려 남성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았다. 가부장제의 바람막이 없이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비혼모’의 현실에서 언제나 비난받아야 했던 것은 ‘행실이 나쁜’ 여성들이었으며, ‘도망간 아내’들이 처한 현실은 언제나 간과된 채 모성이 결핍된 존재로서 마녀사냥 당했다.
남성도 굴레를 벗어야 할 때
남성들이 제일 먼저 깨달아야 할 것은, 브레드 위너(bread winner)로서의 자신들의 지위가 위태하게 된 것도, 그 결과 ‘전원결혼사회’를 뒤로 하게 된 것도, 그 어느 쪽도 여성들의 탓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지금껏 남성들이 주도해 온 이 사회가 자본의 탐욕을 우선시하며 어떠한 사회적 안전망도 확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남성들 자신이 이를 수수방관한 채 그 이익만을 먼저 그리고 앞서 누리려 했기 때문이다.
월급을 빌미 삼아 가정 내에서 폭군으로 군림하려 했기 때문이며, 가사노동과 육아로부터 스스로를 면책시켰기 때문이며, 가부장제의 모순을 외면하고 여성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사적 소유물로 좌지우지하려 해 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모순을 개혁하려 하기보다 그 안에서 편하고자 했고, 세상의 절반 여성을 사회적 장면에서 배제하려 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숱한 ‘◯◯녀’ 사전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남성들이여,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마냥 남성연대를 만들고, 역차별이라며 옹색한 항변을 꺼내들기 이전에 부디 무엇이 진정 문제인지 돌아보길 바란다.
남성의 역차별에 불만을 품은 남성연대. 이들의 주요 주장은 여성부 해체였다(왼쪽 사진). 세종로에서 일본군 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주장하는 여성연대 회원들의 모습.
남성들에게만 짐지워져 왔다고 주장하는 가장의 무게나 사회생활의 고단함은, 여성들이 원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가부장제가 의도한 결과일 뿐이다. 이제라도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여성에게 더 많은 몫과 자리를 허락한다면, 당신들만이 생계를 책임져야 할 일도 가정으로부터 소외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부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를 멈추기 바란다. 남성과 여성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해 가든가, 아니면 지난날의 뒤틀린 영광에 사로잡혀 자위하든가, 이제 당신들이 선택할 차례이다.
오늘날 남성들에게 주어진 영광된 역사적 과제는 남근성과 마초성에서 탈피해 여성을 발견하고 여성과 만날 수 있는 남성성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는 일일 것이다. 언제나 당신들을 사랑하고자 해 왔던 애처로운, 그러나 꿋꿋한 여성들은 그 길의 초입에 미리 당도해 손 내밀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역자 나일등은 도쿄대에서 우에노에게 직접 배운 제자이다. 페미니즘과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기초지식만 있어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사례가 풍부해 읽는 재미가 있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는 생소한 일본 사례들이 읽기를 더디게 할 수도 있다.
독자 편의를 위해서 인용된 문헌들의 자세한 서지사항을 생략한 것이 좀 아쉽다. 이 책의 이론적 근간이 된 이브 세지윅의 서지조차 누락된 것은 특히 그러하다. 해당 서적은 Sedgwick, E. K.(1993). Between Men: English Literature and Male Homosocial Desire. Columbia Univ. Press. 인 것으로 확인된다.
TV 시청 패턴은 시공간을 넘어선지 오래다. 시청자는 더 이상 거실에서, 안방에서 가족과 함께 고정된 수상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프로그램을 감상하지 않는다. 손에 쥔 모바일 기기를 통해 혼자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원하는 만큼 소비한다.
500만 ‘대세’가 된 1인 가구만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살아도 TV는 혼자 본다는 통계가 나온다. 지상파나 유료방송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는 ‘제로 TV 가구’도 늘고 있다.
콘텐츠는 짧은 웹드라마나 유튜브 영상클립의 형식으로 TV 밖으로 뛰쳐나가고, TV에 남은 콘텐츠는 ‘혼자’화 한다.
TV가 ‘나홀로족(혼족)’을 반영하는 현상은 수 년 전부터 일어나고 있다. 이들은 대개 1인 가구의 삶을 궁금해 하는 구경꾼을 겨냥하거나(<나 혼자 산다>), 싱글의 연애에 방점을 두거나(<나 홀로 연애중>, <불타는 청춘>), ‘혼자’를 타개하기 위한 대안 가족을 만들어주는(<룸메이트>, <셰어하우스>) 식이었다.
1인 가구가 가장 지배적인 가구형태가 되면서 이들의 삶을 관찰하는 TV예능프로도 증가하고 있다.
말하자면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이나 ‘혼자’를 극복하는 데 초점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프로그램들은 양상이 좀 달라졌다. 이들은 더 이상 ‘혼자’ 자체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러니 물론 극복의 대상도 아니다. 이들은 이제 ‘혼자’라는 기본설정값 위에 다른 전략을 쌓아올린다.
거울면을 사이에 둔 ‘혼자’들
‘트렌디 드라마’라는 말의 뜻 자체로만 본다면 tvN <혼술남녀>야말로 이 시대의 트렌디 드라마라 할 수 있다.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에서 보듯, 드라마에는 최근의 뜨거운 트렌드-‘혼족’, ‘먹방’, ‘인스타그램’, ‘(수저)계급론과 생존’, ‘공무원 시험(과 청년실업)’ 등-가 모두 담겨있다.
노량진 강사들과 공시생들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에는 각자의 이유로 혼자 술을 마시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tvN의 ‘혼술남녀’. 주인공은 항상 혼자서 술을 마신다.
매회 시작은 주인공 진정석(하석진)이 혼자 맛있게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다. 노량진의 스타 강사인 그는 감정소모할 필요 없이 오로지 자신을 위한 “힐링타임”으로 “럭셔리 혼술”을 즐기는 지독한 개인주의자다.
반면 “노량진의 장그래”로 불리는 가난한 초짜 강사 박하나(박하선)는 반지하 자취방에서 고된 하루를 마무리하며 맥주 한 캔에 과자 안주로 ‘혼술’을 즐긴다. 인기 없는 강사 민진웅(민진웅)도, 오랜 여자친구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공시생 동영(김동영)도 밤이 오면 혼자가 되어 술을 마신다.
이들이 혼자 술을 마시는 장면들은 TV 밖 시청자를 향해있다. 진정석은 혼자 술을 마시며 SNS에 음식 사진을 올리고, 박하나는 그가 올린 음식 사진을 보면서 술을 마신다.
그리고 시청자는 TV앞에 앉아 그들을 보며 맥주 캔을 따거나 야식을 먹는다. 어느 순간 우리는 진정석, 박하나, 민진웅, 동영, 그리고 TV 밖의 모든 ‘혼자’들이 거울처럼 서로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말하자면 드라마가 일차적으로 상정하는 시청자는 ‘혼족’이라는 현상의 구경꾼이 아니다. <혼술남녀>는 파편화한 ‘혼족’ 시청자 본인들과의 대면을 꾀한다. 이들은 종종 모니터 너머를 바라보듯 카메라 앞에 홀로 있다.
이것은 아프리카TV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를 떠올리게 하지만, 다른 점은 TV 모니터 안팎의 이들은 결코 서로 대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TV는 본래 쌍방향 네트워크를 그 성격으로 삼지 않는다. 거기엔 채팅창도 별풍선도 없다. 그들은 말없이 거울면을 사이에 두고 홀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TV와 혼자인 시청자가 거울면을 사이에 두고 고요히 서로를(자신을) 바라보는 상상적 풍경은 올리브TV <조용한 식사>에서 극대화된다.
<조용한 식사>는 특정 장소에서 특정 인물이 한 끼의 식사를 하는 장면을 조용히 보여주는 것이 전부인 프로그램이다.
올리브TV의 ‘조용한 식사’. 여기서는 연예인의 한끼 식사를 조용해 담아내는 것이 전부다. 시청자는 이를 지켜보면서 혼자 밥먹는 자신을 긍정하고, 또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에 대한 정서적 연대감을 느낀다.
한 회당 4~5명의 출연자가 나와 철길, 일식집, 공원, 미용실 등 다양한 장소에서 한 사람당 6~8분 동안 식사를 하는 장면을 정면에서 정직하게 비춘다. 별도의 내레이션도 코멘트도 없다. 홀로 경건하게 먹을 뿐이다.
<조용한 식사>를 보는 일은 단순히 개별 음식이나 장소, 식기에 대한 관심에서 나아가,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라고 말할 때의 핍진한 심사, ‘먹는 기계’로서의 인간에 대한 자기혐오와 연민. 즉 때로 많은 이들이 ‘혼밥’을 할 때 느끼는 감정들이다.
그 때 이들은 TV 앞에, 모바일 기기 앞에 있을 것이며, TV 속 장면과 자신이 처한 장면이 단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연결되어 있다는 데서 위안을 얻을지도 모른다.
혼밥인 듯 혼밥 아닌 ‘따로 또 같이’의 전략
지난 주 첫 방송을 시작한 올리브 TV의 <8시에 만나>는 이 같은 TV 안팎의 풍경을 아예 TV 안으로 끌어들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장소의 연예인들이 원격 디바이스를 통해 화면 속 서로의 얼굴을 보며 혼자 밥을 먹는다는 구성이다. 단지 이 프로그램은 ‘원격 토크쇼’를 표방해 조금 시끄러워진다.
편성시간은 짐작한대로 오후 8시다. 제목 ‘혼밥할 땐 8시에 만나’는 명백히 TV 앞에 각자의 밥그릇을 들고 모이게 될 시청자를 향해 있다.
올리브TV의 ‘8시에 만나’. 여기서는 각자 혼자 밥을 먹으면서 모니터를 통해 소통한다.
출연자들은 각자의 ‘혼밥’ 사연이나 ‘혼밥력’에 대해 털어놓는다. 첫 회에 출연한 배우 류현경은 “혼자 있는데 같이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 프로그램이 의도한 바다. ‘따로 또 같이’ 혼밥을 즐기는 시간.
앞서 언급한 모든 프로그램들은 서로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실상 이 ‘따로 또 같이’의 전략 혹은 가치관을 품고 있다.
그들은 ‘혼자 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가치관 위에, 다만 ‘너희는 혼자가 아니야’라는 제스처를 얹어둔다. 혼자임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혼자라는 연대의 제스처다.
물론 그것은 트렌드에 올라탄 얄팍한 위로의 상술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미디어에 의해 긍/부정 중 한 측면으로만 왜곡되어 있는 ‘혼족’ 트렌드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전략으로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붕괴된 공동체, 관계 단절의 절벽’에 선 사회문제의 한 차원으로서 혹은 단지 ‘새로운 세대의 쿨한 놀이 문화’의 소비주체로서의 혼족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개인이 바로 서는 징후로서의 혼족.
소통을 원하지만 내 삶이 전체에 의해 억압되거나 침범 당하고 싶지는 않은, 혼자인 동시에 서로 연결된 느슨한 공동체 안의 개인으로서의 혼족 말이다.
TV가 ‘혼자’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은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대중의 평균적인 인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증거다.
4년 째 순항하며 1인 가구 프로그램의 원조 역할을 지키고 있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2013년 설 특집 파일럿 방송 때 <남자가 혼자 살 때>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프로그램은 애초 혼자 사는 남자들의 애잔함을 보여주는데 치중했었다. 이들은 ‘무지개 회원’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서로를 보듬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더 이상 이들의 삶을 ‘궁상’으로 비추지 않으며, ‘무지개’ 회원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외로운 서로를 위로하는데 몰두하지 않는다. 김 반장이나 기안 84 등 혼자 사는 삶 중에서도 새로운 삶의 형태를 보여주거나 혼자 사는 다양한 이들의 삶의 철학이나 가치관을 전하는 방향으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다.
‘고독, 왕따, 궁상’으로서의 혼자가 아니라 ‘자유, 개인, 다원’으로서의 혼자로, 그런 개인들의 헐거운 연대의 플랫폼으로 ‘혼자 보는 TV’는 진화 중이다.
영화 <매트릭스>는 구원자에 관한 이야기다. (거칠게 요약하면) ‘네오(키아누 리브스)’라는 인물이 갑자기 ‘준비된 자’로 불리고, 컴퓨터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 인류를 구원하는 영화다. 영화는 ‘네오’를 처음부터 신봉하는 사람들과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그를 의심하는 이들의 갈등을 부각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치도 매트릭스의 ‘네오’를 기다린다. 기존 정치권 바깥의 구원자를 열망하고, 또 이에 실망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정당은 국가 지도자를 키워내지 못하고, 국민들은 희망을 주지 않는 기존 정치권을 불신하고 혐오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러한 흐름을 발판 삼아 대선 주자에 명함을 내미는 ‘3지대형’후보들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박찬종•이인제 전 의원, 17대 대선을 앞두고 고건 전 총리,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등이 등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킨 안철수 의원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기존 정당의 밖이나 비주류에 있다가 갑자기 대선 후보로 부상했다.
대선을 1년 앞둔, 한국 사회는 또다시 네오를 호출하고 있다. 최근 내년 1월 귀국 의사를 밝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이야기다. 그를 두고 정치권의 계산은 복잡해지고, 유권자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있다. 그는 과연 ‘헬조선’의 ‘구원자’일까, 아니면 이전의 대선 후보들처럼 ‘바람’으로만 그칠까.
40년 외교관에서 ‘UN의 투명인간’으로
일단 그를 향한 국내외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모두 알다시피 그를 대표하는 이력은 정치인도, 대선후보도 아닌 외교관이다.
1944년 충북 음성의 한 작은 마을에서 출생한 그는 일찍부터 외교관을 꿈꿨다. 충주고 재학시절 미국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웅변대회에서 입상해 미국을 방문한 구는 존F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장래희망을 외교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반 총장은 당시를 “외교관의 꿈을 다진 시기”라고 회상한다.
“위인으로 떠올랐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남정호 중앙일보 기자, 김영사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는 교과서에 나오기까지 하는 등 ‘위인’에 가까운 지위에 올랐다. 2006년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임명되고 2011년 연임에 성공하며 그에 대한 대한민국 일반의 평가는 하늘로 치솟았다.
이에 `대망론’이 불거진 뒤, 주요 여론조사 차기 대통령 선호도에서 그는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조사만 봐도 그는 최근 4개월 동안 평균 27%의 지지도를 얻으며 선두를 달리는 상황이다.
9월 26일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의 여론조사를 보면, 반 총장은 여야 13명 예비 후보의 다자 대결 가상 여론조사에서 27.4%로 선두를 달렸고, 유력한 야권의 대선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28.1%)와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14.5%)과의 3자대결에서도 38.5%로 1위를 기록했다. (9월23~24일 1000명 휴대전화 RDD(임의 번호 걸기) 전화 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서 3.1%p, 응답률 13.1%)
게다가 충청권을 중심으로 ‘반딧불(潘)이’,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의 팬클럽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이는 민주개혁성향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보수성향의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각각 집권한 지난 20년 동안 강화된 정치혐오의 토양에서 ‘비여의도’ 인사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이 밑바탕을 깔고 있다. 보통 정치인에 대한 여론조사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여의도의 각종 논란에서 멀어질 때 높게 나타나는 경향도 있다.
여기에 유력한 친박 대선 주자가 없는 새누리당의 복잡한 사정이 반 총장 ‘대망론’을 부채질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 5월 30일 “한국에서는 반 총장이 유엔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온도 차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처한 딜레마와 닮았다. 대선 후보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게 없지만 ‘준비된 자’로 호명되는 상황 말이다.
역대 선거때마다 등장했던 제3후보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찬종, 이인제, 고건, 문국현, 안철수. 안철수의 도전은 아직 진행중이고, 이번에는 반기문이 제3후보로 등장할지가 관심사다. 제3후보의 부상은 한국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깊은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제3후보가 성공한 적은 없다.
이는 이전 3지대 후보들이 겪었던 상황과도 유사하다. 이제 본격적인 검증과 대선 레이스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그의 대망론이 이어질지 중간에 소멸할지 판명이 날 것이다. 이전 후보들은 그 과정에서 주저앉았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정치권의 각종 풍랑을 거치며 대선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현재 그의 강점과 단점은 명확하다. 일단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그는 향후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보이는 충청지역의 탄탄한 지지와 여권의 핵심 지지층인 50·60대의 지원을 업고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그는 야권의 유력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에 견줘 40~60대에서 강세를 보인다.
반면, 애매한 어법으로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아 적이 없다는 의미로 쓰인 반반(半半)이란 별명과 아무리 곤란한 질문을 해도 이리저리 빠져나간다는 뜻인 ‘유만(기름 바른 장어)’이란 별명은 앞으로 벌어질 레이스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2014년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 등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은 뉴욕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첫번째 일정으로 UN사무총장 관저에서 반기문을 만났다. 반기문 대망론이 힘을 얻는 것은 친박 진영에 포스트-박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친박 후보라는 이미지는 반기문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또 친박세력의 지원을 받을 경우 중도층과 야권 지지층의 외면을 받아 ‘확장성’에 한계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대선을 1년 넘게 앞둔 지금의 전망은 무의미하다. 결국 누가 ‘시대정신’을 선점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냐에 승부는 달려 있다.
2000년대 이후 대선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타파’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 성공시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제시해 당선됐다.
그가 ‘네오’가 될지, 그저 미풍으로 스쳐 지나갈지는 내년 1월 귀국 뒤 행보에 따라 윤곽이 그려질 것이다.
19대 대통령선거를 일년 남직 남겨놓은 현재 시점에서 주요 정당들은 당대회를 통해 선거체계를 갖추기 시작했고, 야당을 중심으로 잠룡후보군의 정치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7년 이후 지난 8-9년이라는 매우 짧은 기간에 국가의 기틀과 내용이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현실을 개탄하면서 다가오는 대통령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껴본다.
201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화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견고한 지지층, 선거과정의 중도적 입장 등으로 정파를 초월해 모든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취임 4년째가 된 지금, 그러한 기대는 한낱 백일몽에 불과했음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불만과 실망도 극에 달했다.
이번 칼럼에서는 2012년 말 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을 중심으로 선거 과정과 이후에 전개된 사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래의 글은 필자의 경험과 추억에 의존했음을 미리 양해구하고자 한다.
박근혜의 대국민 사기극
현재는 국정원과 기무사 등 공안기관들의 대선불법개입이 사실로 들어나고 사전 선거조작이 있었다는 혐의가 농후해져 정권의 정당성 자체를 의심받고 있지만, 당시 박근혜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인 2012년 연말에 필자는 프레시안을 통하여 새로운 정권의 출범에 승복의 박수를 보내며 기대와 조언의 글을 올린 적이 있다 (박근혜, 아버지 패러다임 넘어야 산다).
기대와 설렘의 배경에는 박근혜 당선자가 몇 해 전에 한나라당 의원자격으로 미국의 몇개 명문대에서 행한 명연설들이 있었다. 주요한 내용은 신자유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면서 아버지가 못다 이룬 과업을 이어받아 국민 각자의 꿈을 실현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복지의 선진국가로 도약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 하겠다는 것 이였다.
당시에는 감동적이였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잘 짜여진 사기극의 각본과 연기였다고 본다.
실제 18대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새누리당 복지정책은 서울대 교수진 등이 참여하여 준비한 것으로 누리예산(0-5세 보육을 국가에서 책임진다)과 대학등록금 반액제 그리고 노인수당(노령기초연금, 65세이후 모든 노인들에게 20만원 무조건 지급) 등 일련의 내용들로 한국정치판에서 처음으로 ‘생애주기적 복지개념’을 분명히 했다.
이는 경쟁상대인 민주당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수구적 정치집단으로만 생각했던 새누리당의 공약이라고 믿기에는 참 놀라운 내용이였다.
필자가 8년간 공동대표로 활동했던 복지국가소사이어티(WSS) 내부평가도 그러했고, 복지라는 주제를 새누리당조차 한국사회의 주요한 의제로 선정했다는 사실에 WSS의 열정적인 활동이 그만한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근거없는 뿌듯함도 느꼈다.
더불어 복지의 주요 기둥인 ‘돌봄’에는 어머니같이 섬세하게 배려하는 여성적 감성과 접근이 매우 필요한데, 박근혜씨가 여성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기대한 점도 없지 않았다.
박근혜의 선거전략은 기존의 강고한 보수층을 기반으로 중도층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녀는 기존의 이념적 입장을 약화시키면서까지 포용적인 정책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작 집권한 뒤에는 그러한 공약이 차례로 파기됐다. 대선 공약이 애시당초 실행할 의지가 없는, 집권만을 노린 선거전략의 산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기대와 설렘이 무참히 무너지고 그 자리를 허탈과 분노감으로 채워지는 데는 몇 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이 발간한 선거공약집은 4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으로 대강만 실현해도 한국이 세계속 일등국가가 되는데 손색이 없을 듯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나는 현재, 많은 시민단체에서 박근혜정부의 공약이행의 정도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내용을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정부나 유관 단체의 자체평가를 제외하고 중립적인 시민평가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최악의 항목인 검찰개혁에 대한 평점이 100만점에 5점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나마 경실련이 후하게 매긴 43점을 포함하여 대체로 30-40점 수준에 머무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히 실패하고 무능한 수준을 넘어 기만적 정권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량적인 점수를 떠나 정권의 성격과 내용에 대한 총괄적인 평가로 2015년 당시 민주당의 정책위원장이였던 이목희 의원의 말을 빌려본다
“ 박근혜 정권 3년 동안 대한민국의 역사는 크게 후퇴했고, 민생은 황폐화되고 남북관계는 최악의 긴장상태로 악화됐다. 대한민국 경제는 저성장의 터널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고 불평등 심화의 덫에 걸려 있는 실정이다. 청년들은 질 좋은 일자리가 없어 흙수저를 탓하며 절망 속에 살아가고 가계부채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선되자마자 폐기처분된 ‘노인수당’ 약속
필자의 경험과 시각으로 18대 대선공약이후 박정권이 보여준 기만과 실책 중 두가지 예를 상세히 기술하고자 한다.
노인빈곤이 50%에 근접하는 최악의 수준에 처한 한국에서 국민연금과 노인수당은 복지정책의 핵심정책이다. 박근혜를 당선시킨 주요 공약이였던 노인수당의 경우 대통령 서약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곧바로 모든 노인에게 매월 20만원을 무조건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모든노인’ 대신에 대상을 70%로 축소하고 자산조사와 국민연금 수급여부를 연동시키는 것으로 수정 시행하였다. 시행초기에 당장에 부족한 예산과 비판적인 여론 등을 고려하여 대상을 선택적으로 축소하고 혹은 자산조사를 통해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할 수 있다.
다만 예산이 확보되면 공약대로 시행하고 향후 사정이 좋아지면 푼돈 수준인 20만원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수준으로 증액한다는 약속을 반대급부의 조건으로 묵인할 수 있다.
그러나 뜬금없이 국민연금과의 연동하여 시행하는 것은 국민연금제도의 밑기둥을 흔드는 참으로 황당한 정책 이였다.
노후대책의 대들보 역할을 해야 하는 국민연금은 국가와 국민 개인 간에 이루어진 엄정한 약속으로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신뢰의 주제이다. 이러한 대원칙을 노인수당지급의 조건으로 연동시킨다는 것은 특히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국민 다수가 노후대책의 핵심인 국민연금을 믿지 못하고 기피하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앞뒤를 가리지 못하고 대책도 없이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의 기초를 밑바닥부터 흔들어 버린 박근혜 정권은 본인이 사용하기 좋아하는 용어 그대로 ‘국기문란죄’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예산 제약 등을 이유로 기초노령연금 공약을 파기하자, 2013년 9월, 공약 설계자였고, 집권 이후 책임자였던 진영 복지부 장관이 “무력감을 느낀다”며 사임했다. 이 일을 계기로 진영 장관은 2016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보에서 탈락하는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 이에 진영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적을 바꿔 출마해 당선됐다. (이미지 출처: http://slownews.kr/14254)
노인수당 지급여부를 일정한 고정수입과 연동하려면 국민연금이 아니라 퇴직연금과 관계지울 수 있었을 것이다.
퇴직연금은 국민들과 이루어진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약속이 아니라 개별 기업과 단체 혹은 제한된 영역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재벌 대기업이나 공무원 그리고 공공기업체 등 소위 한국사회에서 갑질하는 상위 10% 정도가 실질적 혜택을 누리는 제도이기에, 예산부족을 이유로 이와 연동하여 노인수당을 보류하는 것에는 긍정적 동의가 가능했다고 본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분간 못하는 무식한 박근혜 정권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권창출의 일등공신이였던 진영 당시 복지부장관이 사태의 책임을 절감하고 스스로 사임을 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에 경종을 울렸다는 것이다. 진영 장관이야 말로 박근혜 정권의 무지몽매한 작태를 깨닫고 책임의 자리에서 물러나 스스로 국민 앞에 사죄를 구한 진정한 공직자였다.
북핵 핑계로 사라진 ‘전시작전권 환수’ 약속
두 번째 사항은 전시군사전작권(전작권)에 관한 것이다.
군사작전권이 없다면 자립국가라 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은 국가방위을 주한미사령관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절름발이 주권국가이다. 북한보다 수십배가 넘는 국방예산을 지출하는 남한 정부가 북한위협으로부터 자체방위 작전권한이 없다는 사실부터 어처구니가 없지만, 노무현정권 당시 진작 전작권을 돌려받고 일정까지 합의했음에도 당연히 이를 돌려받았어야 할 이명박정권은 분명한 사유없이 당분간 연기했다.
이후 18대 대선과정에서 박근혜후보는 선거공약집을 통해 ‘전작권을 예정대로 2015년에 당당히 돌려받아 한국군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한미연합군 동맹을 굳건히 하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집권이후 차일피일하더니 급기야 돌변하여 정확한 사유와 설명도 없이 전작권반환을 아예 무기 연기하고 말았다. 땅을 치고 통곡할 한심한 작태였다.
2014년 10월, 워싱텅 D.C에서 열린 제46차 안보협의회(SCM)에서 한미 당국은 ‘2015년 12월 1일’로 예정됐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을 재연기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북한의 핵 위협을 비롯한 한반도 안보상황과 한국군의 핵심군사능력 등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구체적 시한을 못박지 않아 사실상 무기한 연기였다. 이에 대해 한 나라의 자주권의 일부를 넘겼다는 점에서 ‘제2의 을사늑약’이라는 비판이 터져나왔다.
방위산업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필자의 눈에도 현재의 한국군대는 너무나 무능하고 부패하여 국가를 방위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다. 병력이나 군사력이 문제가 아니라 군을 지휘하는 고급간부들의 자질과 지휘역량의 문제이다. 썩어 곪아터진 방산과 군수의 부패를 시급하게 청산하고 유능한 인재들을 군내부에 배치하여 전투지휘 능력을 배양시켜서 스스로 방위체계를 구축하는 일이 국가가 해야 할 우선적 책무일 것이다.
또한 북한의 침략 가능성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제3국의 잠재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켜야 하는 것이 국방의 책무임에도, 엉뚱하게도 자력방위의 중요성을 외면한 채 오로지 2013년 초에 있었던 북한핵실험을 핑계로 전작권환수를 아예 포기한 것이다.
핵실험은 2013년 이전에도 두 번이나 있었으니, 집권 이전과 이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더구나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핵이슈는 남한과 관련된 문제라기보다는 리비아와 이라크의 경우처럼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미국침공에 대응하는 생존전략인 셈이다.
따라서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은 남북한간 군사력의 무한대치로 해결할 내용이 아니라, 관련국들과 함께 평화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풀어가야 할 정치외교적 역량에서 찾아야 했다.
사안의 시비가 매우 분명함에도 대선공약으로 자랑스럽게 약속했던 군사주권의 핵심적인 내용이 뒤집어졌음에도 국민들에게 일체의 배경과 설명도 없이 일방적으로 미국에게 군사전략과 나라의 안위를 통째로 맡겨버린 참으로 뻔뻔하고 무모한 정권이다.
자국의 군사전략에 대해 아무런 결정권도 없게 된 박근혜 정권은 미군이 판단해서 사드배치를 결정하고 미군이 필요해서 장소를 정하면, 이를 시행하는 책임만을 지고 있을 뿐이다.
동북아의 뇌관이 되여버린 사드가 상주에 배치된 이후에 한반도에서 벌어질 상황의 전개는 여러분들의 상상력에 맡긴다.
동학농민군의 진압을 핑계로 청과 일본 군대를 불러들여 결국 치욕적으로 나라를 빼앗긴 고종의 전철을 밟는 역사적 실책을 다시 되풀이 할까 심히 염려가 된다. 현하 박근혜 정권은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매국적 죄업을 짓고 있는 중이다.
철학없는 대통령…일단 당선되면 약속 내팽겨쳐
18대 대선 선거과정을 겪으면서 대선후보가 약속한 공약을 믿는 것이 어리석은 시대가 되었다. 정책공약은 신뢰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고 선거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무용론이 대두하게 되었다. 마치 얼굴에 분칠하는 색조화장처럼 대선이라는 행사가 끝나면 신속히 지워내는 것이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과 기만으로 전락한 배경과 조건이 무엇이였을까? 필자는 제도정치에 관하여 문외한이여서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접근하는데 한계가 있지만, 나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우선 조선시대의 국왕보다 권력이 막강하다는 현재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대통령 자신의 자질이 매우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박근혜 의원시절 미국의 명문대에서 행한 연설내용에 대해 지적했듯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내용은 자신의 철학과 학습과 의지가 담긴 결과물이 아니라 후보자와는 무관하게 선거에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으로 당과 해당부처에서 급조하여 짜깁기 식으로 만든 각본이다.
내용도 제대로 체득하지 못한 채, 무지한 박근혜 후보가 연출에 따라 주어진 대사를 앵무새처럼 읽어 내린 연기였다는 혐의가 짙다. 기본과 자질의 문제였다.
두 번째는 정권 출범이후 여건이 미비하고 야당과 여론의 반대가 거세여 공약을 제대로 추진하는 것이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지점이 지도자의 역량을 시험하고 평가하는 중요한 계기라고 본다.
여건과 자원이 부족하면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와 완급을 정하고 당장 시행할 수 없는 저간의 사정을 국민들에게 설명하여야 하며, 야당과 여론의 반대가 있으면 이를 설득하고 타협하고 공유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역할이다.
대선 캠페인 때와 집권 이후의 박근혜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인다. 대선 캠페인 때는 온갖 약속을 쏟아냈지만, 집권 이후에는 그것을 줄줄이 파기했다. 정책에 대한 대통령 자신의 확고한 철학과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오른쪽 삽화는 김용민 경향신문 화백의 만평. (이미지 출처: https://thenewspro.org/?p=2275)
그런데 박대통령은 아예 귀를 틀어막고 나라의 장래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막장드라마의 진수를 보여주려는 듯 혼자 북치고 장구도 치고 있으니, 노회한 박지원 의원도 “한국 정치의 최대장애물이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한탄했다.
필자의 눈에는 장애물정도가 아니라 재앙덩어리, 그자체이다. 개인이 갖는 저질적 품성이 문제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럽고 화가 나는 점은 처음부터 아예 다른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있음에도 오로지 선거에 이기기 위해 자신의 본래 프로그램을 숨기고, 상대방의 공약 중 표가 될만한 내용을 차용하여 마치 자신 것으로 포장하고 과장하여 정당간의 차별성을 없앨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무책임과 변절로써 유권자인 국민들을 농락하려 꾸민 치밀한 새누리당의 사기극 이였다는 점이다.
후보 개인과 소속 정당의 차원에서 문제점을 지적해 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조적이고 역사적 흐름속에서 살펴볼 필요도 있다.
정책정당의 부재…약속 지키고, 책임 물을 주체 없어
우선,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정책정당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 못하다. 정의당과 녹색당 등이 핵심정책을 분명하게 내세워 프로그램을 준비해 오고 있지만 국민들 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유의미한 지지를 얻어내는데 실패하고 있다.
반면에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있는 유력 정당들은 이름만 정당이지 실천적 좌표로서 정책을 설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조직되여 있다고 볼 수 없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토대 위에 연줄과 지역감정 등 당선에 유리하고 편한 방식으로 결합된 집단이다. 정책 역시 시대영합적인 내용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한 수준에서 선거철이 되면 실천하려는 목표와 의지와 무관하게 유권자를 현혹하는 이슈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공약 파기에 대해 국민은 다음 선거에서 ‘낙선’으로 심판하면 된다. 그러나 5년 단임 대통령은 재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국민의 입장에서는 아예 그를 심판할 기회조차 없다. 대신 그 대통령을 후보로 선출한 정당을 심판해야 하지만, 한국의 정당은 선거 때 급조되는 경우가 많다. 공약 파기, 정책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물을 대상이 없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정당은 정책아 아니라 보스를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며, 강력한 지역주의 기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선거를 통한 심판의 논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유력 정당들이 정책정당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정치를 밥벌리 수단으로 삼는 정상배들 수준의 집단으로 변질된 현실에는 물론 역사적 배경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민족을 억압하고 약탈한 일제에 협력한 반민족적 행위들을 정리하고 청산하기는커녕 일제가 만들어낸 기반 위에서 아집과 술수로 태동한 이승만 정권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이후 강화된 공안통치의 무모한 우익적 토양위에서 진보적 개혁적 정책정당이 뿌리를 내릴 수 없었고 두 번의 쿠데타로 장기집권한 군사정권에 의해 오랫동안 민주적 기반이 위협받고 억압되여 왔다.
60년대 이후 27년간 군사작전처럼 감행되여 왔던 경제개발정책의 산물인 재벌들이, 절름발이 민주화 과정에서 정치세력간에 분열과 미봉적 타협으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강력한 봉건영주로 세력을 확장하여 한국사회의 사회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대학과 언론 그리고 문화의 영역까지 실질적으로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일련의 과정과 흐름속에서 몇 번이고 민주화의 계기들이 폭발하였으나, 시민사회의 역량이 위에 언급한 장벽과 한계들을 뛰어넘어 각성되고 조직된 시민혁명의 수준으로 발전하고 정착되지 못했다.
이러한 현실 조건에서 민주적 개혁세력의 대응력이 무기력하면 기득권 세력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산된 개별 유권자들의 표심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유도하고 필요하면 조작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19대 대선의 핵심 현안은 또다시 공안의 조작이 개입하지 못하는 공정한 선거과정이 되도록 감시하고, 지난 4년간 재앙적인 박근혜 정권하에서 새롭게 각성된 시민사회 역량을 확장하고 결집시켜 나갈 강력한 정치지도층을 형성하는 것이다.
요행은 없다. 온전히 제도언론수단과 기득권의 물적기반을 장악하고 있는 강력한 수구정권을 몰아내고 그나마 중도를 표방하는 보수적 개혁정권이라도 출범시키려면, 진보그룹도 함께하여 시민세력의 ‘모든 역량이 결집되는 합의적 과정과 연합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1987년과 2012년처럼 소인배적 명예와 권력의 독식을 앞세워 역사적 소명을 그르치면 절대로 안될 것이다.
신뢰, 비전, 능력을 갖춘 후보 골라야
필자가 특별히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몇 해 전 백낙청 선생이 시대의 현안을 언급하는 중에 사용한 ‘적공(積功)’이라는 용어이다. 차기 대선은 반드시 적공(積功)을 갖춘 후보와 집단이 집권하기를 발원하면서 실천가능한 공약과 후보를 선별하는 기준에 대해서 몇마디 적어보면서 글을 맺고자 한다.
내년에는 누가 선택될까. 좋은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지 여부는 그런 사람을 감식해낼 수 있는 시민의 안목에 달려 있다. 가장 중요한 감식 기준은 후보자의 신뢰, 비전, 능력이 돼야 할 것이다.
신뢰의 문제다.
우선은 언어와 색깔을 믿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수구적 미디어를 통해 온갖 교언과 요설이 설치며 사람들의 정신과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미 체험했듯이 마녀는 공포스런 모습과 겁박하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홀리는 미소와 달콤한 밀어로 다가왔다.
핵심은 역사적 흐름과 시대적 소명이라는 관점에서 후보가 살아온 역정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능란한 언어보다는 오랜 세월 살아온 삶의 자취가 진실을 담고 있다. 특히 그가 역경에 처했던 적이 있었는지, 위기를 당했을 때 어떻게 처신했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어려움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고통받는 서민들의 서러움을 보지 못하며 시대의 어려운 현실을 용기있게 돌파하지 못할 것이다.
비젼이라는 주제어다.
백화점처럼 제시된 온갖 프로그램의 현란함에 속지말자. 달콤한 사탕은 몸에 해롭고, 까닭없는 이익을 기대하면 망신을 당하게 마련이다. 기적은 없다. 격변하는 세계의 흐름속에 한국이 처한 현실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어려운 미래를 예견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헌신하면서 국민들에게 함께 고통의 참여를 요구하는 후보를 지켜보자. 기득권 질서와 이해를 해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야기하는 후보에게 귀를 기울이자.
사람의 몸짓과 눈빛은 의지와 지혜를 담고 있다. 진실함과 강한 의지로 미래를 이야기하면 마음으로 들어보고, 근거가 있는 비젼을 제시하면 시대를 뛰어넘을 지혜가 담겨 있는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살아온 행적이 믿을 만하고 기득권을 뛰어넘는 프로그램에 의지와 지혜가 담겨 있으면 비로소 후보의 능력을 평가해야 한다. 그가 경험한 행정적, 정치적 과정은 매우 소중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능력은 소속정당의 한계를 뛰어넘어 제대로 일할 사람들을 모아내고 포용하고 배치하고 함께하는 지도자의 인사능력이다.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설치는 자는 아예 자격미달이다.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 둘러싸여 큰 것을 보지 못하는 자는 소인배다. 2017 민주평화포럼 출범식에서 민주화의 주역이었던 함세웅 신부는 “대한민국 어느 필부가 나와도 이명박과 박근혜보다 나은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단언했었다.
살아온 행적에서 신뢰를 찾을 수 있고, 세계사의 흐름 속에 역사적 소명을 담아낸 비전을실천할 의지와 지혜를 갖추고 있으며, 인사와 업무에 한반도 전체를 담아내는 포용적 능력을 갖춘 대인풍의 인물이라야 비로소 적공(積功)이라는 칭호가 가당하다.
“10년 후 초등학생들이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이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2014년 홍콩 우산혁명의 주역이었던 17세의 학생지도자 조슈아 웡(黃之鋒·Joshua Wong)은 이렇게 외쳤다. 홍콩 중심부를 ‘노란 우산 물결’로 뒤덮었던 우산혁명은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체제에 대한 가장 대담한 도전으로 불렸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의 간선제 방침에 항의하는 홍콩시민들이 대거 거리로 몰려나와 중국 정부의 방침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우산혁명’으로 불린 이 시위는 1989년 ‘천안문 시위’ 이후 최대 규모의 민주화 시위였다. (사진 출처: BBC)
2017년부터 홍콩 행정장관을 시민들이 직선으로 뽑더라도 중국이 원하는 2~3명의 인물 중에 고르게 하겠다는 중국의 결정이 기폭제가 됐다. 최루탄과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아내고 거리를 깨끗이 정리하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물결에 서구 언론들은 찬사를 보냈다.
79일간의 투쟁은 진정한 직선제를 쟁취하지 못한 채 ‘미완의 혁명’으로 마무리됐다.
중국이 제시한 선거 안은 홍콩 입법회(한국의 국회 격)에서 부결되긴 했지만, 2017년 행정장관 선거는 지금처럼 간선제로 치러질 가능성도 커졌다. 그렇게 된다면 무늬뿐이라고는 해도 직선제보다 더 후퇴하는 셈이다. 중국이라는 거인 앞에서 어떤 몸짓을 해 보이더라도 결국 바위에 달걀 치기가 아니겠냐는 체념이 나올 법도 했다.
우산혁명 주역들의 약진
그러나 우산혁명의 파장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9월 28일 홍콩 시민들은 우산혁명 1주년을 기념해 또 다시 거리에 모여서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 2월에는 홍콩 중심가 중 하나인 카오룽(九龍) 반도 몽콕(旺角) 거리에서 대규모 폭력시위까지 벌어졌다.
어묵을 파는 노점상을 단속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고 해서 ‘어묵혁명’이란 별칭이 붙었다. 몽콕은 우산혁명 기간에도 가장 치열한 시위가 벌어졌던 곳이다. 시위대는 경찰관을 향해 벽돌과 쓰레기통, 유리병 등을 던졌고 경찰은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기도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절정은 아무래도 지난 9월5일 진행된 홍콩 입법회 선거(한국의 총선 격)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우산혁명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이 총선에서 홍콩의 자주를 주장하는 우산혁명의 주역들과 시민운동가 등이 의회 입성에 성공했다. 투표율은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최고인 58%를 기록했다.
2016년 9월, 홍콩시민들이 홍콩 입법회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의 포스터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BBC)
현지 언론인 <빈과일보>의 분류에 따르면, 모두 70석 가운데 여권이라 할 수 있는 친중파(건제·建制)가 40석을 차지했다.
야권 중에는 민주주의를 지켜내자는 전통의 범민주파(泛民)가 23석, 우산혁명의 주역을 포함해 홍콩의 자주를 강조하는 신생 자결파(自決)가 6석, 범민주와 자결의 중간파가 1석을 차지했다. (국내 언론은 주로 친중파 40석, 범민주 22석, 자결파 8석으로 보도했다) 친중파와 범민주파가 양분해 왔던 입법회에 자결파라는 제3세력이 탄생한 셈이다.
노란색-자결파, 파란색-범민주파, 붉은색-친중파. 이번 총선에서 우산혁명의 주역들로 이뤄진 자결파들이 8석의 의석을 얻었다. (이미지 출처: South China Morning Post)
중요 법안에 대한 부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3분의 1선(24석) 이상을 확보하는 선전을 펼쳤다고는 하지만, 이전 친중파의 의석이 43석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범야권의 의석은 고작 3석 정도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홍콩의 특이한 선거제도 탓에 70석 가운데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지역구 후보는 35석에 불과하고, 간선·비례 직능대표가 35명인데 대부분 친중파로 채워지는 탓이다.
지역구 선거로만 보면 이번 선거의 진짜 의미는 범민주파의 의석이 줄어든 만큼 자결파 의원들이 늘어난 것, 즉 야권의 세대교체로도 해석할 수 있다. 새로 입성한 자결파 의원들의 면면이 이래저래 주목을 받는 이유다.
(참고로 자결파라고 해서 모두 중국으로부터 즉시 완전 독립을 주장하는 급진파는 아니다. ① 독립은 비현실적이지만 일국양제(一国两制·한 나라 두 체제, 1997년 홍콩은 대영제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반환됐지만 50년 동안은 다른 정치, 경제, 사법 체제를 유지하기로 약속했다)를 채택하면서 약속한 항인치항(港人治港, 홍콩 시민이 홍콩을 다스린다) 원칙만은 지켜라(자결·self-determination) ② 홍콩은 내륙 중국과 구별되는 또 다른 본토로서의 홍콩이며, 본토 문화를 지켜내야 한다(본토·localism) ③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키자(독립· pro-independence) 등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홍콩의 미래는 스스로 결정해야”
가장 주목받았던 인물은 아무래도 우산혁명 주역들이 만든 정당 ‘데모시스토(香港衆志·Demosisto)’를 이끄는 네이선 로 주석(23·羅冠聰·Nathan Law)이었다. 그는 6석이 걸린 홍콩섬(港島) 지역구에서 2위로 당선됐다.
네이선 로(Nathan Law)
로 주석은 1991년 28세로 당선된 제임스 토 의원의 기록을 25년 만에 깨고 ‘최연소 입법회 의원’의 타이틀을 얻게 됐다.
로 주석은 2014년 홍콩의 대학학생회 연합체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학련)의 상무위원 겸 홍콩 링난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우산혁명을 촉발시킨 주인공이다.
그는 중·고교생들의 단체인 학민사조(學民思潮) 위원장 조슈아 웡과 함께 3m 높이의 정부청사 철문을 넘어 청사 건물 앞 공민광장을 점거한 채 시위를 벌였다가 체포됐다.
당시 경찰이 후추스프레이 등을 이용해 강경 진압하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고 우산혁명이 촉발됐다. 로 주석은 이후 진행된 우산혁명 시위에도 주도적으로 나섰다.
로 주석은 지난해 학련을 이끄는 비서장으로 선출됐다. 우산혁명 1주년 기념집회에서 “정부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식에 사회가 표출한 실망감과 분노를 잘 이해하고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겠다”며 거리 투쟁 대신 정치권 활동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어 웡과 함께 데모시스토당을 결성해 총선에 나섰다. 우산혁명 당시 공민광장 점거 시위가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며 한때 출마가 위태로워지기도 했지만 징역형을 면해 출마가 가능했다.
조슈아 웡(Joshua Wong) (오른쪽)
로 주석과 함께하는 데모시스토당의 웡 비서장은 15살인 2012년 학민사조를 결성했다.
그는 홍콩 당국이 중국 공산당에 충성하도록 애국심을 고취하는 국민교육을 고교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려고 하자 반대운동에 나서 저지시키기도 했다.
이번에 19세가 된 웡 비서장은 나이제한에 걸려 총선에 출마하지는 못했다. 입법회 의원의 출마 제한 나이는 21세다.
웡은 “중국 인민대표 회의 대의원 자격을 얻기 위한 최소 나이도 18세인데 말이 안 된다”며 홍콩 고등법원에 소장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로 주석과 웡 비서장 등이 결성한 데모시스토당은 홍콩의 독립을 직접 주장하지는 않는다. 독립이든 아니든 홍콩 사람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초 여론조사에서는 당선 가능성이 불투명한 것으로 나왔지만 젊은 층이 대거 투표장에 몰리면서 2위로 도약한 것으로 해석됐다. 로 주석은 새 입법회가 개원하면 홍콩의 미래를 결정할 국민 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열혈 시민운동가의 당선
이번 선거에서 최대 이변의 주인공은 시민운동가 에디 추(38·朱凱迪·Eddie Chu Hoi-dick)가 꼽힌다.
에디 추(Eddie Chu Hoi-dick)
신계서(新界西) 지역에 출마한 추는 무소속으로 나왔음에도 8만4121표를 얻어 지역구 당선자 35명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홍콩 언론은 그에게 ‘표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개표 결과 당선이 확정되자 예상치 못한 결과에 감격에 겨운 듯 벽에 기대 울기도 했다. 선거 자금도 부족해 많은 홍보포스터를 손으로 그려 붙였을 정도로 열악했던 유세 과정에서 나온 결과이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추는 홍콩중문대학을 졸업한 뒤 이란 테헤란 대학에서 페르시아어를 공부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등 페르시아어권 나라에 대한 뉴스를 홍콩 유력 일간지인 명보에 기고하는 프리랜서 기자로도 일했다.
본격적으로 환경 보호와 문화 보존 운동에 뛰어든 것은 2006년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퀸스피어와 스타페리 부두가 매립 사업으로 철거될 위기에 처하자 반대운동을 벌이면서부터다.
2009년에는 광저우-선전-홍콩을 잇는 고속철도 건설로 원주민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반대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11년 그는 토지정의연맹(Land Justice League)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추는 홍콩의 독립은 홍콩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추의 활동은 홍콩의 기득권 세력에게 위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벌어지는 이란, 아프가니스탄 현장을 누빈 그이지만, 현재 그와 가족에게는 더한 위협도 가해지고 있다. 추의 행보가 지역구인 신계서 지역의 원주민들의 이권을 대변하는 향의국의 큰 반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에서는 심각한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신계 지역에 1만7000호의 공공주택을 더 지으려고 했다가 4000호 수준으로 멈추고 말았는데, 추는 이것이 정부와 향의국, 신계 지역 삼합회 등이 결탁한 결과가 아니었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다 그는 선거 기간 중 향의국 유관 폭력 조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경찰로부터 신변 보호까지 받게 됐다.
그런데도 그는 당당히 소신을 밝히고 있다. “우리는 신계 지역으로부터 오는 정치적 긴장과 폭력을 목격하고 있다. 나는 그것을 입법회의 첫 번째 의제로 올릴 것이다.”
“자치가 아니라 독립”
데모시스토보다 더 급진적으로 평가되는 ‘청년신정(靑年新政·Youngspiration)’을 결성한 렁충항(30·梁頌恒·Sixtus “Baggio” Leung) 위원장과 야우와이칭(25·游蕙禎) 후보도 이번 선거에서 당선됐다.
청년신정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표방하고 있다. 물과 식량의 중국 본토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렁충항(Sixtus “Baggio” Leung)
렁충항은 홍콩시립대 총학생회장으로 우산혁명 시위에 참여했다. 시위가 진압되고 한 달 뒤 그는 청년신정을 만들었다. 그는 선거 종료 뒤 이렇게 말했다.
“우산혁명의 실패는 나와 다른 참여자들에게 한 가지 확신을 심어줬다. 베이징과의 급진적 결별이야말로 다가올 세대들에게 홍콩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국양제는 이미 갈 길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야우와이칭은 청년신정의 렁충항과 함께 청년신정의 주요 멤버다. 그녀는 이번 선거에서 홍콩 입법회의 최연소 여성 의원이 됐다.
야우와이칭(Yau Wai-ching)
링난대에서 중문학을 전공했고 중국 문화에 애착을 갖고 있던 그 역시 우산혁명 참여를 계기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지방의회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아쉽게 친중파 후보에게 패배했던 그녀는 이번에 범민주파 거물 의원을 제치고 당선됐다.
야우와이칭은 “나 홀로 있을 때 내 힘은 적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청년신정이라는 팀이 될 때, 나아가 홍콩 인민이라는 팀이 될 때 우리의 힘은 매우 커질 수 있다. 나는 언젠가 우리가 오늘 흘린 땀과 피가 열매를 맺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폭력투쟁도 불사하는 가장 급진적인 독립파로 꼽히는 열혈공민(熱血公民·Civic Passion)의 웡잉탓(黃洋達·37)도 의원에 당선됐다. 열혈공민은 중국 정부가 홍콩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관련 조항을 홍콩기본법(홍콩의 헌법에 해당)에서 삭제하자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웡잉탓(Cheng Chung-tai)(오른쪽)과 라우시우라이(Lau Siu-lai)
홍콩이공대 강사인 그는 우산혁명 참가 뒤 중국 본토인의 ‘병행수입’ 반대 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병행수입이란 중국인들이 홍콩에 들어와 분유, 기저귀, 화장품 등의 물건을 사재기 한 뒤 중국에 되팔라 차익을 얻는 행위다.
웡잉탓은 가르치는 학생들의 부모들에게 학생들을 선동했다며 고소당하기도 할 정도로 자기 주장이 강하고 논쟁을 피하지 않는 편이다.
그는 선거 전 라디오 토론에 나와 “홍콩 정부에 대해 공격적인 전략을 취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호소했다. 홍콩이라는 도시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여전히 그는 홍콩 사람들이 적극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역시 홍콩이공대 강사인 라우시우라이(40·劉小麗)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범민주파 진영 중에서는 가장 많은 득표를 하며 당선됐다. 그녀는 라디오와 TV 토론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입지를 굳혔다.
성향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쪽인데 홍콩의 완전한 독립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라고 보고 지금처럼 고도의 자치권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의회 활약 기대…중국 압력 큰 변수
장외 투쟁의 열기가 현실 정치로 수렴되는 일이 드문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홍콩의 이런 분위기는 부럽기만 하다. 각 선거구에서 득표순으로 정해진 수의 의원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도 하다. 물론 새롭게 입법회에 입성한 젊은 얼굴들이 얼마나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홍콩의 젊은 세대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산혁명의 배경에는 날이 갈수록 삶이 팍팍해지고 있는 젊은층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 자칫 홍콩이 중국 내의 이름 없는 삼류도시로 몰락해버릴 것이라는 절박감 등이 내재해 있다.
대다수의 홍콩 젊은이들은 자신을 ‘홍콩인’이라고 생각하지 ‘중국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국양제라지만, 홍콩은 중국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산혁명의 ‘센트럴을 점령하라’ 구호는 겉으론 실패로 보였지만 홍콩 사람들의 마음을 이미 상당부분 점령하고 말았다.
상황은 녹록치 않다. 중국은 마음에 들지 않는 선거 결과를 보고 홍콩을 더욱 옥죌 가능성도 있다. 중국 국무원 홍콩 마카오 사무판공실은 선거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선거 무대를 이용해 ‘홍콩 독립’을 선전하는 것은 중국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며 “이번에 당선된 입법회 의원들이 중국 법률과 홍콩 법률에 맞게 직무를 수행해주기를 바란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나 홍콩의 열기는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선거가 끝나고 지난달 28일 저녁에는 우산혁명 2주년 맞이 집회가 열었다. 참가자들은 행정장관 선거 직선제 도입 등을 또 다시 요구했다.
에디 추는 당선 직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홍콩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스스로 믿어야 한다.”
정치인·지식인 사이에서 헌법을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민의 개헌 찬성률도 높다. 개헌에 관한 한 여당과 야당의 차이, 진보와 보수의 대립 같은 것은 없다. 그러나 헌법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 이들은 많지 않다. 왜 그런가?
먼저 우리는 개헌에 합의할 수 없다. 의견은 제각각이고, 어떤 의견이든 무시할 수 없는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개헌론자 사이에서도 정부형태만 고칠지, 전면 개정할지 통일된 견해가 없다. 전면 개정하면 너무 많은 쟁점 때문에 갈등하다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정부형태만 바꾸면 기본권 확대와 같이 중요한 문제를 반영할 수 있는 30년 만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문제를 곧바로 개헌의 문제로 등치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막으려면 정당체제를 손봐야 한다. 복지를 확대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경제, 사회 정책에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헌법이 잘못돼서 민주화 이후 30년이 궤도 이탈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민주화의 성과를 발전시키려는 우리의 의지와 역량에 부족함이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정부형태만 바꾸기로 의견이 일치해도 마찬가지다. 이견은 여전하다.
새누리당의 이정현·유승민은 4년 중임제를 주장한다. 김무성은 이원집정부제, 남경필·원희룡은 분권형 대통령제, 정병국은 내각제를 지지한다. 야당의 문재인은 4년 중임제, 박지원은 분권형 대통령제, 김부겸은 이원집정부제, 김종인·천정배는 내각제를 선호하고, 안철수·박원순은 특별한 의견이 없다.
이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하나의 정부형태에 합의해도 문제는 남는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은 4년 중임제를 제안했다. 당시 정가는 개헌에는 부정적이었지만 4년 중임제는 선호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 국회의 미래한국헌법연구회는 중임제, 내각제, 분권형 대통령제 3개의 대안을, 국회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복수안을 제안했다. 박근혜 정부 때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는 분권형 대통령제 단일안을 마련했다.
요즘 추세는 중임제보다 분권형 대통령제다. 노무현 정부 때 중임제로 개헌했다면, 다시 개정하자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한편에서는 그동안 별로 조명받지 못했던 내각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선호도는 세월 따라 변하고, 우리는 무엇이 최선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개헌의 목적도 분명하지 않다. 권력분산 역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동원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어떤 상황에서는 분산이 정국 교착, 국정 마비를 초래한다. 권력집중, 필요할 때가 있다. 분산과 집중은 선악 혹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성공적 국정을 위해 어떻게 조화시키고 균형을 이루느냐의 문제다.
권력 집중과 분산은 정부형태가 아니라 정당체제의 종속변수다.
본래 권력집중형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국회의 다수파가 정부를 장악하는 내각제다. 내각제가 권력분산형으로 보이는 이유는 내각제 채택 국가들이 대체로 다당제 효과가 있는 비례대표제를 도입, 여러 정당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권력분산을 원하면 비례대표를 확대해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말까지 선거구를 조정하라고 판결했을 때가 기회였다. 그러나 정치권은 오히려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양당제를 강화했다. 정치개혁, 선거제도 개편만 해도 많은 변화가 가능하다. 그런데 정치개혁에는 소홀한 정치인들이 새 헌법 이야기만 하고 있다.
새 헌법을 만들면 좋은 세상이 올까? 그게 궁금하면 세계 최고의 바이마르 헌법을 따랐다는 제헌 헌법의 노동자 이익 균점권이 노동자의 현실을 개선하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1987년 경제민주화에 복지 조항까지 명시했지만 30년간 어떠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현 대통령제가 미국식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장점만 살렸다는데도 왜 불만인지 돌아봐야 한다.
흔히 87년 체제를 탈피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극복 대상으로 헌법을 지목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은 것은 87년 헌법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낡은 사회·경제 체제, 왜곡된 정치구조를 깨려는 의지와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 책임을, 신성한 언어가 넘치는 헌법에 전부 물을 수는 없다. 우리 삶이 나아졌다면 그것 역시 헌법 속 우아한 문장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열정과 현실을 개선하고자 했던 피나는 노력 때문이다. 삶은 헌법보다 크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생각이라면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복지를 확대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고 싶으면 헌법이 아니라 사회·경제 정책을 바꾸고, 그게 가능한 정치를 해야 한다. 검찰을 바로잡고 싶으면 검찰개혁을, 재벌체제를 고치려면 재벌개혁을 해야 한다.
헌법 개정은 아니다. 헌법에는 해결책이 쓰여 있지 않다. 불립문자(不立文字). 헌법에 쓰이지 않은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87년 체제는 우리가 스스로 가둔 공간이다. 헌법이 우리를 가둔 적이 없다. 방문은 잠겨 있지 않다. 방 안에 갇혀 있다는 공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이다. 왜 문을 열고 나가지 않는가?
박근혜 정권은 ‘성장과 안보’ 두 신화로 포장된 한국 보수우익의 실체를 드러낸 점에서 큰 역사적 기여(?)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오히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속살을 백일하에 들추어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최고 권력의 요구로 미르 재단, 케이(K)스포츠 재단을 설립했다가 강제 모금 의혹이 일자 갑자기 해산 결정을 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백남기씨 사망, 사인 진단, 부검 시비에 연루된 경찰, 검찰과 서울대병원의 대응들에 그것이 집약되어 있다.
이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한국의 ‘근대 국가’의 세 기둥, 즉 근대 관료조직, 시장경제, 그리고 시민사회가 뼈대 없는 껍데기였다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청와대의 요구에 재벌은 일사분란하게 돈을 모았고, 최고의 전문가라는 대통령의 주치의는 명백한 사망원인을 바꿔치기 했다. 박근혜정부에서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비민주적 행태가 아니라, 권력 앞에서 집단의 자율 규범과 전문가의 직업 윤리를 쉽게 내뺑겨치는 모습이다. 그만큼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5시간 만에 작전하듯이 재단 설립을 인가한 문화체육관광부, 그리고 이사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수십억원의 회삿돈을 한날한시에 입금한 재벌들, 그리고 문제가 되니 모든 자료를 파기해버리는 전경련의 모습은 거의 범죄집단을 연상케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공조직인 정부, 가장 막강한 사조직인 전경련과 재벌 기업이 권력자의 요구에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이 나라가 거의 왕조국가이거나 전체주의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그들 간의 은밀한 먹이사슬이 얼마나 강고한지도 짐작하게 해준다.
한편 경찰이 시위 농민에게 물대포 ‘직사살수’를 해서 식물인간 상태를 만들었는데, 막상 시간이 지나 사망하니 검찰은 그가 ‘외인’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부검을 실시하려 하고, 한국 최고 의료기관인 서울대병원은 그가 ‘병사’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우리는 경·검과 더불어 전문가의 직업윤리도 일거에 무너진 어이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태를 변호하고 싶지는 않지만, 권력의 요구 앞에 한국에서 가장 힘 있는 공조직과 사조직이 도구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에 우리는 정말 허탈하고 할 말을 잊는다.
과거 독재권력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검찰, 보수언론을 사유물로 생각하면서 범죄를 종용했고, 그들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뭉갰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역대 어떤 대통령이나 정부기관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규정과 절차를 어기지는 않았고, 이렇게 사건을 은폐하고 손바닥으로 달을 가리는 식으로 둘러대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권 덕분(?)에 우리는 한국이 아직 근대 국민국가의 초입에도 제대로 들어서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다.
2차대전 후 미국은 일본에서 전쟁범죄의 기둥인 재벌을 해체하였으며, 독일에서는 나치 학살 범죄자들을 처벌했다. 그래서 독일과 일본은 민주국가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나라의 살아남은 극우세력과 대기업이 아무리 노골적인 권력욕과 이윤추구 욕망을 드러내더라도, 정당, 관료, 법, 시민사회가 그것을 저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지금의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의 정치도 엉망이다. 그래도 국익을 위해 일하고 법을 존중하는 엘리트 집단과 공조직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식민지, 독재 시절의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한 한국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한국에는 애국심과 직업적 자존심을 갖는 우익 정치세력, 고위 관료, 기업가, 전문가가 거의 없다. 이게 진정한 국가 위기다.
갑신정변의 주역인 서재필은 “나라가 망하려면 애국자들을 먼저 죽인다”고 말했지만, 박근혜 정권과 친박세력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 여당, 사법부, 관료집단, 공기업 등에서 소신과 양심을 가진 사람을 모두 내쫓았고, 출세욕이나 자신의 약점 때문에 권력자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할 사람들만 골라서 기용했는데, 그들의 생존 본능으로 국가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모든 일이 대통령과 청와대로 통하면 관료, 시장, 시민사회는 별로 할 일이 없다. 이들 기관의 자체 매뉴얼이나 규정은 권력의 요구 앞에 휴지 조각으로 변했다.
오늘의 한국인은 썩은 세 기둥으로 지은 집 안에서 불안에 떨고 있다. 한국이 왜 40년 전 유신시대, 아니 120년 전의 왕조시대로 후퇴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대선과 정권교체에 답이 있지 않다. 국가의 세 썩은 기둥을 다시 세워야 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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