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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4] 복지동향이 독자들께 닿기까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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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4] 복지동향이 독자들께 닿기까지의 이야기

익명 (미확인) | 월, 2018/10/01- 16:00

복지동향이 독자들께 닿기까지의 이야기

 

김잔디 | 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들어가며

대학생 때부터 복지동향의 정기구독자였다가 복지동향을 발행하는 과정에 참여했던 시민으로서 20주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다. 지난 20년 동안 매월 빠짐없이 복지동향을 발행하는 것은 정말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수고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하는 간사들에게는 많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복지동향을 발행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사명감, 달리 말하면 부담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그 부담을 내려놓고 다시 구독자의 위치에서 복지동향을 접하다 보니 복지동향이 가진 의미와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함께 기획된 다른 특집 글의 필자들께서 복지동향의 역사적 의의와 앞으로 기대되는 역할에 대해서는 충분히 다룬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편집간사로서 복지동향을 제작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참여연대 회원들을 포함한 구독자들께 소개해드리고자 한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복지동향의 매력에 빠져보시길 바란다.

 

복지동향만이 특별한 이유

복지동향은 국내에서 가장 많이 알려지고 읽히는 사회복지분야 월간지다. 사회복지분야의 최신 정보와 뜨거운 논쟁이 궁금하다면 복지동향을 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복지동향은 사회복지분야뿐만 아니라 노동, 조세‧재정, 인권 등 사회정책 전반의 이슈에 대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간결하고 깊이 있게 담아왔다.

 

물론, 사회복지분야에 다양한 간행물이 발행되고 있다. 사회정책분야 학술지부터 사회복지 관련 협회의 전문잡지, 정부기관 소속 연구원의 간행물까지 다양하게 존재한다. 정기적으로 발행되는 간행물로써 사회복지분야 전반의 아젠다를 다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복지동향에는 분명 다른 것이 있다. 복지동향을 제외한 대부분의 간행물은 정부나 준정부기관의 지원에 의존하여 발행된다. 반면 복지동향은 정기구독자, 참여연대 회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관심과 기여를 통해 제작되고 발행되어 왔다.

 

정부기관의 소속이거나 지원을 받는 경우에는 다룰 수 있는 주제와 필자 구성에 제한이 생기기 마련이다. 복지동향도 원고 분량, 주제 선정, 필자 섭외 등에 대한 기준과 논의절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기준과 절차가 다양성과 진보성을 지향하기 때문에 사회복지분야의 다른 간행물에 비해 다양한 주장과 논쟁을 자유롭게 소개해 왔다. 학술적 전문성을 가진 필자부터 현장에서 지역주민과 호흡하는 사회복지 현장 전문가, 지역운동가까지 다양한 필자구성을 가지고 있다. 주제도 대표적인 사회정책 이슈(사회보험, 사회서비스, 공공부조, 복지국가 등)부터 사회복지시설, 지역복지, 여성, 이주민, 노동, 조세‧재정, 주거, 모금 등 사회 전반의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또한 복지동향은 학술적인 접근과 대중적 접근을 모두 고려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기존에 발행되는 사회복지분야 간행물 대부분이 학술적인 내용을 위주로 다루고 있다. 학술지나 연구기관의 정기간행물은 전문적 지식이 없는 일반 시민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다양한 연구결과들이 시민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언어와 각색이 필요하다. 그래서 복지동향의 글은 그 분량을 제한하고 있고, 대중적 이해를 고려한 원고요청 과정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다루는 주제도 시민과 사회복지분야 이해당사자들이 관심 갖는 것들을 우선으로 다뤄왔다. 이런 점에서 복지동향은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매체다.

 

복지동향의 모든 필자들은 원고료 없이 자발적으로 기고에 참여하고 있다. 필자뿐만 아니라 복지동향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편집위원, 편집간사, 출판사까지 최소한의 제작비용을 제외하고는 재정적 지원 없이 자원으로 참여해왔다. 참여하는 사람들이 복지동향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없다면 발행이 불가능한 제작 환경이다. 그래서 편집간사로서는 복지동향 표지에 나오는 필자들과 마지막 페이지에 표기되는 발생인, 편집인, 편집위원장, 편집위원, 편집간사, 발행처, 편집‧제작에 속한 사람들이 몹시 소중하고 감사하다.

 

사회정책 또는 사회복지는 한국사회의 주류에 속하는 쟁점이 아니었다. 경제성장을 통한 부의 분배에 중점을 두고 국가가 운영되기 때문에, 사회복지는 시혜적이고 자선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시민사회계나 정치운동 세력 내에서도 중요한 사안으로 다뤄진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진보적인 시민사회나 정치세력으로부터도 노동의 가치보다는 뒤떨어지는 개념으로서 취급되거나, 자본주의에 편승한 순응적 산물로서 무시되었다. 그 반대세력에서는 사회복지나 복지국가는 시장경제의 순기능을 훼손하고, 대중의 환심을 사기 위한 포퓰리즘이라고 비판을 받아왔다. 참여연대는 이런 환경을 극복하고 시민이 권리로서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시민들에게 다양한 복지 아젠다를 소개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복지동향을 제작하고 있다.

 

한 권의 복지동향이 나오기까지

복지동향은 편집위원회와 편집간사를 중심으로 제작된다. 편집간사 또는 편집위원회에서 <기획주제>를 정하고 필자를 선정한다. 이 외에도 <동향>, <복지톡>, <복지칼럼>, <생생복지>, <열린광장> 코너의 내용을 구성하고 필자를 섭외하다 보면 매월 10명의 필자를 선정하고, 섭외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제작 일정에 맞춰 원고를 받아 검토를 한다. 제목 추가여부, 비문이나 오탈자 수정, 관련 이미지 추가, 원고 분량 확인 등 편집을 거쳐 출판사에 넘기면 출판사가 인쇄를 위한 편집을 다시 한다. 그 사이에 편집간사는 발송자 명단을 발송업체에 보낸다. 복지동향은 정기구독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후원회원, 필자 등에게 발송된다. 이 모든 과정은 주로 편집간사가 주도하는데, 1명이 담당하기도 했고, 격월로 2명이 번갈아가며 진행하기도 했다.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코너는 <기획주제>이다. 주제에 따라 전문 분야별로 구성된 편집위원들에게 기획주제 구성을 요청하기도 하고, 편집간사가 기획한 구성을 편집위원들에게 검토받기도 한다. 필자 구성에서도 편집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필요한 경우에는 필자섭외를 편집위원이 직접 하기도 한다.

 

편집간사 입장에서는 복지동향 제작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업무가 원고 취합이다. 원고료를 따로 드리지 않기 때문에 필자들에게 원고를 독촉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항상 넉넉한 기간을 두고 원고를 요청하지만 간혹 아주 난처하게 하는 필자들이 있다. 마감 기한을 코앞에 두고 필자가 원고 기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고, 기한을 한참 넘겨 원고를 주는 경우에는 결국 발행일정을 미루기도 한다. 그래서 편집간사 마음 깊숙한 곳에는 필자블랙리스트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업무로는 각 코너를 구성하는 업무가 있다. 가장 최근의 복지 쟁점들을 잘 모니터링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종 토론회, 학술대회, 언론기사, 국회 법안, 연기기관 보고서 등 참고하기도 한다. 매년 반복되는 주제들(선거공약 및 정부의 복지정책 평가, 보건복지 예산 분석 등)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각 발행기간에 맞춰 가장 최신의 주제들로 구성하려고 한다. 그래도 편집위원장을 비롯한 편집위원들이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매월 발행이 가능한 것이다.

 

20년 동안 복지동향은 계속 변화해왔다. 표지부터 글씨 크기, 단의 구성, 이미지의 활용까지 편집위원회와 편집간사는 일정 기간마다 복지동향을 개편했다. 오랜 구독자라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는 표지 디자인이 변경되었다. 故신영복 선생님의 제자(題字)로 쓰인 ‘복지동향’은 그대로 두고, 좀 더 친근한 이미지의 표지를 제작했다. 제목에 쓰이는 글씨체도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했고, 전반적인 글씨 크기와 문단 구성도 2단으로 변경하였다. 또한 줄글을 계속 넣기보다는 주제와 관련된 사진이나 이미지를 적절히 추가해서 흑백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구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하고 있다. 원고의 전체 분량도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조정한다. 또한 종이의 질이나 무게도 고려한다. 이 모두 가독성을 고려한 변화였다. 현재는 제작비용이나 환경을 감안해서 재생지를 쓰고 있다. 뒤표지와 여백의 공간도 적극 활용한다. 출판사의 책을 소개하기도 하지만, 참여연대에서 하고 있는 중요한 캠페인을 홍보하는 데에 활용하기도 한다. ‘복동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페이스북을 통해 숨겨진 구독자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도 하고 있다.

 

목차 구성도 많은 논의와 고민을 통해 변화해왔다. 현재의 구성은 사회복지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더 많이 담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복지톡>을 통해 사회복지현장의 다양한 구성원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회복지분야 관련 종사자, 의사, 활동가, 시민, 교수, 정치인 등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없는 인물들을 소개한다. <복지칼럼>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신진 실행위원들을 중심으로 복지국가나 보편적 복지에 대한 기고글을 소개하고 있다. 한 필자가 일정 기간을 연속으로 기고하기도 하고,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칼럼을 쓰기도 한다. <생생복지>는 지역복지운동 현장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코너다. 참여연대가 국회나 보건복지부와 같이 중앙정부의 사회정책에 대응하는 조직이라면, 전국에는 각 지역의 특성에 맞게 다양한 사회복지 아젠다를 가지고 활동하는 지역복지운동단체가 있다. 이들이 모여 ‘지역복지운동단체네트워크’를 발족하였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복지국가를 위한 지역적 노력을 함께 하고 있다. 부산에서는 형제복지원 문제를 전하기도 했고, 인천과 충북에서는 지역복지재단 설치와 관련된 쟁점도 다뤘었다. 경기도에서는 민관 거버넌스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하고, 관악구에서는 마을공동체의 다양한 활동을 보여줬다.

 

감사한 사람들

이번 20주년을 통해 그간 원고를 기꺼이 기고해주신 모든 필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촉박한 기간으로 원고요청을 드려도 기쁘게 응해주신 분들도 많았고, 기획주제에 따라서는 몇 개월을 연속으로 원고를 요청했던 분들도 많았지만 거절하신 분은 거의 없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섭외한 필자보다는 아직 대면 한 번 하지 못하고 전화통화로만 원고요청을 수락해주신 분들이 더 많다. 그만큼 복지국가나 사회복지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참여연대의 활동과 복지동향의 취지에 동의하고 참여하려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또한 편집간사의 잦은 연락과 채근에도 적극적으로 편집과정에 참여해주신 여러 편집위원장을 비롯한 편집위원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원고요청이 촉박하게 거절된 경우에는 대신 원고를 써주신 적도 있었고, 복지동향의 구독자를 늘리기 위해 각 대학의 도서관부터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복지동향을 적극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20년 동안 복지동향 발행을 주도했던 많은 편집간사들에게 감사드린다. 20년 중에 4년 7개월 동안 복지동향 발행에 편집간사로 참여하면서 간혹 폐간을 고민할 정도로 지치고 힘든 순간이 있었다. 참신한 주제를 찾지 못하거나, 필자섭외에 난항을 겪기도 하고, 발행일을 맞추지 못하면 극심한 압박을 받기 때문에 복지동향 업무는 절대 쉬운 작업이 아니다. 더욱이 편집간사들은 편집업무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서 하는 모든 일을 수행하는 동시에 복지동향 발행업무도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그럼에도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들과 동료활동가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발행될 수 있었다. 또 늘어나는 구독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편집위원과 필자, 출판사인 나눔의 집까지 모두 애정을 가지고 복지동향을 제작하고 있기 때문에 편집간사들도 소홀하지 않을 수 있었다. 특히, 이경민 전 편집간사는 복지동향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컸다. 최근의 복지동향 개편과 구독자 증가는 이경민 간사의 주도적인 추진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끝으로 매년 35,000원의 구독료를 지불하고 정기구독하시는 구독자와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를 후원하시는 회원들께 감사드린다. 애독자인 곽경인 회원님은 페이스북에 복지동향을 여러 차례 홍보해주셨다, 광장종합사회복지관 복지동향 공부모임 등 복지동향을 통해 다양한 모임을 진행하고 있는 구독자도 있다.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에 복지동향을 판매하고 싶다는 사장님도 계셨고, 외국 교수가 연구자료로 활용할 의도로 구매의사를 밝혀온 적도 있었다. 수많은 간행물이 봉투도 벗겨지지 않은 채 버려지기도 하지만 복지동향만큼은 꼭 구독자들에게 읽혀지길 바란다.

 

남은 과제들

복지동향이 지속적으로 그 역할을 해내려면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도전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언급해보고자 한다.

 

우선, 원고료 지급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그간 적은 금액이라도 원고료를 지급하자는 의견, 활동가, 신진학자 등 적절한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필자일 경우에 한해서만 원고료를 지급하자는 등의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원고료 없이 원고를 받고 있다. 장기적인 계획을 통해 원고료 지급계획을 수립하거나, 원고료 지급 없는 간행물로 원칙을 지속하는 등의 논의가 내부에서 충분히 있어야 필자 섭외과정에서 자주 제기되는 어려움이 줄어들 것이다.

 

온라인을 통해 구독자 확대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이제는 종이를 통해 글을 소비하기보다 온라인 매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좋은 글을 지면이나 유료 학술정보제공 플랫폼뿐만 아니라 SNS, 홈페이지, 이메일 등 다양한 온라인 매체를 통해 소비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된다면 더 많은 구독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배제되지 않은 방안도 반드시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지금은 참여연대 회원으로서 활동하고 있지만 편집간사로 참여하는 동안, 복지동향 제작에 대한 업무과중으로 조직 내에서 지원을 요청하거나 고충을 토로하면 복지동향을 폐간할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항상 등장했었다. 이것은 복지동향에 대해 참여연대 조직 내부 의사결정자들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복지동향 발행에 얼마나 많은 정성과 자원을 투입하는지 이해해야 할 것이다. 또 많은 구독자들이 존재하고, 사회복지분야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참여연대가 제작하는 또 다른 월간지인 ‘참여사회’는 복지동향에 비해 훨씬 많은 재원과 인력을 투자하지만, 복지동향은 참여사회에 비하면 더 적은 재원과 인력 투입에도 질적으로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법 개정, 사회복지제도의 도입, 대중 캠페인, 노동 및 시민사회와의 연대활동, 관계부처의 감시 등 참여연대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는 업무만큼 복지동향도 복지 확대에 중요한 운동방식이다. 참여연대가 다루는 사회쟁점들이 많다보니 모든 이슈에 대해서 조직구성원 모두가 완벽히 이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구성원간의 신뢰를 기반으로 복지동향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 진지하게 참여해주길 바란다.

 

마치며

글을 쓰고 기고한다는 것도, 돈을 내고 그 글을 읽는 것도, 글을 모아 매달 책으로 제작하는 것까지 모두 누군가가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만 발생할 수 있는 행동이다. 누군가가 열심히 쌓아 놓은 지식을 종이 위에 짜임새 있게 담아내면 지면이나 모니터 화면을 통해 누군가는 읽고 이해하고 나누게 되는 이 과정이 모두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보편적 복지의 확대와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참여방식의 하나이기 때문에 복지동향은 반드시 필요하고, 지속되어야 한다. 아직 복지동향을 모른다면 지금 당장 구독하길 자신 있게 권한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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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흑자와 부과체계 개편

 

정형준 l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장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는 ‘오바마도 부러워한다’는 말로 표현되곤 한다. 그러나 막상 들여다 보면, 주요선진국과 비교해 부끄러운 수준이다. 낮은 보장성, 상병수당의 부재, 간병비의 존재등에 대다수 국민들은 민간보험을 추가로 가입한다. 여기다가 국제적으로 유래가 없는 민간중심의 의료공급체계는 과도한 경쟁으로 병상과다, 과잉진료논란은 물론, 의료민영화의 배경까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재정계획도 제대로 세우지 못해, 작년까지 무려 13조원에 달하는 누적흑자가 발생했다

 

사실 13조원이면 획기적으로 보장성을 강화하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급감시킬 수 있다. 2005년경 1조원가량의 흑자를 기반으로도 ‘암부터 무상의료’를 시행했듯이 말이다. 그간 재정문제로 시도하지 못한 각종 보장성 강화안들을 모조리 시행해 볼 수도 있는 기회로, 의료복지의 획기적 확대를 꾀할 호기인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선별적으로 보장성 항목을 찔끔 확대하는 척 하면서, 재정지출을 제한하려 한다. 도리어 한술 더 떠 입원비 부담을 높여 보장성을 낮추려 한다. 여기다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강조하고, 빈곤층 의료지원을 축소하려 한다. 막대한 재정흑자에도 의료복지를 축소하는 괴이한 상황인 셈이다.

 

우선 건강보험에서 복지긴축을 획책하는 맥락은 몇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는 재정흑자를 기반으로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을 줄이려는 심산이다. 이미 담배세 인상으로 일반회계 지원금이 줄 것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건강보험을 순수하게 가입자들의 돈으로 운영하겠다는 시도다. 시기적으로도 현행 ‘20% 지원법안’이 2016년 만기이다. 두번째는 향후 노령화, 저성장으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미리 대비하는 구도다. 물론 2000년 건강보험 재정적자때 국고지원이 이를 메꾸듯이, 향후 비용이 늘어나 혹여나 이를 국가가 부담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국가책임회피 시도로도 볼 수 있다. 결국 더 나아가서는 건강보험의 공적기능을 약화시키는 방향이다. 마지막으로 ‘더내고 덜받는’ 기조를 건강보험에도 적용하려는 포석이다. 최근 5년간 흑자에도 꾸준히 보험요율을 올려왔고, 보장성은 낮춰왔다. 이미 의료복지에서는 ‘더내고 덜받는’ 구조가 작동한 셈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과체계 개편논의’도 이런 맥락에 놓여있다. 향후 노령화, 저성장국면에서 필요한 건강보험 추가재원을 누가 마련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전면 개편논의가 시작되었다. 물론, 불합리하고 역진적인 그간의 부과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때문에 피부양자문제, 종합소득부과문제 등은 지난 3년간 부분적이나 개선되었던 바 있다.

 

문제는 전면개편의 방향성이다. 그래서 이번호 복지동향에서는 정부추진안의 근간인 ‘소득중심’ 개편방향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비판지점과 대안등을 다뤄본다. 소득이 많은 사람이 많이 내야 한다는데 이이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본다. 다만 ‘소득중심’이 ‘드러나는 소득중심’이 될 공산, 그리고 ‘자산부과’배제가 향후 사회보험의 미래에 미칠영향등이 주된 촛점이다.

 

끝으로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본다는 측면에서 ‘소득중심’ 주장과 이에 대한 안티테제 개념을 넘어선 논의가 여전히 필요하다. 가입자들 사이의 형평부과외에도 건강보험재정을 둘러싼 중요한 논의들이 많이 있다. 특히 국가와 기업 기여를 높일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부과체계 개편논의를 뛰어넘는 건강보험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 이번호가 밀알이 되기를 기원한다.

금, 2015/04/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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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수당으로서의 기초연금 확대 방안

-기초연금, 한국 사회수당의 핵심이 될 수 있을까?

 

주은선 | 경기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들어가며

 

다시 기초연금의 보편적 수당으로의 발전에 대해 생각해 볼 때이다. 앞당겨진 대선 국면에서 한국정치사상 처음으로 기본소득이 정책대안으로 논의된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고 있다.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서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주장은, 조건을 부과하지 않는 보편적인 사회수당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고, 기초연금이든 아동수당이든 현재 복지국가의 사회수당이면 어떤 것이든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소득보다는 더 실현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다시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는 현행의 기초연금을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사회수당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초연금은 함량미달의 기초생활보장 제도로는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한, 현재 노인의 광범위한 빈곤 문제에 대응하고자 하는 제도이며, 동시에 노인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삶의 필요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제도이다. 특히 아직 제대로 된 복지국가가 아닌 우리 사회에서는 주거, 의료, 돌봄 등이 상당 부분 시장을 통해 제공되고 있어서, 노인이 이를 구매할 수 있는 구매력을 갖는 것, 즉, 소득을 확보하는 것이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특별한 중요성을 가진다.

 

이런 점에서 노인의 70%에게만, 최대 20만 원을 국민연금 급여에 거꾸로 연동해서 제공하고 있는 현 기초연금이 노인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데 과연 적절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현재 기초연금 제도가 가지는 문제들과 다른 사회에 대한 전망을 고민해보고, 기초연금의 보편적 수당으로의 전환을 고려해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이다. 특히 다른 산업국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45%를 넘어서는 한국의 노인빈곤율을 볼 때, 소득 및 자산에 대한 이러저러한 심사를 거쳐 약 30% 노인에게 지급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지, 이로 인한 재정절감 효과를 넘어서는 문제점들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보편적 수당도 아닌,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형적인 공공부조도 아닌 애매한 위상을 가진 한국의 기초연금제도가 가지는 문제점을 간단히 살펴보고, 보편적 수당으로의 발전할 수 있을 것인지, 만약 보편적 수당으로 발전한다면 어떤 모습이 되는 것이 바람직할지를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욕구와 보장의 커다란 격차: 한국 기초연금의 현재

 

한국의 기초연금은 대상만 보면 노인 대다수를 수급대상으로 하여 사회수당에 가까워 보이지만, 실상을 보면 보편적 수당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오히려 노인 내부를 소득, 재산은 물론 국민연금 급여액 등 여러 가지 장치를 동원하여 분할하고 그에 따라 보장을 제공하고 있다. 즉, 특정 기준들을 통해 노인 상당수를 보장에서 뚜렷하게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수당으로의 발전 가능성과 한국 노인들의 소득보장 욕구와의 격차라는 관점에서 한국 기초연금제도의 특성과 이것이 초래한 결과를 살펴보자.

 

우선 기초연금의 대상 문제를 보자. 기초연금 대상은 전체 노인 중 소득하위 70%에게 지급되도록 되어 있고 나머지 30%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이러한 70 대 30의 분할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30% 제외의 기준은 자산과 소득 양자 모두로서 항상 자산만 있고 소득이 없거나 매우 낮은 노인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선별 기준의 경계에 있는 노인들은 매해 탈락 가능성을 안고 있다. 또한 실제 급여 지급 집행률 역시 계속 70%에 미치지 못하였다. 2014년 7월 기준 노인 639만 명 중 약 410만 명에게 기초연금이 지급되었고 229만 명이 제외되었다. 2015년 기준 집행률은 97.6%이며, 2014년 수급률(2015년 수급률 집계 중)은 66.8%로 1,826억 원의 미집행액과 3.2%의 미수급자가 존재한다(탁현우, 2016)1). 더욱이 기초연금의 대상이 전체 노인이 아니기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자 노인들이 기초연금 수급대상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제도설계로 인해 제도와 욕구의 괴리가 크게 드러나는 단적인 예이다. 이 문제는 현재 노인 가구 소득 3분위 이하에 속한 노인들의 평균 기초연금 수급액이 오히려 다른 소득분위에 비해 더 낮다는 것에서도, 기초수급자 노인의 7%는 아예 기초연금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것에서도 일부 드러난다(탁현우, 2016).

 

기초연금제도에서 노인들의 욕구와의 격차라는 관점에서, 전체 노후소득보장제도의 작동 면에서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계속 문제가 될 것은 급여액이다. 기초연금 급여액은 2014년 기준 개정 당시 10~20만 원 사이에서 차등화 되어 있다.2) 이는 기초연금 급여의 충분성 면에서도 여러모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초연금액 20만 원은 주거비용이나 의료비용 중 어느 하나를 제대로 충족시키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더욱이 기초연금 급여수준의 안정성과 충분성 문제는 장기적으로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기초연금 급여가 소득이 아닌 물가에 연동되어 있으므로 평균적인 소득수준 증가 속도에 비해 기초연금 급여 인상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매년 연금액이 소득이 아니라 물가와 연동해 오르고,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감액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2014년 기초연금 급여의 증액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 즉, 기초연금의 보장수준과 함께 장기적 안정성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기초연금급여가 차등화 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이것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급여액 차등화 기준은 국민연금 급여액이다. 특히 기초연금액은 국민연금급여 중 소득재분배값 a와 역의 관계를 가지는데, 최종적인 기초연금 급여액은 기준 연금액 20만 원에서 국민연금 중 소득재분배 값 a를 반영하여 삭감되도록 되어 있다. 즉, 기초연금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역으로 연계된다. 이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점 중 하나는 워낙 국민연금 급여액이 낮은 가운데, 기초연금까지 삭감되면서 전체적인 저연금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도입된 것이 예외규정이다. 2014년 기준 국민연금 수령액이 30만 원 이하인 노인은 가입기간에 따른 기초연금 감액을 받지 않고 기초연금 급여 20만 원을 모두 받도록 한 것이다.3) 다시 이로 인한 소득역전 현상을 보완하기 위해, 국민연금 급여가 30~40만 원인 노인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합이 50만 원에 못 미치는 경우 기초연금을 더 지급하여 50만 원을 채우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현재 기초연금액 차등지급 대상 노인 수는 많지 않다. 2014년 8월 수급 노인 중 388만 명에게는 20만 원이, 32만 명에게는 10~20만 원 차등지급 되었다. 다만 국민연금 제도 정착에 따라 그 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2007년 국민연금 급여삭감 조치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국민연금 저연금 문제는 상당 기간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기초연금 급여삭감 대상자 수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기초연금의 노후보장 기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더불어 저소득 가입자의 국민연금 장기가입의 이점은 줄어들어 가입 유인이 떨어진다. 또한 이러한 차등지급 조치를 통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동시 보장이 이루어지더라도 공적연금의 전체적인 보장 수준은 이미 낮게 제한되게 된다.

 

기초연금은 재원 면에서 중앙정부 책임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어 여타 소득보장제도와 다르며 특히 사회수당의 통상적인 재원조달과 다르다. 즉, 기초연금 재원에 대해서는 시도별 노인인구 비율과 재정 자주도 등에 따라 시군구도 차등적으로 부담 의무를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기초연금은 전액 조세로, 국비와 지방비의 매칭으로 집행되며, 2014년 기준, 435.3만 명의 
노인에 대한 급여 지급을 위해 국비(5조 1,270억 원)와 지방비(1조 7,185억 원)가 집행되었다(탁현우, 2016). 이는 일견 합리적 기준에 의한 재정 분담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실제 형평성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지방정부의 재정분담은 그 자체로 지방정부가 전혀 정책결정의 재량을 갖고 있지 않은 수당의 재정 분담이라는 점에서 문제를 갖는다. 실제 지방정부 재정부담은 과중하며, 결국 지방정부가 재량을 가지는 많은 사회복지 사업 수행을 점점 어렵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기초연금의 확충 문제는 지방정부 재정 여력이 아닌 전사회 차원의 필요와 중앙정부 차원의 재원 확보 능력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 재정상태 등의 별개의 요인들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은 문제이다.

 

요컨대 현 기초연금제도는 대상이나 급여 등으로 볼 때 국민연금 미수급 및 저연금 문제에 대한 잠정적인 대응 장치로 설계되어 있으나,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대응책이 되기는 어렵다. 더욱이 기초연금 대상 선정은 가장 소득보장 필요도가 높은 기초연금수급자 노인을 오히려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국민연금 미수급이나 저연금 문제를 완전히 보완하기에도 기초연금 급여수준은 불충분하다.

 

그 결과 기초연금 두 배 인상 결과 당연히 노인빈곤율이 떨어지긴 했으나, 그 범위가 획기적으로 감소하지는 못하였다. 즉 OECD 평균 노인빈곤율 12.4%와의 격차는 여전히 매우 크다. 그만큼 한국에서 노인빈곤의 심도가 깊은 가운데, 현재 기초연금 수준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인상된 기초연금이 노인들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는 노인가구의 소비지출, 특히 식료품과 보건의료 항목 소비가 대부분 소득 분위에서 증가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탁현우,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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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기초연금 급여는 전체적인 공적연금의 보장수준을 A값의 30% 내외에서 억제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국민연금 장기수급자 노인에 대한 기초연금액 감액은 지금은 비중이 적으나, 앞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새로운 불공평성 국민연금 가입유인을 떨어뜨리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는 기초연금이 공적연금의 전체적인 보장성과 급여 적절성을 높여 노인빈곤문제를 예방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더욱이 기초연금이 현재 노인빈곤문제에 선별적으로 대응하여 빈곤문제를 없애는 최소한의 역할조차도 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기초연금이 국민연금을 제대로 보완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즉, 미래 노인의 저연금 및 빈곤문제가 기초연금을 포함하는 공적연금을 통해 획기적으로 해소되기는 어렵다.

 

 

보편적이고 적절한 수준의 사회수당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기초연금의 보편적 사회수당으로의 발전은 앞서 설명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쟁점을 포함한다. 우선 대상과 관련한 쟁점만 보아도 여러 가지이다. 대상을 어느 범위까지 확대할 것인가? 소득 및 자산 기준을 전면적으로 제거할 것인가? 그렇다면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선정을 위한 소득인정액에 기초연금을 포함할 것인가? 급여 설정과 관련된 쟁점을 보아도, 기초연금 급여수준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 기존에 존재하는 기초연금 급여액과 국민연금 a값(재분배요소)과의 연동은 어떻게 할 것인가, 급여의 물가연동 방식을 유지할 것인가 등 다양하다. 마지막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분담 방식 조정 문제도 개혁을 요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는 기초연금과 함께 공적노후소득보장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는 국민연금제도의 전망, 그리고 기초연금 확충의 재정 전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을 보자. 국민연금 급여수준은 낮다. 2016년 6월 기준 특례연금을 포함한 노령연금 월 평균액이 약 36만 원에 불과하며, 특례연금을 제외한 노령연금액은 약 49만 원 수준이다. 유족연금 급여액은 약 26만 원으로 기본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이러한 저급여의 핵심 원인은 국민연금 역사가 짧아 가입기간이 길지 않다는 것으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이후에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다소 길어져도 법정급여율이 40%로 낮아져 역시 국민연금 급여액 증가 수준에는 한계가 많다. 2040~2070년 사이 국민연금 중 노령연금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20~23% 사이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광범위한데 2015년 현재 국민연금 수급연령인 65세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은 전체 노인 678만 명 중 245만 명으로 36.4%에 불과하다.4) 고용불안정 문제가 심화되면서 당분간 국민연금 사각지대는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종합하면 국민연금의 노후보장기능이 상당 기간 제한적일 것이므로, 한국에서 공적연금의 전체적인 기능의 향상은 상당 부분 기초연금의 확충에 달려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기여방식 국민연금 급여수준 전망치가 앞으로도 낮다는 것은, 무기여 기초연금이 발전할 수 있는 한계치 역시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꾸준한 기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의 급여수준이 낮다면, 무기여 기초연금 급여수준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 역시 높아질 수 없다.

 

기초연금 소요 재정전망을 보자. 현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기초연금 지출 예상액은 2060년 기준 GDP 대비 2.6% 미만이다. 노인 전체에게 실질가치로 20만 원을 지급하는 보편적 기초연금 지출 예상치는 2020년 GDP 대비 1.2%, 2040년 3.1%, 2060년 4%이다(국민행복연금위원회 6차 회의자료). 국민연금 수준이 그대로인 경우, 현 20만 원 급여수준에서 기초연금 대상범위만 보편화시킬 경우, 공적연금 지출 총액은 2040년 GDP의 7%, 인구고령화가 절정에 달하는 2060년경에는 GDP의 10.5%가 된다. 한편 급여액을 30만 원으로 인상시키고 대상범위를 보편화시킨 기초연금은 지출 예상치는 2020년 경 GDP의 1.8%, 2040년 4.65%, 2060년 경 6% 수준이 된다. 이러한 지출수준이 감당가능한 수준이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해, 또 관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전체 공적연금 지출은 이미 GDP의 10%를 넘어섰으며, 기술 및 생산부문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전망한다면, 그리고 2060년 경 전체인구 중 노인인구가 유례없이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것임을 고려할 때 긍정적 판단 역시 가능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장기적 전망은 그야말로 경향을 예측한 것으로, 다양한 사회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초연금에 대한 바람

 

기초연금이 보편적 사회수당으로, 혹은 그에 준하는 역할을 하는 제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우선 현재 조정이 필요한 것을 먼저 생각해 보자. 우선, 급여제도의 조정이 필요한데,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된, 기초연금 급여의 국민연금과의 연동이 폐지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민연금의 향후 발전 전망에도, 나아가 전체 공적연금 수준을 앞으로도 낮은 수준으로 억제시키는 핵심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적인 필요를 보장한다는 기본 목표를 고려할 때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 현금급여를 합산한 금액이 실제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노인에 대해서도 기초연금 급여는 지급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초연금 급여의 연동 방식이 물가연동이어야할지, 임금연동이어야할지, 혹은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 연동이어야 할지 등의 문제는 장기적인 보장성과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이지만, 이는 아직 시급한 개혁과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연동방식 선택은 보장의 목표에 따라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상 및 급여제도의 어떠한 조정이 이루어지든 그 모든 것에 앞서서 기초연금의 재정조달 방식은 바뀌어야 한다. 즉, 기초연금 재원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분담이 아니라 중앙정부 예산에 의한 전액 부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기초연금이 전형적인 사회수당이든, 혹은 어떠한 형태로 발전하든 선행되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이러한 개혁이 선행되었다는 전제 하에서 한국의 기초연금은 전형적인 사회수당제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어떠한 형태가 되어야 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우선 기초연금의 대상범위를 100%까지 확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자산 및 소득기준의 적절함이 계속 논란이 되고, 빈곤노인에 대한 적정 보장이 계속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는 대상범위 보편화의 이점이 적지 않다. 대상 보편화로 인한 재정 문제나 자원투여의 효율성 문제는 과세제도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보완가능하다. 기초연금을 전액 과세소득으로 포함하고, 이를 다시 기초연금 재원으로 바로 투입하는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한 기초연금 급여수준을 어디까지 인상하여 얼마만큼의 보장성을 확보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최근 기초연금 급여수준을 30만원 수준, 즉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A값)의 약 15%에 근접하도록 하자는 제안, 나아가 40만원, 20% 수준까지 올리자는 주장이 있다. 현세대 노인의 생활상의 필요라는 점에서 기초연금 급여수준 인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기초연금 급여수준은 현재와 미래의 국민연금 급여수준에 의해 제약된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현재 국민연금 노령연금 평균 급여액과 미래 급여액 등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 제도를 그대로 놔둔 채 기초연금 급여를 40만 원 수준까지 높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연금 급여수준을 더 낮춘다면 이는 더더욱 어려워진다. 사회수당으로서 기초연금제도의 발전은 불가능하지 않다. 기존 제도의 개선을 통해 이는 가능하다. 그것이 노인들의 삶의 질 개선에 갖는 긍정적 효과 또한 클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사회수당으로서 기초연금제도의 본격적인 발전은 무기여 기초연금과 기여에 의한 국민연금의 역할 분담을 고려하여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는 한국 복지국가의 전체 틀에 관한 문제이다.

 


1) 탁현우(2016), 기초연금의 소득분위별 효과분석

2) 2016년 3월 기준 기초연금 급여액은 단독수급시 20만 2,600원, 부부수급 32만 4,160원이다. 부부 동시 수급시 1인당 급여액은 20% 감액된다.

3) 이 단서조항은 정부안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국회 통과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정당간 협상 과정에서 추가된 것으로, 2014년 기준 20만원을 모두 받는 노인 수를 애초 394만 명에서 약 12만 명 추가하는 효과를 가진다고 알려져 있다.

4) 유족연금, 장애연금 수급자까지 포함한 수치로서 노령연금 수급자만 계산하면 전체 노인의 31.5% 정도이다(신경혜(2016), “연금수급률의 해석” <연금이슈 & 동향분석> 31호. 5쪽). 

토, 2017/04/0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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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험 확대와 실업부조 도입

 

 

장지연 |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정책연구본부 본부장

 

들어가는 말

 

탈산업화와 서비스경제로의 이행에 따라 제조업 노동자의 비중이 줄어들고 서비스업 종사자가 늘어나면서 파트타임을 비롯한 다양한 유형의 비정규직이 늘어나게 된 것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동안 전세계적으로 관찰되어 온 변화이다. 최근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터넷 플렛폼을 기반으로 하는 ‘on-demand economy’의 확대가 이루어졌는데, 이에 따라 고용형태의 다양화와 불안정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유형의 임금노동자의 소득단절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사회보험 중심의 실업안전망에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사회보험제도는 노동자계급의 연대와 노동-자본 간의 암묵적인 협약에 근거한 것이므로, 보호의 필요성이 큰 불안정 노동자층이 증가하고, 임노동자성이 모호한 집단이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불안정 노동자층을 사회보험에서 배제하여 사각지대의 문제에 직면하거나, 사회보험 재정의 안정성이 훼손될 위험이 발생한다. 어느 쪽이든 사회보험의 원리와 기능 자체에 대한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한 나라의 고용안전망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① 실업보험 ② 실업부조 ③ (일반)공공부조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종합적으로 이해해야한다. 좀 더 넓게 보자면 근로연령대 인구의 소득중단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질병급여나 장애급여제도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실업보험은 기여(&근로이력)에 근거하여 수급권이 발생하며, 구직활동에 대한 확인이 전제되기는 하지만 자산조사는 하지 않는 제도이다. 가입과 기여에 따라 수급권이 발생하기 때문에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이 제도 내로 포섭되지 못할 위험이 있다. 실업부조는 조세로 재원이 조달되며 자산조사를 통하여 저소득층으로 판별된 실업자에게 지원되는 현금급여이다. 국가에 따라 실업보험제도와 통합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일반 공공부조와 통합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공공부조는 빈곤층 보호제도이지만, 근로능력자를 포괄하면서 추가적인 구직활동 조건을 요구하는 경우 실업부조를 포괄하는 제도로 운영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고용형태의 다양화와 정규직 임금근로자 감소의 측면에서 살펴보고, 현행 고용보험의 실업급여가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살펴본다. 실업보험제도는 커버리지를 확대해 오기는 하였으나 미흡한 수준이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근로능력자를 배제하지 않으나 실제로는 매우 적은 수의 근로능력자만이 포함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인식에 바탕을 두고 고용보험 적용대상의 확대와 실업부조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하고자 한다.

고용형태의 다양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의 고용형태별 부가조사에 따르면, 고용형태와 기업규모에 따라 사회보험 가입률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사회보험 가입률은 대규모사업장 정규직원의 경우 거의 100%인데 비해서, 대규모 사업장 비정규직은 80%, 중소규모 사업장 정규직 역시 약 80%이며, 중소규모 사업장 비정규직은 35%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의 논의 과정에서 두 가지 문제가 중요하다. 첫째 문제는 비정규직 임금근로자의 규모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 문제는 애초에 실업보험이 보호대상으로 삼고 있지 않은 비임금 근로자의 규모가 특수근로형태 종사자의 형태를 띠면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점이다.

 

정부공식통계에서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33%로 나타난다. 여기는 기간제 근로자와 시간제 근로자, 그리고 파견·용역·특수고용 등의 비전형 근로자가 포함된다. 비전형 근로는 호출근로, 가내근로, 파견과 용역, 그리고 특수근로형태 종사자의 다섯 가지 하위범주로 파악된다. 이러한 분류체계에서 누락하게 되는 부분이 크게 두 영역이 있다. 첫째, 이 분류에서 사내하청 유형의 간접고용은 따로 포착되지 않는다. 고용형태 공시자료에 나타난 대기업 간접고용 노동자 93만 명은 비정규직으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특수고용형태 근로자는 약 50만 명이다. 그러나 인권위원회 보고서(2015)에 따르면 임금 근로와 비임금 근로의 경계에 있는 근로자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아서 최대 227만 명까지 추산할 수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는 독립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s)나 프리랜서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노동자로서, 사실상 단일한 업체와의 계약관계를 갖고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받는 경우가 여기에 포함된다.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보험 판매원, 각종 배달원 등 구체적인 직종은 매우 다양하다. 만약 이들을 현행 분류체계와는 달리 비정규직 임금근로자로 본다면, 전체 임금근로자 중에서 비정규직의 비율은 최대 42.5%까지 넓게 잡아 볼 수 있게 된다.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경계에서 나타나는 고용형태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고)’이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으며 사회보험에서도 오직 산재보험에서만 극히 일부가 보호를 받고 있다. 서구에서도 ‘독립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s)’로 불리는 근로자 범주가 증가 일로에 있다. 이 밖에도 플랫폼 이코노미의 확산으로 점차 증가 일로에 있는 앱노동자 역시 임금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경계에 선 노동자이며, 근로 조건과 사회적 보호 측면에서 정책적 대안 마련이 요구되는 주요 집단이다. 이들의 고용안정 문제는 좀 더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을 사회보험의 체계 내로 포섭하는 과제는 고용안정과는 독립적으로 다루어서 전향적으로 해결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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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안전망의 현황

 

우리나라 근로연령대 인구의 빈곤율은 2014년 기준으로 9.6%이다. 아동(0~17세) 빈곤율은 8%인데, 아동빈곤율과 근로연령대 빈곤율은 나란히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근로연령대 가구가 빈곤에 빠질 위험은 가구원의 소득활동 중단 때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실업자 안전망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근로연령대 인구가 실직했을 때 받을 수 있는 공적 급여는 고용보험의 실업급여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두 가지가 있다. 실업급여는 실직 이전에 일정기간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보험료를 납부했어야 한다. 생계급여는 자산의 소득환산액을 포함한 가구소득이 평균가구소득의 29% 미만이면서, 달리 부양해 줄 사람이 없는 자라야 수급할 수 있다.

 

실업보험과 실업부조 수급자를 합쳐서 전체 생산가능인구 대비 수급자 비율을 계산하면, 선진국의 경우 대체로 3%이상, 제도의 포괄성이 높은 국가는 5%이상으로 나타나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이 수치가 0.2%로 심하게 낮은 수준이다(이병희 외, 2013). 사회보조 수급률은 2.7%로 이 수치가 유난히 높은 수준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제도들이 너무 약하기 때문에 생산가능연령대 인구가 의지할 수 있는 안전망이라고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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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실업급여 수급률(실업자 수 대비 수급자 수)은 약 35%이다. 실업급여 수급률을 결정하는 요인은 ① 실업보험 가입률과 ② 급여 지급 기준의 엄격성인데, 우리나라 실업급여 지급기준의 엄격성(구직활동 여부 확인 등)은 OECD 국가들 중에서 중간 정도이지만, 고용보험 적용과 가입의 사각지대가 큰 것이 실업급여 수급률을 낮추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황덕순, 2015). 2014년 8월 기준으로 고용보험법 상 가입대상 4명 중 한명은 미가입 상태에 있다. 전체 임금근로자 기준으로는 64%, 취업자 기준으로는 46%만이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표 3 참조).

 

일단 실업급여를 받는다고 할지라도 수급기간이 짧고 소득대체율도 낮은 편이라서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 먼저 실업급여 수급기간의 상한(maximum duration of unemployment benefits)을 살펴보자면, OECD는 국가 간 비교를 위하여 18세부터 22년간 실업보험료를 내온 40세 근로자가 실직한 경우를 기준으로 계산하였는데, 우리나라는 7개월로 가장 낮은 그룹에 속한다. 연령과 가입기간에 따라 달라지는 소정수급기간의 평균은 4.8개월이고, 실제 실수급기간은 평균 4.1개월이다(황덕순 2015). 소득대체율은 실직 이전 임금의 50%이지만, 상한액(43,000원)과 하한액(최저임금의 90%) 적용을 받는다. OECD 자료에서 우리나라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이 30%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은 수급기간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즉, 실직 후 1년 기간의 평균으로 계산한다. 수급기간과 소득대체율을 동시에 고려할 때 우리나라 실업급여는 실업자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고 평가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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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우리나라의 공공부조 수급률은 매우 낮아서, 보편주의적 현금급여가 발달하여 빈곤율 자체가 매우 낮은 북유럽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즉, 우리나라는 빈곤인구가 자체가 적은 것이 아닌데 공공부조 수급률은 낮다. 2014년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는 약 133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6%에 해당한다. 이것을 빈곤인구 대비 비율로 다시 계산해 보면, 시장소득 기준 빈곤자의 15%만이 공공부조로 생계보호를 받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처분소득 기준 빈곤인구 대비로는 18.3% 정도가 된다. 연령대별로 빈곤인구대비 수급률을 계산해 보지 못하였지만, 노인에 비해 근로연령대 인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의 수혜자가가 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근로연령대 실업안전망 강화 방안

 

실업안전망을 새롭게 설계하기 위해서는 특정 집단을 배제하지 않고 실업자(& 저소득층 실업자)를 폭넓게 보호할 수 있는 제도로 설계하면서도 집단별로 다른 보호체계를 운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기존 고용보험의 적용대상을 가능한 한 넓게 확대하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취약계층 대상을 위하여 보완적인 제도를 운영하자는 것이다.

 

▪ 실업보험 대상확대

고용보험(실업보험)의 적용대상은 현행 임금근로자를 넘어서 확대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 대안이 있다. 하나는 특수고용형태 근로자를 적용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이다. 특고는 근로기준법상 고용보호의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사회보험의 보호대상으로는 포괄한다는 취지이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더라도 고용보호 대상에 비해 사회보험 대상은 훨씬 넓게 정의된다. 이 경우 특수고용형태 근로자를 현행 산재보험제도의 사례보다는 좀 더 과감하고 폭넓게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는 대상 확대의 의미가 크지 않다.

 

이 보다 좀 더 과감한 다른 하나의 안은 특고 뿐 아니라 순수한 자영업자까지도 실업보험의 적용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즉, 임금근로자 뿐 아니라 특고와 자영자를 포함하는 모든 경제활동참가자를 실업보험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자면, 덴마크 등의 경우와 같이, 학생도 임의가입이 가능하도록 문을 열어두고 청년실업자에 대한 보호수단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그동안 임금근로자의 성격이 불확실한 근로자에까지 실업보험의 적용을 확대하는 데에는 두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하나는 자영업자의 실업은 폐업으로 인한 것이고, 이는 곧 위험의 일부가 자기결정의 결과라는 점 때문에 사회보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이 문제는 임금 근로자 중에서 자발적 이직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제기되는 문제이므로 같은 논리로 대응할 수 있다. 임금 근로자의 자발적 이직에 대해서도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국가가 많고, 우리도 임금 근로자의 자발적 이직과 자영업자 실업에 대해 모두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취할 수 있다. 단, 수급시작 시점까지의 대기기간을 비자발적 실직자보다 길게 두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또 다른 걸림돌은 대상을 확대할 경우, 누가 고용주인지 특정하기 어려운 특고 노동자나 자영업자의 경우 사회보험료를 누가 낼 것인가의 문제이다. 임금근로자는 노사가 절반씩 기여금을 부담하는데, 특고나 자영업자라고해서 보험료를 전적으로 근로자 자신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기는 어렵다. 임금 근로자 이외의 가입자에 대해서 국가가 조세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기업으로 하여금 가능한 한 노동자를 특고나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하고 싶도록 만드는 부정적인 인센티브를 제도설계에 담는 것이 된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인 대안은 임금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실업보험 대상자에 대해서 고용주 부담분을 없애고 국가가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고용주는 근로자 개인을 특정하여 보험료를 내지 않고, 조세 등 다른 간접적인 방법으로 기여금을 갹출할 수 있다.

 

▪ 실업부조 도입

실업부조는 ‘부조’이므로 가구의 소득수준을 고려하여 실업자를 지원한다. 실업급여 수급대상이 되지 못하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대상도 아닌 구직자를 지원하게 된다. 즉, 가구의 소득수준은 빈곤상태이지만 다른 이유로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가구의 구직자와 최저생계비 수준은 아니지만 저소득층인 차상위계층 가구의 구직자가 지원대상이 된다. 실제로 도움을 받게 되는 대상은 청년층이나 경력단절 여성들 중에서 저소득층에 속하는 구직자, 자영업을 하다가 폐업한 자 등 현행 고용보험제도의 보호대상이 되지 못하는 저소득층 구직자들이다. 또한 고용보험 가입이력이 있어서 실업급여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실업급여를 모두 소진할 때까지 재취업하지 못한 저소득층 구직자도 실업부조 대상이다. 요컨대, 실업부조는 일정 소득이하의 가구에 속하는 개인이면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자에게 고용서비스와 함께 생계급여를 지원하는 제도로 도입되어야 한다.

 

현행 취업성공패키지I 사업을 실업부조로 제도화 할 수 있다. 2015년 기준으로 취업성공패키지I 사업에는 약 14만 5천 명이 참여하였고, 참여수당, 훈련수당, 취업성공수당 등의 형식으로 1인당 연간 평균 76만 원이 지급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재는 사업의 형태로 진행되지만, 실업부조로 제도화되면 가격요건에 해당하는 사람은 모두 지원하게 되고, 생계지원의 의의도 더욱 강화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이병희 외(2013)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방안』 한국노동연구원. 고용노동부 용역과제

이병희 (2015) ‘고용보험 20년의 평가와 과제: 사각지대와 실업급여을 중심으로’ 한국사회보장학회 춘계학술대회 발표문

황덕순 (2015) ‘실업급여 사업의 성과와 발전방향’ 고용보험 20주년 기념 학술대회 발표문

 

 

 

토, 2017/04/0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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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김형용 |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함께 한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혼밥이 대세라는데 여전히 나는 혼자 먹는 밥의 맛을 잘 모르겠다. 가끔 혼자 여행을 떠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재미가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만할까. 심지어 함께 하였더니 어리석기도 어처구니없기도 하였던 세상이 뒤집혀졌다. 나만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니, 다른 이들의 상식을 더욱 신뢰하게 된다. 되돌아본다. 나의 선택은 항상 타인과의 관계에 놓여 있는데, 한동안 이를 잊고 있었다. 우리가 먹을 것을 고르고, 옷을 사 입고, 어디로 놀러 갈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한다고 믿지만, 정작 이 모든 선택은 다른 누군가가 이미 계획하고 만들어내었고 지금 내 앞에 마련된 것들이다. 나의 선택과 행동이 완벽히 나의 자율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고 깨닫는다. 이참에 더 나아가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 함께하면 내 앞에 놓인 선택지는 더 쉽게 바뀔 수 있다. 개인의 자유는 모순적이게도 집단의 힘이기도 하다. 자율적 개인의 관념은 자기중심 그리고 자기 우선의 사회를 지향한다. 그러나 자유롭고 싶다면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연대의 삶을 만들어야 한다. 책임과 상호의무를 통해 더 많은 공공선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생활영역의 민주화를 향하여 가야 한다. 그 수단으로서 복지는 공동의 재화를 마련하는 것이다. 복지는 본질적으로 그리고 불가결하게 집합적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함께할수록 만들어낼 수 있는 개인의 자유는 더욱 커진다.

 

함께 한다는 오늘의 가능성에 맞물려 보편적 사회수당에 주목한다. 이는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재검토에서 출발하고 있다. 고질적 문제인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는 좀처럼 쉽게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 않고, 청년과 노인, 경력단절 여성을 비롯한 특정 집단의 배제는 우리가 시급하게 대처해야 할 복지의 대상이자 영역이다. 이에 덧붙여 사회재생산의 문제 그리고 4차 산업으로 대변되는 국가재형성 과제는 장기적으로 모두의 생활안정으로서 사회수당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 모든 부문에 대한 개조가 논의되고 있으니, 지금 보다 더 적절한 시기가 또 있을까.

 

이에 복지동향 4월호는 보편적 사회수당을 새로운 복지정책 방안으로 다룬다. 최영 중앙대 교수는 모든 아동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건강한 발달을 도모하기 위해, 보편적 아동수당을 제안하였다. 아동의 양육을 사회가 함께 책임진다는 정책 방향은 오래되었으나, 이제는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할 때이다. 정형준 녹색병원 과장은 상병수당을 제안하였다. 상병수당은 질병으로 인한 소득감소에 대한 보장이지만, 재난적 의료비가 여전히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보장의 최소한의 기능이 작동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이다. 소득보장 없이 치료와 재활이 어렵기도 하거니와, 빠른 치료와 수술선택 등 왜곡된 의료시장을 개선하는 기능도 있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는 지금이 기초연금을 보편적 사회수당으로 발전시킬 적기임을 강조하였다. 기초연금의 국민연금 연동 폐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게 적용 등 기존 제도의 개선을 통해서도 기초연금의 사회수당으로서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본부장은 실업부조를 제안하였다. 실업안전망이 특정 집단을 배제하지 않으려면 고용보험 적용대상을 확대하면서도 이에 배제되는 대상을 위한 보완적 제도가 필요한데, 실업부조가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실업부조는 청년 등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면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대상도 아닌 저소득 구직자를 지원하는 것이다.

토, 2017/04/0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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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수당제도 도입의 기본방향

 

최영 |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들어가며

 

아동수당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소득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가구 내 부양아동의 존재 여부에 따라 가구비용 지출의 차이가 발생하는 부분을 고려하여, 부양자녀가 있는 가구에 대해 아동양육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현금으로 보조하는 제도이다. 기본적으로 아동수당은 아동의 빈곤 예방, 아동의 생존권과 발달권 등 기본권 보장, 가구 간 소득재분배 등을 목적으로 둔 소득보장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돌봄/교육서비스, 산전후 휴가 등 여러 아동가족 정책들과 더불어 제도의 설계방식에 따라 출산율 제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활성화, 내수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성장 등 다양한 정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려되기도 한다.

 

최근 저출산·고령화로 대변되는 급격한 인구사회구조 변화, 그리고 실업, 가구소득 양극화 등 경제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아동수당에 대한 논의가 학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아동수당 도입의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밝다. 본고는 아동수당 도입에 있어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중심으로 도입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왜 아동수당과 같은 현금급여가 필요한가?

 

국가의 아동가족지원 정책은 크게 가구 내 부모의 아동 돌봄 노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과 아동 양육으로 인해 추가로 지출되는 소비 지출 비용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중 아동 돌봄 노동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은 보육서비스, 산전후/유급육아휴직 등이 있으며, 이는 주로 서비스 지원을 통해 제공되고 있는 반면, 분유, 기저귀, 의류 등 아동 양육에 필요한 소비지출 비용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은 주로 아동수당과 같은 현금지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서비스 중심의 아동 돌봄 노동 지원정책과 소득지원 중심의 아동양육비용 지원정책을 조합하여 아동가족 정책을 구성하고 있고, 각 제도 간의 상호보완을 통하여 기본적인 아동권리의 실현 뿐 아니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활성화나 저출산 문제 해소 등 다양한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OECD 국가의 경우 평균적으로 GDP의 2.4%를 공적 아동가족 지출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 중 현금이 1.2%, 서비스 0.9%, 기타 조세 0.3%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 극복국가로 언급되고 있는 프랑스의 경우 GDP의 약 3.7%를 아동가족 지출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중 1.6%를 현금성 급여로 지출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아동가족 관련 급여로 사용되는 공적지출은 GDP의 약 1.4%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이마저도 보육서비스에 집중되고 있어 아동양육 시 필요한 소비지출을 지원하기 위한 현금지원 형태의 제도도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실제 아동양육비용을 추계한 몇몇 연구들에 따르면, 5세 이하 아동이 없는 가구에 비해 아동이 있는 가구의 경우 사보육비를 제외하고도 식료품, 의류, 장난감 등의 구입에 지출되는 비용이 아동 1명당 월평균 20만원 내외가 드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고, 아동양육비용 부담이 저출산의 원인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어, 이와 같은 소비지출 비용을 국가가 일정부분 현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아동수당의 기본적인 정책목표는 자녀가 있는 가구의 소득을 지원함으로써 모든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권을 보장하고 건강한 발달을 도모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포괄하는 보편주의적 원칙에 따라 제도를 설계할 필요성이 있다.

 

국내 아동수당 도입과 관련된 연구의 상당부분은 보편주의 형태의 제도 도입보다는 재정적 여건 때문에 소득기준을 적용하여 일부 소득계층을 제외한 선별주의 형태의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소득을 기준으로 대상아동을 선별하는 방식은 국가나 사회가 모든 아동의 양육을 함께 책임진다는 사회적 책무를 방기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납세자와 수혜자를 분리하여 사회통합이라는 사회정책의 근본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저소득층 위주의 아동수당 도입은 여성이 가구 내 아동양육의 역할을 수행토록 하는 유인효과를 발생시킴으로써 노동시장 참여를 저해할 가능성이 높으며, 무엇보다도 제도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납세자의 정치적 지지의 약화로 인해 제도의 안전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재정적 여건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소득수준에 따른 선별주의 형태보다는 모든 아동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형태의 수당으로 도입하고 외국의 사례와 같이 수당지급액을 과세소득으로 간주하여 중상위 계층의 수당지급액 일부를 환수하는 방안이 보다 적절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재정적 여건을 고려하여 대상을 제한한다면, 소득기준에 따른 제한보다는 연령기준에 따른 제한을 통해 제도 도입 시 발생하는 재정부담을 완화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이 경우 투자효과가 큰 영유아를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도입하고, 이후 12세 이하, 18세 이하 등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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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의 형태는?

 

아동수당은 아동 양육에 필요한 소비 지출을 지원하기 위한 소득보장제도의 일종이므로 매달 일정액의 현금 형태로 지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부국가에서는 소득과 관계없이 세금환급형태로 지급하는 환급 가능한 세액공제(refundable tax credit)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역시 일종의 현금급여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현금형태의 급여를 지급하는 이유는 아동 양육에 필요한 식료품이나 의류 등 소비재화가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소비되고, 상대적으로 서비스와는 달리 부모의 올바른 선택에 따른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정 부분 이용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면서도 소비행위의 제한을 통해 급여의 오남용을 통제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 바우처 방식의 급여 형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취약계층에게 적절한 영양공급을 목적으로 도입된 미국의 Food stamp의 경우, 식료품 이외에 술이나 담배 등의 구매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소비행위에 제한을 둠으로써 의도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고 있다. 따라서 정책목표에 따라, 바우처를 통해 주소지 지역 내에 사용처를 한정하는 ‘사용지역’의 제한을 두거나, 음주나 도박 등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사용처’의 제한을 두는 급여를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아동수당이 원래 목적과는 달리 사교육 시장을 팽창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지역 내 소비 진작을 통해 내수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정책목적에 보다 중점을 둔다면 ‘사용처’를 제한하는 방식의 바우처 도입을 고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급여의 수준은?

 

아동수당 도입 시 급여의 수준은 정책목표, 재정여건 등에 따라 상이한 수당액의 설정이 가능하겠지만, 이미 아동수당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의 사례와 국제기구의 권고를 참조하여 최소한의 수준을 상정해 볼 수 있다.

 

1952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사회보장(최소기준) 협약 (Convention on Social Security (Minimum Standard), 1952)에서는 가족급여(Family benefit)라는 명목으로 근로자의 아동에 대한 현금 지원을 회원국에 권고하고 있고, 급여의 최소 지급수준은 아동 1인당 남성 성인 근로자 임금의 3%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6년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의 전체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총액은 342만 5천 원이고,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른 2016년 8월 임금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236만 8천 원 정도이다. 이에 국제노동기구의 기준을 적용하면 아동 1인당 최소 7~10만 원 내외의 금액을 지급토록 권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2006년 OECD 국가의 아동수당 규모는 2명의 아동을 포함한 가구를 기준으로 평균 총소득 대비 7.7%, 가처분소득 대비 9.3%이며, 금액으로는 평균 25만 8천 원 정도를 지급하고 있다(최성은, 2009). 2016년도 우리나라 도시근로자 4인 가구 월평균 소득은 약 539만 원으로, 이에 OECD 평균수준을 적용하면 아동 1명당 약 20만 원 내외의 금액을 추정해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제기구의 권고와 아동수당을 이미 지급하고 있는 OECD국가들의 사례를 종합해보면, 약 10만 원에서 20만 원 내외의 급여수준을 상정해 볼 수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우리나라 가구의 아동양육 관련 소비지출을 고려할 경우, 최소 10만 원 내외의 급여수준은 보장할 필요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재원조달은 어떻게?

 

아동수당을 도입한 OECD 국가들의 재원조달 방식은 정부, 고용주, 근로자 등 3자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보편주의 형태의 아동수당을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들은 막대한 재원마련을 위해 정부의 조세를 기반으로 재원을 조성하고 있다. 이는 아동양육의 책임을 국가나 사회가 분담한다는 측면에서 규범적으로 타당하며, 모든 아동을 포괄하는 보편주의 프로그램의 막대한 재원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국가에만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도 타당한 방안이다.

 

그러나 조세제도에 대한 신뢰와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두고 보편적 아동수당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서구 유럽사회에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투명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고 조세 저항이 매우 크게 나타나, 소득세나 소비세 등 일반세 증세를 통한 재원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따라서 제도 도입기에는 지출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동의를 통해 세원을 확보하는 목적세 형태의 재원마련 방법이 한국적 상황에 보다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까지 모든 아동을 포괄하는 보편적 형태로 아동수당을 확대하거나, 급여수준의 인상을 통해 최소수준이 아닌 적정수준의 급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보편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이선주 외. (2007). 아동수당제도의 국제비교 및 도입방안. 한국여성개발원.

유해미. (2010). 아동수당제도 도입시 쟁점 및 정책과제. 국회입법조사처 현안보고서 83호.

최성은 외. (2009). 아동수당 도입방안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토, 2017/04/0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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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이미진 | 건국대 사회복지전공 교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이 지난 9년간 인권과 민주주의가 퇴보했고 부패와 부정의, 비정상이 만연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대한 피 끓는 분노와 탄식, 절망감도 컸던 지난 수개월이지만 촛불혁명은 새로운 대한민국, 정의, 평등, 평화, 민주, 복지의 꽃을 피울 공화국에 대한 열망으로 훨훨 타오르고 있다.

 

사회복지분야에서 가장 사회적으로 관심을 많이 받고 있는 정책은 ‘기본소득’이다. 대선주자 중 소수를 제외하고 기본소득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고 이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 역시 뜨겁다. 사실 기본소득은 모든 개인에게 적절한 수준의 소득을 준다는 점에서 한국사회 불평등 해소에 기여할, 잠재력 있는 대안 중 하나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이상적인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제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아직까지 없었다는 점에서 현실가능성과 정책효과 등에 대한 비판과 우려의 부정적인 목소리 또한 존재한다.

 

2017년 3월호 복지동향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다각도로 조명하고 기본소득을 도입한다면 한국사회 복지국가 건설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모색의 일환으로 이를 기획주제로 다루었다. 김영순 교수는 기본소득이 사회적 의제로 등장하게 된 사회경제적 배경과 이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입장, 만병통치약으로 종종 인식되는 기본소득에 대한 우려를 논하였으며, 백승호 교수는 기본소득의 개념에 대해 정리하면서 기본소득 실현의 방해물로서 ‘예산제약’과 ‘우선순위’ 담론에 대해 비판하였다. 서정희 교수는 기본소득에 대한 국가별 실험의 최근 동향을 흥미롭게 정리해 주었으며, 이승윤 교수는 대선주자들의 기본소득과 관련한 공약을 정리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기본소득을 한국사회에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대안적으로 제언해 주었다.

 

특히 이승윤 교수의 제언은 기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 수당 및 연금제도를 기본소득제도로 흡수하고 한국사회 복지국가의 필수요건인 상병수당 신설 등을 제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백승호 교수의 비판처럼 ‘예산제약’의 틀 안에 갇혀서 ‘복지확대’를 당당하게 외치지 못하는 자세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꼭 필요한 복지정책이라면 빚을 내서라도, 증세를 해서라도 실현해야 한다. 다만 현재 밝혀진 최순실 예산이 1조 4천억 원이고 4대강 예산이 5년간 22조 원이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제시되고 있는 뉴스를 접하면 예산이 부족하여 복지를 확대할 수 없다는 주장은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복지동향 이번 호에 실린 ‘국민소송법’을 통해 정부와 공공기관의 잘못된 재정행위에 대해 국민들이 감시해 나간다면 현재의 정부예산으로도 복지의 확대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제도 도입은 예산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지의 문제이다.

 

수, 2017/03/0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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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와 한국 복지국가의 전망1)

 

윤홍식 | 인하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즐거운 당황스러움이라고 할까요? 대통령 선거 기간에 보여주었던 문재인 후보가 맞나 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취임 일주일간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지난 9년간 비민주적이고, 독선적인 국정 운영에 익숙했던 시민들에게는 당황스러운 즐거움을 선물했습니다. 국정교과서 폐기를 지시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민주화운동의 기념곡으로 제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인천공항을 방문해 좌고우면 없이 비정규직을 단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부패한 검찰에 대해서는 민주적 통제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보여줄 것 같습니다. 백미는 지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유족을 껴안고 모두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이었습니다. 막힌 속이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제외하면 국정교과서 폐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검찰 개혁 등은 재정을 투여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겠지만, 대통령이 결심하면 추가적인 재원이 들지 않고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을 어떤 복지국가로 만들어갈 것인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정치의 핵심은 그 사회가 생산한 잉여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때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이야말로 문재인 정부의 성격과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준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기간 동안 다양한 이념적 지향을 5개 주요 정당의 후보들이 저마다의 공약을 내놓고 치열하게 국민의 선택을 기다렸습니다.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보면 취약계층에게 공적 복지를 집중해야 한다는 후보부터 보편적 복지를 지향하는 후보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시민들에게 주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 후보들은 자신들의 공약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심지어 일부 후보들은 세출 구조 조정을 통해 복지공약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난 4년 동안 입증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후보들은 마땅히 복지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수반되는 재원마련 방안을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제시된 대통령 후보들이 지향하는 한국 복지국가의 상을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GDP 대비 사회지출을 OECD 평균 수준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후보들 간에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속도를 어떻게 할지는 후보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심상정 후보의 경우는 공적 사회복지의 지출을 매년 70조 가까이 늘리겠다고 공약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사회복지지출을 확대를 통해 만들어가야 할 한국 복지국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적 복지의 양을 확대한다는 것이 곧 한국 복지국가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2016년 기준으로 그리스의 GDP 대비 사회지출은 27.0%로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알려진 노르웨이의 25.1%보다 높고, 스웨덴의 27.1%와 거의 같습니다. 그러나 불평등을 측정하는 지니계수를 보면 그리스의 지내계수는 0.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데 반해 스웨덴은 0.27, 노르웨이는 0.25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빈곤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의 빈곤율은 15%인데, 반해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빈곤율은 8%, 9%에 불과합니다.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이 10.4%에 불과한 한국의 지니계수가 0.31이고, 빈곤율이 15.0%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적 복지지출의 확대가 반드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합계출산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얼마나 지출하는가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지출하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좋은 복지국가는 소득보장보다 사회서비스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공적 지출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은 노인 빈곤 문제가 워낙 심각하고, 아동수당과 같은 보편적인 사회수당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현금급여를 확대하는 것은 필요한 부분이고, 이점에서는 모든 후보가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던 같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적 복지를 확대하는 것만큼이나 확대된 공적 복지를 통해 한국 사회가 만들고자 하는 복지국가의 모습을 정확하게 설계하고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도 이야기한 것을 옮기면 문재인 정부는 좌파정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자의 정당도 의회 민주주의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유럽의 사민당도 아닙니다. 굳이 민주당의 이념적·정치적 기반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지역적으로는 호남, 정치적으로는 이승만 정권 이래 지속되었던 독재정권에 대항했던 제도권의 자유주의적 민주화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교안보 문제를 제외한 복지정책만 놓고 보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은 심상정 후보는 물론이고 보수 후보였던 유승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유승민 후보가 조건 없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재정문제를 이유로 장애인부터 단계적 폐지를 주장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재정여건을 고려해 아동수당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유승민 후보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아동수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우리의 기대는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이념적 성격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이 중도적 자유주의 개혁의 한계를 넘어 문재인 정부에게 혁명적 개혁을 요구하는 순간 시민은 ‘좌파 신자유주의’와 ‘좌측 깜빡이를 켜면서 우회전’했던 노무현 정부의 재림을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중도 자유주의 정부에게 좌파적 개혁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사슴을 말이라고 해서도, 말을 사슴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식인과 시민사회는 어떤 정권이 집권하더라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기능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이야기한 ‘진보 어용 지식인’이란 지식인과 시민사회 할 수 있는 역할이 아닙니다. 어용 지식인이란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영합하는 지식인을 일컫는 말인데, 여기에 진보라는 말을 붙인 것은 진보 정권을 보수 세력으로부터 지키는 지식인 정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문재인 정부가 이라크 전쟁과 같은 불의한 전쟁에 파병한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문재인 정부를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문재인 정부가 노무현 정부처럼 국민연금의 소득보장기능을 약화시킨다면 지식인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동의하고 지지할 수 있겠습니까?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고, 평등한 분배를 추구하려는 정권에 대한 보수의 공격에 맞서 지식인, 시민사회와 정권이 함께 할 수 있지만, 민주적 가치와 진보적 가치를 위협하고, 훼손한다면 설령 좌파 정부라 하더라고 우리는 함께할 수 없습니다. 사슴은 사슴이고, 말은 말입니다.

 


 

1) 본 글은 한국사회복지학 제69권에 실린 편집인의 글 "어떤 기대를 해야 할까?"를 기초로 수정·보완해 작성한 글임

목, 2017/06/0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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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가족과 사회정책

 

이숙진 | 한국여성재단 상임이사

 

다양한 개인들이 만드는 다양한 가족

 

가족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가. 통상적으로 가족은 개인이 태어나서 속한 가족(출신가족)과, 새롭게 구성한 가족(출산가족)으로 구분되어지곤 했다. 최근에 가족은 그 역할과 기능의 변화와 더불어 가족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우려를 동반했다. 비혼과 이혼의 증가,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가족이 수행했던 돌봄 역할의 부재 등 신사회 위험요소는 가족의 위기로 이해되는 사회문제였다. 그러나 가족의 역할과 가족 구조의 변화를 검토한 다수의 논의들은 가족 위기가 곧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인 핵가족의 감소에 대한 해석이었음을 확인하고 있다. 정상가족으로 여겨졌던 부부+자녀의 전통적 핵가족은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조손가족, 그리고 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증가와 비혼, 미혼, 독거노인가구를 포함한 1인가구의 증가로 인해 보편적이거나 초역사적인 가족형태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핵가족의 위기가 곧 가족의 위기인 것처럼 불안해했지만 가족은 사라지지도 약화되지도 않았으며, 다양하게 변화하고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에서 이와 같은 가족 다양화는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개인이 존재한다. 가족이 “정서적이고 물질적인 지지에 기반을 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람들이 상호간에 기대를 갖고 그들의 삶의 유형과 관계없이 상호 책임감, 친밀감과 계속적인 보호를 주고받는 구성체”라는 기든스(Giddens)의 정의에 기초하자면 1인가구는 가족 개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미 1인가구는 전체 가구 구성의 25%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안적 가족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장래가구추계에 의하면 부부+자녀로 구성되는 가구가 2015년 전체 가구의 32.4%에서 2030년에 22.5%로 감소하며, 1인가구는 2015년 27.1%에서 2030년 32.7%로 증가한다.(표 참조) 가족의 규모를 나타내는 가구원수의 감소와 1인가구, 한부모 가구, 조손가구, 무자녀 가구, 그리고 비혈연가구도 점차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표> 2030년까지의 가구유형 추계(단위: 가구수, %)

 

2015

2020

2025

2030

부부

부부+자녀

1인가구

비친족가구

3,178,917

6,059,333

5,060,551

224,640

17.0

32.4

27.1

1.2

3,703,937

5,650,818

5,876,740

237,401

18.6

28.4

29.6

1.2

4,264,424

5,263,759

6,560,883

240,599

20.4

25.1

31.3

1.1

4,756,167

4,892,087

7091,247

232,375

21.9

22.5

32.7

1.1

전체가구수

18,705,004

100.0

19,878,399

100.0

20,937,339

100.0

21,716,589

100.0

자료: 통계청(2010), 장래가구추계, 가구유형 및 가구원수별 가구에서 재구성.

 

1인가구의 증가로 인한 가족의 다양화는 가족을 단일한 욕구를 가진 하나의 단위로 보기보다는 가족의 내부 구성에 주목하도록 하며, 이는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의 욕구와 생활의 변화가 결과적으로 가족의 형태와 구성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다양한 개인들의 집합체로서의 가족 다양화는 가족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가족 관계와 가족구성원의 지위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각기 다른 가족 구성원의 지위에 기초한 사회정책의 설계는 곧 다양한 개인의 욕구를 반영하는 것이며, ‘가족’이라는 집합체의 이름으로 획일화될 수 없는 개인의 권리이기도 하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로부터 출발한 다양한 가족의 평등권

 

혈연, 결혼,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 정서적, 경제적 단위로서의 가족은 다양화되고 있다. 특정한 가족형태가 정상적이거나 보편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모든 가족들이 가족으로서 동등하며, 가족형태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다. 동시에 특정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개인들의 권리 역시 보장되어야 하며, 그렇게 구성된 가족이 다른 가족에 비해 불이익과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로부터 출발해서 다양한 가족상황, 혼인여부 혹은 이와 관계된 임신과 출산 등에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다.

 

외국의 차별금지 관련 법률들은 혼인여부(혹은 혼인상의 지위), 가족형태 혹은 가족상황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의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제3항에서도 합리적 이유 없는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 사유로 ‘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을 규정하고 있다. 법률적 구속력은 없으나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가족구성의 권리를 포함한 가족의 형태, 가족의 구성과정, 그리고 가족구성원 및 가족의 책임과 관련된 상황’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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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구성권 즉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가족’이 부부 중심의 이성애 핵가족 이외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를 포함한다. 캐나다 온타리오 인권법은 ‘가족상황(family status)’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면서, ‘가족상황’을 ‘부모 자녀관계가 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부모 자녀관계’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즉 ‘혈연이나 입양이 아니더라도 돌봄, 책임, 계약과 유사한 관계를 지닌 상황’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 사례로 (입양, 위탁, 의붓부모를 포함한) 자녀에 대한 부모의 돌봄, 장애를 가진 친족이나 부모에 대한 성인의 돌봄, 그리고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 트랜스젠더로 구성된 가족들’을 포함한다. 다양한 가족상황은 다양한 가족구성의 권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다양한 방식의 가족 구성 권리에 대한 법적 보호와 제도화를 위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을 논의하고 있으나 입법 발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다양화된 가족 형태는 가부장적 이성애중심의 가족형태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비혼 혹은 미혼의 1인가구 증가는 전통적인 핵가족으로부터의 변화임과 동시에 남성 1인 가장의 생계부양과 그에 의존한 가족관계를 변화시킨다. 가장인 남성노동자의 임금에 가족원 모두의 생계를 의존했던 핵가족은 가부장의 경제적 권력을 극대화했고, 억압적인 가족관계는 물리적 폭력으로 가시화되기도 했다. 여성들은 무임의 가사와 육아노동이 자신의 노후를 보장하지 않으며, 일과 가족의 양립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슈퍼우먼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는 비혼을 택하거나 출산을 피한다. 가부장적 ‘가족’ 내부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성별관계는 결혼의 지연 혹은 비혼, 이혼의 증가, 1인가구의 증가 등을 가져온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출신가족을 제외하고 누구와 어떤 가족을 구성할 것인가는 가족구성원의 수와 무관하게 기본적 권리이다. 이는 1인가구와 생활동반자관계에 이르는 다양한 가족의 구성을 포함하는 것이며, 이들 가족들은 그 형태로 인하여 합리적 이유없는 차별을 받거나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 다양한 가족들에 대한 공적인 관계로서의 정책과 제도는 이를 고려해야 하며, 전통적인 핵가족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은 재설계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양한 가족을 어떻게 ‘주류화(mainstreaming)’해야 하는가: 가족과 사회정책

 

가족에 대한 정책적 접근, 즉 가족정책의 대상과 범주는 명확하지 않고 또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기도 하다. 가족정책을 집행하는 행정부처인 여성가족부는 ‘가족정책은 가족구성원의 안정과 복지를 강화하고 가족생활과 관련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하여 가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책’이라고 정의한다.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으며 가족의 욕구 또한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개인에 기초하고 있다면 가족정책은 여성가족부에 제한된 행정일 수가 없다. 오히려 포괄적이기는 하나 ‘정부가 가족에 대해서, 가족을 위해 하는 모든 정책, 정부가 가족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모든 행위’로 정의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수도 있다. 한부모가족 혹은 다문화가족에 대한 정책만이 가족정책이 아닌 것이다. 1인가구와 한부모에 대한 주택정책, 일과 가족생활의 양립을 지원하는 노동정책, 임금소득이 없는 가족구성원의 노후소득보장정책, 돌봄을 필요로 하는 성인들간의 돌봄서비스 정책, 가족구성원들의 평등과 분배적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조세정책 등등이 모두 가족에 관한 정책이며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일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가족형태에 조응하는 정책은 모든 정책에서 ‘가족’을 고려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다.

 

OECD 가족통계는 특정한 가족형태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가족구조는 가족을 이루는 크기와 구성, 출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지표들, 혼인과 동반자의 관계(결혼, 이혼, 가족해체, 가족폭력 등)를 보여준다. 노동시장과 가족의 관계를 살펴보는 통계로 배우자 유무와 여성의 고용지위, 성별임금격차, 노동시간과 돌봄시간의 영역을 수집하고, 공공정책의 측면에서는 가족급여에 대한 공적 지출, 가족현금급여, 세제, 자녀부양, 아동보호 등을, 그리고 아동과 관련하여 건강, 빈곤, 교육, 사회참여 등의 통계적 변화를 담고 있다. 가족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적 범주가 적어도 출산, 돌봄, 노동, 사회서비스, 조세, 보건건강, 문화, 교육 등의 영역이 된다. 일례로 OECD 가족통계는 싱글맘의 고용률이 배우자가 있는 여성의 고용률보다 낮고, 경제위기시에 이는 더욱 감소한다는 흐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통계는 싱글맘의 자녀돌봄서비스, 고용지위, 일가정양립제도, 가족급여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다.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작동하는 한국사회는 낮은 현금급여수준, 믿고 맡길 데 없는 보육서비스, 장시간 노동과 불안정한 고용지위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즉 한부모의 경제활동참가율은 높으나 저소득 빈곤상태에 놓여 있게 되는데 이를 여성가족부의 행정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저출산문제 역시 가족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저출산정책으로 대표되는 보육정책은 2016년 현재 거의 14~15조에 달하는 정부재정이 보육과 유아교육에 투입되고 있지만 낮은 출산율에 큰 변화를 주지 못하고 있다. 청년들의 취업난과 결혼 지연, 여성들의 첫 자녀 출산연령증가 등이 있음에도 여전히 출산은 법률적 결혼관계만을 정상화시키고 있으며 주요 사회복지서비스 역시 이에 제한되고 있다.

 

OECD는 가족들이 변화하고 있다(Families are changing)는 현재진행형 수사를 통해 자녀가 없는 가족과 한부모 혹은 재혼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아동이 증가함을 보고했다. 가족을 구성하는 주요한 통로가 결혼이지만 결혼과 무관하게 자녀를 출산하여 가족을 구성하는 가구도 늘어나고 있다. 출산이 결혼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전 세대와는 달리 OECD 국가의 평균 40% 정도는 혼인 외에서 출산이 일어나고 있으며, 예외적으로 한국과 일본 등이 매우 낮은 2-3% 수준이라는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그림 참조). 결혼 밖의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강고한 한국사회에서 결혼이 어려워지면 동시에 출산도 어려워지게 된다. 이에 대한 새로운 담론과 정책없이 전통적 핵가족의 환상을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사회의 저출산 문제는 출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림> 전체 출산 중 혼인외 출산 비중(2014년부터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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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형태의 다양화와 크기의 변화는 주택공급에서의 정책적 변화도 요구한다. 2015년 현재 전체 아파트는 약 923만호에 이른다. 이 가운데 40제곱미터 이하의 아파트는 약8만3천여 가구로 전체 아파트의 약9% 수준이다. 이미 1인가구가 전체가구의 25%를 넘는 상황에서 주택공급 규모는 1인가구의 주거수요를 감안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1인노인가구의 증가와도 연관된다. 노인의 일상생활적 특성을 감안한 주거형태와 돌봄서비스 정책, 그리고 평균수명이 늘어남과 동시에 남성노인의 일상적 재생산노동에 대한 사회적지지 및 교육체계도 가족정책이 고려해야 할 영역이 되었다. 전통적 가족이 부모세대에 대한 자녀들의 부양을 통해 노후가 보장되었다면 다양화된 가족형태는 이와 같은 가족의 역할이 지지되지 않고 있다. 1인 노인가구는 증가하지만 자녀세대는 자신들의 생계유지와 미래세대에 대한 투자에 집중한다. 사회보장의 주요한 기능인 노후소득보장은 특히 미가입자이거나 연금가입기간이 짧은 전업주부 혹은 비정규직 여성들의 노후불안을 가속화시킨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국민연금제도 역시 가족구조와 변화와 가족의 역할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대표적인 가족정책인 일과 가족의 양립 역시 보다 거시적 의제인 노동시간 단축과 성별분업의 변화와 함께 논의될 때 가족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의 욕구를 고려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이 유지되는 과로사회에서 가족생활은 부차적이거나 무시해도 되는 영역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으며, 혹여 노동시간 단축이 이루어지더라도 일과 가족의 양립이 여성만의 일로 여겨질 때 여전히 이중노동의 전담자는 여성의 몫이 될 것이며, 이는 불평등한 가족관계를 재생산하게 될 것이다.

 

가족구성원인 개인의 지위에 근거한 세제와 사회보장 수급방식은 여성의 고용률 변화와 연계되어야 하며, 더불어 돌봄의 가치를 어떻게 가시화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도 고려되어야 할 지점이다. 여성의 임금노동자화와 무임의 돌봄노동에 대한 가치화가 동전의 양면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에서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여성은 늘 가장 복합적인 문제의 담지자가 되고 있다. 보다 평등한 사회로의 전환은 가족형태의 다양화와 평등한 성별관계를 전제하지 않고는 성취될 수 없으며, 이에 조응하는 사회정책적 대응이 사회복지 영역에서 우선되어야한다.

 

일, 2017/01/0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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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구조의 변화와 노인돌봄정책

 

이미진 | 건국대학교 행정복지학부 사회복지전공 교수

 

 

1. 들어가며

 

한국문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효’사상은 노인의 돌봄은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이념적 기반으로 오랫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켜왔다. 2008년 장기요양제도가 도입되기 이전 정부의 공식적인 문건에서 ‘선 가정보호 후 사회보호’의 캐치프레이즈를 흔하게 볼 수 있었고, 일반대중들은 시설입소를 ‘노인을 시설에 버린다’고 표현하였고 심지어는‘고려장’으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재가서비스에 대해서는 가족이 아닌, 남에게 돌봄을 맡긴다는 것은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떳떳하지 못한 일로 생각하였다. 최근 들어 이런 인식에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노인돌봄은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고 인식하는 노인이 전체의 1/3을 넘을 정도로 아직도 이러한 인식은 공고하다.

 

그런데 가족이 돌보아야 한다는 주장의 타당성을 논하기 이전에 우리는 가족이 노인을 돌볼 수 있는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가족이 노인을 돌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가족이 돌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현실과는 거리가 먼, 당위적인 구호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고에서는 한국사회 가족구조가 어떻게 변화하였고, 이로 인해 노인돌봄이 어떤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가족이 돌보기 힘든 노인돌봄을 정책적으로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향후 노인돌봄정책이 어떻게 변화, 발전해야 하는지를 모색해 보고자 한다.

 

 

2. 한국사회 가족구조의 변화와 노인돌봄

 

한국사회 가족구조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하고 있다. 평균 가구원수를 보면 1996년 5.5명에서 2015년 2.53명으로 급격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인다. 1960-1970년대에는 7인 이상 가구비율이 가장 높았으나 1980년에서 2005년까지 가장 주된 가구유형은 4인 가구로 바뀌게 된다. 2010년에는 2인 가구가, 그리고 2015년에는 1인 가구(27%)가 가구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나 가구규모의 소규모화가 급격히 일어나고 있다.

 

노인인구에 한정해서 살펴보면 1990년대에는 3세대 이상 가구가 49.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나 2010년에는 1세대 가구가 35.0%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2세대 가구(25.3%), 1인 가구(20.2%), 3세대 이상 가구(19.1%) 등의 순서로 나타났다. 1994-2008년 전국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노인 독신가구는 16.2%에서 26.7%로 증가하였고, 노인 부부가구는 22.8%에서 39.7%로 증가하였으며, 자녀동거가구는 55.9%에서 28.6%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였음을 알 수 있다. 노인단독가구는 가구 내에서 돌봄을 제공할 인력이 부재함을, 노인부부가구는 배우자가 돌봄을 제공하지만 배우자 자신도 노화로 인해 돌봄에 어려움이 있는 노노(老老)케어문제가 앞으로 보다 심각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표> 한국노인가구의 거주형태 변화추이

 

1994

1998

2004

2008

노인독신가구

16.2

20.1

24.6

26.7

노인부부가구

22.8

21.6

26.6

39.7

자녀동거가구

55.9

53.2

43.5

28.6

기타

5.1

5.1

5.4

5.0

자료:

이가옥 외(1994), 『노인생활실태 분석 및 정책과제』.

정경희 외(1998), 『전국 노인생활 실태 및 복지욕구조사』.

정경희 외(2005), 『2004년도 전국 노인생활 실태 및 복지욕구조사』.

박명화 외(2008), 『2008년도 노인실태조사: 전국노인생활실태 및 복지욕구조사 기초분석 보고서』.

 

가족구조는 핵가족화 추세를 보이고 중장년 인구는 감소를 하는 데 반해, 가족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인인구의 증가는 가히 폭발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다. 1970년 99만 명(3.1%)이었던 노인인구는 급속하게 증가하여 2000년 339만 명(7.2%)으로 30년 만에 3.4배가 증가하였고, 2015년 657만 명(13.2%)에 달해 15년 만에 약 2배 증가하는 가속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2016년 발표된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2015-2065년)에 의하면 내년인 2017년부터 노인인구는 유소년인구의 수를 상회하고, 2025년에는 천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장기간 지속되어 왔던 저출산의 여파로 인해 유소년인구(14세 이하)의 수와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생산가능인구(15-64세) 역시 2016년 정점으로 하여 그 수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노년부양비 역시 1965년 5.8%에서 2015년 17.5%로 급격히 증가하였고, 향후에는 2025년 29.4%에서 2065년 88.6%로 급격한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 수치는 2015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노인 17.5명을 부양하였지만, 2065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88.6명을 부양해야 함을, 즉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중장년기 성인자녀의 부담이 증가함을 보여준다. 한편 만혼화와 출산연령의 증가로 인해 30-40대 여성의 38%가 6세 이하 아동돌봄과 노인돌봄을 동시에 수행하는 이중돌봄 문제가 증가하고 있어(송다영, 2014) 중장년층의 돌봄에 대한 부담이 과중되고 있다. 노인가구의 변화로 인해 자녀동거가구가 감소하고 있고, 자녀동거가구의 경우에도 이중돌봄으로 인해 가족이 전적으로 노인돌봄을 수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전통적으로 노인돌봄은 주로 여성이 책임져 왔는데, 중장년기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의 증가(1960년 28.0%, 2016년 1월 기준 50.3%)로 인해 가족 내 돌봄을 제공할 인력은 감소되고 있다.

 

요약하면 가구규모의 소규모화, 노인단독가구와 노인부부가구의 증가, 자녀동거가구의 감소, 이중돌봄 문제의 등장 등으로 인해 가족이 노인을 전적으로 돌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노인들의 가족부양에 대한 사회조사 결과에도 투영이 되고 있다. 2006-2014년 조사를 살펴보면 가족부양에 대해 가족의 책임으로 보기보다는 노인 스스로 해결하거나 가족, 정부, 사회의 공동책임을 강조하는 응답이 더 많게 나타났다. 2006년에는 가족 책임이라는 응답이 67.3%에 달하였으나 2014년에는 이의 절반 수준인 34.1%로 하락한 반면, 부모 스스로 해결은 2006년 13.7%에서 2014년 23.8%로, 가족, 정부, 사회의 공동책임이라는 응답은 동기간 14.9%에서 35.7%로 증가하였다. 2014년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돌봄이 필요한 노인의 약 20%가 가족이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노인돌봄 문제가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돌봄을 받고 있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 결과 돌봄제공자(복수응답)는 가족이 91.9%, 친척·친구·이웃 등이 7.3%, 개인간병인 등이 1.3%, 장기요양서비스가 15.4%, 노인돌봄서비스가 6.4%인 것으로 나타나 공적 돌봄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이 노인돌봄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족의 노인돌봄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자녀의 경제적 상태가 안정적이고 가족간의 유대가 끈끈할 때 노인들이 가족으로부터 돌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공선희, 2013). 둘째, 유럽국가들의 연구결과에서도 공적 돌봄서비스의 발달이 오히려 자녀의 노인돌봄에 대한 윤리적 규범을 강화시킨다는 점, 공적 돌봄서비스의 발달이 이루어진 국가에서도 노인의 가족돌봄은 보완적인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림] 가족부양에 대한 노인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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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통계청(2016) 고령자 통계

 

 

3. 노인돌봄정책의 현황 및 문제점

 

노인돌봄정책은 시설서비스와 재가서비스로 구분할 수 있으며, 시설서비스는 ①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양로무료/실비시설서비스와, ② 장기요양 1-2등급이 입소하는 노인요양시설서비스로 나눌 수 있다. 재가서비스는 ① 장기요양 1-4등급 및 치매특별등급노인이 이용할 수 있는 방문요양, 방문간호, 주야간보호, 단기보호, 방문목욕서비스의 장기요양서비스, ② 장기요양보험 등급외 A, B 노인이 이용할 수 있는 노인돌봄종합서비스, ③ 요양서비스가 불필요한 독거노인 등에게 제공되는 노인돌봄기본서비스, ④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이후 가정봉사원 파견사업 대상자였던 등급외자, 기초수급권자 등에게 일상생활지원 등을 제공하는 재가노인지원서비스가 포함된다. 이외에도 결식우려노인 무료급식이나 사회복지관의 재가복지사업 등도 존재하지만 노인돌봄정책에서 그 비중이 미미하기 때문에 본 고에서는 이들 서비스는 제외하여 논의하며, 재가돌봄서비스에 주로 초점을 맞추어서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서비스 자격요건을 보면 장기요양서비스만 노인의 기능적 건강상태만을 위주로 하여 서비스 자격요건을 선별하고, 이외의 서비스들은 소득수준(노인돌봄종합서비스, 재가노인지원서비스), 독거노인 여부의 인구학적 조건(노인돌봄기본서비스)을 기준으로 하여 서비스 대상자를 선정한다. 장기요양서비스에서 노인돌봄은 오직 노인의 기능적 건강상태만을 위주로 평가하지만, 이외의 돌봄서비스에서 다른 기준을 설정한 것은 어떤 논리적 근거에 의한 것인가? 노인돌봄에 대한 욕구는 소득수준과는 무관하고 독거노인이 아닌 노인부부나 자녀동거가구의 노인이라고 하더라도 배우자의 건강상태나 자녀의 취업 등으로 인해 돌봄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 가족과 동거하는 노인에게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재가돌봄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노인과 자녀가 별거해야 하는, 가족보존이 아닌 가족해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경제적 상태는 돌봄욕구가 아닌, 서비스 비용부담의 차별화에 적용해야 할 원칙이며, 독거노인만으로 서비스대상자를 제한함은 가족이 있는 노인은 돌봄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는 단순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한편 저소득층의 서비스 비용부담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남기철, 최혜지, 2012).

 

둘째, 현재의 노인돌봄정책은 장기간 돌봄욕구가 충족될 수 없는 경우를 가정하고 이에 대한 욕구충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노인이 병원에 입원한 후 퇴원하여 집에서 단기간 돌봄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경우,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단기간병서비스가 거의 부재한 형편이다(남기철, 최혜지, 2012). 장기요양서비스는 서비스의 명칭에서 보듯이 6개월 이상 장기간 일상생활수행에 도움이 필요로 한 자에게 서비스가 제공되고 노인돌봄종합서비스 역시 장기요양서비스와 유사하다. 실제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회에서 단기간병서비스 대상자라는 이유로 서비스 신청이 기각되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물론 노인돌봄종합서비스 중 단기가사서비스가 만 65세 이상의 독거노인, 만 75세 이상 노인부부가구에게 제공되지만 노인돌봄종합서비스는 등급외의 저소득층 노인(전국가구 월평균 소득 150% 이하)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노인돌봄기본서비스, 재가노인지원서비스 역시 독거노인, 수급자노인이 주요한 타깃이라는 점에서 중산층 노인이 재가에서 단기간병서비스를 받고 싶어도 현재로서는 이를 제공하는 공적 서비스는 전무하다.

 

셋째, 노인에게 돌봄을 제공하는 재가보호서비스가 영리화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민간이 주도함으로써 양질의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2012년 영리민간의 비중은 방문요양기관은 82.0%, 방문간호기관은 76.8%, 방문목욕기관은 84.5%로 압도적으로 높다. 이에 반해 국공립 소유시설은 방문요양기관은 0.4%, 방문간호기관은 1.2%, 방문목욕기관은 0.2%에 불과한 실정이다. 재가노인지원서비스기관 역시 바우처방식의 노인돌봄종합서비스나 방문요양서비스의 겸업을 수행하면서 수급자에게 양질의 재가노인지원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노인돌봄종합서비스나 방문요양서비스와 같은 서비스의 실적 쌓기에 보다 주력하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전용호, 2012). 노인돌봄종합서비스 역시 국가보조금 지원방식에서 바우처방식으로 변경되면서 서비스의 시장화, 영리화가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네 가지 종류의 돌봄서비스 역시 서비스의 양적인 면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실제 서비스의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큰 차별성이 없다는 점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넷째,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이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절대적인 양 역시 부족한 형편이다. 예를 들면 장기요양서비스 1-2등급의 절반 이상은 재가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는 한편, 3등급의 72%는 시설서비스를 이용하는 실태는 기능상태별 등급구분, 등급에 따른 차별적인 서비스 제공량이 실제 현실과는 괴리가 있음을 보여준다(양난주, 최인희, 2013). 이는 3등급의 대부분이 치매노인인데 이들이 현재의 재가서비스 양과 질적인 측면의 문제로 인해 시설에 입소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섯째, 서비스 제공인력의 전문성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장기요양서비스의 돌봄서비스는 요양보호사에 의해 제공되는데, 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초기 제대로 교육을 이수하지 않고 자격증을 받은 요양보호사가 대거 배출됨에 따라 이들 인력의 전문성 문제는 2008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재가노인지원서비스 역시 유무급 자원봉사자에 의존함으로써 서비스의 전문성을 제고하기에는 어려움이 큰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전용호, 2012). 뿐만 아니라 돌봄인력의 낮은 보수, 열악한 근로환경, 높은 이직률, 산재의 위험, 내실있는 보수교육의 미실시 등은 서비스 제공인력의 전문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으나, 여전히 개선이 안 되고 있다. 노인의 돌봄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재가서비스가 제공되기 위해서는, 사례관리 인력이 필요하지만 장기요양서비스에서는 제도의 틀 안에 사례관리가 아예 빠져 있다. 다른 돌봄서비스에는 서비스 관리자가 사례관리 등을 수행하게 되어 있지만 돌봄서비스 제공인력에 대한 관리 및 행정업무를 수행하기에도 벅차 돌봄서비스를 제공받는 개별 노인에 대한 사례관리는 내실있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여섯째, 노인돌봄을 제공하는 재가보호서비스는 각기 다른 전달체계와 재정지원방식을 통해 서비스가 제공된다. 장기요양서비스는 재가노인복지시설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장기요양보험의 보험수가를 통해 재정적인 지원을 받지만(본인부담비율: 15%), 노인돌봄종합서비스는 저소득층은 바우처 방식으로 수급자는 조세방식으로 지원되고 바우처 관리는 보건복지정보개발원에서 수행하고 복지관, 재가노인복지시설 등에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한다. 노인돌봄기본서비스는 조세방식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지고 복지관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에서 업무를 총괄한다. 마지막으로 재가노인지원서비스는 조세방식으로 재정지원이 이루어지고 재가노인지원서비스센터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들 네 종류의 서비스는 유사한 서비스이지만 전산망 등이 통합되어 있지 않아 서비스의 중복 문제가 발생하고 서비스의 연계 등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노인돌봄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노인과 가족의 입장에서도 어떤 서비스를 어떤 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지 혼란스럽고, 유사한 서비스가 각기 다른 전달체계를 통해 수행됨으로써 효율성과 통합성이 저해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이선희, 2014; 전용호, 2015).

 

일곱째, 각기 다른 전달체계를 통해 제공되는 노인돌봄의 재가서비스는 지도감독 역시 다른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장기요양서비스는 건강보험공단이 평가를 하고 불법운영사례에 대해 모니터링을 하지만, 시군구에서 기관의 지정, 지정취소, 영업정지·폐쇄명령권한을 가지고 있다. 지도감독의 이원화로 인해 장기요양서비스기관 중 노인학대가 발생하였거나 불법운영사례가 발견되어 시군구에 기관에 대한 제재를 요청해도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반해 노인돌봄종합서비스, 노인돌봄기본서비스, 재가노인지원서비스는 공급자의 선정 및 지도감독이 시군구 차원에서 이루어지지만 지도감독은 형식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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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노인돌봄정책의 발전적 방안 모색

공적 돌봄서비스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노인돌봄기능은 보완적인 형태로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이에 노인의 시설입소를 최대한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족이 노인돌봄을 지속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본 고에서는 다음과 같이 노인돌봄정책이 발전적인 방향으로 개혁될 것을 제안한다.

 

첫째, 노인돌봄에 대한 공적 서비스는 소득수준과는 무관하게 제공되어야 하고 독거가구나 수급자에게만 일률적으로 제공되는 형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장기요양서비스과 동일하게 소득수준에 따른 차별적인 본인부담금 제도를 도입하고, 서비스 자격요건은 가구의 인구학적 조건보다는 노인의 기능적 상태를 기준으로 하여 선정한다. 다만 독거가구 여부 등을 서비스 우선순위 선정시 기준으로 활용할 수는 있다고 본다. 서비스에 대한 비용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차상위층까지 본인부담금 감면제도를 시행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남기철, 최혜지, 2012).

 

둘째, 유사한 돌봄서비스를 통합하여 제도화하고 서비스의 품질관리를 수행하는 제 3의 기관 설립이 필요하다. 노인장기요양서비스와 노인돌봄종합서비스는 서비스의 양적인 측면에서만 차이가 있고 서비스의 질적 측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 둘은 장기요양서비스체계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인돌봄서비스와 재가노인지원서비스 역시 서비스의 차별성이 없으므로 이 역시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비스 통합과 전산망 통합은 긴밀히 연계되어 있고 일차적으로는 두 개의 전산망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노인의 복잡다단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맞춤형 서비스 안내, 연계, 제공 등을 위해서 사례관리를 수행하고 이 업무는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를 one-stop 노인종합지원센터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서비스기관에 대한 지도감독은 시군구로 일원화하되, 서비스의 품질관리는 장기요양서비스, 노인돌봄서비스를 포함한 사회서비스 전반의 품질에 대해 독립적인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함으로써 지도감독과 평가를 분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셋째, 서비스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서 국공립시설의 비중을 높일 것을 제안한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돌봄서비스 기관은 민간 영리시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서비스의 영리화, 시장화가 심각하다. 이로 인해 기저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기저귀를 재사용하거나 잘라서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성기에 비닐봉지를 씌우는 등의 극단적인 노인학대,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 국공립시설의 증대는 정부의 규제감독이 강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고 지역사회의 참여를 통한 서비스의 질 모니터링이 보다 용이해 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서비스 공공성 확보에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장기간 돌봄 뿐만 아니라 단기간 돌봄이 필요한 경우에도 공적 돌봄서비스가 제공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단기간병서비스가 시급히 도입되어야 하고, 24시간 재가돌봄이 가능할 수 있도록 야간 방문요양 등의 서비스가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일상생활지원 등이 위주가 되는 돌봄서비스 이외에도 건강관리, 재활, 예방서비스 등 보다 다양한 재가돌봄서비스가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돌봄서비스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돌봄인력의 전문성 증진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요양보호사 임금에 대한 최저 기준 설정, 인권보호 방안 마련, 4대 사회보험 적용 등의 제도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돌봄인력의 전문성 증진을 위해 공적인 기관에서 체계적인 보수교육을 수행하도록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여섯째, 가족이 노인돌봄을 전담하기에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여 가족이 노인돌봄에 대한 부담을 경감시키고, 돌봄 위기상황 발생시 가족이 우선적으로 노인돌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적인 제도화, 일·가정양립문화의 정착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스웨덴의 돌봄휴직법(100일간 돌봄에 대해 급여의 80% 지원)처럼 아동, 노인 등 모든 돌봄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돌봄서비스는 치매상담센터가 수행하는 치매관리사업 등과의 연계, 조정 등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지역사회에서 자율적으로 돌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인돌봄공동체에 대한 지원 등이 수행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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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7/01/01-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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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3_윤석열정부 기금개악 현황과 문제점 토론회
2023년 3월 13일(월) 오후 2시, 윤석열정부 기금개악 현황과 문제점 토론회,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 <사진=참여연대>

윤석열 정부는 KT 등 기업에 대한 수탁자책임활동을 관치로 격하시키고 있으며, 상근전문위원에 검찰 출신 인사를 임명하고, 노동계 추천 상근전문위원, 실평위원, 수책위원의 임명을 고의적으로 지연하여 기금위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삼성물산 합병사건과 같은 국정농단의 재발을 막고자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를 설치하였으나 윤석열 정부는 수책위원장이 될 상근전문위원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무효라 주장하고, 국민연금공단이 복지부 지시에 따라야 한다며 기금의 독립성에 배치되는 검찰 출신 인물을 임명하는 등 국민상식에 어긋나는 파행을 자행하였습니다.

지난 제1차 기금위(3/7)에서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인적구성을 경영과 자본에 편향적으로 변경하는 의결안건을 유례없이 표결로 강행처리했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을 정권이 장악하고 그 실질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전문성, 수익성을 구실로 국민연금 제도와 기금을 분리하여, 전주에 있는 기금본부 서울 이전을 추진하는 등 자본시장 이해관계에만 부합하도록 기금 거버넌스 개악까지 추진하려 한다는 보도도 연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노동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국민연금 기금 현안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긴급 토론회를 준비했습니다.

개요

  • 제목 : 윤석열 정부 기금개악 현황과 문제점 토론회
  • 일시: 2023년 3월 13일(월) 14:00 ~ 17:00
  • 장소: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
  • 주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 김민석 의원, 남인순 의원, 인재근 의원, 김성주 의원, 강선우 의원, 고영인 의원, 서영석 의원, 최종윤 의원, 최혜영 의원, 정의당 강은미 의원
  • 프로그램
    • 좌장: 정용건 연금행동 공동집행위원장
    • 발제: 국민연금 기금 현안과 문제점_원종현 박사
    • 토론
      •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 기금위원
      • 이찬진 변호사, 전 기금위원·참여연대 실행위원
      • 이상훈 변호사, 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
      • 노종화 변호사,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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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3일(월) 오후 2시, 윤석열정부 기금개악 현황과 문제점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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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23/03/1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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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최순실 의료게이트의 본질

 

정형준 | 녹색병원 재활의학과 과장,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부위원장

 

 

박근혜, 최순실이 벌인 국정농단으로 국민들의 분노는 꺼지지 않고 있다. 10월경부터 매일 벌어지는 뉴스에서의 폭로와 추가 탐문수사로 인해, 혹자는 막장드라마를 능가하는 현실이라고 비꼬아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잘못이 없다고 밝히고 있으며, 국정농단의 비선실세인 ‘최순실’ 조차 법정에서는 ‘죄가 없다’고 항변한다고 한다.

 

지금 현실의 상황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지배권력의 부패, 추문, 뒷거래 등의 소설 속 전개보다 더 하며,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는 멈추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부패의 고리에 크게 부각된 것은 다름 아닌 ‘의료정책’ ‘의료기업체’ ‘의약품’ 그리고 ‘의사들’이다. 이를 우리는 ‘의료게이트’라고 부름직한데,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12월 14일에 세월호 7시간의 진실규명과 결합하여, 각종 약품사용, 특정 의원과 의사들의 결탁과 권한남용에 대한 광범한 질의가 이루어진 바 있다.

 

하지만, ‘의료게이트’는 단순히 몇몇 의사들과 정권의 결탁, 그리고 청와대에서 사용된 약품에만 국한 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을 관통하고 있는 의료정책 그리고 그 때문에 발생한 국민들의 피해와 앞으로 한국의 의료제도에 미칠 영향 모두를 포괄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때문에, ‘의료게이트’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 핵심을 추려내는 것이 중요하다.

 

 

의료산업체와의 결탁

 

‘의료게이트’가 폭로된 시발점은 최순실의 단골 성형외과로 알려진 김영재의원에 대한 정권의 특혜였다. 김영재의 부인이 설립한 화장품회사(존 제이콥스, 대표 박휘준 – 김영재의 처남)의 제품은 청와대에서 2016년 설 명절 선물로 선정되었다. 이 화장품 회사는 뚜렷한 해외판매 실적 등이 없었으나, 장충동 신라면세점(2016년 7월), 명동 신세계면세점(2016년 5월) 등에 입점하였을 뿐 아니라, 대통령의 프랑스순방 때 직접 광고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김영재가 설립한 의료기기회사(주 와이제이콥스메디컬 – 사원수 8명의 소기업, 대표 박채윤 – 김영재의 부인)도 수술 부위 봉합에 사용하는 실 개발에 3년간 15억 가량을 분당서울대병원과 산학협력(책임연구원:서창석 – 현 서울대병원장, 전 대통령 주치의)으로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받았다. 또한 2014년부터 청와대의 안종범수석 및 비서관이 직접적으로 서울대병원과 의료기기회사의 합작기업을 설립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이 압력을 행사하는 자리에는 전 서울대병원장(오병희)과 현 서울대병원장(서창석)이 모두 동석했다.

 

서창석은 한술 더 떠 이 업체의 실을 서울대에서 쓰도록 압력을 행사에 이를 서울대병원에 등록하고, 김영재를 서울대 외래교수에 위촉했다. 김영재는 외래교수 자격에 미달되었고, 성형외과과장 및 외과과장과도 전혀 상의하지 않았음도 밝혀졌다.

김영재 부부가 받은 특혜의 화룡점정은 청와대가 나서서 해외 수주 계약을 주선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부부는 대통령 해외순방에 3차례 동행했다.(2015년 4월 중남미 순방, 2015년 9월 중국, 2016년 5월 아프리카, 프랑스) 특히, 공식적인 경제사절단에 두 기업 모두를 이름에 올린 적도 있었다.(존 제이콥스 박휘준 대표이사, 와이제이콥스메디컬 기술이사 김영재)

 

이처럼 김영재이든 그의 부인이든 간에, 개인적인 최순실 혹은 박근혜와의 인맥으로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사적기업의 배를 불려온 것은 명백한 부패게이트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김영재는 피부리프팅 전문가로 국정감사에서 수차례 청와대를 드나든 것으로 들어났다. 이는 박근혜의 필러, 보톡스 시술자로 김영재를 지목되게 만들었으나, 그는 이를 완강히 부인하였다.

 

특정 의원과 의사와의 결탁은 단골성형의원의 경우에만 있지는 않았다. 최순실과 박근혜가 과거부터 이용했던 럭셔리의원도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차움병원은 차병원 계열 병원으로 회원권만 1억 5천만 원이고 연회비가 1,000만원에 육박하는 럭셔리 의료 콤플렉스다. 차병원은 2010년 이후로 ‘차바이오’라는 자회사를 바탕으로 줄기세포치료제 및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는데, 정부는 2014년 8월 줄기세포 상업 임상시험 1상의 면제범위를 확대하는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이런 규제완화는 선진국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또한 직접 2014년 5월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비동결난자의 연구사용을 금지하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직접 요구하기도 했다. 비동결난자 사용은 차병원의 숙원사업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냉동보존 된 난자는 질이 떨어져 연구 성공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여타 줄기세포 업체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여기다 2016년이 되어서는 차병원은 자신의 연구소에서 대통령 연두 업무보고(2016년 1월 19일)를 유치했다.(이 업무보고는 보건복지부·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문화체육관광부 등 6개 부처가 같이 했음.) 당시 보건복지부 업무보고는 모조리 의료산업화관련 사항으로만 채워졌다. 또한 이 연구소는 2016년 4월 보건복지부·미래창조과학부 등이 참석한 바이오 현장간담회도 개최했다. 이런 로비의 대가로 2016년 5월 1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바이오헬스케어 규제혁신 때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 시 배아 사용요건 완화’가 규제 완화책 중 첫째로 꼽혔다. 또한 차바이오가 임상시험 중인 알츠하이머, 뇌경색 줄기세포 치료제와 같은 상병을 꼭 집어 임상3상 면제 대상으로 언급하였다. 최종적으로 차병원은 2016년 7월 9년 만에 줄기세포연구팀의 ‘체세포 복제배아연구’가 복지부로부터 조건부 승인되었다.

 

이런 특혜에 대해서 차병원과 차움병원은 최순실, 박근혜 모두 차움병원의 회원이 아니고, 의료서비스만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주로 미용 목적의 태반 주사와 백옥 주사, 신데렐라 주사 같은 주사제와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기능의학적 처치가 주된 ‘차움병원’에서 연회비를 내지 않고 진료를 받는 다는 것 자체가 거꾸로 차움병원의 진료가 로비의 성격이 강함을 입증한 것이다. 또한 차병원이 이후 받은 각종 규제완화의 혜택도 정부와 의료기관의 결탁의 결과로 부패게이트라 할 수 있다. 즉, 매우 영세한 개인사업체부터 차병원으로 대표되는 의료산업체까지 규제완화와 국립대와의 결탁, 알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효과가 불분명한 미용제제의 남용

 

여기에 11월말 청와대에서 구매한 약품목록이 공개되면서 또 다른 가십거리가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발기부전제 ‘비아그라’등이 포함되면서, 청와대 내부의 은밀한 사생활이 한동안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러나 ‘비아그라’등은 실제로 청와대의무실의 해명처럼 ‘고산병’ 치료 및 예방을 목적으로 구매했고,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실제 문제는 청와대의무실에서 해명을 하지 않는 약품들에 있었다.

 

대표적으로 태반주사, 백옥주사, 감초주사 등으로 알려진 피부미용성분의 주사제가 남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런 주사제는 효용성이 입증되지 않아, 비급여대상으로 시중에서 피부미용을 목적으로 사용할 때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특히 공적기관에서도 2010년 태반주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국민들은 물론이고 의료계에도 심각하다고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통령 주치의와 자문의사들은 이런 주사제를 처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간 차움병원에서 이런 대체주사제를 처방하던 김상만을 청와대는 따로 야간에 불러 처방을 받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약품의 안정성과 효용성 뿐 아니라, 공식적이고, 합리적인 의료이용과는 한참 떨어진 의료행태를 대통령이 보였다는 것을 입증한다. 또한 이를 위해 대통령의 혈액 같은 국가기밀사항(2급기밀사항)도 버젓이 시중의 의원으로 나갔다. 마지막으로 국민 대부분이 비급여로 처방받아야 하는 약품 등을 국가세금으로 막대한 양을 구매한 것도 청와대의 도덕적 해이의 한 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약품 구매와 관련된 논란은 미디어와 여론의 이슈는 되었지만, 실제로 ‘의료게이트’의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외에도 ‘코리아에이드’로 불리는 해외 의료원조건, ‘첨단재생의료’라는 단어의 줄기세포 규제완화등도 얽혀있지만, 이 또한 본질은 아니다.

 

 

본질은 의료민영화

 

박근혜 정권의 ‘의료게이트’의 핵심이라면, 단연코 박근혜 정부가 역사상 최초로 해놓은 ‘의료만행’들에서 찾아봐야 한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역사상 최초의 공공의료원(진주의료원) 폐원과 최초의 국내 영리병원(제주도 녹지병원) 허용하였다. 공공병원 폐원과 영리병원 승인 모두가 최초인데, 이는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바로 의료민영화를 구체화 했다는 점이다.

 

세부적으로는 4년 동안 국회입법이 아니라 행정부에서 처리 가능한 시행령, 시행규칙, 가이드라인, 유권해석 등등의 행정독재식 방법으로 노무현정부 때부터 병원자본과 의료기기업체들이 원한 민영화과제들을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는 병원 및 의료기기, 제약업의 민원 처리를 해줬으며, 의료산업화 ‘청부정부’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최소한의 국민건강 보호장치를 해제했다. 여기에는 임상시험 규제완화, 신의료기술평가 간소화, 줄기세포 허용, 약가정책 후퇴 등등 향후 제2의 옥시사태를 일으키고도 남을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이런 방향성을 위해 보건의료서비스를 한층 더 서비스산업으로 묶어서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도록 추진했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기획재정부의 일개 부서처럼 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형표, 방문규 같은 경제관료들이 보건복지부로 침투해 장관과 차관을 맡았다.

 

이런 큰 방향성은 사실 앞서 살펴본 동네의원에서부터 차병원에 이르는 의료산업체와의 연관, 그리고 이러한 결정과정은 효용성이나 안정성보다는 상업성이 농후한 의료서비스(피부미용)의 확대를 나았고, 이를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직접 수혜 받은 측면도 크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는 단순히 김영재, 차병원, 최순실, 차병원 같은 직접관련자들만이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다름 아닌 전반적인 의료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이를 청탁한 세력은 따로 있었다.

 

 

재벌과 의료민영화

 

박근혜 정권은 2013년 12월 13일 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의료민영화 추진 논란에 불을 지폈다. 당시 이 대책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의료기관 자법인 설립 허용 및 부대사업 대폭 확대였고, 하나는 의료법인간 합병, 법인약국 허용이었다. 영리자법인은 이명박정부 때까지는 법리적으로 경영지원이란 명분으로 설립하려던 자회사를 행정부 독단의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한 것인데, 실제로는 영리병원의 우회적 적용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우회적 영리병원의 도입을 주장한 것은 다름 아닌 삼성경제연구소와 전경련이었다.

 

더욱이 이런 추진동력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2014년 3월 20일 개최된 ‘제 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점검회의’였다. 이 회의는 공중파 전체에 생방송으로 나갔을 뿐 아니라, 모든 규제를 적폐로 선언하는 선언장이었다. 당시 이 회의에서 가장 많은 민원사항을 주장한 것은 다름 아닌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이었다. 이승철이 이 날 주장한 의료부분 규제완화 요구안은 더욱 가관이다. 우선 스마트폰 등에 탑재될 건강관리 목적 감지기 등의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허가를 의료기기법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 한 것이다. 이는 당시 삼성의 갤럭시 스마트폰의 허가를 위한 민원처리였고, 결국 일사천리로 의료기기에서 스마트폰의 감지기 등은 제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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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점검회의 자료, 2014.03.20.

 

 

또 다른 하나는 국내보험사의 외국인 환자 유치 허용이었다. 외국인 환자 유치허용은 이명박정부 때부터 삼성생명을 위시한 민간보험사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다. 말로는 외국인 환자만 유치·알선하는 것이지만, 종국적으로는 환자를 민간보험사가 계약해서 유치알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로, 사실상 미국식의 병원-보험회사 연계모델을 가능한 부분부터 열어주자는 주장이었다. 놀랍게도 이 조항은 이후 2년간 청와대 여야대표 모임이나, 국무회의 때마다 나오던 ‘국제의료지원 특별법’의 핵심조항과도 관련이 있다.

 

즉, 재벌 특히 삼성의 이해관계와 관련해서 의료부분 규제개혁의 목표도 설정되었고 제기되었다. 이제는 모두 알다시피 이승철 전경련부회장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후원금을 걷은 총책의 역할도 한 바 있다. 삼성이 최순실 박근혜의 재단에 돈을 입금한 것은 단순히 압력만을 위한 것이 아닌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중요한 것은 제일모직 삼성생명 합병 같은 사안뿐이 아니라, 이런 의료민영화 과제들을 해결해주는 대가도 이런 금액에는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벌인 각종 의료민영화 정책들, 의료부분 규제완화를 일일이 거론하기는 매우 힘들다. 끝으로 2016년 5월 18일 마지막 규제개혁 장관회의(5차)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내용 중에는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언급이 있다. 이 ‘갈라파고스규제’라는 말 자체가 전경련에서 만든 것으로 봐야 하는데, 이 규제장관회의 8일 전에 전경련이 발표한 7대 갈라파고스 규제의 두 번째는 ‘영리병원제한’이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무려 취업유발만 27만에 달한다고 전경련이 밝힌 것이다. 영리병원보다 비영리병원을 같은 수로 만들면 더 많은 인원이 취업시킬 수 있는데 이를 왜곡하고 말이다.

 

<표> 7대 갈라파고스 규제별 개혁 시 경제적 기대효과

연번

규제개혁 과제

부가가치 증대

일자리 창출 효과(명)

취업유발

고용유발

1

수도권 규제

11조4,700억원

15만9,829명

10만3,245명

2

투자개방형 의료법인 제한

14조8,500억원

26만8,978명

22만7,384명

3

지주회사 규제

1조2,610억원

1만7,580명

1만1,356명

4

적합업종

16조6,230억원

23만1,639명

14만9,633명

5

게임셧 다운제

5,510억원

1만7,173명

1만3,716명

6

금산분리

18조5,760억원

21만3,623명

18만3,902명

7

택배 증차규제

1,710억원

1만4,323명

1만3,322명

출처: 전국경제인연합회

 

이런 일련의 주장들의 곳곳에 의료민영화의 핵심 사안인 ‘영리병원’ 허용이 숨어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작금의 ‘의료게이트’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다. 정리하면, 지금 최순실-박근혜 를 둘러싸고 벌어진 의료부분의 각종특혜 및 의혹들은 실제로는 의료를 돈벌이로 전락시키려는 과정의 부차적인 산물이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여전히 ‘영리병원’으로 대표되는 병원의 직접적인 산업화·영리화 정책과 의료기기, 약품, 줄기세포류의 규제완화였다. 반면 박근혜 정부는 지난 4년간 역사상 유래 없는 건강보험 긴축정책을 단행해 무려 20조원 이상의 흑자를 남겼다. 국민들은 의료비부담으로 아파도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부유층의 피부미용, 돈벌이이용은 계속 부추긴 꼴이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효율 극대화 추구로 결국 금융투자 및 국고지원 축소 획책으로 까지 나아가고 있다.

 

대통령이 근무시간에 보톡스, 필러 시술을 받는 것, 그리고 피부미용 수액치료를 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돈벌이의료에 희생양이 되는 의료산업화·영리화 정책이다. 박근혜퇴진 이후의 해결해야 할 의료적폐의 1순위는 지금까지 허용된 각종 의료산업화·영리화 정책을 원점으로 돌리고 전면 재검토하는 일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의료게이트’의 확실한 해결책이다.

 

일, 2017/01/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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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

 

안진걸 |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상임운영위원

 

[인터뷰 및 정리] 김남희 |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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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자기를 위한 가치 소비로 분주한 현대인들. 피로한 현대사회에서도 자신만을 위해 시간과 돈, 열정을 쏟는 포미(For-me)족이 대세다. 물질만능주의 소비문화 안에서 자기만을 생각하는 포미족이라고 다 같은 포미족이 아니다. 여기 다른 의미의 포미족이 있다. 타인을 위해 시간과 돈, 열정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 이야기하는 사람, 바로 참여연대 안진걸 처장이다. 그는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동해번쩍 서해번쩍 하는 서민운동가로, 사회 안에서 답답하고 억울해 하는 사람들이 행복해야 본인도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천상 민생 사랑꾼이다.

 

그가 얼마나 바쁘게 사는 지는 그의 24시간 족적이 빼곡히 적힌 수첩을 보면 누구도 반문할 수 없으리라. 새벽 신문이 배달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그의 하루는 민생으로 시작해 민생으로 끝난다. 서민이 더 행복해지는 삶을 위해 늘 애쓰는 그가 이번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과연 퇴진운동에서 그는 어떤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정세를 들어보자.

 

 

퇴진행동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현재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이다. 그리고 퇴진행동의 운영위원이며, 공동대변인이다. 퇴진행동에서 각계 각층을 망라하는 24명의 상임운영위원을 선임했는데 그 중의 한 명이다. 공동대변인으로 퇴진행동의 입장을 전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퇴진행동이 구성되게 된 계기를 설명해 달라

 

지난 10월 초 민주노총과 민중단체들이 주축으로 민중총궐기 대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10월 중순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문제가 되면서 정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진상규명과 박근혜 퇴진 촉구를 위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문제제기가 여러 단체들로부터 제기되었다. 민중총궐기 추진본부와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적 연대기구를 만들자는 교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0월 29일 집회를 개최했는데, 많아야 3,4천명이 모일 줄 알았는데, 3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나왔다. 국민들의 열망을 직접 느끼고, 이러한 열망을 모아내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러 차례의 회의와 논의를 거쳐 11월 9일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고, 그 이후 지금까지 10차례에 걸친 주말집회와 매일 촛불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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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연대

 

집회가 그 동안 변화된 모습은 어땠는가

 

정권퇴진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 시민들이 모였고, 짧은 시간에 국회의 탄핵소추 결정을 이끌어 냈다. 그 과정에서 집회와 시위의 자유도 확장했고, 최초로 청와대 100m 앞에서 집회가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민주적 기본권이 확장되었다. 이를 통하여 범국민적 민주주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이었다고 본다. 이 모든 결과는 분노를 가지고 촛불을 들고 나온 수많은 국민들의 덕분이다.

 

추운 날씨에 주말마다 집회가 계속되면 지칠 법도 한데, 10번에 달하는 대규모 집회를 했는데도 열기가 크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시민들의 열정 뒤에는 공정하고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 있다고 본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후퇴되고 있는데 그 뒤에 권력자들의 국정농단, 헌정파괴, 정경유착 등으로 시민들의 권리가 철저하게 짓밟혀 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넘어선 것을 얘기하는 데 대해서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열기 뒤에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열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열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포함해야 할 것 같다.

 

 

두 달 만에 탄핵 소추를 이끌어냈다. 이에 대한 소감은 어떤가

 

탄핵 소추가 이루어지기까지 과정을 보면 드라마틱했다. 박근혜는 마지막까지 정치적 꼼수를 부리며, 대국민 담화를 통해서 중도에 그만둘 수도 있으니까 탄핵은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새누리당에게 보냈고 여기에 새누리당 일부 의원들이 동의하면서, 탄핵 소추의 건이 국회에서 부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촛불집회에 나올 뿐 아니라 강력한 퇴진압박을 했다. 국민들의 압력이 흔들리는 야당의 퇴진담론을 이끌어냈다. 새누리당이 흔들리고 야당도 탄핵이 물건너 갔다는 전망이 나올 때, 전국적으로 11월 26일 192만 명, 12월 3일 232만 명이 모이는 등 모두의 예상을 깨고 더 많은 사람이 쏟아져 나옴으로써, 강력한 시민들의 의견을 보여줬고, 결국 압도적 탄핵을 이끌어 냈다. 탄핵은 아직 절반의 승리지만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벌써 두 달이 넘게 주말마다 계속 집회가 열리면서 시민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근혜가 빨리 내려올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보니 박근혜, 최순실에 대한 분노가 더 커지고 있다. 잘못한 게 없다고 하면서 국민들의 고통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작정하고 국민과 나라를 괴롭히는 적반하장, 후안무치의 태도를 보고 분노가 치솟는다.

 

 

퇴진행동의 운동이 시민사회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는가

 

평소에 시민사회, 시민운동이 이론적으로 제도 안팎의 저항권과 주권을 행사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체제내적이고 제도적인 진보를 추구해 왔다. 거버넌스를 통한 소통과 제도권과의 협력을 통한 개선을 주 업무로 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 퇴진행동의 운동을 통해서 필요하다면 시민들의 결단으로 체제나 제도를 뛰어넘는 운동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고 본다. 대통령 임기를 단축시킬 수 있는 결단을 시민들이 하고, 시민사회도 함께 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정치권력에 대하여 정권퇴진 운동을 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온갖 악행과 불법으로 점철된 정권에 대하여 다음 선거를 기다려야만 할까?

 

이번 박근혜 퇴진운동은 국민의 수인한도를 넘어선 권력인 경우에는 제도를 뛰어넘어 퇴진을 요구하는 범국민적인 운동이 있을 수 있고 이러한 운동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운동을 일부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집회에 참석하는 대다수의 시민들이 오히려 앞서서 퇴진을 강력하게 요구했던 것이다.

 

이번 운동은 앞으로 시민사회가 권력을 감시하는 태도에 일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은 박근혜 게이트가 처음 터졌을 때, 퇴진이나 탄핵을 요구로 내세우는 것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다. 만약 퇴진이나 심판을 시민사회의 요구로 내세우는 것에 대하여 끝까지 반대하거나 주저했다면, 시민단체는 시민들로부터 지탄받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시민사회라는 것이 민심의 바다에 자리잡고 있고,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도태되거나 심판받을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또한 이번 운동은 시민사회 활동에도 발전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시민들이 이번 퇴진운동을 통하여 시민단체의 역할을 보고 느끼면서 재평가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참여연대 회원가입도 실제로 늘고 있다.

 

시민사회가 이번 퇴진운동을 적극 활용할 필요성이 있다. 광장이 열렸고 시민들의 열기가 있다. 환경운동연합이 토요일 집회 때 헌법재판소에 엽서 보내기와 탈핵 서명을 같이 진행하고 있다. 열린 광장에서 여러 가지 시민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사회의 정책이나 기조에 대하여 국민 중심으로, 민주적 합의를 중심으로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는 울림이 있다. 시민사회도 이 판에 함께 해야 한다.

 

 

예전에도 큰 사회운동에 참여해 왔는데, 기존의 경험과 비교해 달라.

 

87년 6월 항쟁 때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공기만 맡은 수준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 91년 5월 투쟁의 기억이 있고, 95년 전두환 노태우 학살자 처벌 투쟁을 통해 구속시킨 승리의 경험도 있었다. 시민운동을 시작한 이후에는 2002년 미선이 효순이 범대위,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촛불,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2011년 반값등록금 및 FTA 폐기 운동, 2012년 세월호 추모 집회 등 여러 사회운동에서 크고 작은 실무자로 결합했다.

 

그런데 이번 퇴진운동은 지금까지의 운동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크고 더 역동적이었다. 우선 집회의 인원이 비교가 되지 않게 많이 모였다. 집회 현장의 항공사진을 보면 시민이 가득찬 서울광장이 전체 집회 규모에서 한 귀퉁이에 불과하다. 더 중요한 것은 광장에 모인 사람 뿐만이 아니라 집회가 이루어지는 같은 시간에 온라인 등으로 수백만 명이 응원하면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마음이 사실상 하나로 모아졌다.

 

광우병 촛불집회 때는 학생이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위주였고, 6월 항쟁도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이 중심이었다. 그런데 이번 퇴진운동은 진보중도보수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국민 일반이 모였다. 가장 많이 나온 단위가 가족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나온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다. 그래서 가족혁명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뿐만 아니라 동창회, 산악회, 동네 모임과 같이 함께 어울리는 여러 모임으로 나오는 모습도 정말 많았다.

 

기존의 사회운동과 비교할 때 이번 퇴진운동은 양태와 규모가 크고, 공감대가 높고, 논란이 거의 없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핵심구호에 대하여 논란이 거의 없었다. 이에 대하여 국민적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고 본다. 사실상 대부분 국민의 판단은 끝났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핵심구호 뒤에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 숨어 있다고 본다. 이번 집회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특히 학생들은 헬조선이 싫어서 나왔다는 사람이 정말 많다. 우리 사회가 지금 너무나 답답하고 막막한 사회다. 우리에게는 헬조선인데, 자기 자식, 자기 사람을 좋은 학교, 좋은 자리에 집어넣은 자가 정권의 핵심이라는 점이 이렇게 많은 시민들의 분노를 이끌어내지 않았을까 싶다.

 

 

집회가 규모는 컸지만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였다는 평가가 있다.

 

이번 퇴진운동은 시민의 합의가 높아서 더 파괴력, 더 대중적인 운동이었다고 본다. 유례없이 많은 사람이 광장에 나오는데 수백만 명이 모였는데도 단 하나의 폭력사태도 없었다. 해외 사례를 보면 대규모 집회에는 폭력, 약탈, 방화가 있는 경우도 많은데, 퇴진운동은 그렇지 않았다. 이렇게 큰 규모가 이렇게 평화적이었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사회과학적 분석대상이 되고 있다. 시민들이 모이는 이유에는 강한 분노가 있었지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 똘똘 뭉쳤다. 집회에서 간혹 돌출행동을 보이려는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저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누군가 경찰버스 위에 올라가면, 다들 “내려와 내려와”를 연호하여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역사적 지혜를 모아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평화적인 가족 단위에 아이들이 많이 나온 것도 영향이 있었다고 본다. 아이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을 것이다. 이 광장에서 다양한 실천이 가능하다. 열린 광장에서 서로 다른 태도를 포용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경험을 함께 하고 있다고 본다. 더 많은 사람의 광장이라는 자각이 있는 것이다.

 

이런 큰 규모의 집회에서는 처음으로 집회인권수책을 만들어 발표하고, 논란이 되는 발언을 한 사람은 즉시 사과하는 용기도 보였다. 집회에서 습관적으로 “모두 일어나주십시오”라고 말해 왔는데, 이번에는 장애가 있거나 다리가 불편한 분들을 고려하여 “일어설 수 있는 분만 일어서주십시오”라는 표현을 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배려와 존중이 학습되고 실천되는 과정이다. 지금까지 어떤 운동보다 위대하고 짜릿하고 보람차고 긍지가 넘친다. 국민들의 마음에도 이러한 자긍심이 함께 스며들고 있다.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다.

 

 

앞으로 퇴진행동의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박근혜 정권 퇴진이다. 너무나 어려운 과제다. 6월 항쟁 때도 그렇게 많이 싸웠지만, 전두환은 결국 임기를 마쳤고 노태우가 다음 정권을 맡았다. 우리의 목적은 정권 퇴진이다. 집중해서 성과를 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만 정권 퇴진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였지만, 그 과정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 우리는 흙수저가 되었을까. 왜 사회는 공정하지 않는가 하는 논의가 있고, 헬조선을 바꿔보자는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소수 특권 세력, 재벌대기업만 특혜를 받는 사회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퇴진과 함께 지금까지 이루어진 잘못된 정책을 막는 임무도 있다. 퇴진행동이 다루어야 할 의제를 무한정으로 확대할 수는 없겠지만, 퇴진 이후 서민을 위한 정책을 하기 위한 기반은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퇴진행동을 퇴진을 위하여 철저하게 운동하되, 탄핵이 이루어진다면 이후 60일이면 바로 다음 대선이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퇴진행동은 퇴진 즉시 해산보다는 질서 있는 해산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1000만 명이 되는 시민들이 참여한 운동에서 정권교체가 되지 않고 끝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권퇴진을 위한 조건과 계기를 만드는데 기여를 하고 질서 있게 해산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연대에서 1999년부터 일했다. 시민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인 김종건 교수가 대학동기다. 98년 여름에 학교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졸업하고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어서 민중을 위한 일을 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 가보라고 했다. 당시 IMF 때문에 중산층이 붕괴되고 정리해고로 인한 실업자 증가, 노숙인 증가 등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사회복지위원회가 바로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곳이라고 했다. 듣는 순간 정말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당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에 일하고 있는 박순철 간사를 소개시켜 줘서 연락했는데, 참여연대에서 곧 사람을 뽑는다고 해서 지원했다. 1999년 1월부터 근무하기 시작했고, 시민권리국으로 배치되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를 접했을 때 신선함과 청량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늘 노동이 존중받고 복지가 넘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결국 시민운동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복지위원회가 가장 왕성히 활동하는 것에 대해 항상 흐뭇하다. 나에게 큰 영감을 준 활동기구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이후 우리가 바라는 사회 또한 노동이 존중되고 복지가 넘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에서 보람을 느끼는 점과 힘든 점은 무엇인가

 

운동의 보람은 고비고비마다 촛불도 들고 집회도 하고 하면서 느낀다. 우리 사회에 답답하고 억울하고 안쓰러운 사람이 너무 많다. 그분들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을 하면서 이웃들과 함께 답답하고 어려운 억울한 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육체적으로도 피곤하고 정신적으로 고민을 많이 해야 하는 일이라 심신이 힘들 때도 있다. 함께 웃으면서 낙관적으로 일하면 좋은 세상 오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일, 2017/01/0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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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탄핵가결 이후

 

이태호 |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공동상황실장

 

 

지난 12월 7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재적인원 300명 중 23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그동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두고 우왕좌왕하던 국회가 촛불민심에 의해 견인된 결과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즉각퇴진을 외쳐온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탄핵된 상태였다. 그런데, 광장의 외침은 박근혜 개인을 향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 사태를 통해 드러난 국민 없는 국가, 그 민낯에 대한 주권자인 국민들의 분노와 항의가 촛불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이 항의는 이미 대학가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나붙었을 때, 그리고 세월호 참사 과정에서 “국가는 없었다”라고 국민 모두가 개탄했을 때 이미 격화되고 있었다.

 

 

무너지는 낡은 체제와 위태로운 시민

 

문제는 박근혜 개인이 아니라 그 체제다. 다행히 박근혜-최순실의 국정파괴 행위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박정희 시대에 대한 환상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어떤 동상도 국정교과서도 이보다 더 큰 교육적 효과를 가질 순 없다. 실제로 모든 지표는 고도성장과 낙수효과에 대한 환상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며, 국가이익과 국가안보 같은 동굴 속의 그림자로 개인의 희생과 순종을 강요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극단적인 양극화, 출산율의 저하와 인구절벽,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극단적 증가, 남-녀간 정규직-비정규직간 최악의 임금격차, 한계치에 다다른 가계 부채, 최악의 자살률 등 모든 조건들이 불평등과 특권에 분노하는 거리의 촛불에 휘발유 역할을 하고 있다.

 

 

대의제의 위기와 자유로운 시민


스스로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수 없었던 한국의 보수정치는 파산했다. 그들은 국민에게 가져다 준 것은 ‘국민 없는 국가’였다. 현 상황을 보수의 민주적 개과천선의 결과로 해석하려는 조선일보류의 아전인수가 가당찮은 것과 마찬가지로, 탄핵안 가결을 야당의 정치적 승리로 보는 것도 큰 착각일 수 있다. 광장에 나온 시민은 기존의 정당체제나 조합 등의 사회조직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민들이며, 복지시스템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사회적 돌봄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즉 위태로운 분노한 시민들이다. 이들을 위태롭게 만드는데 야당도 한 몫 했다. 이 점에서 정치권 전체는 살림, 돌봄, 생명과 안전, 주권자의 권리행사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대한민국, 새로운 참여 민주주의의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겸허히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특권층의 실상과 또 하나의 게이트

 

청문회나 검찰 수사, 그리고 각종 언론이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제보 등에 비추어 볼 때, 이 낡은 체제의 수혜자인 특권층은 상상한 것 이하로 저열하고 시대착오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현대 같은 재벌기업들, 관료집단과 공안세력들, 독재자의 방패막이로 전락한 집권여당 등 지난 30년간 별다른 개혁 없이 이 체제를 재생산해온 온갖 특권집단들의 민낯은 영화나 드라마의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어쩌면 더욱 심각하고 구조적인, 또 다른 국정농단 게이트가 있다. 김기춘, 우병우, 그리고 황교안 총리 등이 간여했던 정치검찰출신들의 공작정치, 국정농단 게이트가 그것이다. 김영환 비망록 등으로 그 일부가 드러났지만, 제대로 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청와대와 국정원, 검경이 모두 간여되어 있다. 부패한 분단안보국가의 적폐가 아직 규명되거나 처벌되지 않은 채 황교안 체제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셈이다. 이 구악을 파헤쳐 개혁하지 않으면 박근혜 정권은 계속된다.

 

 

탄핵 이후의 과제들

 

박근혜는 즉각 사퇴하여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직무정지 상태의 대통령직을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박씨 개인에게도 명예롭지 못한 일이고 나라 전체에는 ‘국정공백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박근혜 직무정지 이후의 대행체제는 박근혜 2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 정권의 적폐와 국정농단의 폐해를 회복하는데 최대한 기여하고, 국민통합과 현상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국정관리에 한정하는 중립적인 체제여야 한다. 대행체제는 또한 박근혜의 즉각 퇴진과 조기대선이 이루어지기까지 그 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대행체제는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모두 공작정치를 중단하고, 국정원과 검·경·군의 엄정중립을 보장하며,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과거 국정농단과 적폐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검과 국정조사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특히 세월호 7시간 등 국정농단과 적폐와 관련된 정보와 자료를 은폐하지 말고 즉각 공개해야 한다. 국정교과서와 노동개악 같은 국민합의 없는 갈등유발 정책 강행을 중단하고, 주변국과 큰 외교적 긴장과 갈등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는 사드배치, 한일정보보호협정 같은 민감한 외교안보사안들은 유보해야 한다.

 

 

황교안 체제는 제2의 박근혜 체제

 

이런 일을 하기에 황교안 총리는 적임자가 아니다. 즉각 사퇴해야 한다. 그는 대행체제를 맡은 자격이 없다. 우선 그에게 중립적인 국정관리를 기대할 수 없다. 황교안은 민주인사들을 억압했던 대표적인 공안검사이자 친재벌 부패 법조인으로서,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법무부 장관 재직하면서 국정원 대선개입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수사검찰에 부당한 압력을 가하고 공안사건을 조작하는 등 공작정치에 앞장섰고, 김기춘, 우병우 등 정치검찰 출신들의 공작정치를 일관되게 비호하여 현 사태에 원인을 제공한 대표적인 부역인사다. 일각에서는 총리마저 사퇴하면 국정에 큰 혼란이 초래될 것처럼 주장하지만, 황교안의 존재가 안정적인 국정관리나 국민통합에 큰 장애가 된다. 그가 사퇴하고 부총리가 대행체제를 맡는 것이 더 낫다.

 

 

정치개혁과 참여민주주의

 

촛불집회를 이끈 주체는 ‘자유롭고 위태로운’ 행동하는 주권자들이었다. 촛불은 국민 없는 국가, 주권자 없는 정치에 대한 항의였고, 자구적이고 합헌적인 저항행동이었다. 이 항의에 내재하는 무수한 사회적 난제들은 궁극적으로 정치의 개혁, 참여민주주의의 구현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특히 정치의 과두제와 진입장벽은 정치개혁에 가장 큰 장애물이다. 자치와 분권의 확대와 주권자의 발의권-감사권-소환권-심판권의 강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각종 소수정당 진입장벽의 철폐, 모든 면에서의 국회의 개방과 특권의 축소 등 국회와 과두정당 자신의 개혁대안을 먼저 내놓고, 다른 개혁조치를 말해야 한다. 또한 헌법 개정 문제를 국회의원끼리 밀실에서 처리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 퇴진이 완수되기까지 헌법 개정 논의는 중단해야 한다. 또한 그 이후에도 개헌이 과연 필요한 지 국민의 의사부터 확인해야 한다. 개헌을 원하는 정치인들이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국민이 이 논의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 ‘헌법개정 절차법’부터 만들어야 한다.

 

일, 2017/01/01-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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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세대에 새로운 경험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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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 건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1세기를 전후하여 한국사회에서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 만큼 전체 구성원에게 이토록 장기간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사건이 또 있었을까. IMF 위기는 미시적으로 개인 및 가구의 삶, 가치관과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 노동시장과 가족구조, 그리고 더 나아가 복지국가 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한 충격은 20년이 지난 현재도 가족해체, 돌봄의 위기, 최고 수준의 경제적 자살, 소득불평등, 실질임금수준의 지속적인 하락, 계층 및 세대 간 갈등과 같은 형태로 분화되고 심지어 누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이후 출생한 아이들은 현재 성인이 되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대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들은 지금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의 연령에 도달해 있을 것이며, 기업도산과 구조조정 등에서 살아남은 당시의 4~50대들은 현재 노인이 되어 그 중 다수는 기초연금의 대상이 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계적인 예상과는 달리 97년 이후 20년은 개인들에게 단순히 시간적 배열에 따른 자연스러운 생애과정을 허용하지 않은채 이전 세대가 경험한 위험을 다시 그 다음세대가 경험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는 20년 전 청년세대나 중장년세대가 경험한 경제위기의 충격과 고통이 20년 후 그들이 자녀세대인 현재의 청년 또는 중장년 세대에게 그 형태를 달리한 채 전승되고 있음을 쉽게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20년이다. 몸 한 자리의 고통이 하루만 지속되어도 참기가 힘들 터인데, 몸 전체가 20년 간 아파왔지만 문제는 원인도 대책도 아직 잘 모른다. 무엇보다도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할뿐더러, 내 자식도 똑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잔인하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1997년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진행 중이다.

 

하지만 변하는 것도 있다.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강압을 변태적으로 즐기던 자들에게, 복지과잉이 망국의 지름길이라며 한 달 전기세 앞에 두고 목숨 끊는 이들의 마지막 길 마저 외면하던 자들에게, 부모의 능력을 자랑하며 가난한 자를 모욕하던 자들에게, 열아홉살 비정규직을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손에 든 초의 구매출처를 수사하라는 자들에게, 최저임금이라도 주라는 CF 광고에 손가락질 하는 자들에게, 자기편이 아닌 모든 자는 빨갱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자들에게, 국민에게 용서를 빌 게 없다는 부끄러움 따윈 개나 줘버린 정치인들과 박 전 대통령에게 시원하게 손가락 하나 날려주고 보니, 우린 어쩌면 느리더라도 세상이 조금씩은 나와 내 자손이 살기에 더 나은 곳으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 같은걸 본 건 아닐까.

 

이제 대중들은 다른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생각을 내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교실 내 억압을 사회에 그대로 투영한 채 숨죽여 살던 개인들에게 광장에서 소심하게나마 구호라는 걸 외쳐보도록 하는 경험을 넘어서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가 법으로 또 제도로 실현되어 그것이 밥이 되고 나무가 되고 깨끗한 물과 동네 친구가 되어 세상을 풍요롭게 했다는 경험 말이다. 그래서 세상이 나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바뀐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와 내 자손, 이웃이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었음을 회상하고 추억하고 두고두고 자랑하게 해야 한다. 새로운 꼰대주의를 만들어줘야 한다.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며 주말에도 회사 야유회에 다니고 부장의 이삿짐을 날라줬다며 아랫사람을 나무라는 그런 꼰대 말고 말이다.

 

일, 2017/01/0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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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의 글

 

이숙진 l 서울여성가족재단 대표이사

 

2015년 6월 복지동향은 지령 200호를 발간합니다. 지령 200호. 200이라는 숫자가 사뭇 기이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희들의 별스런 소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 “후훗”하고 기뻐하다가 에고 참..하며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특히 저는 매주 학교신문을 만들어보았고, 전문지 기자로 직장생활을 해보았던 경험치가 있었던 까닭에 월간지 복지동향 200호 라는 숫자에 담긴 희노애락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러나 지속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300호, 3000호를 내다보며 복지동향이 누구와 함께 무엇을 얘기하며 어떤 색깔의 미래를 꿈꾸어야 할지를 생각하며 복지동향 특집 200호를 준비했습니다.

 

준비호가 발간되었던 1998년, 외환위기가 한국 사회를 통째로 흔들었던 시기로부터, 우리는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 이명박정부, 그리고 박근혜정부 까지 근 20여년을 복지동향과 함께 지내오고 있습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지고,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화 등이 구체화되었을 때 보편적 복지국가가 멀지않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저 그때로 머물러 있음을 느끼게 되는 요즈음, 복지동향은 '복동이'로 거듭나야할 숙명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각계로부터 200호 축하인사를 받았습니다. 그 인사말씀 중에는 복지계의 교양시사 정보지, 유일한 복지 전문지이자 소식지 등으로 자리매김 해주시며,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당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편집위원, 편집간사 그리고 독자가 모여 우리가 바라는 복지동향에 대한 특별좌담회도 열었습니다. 현장에 보다 가깝게 가야 한다, 보건의료나 노동 혹은 주거 등 다양한 목소리를 넣자, 참여연대의 운동성이 담겨야 한다, 운동성과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하자 등등등, 앞으로 할일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 많은 과제가 있음에도 독자들께서는 17년 동안 복지동향을 사랑해주셨습니다. 사회복지분야의 최근 이슈를 보려면 복지동향을 펼쳐야 한다고 하셨고, 기획주제 코너는 단연코 인기였으며, 복지동향 구독 권유 의향은 95%나 되었습니다. 물론 더 읽기 쉽고 재미있게 구성하라, 전문성을 강화하라, 더 많은 정보를 담아라 등의 거부할 수 없는 개선사항도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독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우리가 진정 무엇을 누구와 함께 하고자 하는지 다시한번 돌아보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덴마크에 관한 책 2권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따라가고 싶은 모델이라며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황금삼각형 모델이, 그들의 생활속에 어떻게 녹아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왜 67%나 되는 세금을 불평없이 낼까? 그들은 왜 첫인사로 그사람의 직업보다 취미를 더 궁금해할까? 그들은 왜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을까? 그들은 왜 직업을 차별하지 않으며, 성차별, 장애차별 없이 서로를 신뢰하고 국가를 신뢰할까? 이런 질문은 물론 현재 우리의 처지로부터 나왔음이 분명합니다. 복지동향이 복지국가를 향한 제도와 이슈들을 전문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루어나갈 것입니다만, 생활속 변화를 위해 독자들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풀어가며 더 많은 독자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더욱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복지동향 200호를 축하하며, 독자와 함께 가는 복지동향의 한걸음이 복지국가에 두걸음 더 가까이 가는 길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수, 2015/07/22-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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