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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6・13 지방선거 당선인에게 바란다

지역

#12. 6・13 지방선거 당선인에게 바란다

익명 (미확인) | 목, 2018/06/21- 06:00

안녕하세요.
희망제작소 소장 김제선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북미정상회담과 격동의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지방선거에서는 한반도의 평화 체제 만들기에 훼방을 놓거나 어기대는 이들이 참패했습니다. 평화를 정략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한 심판입니다. 아울러 적폐세력을 물리친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을 거역하는 세력에 대한 심판의 의미도 있습니다.

반면, 시민 참여와 주민 삶의 질을 높이려는 공약도 많이 나왔습니다. 적지 않은 후보가 지역 자원을 활용한 지역발전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그리고 환경, 경제,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모색하며, 혁신적인 지역발전을 일굴 60명의 후보와 ‘민선 7기 지방자치 희망만들기 정책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중 47곳의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높은 상태에 기대 선거가 진행되다 보니 지역 발전에 대한 비전과 계획을 꼼꼼하게 따지지 못했습니다. 광역자치단체장 당선인들의 주요 공약 1,546개 실현에만 약 205조 원이 필요(출처 :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하다고 합니다. 기초자치단체장 당선인의 공약을 취합하면, 이보다 두 배 더 넘는 재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필요성과 실현 가능성을 보다 꼼꼼하게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단체장직 인수・인계 과정에서 이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를 운영하는 인수위원회 관련 법령이 미비하다는 점입니다.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당선인이 취임하기 전까지 조직의 기능과 예산 등을 파악하고 새로운 정책 기조를 설정하며 취임행사를 준비합니다.

민선 5기에서는 132명 신임 단체장 중 83명(62.9%)이, 민선 6기에서는 106명의 신임 단체장 중 61명(57.5%)이 인수위를 구성・운영했습니다.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전임 단체장이 후임자에게 사무를 인수・인계해야 한다는 조항은 있으나, 실질적으로 인수위 설치에 관한 법적 근거가 없다보니 당선인이 임의로 운영해야 하고, 이에 대한 예산과 인력을 제대로 지원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규모의 편차가 크고, 기능과 권한이 불분명해 공무원과 갈등이 생기거나 인수위원의 자질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일부 지역이 인수인계에 관한 규정을 조례로 만들기도 했지만, 대다수 지역은 자치 입법으로도 준비가 미흡합니다. 인수인계가 더욱 꼼꼼하고 원활히 이뤄지도록 국회와 지방의회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다른 걱정도 있습니다. 이번 선거가 적폐정치세력에 대한 심판에 치우치다 보니 단체장과 의회의 다수당이 같은 당 소속인 일당지배형 지방자치단체가 많아졌습니다. 승자독식구조로 설계된 선거제도 탓이 크지만, 지방정치 내부에서의 견제와 균형이 상실될까 우려됩니다. 시민의 직접 참여를 늘리는 방향으로 문제를 보완하고, 지역 언론과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시정을 감시해야 할 것입니다.

당선인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아울러 이번 선거가 시민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기 위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시민 개개인이 주권자가 되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과거 정부가 시민을 소비자나 고객으로 규정하여 시장 순응형 행정 체계를 만들려 했던 경향, 행정 조직 관리 기법을 민간기업의 방식으로 바꾸려 했던 시도를 넘어서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확대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유능한 지방자치, 주권자인 시민과 함께하는 지방자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 스스로 만들고 결정하는 정책, 언제 어디서나 시민 주권이 행사되는 일상의 민주주의, 공론과 합의에 의한 정책결정, 생활 문제를 새롭게 찾아가는 혁신의 노력이 넘치는 민선 지방자치 7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주시길 소망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희망제작소 소장
김제선 드림

희망제작소는 활동소식을 담은 ‘뉴스레터'(월 1회), 우리 시대 희망의 길을 찾는 ‘김제선의 희망편지'(월 1회)를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구독을 원하시는 분은 ‘이곳’을 클릭해주세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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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비가 내리면 민주주의가 자란다”

 

 

 

[4/11 전국동시다발 투표참여캠페인]

인증샷 하나면 끝! 지금 참여해주세요! www.facebook.com/2016changenet

(총선넷 페이스북 페이지에 인증샷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우리는 ‘희망’에 투표합시다 !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 민생, 평화를 위해 투표합시다 !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광장, 세월호 참사 2주기 약속 콘서트에서 마지막으로 울려 퍼진 노래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에 다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담벼락에 욕이라도 하자’는 각오로 시작했습니다.
413 총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2월 17일 전국 천 여개 시민사회단체와 34개 부문 지역단체가 함께 모여 2016총선시민네트워크(이하 2016총선넷)을 구성하고 “Change 2016, 정치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시민이 나서서 뭐라도 해야 합니다.”를 외치면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대는 변하는데 정치는 변하지 않고 후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두 달여 2016총선넷은 숨 가쁘게 달려 왔습니다. 그 두 달은 희망을 만들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민주주의가 꽃피고, 민생과 경제가 살아나고, 평화가 넘실대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시민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새롭고 다양한 정치를 꽃피우기 위해 우리 스스로 나서서 무엇이든 했습니다. 기억, 심판, 약속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습니다.

 

‘기억, 심판, 약속’운동을 진행했습니다.
2016총선넷은 먼저 1차 ‘심판’운동으로 공천부적격자들을 걸러내 줄 것을 각 정당에 촉구했습니다. 2월 말부터 각 부문과 지역단체에서 공천에서 배제해야 할 부적격자 발표가 앞 다투어 진행되었습니다.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은 2016총선넷에서 제시한 기준과 환경 파괴, 역사정의 훼손, 청년정책 반대, 민생경제정책 역행 등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공천 부적격자를 제시했습니다. 2016총선넷은 3월 3일과 15일 각각 1, 2차 공천 부적격자를 발표하고 각 정당을 찾아가 공천부적격자들을 공천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촉구했습니다. 

 

또한 현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각 후보자들의 행적과 언행, 악법 발의, 걸림돌 법안과 디딤돌 법안에 표결 결과를 공개하는 기억운동을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2016총선넷이 운영하는 후보자 정보 공개 싸이트인‘3분총선(www.vote0413.net)에 공개하여 유권자들의 선택에 길잡이가 되고자 했습니다. 

 

또한 2016총선넷에 소속된 단체들에게서 제안 받은 좋은 정책들을 38개 약속과제로 선별하고, 유권자위원회와 온라인폴을 통해 ‘Best10공약’을 선정해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약속받는 활동도 진행했습니다. 시민들은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과 성역없는 진상규명 보장’, ‘역사교과서 국정화 폐지’, ‘테러방지법 폐기’들의 정책이 20대 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직접 시민들의 심판을 촉구하며 낙선운동을 시작했습니다.
2016총선넷과 시민들의 기대와 달리 각 정당의 공천은 상향식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고, 민주적인 이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권력자와 친소관계로 공천이 좌우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거나, 부정부패에 연루되었거나, 민생정책을 역행한 책임자들이 다수 공천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2016총선넷은 2차 심판운동인 낙선운동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기초로 각 부문과 단체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예비명단을 만들고 4월 2일 유권자위원회의 투표와 사흘에 걸쳐 온라인유권자위원회의 온라인폴을 통해 35명의 집중낙선대상자와 ‘Worst10’ 후보자를 선정했습니다. 4월 6일 그 결과를 공개하고 ‘낙선투어’를 조직하여 각 후보자들의 선거 사무실을 찾아가 직접 낙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습니다. 서울과 인천, 수원과 멀리 경주와 춘천까지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될 후보자들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낙선되어야 할 이유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시민들께 투표로 심판해 주실 것을 촉구했습니다.

 

2016총선넷은 국가기관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을 감시하는 캠페인도 진행했습니다. 공문과 면담을 통해 국가정보원과 선거관리위원회, 국방부, 검찰에 엄정한 중립을 촉구하고, 감시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2016총선넷은 노골적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있는 대통령과 노동부장관을 선관위에 신고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촉구했습니다. 

 

‘기억’과 ‘심판’은 시민과 유권자의 권리입니다.
지난 8일과 9일 사전투표가 진행되었고, 4월 13일에는 본 투표가 진행됩니다. 이제 심판의 시간입니다. 2016총선넷은 ‘민주주의’와 ‘민생’, ‘평화’의 위기를 극복하고 최소한의 ‘희망’을 만들기 위해 활동했습니다. 지난 4년의 국회의 활동을 평가해보고 그 동안의 행적과 언행을 종합해보면 어떤 정당과 어떤 후보자가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는지 또는 훼손해 왔는지 너무도 분명합니다. 또한 어떤 정당과 후보자가 민생과 경제를 살릴지, 평화를 누가 지킬 수 있는지도 현명한 유권자인 시민들은 알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아직까지 후보자와 정당을 결정하지 못했다면 2016총선넷이 제공하는 후보자정보제공싸이트인 ‘3분총선(www.vote0413.net)에 접속해 그 후보자의 이력과 활동을 확인하십시오. 최소한 누구를 찍어서는 안 되는지 나침반이 되어 줄 것입니다. 또한‘기억’과 ‘심판’은 이 땅의 주인으로 살고자하는 시민들과 유권자의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권리이자 의무인 투표권을 행사합시다.

 

‘후보자’와 ‘정당’이 아니라 ‘희망’에 투표합시다. 
시민들과 유권자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일부 기득권 정치인들과 일부 언론들은 정치 혐오를 부추기며, 유권자들의 투표 포기를 은근슬쩍 바라고 있습니다. 정치에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꿔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이유는 더 많은 시민과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한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투표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투표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위해 투표하지 맙시다. 선거철에만 표를 달라는 사람들과 정당에 투표하지 맙시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 민생, 평화를 위해 투표합시다. 이 땅의 주권자이자 유권자로서 우리 스스로를 위해, 우리 모두 ‘희망’에 투표합시다.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 민생, 평화를 위해 투표합시다 !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투표합시다 !
우리는 모두‘희망’에 투표합시다 ! 

 

2016년 4월 11일
2016 총선시민네트워크

 

 

[4/11 전국동시다발 투표참여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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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넷 페이스북 페이지에 인증샷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아래 이미지를 다운받으셔서 피켓으로 쓰시면 됩니다(첨부파일 확인)

a3_세월호.jpg

 

 

월, 2016/04/1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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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이란 상대적으로 낙후된 기존 도시에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여 경제적, 사회적 동반 성장을 도모하는 사업을 말합니다. 카드뉴스로 한국의 도시재생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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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7/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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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은 내 나는 박근혜 정부야말로 부검 대상!

죽음의 정치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는 폭력을 독점한다. 그러기에 국가는 죽음의 정치를 벌인다. 국가는 사람을 죽이고 또 살린다. 북한 붕괴론을 암시하며 공멸의 위험도 불사하려는 대통령의 국군의 날 기념사나, 주변의 군사적 긴장을 극단으로 몰고 갈 사드의 배치, 지진대 위에 자리한 핵발전소 등은 이를 대변한다.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하라고 국민을 강박하는 것은 국가 혹은 언제나 그의 이름을 차용할 권리를 확보한 정부다. 국가에 국민의 삶과 죽음은 절대 가치가 아니라 절대 수단이다. 살림을 볼모로 국민을 겁박하며 죽임을 핑계로 국민 위에 군림한다. 그것이 국가가 독점하는 폭력의 실체다.

 

고(故)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둘러싼 논란은 이런 죽음의 정치를 재차 되살린다. 박근혜 정부에 항의하는 민중 총궐기가 있었고, 경찰은 이를 대공비 작전을 펼치듯 강제 진압하였고, 이 과정에서 고인은 경찰의 직사 살수에 타격받아 사망하였다. 사실은 이렇게 명료하다.

 

하지만, 세간의 이목은 엉뚱한 곳으로 이끌린다. 한 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이 궤변이나 다름 없는 이유를 대어가며 내린 병사 판정 때문이다. 민중 총궐기와 그것이 비판하고자 한 정부의 실정과 그것을 강제 진압했던 경찰의 폭력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한 생명이 아니라, 참 구질구질하게 만들어진 그 사망 진단서가 대중의 관심을 호도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망 진단서는 의사의 전문성보다는 국가의 생체 권력이 앞서는 영역이다. 무엇을 사망으로 간주하며 무엇을 그 원인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뿐 아니라 죽음 자체를 원인과 결과라는 인과 관계의 틀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까지 그 모두가 의학에 선행하는 국가법의 영역인 것이다. 그러기에 '외인사'는 국가 폭력의 결정체인 수사권이 발동되는 예후가 되며, '병사'는 이제 장례와 애도가 허용된다는 국가의 처분이나 다름 없다. 죽음에 관한 신의 영역을 국가가 가로채고 나선 것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가 국가 형벌권의 대상이 되어 버린 오빠(혹은 삼촌)의 주검을 두고 번민하여야 했었던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다.

 

법의학은 의학이기 이전에 법학이자, 동시에 세심한 통치술의 한 부분일 뿐이다.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왜?"라는 법적 인과 관계로 환원해 버리는 것이 이 법의학의 이데올로기다. 거기서는 어떻게 죽었는가는 묻지 않는다. 쌀값 인상의 공약을 저버린 대통령의 식언에 항의하다, 불법적인 차벽을 앞세운 국가 폭력에 저항하다, 혹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는 자신의 기본권을 행사하다 과잉 경비에 나선 경찰의 살수차에 피격되어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심폐 정지와 급성신부전과 급성경막하출혈이 가장 중차대한 문제인 것처럼 가장한다. 총체적인 정책 실패와 죽임까지 불사한 국가 폭력을 대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가, 한 전문가의 자의적 사망 진단이라는 개인의 문제로 전치되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고인의 시신에 대한 부검 영장을 발부한 사태는 정확하게 그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주검을 해부함으로써 죽음을 해부하고, 그를 통해 어떻게 죽었는가의 문제를 왜 죽었는가의 문제로 대체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법원은 1차 부검 영장 신청은 기각하였다. 경찰은 검찰 지휘하에 또 영장을 신청하였다. 그러자 법원은 추가 소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약간의 어색함을 다스리고는 곧장 전대미문의 조건부 부검 영장이라는 것을 발부했다. 부검 장소와 부검 절차, 참관인 등을 유족과 협의해서 정하고 부검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하라는 조건이 달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영장 발부 행위는 그 자체 심각한 하자를 가진다.

 

우선, 부검 영장의 발부 요건이 어떻게 충족되었는가가 의문스럽다. 부검은 언제나 필요한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고인과 그 유족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기존의 증거나 자료들에 의해 외인사라는 점이 충분히 입증될 수 있으면 부검이라는 추가적인 강제 수사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역으로 부검을 실시하려면 외인사가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어야 한다. 즉 경찰-검찰이 기존의 증거에 대하여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증거나 소명을 제시했어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병사"로 기재된 사망 진단서에도 불구하고 제1차 결정에서는 영장 청구를 기각하였다. 법원은 이미 "진료 기록 내역을 압수해 조사하는 것을 넘어 사체에 대한 압수 및 검증까지 허용하는 것은 필요성과 상당성(타당성)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 진료 기록만으로 외인사임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으며 그 사실을 뒤엎을 만한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는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 결정에서는 자료 보완을 요구한(사실 보완 요구 자체도 이례적인 것이다) 후 기다렸다는 듯이 부검 영장을 발부하였다. 사실 관계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이 부분에서 되려 우리가 법관의 판단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법관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검찰-경찰이 어떤 용빼는 재주가 있어 순식간에 법관의 판단까지 바꿀 만큼 그렇게 중대한 자료를 만들어 소명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둘째, 이 부검 영장은 가해자에게 증거를 찾아내도록 한다. 주지하듯 경찰은 살수차 운용 경관에서부터 당시 현장지휘부, 그리고 전현직 경찰총수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이 사건의 폭력성을 부인해 왔다. 살수도 지침대로 했고 지휘도 제대로 이루어졌으며, 민중 총궐기에 대한 집회 관리도 전혀 잘못된 것이 털끝만큼도 없다는 것이 경찰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래서 경찰은 내부적인 감찰도 중단하고 검찰은 검찰대로 수사에 손을 놓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나 자료, 증언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한통속이 되어 자신들의 결백을 강변한다.

 

여기에 정부‧여당까지 나아가 보수 논객들까지 편들고 나선다. 설상가상격으로 부검을 담당하게 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의조차 부검이 필요하다고 공식 선언을 하였다. 누가 봐도 외인사인 것을, 누가 봐도 직사 살수에 의한 죽임인 것을, 그 부검의들은 한 목소리로 아니라고 하면서 가해자인 경찰의 편을 들고 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부검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장담하지 못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경찰에게 부검을 맡길 때 그 부검의 결과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 절차에서는 그 어떠한 정의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도 저 법관은 가해자인 경찰과 그의 한 손인 부검의에게 고인의 시신을 맡겨 버렸다.

 

셋째, 이 과정에서 사망의 이유와 원인이 교착되어 버린다. 고인의 사망에 이른 일련의 과정은 철저하게 정치적이다. 물론 살수차 운용 경관과 그 현장 지휘부, 경찰 총수까지 그 행위에 합당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차벽과 살수차, 막대한 경찰력 등의 폭력을 동원하여 국민의 입과 귀를 막게끔 지시한 통치권력과 그에 부종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책임추궁이다. 혹은 우리의 삶을 이토록 옥죄고도 우리들을 "개돼지"라고 명명하기에 스스럼이 없는 일단의 지배 세력들에게 이 세상은 국민이 주인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경찰이 부검의 논란을 일으킨 것은 경찰관 몇 명의 문책을 피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 사건이 이렇게 정치화되어 현 정치 권력에 대한 책임 추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 두려울 따름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민중총궐기의 정치를 부검의 정치로 되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검 영장을 발부한 법관은, 그리고 그가 속한 이 땅의 사법부는 이런 정치적 소명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지나치게 법에 충실함으로써 스스로가 또 다른 아이히만이 되기를 자처한다. 사법관의 지배(juristo-cracy)라는 것은 이렇게 발생한다. 정치의 문제를 법의 문제로 환원한 채 모든 것을 경직된 법교리 속에 매달아버리는, 저 권위주의 체제가 행사하던 탈정치화의 패악이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는 죽음과 주검까지도 철저하게 도구화하고 통치의 수단으로 삼는 그 엄청난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 "망자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정희진의 질문은 이 지점에서 아주 적절해진다. 고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다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의 생명을 앗아간 것은 국가이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의 귓전을 울려 퍼진다. 그의 죽음과 그의 함성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는 '망자의 몸'을 부검이라는 이름으로 탈취하고자 온갖 힘을 다한다. 그의 몸에 부착된 그의 목소리를 떼어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의 함성이 부검의의 칼날에 갈가리 헤쳐져 우리의 귀에까지 와 닿지 못하게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저 법관의 영장 발부 결정은 너무도 무모해진다. 이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렇게 저렇게 붙인 조건들 때문에 가뜩이나 빗나간 문제의 해결 고리조차도 더 어지럽게 만들어 버렸다. 부검 영장의 경우 집행장이 아니라 허가장의 성격을 가지는 것인 만큼, 그가 힘을 실어 제시한 조건들은 영장의 중요 부분으로 그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영장 자체가 효력을 상실하여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법리는 사족처럼 초라하다. 고인의 사망은 누가 보더라도 물대포의 타격에 의한 외인사이며, 그 배경에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적대하며 전투적으로 지워버리고자 하는 폭력적인 정권이 존재함 또한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부검 영장을 발부하는 법관의 치졸한 법리로는 도저히 가리지 못하는 그 엄중한 우리들의 정치가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검 영장이 진정으로 가리켜야 하는 곳은 따로 있게 된다.

 

그것은 고인의 시신이 아니라, 이 땅에서 처절하게 죽임을 당한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의 시신과 벌써 부패의 썩은 냄새를 풍기는 이 땅의 통치 권력이 죽여버린 민주주의의 시신이다. 백남기 특검법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은 그래서 의미 있어 보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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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금, 2016/10/0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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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전국적으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정부는 집회를 주최한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광우병대책회의와 소속단체 및 활동가들에게 집회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란 세월이 흐른 2016년 8월 19일에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결과는 1심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패소. 아직 정부는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5억 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할 위험에서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인 김선휴 변호사가 이번 2심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짚어봅니다. 

 

집회의 자유와 민주주의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이제 그만

[광장에 나온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3나72574 손해배상(기)  (재판장 김상환 판사 이영창 판사 조찬영 )

 

김선휴

김선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변호사)

 

2008년 촛불집회를 기억하십니까

 

"2008. 5. 2.부터 2008. 8. 15.까지(10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2398회 이상 개최되었고, 참가 연인원도 93만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지난 8월 16일 선고된 서울고등법원 2013나72574 판결문에 등장하는 사실관계다. 짧은 두 줄에서도 2008년의 촛불집회가 광범위하고 폭발적이었던 역사의 한 장이었음이 느껴진다. 수십만 명의 시민들은 당시 촛불집회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지니고 있을 듯하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도 몇 차례 촛불집회에 참여했었다. 뉴스 댓글마다 여러 집회 일정들이 넘쳐났고, 누가 선동하거나 조직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곳곳에서 모여 촛불을 들었다. 집회의 주최자가 누구인지, 누가 집회신고를 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화문 등 규모가 큰 집회 현장에는 무대 차량이나 진행자가 있었지만, 시민들은 주최 측의 진행과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며 즉석 공연을 하였고, 스스로 만든 손팻말과 유인물을 나눠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처럼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행동했던 많은 시민들을 주최자에게 구속되어 그들의 지휘·선동에 따라 움직이는 '객체'로 전락시키려 했다. 일부 참여자의 폭력행위로 발생한 손해 책임을 집회 주최자에게 묻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최자가 참여자들의 행동을 지시하고 통제한다고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시민들의 모임, 그것이 집회의 본질

 

이번 판결은 정부 측의 그와 같은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피고들이 이 사건 집회·시위의 시간·장소 등을 제안하고 일부 장비를 준비하며 사회를 보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들이 이 사건 집회·시위의 발생부터 진행, 소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지배하였다거나, 참가자가 피고들의 지휘·선동에 따라 이 사건 집회·시위에 참가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특정 단체가 소속 구성원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개최하는 집회들도 존재한다. 그런 집회라 하더라도 일부 구성원의 일탈 행위에 대해 주최자나 단체 대표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자기책임원칙에 비추어 매우 엄격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물며 2008년의 촛불집회는 말할 것도 없다. 조직되고 통일적인 단일체가 아니라 다원적이고 자발적이며 큰 틀에서 동의를 이룬 개개인들의 모임으로서의 집회였기 때문이다. 판결은 그것이 바로 이 사건 집회의 특징이자 집회의 본질임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였다.

 

"집회·시위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공통의 의견이나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다양한 사람이 특정 장소에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이 집회·시위의 본질이자 현실적인 모습이다."

 

평화 집회를 원하는 다수를 보호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처럼 2008년 촛불집회의 특징에 비추어볼 때,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개별 참가자들의 폭력행위를 지휘하거나 선동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한 주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2심 소송에서 '과실에 의한 방조' 책임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즉 주최자가 집회참가자의 폭력행위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질서유지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폭력행위가 이루어지도록 돕거나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구체적 증거들을 통해 광우병대책회의가 평화적 집회를 계획하였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던 점들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집회주최자에게 인정되는 '질서유지의무'의 내용을 설명하며 주최자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집회·시위 주최자가 마치 공권력이나 경찰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것처럼 집회·시위 참자가의 폭력행위를 미리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거나, 폭력시위자를 적극적으로 제지하고 억압하여 완전무결한 집회·시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정도의 질서유지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때 집회에서 발생하는 일부 위법적인 행위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국민은 집회 외부의 국민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다수 집회참가자들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수의 일탈행위를 방지하여 평화적 집회를 보장할 책임은 당연히 경찰행정상 집회관리의무에 속한다.

 

그 점을 이번 판결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집회·시위 과정에서 일부 소수 참가자가 폭력·불법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사실상 예견할 수 있더라도, 집회·시위 자체가 집단적인 폭력·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다수의 기본권행사는 보호되어야 한다. 소수의 폭력·불법행위가 사실상 예견된다는 사정만으로 평화적 집회·시위의 기회가 처음부터 박탈된다면, 폭력적인 소수가 자신들뿐만 아니라 평화적 참가자의 기본권행사 여부를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 집회를 계획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 주최자에게 질서유지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정부에게, 과연 공권력은 본래 자신의 책임인 평화집회 보장의 의무와 책임은 다하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과도한 통행제한, 인권침해적인 과잉진압이 국가인권위에 의해 인정된 바 있다.

 

여전히 정부는 평화적으로 진행하려는 집회를 과잉통제하고 일부의 일탈행위를 이유로 전체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엄단을 선포하면서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다수의 기본권행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번 판결의 내용이 경찰에 의해 존중되기를 바란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

 

이 사건의 1심 판결에서 반복하여 등장한 표현이 있다. '증거는 수집되지 아니하거나 그 증거가 극히 미미하다', '아무런 주장·증명이 없다', '증거가 부족하다'와 같은 표현들이다. 2심인 이 사건 판결에서도 역시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 인정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증명이 필요하나 (...) 증명이 부족하다'는 등의 표현이 반복된다. 

 

이러한 판결의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집회 주최자에게 제3자의 행위로 인한 피해의 책임을 물으면서, 일단 구체적인 피해의 주장이나 증명부터가 너무 부족하고, 이를 주최자에게 책임 지우기 위한 여러 인과관계들에 대한 증명의 노력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청구한 피해 중에는 출동하려고 방패를 꺼내다 너무 세게 잡아당겨 자신의 방패에 부딪힌 경찰의 타박상, 경찰이 시위대에게 발사한 물대포를 전투경찰이 맞아서 입은 피해, 장소와 경위가 전혀 특정되지 않은 채 분실하거나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방패, 군화, 이불, 카트, 아이스박스, 우산, 보온물통 등까지 포함되어 있다.

 

과연 정부의 소송이 모든 피해와 주최자의 과실을 입증하고 시민단체나 활동가들로부터 5억 원의 배상을 받아내 정부의 손해를 보전하기 위함이었는지 그 목적이 의심스러워짐은 당연하다. 손해를 배상받겠다는 표면적인 목적 뒤에 숨은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이 사건 판결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폭력시위자뿐만 아니라 집회·시위 주최자에 대해서까지 손해배상책임을 확대한다면, 집회·시위 주최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안게 된다. 이로 인해 사회·정치현상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소수집단은 집회·시위를 주최하는 데 큰 부담을 갖게 되고, 종국적으로 소수집단의 구성원은 집단적 의견표명을 통해 공론의 장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정부의 이 소송이 "공공영역에 대한 비판적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행위"(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흔히 말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의 전형에 해당함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소송으로 인한 비용, 시간, 정신적 부담을 부과함으로써 공공 영역에서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을 위축시키기 위한 소송인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정원, 청와대 등 정부기관이나 고위공직자들이 언론인, 시민단체, 정치인, 인터넷에 글을 올린 누리꾼들에 대해서까지도 빈번하게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고소하거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상당수가 무혐의나 고소취소, 손해배상책임 없음의 결과로 이어져 전략적 봉쇄소송의 남용을 보여주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는 박근혜정부의 국민입막음 사례 22선 http://goo.gl/uYQWKF 참조). 이와 같은 소송은 당사자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발언과 표현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미국 여러 주에서는 이처럼 법적, 사실적 근거 없이 제기된 전략적 봉쇄소송을 각하나 약식판결을 통해 소송절차를 조기에 종료시켜 피고들을 소송으로 인한 부담에서 빨리 벗어나게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같은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1심과 2심에 걸쳐 무려 8년 동안 소송절차가 진행된 것은, 피고들이 불합리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법원이 현 제도 아래에서 가능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것이어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부의 주장과 증명이 법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매우 부족하고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로 제기되었음이 충분히 드러남에도 말이다. 이미 광우병대책회의 소속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억 원의 배상책임의 불안함 속에서 8년 넘게 고통받았다. 정부의 목적은 패소결과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달성된 것이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피고는 소송에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대법원이 최근 전략적 봉쇄소송의 요건과 규제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집회의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가져오는 침해의 심각성을 대법원도 인지한 것일까. 너무 늦게 내려진 이번 판결과 달리 앞으로는 부디 전략적 봉쇄소송이 더 빨리 봉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일, 2016/09/0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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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의미를 짚었다. 최 교수는 탄핵 이후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점진적 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email protected]
2017년 03월 24일 금요일 제496호

최근 출간된 책 <양손잡이 민주주의>에서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016년 촛불집회와 국회 탄핵 가결의 의미를 ‘박정희 패러다임의 붕괴’로 정의했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무엇이고, 그것이 붕괴되었다는 것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최 교수와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의 140쪽 분량 대담을, 박상훈 학교장이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했다.

박상훈(박):박정희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최장집(최):박정희식 국가 운영 모델을 가리킨다. 과거 권위주의 시기뿐만 아니라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사회의 모든 영역, 모든 수준에서 헤게모니를 지녔던 국가의 운영 원리이자 사회의 지배적인 가치였다.

박:형식적으로 민주화되었지만, 내용적으로 권위주의 시대 국가 운영 원리가 지속되었다?

:바로 그 점이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의 효과가 왜 제한적이었는가를 설명해준다. 민주화를 통해 정치체제가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 시대로부터 사회경제적·이념적 자원을 독점한 보수 정당이 압도적 영향력을 가졌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개혁 성향의 야당들은 그런 패권적 정당에 대한 항의와 비판에 의지해 선거에서 경쟁자 구실을 했을 뿐이다.

ⓒ시사IN 윤무영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대통령 탄핵이 단지 정권교체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박:박정희 패러다임은 어떤 구조를 갖는 것이었나?

:지배적인 엘리트 집단들이 일괴암(一塊巖)처럼 결합되어 움직이는 구조이며, 그중에서도 중핵은 국가의 관료 엘리트와 재벌 대기업 집단 간의 동맹이다. 이 힘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집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벌 위주의 관치 경제, 노동 배제, 반공 내지 반북주의라는 이념적 힘 혹은 사회적 가치들은 이 동맹 관계를 기반으로 재생산돼왔다. 그 결과 현대 세계에서 보편적 이념이라 할 자유주의를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고, 다원주의적 사회구조를 발전시킬 수 없도록 만들었다. 민주주의의 사회경제적 기반, 이념적 폭이 넓은 정당체계의 발전도 저해했다.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단지 정권교체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담는 표현이 ‘박정희 패러다임의 붕괴’로 이해된다.

:박근혜 정부의 붕괴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민주화에 이어 두 번째 맞이하는 정치적 대전환점이라고 본다. 예기치 않게 다가온 구질서의 치명적 약화 내지 해체로 넓게 열린 공간이 생겼다. 이 공간이 밖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응하고 안으로는 민주주의 가치와 원리에 부응하는 정치 질서를 창출할 기회가 될 것인지, 아니면 구질서를 다른 형태로 복원하게 될 것인지는 향후 정치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박: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간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최:야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런 다음은 무엇인가? 그들이 어떻게 국가를 운영하고 어떤 어젠다를 설정하고, 행정관료 체제를 지휘해 어떻게 자신들의 개혁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는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과거 야당은 두 번이나 집권했지만,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무엇을 뚜렷하게 남긴 것이 없다. 이 점이야말로 다음번 정부가 되고자 하는 야당으로서는 넘어서야 할 가장 중요한 도전이다.

ⓒ시사IN 윤무영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가 내용적으로 권위주의 체제였다”라고 말했다.

 

박:박정희 패러다임이 복원될 수도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비극일 것이다. 과거와 같이 ‘박정희식 발전국가’가 주도하는 제조업 발전, 수출 중심 경제성장과 경제운영 방식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냉전 시기의 반공주의 같은 폐쇄적 사고와 이념은 자유주의적 가치와 개방적 사고, 시장 개방과 자유무역이라는 세계적 환경에 기능적으로 잘 부응할 수도 없다. 그런 이념적 경직성과 폐쇄성, 관료주의에 따른 위계주의와 획일성은 새로운 시대의 기업 환경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국가·재벌 동맹’은 두 파트너 모두에게 부정적인 결과만 낳고 있다. 국가·재벌 동맹은,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기업을 성장시키는 어려운 방법이 아니라 국가의 비호와 지원으로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쉬운 방법을 보장해주지만, 그 대가로 공식·비공식으로 재정적 자원을 약탈당한다는 점에서 엄청난 손실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한국 재벌 대기업의 기업 구조와 운영 방식은 여전히 전근대적이고 퇴행적이며, 결국 한국 경제를 깊은 수렁으로 이끈다.

박:국가·재벌 동맹의 다른 짝은 노동배제적 발전 모델이 아닐까?

:그 둘은 같은 현상의 다른 얼굴이다. 박정희 모델에서 국가·재벌 동맹과 짝을 이루는 것은, 조직 노동자들이 기업 수준에서, 그리고 국가 수준에서 집단적 행위자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거나, 여러 형태의 정치적·법적 수단을 통해 억압하는 것이다. 노동운동에 대한 이런 제약은 국가·재벌 동맹의 분리·해체와 병행해 제거되지 않으면 안 된다.박:노동자들에게 더 폭넓은 시민권을 허용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그래야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고용주나 경영 측과 대등한 노사 관계를 만들고 민주적으로 운영할 조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그럴 때 모든 고용주와 피고용자 간의 불평등하고 권위주의적이며 위계적인 갑을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출발점이 마련된다. 나아가 타자에 대한 존중, 인간적 존엄성의 구현을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으로서 노동을 배제한 채 ‘일에 대한 헌신’이 발휘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박정희 패러다임 붕괴 이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향후 대안적 발전 모델을 구축하는 것을 둘러싸고 한국 정당정치가 어떻게 재편되어야 한다고 보는가?

:우선 보수의 영역부터 말한다면, 기존 냉전적이고 반공적인 보수가 아닌 좀 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보수가 주도권을 잡는 것이 필요하다. 개혁적인 야당은 과거와 같은 ‘민주 대 반민주’의 양극화된 담론을 버리고 자유주의의 정치 공간을 개척해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왼쪽에 사회민주주의적 진보 정당 역할이 열렸으면 한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자유주의라는 말로 강조하고자 한 것은, 한국의 재벌들이 국가 관료와 동맹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자립적인 부르주아지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로서는 기업이 행위하는 틀 내지 구조로서 ‘온건하게 규제된’, 자율적이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형성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끝으로 노조와 노동운동을 인정해 민주적 노사 관계의 틀 안으로 통합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다음 정부에서 정치적 경합의 구조는 바로 이런 실질적 문제를 두고 다투는 합리적이고 다원주의적인 정당들로 채워졌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보다는 의회와 정당이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점진적 변화가 지속되기를 희망한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붕괴되었지만, 어떤 대안적 발전 모델과 사회운용 원리가 자리 잡게 될지는 정당들의 구실에 따라 달라질 것인데, 이제 막 그 길고 힘든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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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3/2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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