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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권력지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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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권력지도 1

익명 (미확인) | 화, 2018/05/15- 13:53

사단법인 다른백년은 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연구소와 함께 오는 5월 18일(금) 저녁 7시 고려대학교 정경관에서 백년포럼을 개최합니다.

사단법인 다른백년은 ‘대한민국 권력지도’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사회권력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권력지도’ 프로젝트의 중간발표 형식으로 개최되는 이번 백년포럼에서는 제7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한민국 권력지도1 – 누가 기초지방자치단체를 지배하는가”라는 주제로 진행합니다.

궁금하신 내용은 전화(02-3274-0100)나 이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문의하여 주십시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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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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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 이름 참 깁니다. ^^

줄여서 '수미네'라고 하지요.

 

지난해 말부터 화성행궁 광장앞에 지어지는

수원시 최초의 공공미술관 명칭을 공공미술관 답게 제정하자는

의미있는 주장을 해왔으나....

이름은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에서 한글자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수원시의회에서 관련 조례를 통과시킬 때

분명히 '조속한 시일내에 현대산업개발과 명칭협의를 하라'는 조건이 있었는데

당췌 진행되는게 없네요.

 

날도 더운데 열불나지만!!!

 

시원한 맥주한잔과 그동안 수미네 활동을 돌아볼 수 있는 활동영상을

함께 보면서 더 재미난 작당모의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이쿠,

벌써 오마이뉴스 기사도 나왔네요. ^^

 

[오마이뉴스] 수미네가 맥주파티와 '작당 모의'를 하는 이유는?

 

8월 7일 금요일, 저녁 7시

문화상회 다담에서

단돈 만원에 모십니당!!

 

* 아래 '공감' 버튼, 페이스북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화, 2015/08/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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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뛰어넘을 것입니다. 동교동도 친노도 뛰어넘을 것입니다. 친문도 비문도 뛰어넘을 것입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권도전을 선언했다. ‘불펜투수로 몸을 풀고 있겠다’, ‘기회가 있으면 슛을 쏘겠다’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지난달 31일 밤 11시42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그는 “김대중 노무현의 못 다 이룬 역사를 완성하고자 노력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언론의 질문공세에 아직은 “연말연초까지 기다려보라”고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지만 이미 대권 도전은 기정사실화된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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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의 잠재적 대권후보였던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지난달 말, 처음으로 대권도전의사를 밝혔다. 그의 지지자들에겐 막연한 기대감이 현실적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안 지사 자신에게는 그런 현실을 구체적 비전으로 보여줘야 할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사진 출처: http://www.cc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977889)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안 지사와 김부겸 의원을 두고 “두 분이 희망”이라고 말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차기 대권주자를 묻는 조사에서는 안 지사가 포함되기 시작하자 안 지사의 지지율만큼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의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아직은 그저 문재인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많다. 야권의 총선 승리로 문재인 대세론이 굳혀지면서 다른 대선주자들의 입지가 좁아진 탓이다. 50대 초반의 나이이므로 ‘차기’가 아니라 ‘차차기’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박정희 유겐트에서 운동권 고등학생으로

안희정 지사는 스스로 충남 논산 출신의 ‘촌놈’이라고 말한다. 철물점집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골목대장을 도맡아 했다. 아버지는 박정희의 ‘정희(正熙)’ 두 글자를 뒤집어 그에게 ‘희정(熙正)’이란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는 유년시절을 ‘박정희 유겐트’(히틀러의 소년 친위대 ‘히틀러유겐트’에 빗댄 말)’로 보냈다고 한다. 육사에 진학해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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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지사의 부친은 박정희를 흠모했다. 이런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랐는데도 안 지사는 어릴 적부터 제적과 자퇴를 감행하는 운동권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안 지사의 어릴 적 모습. (사진 출처: http://m.raythep.com/PoliticsInside/IndepthAnalysis/View/3066)

그러나 중3 때 야당 성향의 선생님을 만났고 고교 때는 <러시아 혁명사>를 탐독하면서 ‘혁명을 꿈꾸는 학생’으로 바뀌게 된다.

남대전고 입학 6개월 만에 제적을 당한다. 5·18 광주민주화항쟁에 관여됐다는 이유였다. 당시 그는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맡고 있었는데 불량청소년들을 삼청교육대에 보내야 하니 명단을 만들라는 지시를 거부하고 계엄사에 끌려갔던 것이 원인이었다.

부모님의 강권으로 서울 성남고에 재입학했지만 다시 자퇴한다. 학생운동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대입 검정고시를 치러 합격하는 독특한 학생이었다. 결국 소원대로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해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한다.

노무현과의 만남

지금은 가장 ‘핫’한 대선주자 중 한 명이 됐지만, 충남지사 이전 그의 정치인생은 순탄치 못했다. 1989년 김덕룡 의원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3당 합당을 거부하고 꼬마민주당에 남으면서 현실 정치에 대해 회의를 느끼게 된다.

한때 정치계를 떠나 출판사의 ‘무협지’ 영업부장으로 전국을 떠돌기도 했다.

1994년 노무현이 이끄는 지방자치실무연구소에 합류한 것은 그의 인생 역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순간’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합류를 권유한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만나 “한 번 끝까지 가보자”고 맹세했다.

안 지사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일등공신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안 지사를 ‘정치적 동업자’라고까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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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안희정, 이광재의 관계는 정치인과 참모의 이상적인 관계를 상징한다. 참여정부의 탄생은 이들 3인의 의기투합에서 시작됐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우광재, 좌희정’으로 불렸지만, 이광재는 꽃길을, 안희정은 감옥을 가야 했다. 2003년 12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 전 질문에 답하는 안희정 (오른쪽 사진, 사진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58917)

하지만 불법 대선자금의 책임을 짊어지고 그는 감옥으로 간다. 참여정부 내내 아무런 공직도 맡지 못했다. 대선 패배로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을 지켜봐야 했던 그는 스스로를 포함한 친노 진영을 ‘폐족’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이듬해 18대 총선에서도 불법 정치자금 수수 전력 때문에 공천심사대상에서 배재된다. 그럼에도 그는 깨끗이 승복했다. 대신 그해 최고위원 경선에서 당선돼 재기한다.

‘분노의 정치’에서 ‘통합의 정치’로 진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2009년 경남 양산 재선거에서 송인배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며 그는 투표로 ‘복수’하자는 말을 서슴없이 꺼냈다.

“노무현 대통령을 평생 모셔왔던 안희정 입장에서 제가 심판해달라고 이야기하면, 그건 뭐라고 들리십니까? ‘아, 저놈들 억울하게 죽은 자기네 대장의 복수해달란 이야기구나’ 이렇게 듣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그래서 그 말에 대해서 굳이 다른 표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가 충남지사에까지 오르는데 그 ‘분노’가 한 동력이 됐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7년이 흐른 지금 그의 태도는 ‘분노’에서 사뭇 비껴나 있다. 페이스북 대권도전 선언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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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의 정치는 분노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보수기득권세력에 밀려 극단적 선택을 했던 노무현은 그 분노의 진원지였다. 그러나 이후 안희정은 그 분노를 넘어 다른 세력과 사람을 품는 통합의 정치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분노에서 통합으로 가는 길의 진정성과 깊이를 어떻게 평가받는지에 따라 안희정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국민 통합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 분들을 사랑하는 일이 타인을 미워하는 일이 된다면 그것은 그 분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세도 아니며 스승을 뛰어넘어야 하는 후예의 자세도 아닐 것입니다. (중략) 나아가 나는 근현대사 백여 년의 그 치욕과 눈물의 역사를 뛰어넘을 것입니다. 그 역사 속에 전봉준도 이승만도 박정희도 김구도 조봉암도 김대중도 김영삼도 노무현도 있었습니다.”

동교동, 친문, 비문의 차원이 아니라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갑작스런 것은 아니다. 현실 정치를 헤쳐가면서 자연스럽게 ‘분노’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체득을 해 나간 듯하다.

그의 페이스북 메인 이미지에는 “겸손은 모욕을 용서하는 것”이라는 문구가 써 있다. 감명 깊게 읽었다는 <사막의 지혜>라는 책에 나오는 문구다.

안 지사는 이 책에 대한 독후감에서 “도지사 역할 중 상당 부분은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마주하는 일”이라며 “그 분들의 아픔을 온전히 살펴드리기 위해선 내 마음속 안식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2013년 내놓은 저서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에서도 안 지사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의 역대 대통령에 대해 덩샤오핑의 마오쩌둥에 대한 평가를 사례로 들며 ‘공칠과삼(功七過三)’ 정도는 인정하는 합리성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2014년 안철수 의원이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직에서 사퇴했을 때 “안철수 대표는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갖던 세력이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큰 공을 세웠다”고 옹호하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스스로의 삶에서도 적지 않은 고충을 겪었을 터다.

2011년 현충일 기념 중도일보 기고에서 그는 “아버님은 6.25 참전용사이고 장인어른은 6.25 전쟁으로 북쪽에 재산을 다 놓고 오신 분”이라며 “그 분들 입장에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자 거리로 나섰던 아들이자 사위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서로 이해하고자 노력할 때 차이는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안 지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김대중·노무현 집안의 장자가 되겠다고 했다. 사람은 늘 누군가를 몹시 존경하고 그분을 따라 배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거기에 갇혀 있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걸 뛰어넘어서 자기 인생을 사는 거 아닌가. 그게 자연진화의 법칙이고 인생의 진실이다. 그러니까 이미 흘러가고 있는 사람에 대해 노무현이다 김대중이다, 거기에 가두어 놓으면 안 된다.

(중략) 과거와 결별해 다른 형태의 민주당, 다른 형태의 진보, 다른 형태의 보수가 되자고 제안하는 거다.”

아직은 ‘가능성의 정치인’…구체적 비전 모호

안 지사의 이런 태도는 다소 두루뭉술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정치의 중심무대에 등장했을 때 어떤 정치를 보여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안 지사는 빼어난 외모와 뛰어난 말솜씨로 진작부터 ‘대선후보감’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스스로도 광역자치단체장이지만 국가 단위의 이슈에도 열의를 보였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승전 국가’임을 선언하자는 연설을 내뿜는가 하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충남합동추모제’를 열어 7번에 걸쳐 사죄하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인간 노무현만큼이나 인간 안희정도 매력적이다. 첫 충남지사 선거에 나와서 유세활동 중에도 다른 후보들은 여러 절을 도는데 ‘스윽’ 지나다니지 못하는 성격 탓에 한 절에 쭉 머물렀다고 한다.

관용차에 지나가는 노인들을 태워 자식처럼 모셨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SBS 스페셜>에 출연해 도지사의 얼굴을 아무도 모르는 마을로 가서 ‘일일이장’이 돼 노인들과 시금털털하게 얘기를 나누고 마을 일을 도맡아 하는 모습은 많은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의 ‘철학’과 ‘호소력’에 비해 실질적으로 어떤 ‘콘텐츠’를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출마 선언이 나오자 충남도 내에서 “충남도정에 대한 고민보다 민주주의 철학과 원칙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 보인다”는 등의 언급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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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이 끊임없이 잠재적 대권후보로 인식되는 것은 충남도지사로서의 직무수행 능력이 기대 이상으로 좋기 때문이다. 전국 광역단체장 평가에서 안희정은 항상 수위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럴수록 그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자료 출처: 리얼미터)

안 지사는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도지사로서 무엇을 보여줬느냐는 질문에 ‘가로림만 조력발전소’ 얘기를 꺼낸다.

자신은 환경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발전소를 짓자는 목소리도 묵살할 수 없어 환경영향평가와 사전 타당성 조사를 엄격하게 한 뒤 결과에 승복하자고 제안했고 그대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진짜 건설하자는 쪽으로 나오면 어떡하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실제 결과는 건설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으며 모두 승복했고 그것이 바로 ‘새정치’라는 것이다.

몇몇 정책들도 눈에 띈다. 안 지사가 도입한 실시간 재정 공개 시스템은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돼 전국적으로 도입이 추진 중이기도 한다.

트레이드 마크인 ‘3농 혁신’ 역시 일정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리얼미터의 시도지사 평가에서 5개월 연속 1위를 기록 중이기도 하다.

그러나 스스로도 얘기하듯 이런 성과들이 그다지 확연하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지사를 맡은 뒤 어떤 부분에서 달라졌냐는 질문에) 가장 어려운 질문이다. 보통 이런 질문에는 ‘청계천 뚜껑을 열었다’든지 ‘(버스) 중앙차선을 했다’든지 ‘세빛둥둥섬을 했다’고 답하지 않나.”

‘새시대의 맏형’ 될까

안희정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2010년 5월24일 충청남도 강경에서 벌어진 ‘눈물의 유세’ 현장.

그는 그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이 저한테 한 자리를 줬습니까. 저한테 돈을 줬습니까. 하지만 저는 노무현이 좋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에게 충성했습니다. 노무현에게 충성하는 것은 제가 살아온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이요, 힘없고 빽 없는 이 땅의 보통사람들 어머님, 아버님에 대한 충성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새 시대의 맏형이 되고 싶었으나 구시대의 막내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노무현·김대중의 ‘장자’를 자청하는 그가 새 시대를 열어젖힐 맏형이 될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는 말한다. “목재상에 있는 많은 목재가 나중에 어떤 용도로 쓰일 지는 집을 지어봐야 안다. 시대에 따라 용도가 정해지는 것 아닌가.”

화, 2016/09/1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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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 헌법재판소에 사건이 접수된다. 다시금 헌재에 눈과 귀가 쏠린다.

헌재가 우리 사회의 주요 분기점에서 판을 흔들어 온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2013년 박한철 헌재소장(63) 취임으로 출범한 ‘5기 재판부’는 좀 더 특별하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를 맡았던 김기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생에 이런 일은 다시 없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 일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D-day는 오는 9일이다. 공이 헌재로 넘어가면, 박한철 헌재소장의 결정에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만약 이번에 헌재가 탄핵 심판까지 결정을 내리게 되면 위헌법률, 탄핵, 정당해산, 권한쟁의, 헌법소원 등 헌재가 내릴 수 있는 모든 심판에 대해 결정을 내리게 되는 헌재 사상 첫 재판부가 된다.

역사상 두 번째 탄핵의 중심인물

박한철 소장은 그 중심에 있다. 내년 1월31일로 끝나는 박 소장의 임기 자체가 탄핵안 처리의 주요 변수이기도 하다. 탄핵안 처리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과 6명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다. 박 소장이 임기가 끝나고 이어 이정미 재판관도 3월 중순에 임기가 끝나면 재판관은 7명만 남는다. 단 2명만 반대해도 탄핵심판 청구가 기각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는 셈이다.

애초에 헌법재판 가운데서도 가장 예민한 사안으로 불리는 탄핵심판이 9명 재판관 전원이 아닌 밑 빠진 상태에서 결론 나는 일은 국민들도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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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9인 재판관들. 내년 3월초까지 박한철 소장, 이정미 재판관이 임기 종료로 물러나면 7명이 남는다. 이중 6명의 탄핵인용을 이끌어내야 한다. 변수가 너무 많아 어느 쪽으로도 속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idailynews.co.kr/)

그렇다 해도 박 소장 퇴임 전 심리를 마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12월 초에 순조롭게 탄핵안이 의결된다 해도 심리할 시간이 50여일 남짓밖에 없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사상 초유의 일이란 것을 감안해도 64일이 걸렸다. 게다가 당시에는 노 전 대통령이 탄핵 사유로 지목된 사실들을 모두 인정했지만 박 대통령은 그렇지도 않다. 헌재가 검찰 수사결과를 준용할 수도 있지만 직접 사실 확인에 들어갈 경우 늘어질 가능성도 있다.

헌법재판소법은 사건을 접수한 날부터 180일 내에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벌써부터 박 대통령 임기 내에 불가능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통진당 해산…김기춘과 교감 의혹

박 소장은 민감한 시기, 어수선한 시국 속에 의혹에도 휘말렸다. 최근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발단이다.

김 전 수석은 비망록에 2014년 10월4일 수석비서관회의 중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이렇게 메모했다. ‘통진당 해산 판결-연내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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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비서실장. 한국 현대사에서 그처럼 많은 반민주적 악행을 저지른 사람이 또 있을까. 유신헌법 기초, 유서대필 조작 사건, 초원복집 사건, 노무현 탄핵소추, 그리고 박근혜정부 탄생의 주역…여기에 통진당 해산 결정 이전에 박한철 헌재소장과 내통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그를 ‘현대사의 살이있는 악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열흘쯤 지난 10월17일, 국정감사 오찬장에서 박한철 소장은 국회의원들에게 올해 안에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선고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당시 대다수가 대법원에서 이석기 통진당 의원 사건이 결론난 뒤에나 헌재의 결정이 가능하리라고 관측했지만, 헌재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인 그해 12월19일에 해산 결정을 내린다. 석연치 않다. 대법원이 결국 헌재가 정당해산의 주요 이유로 꼽았던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무죄로 판결했으니 더욱 그렇다.

만약 김기춘 전 실장이 헌재 결정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 폭발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보수정권 시국사건 주도한 공안통

박한철 소장은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2살에 인천으로 이사한 뒤 인천중학교와 제물포고를 나왔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1년 사법시험(23회·연수원 13기)에 합격했다.

1983년 부산지검 검사로 법조계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27년 동안 검사로 재직하면서 특수와 공안, 기획 분야 요직을 두루 거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독일 유학과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근무 경험도 있다.

박 소장은 2005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재직 당시 법조브로커 윤상림씨 사건 수사를 지휘하면서 보여준 ‘강골’ 면모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59건의 범죄 혐의를 밝혀내 10차례나 윤씨를 기소했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비자금 및 ‘떡값’ 수수 검사 명단을 폭로했을 때는 삼성 비자금 사건 특별수사·감찰본부장을 맡았다.

2008년 대검 공안부장 시절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미네르바 사건 등 각종 시국사건 수사를 지휘하기도 했다. 2010년 7월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검찰 조직을 떠나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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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재소장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당시, 대검 공안부장으로 있으면서 이명박정부의 공안통치를 도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진 출처: http://photoismylife.tistory.com/)

2011년 이명박 대통령 지명으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오르면서 검사·변호사 시절 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참여연대는 박 소장이 2008년 촛불집회 당시 대검 공안부장으로서 검·경·노동부 관계자가 참석한 ‘공안대책협의회’를 주재하면서 촛불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강경대응 입장을 결정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비판했다.

민주화 이후 축소·폐지 흐름을 밟아왔던 공안부에 다시 공안3과를 부활시키며 이명박 정부의 ‘공안통치’ 흐름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표현의 자유 억압 논란을 빚었던 ‘미네르바 사건’의 무리한 기소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4개월여 간 김앤장에 근무하면서 2억4500만원의 급여와 고급 승용차를 제공받아 ‘전관예우’ 논란도 벌어졌다. 사건 수임은 단 한 건도 없었고 10건의 자문만으로 받은 액수다.

특히 2007년 삼성비자금 특별수사·감찰본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던 박 소장이 퇴직 후 삼성 관련 사건들의 변호를 맡은 김앤장에 취업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는 “30년 가까운 법조 경력을 감안한 것인데 금융·경제 등의 부문과 비교하면 액수가 과도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항변했지만 뒤늦게 김앤장 근무가 “조금 후회스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박근혜가 임명…헌재의 활력 현저히 떨어져

박 소장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되고 나서도 각종 사건에서 보수적 입장을 강하게 드러내 왔다. 검찰의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그가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될 때부터 나온 우려가 현실화된 셈이다.

대표적으로 그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울광장 추모 행사 당시 광장 전체를 전경버스로 에워싸 시민 통행을 원천봉쇄한 조치에 대해 합헌 의견을 냈다.

선거 기간 동안 인터넷과 SNS를 이용한 의사표현 금지, 공직자의 주식백지신탁, ‘건전성’을 이유로 한 방송통신심의위의 표현 규제, 삼성X파일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의 처벌 등에 대해서도 모두 합헌이라는 의견을 냈다.

박 소장의 보수성도 문제지만 그가 소장으로 취임한 뒤 출범한 5기 재판부가 눈에 띄게 활력이 떨어졌고 심지어 헌재가 ‘침체’됐다는 평가도 있다.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는데, 합헌 결정 직후 국회에서 해당 법을 폐지하는 촌극을 겪기도 했다. 민주당이 추천한 김이수 재판관과 그 외 8명이 대립하는 1대 8 구도가 굳어졌고, 토론이 사라졌으며, 권력의 눈치를 지나치게 본다는 비판도 나왔다.

헌재는 박 소장 취임 이후 2년간 장기미제 사건이 줄었고 간통죄 처벌 조항에 위헌을 선고한 것 등을 업적으로 꼽았지만 ‘정치적 사법기관’이라는 헌재의 위상을 생각하면 뭔가 지나치게 ‘소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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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위헌결정은 박한철 헌재소장 내려진 가장 유의미한 결정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간통죄 위헌판결 직후 헌재 결정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박 소장이 헌재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 출신 소장이라든가, 박 소장을 비롯해 공안통 검사 출신이 2명이나 재판관에 포진해 있다는 것만으로 이런 변화는 설명하기 어렵다. 그 중심에는 박 소장이 취임하면서 비롯된 헌재 소장의 임기 문제가 있다.

박 소장은 2013년 현직 재판관으로 재직 도중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소장 지명을 받는다. 이동흡 전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 낙마하자 벌어진 일이다.

헌법 재판관의 임기는 본래 6년이고, 지금까지 헌재 소장들은 재판관 겸 소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에 임기 6년을 꼬박 채웠다.

하지만 박 소장의 경우에는 재판관 임기 2년을 이미 소화한 뒤 소장에 취임했기 때문에 4년 뒤인 2017년에는 퇴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한 번 더 소장 지명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현직 재판관들이 추후 ‘소장 지명’에 대해 신경 쓰지 않을 수밖에 없고, 이런 분위기가 헌재를 더욱 권력에 눈치 보는 집단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탄핵, 어떤 결정 내릴까

재판부가 보수화됐다고 해서 탄핵안에 대한 결론을 섣불리 예측하긴 아직 어렵다. 검찰 출신이 보수적이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 인용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상황도 다소 바뀌었다. 헌법재판소장은 국회의 임명 동의가 필요한데, 지난 4월 총선으로 여소야대 정국이 됐다. 무엇보다 촛불 민심도 변수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어느 재판관이 어떤 의견을 냈는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헌재법 개정으로 누가 탄핵 인용 의견을 냈는지, 기각 의견을 냈는지 밝혀야 한다. 대통령 지지율 4%에 200만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온 상황에서 쉽게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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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철 헌재소장은 자신을 지금의 자리에 임명해준 박근혜 대통령과 그녀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민심 사이에 끼어있다.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에 따라 한국 현대사의 물줄기가 달라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박 소장의 일화 하나가 눈에 띈다. 그는 2008년 대검 공안부장 시절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 촛불집회 현장을 27차례나 찾았다. 그런 뒤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봐야 한다’며 강경 대응에 반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강경대응을 주도했다’는 일각의 시각과는 다소 다르다. 집회 현장의 ‘유모차 부대’를 목격하고는 경찰력 투입을 늦추자고 주장해 ‘조기 진압’을 요구한 정권 핵심부의 눈 밖에 났다는 얘기도 돌았다. 실제 박 소장은 검찰 시절 고검장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서울동부지검장을 끝으로 옷을 벗었다.

이런 예를 보면 박 소장이 보수적인 성향에, 공안통이라 불려오긴 했지만 “‘수구꼴통’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헌법재판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촛불집회 당시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정당하게 처리했다. (촛불집회) 현장에서 기본권과 기본권의 충돌을 보며 무엇이 나라를 위해 바람직한지 고민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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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 실린 박한철 헌재소장의 인삿말. 헌재가 87년 헌법의 산물이라는 점을 밝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헌재 홈페이지(www.ccourt.go.kr/)의 프로필을 보면 그는 자신이 처리한 2000여 건의 사건 중 일본군 위안부 및 원폭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외교적 의무를 다하지 않은 국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던 것을 주요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는 “헌법 전문이 규정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관을 헌법현실에서 바로 세우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평한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정하고 1948년 건국을 주장하는 정권 핵심 세력들과는 다른 시각인 셈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개인적으로 박 소장은 대체로 합리적이고 소탈한 편이며, 법리에 밝은 ‘학구파’로 겸손하고 온유한 성품으로 후배 법조인들에게 신망이 두텁다고 알려져 있다. 평소 시서화와 고전에 정통해 2009년 대구지검장 시절 전출·입 직원들에게 편지와 함께 시를 e메일이나 메신저로 선물하고 회의 때마다 애창·자작시를 낭송하는 등 문학적인 면모도 보여줬다.

박 소장은 독특한 선행 이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2010년 서울동부지검장 시절 한 불교재단의 노인요양시설 건립에 보탠다며 자신이 살고 있는 9억 원대 서초동 아파트를 기부했다. 소유권을 넘겨주고 자신은 같은 집에서 다시 세들어 살고 있다.

2016년 공직자 재산공개 내역을 다시 확인해 봐도 단출하다. 아파트 전세금 2억2000만원, 1999년식 EF소나타(168만원), 본인과 배우자의 예금 13억 원을 합쳐 15억 정도다. 부동산은 없다. 전국 각지의 땅과 건물, 주식과 골프장 회원권, 귀금속과 고가의 그림 등으로 가득한 여느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사항과 달리 단 4줄이 내역의 전부다. 박 소장은 자녀가 없고, 1976년 입대해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박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왜 기부를 했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다.

“부와 명예, 지위는 잠시 맡았다가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진 것의 한 부분을 필요한 곳에 돌려 드린 겁니다. 소장 이후에는 로펌에 가지 않겠다고 청문회 때 약속했고, 퇴임 이후 최고 공직 경험자로서 사회봉사하는 방법을 찾아볼 겁니다.”

그가 소장직의 마지막을 어떻게 장식하고 ‘사회’로 돌아갈지 주목된다.

화, 2016/12/0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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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고발합시다!

국가정보원의 국민해킹에 대한 국민고발단 모집

 

신 청 : http://bit.ly/Nis-Stop-Hacking

마 감 : 2015.7.29(수) 24:00

혐 의 : “통신비밀보호법”,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고발인 : 국민고발단

피고발인 : 원세훈 전 원장부터 현재 국정원장까지 국정원의 국민해킹 책임자 및 실행자

 

[참여 호소문]

국정원 시대를 극복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해!

 

□ 우리 현대사에는 5·16 쿠데타의 2인자가 쿠데타 성공과 함께 만들었던 중앙정보부 그리고 그 뒤를 이었던 안전기획부와 지금의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국정원 등이 하룻밤 사이에 아파트 수십 동을 그리고 대규모 관광지를 개발했다가 취소했다가, 거물급 정치인들을 죽였다가 살렸다가, 줄기세포를 개발했다가 폐기했다가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들이 수없이 구전되어도, 국민들은 국정원은 “그럴 수 있다”라는 막연한 경외와 공포로 바라보아 왔을 뿐입니다. 국정원 등은 항상 국민이 모르게 일을 할 수 있었고, 간혹 국민을 해한다 하더라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행위들은 ‘공작’이었지 ‘범죄’는 아니었던 것이며, 정보전이나 대북공작의 일환으로 용납되었고 보호되었습니다. 이들이 휘둘러 왔던,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지 않는 권력은 광범위한 민주주의의 예외로 민주주의의 이상(理想)인 ‘국가와 국민의 동일성’,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이 우리사회에서는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인지 각인시켜왔습니다.

 

□ 그런데 이를 넘어 국정원은 인터넷 공간 등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국민의 생각을 조종하려 까지 했습니다. 국민의 종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존재가 자신의 주인인 국민을 조종하려 했다는 것은 국정원이 단순히 ‘민주주의의 예외’적인 존재에서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는 존재로까지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 그리고 이제 국정원은 이 조차도 넘어서서 모든 국민들을 사실상 감시대상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이탈리아 해킹 팀(Hacking Team)(이하 “해킹 팀”)으로부터 ‘RCS(Remote Control System)’(이하 “RCS”)를 구매하여 내국인을 상대로 사용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국정원은 지난 14일 “2012년 1월과 7월, 이탈리아 해킹 팀으로부터 총 20명분의 RCS를 구입하였으나 이는 연구용 혹은 해외에서 필요한 대상에 사용할 목적이었다.”고 해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해킹 팀으로부터 유출된 자료에서 드러난 아래와 같은 점에 비추어보면 국정원의 해명은 거짓해명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 국내 최대 이용자수를 자랑하는 카카오톡을 해킹하길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원했던 점

■ 갤럭시S3의 국내용 모델을 구입하여 이탈리아에 보내 ‘몰래 음성녹음하는 것이 가능한지’ 살펴달라고 주문하거나 갤럭시 신모델이 나올 때마다 이를 해킹하기 위한 업그레이드를 요구하였다는 점

■ 국내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백신프로그램인 안랩의 ‘V3 모바일 2.0’과 같은 백신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을 문의하였다는 점

■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공격을 요청하였다는 점

■ 서울대 공대 동창회 명부’라는 제목의 워드 파일,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한 천안함 보도 관련 문의 워드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요청하였다는 점

■ △네이버 맛집 소개 블로그 △벚꽃축제를 다룬 블로그 △삼성 업데이트 사이트 등 내국인들이 주로 방문할 것으로 보이는 사이트 등을 활용하여 피싱하려고 했던 점

 

□ 또 어제 국정원은 자실한 국정원 직원 임모씨가 자살 전 삭제했던 모든 파일을 복구하여 분석한 결과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사찰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1)이미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겼기에 삭제할 권한이 없는 임모씨가 파일을 삭제했다는 점, 2)대북, 대테러 용 자료라고 하면서도 삭제한 점, 3)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당시 IT비전문가인 김하영은 이틀 동안 자신의 오피스텔에 있으면서 무려 187개의 파일을 복구 불가능하게 삭제한 반면에 20년간 IT관련 업무를 맡았을 정도로 전문가인 임모씨는 복구가 가능하도록 삭제했다는 점 등 위 국정원의 해명에도 여전히 의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 위와 같이 국정원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해킹하였을 것이라는 의혹은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RCS를 최초로 구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비롯하여 현재 국정원장인 이병호까지의 전․현직 국정원장들, 그리고 위 각 국정원장 밑에서 RCS를 구입하고 사용하여 왔을 국정원 직원들에게는 통신비밀보호법위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의 혐의가 인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제 이 비정상적인 상태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단순히 민주주의의 예외가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노예가 되고, 감시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번 고발은 단순히 국정원의 RCS 구매와 사용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는 것만이 아닌 ‘국정원 시대’를 극복하여 우리사회가 보다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고발이 끝이 아니라 국정원 개혁까지 이르는 시작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이를 위해서는 보다 많은 국민이 국민고발에 참여해주셔야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깨어 있고, 지금의 사태를 지켜보고 있으며, 절실히 민주주의를 바란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가만히 있는 검찰, 눈치 보는 검찰을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할 것이고, 진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2015년 7월 27일

 국정원 국민해킹에 대한 국민고발운동을 시작하며

민주노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진보네트워크센터,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진보연대 (이상, 가나다 순)

 

월, 2015/07/27-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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