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술년 새해 인사 올립니다


복지를 논할 때 우리는 그간 주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역사와 사상을 살펴보아 왔다.
대체로 15-16세기쯤, 흑사병으로 인한 급격한 인구감소와 오스만 터어키의 지중해 장악으로 촉발된 원격지 무역, 그리고 증기기관의 발명 등으로 촉발된 산업화의 진척이 중세의 봉건적 농노제를 붕괴시키며 서서히 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아갔다.
이 과정에서 재산권을 중심으로 하여 왕과 귀족의 횡포를 제약하려는 계몽사상과 사회계약론을 출발로 하여 자유주의가 다양하게 전개됐고, 부의 지나친 편재를 경계하는 사회주의적 정치사상, 그리고 현실에 기초한 정의와 연대적 공동체론 등 다양한 입장들이 마치 제자백가 운동처럼 펼쳐졌다.
1789년에 있었던 프랑스 혁명은 인류사에 가치지향을 제시한 대사건이었다. 세가지 색깔로 표현되는 자유(흰색), 평등(붉은색) 그리고 박애(푸른색)은 당시 근대사상의 흐름을 집대성하고, 이후를 조향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이후 벌어진 지나친 이념적 과잉과 반동적 역류 등에서 보듯이, 구체적 현실에 착근되지 못한 채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라는 단어가 가지는 애매모호함이 내용적 규정에 어려움을 겪으며 상당기간 방황해야 했다. 그래서 프랑스혁명 사상이 구체화되는데까지 백여 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앞의 칼럼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한국, 자유주의 결핍인가, 과잉인가), 자유주의의 역사는 수많은 논쟁과 갈래를 형성하고, 평등 역시 전통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생산력을 증대하려는 역사적 순방향과 상충하며 심각한 대립과 분열 그리고 논쟁을 일으켰다.
박애 또는 형제애 개념도 당시에는 대략적으로 상층 계층이 가난에 찌든 빈민에게 베푸는 시혜적 성격 또는 개별적 인본주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라는 추상적 수준의 가치는 노동자들이 인구의 다수를 이루는 2차 산업혁명의 진행 속에서 무르익으며, 정치 참여와 선거제도가 일반 대중에게 확대되는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지향점으로 수렴돼 비로소 존엄과 정의 그리고 연대라는 실천적 언어로 재탄생하게 된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세 가지의 실천적, 가치적 개념은 사회민주주의 사상적 기초이자 현대적 복지정책의 토대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사민주의의 기초이자 복지철학의 토대로써 존엄과 정의와 연대가 어쩐지 낯설기만 하다. 이러한 철학적 방향과 기초는 기본적으로 동양과는 거리가 멀리 떨러져 있는 서양 사회가 겪은 근현대의 수백 년 간 역사를 통해서 형성되어 나온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역사적 문화적 전승 속에서 살아온 우리로서는 여전히 스테이크나 햄버거 같은 이종의 격리감을 느끼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에 접한 것이 이 땅에서 벌어졌던 구한말 사회변혁의 동력으로서 동학운동이라는 실제로 벌어졌던 이야기, 그중에서도 2대 교주였던 최시형이라는 인물이다.
그를 통해 전해진 우리의 전승 속에 마치 구수한 된장찌개와 잘 익은 김치의 맛깔처럼 한국의 복지철학에 대한 근거지와 새로운 방향을 감지한다.

동학을 배경으로 한 개벽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담당했던 도올 김용옥 교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최시형만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최시형이) 단국 이래 가장 위대한 인물이며, 간디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하필 농민전쟁의 중심인물인 녹두장군 전봉준도 아니고, 이등박문을 처단하면서 동양평화론을 주창하던 안중근의사, 국민투표에서 항상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으뜸에 오르는 김구선생도 아니라 최시형일까.
그는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이야기하면 항상 기회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15세에 고아가 되여 머슴살이와 제지소 직공 그리고 화전민 출신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상놈 중에 상놈이다. 그런 최시형을 한국사 최고의 위인으로 치켜세우는 도올은 역시 도올답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참으로 좋아한다. 많은 사람은 그를 단순히 지적인 엔터테이너라고 깎아 내리지만, 그의 선불교에 대한 해석을 위시해서 공중파에서 보여준 동양고전의 강의는 실히 그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임을 보여준다. 도올은 기존 학문의 형식과 내용에 속박을 받지 않는 방랑적인 그러나 혁명적인 지성인이다.
이미 기운을 다한 구한말, 서구제국주의의 거침없는 서세동점의 시대, 세상의 중심이라고 굳게 믿던 청나라마저 영국에게 힘없이 무너져 버린 아편전쟁의 역사가 살아있던 시절, 한편으로는 지배세력들의 가렴주구가 극에 달하고, 굶주림과 설상가상으로 온갖 전염병으로 이 땅의 백성들의 고통과 원통함이 하늘을 찌르던 시기에 태어난 최시형은 과연 어떤 인물일까 ?
오늘은 우선 모심과 살림에 올라와 있는 그에 대한 평가의 글을 그대로 옮겨 소개한다.
“조선의 ‘사도 바울’로서 19세기 조선민중들로부터 ‘최보따리 선생’이란 애칭으로 널리 불린 해월 최시형(海月 崔時亨, 1827-1898, 이하 해월이라 칭함)은 1827년 3월 27일 지금의 경주시 황오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일찍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와 종이공장 직공을 지내던 그가 동학에 들어간 때는 동학교조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본격적으로 동학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시작하던 해인 1861년 6월경 이었다. 해월의 동학입교는 그의 운명을 바꾸는 첫번째 사건이 되었다.
그는 동학에 입도한 이래 수운의 사후 동학의 도통계승자가 되어 1898년 4월 5일(음) 관병에 체포되고 이어 6월 2일에 처형되기까지 38년 동안 동학 교단을 지켜온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敎祖가 동학의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지 불과 3년 여 만에 체포되어 처형된 이후, 동학의 도통을 이어 동학 교리의 체계화, 동학 조직의 재건과 지역적 기반의 확대, 동학 경전의 집성, 동학의 각종 제도와 종교의례의 제정, 정기적 수련제도의 실시를 통한 지도자의 양성 등 동학 교단의 모든 사업들은 해월의 손을 거쳐 이룩되었다.
그러기에 그를 일러 동학의 ‘사도 바울’이라 부른다.
또한 1894년 1월 전라도 고창(古阜)에서 시작되어 1년 여 동안 조선 전역을 뒤흔든 동학농민전쟁에서도 동학군 봉기의 조직적 기반은 바로 해월의 손에 의해 이룩된 삼남(三南) 일대의 동학 조직이 근간이 되었고, 봉기를 주도한 각 지방의 핵심 인물들은 해월로부터 직․간접적인 지도를 받고 성장한 동학 접주들이었다.
따라서 동학사(東學史)에서 해월을 빼놓고서는 온전한 논의가 불가능함은 물론, 우리 근대사에 있어서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해월의 생애와 사상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할 연구과제의 하나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동학에 대해 연구해온 연구자나 한국근대사를 연구대상으로 삼은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3년여의 활동 끝에 처형된 동학교조 수운(水雲)과 1890년대 초반 동학접주가 되어 갑오동학농민전쟁을 주도했던 전봉준(全琫準)에 대하여는 큰 관심을 가졌으면서도, 38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동학 조직을 이끌어온 해월에 대하여는 의도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방치해왔다.
해월에 대한 연구 성과를 남긴 소수의 연구자들마저도 동학농민봉기를 주도적으로 이끈 전봉준은 ‘위대한 인물’이지만 전봉준의 거사를 비난하고 봉기 그 자체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진 해월은 ‘비겁한 인물’인 것처럼 묘사하는 데 앞장 서 왔다.
그 결과 해월은 우리들에게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 역사 발전의 방향을 거스른 ‘반동적(反動的)’ 인물로 각인되어 버렸으며, 대부분의 연구자들과 국민들은 누구도 그 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자 하지 않았다.
이처럼 해월에 대한 이해가 매우 피상적일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40여년에 걸친 ‘도망자’생활 때문에 관련 자료가 없어지거나 흩어져 버린 때문이며,
둘째는 동학하면 최제우와 전봉준이요, 생활사속에서 민중들에게 끼친 동학사상과 동학교단의 역할에 대한 관심보다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요,
셋째는 갑오년이후 지속된 탄압 속에서 동학이 사회변혁운동에서 종교적으로 윤색되거나 신비화되어 민중들의 품에서 해월의 역할이 특정 교단의 무지랭이 교조로 둔갑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해월에 대한 올바른 연구를 위해서는 지나간 시대에 ‘저 높은 하늘로 신이 되어 올라가 버렸던 그를 우리들과 같은 사람의 모습을 가진 한 인간’으로 끌어내려 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위대함을 우선 그의 별명 ‘최보따리’에 있다고 본다.
창시자 최제우 주위에는 걸출한 인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연히 시대에 참여할 수 없던 불우한 잔반(몰락한 양반), 시대를 걱정하는 지방의 양심적 관리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최제우가 대구에서 참수형을 당한 후에는 대부분의 제자들은 박해를 피해 은거에 들어간다. 예수의 십자가 순교 후 제자들의 행적과 비슷했으리라 추측한다.
천주교의 평등사상에 자극받아 시천주라는 동학을 주창했던 수운 최제우가 위에 언급하였듯이, 주위의 학식 많고 지위 있던 제자들을 제치고 최시형을 제2교주로 지명한 점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롭다.
동학의 요점인 천지개벽 후 오는 평등세상은 상놈, 평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주인이 되는 것이니,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상놈 속에서 지도자가 나와야 개벽이 이루지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되는 셈이기도 하다.

최시형은 그러한 결정을 한 수운의 기대에 보답하듯이, 개나리 보따리 짐하나 달랑 매고 삼남 일대를 하루도 쉬지 않고 풍찬노숙의 고생을 마다않았다. 죽을 고생을 수 없이 넘기면서 와해되었던 동학의 조직을 재건해내어 동학혁명이 일어나는 시점에는 백 만이 넘는 엄청난 신자의 머리수를 만들어 낸다. 이는 한국사뿐만 아니라 전 인류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청난 사건이다.
예건데 그 시점에서 수 천년 역사를 지닌 불교의 신자수가 기십만에 지나지 않았고, 서양교단의 물적 지원을 받았던 천주교신자도 십만을 넘지 못했다고 한다.
불과 30여 년 만에 1000만 조선인구 중 백 만이 넘는 사람들이, 특히나 그의 주활동 무대였던 삼남의 농민 태반이, 동학을 신봉하고 지지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를 단순히 당시 시대상황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대상황과 더불어 최시형 개인의 초인적인 노력, 그리고 최제우의 사상을 실천적으로 발전시킨 그의 위대한 사회변혁사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그는 참으로 한국사의 거대한 위인이다.
해월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 선생의 시천주(侍天主)의 사상을 발전시켜 삶의 실천 속에서 마음에 모신 원형적 가능성으로서 한울님을 정성껏 키워 자신이 한울님과 닮도록(人乃天, 사람이 곧 한울이다)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쳐 가르친다.
그리하여 스승이자 교주였던 최제우의 시천주라는 선언적 개념은 최시형에 의해 실천적인 양천주(養天主)라는 개념으로 발전한다.
마치 서구에서 자유-평등-박애가 역사적 실천을 통해 존엄-정의-연대로 발전하였듯이, 한울님을 정성껏 모시고 실천을 통한 노력의 과정에서 그는 인식의 범위를 넓혀가며 드디어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는 위대한 선언에 이른다.
불가에서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을 선언하며 생명의 고귀함을 일찍 설파하였고, 서양의 근대계몽시대 이후 천부적인 인권의 존엄을 이야기하였으나, 내용의 규모나 깊이에 있어서 사인여천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고 할 것이다.

예컨대 중인의 집안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맏며느리를 한울님이라 칭하고, 아이들도 이미 한울님을 마음에 모시고 있는 까닭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때려서는 아니 된다고 가르친다.
이 사상은 현재 유명한 시인의 시귀절 “꽃잎으로도 아이를 때리지마 !” 로 되살아난다. 참으로 놀라운 생명존중사상, 진일보한 천부인권사상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더 나아가 그는 새가 우는 소리도 한울의 소리,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도 한울의 소리 (天賦聲) 이라 이르며 온갖 사물에 한울님의 뜻과 혼이 깃들어 있음을 설파하고, 밥 한그릇에서 온 천지의 뜻을 읽어낸다.
이는 다시 장일순선생의 사상 ‘풀한포기에서 온 우주를 보다‘ 로 부활하여 생태운동, 한살림운동의 기초가 된다.
이처럼 양천주의 사상은 사인여천(事人如天)이라는 인식을 통하여 물물천(物物天), 사사천(事事天)의 경지를 넘어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의 三敬사상으로 이르게 되면서 오늘날에도 전혀 손색없는 주기일원적 인신론체계, 생명사상, 평등의 인권사상 그리고 환경생태운동의 기초를 이루게 된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한울님은 당위로서 관념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온 우주 만물을 존재하게 하는 궁극적 동인으로, 법칙으로,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야 하는 규범으로서, 사람의 마음속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온세상 만물들의 제 현상과 사건과 계기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을 한울이 한울을 먹는다고(以天食天) 해월은 표현한다. 참으로 놀랍고 경이로운 가르침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죽어서 영혼이 따로 있고 조상신과 귀신이 존재하는 따위의 이야기는 하등 유의미한 사안이 아니다.
한울님의 작용은 남녀간에는 애정을 통해 자식에게로 이여지고, 사람들간에는 사회적 실천행위를 통하여 역사를 관통한다고 해월은 판단한 듯하다.
그가 주창한 향아설위법(向我設位法), 즉 귀신과 벽을 향하지 말고, 자기 자신을 향해서 제사를 지낸다는 이론은 성리학에 기반한 조선왕조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의례인 제사의식 속에서 지금까지 행해져 왔던 규범과 강제의 모든 틀을 뒤엎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인간의 주요한 문화적 유산은 제의에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향벽설위는 저 벽쪽에, 내 시선의 저쪽, 시간적으로는 사후에만 천국이 있고, 약속의 땅이 있고, 행복된 낙원이 있다는 식의 구조이다. 자기 꿈과 모든 희망을 미래에로 저 벽쪽에 갖다 놓고 오늘을 견디고 희생하는 내용이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향아설위(向我設位)는 나와 현재를 중심으로 잃어 버렸던 오늘을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다. 제사드리고 있는 나, 우리 그리고 한 사회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한울님, 우주생명 등이 존재하며, 그래서 지금 여기에 낙원도 행복도 미래도 현재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상이 향아설위에 담겨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서 집단의 공동체로서 동학교도들에게 생활의 주요한 지침을 함께 공유하고 실천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우선 눈에 띠는 것은 남녀의 차별을 금지하고 여성을 귀히 존중하며 과부의 재혼을 권장하였던 일이다. 여성들을 위하여 특히 임신부를 위한 내칙과 내수도문을 보급하여, 심고(기도)하는 법, 위생과 환경문제를 다루고, 태아의 중요성과 섭생, 정서, 건강관리 등을 가르쳤다고 한다.
구한말 당시 전염병이 창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신통하게 동학교도들은 전염병조차 피해 갔다고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동학교도들은 위생과 환경의 관리가 철저하게 생활화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인습적 차별에서 해방을 선언하여 칠반천인(七般賤人)으로 분류되었던 승려, 광대, 기생, 무당, 점쟁이, 갖바치, 백정 등을 두루 포용하고 차별을 없이하여 후에 갑신개혁당시 천민해방의 법령을 만드는 물꼬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창시자 최제우가 살아있던 당시 동학을 비판하고 배척하였던 서원의 통문 기록(동학배척통문 1863)을 보면 “귀천이 같고 등위의 차별이 없으니, 백정과 술장사들이 함께 모이고, 남녀를 차별하지 아니하고 포교소를 세워 과부나 홀아비들이 모여들며, 재물과 돈을 좋아하여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도우니(有無相資) 가난한 자가 기뻐한다”고 하였다.

이후 동학교도들의 생활에 지침이었던 유무상자는 현재 회자되는 공유경제 또는 돌봄경제의 원형으로 우리의 역사에 실제로 행하여졌던 살아있는 이야기이며, 물질 중심적이며 자본제적인 현실을 떠나 사인여천의 구체적 실천의 과정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갔던 진솔한 수평적 상호관계에 대한 사회적 기록이다.
세상의 만물과 더불어 하늘과 사람과 어울려 살아간 최시형은 머무는 곳마다 과실나무를 심고 한시도 쉬는 일없이 볏짚을 꼬거나 밭을 일구었다 한다.
사인여천과 유무상자의 정신, 얼마나 위대한 사상인가! 어느 타민족의 역사에 이만한 감동과 깊이를 담아낸 서술적 내용이 있었는가 ?
현재 복지선진국을 이루는 북유럽국가들의 등장 배경에도 중세를 관통했던 바이킹의 전승이 숨어 있다.
해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울리는 바이킹에게는 모두가 함께 협력하여 힘을 모아내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가혹한 삶의 체험적 역사적 기록이 있었다.
행여나 혼자 잘난 척하고 혼자 독식을 하는 순간 바이킹의 공동체는 무너질 수밖에 없었고, 더욱이 근세사에 진입하면서 서쪽으로는 강대해지는 유럽의 대륙세력과 동쪽으로는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는 슬라브 민족의 사이에서 노르딕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오로지 서로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는 선택뿐이었다. 매우 소중한 예화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구한말처럼 안팎에 중층적으로 얽힌 복합적 위기상황에 다시 직면하여 있다.
한가하게 중부담-중복지 따위의 철학도 없고 마음도 담기지 않은 정치적 언술이나 기능적 접근으로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어려운 문제를 손쉽게 극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력은 모든 국민 개인 개인을 하늘처럼 소중히 여기면서 가능한 정책을 모색하고, 시민사회는 서로 간 형편을 살펴가며 부족한 것을 함께 채워가고 감싸 안는 동학적 사상을 기본으로 삼고 계기적으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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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의 전경. 마을 옆 바닷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월성1호기가 있다. ⓒ이상홍
수학여행으로, 또는 역사 문화 탐방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은 가보았을 경주. 우리는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들고 다시 경주로 갑니다. 그곳에는 하루 빨리 멈춰야만 하는 위험한 핵발전소가 있습니다. 30년이라는 수명이 다해 고장이 잦은 핵발전소, 월성1호기. 경주에 월성1호기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오래전 사진을 찍었던 곳에서 방독면을 쓰고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담아내려 합니다.


2017년 5월 회비납부 명단
| (주)엔버스 | 50,000 | 김윤성 | 10,000 | 백운희 | 15,000 | 이다솜 | 1,000 | 정범희 | 5,000 | 황인성 | 10,000 |
| 가참희 | 10,000 | 김윤정 | 10,000 | 백인환 | 10,000 | 이다현 | 10,000 | 정봉연 | 10,000 | 황인준 | 5,000 |
| 강기혁 | 10,000 | 김율현 | 5,000 | 백정혜 | 5,000 | 이동명 | 10,000 | 정부금 | 10,000 | 황인호 | 10,000 |
| 강기형 | 10,000 | 김은미 | 5,000 | 백종호 | 5,000 | 이동선 | 10,000 | 정선관 | 10,000 | 황재학 | 10,000 |
| 강나원 | 5,000 | 김은석 | 3,000 | 변승섭 | 5,000 | 이동하 | 10,000 | 정선기 | 10,000 | 황호경 | 5,000 |
| 강다민 | 5,000 | 김은영 | 10,000 | 변영실 | 10,000 | 이두진 | 10,000 | 정성훈 | 5,000 | ||
| 강두경 | 10,000 | 김은정 | 5,000 | 변영철 | 5,000 | 이명선 | 10,000 | 정세영 | 3,000 | ||
| 강만규 | 10,000 | 김은주 | 10,000 | 변종욱 | 5,000 | 이명희 | 15,000 | 정승기 | 10,000 | ||
| 강만식 | 20,000 | 김응병 | 20,000 | 사과나무 | 10,000 | 이모성 | 10,000 | 정연정 | 12,000 | ||
| 강명희 | 10,000 | 김응학 | 10,000 | 서광필 | 11,000 | 이무경 | 10,000 | 정연택 | 20,000 | ||
| 강문석 | 10,000 | 김익균 | 5,000 | 서만영 | 5,000 | 이문희 | 10,000 | 정연희 | 10,000 | ||
| 강민정 | 5,000 | 김익준 | 10,000 | 서명길 | 10,000 | 이미경 | 10,000 | 정오용 | 10,000 | ||
| 강민지 | 5,000 | 김인국 | 15,000 | 서성희 | 5,000 | 이미라 | 15,000 | 정완숙 | 10,000 | ||
| 강병호 | 10,000 | 김재동 | 10,000 | 서영석 | 10,000 | 이미선 | 5,000 | 정우연 | 11,000 | ||
| 강산 | 2,000 | 김재수 | 25,000 | 서예진 | 5,000 | 이미순 | 10,000 | 정우혁 | 10,000 | ||
| 강상수 | 1,000 | 김재연 | 5,000 | 서예화 | 5,000 | 이미영 | 30,000 | 정윤경 | 10,000 | ||
| 강수진, 김태형 | 5,000 | 김재흥 | 5,000 | 서용옥 | 5,000 | 이미은 | 5,000 | 정윤수 | 10,000 | ||
| 강승민,유동현 | 15,000 | 김점숙 | 10,000 | 서용하 | 10,000 | 이범진 | 10,000 | 정은희 | 5,000 | ||
| 강신관 | 10,000 | 김정남 | 10,000 | 서원혁 | 10,000 | 이범희 | 11,000 | 정은희 | 10,000 | ||
| 강영희 | 3,000 | 김정대 | 10,000 | 서은덕 | 3,000 | 이병호 | 10,000 | 정장호 | 10,000 | ||
| 강은숙 | 10,000 | 김정미, 라재필 | 10,000 | 서인석 | 10,000 | 이봉락 | 5,000 | 정재원 | 5,000 | ||
| 강재훈 | 5,000 | 김정순 | 5,000 | 서정현 | 5,000 | 이상구 | 10,000 | 정정호 | 10,000 | ||
| 강정숙 | 10,000 | 김정연 | 5,000 | 서충교 | 5,000 | 이상명 | 30,000 | 정종혁 | 5,000 | ||
| 강지원 | 10,000 | 김정자 | 10,000 | 서현경 | 5,000 | 이상미 | 5,000 | 정주호 | 5,000 | ||
| 강진규 | 10,000 | 김정훈 | 5,000 | 서현숙 | 13,000 | 이상민 | 10,000 | 정지현 | 10,000 | ||
| 강철 | 5,000 | 김제선 | 10,000 | 석승용 | 10,000 | 이상우 | 30,000 | 정창균 | 30,000 | ||
| 강태경 | 10,000 | 김조년 | 30,000 | 석연희 | 5,000 | 이상은 | 10,000 | 정창원 | 10,000 | ||
| 강현서 | 10,000 | 김종남 | 22,000 | 설수인 | 5,000 | 이상훈 | 15,000 | 정천귀 | 35,000 | ||
| 강현수 | 10,000 | 김종남 | 10,000 | 성광진 | 10,000 | 이상희 | 10,000 | 정청숙 | 15,000 | ||
| 강호병 | 5,000 | 김종필 | 10,000 | 성기모,고미자 | 11,000 | 이성숙 | 10,000 | 정태호 | 10,000 | ||
| 강호석 | 10,000 | 김종환 | 10,000 | 성은희 | 20,000 | 이성숙, 민영훈 | 10,000 | 정필교 | 10,000 | ||
| 강효숙 | 13,000 | 김주완 | 5,000 | 성하덕 | 5,000 | 이성철 | 10,000 | 정현우 | 5,000 | ||
| 강희영 | 20,000 | 김주찬 | 10,000 | 소명수 | 5,000 | 이성희 | 5,000 | 정현주 | 5,000 | ||
| 고경완 | 15,000 | 김준형 | 20,000 | 손규성 | 10,000 | 이성희 | 10,000 | 정혜경 | 10,000 | ||
| 고광미 | 11,000 | 김준희 | 10,000 | 손덕환 | 10,000 | 이성희 | 10,000 | 정혜원 | 10,000 | ||
| 고동수 | 10,000 | 김진국 | 15,000 | 손문규 | 10,000 | 이소라 | 10,000 | 정호영 | 15,000 | ||
| 고동혁 | 5,000 | 김진수 | 15,000 | 손민우 | 10,000 | 이소정, 지영 | 5,000 | 정환도 | 11,000 | ||
| 고두환 | 10,000 | 김진화 | 22,000 | 손병거 | 15,000 | 이수경 | 10,000 | 조근자 | 10,000 | ||
| 고명현 | 10,000 | 김창근 | 10,000 | 손유정 | 5,000 | 이순순 | 5,000 | 조금연 | 10,000 | ||
| 고병년 | 30,000 | 김채연 | 5,000 | 손주호 | 5,000 | 이순우 | 11,000 | 조남영 | 10,000 | ||
| 고상춘 | 5,000 | 김춘경, 문예령 | 10,000 | 송규식 | 10,000 | 이순우 | 10,000 | 조능연 | 5,000 | ||
| 고연완 | 20,000 | 김춘숙 | 10,000 | 송다연 | 5,000 | 이순화 | 5,500 | 조미선 | 3,000 | ||
| 고영득 | 10,000 | 김태준 | 15,000 | 송문섭 | 10,000 | 이순희 | 5,000 | 조미영 | 15,000 | ||
| 고영주 | 15,000 | 김택남 | 10,000 | 송미령 | 5,000 | 이승엽 | 5,000 | 조석준 | 1,000 | ||
| 고은아 | 20,000 | 김판겸 | 11,000 | 송석범 | 20,000 | 이승용 | 10,000 | 조선옥 | 5,000 | ||
| 고은정 | 16,000 | 김필동 | 10,000 | 송석철 | 10,000 | 이승재 | 10,000 | 조성남 | 5,000 | ||
| 고익환 | 10,000 | 김필환 | 11,000 | 송양섭 | 5,000 | 이승종 | 5,000 | 조성민 | 11,000 | ||
| 고종현 | 10,000 | 김하석 | 5,000 | 송우현 | 10,000 | 이승훈 | 5,000 | 조성용 | 10,000 | ||
| 공그림 | 10,000 | 김하현 | 5,000 | 송유빈 | 5,000 | 이시희 | 15,000 | 조세은 | 10,000 | ||
| 공정욱 | 10,000 | 김향림 | 5,000 | 송을석 | 10,000 | 이신효 | 5,000 | 조세형 | 10,000 | ||
| 공정희 | 5,000 | 김헌식 | 10,000 | 송인옥 | 10,000 | 이언경 | 10,000 | 조신행 | 10,000 | ||
| 곽경규 | 10,000 | 김현수 | 5,000 | 송인준 | 10,000 | 이연옥 | 10,000 | 조연길 | 10,000 | ||
| 곽성자 | 10,000 | 김현숙 | 10,000 | 송정호 | 15,000 | 이영남 | 11,000 | 조영식 | 5,000 | ||
| 곽순자 | 5,500 | 김현우 | 5,000 | 송준태 | 5,000 | 이영섭 | 10,000 | 조영탁 | 15,000 | ||
| 곽재호 | 5,000 | 김현정 | 5,000 | 송중호 | 10,000 | 이용옥 | 10,000 | 조영호 | 5,000 | ||
| 구남실 | 5,000 | 김현정 | 5,000 | 송한결 | 10,000 | 이용원 | 10,000 | 조용만 | 20,000 | ||
| 구본주 | 5,000 | 김형년 | 10,000 | 송혜숙 | 5,000 | 이용일 | 20,000 | 조용준 | 10,000 | ||
| 구본학 | 10,000 | 김형돈 | 33,000 | 송호범 | 5,000 | 이우영 | 10,000 | 조우연 | 3,000 | ||
| 구본환 | 10,000 | 김형태 | 5,000 | 신금현 | 10,000 | 이우주 | 5,000 | 조은경 | 15,000 | ||
| 구연정 | 5,000 | 김혜숙 | 20,000 | 신단오 | 10,000 | 이우현 | 33,000 | 조은연 | 50,000 | ||
| 구영본 | 8,000 | 김혜영 | 10,000 | 신동욱 | 10,000 | 이원배 | 3,000 | 조의영 | 10,000 | ||
| 구윤미 | 5,000 | 김호근 | 10,000 | 신동윤 | 5,000 | 이원표 | 5,000 | 조정미 | 10,000 | ||
| 국현승 | 10,000 | 김호일 | 10,000 | 신명호 | 11,000 | 이원희 | 5,000 | 조정선 | 5,000 | ||
| 권경익 | 10,000 | 김홍만 | 20,000 | 신미정 | 5,000 | 이은서 | 5,000 | 조정숙 | 5,000 | ||
| 권기원, 이향숙 | 20,000 | 김홍용 | 20,000 | 신삼복 | 13,000 | 이은재 | 10,000 | 조정아 | 10,000 | ||
| 권길중 | 10,000 | 김홍준 | 5,000 | 신숙용 | 5,000 | 이인복 | 11,000 | 조정호 | 3,000 | ||
| 권대홍 | 10,000 | 김환 | 11,000 | 신승호 | 10,000 | 이인성 | 10,000 | 조준형 | 5,000 | ||
| 권동일 | 10,000 | 김환준 | 5,000 | 신영무 | 10,000 | 이인세 | 11,000 | 조현구 | 3,000 | ||
| 권문석 | 10,000 | 김효경 | 10,000 | 신옥균 | 11,000 | 이인순 | 15,000 | 조현승 | 20,000 | ||
| 권보라 | 15,000 | 김효순 | 2,000 | 신옥영 | 10,000 | 이인희 | 5,000 | 조혜영 | 5,000 | ||
| 권선술 | 5,000 | 김희경 | 14,000 | 신우석 | 5,000 | 이재근 | 10,000 | 조혜인 | 3,000 | ||
| 권선영 | 10,000 | 김희숙 | 10,000 | 신유정 | 10,000 | 이재영 | 10,000 | 조흥열 | 10,000 | ||
| 권선필 | 20,000 | 김희연 | 10,000 | 신정은 | 5,000 | 이재인 | 10,000 | 주덕남 | 3,000 | ||
| 권수경 | 10,000 | 김희자 | 5,000 | 신지연 | 10,000 | 이재철 | 10,000 | 주민정 | 10,000 | ||
| 권순우 | 10,000 | 김희정 | 10,000 | 신창수 | 10,000 | 이재호 | 15,000 | 주서현 | 5,000 | ||
| 권연우 | 5,000 | 나미희 | 10,000 | 신현섭 | 11,000 | 이재희 | 10,000 | 주성용 | 5,000 | ||
| 권영당 | 10,000 | 나인순 | 10,000 | 신현숙 | 10,000 | 이정구 | 10,000 | 주승민 | 5,000 | ||
| 권오운 | 10,000 | 나종선 | 10,000 | 신현정 | 10,000 | 이정목 | 10,000 | 주양각 | 10,000 | ||
| 권오원 | 20,000 | 남상군 | 5,000 | 신현주 | 5,000 | 이정섭 | 5,000 | 주용진 | 5,000 | ||
| 권주정 | 10,000 | 남상혁 | 20,000 | 신혜옥 | 5,000 | 이정수 | 5,000 | 주지민 | 5,000 | ||
| 권진순 | 10,000 | 남영미 | 5,500 | 심규상 | 11,000 | 이정은 | 10,000 | 지소은 | 5,000 | ||
| 권창현 | 5,000 | 남재영 김현화 | 10,000 | 심문보 | 10,000 | 이정인 | 3,000 | 지영채 | 5,000 | ||
| 권채숙 | 10,000 | 남정식 | 5,000 | 심승현 | 5,000 | 이정임 | 20,000 | 지영한, 박혜경 | 15,000 | ||
| 권태용 | 3,000 | 남태경 | 10,000 | 심원경 | 11,000 | 이정호 | 10,000 | 지옥향 | 10,000 | ||
| 권혁범 | 10,000 | 남해 | 30,000 | 심은영 | 5,000 | 이정희 | 10,000 | 지원종 | 10,000 | ||
| 권현준 | 10,000 | 노다래 | 3,000 | 심재광 | 10,000 | 이제환 | 10,000 | 지희숙 | 10,000 | ||
| 권효정 | 5,000 | 노승무 | 10,000 | 심재기 | 5,000 | 이종대, 손혜영 | 11,000 | 진경희 | 30,000 | ||
| 기윤, 기훈 | 10,000 | 노현승 | 10,000 | 심준홍 | 11,000 | 이종범 | 11,000 | 진은희 | 11,000 | ||
| 김건 | 10,000 | 대동역 | 10,000 | 심태영 | 10,000 | 이종상 | 10,000 | 차재영 | 10,000 | ||
| 김경구 | 10,000 | 도석주 | 10,000 | 안광연 | 10,000 | 이종수 | 15,000 | 차진숙 | 20,000 | ||
| 김경린 | 3,000 | 도안마을신문 | 10,000 | 안도연 | 5,000 | 이종찬 | 10,000 | 채민성 | 15,000 | ||
| 김경일 | 15,000 | 도혜선 | 10,000 | 안도현 | 10,000 | 이주황 | 11,000 | 채민준 | 5,000 | ||
| 김경태 | 10,000 | 동혜경 | 5,000 | 안미영 | 10,000 | 이준규 | 5,000 | 채승엽 | 5,000 | ||
| 김고은 | 10,000 | 류수경 | 30,000 | 안병진 | 10,000 | 이준서 | 5,000 | 채재학 | 10,000 | ||
| 김광래 | 10,000 | 류영서 | 5,000 | 안병호 | 11,000 | 이준우 | 33,000 | 천수정 | 5,000 | ||
| 김광신 | 10,000 | 류제정 | 10,000 | 안보석 | 5,000 | 이중호 | 5,000 | 천용기 | 11,000 | ||
| 김광호 | 15,000 | 류지훈 | 10,000 | 안서빈 | 10,000 | 이지민 | 5,000 | 천혜영 | 5,000 | ||
| 김광호 | 10,000 | 류지희 | 5,000 | 안승민 | 5,000 | 이지선 | 10,000 | 최경옥 | 10,000 | ||
| 김규 | 10,000 | 류호진 | 5,000 | 안승용 | 20,000 | 이지연 | 15,000 | 최규관 | 10,000 | ||
| 김규열 | 10,000 | 모현혜 | 20,000 | 안옥례 | 10,000 | 이지영 | 10,000 | 최규영 | 10,000 | ||
| 김금선 | 10,000 | 문경원 | 10,000 | 안정선 | 30,000 | 이진국 | 20,000 | 최기안 | 15,000 | ||
| 김기만 | 5,000 | 문명성 | 10,000 | 안정섬 | 5,000 | 이진숙 | 10,000 | 최대민 | 10,000 | ||
| 김나영 | 10,000 | 문상원 | 30,000 | 안준성 | 10,000 | 이진철 | 5,000 | 최라미 | 20,000 | ||
| 김나윤 | 5,000 | 문선경 | 5,000 | 안지원 | 5,000 | 이진헌 | 30,000 | 최미정 | 10,000 | ||
| 김낙종 | 10,000 | 문정석 | 5,000 | 안진모 | 5,000 | 이진희 | 10,000 | 최민규 | 10,000 | ||
| 김남원 | 20,000 | 문정화 | 10,000 | 안형준 | 10,000 | 이찬현 | 5,000 | 최봉문 | 10,000 | ||
| 김대경 | 10,000 | 문진혁 | 5,000 | 양귀영 | 50,000 | 이창섭 | 10,000 | 최선영 | 10,000 | ||
| 김대호 | 10,000 | 문창식 | 5,000 | 양동철 | 10,000 | 이창연 | 10,000 | 최성강 | 10,000 | ||
| 김대호 | 10,000 | 민대홍 | 3,000 | 양성주 | 11,000 | 이창택 | 15,000 | 최성미 | 5,000 | ||
| 김도균 | 11,000 | 민만식, 박수정 | 5,000 | 양승의 | 10,000 | 이철호 | 5,000 | 최성욱.최공숙 | 30,000 | ||
| 김도형 | 10,000 | 민병애 | 15,000 | 양시현 | 5,000 | 이춘아 | 5,000 | 최소망 | 5,000 | ||
| 김동석 | 3,000 | 민병일 | 10,000 | 양영순 | 10,000 | 이탁렬 | 10,000 | 최솔 | 11,000 | ||
| 김동현 | 5,000 | 민순옥 | 10,000 | 양유열 | 10,000 | 이학주 | 10,000 | 최숙희 | 3,000 | ||
| 김동휘 | 5,000 | 민아강 | 10,000 | 양창현 | 10,000 | 이현숙 | 10,000 | 최순옥 | 10,000 | ||
| 김동희 | 5,000 | 민애식 | 5,000 | 양해림 | 20,000 | 이현자 | 10,000 | 최승만 | 10,000 | ||
| 김래원 | 15,000 | 민완기 | 10,000 | 양혜숙 | 33,000 | 이현주 | 11,000 | 최연우 | 5,000 | ||
| 김만구 | 10,000 | 박갑동 | 10,000 | 양희준(이언의) | 3,000 | 이현주 | 10,000 | 최영규 | 10,000 | ||
| 김명관 | 10,000 | 박경남 | 5,000 | 어운선 | 10,000 | 이형륜 | 3,000 | 최영미 | 10,000 | ||
| 김명숙 | 5,000 | 박경희 | 10,000 | 엄기인 | 5,000 | 이형복 | 10,000 | 최영은 | 20,000 | ||
| 김무단이 | 5,000 | 박관수 | 10,000 | 연중모 | 5,000 | 이혜경 | 20,000 | 최영준 | 10,000 | ||
| 김문숙 | 10,000 | 박나연 | 5,000 | 염동원 | 10,000 | 이혜교 | 10,000 | 최용희 | 10,000 | ||
| 김미령 | 5,000 | 박노동 | 10,000 | 염혜경 | 11,000 | 이혜림 | 5,000 | 최유정 | 10,000 | ||
| 김미소 | 5,000 | 박미선 | 20,000 | 염홍익 | 10,000 | 이혜영 | 10,000 | 최윤경 | 5,000 | ||
| 김미숙 | 8,000 | 박미지 | 10,000 | 오기민 | 10,000 | 이홍기 | 20,000 | 최윤지 | 5,000 | ||
| 김미숙 | 5,000 | 박민우 | 5,000 | 오남균 | 5,000 | 이효범 | 10,000 | 최윤진 | 5,000 | ||
| 김미순 | 5,000 | 박병국 | 20,000 | 오다연 | 10,000 | 이효준 | 15,000 | 최윤호 | 11,000 | ||
| 김미양 | 10,000 | 박병엽 | 22,000 | 오명숙 | 5,000 | 이후찬 | 5,000 | 최윤희 | 10,000 | ||
| 김민석 | 10,000 | 박병준 | 10,000 | 오병남 | 10,000 | 이희순 | 5,000 | 최은숙 | 10,000 | ||
| 김민수 | 10,000 | 박보민 | 5,000 | 오성일 | 5,000 | 이희정 | 20,000 | 최정우 | 30,000 | ||
| 김민지 | 3,000 | 박상윤 박도연 | 10,000 | 오세열 | 10,000 | 인주환 | 10,000 | 최정필 | 11,000 | ||
| 김방룡 | 10,000 | 박상희 | 5,000 | 오세윤 | 10,000 | 임가은 | 5,000 | 최정혜 | 5,000 | ||
| 김병익 | 10,000 | 박석배 | 10,000 | 오수환 | 10,000 | 임경선 | 10,000 | 최종근, 박현주 | 10,000 | ||
| 김병호 | 10,000 | 박성오 | 10,000 | 오완근 | 10,000 | 임경숙 | 10,000 | 최종진 | 5,000 | ||
| 김보라 | 3,000 | 박성준 | 11,000 | 오인환 | 10,000 | 임경은 | 5,000 | 최종하 | 3,000 | ||
| 김보람 | 10,000 | 박성철 | 5,000 | 오정근 | 5,000 | 임규창 | 15,000 | 최종현 | 1,000 | ||
| 김보수 | 30,000 | 박소현 | 10,000 | 오종섭 | 10,000 | 임동순 | 10,000 | 최지민 | 5,000 | ||
| 김보혜 | 15,000 | 박소희 | 10,000 | 오진희 | 5,000 | 임동진 | 50,000 | 최진경 | 10,000 | ||
| 김봉구 | 10,000 | 박수경 | 10,000 | 오현균 | 10,000 | 임문희 | 10,000 | 최진수 | 10,000 | ||
| 김삼주 | 5,000 | 박수연 | 10,000 | 오현숙 | 11,000 | 임병안 | 10,000 | 최진형 | 10,000 | ||
| 김상규 | 10,000 | 박승현 | 5,000 | 왕영성 | 20,000 | 임병오 | 30,000 | 최창우 | 10,000 | ||
| 김상규 | 10,000 | 박영례 | 10,000 | 우미정 | 10,000 | 임봉빈 | 10,000 | 최하영 | 5,000 | ||
| 김상기 | 10,000 | 박영성 | 10,000 | 우승범 | 5,000 | 임선미 | 10,000 | 최한성 | 10,000 | ||
| 김상기 | 5,000 | 박영송 | 11,000 | 우완예 | 5,000 | 임성환 | 5,000 | 최호택 | 10,000 | ||
| 김서룡 | 10,000 | 박영순 | 3,000 | 원경선 | 11,000 | 임은정 | 3,000 | 최화영 | 11,000 | ||
| 김서연 | 5,000 | 박영실 | 10,000 | 원용호 | 5,000 | 임일 | 10,000 | 최효선 | 5,000 | ||
| 김서준 | 3,000 | 박영주 | 5,000 | 원지훈 | 5,000 | 임일남 | 10,000 | 추명구 | 10,000 | ||
| 김서현 | 5,000 | 박원만 | 10,000 | 원희선 | 20,000 | 임재무 | 10,000 | 추민수 | 10,000 | ||
| 김서희 | 5,000 | 박은숙 | 10,000 | 유나경 | 10,000 | 임재일 | 10,000 | 표윤숙 | 5,000 | ||
| 김석진 | 10,000 | 박은호 | 11,000 | 유병로 | 33,000 | 임재한 | 10,000 | 하성일 | 5,000 | ||
| 김선미 | 33,000 | 박은희 | 5,000 | 유병선 | 10,000 | 임재화 | 33,000 | 하은향 | 5,000 | ||
| 김선아 | 10,000 | 박익규 | 10,000 | 유병훈 | 10,000 | 임종규 | 5,000 | 하정화 | 5,000 | ||
| 김선옥 | 15,000 | 박인순 | 10,000 | 유봉재 | 10,000 | 임준 | 5,000 | 하태준 | 5,000 | ||
| 김선우 | 5,000 | 박인천 | 10,000 | 유성권 | 10,000 | 임준홍(임채은) | 10,000 | 한경이 | 13,000 | ||
| 김선진 | 5,000 | 박재묵 | 30,000 | 유성미 | 10,000 | 임지민 | 5,000 | 한금수 | 2,000 | ||
| 김선태 | 20,000 | 박재희 | 5,000 | 유영희 | 5,500 | 임철희 | 10,000 | 한단 | 10,000 | ||
| 김선태 | 5,000 | 박정규 | 10,000 | 유영희 | 10,000 | 임혜숙 | 10,000 | 한대현 | 5,000 | ||
| 김선호 | 10,000 | 박제화 | 10,000 | 유재성 | 10,000 | 임홍렬 | 10,000 | 한동희 | 1,000 | ||
| 김선화 | 11,000 | 박종덕 | 11,000 | 유주환 | 5,000 | 임효인 | 10,000 | 한미경 | 10,000 | ||
| 김성림 | 11,000 | 박종서 | 10,000 | 유지연 | 10,000 | 임훈란 | 5,000 | 한민영, 한주영 | 10,000 | ||
| 김성필 | 20,000 | 박종인 | 5,000 | 유진수 | 15,000 | 임희동 | 6,000 | 한민욱 | 5,000 | ||
| 김성훈 | 10,000 | 박주철 | 10,000 | 유진아 | 3,000 | 장미희 | 5,000 | 한상효 | 10,000 | ||
| 김성흠 | 3,000 | 박준우 | 5,000 | 유현미 | 50,000 | 장수명 | 10,000 | 한수인 | 5,000 | ||
| 김세정 | 30,000 | 박준태 | 5,000 | 유현화 | 10,000 | 장수찬 | 40,000 | 한수정 | 5,000 | ||
| 김소영 | 15,000 | 박지숙 | 10,000 | 윤기석 | 20,000 | 장순식 | 10,000 | 한아름 | 10,000 | ||
| 김송자 | 60,000 | 박지우 | 5,500 | 윤미자 | 5,000 | 장용철 | 10,000 | 한완희 | 5,000 | ||
| 김수선 | 10,000 | 박지현 | 3,000 | 윤병길 | 10,000 | 장재완 | 10,000 | 한우리 | 20,000 | ||
| 김수아 | 5,000 | 박진수 | 10,000 | 윤숙 | 10,000 | 장종태 | 10,000 | 한윤희 | 10,000 | ||
| 김수익 | 10,000 | 박진숙 | 10,000 | 윤여영 | 10,000 | 장창수 | 10,000 | 한은규 | 10,000 | ||
| 김수진 | 10,000 | 박진희 | 11,000 | 윤종삼 | 20,000 | 장태선 | 10,000 | 한일수 | 5,000 | ||
| 김수현 | 10,000 | 박진희 | 30,000 | 윤종일 | 5,000 | 장하윤 | 5,000 | 한일수 | 20,000 | ||
| 김숙현 | 10,000 | 박찬억 | 5,000 | 윤진원 | 10,000 | 장현욱 | 5,000 | 한종구 | 10,000 | ||
| 김순영 | 30,000 | 박찬인 | 11,000 | 윤태섭 | 10,000 | 전계준 | 22,000 | 한준서 | 5,000 | ||
| 김승민 | 5,000 | 박채연 | 5,000 | 윤태천 | 10,000 | 전광정 | 10,000 | 한지수 | 5,000 | ||
| 김승영 | 5,000 | 박충길 | 10,000 | 윤현명 | 3,000 | 전대식 | 10,000 | 한진숙 | 10,000 | ||
| 김승영 | 15,000 | 박태규 | 10,000 | 이가현 | 5,000 | 전병술 | 10,000 | 한창열 | 10,000 | ||
| 김승호 | 10,000 | 박필우 | 10,000 | 이갑숙 | 10,000 | 전봉석 | 10,000 | 한추순 | 10,000 | ||
| 김신호 | 10,000 | 박학준 | 5,000 | 이강순 | 10,000 | 전상인 | 10,000 | 함두배 | 10,000 | ||
| 김영관 | 10,000 | 박해인 | 5,000 | 이강욱 | 20,000 | 전수경 | 5,000 | 허건영 | 10,000 | ||
| 김영석 | 5,000 | 박혜영 | 20,000 | 이강혁 | 5,000 | 전양 | 15,000 | 허우석 | 10,000 | ||
| 김영석 | 10,000 | 박희조 | 10,000 | 이건희 | 15,000 | 전양혜 | 20,000 | 허재영 | 30,000 | ||
| 김영순 | 5,000 | 반범환 | 10,000 | 이경남 | 5,000 | 전영훈 | 10,000 | 홍석영 | 1,000 | ||
| 김영주 | 10,000 | 방미나 | 10,000 | 이경민 | 10,000 | 전은미 | 10,000 | 홍석준 | 5,000 | ||
| 김영준 | 5,000 | 방석배 | 10,000 | 이경선 | 6,000 | 전은미 | 10,000 | 홍석하 | 10,000 | ||
| 김영호 | 10,000 | 방수만 | 10,000 | 이경숙 | 10,000 | 전재현 | 10,000 | 홍선주 | 5,000 | ||
| 김영화 | 5,000 | 방승옥 | 10,000 | 이경호,최윤경 | 15,500 | 전찬선 | 10,000 | 홍성규 | 30,000 | ||
| 김영환 | 10,000 | 배근영 | 10,000 | 이경희 | 5,000 | 전찬식 | 10,000 | 홍성옥 | 10,000 | ||
| 김완수 | 20,000 | 배선진 | 5,000 | 이관근 | 10,000 | 전청청 | 10,000 | 홍연숙 | 10,000 | ||
| 김용동 | 10,000 | 배영옥 | 10,000 | 이관목 | 10,000 | 전태일 | 11,000 | 홍종규 | 5,000 | ||
| 김용래 | 15,000 | 배영주 | 10,000 | 이광원 | 5,000 | 전향미 | 10,000 | 홍종호 | 10,000 | ||
| 김용분 | 33,000 | 배익환 | 10,000 | 이광진 | 10,000 | 전현영 | 10,000 | 홍혜련 | 5,000 | ||
| 김용원 | 5,000 | 배준형 | 15,000 | 이규봉 | 30,000 | 전희선 | 5,000 | 황규민 | 10,000 | ||
| 김용철 | 10,000 | 배진주 | 1,000 | 이규호 | 5,000 | 정경석 | 20,000 | 황덕수 | 10,000 | ||
| 김용혜 | 5,000 | 백경주 | 10,000 | 이규홍 | 10,000 | 정관수 | 30,000 | 황만하 | 10,000 | ||
| 김우연 | 20,000 | 백대윤 | 30,000 | 이근범 | 5,000 | 정권영 | 10,000 | 황명진 | 30,000 | ||
| 김운석 | 5,000 | 백순미 | 20,000 | 이근용 | 5,000 | 정나현 | 20,000 | 황부월 | 20,000 | ||
| 김유나 | 5,000 | 백승미 | 10,000 | 이기열 | 30,000 | 정낙찬 | 10,000 | 황성미 | 5,000 | ||
| 김유라 | 10,000 | 백승순 | 10,000 | 이기영 | 10,000 | 정덕영 | 11,000 | 황수영 | 3,000 | ||
| 김유중 | 10,000 | 백승주 | 5,000 | 이기훈 | 30,000 | 정문권 | 10,000 | 황숙경 | 10,000 | ||
| 김유진 | 5,000 | 백승호 | 5,000 | 이남규 | 15,000 | 정미숙 | 20,000 | 황숙경 | 10,000 | ||
| 김윤서 | 5,000 | 백영택 | 10,000 | 이남효 | 5,000 | 정미예 | 10,000 | 황순하 | 1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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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 : 각 언론사 복지부, 사회부 및 사진부 기자
발신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사무국장 구창우 010-8747-1275)
제목 : [보도협조] 국민연금 손해배상소송 국민청원 기자회견
일시 및 장소: 12월 14일(수) 오전 10시 30분, 정부서울청사
1. 취지와 목적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참여연대’는 12월 14일(수) 10시 30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국민연금 손해배상소송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개최합니다.
–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참여연대’는 12월 1일 국민연금, 삼성, 최순실게이트 관련 국민청원인 모집 기자회견 이후 12일까지 약 열흘 동안 온라인과 거리에서 국민청원인을 모집하는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약 13,000명 국민들께서 청원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삼성 경영권 승계를 도와준 전 기금운용본부장 홍완선, 전 보건복지부장관 문형표, 이를 공모한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이재용 부회장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 이미 언론보도 등에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자신의 경영권 승계를 위하여 최순실에게 뇌물을 주고, 이를 통하여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국민연금의 손해에도 이재용의 편을 들도록 주도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에 노동·시민단체가 이들을 뇌물죄, 배임죄, 직권남용죄 등으로 고발하였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 그러나 형사절차와 별도로 국민연금은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씨, 이재용 부회장,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 문형표 전 장관 등을 피고로 하여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를 할 권리가 있습니다. 또한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이 손해배상청구를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 헌법 제26조, 청원법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국가기관에 대하여 청원을 제기할 수 있는 헌법상 및 법률상 권리를 부여하고 있으며, 국민의 권리로 이러한 손해배상청구를 요구하고자 합니다.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홍완선, 문형표 등 불법행위자에게 국민연금-삼성 게이트로 발생한 손해배상청구를 하도록 요구하고, 이를 통하여 다시는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부당하게 악용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2. 개요
○ 제목: 국민연금 손해배상소송 국민청원 기자회견
○ 일시와 장소: 2016년 12월 14일(수) 오전 10시 30분, 정부서울청사
○ 주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참여연대
○ 참가자
– 사회: 안진걸(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상임운영위원,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 발언1: 국민연금-삼성 게이트에 대한 설명/ 정용건(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집행위원장)
– 발언2: 국민연금 가입자 대표 발언/ 정혜경(민주노총 부위원장,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 이정식(한국노총 사무처장,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
– 발언3: 노동시민단체 대표발언/ 변희영(공공운수노조 국민연금지부 위원장), 이권능(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실장), 서성민(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정책연구원장)
– 발언4: 국민연금 손해배상 소송 국민 청원인 모집 경과 및 청원 취지 및 개요 설명/ 김남희(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 기타: 기자회견 후 손해배상소송 국민청원 퍼포먼스 진행
3. 귀 언론사의 취재와 보도를 요청합니다. 끝.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요즘 ‘1초 김고은’이라는 애칭이 붙었다. 대학 시절 사진이 공개된 이후 네티즌들이 영화배우 김고은ㆍ수애씨와 외모가 닮았다고 칭찬하면서다.
대학 동기인 유시민 작가가 한 방송에서 “2초만 닮았다”고 놀리자 심 후보가 지지 않고 “1초 정도만 그렇다”고 맞받아 치면서 치받으면서 ‘1초 김고은’으로 정리됐다.

25년 노동운동, 진보정치 외길
심 후보는 다른 이름도 많다. 25년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그는 ‘철의 여인’이라는 이름으로 더 오래 불렸다. 민주금속연맹을 거쳐 금속산업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에서 사무차장으로 일한 인연 때문이다.
진보정치 외길을 10여년 걸으면서 ‘심다르크’(심상정+잔다르크)라는 별명도 얻었다.

1985년 사상 최초의 정치연대 파업투쟁으로 불리는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던 20대에는 미싱사 ‘김혜란’이었다. 구로공단에서 10대 소녀들과 ‘미싱밥’, ‘실밥’을 나눠 먹으며 근로기준법ㆍ노동3권을 부르짓던 때다. 하나같이 기득권과 맞서 싸워왔던 시간들이기도 하다.
심 후보는 지난 1월 “열심히 일하면,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의당 19대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한다”며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국민 여러분께서 정의당에 던지는 지지만큼 한국 사회는 개혁될 것입니다. 국민께서 심상정에 주는 지지율만큼 고단한 청년과 여성들의 삶은 개선될 것입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는 정의당이 더 강해지는 만큼 우리 정치가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한다”며 “정의당을 미래 대안정당으로 우뚝 세워 나가기 위해 대통령 후보로서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심 대표는 최근 ‘심블리’로도 불린다. 본명에 ‘러블리’(사랑스러운)가 합쳐진 이름이다. 대중의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유권자들의 관심 속에, 세 번째 도전 만에 첫 완주를 앞두고 있는 심 후보가 과연 어떤 결실로 일궈 낼지 주목된다.
심 후보는 1959년 경기 파주 광탄면의 한 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이던 아버지 심명택씨 슬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학년당 학급이 하나뿐이었던 작은 학교, 도마산초등학교를 다니다 4학년을 마칠 때쯤 서울 은평의 대조초교로 전학간 뒤 그곳에서 줄곧 살았다. 자녀 교육을 위해 아버지 심씨가 내린 결단이었지만, 심 후보는 학교 밖 세상을 더 궁금해 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야구에 미쳤다. 야구명문 충암고와 같은 재단인 충암여중에 진학해 고교야구 응원전에 자주 동원된 때문일까. 장효조ㆍ김재박 선수를 쫓아다니며 학생 기자 활동까지 했다.
심 후보는 2008년 펴낸 책 ‘당당한 아름다움’에서 “확 트인 초록색 운동장과 함성으로 혼연일체가 되는 어울림이 즐거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명지여고에 진학해서도 남들이 과외 공부에 매달릴 때 종로 태화관을 드나들며 영어회화 모임을 만드는 등 교외 동아리 활동에 시간을 쏟았다. 이미 고 2때 재수를 결심했다고 한다.

심 후보의 꿈은 애초 교육자였다.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거듭 응시해 1978년 합격했다. 아버지도 교사였고 언니도 교사였던 영향이 컸다.
‘긴급조치 세대’로 시위현장을 누비기도 했지만,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7㎝ 높이 하이힐 차림의 얼치기 운동권에 가까웠다.
심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재수까지 해서 대학 들어가면 지긋지긋한 참고서 말고 책 실컷 읽고, 여행 맘대로 다리고, 연애 멋있게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괜찮다 싶은) 남학생들 찍어서 뒤를 좇다 보면 영락없이 운동권인 거에요. 그 세계를 들어가야겠더라”라고 말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읽은 책 한 권이 뚜렷해 보이던 진로를 뒤흔든다. 심 후보가 “내 인생의 진로를 밝히는 등불”이라고 표현하는 ‘전태일 평전’이다.

직업훈련소를 다니며 어렵사리 미상사 자격증을 딴 뒤, 구로공단으로 가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심 후보는 ‘걸크러쉬’(여성이 다른 여성을 선망하거나 동경하는 마음)의 면모를 과시한다. 여학생을 ‘학회의 꽃’, ‘학생회의 꽃’ 으로나 생각하던 때다. 당시 운동권에서도 만연했던 가부장제 문화를 깨기 위해 나섰다.
1980년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만들었고, 초대 총여학생회장에 선출된다. 여학생만의 학회도 만들었다. 여성이 보조역이 아닌 주체로 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구로공단에서 야학활동을 하던 그는 구로3공단 남성전기에 ‘김혜란’이라는 이름으로 취업하면서 눌러앉는다.
13~16세의 어린 여공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다림질용 프레스 기계에 손이 눌리는 끔찍한 산업재해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경험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1983년 세 번째 직장인 대우어패럴에서 미싱사로 취업했지만, 1985년 해고된다. 그 해 6월 대우어패럴 노조 지도부가 구속되면서 ‘구로동맹파업’이 발생한다. 이 파업은 구사대 폭력과 경찰의 탄압으로 1주일 만에 끝났다.
심 후보는 노동사상 최초의 정치연대 파업투쟁으로 불리는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 된다. 국가보안법위반 혐의까지 씌워졌다.
미상사로 받던 월급이 8만원이었던 당시 현상금만 500만원이었다. 경찰에게는 1계급 특진 포상도 걸렸다.
심 후보는 9시 뉴스 화면에서 지명수배 소식과 함께 자신의 얼굴이 뜨는 것을 숨어서 지켜봤다. 그는 “서울대 사범대에 합격했을 때, 온 동네에 자랑을 하고 다니던 아버지는 운동권 딸이 전국에 지명 수배되자 말을 잃으셨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9년간 이어진 수배 생활의 시작이다. 구로동맹파업으로 1,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해고됐다.
심 후보의 소재를 밝히라며 지인들에게 가해진 모진 고문은 더 큰 상처였다. 물 고문, 전기 고문 등 극악한 인권 탄압이 횡행했던 시절이다.

구로동맹파업 공개 상황실이 위치했던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심상정이 있는 곳을 대라”고 다그침을 받으며 전기 고문을 받다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대학 후배로 유시민 작가의 친동생이기도 한 유시주 희망제작소 기획이사 등도 물고문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심 후보는 9년의 도피생활 끝에 1993년 체포됐다. 오랫동안 전담반을 따돌려 온 거물이 잡혔다는 소식에 “얼굴 좀 보자”고 수사관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재판 끝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만삭의 몸으로 재판장에 선 심 후보를 본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고 싶으나 관련 법규가 최소한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정부는 2001년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줬다.
심 후보는 수배자 신분이었을 때도 노동운동에 주저함이 없었다. 구로동맹파업을 계기로 기업 단위의 노동조합을 뛰어 넘는 대중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탠다.
1985년 8월 창립된 서노련은 이듬해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된다. 보안사령부를 동원한 관련자 구속과 고문 등의 탄압을 받으며 사실상 해체된다.
심 후보는 뒤이어 1988년 전국노동단체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쟁의국장ㆍ조직국장 등의 중책을 맡는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발전적 해체를 하며 1995년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만들어진 뒤로 심 후보는 민주금속연맹ㆍ금속산업연맹에서 활동했다.
금속연맹이 산별 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으로 발전해서도 사무차장으로 자리를 지켰다. 금속노조는 2003년 국내 최초로 산별 중앙교섭을 통해 ‘임금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 도입 합의를 이끌어 낸다.
심 후보에게 ‘철의 여인’이란 별명이 생긴 게 이 때다.
노동운동가로 25년 외길을 걸었던 심 후보는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 비례대표 1번으로 17대 국회에 입성한다. 진보정당 원내진출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어깨에 짊어졌다.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었지만, 경제 분야에서 발군의 역량을 과시한다. 경제부처에서 장ㆍ차관을 역임한 의원들이 혀를 내 두를 정도였다.
일례로 등원 첫해 국정감사에서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를 상대로 재경부가 역외선물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방어하다 1조8,000억원 가량의 외환보유고를 날린 사실을 추궁해 밝혀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를 주도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지배구조 및 승계 문제 등 삼성의 편법ㆍ탈법ㆍ불법 행위를 밝혀내며 ‘삼성 저격수’, ‘재벌ㆍ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17대 국회에서 여야를 통틀어 최고의 의정활동을 보인 국회의원으로 꼽혔지만, 2008년 총선 경기 고양 덕양갑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고양 덕양갑에 재출마해 170여표 차이의 신승을 거두며 수도권 최초의 진보정당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
하지만 시련이 연이어 닥쳤다.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통합진보당이 19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구 당권파에 의해 부정투표가 이뤄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홍에 휩싸인다.

5월 열린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심 후보 등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지만, 폭력사태가 벌어지면서 사태가 악화된다.
8월 부정투표의 수혜자로 꼽혔던 이석기ㆍ김재연 당시 의원의 제명안이 의원총회에서 부결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심 후보는 결국 탈당을 택한 뒤 진보정의당을 거쳐 지금의 정의당을 창당한다.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도 연거푸 당선돼 진보정당 사상 첫 3선 중진의원이 된다.
심 후보 대선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권영길 전 의원에게 패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진보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지만,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단일화라는 대의 속에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며 후보 직을 사퇴했다.

부담은 앞선 두 번의 도전에 비할 수 없이 크다. 진보정당의 부활, 명가의 재건이라는 과제가 모두 심 후보의 어깨에 실려 있다.
앞선 15~17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얻었던 득표율 3%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조기대선이라는 환경은 의석 수 6석의 초미니 정당인 정의당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수세에 몰리기라도 한다면 또다시 정권교체를 대의로 하는 후보단일화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심 후보는 두 자릿수 득표를 자신하며 “이번엔 끝까지 완주한다”는 말로 필승각오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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