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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촛불 1주년 대회: 촛불은 계속된다

[공지]촛불 1주년 대회: 촛불은 계속된다

익명 (미확인) | 월, 2017/10/23- 17:27

지난 겨울 시린 손을 불어가며 새로운 사회를 외쳤던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촛불 1년, 지난 1년을 돌아보며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새로운 사회에 대하여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만들어봐요!

 

촛불 1주년 대회! 촛불은 계속 된다!

10월 28일(토) 저녁 6시 광화문광장에서 만나요!

※ 화문광장에서 인천평화복지연대 깃발을 찾아주세요~^^

 

함께 가실 회원님들은 오후 4시 30분까지 부평역플랫폼 (서울행 맨 앞)에서 만나요! ^^

 

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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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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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인원 892만 명.

지난 10월 29일 첫 집회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9차례 전국적으로 열린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촛불집회는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민심을 하나로 묶여내는 거대한 용광로였다.

2016년 촛불 집회에는 자발적인 시민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정유라의 이대 특혜 입학 비리에 분노한 중, 고등학생이 눈에 띄었고,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가족 단위 참여자들도 적지 않았다.

▲ 주부 김영경 씨는 "언제까지나가 아니라 해결될 때까지 힘닿는 데까지 아마 다른 분들도 다 저와 똑같은 심정일 거예요. 아기 엄마들도 나오는데 애들 다 키운 우리 같은 사람이 당연히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광화문 광장에 나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 주부 김영경 씨는 “언제까지나가 아니라 해결될 때까지 힘닿는 데까지 아마 다른 분들도 다 저와 똑같은 심정일 거예요. 아기 엄마들도 나오는데 애들 다 키운 우리 같은 사람이 당연히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광화문 광장에 나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이 만난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손현주 씨 가족도 그렇다. 세 자녀를 둔 손 씨는 12월 3일 6차 촛불집회에서 아들 이한 군과 과 함께 자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중학생인 이한 군은 “거의 온 국민이 같은 뜻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래도 아직 빛이 남았다라는 점을 느끼게 됐다”고 촛불집회 참여의 의미를 말했다.

▲손현주 씨 가족도 촛불집회에 참여한 평범한 시민이다.

▲손현주 씨 가족도 촛불집회에 참여한 평범한 시민이다.

촛불집회 자유발언으로 유명세를 탔던 이른바 ‘속고 아줌마’ 김경덕 씨(60살/부산 가덕도 거주)는 새누리당 열성 지지자였다. 지난 10년 간 꼬박꼬박 당비를 낸 진성 당원이었고, 박정희 대통령 덕에 우리사회가 잘 살게 됐다고 굳게 믿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변함이 없었다.

▲ 가덕도에 사는 김경덕 씨, 촛불집회에서 ‘화끈한 대국민 사과’발언을 했다.

▲ 가덕도에 사는 김경덕 씨, 촛불집회에서 ‘화끈한 대국민 사과’발언을 했다.

그런데 박근혜 –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김 씨는 지난 두달 동안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와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다. 그의 참여 동기는 이렇다. 어린 손자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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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국사회를 말할 때 촛불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892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들은 어떤 목소리를 내고자 나왔는지 취재했다. 촛불의 목소리를 정리하는 것이 곧 2016년 한해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취재작가 곽이랑
글 구성 김근라
취재연출 김성진, 이우리

금, 2016/12/3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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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개혁인천행동(준)  정세특강

2017 정치개혁과 민주주의 강화는 가능한가?

 

○강 사 :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일 시 : 2017년 9월 12일 16시
○장 소 : 인천광역시사회복지회관 6층교육장
○참가비 무료

 

 

 

 

 

목, 2017/08/31-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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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평화복지연대”를 통해 복지와 평화를 꿈꾼다

 

신진영ㅣ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사무국장

인터뷰  이경민ㅣ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정리  최유민 ㅣ자원활동가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는 지난 10년 동안 건강권․복지권․인권을 모토로 보편적 복지 확대를 위한 운동을 진행했으며, 평화와참여로가는인천연대(이하, 인천연대)는 부평미국기지 반환운동 등 풀뿌리 시민운동을 20년 동안 꾸준히 해왔던 단체이다. 이처럼 인천 내에서 진보 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했던 두 단체가 “인천평화와연대”로 통합할 예정이다.

 

7월 18일 창립총회를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신진영 국장을 만나 새롭게 탄생(?)하는 앞으로의 인천평화와연대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인천은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복지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지역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

 

 대학을 인천에서 다녔다. 그것이 인천과의 첫 번째 인연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데...아버지가 늦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하고, 빚이 어마어마하게 생기게 되었다. 당시 이런 상황을 만든 무능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 그러나 대학을 가서 보니, 이런 상황이 단지 개인적인 문제는 아닐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 이러한 구조 속에서 누구나 속수무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동의 소외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지역운동에 뛰어 들었다. 처음 운동을 했던 곳은 인천은 아니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 선후배들, 동네 분들과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밑반찬을 만들어 배달하는 등 공동체 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 선배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을 연구해보라는 과제를 던져(?)주었는데 이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 아차산역에 있는 장애인 청년학교에 조언을 구하러 갔었다. 그동안 나는 장애인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하는 소극적 대상으로 장애인을 바라봤는데, 여기서 장애인 당사자주의와 자립생활 패러다임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나의 시각이 바뀌게 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후, 장애 복지운동을 한참 했었다. 이 인연을 계기로 예전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보좌진으로 들어가 장애인 정책일을 약 2년 정도 했었다. 국회에서 사회 정책 관련 일을 하면서 정책 변화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책만 내세워서는 바뀔 수 있는 구조가 아니겠구나 생각하고 사회복지를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과 현장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현장에 있으면서도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공부를 더 할 생각인가?

 

 대학 때, 페미니즘에 대해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별 관심이 없었고, 결혼 전에 성차별은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결혼이후, 여성의 소외? 등을 경험하면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스웨덴 같은 경우, 여성 가족 정책으로부터 복지국가의 체계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도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돌봄의 영역, 노동의 문제까지 결합되어 복지국가로 나가는데 여성가족정책이 진일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지방분권에 관한 문제, 여성가족정책에 대한 문제 등을 더 공부해 보고 싶어 진학하게 되었다.

 

대단한 열정이다.‘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의 주요 활동은 무엇인가?

 

 올해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가 10년째 되는 해이다. 10년 비전위원회 회의에서 ‘확장이냐? 집중이냐?’를 놓고 논의를 했었다.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는 그동안 사회복지협의체 활동 및 사회복지예산을 분석하고 정책 제안을 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사회복지 예산 분석을 하다보니 다른 분야 예산과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어 예산 분석 활동이 확장되고, 점점 재정감시, 권력감시 활동으로 운동이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의 모토가 ‘건강권, 복지권, 인권’을 지향하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교육, 보육, 주거 등 모든 문제와 맞닿아 있어 운동이 방대해 졌다.

 

 그러나 활동가들의 인원수가 적고, 운영재정이 넉넉하지 않다보니 운동의 여력이 없게 되어 10주년이 된 지금, ‘확장이냐? 집중이냐?’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이런 고민들로 인천연대와 통합하기로 하고 새로운 시민단체 창립을 준비하게 된 것인가?

 

 그렇다.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는 올해로 10년이 되었고, 인천연대는 20년이 되어 우리 단체가 앞으로 나아갈 바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던 것처럼 인천연대도 동일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비전을 놓고 고민하던 중에 윤홍식 교수님이 평화복지에 대한 개념을 내 놓으셨고, 인천의 지역적 특성상 분단 상황과 만날 수밖에 없어 평화복지개념을 확장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인천평화복지연대’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고 현재 준비 중이다.

 

평화복지, 새로운 개념이다.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이 있다. 스웨덴 모델과 같은 적극적 복지국가의 모델이 우리나라에 적용이 잘 안되는 것이 분단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분단을 해결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지점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평화복지를 가지고 확장전략으로 가는 것이 시대의 요구에 맞지 않겠느냐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인천연대와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의 활동이 공통된 부분이 있어 함께 논의를 하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리하여 2014년부터 인천연대와 함께 통합 논의를 해왔다. 다른 시민단체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특히, 울산경실련과 울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통합하여 울산시민연대를 만들었는데, 울산에 가서 직접 통합과정 및 통합이후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였다. 통합을 위해 SWAT 분석, 토론회 등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결국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와 인천연대가 통합을 위해 합의한 것은 평화복지를 인천에서 실현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단체가 만나서 의제와 지역 조직이 만나게 되면 엄청난 시너지가 있을 수 있으며 시민운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 믿는다.

 

단체가 서로 통합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인천연대랑 통합하게 되면 체계가 어떻게 되는 건가?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에 상근자는 총 3명이고, 3명이 더 합류하게 되어 사무국에 총 6명이 근무하게 된다. 사업위원회는 평화통일위원회, 사회복지위원회, 교육위원회, 사회적경제위원회 총 4개의 위원회로 구성하여 활동할 예정이며 인천연대는 원래 7개의 지역조직이 있어 그 조직을 계양․남구․남동․부평․서구․연수․중동평화복지연대로 하여 지역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부설기관으로 참여예산센터, 시민보건환경센터, 더불어살기좋은공동주책지원센터가 있다.

 

통합하게 되면 맡은 역할이 무엇인가?

 

 현재 인천평화복지연대 준비위원회 협동사무처장이며, 통합이 되고 나서는 사회복지위원회을 맡을 예정이다. 인천연대는 현재 지역 회원들과 한 달에 한 번 회원모임을 하고 있다. 이 모임을 이어가기 위해 분과를 사회복지 종사자 분과, 보건의료 분과, 교육복지 분과 등으로 나누어 회원들과 공동체 모임을 진행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복지관, 시민단체, 여성회 등과 함께 지역공동체, 공동체복지네트워크를 만들어 보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또한 시민단체, 복지관, 장애인복지관협회, 노인복지관협회 등이 서로 각자의 운동을 뛰어넘어 동네를 넘나들며 함께 할 수 있는 ‘동네복지운동’을 계획하고 있다. 각 구별로 복지를 매개로 한 동네복지를 할 수 있는 각 핵심 사업을 정하는 논의 중에 있다. 당장은 합체가 어려우므로 내년 2월까지는 숙성기로 정해서 각 구별, 조직별로 복지를 매개로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사업들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재미있는 사업이 될 것 같다. 반면 이런 운동이 탄력을 받으려면 인프라 확충이 중요할텐데...그러나 인천은 인프라가 굉장히 열악한 지역이다.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아쉬운 부분이다. 인천이 꽤 큰 도시임에도 인적 인프라가 굉장히 적은 곳이다. 인천대도 사회복지학과가 신설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인하대는 아직까지 사회복지학과가 없어 전문가를 섭외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학연, 지연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지역운동을 하는데 인프라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의지할 수밖에 없다. 참 아쉬운 지점이다.

 

 여하튼 현장 전문가를 중심으로 사회복지위원회를 구성하려고 한다. 사회복지 종사자와 같은 경우, 종사자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자꾸 인천을 벗어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2009년에 사회복지종사자 권익위원회를 만들었다.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인천사회복지사협회, 인천사회복지협의회가 주축이 되어 종사자 권익과 관련된 활동을 계속 해왔다. 앞으로도 현장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심축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또한 지역에 있는 현장 전문가들은 지역 복지를 사회복지 가치에 맡게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님이 사회복지위원회를 맡아주기로 하셨는데, 교수님을 통해 중앙의 의제에 대한 대응 활동들을 현장 간담회, 복지 아카데미 등을 통해 현장 종사자들에게 전달하여 복지국가라는 목표와 활동이 만나는 지점을 만들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두 단체가 통합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단체의 결합으로 더 큰 시너지를 얻어 인천 곳곳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천평화복지연대’가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풀뿌리 지역공동체운동으로 성장할 수 있길 바란다. 많은 인천시민의 참여와 관심 부탁한다.

금, 2015/07/1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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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광화문 집회 현장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박.래.군. 사람들은 말한다. ‘우리 모두가 박래군이다’ ‘박래군을 석방하라’ 도대체 박래군이 누구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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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6일, 인권운동가 박래군이 구속됐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 등을 불법 주도했다는 혐의다. 구속 당시 그의 직함은 4.16 연대 상임운영위원이었다. 인권운동가로 살아온 지난 25년 동안 그의 이름 앞에 붙었던 수식은 수도 없이 많았다. 용산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평택미군기지 저지 범국민대책위 대변인, 쌍용차 희망지킴이, 밀양 송전탑 앞에서는 할머니의 아들이었고, 제주 강정에서는 어민의 아들이었고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겐 형님이었던 사람이었다.. ‘박래군’은 대한민국에서 억압받아온 ‘인권’의 동의어였다.

1988년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에서 시작해 27년 동안 인권운동에 투신해 온 박래군. 그에게 성별, 피부색, 신체적 조건 등 어떤 것도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었다. 농민 사이에선 농사꾼으로, 공장 노동자 사이에선 노동자로, 유가족 곁에선 유가족의 아픔을 가장 잘 이해할 줄 아는 타고난 인권운동가였다. 그 힘은 그 자신의 아픈 가족사에서 비롯됐다.

박래군을 알아가는 과정은 대한민국 인권운동의 역사를 더듬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의 대학 시절 선배부터 최근까지 함께 했던 세월호 유가족까지 ‘박래군이 지키려했던 인권’을 묻는다.

목, 2015/08/06-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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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문재인 후보가 세월호 유가족 대신 단식하는 동안 사용한 정치 자금 사용 내역에 밥값이 포함되어 있는 커뮤니티 글을 보았습니다. 누가 식대로 썼는지 밝혀주세요.

– 시민 변OO님의 팩트체크 요청

 

A. 2014년 7월 14일 단원고 학생 유민이의 아빠인 김영오씨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단식 기간이 길어지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김 씨의 단식 중단을 권유하기 위해 8월 19일부터 28일까지 동조 단식을 했습니다.

2014년 8월 24일 동조단식 6일째의 문재인 의원

▲ 2014년 8월 24일 동조단식 6일째의 문재인 의원

그런데 지난 3월초부터 디씨인사이드 주식갤러리와 트위터, 블로그 등에는 당시 문재인 의원이 단식 중에 감자탕과 커피를 사먹었다는 글이 수십건 씩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문 의원의 정치자금 사용내역에 나온 자료를 바탕으로 나온 의혹 제기였습니다.

그런데 19대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이 18일(어제) ‘단식 중에도 식비는 계속 지출한 문재인 후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습니다.

“문재인후보의 단식기간 정치자금 사용내역을 보면 호텔, 감자탕집, 커피전문점, 빵집, 빈대떡 집 등이 사용처로 기록되어 있다”면서 정치자금법 제2조(기본원칙) 제3항에 의하면, “정치자금은 정치활동을 위하여 소요되는 경비로만 지출하여야 하며, 사적 경비로 지출하거나 부정한 용도로 지출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세월호특별법에 대처하는 민주당의 무능함을 덮기 위한 가짜단식은 아니었는지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에 대해 유은혜 더민주 캠프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후보는 2014년 8월 19일부터 9일간 단식을 했고, 이렇게 단식한 사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런 것을 가짜 단식이라고 말씀하시면 안 된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당시 문 후보의 단식은 가짜단식이었을까요? 지출된 식비는 문 의원이 사용했을까요?

문재인 의원실이 선관위에 보고한 19대 국회의원 정치자금 지출내역에서 단식 기간 동안의 지출내역은 모두 24건이었고, 이 중 11건이 간담회 식비와 다과비 지출이었습니다.

연월일 내역 지출액 사용처 분류항목
2014.8.19 간담회비 18,000 (주)코리아나호텔 간담회-식대
2014.8.20 간담회-식비 47,000 이모네감자탕 간담회-식대
2014.8.21 간담회비 5,900 할리스세종로점 간담회-다과
2014.8.21 간담회비 25,300 할리스세종로점 간담회-다과
2014.8.22 간담회비 29,400 할리스세종로점 간담회-다과
2014.8.23 간담회비 15,700 할리스세종로점 간담회-다과
2014.8.23 간담회비 35,900 할리스세종로점 간담회-다과
2014.8.26 간담회비 16,600 할리스세종로점 간담회-다과
2014.8.26 간담회비 16,800 할리스세종로점 간담회-다과
2014.8.26 간담회-식비 22,800 파리바게뜨(신길성애) 간담회-다과
2014.8.28 간담회-식비 36,000 종로빈대떡(광화문) 간담회-식대

이에 대해 문재인 의원실은 “당시 문 의원의 단식 기간 동안에 지출된 내역은 문 의원이 사용한 것이 아니라 세월호 단체나 종교 단체에서 위로 방문을 왔을 때 보좌관들이 사용한 내역으로 모두 단식장 근처의 카페나 식당에서 지출된 것이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당시 문 의원의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당직자나 보좌진들이 주변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이 때 보좌관들이 사용한 경비라는 것입니다.

실제 사용처 이름을 보면 ‘할리스세종로점’ 등 대부분 광화문 주변에 있는 카페나 음식점들입니다.

의원실 측은 농성 현장이라는 특성상 오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당시에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방문했을 때 지출한 것인지 근거자료를 내놓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문 의원실의 해명이 사실인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대선 후보 출신에 당 대표까지 했을 정도로 주목받는 정치인이 인적이 붐비는 카페나 식당을 방문했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또 당시 단식 농성장은 공개된 장소였기 때문에 농성중이던 천막으로 보좌관이 음식을 사왔을 가능성도 높지 않아 보입니다. 단식 중인 사람이 커피를 그렇게 자주 마실 이유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보좌진들의 지출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정치자금법 제2조 제3항의 사적 경비 지출 여부에 대한 판단은 사용처나 사용자가 아니라 내역 건마다 지출 목적이 적절한가가 중요하다”며 “의원이 직접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보좌진이 의원의 의정활동과 관련해서 목적에 맞게 지출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49일 동안 단식을 이어갔던 김영오 씨는 “22일에 병원에 실려간 뒤에도 문재인 의원이 병원에 찾아왔을 정도로 같이 힘들어 하며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서 “보좌관들이 문 의원 옆에 같이 있으니까 찾아오는 손님도 많고 식비 같은 것들이 생기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에 현장에 찾아오지도 않던 사람들이 세월호 단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입장”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취재 : 연다혜

수, 2017/04/19-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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