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21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8년 1월 8일(월)부터 2월 14일(수)까지 6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27명의 청년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직접행동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합니다. 이번 후기는 정이수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방중마다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 청년참여연대 더 알아보기(클릭)
이번 강의를 통해서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평화운동들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이러한 운동들이 국제사회와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배웠다. 사실 한국의 특수성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핵 무기’, ‘군사 기지’, ‘방위 산업’ 등과 같은 얘기들을 많이 들어왔다. 또한 고향이 파주다보니, 어린 시절부터 탱크나 헬기를 길에서 보았고, 총과 대포 소리도 들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군 복무를 했기 때문에 국방 관련 일들이 낯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접할 수 있었다. 핵 확산을 금지하기 위한 조약인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핵 보유국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해주는 불평등 조약이었다는 점, 핵협상의 부재로 인한 북핵의 발전 정도와 위험성, 6자 회담의 부재 이후 ‘울란바토르 프로세스’라는 민간 차원의 6자 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 한미 군사 동맹과 이에 따른 군사 기지 건설과 이전 과정에서의 문제, 그 중에서도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 아시아에서 한 때 유일했고 여전히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되는 무기 전시회에 관한 설명과 문제점, 그리고 무기수출 문제 등 다양한 한국평화운동 전반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국제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강의를 듣고 나서 든 생각 중 하나는 ‘참 조그만 나라에서 국제적으로 큰 문제들이 많이도 일어난다...’였다. 식민 시대와 한국 전쟁, 남북 분단 이후 지금까지, 국제 역학 관계 속에서 우리 민족이 참 힘들게도 살아왔고,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안타깝다. 강의 시간에 들었던, 북핵이 30개 이상이 되면 ‘핵 보복’이 가능하게 되어 그 때가 되면 핵 협상 및 평화 협상을 이루어 내기란 정말 어려워질 것이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지만, 희망적이게도 최근 들어 단절되었던 북한과의 대화가 다시금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시작이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기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해결 과정에서 국제 역학 관계에 따라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민단체만이 아닌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 또한 앞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며,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은 행동하도록 해야겠다.
참여연대 21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8년 1월 8일(월)부터 2월 14일(수)까지 6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27명의 청년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직접행동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합니다. 이번 후기는 김도담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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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방중마다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 청년참여연대 더 알아보기(클릭)
강연 제목만 듣고도 끌렸다. 왜냐하면 나는 이 강연의 제목 그대로 평소 그렇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지 얼마 안 된 28세의 평범한 직장인이다. 돈을 매달 일정액 벌지만 실제로 돈이 쌓이거나 경제적으로 뭔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오히려 빚이 조금 있다. 대학 재학시절 받았던 약간의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대출, 주거마련을 위한 은행대출, 대학원 준비를 위해 했던 신용대출까지 도합 1000만원 가량의 대출이 있다. 내게 이건 매우 슬프고 우울한 사실이다. 이제 갓 독립적인 사회인으로 한걸음 내딪으려 하는데 빚이라는 족쇄가 시작부터 내 발목을 단단히 묶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서민가정에서 자라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현저히 부족한 배경이 아님에도 이렇게나 빚이 많다니.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느낌을 마음 한켠에 가지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영섭 강사는 나의 경우처럼 청년들이 이렇게 빚이 많은 게 청년들 스스로가 뭔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자신 있게 말해주었다. 강연을 듣는 내내 고개가 수없이 끄덕여 졌다. 무엇보다도 강사님의 청년을 위한 진정성이 와 닿았다. 본인도 청년 당사자로서 이 문제에 대한 심각성에 주목하고, 목소리 높여 같은 청년들에게 연대와 관심을 요청하는 모습 말이다. 그는 현재의 신자유주의가 파생시킨 이러한 현상들을 비교적 세밀하게 분석하고 진단하였다. 그리고 ‘살림살이 경제’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이것을 이겨 내자고 주장한다. 돈‘만’이 사회가치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과 함께 다른 측면들-생태적,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부-을 고려하여 전인적, 다차원적 측면으로 욕구를 조달할 방법을 제시 하였다. “나와 나의 공동체의 좋은 삶을 위한 부를 모색하자.” 나는 그의 이 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부를 단순히 돈과 관련된 그 어떤 것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라는 것 말이다. 그렇지 않은가, 인간이 본디 돈을 수단으로서 다른 욕구를 충족 했는데 돈 자체가 최종적인 욕구가 되어서 인간은 뒷전이 된 현재의 세태는 문제가 매우 심각하지 않은가. 돈은 돈일뿐 이다.
좋은 강연이었다. 열정적인 강사, 몰입한 청중, 공감적인 주제. 계속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참여연대 21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8년 1월 8일(월)부터 2월 14일(수)까지 6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27명의 청년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직접행동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합니다. 이번 후기는 조민재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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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방중마다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 청년참여연대 더 알아보기(클릭)
“만약 건축가가 독단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선택하고 표현하는 데 그친다면, 우리가 건축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시각적 유희의 형태·이것을 만들어낸 기술적인 재주나 솜씨 그리고 건축가의 이름뿐일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눈을 만족시킬 수는 있지만 우리를 의미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 하고,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변화시키지도 못할 것입니다.”
건축가 김명식 씨가 펴낸 『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라는 책의 일부입니다.
지난 1월 24일 저는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1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전쟁기념관 그리고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다녀왔습니다. 두 곳은 모두 전쟁 때문에 빚어진 역사를 기억하는 곳이지만 정 반대의 성향을 갖는 곳입니다. 그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했고 21기 활동 중 가장 보람 있는 체험 중 하나였습니다.
상승의 기억, 전쟁기념관
선열들의 위국헌신을 기리고 평화의 소중함을 배우는 호국안보 교육의 장. 전쟁기념관의 설립 목적입니다. 저는 기념관을 둘러보면서 혼란스럽고 씁쓸했습니다. 군을 필두로 한 ‘애국자’들이 생각하고 원하는 평화란 무엇일까. 전쟁에 뒤따르는 부속에 불과한 것일까. 어쩌면 사치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햇빛이 기념관 앞 광장에 부딪혀 밝게 빛났지만 마음 한 편엔 오히려 그늘이 짙게 드리웠습니다.
기념관은 정문에서부터 계단을 올라 꼭대기까지 올라오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건물에 오르기까지 관객은 용사상, 수많은 부대의 깃발, 전투를 묘사한 부조와 마주합니다. 기념관 입구에 다다르면 6·25 전쟁 등에서 숨진 전사자의 명패가 저 끝까지 이어져 관객을 압도합니다.
기념관은 9개의 전시실로 이뤄져 있는데 그 중 3개가 6·25 전쟁에 관한 전시실입니다. 6·25 전쟁실I부터 들어가 봤습니다. 해설사가 초등학생들에게 북한의 남침 배경을 설명하는데 어떤 말이 귀에 박혔습니다. ‘살인병기 조선의용군’ 조선의용군은 1940년대 중국 본토와 만주에서 일제에 맞서 싸운 군대입니다. 그러나 해방 후 남한이 아닌 북한을 택했다는 이유로 이들은 독립운동가가 아닌 살인병기로 기억되고 있었습니다.
Ⅰ·Ⅱ·Ⅲ 전시실까지 각각의 전시실에는 전쟁 유물과 시청각 자료들이 시간 순서에 따라 배치되어 있습니다. 관객들이 6·25의 발발부터 휴전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체험하고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우리 국군에 대한 자긍심을 갖도록 의도한 결과입니다. Ⅱ전시실은 특히 그런 의도가 민망할 만큼 강하게 드러나는 곳인데요.
국군의 북진 섹션으로 가는 길은 바닥이 오르막으로 되어 있고요. 중공군의 개입과 흥남 철수 섹션으로 넘어갈 때는 바닥이 내리막입니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진격과 후퇴의 감정을 느끼고 동화되도록 설계한 것이죠.
해외파병실·국군발전실 등 다른 전시실도 영웅주의와 애국심을 인위적으로 고조시키는 장치투성이였습니다. 전쟁의 장면을 컴퓨터 게임처럼 묘사하는가 하면 백린연막탄 등 비인도적 무기가 버젓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공습·학살·성범죄 등 국가 공권력의 폭력과 이로 인한 피해상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베트남전 섹션의 경우 라이따이한 같은 우리 군의 그림자 대신 “백 명의 베트콩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 명의 양민을 보호한다.”로 대표되는 선한 부분만이 전시실을 채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추모하고 북한의 잔혹함을 규탄하는 게 잘못된 것은 아니죠.
하지만 선과 악, 규범과 비규범, 이성과 비이성이 충돌하고 혼재돼 있는 전쟁의 역사 가운데 자랑스러운 역사만을 편집해 보여준다는 데서 전쟁기념관의 문제가 비롯됩니다. 이런 편집으로 인해 전쟁 공간 속 각각의 인간들은 전쟁의 당위성을 뒷받침하는 소품 혹은 박제에 머무릅니다. 그리고 관람객들은 의심을 하면 사상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전시관 안에서 ‘멸공 전쟁’을 유일한 길이라 인식하고 돌아갑니다. 전쟁기념관은 그렇게 오늘도 목표 달성을 위한 개인 억압을 정당화하고 부당한 권력의 역사에 침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좋은 기억만 갖고 북쪽을 향해 상승 북진하는 뾰족한 화살표가 되어야 하는 걸까. 답답했습니다.
눈높이에서의 기억,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화살표로 빗대볼 때 앞서 둘러본 전쟁기념관이 위를 향한다면 이곳은 아래를 향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려면 눈높이를 맞춰야 하죠. 그럼 무릎을 굽히든 아니면 앉든 시선과 몸이 아래를 향하게 돼 있습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즉 ‘위안부’란 이름으로 끌려가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의 묻어둔 이야기를 자리에 앉아 듣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입니다.
이곳은 관람 동선 또한 아래를 향합니다. 총성과 군홧발 소리가 가득한 계단을 내려가면 피해자 할머니들의 말씀들이 벽돌에 박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내가 바로 살아있는 증거인데 일본 정부는 왜 증거가 없다고 합니까!” 하는 말씀이 마음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저를 분노하다 못해 가슴 저리게 한 것은 우선 당시 일본군에게 지급된 콘돔이었습니다. ‘돌격 1호.’ 여성을 욕구 해소의 대상 내지 소모품처럼 취급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물건이죠. 두 번째는 故 정서운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만든 애니메이션. 정말이지 “그 말을 어디다 다 할꼬.” 또 생계유지를 위해 미군을 상대하는가 하면 매독을 치료하지 못 해 기형아를 낳는 등 할머니들이 해방 후에도 빈곤과 후유증, 사회적 차별에 시달렸다는 점을 처음 알았습니다.
박물관을 다 보고 돌아가는 길에 관람을 같이 한 친구와 이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일본 정부는 언제 제대로 사과를 할까요?” 저희 둘은 씁쓸하고 막막한 마음에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 했습니다.
이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섭씨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에도 어김없이 일본대사관 앞에서 수요시위가 열렸고 저도 함께했습니다. 바람도 몹시 불어 너무도 손이 시리고 추웠지만 길을 가득 채운 시민들, 친구들과 같이 구호를 외치니 속에서부터 열기가 올라왔습니다. 그 와중에 일본 대사와 아베 총리가 우리의 외침은 아랑곳 않고 한가로이 점심을 먹고 있을 모습이 떠올라 피켓을 더 높이 들었습니다.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도 하고 그보다 아시아-태평양전쟁, 6·25전쟁, 베트남전쟁 피해자들의 머릿속은 여전히 생생한 전쟁터니까요. 피해자들은 국가 공권력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와 배상을 하는 날이 오길 기다리며 투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요지부동입니다. 일본 정부만 봐도 그렇죠. 군이 개입한 정황 등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인간으로서 보호받아야 할 10대 여성들의 몸과 마음에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사과는커녕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국내와 베트남에서 공권력에 의해 죽거나 다친 이들을 위해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간접 관할하는 전쟁기념관은 군의 입장에서 불리한 내용은 철저히 배제한 전시를 하고 있고요. 미국 뉴올리언스의 2차대전박물관이 승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흑인과 일본계에게 가해진 차별, 전쟁이 가정에 끼친 영향을 전시에서 다루고 있는데 말이죠.
저는 한낮 내내 수요시위와 박물관들을 들르면서 꽉 막힌 현실 그리고 작은 희망을 보았습니다. 열리지 않는 일본대사관의 문을 보면서, 인물과 사건을 임의로 재단하고 심지어 없었던 일 혹은 신나는 일 취급하는 전쟁기념관을 관람하면서는 벽을 마주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뀌는 건 없고 전쟁 피해자들의 시간은 가고 있다 생각하니 어쩜 그리도 길이 안 보이고 아득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여럿이 함께 구호를 외치고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보고 나니 한편에는 피해자들의 피와 눈물을 닦아주고 강자의 논리에 오염된 사회를 씻어낼 맑은 샘이 있구나 싶어 웃을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물러 터진 제 자신에게 다짐해 봅니다. 전쟁이 났을 때, 아니면 평범한 일상에서 저나 주변의 어떤 이가 인권과 행복을 부당하게 빼앗긴다면 최소한 침묵하지는 않겠노라고 말이죠. 때로는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동물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인간이니까요.
참여연대 22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8년 7월 2일(월)부터 8월 9일(목)까지 6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17명의 청년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직접행동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합니다. 이번 후기는 김홍민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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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매해 여름과 겨울에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 청년참여연대 더 알아보기(클릭)
민주주의(democracy)가 ‘demos’라는 말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demos’라는 집단이 주권을 행사하여 통치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표방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의미이다. 그러나 ‘demos’라는 말은 묘한 느낌을 준다. 주권자로서 우리는 실제로 주권을 행사하고 있는가? 김만권 선생님의 강연은 우리, 데모스가 과연 통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할 점을 던져 주었다. 예컨대, 단적으로 헌법을 살펴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헌법은 ‘데모스’가 바꾸고 있는가, ‘엘리트’들이 바꾸고 있는가? 시민들은 헌법의 내용을 몰라도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 헌법을 시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엘리트주의적인 사고는 우리나라 헌법 제정에서 만연한 사고이다.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 대표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는 정치 형태로 인해 우리 ‘demos’는 정치 엘리트들이 남용하는 정치에 대해 무지할 뿐만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김만권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우리가 보통 ‘위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을 ‘초법’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민불복종’이나 ‘혁명’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많은 사람은 그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일단 그것을 위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시민불복종이나 혁명은, 정부에게 자신들이 조화롭게 살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는 헌법 체계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법의 정신을 향한 근본적인 호소의 형태이다. 따라서 법의 정신 그 자체를 보호하고자 한다는 의미에서 이는 위법이라기보다는 초법이라고 할 수 있다는 관점은 왜 데모스가 구경꾼이 아닌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로 작용해야 하는지, 그 변화의 과정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고 가치를 지니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법이 생겨나면, 법은 실제 변화를 안정화하고 합법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변화 그 자체는 언제나 초법적인 행위의 결과이다. 기존의 권위의 틀과 법체계의 일반적인 적법성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결코 혁명이라고 할 수 없다.
시민불복종의 요건으로 나아가 진행된 논의에서도 새길만 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비폭력에 대한 것이다. 시민불복종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인 ‘비폭력’은 워크샵 당시 어떤 직접 행동에서 이것이 폭력적인지 비폭력적인지, 효과적인지 비효과적인지에 대해 판단을 내려보았던 활동을 환기했다. 불복종의 목적은 시민의 합의를 통한 변화라는 정치적 믿음에 있으며, 나아가 시민집단의 삶의 지침인 헌법 자체가 비폭력을 지지한다는 헌법적 믿음에 있다. 따라서 비폭력이야말로 진정한 용기의 증거이며, 폭력은 되레 두려움에 찬 자들이 지닌 비겁함의 증거이다.
많은 사람은 국민이 촛불을 들고 일어서 박근혜를 탄핵한 일련의 과정을 촛불 ‘혁명’이라고 일컫지만, 이는 기존의 헌법을 위반하며 지나치게 무능력한 대통령을 끌어내린 것일 뿐 그 기저에 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바꾸는 성과까지 나아가지는 못했다. 과연 우리, 데모스가 통치하는 대한민국은 근본적으로 어떤 형태여야 할지, 어떤 정신을 지닌 헌법을 바탕으로 해야 할지,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데모스가 지닌 힘, 데모스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볼 시점이다.
청년참여연대는 20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를 2017년 7월 3일(월)부터 8월 10일(목)까지 6주 동안 진행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15명의 20대 청년들이 참여해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했습니다. 6주 동안의 배움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직접행동을 기획하고 진행했고,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청년들이 미래의 청년시민운동가로 성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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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공익활동가학교 22기와 함께한 여름
기록적인 폭염이었다는 올 여름, 청년참여연대는 7월 2일(월)부터 8월 9일(목)까지 6주 동안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2기>를 진행했습니다.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라는 부제 아래 모인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2기 청년 15명에게 이 여름은 또 다른 의미였을 겁니다. 공익활동 모금 플랫폼인 ‘네이버해피빈’을 통해 보내주신 응원과 지지의 메시지는 6주 동안 청년들이 즐겁고 진지하게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었습니다. 공익활동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사회와 ‘나’의 관계를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행동을 보여주는 청년들을 응원합니다.”
“청년참여연대 공익활동가 학교 영원하길..!! 공교육에서도 이와 같은 시민사회교육 프로그램이 도입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사랑합니다^^”
“자율성과 창의성이 존중받는 사회, 기회 균등과 더 나은 인권개선,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길 응원합니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를 통해 함께 꿈꾸고 행동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기 수료자로서 응원합니다!”
“청년공익활동가 학교가 청년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길 바랍니다.”
“민주시민으로 알아야 할 것들 많이 배우고 경험해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됐으면 합니다.”
“콩 모일 때마다 기부하고 있습니다. 3번째네요. 적은 금액이지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참여연대 청년활동가들을 응원합니다.”
(네이버 해피빈 모금에 동참해주신 시민들의 지지메시지 중)
따뜻한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머리모아 ‘공동체 수칙’도 만들었습니다. 아래의 8개 문장은 6주동안의 ‘헌법’이 되어 서로를 끈끈하게 묶어주었습니다.
①사소한 것도 기억해주기
②“잘했어” “고생했어”라는 말 많이 해주고 서로 힘들 때 응원의 말 해주기, 축하도 해주기
③모두가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서로 무시하지 않기
④다른 의견이 있어도,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 입장을 기억하기
⑤상대방에게 편견을 갖지 않고 말에 경청하기
⑥타인의 발언에 귀 기울여 주기
⑦소외된 사람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지만 강요하진 않기
⑧편견 NO! 편견이나 틀에 갇힌 발언 삼가하기 (젠더, 국적, 나이, 지역, 직업, 종교 등 이야기해도 되지만 조심하기)
6주 동안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배우고 토론했습니다. 젠더, 평화, 인권, 환경, 노동 등 시민사회에서 다루는 다양한 의제들을 강연뿐만이 아닌 워크숍, 토론, 현장 연대 탐방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했습니다. 청년의 관점에서 청년문제를 다층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청년주거, 청년노동, 청년정치, 청년부채, 대학사회 등의 이슈를 폭넓게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강의실 안에서만 우리 사회를 고민하진 않았습니다. 다양한 탐방 프로그램을 통해 현장에서 사회 이슈를 체험하고 연대하기도 했습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분들의 투쟁현장에 방문해 노동자에게 가해진 국가폭력을 상기하고, 또 다른 노동자로서 연대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피켓을 만들어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같은 날 전쟁기념관과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방문해 우리 사회가 기억해야 할 전쟁의 모습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국회 바로 알기 강의, 비폭력 직접행동 워크숍, 정보공개청구 강의 등을 통해 활동가가 권력에 대항해 운동을 펼쳐나가기에 필요한 도구들을 배우는 경험도 했습니다. 강연과 워크숍이 있은 후에는 소그룹 토론으로 그날의 경험에 대해 서로 이야기 나누며 되새김질 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6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마지막 주에는 직접행동 캠페인을 세 개 조로 나눠 진행했습니다. ‘성평등’ ‘노동’ ‘환경’ 이라는 각각의 의제로 6주 동안 세부 목표 설정, 캠페인 기획 등 치열한 고민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마침내 6주 차, ‘성평등 조’는 신촌에서 남녀가 각각 일상에서 받는 성차별적 언어에 대해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진행했고, 성차별적 언어문화에 대한 문제의식과 캠페인 내용을 알리기 위한 영상도 제작했습니다. ‘노동 조’는 이화여자대학교 앞 공원에서 노동법 O,X 퀴즈와 청년의 알바노동 실태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환경 조’에서는 화장품(글리터 제품 등) 속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한 해양 오염 실태를 알리기 위한 직접행동을 했습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식약처에 정보공개청구도 해보고, 민원을 제기해보기도 했습니다.
직접행동 캠페인은 하루 만에 끝났지만, 이것이 15명 22기 청년들이 하는 마지막 공익 활동은 아닐 겁니다. 각 조마다 직접행동 결과를 공유하고 6주의 뜨거웠던 만남을 정리하는 수료식에서 22기 참가자 친구들은 모두 다시 만날 ‘새 안녕’을 말했습니다
“공익활동가학교에서 준비해주신 모든 프로그램이 너무 좋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았던 건 이번 활동을 통해서 만난 모든 인연들이 기억에 남는다. 22기의 모든 일정은 끝났지만 여기서 만난 친구들 간사님들과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
“요즘에 사회혁신 분야 특히 스타트업 등을 지원하고 또 교육하는 활동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순수한 비영리 분야의 활동이라는 점이 가장 좋았습니다. 현장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단체들, 그리고 새로운 분야들을 많이 알게 되고 그러면서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들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연대활동 등의 현장 활동도 무척! 좋았고 또 비슷한 생각을 가진 또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역시 매우 좋았습니다.”
“처음에는 불안감이 컸지만 같이 6주를 함께하면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였고 옆에서 친절하게 도와주신 간사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소중한 인연, 추억을 만들어준 이 프로그램은 최고!”
“이전엔 한 개인으로서, 내가 속한 사회와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 그저 무력하고 나약한 태도 이외의 것을 가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청년공익활동가학교에서 나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과 고충을 나누고 해결을 위해 연대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이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니구나. 그런 사람 한 명 한 명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게 청년공익활동가는 청년 역시 사회 변혁에 뛰어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2달의 여름방학 중 6주의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111년만의 폭염을 뚫고 움직였던 활동들이 돌이켜보면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잊지 못할 추억이 됐던 것 같습니다. 6주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놀랄만큼 많은 부분에서의 주관이 생기고,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습니다. 막연하게 세상에 대해 더 공부하고, 이바지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 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제게 지침표가 되어주었던 활동이기에 저와 같은 생각인 이들에게 감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유난히 더웠던 올 여름, 다른 삶을 고민하는 15명의 청년들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청년들의 발걸음을 지원하고 지지하는 프로그램도 계속될 것입니다. 올 겨울에도 23번째 청년공익활동가학교가 열립니다. 청년들의 고민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신 당신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대학에 다닐 이유가 마땅히 떠오르지 않고, 부당한 알바 노동현장에는 레드카드를 던지고 싶고,
돈모아 이 땅에 몸 누일 방 한 칸 구하기가 어렵고, 사회를 내딛는 첫발을 빚과 함께 해야하고,
수많은 편견과 관습 속에 살아가지만, 무엇보다 이런 고민을 나눌 청년 동료가 없다!
나만의 고민일까? 다들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왜 나만 이렇게 버거운 걸까? 오늘도 수없이 떠오르는 질문이지만, 청년의 오늘은 “남들은 이거 한다더라,” “안 하면 뒤처진다더라” 수많은 말 속에서 흔들립니다. 일상에서 내 삶과 사회를 고민하고, 함께 내일을 그려나갈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올 여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던 청년들이 모여 다양한 공익활동을 통해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을 바꾸려고 합니다. 앞만 보고 살아왔던 우리, 올 여름은 좀 다르게 살아도 괜찮아!
6주 동안 진행되는 <청년공익활동가학교>과정을 통해 인권・평화・환경・민주주의・노동・성평등 등을 주제로 시민교육에 참여하며, 스스로 주제를 정해 기획 후 실행하는 <직접행동 캠페인>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사회 속에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혹은 그렇지만 제대로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해서 주체적으로 기획하고 실천함으로써 변화에 기여하는 경험이 색다르면서도 소중했습니다.”
“2달의 여름방학 중 6주의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111년만의 폭염을 뚫고 움직였던 활동들이 돌이켜보면 고생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잊지못할 추억이 됐던 것 같습니다. 6주 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보면 놀랄만큼 많은 부분에서의 주관이 생기고, 생각이 바뀐 부분도 있습니다. 막연하게 세상에 대해 더 공부하고, 이바지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공부해야하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제게 지침표가 되어주었던 활동이기에 저와 같은 생각인 이들에게 감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활동들을 해봤지만 가장 좋았던, 가장 기억에 남을 프로그램인 것 같습니다. 말그대로 활동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진짜 그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꿈을 꾸게 해주어서 무척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2기 참가자 후기 중>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매해 여름과 겨울에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모집인원 : 25명 내외 (선발)
지원자격 : 20대 청년 활동기간 : 2019년 1월 2일(수) - 1월 31일(목) 5주
주 4회(월-목) 13:30~18:30 (상황에 따라 시간이 변동될 수 있음)
* 직접행동 기획 MT는 1월 9일(수) ~ 1월 10일(목) 동안 1박 2일 진행 활동내용 : 교육·강연(청년 프로그램 + 시민교육) + 직접행동 + 외부탐방
접수방법 : 1. 구글시트로 신청 > 접수신청 바로가기
2. 2018년 12월 26일(수) 오후에 개별 통보
인센티브 : 청년공익활동가학교 23기 수료증 발급 (프로그램 80%이상 참가자)
예비활동가 수준의 교육 제공 모집대상 : 1. 시민단체 활동에 관심이 많은 청년
- 인권・민주주의・평화・환경・젠더 등 시민사회에서 다루는 다양한 주제의 강연, 토론, 현장
활동을 통해 시민운동에 대해서 배우고 싶으신 분
- 현장 활동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시민단체 활동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기회!
2. 청년세대가 처해있는 현실을 함께 바꿔보실 분
- 청년세대를 살펴보고 공부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운동을 찾기! 행동하기!
3.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고 함께 고민을 나누실 분
- 서로의 고민을 함께 얘기하면서 생각을 발전시켜 보아요!
참 가 비 : 5만원 (최종합격 후 납부 : (국민) 995701-01-057713 참여연대 ) 문 의 : 청년참여연대 02-723-4251, [email protected]
참여연대 23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9년 1월 2일(수)부터 1월 31일(목)까지 5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24명의 청년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직접행동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합니다. 이번 후기는 박승대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여름과 겨울에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 청년참여연대 더 알아보기(클릭)
참여연대에 가기 전, 많은 생각을 했었다. “내가 과연 훌륭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연세대 앞에서 버스를 타고 10분쯤 갔다. 사직단에 내려서 10여 분을 걸어 참여연대에 도착했다. 여러 골목길을 헤 짚고 들어가 도착한 곳은 5층짜리 건물이었다. 주황색 바탕에 큰 글자로 참여연대. 무엇인가 규모가 있어보였다.
1월 2일 수요일 PM 2:00 참여연대 지하 1층. 30분까지로 시간을 착각해 40분 먼저 도착해 주변을 먼저 살펴볼 수 있었다. 텅 빈 공간에 의자 25석이 동그랗게 배치되어 있었다. 간사님이 따듯하게 맞아주셨다. 이름표를 받고 원하는 자리에 앉았다. 처음에 주신 일정표를 보며 오늘은 어떤 수업을 하고 참여연대에서의 5주간, 프로그램의 커리큘럼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첫째 날은 대략적인 간사님의 인사, 게임으로 서로 친해지기, 참여연대의 활동 소개와 건물 견학, 뒤풀이 순으로 이어졌다. 2시가 되어 프로그램이 시작 되었을 때 서로 간의 어색함이 강의실을 가득 매웠다. 그 어색함 속에는 모두 각자만의 설렘이 담겨있는 것 같기도 했다. 침묵과 고요의 분위기도 잠시, 간사님께서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셨다. 간단한 농담과 반가운 인사로.
우리 참여연대 23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간사님이 여러 주의할 점, 안내사항 등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다. 그것을 숙지한 우리는 게임으로 넘어갔다. 초콜릿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는 게임이었다. 너무 낯부끄러워서 어떻게 이런 게임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잠시나마 생각을 했지만 게임에 임하게 되자 생각보다 의미가 있었다. 어색하지만 서로 말문을 트면서 이름을 물어보고 약간의 장난을 주고받는. 그런 과정 속에서 23기는 이미 작은 발자국을 내딛고 있었다.
이 게임의 꼴등에게는 선물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기장’이었다. 23기 김홍진씨가 압도적으로 초콜릿을 획득하시며 기장자리를 얻으셨다. 다음으로 짝꿍 소개를 진행했다. 간사님께서 파트너를 지어주셨다. 옆자리 파트너 분과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 분의 이름은 박해인이었다. 해인씨에게 이것저것 묻다 보니 참여한 동기나 생각하시는 것들에 이야기를 했는데 사뭇 방향이 비슷하여 흥미롭게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영화 쪽에서 취미가 겹쳐 많은 대화를 했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으시며 5주 동안의 활동에서 많은 것을 배워나가고 싶으신 것. 착하고 친절한 분이셨다.
이렇게 서로의 소개가 끝날 즈음, 자신의 짝꿍을 모두에게 소개를 해주는 시간을 가졌다. 너무 많은 분이 계셔서 한 분 한 분씩 다 읊을 수는 없지만 모두 스스로만의 가치관과 생각들을 가지고 오신 훌륭한 분들이셨다. 활동가분들, 독일에서 오신 분들, 정치의 주체이신 분들.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렇게 모두 서로 안면을 트고 쉬는 시간을 가졌다.
세 번째 프로그램으로 참여연대 소개가 이어졌다. 참여연대 시민참여팀 팀장님으로 기억을 하고 있는데 참여연대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시민단체로서 어떤 공익활동을 하는지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여기서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갚진 일들을 해내셨다. 입학금 폐지, 졸업 유예금 폐지, 유치원 3법 시위, 소상공인을 위한 법률 제정 시위 등. 참여연대가 했던 일들을 쭉 들어보면서 정치적 주체로서 올바른, 정의로운 일을 행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것을 세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소개가 끝나고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지고 난 후 얼마 안 돼 건물견학이 이어졌다. 사람이 많은 관계로 12명씩 나뉘어 2팀으로 5층부터 지하 1층까지의 탐방이 이어졌다. 옥상으로 올라가 간사님께서 간략하게 소개를 해주었다. 옥상에서는 청와대가 바로 보였고 참여연대 외에도 어떤 단체들이 종로구 일대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5층부터 2층까지 정확히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참여연대의 한 해 간의 전체적 일정을 조율하는 팀도 있었고 공익제보자들을 보호하며 시민들의 복지와 안전에도 신경 쓰는 여러 부서들이 있었다.
또 하나 기억이 나는 것은 각 층을 내려갈 때마다 층 사이사이 벽의 공간을 낭비하지 않고 참여연대에 공헌을 하신 분들이나 참여연대가 이룩해 왔던 성과들에 대해서 연도별로 기록해놨던 점이다. 참여연대는 이렇게 서로를, 모두를 기록함으로써 공적과 성과들과 사람들을 소중히 여긴다고 느꼈다.
건물 투어가 끝나고 1층으로 모여 ‘체부동잔치집’이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뒤풀이는 단순히 친목도모로 이어졌다. 하루 간의 긴 여정을 끝내고 모인 우리들은 허겁지겁 음식들로 배를 채우며 서로의 동기와 일상에 대한 가십거리로 자리를 이어나갔다. 서로의 맥주잔에 건배를 하며 우리는 23기의 출발을 알렸다.
짧게나마 첫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우려를 할 필요도 없이 모두들 너무 친절했다. 오글거리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참여연대와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참여연대 23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9년 1월 2일(수)부터 1월 31일(목)까지 5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24명의 청년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직접행동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합니다. 이번 후기는 허인서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여름과 겨울에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 청년참여연대 더 알아보기(클릭)
대한민국의 대표 권력 감시단체 참여연대에서 들려주는 시민단체: 변화의 상상력
본격적인 23기의 청년 공익 활동가 교육의 시작이었다. 모두가 그랬겠지만, 시민 활동에 대해서 관심이 있었던 나는 이 강의가 어렵지만 재밌게 들었다. 그리고 이 강연은 1달간의 활동의 단초이자, 기본이 되는 강의였다.
시민운동의 종류는?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 위원장님은 먼저 애드보커시를 말씀하시면서 대변형 시민운동을 말씀 하셨다.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 감시자를 감시하는 문제는 굉장히 민감하면서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면서 말씀하신 것이 중구난방, 우리는 이 말이 굉장히 혼란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입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를 지닌 이 사자성어의 이야기에서는 폭동을 통해 왕이 아니라, 여럿이 다스리는 공화제라는 말을 탄생시켰다. 이 사자성어가 시민사회의 힘을 보여주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감시자를 감시하는 것이 바로 시민들의 여론이었다.
대변형 운동 이후에는 기억 투쟁이 이어져야한다. 세월호 사건을 언급하시면서 기억 투쟁을 설명해주셨다. 2016년 당시 세월호 분향소에서는 미안해라는 말보다 기억 할게라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는 것으로 보고 의아한 적이 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록하고 기억해야한다. 끝에 기억하는 것이 대의를 대행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답이었다.
그럼에도 세상은 바뀐다.
대부분의 시민운동은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실패한다. 기본적으로 지는 게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세상은 천천히 진보한다. 신자유주의를 외치는 그 시기에 전 세계에서 수많은 실패한 시위들은 있었고, 결국 신자유주의가 답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어냈다. 대안이 없어도 이건 아니지 라는 생각이 다른 세상을 가능하게 한다. 외침이 있어야 변화는 가능하다.
시민운동의 방법은?
시민운동으로 사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 가장 좋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회는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 구제적인 대안을 제시해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시민운동은 시작이다.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도 우선순위를 제시하면 좋다. 아마도 시민사회에서 가장 우선순위는 바로 사람이 우선일 것이다.
시민들의 공론장을 만들어 사람들의 여론을 변화 시키는 것 역시 좋은 시민운동이다. 결국 이기는 것은 회색분자의 공론장을 포섭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론장의 세력을 키우는 것이 좋다. 그것도 힘들다면, 우리의 정체성과 행동 능력을 보장하는 것도 시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권리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는다. 오직 국민의 권리를 위해 국가의 의무 뿐.
신자유주의 종말과 함께 그에 대한 부작용들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2010년대를 보면서 그 다음은 결국 공산주의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체제를 부인할 수 없어 오히려 사람에게 주어진 대로 그 위치에서 욕심 부리지 않고 만족하면서 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어리석은 생각을 이 강의를 통해서 완전히 깰 수 있었다. 권리에는 아무것도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있어야 권력이 유지된다. 고로, 우리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만족하는 삶을 위해 모두가 잘 사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 사회일 것이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시민단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운동권이 선동한다라는 시민단체가 갖고 있는 오해가 너무 안타까웠다. 시민의 권리, 아니 우리의 권리를 위해서 권력을 감시하려는, 초심 잃지 않는 참여연대에게 감사했다. 더욱이 20대로서의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그 권리를 잘 행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참여연대 23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9년 1월 2일(수)부터 1월 31일(목)까지 5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24명의 청년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직접행동도 직접 기획하고 실천합니다. 이번 후기는 김홍진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 :)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여름과 겨울에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 청년참여연대 더 알아보기(클릭)
오늘은 정보공개청구 해보는 날?(정보공개청구 꿀팁 대방출!)
안녕하세요! 1월 4일 청년공익활동가학교 프로그램에서는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김조은 활동가님과 함께 시민단체 활동에 아주 큰 힘이 되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해서 함께 배웠습니다.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함께 알아봐요!!
우선 정보공개청구란?
“정부 또는 행정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국민의 청구에 따라 공개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국민은 행정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행정기관에는 정보공개의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인데요!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통해서 행정 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의적인 행정권 행사를 견제할 수 있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한답니다.
공개하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정보 모두입니다. 문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 등의 자료도 모두 포함됩니다!
정보공개청구는 언제부터 가능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청주시 조례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요, 청주시민의 알권리 및 청주시 행정의 감시를 위하여 1996년 청주시의회에서는 청주시 행정정보공개조례가 통과되었습니다. 하지만, 청주시장은 다시 의결하도록 재의를 신청하였고, 시의회는 이를 다시 의결, 통과시키게 됩니다. 이에 따라 청주시장은 청주시행정정보공개조례가 월권행위이며 위법하다는 이유로 조례의결의 취소를 청구하는 대법원에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결국, 법원은 청주시의회의 손을 들어주었고 1998년 우리나라 최초로 정보공개제도가 시행되었습니다. 프랑스는 1978년, 캐나다는 1983년에 정보공개제도를 만든 것과 비교하면, 최소 15년이나 늦은 출발이지만, 아시아에서는 제일 먼저 만들었다는 사실! 국민의 알권리, 정부의 견제에 중요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겠네요!
정보공개청구절차와 김조은 활동가님의 꿀팁!
정보공개청구는 https://www.open.go.kr/ 에서 합니다! 자신이 공개를 작성하기 전에, 사전정보(사전에 정부가 공개한 정보)나 원문정보(원문 자체의 정보)에 있는지 먼저 확인하면 굳이 공개청구하지 않아도 될 수도 있겠죠! 사이트에서 로그인 하신 후 공개청구-청구신청을 누르시면 다음과 같은 화면이 뜨면 우선 성공!
그리고 꼭 사본이나 그 외로 받아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공개방법은 전자파일로, 수령방법은 정보통신망으로 설정해주세요! 그럼 공짜~!
내용 작성 꾸울팁!
1. 내가 원하는 파일의 확장자를 정할 수 있습니다. (표가 주 내용이라면, 한글이나 워드보다 엑셀 형식으로 정리된 파일이 편하겠죠?!)
2. 내가 원하는 항목의 내용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 고장 현황을 연도별, 지하철역 별로 살펴보고 싶은 경우에는 항목에 연도, 지하철역을 반드시 포함해서 넣어달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3. 기간을 설정해 주세요!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 고장 현황을 청구한다면 구체적으로 몇 년도부터 몇 년도까지가 필요한지 쓰는 것이 좋습니다! 공무원 분의 일도 줄여주고, 정확한 자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4. 기관을 하나로 설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청구의 내용이 여러 기관의 자료를 취합해서 정보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에는 보통보다 더 오래 걸린다고 합니다. 하나의 청구에는 되도록 하나의 기관에서 받을 수 있는 자료를 요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요청한 정보가 비공개되는 경우엔?
‘비밀 또는 비공개 사항으로 규정된 정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개인의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정보’ 등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불복하는 경우에는 이의신청할 수 있답니다.
실습시간! 내가 한 정보공개청구는?
저는 최근 새 자취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요! 학교 주변에 있는 원룸이나 빌라가 모여있는 곳에 새로 정착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은 전부터 벌레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가 돌았어요! 그런데, 리모델링한 집이라서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어? 이 정도는 버텨야지!!라는 생각으로 계약후 2주간 살아보니 청소를 할 때마다 조그마한 벌레가 몇 마리씩 나오고, 한번은 복도에 귀뚜라미가!! 두둥! 순간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제 동공과 손.... 근데.. 미안해 귀뚜라미야...
제 선택을 후회하던 중 자취방 월세에 대한 정보는 어플 등으로 확인 할 수 있는데, 왜 벌레는 전반적인 서식지를 확인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지도처럼 벌레의 서식지 등이 동까지만이라도 나와서 지도로 만들어 볼 수 있다면,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방을 구할 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답니다! 방역이 자주 일어난 곳에 벌레가 많겠다는 생각에, 뉴스 기사를 대충 찾아보았습니다.
광진구에서 바퀴벌레 방역 민원이 접수됐다는 내용을 통해서 서울시나 각 구에서는 민원을 정리하고 방역 현황을 관리하고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정보공개청구를 했어요!!
하지만, 한껏 기대했던 저는 실망해버렸네요! (2019년 첫 실망을 정부가 시키다니ㅠ) 우선 자치구 고유사무라니 자치구에 다시 청구해보고(제 실수네요 에잇! 내 자신에게 실망~), 민간업체를 통해 방역하는 현황을 어떻게 알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정보공개청구를 전에도 많이 들어보았는데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완전 뜬구름만 잡고 있었는데 역시 백문이불여일견! 한 번 해보니 정보공개청구가 생각보다 너무 간단하고 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대학생활에서도 중요한 과제나 논문이 있을 때 자료를 얻는 정말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앞으로 정말 잘 애용하겠습니다(꾸벅). 그럼 안녕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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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mg alt="56e420bb3f494e3d9ade6cc599fbbaec.png" src="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283/607/001/56e4…; /></p>
<h1><strong>청년공익활동가 심화과정 1기 모집</strong></h1>
<h2>“변화를 만드는 사람들”</h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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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청년’문제는 더이상 노동, 주거, 교육비 등 경제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살로 느끼는 부당한 일상, 지속불가능해 보이는 환경,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인들의 공존가능성과 공동체의 부재까지. 우리는 매일 많은 문제를 마주치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함께 공감하며 경험을 나눌 동료를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일상에서 내 삶과 사회를 고민하고, 함께 내일을 그려나갈 사람들을 만나고 싶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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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월, 동료와 함께 세상에 커다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입니다. 청년공익활동가 심화과정에서 일상의 부당함을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는 법을 함께 배웁시다. 다양한 활동영역의 수많은 사회운동의 사례를 살펴보고, 실제 문제해결을 위한 전략을 세워보아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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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혼자서는 할 줄 몰랐던 변화의 시작, 당신이 바로 <strong>“변화를 만드는 사람” </strong></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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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e74c3c;"><strong>이런 청년들에게 추천합니다 </strong></span></p>
<ul><li>청년공익활동가학교 참가 이후의 활동을 고민하는 청년</li>
<li>일상에서 느끼는 부당함을 사회적 문제로 확산하고 싶은 청년</li>
<li>문제제기 뿐만아니라 제도적 변화를 이뤄내고 싶은 청년</li>
<li>이야기를 나누는 동료가 찾고 싶은 청년</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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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모집인원 </strong>: 25명 내외 (선발)</p>
<p><strong>대 상</strong> : 내 삶과 사회에 관심많은 20대 청년</p>
<p><strong>내 용</strong> : 강연 10회, 워크숍 5회, 1박2일 MT 1회 및 외부 탐방, 직접행동 시행을 위한 정기적인 모임 진행 </p>
<p><strong>활동기간 </strong>: 2019년 5월 ~ 10월, 6개월</p>
<p> 프렙스쿨 / 5~6월 두달, 매주 수요일 저녁7시반 </p>
<p> 썸머스쿨/ 7월 한달, 월화수 주3회 오후 2시~6시</p>
<p> 애프터스쿨/ 8,9월 직접행동 시행을 위한 정기적인 모임 진행 </p>
<p> *수료식은 10월 초로 예정되어 있습니다</p>
<p><strong>장 소 </strong>: 외부활동을 제외한 교육 및 워크샵은 참여연대(서울 종로구)에서 진행됩니다</p>
<p><strong>접수마감</strong> : 2019년 4월 26일(금) 자정까지</p>
<p><strong>접수방법</strong> : 1. 구글시트로 신청 > <strong><a href="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JZQwKtSHf7NXqxhAZaFVe7jguM4Z…; rel="nofollow"><span style="color:#ffff99;"><span style="background-color:#8e44ad;">접수신청 바로가기</span></span></a></strong></p>
<p> 2. 2019년 4월 29일(월) 오후에 개별 통보</p>
<p><strong>인센티브</strong> : 청년공익활동가 심화과정 수료증 발급 (프로그램 70%이상 참가자)</p>
<p> 현직 시민활동가 수준의 교육과 직접행동 멘토링 제공</p>
<p><strong>참 가 비</strong> : 5만원 (최종합격 후 납부 : (국민) 995701-01-057713 참여연대 )</p>
<p><strong>문 의 </strong>: 청년참여연대 02-723-4251, [email protecte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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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an style="color:rgb(52,152,219);"> * 청년공익활동가 심화과정이란? </span></p>
<p><span style="color:rgb(52,152,219);">청년공익활동가 심화과정은 매해 여름과 겨울에 진행되었던 참여연대 <청년공익활동가학교>의 실전 프로젝트 버전입니다. 청년공익활동가학교를 듣지 않았어도 참여가 가능합니다.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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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이주노동자 A(28·천안시 성환읍)씨는 부푼 꿈을 안고 찾은 한국에서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평생 장애로 남을까 시름이 깊다.
아산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이재영 팀장은 "현행 5인 미만 농업분야 개인사업장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이주노동자들이 누구는 산재 적용이 되고 누구는 적용 되지 않는 것은 고용허가제의 난맥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외국인 고용 사업장 전체에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꼬장꼬장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꼬치꼬치 따져야 할 대목이 적지 않습니다. 지난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근대론과 개벽론이 서걱서걱 착종되어 있습니다. 근대는 무엇이고 왜 개벽인가 흐릿하고 희뿌옇습니다.
‘New’와 ‘Modern’은 다릅니다. 새로운, 이라는 형용사와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근대는 엄격하게 분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새 시대가 곧 근대는 아닙니다. 앙시앙 레짐에서 탈피한다고 하여 아무데나 ‘근대’를 갖다 붙일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이라면 ‘근대’라고 수식할 수 있는 시대가 너무나도 많아집니다. 자칫 ‘근대 이후’(Post-Modern)조차 ‘근대’(New)가 됩니다. 사실상 역사적 개념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作)이 중요한다 한들, 그간의 숱한 ‘술’(述)을 죄다 기각시켜버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게 가볍게 퉁-치기에는 근대에 대한 치열하고 치밀한 논의들이 너무나도 많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저는 근대의 숨은 주어가 자본주의 세계체제라는 백낙청 선생의 견해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다만 그 주창자 월러스틴처럼 14-15세기 지중해까지 거슬러 오르는 것에는 회의적입니다. 여전히 아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형 세계체제가 작동할 무렵이었습니다. 19세기 이후에나 일어나는 동/서 역전을 지나치게 먼 시기까지 소급 적용하고 있습니다. 또 이은선 선생님의 지적처럼 조선을 ‘조숙한 근대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미야지마 히로시의 ‘유교적 근대’에도 수긍하는 쪽입니다. 글로벌 히스토리, 세계사 다시 쓰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성의 많은 특징이 송나라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송 이후의 원, 즉 몽골세계제국의 유라시아 네트워크를 통하여 그 근대성의 씨앗들이 동서남북으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고려와 조선은 그 영향 또한 일찍 받았음이 자연스럽습니다. 조선이 과거제로 운영되는 고도의 합리적 관료제 국가를 일찍이 이룬 까닭입니다. 그 다기한 복수의 (초기) 근대성이 19세기 이후 서구적 근대성으로 획일화되듯 보였다가 목하 서구/비서구를 가르지 않는, 신대륙/구대륙을 나누지 않는 지구적 근대성으로 합류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지구적 근대(후기 근대?)의 발현에 지난 200년 주눅 들었던 비서구의 다양한 가치들이 재기하고 재활하는 대반전의 형세입니다. 대체로 김상준 선생의 역작 <맹자의 땀, 성왕의 피>에서 그려내었던 중층근대성 이론에 가까운 축입니다.
역사적 시간은 축적되는 것이지, 물리적 시간처럼 차원 변경이 여의치 않습니다. 하여 ‘중국적 성인질서의 탈피’가 곧 근대라는 발상에 동의하기 힘듭니다. 그러하면 동학이 탄생했던 1860년이라는 시점의 유별남과 각별함이 도리어 탈색되고 맙니다. 탈중국은 이미 부차적인 무렵이었습니다. 아편전쟁 이래 중국은 벌써 을로 전락했던 시점입니다. 동학 창도와 베이징조약 체결이 같은 해라는 점은 여러모로 상징적입니다. 당시 중국은 영국과 프랑스에만 굴복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연해주, 한반도보다 훨씬 넓은 강역을 러시아에 통째로 넘겨준 해가 바로 1860년입니다. 비단 영토 상실로 그치지만도 않았습니다. 제국의 중심, 자금성이 함락되고 원명원은 불에 타는 수모마저 겼었습니다. 그로써 조선은 졸지에 낯선 동방정교회 제국과 국경을 접하게 되는 전례 없는 시대로 휘말려 들어갑니다. (돌아보면 남/북 분단의 먼 기원입니다.)
즉 서세동점의 갑질에 중국조차 대응할 역량이 없음을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선 또한 스스로 떨쳐 일어서야 했던 것입니다. 탈중국은 어디까지나 방편일 뿐이며, 서구에 대한 대응이야말로 시급한 시대과제였습니다. 그래서 명명 또한 ‘東學’이었던 것입니다. 명명백백 서학에 대한 응수였습니다. 서세의 약진에 대한 주체적이고 자각적인 반응의 소산이었습니다. 비단 황해 건너 중국만도 아닙니다. 1853년 동해 지나 일본에도 시커먼 페리 함대(흑선)가 당도했습니다. 1857년 저 멀리 남쪽 인도양에서는 세포이항쟁이 진압되고 무굴제국이 몰락했습니다. 지중해는 또 어떻습니까. 크림전쟁으로 오스만제국의 핵분열이 시작된 것도 1853년입니다. 대청제국, 무굴제국, 페르시아(사파비드)제국, 오스만제국 등 포스트-몽골 시대를 주름잡던 유라시아 제국들이 공히 쇠락해가던 무렵입니다. 유라시아의 서쪽 모퉁이, 서구 국가들이 집단적으로 굴기하던 대분기(Great Divergence)의 시세입니다. 산업혁명 이래 자본주의(물질개벽)의 힘이 동서남북 도처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고 있던 것입니다. 서구의 내부에서조차 ‘악마의 맷돌’을 수습하려는 <공산당 선언>(1848)이 나왔을 만큼 그 기세는 파상적이었습니다. 즉 1860년이면 이미 중화세계보다는 지구적 맥락이 더 중요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 세계체제로 편입되어가는 대전환기의 벽두에 ‘다시 개벽’이라는 일성(一聲)이 터져 나왔다는 점이야말로 동학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다나카 쇼조
그 절치부심 속에서 유학은 부채가 아니라 자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침몰하지 않고 튕기어 되오를 수 있는 저력에 유학국가 500년의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다고 여깁니다. 이걸 사뿐히 소거시킨 얼치기와 양아치들이 개화파 아니었던가요? ‘중국적 성인질서의 탈피’를 곧 ‘근대’라고 규정한다면 개화파들이야말로 그 과제를 철두철미 철저하게 수행하려고 했던 것 아닐지요? 후쿠자와 유기치가 표방한 “탈아입구”(脫亞入歐)야말로 탈중화세계를 표방하는 사상의 정수, 캐치프레이즈 아니었습니까? 일본이 그토록 맹렬하게 문명개화=서구화로 질주할 수 있었던 까닭도 유학적 세계관의 중력과 장력이 부족해서라고 여깁니다.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으로 작동하는 무도한 ‘금수의 세계’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유교국가의 경험이 일천해서라고 봅니다. 그 마주 편에서 메이지유신의 그늘을 직시하고 자본주의 근대문명의 심층을 응시했던 다나카 쇼조를 일본의 ‘개벽파’로 칭하는 데는 조금의 이의도 없습니다. ‘다시 개벽’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충격’ 이후의 외침이고 깨침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유학국가의 유산이 역력했던 중국과 조선과 월남은 모두 ‘저항’했습니다. 저항의 결과로 공히 사회주의로의 경로에 친화적이었습니다. 고로 동학과 유학을 신/구(新舊)로 무 자르듯 나눌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금(古今)으로 끈끈하게 연결되었다고 여깁니다. 유학이 무르익고 농익어서 비상한 시국에 동학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묵은 것과 낡은 것은 다릅니다. 곪은 것과 삭은 것 또한 다릅니다. 옛 것과 새 것의 분단체제야말로 개화파가 획책했던 몹쓸 습성의 잔재입니다. 제가 유학과 단절된 동학보다는, 유학의 급진적 민주화/민중화로서 동학을 접근하는 까닭입니다. 개화와 개벽이 날카롭게 분기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개화파가 전통을 내팽겨 치고 편승과 추수로 시종했다면, 개벽파는 전통을 승화시켜 저항과 극복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전자가 나를 버리고 남을 따랐다면, 후자는 나도 바꾸고 남도 바꾸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세계체제 이후에 대한 단서까지도 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백년을 예비하고 새로운 백년을 태비하는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되어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또 다시 개벽’을 논하는 까닭 또한 민주화 이후의 ‘타는 목마름’을 해갈할 수 있는 시원한 물줄기를 애타게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2. 개화기인가 개벽기인가
‘뭔가 답답한 대한민국의 현실’이라 하셨습니다. ‘뭔가 막혀있는 지금의 상황’이라고도 하셨습니다. 갑갑하고 답답한 그 무엇인가를 잘 헤아리고 해명하는 것이 선결과제 같습니다. ‘서구중심주의 탈피’만으로는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이미 서구는 지방화, 국지화되고 있습니다. 독일어와 프랑스어의 위상 저하가 괜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커녕 거의 모든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주구장창 읊조렸던 상투적 클리셰야말로 서구중심주의 비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족문학론, 제3세계론, 종속이론, 탈식민주의론 등등 진부하다 못해 지겨운 감마저 없지 않습니다. 저는 ‘개벽’이라는 소중한 개념을 고작 서구중심주의 탈피라는 별반 새로울 것도 없는 화두에 헐값으로 넘겨주고 싶지 않습니다.
개벽은 목하 한국은 물론이요 전 인류에게 임박한 ‘6번째 대멸종’을 돌파할 수 있는 파상력(破狀力)을 담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안의 근대 논의와는 다른 차원에서 오늘날의 세계는 19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점에 수긍합니다. 단지 산업혁명을 통하여 유럽과 아시아 간 대분기가 일어났다는 차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산업혁명의 심층은 지상(地上)과 지하(地下)를 결합시킨 데 있습니다. 땅 아래 묻혀 있던 석탄과 석유를 마구 퍼다 썼습니다. 지하자원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면서 지상자원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인류문명을 바꾸어버린 것입니다. 인류는 이제 대기에는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고, 대지에는 질소를 누적시킴으로써 대양의 구성 비율까지 바꾸어내었습니다. 2019년의 대기와 대지와 대양은 오롯이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46억년 지구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고작 200년 사이의 변화입니다. 인간이 하늘과 땅과 바다를 변화시키고 동식물의 진화까지 좌지우지하게 된 것입니다. 1945년 이후 제3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근대화(산업화+민주화)로 내달리면서 이 지구적 변화의 속도는 더욱 가팔라졌습니다. 대기와 대지와 대양의 지구적 운동이 천상(天上)의 기후를 형성합니다. 그 기후가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비상경보등이 울려 퍼진지도 이미 오래입니다.
제가 보건대 산업화를 추동했던 개화우파는 물론이요, 민주화를 추진했던 개화좌파도 이 임박한 지구적 위기에 대한 근본인식과 근본대책이 없습니다. 시대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작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하여 경기부양에 안달할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답답하고 갑갑한 것입니다. 1987년 이후 돌림노래가 30년이 넘도록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즉 민주화세력 또한 이미 기득권입니다. 정체되고 적체되어 있습니다. 제가 스무 살 새내기 때 집권했던 세력이 마흔 살 대학교수가 되어서 재집권한 것이 ‘진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한 성찰이 부재하니 ‘20년 집권론’이라는 허튼 소리를 내뱉는 것입니다. 한 세대도 모자라 반세기를 허비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선생님이 다른 자리에서 적확하게 꼬집으셨던 것처럼 현 정부는 촛불혁명의 수혜자일 뿐입니다. 어부지리였습니다. 그런데도 제 분수를 모릅니다. 도무지 ‘구시대의 막내’라는 자각이 없습니다. 척사파의 꼿꼿한 심성과 개화파의 식상한 발상이 기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하자센터의 어느 발랄한 10대 친구의 말을 빌자면, ‘죽 써서 개 준 꼴’입니다.
숲의 원리를 도시 건설에 활용한 _포레스트 시티_ 조감도
갈수록 아득해지고 있는 촛불혁명의 출로가 ‘다시 개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신을 개벽하야 물질을 개벽하자’고 문장의 순서를 바꾼 것은 단순히 정신주의, 백년 전 루쉰이 그토록 신랄하게 비꼬았던 아Q식 정신 승리법이 아닙니다. 물질개벽의 진보가 특이점을 돌파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정신과 물질을 가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사물인터넷, 사람과 사물이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수준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생산’혁명과 ‘생각’혁명이 결합되어 만물이 활물되는 제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20세기 후반의 생태주의로 족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자연(Nature)과 문화(Culture) 또한 이미 불가분입니다. 글로벌리스트(개화파 2.0)의 파상공세에 펀더맨털리스트(척사파 2.0)적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앞으로 30년, 귀농은커녕 더더욱 많은 인류가 도시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1세기 중반 인류의 7할이 도시에 살게 됩니다. 물질과 정신이 고도로 연결된 스마트시티가 살림살이의 주요한 형태가 될 것입니다. 그럴수록 마음가짐과 마음다짐이 실시간으로 전 지구적으로 온 생명적으로 파동을 일으키고 파장을 미치게 됩니다. 시시각각 마음을 잘 써야 지구와 우주가 잘 돌아갑니다. 고작 4, 5년마다 투표를 통하여 겨우 한 나라의 일반의지를 확인하는 19세기형 민주주의로는 어림도 없는 신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기왕의 (개화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가 이미 수명을 다했습니다. 정권교체에나 연연할 뿐 문명전환에는 깜깜하고 캄캄합니다. 개벽정치의 창조, 개벽경제의 창안, 개벽문화의 창달이 시급합니다.
다시 왜 개벽사를 써야하는가로 돌아갑니다. 다른 미래는 다른 서사의 창출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술(述)이 아니라 작(作)이 필요합니다. 선도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개화우파 같습니다. 지난해 실학론의 허상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기획특집을 선보인 곳이 <중앙일보>였습니다. “리셋 코리아”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고 봅니다. 그쪽에서는 ‘제3의 개항’이라는 말도 즐겨 씁니다. ‘또 다시 개화’라고 고쳐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더더욱 개화’는 남을 넘어 북까지 아우릅니다. 북조선을 ‘친미적 개화국가’로 전변시키려 듭니다. 일본으로 미국으로 기울었던 20세기를 21세기에도 반복하고 복제하고자 합니다.
실제로 현재 ‘근대문화유산’ 하면 대체로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인 경우가 많습니다. 개화사로 근대사를 썼기에 부지불식간 일본의 영향이 두드러집니다. 요사이 떠들썩했던 목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비단 목포뿐이겠습니까. 군산도 부산도 인천도 개항과 개화의 유산만 부각되어 있습니다. 1876년 강화도조약, 개항을 시발로 삼는 ‘개화기’라는 시대구분 탓입니다. 서둘러 1860년 동학 창건으로부터 시작하는 ‘개벽기’라는 시대인식을 바로 세워야하겠습니다. 개벽의 흥망성쇠를 개화의 물결과 견줌으로써 우리의 근대사 또한 한층 풍요롭고 더욱 온전하게 복원될 수 있을 것입니다.
3.1운동의 중심지였던 천도교중앙대교당
자각적인 개벽보다 외래적인 개화를 더 중시하는 도착은 비단 문화유산 기념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개화우파의 고질병만도 아닙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개화좌파의 역사인식에도 깊숙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주도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상하이 국제학술회의 조직을 거들었습니다. VIP가 ‘민주공화국’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남다르셔서 3.1운동(과 5.4운동)을 전후한 동아시아의 민주와 공화 담론을 복기해보자는 얘기가 오고갔습니다. 제가 우선으로 추천한 분이 원광대 정혜정 교수와 <모시는 사람들>의 박길수 대표입니다.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의 독창적인 정치사상이 어떻게 한국의 독자적인 공화담론으로 진화해갔는지를 중국에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별반 논의도 못한 채 묻혀버렸습니다. 기획회의에 모였던 다른 선생님들이 영 뜨악하고 뚱한 눈치였습니다. 3.1운동이 ‘제2의 동학운동’, ‘다시 개벽 운동’이라는 감이 좀체 없습니다. 결국 다른 분이 섭외되었습니다. 그 분의 책은 진즉에 읽어보았습니다. 서구의 공화담론이 일본의 번역을 통하여 유통되는 과정과 신해혁명이 한국에 미친 영향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개화(좌)파의 발상인 것입니다. 안보다는 밖을 살피는데 더 능합니다. 이래서는 ‘2019년을 개벽파 재건의 원년으로 삼자’는 제안이 무색해질 지경입니다. 더욱 배포를 다지고 치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흩어진 개벽파를 세력화하고, 투박한 개벽론을 세련화하고, 소심한 개벽학을 세계화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3.1운동 100년의 의미를 되짚는 담론을 선도적으로 개진했으면 좋겠습니다. ‘개벽기’의 실상 복원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연구해 오신 분이 조성환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득의와 발군의 3.1혁명론이 기대됩니다. 선창을 요청 드립니다. 제가 후창을 잇겠습니다. 그리하여 기어이 3월이면 삼천리금수강산, ‘또 다시 개벽’의 떼창이 방방곳곳 울려 퍼지면 좋겠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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