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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404] "분노한 다음 날이 더 중요하다": 촛불 시민은 무엇을 위해 투표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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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404] "분노한 다음 날이 더 중요하다": 촛불 시민은 무엇을 위해 투표할 것인가?

익명 (미확인) | 토, 2017/05/06- 14:28

"분노한 다음 날이 더 중요하다"

촛불 시민은 무엇을 위해 투표할 것인가?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
 


벚꽃도 이제는 다 지고 다녀간 흔적만 거리에 남아있다. 너무 추웠지만 그래서 더욱 뜨거웠던 지난 겨울의 광장도 간헐적인 집회가 있긴 하지만 쉬어가는 분위기다. 2017년 그 겨울 우리 국민은 무려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았던 박근혜 정부 4년의 지난한 과정을 뒤로하고 대통령의 탄핵 및 구속수감이라는 대한민국 헌정사를 통틀어 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정농단의 동조 세력이자 국내 최대 재벌 기업인 삼성의 이재용 씨도 수감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이런 상황적 배경에서 치러지는 선거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장미 대선' 이라 하지만 광장 민주주의의 진화 과정에서 1700만 이상의 촛불 시민의 위대한 힘으로 만들어낸 대선의 이름치고는 너무 편안하고 한가로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오히려 '탄핵 대선' 혹은 '촛불 대선' 이라는 이름이 그 역동적 탄생배경에 걸맞은 이름이 아닐까?

 

박근혜 정부 4년의 무기력

 

박근혜 정부 내내 온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대형 사건들은 백화점 세일 시즌 돌아오듯 꼬리를 물고 품목을 바꾸어 찾아왔다. 출범 초기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기둥 뿌리를 뒤흔드는 심각한 사건이지만 헌법상의 법치주의를 간단하게 비웃고 유야무야 넘어갔다. 기회만 되면 이민 가고 싶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렸지만 이어지는 대형 사고들에 비하면 그리 대단치도 않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는 그저 헌법안에나 존재하는 공허한 문구였다. 취임 2년째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와 바로 그 다음해에 온 나라를 공포에 떨게 한 메르스 사태를 대하는 박근혜 정부에게 국민은 없었다. 모두가 안전하게 구조되길 바라며 각자가 믿는 신에게 간절하게 기도하던 국민에게 세월호와 함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소중한 생명들을 지켜보는 일은 고통 그 자체였다. 이후 메르스 사태에 속수무책인 정부는 또 다시 세월호 앞에서의 그 모습을 반복하였다. 확산의 원인을 감추고 정부의 무능을 은폐하는 모습이 불과 1년 전의 그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다. 국민의 바람과 달리 세월호 이전과 이후의 한국 사회는 전혀 다르지 않았다.

 

국민이 분노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의 무능도 무능이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감추고 왜곡하는 것에 있음을 모르는 건 정부밖에 없었다. 국민은 이제 우리 사회 도처에 또 다른 세월호와 메르스가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지만, 국민으로서 국가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없음 또한 알게 되었다. 국가적 재앙과 공포의 근원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보호의 주체인 정부에 의해 적극적으로 은폐되고 왜곡되는 상황에 노출되는 경험은 국민으로 하여금 심각한 집단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심각한 퇴행 현상 또한 박근혜 정부 4년의 주요한 특징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 시도, 국가폭력에 의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피해자의 입장을 배제한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의 일련의 사건과 그때마다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단지 헌법질서 내에 존재하는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절차에 장애를 주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 전반적인 민주주의 감수성을 크게 후퇴시켰다. 민주주의에 대한 보편적 감수성의 후퇴는 급기야 '일간베스트' 라는 괴물 사이트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혐오라는 패악의 바이러스를 강화시키고 확산시켰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과 혐오는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갈등을 낳거나 혹은 더 깊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의회 정치의 실종은 우리 사회 전반의 무기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오로지 대통령의 심기에 근거한 정치만 하는 여당과 수적 열세를 핑계로 무력한 모습만을 반복했던 야당은 더이상 국가와 국민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그런 상황에서 얻어진 4.13 총선 결과는 예상하기 힘든 놀라운 결과였다. 박근혜 정권에서 벌어진 다종다양한 사고들로부터 치유되지 못한 사회적 트라우마가 성난 여론의 밑바탕에 누적되어 있었고 이것이 국민의 징벌적 투표 행위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국민이 만들어준 여소야대의 상황은 전혀 효능감을 주지 못하고 고구마같이 팍팍한 국민의 일상에도 별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비판과 견제 및 감시 기능도 총선 이전과 다르지 않았고 국민과의 소통 또한 변함없이 원활하지 않았다.

 

"이게 나라냐!"

 

여소야대 국면마저 불공정하고 불평등한 특권사회를 제대로 감시,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언론사를 통해 최순실, 박근혜의 국정 농단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끝을 모르는 이들의 욕망과 이를 위한 비상식적 일탈에 국민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국가 시스템 작동 불능의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게 나라냐' 라는 광장의 구호는 욕망의 금도를 넘어선 개인에 대한 외침이 아니다. 국가 통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이며 국가 시스템 작동의 주체 모두에 대한 총체적 문제 제기이자, 분노이자, 경고였다. 사실 그 전까지 '정권 퇴진' 이라는 구호는 그야말로 선언적인 구호일 뿐이었지만 지난 겨울 광장의 퇴진 구호는 더 이상 선언에 그치는 구호가 아니었다. 실제로 어려운 순간마다 촛불은 더 많이 모였고 요구 또한 구체적이며 끈질겼다. 촛불이 경고하면 세상이 움직이는 꿈같은 상황이 촛불에 참여하는 국민뿐만 아니라 참여하지 못했던 국민 앞에서도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광장 민주주의가 제도 정치에 반영되는 상황을 바라보며 그간 참여하지 않았던 국민 또한 민주주의 역사의 순간을 함께하기 위하여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며 광장 인원은 회를 거듭할수록 기록을 경신하였다. 무엇보다도 선은 늘 악에 비해 강하지 못해 결국에는 악을 이기지 못하는 그간의 역사적 통념을 보란 듯이 깨버렸다. 광장에 모인 위대한 촛불들은 거악에 맞서면서도 끝까지 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폭력과 혐오에 대한 자체 정화능력까지 탑재한 광장의 촛불은 평등과 신뢰에 바탕한 평화를 끝까지 유지하였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헌재 결정을 얼마 앞둔 지난 2월, 장충체육관에 모인 1400여 명의 시민들은 새로운 2017 대한민국의 꽃길을 이야기하고 촛불권리선언문도 발표하였다. 부당한 권력을 탄핵 시키는 것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위한 여정의 시작임을 다짐하고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분노한 다음 날

 

"분노한 다음 날이 더 중요하다." 특강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지젝이 남긴 말이다. 특강에서 그는 분노가 왜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는가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했다. 지젝은 정치권과 시민 사회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대중들이 기존 질서에 타협한 탓에 분노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분노의 다음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촛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대한민국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 첫 단추가 바로 대선이다. 불과 6개월 전의 무기력했던 우리 사회를 기억해야 한다. 소중한 생명들이 세월호와 함께 깊고 어두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도, 역사가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왜곡되어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 맺힌 이야기들이 삭제당해도, 우리 농업의 미래가 물대포를 앞세운 국가 폭력에 의해 죽임을 당해도 속수무책이었던 우리 사회를 기억해야 한다. 지난 겨울 광장을 통해 민주주의의 역사가 던져준 시그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주요인물 몇 명이 구속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 방식의 정치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끝까지 함께하겠다던 정치권의 목소리가 봄이 되니 사라지게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 대통령 탄핵이라는 승리감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겨우 대통령 탄핵과 촛불 대선, 그리고 국가 개혁으로 이어지는 과정의 첫 단계를 마쳤을 뿐이다. 광장의 개혁 열기가 대선과 이후 정치를 통하여 제도 개혁과 국가 개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광장의 개인이 아닌 유권적 시민의 총체인 국민으로서 국가 개혁을 완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도 위대했던 촛불의 다음을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당선에만 관심을 두는 정치인들, 파렴치한 기업인들에게 강탈당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4.13 총선 결과에 따른 여소야대 국면과 대통령 탄핵 그리고 1700만 촛불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는 한국 사회는 장기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고. 우리에게 주는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기존의 체제가 상당한 정도로 변화될 수 있는 결정적 국면이 바로 지금이다. 지금을 놓치면 되돌리기 어렵다.

 

벚꽃은 엔딩을 했지만 내년에도 분명히 다시 찬란한 봄을 장식할 것이다. 내년 이맘때 한국 사회 민주주의가 피워내는 꽃이 어떤 모습일지는 바로 지금에 달렸다. 부디 촛불이 보여준 긍정적 역동성이 우리 사회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방향을 결정하는 이번 대선에서도 유효하게 작용하기를 기대해본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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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세계 31호 표지

‘민주화 이후 30년’ 성장・분배체제의 변화를 톺아보다

참여사회연구소 반년간지 《시민과세계》 31호 발간

특집기획 <민주주의 30년, 경제와 복지를 진단하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소장 장은주)는 반년간지 《시민과세계》통권 31호(2017년 하반기호, 편집위원장 장지연)를 발간했다. 이번 31호는 87년 민주화 30년을 맞아 경제와 복지부문의 변화를 살펴보고 그 의미를 소개한다.


이번 31호의 [기획논문]은 <민주주의 30년 경제와 복지를 진단하다>라는 특집주제로 구성되었다. 한국은 국가주도적인 ‘동원된 개발체제’를 통해 미증유의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부작용은 성장과 분배 간의 양극화와 민주주의의 지연 또는 퇴행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87년 6월 항쟁으로 폭발했고, 이후 한국은 소위 제도적 민주화 혹은 형식적 민주화를 달성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지만 97년의 외환위기와 07-08년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한국 경제를 저성장의 장기침체 국면으로 몰아넣었으며, 시민들의 복지요구는 여전히 정치의 장에서 부침을 거듭하며 갈등하고 있다. [기획논문]은 지난 30년 동안 경제와 복지의 변화한 국면을 3명의 저자가 각각 운동, 제도, 지표를 연구단위로 삼아 분석하고 있다. 김영순(서울과기대 기초교양학부 교수)은 권력자원론을 분석틀로 삼아 일반적으로 서구유럽의 복지국가 형성의 주요한 요소인 정당이나 노동조합과 같은 경성권력자원이 아닌 시민사회운동 등의  연성권력자원이 한국의 복지제도 형성에 중요한 계기였다는 분석을 보여주고 있다. 남찬섭(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은 지난 30년 간 복지제도의 전개과정을 네 단계의 시기로 구분하여 복지 패러다임을 둘러싼 정치적 각축과 논쟁하에서 복지체제의 변동을 설명하고 있다. 전병유(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는 87년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요인이 구조적인 변화를 겪었고, 그로부터 가계저축과 정부의 지급보증에 기초한 기업의 대규모 투자라는 개발년대의 성장모델은 수명을 다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일반논문]에는 심사를 통과한 세 편의 논문이 실렸다. 특히 정준호(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80년대 이후의 거시경제 변수들에 대한 공적분 검정을 통해 공유된 성장과 이중경제 가설을 실증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통해 이중화의 관점에서 외환위기 전후의 한국경제의 변화양상을 포착하여 드러낸다. 이병천(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은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사회경제 대안이 자유복지주의로 규정될 수 있으며 이는 노태우 정부의 보수적 개혁 대안으로서 다원적 개발주의 대안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이로부터 미완의 촛불혁명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가 자유복지주의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제언을 덧붙이고 있다. 신대진(성균관대 좋은 민주주의 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주요한 평화/안보 이

슈였던 사드배치를 복합적 안보딜레마 차원에서 설명하고 이를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소통과 논쟁]은 촛불광장이 개방 이후 1주년을 맞아 참여사회연구소 개최한 <촛불1주년 포럼: 촛불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를 정리하여 지상중계한다. 광장을 가득 채웠던 촛불이 사라진 1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하였으며 또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촛불’혁명’과 반복되는 항쟁의 레퍼토리라는 양극단에서 진동하는 지난 광장의 의미를 돌아보며 향후 시민정치의 전망을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배반당한 평화: 한국의 베트남・이라크 파병과 그 이후』, 『인간의 살림살이』, 『차이의 정치와 정의』 등 2017년에 주목받았던 근간들에 대한 [서평]도 만나볼 수 있다.

 

*참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원문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시민과세계》 31호는 엄정한 심사과정을 통과한 3편의 [기획논문]과 3편의 [일반논문], [소통과 논쟁] 1편, [서평] 3편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자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목 차 |


[기획논문] 민주주의 30년, 경제와 복지를 진단하다
민주화 이후 30년, 한국 복지국가 발전의 주체와 권력자원: 변화와 전망 / 김영순
민주화 30년 한국 사회복지의 제도적 변화와 과제 / 남찬섭
87년 이후 한국경제 성장 요인의 구조 변화에 대한 시론 / 전병유


[일반논문]
이중화의 관점에서 본 한국경제: 80년대 후반 이후를 중심으로 / 정준호
민주화 이후 30년 한국은 어떤 사회경제 대안을 남겼나?: 다원적 개발주의, 자유복지주의, 그 너머 / 이병천
사드의 국제정치와 한반도 평화  - 복합적 안보딜레마와 대안 찾기 - / 신대진


[소통과 논쟁]
<촛불 1주년 포럼> 촛불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광장이 던진 질문과 시민사회운동의 과제” / 참여사회연구소


[서평]
피파병국의 파병이라는 아이러니 / 장철운
신자유주의 격랑 뒤에 우리가 대면해야 할‘병 속 편지’ / 장석준
자신으로 살고 더불어 꿈꾸다 / 오정진

 

※ 구독 문의: 참여사회연구소 김건우 간사 02-6712-5248, [email protected]
 

월, 2018/02/0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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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촛불 무력 진압 모의,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엄벌하라

군이 촛불혁명 무력 진압을 모의한 것이 드러났다. 당시 수도방위사령관 구홍모 중장(현 육군참모차장)은 사령부 회의를 주재하며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으며, 합참 수뇌부는 특전사 투입까지 논의했다고 한다. 추운 겨울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맞서 길거리에 나선 시민들을 총칼로 짓밟으려 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는 군부독재에 항거했던 광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한 5.18을 떠올리게 하는 일로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경실련>은 국회의 국정조사를 통해 명명백백한 진상 규명과 모의에 가담한 군 수뇌부를 엄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군의 무력 진압 모의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를 엄벌하라

군의 무력 진압 모의는 대한민국을 군부독재 시절로 되돌리려는 극악무도한 짓이다. 군은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총칼로 짓밟으려 했다. 군부독재 당시 군의 폭압에 의한 국민들의 상처가 여전하다. 그럼에도 군은 과거 사건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속죄하기는커녕 극악무도한 행태를 반복하려했다는 점에서 용서받을 수 없다.

당시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이 위수령 폐지를 반대하고, 합참 법무실의 폐지 의견을 무시하고 존치 의견으로 검토하도록 지시했다는 사실은 청와대와의 교감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때문에 청와대와 군이 친위쿠테타를 기획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이다. 이에 이번 군의 무력진압 진상 모의에 대해 명백하게 진상을 밝혀야만 한다. 더불어 모의에 가담하고 지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 구홍모 육군참모차장을 비롯한 군 수뇌부들의 진상이 드러날 경우 엄벌해야 할 것이다. 내란을 모의했다고 의혹을 받고 있는 당시 구홍모 중장이 현재 육군참모차장을 맡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내란을 일으키려한 세력들을 엄벌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사태가 재발될 수 있음을 우리는 과거 사례를 통해 이미 수차례 경험한바 있다. 이번 사건의 관련 당사자인 국방부가 진상조사에 나설 것이 아니라 국회의 국정조사를 통해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야 한다.

둘째, 군의 정치 개입 여지를 제공하는 위수령을 폐지하라

위수령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군부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근거도 없이 제정한 초헌법적인 시행령이다. 국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의 명령만으로 군 병력을 치안 유지에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위수령은 군의 정치 개입의 빌미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이에 군의 정치 개입 여지를 제공하는 위수령은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군이 정치에 개입하려는 못된 습성을 버리고, 환골탈퇴 할 수 있도록 군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는 아주 중요하다. 문민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피와 땀으로 지켜낸 민주주의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훼손하는 엄중한 사안이다. 군에 대한 전반을 살펴보고, 국민의 주권, 국익, 안보를 수호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군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명백하게 진상을 밝히고, 이에 관련된 군 수뇌부를 엄벌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금, 2018/03/0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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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공수처밖에 없다" 

권력이 있는 자에게는 관대하고, 없는 이들에게 가혹한 한국 검찰. 검찰이 막강한 권한을 정권에 따라, 입맛에 따라 휘두를 때마다 시민들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수사기구,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를 요구해왔습니다. 현직 검사의 성추행 폭로와 수사 외압 의혹까지 제기된 지금, 검찰의 '셀프 수사', '셀프 개혁'은 시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로 공수처 설치를 막고 검찰개혁을 온 몸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의 공수처 반대 입장을 바꾸고 20년 간 묵혀왔던 사회적 과제인 공수처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경실련, 민변, 참여연대, 한국투명성기구, 한국YMCA전국연맹, 흥사단)>은 공수처 법안을 논의해야 할 국회 사법개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를 모니터링하고 국회를 압박하는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공수처설치촉구공동행동은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는 서명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여러분의 참여가 공수처 설치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 <서명하러가기>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공수처수첩 연재]

① 공수처 설치가 옥상옥? 야당의 반대가 안타깝다 / 최영승

② 사법개혁특위  '개점휴업', 문제는 자유한국당이다 / 이선미

③ 검경이 원수지간? 백남기 농민 앞에선 '한 편' 됐다 / 김태일

④ 촛불은 공수처의 데뷔를 기다린다 / 김준우

 

촛불은 공수처의 데뷔를 기다린다

[공수처 수첩④] 이제는 국회가 응답하라

김준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고위공직자의 부패문제에 대한 대응을 위해서 별도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제기된 것도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기구의 설치에 관한 내용을 담은 시민사회의 법률안이 국회에서 처음 접수된 것은 1996년이라고 한다. 1996년이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하고, H.O.T.가 '전사의 후예'로 데뷔한 해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국회에서 논의가 진척이 전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대체 어떤 일을 겪었어야 했는지 돌아보자.

 

그 긴 시간 동안 신문 1면에서 김현철, 김홍일·김홍업·김홍걸, 노건평, 이상득 그리고 최순실의 이름을 보아야 했다.  오랜 군부독재를 끝내고 이른바 문민화된 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꾸준히 대통령 최측근 또는 친인척이 정권 말에 구속되었던 역사가 지속·반복되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가 최고 권력자 최측근을 한 번도 빠짐없이 구속시켰으니 사법정의가 살아있었다고 평가할 이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왜 매 정권마다 대통령 최측근의 비리가 거듭 반복되었고, 결국에는 대통령 탄핵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어야 하는지 되짚어 보는 것이 사안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접근이 아닐까?

 

고위 공직자 부패의 원인과 해결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감시하고 사정을 담당해야 할 검찰의 제자리 찾기를 우회할 수는 없다.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독립성을 갖춰야 할 검찰이 오히려 권력의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기 때문에, 국민들만 불행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해결책을 검찰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미명에 매달려서도 안 된다. 이 경우 자칫 검찰의 민주적 통제라는 요청을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요청과 현재 법 체계에서 갖고 있는 검찰의 막강한 권한에 대한 '합리적 배분'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충족하는 중층적인 입법과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다양한 검찰개혁을 위한 입법과제 중에서도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고위공직자의 비리에 대한 사정을 효과적으로 담당하기 위한 별도의 기구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설치할 필요성은 빼놓을 수 없는 코어 솔루션이다.

 

수없이 긴 시간 동안 공수처 설치를 반대해온 것은 사실 정치권과 검찰이었다. 검찰은 자신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을 우려했고, 정치권 역시 당리당략적 접근으로 일관해왔다. 이 때문에 공수처 설치는 몽상적인 대안으로 치부되고, 대신에 특검제도와 특별감찰관 제도 도입으로 대체되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특검제도와 특별감찰관 제도를 통해서 대통령을 위시한 고위공직자의 부패비리를 방지하고 해결하는 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 '박근혜 게이트'를 통해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우선 현재의 특검제도는 상시적·전문적으로 권력형 비리와 고위공무원들의 부정부패사건 등을 수사하고 검찰의 권한남용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사건 발생 이후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하여 한시적으로 활동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사후약방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 많은 특검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실질적으로 권력의 눈치를 본 축소수사에 그친 경우도 적지 않았다.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을 대상으로 한 특별감찰관 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현재의 특별감찰관제도는 감찰대상과 감찰범위 등이 매우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감찰권 이외에 수사·기소권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점 등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더구나 실제로 박근혜 정권에서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청와대 감찰을 시작하자, 오히려 우병우의 역습에 직면해야 했고 결국 사임을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현재 제도가 갖는 한계를 선언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의 설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20대 국회에서는 다양한 공수처 법안이 제기되었다. 2016년에는 민주당과 국민의 당이 힘을 모아서 박범계·이용주 의원안이 발의되었고, 정의당에서도 노회찬 의원안이 발의되었다. 

 

또 2017년에는 더불어민주당 양승조 의원안과 바른당의 오신환 의원안이 입법발의된 상황이었다. 2017년 가을에는 정부도 움직였다. 법무부에 설치된 자문기구인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는 아주 개혁적인 '공수처 설치 권고안'이 발표되었고, 법무부도 2017년 10월 - 비록 그 내용상 한계는 있지만- 자체적안 '공수처' 법안에 대한 도입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제 국회가 할 일은 명확하다. 우리 현실에 맞는 괜찮은 공수처가 설치될 수 있도록 현재 발의된 다양한 법안들을 기반으로 국회에서 보다 많은 숙의를 통해서 정선된 안을 만들어 의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자신의 임무를 철저히 방기하고 있다. 2018년 초에는 6월까지 활동할 사법개혁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지만, 적어도 3월 말까지는 공수처에 관해서는 어떠한 논의도 예정이 없다. 그러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회에서 '공수처' 논의는 여전히 공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사이에 믿을 수 없게도 H.O.T.는 무한도전에서 재결합 무대를 보여주었다. 공수처 설치보다 H.O.T.재결합이 더 빠를 것이라고 생각한 시민이 있었을까?

 

촛불시민도 공수처 설치가 당장 많은 것을 해결해줄 보증수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모든 제도는 시작시점에는 삐걱거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촛불이 기다리는 것은 '완성형' 공수처도 아니다. 공수처가 성장하고 자리를 잡는데에 시간과 서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시민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더 이상 공수처의 설치를 미루는 것은 국회의 횡포일 따름이다. 촛불시민은 올 해에는 공수처가 데뷔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응답하라 2018국회여.

 

 

금, 2018/03/09-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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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국면에서 위수령 검토한 국방부, 

시대착오적 행위에 대한 발본색원 조치 있어야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 당시 국방부가 위수령을 검토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실에 따르면, 국방부는 지난해 2월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위수령에 대한 이해’와 ‘군의 질서유지를 위한 병력 출동 관련 문제 검토’ 등 관련 문건을 작성했다. 군이 국민들의 탄핵 촛불이 계속되던 시기에 위수령은 물론 계엄령 절차와 무기 사용 범위까지 검토한 것이다. 시대착오적이고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국방부가 박근혜 정권 탄핵 촛불에 대응하고자 국민을 상대로 한 병력 출동 등을 검토한 것이라면, 이는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정권 당시 군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작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병력 동원까지 검토했다는 아찔한 사실은,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었던 과거 군부의 행태를 떠올릴만한 일이다. 따라서 당시 국방부가 해당 문건을 작성한 배경과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발본색원 수준의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위수령, 계엄령, 무기 사용 범위 등 병력 출동의 법적 근거와 절차를 전반적으로 검토한 것이 과연 당시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만 이루어진 일인지, 아니면 청와대 등이 연루되어 있었는지도 조사되어야 한다. 관련하여 수도방위사령부, 청와대 경호처 등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관련 기관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하다. 

 

우리는 이번 사안이 국방부 자체 조사에 맡겨 둘 일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검찰 수사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국방부는 철저한 반성과 함께 모든 조사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국회 동의 없이 군을 동원할 수 있게 한, 구시대의 잔재인 위수령도 이번 기회에 폐지해야 한다. 정권이 아닌 국민에게 복무하는 군으로 환골탈태할 것임을 군 스스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논평] 원문보기/다운로드

수, 2018/03/2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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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혁명을 통해 집권한 민주당이 명심해야 할 것!

– 지역 혁신을 위해 풀뿌리 시민사회 후보를 적극 공천하라 –

 

6.13 지방선거가 이제 80여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미 각 정당마다 예비후보 등록을 하고 아침이면 주요 사거리에서 인사하는 후보도 볼 수 있는 등 사실상의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와 더불어 시민들의 기대감도 커져가고 있다. 주민들의 삶에는 관심없고 오직 정당에만 충성하는 그런 정치인이 아니라 주민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정치인들이 배출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지방선거는 촛불혁명 이후 첫 번째로 진행되는 선거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난해 촛불혁명이 마무리 되면서 이야기 되었던 것이 적폐청산과 더불어 지역단위의 수많은 문제들의 해결과 생활정치의 실현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적폐가 정권교체 이후 청산과정에 있는 것을 보면 지역에서의 문제들도 결국 지역 정치가 바뀌어야 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런 지역의 정치가 바뀔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이번 6.13 지방선거이다. 그런데 촛불혁명을 통해 탄생한 더불어민주당 충북도당(이하 민주당)이 보이고 있는 행태를 보면 심히 우려를 금할 수밖에 없다.

이번 지방선거 공천자 중 비리 경력 후보가 다시 공천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세월호 참사, 광우병 촛불 등을 폄하했던 후보자가 등장하는가 하면, 금품살포, 미투운동의 대상자까지 공천을 받겠다고 하고 있어서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반면 지역사회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풀뿌리 후보들은 정당 공천조차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민주당조차 지역주민들의 민심을 무시하고 현재의 지지율만을 믿고 밀실공천을 자행하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현재의 지지도가 촛불을 통해 형성된 지지도임을 명심하고 이번 지방선거에 임해야 할 것이다.

먼저 촛불정신을 이어 받아 풀뿌리 공천을 실시해야 한다.

촛불 이후 지역사회의 수많은 적폐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치세력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미 많은 풀뿌리 후보들이 시민사회에서 활동영역을 확장하여 정치 영역에서 변화를 이끌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지역사회를 바꾸어야 한다. 이들은 지난 십 수 년 동안 보다 나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로 주민자치, 환경, 공동체 등 지역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요건을 두루 갖춘 전문가들이다. 이들에 대한 공천을 통해 민주당이 촛불혁명을 계승하고 지역 정치를 혁신할 수 있는 정당임을 보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공천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진행해야 한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 고공행진이 이어지면서 지방선거 공천 과정에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그 동안 민주당은 공천심사위원회를 구성할 때 으레껏 지역 시민단체에 참여를 요청하였다. 하지만 이번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는 시민단체에 대한 참여 요청도 없이 밀실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시민사회출신인 풀뿌리 후보를 배제하기 위한, 결국은 정당 지지율만 보고 뛰어든 구태 정치를 일삼을 후보, 철새 정치인을 공천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된다. 따라서 공천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뿐 아니라 풀뿌리 정치신인들이 대거 정치권으로 진입하여 지역 정치를 바꿀 수 있도록 공천규칙을 정하고 관리해야 할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촛불혁명 이후 첫 선거로, 지역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지역정치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선거다. 민주당은 이런 지역의 이해와 요구를 기억하고 이번 지방선거 공천과정에서 이런 풀뿌리 시민사회후보들이 대거 등용되어 지역을 바꾸는데 힘을 보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민주당이 또 다른 적폐세력으로 보수화되지 않고 지역의 정치를 바꾸는 정당으로 거듭나는 길이다. 이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2018년 3월 29일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목, 2018/04/0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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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출범 1년, 환경정책 평가 토론회」

촛불 정부 1년, 환경정책의 성과와 과제


□ 일시 : 5월 16일(수), 10시

□ 장소 :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

□ 주최 : 한국환경회의, 국회의원 강병원·이상돈·이정미

□ 프로그램 

 좌장 : 동종인 (한국환경회의 공동대표)

 발제 : 1. 문재인 정부 1년, 환경정책에서의 성과와 과제 /  금한승 (환경부 정책기획관)

 발제 : 2. 시민사회가 바라 본 문재인 정부 1년의 환경정책 / 윤상훈 (녹색연합 사무처장)□

 

 토론 : 강은주 (생태지평연구소 연구기획실장)

 토론 : 김기범 (경향신문 기자)    

 토론 : 김홍철 (환경정의 사무처장)

 토론 : 노태호 (환경부 장관 정책보좌관)

 토론 : 이상헌 (한신대학교 교수)

 토론 : 최재홍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장)       


※붙임_ 행사 웹자보

※문의_ 정규석(녹색연합 정책팀장/ 010-3406-2320)


1. 한국환경회의는 우리나라 주요 환경단체들(42개 단체)로 구성된 연대기구입니다.


2.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년입니다.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은 국정 전반을 쇄신하고, 지난 정부의 적폐를 바로잡겠다는 기치를 분명히 했습니다. 환경정책에서도 무분별한 규제완화, 국토난개발, 취약한 환경보건 등 지난 정부의 실정을 반성하고,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공공연히 표방해왔습니다. 


3. 한국환경회의는 여야 국회의원들과 함께 지난 1년 동안 진행된 환경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고, 미래과제 제시를 위한 토론회를 5월 16일(수) 국회에서 진행합니다.  


4.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금, 2018/05/1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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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포럼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에서는 <7월 참여사회포럼-촛불 이후의 민주주의: 직접인가, 대의인가?>를 개최합니다.

촛불항쟁 이후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 높아졌고, 참여의 방식 또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가깝게는 청와대 청원게시판부터, 시민사회단체를 통하지 않는 자발적 직접행동,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합니다. 게다가 정부에서는 공론화 기법을 정책결정과정에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에 대한 열망은 꽤나 커지고 있습니다. 물론 20대 국회의 태업도 제도정치 또는 대의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직접 참여의 열망이 커진 것과 비례해 '대표성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는 제도정치 불신, 심하게는 정치혐오적 풍토 또한 넓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참여사회연구소에서는 이번 참여사회포럼을 통해 이항대립적으로 이해되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간 관계, 공존의 가능성, 실천적 방안 등을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 직접인가, 대의인가?>

 

일시

2018.7.18. 오후 4시

 

장소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사회

이관후 서강대 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 연구원

 

발표

이승원 경희대 전환과 사회혁신 연구센터 소장

이지문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연구교수

홍철기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연구원

 

문의

02-6712-5248, [email protected]

 

 

 

수, 2018/07/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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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원해 촛불 들었던 젊은이들
정권 교체 이뤘지만 좌절에 빠져
공무원 도전은 현실과의 타협안
지레 포기 말고 조직 변화 이끌라


많은 제자가 2년 전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그들은 당시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바람대로 정권이 바뀌었다. 그런데 이들이 희망했던 일들이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성사되지 못해 큰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일자리다. 졸업한 제자 대부분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새로운 일자리가 좀처럼 생기지 않은 탓이다. 지난 50여년간 우리 주변에서 경제를 이끌어왔던 한 축인 영세 자영업자들도 속속 폐업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학생이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정년이 보장된 예측 가능한 직업이라 지금 한국의 여러 기업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조정의 충격을 겪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내 제자만 봐도 나랏일 자체에 열정을 갖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공무원직에서 독창성을 찾기 어렵고 반복적 업무만 하는 따분한 생활을 짐작하면서도 그저 타협하는 셈이다. 

정말 정부 일이 따분하고 활기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용기와 상상력, 그리고 지속적인 노력만 있다면 젊은이들이 촛불 집회에서 원했던 변화를 정부 조직 안에서 얼마든지 실현할 수도 있다. 한국이 창조적이면서도 효과적인 정책을 펼쳐온 전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젊은이들은 알아야 한다. 예컨대 세종대왕의 통치 철학은 도덕적 원칙에 충실한 윤리적 행정 시스템에 기반을 뒀다. 정부를 지루하고 비효율적인 집단이라고 깎아내리기에 앞서 어느 정도 부패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본질에서는 공공의 이익에 전념해왔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한다. 

변화를 갈구하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정부에 들어가면 그들이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도록 공무원 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 비록 공무원 사회의 가장 낮은 지위에 있다 해도 적극적이고 잘 조직된 젊은이들이라면 정부의 운영 방식을 바꾸고 쇠퇴한 공동체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 공무원에게 요구되는 불합리한 관행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공무원 사회 전체에 획기적 변화를 부르는 긍정적 압력이 될 수 있다. 

칼럼_180720

이런 일이 이뤄지는 데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젊은이들이 국가의 변화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정책 토론에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도록 정책, 기술, 인구 통계 및 기타 업무와 관련한 주제를 스스로 탐구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윤리학이나 문학 서적을 읽는 것을 포함한 인문학적 교육을 공무원 일과 중 일부가 되도록 배려해야 한다. 젊은 공무원의 업무 시간이 상사인 고위 공무원을 지원하는 업무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윤리적 인식과 지적인 정보를 갖춘 인재로 만드는 데 할애돼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게 순환보직제다. 이 제도는 젊은 정부 관료들의 전문성 구축을 방해하는 장치다. 지금이라도 이를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 대신 관심이 있는 주제와 분야를 자세하고 깊이 있게 조사·연구하도록 해 심오한 전문 지식을 개발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경영 컨설턴트나 이해가 충돌하는 다른 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정부가 자체적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젊은 관료들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제를 토론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로 이를 구현할 수 있는 해결책까지 제시할 수 있는 그룹에 속해야 한다. 정책 수립과 시행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면 그에 상응하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공무원 선발시험도 바뀌어야 한다. 헌법이나 기타 모호한 정책의 세부 내용을 암기하는 건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다. 이보다는 오히려 시대를 더 거슬러 올라가 조선시대 과거와 같은 전통적 시험방식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수험생들에게 통치 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문제를 던지고 여기에 윤리적 원칙을 적용해 해결하는 방법을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오늘날 한국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해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경제관념 탓에 현재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만들어 퍼뜨리는 매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난립한 탓에 미디어 시스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 청년층의 목소리는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 제대로 스며들기는커녕 오히려 차단돼 있다. 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없다. 하지만 도덕을 앞세우는 새 정부가 젊은 공무원들의 혁신적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면 분명 우리에게 기회는 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지구경영연구원 원장 

  • 2018년 7월 20일 <중앙일보> 임마누엘 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금, 2018/07/2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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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계엄령 문건 내란음모

 

내란음모 입증한 기무사 계엄령 관련 문건,

당시 청와대 지휘라인 등 강제수사해야 

헌정 질서 무너뜨리려한 명백한 내란음모 행위, 군 검찰에 맡겨선 안돼

 

오늘(7/20) 청와대는 기무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 전 2017년 3월 작성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서에 딸린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매우 충격적이다. 문건은 기무사가 계엄령 실행을 매우 구체적으로 준비를 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로써 기무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기각 시 예상되는 저항을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군 병력을 동원하여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이러한 내란음모를 세우고 실행하고자 했던 이들이 누구인지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한다. 검찰은 문건 작성자뿐만 아니라 당시 청와대 지휘라인들에 대한 강제수사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 

 

해당 자료는 계엄령을 통해 국가기관의 정상적인 작동을 막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국회가 계엄령을 해제하지 못하도록 국회 의결정족수를 미달시키고자 야당 국회의원들을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집회 시위나 반정부 정치 활동을 금지시켜 반정부 정치 활동을 하는 의원들을 집중 검거하겠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문건은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과의 당정 협의를 통해 국회의 계엄 해제를 막도록 한다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대통령이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 지휘통제에 따르도록 지시하며,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하도록 명령한다는 부분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사전에 보고 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이들은 계엄 포고문과 계엄사령부 설치 위치도 미리 준비했으며, 야간에 기습적인 병력 투입 계획도 세웠다. 언론장악을 위해서 22개 방송사와 26개 언론사, 8개 통신사의 보도를 통제할 요원의 구체적인 인원 배치계획과 함께 SNS와 인터넷 포털을 차단하겠다는 계획을 명시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이뤄질 이러한 계획들은 통상의 계엄 매뉴얼과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이는 변명의 여지 없이 명백한 내란음모 행위이며, 친위 쿠데타 계획이다. 형법상 내란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행위를 말하는 것(형법 제87조)으로, “국헌을 문란할 목적”은 “헌법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또는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 전에 밝혀진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나 오늘 공개된 세부자료 문건은 헌법과 계엄법에서 정하고 있는 계엄선포의 실체적 요건은 물론 절차적, 조직법적 요건조차도 제대로 준수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그 내용 자체가 위헌적이다. 현행법상 계엄선포의 요건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이다. 하지만 기무사는 가장 엄격하고 가장 협소하게 해석되어야 할 계엄 선포의 요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마련했다. 계엄을 수행하는 과정 또한 헌법이 정한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애초 기무사가 계엄을 검토한다는 것 자체가 본연의 업무 영역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도를 단순히 기무사 단독의 행위로 보기도 어렵다. 당시 탄핵 정국의 주도권을 갖고자 했던 청와대와 군부 사이에 사전 교감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황교안 전 권한대행,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장준규 전 육군참모총장 등 당시 청와대와 군의 지휘 계통에 있던 책임자를 전방위적으로 수사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자유한국당의 연루 여부도 철저히 밝혀야 한다. 독립적인 수사단이라고 하지만, 이 사태를 군 검찰에 맡겨둘 수 없다. 현재 기무사 특별수사단의 수사가 매우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건 작성 책임자인 소강원 기무사 참모장은 여전히 현직에 남아있다. 검찰이 하루빨리 강제수사에 나서야 한다. 

 

주지하듯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시민들이 의연히 촛불을 들었던 것은 헌정 질서 회복을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했지만 촛불집회는 단 한 차례의 폭력 시비 없이 평화롭고 비폭력적으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내란음모를 세우던 이들은 이러한 촛불 시민들을 진압해야 할 적으로 돌리고,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를 육군 중심의 군 통제 하에 두려 했다. 이토록 위헌적이고 초법적인 계획은 과거 군이 군사반란을 획책했던 그 시절로 한국 사회를 되돌리려 했다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국민 보호가 아니라 정권의 안위에 복무하며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망각한 군 조직은 국민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일 뿐이다. 민주주의에 미칠 해악성이 너무도 크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기무사 해체로 그칠 일이 아니라,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군 정보기관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비롯한 국방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성명 [원문보기/다운로드]

 

금, 2018/07/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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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협조요청

기무사 ‘계엄령 문건’ 책임자

내란예비음모 혐의 고발 기자 브리핑

일시 장소 : 7. 23. (월) 14:00,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

 

취지와 목적

  • 오늘(7/23)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등은 박근혜 정부 기무사 ‘계엄령 문건’과 관련하여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 책임자를 내란예비음모와 직권남용 등 혐의로 형사 고발할 예정입니다. 이에 고발장 제출 전 오늘(7/23)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현관 앞에서 기자 브리핑을 개최합니다. 
  • 지난 7월 20일 추가로 공개된 ‘계엄령 문건 세부자료’의 내용은 기무사가 계엄령 실행을 매우 구체적으로 준비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이는 명백한 내란예비음모 행위이며, 이러한 시도가 단순히 기무사 단독의 행위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 이에 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 브리핑을 통해 고발 취지를 밝히고,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할 예정입니다. 

 

개요

  • 제목 : 기무사 ‘계엄령 문건’ 책임자 내란예비음모 혐의 고발 기자 브리핑
  • 일시 장소 : 2018. 07. 23. 월 14:00, 서울중앙지검 현관 앞
  • 주최 : 군인권센터, 민중공동행동,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참여연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등
  • 문의 : 군인권센터/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담당 : 신미지 간사 02-723-4250 [email protected])

 

많은 관심과 취재를 요청합니다.

 

 

보도협조 [원문보기/다운로드] 

월, 2018/07/2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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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토론회

촛불 무력 진압과 기무사 민간인 사찰

 

일 시 | 2018.7.19 (목) 오후 1시 30분 ~ 4시 

장 소 |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실

 

프로그램

사 회 | 박래군 / 인권재단사람 소장

토 론 

- 김정민 / 변호사, 전 육군 법무관

- 박석운 / 퇴진행동기록기념위원회 공동대표

- 박정은 / 참여연대 사무처장

- 오동석 /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유경근 /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 임태훈 / 군인권센터 소장

- 하태훈 /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공동주최

군인권센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참여연대, 4.16 약속국민연대

국회의원 전해철, 국회의원 박주민, 국회의원 김해영, 국회의원 천정배, 국회의원 김종대 

 

자료집 [원문보기/다운로드]

 

목, 2018/07/1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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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세계 32호 표지

대표/직접민주주의 사이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전망하다

참여사회연구소 반년간지 《시민과 세계》 32호 발간

특집기획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를 성찰하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소장 장은주)는 반년간지 《시민과세계》통권 32호(2018년 상반기호, 편집위원장 장지연)를 발간했다. 이번 32호는 최근 논쟁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대표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간 이론적 차이를 명징히 하고 그 내용을 소개한다.

 

이번 32호의 [기획논문]<촛불 이후의 민주주의를 성찰하다>라는 특집주제로 구성되었다. 첫 번째로 실린 이승원의 논문은 대의제를 개선할 수 있는 힘으로서 ‘구성성’과 ‘전복성’ 사이에서 움직이는 직접민주주의의 역동성을 다루고 있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을 굳이 뚜렷하게 구분하지 않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이론적 틀을 따라 직접민주주의의 복원을 통한 민주주의의 급진적 확장을 주장하고 있다. 포퓰리즘을 민주주의의 병리적 현상으로 보는 이들에겐 발상을 전환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실린 홍철기의 논문은 대표(제)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승원의 글과 대척점에 서 있다. 실제 번역어의 문제로 인해 ‘대의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대표민주주의’는 고대 민주주의의 모방물이나 차선책이 아니라 더 나은 민주주의 형태로 의도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표는 부정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선거 밖으로 확장시켜 발전시켜야 할 민주주의의 요소다. 대표의 개념을 선거라는 제도 안에서만 받아들이는 현실을 향해 홍철기의 논문은 틀 밖으로 나간 사유의 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두 논문은 직접민주주의와 대표민주주의에 대해 우리가 가진 편견을 넘어 진지하게 성찰해 볼 수 있는 이론적 틀을 내놓고 있다.

 

[기획논문]이 직접민주주의와 대표민주주의라는 ‘이론적인 틀’에 대한 성찰이 중심이라면, 이번 호에 실린 [일반논문] 두 편은 좀 더 ‘실천적 차원’에서 양자에 대한 접점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조희정은 ‘합의회의’와 ‘공론화위원회’라는 사례에 주목하며 시민참여제도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조희정은 직접이냐 대의냐의 양자택일의 선택에서 벗어나 생활정치영역에서부터 시민정치의 활성화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지문의 논문은 ‘시민의회’의 사례에 집중한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의 원형으로 보는 이승원과는 달리 일종의 대의제로 보는 이지문은, 시민의회 역시 대표자가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대의제로 정의한다. 이지문은 대표자를 선거라는 제도를 벗어나 추첨으로 선발함으로써 직접성을 보완할 수 있는 개선된 시민의회 제도를 제안한다.


사회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소통과 논쟁]은 세 가지 중요한 논점을 실었다. 첫 번째 논쟁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오른 ‘공정성’을 다루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평화, 고용, 규제 등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공정성 논란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 논의는 ‘공정성은 공정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협회가 주축이 된 ‘문재인 정부 1년’에 대한 평가이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적폐청산과 권력기관 개혁 그리고 개헌>, <공정과 상생의 사회경제> 세 분야로 나눠 이뤄진 토론의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세 번째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가 된 ‘미투운동’이 담고 있는 대항의 언어들에 대한 것이다. 이 대항의 언어들이 밖으로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 세 가지 논점 모두에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소통과 논쟁]이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참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원문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가기>


 

《시민과세계》 32호는 엄정한 심사과정을 통과한 2편의 [기획논문]과 2편의 [일반논문], [소통과 논쟁] 3편, [서평] 4편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자세한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목 차 |


[기획논문] 촛불 이후의 민주주의를 성찰하다
직접민주주의의 정치철학적 기반에 관한 연구: 포퓰리즘인가 민주주의인가? / 이승원
대표민주주의의 역사와 이론: 직접 정치의 차선책에서 민주 정치의 최선책으로 / 홍철기


[일반논문]
시민참여제와 민주주의: 합의회의와 공론화위원회를 중심으로 / 조희정
시민의회는 직접민주주의인가, 대의민주주의인가? / 이지문


[소통과 논쟁]
<참여사회포럼> 공정성의 역설

<참여연대-민변, 문재인 정부 1년 평가토론회> 4세션 종합토론: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평가와 개선방향
패러다임 전환으로서 ‘성폭력 말하기’ 운동 / 김보화


[서평]
미국사회 부(富)의 상속에 대한 분석, 『능력주의는 허구다: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 박권일
『유럽민중사-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 전성원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 대의 민주주의에서 파수꾼 민주주의로』 / 김상준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에게: ‘젠더’를 넘어 ‘연대’로, 『전진하는 페미니즘: 여성주의 상상력, 반란과 반전의 역사』 / 김만권

 

 

※ 구독 문의: 참여사회연구소 김건우 간사 02-6712-5248, [email protected]

 

수, 2018/07/2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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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엽서가 아니었다.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백두산 천지 앞에 섰다. 그 장면이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중계되었다. 그 뿐인가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렇게 상상을 뛰어 넘는 변화를 가져온 원동력은 어디서 왔을까? 여러 가지 요인을 들 수 있겠지만 ‘촛불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24주간동안 광장에 밀집된 민의의 힘은 헌법을 다시 소환했고 국회, 헌법 재판소 등의 국가기관을 깨웠다. 그 질풍노도의 힘이 평화의 물꼬를 열고 있다. 광장만으로 된 것은 아니지만 광장의 힘이 정치제도와 기관을 견인하게 된 것이다. 광장과 제도가 결합될 때 놀라운 역량이 발휘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칼럼_180924경향신문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민주공화정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왕정의 역사가 수천 년인 나라가 공화국을 만든다는 것은 지구촌 전체 국가에서 많지 않은 사례이다. 더욱이 헌법 제 1조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구체화한 경우도 드물다. 물론 이런 급격한 공화정의 설립이 제도의 도입과 가치의 괴리가 가져오는 ‘역문화지체’의 감기 몸살기를 늘 달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구하는 외침과 ‘민주주의가 밥먹여주는가’라는 냉소가 늘 공존해 왔다. 많은 근대적 가치가 그렇듯 민주주의도 수입된 단어이다.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기본권 개념이 종이 위의 활자에서 외침으로, 그리고 내면화된 가치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계몽이 필요한 상태이다. ‘공화국’의 개념이 낯설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데모크라시는 ‘민치’(民治)를 뜻한다. 데모크라시를 민주주의로 번역하면서 민주주의는 필수가 아닌 선택, ‘주의’ ‘주장’ 중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이제는 산업화도 성공하고 민주화도 성공했다’는 자화자찬의 성취감 속에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갈등은 일시적으로 봉합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기가 조금만 침체의 기미를 보이면 민주화 탓을 하는 주장이 여전히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역주의 정당논리가 산업화의 성과와 민주화의 성과를 분점하는 방식으로 재구성되면서 민주화와 산업화는 적어도 동일차원 그리고 여전히 민주화가 하위차원인 것 같은 위치설정이 도전받지 않고 있다.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면 민주주의는 유보될 수 있다는 생각은 비서구 지역의 권위주의 정권의 정당성의 논리로 차용되었다. 민의를 억압했던 억압적 국가기구의 동원의 어두운 역사의 그림자는 아직도 지구촌 지도에 짙은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사회발전, 정치 발전, 경제발전이 나란히 이루어진 서구 국가에서는 순서도 사회발전을 토대로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이 함께 이루어졌다. 비서구 국가에서는 다른 것을 희생하여 이중의 한 가지만 선택하도록 강요당해 왔다. ‘갑질’과 ‘미투’는 사회발전의 지체가 폭발된 것이다. 우리는 선 경제성장, 저항을 통한 민주화, 그리고 그 힘으로 사회발전과 평화보장을 향한 길 위에 서있다.

민의를 전면에 등장시키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 민의는 ‘ 대의’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 민의’를 드러내는 것은 정당을 통한 ‘대의원’을 선출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 오랜 왕정의 전통 때문에 ‘ 대의원’은 대의된 권한을 위임받은 자 이상의 ‘ 권력’을 행사하고 ‘ 특권’을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 대의’가 결정권의 독점 또는 특권으로 잘못 인식되면서 잘못된 결정에 대한 저항과 청원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ìº´ À§ÇèÀ¸·ÎºÎÅÍ ¾ÈÀüÇÏÁö ¾ÊÀº ¹Ì±¹»ê ¼è°í±â ¼öÀÔ¿¡ ¹Ý´ëÇÏ´Â ½Ã¹ÎµéÀÌ 7ÀÏ Àú³á ¼­¿ï ÅÂÆò·Î ´ö¼ö±Ã ¾Õ¿¡¼­ Àü¸é ÀçÇù»óÀ» Ã˱¸Çϸç ÃкÒÀ» ¹àÈ÷°í ÀÖ´Ù.

‘직접민주제’를 이야기 하면 고대 아테네에나 가능했던 제도라고 이야기 한다. 직접민주제를 제도화하고 있는 스위스를 이야기하면 인구수가 적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그들의’ 이야기로 밀어 놓는다. 미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주에서 채택했다고 말해도 ‘아직 우리는’이라고 하면서 민주발전단계론 뒤로 숨는다.

직접민주제는 현대와 같이 복잡하고 그리고 유권자의 수도 많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한 제도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이어 파퓰리즘을 말한다. 민치의 전면적인 등장을 강조하는 이태리의 오성운동, 스페인의 포데모스의 등장을 ‘파퓰리즘’이라는 개념으로 가두고 있다. ‘경제 성장의 걸림돌’ ‘ 파퓰리즘’ ‘혼란과 질서회복’ 모두 민의의 전면적 등장을 가두기 위해 사용하는 박스들이다. 민주주의가 안착하기도 전에 ‘중우정치’에 대한 우려가 앞선다. 직접민주제를 말하는 순간 그것이 대의제의 보완제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대의제의 모든 특권에 도전하는 것으로만 인식한다. 직접 민주제를 이야기 하면 정당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도 한다.

한국에서는 정당 명부식 비례 대표제가 선진적인 제도로 소개되곤 했다. 정작 그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는 정당 관료제 과잉의 문제에 대응하는 ‘ 더 많은 ’ 민주주의 활동가들이 있다. 히틀러가 국민 투표로 당선되었다는 트라우마 때문에 독일에서는 정당 중심의 대의제가 발달하고 민주시민교육을 강화하였다. 저항을 통해 민주화를 이룩해 온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라가 직접민주제의 제도화보다 정당 명부제를 강조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아직도 ‘좋은 제도 수입’으로 좁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정당 발전보다 사회운동의 역사가 긴 우리의 민주화의 역사에서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은 광장의 민심을 직접민주제라는 제도로 수렴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 많은 민주주의’ 활동가들은 독일이 이제는 직접민주제를 도입할 만큼 민주시민 훈련이 되었고 정당 관료제가 민의를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함부르크 주에서 ‘더 많은 민주주의’ 운동을 하고 있는 맘포드 박사는 자신이 직접민주제 운동에 뛰어들게 된 이유를 설명하였다. 스위스에서는 사회기반 시설 공사비가 적게 들지만 더 내구성이 있는데 반하여 왜 독일에서는 공사비도 더 많이 들고 공사 내용은 부실한가를 질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해답으로 스위스에서는 큰 공사비가 드는 사안은 주민 투표로 결정되기 되기 때문에 예산 집행이 투명하고 더 많은 공론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추론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맘포드 박사는 모든 정당은 대의제의 특권 방어라는 측면에서 카르텔을 구성한다고 하면서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함부르크 주 의원실의 귀족정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의원휴게실을 보여주었다. 함부르크에서 녹색당 의원들이 오랜 보존 녹지에 항공기 제조사를 건립하는 안에 찬성하는 상황도 설명해 주었다. 그는 시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견제가 없이는 의사결정권의 독점권이 가져오는 폐해를 막기 어렵다는 점을 거듭 설명하고 있다. 사민당이 집권하고 있는 함부르크에서 당초 예산 보다 10배가 넘는 예산을 소요되는 하펜시티 개발의 문제, 올림픽 유치의 문제가 주민들의 공론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올림픽 유치의 정당성에 대해 대대적인 홍보를 한 연후에 주 정부는 요식행위 차원에서 주민투표에 부쳤는데 소요예산을 따져 본 주민들이 올림픽 유치를 부결시켜 주정부 관계자를 놀래게 한 일 도 설명해 주었다. 올림픽 유치 찬반에 대한 주민투표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언론은 올림픽 유치를 기정사실화 했지만 ‘유치 반대’라는 투표 결과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올 여름 학생들과 도시재생을 주제로 함부르크를 방문했을 때 맘포드 박사가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직접 민주제적 방식의 의사 결정이 도입되면서 유럽의 주요 도시에서는 소요 예산의 문제, 환경문제에 대한 고려 때문에 정치인과 행정부가 밀어붙이는 큰 대회 유치가 번번이 주민투표에 의해 부결되고 있다고 한다.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로마에서는 세계 직접민주주의 대회가 열린다. 2008년 스위스 아라우를 시작으로 2009년 서울, 샌프란시스코, 몬테비데오, 튀니스, 상 세바스챤을 거쳐 말 그대로 글로벌 포럼의 면모를 갖추었다. 2000년대 초입에 세계경제 포럼인 다보스 포럼과 세계 사회포럼인 포르토 알레그레 포럼이 같이 출발하였다. 2008년에 세계직접민주주의 포럼이 시작된 지 10년이다. 2018년에서는 오성운동의 결과 당선된 로마시장의 적극적 유치로 500여명이 넘는 전 세계 직접민주주의 활동가가 함께 한다. 광장의 도시 로마에서 전 세계 직접민주주의 활동가들과 함께 광장의 민의를 제도로 수렴하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하고 돌아오고자 한다. 촛불 민의의 역량을 담는 실질적 그릇을 만드는 도공의 심정이다. 직접민주제는 일정 수 이상의 유권자가 요청하면 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청원과는 차원이 다르다. 결정권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월, 2018/09/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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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실을 정리하다가 지쳤다. 화구보다 책이 많은 스튜디오다. 수십년 쌓인 책은 버리지도 다 읽지도 않은 채 널려있다. 인문서, 도록, 팜플렛, 자료집 들이 대부분이다. 산더미처럼 쌓여버린 책들 이제는 다 버리고 싶다가도 미련이 남아서 아직도 스튜디오를 차지하니 어지럽다. 열에 아홉은 눈길도 안 주는 종이무더기에 지나지 않게 된 책들에 무슨 미련이 많아서 끌어안고 사나. 나의 회의는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이 책들의 사고 대부분은 내 사고와 실천을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부분이 인본주의 틀에서 서술한 이 책들은 산속 숲에서 사는 내 생활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흡사 21세기를 살 소년이 20세기 책으로 19세기 교사에게 배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칼럼_181001

얼마 전 ‘민중미술과 영성’ 미술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다. 민중신학을 개척한 서남동 교수 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함께 벌린 일이다. 신학과 예술의 합류로 민중미술을 다시 정리해보고 싶었다. 민중의 삶 현장에서 활동하는 미술가를 중심으로 초대전시 했다. 특히 민중과 신학과 예술의 문제를 서남동 목사처럼 합류정신으로 보았다. 민중, 신학, 예술. 서로 전혀 다른 주제 같지만 삶의 관점으로 보면 서로 연관되는 주제다. 이들은 삶과 죽음의 주제, 행복과 고통의 주제, 존재와 무의 주제를 다 갖는다. 하나뿐인 지구의 생태계에서 인류는 너무 혼자 커져 버렸다. 각종 자연 파괴와 환경오염과 자원 고갈과 이상 기후 현상까지 만들어 지구 생태계를 망치는 인간의 존재가 무슨 염치로 세계 운영을 계속 주도하려는가, 근본적 성찰이 필요한 시대다. 이 성찰을 방해하는 사고가 대부분의 책들이고, 바보상자 티비, 엘리트 관료와 신자유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인간 아닌가.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중심의 사고로 전환하는 르네상스는 서구의 근대적 인간을 만드는 뿌리가 되었다. 합리적 사고와 휴먼이즘이 나와서 인간이 신의 영역도 대신한다. 생산과 소유를 무한정 인간이 주도할 수 있다는 자기 오만이 생기게 되었다. 신성 중심이냐 인간성 중심이냐를 분리해서 보면서 세계관의 이원론적 오류에 빠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과 인간은 양단 택일의 문제는 아니다. 신성(세계, 자연, 우주)과 인간성은 둘이면서도 하나다. 인류학에서 좋은 개념이 있는데 그게 신인간이다. 신이면서 인간이고, 인성 안에 신성이 있다는 것으로 불이(不二)다. 현실 세계는 여러 가지 사물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모두 고정되고 독립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근본은 하나라는 것인데 신과 인간의 분립적 사고는 세속의 인간, 피조물 인간을 만들어버렸다. 고대 인류의 사고에는 본래 신성과 인성을 불이로 보았다. 고대 예술과 유물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영성이 깃들어서 사물마다 지닌 신성을 놓지 않고 있다. 모든 만물에는 신성이 있어서 서로 외경스러워하며 경배한다. 동학은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天地萬物莫非侍天主也

 

신은 인간의 내면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內有神靈이다. 인간은 이 신령스러움을 우주적 질서와 자연현상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보고 느끼고 겪는다. 우주질서를 다 표현하기 어려워서 비유한 것이 신이란 隱喩다. 숨긴 채 드러낸 신은 은유문화다. 지구촌마다 다른 모양의 신이 출현한 것을 보아도 신은 그 지역의 생태지리적 조건 속에서 창조한 은유문화인 것이다. 인류 초기의 신은 그렇게 추상적이지도 않고 인본적이지도 않은 신관을 갖게 되었다. 해 달 별 바람 그리고 동식물에서도 신성을 찾는다. 애니미즘, 토템이즘이라고 서구 인문학에서는 자연과 생물 믿음을 미신이라고 치부해버렸다. 토템, 각 종족마다 특별한 인연을 맺은 동식물에 대한 믿음은 생태계를 신성으로 본 것인데 토템이즘이란 프레임으로 미혹이고 미신이라고 딱지를 붙였다. 과학을 편의적이 잣대로 이용한다. 자기들이 믿는 신은 진리고 타자의 신은 미신이다. 자연을 환경이나 인간의 들러리로 보는 자연에 대한 오만한 시선을 본다. 자연의 신성에서 종족의 뿌리와 자기 정체성을 찾고 자기를 낳고 기른 어머니 모성에서 신성을 찾는 인류문화르 파괴한 것이다. 철기시대부터 남성 권력은 자연의 구체적 신성(토템), 종족의 주체적 신성(모성신성, 조상신성)을 부정해야 권세를 완성하기에 다부족 다신교가 권력에 복속되면서 종교는 권력의 소유가 되었다. 권력은 영성의 힘을 활용하며 ‘신성한 권력’으로 권력을 미화하고 정당화했다. 신전을 왕궁으로 동일시했다. 철기시대 권력은 신의 이름으로 폭력과 살인과 약취를 정당화한 것이다. 종교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커졌고 동반해서 영적 지배력을 키워왔다. 신은 본래 부족 공동체의 세계에 대한 은유문화였던 것이 국가권력 자체가 되고 그의 배후가 되었다. 신성의 독점, 빅 갓(Big God) 시대로 바뀌며 오늘날의 남성 중심의 4대종교만 살아남는다. 그전의 인류는 스몰 갓 문화였다. 모든 신의 중심은 권력을 갖은 남신이 되면서 신석기시대 모계중심사회의 스몰 갓 여신들, 조상신들은 서서히 소멸한다. 신석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면서 민중은 신을 잃었다.

 

민중은 이데올로기로 사고하지 않는다. 신을 믿고 나를 믿고 혈연적 공동체에 의지하며 사는 것 같다. 지배 엘리트는 민중을 끊임없이 교육 시키지만, 단지 먹고 살기 위해 교육에서 정보지식을 기술 삼아 이용할 뿐이다. 민중은 학제적 사고를 하지도 않는다. ‘개똥밭에 살아도 이승이 났다’는 말처럼 사는 것 말고 더 중한 것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지만, 신성을 믿어서 초월적이다. 이는 ‘가난의 초월이다’. 사는 것 자체가 고난이면서 동시 초월이다. 신성하면서 세속적이다. 진리는 원래 이중모순이다. 흔히 민중을 개념규정 할 적에 정치적으로 피억압 계급이고 경제적으로 소외되고 문화적으로 비주류라고 말해왔다.(한완상 민중론) 그러나 민중은 존재적 규정으로 다 잡히지 않는다. 차라리 민중은 그 때 그 때마다 발생하는 사건이라 말하는 편이 났겠다. 사회학적 규정에는 신성이 빠졌다. 가나만 보지 초월을 보지 못한다. 민중은 초월성을 가져서 역사를 반란(혁명)으로 창조하곤 한다. 인간과 민중에게는 본래 깃든 신성이 있고 신성한 에너지를 믿고 초월한다.

 

민중은 신이 있었다. 고대 인류가 부족사회로 살 때부터 만들어진 것이다. 철기문명에 와서 신화는 전설과 민담으로 변질이 되면서 범신이 유일신으로 바뀐다. 민중은 권력이 무서워 자기 신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민중의 마음 속에 신성이 다 소멸 된 것은 아니다. 자기 마음 속 신은 저마다 다르게 있지만 내 안에 있다. 작고 구체적이고 어머니와 조상으로, 지역의 자연으로 신들이 있다. 신의 의인화, 자연의 은유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에도 내 마음속 신인간이 지워지지 않은 무의식의 원형문화로 자꾸 솟아나는 것이다. 마르지 않은 샘처럼 다시 자기 안에서 신성을 재발견한다. 그래서 미래학자들은 이것을 가리켜 미래시대는 영성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본다. 신화학에서는 이를 ‘재신화의 시대’라고 말다. 민중이 신성을 자기 안에서 회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이 원천적으로 뒤집히는 것이다. 정치 경제적 혁명만이 아니고 문명의 전환이다. 철기문명과 근대주의와 인본주의가 마감하고 생태문명과 탈근대주의와 범신성주의로 가는 신성문화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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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가 한반도로부터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분단체제에서 평화체제로서의 대전환이다. 이 기회를 잘 봐야 한다. 단순히 ‘평화는 경제다’. ‘평화는 적대 국가 간 화해와 수교’ 문제가 아니다. 평화는 국가 간에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가 풀 수 있는 것은 전쟁 상태를 멈추고 적대적 관계를 해소하는 단계까지의 평화다. 평화는 시민이 성취해야 할 탈국가적 권리다. 평화는 자본권력이 먼저 가져다준 역사가 아니다. 평화는 자연권이고 천부인권이고 ‘가난의 초월’이 만드는 신성문화이다. 평화시대는 누가 가져다가 주는 것이 아니고 세계시민이 자기 내면으로부터 창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길게 보면 문명전환의 기점에서 세상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이다. 망가진 지구를 이대로 지속하다가는 아주 망가져 버리니까 다시 지구평화의 로드 맵을 평화시민이 연대하여 유라시아의 평화, 세계 평화를 다시 처음처럼 만들어가는 시대가 왔다. 무슨 의미인가. 어떤 평화를 만들 것인가. 우리는 지금 전쟁문명을 평화문명으로 바꾸는 시작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묻는다.

 

문명전환은 세계관의 전환이고 신관의 전환이다. 신관(무의식과 Meme)의 전환 없이 인간의 의식계 변화를 기대할 순 없다. 촛불시민혁명은 집단지성을 너머 집단영성을 찾고 있다. 시민은 내면의 힘 연대로 평화문명을 찾고 있다. 촛불시민혁명은 시민의 내면에서 민중신, 평화문명의 신성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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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10/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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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직접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고 이를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스위스 국적의 직접민주주의 전도사 Mr. Bruno Kauffmann이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하여 의원회관에서 강연을 하는데 국민주권연구원의 상임이사 자격으로 인사말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계기를 통해서다. 강연 내용은 상당히 신선하여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고 당시의 느낌을 4월 6일자 프레시안에 “직접민주제 – 시민발안과 국민투표를 중심으로” 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통해서 소상히 밝힌바 있다.

한편 한국사회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하여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며 민간정부로 출범하는데 성공하였고 2016/7년간의 촛불시민혁명을 통해 탈법적이며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단죄하고 문재인 정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면서 세계인의 찬사와 부러움을 받았으나, 정작 이후 전개될 미래정치의 로드맵은 실종되었고, 목불인견의 구태의연한 과거식 정치형태가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면서 우리의 정치판이 도로묵으로 회귀하는 형국이다.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이에 대하여 헌법개정과 선거법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으나 현재 한국 정치판의 구성과 상황, 헌정 제도의 결함과 시정잡배 수준의 정당구성원 자질 등 여러 문제로 난항을 겪으면서, 의회와 정당구조를 개혁하는 것이야말로 적폐청산 중의 최우선이라는 공론이 형성되면서 현하 한국사회의 가장 주요한 개혁 과제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사회 내 선진적 시민사회의 주도로 비례민주제의 도입을 논의하고 있는 시점에, 정작 정당명부식 비례민주제 시행의 모범국가로 알려진 독일에서는 오히려 대의적 정당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집권여당인 기민기사연합당은 차치하고라고 160년 역사를 지닌 사민당조차 냉대 속에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현실에 처해 있다고 한다. 로마현지에 만난 독일 활동가들의 독일의 정당중심 정치에 대한 반응은 한마디로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세상’ 이라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유럽의 주변부라고 칭할 수 있는 그리스를 시작으로 스페인 그리고 급기야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즉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는 거대한 흐름이 형성되어 급기야 중앙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국내 언론의 보도와 학계 대부분의 평가는 이를 부패하고 무능력한 남유럽의 정치문화에 국한된 일과성 내지는 대안을 찾지 못해 표출하는 포플리즘으로 치부하면서 오로지 책임질 수 있는 대의적 정당정치로의 복귀가 정답인 것으로 단정하고 있는 편이다. 정말 그럴까?

한국정치의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미래구상에 대한 갈증과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시민직접참여의 생생한 정치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볼 욕심으로 추석 다음날 일찍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비를 털어서 함께한 이들은 대구가톨릭대 이정옥 교수를 비롯하여 주권자전국회의 문국주 집행위원장 그리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신형식박사 등 이었다.

이번 제 7차 글로벌포럼이 영원한 도시(Eternal City)로 불리는 로마에서 열렸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대단히 상징적이었다. 로마시의 배려로 2,000여 년 전 인류역사에서 매우 소중했던 민회 중심의 공화정이 실행된 장소인 ‘포로로마노’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시청건물(Palazzo Senatorio)에서 진행되어 역사적 의미를 크게 부여하였고, 유럽의 21세기형 시민혁명이라고 평가받는 오성운동 운동의 출신으로 37세의 젊은 나이에 로마시장에 당선된 Ms. Verginia Raggi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 특별했으며, 60여 개국에서 500여명이 참석할 만큼 이젠 직접민주주의 운동이 국제적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열기 속에서 열렸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로 대회 이후 직접민주제의 확산을 위한 마그나 카르타의 제정 결의로 발전한다.

회의 일정은 25일 저녁 등록과 함께 개회선언과 로마시장의 저녁초대로 시작하여, 26-27일 양일간의 오전의 공동주제 발제와 오후의 각론적 워크샵으로 진행되었고, 28일은 전체회의를 평가하고 2019년 대회 주최 예정국인 대만 타이중(臺中)시의 구상 발표에 이어 마그나 카르다 제정작업의 착수를 선언하는 것으로 마감되었다.

매우 인상적인 것은 전세계 7개 주요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례발표를 한 것으로 로마는 시장이 직접 발표를 하였고 다른 도시들은 모두 부시장들이 참여하여 발제를 하였는데 서울과 마드리드 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여성이었다는 점이었다. 역시 압권은 Raggi 로마시장의 사례발표였다.

그녀는 우선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율이 해마다 떨어지는 것은 기존 정치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정치체계와 참여방식의 일대 혁명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하면서,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아고라 광장의 원칙과 개념에 따라 모든 의제는 공개와 토론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현대적인 통신기법인 on-line과 기존의 off-line 방식을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밝힌다.

소셜 미디어와 정보의 수단을 활용하여 시민들로부터 직접 제기된 안건에 대하여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내용을 공개하면서 모든 시민들에게 제공된 정보의 접근권을 보장하며, 회합과 토론을 통한 숙의 그리고 결론에 이르는 일련의 종합적인 과정에 치밀한 시민참여와 시민발의라는 민주적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대한 예시로 로마시는 여론조사와 시민제안을 통하여 핵심 프로젝트로 지속가능한 공간이동권 (sustainable mobility in Rome)으로 선정하고, 이를 시민의 공론과 참여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특히 젊은 세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영화제작과 다양한 이벤트를 통한 참여의 경로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뒤를 잇는 다양한 발표내용은 상기의 시나리오에 준하여 각자 도시들이 안고 있는 나름대로의 현안과 조건에 상응하는 여러 사례들을 발표하였는데, 추가로 몇 가지 사항을 보태어 설명하자면, 투명성(Transparancy)과 책임성(accounterbility)를 유난히 강조하였고, 발안와 숙의의 과정뿐만 아니라 실제의 집행과장에도 발안을 주도한 시민그룹들이 반드시 참여하여 모니터링하는 경로를 마련하여 땅에 떨어진 정치와 행정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로설계과정에서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사항으로 적정한 예산배정과 더불어 충분한 시간과 일정의 중요성에 대해 모두가 입을 모았다.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가능한 모두가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숙의하고 결론을 도출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참여 여부도 강압이나 규정이 아니라 관심과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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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글라루스주의 주민 총회 장면이다.

현재 국가단위에서 시민발안제를 포함한 직접민주제도를 채택한 나라에는 스위스와 우루과이 그리고 놀랍게도 이웃나라인 대만이 있다. 대부분의 참여국가들은 지방자치단위 수준에서 참여 민주주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거나, 주요 남유럽국가들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대부분 주정부, 미국의 선진적 주정부(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오리건 등)에서 시민발안제도가 채택되고 시행중인 듯하다. 우루과이라는 나라가 언급되자 농민출신으로 대통령으로 봉직하다가 건강문제로 사직하고 다시 농민으로 돌아간,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진, 호세 무히카의 이야기가 필자에겐 직접민주제도와 함께 연상으로 겹쳐지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대만의 경우에도 국가의 중대한 사안은 아닐지라도 생활의 현안문제를 시민적 발안을 통해서 국민투표를 시행한 수 차례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타이중시의 사례발표에는 초등학교부지의 선정과 학교이름을 작명하는 과정을 시민 발의와 투표과정으로 진행한 사례가 재미있게 소개되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사례발표는 스페인의 경우, 포데모스 운동이 격하게 진행되기 전인 2011 선거과정에서 시민들은 특별한 이슈에 얽매이지 않고 진정한 민주주의(real democracy)를 외치면서 기존의 정치제도를 다시 생각하고(rethinking), 다시 정의하고(redefine) 다시 설계(redesign)할 것을 대대적인 가두시위를 통해서 요구하였으나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들의 요구에 등을 돌리면서 포데모스 정당운동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 시민들이 직접 책임지고 결정한다( we, people, are to make decision in responsibility’)라는 구호를 들고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탈리아의 경우 아직 전국단위의 직접민주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중앙정부에 직접민주제 책임장관을 임명하여 이를 준비하고 있으며, 대부분 지방정부에는 시민참여부서를 국장급단위로 직접 운용하고 있다. 직업정치 영역과 일반시민간의 간격을 줄여가기 위한 전자시스템의 구축이 활발히 진행 중이며, 시민들은 이미 직접민주제도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반하여 정작 정치인들은 이의 시행에 꼬리를 빼고 있다고 고백한다.

디지털 디바이드, 시민 연령의 고령화 및 25개의 지방정부간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 그리고 정부와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과 투명성 부재가 직접 민주제를 당장 시행하지 못하는 현실적 장애라고 지적한다. 일부 학계에서는 시민간 자질의 간극과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위험을 경고하면서 전문가들의 안내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치적 고려와 기술적 사항 그리고 제도적 정착과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시민발안 확정 이후 실제로 시행된 국민투표에 시민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했던 경험도 지적되었다.

시민발안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직접민주제도가 비경제이라는 지적에 대해, 바젤 대학의 교수출신이 마이크를 잡아채듯이 단호한 목소리로 절대로 반대의 경우라고 외치면서 스위스 경험에 비추면 직접민주제를 통한 결정이 대의민주제의 과정보다 직접 비용이 20% 정도 절감되며 사회갈등으로 발생되는 간접비용까지 감안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직접민주제도가 시민들에게 만족감을 제공하는데 훨씬 경제적이며 효과적이라고 단언한다. 아이슬랜드의 사례로 금융위기로 국가부도상태에서 이를 극복한 것은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여 해결책을 찾고 모두가 하나되어 실천한 덕분이라는 발언도 있었다.  

민주제도를 정치를 중심으로 분류하자면 리바이던의 저자 홉스식으로 권력자에게 모든 것이 위임된 통치(統治)에서 시작하여 루소의 시민적 일반의지에 따른 사회계약론과 칸트의 보편적 법정주의에 따른 법치(法治)가 변형되어 공직사회가 시민을 통제하는 관치(官治)를 거쳐 시민들이 참여하여 진행하는 협치(協治)의 형태로 발전해 온 셈이다. 법치의 다른 형태로 민주적 사회로 들어오면서 합의된 선거의 규칙을 통해 시민의 선택을 받은 정당들이 책임지고 국정을 운용하는 이당치국(以黨治國)이 일반적인 형태로 받아들여져 온 것이 인류사회 오늘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촛불혁명을 거친 2018년 한국사회는 이제 강압적up-bottom 통치시대를 끝내고 관치를 넘어서 협치를 지향하는 시점에 있기는 하나, 민본과 민생과는 거리가 먼, 표만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show-up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참여민주제로 포장한 유사민주주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동시에 정당이라는 이름은 있으되 정당이 추구해야 할 강령과 정책의 실천의지가 실종된 사이비 정당시대에 한국시민들은 살고 있기도 하다.

이때 직접민주주의를 들고 나선 일군의 유럽 시민들은 기존 정당중심의 정치는 모두 실패했다고 선언하면서 민주주의는 반드시 bottom-up 방식의 민치(民治)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인류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중요한 출발점이며 새로이 마그나카르타를 준비하는 배경과 근거이기도 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의 헌법에 비추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를 동의적으로 반복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제 한국현대 정치사를 살펴보면 민치가 이루진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성숙한 대의적 민주제를 실현하기 위해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의 개혁 역시 매우 바람직하며 반드시 쟁취해야 하는 정치적 과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정당다운 정당이 없는 한국정치의 현실에서는 텅빈 메아리가 되기 십상이다. 정당이 정당답게 변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대의적 민주제도의 확립을 위해서도 시민발안제의 도입이 절실하다는 것이 로마에 참여한 지인 참석자들의 공통적인 의견이자 한국사회에 던지는 조언이기도 하다. 이제 비례적이고 균형적인 대의제도와 시민발안을 중심으로 한 직접민주제의 쌍(双)도입이 2018년 이후 한국정치의 과제상황이 된 셈이다.

대회 이틀째인 로마대회의 직접민주주의 토론은 정치의 영역을 훌쩍 뛰어 넘어간다. 각론으로 넘어간 오후의 워크샵에서는 수많은 주제들이 다루어져 필자가 모두 참석할 수는 없었으나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 삶의 구체적 경험과 내용을 담아내는 사회 경제 그리고 철학의 주제로 이루어 졌다. 필자가 선택하여 들어간 두 군데의 워크샵 주제는 ‘민주주의는 예술이자 타자와의 대화이다’ 와 ‘창의적인 공유재와 민주제도 – 혁신’이였다. 불행히도 주제강연과 토론이 독일어와 이태리어로 이루어졌고 어설픈 통역으로 깊고 세밀한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첫째의 주제는 일정에 없던 것으로 저명한 독일 철학교수가 참여하면서 급조되어 이루진 워크샵이었다. 그는 민주주의를 제도로 보지 말고 자신의 삶에 채워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음악의 여신인 뮤즈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한다. 뮤즈와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 깨달음을 얻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타자와 대화를 통해서 더욱 성숙된 내용으로 정진하면서 일상적인 실천으로 나가게 된다고 가르치면서, 삶의 주인인 자신과 타자인 우주와 세계 및 사회간의 관계적 연결 매체로서 직접민주제도가 반드시 요청된다는 요지이다. 내용이 어려워 필자가 이해했는지는 불명하여 그가 강의 중에 칠판에 그려낸 한 폭의 예술적 강의기록을 찍은 사진을 아래에 게재하면서 이를 보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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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주제의 발제와 패널은 그야말로 로마시를 대표하는 지성들의 자리였다. 로마시당국의 시민참여국장, 로마시의 유럽대학 학장, 장관(?)연합회 의장, 디지털이태리 대표 등이 참석하여 주로 직접민주제를 사회경제적 영역으로 확장하는 문제를 다룬 것으로 이해했다. 직접민주제를 실시하는 데는 정보와 데이터가 매우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이를 사기업이 소유하고 있어 비용이 발생하면서 일반시민들의 접근이 제한되는 것을 여하히 극복하는 문제와 기업과 경제활동의 영역에 이해관계자 중심 또는 사회적 공유라는 개념을 직접민주제와 결합시켜 적용하는 주제를 다루면서 어떤 경우라도 모두를 위한 혁신과 창의를 기본으로 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것을 분명히 한 자리였다.

결론부이다. 3-4일간의 로마대회를 참여하면서 이제 정치적 제도는 통치와 법치의 영역을 뛰어넘어 스스로를 통제하고 지배하는 민치의 시대(以民治國)로 진입하고 있다는 강한 느낌을 받으면서, 직접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적 제도의 영역을 넘어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적 사건 속에서 원칙과 과정과 대화를 통하여 개인 그리고 인류사회를 보다 높은 미래의 영역으로 안내하는 길라잡이 라고 스스로 정리해본다.  2018-10.

추신 :

참여한 대부분 주요 도시에서 시민참여와 교육을 위한 수백만 유로(수십억원)의 예산을 운영하고 있는 반면에 일년에 1,700조 이상의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나라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시민민주교육 예산이 3-4억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회에 공식적으로 참여한 한국 인사들의 발표 내용과 수준도 이에 준했다. 촛불시민혁명의 세계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현대적 민주주의에 관한 한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수, 2018/10/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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