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본부장 : 조형수 변호사)는 오늘 4/26 「19대 대선 후보의 민생정책 평가」보고서를 발행했다. 민생 정책은 높은 가계부담의 원인인 주거안정, 대학교육비, 통신비 인하 정책과 소상공인 보호 정책을 평가했다.
19대대선 후보의 민생 정책 비교평가 이슈리포트는 민생 분야 정책질의에 대한 각 후보 답변을 비교하고 평가했고, 평가 대상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로 5명이다. 평가 기준은 한국사회 민생개혁을 위해 참여연대와 시민단체가 제시한 과제 수용 여부, 답변의 구체성, 이행계획, 정책에 대한 후보자 입장의 일관성, 후보자가 제시한 정책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했다.
각 후보별 총평 요약은 다음과 같다.
○ 문재인 후보
- 주거정책은 전체적으로 주거복지와 관련해서 개선방안 적극 제시. 반면, 주거·부동산정책의 핵심인 전월세임대료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도입 등 임대차안정화 추진 의지가 불분명하고, 분양가상한제, 분양원가 공개 등 실수요자 중심의 주택분양제도 개선 방안도 시장상황을 고려한다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임
- 반값등록금 실현, 대학입학금 폐지, 학자금 대출 금리 인하 등 대학교육비를 줄이기 정책을 수용함. 다만 정부 재정지원으로 해결하겠다는 방침으로 기존의 대학의 낭비성 예산을 줄이는 등 자구 노력을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함
- 통신비 인하 정책 질의 시 모두 찬성한다고 답했으나, 기본료 폐지만 반영하고, 후보의 공식 공약에는 통신원가 자료 공개와 인가절차 투명성 확대에 대한 내용((가칭)통신요금검증 위원회)은 누락됨
- 소상공인 위기 원인을 잘 파악하고 있음. 다만 복합쇼핑몰 입점(진출) 규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방안이 제시되지 않음. 자영업자의 안정적인 영업을 위해 필요한 임대료 상한률 인하, 퇴거 보상제 도입은 긍정적이나, 10년 영업기간 보장은 점진적으로 연장한다는 입장임
○ 안철수 후보
- 임대료 상한제 도입과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에 찬성, 임대주택 공급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실현방안 부재. 전체적으로 현상유지형 주거정책임
- 대학교육비 인하 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음. 가장 부담이 큰 반값등록금 정책과 후보 측이 소외취약계층부터 도입한다는 계획은 구체적인 실현방안이 제시되어야 함
- 통신원가 자료 공개와 인가절차 투명성 확대, 기본료 폐지, 분리공시에 찬성한다고 했으나 공식 공약에는 모두 반영되지 않음합리적인 등록금 책정 방안이나 구체적인 장학금 확충, 대출 이자 인하 계획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음
- 소상공인 보호 대책으로 복합쇼핑몰 진출 규제에 대해 찬성했으나 실제 국민의당 내 이해관계 문제로 일관되지 못한 입장을 취해 후보의 명확한 입장 확인이 필요함. 상당부분 논의가 진행된 중소기업적합업종 법제화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은 (생계형)소상공인 실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보임. 시급한 상가임차인 보호 정책은 대체로 찬성했지만, 현안 중 임대인-임차인 분쟁 사례가 많은 퇴거보상제 도입에는 신중한 입장임
○ 유승민 후보
- 구체적인 공공임대주택 확대 계획이 없고, 기업에 수익을 주는 뉴스테이의 보완책을 제시하고 있어 기존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정책과 비슷한 정책방향을 가지고 있음. 분양가상한제 도입, 분양원가 공개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는 반면 임대차안정화 영역은 가급적 시장자율에 맡기자는 기조임.
- 입학금 폐지에 반대하고, 청년 부채문제에 대한 상황인식과 관련 대책이 부족함
- 통신원가 자료 공개와 인가절차 투명성 확대, 기본료 폐지에 반대하며, 기업 규제를 통한 이해당사자 권익을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보다 현재 시장 자율 경쟁을 활성화시켜 통신비 인하를 유도한다는 입장
-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확장으로 인한 소상공인 보호 방안 연구가 적극 필요함. 적합업종 강화하는 것도 한미FTA 국회 비준 당시 정부와 국회가 관련 법 개정에 합의했는데도 소극적인 입장을 취함. 상가임대차 분쟁 현안 해결책으로 퇴거보상의무 인정, 계약갱신 기간 10년 보장에 찬성했으나, 모든 상가건물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환산보증금 페지에는 반대함
○ 심상정 후보
-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제시하면서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 모두 수용했으며, 정의당에서 관련 법안들을 다수 발의함.
- 표준등록금 등록금 제도나 학자금대출 금리1%인하 등 대학교육비 부담 완화 정책도 모두 수용. 학자금대출의 추심 연한 설정, 파산 시 면책 대상 포함, 변제기간 단축 등 효과적인 대책을 제시함.
- 통신원가 자료 공개와 인가절차 투명성 확대, 기본료 폐지, 분리공시에 찬성. 이용자단체 및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통신비심의위원회, 지원금 차등 금지, 선택약정할인 확대 등 가계 통신비 부담 해소에 있어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함.
- 대규모 점포 개설・변경을 현행 등록제에서 지자체 허가제로 변경. 생계형 적합업종 및 적합업종 보호 특별법 제정, 환산보증금 폐지, 보상제 도입, 계약갱신요구권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 등 소상공인 보호 정책도 모두 찬성했으며, 지난 대선, 총선의 선거공약 국회 의정활동에서도 일관된 입장과 정책을 제시하고 있음.
심 후보의 꿈은 애초 교육자였다.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거듭 응시해 1978년 합격했다. 아버지도 교사였고 언니도 교사였던 영향이 컸다.
‘긴급조치 세대’로 시위현장을 누비기도 했지만,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7㎝ 높이 하이힐 차림의 얼치기 운동권에 가까웠다.
심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재수까지 해서 대학 들어가면 지긋지긋한 참고서 말고 책 실컷 읽고, 여행 맘대로 다리고, 연애 멋있게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괜찮다 싶은) 남학생들 찍어서 뒤를 좇다 보면 영락없이 운동권인 거에요. 그 세계를 들어가야겠더라”라고 말했다.
대학교 2학년 때 읽은 책 한 권이 뚜렷해 보이던 진로를 뒤흔든다. 심 후보가 “내 인생의 진로를 밝히는 등불”이라고 표현하는 ‘전태일 평전’이다.
직업훈련소를 다니며 어렵사리 미상사 자격증을 딴 뒤, 구로공단으로 가 노동운동에 투신한다.
미싱사 ‘김혜란’…8만원 월급쟁이에게 500만원 현상금
심 후보는 ‘걸크러쉬’(여성이 다른 여성을 선망하거나 동경하는 마음)의 면모를 과시한다. 여학생을 ‘학회의 꽃’, ‘학생회의 꽃’ 으로나 생각하던 때다. 당시 운동권에서도 만연했던 가부장제 문화를 깨기 위해 나섰다.
1980년 최초로 총여학생회를 만들었고, 초대 총여학생회장에 선출된다. 여학생만의 학회도 만들었다. 여성이 보조역이 아닌 주체로 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구로공단에서 야학활동을 하던 그는 구로3공단 남성전기에 ‘김혜란’이라는 이름으로 취업하면서 눌러앉는다.
13~16세의 어린 여공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다 다림질용 프레스 기계에 손이 눌리는 끔찍한 산업재해를 당하면서도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경험하고 그들과 함께 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1985년 6월, 서울 구로공단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이 구속자 석방과 노동악법 철폐를 외치며 농성을 벌였다(왼쪽 사진). 창틀에 걸터앉아 구호를 외치는 대우어패럴 노동자의 모습. <사진=구로동맹파업20주년기념사업추진위>
1983년 세 번째 직장인 대우어패럴에서 미싱사로 취업했지만, 1985년 해고된다. 그 해 6월 대우어패럴 노조 지도부가 구속되면서 ‘구로동맹파업’이 발생한다. 이 파업은 구사대 폭력과 경찰의 탄압으로 1주일 만에 끝났다.
심 후보는 노동사상 최초의 정치연대 파업투쟁으로 불리는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 된다. 국가보안법위반 혐의까지 씌워졌다.
미상사로 받던 월급이 8만원이었던 당시 현상금만 500만원이었다. 경찰에게는 1계급 특진 포상도 걸렸다.
심 후보는 9시 뉴스 화면에서 지명수배 소식과 함께 자신의 얼굴이 뜨는 것을 숨어서 지켜봤다. 그는 “서울대 사범대에 합격했을 때, 온 동네에 자랑을 하고 다니던 아버지는 운동권 딸이 전국에 지명 수배되자 말을 잃으셨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9년간 이어진 수배 생활의 시작이다. 구로동맹파업으로 1,000명이 넘는 노동자가 해고됐다.
심 후보의 소재를 밝히라며 지인들에게 가해진 모진 고문은 더 큰 상처였다. 물 고문, 전기 고문 등 극악한 인권 탄압이 횡행했던 시절이다.
김문수는 보일러공으로 취직해 도루코의 노동위원장으로 활약했다. 사진은 노동운동탄압규탄대회 방해에 항의하는 모습.
구로동맹파업 공개 상황실이 위치했던 전태일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심상정이 있는 곳을 대라”고 다그침을 받으며 전기 고문을 받다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대학 후배로 유시민 작가의 친동생이기도 한 유시주 희망제작소 기획이사 등도 물고문의 고초를 겪어야 했다.
국내 최초 산별 협상으로 주5일제 관철…금속노조 ‘철의 여인’
심 후보는 9년의 도피생활 끝에 1993년 체포됐다. 오랫동안 전담반을 따돌려 온 거물이 잡혔다는 소식에 “얼굴 좀 보자”고 수사관들이 몰려오기도 했다.
재판 끝에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만삭의 몸으로 재판장에 선 심 후보를 본 판사는 “무죄를 선고하고 싶으나 관련 법규가 최소한 집행유예를 선고하게 돼 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정부는 2001년 구로동맹파업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관련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줬다.
심 후보는 수배자 신분이었을 때도 노동운동에 주저함이 없었다. 구로동맹파업을 계기로 기업 단위의 노동조합을 뛰어 넘는 대중정치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탠다.
1985년 8월 창립된 서노련은 이듬해 전두환 정권에 의해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로 규정된다. 보안사령부를 동원한 관련자 구속과 고문 등의 탄압을 받으며 사실상 해체된다.
심 후보는 뒤이어 1988년 전국노동단체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1990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만들어지면서 쟁의국장ㆍ조직국장 등의 중책을 맡는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발전적 해체를 하며 1995년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만들어진 뒤로 심 후보는 민주금속연맹ㆍ금속산업연맹에서 활동했다.
금속연맹이 산별 노조인 전국금속노동조합으로 발전해서도 사무차장으로 자리를 지켰다. 금속노조는 2003년 국내 최초로 산별 중앙교섭을 통해 ‘임금삭감 없는 주5일 근무제’ 도입 합의를 이끌어 낸다.
심 후보에게 ‘철의 여인’이란 별명이 생긴 게 이 때다.
진보정당 비례 1번으로 원내 진출
노동운동가로 25년 외길을 걸었던 심 후보는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 비례대표 1번으로 17대 국회에 입성한다. 진보정당 원내진출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어깨에 짊어졌다.
노동운동으로 잔뼈가 굵었지만, 경제 분야에서 발군의 역량을 과시한다. 경제부처에서 장ㆍ차관을 역임한 의원들이 혀를 내 두를 정도였다.
일례로 등원 첫해 국정감사에서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를 상대로 재경부가 역외선물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방어하다 1조8,000억원 가량의 외환보유고를 날린 사실을 추궁해 밝혀냈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를 주도적으로 파헤치기도 했다. 지배구조 및 승계 문제 등 삼성의 편법ㆍ탈법ㆍ불법 행위를 밝혀내며 ‘삼성 저격수’, ‘재벌ㆍ대기업 저승사자’로 불리기도 했다.
17대 국회에서 여야를 통틀어 최고의 의정활동을 보인 국회의원으로 꼽혔지만, 2008년 총선 경기 고양 덕양갑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낙선한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고양 덕양갑에 재출마해 170여표 차이의 신승을 거두며 수도권 최초의 진보정당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다.
민노당 해체 시련…탈당 뒤 정의당
하지만 시련이 연이어 닥쳤다. 초대 공동대표를 맡았던 통합진보당이 19대 총선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구 당권파에 의해 부정투표가 이뤄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내홍에 휩싸인다.
민주노동당 비상대책위 심상정 대표가 2008년 2월3일 서울 센트럴시티 밀레니엄홀에서 열린 임시 당 대회에서 혁신안이 부결되자 퇴장하고 있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5월 열린 중앙운영위원회에서 심 후보 등이 사태의 책임을 지고 공동대표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지만, 폭력사태가 벌어지면서 사태가 악화된다.
8월 부정투표의 수혜자로 꼽혔던 이석기ㆍ김재연 당시 의원의 제명안이 의원총회에서 부결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다. 심 후보는 결국 탈당을 택한 뒤 진보정의당을 거쳐 지금의 정의당을 창당한다.
그리고 2016년 20대 총선에도 연거푸 당선돼 진보정당 사상 첫 3선 중진의원이 된다.
진보정치의 간판스타…”반드시 완주”
심 후보 대선 도전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권영길 전 의원에게 패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진보정의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지만,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단일화라는 대의 속에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를 지지하며 후보 직을 사퇴했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가 지난 3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정의당 정당연설회에서 해바라기 분장차림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부담은 앞선 두 번의 도전에 비할 수 없이 크다. 진보정당의 부활, 명가의 재건이라는 과제가 모두 심 후보의 어깨에 실려 있다.
앞선 15~17대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얻었던 득표율 3%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조기대선이라는 환경은 의석 수 6석의 초미니 정당인 정의당에는 불리하게 작용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수세에 몰리기라도 한다면 또다시 정권교체를 대의로 하는 후보단일화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심 후보는 두 자릿수 득표를 자신하며 “이번엔 끝까지 완주한다”는 말로 필승각오를 다지고 있다.
고정출연 : 정태인 소장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한상희 교수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슈손님 : 김진욱 변호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참팟 69회 / 결선투표제, 통 큰 결단이 필요한 때!
투표에서 1위한 후보가 과반을 넘지 못할 경우 1,2위 후보를 대상으로 다시한번 투표를 해서 최종 당선자를 가리는 방식입니다.
이 결선투표제는 대선 때마다 정치권에서 언급된 '오래된 의제'입니다.
참팟 69회는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김진욱 변호사를 초대해 결선투표제가 지금 필요한 이유와 함께, 검사장 직선제 등 검찰개혁 과제, 18세 투표권 등 선거법 개정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습니다.
새누리당의 19대 총선 공약 이행 여부를 평가한 결과 100점 만점에 36점에 그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남북관계, 표현의 자유, 정치 선진화 관련 공약은 제대로 지켜진 것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때 공약을 남발하고 그 뒤엔 책임지지 않는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공약 이행을 평가할 수 있는 사회적 기구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뉴스타파-참여연대 공동 기획, 19대 총선 공약 평가
20대 총선을 맞아 뉴스타파와 참여연대는 공동으로 지난 19대 총선 공약을 평가했다. 평가 대상은 제1당인 새누리당의 중앙 공약이다. 19대 총선공약 가운데 이후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구체화됐고, 20대 총선에서도 여전히 의미 있는 공약들을 선별했다. 남북관계, 경제민주화, 복지 등 총 10개 분야, 110개 공약이 평가 대상이다.
판정
평가 기준
이행 완료, 이행 전망 등
공약 폐기 및 변질, 진행 사항 없음 등
공약 축소, 평가 유보 등
새누리당 19대 총선 공약 이행 평가 점수는 36점
평가 대상 110개 공약 가운데 ‘빨간불’은 50개, ‘노란불’은 27개, ‘초록불’은 33개였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36점이다.
남북관계, 표현의 자유 빵점…공약 자체의 한계에 갇힌 경제민주화
특히 남북관계와 표현의 자유, 정치 선진화 부문 15개 공약 가운데 제대로 지킨 공약이 하나도 없었다. 검찰개혁부문에서도 7개 공약 가운데 2개만 지켰을 뿐이다. 공약 점검 작업을 진행한 박정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애초에 공약 이행 의지가 없었던 부분”이라며, “검찰개혁이라든가, 남북관계, 표현의 자유 이런 부분은 유권자들을 현혹할만한 ‘막공약, 헛공약’ 이렇게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부문은 상대적으로 점수가 높았다. 모두 19개 공약 가운데 42%인 8개를 이행했다. 공약 평가 자문위원 중 한 명인 이찬진 변호사는 “경제민주화나 민생 공약들 중 공약대로 이행된 항목이 많아 보인다”면서도, “이행된 공약이 주로 대출 등 금융을 매개로 한 공약들이 많고, 공약 자체가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서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 때 공약을 쏟아내고 이후 책임을 지지 않는 정당들의 행태는 이번 공약 평가에서도 확인됐다. 박정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정부 스스로, 정치권에서 스스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시민이 참여해서 공약을 정말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가방식
정량평가
파란불
공약이 취재대로 이행완료 되었거나 이행될 것으로 전망되는 경우
입법과제 : 법안이 통과된 경우
정책과제 : 예산 책정 등 실제 집행 단계에 들어선 경우
빨간불
공약이 폐기되었거나 진행상황이 없는 경우, 변질돼 이행된 경우
국정과제에서 삭제되고 별도의 진행사항이 없는 경우
공약이 심각하게 변질돼 이행완료되었거나 이행중인 경우
입법과제 : 법안은 제출되지 않은 채 추진하겠다는 입장만 밝힌 경우, 공약을 훼하는 입법을 추진했거나 하고 있는 경우
정책과제 : 추진계획 조차 제시되지 않는 경우, 공약을 훼손하는 정책을 수립한 경우
예산 : 재정수반 공약에 반영하지 않은 경우
법안을 제출했다 하더라도 19대 국회 마지막까지 별다른 노력을 보이지 않아 진행사항이 없는 경우
그가 23년 만에 거리로 나서야 했던 날, 딱 한 번 가까이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2010년 12월 크리스마스를 닷새 앞둔 날이다.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손팻말을 꺼내들고 1인 시위를 했다. ‘허위사실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조현오 경찰청장을 즉각 소환조사하라’
2010년 12월,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 전 돈을 받았다”는 발언을 한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결국 조현오 전 청장은 망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살았다. (사진 출처: http://www.wikitree.co.kr/)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 때 연좌농성을 한 이후 처음으로 나선 거리 시위다.
분명 ‘쇼’는 아니었다. 5분도 가만히 서 있기 힘들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식사를 하러 드나드는 동안에도 그는 몇 시간이고 그곳에 서 있었다. 아침 5시30분에 경남 양산의 자택에서 일어나 식사도 어영부영한 채 서울로 온 터였다.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소탈한 태도로 그는 말했다. “분노를 이렇게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 답답하다.”
그 후에도 후속 취재를 위해 몇 번이고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얼치기 초짜 사회부 기자의 전화를 언제나 한결같은 태도로 받고 성실히 답해 주었다.
부드러운 원칙주의자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4)의 이미지는 한 마디로 ‘굿맨’ ‘젠틀맨’이다. 민주당 내 전략통이자 비문계인 강훈 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착한 사람, 좋은 사람. 너무 굿맨이라 주변에 별난 분들을 통제하는 게 좀 서툴다.”
한때는 권력의지조차 보이지 않아 답답했지만, 확실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후에도 하는 말이 이렇다.
“대통령이 목표가 아니다. 자리가 목표였으면 훨씬 더 정치를 빨리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바뀐 정치를 통해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통령직은 수단이다.”
“확실히 말해두겠다. 나는 정권 교체라는 국민의 열망을 구현하는 대의에만 헌신하겠다. 내가 꼭 대통령을 해야 한다는 직위에 대한 집념은 없다. 단지 현재로서는 내가 가장 유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금으로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굿맨’인 대통령 탄생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독보적인 1위를 유지 중이다.
“저는 문재인이를 제 친구로 둔 것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대통령 감이 됩니다. 제일 좋은 친구를 둔 사람이 제일 좋은 대통령 후보 아니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 대선 당시 부산 유세 연설은 유명하다.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대통령감’이 된다고 믿었던 친구, 그 친구가 이제 진짜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
가난한 실향민…’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던 수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 시골집에 놀러갈 때마다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 집은 이북에서 피란 온 실향민이었거든요.”
1950년 12월, 흥남 철수작전 당시 밧줄 사다리에 매달려 수송선을 기어오르는 피난민들의 모습. 문재인의 가족도 이들 중 하나였다. 이런 가족사를 가진 문재인에 대해 ‘종북’이라는 색깔공세를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부모는 함경남도 흥남 출신이다. 대대로 문씨 집성촌에 살았다. 부친 문용형씨는 ‘수재’ 소리를 들었다. 명문 함흥농고를 졸업한 뒤 흥남시청 농업계장·과장을 지냈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월남해서 거제 포로수용소 인근에 정착했다. 그곳에서 문 전 대표가 태어났고 7살 때 부산 영도로 이사했다.
적수공권으로 월남한 실향민이 자리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포로수용소에서 노무자로 일하다가 장사를 벌이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집안 사정은 극도로 어려웠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 강한옥씨가 좌판 옷장사, 구멍가게, 연탄배달 등을 하며 겨우 생계를 이어나갔다.
문 전 대표는 아직도 자전거를 타지 못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집에 자전거가 없어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는 월사금을 제때 내지 못해 교실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문 전 대표는 명문 경남중학교에 입학한다. 1978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보여드린 ‘잘 되는 모습’이자 “생전에 드린 유일한 선물”이었다.
경남중 졸업 사진(왼쪽). 경남고 재학시절,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이어 경남고에 진학해서도 늘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별명은 ‘문제아’였다. 이름 탓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학교에는 용돈 씀씀이가 크고 ‘식모’까지 있는 부유층 자제들이 많았다. 빈한한 피난민 가정에서 자랐던 그에게 세상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갈수록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이 잦았고 술과 담배에도 손을 댔다. 학교 공부는 뒷전이 됐다. 3선 개헌 반대 데모를 하고 교련시험 때 백지 답안지를 집단으로 내는 일 등이 더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진짜 ‘문제아’가 됐다. 다만 학교 도서관에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공부를 소홀히 한 탓에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한다. 당시 경희대 설립자이자 총장이었던 조영식 박사가 ‘4년 전액 장학금’을 약속하며 경희대 입학을 권유하자 법대에 수석으로 들어간다.
경희대 법대 재학시절, 같은 과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대학 시절에는 총학생회 총무부장으로 유신 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 수감돼 학교에서 제적된다. 강제징집돼 특전사에서 복무하게 되는데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병주와 여단장 전두환으로부터 두 차례의 최우수 특전사 표창을 수상하기도 한다.
전역 후 사법시험 준비를 하면서 학교에 복학했지만 1980년 비상계엄 전국 확대로 실시된 예비검속으로 체포된다. 청량리경찰서 유치장에서 그는 극적으로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접하고 석방된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학생운동 전력이 문제가 돼 판사에 임용되지 못하자 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제안을 뿌리치고 1982년 부산으로 낙향했다.
노무현과의 만남
그 시절 노무현 변호사와의 만남은 그야말로 ‘운명’의 시작이었다. 그는 노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노동·시국사건 변호를 주로 맡으며 민주화운동에도 투신했다. 1988년에는 노무현과 함께 김영삼으로부터 정계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한다.
노무현은 정계에 입문해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다. 문재인은 그 후에도 계속 변호사로 일하며 법무법인 부산을 일궈냈다.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맡기도 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캠프에 합류,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네팔 산행 도중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렸다.
문재인은 2004년, 탄핵을 당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을 맡았다. 오른쪽 사진은 2004년 3월 12일, 김기춘 당시 법사위원장이 탄핵 의결서를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접수하는 모습.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두 사람의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문재인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주역이 됐고, 김기춘은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2005년에는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당시 한나라당은 그를 ‘왕수석’이라고 부르며 국정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고 비판했다. 노영민 전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 현안 중 95%는 문재인 비서실장 선에서 처리됐다. 끝내 의견 조율이 안 돼 노무현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간 국정 현안은 5% 정도도 안 된다. 그가 대권을 잡는다면 국정 현안을 파악하기 위해 불필요한 시간 낭비는 없을 것이다.”
‘왕수석’이란 비난도 받았지만 문재인 전 대표의 자기관리는 철저했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심지어 아내에게도 백화점 출입을 자제하라고 했다.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골프 파동을 일으킨 이해찬 국무총리의 해임 건의를 하거나, 제안을 받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는 교육부장관에게 ‘그렇게 하라’고 할 정도로 원칙주의를 고수했다.
국회의원, 대선후보, 야당 대표…가장 빨리 성장한 정치인
참여정부가 막을 내리자 문 전 대표는 청와대를 나와 경남 양산으로 낙향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를 다시 정치의 길로 끌어냈다. 이번에는 ‘참모’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홀로서기였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식사에서 들은 신신당부가 정치 입문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평생 동안 이룩한 민주주의가 무너졌다. 반드시 정권교체 해야 한다. 지금 민주당 가지고는 안 된다. 시민사회까지 하는 범야권 대통합을 해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의 당부에 ‘혁신과 통합’을 만들었고 민주통합당이 구성됐다.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사상구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로 들어선다.
한사코 정치인이 되기를 마다했지만, 일단 정치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문재인은 다른 정치인이 수 십년 걸려 쌓는 경력을 단 몇 년만에 모두 거쳤다. 가장 왼쪽부터 2012년 19대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 의원으로 당선된 모습, 2012년 대선 후보 포스터,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에 당선된 모습
정치인의 길은 승리보다는 패배가 많았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당 대표가 됐지만 재보선에서는 대부분 패배했다. 당도 쪼개졌다. 스스로도 정치에 입문한 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당 대표 때라고 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영입에 이은 총선의 여소야대 결과로 한시름 덜긴 했지만 여전히 물음표는 남는다.
“최고의 원칙주의자”
문재인 전 대표에게는 늘 최고의 ‘원칙주의자’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다.”
KBS를 그만두고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고민정 아나운서는 문 전 대표를 떠올리면 한 마디로 ‘원칙’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고 말한다.
“최근에도 여쭤봤거든요. 저 나온 거 본 적 있으세요? 그랬더니 정말 없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보통은 없어도 그냥 본 거 같아요 하는데. 역시 원칙에 어긋나는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으시는…”
“사람 좋은 문재인 말고 강한 문재인을 보고 싶다.” 시사인 인터뷰쇼에서 나온 청중의 질문에 문 전 대표는 이렇게 답한다.
“무엇이 강한 것인가? 아주 강경한 주장을 하는 것? 또는 정치에 능수능란해서 ‘정치 9단’이 되는 것? 원칙을 지키는 것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모진 성품이 아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는 일엔 아주 강하다.”
윤여준 전 환경부장관이 지난 대선에서 찬조연설을 할 때 밝혔듯, 특유의 원칙주의와 더불어 보수주의자들도 탄복하게 만드는 ‘인성’을 갖췄다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다.
문재인 정부…과연 잘 할까?
문제는 그만큼의 정치적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문 전 대표에게는 늘 ‘과연’이란 꼬리표가 붙는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도 후보 본인의 호감도 증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염증과 정권교체를 바라는 열망이 작용한 탓이 크다. 원인이 어찌됐든 손학규, 안철수, 김종인 등 함께 일했던 정치인이 늘 적대관계로 돌아선다는 이미지도 하나의 부담이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은 아예 노골적으로 문 전 대표의 ‘무능’을 공격한다. “최순실이 써준 거 읽는 박근혜 대통령이나 딴 사람이 써주는 거 읽는 문재인 전 대표나 다를 게 뭐가 있나.”
19대 국회에서의 최하위권 의정 활동,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사건에서 불필요한 ‘사초 폐기’ 논란만 가중시킨 회의록 공개 주장도 ‘무능하다’는 주장에 근거를 더한다.
과거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민정수석 재직 시절 결국 대통령 가족을 잘못 관리해서 노 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그가 핵심 역할을 했던 참여정부 자체가 그다지 ‘성공했다’는 평가는 받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법원 개혁, 이라크 파병, 국가보안법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떠올려 보면 더욱 그렇다.
문 전 대표는 말한다. “공과가 있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상당한 성취를 거뒀지만 경제적 불평등,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등의 사회·경제적 문제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나아질까. 물론 너나할 것 없이 몰려드는 탓에 옥석을 가리기 어렵겠지만 캠프 합류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문재인 대세론이 확산되면서 캠프 인사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유능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세 과시를 위한 무분별한 영입은 역풍이 될 수 있다. 옥석을 가리고, 어떤 사람과 어떤 나라를 만들지에 대한 믿음을 줘야 한다. 사진은 이래운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왼쪽)과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문재인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암 투병 중인 이용마 MBC 해직기자를 만나 “언론 탄압에 앞장섰던 앞잡이들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는 한편 미디어특보단에는 MB 정부 시절 연합뉴스 파업의 원인이 됐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친박 뉴스’를 주도한 인물로 분류되는 이래운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이 참여해 비판을 받았다.
비리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의 남편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영입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삼성 출신의 양향자 당 최고위원,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인 전윤철 전 감사원장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귀족·악성노조’로 지칭하고, 이들이 일자리 창출에 장애물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참여정부 역시 역대 정부 중 가장 삼성과 친밀했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였다.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이 정경유착이자 삼성그룹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 부분은 문제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청와대 정책실장이었고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았던 이정우 같은 학자들이 이재명 성남시장 지지를 선언한 것도 불안한 마음을 가중시킨다.
물론 문재인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여러 차례 “삼성이 재벌 개혁의 시작이고 핵심”이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귀족 노조’ 문제에 대해서도 “극히 일부의 노동자들이 누리고 있는 점을 내세워 오히려 ‘노조가 문제야’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정규직 노조가 양보한다고 비정규직 봉급이 올라가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최근 민주당 예비후보자 토론에서 법인세나 준조세 발언을 살펴보면 여전히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너무나 ‘비정상적’인 대통령을 오래 봐 온 탓일까. 대통령이 되면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집무공간을 만들고 “퇴근길에 남대문 시장 불쑥 들러서 그곳의 상인들과 함께 소주 한 잔 격의 없이 나누면서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그런 대통령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문 전 대표의 말에 어쩔 수 없는 기대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정치인 문재인의 행보가 그동안은 결코 성공적이었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시민들은 정치인으로서 그의 딱 한 번이자 마지막 성공을 기다리고 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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