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 개월간 파키스탄과 인도, 중국, 미국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미사일 발사를 평가한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도발 행위로 해석된 경우도 있지만, 시험 발사의 의도를 신중히 점검하는 와중에도 대부분은 연구개발의 일환으로 받아들여졌다.
특히 북한이 한국과 일본, 태평양 주둔 미군을 향해 자살행위나 다름 없는 공격을 자행할 가능성 보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를 향해 핵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불한당’ 같은 트럼프의 대북정책
북한을 둘러싼 현재 ‘위기’는 고립되어 피해망상증에 빠진 북한을 향해 미국이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공격무기를 과시하면서도 대화는 계속 거부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책임을 다하겠다’는 증거를 한국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도 미국과 한국 국회가 외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중요성을 간과하며, 최근의 외교 역사와 압박 효과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수용 가능한 합의안을 협상하는 정부 능력을 불신하기 때문이다.
미군의 잘못은 아니다. 이들은 사령관의 지시를 따라 전문적으로 움직일 뿐이다.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북한이 잔혹한 독재 정권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무모함은 빠르게 불한당의 수준으로 나아갔다. 무엇보다 현재 미국에게 한국 및 동북아시아 관련 미국의 국익과 전략을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능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노출됐다.
미국의 체제는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4년 단위로 이어지는 대통령 임기가 5번 이어질 때까지 미국 대통령들은 동북아시아 위협을 해결하고 긴장을 완화하며, 미국과 동맹국, 기타 국가의 이익을 증진하는데 있어 준비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우리는 지난 일주일 간 이어진 대통령과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을 통해 이들 중 누구도 임무를 해낼 만한 경험을 갖추지 못했음을 고통스럽게 느꼈다. 이건 결코 좋지 않다.
새로운 미국발 ‘북풍’…대선후보들의 선택은?
그렇다면 한국의 대선후보들은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최근 한국 신문은 “제 2차 한국전쟁 발발?”, “한반도 긴장 고조” 등의 헤드라인을 달고 있었다.
그러나 고(故) 마가렛 대처 영국 전 총리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은 “흔들거릴 때가 아니다.” 여기서 ‘흔들거린다’는 건 반민주적 보수세력이 지난 수 십 년간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한 악명 높은 ‘북풍(North Wind)’의 최신 버전에 피상적 반응을 보이는 걸 의미한다.
이번 상황은 ‘북풍’ 대신 ‘위기풍(Crisis Wind)’, ‘사드풍(THAAD Wind)’, ‘트럼프풍(Trump Wind)’으로 부를 수 있겠다. 혹은 그냥 ‘북풍 2.0’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북풍이 노태우 정부나 김영삼 정부 때 북풍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에는 바람을 일으킨 쪽이 미국이라는 사실이다.
대선 후보를 점검할 때에는 이들의 실제 성향과 2주 뒤 취임해서 보여줄 진지한 정책 방향을 대선 공약과 구분해서 생각하는 관대함이 필요할 지 모른다.
우리보다 유권자 마음을 잘 아는 후보들이 북한 미사일 발사나 핵 실험 가능성을 사드 배치와 서둘러 연결하는 전략을 택한 걸 마냥 비난할 수는 없다.
트럼프의 트윗과 혼란스러운 공식 발언, 항공모함 항로를 근거로 미국의 전략을 성급히 해석한 것 또한 전술적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를 바래야 한다. 사실 이들 요소들은 실제로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은 미국과 한국이 대화를 거부하며 대북 압박정책을 쓰는 와중에 김일성 생일을 맞아 이루어졌다.
북한은 지난 4월 15일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 열병식에서 다양한 종류의 미사일을 선보였다. 그리고 다음날 탄도미사일 1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지만, 실패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부대표들의 신뢰가 가지 않는 모순적 발언에는 일관된 전략이 없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보는 이런 상황을 재빨리 이해해야 한다.
그보다는 대선후보들이 미-북-중의 얽히고 설킨 요구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풀어갈지 들어보는 게 더 중요하다.
한국은 어떤 역할을 전개해야 하는가? 모두의 상황을 개선해줄 선택안이 한국에게 있는가, 아님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를 희생해야 하는가?
지금 가장 확실한 건 중국과 미국이 한국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건 맞는 전략일까? 한국은 둘 중에 선택을 해야만 할까?
북핵문제 해결, 정파와 이념을 넘어 협력해야
차기 대통령은 초인에 가까운 자신감으로 무장해야 할 것이다. 최대 난제에 직면해서도 강인함과 현명함을 잃지 않을 정도로 침착하고 충분한 지식을 갖춘 사람은 흔치 않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된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성공한 대통령은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한다. 더불어 자신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큰 업적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역사를 바꾼 대통령들은 그릇이 크고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기용해 그들의 의견을 경청했다.
반면, 경험보다 자신에 대한 충성을 중요시 하고 자신이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며, 큰 인물과 함께 일하는 걸 두려워한 대통령은 별다른 업적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 대통령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다음 달 청와대에 들어가고 싶다면, 동맹국∙조력국∙적국의 강점과 약점, 이해관계를 정확히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 능력은 흔히들 말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중국의 리더십과 이해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부시와 오바마 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와 관련된 미국의 이해관계를 잘못 파악했다.
중국의 현 지도층 또한 한국에 대한 자국의 강점을 잘못 진단했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이 문제를 해결할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싶다면, 우선 정부 내부 고문과 대학 및 NGO 등의 외부기관, 곳곳에 있는 연락책과 포괄적이고 심도 있는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은 누가 당선되든, 북핵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해 이념과 정파를 떠나 넓게 의견을 구하고, 국내외의 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새 정부 앞에 펼쳐진 전략 및 안보 상황은 아주 험난하다는 게 다수 학자 및 관측자의 예상이다.
하지만,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사용하지 못한 방안을 택하거나 지금까지 행사하지 못했거나 안 했던 유연성을 보여줄 수도 있다. 유엔을 좀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안이 그 중 하나다.
중간국인 일본과 호주, 한국의 힘을 합해 큰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한미 동맹의 추락을 멈추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궤도를 수정할 수도 있다.
핵심 원칙만 수용한다면, 모든 국민이 각자의 ‘색깔’에 상관 없이 새로운 정부에 기여를 하도록 과정에 참여시키는 건 물론이다. 차기 정부가 할 일을 설명할 때 ‘나’ 대신 ‘우리’라고 말한다면 좋은 시작점이 될 것이다.
이번 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고 언론과의 인터뷰 첫 질문으로 “완주할 거냐? 사퇴할 거냐?”는 물음을 받는 후보가 있다. 이 불편한 질문에 그는 솔직히 섭섭했다고 말했다. 끊임없이 사표론에 시달려야 했고 언론의 노출도 적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완주했다. 대선 득표율 6.17%를 얻었다. 진보정당 대선 후보로는 최고 득표율이다. 그는 누구를 위해 대선에 도전했을까. 그에게 이번 대선은 어떤 의미였을까.
심블리, 심크러쉬, 심깨비. 2초 김고은, 그는 정치인이 갖기 어려운 친근한 별명을 얻었다. 정의당 대선 캠프를 “심~부름 센터”라 했다. 심상정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 ‘청년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 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여느 후보보다 청년을 만나려 했고, 많은 청년들이 그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렸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19대 대선 공식선거 운동 첫날인 4월 17일부터 5월 8일까지 심블리 심상정과 20여 일의 대선 여정을 함께 했다. 대선 레이스를 마친 심상정은 취재진에게 선거 운동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선거운동 기간이 조금 더 길었다면 어땠을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위축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사표론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을 통해서 확인한 그 수많은 국민의 격려와, 또 지금까지 이어지는 기대와 사랑 우리 깊이 새길 것입니다. 제가 전국에 유세를 다니며 ‘노동이 당당한 나라’라는 플래카드가 휘날리는 것을 보면서 가슴 뭉클했다는 그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선거 때마다, 유세 때마다 제게 안겨 흐느끼던 그 청년의 고단함 우리가 더욱 깊이 껴안아야 합니다. 수많은 젊은 여성이 정의당과 심상정에 환호를 보냈습니다. 그 환호에 담긴 열망을 우리는 뚜렷이 기억해야 합니다.
대법원이 대통령이나 국회에 비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이 적은 것도 아니다. 변호사가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를 받지 못하게 하거나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할 수 있게 한 것도 대법원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이 지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결정적 증거자료를 ‘증거능력이 없다’며 항소심의 ‘유죄’ 판단을 뒤집으면서 많은 이들의 속을 뒤집어놓은 것도 대법원이다.
어떤 때는 진보적인 한 걸음을 내딛다가도 어떤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뛰어간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대법원은 검찰과 달리 대법원장을 필두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라고 보긴 어렵다. “대법원은 단일체가 아니다. 12명의 대법관(일상적 판결에 참여하지 않는 대법원장과 행정을 맡는 법원행정처장 제외)들이 투쟁하는 사상과 이론의 전쟁터다.”
두 번째 교수 출신 대법관 후보…”부인과 법 토론할 때 가장 행복”
대법원 판결의 99.9%를 차지하는 소부(대법관 4명) 판결은 4명의 전원합의가 이뤄져야 가능하다.
소부에서 합의가 되지 않거나 사회적 의미가 있는 판결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의 전원합의체로 가져가는데 여기서도 다수 의견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른 대법관의 의견을 듣고 내 의견을 고치고 또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법관 한 명 한 명의 이력과 성향을 좀 더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김재형 후보자는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명지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6년 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18기)을 거쳐 공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1992년 서울지법 서부지원, 1994년 서울민사지법 등에서 판사로 재직하다 3년 만에 법복을 벗었다.
짧은 법관 이력 중에 ‘칵테일사랑’이란 노래의 코러스 편곡자에게 2차 저작권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이 코러스 편곡자의 변호인이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였다. 1995년부터는 모교인 서울대 법대로 돌아가 지금까지 학자의 길을 걸으며 법학도들을 양성해 왔다. 김 후보자의 부인은 지난 2월 사직한 전현정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49)이기도 하다.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양창수 전 대법관에 이어 교수 출신으로서는 두 번째 대법관이 된다. 2014년 양 전 대법관이 퇴임한 이후 교수 출신 대법관은 2년째 없었다.
2014년 퇴임한 양창수 전 대법관.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대법관으로 임명됨으로써 최초의 학자 출신 대법관이 됐다. 학계와 실무에서 ‘민법의 대가’로 꼽혔다. 현재 한양대 로스쿨 교수로 있다.
이전부터 김 후보자는 한국 민사법 분야의 권위자로 꼽혀 왔다. 민법론, 민법총칙 등 다양한 민사법 전공서적을 저술했다. 학계 출신 대법관이 다시 한 번 나온다면 ‘0순위’로 꼽힐 정도로 꾸준히 대법관 후보로도 거명돼왔다. 2011년에는 법률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대법원의 평가는 이렇다. “민법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도산법·비교법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 활동과 실무계에서의 활발한 참여와 활동을 통해 학계와 실무계를 잇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김 후보자의 학구적 면모는 주변의 일화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평소 제자들에게 하루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밤에 잠들기 전에 부인과 법 토론을 할 때라고 밝혀왔다고 한다. 술자리에서도 강의를 계속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서울대 로스쿨 학생들의 강의평가도 좋은 편이다. 수업 스터디 모임이 팬클럽처럼 발전되기도 할 정도라고 한다. 김 후보자의 대법관 임명제청 소식에 감격해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도 있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언론보도를 검색해보면 김 후보자는 외부활동이나 방송출연, 언론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는 것도 극히 일부다.
김 후보자는 2013년 서울대 법인화 이후 1년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다룬 EBS 뉴스 인터뷰에서 법인 이사회의 과도한 권한을 경계하는 취지로 “평의원회의 기능이라든지, 권한을 강화해서 이사회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밝혔다.
또 지난 5월 KBS 인터뷰에서 한자표기를 줄이고 알기 쉽게 풀어 쓴 민법 개정안이 19대 국회 임기 종료로 폐기될 위기에 놓인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기도 했다. “(민법은) 기본적인 생활관계를 규율하는 법입니다. 국민들이 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수일지, 진보일지….평가 엇갈려
어떻게 보면 다소 ‘진보 성향’으로 비칠 수 있는 모습들이다. 김 후보자는 과거 대체복무제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는 2002년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에서 출간한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책에 실린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병역강제는 양심을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다. 양심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여야 한다. 국민의 평등한 공적 부담의 원칙은 병역거부자에게 그 부담 정도가 병역의무와 실질적으로 동일한 대체복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병역법을 헌법불합치 결정해야 한다.”
이 논문 중에서 김 교수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대해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와 1980년대의 정치상황은 양심범, 정치범을 양산했다”고 평가했다.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1980년 후반에는 국가보안법 등 반민주, 반통일 악법에 대한 개정 또는 폐지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매우 고무적 현상”이라며 부정적 시각을 피력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가 처음 임명제청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는 대법원이 너무 보수화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더 다양한 배경과 출신의 대법관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결국 새로 임명제청된 대법관 역시 ‘50대, 남성, 서울대’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임 이인복 대법관이 상대적으로 소수 의견을 많이 내 온 ‘진보성향’으로 분류됐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김 후보자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반대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려는 더 커졌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같은 파렴치한 기업 행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는 2012년 펴낸 <언론과 인격권>에 수록된 논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손해배상은 손해를 배상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손해보다 더 많은 배상을 받아서는 안 된다. 과도한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것은 정의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불법행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는 불법행위를 처벌하려고 민사책임을 이용하는 것은 법의 발전이 아니라 퇴보라고 본다고도 밝혔다. 형사처벌은 법률에 따라 이뤄지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법관의 ‘재량’에 따라 행사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논란이 일자 김 후보자는 “논문은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해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 것”이라며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침해하는 중대한 불법행위에 대한 부분은 신중히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 후보자의 ‘보수 성향’에 대한 우려가 기우라는 시각도 있다. 동료인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김 후보자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문을 언급하며 이렇게 밝혔다.
“김 교수가 보수적이라고 세평이 나오는데, 그렇지 않다. 사고의 폭도 넓고 개방적이다. 꼴통보수적인 의견을 그에게서 들은 적이 없다. 민법을 기초로 한 토대 위에서 개방적 판례를 기대한다.”
이번에도 “50대 남자, 서울대, 판사 출신”…다양성 아쉬워
출신이나 배경을 가지고 대법관의 판결 성향을 가늠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수 있다.
헌정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박보영 대법관은 호남 출신, 한양대 졸업, 이혼 경력, 현직 판사가 아닌 변호사 등의 이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많은 언론은 박 대법관이 ‘소수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진보적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쌍용차 해고무효 사건에서 복직을 결정한 항소심을 뒤집었다. 재일동포 3세 정영환씨가 제기한 입국 거부 취소 소송도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박 대법관뿐만 아니다. 소아마비 장애인이자 서울이 아닌 지방법원 경력만 있던 김신 대법관 역시 기대를 받았지만 대부분 다수의견에 이름을 올렸다.
반면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돼 이른바 진보대법관으로 불렸던 ‘독수리 5형제’는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주류 중의 주류 출신이었다. 경기(여)고를 졸업한 사람이 4명, 서울대 법대 출신이 4명, 법관 경력뿐인 사람이 4명, 재판연구관 출신이 4명이다. 이런 조합은 “법원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최고급 엘리트 모임”이다.
한국에서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50대 남자, 서울대, 판사 출신”. 대법관 구성이 사회의 다양한 이해와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좀 더 다양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기대한다면 진짜 문제는 선출 방식에 있는지도 모른다.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통해 후보를 선정한다. 후보추천위는 모두 10명인데 사실상 과반수가 대법원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추천위에 참석하는 법원행정처장을 통해 대법원장의 의사가, 법무부 장관을 통해 대통령의 의사가 반영된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대법원장이 연수원 몇 기 이상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구체적 의견을 내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검토 대상에 오른 이번 대법관 후보 역시 34명 중 33명이 남자, 1명이 여자였으며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의 50대 후반 법원장급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 법원조직법 자체가 대법관의 자격을 만 45세 이상에, 20년 이상을 판사·검사·변호사 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교수나 공공기관 종사자를 임명할 수 있지만 변호사 자격은 필수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대법관 자리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 출신 남성’이 독점해 왔다.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에 따르면 1980년 이후 대법관 85명 중 95%가 남성, 75%가 서울대 법대 출신, 89%가 판사 출신이었다.
“양심을 따랐다면, 기존 판례 존중해야”
“헌법의 미학은 발전하고 진화한다는 것이다.” 김영란 대법관은 앞서 책에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이 지난해 방한 강연회에서 한 말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다수결의 원리를 토대로 한 기관인 국회나 행정부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의무가 사법부에 부여되어 있다는 자각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발전하고 진화하는 헌법의 미학은 존재할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9인 전원 사진. 미국에서는 이들을 ‘지혜의 아홉 기둥’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스칼리에 대법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후임 대법관을 임명하는 문제를 놓고,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우위 의회 간의 갈등이 불거졌다. 미국 대법관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어떤 인물을 대법관으로 뽑는지가 커다란 정치적 쟁점이 되곤 한다. (사진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21473981)
사법부는 법을 해석하는 기관이지만, 입법부의 입법 취지와 달리 해석해야 할 때도 있고 입법부의 부족하고 모자란 지점을 법 해석으로 메꿔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오랫동안 당사자들을 고통 받게 했지만 워낙 소수인 나머지 그들을 대변해 입법안을 제출해 줄 국회의원이 없었다. 정작 동성동본 금혼 규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1997년 헌법재판소였다. 그러고도 법이 개정된 것은 8년이나 지난 2005년이었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자의 10년 전 발언은 곱씹어 볼만하다. 그는 이번에 자신을 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양승태 대법원장이 2005년 대법관으로 지명될 당시 열렸던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양승태 후보자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판결이 너무 소수라는 게 단점이 아닌가”라는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 기존 판례를 따르는 태도는 존중돼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교수’ 출신이었던 양창수 전 대법관은 민감한 사건에 대해 신중함을 넘어서 정치적으로 보일 만큼 사건 판단을 너무 미룬 탓에 사건 당사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김재형 대법관’에게 바라는 것도 ‘보수적’ 혹은 ‘진보적’이라는 협애한 시각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 터다. 그저 지금, 2016년 대한민국에서 ‘상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판단을 내려주기만 바랄 뿐이다.
2016년 말 나라를 흔드는 청와대 발 ‘최순실 게이트’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들의 마음이 매우 착찹하다. 국정농단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고 그 끝도 보이지 않는다. 각종 인사는 물론이고 재벌총수들의 진퇴마저 결정했다 한다.
특히 예산에 관한 것은 이들이 국가를 약탈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나 싶을 정도이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또 다른 특징은 비선실세들이 국가 중요 정책과정 뿐 아니라 국가 예산 편성과정에 개입해 사익을 챙겼다는 점이다. 2017년도 예산액 중 이른바 ‘최순실 예산’이 35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공적 시스템의 완전한 붕괴에 국민들은 울화통이 터진다.
멘슈어 올슨은 정부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빼앗아가는 ‘유랑도적’ 보다 자릿세 형식을 받아가는 ‘정주형도적’이 그나마 선호된다는 것이다. 정주형 도적은 더 많이 빼앗기 위해 생산을 장려하고 고정된 세금을 걷는다는 예측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정주형 도적이겠으나, 5년이라는 한시적인 권력시간이 이들을 유랑형 도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나라살림 사상 최초 400조원 돌파
아무튼 와중에 사상 처음으로 400조를 넘은 2017년 예산은 이슈에 파묻히고 그나마 최순실 예산삭감 정도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살림연구소가 10월24일 제시한 865억원의 최순실 관련예산은 이제 5200억원으로까지 증가한 상태이며, 야당은 이 예산만큼은 반드시 삭감하겠다고 한다.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한다면 실질적인 예산삭감으로는 국회의 최근 10여년간의 예산심의에서 가장큰 액수가 될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국회는 1%이내의 예산삭감을 해왔으나 그나마도 정부가 미리 준비한 삭감안을 제외하면 그 액수는 0.1%를 넘지 않았다.
역대 2%가 넘는 예산 삭감을 기록한 것은 1775년 유신초기와 2005년 열린우리당이 의회권력을 교체한후 첫 예산심의때의 일이다. 특히 2005년은 의회권력이 교체되었던 시기이다. 따라서 이번 여소야대는 예산심의에서 좀더 국회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사상 최대 나랏빚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처음으로 400조가 넘어가는 2017년 예산의 특징을 살펴보겠다.
첫째, 재정적자 늘고 복지지출은 제자리이다. 저성장 시대, 실패한 재정정책만 되풀이하는 상황이다. “증세 없는 복지”, “증세 없는 재정정책”의 허구성을 드러낸 예산안이다.
현재 정부는‘최대한 확장적 편성’이라는 미명으로 지출 재원의 부족을 감추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빈 곳간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생색만 내는 예산이다.
2017년 예산액의 3.7% 증가는 전년도 2.9%보다 0.8%P 증가하였지만 10년간 연평균 증가율 6.2%에는 턱없이 부족한 증가율이다. 부족한 곳간을 채우기 위한 노력보다 없는 살림을 쪼개는 방향으로 재정정책의 방향을 설정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둘째, 빛의 속도로 늘어가는 빚이다. 2017년 예산안에서 2017년 국가채무는 전년도 보다 37.8조원이 증가하여 역대 최고인 682.7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0.4%로 역대 최고. ‘증세는 없다’는 재정정책의 영향으로 국가의 재정건전성이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
박근혜정부 5년간 총 164.8조원(연평균 33.0조원)의 일반회계 적자국채를 발행 했다. 저성장 극복을 위해 재정이 더 많은 역할을 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라곳간이 텅비다’보니 예산을 확장적으로 편성할‘능력’이 없어진 것이다.
참여정부때 연평균 6.5조원에 달했던 일반회계 적자국채는 대대적인 감세를 시행한 이명박정부들어 연평균 21.4조원으로 급증하였고, ‘증세없는 복지’를 고수한 박근혜정부들어 총 164.8조원에 달하는 일반회계 세입 적자국채를 발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채무는 2012년말 443.1조원에서 2016년(예산기준) 644.9조원으로 200조원이나 증가하였으며, 2017년 예산상으로도 올해 보다 37.8조원 증가한 682.7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셋째, 후퇴하는 교육과 복지분야의 예산문제이다. 보건·복지분야 예산이 줄어들고 있다.
보건·복지·노동분야의 증가율은 5.3%로 나타나고 있으나 일자리부문을 제외할 경우 보건·복지분야의 증가율은 4.6%로 2016~2020 국가재정운용계획상 복지분야 법정지출분의 연평균 증가율 5.3%보다 0.7%P 낮다. 결국 법정지출분보다 낮은 증가율로 인해, 보건·복지분야 예산은 실질적으로는 축소된 것이다.
또한 교육예산도 후퇴하고 있다. 정부의 분야별 재원배분에서 교육분야는 53.2조원에서 56.4조원으로 3.3조원 6.1%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을 제외(16년 41.2조원, 17년 45.9조원)한 재원은 2016년 12조원에서 2017년 10.5조원으로 오히려 1.5조원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재정에 대한 재정 책임을 지방교육청으로 떠넘기고 정부의 교육정책을 위한 투자는 줄이겠다는 것으로 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방기하는 예산이다.
정부는 “지방교육정책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하여 누리과정 등 정부의 재정책임이 있는 사업에 대해 지자체의 전적인 부담을 명문화하려는 시도를 통해 재정부담을 전가시키려는 의도를 보이기도 하고 있다.
더구나 박근혜정부의 핵심 교육 공약인 ‘고등학교 무상교육’예산은 정부 마지막 해에도 전혀 편성하지 않아 “2017년까지 고등학교 무상교육 완성”이라는 공약은 사라지고 말았다.
여전히 개발연대식 예산 편성
그런데 이러한 2017년도 예산의 분석 과정에서 우리나라 예산의 특징을 파악할수 있다.
첫째, 신규예산이 매우적다는 점이다. 2017년 예산 중 액수기준 신규예산은 1.7%에 불과하다.
2016년 예산에서는 0.2%, 2015년에는 1.1%였다. 물론 새롭게 시작하는 씨앗예산이 많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90%에 달하는 예산이 기존 하던 사업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산은 합리주의에 의해 예산을 편성하는 즉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는 예산방식과 기존 예산에서 순증만을 꾀하는 점증주의 예산방식이 있는데, 한국은 극단적인 점증주의 국가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20%이내의 변화를 보이면 점증주의라 구분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관료적 질서가 지배하는 보수적 예산구조의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 개발연대 예산구조의 존속이다. 첫째 이유처럼 예산구조가 변화가 거의 없다보니 과거 개발연대의 예산구조가 그대로 존속하는 것이다.
개발연대 예산구조란 개발연대 시절의 지출구조 즉 경제투자 중심의 예산구조라는 것이다. SOC(사회간접자본)은 물론이고, 수출 및 기업지원, 에너지 개발, 농업지원 등 경제개발 예산이 주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은 복지예산이 적은 현상과는 별도로 경제투자가 OECD주요국의 두 배가 넘는다. 따라서 아직도 도태되어야 할 산업을 지원하고, 일자리 예산도 공공근로 방식의 지원을 하며, 각종 지원기관이라는 명목하에 관피아를 양산하는 산하기관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부동산 관련 개발이 계속 유지되어 내년도에도 더욱 증가한 19조원의 토지 보상금이 지원될 예정이다.
셋쩨, 정치는 이러한 예산구조의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이번 예산서의 특징 중 하나는 예산설명서에 VIP(대통령을 지칭)라는 항목이 546개나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관료들이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핑계삼아 본인들의 사업을 지키거나 더 나아가 만들어 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산의 절약자 역할을 해야할 재정부는 이러한 항목을 건드리지 못할뿐 아니라 오히려 예산을 늘려주기까지 하는 협조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중앙행정기관 17개 부서의 ‘VIP’ 언급 횟수는 총 546회.‘최순실 예산’과 관련해 강하게 의심받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87), 미래창조과학부(90)의 예산에서 가장 많은 수가 발견되고 있다.
나라 곳간까지 털어먹은 최순실
그런데 박근혜정부의 중점 예산은 문화예산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권은 대선공약으로 예산액의 2%를 문화예산으로 편성하겠다고 했고, 2017년에도 복지예산보다 높은 증가율로 문화예산을 편성했다.
따라서 최순실예산은 문화부분에서 대거 등장하게 된다. 특히 주목할 만하 점은 이명박 정권때까지는 4대강 같은 새로운 예산을 편성해서 예산사업을 진행했는데, 최순실측은 기존 사업 내용을 변경하고 심사위원회를 바꾸고 관료를 교체해 가면서 이러한 일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예산의 시스템을 매우 잘 활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할 방도는 없는가. 예산감시운동에서는 세가지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투명성이다. 올림픽조직위원회 운용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각종 예산사업의 내용과 주체결정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에 이르고서야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투명성이 조직위원회 개혁의 첫걸음이다.
둘째, 책임성이다.
예산은 관료의 책임하에서 편성된다. 하지만 사실상 권력의 영향력하에서 운영되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하루아침에 관료가 교체되고 해임되는 사태는 시스템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무런 권한도 없고 따라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관료의 독립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책임지게 하여야 한다.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강화시켜야 한다. 납세자 소송을 도입하여 예산을 낭비한 사람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국회는 국민을 대신해 정부가 편성한 예산을 심의, 의결한다. 그러나 국회에만 맡겨놓지 말고, 시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왼쪽 사진은 2017년도 예산안을 심의하는 국회 예결위의 모습. 오른쪽은 정부예산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모습
셋째, 시민참여의 확대를 위한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국민들은 말못할 모멸과 자괴감에 빠져있다. 하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자초한 측면은 없는지 반성해야 한다. 예산의 소비자로서 머물러 사태를 수수방관한 것은 아닌지 하는 측면이다. 따라서 시민들 부터 적극적으로 전체 운용 및 결정과정에 참여하여 예산의 소비자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수문장의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단체들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참여연대 나라살림연구소 환경연합등 시민단체들은 10월20일 나라예산토론회 등에서 150건 3조원에 달하는 낭비사업의 감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러한 예산 자체에 회의론도 많다. 하지만 예산은 잘못쓰면 부패의 독소이지만 잘쓰면 사회를 위한 영양분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일본 저널리스트 이토 다카시가 99년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듣고 제작진에게는 이같은 물음이 생겼습니다.
이토 씨는 일제가 저지른 전쟁범죄에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을 20년 넘게 취재해왔습니다. 한국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북한 지역도 취재했습니다. 특히 99년에 이토 씨가 영상에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에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일본군의 잔악함이 여과 없이 담겨있었습니다.
▲ 이토 씨는 1992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위안부’ 할머니 14명의 증언을 영상에 기록했다.
북한의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북한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는 2000년 10월 기준, 218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북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일본군 ‘위안소’에서 벌어진 참상을 보다 더 자세히 알리기 위해 이토 씨가 담은 북한 ‘위안부’ 할머니의 증언 영상을 2주에 걸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지역에도 일본군 ‘위안부’가 존재하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92년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의 공개 증언을 통해서였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일제 순사에게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가 됐습니다.
“도교상이라는 놈이 “여기서 대일본제국의 천황폐하에게 몸 바쳐 말 잘 들으면 너를 잘 돌봐주겠다”고 말하고 그 장교 놈이 한 며칠 와서 그렇게 성노예 생활을 시작하더구먼. 이제 12살 난 게 어머니 품에서 어린양 노릇하던 아이가 성노예 생활이 뭔지 아나? 그놈이 들이대니까 아이 아래가 다 파괴돼요. 온통 구들바닥에 피가 쏟아지고 이래도 군인들이 쭉 들어와서 성노예 생활을 하다가…”
– 리경생 할머니
▲ 故 리경생 할머니(1917~2004). 12세에 경상남도 창원에 있는 군수공장에 끌려갔다.
일본군이 ‘위안부’에게 했던 고문과 만행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로 반인륜적이었습니다. 리경생 할머니는 자신이 열여섯 살에 임신이 되자 일본군은 그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낸 뒤 자궁을 들어냈다는 만행을 자행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일본군이 배에 아이 있다고. 임신했다고 ‘저년을 써먹어야겠는데 나이도 어리고 인물도 곱고 써먹어야겠으니 저년 자궁을 들어내 파라'”
– 리경생 할머니
리경생 할머니의 최초 증언 이후 북한 지역 곳곳에서 자신도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2000년 북한 단체인 ‘종군위안부 및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은 70%나 됐습니다. 강제 연행된 경우가 96명으로 44%, 일자리를 미끼로 유인당한 경우가 74명으로 34%, 나머지는 빚에 팔리거나 근로정신대에 모집됐다가 위안부가 됐습니다. 이 가운데 43명이 공개적으로 증언했습니다.
“철부지 13살이 뭘 압니까. 하나도 모릅니다. 그 성기가 들어갑니까? 안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주머니에 있던 칼을 꺼내더니 잡아 둘러 매쳐놓고 그 칼로 쭉 잡아 찢습니다. 그렇게 하곤 자기 할 노릇을 했는지 까무러쳐서 나는 모릅니다. 벗지 않곤 말이 되지 않아.” –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위안소’ 끌려감
▲ 故 김영숙 할머니(1927~2010). 13세에 중국 심양에 있는 ‘위안소’에 끌려갔다.
일본군들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을 고문하는 것은 일종의 ‘놀이’였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성고문을 당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정옥순 할머니(1920~1998)의 가슴과 아랫배에는 당시에 겪었던 고문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 故 정옥순 할머니(1920~1998). 14세에 양강도 혜산시 일본군 병영에 끌려갔다.
“이 고문을 받을 때는 완전히 정신을 잃었어요. 문신을 독약으로 하는데 어떻게 정신을 안 잃어. 살이 다 헐었어요. 바늘 쏙쏙 들어간 자리죠. 이거 봐. 그 자리에서 열두 명이 죽었는데…”
– 정옥순 할머니
‘위안부’가 되기를 거부하기라도 한다면 그 순간 돌아오는 것은 일본군의 가차 없는 학살이었습니다.
“한 처녀가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지. 너희 개 같은 놈들한테 이렇게 맨날 이 단련을 받겠나?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하니까 일본군이 “어 좋다.” 그 다음에는 가마니를 하나 끌어다 놓고 졸병을 시켜서 “모가지 잘라라.” 모가지 잘라 가마니에 넣고 “팔 잘라라.” 팔 잘라서 가마니에 넣고. “다리 잘라라.” 다리 다 잘라 담고 몸뚱이도 그저 몇 토막을 쳐서 가마니에 다 주워 담는 것을 보고 그걸 보고는 처녀들이 다 악악 소리치고 그 자리에서 다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리경생 할머니
이런 광기 어린 일본군의 학살에 죽어 나간 ‘위안부’는 수없이 많았습니다.
“한 400명 데려다 놓고 하룻밤에 40명씩 타면서 아이들이 아래 하초가 깨져서 피를 쏟다가 죽은 아이들이 수백 명 됐다. 내가 말을 안 들으니까 팬티만 입혀서 이 하초를 쇠막대기로 다 지졌다. 왜 말 안듣냐고 지지고… 말 듣겠느냔 하고 또 지지고. 그렇게 아래 하초가 다 데여서 번직번직하니 거기 껍데기가 쭉 벗겨졌는데 군인들이 40명씩 또 달라붙더라.” -정옥순 할머니
일본군이 ‘위안부’를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해가며 저지른 학살은 ‘엽기’ 그 자체였습니다.
“계집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고 못판에 못을 300개를 심었어요. 그게 못판에 팬티가 다 찢기고 하초에 닿으니까 살에 구멍이 뚫려서 국숫발 같이 피가 팍팍 뿜어요. 그렇게 15명을 죽여 놓고서는 “너희 계집 애들도 말 안 들으면 이렇게 죽인다. 말 안 듣는 계집애들 죽이는 건 개 죽이는 것보다 아깝지 않다” 그렇게 말했다. 내가 피 눈물이 나와.” -정옥순 할머니
리상옥 할머니(1926~2005)는 ‘위안소’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그곳에서 겪은 성고문과 함께 끌려간 동네 친구가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나랑 같이 온 탄실이, 영순이. 하루는 신음소리가 나길래 보니까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내 방이 아니고 남의 방이니까. 그런데 그들이 죽는 것을 보고 ‘아, 이제는 이렇게 죽는 거다’하고 몇 달 지나갔어요.
리상옥 할머니
▲ 故 리상옥 할머니(1926~2005). 17세에 평안남도 순천시에 있는 일본군 부대에 끌려갔다.
리상옥 할머니는 그 당시 후유증으로 임신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평생을 홀로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60년동안 홀로 떠안고 온 상처를 치유받지 못한 채 2005년 숨졌습니다.
어느 누가 자식도 하나 없고 그런 삶을 살 수가 있나요? 당신네도 아들딸 있겠지요. 나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 살았어요. 나는 이제 다른 것 바랄 거 없어요. 당신네가 준 모욕 보상하라요. 왜 못하나요. 60년이 됐어요. 60년. 생각해보세요. 나도 남들이 잘사는 거 보면 부럽고 얼마나 가슴이 터져오는지 알아요?
리상옥 할머니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도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할머니들의 증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단지 남한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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