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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위층의 페이퍼컴퍼니 거래를 입증하는 유일한 단서… ‘독극물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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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위층의 페이퍼컴퍼니 거래를 입증하는 유일한 단서… ‘독극물 살인’

익명 (미확인) | 목, 2016/04/07- 07:14

중국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전현직 위원 8명이 비밀 페이퍼컴퍼니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렉사 올센(Alexa Olesen), 웬 유(Wen Yu) 기자

구카이라이(Gu Kailai)는 자신이 감춰온 비밀이 드러날까 싶어 몇 달 동안 좌불안석이었다. 이제 곧 중국 정치 지도부에 오르게 될 남편이 그 비밀 하나 때문에 자리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종의 조치를 했다.

중국 남부 대도시인 충칭의 한 호텔방, 영국인 사업가인 닐 헤이우드(Neil Heywood)가 호텔 침대에서 술에 취해 멍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그녀는 작은 그릇에 차와 쥐약을 섞어 건넸다.

호텔 직원이 그의 시신을 이틀 뒤에 발견했다.

구카이라이는 결국 2011년 범죄에 대해 고백했다. 그녀는 헤이우드가 지구 건너편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계좌의 수백만 달러 부동산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녀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프랑스 남부에 있는 빌라의 소유권을 숨겼음을 헤이우드가 폭로한다면, 남편인 보시라이(Bo Xilai)가 중국 정치권력의 정점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구카이라이는 생각했다.

살인이 일어난 2주 후, (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알려진 바 없는 내용이다) 구카이라이의 페이퍼컴퍼니 소유권 구조가 갑자기 바뀌었다. 유출된 기록에 따르면, 그녀와 페이퍼컴퍼니의 관계를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 목적으로, 또는 일이 터지면 그녀의 동업자가 신속한 조치를 하도록 만들 목적으로 구카이라이의 주식이 동업자에게 이전되었다.

하지만 구카이라이는 자신의 비밀을 감출 수 없었다. 페이퍼컴퍼니를 숨기려던 노력은 헤이우드의 죽음, 그리고 남편과 구카이라이의 투옥으로 끝났다. 또한 중국의 엘리트들이 그들의 부를 숨기기 위해 어떻게 조세도피처를 이용하고 있는지에 관해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구카이라이의 해외 거래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낸 유출문서는, 그 밖의 중국 권력층 가족이 보유한 해외 재산에 관해서도 많은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

유출문서는 중국의 국가주석, 공산당 총서기 및 당 중앙군사위 주석인 시진핑(Xi Jinping)의 매형이 조세도피처에 회사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규모가 매우 작은 상무위원회에 과거 혹은 현재 속한 인물 중 최소 그들의 친척 7명도 해외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자산을 가진 친척 중에는 서거한 중국 국가주석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의 손녀사위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 혁명 영웅들의 자녀와 손자 손녀 중 많은 수가 사업에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크고 억만장자도 수백 명에 이른다. 그러나 중국 내 가장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페이퍼컴퍼니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자산을 숨기고 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이 네트워크를 이용하는지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 및 기타 미디어 파트너들이 기밀 자료를 입수했다. 전체 1천100만 건이 넘는 기록은 자산을 숨기는데 이용되는 기업 구조 설립 전문인 파나마 법무법인, 모색 폰세카(Massack Fonseca)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모색 폰세카의 크게 성공한 중국 고객 중에는 중국 최고 지도자이자, 반부패를 내세워온 시진핑의 매형인 덩쟈구이(Deng Jiagui)도 포함되어 있다. 덩쟈구이는 모색 폰세카를 통해 2004년 페이퍼컴퍼니 한 곳을 취득했으며, 2009년 두 곳을 더 취득했다.

이 페이퍼컴퍼니들의 이름은 슈프림 빅토리 엔터프라이즈(Supreme Victory Enterprises Ltd), 베스트 이펙트 엔터프라이즈(Best Effect Enterprises Ltd.) 및 웰스 밍 인터내셔널(Wealth Ming International Ltd.)이다. 이 회사들이 무슨 일에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슈프림 빅토리는 2007년 해산되었고, 나머지 두 회사는 시진핑이 2012년 공산당 서기가 되었을 무렵 휴면 상태에 들어갔다.

또 다른 유명한 고객은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중국 총리였던 리펑의 딸이다. 리펑은 1989년 톈안먼 광장 민주화 시위의 유혈 군사 진압을 이끌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리펑의 딸인 리샤오린과 그녀의 남편은 1994년 설립된 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회사인, 코픽 인베스트먼츠(Cofic Investments)를 소유하고 있다. 내부 이메일에서 리샤오린의 변호사들은 코픽 인베스트먼츠의 자금은 유럽에서 중국으로 산업 설비를 수출하는 일을 돕는데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유출 문서에 의하면, 이 소유관계는 이름이 등록되지 않은 소위 무기명주를 이용해서 수년 동안 은폐되어왔다. 무기명주는 오랫동안 자금 세탁 및 그 밖의 부정행위를 위한 도구로 알려져 왔으며, 검은돈을 막기 위한 규제가 각국에서 강화되면서 이제 전 세계적으로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소위 붉은 귀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는 젊은 시절 페이퍼컴퍼니의 세계를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까지 중국 상무위원회 서열 4위였던 지아칭린(Jia Qinglin)의 손녀도 해외 자산을 가지고 있다. 재스민 리 지단(Jasmine Li Zidan)은 스탠포드 대학교에 1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2010년 하베스트 선 트레이딩(Harvest Sun Trading Ltd.)이라는 페이퍼컴퍼니의 소유주가 되었다.

그 이후로 재스민 리는 20대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큰 규모의 비즈니스를 구축해왔다. 그녀의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는 총 등록 자본 30만 달러로 베이징에 2개의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용되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회사 2곳이 베이징 회사들 내에 재스민 리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녀는 그녀 가족의 이름이 공식 명부에 등장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 밖에 친척들이 페이퍼컴퍼니 거래와 연관이 있는 5명의 전,현직 상무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장가오리(Zhang Gaoli), 현 상무위원으로서 그의 사위인 리셩푸(Lee Shing Put)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3개 기업, 제논 캐피탈 매니지먼트(Zennon Capital Management), 시노 릴라이언스 네트웍스 코퍼레이션(Sino Reliance Networks Corporation), 글로리 탑 인베스트먼트(Glory Top Investments Ltd.)의 주주였다.

류윈산(Liu Yunshan), 현 상무위원으로서, 그의 며느리인 지아리칭(Jia Liqing)은 영국령 버진 아앨랜드에 2009년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인 울트라타임인베스트먼트(Ultra Time Investments Ltd.)의 이사 겸 주주였다.

쩡칭훙(Zeng Qinghong),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 부주석이었으며, 그의 남동생인 쩡칭화이(Zeng Qinghuai)는 니우에(Niue)에서 처음 설립되었다가 2006년 사모아(Samoa)로 주소가 옮겨진 회사인 차이나 컬츄럴 익스체인지 어소시에이션(China Cultural Exchange Association Ltd.)의 이사였다.

고인이 된 후야오방(Hu Yaobang),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였으며, 그의 아들 후덴화(Hu Denhua)는 2003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인 포탈렌트 인터내셔널 홀딩스(Fortalent International Holdings Ltd.)의 주주, 이사이자 실질소유주이다. 후덴화는 그의 아버지가 공산당 총서기이던 시절에 살았던 전통 가옥인 본인의 집 주소를 이용해서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했다.

마오쩌둥(Mao Zedong)은 1949년부터 1976년 사망할 때까지 공산주의 중국을 이끌었다. 그의 손녀사위는 2011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킨 베스트 인터내셔널 리미티드(Keen Best International Limited)를 설립했다. 천둥성(Chen Dongsheng)은 현재 생명보험회사와 미술경매회사의 대표이며 킨 베스트(Keen Best)의 1인 이사 겸 주주였다.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만나다

유출기록은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자산을 감추기 위해 어떻게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지 드러내고 있다.

모든 페이퍼컴퍼니 거래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기타 지역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들은 정치 엘리트와 부유한 후원자들 간의 금융 거래를 숨겨주고, 자산을 감춰주며, 조세를 회피하고 익명 주식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인물도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자국에서 몰래 기업을 설립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공산주의 속성을 지닌 현대 중국의 자본주의 바퀴에 기름을 칠하는 기술 중 일부일 뿐이다.

모색 폰세카의 중국 고객들 중에는 중국 쇼핑몰 체인 인타임(Intime)을 설립한 셴구오준(ShenGuojun)과 같은 슈퍼부자도 포함되어 있다. 셴구오준은 쿵푸 스타인 성룡(Jackie Chan)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과 함께 2008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드래곤 스트림 리미티드(Dragon Stream Limited)라고 불리는 회사의 주주였다.

Jackie Chan. Photo: Gage Skidmore (CC BY-SA 2.0)

Jackie Chan. Photo: Gage Skidmore (CC BY-SA 2.0)

또 다른 억만장자이자 음료수 재벌인 쫑칭호우(Zong Qinghou)의 딸인 켈리쫑푸리(Kelly Zong Fuli)는 2015년 2월 모색 폰세카의 도움으로 퍼플 미스테리 인베스트먼트(Purple Mystery Investments)라 불리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서신 기록에 의하면 해당 회사의 목적은 “중국 내 투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셴구오준, 성룡, 켈리쫑푸리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코멘트 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전 세계 페이퍼컴버니 설립 법무법인들 중 5위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지는 파나마 법무법인인 모색 폰세카는 모색 폰세카 세크러테리즈 리미티드(Mossack Fonseca Secretaries Limited)라는 회사를 1989년 홍콩에 설립했다. 그리고 설립 초기에 박물관과 쇼핑으로 널리 알려진 침샤추이의 카오룽 센터에 사무실을 운영했다. 모색 폰세카는 2000년 중국 본토에 첫 사무실을 설립했다. 모색 폰세카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이 법무법인은 중국 본토 8개 도시(심천, 닝보, 청도, 다롄, 항저우, 난징, 지난)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유출기록 분석에 따르면, 2015년 말에 모색 폰세카는 홍콩과 중국 사무실을 통해 설립된 16,300개 이상의 페이퍼컴퍼니로부터 수수료를 거둬들였다. 이 회사들은 모색 폰세카가 전 세계에서 관리하는 활동 중인 기업들 중 29 퍼센트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 비중은 단일 시장으로서 모색 폰세카에게 독보적이다. 모색 폰세카의 지점 중 아시아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바쁜 사무실은 홍콩에 있다.

자금 세탁에 관한 국제 규범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와 같은 중개인은 정부 관료와 그  가족의 자금이 부당한 이득을 통해 축적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더욱 엄격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음료수 재벌, 쫑칭호우의 아내인 시유첸(Shi Youzhen)과 같은 일부 고객은 그녀의 페이퍼컴퍼니가 보유한 자산에 관해 “강도 높은 실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유출문서의 조사 결과, 모색 폰세카는 여러 중국 고객들에 대해 고위급 정치인들과 가족관계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등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시진핑의 매형인 덩쟈구이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들을 2004년과 2009년 설립하는 것을 도울 당시에 모색 폰세카의 그 누구도 덩쟈구이의 가족관계를 인지하거나 확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모색 폰세카는 또한 수년 동안 중국 전 총리 리펑의 외동딸인 리샤오린의 가족관계를 인지하거나 깨닫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모색 폰세카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가 무기명주 사용을 금지하는 보다 엄격한 반(反)자금세탁 기준을 도입한 2009년까지 리샤오린과 그녀의 남편이 소유한 회사인 코픽 인베스트먼츠를 지배하기 위해 무기명주를 사용하는데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유출문서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는 코픽 인베스트먼츠의 소유권 구조가 2010년 무기명주에서 또 다른 비밀 구조인 중부 유럽의 작은 리히텐슈타인 공국 내 재단으로 이전될 때도 해당 회사의 진짜 주주들의 배경을 파헤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무렵, 리샤오린은 중국 내에서 유명한 정치 지도자의 딸 이상의 명망을 얻고 있었다. 그녀는 “중국의 전력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중국 에너지 분야의 최고 경영인이 되었고, 중국 입법부의 자문기관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위원이 되었다.

이메일 기록을 보면 모색 폰세카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금융 규제 당국이 보낸 질의에 대한 회신에서, 2014년이 되어서야 리샤오린과 그의 남편이 코픽 인베스트먼츠의 실제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질의가 무엇이었는지 문서 상에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심지어 그 때도 적어도 법무법인의 직원 중 일부는 리샤오린이 중국 정치 및 재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코픽 인베스트먼츠의 이사이자, 제네바에 기반을 둔 변호사인 찰스-앙드레 주노드는 이에 대한 코멘트를 거부했지만 그는 항상 관련법을 준수해왔다고 말했다.

리샤오린은 거듭된 코멘트 요청에도 답하지 않았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보낸 편지에서 모색 폰세카는 정치인들이나 이들과 관련된 사람들과 연관된 사례를 발견하고 다루는 “정책 및 과정을 적절한 절차에 따라 확립”했다고 밝히고 있다. 모색 폰세카는 이런 사례는 “고위험” 사례로 간주하고, 강도 높게 체크하고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우리 회사를 비롯한 기타 법무법인들이 지켜야 하는 기존 규칙과 기준의 엄격한 수준을 자주 벗어나는 모든 신규 및 유망 고객에 대해서 꼼꼼하게 자산실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Identity documents from the Panama Papers. Clockwise from top left: Patrick Henri Devillers, Jia Liqing, Hu Dehua, Deng Jiagui and Li Xiaolin.

Identity documents from the Panama Papers. Clockwise from top left: Patrick Henri Devillers, Jia Liqing, Hu Dehua, Deng Jiagui and Li Xiaolin.

1 달러짜리 회사

큰 주목을 끌지 않고 모색 폰세카의 조사 절차를 뚫고 들어온 또다른 군주는 전 상무위원의 손녀인 재스민리(Jasmine Li)이다. 페이퍼컴퍼니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녀는 스탠포드 대학교 학생이었다.

모색 폰세카의 유출문서를 보면 사진이 담긴 신분증 사본을 확보하는 것이 표준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진이 담긴 신분증 사본을 법무법인에서 확보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만약 모색 폰세카 직원들이 좀 더 면밀하게 확인했다면, 또다른 모색 폰세카 고객인 중국 고급시계유통업체인 형득리(Hengdeli)의 대표이자 창업자인 장유핑(Zhang Yuping)과 그녀 사이의 금융 관계를 발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장유핑은 하베스트 선 트레이딩 리미티드(Harvest Sun Trading Limited)라고 불리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회사의 1인 주주였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하베스트 선은 2010년 4월 차이나 스트레티직 홀딩스(China Strategic Holdings)라 불리는 홍콩 상장회사의 주식을 매수하는 데 이용되었다. 홍콩 증권거래소 기록에 따르면,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8월에 하베스트 선은 주식의 일부를 매각하고 9월에는 나머지 보유 주식도 매각했다.

2010년 12월, 모색 폰세카 기록에 따르면, 장유핑은 당시 비어있는 페이퍼컴퍼니의 소유권을 (재스민리의 링크드인(LinkedIn) 페이지 정보에 따르면) 당시 스탠포드 대학교 1학년생이었던 재스민리에게 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매 가격은 1달러였다.

모색 폰세카의 기록에 따르면 재스민리는 신 셩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Xin Sheng Investments Limited)라는 두 번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회사도 소유하고 있다. 재스민리는 하베스트 선과 신 셩을 엔터테인먼트 및 부동산과 관련된 두 곳의 비슷한 이름을 지닌 베이징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용했다. 페이퍼컴퍼니들은 그녀의 정체를 감추는데 이용되었다.

장유핑의 변호사인 빅터 리(Victor Lee)는 하베스트 선이 장유핑으로부터 재스민리에게 2010년 이전되었다는 사실을 이메일을 통해 확인해주었다. 빅터 리는 이전 당시 하베스트 선은 자산이 전혀 없었으며, 장유핑은 그 회사가 “자산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전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우리 고객은 재스민리와 전혀 관계가 없고, 어떤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우리 고객에게 그녀를 소개해준 것”이라고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빅터 리는 적었다. 그는 해당 이전 거래는 재스민리가 “스스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할 필요 없이” 회사를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사업가들은 고위급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의 배우자, 자녀, 손주 및 기타 가까운 친척들을 돕는 일이 자주 있다. 이와 같은 은밀한 유대관계의 속성은 구카이라이와 그녀의 남편 보시라이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부부는 중국 북동부 출신의 플라스틱 재벌인 수밍(Xu Ming)에게 상당히 의지하고 있었다. 보시라이는 2013년 8월 그의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 중에 “수밍은 나의 가족에게 막대한 규모의 재정지원을 해줬다… 나는 그가 ‘신속하게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는 내 아들을 도와줬다” 고 언급했다.

흰 장갑

10년 이상 구카이라이는 페이퍼컴퍼니 지분을 캐러비안의 비밀로 유지하면서 그녀의 지중해 빌라를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해왔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보시라이는 중국의 권력자 부부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The luxury French villa of Bo Xilai. Photo: Fine and Country

The luxury French villa of Bo Xilai. Photo: Fine and Country

구카이라이는 전 중국인민해방군 장군의 딸로서 문화혁명 시기에 정육점 직원으로 일했지만 나중엔 성공적인 변호사가 되었다.

보시라이는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8대 혁명원로” 중 한 명의 아들이며, 확장해가는 주요도시인 충칭을 2011년까지 운영했고, 상무위원회의 유력한 후보였으며, 중국의 차세대 국가안보 지도자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구카이라이는 남편이 유력한 지도자로 부상하기시작할 때쯤, 프랑스 리비에 근처 칸 지역에 방 6개짜리 빌라를 샀다. 그 집은 2011년 수밍의 자산으로 매입했다. 수밍은 강철 작업장을 구입하기 위해 320만 달러를 이체하는 것으로 꾸며 중국의 엄격한 자본 통제 망을 피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강철 작업장을 판 회사는 320만 달러 중 적은 금액만 가져가고 나머지 금액은 구카이라이와 동업자인 프랑스 건축가 패트릭 앙리 드빌리에(Patrick Henri Devillers)가 비밀리에 공동 소유하고 있는 러셀 프로퍼티즈 S.A.(Russell Properties S.A.)로 이체했다. 러셀 프로퍼티즈 S.A.는 해당 자금을 빌라를 구입하고 관리한 프랑스의 한 회사로 이전했다.

문서상으로 러셀 프로퍼티즈는 구카이라이와 그녀의 막강한 남편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구카이라이는 빌라 퐁텐 상 조르쥬(Villa Fontaine St. Georges)로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투자했다. 이후 그녀는 세금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회사와 빌라의 소유권을 숨겼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해외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빌라를 관리하기 위해, 그녀는 번드르르하고 비밀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인 헤이우드에게 의지했다. 그는 “007”이란 번호가 적힌 번호판을 단 재규어를 베이징 시내에서 몰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디언(Guardian)은 그가 구카이라이를 용서를 잘 하지 않는 “여제”라고 지칭했다고 보도했다.

구카이라이를 도우면서 헤이우드는 해외 자산을 비밀로 유지하기를 원하는 부유한 중국인들의 간판 대리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흰 장갑”이라고 알려진 대리인들은 종종 부동산 등의 실소유자 지분을 가지고 있다.

기업 및 당 엘리트들을 위해 흰 장갑 역할을 하는 것은 중국에서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다. 그러나 헤이우드에게는 이 사업이 치명적인 일로 변했다.

수수께끼가 풀리다

모색 폰세카는 2011년 중반 또 다른 등록된 중개인을 통해 이전된 페이퍼컴퍼니들 몇몇의 일부로서 러셀 프로퍼티즈 S.A.를 “상속”받았다.

당시에 해당 회사의 지분은 채널 제도의 저지(Jersey)에 위치한 대리인인 IFG 트러스트(IFG Trust)와 IFG 세크러테리즈(IFG Secretaries)가 보유하고 있었다. 등기부상에 이사와 주주로 드빌리에나 구카이라이는 언급되지 않았고 중국과의 뚜렷한 연결고리도 없었다.

그때 미스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구카이라이는 프랑스 빌라를 관리하고 있던 헤이우드에게 충칭의 부동산 거래에서 생겨나는 수익을 일부 떼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헤이우드는 그가 정당한 지분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2011년 초에 헤이우드는 그녀의 아들인 보과과(Bo Guagua)에게 접근해 그의 가족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고 그녀는 이후 증언했다. 헤이우드가 그녀의 빌라 소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고 구카이라이는 주장했다.

Gu Kailai, the wife of disgraced politician Bo Xilai, listens to the verdict during her trial. Photo: AP Photo / CCTV via APTN

Gu Kailai, the wife of disgraced politician Bo Xilai, listens to the verdict during her trial. Photo: AP Photo / CCTV via APTN

구카이라이 재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구카이라이와 헤이우드는 이 분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2011년 11월 13일 충칭의 럭키 홀리데이 호텔에서 만났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기 위해 그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는 로얄 살루트 위스키를 반병 마신 후 보시라이 가족의 보조원인 장시아준(Zhang Xiaojun)이 그를 침대까지 끌고 가기 전에 구토했다. 헤이우드는 구카이라이에게 물을 청했다.

그녀는 쥐약과 차를 간장 종지에 섞어 그가 조금씩 마시도록 줬다.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의 맥박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의 호텔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유출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그 일이 있은 지 2주가 약간 더 지나, 모색 폰세카는 빌라를 통제하는 페이퍼컴퍼니인 러셀 프로퍼티즈 S.A.의 소유자 지분을 IFG 대리인으로부터 패트릭 앙리 드빌리에에게 이전하는 것을 도왔다. 패트릭 앙리 드빌리에는 2000년 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도왔던 건축가이다.

드빌리에는 구카이라이의 전 베이징 법무법인 파트너의 주소를 이전을 위한 문서 작업에 이용했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러셀 프로퍼티즈는 초기에 두 곳의 채널 제도 대리인을 통해 구카이라이와 드빌리에가 50/50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이전 작업이 살인 후에 이렇게 빨리 이뤄진 이유 또는 구카이라이의 지분이 드빌리에에게 이전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사실, 드빌리에가 그의 실제 이름을 회사에 올리고 구카이라이의 전 직장 주소를 문서에 사용하면서 본질적으로 그와 그녀의 지문을 회사에 남긴 것은 이상해 보인다.

이 이전 작업 덕분에 ‘중개인’으로서 IFG는 사라졌다. 그 결과 드빌리에는 모색 폰세카와 직접 연락할 수 있게 되었고, 회사에 대한 강력하고 직접적인 통제가 가능해졌다.

2012년 초까지 드빌리에는 중국, 영국, 프랑스, 호주 및 미국의 뉴스에서 구카이라이의 살인 재판 및 보시라이의 부패 스캔들과 그의 연결고리 때문에 자주 거론되었다. 그러나 유출문서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는 2012년 초 몇 달 동안 이 사건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시기 동안 드빌리에는 모색 폰세카에게 러셀 프로퍼티즈에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인 모건 앤 모건 (Morgan & Morgan)으로 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2012년 6월 7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규제 당국이 러셀 프로퍼티즈 S.A.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 모색 폰세카에게 해당 회사의 소유주, 이사 및 기타 상세 내역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4일 후, 모색 폰세카의 특별 감사 책임자는 내부 이메일로 그녀의 동료들에게 드빌리에가 중국 조사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알렸다.

6월 12일과 13일, 모색 폰세카는 드빌리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을 통해 보시라이-구카이라이 스캔들과 드빌리에의 역할에 대한 뉴스 링크들을 보내면서 걱정되는 점들을 지적했다. “기사가 당신의 이름과 국적을 가진 인물을 언급하고 있다”고 모색 폰세카는 적었다. 그리고 “문제의 인물이 당신과 동일 인물인지 확인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드빌리에는 이에 대해 회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당국에 대한 회신으로, 모색 폰세카는 패트릭 앙리 드빌리에라는 이름의 인물은 러셀 프로퍼티즈의 1인 주주이자 이사이자, “이 회사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연락한 인물”이라고 답했다. 모색 폰세카는 더 자세히 조사하고 드빌리에와 회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나중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중국에서 밝혀지고 있는 스캔들과 해당 회사의 분명한 연관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집 팝니다

드빌리에는 현재 캄보디아에 살고 있다. 그의 증언은 구카이라이와 보시라이의 재판에서 모두 사용되었지만, 그는 어떤 범죄로도 기소되지 않았다. 그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거듭한 코멘트 요청에도 답하지 않았다.

보시라이는 언젠가 그의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 뇌물수수, 횡령 및 권력 남용으로 종신형을 살고 있다.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2015년 12월 중국 당국은 그녀의 형벌을 종신형으로 감형했다.

중국 법원은 보시라이에 대한 판결에서 중국 정부가 해당 빌라를 몰수하라고 명령했다. 중국 관영 언론은 2014년 빌라가 매물로 나와 있다고 보도했다.

제안된 가격은 미화 850만 달러이다.

 ※기사 원문 보기(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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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 앞에서 14년째 주류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종만 씨. 20년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성격대로 조용한 일을 하며 미래를 만들어 보자’는 다짐으로 가게를 시작했다.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사이, 처음엔 낯설었던 와인과 양주의 이름이 익숙해졌다. 이제는 이 씨를 찾아 일부러 서울대입구역을 찾는 단골도 생겼다. 가벼운 호주머니로 분위기 있는 술자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학생들이 가게의 주된 손님이다. 덕분에 이 씨는 인근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름이 오르내리는 지역의 명사가 됐다.

지난 13년 간은 꿈이 이뤄진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돈벌려고 매달려서 일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여유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끼리 해외여행 한번도 못가봤지만, 저 나름대로는 조용하고 가정적으로 행복하다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시간날 때면 책도 보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으면서 제 꿈을 이룬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많았습니다.

최근 서울대입구역 인근 ‘샤로수길’이 젊은 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일대 상권은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 씨가 스스로 ‘서울대입구역 최고의 자리’라 말하는 그의 가게는 정작 비어 있는 상태다. 지난해 7월, 그가 입점해 있는 대성빌딩의 건물주가 바뀌면서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

여전히 쫓겨나는 사람들… ‘꿈도 미래도 다 잃었다’

새 건물주는 건물의 등기를 마치자마자 노후화된 건물을 재건축하겠다며 명도 통고장을 보내왔다. 14년동안 서울대입구역 앞을 지켜온 가게를 정리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불과 두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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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는 것은 서울대입구역 최고의 자리만이 아니었다. 통고장 어디에도 권리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14년 전 입점 당시, 이전 임차인에게 냈던 권리금이 9000만 원이다. 현재는 1억5000만 원 선에서 얘기가 오가는 자리다. 노후 준비의 전부였던 가게와 목돈 모두를 날리게 된 것이다.

이 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명도 소송에 나섰지만, 패소 가능성이 짙자 소송을 포기했다. 가게는 손해를 감수하고 인근 다른 빌딩으로 이전했다. 주류 전문점이라는 특성상 주류 보관을 위한 시설과 인테리어 비용이 추가로 들어갔다.

대항할 힘이 없다는 것이 너무 억울합니다. 아무리 소리 지르고 외치고 해봐도 손을 맞잡아 끌어줄 곳이 없다는 것이 너무 허탈합니다. 비록 소시민이지만 살아오며 세금 한 푼 안 낸 것이 없고 길거리에 담배 꽁초 하나 버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범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살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씨의 가게가 있던 빌딩을 매입한 건물주는 인근 빌딩을 하나 더 매입했다. 빌딩 매입자금은 100% 금융권 대출이었다. 건물주는 매입한 빌딩 2채를 함께 재건축할 계획이다. 재건축이 추진되면서 쫓겨나게 된 점포는 모두 16곳이다. 이들이 받지 못한 권리금 총액은 18억 원(입점상인 측 주장)이 넘는다. 건물주가 명도 통고장을 발송한지 1년, 입점 상인 대부분은 명도 소송을 포기하고 점포를 이전했다.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빌딩에 남아 점포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권리금을 받지 못한 채 쫓겨나면 달리 생계를 찾을 방도가 없는 이들이다.

“법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재건축은 임차인 내모는 만능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보호법)은 ‘계약 갱신 요구권’과 ‘권리금 회수 기회 제공’ 등 임차 상인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의 노후화나 훼손에 의해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어 철거 및 재건축을 하는 경우는 예외로 두고 있다. 명도 소송에 나선 서울대입구역 앞 빌딩의 입점 상인들이 줄줄이 패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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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점 상인들의 변호를 맡은 이영기 변호사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여러차례 개정을 통해 보완되어 왔지만 여전히 ‘건물주 중심’이라는 법의 대전제를 허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예외조항이 아직 법에 남아있는 것의 대전제가 있습니다. 건물의 가치의 상승에 대해 임차인은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피땀을 흘려서 상권을 개발하고, 상가 건물의 가치 상승에 기여를 해도 모든 것은 건물주에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상당히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법 조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있어 철거를 해도 임대인, 임차인 공동의 노력에 의한 건물의 가치 상승분에 대해 일정부분 임차인에게 돌려줄 필요있습니다.

문제는 건물주가 의도적으로 이같은 법의 허점을 노린다면 얼마든지 임차상인의 권리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입구역 건물의 경우, 명도 소송 과정에서 건물의 안전진단 결과가 주요 쟁점이었다. 새 건물주는 건물 매입 후 사설업체를 통해 건물 구조안전진단을 했고 그 결과를 법원에 제출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이 결과보고서의 ‘종합결론’에 따르면, 이 건물은 콘크리트 압축강도, 철근 배근에는 결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지진 등으로 인해 수직하중과 수평하중이 동시에 작용 했을 시에는 충분한 내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건축법상 내진설계 기준은 매년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현재는 3층 이상, 연면적 500㎡ 이상의 건축물에 대해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있다. 3층, 연면적 900여 ㎡ 규모인 서울대입구역 건물의 경우, 2015년 내진설계 기준 강화에 따라 내진설계 의무화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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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건축된 지 20, 30년 이상 지난 건물 가운데 현행 내진설계 기준을 충족하는 건물은 드문 실정이다. 2016년 기준, 서울시 건물들의 내진설계율은 26.8%에 그친다. 이른바 ‘건물 사냥꾼’들이 주요 상권의 오래된 건물을 사들여 재건축하려 하면, 임차 상인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우선입주권, 퇴거료 보장’…의안은 1년 넘게 계류중

지난달 대통령직속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임차인 지위 강화를 골자로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미 20대 국회 들어 총 13개의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 가운데는 건물 노후화에 의한 재건축이라도 임차 상인이 우선입주권이나 퇴거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하는 내용을 명시한 법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취재 : 오대양
촬영 : 오준식
편집 : 정지성

목, 2017/08/2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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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18일.

박정희 유신독재 반대를 외치는 마산 시민들의 시위가 격렬했던 당일 밤, 유치준(당시 51세) 씨는 실종됐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고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나서도 유 씨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일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가족들은 다음날 경찰서와 의료원을 찾아가 수소문을 했지만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다.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부마민주항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경찰 두 명이 유치준 씨 집을 찾아왔다. 경찰은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일러줬다. 경찰은 가족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미 부검에 가매장까지 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소지품에는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그런데 경찰은 뒤늦게 가족에게 아버지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가족들은 영원히 아버지의 행방을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도시락 안에서 뒤늦게 주민등록증을 발견했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회사 가실 때 항상 도시락을 들고 가셨거든요. 도시락 안에 주민등록증이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어린 나이에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당시 열아홉 살이던 유치준 씨의 아들 유성국 씨는 “도시락 안에 주민등록증이 있었다”는 경찰의 말이 의아했지만 더 이상의 진실을 알 수 없었다. 너무 어렸고 시절은 엄혹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보낸 가족들은 2011년 지인의 소개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찾게 된다. 그 곳에서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가족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인 고 유치준 씨의 가족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인 고 유치준 씨의 가족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기념 단체들은 1989년 부마항쟁 10주년을 기념해 자료집 한 권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는 부마항쟁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의 취재 보고 기록이 남아 있다. 거기에는 “50여 세로 보이는 노동자가 대림여관앞 도로변에서 죽어 있었다”는 내용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나이, 옷차림 등이 모두 유치준 씨와 일치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의 신원이 처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5월 국회에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항쟁보상법)이 통과됐다. 부마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부마민주주의재단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과거사에 대한 비판을 피하고 영남 민심을 달래기 위해 부마항쟁 관련 공약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1년 넘게 위원회 구성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부마민주항쟁 35주년을 며칠 앞둔 2014년 10월이 돼서야 위원을 임명했다.

유치준 씨 가족은 부마항쟁 진상규명위가 설립되자 아버지를 부마항쟁 관련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또 한번 상처를 받아야 했다. 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돼 어떤 활동을 해온 것일까.

위원회 구성에 1년을 허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원 선정에서 또 한번 실망을 안겼다. 행정자치부 장관, 경상남도지사 등 당연직 위원 4명을 제외하고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10명의 위원 중에 4명은 박근혜 선거 캠프 또는 인수위 출신, 2명은 박정희와 역사교과서를 옹호하는 인사들이었다.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이른바 ‘친박’ 인사들로 구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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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보상법상 본위원회에는 부산과 창원의 부마항쟁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2인이 반드시 위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기존에 수십년 동안 활동해온 기념사업회가 아니라 2013년 법률 제정 이후 설립 등기를 한 ‘동지회’라는 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을 위원으로 임명했다. 부산동지회, 마산동지회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했던 인사들이 가입해 있는 단체였다. 기념사업회 추천 인사들은 본위원회에서는 배제된 채, 2개의 실무위원회에만 위원으로 임명됐다.

진상규명위의 운영도 파행이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졌다. 기념사업회에서 추천된 일부 위원들이 제대로 진상규명을 해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기념사업회 추천 실무위원 4명은 지난해 10월 “더 이상 들러리 노릇을 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특히 진상규명위는 유치준 씨 사건과 관련해 당시 창원지방검찰청이 작성한 1장 짜리 검시사건부를 찾는 것 외에 조사의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서둘러 ‘관련자 아님’으로 결정을 내리려다 기념사업회 추천 실무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유치준 씨의 가족이 신청을 철회했다.

▲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시민은 16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가 출범한 후 관련자로 신청한 사람은 194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6명은 인용되고 28명은 기각됐다.

▲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시민은 16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가 출범한 후 관련자로 신청한 사람은 194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6명은 인용되고 28명은 기각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현재 진상규명위는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들 그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진상규명위는 오는 10월까지 진상조사를 마치고 내년 4월까지 보고서를 내게 돼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조차 현재 상태에서는 보고서를 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진상조사보고서가 자칫 국정교과서처럼 관련 단체들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용도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취재 조현미
촬영 정형민 김기철 김남범 오준식
편집 박서영 이선영
CG 정동우
그래픽 하난희

목, 2017/08/2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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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과 현대그룹 출신의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이 포뮬러원(F1) 자동차 경주 관람을 위해 각각 국민 세금과 회사 공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F1 아부다비 그랑프리’ 경기를 관람할 때 동반인원 1명의 여행경비 7백여 만원을 국고에서 지원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아부다비 왕세제 측으로부터 F1 관람을 초청받았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초청받은 인원 4명보다 동반 인원을 1명 더 늘렸고, 이에 따라 추가된 여행비를 국고에서 지원받았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해 4명의 항공료와 숙박비는 초청자 측에서 지원했지만, 초청받은 인원외 수행원 1명의 항공비 150만 원과 숙박비 110만 원 등 모두 740만 원의 경비를 국고에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윤옥 여사는 함께 여행을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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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직 대통령이 공적인 업무를 위해 해외 여행을 갈 경우 공무원 출장 여비 규정에 따라 국고에서 필요한 경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F1 경기 관람에 초청받아 참석한 것을 공적인 업무로 봐야하는지, 게다가 초청받은 인원보다 동반 인원 수를 늘려 발생한 추가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 주는 것이 과연 입법 취지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은 왕세제 면담을 핑계로 석유공사 공금을 이용해 이 전 대통령이 관람한 것과 같은 아부다비 F1 경기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사장은 지난해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3박 5일 일정으로 아부다비를 방문했다. 출장 목적은 ‘왕세제 면담 및 CNN 비즈니스 포럼 참석’ 등이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입수한 김 사장의 출장 결과 보고서에는 ‘왕세제 면담을 위해 행사장에 대기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보고서에 적시된 행사장은 야스 마리나 서킷.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관람했던 F1 아부다비 그랑프리가 열린 곳이었다.

김 사장은 초청자측으로부터 경비 일체를 지원받는 것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법무팀 의견에 따라 항공비와 숙박비 등 여행 경비를 공사 비용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한 장에 수십만 원이 넘는 F1 경기 VIP 관람 티켓은 왕세제 측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게다가 김 사장은 석유공사의 출장비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고가의 호텔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사장과 동행한 팀장급 직원 1명이 3박5일 출장 기간동안 쓴 비용은 모두 1190만 원. 하루 숙박비가 80만 원이 넘는 초호화호텔에 머물러 숙박비가 494만 원이나 나왔다. 석유공사의 출장비 규정을 보면 임원의 하루 숙박비는 300달러다. 지난해 석유공사 직원들이 회사 정상화를 위해 임금 10%를 반납하는 등 고통 분담을 나선 것과 비교하면 도덕적 해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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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취재진은 김 사장에게 “아부다비 출장 당시 김영란법 위반 여부에 대한 법률 검토를 법무팀에 지시한 이유와 긴축 경영을 한다고 해놓고 하룻밤 80만 원짜리 호텔에서 머문 것이 정당한 일인지” 등을 물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석유공사 홍보팀은 김 사장 등이 “산유국 정부가 주최하는 국제 행사에 참석해 정부가 주도하는 산유국간 교류진흥 제고를 위해 출장을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재 : 황일송
촬영 : 김남범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월, 2017/08/2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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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0월 8일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이다 해직된 조승호, 노종면, 현덕수 3명의 YTN 기자가 복직해 해직 3천249일 만인 8월 28일 서울 상암동 YTN 사옥으로 출근했다.

YTN 빌딩 옥상에서는 ‘해직자가 온다’란 문구가 적힌 파란색 종이비행기 천 여장이 하늘을 날았고 동료직원들은 해직기자들에게 사원증과 명함을 전달했다.

다시 한 직장에서 일하게 된 해직기자들과 YTN 동료들이 서로 부둥켜안는 순간 곳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오랜 공정방송 투쟁 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YTN의 해직기자 복직 현장을 뉴스타파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최기훈
영상:신영철
편집:박서영
CG:장동우

월, 2017/08/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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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준설 이후, 최대 50% 넘는 하도 변화량 확인

2011년 4대강 준설 이후 지난 5년 동안 반복되는 퇴적과 세굴(강바닥이 침식되는 현상)로 인해 하도 변화율(강의 단면 변화율)이 일부 지점의 경우 최대 50%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결과는 2011년 수심 6미터의 준설 이후 단면이 일정한 형태로 유지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4대강 사업 이후 각 강의 바닥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료로 2011년 4대강 준설 단면도와 2015년 말 현재 4대강의 하도 변화 상태를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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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낙동강의 경우 합천창녕보와 창녕함안보 구간에서 퇴적은 최대 9%, 세굴은 최대 46%인 것으로 확인돼 최대 55%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강은 충주조정지댐에서 강천보 사이에서 퇴적은 최대 32%, 세굴은 14%로 전체 하도 변화율은 46%였다. 금강은 대청댐과 세종보 구간에서 최대 38%가 변했고 영산강은 담양댐과 승천보 구간에서 최대 34%가 변동됐다.

또 4대강의 평균 하상고(강바닥의 높이) 변동량을 보면, 한강 최대 4.7m, 낙동강 최대 3.7m, 영산강 최대 1.3m 하상이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4대강 ‘헛 준설’의 현장 낙동강 감천 합수부를 가다

낙동강과 감천의 물길이 만나는 낙동강 구미보 하류 지점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 2011년 4대강 살리기를 한다며 강바닥을 수심 6미터까지 파낸 이후 낙동강이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잘 보여준다.

▲하늘에서 본 낙동강 감천 합수부, 한눈에도 감천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이 쌓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늘에서 본 낙동강 감천 합수부, 한눈에도 감천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이 쌓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환경단체들은 낙동강 감천 합수부 지점을 이른바 ‘수심 60cm의 비밀’을 간직한 ‘헛 준설’의 대표적 사례라며고 말한다. 실제 낙동강 감천 합수부 지점은 사람이 강 한가운데까지 걸어들어가도 겨우 발목 정도가 물 속에 잠길뿐이다.

▲ 감천과 만나는 낙동강 구미보 하류지점은 거의 강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갈 정도다.

▲ 감천과 만나는 낙동강 구미보 하류지점은 거의 강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갈 정도다.

4대강 사업의 핵심이었던 수심 6미터를 계속 유지하기위해서는 매년 천문학적인 준설과 관리 예산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마찬가진 셈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서면답변을 통해 일부 지점에서 세굴과 퇴적으로 하상변동이 일어났지만 4대강 수계 전체적으로 보면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곳곳에서 메탄가스 기포 확인

취재진은 강바닥의 오염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지난 8월 29일 낙동강 구미보 상류에서 잠수를 시작했다. 수심 10미터까지 내려가자 바닥에 오니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낙동강 구미보 상류 수심 10m지점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메탄가스 기포

▲ 낙동강 구미보 상류 수심 10m지점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메탄가스 기포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 나타났다. 크고 작은 기포가 강바닥에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것이 수중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바로 메탄가스다. 강바닥 곳곳에서 메탄가스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낙동강 바닥이 이미 썩을대로 썩었다는 증거다.

오염된 물질이 뒤섞인 진흙의 퇴적이 계속 진행돼 두터운 층을 이루고 있었다. 메탄가스 기포가 발생하고 있는 오니층의 두께가 과연 어느 정도 되는지 측정했다. 구미보 상류 지점에서의 오니층은 최소 40센티미터에서 최대 1미터 40센티미터까지 쌓인 것으로 나왔다. 낙동강 본류에서 1미터가 넘게 오니층이 쌓이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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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오니층 형성과 메탄가스 발생은 4대강 사업 이전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4대강 사업 이전에는 낙동강 본류에서 메탄가스가 광범위하게 발생한 것은 거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지시자 이번엔 밝혀낼까?

이렇게 비극적인 환경 파괴와 천문학적 예산 낭비로 귀결된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 과연 누구의 지시로, 어떤 정책과정을 거쳐 진행됐을까? 그 진실을 밝혀줄 정부 기록물은 과연 온전히 남아 있을까?

4대강 사업을 총괄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본부는 이미 없어졌다. 따라서 4대강 추진본부가 생산했던 모든 기록물은 주관부처인 국토부로 이관됐어야 한다.

뉴스타파는 4대강 사업 관련 정부 기록물의 보존 실태에 대해 국토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하고, 관련 질의서도 보냈다. 그러나 국토부는 추진본부로터 이관받은 기록물이 모두 몇 건 인지조차 답변을 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지난 6월부터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다. 4대강 관련해 4번째 감사다. 이전 정부에서 진행된 3번의 감사와는 달리 이번엔 4대강 사업 초기 정책 결정 과정을 규명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밝혀줄 기록물을 찾아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치밀하고 똑똑한 분입니다. 절대로 명확하게 지시하는 법이 없어요. 표면적으로는 밑에서 요청을 하고 자신은 피치 못해 한 것 처럼 만들어놔요.

이명박 정부 시절 공직자

하지만 4대강의 진실을 온전하게 밝히고,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나라를 바로세우는 중요한 걸음이다. 이는 촛불시민들의 명령이고, 그래서 새정부의 지상과제다.


취재 : 박중석, 이보람
촬영, 드론 : 김기철
수중촬영 : 복진오, 배인탁
현장조사 : 인제대
편집 : 박서영, 이선영

목, 2017/08/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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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국방송협회(회장 고대영 KBS 사장) 주관으로 방송의 날 기념식이 열린 63빌딩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은 ‘김장겸 퇴진’, ‘퇴진 고대영’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두 공영방송 사장을 기다렸다.

행사 시작 10여분 전 김장겸 사장이 먼저 기념식장 입구에 도착하자 조합원들은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하지만 고대영 사장은 조합원들을 피해 화물을 옮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갔다. 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 부처 장관, 여야 의원들이 대거 불참한 가운데 축사도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아닌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이 읽었다.

허욱 부위원장은 “방송의 주인은 정부도 아니고 방송인도 아니고 시청자인 국민”이라며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 간은 이러한 중요한 사실을 방송인 스스로 외면하지 않았나 성찰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부위원장은 이어 “지금 많은 방송인들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카메라와 마이크를 내려놓고 방송 현장을 떠나 있다”며 “하루 빨리 법과 원칙에 따라 방송이 정상화되어 이들이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와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장겸 MBC 사장은 기념식이 끝난 후 “퇴진할 의사가 없느냐”, “고용노동부에는 왜 출석하지 않느냐”, “블랙리스트는 왜 만들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대영 KBS 사장은 면담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을 피해 대기실에 30여분 간 머물러 있다가 축하연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당노동행위로 고발당한 김장겸 사장은 고용노동부의 출석 요구에 세 차례 불응했다. 서울서부지검은 1일 김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취재 조현미 신동윤 정재원
촬영 최형석 김기철
편집 정지성

금, 2017/09/0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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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

한국방송협회(회장 고대영 KBS 사장) 주관으로 방송의 날 기념식이 열린 63빌딩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언론노조 MBC본부와 KBS본부 조합원들은 ‘김장겸 퇴진’, ‘퇴진 고대영’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두 공영방송 사장을 기다렸다.

행사 시작 10여분 전 김장겸 사장이 먼저 기념식장 입구에 도착하자 조합원들은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하지만 고대영 사장은 조합원들을 피해 화물을 옮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행사장에 들어갔다. 기념식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 부처 장관, 여야 의원들이 대거 불참한 가운데 축사도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아닌 허욱 방통위 부위원장이 읽었다.

허욱 부위원장은 “방송의 주인은 정부도 아니고 방송인도 아니고 시청자인 국민”이라며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 간은 이러한 중요한 사실을 방송인 스스로 외면하지 않았나 성찰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부위원장은 이어 “지금 많은 방송인들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카메라와 마이크를 내려놓고 방송 현장을 떠나 있다”며 “하루 빨리 법과 원칙에 따라 방송이 정상화되어 이들이 본연의 자리로 되돌아와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장겸 MBC 사장은 기념식이 끝난 후 “퇴진할 의사가 없느냐”, “고용노동부에는 왜 출석하지 않느냐”, “블랙리스트는 왜 만들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대영 KBS 사장은 면담을 요구하는 조합원들을 피해 대기실에 30여분 간 머물러 있다가 축하연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당노동행위로 고발당한 김장겸 사장은 고용노동부의 출석 요구에 세 차례 불응했다. 서울서부지검은 1일 김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취재 조현미 신동윤 정재원
촬영 최형석 김기철
편집 정지성

금, 2017/09/0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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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준설 이후, 최대 50% 넘는 하도 변화량 확인

2011년 4대강 준설 이후 지난 5년 동안 반복되는 퇴적과 세굴(강바닥이 침식되는 현상)로 인해 하도 변화율(강의 단면 변화율)이 일부 지점의 경우 최대 50%가 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결과는 2011년 수심 6미터의 준설 이후 단면이 일정한 형태로 유지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4대강 사업 이후 각 강의 바닥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자료로 2011년 4대강 준설 단면도와 2015년 말 현재 4대강의 하도 변화 상태를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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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낙동강의 경우 합천창녕보와 창녕함안보 구간에서 퇴적은 최대 9%, 세굴은 최대 46%인 것으로 확인돼 최대 55%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강은 충주조정지댐에서 강천보 사이에서 퇴적은 최대 32%, 세굴은 14%로 전체 하도 변화율은 46%였다. 금강은 대청댐과 세종보 구간에서 최대 38%가 변했고 영산강은 담양댐과 승천보 구간에서 최대 34%가 변동됐다.

또 4대강의 평균 하상고(강바닥의 높이) 변동량을 보면, 한강 최대 4.7m, 낙동강 최대 3.7m, 영산강 최대 1.3m 하상이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4대강 ‘헛 준설’의 현장 낙동강 감천 합수부를 가다

낙동강과 감천의 물길이 만나는 낙동강 구미보 하류 지점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 2011년 4대강 살리기를 한다며 강바닥을 수심 6미터까지 파낸 이후 낙동강이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잘 보여준다.

▲하늘에서 본 낙동강 감천 합수부, 한눈에도 감천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이 쌓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늘에서 본 낙동강 감천 합수부, 한눈에도 감천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이 쌓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환경단체들은 낙동강 감천 합수부 지점을 이른바 ‘수심 60cm의 비밀’을 간직한 ‘헛 준설’의 대표적 사례라며고 말한다. 실제 낙동강 감천 합수부 지점은 사람이 강 한가운데까지 걸어들어가도 겨우 발목 정도가 물 속에 잠길뿐이다.

▲ 감천과 만나는 낙동강 구미보 하류지점은 거의 강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갈 정도다.

▲ 감천과 만나는 낙동강 구미보 하류지점은 거의 강 한가운데까지 걸어 들어갈 정도다.

4대강 사업의 핵심이었던 수심 6미터를 계속 유지하기위해서는 매년 천문학적인 준설과 관리 예산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마찬가진 셈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서면답변을 통해 일부 지점에서 세굴과 퇴적으로 하상변동이 일어났지만 4대강 수계 전체적으로 보면 미미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곳곳에서 메탄가스 기포 확인

취재진은 강바닥의 오염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지난 8월 29일 낙동강 구미보 상류에서 잠수를 시작했다. 수심 10미터까지 내려가자 바닥에 오니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낙동강 구미보 상류 수심 10m지점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메탄가스 기포

▲ 낙동강 구미보 상류 수심 10m지점에서 카메라에 포착된 메탄가스 기포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 나타났다. 크고 작은 기포가 강바닥에서 쉴 새 없이 올라오는 것이 수중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바로 메탄가스다. 강바닥 곳곳에서 메탄가스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낙동강 바닥이 이미 썩을대로 썩었다는 증거다.

오염된 물질이 뒤섞인 진흙의 퇴적이 계속 진행돼 두터운 층을 이루고 있었다. 메탄가스 기포가 발생하고 있는 오니층의 두께가 과연 어느 정도 되는지 측정했다. 구미보 상류 지점에서의 오니층은 최소 40센티미터에서 최대 1미터 40센티미터까지 쌓인 것으로 나왔다. 낙동강 본류에서 1미터가 넘게 오니층이 쌓이는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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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오니층 형성과 메탄가스 발생은 4대강 사업 이전에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4대강 사업 이전에는 낙동강 본류에서 메탄가스가 광범위하게 발생한 것은 거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4대강 사업 지시자 이번엔 밝혀낼까?

이렇게 비극적인 환경 파괴와 천문학적 예산 낭비로 귀결된 이른바 4대강 살리기 사업. 과연 누구의 지시로, 어떤 정책과정을 거쳐 진행됐을까? 그 진실을 밝혀줄 정부 기록물은 과연 온전히 남아 있을까?

4대강 사업을 총괄했던 4대강 살리기 사업 추진본부는 이미 없어졌다. 따라서 4대강 추진본부가 생산했던 모든 기록물은 주관부처인 국토부로 이관됐어야 한다.

뉴스타파는 4대강 사업 관련 정부 기록물의 보존 실태에 대해 국토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하고, 관련 질의서도 보냈다. 그러나 국토부는 추진본부로터 이관받은 기록물이 모두 몇 건 인지조차 답변을 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지난 6월부터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있다. 4대강 관련해 4번째 감사다. 이전 정부에서 진행된 3번의 감사와는 달리 이번엔 4대강 사업 초기 정책 결정 과정을 규명하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을 밝혀줄 기록물을 찾아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치밀하고 똑똑한 분입니다. 절대로 명확하게 지시하는 법이 없어요. 표면적으로는 밑에서 요청을 하고 자신은 피치 못해 한 것 처럼 만들어놔요.

이명박 정부 시절 공직자

하지만 4대강의 진실을 온전하게 밝히고,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것은 나라를 바로세우는 중요한 걸음이다. 이는 촛불시민들의 명령이고, 그래서 새정부의 지상과제다.


취재 : 박중석, 이보람
촬영, 드론 : 김기철
수중촬영 : 복진오, 배인탁
현장조사 : 인제대
편집 : 박서영, 이선영

목, 2017/08/3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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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과 현대그룹 출신의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이 포뮬러원(F1) 자동차 경주 관람을 위해 각각 국민 세금과 회사 공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열린 ‘F1 아부다비 그랑프리’ 경기를 관람할 때 동반인원 1명의 여행경비 7백여 만원을 국고에서 지원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아부다비 왕세제 측으로부터 F1 관람을 초청받았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초청받은 인원 4명보다 동반 인원을 1명 더 늘렸고, 이에 따라 추가된 여행비를 국고에서 지원받았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해 4명의 항공료와 숙박비는 초청자 측에서 지원했지만, 초청받은 인원외 수행원 1명의 항공비 150만 원과 숙박비 110만 원 등 모두 740만 원의 경비를 국고에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윤옥 여사는 함께 여행을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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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전직 대통령이 공적인 업무를 위해 해외 여행을 갈 경우 공무원 출장 여비 규정에 따라 국고에서 필요한 경비를 지원한다. 하지만 F1 경기 관람에 초청받아 참석한 것을 공적인 업무로 봐야하는지, 게다가 초청받은 인원보다 동반 인원 수를 늘려 발생한 추가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보전해 주는 것이 과연 입법 취지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김정래 석유공사 사장은 왕세제 면담을 핑계로 석유공사 공금을 이용해 이 전 대통령이 관람한 것과 같은 아부다비 F1 경기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사장은 지난해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3박 5일 일정으로 아부다비를 방문했다. 출장 목적은 ‘왕세제 면담 및 CNN 비즈니스 포럼 참석’ 등이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입수한 김 사장의 출장 결과 보고서에는 ‘왕세제 면담을 위해 행사장에 대기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보고서에 적시된 행사장은 야스 마리나 서킷.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관람했던 F1 아부다비 그랑프리가 열린 곳이었다.

김 사장은 초청자측으로부터 경비 일체를 지원받는 것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법무팀 의견에 따라 항공비와 숙박비 등 여행 경비를 공사 비용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한 장에 수십만 원이 넘는 F1 경기 VIP 관람 티켓은 왕세제 측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다.

게다가 김 사장은 석유공사의 출장비 규정을 어기면서까지 고가의 호텔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김 사장과 동행한 팀장급 직원 1명이 3박5일 출장 기간동안 쓴 비용은 모두 1190만 원. 하루 숙박비가 80만 원이 넘는 초호화호텔에 머물러 숙박비가 494만 원이나 나왔다. 석유공사의 출장비 규정을 보면 임원의 하루 숙박비는 300달러다. 지난해 석유공사 직원들이 회사 정상화를 위해 임금 10%를 반납하는 등 고통 분담을 나선 것과 비교하면 도덕적 해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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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취재진은 김 사장에게 “아부다비 출장 당시 김영란법 위반 여부에 대한 법률 검토를 법무팀에 지시한 이유와 긴축 경영을 한다고 해놓고 하룻밤 80만 원짜리 호텔에서 머문 것이 정당한 일인지” 등을 물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석유공사 홍보팀은 김 사장 등이 “산유국 정부가 주최하는 국제 행사에 참석해 정부가 주도하는 산유국간 교류진흥 제고를 위해 출장을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재 : 황일송
촬영 : 김남범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월, 2017/08/2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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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0월 8일 YTN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벌이다 해직된 조승호, 노종면, 현덕수 3명의 YTN 기자가 복직해 해직 3천249일 만인 8월 28일 서울 상암동 YTN 사옥으로 출근했다.

YTN 빌딩 옥상에서는 ‘해직자가 온다’란 문구가 적힌 파란색 종이비행기 천 여장이 하늘을 날았고 동료직원들은 해직기자들에게 사원증과 명함을 전달했다.

다시 한 직장에서 일하게 된 해직기자들과 YTN 동료들이 서로 부둥켜안는 순간 곳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오랜 공정방송 투쟁 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YTN의 해직기자 복직 현장을 뉴스타파 카메라에 담았다.


취재:최기훈
영상:신영철
편집:박서영
CG:장동우

월, 2017/08/28-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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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 앞에서 14년째 주류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종만 씨. 20년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성격대로 조용한 일을 하며 미래를 만들어 보자’는 다짐으로 가게를 시작했다.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사이, 처음엔 낯설었던 와인과 양주의 이름이 익숙해졌다. 이제는 이 씨를 찾아 일부러 서울대입구역을 찾는 단골도 생겼다. 가벼운 호주머니로 분위기 있는 술자리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학생들이 가게의 주된 손님이다. 덕분에 이 씨는 인근 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름이 오르내리는 지역의 명사가 됐다.

지난 13년 간은 꿈이 이뤄진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돈벌려고 매달려서 일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전적인 여유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가족끼리 해외여행 한번도 못가봤지만, 저 나름대로는 조용하고 가정적으로 행복하다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시간날 때면 책도 보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으면서 제 꿈을 이룬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이 많았습니다.

최근 서울대입구역 인근 ‘샤로수길’이 젊은 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일대 상권은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 씨가 스스로 ‘서울대입구역 최고의 자리’라 말하는 그의 가게는 정작 비어 있는 상태다. 지난해 7월, 그가 입점해 있는 대성빌딩의 건물주가 바뀌면서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

여전히 쫓겨나는 사람들… ‘꿈도 미래도 다 잃었다’

새 건물주는 건물의 등기를 마치자마자 노후화된 건물을 재건축하겠다며 명도 통고장을 보내왔다. 14년동안 서울대입구역 앞을 지켜온 가게를 정리하는데 주어진 시간은 불과 두 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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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는 것은 서울대입구역 최고의 자리만이 아니었다. 통고장 어디에도 권리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14년 전 입점 당시, 이전 임차인에게 냈던 권리금이 9000만 원이다. 현재는 1억5000만 원 선에서 얘기가 오가는 자리다. 노후 준비의 전부였던 가게와 목돈 모두를 날리게 된 것이다.

이 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명도 소송에 나섰지만, 패소 가능성이 짙자 소송을 포기했다. 가게는 손해를 감수하고 인근 다른 빌딩으로 이전했다. 주류 전문점이라는 특성상 주류 보관을 위한 시설과 인테리어 비용이 추가로 들어갔다.

대항할 힘이 없다는 것이 너무 억울합니다. 아무리 소리 지르고 외치고 해봐도 손을 맞잡아 끌어줄 곳이 없다는 것이 너무 허탈합니다. 비록 소시민이지만 살아오며 세금 한 푼 안 낸 것이 없고 길거리에 담배 꽁초 하나 버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모범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살고 싶은대로 살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씨의 가게가 있던 빌딩을 매입한 건물주는 인근 빌딩을 하나 더 매입했다. 빌딩 매입자금은 100% 금융권 대출이었다. 건물주는 매입한 빌딩 2채를 함께 재건축할 계획이다. 재건축이 추진되면서 쫓겨나게 된 점포는 모두 16곳이다. 이들이 받지 못한 권리금 총액은 18억 원(입점상인 측 주장)이 넘는다. 건물주가 명도 통고장을 발송한지 1년, 입점 상인 대부분은 명도 소송을 포기하고 점포를 이전했다. 하지만 일부는 여전히 빌딩에 남아 점포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권리금을 받지 못한 채 쫓겨나면 달리 생계를 찾을 방도가 없는 이들이다.

“법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재건축은 임차인 내모는 만능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임대차보호법)은 ‘계약 갱신 요구권’과 ‘권리금 회수 기회 제공’ 등 임차 상인의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의 노후화나 훼손에 의해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어 철거 및 재건축을 하는 경우는 예외로 두고 있다. 명도 소송에 나선 서울대입구역 앞 빌딩의 입점 상인들이 줄줄이 패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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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점 상인들의 변호를 맡은 이영기 변호사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여러차례 개정을 통해 보완되어 왔지만 여전히 ‘건물주 중심’이라는 법의 대전제를 허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예외조항이 아직 법에 남아있는 것의 대전제가 있습니다. 건물의 가치의 상승에 대해 임차인은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피땀을 흘려서 상권을 개발하고, 상가 건물의 가치 상승에 기여를 해도 모든 것은 건물주에게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상당히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법 조항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있어 철거를 해도 임대인, 임차인 공동의 노력에 의한 건물의 가치 상승분에 대해 일정부분 임차인에게 돌려줄 필요있습니다.

문제는 건물주가 의도적으로 이같은 법의 허점을 노린다면 얼마든지 임차상인의 권리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입구역 건물의 경우, 명도 소송 과정에서 건물의 안전진단 결과가 주요 쟁점이었다. 새 건물주는 건물 매입 후 사설업체를 통해 건물 구조안전진단을 했고 그 결과를 법원에 제출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이 결과보고서의 ‘종합결론’에 따르면, 이 건물은 콘크리트 압축강도, 철근 배근에는 결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지진 등으로 인해 수직하중과 수평하중이 동시에 작용 했을 시에는 충분한 내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건축법상 내진설계 기준은 매년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현재는 3층 이상, 연면적 500㎡ 이상의 건축물에 대해 내진설계를 의무화하고 있다. 3층, 연면적 900여 ㎡ 규모인 서울대입구역 건물의 경우, 2015년 내진설계 기준 강화에 따라 내진설계 의무화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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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건축된 지 20, 30년 이상 지난 건물 가운데 현행 내진설계 기준을 충족하는 건물은 드문 실정이다. 2016년 기준, 서울시 건물들의 내진설계율은 26.8%에 그친다. 이른바 ‘건물 사냥꾼’들이 주요 상권의 오래된 건물을 사들여 재건축하려 하면, 임차 상인들은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셈이다.

‘우선입주권, 퇴거료 보장’…의안은 1년 넘게 계류중

지난달 대통령직속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임차인 지위 강화를 골자로 상가임대차 보호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는 이미 20대 국회 들어 총 13개의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이 가운데는 건물 노후화에 의한 재건축이라도 임차 상인이 우선입주권이나 퇴거료를 요구할 수 있도록하는 내용을 명시한 법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법안들은 1년이 넘는 기간동안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취재 : 오대양
촬영 : 오준식
편집 : 정지성

목, 2017/08/24-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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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18일.

박정희 유신독재 반대를 외치는 마산 시민들의 시위가 격렬했던 당일 밤, 유치준(당시 51세) 씨는 실종됐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고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나서도 유 씨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일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가족들은 다음날 경찰서와 의료원을 찾아가 수소문을 했지만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다.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부마민주항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경찰 두 명이 유치준 씨 집을 찾아왔다. 경찰은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일러줬다. 경찰은 가족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미 부검에 가매장까지 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소지품에는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그런데 경찰은 뒤늦게 가족에게 아버지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가족들은 영원히 아버지의 행방을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도시락 안에서 뒤늦게 주민등록증을 발견했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회사 가실 때 항상 도시락을 들고 가셨거든요. 도시락 안에 주민등록증이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어린 나이에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당시 열아홉 살이던 유치준 씨의 아들 유성국 씨는 “도시락 안에 주민등록증이 있었다”는 경찰의 말이 의아했지만 더 이상의 진실을 알 수 없었다. 너무 어렸고 시절은 엄혹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보낸 가족들은 2011년 지인의 소개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찾게 된다. 그 곳에서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가족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인 고 유치준 씨의 가족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인 고 유치준 씨의 가족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기념 단체들은 1989년 부마항쟁 10주년을 기념해 자료집 한 권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는 부마항쟁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의 취재 보고 기록이 남아 있다. 거기에는 “50여 세로 보이는 노동자가 대림여관앞 도로변에서 죽어 있었다”는 내용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나이, 옷차림 등이 모두 유치준 씨와 일치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의 신원이 처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5월 국회에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항쟁보상법)이 통과됐다. 부마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부마민주주의재단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과거사에 대한 비판을 피하고 영남 민심을 달래기 위해 부마항쟁 관련 공약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1년 넘게 위원회 구성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부마민주항쟁 35주년을 며칠 앞둔 2014년 10월이 돼서야 위원을 임명했다.

유치준 씨 가족은 부마항쟁 진상규명위가 설립되자 아버지를 부마항쟁 관련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또 한번 상처를 받아야 했다. 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돼 어떤 활동을 해온 것일까.

위원회 구성에 1년을 허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원 선정에서 또 한번 실망을 안겼다. 행정자치부 장관, 경상남도지사 등 당연직 위원 4명을 제외하고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10명의 위원 중에 4명은 박근혜 선거 캠프 또는 인수위 출신, 2명은 박정희와 역사교과서를 옹호하는 인사들이었다.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이른바 ‘친박’ 인사들로 구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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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보상법상 본위원회에는 부산과 창원의 부마항쟁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2인이 반드시 위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기존에 수십년 동안 활동해온 기념사업회가 아니라 2013년 법률 제정 이후 설립 등기를 한 ‘동지회’라는 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을 위원으로 임명했다. 부산동지회, 마산동지회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했던 인사들이 가입해 있는 단체였다. 기념사업회 추천 인사들은 본위원회에서는 배제된 채, 2개의 실무위원회에만 위원으로 임명됐다.

진상규명위의 운영도 파행이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졌다. 기념사업회에서 추천된 일부 위원들이 제대로 진상규명을 해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기념사업회 추천 실무위원 4명은 지난해 10월 “더 이상 들러리 노릇을 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특히 진상규명위는 유치준 씨 사건과 관련해 당시 창원지방검찰청이 작성한 1장 짜리 검시사건부를 찾는 것 외에 조사의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서둘러 ‘관련자 아님’으로 결정을 내리려다 기념사업회 추천 실무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유치준 씨의 가족이 신청을 철회했다.

▲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시민은 16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가 출범한 후 관련자로 신청한 사람은 194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6명은 인용되고 28명은 기각됐다.

▲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시민은 16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가 출범한 후 관련자로 신청한 사람은 194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6명은 인용되고 28명은 기각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현재 진상규명위는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들 그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진상규명위는 오는 10월까지 진상조사를 마치고 내년 4월까지 보고서를 내게 돼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조차 현재 상태에서는 보고서를 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진상조사보고서가 자칫 국정교과서처럼 관련 단체들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용도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취재 조현미
촬영 정형민 김기철 김남범 오준식
편집 박서영 이선영
CG 정동우
그래픽 하난희

목, 2017/08/2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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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오랜 시간동안 국민이 아닌 권력을 보호하는 활동을 했다.

경찰 노조 만들어서 권력이 아닌 국민에게 충성하는 경찰 만들자.

감찰기능을 민간에 넘겨서 시민들에게 통제받자.

경찰 개혁과 관련해 다소 과격하고 급진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진솔한 과거 반성과 혁신적 개혁 방안은, 놀랍게도 시민단체나 경찰에 비판적인 그룹이 아닌 현직 경찰관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한국 경찰 역사에서 처음으로 열린 경찰 개혁 관련 전국 경찰 토론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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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대전에선 ‘시민과 경찰의 인권 개선을 위한 전국 경찰 대토론회’가 열렸다. 경찰 내부 온라인 커뮤니티 폴네띠앙이 주최한 이 행사엔 전국의 현직 경찰관과 행정관, 주무관 등 130여 명이 모였다. 폴네띠앙 회장 류근창 경위는 “경찰개혁위원회로부터 경찰 개혁에 대한 일선 경찰관들의 의견을 수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토론회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일선 경찰관 등 130여 명 참석해 인권 경찰, 민주적 통제 방안 등 토론

토론회 시작 전, 폴네띠앙 관계자는 현직 경찰관들이 얼마나 참석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오후 1시 토론회가 시작될 무렵엔 미리 마련한 좌석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경찰 관계자들이 몰려왔고, 의자를 추가로 가져와 앉아야 할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토론회는 3부로 나눠 진행됐다. 1부에선 인권경찰 실현방안으로 경찰노조의 설립, 2부는 시민 중심 치안업무를 위한 인력재배치 필요성, 3부에선 경찰 조직의 민주적 통제방안이 논의됐다.

경남 진주경찰서에서 온 양영진 경정은 1부 발제를 통해 “인권경찰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경찰노조가 설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경찰의 3가지 장애물로 경찰 내부에서 경찰관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반인권적 내부문화, 시민들의 인권보호를 막는 실적 경쟁주의, 그리고 장시간 야간 교대근무에서 비롯되는 열악한 노동여건을 꼽았다. 양 경정은 “노조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이 세 가지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노조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노조 설립해서 시민인권침해하는 부당 지휘에 항거하자”

전북 완주경찰서 모두성 경위는 “지휘부가 바뀔 때마다 수시로 바뀌는 지휘방침에 경찰개혁을 내맡길 수 없다”며 “노조가 있어야 모든 개혁과제를 유지할 추진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당장 몇 명이라도 좋으니 법적 테두리 안에서 연구회나 토론회를 만들어서 노조 설립을 진행하자”, “경찰이 시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당한 지휘에 항거하려면 저항할 수 있는 내부적인 체계가 필요하고, 그게 바로 노조다” 등 경찰노조 설립의 당위성을 지지하는 발언이 계속됐다.

경찰 인력 재배치를 주제로 한 2부에서는 만성적인 현장 인력 부족, 조직 내 무기계약직 차별 문제 등이 집중 논의됐다. 발제를 맡은 충주경찰서 정현수 경사는 “경찰청은 틈만 나면 현장에서 인력을 빼내 행정 경찰 수를 늘렸다”고 지적했다. 정 경사는 “고도로 훈련된 경찰이 무기도 휴대하지 않고 전혀 위험하지도 않은 쾌적한 사무실에 앉아 행정 업무만 전담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정 경사는 해결책으로 경찰청 내에서 비정규직으로 차별받고 있는 주무관(행정담당 인력)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서 행정업무는 이들에게 맡기고, 경찰관들은 현장으로 내보내는 인력재배치를 제안했다. 또 경찰 내에서 주무관에 대한 차별적 관행을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경찰청 주무관노조 조합원들도 그동안 비정규직으로서 받은 차별과 설움을 토로했다.

충남 아산경찰서 신중성 경정도 “경찰청의 여러 개 실무국들이 하는 일을 경찰서에서는 한 사람이 담당해서 업무가 거꾸로 되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장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지방청, 경찰청 단위에서 사법경찰이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인력재배치를 통해 주무관 분들 정원을 확보해서 행정경찰 업무를 처리하게 하고 사법경찰관을 현장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적 경쟁의 폐해도 여러차례 언급됐다. 한 경찰관은 “스티커 단속실적 등을 수치화하는 실적경쟁은 국민과 경찰을 이간질시키는 공공의 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경찰관도 “실적경쟁은 경찰관이 시민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점수로 보게 한다”며 실적경쟁은 경찰에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경찰 내부감찰 기능 민간에 개방해 시민 통제 받자”

3부에서는 경찰을 정권이 아닌 시민에게 봉사하게 만들 수 있는 통제방안이 논의됐다. 발제를 맡은 청주흥덕경찰서 이장표 경감은 경찰조직의 민주적 통제방안으로 경찰위원회제도의 개선과 경찰청장 직위개방제, 그리고 감찰조직 개선 등을 꼽았다.

충주경찰서 정현수 경위는 지난 4월 파면당한 표정목 경장의 사례를 들며 감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표 경장은 경찰 지휘부가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과도한 실적 경쟁 지시를 내렸다는 등의 비판글을 페이스북 등에 올렸다가 ‘먼지털이식 표적감찰’을 당한 후 파면된 바 있다. 정 경위는 경찰 지휘부가 자신들의 눈밖에 난 직원을 찍어내는데 감찰 기능을 악용했다며 “경찰관의 기강 확립을 할 수 있는 주체는 딱 하나, 국민이다. 왜 지휘관이 이걸 하고 있냐”고 질타했다. 부산북부서 정학섭 경위는 “감찰이 경찰 지휘부 입맛에 맞는 감찰활동을 하니까 문제가 된다”며 “아예 민간에 개방해서 시민들에게 통제를 받으면 우리 인권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큰 박수를 받았다.

폴네띠앙 회장 류근창 경위는 토론회 마무리 발언을 통해 “경찰청장을 앞에 두고 시나리오 없이 자유롭게 토론을 해보고 싶은데, 안타깝지만 아직은 멀었고 우리끼리 하니 서글프고 마음이 아프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이 토론회는 경찰관 처우개선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고, 경찰관이 국민들의 인권을 어떻게 더 잘 보호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자리”라고 재차 강조했다. 류 경위를 비롯한 폴네띠앙 회원들은 이번 토론회 내용을 정리해서 경찰개혁위에 전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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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에 시작한 경찰개혁 대토론회는 저녁 6시까지 이어졌다. 토론에 참석했던 경찰관들은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류근창 경위는 “분위기가 좋아지면 앞으로 2회, 3회도 토론회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전둔산경찰서 민인근 경위는 “이번에는 정말 바뀌어야 하는데..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결의를 다졌다.

목, 2017/08/24-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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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주간 미국과 전세계가 경험한 또 한번의 심각한 한반도 위기로 많은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핵전쟁이 벌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이번 위기는 지난주 월요일에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괌 포위사격 방안을 고려하기 전에 “양키들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해소됐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 뒤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했다”며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파국적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그러나 이 전쟁 공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이번 위기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왜 끝났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2003 이라크 침공과 이번 북미 대치 과정의 공통점은?

이번 대치는 2003년 미국을 이라크 침공으로 이끌었던 것과 같은 요인들의 조합, 즉 미국 정보당국에서 새어나온 내부 보고서, ‘적’에 관한 것이면 거의 어떤 것이라도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언론, 그리고 오만하며 권력욕에 사로잡힌 대통령 등으로 인해 촉발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적인 태도와 인종 문제와 이민 정책에 대한 충격적인 발언으로 미국에서 깊은 곤경에 처해 있다.

8월 8일, 미국 정보당국에 소속된 누군가가 미국 국방정보국(DIA) 내부 보고서를 워싱턴포스트에 흘렸다. 이 보고서는 북한이 2018년까지 미국 타격이 가능한 핵탄두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며, 이는 북한이 “완전한 핵 보유국이 되는 길에서 핵심적인 문턱을 넘어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것은 곧바로 그날 가장 큰 화제가 되었고, CNN을 비롯한 다른 방송들도 북한이 미국의 모든 도시를 핵으로 공격할 역량을 지녔다는 경고성 얘기를 전하는 데 뛰어들었다.

한 미국 저널리스트가 진보잡지 ‘카운터펀치’에 쓴 것처럼, “존재하지도 않았던 대량살상무기를 없앤다는 구실로 이라크 전쟁의 비극이 시작된 지 14년 후에도 주류 매체는 여전히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미 국방정보국 보고서의 주장은 크게 과장된 것일 수 있다. 원자 과학자 회보(Bulletin of Atomic Scientists)의 일부 분석가들은 북한 측의 데이터를 분석한 뒤 최근 발사된 화성 14호 미사일은 “미국 대륙까지 핵탄두를 보내지 못하는 수준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보고서에 거의 확실히 포함됐을 이러한 북한 미사일 능력에 대한 회의적 견해도 대통령을 멈추지는 못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가 있은 지 몇 시간 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계속 미국을 위협할 경우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종말론적인 경고를 내보냈다. 그는 아시아에 있는 미군이 “완전히 준비됐고 장전됐다”는 말로 한 주를 마무리했다.

이러한 위협은 8월 11일 NBC 방송이 미 국방부가 괌에 위치한 앤더슨 공군기지에 배치된 장거리 전략 폭격기 B-1B를 동원하여 “20여 곳의 북한 미사일 기지, 시험장과 지원시설”을 타격할 작전계획을 갖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더욱 가시화됐다. NBC는 “B-1B 편대가 5월 말부터 8월 7일까지 유사한 작전 시나리오로 11차례의 연습 출격 임무를 수행했다”고 보도했다. 신시아 맥패든 NBC 기자는 B-1B 편대가 한반도 영공에서 벗어난 곳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어 북한에 대한 단독 공격(한국 측 동의 없이-역주)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미국 괌에 있는 앤더슨 공군기지에 주기된 B-1 전략 폭격기

▲ 미국 괌에 있는 앤더슨 공군기지에 주기된 B-1 전략 폭격기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전략군이 중장거리 미사일로 괌 근처를 포위사격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발표했다. 역사가 브루스 커밍스는 과거 미군 B1 폭격기가 괌 기지에서 한국으로 출격했던 역사에 근거하여 북한의 발표가 “근거가 있고 예측 가능한 성격의 것”이라고 가디언지에 기고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은 이를 전쟁 선포로 받아들였다. 모든 방송사가 괌에 특파원을 보내 현지 주민들과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잠재적인 공격에 대한 두려움을 인터뷰했다. 이 CBS 보도 등 많은 보도들이 순전히 미 국방부와 폭격기 편대(“충분한 화력으로 무장한” 이 편대는 “한반도 상공을 정기적으로 비행하며 잠재적인 분쟁에 동원될 것”)의 전쟁 선전물으로 전락했다.

한반도 위기 상황이 진정된 배경

그러다 주말 사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괌을 공격할 경우 무력대응을 하겠다고 경고하면서도 위협의 수위를 낮췄다. 짐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은 “북한이 미국 영토를 공격하면 매우 빠르게 전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14일 월요일에 김정은은 전략군사령부를 방문하여 괌 주변의 “긴장상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표를 했다.

비록 연합뉴스를 비롯한 한국의 다른 언론매체에서 김정은의 발언을 보도했지만, 그 날 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북한 측이 “미국 영토를 공격하겠다는 위협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는 보도를 내기 전까지는 누구도 이 발언을 위기상황이 해소된 것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미국 방송국들이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렸다. 특히 이번 대치상황의 새로운 국면마다 호들갑스럽게 보도한 CNN의 경우가 그랬다. CNN은 첫 보도가 나온 지 36시간이 지난 8월 16일 수요일, 트럼프가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의 입장 변화에 대해 언급하기 전까지 이에 대한 보도 내지 않았다.

물론 폭스 뉴스와 다른 보수 매체는 김정은의 이같은 돌변이 오로지 트럼프의 강경한 발언과 위협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 트럼프의 일부 참모들은 트럼프의 그러한 발언이 경솔하고 위험하다고 보았고, 그의 “준비됐고 장전됐다”는 발언이 있은 후 주말 내내 고조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중 가장 강력하게 목소리를 낸 것은 마이크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다. 그는 북한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는 명분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솔직한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13일 일요일, 그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과 관련하여 전쟁이 “임박했다는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일각에서 미국과 북한이 핵전쟁의 문턱에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는데, 우리가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H.R.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위기가 군사충돌로 번지기 전에 해소”할 의지가 확고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 양측의 태도 변화가 중국과의 집중적인 논의, 그리고 아마도 북한과의 비공식 채널을 통한 소통 이후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사실이 미국 정부의 발표문에 분명하게 드러났다. 예를 들어 김정은이 긴장상황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발표를 한 것도 중국이 최근 유엔 안보리를 통과한 대북 제재 집행의 일환으로 북한산 석탄, 철강, 해산물 수입을 곧바로 금지하겠다는 의사를 미국 측에 전달한 지 몇 시간 후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한 것처럼, “발표 시점은 중국의 미국 지적재산권 침해혐의를 조사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에 대응한 것”이었다. 이후 뉴욕타임스는 백악관이 북한에 대한 유엔 제재에 “중국 측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조사 계획 발표를 미뤘다고 추가 보도했다. 며칠 뒤 트럼프의 논란 많은 측근인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와 이에 대한 트럼프의 관심이 그의 북한 정책의 중요 요소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중국의 무역정책에 비판적인 논조를 취해 온 진보 성향의 잡지 ‘아메리칸 프로스펙트’와의 인터뷰에서 “나에게는 중국과의 무역 전쟁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그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어떠한 군사적 해결책도 없으니, 그것은 잊어라”며 “개전 30분 안에 서울 시민 천만 명이 재래식 무기에 희생되지 않을 방법을 누군가 나에게 제시해주지 않는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군사적 해결책도 없다. 이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배넌은 이 발언을 한 후 24시간 후에 해임됐다.

이번 위기상황이 급속도로 해소된 또다른 요인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단독 공격 가능성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을 꼽을 수 있다. 미 국방부가 북한의 미사일 시설을 공격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NBC의 보도가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 북한을 억제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어떠한 군사적 조치에 대해서도 한미양국이 “사전에 논의”하기로 합의한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힘들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좌)과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좌)과 맥마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그 후 8월 15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보기 드문 광복절 연설을 했다. 이 발언은 미국에서 트럼프의 독자적 행동에 대한 직접적인 경고로 비춰졌고, 뉴욕타임스 1면을 장식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또 지난 몇 주 동안 트럼프의 위협이 연일 뉴스에 나오면서 문재인 정부가 무력하고 무능하다는 야당의 비판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평화는 트럼프 행정부에 달렸다”

긴박한 위기가 지나가자, 앞으로의 협상 가능성과 협상이 어떻게 시작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짐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과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에 흔치 않은 공동 칼럼을 통해 트럼프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두 장관은 미국이 북한의 정권 교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점을 설명한 뒤, 대화를 시작하기 위한 미국 측의 조건을 제시했다. 이들은 “북한이 과거 협상 과정에서 정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반복적으로 국제적 합의를 위반한 점으로 볼 때, 북한 측에서 성실하게 협상할 의지를 표명할 의무가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먼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해야 한다고 적었다.

북한은 이미 핵실험을 중지한 상태다. 여러 관찰자들은 북한에서 마지막으로 지하 폭발이 발생한 것이 2016년 9월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 대선 3개월 전, 그리고 한국 대선 8개월 전의 일이다. 이제 문제는, 김정은이 미사일 발사를 중단함으로써 얻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일부 미국 고위 관료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방안 중 하나는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중국으로부터 역내 평화의 장애물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한미 공동 군사훈련을 중단하거나 과감히 축소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지난주 뉴욕타임스가 쌍방 모두에서의 군사활동 중단을 ‘교환’하는 것이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에 따른 위기를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보도하면서 추진력을 얻었다. 한미 양국은 지난 8월 21일 한미 공동 군사훈련인 을지훈련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미 국방부의 입장에서 이 한미 공동군사훈련 중단 방안은 터무니없는 생각에 불과하다. 지난 8월 13일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한 후 던포드 미 합참의장은 자신과 함께 방한한 기자들에게 “현재 협상의 어느 단계에서도 (한미 공동 군사훈련을) 협상 대상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고도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스티브 배넌은 인터뷰에서 던포드 합참의장의 발언과는 정면으로 배치되지만 트럼프가 향후 협상에서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엿볼 수 있는 답변을 내놨다. 그는 트럼프가 “중국이 북한의 핵 실험을 검증가능한 사찰을 통해 동결하면 미국이 주한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는 거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2016년 미국 대선 때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이 미군 주둔비용을 제대로 내지 않는다고 비판했던 것과 맞닿아 있다.

한편 미국의 트럼프 정책 비평가들은 북한이 핵확산 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발생한 1994년 북핵위기에 당시 빌 클린턴 정부가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되돌아보고 있다. 지난 8월 10일 민주당 의원 64명은 틸러슨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트럼프의 위협적인 발언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틸러슨 장관이 제안한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 서한에서 틸러슨 장관에게 1994년 합의를 통해 북한이 10년 넘게 핵 개발 프로그램을 동결시켰던 성공 사례를 “재현할 수 있도록 성실하게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물론 현재 상황은 그때와 판이하다. 1994년에 북한은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미사일 실험도 겨우 몇 차례밖에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핵확산 금지조약을 둘러싼 갈등으로 클린턴 정부는 북한의 핵 시설 선제타격을 거의 실행할 뻔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하여 북한 지도자 김일성과 기본 합의안을 협상하면서 이 공격계획은 취소됐다.

▲ 1994년 6월 평양에서 만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좌)과 김일성

전직 미국 외교관들은 북한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가로 적대적 관계의 청산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현재도 북한은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과거 미 국무부에서 근무한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원 동북아국장은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북한이 1991년부터 2003년 사이에 핵분열물질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른다”며 “그 정도면 굉장히 잘 된 합의였다”고 말했다. 이 합의는 2003년 부시 정부가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깨졌다. 당시 북한은 이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지난 2주일 동안 쏟아졌던 전쟁 선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협상을 통해 북한과의 긴장을 해소하는 방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월 16일 퀴니피악 대학에서 발표한 전국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 유권자의 86%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는 합의를 협상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전체 유권자의 60%는 이번 위기가 외교적인 방식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고 응답했다.

이들은 이제 평화는 트럼프 정부의 손에 달렸다고 말하고 있다.

8월 22일 틸러슨 장관은 북한이 2주일 동안 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북한과 대화하는 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였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는“이것이 우리가 바라던 신호의 시작점이길 기대한다. 어쩌면 이것이 가까운 미래에 북한과 대화를 나누는 길의 시작점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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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팀 셔록
번역: 임보영

수, 2017/08/23-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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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강원도 철원 육군 5군단 사격장에서 K-9 자주포 추진체가 폭발해 장병 2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2년 전 국방과학연구소(ADD)의 K-9 자주포 시험 발사 중에도 동일한 폭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를 통해 확인됐다. ADD가 K-9 자주포의 결함과 폭발사고 재발 가능성을 알고도 면밀한 사고원인 조사 없이 각급 부대에 배치해 훈련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 K-9 자주포

▲ K-9 자주포

기종과 생산연도 같은 동일 기종에서 다시 폭발 사고 발생

2년 전 K-9 자주포 추진체 폭발 사고가 일어난 곳은 ADD가 운영하는 제8본부 안흥시험장이다. 군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2015년 8월 13일 오후 3시경 K-9 자주포 시험 발사 중 추진체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용된 K-9 자주포의 주포 및 추진체는 이번에 폭발을 일으킨 기종과 생산연도가 같은 동일 기종이었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K-9 자주포 사업에 직접 관여했던 한 군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확인됐다.

이 군 관계자는 “2015년 폭발 사고가 폐쇄기 작동 등 K-9 자주포 자체 결함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컸지만, 문제가 된 장비 및 추진체는 각급 부대에 배치된 이후 단 한 차례도 회수 및 점검 시험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 원인 규명 안 됐는데도 금요일 사고 이후 또 시험 발사 의혹

뉴스타파가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군은 지난주 금요일 폭발 사고 이후에도 K-9 자주포 시험 발사를 계속했다. 이에 대해 ADD는 사실 여부를 보도 시점까지 확인해주지 않았다.

지난 21일 육군은 이번에 발생한 폭발 사고의 중간 조사 결과 발표를 발표하며 “자주포 폐쇄기를 통해 원인을 알 수 없는 연기와 화염이 자주포 내부로 새어 나왔다”며 “폐쇄기 부품 중 하나인 ‘밀폐링’ 변형이 있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난 현재까지 명확한 사고 원인은 드러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뉴스타파는 2015년 8월의 K-9 자주포 폭발 사고 원인과 조사 결과, 그리고 사후 조치 내용 등을 군 당국에 요구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취재 : 한상진, 오대양

화, 2017/08/22-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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