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장은 8년 전 하고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도 난방이 됐다. 하루 종일 법원으로, 경찰서로 왔다갔다, 재판에, 심문에, 조사에 시달렸는데, 전기판넬이긴 하지만 뜨끈뜨근한 방구들에 드러누우니 온몸의 한기가 풀리는 듯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화장실의 문이 생긴 것이다. 그전에는 화장실문이 칸막이만 돼 있어서 용변을 보면 상반신이 훤히 드러나서 대변을 보는데 곤욕을 치르곤 했었다. 그런 변화에 흐뭇해 있다가 모포를 보는 순간 모든 환상은 일시에 깨지고 말았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모든 인간들의 DNA를 확인시켜주듯 모포에는 각양각색의 털이 무질서한 추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마치 어떤 화가가 모포에다 털로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대충 눈에 보이는 큰 털을 몇 개 떼어내고 모포를 깔고 누었으나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저녁 9시 30분경, 유치장이 소란스러워졌다. 창살 밖으로 내다보니 짭새들이 서류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공범인 미조직비정규실장이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불구속 기소로 판결이 난 것이다. 초범이고, 여자이며, 특히 고3 수험생을 자녀로 둔 것이 석방의 이유라고 한다. 나는 3범이고, 남자이지만, 그래도 아들이 학교를 제대로 다녔으면, 고3이 될 나이니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막상 기대를 하니 잠은 오지 않고 심숭생숭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는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철창 밖에 있는 TV도 시끄럽기만 할 뿐이다. 한참을 뒤척거리고 있는데, 밤 11시가 넘어서 담당형사가 나타났다. 그 인간 얼굴을 보니 글러 먹은 것 같다. 아니다 다를까 구속영장에 사인을 하라고 한다. 구속이 결정 되고나니 도리어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는 감옥 생활에만 집중하면 된다. 맘이 편해지니 피로가 몰려왔다. 아무도 없는 독방에서 달콤한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5일 후인 2015년 12월 7일 월요일에 검찰로 송치가 됐다. 서울지검 검치방에서 오전내내 뒹굴다가 오후 2시가 넘어서 담당 검사실로 불려갔다. 이것들은 검치방에 가두어 놓고 바로 부르는 법이 없다. 엿 먹으라고 그러는 건지, 편하게 쉬라고 배려하는 건지. 장담컨대 그것들이 배려를 하는 건 절대 아닐 것이다. 담당 검사는 공안통이었다. 민주노총 관련 사건을 전담한다고 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구속되면 자기에게 조사를 받아야 될 거라고 자랑질이다. 쉽세이야 너 잘났다. 검찰 조사라고 특별히 증거가 더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경찰이 넘긴 자료를 바탕으로 재탕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긴장감은 훨씬 더 컸다. 첫날이라 개략적으로 물어보는 것으로 조사는 끝났다.
저녁 6시가 넘어서야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닭장차에 몸을 실을 수가 있었다. 감옥 생활은 상황과 조건이 바뀔 때마다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연행돼서 유치장에 들어갈 때, 영장실질심사 결과를 기다릴 때, 유치장에서 구치소로 갈 때, 구치소 내에서 방을 옮길 때, 그때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감옥 생활에 이골이 난 형수님들(사형수들)도 이감을 갈 때는 불안하고 긴장한다고 한다. 서울구치소 근처는 나의 ‘나와바리’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익숙한 곳이다. 잘 가던 식당과 술집, 거리, 건물을 지날 때마다 만감이 교차된다. 자유의 몸일 때와 영어의 몸일 때의 기분과 감정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경이적이라고 할 수밖에.
구치소에 도착을 하니 그 때까지 차고 있었던 수갑과 포승줄을 풀어 준다. 썩을 놈들, 그 좁은 버스 안에서 도망갈 데가 어디 있다고. 신입교육실에 들어가니 사회에서 가지고 온 모든 것 하고는 이제부터 영영 이별이다. 심지어는 안경집까지도. 대신 관용품이 지급됐다. 팬티 1장, 메리야스 1장, 국방색 죄수복 1벌, 겨울이라 내피 1장.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자, 수건 1장과 하얀 고무신, 칫솔과 치약이 지급됐다. 옆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해서 저녁 식사를 했다. 카레라이스와 국, 반찬 세 가지가 나왔는데 입맛이 없어 반도 못 먹고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밥공기, 국그릇, 반찬그릇, 숟가락, 젓가락을 하나씩 지급받고, 30분 정도 신입교육을 받은 후에 감빵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진짜 감옥 생활이 시작된다.
감옥 생활이 힘든 것은 모멸감 때문이다. 그 모멸감은 유치장에 입감되기 위해 수갑이 채워질 때부터 시작된다. 8자형의 차가운 금속 팔찌가 두 손을 얽어매는 순간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서늘하게 올라오는 불쾌감과 불안감을 동반한 모멸감이 시작되는 것이다. 유치장의 모포도 모멸감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누구 것인지도 모를 온갖 털들이 하늘색 담요에 추상화를 기괴하게 그려놓은 것을 보면 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듯 몸서리가 처진다.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어 구치소로 가면 새로운 등급의 모멸감이 기다리고 있다.
제일 힘든 것은 역시 재소자들이 ‘뼁끼통’이라고 부르는 화장실이다. 감옥 생활의 많은 부분은 화장실에서 이루어진다. 볼일 보는 것은 기본이고, 양치질도 하고,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음식 잔반도 처리하고, 빨래도 한다. 그전에는 식기도 그 안에서 닦았는데 이번에 가봤더니 생소하게도 앙증맞은 싱크대가 방마다 구비되어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 강금실이 법무장관이었을 때 교도소 순시를 하다 화장실에서 설거지하는 것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당장 싱크대를 설치하라고 호통을 쳤대나 어쨌대나.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서울구치소 혼거방은 제대로 된 화장실 문이 있었다. 그전까지 내가 다녀본 영등포구치소와 수원구치소는 화장실문이 반밖에 없었다. 앉아서 볼일을 보면 가슴 위쪽이 훤히 드러난다. 맞은편에 설치된 CCTV를 애써 외면해가면서 대사를 치러야 했다.
그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거나, 운동을 마치고 들어와서 누가 몰래 얼음을 가져다 부었는지 손가락이 유리처럼 깨져 부셔져버릴 것 같은 찬물에 샤워를 할 때, 아침에 일어나 그 나마 얼마 남지 않은 머릿속 지식들이 한꺼번에 놀라서 도망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차가운 물에 머리를 감을 때, 찬물이라 거품이 일어나지 않아 팔이 빠지도록 빨래를 하다 공간이 좁아 엉덩이가 벽에 닿을 때 수시로 모멸감은 엄습해온다.
재소자들의 인권을 그런 식으로 뭉개버리니 재범률이 높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의 살인, 방화, 강간, 강도 등 강력범죄 재범률은 70%에 달한다. 출소자 10명 중 7명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교도소를 보면 그 나라의 인권에 관한 사고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아는 한 지구상에서 재소자의 인권을 가장 존중하는 나라는 몇 년 전에 다녀왔던 코스타리카다.
헌법으로 군대를 폐지시킨 나라인 코스타리카의 교도소에는 콘크리트로 된 담장이 없다. 그냥 바깥의 경치를 마음대로 구경할 수 있는 철조망이 엉성하게 처져있을 뿐이다. 도저히 교도소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모양새다. 탈주하려고 마음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다. 교도소 안에는 매점이 있는데 다양한 과자와 음료수 등을 팔고 있다. 심지어는 안에서 담배를 공공연하게 팔고 있는 제소자도 있었다. 관광용 토산품 등을 만드는 작업장이 있는데, 흡사 수공예 공장처럼 보인다. 수감자들은 죄수복과 같은 통일된 옷을 입고 있지 않고 일상복 차림으로 일하거나 이야기하고 있다. 작업장에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오고 건장해 보이는 사내들이 목재를 기계로 자르면서 콧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화단 옆에는 시내에서 볼 수 있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종류의 공중전화가 놓여있고, 수감자들도 자유롭게 전화를 하고 있다. 철망 밖으로 눈길을 돌려 보니, 채소와 커피를 재배하는 밭이 펼쳐져 있고 닭과 칠면조가 노니는 등 목가적 분위기가 풍긴다. 수확물의 일부는 교도소 안에서 소비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내다 판다.
그 가운데서도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랑의 방’이다. 교도소 출입문으로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 방 4개가 연결된 기다란 건물이 있다. 무어냐고 물으니 세상에나, 수감자가 자신의 파트너와 ‘밀회’를 나누기 위한 방이라고 한다. 아내가 방문했을 때 수감자인 남편과 이 방으로 들어가면 교도관이 열쇠를 잠근다. 그 후 4시간이 지날 때까지는 이 방에 누구도 들어가는 일이 없다. 15일마다 한 번씩 이곳을 이용하여 파트너와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수감자에게 마치 천국과 같은 교도소. 왜 이렇게까지 대우가 좋으냐는 질문에 교도소장은 인권에 대한 몰이해, 특히 자신에게 어떠한 인권이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 그들을 범죄로 내몬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갱생의 첫걸음은 자기 인식, 자기 평가, 자기 긍정, 그리고 자기 존경이다. 자신을 소중히 하는 마음이 인권 의식을 일깨우고 그것이 보편화되어 사상이 된다. 결국은 자존감이 높은 인간만이 범죄의 구렁텅이에서 헤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코스타리카의 재범률은 20퍼센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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