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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의 지옥에서 쏘아올린 작은 공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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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의 지옥에서 쏘아올린 작은 공 (경향신문)

익명 (미확인) | 월, 2016/03/21- 09:47

파견의 지옥에서 쏘아올린 작은 공 (경향신문)

반월·시화공단은 전국에서 파견노동자가 가장 많은 곳이다. 그에 반해 노조 조직률은 전국 최저로 1%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의 인권침해는 심각한 수준이다. 안산시가 국내 최초로 ‘노동 인권 조례’ 제정을 위해 나선 이유다.

인권침해가 발생하는 근본적 원인은 ‘하청구조’와 ‘파견’ 문제에 있다. 기업체의 근로감독 실태조사 및 처벌 권한은 고용노동부에 있다. 인권침해가 적발되더라도 안산시가 기업을 처벌할 권한은 없다. ‘파견’ 등 비정규직 문제는 입법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조례는 노동인권 교육, 노동자 지원 등의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 때문에 안산시의 조례안이 통과되더라도 ‘실효성’이 뒷받침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인권활동가인 명숙 월담 운영위원은 “조례 제정뿐 아니라 고용노동부에서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하고, 정기적인 근로감독과 특별감독을 시행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3191638521…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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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탄올 실명' 추가 피해자 확인…350만원 주고 합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437&aid=0000134133




[앵커]

올해 초 스마트폰 부품을 만들던 회사에 불법 파견된 20~30대 젊은이들이 아무 보호장비 없이 메탄올을 사용하다 잇따라 뇌손상을 입고 실명 위기에 처한 사고를 기억하시는지요. 당시 정부 조사에서 빠졌던 피해자가 뒤늦게 2명 더 확인됐는데 제대로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호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35살 전모 씨가 부축을 받으며 병원 검사실로 들어섭니다.

전 씨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3차 협력업체에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근무 석 달 만인 지난 1월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글씨를 읽지 못하고 혼자 외출도 못합니다.

[전모 씨/메탄올 사고 피해자 : 글씨가 어디 있는 거예요. (다 글씨입니다.)]

전 씨는 냉각 작업을 위해 메탄올을 사용하다 중독돼 시신경이 파괴됐습니다.

목장갑과 일반 마스크만 착용해 미처 독성을 막지 못한 겁니다.

전 씨의 파견을 알선한 업체는 협의 끝에 합의금 350만 원을 준 뒤 연락을 끊었습니다.

[전모 씨/메탄올 사고 피해자 : 왜 (상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이런 걸 속였는지, 그걸 얘기 듣고 싶어요. 속인 이유.]

다른 피해자 29살 김모 씨는 1년 6개월 전 시력을 잃었습니다. 일을 한 지 3주 만이었습니다.

[김모 씨/메탄올 사고 피해자 : (오른쪽은 안 보이고) 왼쪽은 가운데는 하얗게 진하게 돼서 안 보이고 테두리만 TV 화면 지지직거리는 것처럼.]

파견업체가 불법 파견한 이들은 아무런 주의사항도 듣지 못했습니다.

[김모 씨 동료 : 바로 일을 해야 하니까 자리 알려주고 한 번 슥 보고 그냥 바로 일했어요. 그냥 시작했어요.]

이들을 파견했던 업체들은 지금은 모두 폐업했습니다.
 



기록 없어 '진술 의존' 한계…정부 조사 제대로 됐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sec&oid=437&aid=0000134134




[앵커]

정부는 처음 사태가 벌어졌을 때 철저하게 조사를 했다고 밝혔죠. 그런데 왜 추가 피해자가 나온 걸까요. 조사 당시 파견 업체와 파견 직원들을 제대로 파악한 자료조차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윤샘이나 기자입니다.

[기자]

[피해자 A 씨 누나/실명 위기 및 뇌손상 : (정부가 제대로 관리해) 먼저 알았더라면 진짜 이만한, 몇 명이에요. 피해를 안 봤을 거잖아요.]

[피해자 B 씨 어머니/실명 위기 : (피해자가 더 있다면) 다 찾아야지요. 불쌍한 아이들인데 어디에서 뭣 모르고 그냥 순순히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당하고 있잖아. 지금.]

고용노동부는 메탄올 실명 사태가 불거지면서 공장 32곳의 재직자와 퇴직자 3300여 명을 조사한 뒤 추가 피해자는 없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파견 직원들에 대한 정확한 노무 기록이 없는 상황에서 당시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박혜영 노무사/노동건강연대 : 어떻게 보면 그림자 노동하시는 분들이잖아요. 어디에도 기록에 남지 않고, 어느 누구도 자기가 노동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등은 업체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한편, 유엔에도 진정서를 냈습니다.

[김모 씨/메탄올 사고 피해자 : 꿈을 꾸면 꿈에서도 눈이 안 보일 때가 가끔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잘 보이면 꿈이라도 깨기 싫은…깨면 똑같으니까. 그런 거 많아. 안 보였다가 잘 보이는 그런 꿈꾸는 것 같아요. 그걸 또 꿈에서는 모르잖아요. 꿈인지. 알았으면 안 깰 텐데…]
 

화, 2016/10/1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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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의 정당한 쟁의행위가 업무방해로 둔갑하여 처벌 대상이 되는 요즘, 심지어노동자들의 점거 농성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방조죄를 적용한 법원의 판결이 있습니다.
2010년 11월,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벌인 생산라인 점거 농성 집회에서, 지지발언을 한 당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직 사업국장 최병승 씨 이야기입니다. 1심 법원이 최병승 씨의 업무방해죄 공동정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검찰이 업무방해 방조죄를 추가,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400만원의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과연 ‘업무방해 방조’라는 죄목을 인정한 법원 판결의 법리가 정당했는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사무차장 최용근 변호사가 꼼꼼히 짚어주었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노동자 점거 농성 지지 업무방해방조 유죄 판결 

업무방해로 박제된 노동3권의 현주소

 

 

부산고등법원 제2형사부 2015. 7. 22. 선고. 2014노781 (업무방해 등) 
판사 박영재(재판장) 박재억 이준영 

 

들어가며

 

우리가 흔히 노동3권이라고 부르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헌법 제33조 제1항에 명시된 기본권이다. 과거 자본주의 초기에는 노동자들의 단결권이 사용자의 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아 이를 금지하고, 민형사상의 법적 책임을 물은 때도 있었다(이른바 ‘단결금지법리’). 그러나 이러한 단결금지법리에 대한 노동자들의 단호한 투쟁으로 단결권의 행사에 따른 법적 책임이 면책되었으며, 더 나아가 노동3권의 행사를 사용자가 단순히 용인하는 정도를 넘어서 헌법상 기본권으로서 노동자들이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노동3권은 아직까지도 “문언적” 기본권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노동3권의 발현이라 할 수 있는 쟁의행위가 정당한지 여부는 사법부에 의하여 지나치게 경직적으로 판단되기 일쑤이고, 그 결과 파업에 참가한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는 업무방해죄를 죄명으로 한 공소장과 천문학적 액수의 손해배상 소장, 각종 가압류결정문 등이 날아든다. 땅 위에 서야 할 노동3권이 굴뚝 위로, 크레인 위로, 전광판 위로 위태롭게 오르는 현실, 이것이 2015년 우리 노동3권의 현 주소이다.

 

이러한 맥락에 더하여, 최근 부산고등법원에서는 집회에 참가하여 사회를 보거나 기자회견을 열고, 농성장에서 지지발언을 한 노동자에 대하여 업무방해방조죄를 인정한 판결(이하 ‘대상판결’)을 선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가히 헌법상 기본권으로서의 노동3권을 보장받는 노동자와 이에 대하여 연대를 표시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호모 사케르’ 선언이라 할 만 하다. 


사실관계

 

피고인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회사의 노동자로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파견되어 근무하던 중 사내하청회사로부터 해고되었다. 피고인은 현대자동차가 피고인의 실질적인 사용자임을 주장하면서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구제신청을 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는 그 신청을 기각하는 내용의 재심판정을 하였다. 이에 피고인은 중앙노동위원회위원장을 상대로 법원에 재심판정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여, 대법원은 피고인이 현대자동차의 노동자라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대법원 2010. 7. 22. 선고 2008두4367 판결 ).

 

이후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라 함)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는 2010. 10.부터 2010. 11.까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사내하청업체에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를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여 특별교섭을 요구하였다. 그 과정에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업체 중 하나인 동성기업이 폐업을 결정하고 청문기업이 그 사내하도급 업무 및 고용관계를 승계하기로 하였으나, 동성기업 소속 노동자들 중 위 비정규직지회에 소속되어 있던 노동자들은 청문기업으로의 전직을 거부하면서 현대자동차에 자신들을 직접 고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에 비정규직지회는 2010. 11. 13.경 임시쟁의대책위원회를 개최하여 2010. 11. 15.부터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CTS 라인(자동차 문짝 탈부착 생산라인)을 점거하기로 하였으며, 비정규직지회 소속 노동자들은 이후 2010. 12. 9.까지 25일간 CTS 라인을 점거하였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 미조직국장의 지위에 있던 피고인은 ① 2010. 11. 15.부터 2010. 12. 5.까지 7회에 걸쳐 현대자동차 정문 앞에서 CTS 라인 점거 농성에 참가한 조합원들을 지지하는 취지의 집회에 참석하여 사회를 보거나 기자회견을 열었고, ② 2010. 11. 17.자로 CTS 라인 점거 농성장에 들어가 농성장에 있던 비정규직 지회 간부들 및 조합원들에게 간단히 인사하고 농성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였으며, ③ 2010. 11.경 파업과 관련한 금속노조 또는 쟁의대책위원회의 공문을 비정규직지회에 이메일로 전송하였다.  


업무방해죄 무죄? 그렇다면 업무방해방조죄로 

 

검사는 위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피고인이 2010. 11. 15.경부터 2010. 12. 9.경까지 약 25일간 비정규직지회 및 그 조합원 900여명과 공모하여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등을 점거함으로써 위력으로써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생산 업무 등을 방해하였다”는 취지로 피고인을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공동정범으로 기소하였다. 

 

이에 대하여 1심 울산지방법원( 2014. 10. 17. 선고 2013고합372 등 )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CTS 라인 점거 농성을 지원, 독려하고 점거 계속을 지시하는 등으로 이 사건 범행을 공모하였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이 부분 공소사실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다.

 

이에 검사는 위 원심의 판결부분에 대하여 항소하면서, 업무방해죄가 항소심에서도 무죄로 선고될 것을 대비하여 업무방해 방조죄를 추가하는 공소장변경신청을 하였다. 즉, “피고인은 비정규직지회 및 그 조합원 900여명이 2010. 11. 15.경부터 2010. 12. 9.경까지 25일간 현대자동차 울산1공장 등을 점거함으로써 위력으로써 현대자동차의 자동차 생산 업무 등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범행을 용이하게 하여 방조하였다”는 공소사실을 추가한 것이다.  

 

항소심은 업무방해 공동정범에 대해서는 원심과 같은 무죄 판단을 하면서도, 추가된 업무방해방조에 대하여는 검사의 공소사실을 받아들여 유죄로 인정하였다. 
즉, “비정규직지회가 창설된 이래 임원들이 금속노조 미조직국장직으로 경험이 풍부한 피고인으로부터 조합의 활동방향을 정함에 있어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데다가, 피고인은 비록 비정규직지회의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현대자동차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비정규직지회의 상징적 인물로서 2012년 대통령 선거와 국정감사를 앞두고 사내하청 문제를 쟁점화하기 위하여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 송전 철탑에 올라가 296일간 고공농성을 하는 등 장기간 파업의 구심점이 되어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던 지위에 있는 피고인이 위 공소사실과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정범인 조합원들의 업무방해 범행을 인식하고 그 결의를 강화함과 아울러 그 범행을 용이하게 하였다고 판단된다”라고 판시한 것이다.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립 여부

 

항소심 법원 판단의 논리적 구조는 다음과 같다. 피고인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는 지위에 있었으므로 정범인 조합원들의 결의를 강화하고 범행을 용이하게 하였으며, 그 지위의 근거는 피고인이 금속노조 미조직국장으로 경험이 풍부하여 비정규직지회가 피고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현대자동차에 대한 소송에서 승소한 이후 비정규직지회의 상징적 인물로서 2012년 고공농성을 통하여 파업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지회가 피고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는 판결문에 기재되어 있지 않다. 대상판결이 밝힌 대로, 피고인은 비정규직지회의 임원도 아니며, 피고인은 비정규직지회의 그 어떠한 의사결정에도 참여한 바 없다. 피고인이 금속노조 미조직국장의 직에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비정규직지회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또한 피고인이 항소심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이미 비정규직지회의 의사결정에 의하여 점거농성을 지속하기로 결의하고 이를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피고인이 이와 같은 의사결정을 지지한다는 사실로부터 업무방해의 방조를 도출하는 것 또한 부당하다. 

 

한편, 대상판결 기재와 같이 피고인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앞 송전탑에서 296일간 고공농성을 한 시기는 2012년부터 2013년까지로 이 사건 발생일인 2010년 이후임이 분명한데도, 이 사건 발생 시기 이후에 있었던 일을 근거로 이 사건 당시 피고인의 역할이나 영향력을 추측하는 것은 부당하며, 이는 사실관계의 선후를 항소심 법원이 오인한 것이다. 

 

나아가 피고인은 당시 금속노조의 미조직국장 지위에서 금속노조 공문을 비정규직 지회에 전달하였는데, 이는 산별노조 소속 담당자로서의 업무를 수행한 것일 뿐 업무방해를 방조한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설사 위 대상판결에 의하더라도 ‘비정규직 조합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지가 불명확하다. 현대자동차로부터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은 이러한 지위가 있는 사람인가? 고공 농성을 며칠 이상 하여야 이러한 지위가 인정되는가? 금속노조에서 어느 지위에서 어느 기간 동안 업무를 보아야 이러한 지위가 인정되는가? 대상판결은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립에 있어서 ‘정범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를 요구하고 있는 듯하나, 그 인적 지위의 범위는 매우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업무방해방조와 제3자 개입금지, 그리고 표현의 자유

 

대상판결의 취지에 의하면, 이 사건 당시 파업 중이던 비정규직지회의 조합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 그 누구라도 당시의 파업 행위에 대하여 지지 발언 등으로 파업이라는 행위에 대한 심리적 방조를 하였다면 모두 업무방해죄방조죄가 성립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법리는 이미 폐기된 ‘제3자 개입금지’의 부활과 일정 부분 그 궤를 같이 하며, 나아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
  
제3자 개입금지는 과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조법’이라 함) 등에 규정되어 있었던 법률조항 중 ‘노동조합의 설립과 해산, 노동조합에의 가입·탈퇴, 단체교섭, 쟁의행위 등에 관하여 직접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나 당해 노동조합 또는 사용자 기타 법령에 의하여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는 관계 당사자를 조종·선동·방해하거나 이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하였던 규정 등을 통칭하는 용어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그 불명확성으로 인한 자의적 적용 문제, 표현의 자유에 대한 본질적 침해 문제 등으로 말미암아 노조법의 대표적인 독소 조항으로 비판받아 왔으며, 1990. 1. 15.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합헌 결정( 헌법재판소 1990. 1. 15. 선고 89헌가103 결정 )을 받았음에도 2006. 12. 30. 노조법 개정으로 인하여 삭제되었다. 이는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이 가진 위헌성에 대한 입법자의 결단이었다.

 

간접고용을 포함한 비정규직의 문제, 장시간 노동의 문제, 사용자에 의한 노동조건의 일방적 저하 문제, 해고제한 법리를 회피하려는 문제 등 오늘날 주요 노동 사안의 내용들은 특정 당사자들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노동 사안들은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문제로 겪고 있는 것들이며, 당장은 아니라도 언제든 언론에 보도되는 타인의 문제가 나의 문제로 전화(轉化)될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국민들은 그 누구라도 이와 같은 노동 사안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명하고 개진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당연히 포함되는 것으로서 특정 집단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이와 같은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제한할 수 없다.

 

그러나 대상판결의 법리는 과거 제3자 개입금지와 같은 효과를 발생하게 하여 앞서 살펴본 입법자의 결단을 무위로 돌리게 하고, 나아가 여러 노동 현안들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연대하려는 사람들의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게 될 우려가 있다.

 

업무방해죄의 문제

 

대상판결을 평가함에 있어 노동자의 지지와 연대행위에 대해 업무방해의 ‘방조’를 인정한 문제 뿐 아니라 ‘업무방해죄’ 적용 자체가 지닌 문제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쟁의행위는 본질적으로 노무제공의 거부를 통해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요소를 포함한다. 그런데 형법 제314조의 업무방해죄는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를 처벌하고 있으니 기본권인 쟁의행위가 형법상의 범죄가 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쟁의행위가 헌법상 기본권의 행사라는 점,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노동권 침해를 이유로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의 적용 중단을 지속적으로 권고하는 점,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의 적용은 쟁의행위를 범죄시하는 단결금지시대의 잔재라는 점을 고려할 때, 대상판결은 쟁의행위에 대해 형법 제314조의 업무방해죄를 적용한 점에서도 부당하다. 


노동3권 현실에서 복원되어야 

 

애초에 노동법은 양 당사자의 동등한 지위를 전제하는 시민법적 원리를 수정하기 위하여 태동된 법체계이다. 노동자는 사용자에 대하여 종속적인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고, 이를 계약자유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방임한다면 노동자의 기본적 권리조차 보장되지 못한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반성적 고려이기도 하다. 이러한 견지 아래 국가는 노동자들에게 사용자에 대응할 수 있는 방편으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라는 기본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파업으로 대표되는 쟁의행위는 헌법상 보장되는 노동3권의 하나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형사상 업무방해죄와 민사상 손해배상, 가압류로 인하여 충실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니, 오히려 법전에 박제되어 있는 기본권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앞서 살펴본 대로 쟁의행위에 대하여 업무방해죄의 죄책을 묻는 것에 대하여 광범위한 문제 제기가 있어 왔지만, 사법부는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사후에 판단하면서 그 정당성을 협소하게 인정하여 결국 대부분의 쟁의행위를 업무방해로 처벌하여 왔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쟁의행위에 가담하지 않고 단순히 이를 지지하는 집회에 참석하거나 사회를 보는 행위, 연대를 표시하는 행위에까지 방조의 이름으로 처벌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는 박제된 노동3권을 고공이 아닌 땅 위에서, 거리가 아닌 법정에서, 구치소나 교도소가 아닌 노동 현장에서 복원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파업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오늘날의 관행부터 수정하여야 한다. 

 

이번 항소심 판결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업무방해방조죄의 성립 여부, 나아가 업무방해죄 자체의 성립 여부에 대하여 법리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많다. 현재 이 사건은 상고심에 계류 중인바, 대법원의 전향적 판단을 통해 우리 사회의 노동3권이 현실 속으로 복원되는 데 이 사건이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금, 2015/09/04-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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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LG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눈이 멀 수도 있습니다

메탄올 중독 사건의 시그널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활동가


2016년 1월, 20대 청년 5명이 응급실에 실려갔다. 앞도 안보이고, 뇌에도 이상이 온다고 했다. 삼성·LG 스마트 폰에 부품을 대주는 여러 하청공장들에서, 위험물질 ‘메탄올’ 증기를 하루 종일 들이마신 청년 노동자들이 급성중독으로 차례로 쓰러진 것이다. 

세계적으로 1960년대에 없어진 줄 알았던 직업병이 한국에 다시 등장했다. 

시그널-메탄올 중독,산재.jpg  

“그녀는 언제나처럼 밤9시 출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속이 메스꺼웠다. 결국 한번 게워냈지만 몸이 좋아지진 않았다. 그렇다고 출근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출근하여 일을 했지만 몸이 너무 안 좋아 잠시 조퇴를 하고 병원에 갔다. 진찰한 의사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한다. 공장에 돌아와 계속 일을 했다. 다음 날 오전9시가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눈이 침침하다. ‘매일 밤 일을 해서 그러나, 일단 집에 가서 한숨 자면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집에 왔다. 매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아침에 자는 잠. 잠을 청했다. 얼마쯤 잤을까, 눈을 떴다. 그런데 앞이 안 보인다. 사랑하는 나의 자식, 남편의 얼굴도 안보이고 온천지가 암흑이다…….

이 환자는 결국 당일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고 의식을 잃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사경을 헤매다 극적으로 살아났으나 시력을 잃었다. 병명은 “메틸알코올 중독에 의한 시신경 손상 및 독성 뇌병증”이었다. 공장에서 일한지 4개월 만에 얻은 병이다. 이와 비슷한 경과를 보이며 다른 4명의 청년 노동자들이 시력을 잃었다. 이 중에는 일한 지 5일 만에 병을 얻은 이들도 있다. 지금까지 총5명이 메틸알코올 중독으로 시력에 문제가 생겼고, 이 중 4명은 영구적으로 시력을 잃을 가능성이 많다. 잠깐 일할 생각으로 인력 파견업체의 소개를 받아 들어간 공장에서 일하다 하루아침에 시력을 잃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출처 - 인권오름 : 파견 노동자 청년들의 시각 손상 사고가 던지는 질문,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누구의 책임일까? 

이들은 모두 최저임금을 받는 파견 노동자였다. 4대 보험도 없었다. 사회의 유령 같은 존재였다. 20대,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고, 아이가 있는 이도 있었다. 

당신은 이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누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가? 분명한 것은 한마디로 무엇이 문제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 노동자들을 대책 없이 파견 보낸 파견 사업주, 아무런 정보 없이 일을 시킨 사용 사업주, 핸드폰의 최종 종착지이자 하청과 파견의 먹이사슬 정점인 삼성과 LG, 그 모든 것을 용인한 허울뿐인 파견법과 노동부까지 종횡무진, 노동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가장 약한 고리, 파견 노동자가 피해를 입었다. 

사건이 발생하자 무엇을 바꿔야 할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여전히 이 사회의 유령인 파견노동자들은 위험한 상황 그대로 십수년째 방치되어 있다. 2016년 4월 현재, 노동부는 다양한 대응을 내놓았지만, 마지막 피해자는 노동부가 공장에 다녀간 뒤 피해를 입고 병원에 실려갔다. 내놓는 대책을 보아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눈치다. 먼저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은 마지막 피해자의 소식에 망연자실 했다. 자기들 만으로는 부족했냐고, 대체 이 나라 이정도냐고. 

위험한 파견, 무관심한 정부의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다루고, 이 글에서는 원청 대기업의 먹이사슬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위험 먹이사슬 만든 대기업, 어떻게 책임질래요?

삼성전자, LG전자 등 핸드폰 생산 대기업은 1차 하청기업에 알루미늄 케이스와 부품을 납품하라고 하고 계약을 맺은 뒤, 이후 벌어지는 일은 관심이 없다. 물건을 훔쳐오든, 어떤 사람이 아프며 만들든 관심이 없다. 이런 무관심은 정당할까? 






최근 국제적으로는 코발트라는 물질이 이슈다. 핸드폰 배터리에 들어가는 물질인데, 생산과정에 아프리카 콩고에서 아동노동이 행해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국제앰네스티가 밝혀낸 이 사건을 통해, 국제사회에서는 전자산업 부품의 공급사슬에 대해 대기업의 인권 보호 책임 혹은 의무가 강조되고 있다. 이 사건 역시 삼성과 LG는 자유롭지 못하다. 

다시 국내로 돌아와 보자. 메탄올 급성중독 사건, 앞을 볼 수 없거나 제대로 생활이 불가능한 20대 피해자만 5명, 삼성과 LG는 무얼 하고 있을까? 두 회사는 전자산업시민연대행동규범(EICC)에 참여하고 있다. 전자산업을 만드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규범단체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Business Conduct guidelines와 협력사 행동규범을 제정한 바 있는데, 위 규범에 의해 삼성전자는 공급망의 안전보건과 관련한 사항을 협력사에 전달하고 협력사들의 규범 준수여부를 모니터링 할 것을 선언하였다.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24개 시민사회단체는 위의 내용을 바탕으로 삼성과 LG에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부품 공급 사슬 내의 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안전을 어떤 식으로 보장해 왔는가?”,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 예정인가”, 두 기업은 그동안 1차 협력사를 통해 위험관리를 해왔다고 답했다. 두 기업 모두 그 이상의 책임은 회피했다. 왜 그들의 공급사슬은 1차 협력사 까지라고 선을 긋는 것일까? 우리가 여기서 기억할 것, 대기업의 휴대폰 출시 사이클에 맞춰 일을 하는 1,2,3차 하청업체, 그 부품업체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핸드폰은 삼성, LG 두 기업의 로고를 달고 출시된다. 

앞으로도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단체들은 메탄올 급성중독 사건의 사회적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할 예정이다. 2차 공개 질의서를 예정하고 있고, 국제사회에 적극 문제제기를 준비 중이다. 파견의 문제, 무정부 상태인 노동행정의 문제, 짚어야 할 문제가 많다. 문제의식만 잔뜩 적은 글을 쓰게 되어 죄책감이 크다. 그래도 최우선으로는, 앞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희망하고 희망한다. 행복하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수, 2016/05/2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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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근로감독관이 노사분규가 있는 기업의 사측 노무담당 간부와 술자리를 갖고 노조를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 자문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근로감독관은 술자리에서 산별노조를 기업별노조를 바꾸는 방법, 법적인 문제 없이 직원을 해고하는 방법 등을 사측에 조언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근로감독관은 사측의 말문을 열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며 문제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의 마지막 기대 저버린 ‘잘못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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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저녁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서 근무하는 박 모 감독관은 오스람코리아의 인사총무부장 박 모 씨와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한 치킨집에서 만났다. 당시 박 감독관은 오스람코리아 노조의 진정을 받아 해당 사업장을 감독하는 중이었다.

독일계 조명 제조업체인 오스람코리아는 지난해 10월 회사가 일방적인 희망퇴직 공고를 낸 이후 극심한 노사 대립을 겪고 있다. 지난 2월에 시작된 단체협약 협상은 13차례의 교섭을 갖고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방노동위원회와 고용노동부가 노조 사무실 제공과 타임오프제 준수 등 기본적인 요구 사항만을 반영한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사측은 이마저 모두 거절한 상황이다.

조동윤 금속노조 경기지부 오스람코리아분회장은 근로감독관과 사측 노무담당자의 만남에 대해 “그동안 상식 밖의 버티기를 하는 회사을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보니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생각마저 든다”라고 말했다.

사측에 컨설팅…“노조는 기업노조로, 해고는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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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날의 술자리가 문제가 된 이유는 근로감독관의 부적절한 발언 때문이다. 이들은 현재 금속노조 산하의 분회로 있는 오스람 코리아 노조를 기업노조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대화 내용은 같은 술집에 있던 금속노조 지역 간부가 우연히 듣게 됐고, 이후 외부에 알려졌다.

목격자의 진술과 <뉴스타파>의 취재 내용을 종합해보면, 박 감독관은 노조 때문에 회사 운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박 부장의 호소에 대해 “△제 2 노조를 만들어 노조를 와해시키는 곳도 많지만 그런 식으로 가면 일이 더 힘들어진다. △금속노조로 있다가 완전히 바뀌어서 기업노조가 된 ‘동서공업’처럼 천천히 가라”는 구체적인 자문을 했다. 또 이와 관련된 자료를 직접 제공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박 감독관이 언급한 동서공업은 2008년 직장폐쇄까지 가는 등 극심한 노사분규를 겪은 사업장이다. 직장폐쇄 기간 동안 사측은 일부 조합원들을 회유해 노-노 갈등을 야기한 바 있다. 결국 파업 이후 동서공업 노조는 산별노조인 금속노조를 탈퇴해 기업노조로 운영됐다. 이 과정에서 파업을 주도한 15명의 노조원이 정리해고 되는 등 노동계에서는 대표적인 노조 탄압 사례로 거론되는 사건이다.

또 박 감독관은 노조 간부에 대한 해고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자문을 했다. 박 부장이 노조 간부의 해고 문제를 거론하자 박 감독관은 “△절차를 잘 거쳐 (해고를) 해야 한다. △일단 징계위원회 구성과 심사위원 선정을 잘하고 천천히 하라. △징계자에게는 원래 해고 처분을 받아야 하지만 한 단계 낮춰가는 것이라고 말하라.”고 조언했다.  ‘노사의 신뢰를 함께 받을 수 있도록 엄정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하라’는 근로감독관의 집무규정을 현저히 벗어난 발언이다.

박 근로감독관 “말문 열어보려 만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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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을 만난 박 감독관은 문제의 술자리가 사측의 말문을 열기 위해 자신이 먼저 제안한 자리였다고 해명했다. 오히려 회사가 직장폐쇄나 용역 동원 같은 강제적인 방법을 쓰기 전에 교섭을 통해 해결하라고 설득하려 했다는 것이다.

박 감독관은 문제의 대화가 있었던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이른바 ‘노조 탄압 컨설팅’을 하겠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오스람 코리아 측이 노동부의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을 피워 사태가 커졌다는 점에 대해 훈계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진의가 왜곡돼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박 감독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 고용노동부의 자체 감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취재진은 이날 술자리에 앞서 이훈원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장과 오스람코리아 상무이사까지 참석한 별도의 식사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급 한정식 식당에서 이뤄진 이 식사 자리에 대해 이 지청장은 “업무가 풀리지 않아 그 사람들(오스람코리아 사측)의 속내를 들어보려 먼저 제안한 자리였다”며 “상대가 외국계 계열사의 임원이라고 해서 지위를 생각해 해당 식당을 이용했다. 비용은 모두 안산지청에서 지출했다”고 해명했다.

‘노조탄압 징크스’ 겪는 반월-시화공단…사측-노동부 밀회 한번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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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여 개의 중소사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반월-시화공단(현재 ‘안산-시흥스마트허브’)은 노조 탄압 사건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지역 노동활동가 사이에서는 “2, 3년마다 굵직한 노동 탄압 사건이 발생한다는 징크스가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실제 199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 노조 결성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직장 폐쇄와 용역에 의한 폭력 사태 등 극단적인 노사분규가 벌어져 왔다. 그때마다 산별노조 탈퇴와 노조 해산 등 사실상 노조가 무력화 되는 수순으로 사태가 마무리돼 왔다는 것도 특징이다. 때문에 이 지역의 노조조직률은 전국 평균인 9.8%에 크게 미치지 못한 1%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드러난 사측과 근로감독관의 은밀한 만남은 이 지역 노조 탄압의 역사가 정부 감독 기관의 묵인 하에 이뤄져 온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목, 2015/07/23-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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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도 없고 행선지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파견노동자를 태우고 가는 버스들입니다.

 

이영숙(전 파견노동자) “통근 버스들이 각 거점별로 있어요. 와동이면 와동, 시화면 시화, 이렇게 거점에서부터 출발하는 버스가 있는데, 안산역에 한번 서고 공단으로 들어가다 보니까 안산역을 다 지나다 보니까 거기 사람들이 엄청 많고...”

 

1 이영숙 - 전파견노동자.jpg  


매일아침 26천여명의 파견직 노동자들이 이 버스를 타고 각자의 일터로 갑니다. 영숙씨도 얼마 전까지 이곳에서 파견 버스를 탔습니다. “15일 동안 제가 일을 하고 그만뒀는데 15일동안 하루도 안쉬고 12시간 동안 일을 했어요. 근데 제가 그 때 9시 출근 밤 9시 퇴근이었는데, 11시까지 야근을 안한다고 화를 내고 그러면서 제가 그만두게 되었거든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하지만 그 사이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습니다.

정직원하고 파견직은 따로 밥을 먹어요. 불편한거죠. 자연스럽게 파견직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게 되고 휴게공간 같은 경우에는 정직원들은 책상, 의자 같은데 앉아서 자기 테이블 있고 자기 책상 있고 이런데서 쉬고, 저처럼 얼마 안된 사람들은 그냥 서있거나 아니면 공장 안에서 박스 놓고 쉬거나 그렇게 쉬고.”


2 김혜진 - 불안정노동철폐연대.jpg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활동가) “3일 되기 전에 아무도 말을 시키지 않아요. 심지어 이름도 물어보지 않아요. ? 이 사람이 3일간 버틸지 아닐지도 알 수 없고요. 3일 이상을 여기서 일할지 아닐지도 알 수가 없는 거에요.3일 지나면 처음으로 이름을 물어보고. 그래봤자, 6개월 지나면 나가고. 제조업에서의 파견 허용 기간이 6개월 이니까. 그러니 사람들이 이렇게 교체되는데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며, 그 안에서 어떤 애착을 가질 것이며 자기 삶의 비전을 어떻게 세우겠어요. 애초에 불가능하죠.”

 


김진성(메탄올 급성중독 피해자, 가명)

죄송한데요, 이거 번호좀... 몇 번 이에요?”

1521번 이에요

죄송한데 나오면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3 김진성 - 안과 검사.jpg  


병원 간호사 가운데 큰 구멍만 봐주시면 돼요. 정면만 봐주셔야 되고요. 검사 시작하면 그 주변에서 깜빡이는 불 한 개씩 나올꺼에요. 깜빡이는 불 나올 때 마다 한번씩 눌러주시면 되요. 제일 중요한건 눈 왔다 갔다 하시면 안되고요. 눈은 정면만 보고 계여야 되요.” “주변에 깜빡이는 불 한 개도 안보이세요?” “

 

안과 의사 시신경이 많이 손상된 걸로 보이고, 이게 시야검사를 한건데 오른쪽은 거의 까맣게 잘 못보시고, 왼쪽은 특히 아래쪽 부분을 못보시는 거에요. 지금 왼쪽 주변부만 좀 보이시는 거에요

 

김진성씨도 파견사원이었습니다.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린 첫날, 파견업체로부터 당장 저녁에 출근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매일 12시간씩 일을 했습니다.


4 김진성 - 하던 일 설명.jpg 

 

“(핸드폰) 케이스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거든요. CNC(컴퓨터 수치제어 가공) 그런거라고요. 저는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고 그냥 했었거든요. 드릴에 손만 조심하라는 것 말고는 다른 주의사항 없었어요. 알코올에 대한 얘기는... 그냥 알코올이라고만 했었거든요.


5 김진성 - 그냥 알코올 이라고만 했다.jpg  

 

박혜영(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이 분들이 하셨던 일은 핸드폰의 부품을 만드는 일이었는데요, 기계에 큰 부품을 넣고 수치를 입력하면 어떤 모양으로 깎여 나오거든요. 그러면 깎여 나오는 동안 계속 메탄올을 뿌리는 거에요. (메탄올이) 분사가 되고 있는 와중에 주변에 보호할만한 어떤 것도 없는 상황이어서 공기 중의 메탄올 농도가 최대치 였던 거죠. 그래서 흡입하고 메탄올은 늘 손에 젖어 있었고 손으로도 흡수되고 피부로도 흡수되고 해서 늘 메탄올에 젖어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의사들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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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메탄올 급성중독 피해자) “일을 하다가 식은 땀이 계속 나는 거에요. 감기 걸린 것처럼. 그러다가 갑자기 눈이 그 때부터 좀 뿌옇게 보이는 거에요. 형광등을 보면 퍼지듯이 보여가지고 야간에 밥 먹을 때 조퇴를 한거죠. 일요일에... 그리고 자고 일어나니까 눈이 안보이게 된거죠. 아침에 일어나니까...

 

박혜영(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원래 이 기계가 만들어졌을 때는 처음에 에탄올을 사용하도록 돼 있었고 일본이나 독일에서 기계가 처음 만들어졌는데 매뉴얼은 에탄올로 나와있어요. 한국에 와서 메탄올을 쓰기 시작했고, 두 개가 하는 일은 같은데 메탄올이 에탄올보다 3분의 1 정도 저렴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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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노동건강연대 대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메탄올은 100년 전부터 위험하다는게 잘 알려져 있는 누구나 그것을 잘못 쓰면 실명할 수 있다는 것 조차도 아주 잘 알려져 있는 고전적인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3세계의 굉장히 열악한 나라에서도 이런 메탄올 중독으로 인한 실명 사례가, 제가 아는 한에는 학회에 보고된 바가 없습니다.”

 

세 곳의 공장에서 일하던 파견사원 7명이 부품 세척액으로 쓰인 메탄올에 중독되 시력을 잃었습니다. 이 가운데 6명이 20대 였습니다. 첫 번째 환자가 발생하자 고용노동부는 기록에 남아있는 모든 파견노동자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진성씨는 실명 뒤 1년 반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습니다.

 

김진성(메탄올 급성중독 피해자) “그 회사에서 일했다는 증거가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제가 가지고 있는 기록도 없고... 그런데 **에 제 기록이 남아있어서 산재를 받게 된거죠.”

 

박혜영(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전국의 주요 공단에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수많은 파견 노동자들이 있어요. 근데 이 파견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기록이 제대로 남지 않죠. 그리고 자기가 무슨 일을 했는지는 알지만 어떤 물질을 사용했는지는 정보가 없어요. 그 상태에서 일주일, 열흘 일하다가 그만두고 회사를 옮겨요. 두 번째 회사에서 다른 일을 하다가 세 번째 회사로 옮겨요. 그런데 내가 병에 걸렸어요. 두 번째 회사에서 걸렸는지, 세 번째 회사에서 걸렸는지도 모르는데 기록은 없어요. 그러면 이 분들은 직업병 인지 조차도 자신들이 추측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게 파견 노동자들의 현재 삶인데...”

 



파견 자체가 불법은 아닙니다. 관련법은 정직원의 출산, 질병 등으로 결원이 생겼을 때 최장 6개월 까지만 파견사원을 쓸 수 있다고 규정했습니다.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파견 사원을 두라는 겁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법은 쉽게 무력화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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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전 파견노동자) “6개월 정도 근무한 회사였는데 그 회사가 이름을 바꾼다고 근로계약서를 다시 써야 한데요. 똑같이 근무를 하고 있는데. 똑같은 부장님이 똑같은 회사 연락처랑 다 똑같은데 회사 이름이 바뀌었다고 근로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뭐 달라지는 것 없다고 그렇게 쓴 적도 있었고, 그리고 이름을 바꾸는 것도 번거로워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다녔던 한 회사는 9개 파견업체가 들어와 있는데 자기네들끼리 사원들을 돌려요. 그래서 내가 어느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지 잘 몰라요.”


11 파견업체 폐업 후 재개업의 반복.jpg  

 

박혜영(노동건강연대 활동가) “퇴직금이 주로 크죠.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을 줘야 하니까 보통은 10개월마다 한 번씩 이름을 바꿔요. 퇴직금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임금체불 사건이 들어가면 노동부에서 인지를 하기 때문에 그런 걸 피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업체 이름을 계속 바꾸는 거죠. 사람 장사를 쉽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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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을 초과해 비정규직을 사용하려면 정규직을 사용하라는 이 법이 오히려 2년짜리 계약직을 늘려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근로자들을 보호해 주자면 만들어놓은 법들이 현실에서 쉽게 악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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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 핵심적인 개념은 상시 지속적인 기간제 계약직이 2년을 넘었을 경우에는 무기계약이나 정규직과 같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정년을 보장하는 고용 형태로 바꾸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또 기업의 입장도 반영이 됐죠. 결국은 2년이 될 즈음에 고용만료형태로 (정규직) 전환을 안시킬 기업의 자유도 주어진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까 2007년 이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4명 중에 1명 정도에 불과하고 3명은 직장을 떠나는 거거든요. 끊임없이 유목민처럼, 기간제 계약직(보호) 법은 만들어졌지만 피해갈 여지를 준 것이지요.

 

시사기획 창 "일터의 이방인" 전체보기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457781


수, 2017/04/05-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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