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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식 후보 부인, 농지 불법취득…본인도 땅투기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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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식 후보 부인, 농지 불법취득…본인도 땅투기 의혹

익명 (미확인) | 목, 2016/03/10- 20:38

배영식 새누리당 예비후보(대구 중구, 남구)의 배우자가 경북 상주시 ‘온천지구’에 있는 농지를 위장전입 등 불법적인 방법으로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배 후보 본인도 땅 투기 열풍이 불었던 시기 안성에 임야를 매입, 30년 간 방치하고 있어 시세차익을 노린 투기 의혹이 제기된다.

배 후보 배우자 ‘위장전입’으로 경북 상주 온천지구에 농지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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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식 새누리당 예비후보의 배우자 문 모 씨는 배 후보가 경제기획원 투자과장으로 재직 중이던 1985년, 배 후보의 고등학교 동창의 배우자 김 모 씨와 함께 경북 상주시 운흥리 일대 농지를 매입했다. 총 1984㎡규모(약 600평)의 논이다.

1985년 당시 농지개혁법에 따르면, 외지인은 농지를 매입할 수 없다. 농지 매입은 농지로부터 4km 이내 거주하는 ‘농민’이 ‘직접 경작’을 할 경우에만 가능했다. 소작 형태의 위탁경영도 불가능했다. 당시 배 후보는 서울 강남 대치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부부가 같이 살았다면 농지 매입을 할 수 없었다.

▲ 배 후보 배우자가 보유한 농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보니, 문 씨와 공유자의 당시 거주지가 농지를 판 농민의 양조장 주소로 기재돼 있다.

▲ 배 후보 배우자가 보유한 농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보니, 문 씨와 공유자의 당시 거주지가 농지를 판 농민의 양조장 주소로 기재돼 있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문 씨는 위장전입으로 농지를 매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 씨가 소유한 농지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해보니, 농지매입 당시 거주지가 ‘화북면 운흥리 00번지’로 돼 있었다. 문 씨는 물론 공유자인 김 씨도 같은 주소였다. 이 주소는 이들에게 농지를 팔았던 농민 서 모 씨의 양조장 주소다.

서 씨는 뉴스타파와의 전화통화에서 “문 씨가 당시 농지를 매입하며 실제 내려와 농사를 짓겠다고 말해서 주소지를 옮겨 놓도록 허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재진이 당시 배우자 문 씨가 살았다는 주소지를 찾아가 보니, 컨테이너 창고만 있을 뿐 사람이 거주할 만한 공간은 없었다. 집 주인 서 씨는 취재진에게 “문 씨가 실제로 거주하지는 않았고, 가끔 다녀갔다”고 말을 바꿨다. 사실상 문 씨는 농지매입을 위해 농지를 팔았던 농민의 주소지로 위장전입을 한 셈이다.

상주시의 농지 담당 공무원은 “공무원들은 실제로 농사 짓는지 여부를 이장을 통해서 알 수밖에 없는데, 이장과 농지 매수자가 입을 맞추면 공무원들이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농지를 판 농민 서 씨는 당시 이장이었다.

배우자 문 씨, 농지 매입 6개월 만에 다시 ‘서울 강남’ 주소로

하지만 문 씨와 김 씨는 농지 매입 6개월 만인 1985년 11월 9일 일제히 주소를 강남구 대치동과 강동구 가락동으로 변경했다. 주소지를 원주소로 다시 옮긴 것이다. 전형적인 위장전입 수법이다.

배우자 문 씨는 ‘직접 경작’ 원칙도 지키지 않았다. 농지 매입 초기에는 농지를 팔았던 서 씨가 경작을 대신했고, 현재는 다른 농민이 농사를 짓고 있다. 이 농민은 “문 씨의 땅에서 쌀농사를 짓고 그 대가로 연간 쌀 한 가마니 정도를 보낸다”며 “여기는 대부분이 외지인들 땅이라 도지(대신 농사를 짓는 것)하는 농민이 많다”고 말했다.

▲ 상주시 화북면 일대에 흐르는 용화온천수

▲ 상주시 화북면 일대에 흐르는 용화온천수

문 씨가 위장전입까지 해가며 농지를 매입한 상주시 화북면 운흥리는 1985년 2월 ‘온천지구’로 지정됐다. 이후 관광지구로도 지정되면서 땅값이 폭등했다. 당시 운흥리 농지는 공시지가로는 1㎡ 당 4,800원(1990년)이었지만, 현지 주민들은 “당시 온천개발로 관광객이 몰려올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농지가 평 당 100만원, 절벽의 빈 땅도 평 당 30만 원을 호가하기도 했다. 개도 만 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시기였다”고 말했다. 현재는 온천 개발이 지지부진한 상태지만, 공시지가로만 따져도 땅값은 90년 대에 비해 두 배(2015년 공시지가 8,930원) 가량 올랐다.

취재진은 위장전입과 농지투기 의혹에 대해 배 후보의 배우자 문 씨에 직접 확인을 요청했다. 문 씨는 “자신은 후보자의 부인일 뿐이므로 대답할 의무가 없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배 후보, 부동산 붐 일던 시기 경기 안성에 임야 매입… ‘땅투기’ 의혹

문 씨가 온천지구에 위장전입을 하며 농지를 매입했던 1985년, 배 후보자는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죽리에 임야 983㎡를 매입했다. 당시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 죽리는 부동산 열풍이 뜨거웠다. 1980년에 중앙대 안성캠퍼스가 들어섰고, 이에 따라 새로운 도시계획이 발표됐다. 원룸이 급증하고 인구가 늘면서 배 씨의 임야 인근에 이면 도로가 건설되는 계획이 세워졌다. 땅을 사려는 외지인들이 많이 몰렸고 땅값이 크게 치솟았다. 1990년 1㎡당 12000원이던 땅은 현재(2015년) 47000원으로 4배 가량 올랐다.

▲ 배영식 예비후보가 경제기획원 투자과장 시절 매입한 경기도 안성시 죽리 일대 임야. 죽리는 중앙대 안성캠퍼스가 설립됐던 1980년 이후 신도시로 각광받으며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일었던 곳이다.

▲ 배영식 예비후보가 경제기획원 투자과장 시절 매입한 경기도 안성시 죽리 일대 임야. 죽리는 중앙대 안성캠퍼스가 설립됐던 1980년 이후 신도시로 각광받으며 부동산 투기 열풍이 일었던 곳이다.

죽리 이장은 “당시 죽리는 부동산 업자들이 매매계약서에 땅 값의 칸을 공란으로 둘 정도로 부르는 게 값이던 곳이었다”며 1985년 상황을 설명했다. 배 후보도 땅 투기 열풍에 편승해 안성의 임야를 매입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배 후보 “불법은 전혀 없다”…위장전입 등 의혹엔 구체적 답변 거부

▲ 지난 3월 9일 대구 남구 대명동 동사무소에서 유세 중인 배영식 후보

▲ 지난 3월 9일 대구 남구 대명동 동사무소에서 유세 중인 배영식 후보

취재진은 배 후보에게 경북 상주의 농지와 경기도 안성의 임야를 매입한 경위를 듣기 위해 질의서를 보내고 수차례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답이 오지 않았다. 후보자를 선거 유세 장소에서 직접 만나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배 후보는 “불법은 전혀 없었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위장전입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질의하자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배영식 후보는 1973년 행정 고시에 합격해 경제기획원과 재정경제부 등 경제 부처에서 고위 관료를 거친 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8대 국회 의원을 지냈다. 배 후보가 지난 2011년 신고한 재산은 42억 2,000만 원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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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그는 2013년 8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각종 불법적 행위들이 발생했던 시점과 대부분 일치한다. 그러나 김기춘 비서실장은 최근까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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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실장, 증언과 의혹 부인하며 “무능하다 해도 몰랐다”, 스스로 무능론 펼쳐

지난 27일 구속기소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의 변호인 김종민 변호사는 차 전 단장이 2014년 6월께 최순실 씨의 지시에 의해 김기춘 전 실장의 공관에서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을 소개받았다고 밝혔다. 최순실 씨가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과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이런 소개와 만남이 공관에서 벌어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또 이보다 앞선 18일에도,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김종 전 차관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나가라고 한 자리에 최순실 씨가 있었다”는 진술을 한 바 있다. 게다가 김 전 차관은 김기춘 전 실장이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를 잘 돌봐주라고 했다”는 말까지 검찰에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즉, 차은택 전 단장도 최순실 씨의 소개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공관에서 김종 전 차관을 만나게 됐다고 말했고, 김종 전 차관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나가라고 한 자리에 최순실 씨가 있었다고 말했으며, 게다가 김기춘 전 실장에게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를 잘 돌봐주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증언들 모두 최순실 씨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서로 매우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런 언론 보도에 대해 김기춘 전 실장은 “김종 전 차관은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반발하면서 계속 자신과 최순실 씨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다.

김기춘 전 실장은 지난 22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 까맣게 몰라 자괴감이 든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이 “무능해 바보 취급을 받았는지 몰라도 나는 몰랐다”고 강력하게 부인하며 스스로 무능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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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제정에 공헌,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 3선 의원 등 꾸준히 권력 누려

김기춘 전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유신헌법 제정에 실무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진 공안검사 출신이다. 유신체제 이후 그는 법무부 과장급으로 고속 승진했고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기춘 전 실장이 중정 대공수사국장 시절 담당했던 대표적인 사건이 1975년 ‘학원침투 북괴 간첩단’사건이다. 최근 뉴스타파가 제작한 영화 <자백>에서도 다뤄졌던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지난 5월 대법원 재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당시 간첩조작사건에 대해서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강변했다. 김 전 실장은 88년 노태우 정부 때 검찰총장 자리에 올라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고, 91년에는 법무부 장관이 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을 지휘했다. 유신정권과 군부독재 치하에서 입신양명해 꾸준히 권력을 누려온 것이다.

▲ 1972년 12월 27일, 서울 중앙청 중앙홀에서 열린 유신헌법공포식

▲ 1972년 12월 27일, 서울 중앙청 중앙홀에서 열린 유신헌법공포식

김기춘 전 실장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핵심 자문그룹인 ‘7인회’ 중 한 명이었다. 또,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기 전인 2013년 7월에는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박정희, 박근혜 두 대통령 부녀와 40여 년에 걸친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김기춘 전 실장이 지난 40여 년 간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남달랐던 최순실 씨를 몰랐다는 것을 믿을 국민이 몇이나 될까?

김기춘, 이제는 역사와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할 때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 재직 당시 ‘왕실장’, ‘기춘 대원군’ 등으로 불리며 박근혜 정권의 2인자로서 국정의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 그는 여전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한 모든 의혹과 증언들을 부인하며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거짓말로 일관하며 어떻게든 법적 책임은 회피하려는 비겁한 권력의 전형이다.


취재 : 이보람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수, 2016/11/30-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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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민간인 해킹 의혹을 풀 핵심 열쇠인 로그파일 공개를 계속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보안 전문가들은 국정원 RCS 로그파일이 이미 위변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따라 완전한 의혹 해소를 위해서는 로그파일만이 아니라 국정원 RCS의 운영체제, 즉 하드디스크까지 객관적으로 분석해 원본 파일에 조작이 있었는지 여부를 검증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로그파일 공개’는 ‘민간인 해킹 검증’의 핵심

국정원 해킹 의혹의 본질이 국내 민간인에 대한 해킹 여부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를 판가름할 핵심 정보는 국정원 RCS 서버에 담긴 로그기록 속에 들어 있다.

이미 해킹팀 유출 자료 가운데 지난 5월과 6월 중 국정원이 요청한 악성코드의 활동이 담긴 로그기록이 26건이 확인된 바 있는데, 악성코드의 활동 일시, 접속 아이피, 단말기 모델 및 기종, 설정 언어, 미끼 URL, 감염 성공 여부까지를 확인할 수 있는 형식이었다. 이 가운데 2건은 내국인 해킹이 의심되는 기록이다.

※ 관련 데이터 : 해킹팀 서버 국정원 로그기록

사태 초기 야당은 국정원에 이 로그파일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대국민 해킹이라는 휘발성 높은 의혹이 일었던 만큼 여당 역시 최대한 국정원이 자료를 공개하도록 협조하겠다는 입장이었다.

▲ 7월 18일 국정원 직원 임 과장 자살 현장

▲ 7월 18일 국정원 직원 임 과장 자살 현장

그러나 7월 18일 RCS 운영팀의 일원이었던 국정원 임 모 과장이 유서에 ‘일부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히며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야당이 자살 배경과 경위에 대한 석연치 않은 정황들을 이유로 공세를 강화하자 여당은 입장을 바꾼다. 로그파일 공개는 국가 기밀을 유출하라는 것이고 국가 안보를 무장해제하라는 것이어서, 북한만 이롭게 하는 행위라는 논리로 맞공세를 시작한 것이다.

▲ 7월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참석한 이병호 국정원장

▲ 7월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참석한 이병호 국정원장

7월 27일 국정원은 임 과장이 삭제한 자료를 10일 만에 모두 복원했다며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보고한다. 모두 51건의 해킹 시도 기록 가운데 대북·대테러 용의자를 대상으로 10건은 성공, 10건은 실패한 자료였으며, 나머지 31건은 내부 실험용 기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병호 국정원장은 자신의 직을 걸고 국내 사찰은 없었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야당은 국정원이 이른바 ‘셀프 검증’으로 ‘셀프 면죄부’를 발부하고 있다며, 객관적이고 세부적인 자료 제출 없이는 믿을 수 없다고 반발했다.

보안 전문가들의 견해는? “로그파일 이미 위변조됐을 수도”

국정원 해킹 의혹을 둘러싼 이 같은 여야 간 대치 정국을 국내외 보안 전문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뉴스타파가 접촉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치적 공방이 아니라 냉정한 기술적 접근이라고 조언했다.

우선 이들은 임 과장의 자료 삭제 문제는 큰 틀에서 볼 때 중요치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내국인 사찰 여부를 가를 핵심은 어차피 로그파일인데, 해킹팀 자료 유출 이후 이미 20일 이상 흐른 시점에서 임 과장이 아닌 다른 국정원 직원이 로그파일에 손을 댔어도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뉴스타파와 빌 마크잭의 화상 인터뷰 장면

▲ 뉴스타파와 빌 마크잭의 화상 인터뷰 장면

이탈리아 해킹팀의 RCS가 전세계 21개국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지난해 폭로했던 토론토대학 시티즌랩 연구원 빌 마크잭은 뉴스타파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로그파일은 기본적으로 텍스트 파일 형태이므로 누구라도 쉽게 편집과 삭제와 추가 등의 조작이 가능하다”며 “이런 조작이 있었는지를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조차 알 수 없게 수행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디지털 포렌식 전문가는 “디지털 포렌식에도 ‘골든타임’이 존재한다”면서 “해킹팀의 자료 유출 직후 국정원 RCS 서버에 담긴 로그파일을 곧바로 확보하지 않은 이상, 지금 와선 그 파일에 이미 어떤 조작이 가해졌는지를 판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 김진국 플레인비트 대표와의 인터뷰 장면

▲ 김진국 플레인비트 대표와의 인터뷰 장면

이런 상태에서는 야당이 요구하는 로그파일이 공개된다 해도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되레 논란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 김진국 플레인비트 대표는 “디지털 자료는 위변조가 너무나 용이하다. 따라서 어떤 디지털 데이터의 ‘원본’이라는 것은 특정 시점에서 데이터의 특정 상태에 관해 이해 당사자 간의 상호 인정이 있을 때, 혹은 객관적 인증 절차(전자지문 등)가 있었을 때 성립하는 개념이다. 바꿔 말하면 이런 절차 없이 제시되는 디지털 자료는 이해 관계에 따라 ‘원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지금 당장 로그파일이 공개됐을 때 문제되는 내용이 없으면 여당은 ‘원본’으로 야당은 ‘조작본’으로 규정할 것이며, 문제되는 내용이 나오면 그 반대 주장이 펼쳐질 것이라는 의미다.

“로그파일 조작 여부 판단 위해 운영체제 전부 들여다 봐야”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로그파일만이 아니라 파일이 담겨 있던 국정원 RCS 서버의 운영체제를 모두 분석해 위변조 여부부터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운영체제 검증 개념도 CG

▲ 운영체제 검증 개념도 CG

원리는 이렇다. 만약 누군가가 로그파일 일부를 변조했다면 파일을 열고, 내용을 수정하고, 저장하고, 파일을 닫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각각의 단계마다 디지털 기호 형태의 흔적이 운영체제 어딘가에 남겨진다는 것이다. 혹은 파일을 열지 않은 채로 삭제하려면 이 기능을 수행하는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이 실행되어야 하는데 이 역시 운영체제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이런 산재한 정보들을 모두 긁어모아 분석하면, 로그파일이 위변조되기 이전의 원 정보를 복원시킬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은 확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파일이 만약에 어떻게 수정이 되거나 사용자가 어떤 행위를 했다, 그러면 그 시스템, 우리가 윈도우즈 컴퓨터라고 하면 컴퓨터 자체, 서버면 서버 자체, 그 디스크 자체가 전체적으로 있으면 그 안에 있는 로그파일에 어떤 임의적인 조작을 가했다 안 했다(를 알 수 습니다.) 사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밝혀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파일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것보다는 신빙성 있게, 신뢰성 있게 판단할 수 있죠.
– 김진국 플레인비트 대표

포렌식 분석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해킹팀의 소프트웨어가 실행됐던 국정원 컴퓨터의 원본 하드 드라이브를 확보해야 합니다. 만약 국정원이 로그파일만을 제공한다면 그것의 조작 여부를 확인할 확실한 방법은 없다고 봐야 하고요.
– 빌 마크잭 토론토대학 시티즌랩 연구원

국정원, 국민 신뢰 회복할 마지막 기회 잡을 수 있을까

지난 29일 여야는 민간 추천 전문가와 국정원 기술진의 간담회 개최에 조건부 합의했다. 이때 야당은 국정원이 RCS 데이터가 담긴 하드디스크 원본 등 6개 자료가 제출되지 않으면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디지털 보안과 포렌식 전문가들이 제시한 검증 방식의 틀에 부합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정원도 민간인 사찰 의혹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데 필수인 디지털 증거를 제시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국정원장 직을 걸겠다고 밝힐 정도로 자신이 있다면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검증 방법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이미 대선 개입과 간첩 증거 조작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국정원이기에 더더욱 그렇다.

목, 2015/07/30-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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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세계를 배회하고 있다. ‘극우’라는 유령이. 이 유령은 ‘포퓰리즘’, ‘반(反)기성정치’, ‘분노’ 등 다양한 이름으로도 불린다. 분명한 건 이 유령이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아 국제사회를 휩쓸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 유령은 미풍에서 태풍으로 몸집을 계속 불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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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내년 4월 대선에서 돌풍이 점쳐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express.co.uk/)

이 태풍은 2017년 4월 프랑스 대선까지 휘몰아칠 전망이다. ‘프랑스의 트럼프’로 불리는 마린 르펜(48) 국민전선(FN) 대표가 유력한 주자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당 소속 프랑수아 올랑드 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대선은 제1야당인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62) 전 총리와 르펜의 대결로 치러지게 됐다. 현지 여론조사는 피용의 우세를 점치고 있지만, ‘르펜 바람’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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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4월 프랑스 대선에서는 국민전선의 르펜, 보수세력인 공화당의 피용(가운데), 현직 대통령인 사회당 올랑드의 3파전이 예상되고 있다.

프랑스의 유럽연합(EU) 탈퇴, 자국 우선주의, 이민자 배제 등 극우 성향의 정책을 앞세운 르펜은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각종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켜 왔기 때문이다.  ‘똘레랑스(관용)’로 상징되는 프랑스가 르펜을 선택할지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극우주의가 반짝 돌풍으로 끝날지, 새로운 물결로 봇물이 터질지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극우주의자 아버지의 정치적 상속자

르펜은 1972년 국민전선을 창당한 장 마리 르펜의 막내딸이다. 장 마리 르펜은 인종차별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며 프랑스 극우 세력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가스실 이야기는 2차 세계대전의 소소한 세부사항 중 하나일 뿐”이라며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부정하는 등 반(反)유대, 반(反) 이민에 확고한 입장을 보여온 극우전선은 똘레랑스의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에서 ‘이단아’로 취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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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역군인 출신인 장 마리 르펜(왼쪽)은 드골의 알제리 정책에 반발하면서 1972년 국민전선을 창당한 뒤 40년 가까이 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1년 당권을 딸인 마린 르펜에게 넘겼다.

하지만 장 마리 르펜이 각종 선거에서 2002년 대선에서 결선 투표에 오르며 프랑스 사회에 충격을 주는 등 2000년대 이후 주류 우파와 경쟁하는 위치에 올라섰다. 르펜은 아버지가 뿌린 씨앗을 꽃피우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호사 출신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 유세를 따라다닌 그의 정계 입문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1998년 지방의회 선거 당선되며 정치 이력을 시작한 그는 ‘아버지의 후광’ 덕분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2004년 이후 유럽의회 의원 3선을 지내며 정치력을 쌓아왔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정체성은 아버지와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는 유년 시절의 강렬한 기억을 묻는 말에 ‘다이너마이트’라고 답했다고 한다. 1976년 그가 8살이던 어느 날 밤, 집에 폭발물이 터지는 테러를 당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국민전선을 창당 한 뒤 르펜을 포함한 세딸은 “파시스트의 딸’, ‘악마의 딸’이라고 불렸고,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할 때도 르펜 집안이라는 이유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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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르펜은 장 마리 르펜의 세 딸 중 막내이다. 왼쪽 사진에서 엄마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 마린 르펜이다. 오른쪽 사진은 1974년 아빠 장 마리 르펜의 품에 안겨 있는 마린 르펜의 모습. (사진 출처: http://internacional.elpais.com/, http://www.dailymail.co.uk/)

그는 “정치가 목숨을 요구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하며 “살아남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해왔다. 실제로 그는 국민전선에서 가장 열심히, 독하게 일해온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유럽 우파 정치그룹의 리더로 성장…아버지 제명키도 

르펜이 세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게 된 계기는 그는 2012년 대선과 2014년 5월 유럽의회 선거였다. 2012년 대선에서 17.9%의 득표로 3위를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킨 그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국민전선을 프랑스 제1당으로 끌어올렸다. 

반(反)유럽연합(EU)과 유로화 탈퇴, 반이민정책을 내세운 국민전선이 24.8%득표율로 중도좌파 집권 사회당(PS)과 중도우파 야당인 대중운동연합(UMP)을 제쳤다. 당시 유럽은 이를 두고 ‘쓰나미, 허리케인, 빅뱅’등으로 표현하며 당혹함을 감추지 못했다. 

2015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그를 “유럽 우파 그룹의 리더”라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 명단에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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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 르펜과 그녀의 조카딸인 마리옹 르펜(오른쪽). 국민전선을 창당한 장 마리 르펜의 손녀이기도 한 마리옹 르펜은 빼어난 미모로 국민전선의 ‘포스터걸’로 주목을 받았으며, 프랑스 역사상 가장 어린 22살 때 하원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마린 르펜 이후 당권을 넘겨받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사진은 2015년 지방선거에서 의외의 선전을 하자 함께 기뻐하는 모습. (사진 출처: BBC)

그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철저히 아버지와 선긋기를 통해 지금의 성공을 이뤘다. 2011년 당 대표 취임 뒤 그는 ‘악마’ 이미지를 세탁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르펜은 르펜이고 마린은 마린이다. 나와 아버지의 역사관은 다르다” “국민전선이 프랑스인 전체에 호소하는 거대 대중정당이 되길 바란다”며 아버지의 극단주의와 거리를 뒀다. 

두번 이혼하고 세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기도 한 그는 성차별주의자, 반유대주의자라고 불린 아버지의 악명을 지우면서 반이민, 반이슬람을 중심 의제로 옮겼다. 당내 인사들이 인종차별 발언을 하면 징계를 내렸고 급기야 2015년 5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발언을 반복한 아버지를 당에서 제명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프랑스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 세계화 반대, 보호 무역주의, 복지 확대 등 ‘좌클릭’ 정책을 연이어 내놓았고 재벌을 맹렬히 공격하며 노동계급과 실업자들의 지지를 끌어안았다. 20~40대 정치 신인들을 과감히 수혈해 ‘기성 엘리트 정치인 대 젊은 피’의 구도도 만들었다. 국민전선이 선거마다 선전하고, 그가 유럽 우파의 새로운 리더로 평가받게 된 배경이다. 여기에 연이은 유럽의 테러로 고조된 반이슬람, 반이민 정서가 르펜의 뒤에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세계는 그의 유연한 행보에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르펜은 2010년 이슬람교도의 거리 기도를 두고 ‘나치의 프랑스 점령’에 비유해 재판을 받기까지 했고, 여러 언론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아버지보다 다소 유연할 뿐, 극우파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정체성과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의 본질은 그대로라는 시선이다.

기득권 정치에 대한 불만이 정치적 동력

세계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과 르펜 열풍 등 소수의 극단적 주장으로 치부하던 세력의 부상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당과 언론과 지식인들도 각각 엇갈린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부상이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모순이 곪을 대로 곪은 지금의 세계를 자양분으로 삼아 자라나고 있다는 것이다. 

앞부분에서 인용한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은 19세기 자본주의 체제 모순을 뚫고 나왔다. 지금의 극우주의 열풍은 마르크스주의와 유사성을 찾을 수 없지만, 그 배경에는 세계화, 소득 불평등, 테러의 공포 등 사회경제적 모순이 자리 잡고 있다는데 유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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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마린 르펜의 연설회에 참석한 한 지지자가 그녀를 대통령으로 만들자는 지지 피켓을 들고 있다.

주류 정치인들과 엘리트로 향하는 성난 민심을 트럼프나 르펜 등이 적극 대변하는 것이다. 르펜은 쉬운 문장으로  “정치 엘리트들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이민자가 아니라 프랑스인을 위한 복지제도가 필요하다” 저학력·저소득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똑같이 낡은 인물들, 똑같이 낡은 공약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르펜의 앞에서 프랑스 기성 정치인들은 쩔쩔매는 상황이다. 트럼프에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 역시 ‘엘리트·기득권 세력’으로 몰렸다.

문제는 르펜의 선전이 그의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똘레랑스의 프랑스를 이민자 혐오, 반이슬람주의 등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 역시 트럼프의 당선과 함께 흑인과 동성애자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공포에 휩싸여 있다. 노동자들의 분노를 엉뚱한 데로 돌리고, 세계가 힘들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와 인권을 하루아침에 무너트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헬조선’이라는 자조 속에 ‘박근혜 대통령 게이트’로 요동치는 한국 사회 역시 “한국의 트럼프’., ‘한국의 르펜’은 없을 것이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수, 2016/11/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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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영국 페이퍼 컴퍼니 552억 원에 인수
인수 4년만에 자본 전액 감액, 수백억 원 날려

2011년 포스코가 인수한 영국 등록 법인이 영국 공시자료 상으로 자산이 전혀 없는 페이퍼 컴퍼니라는 사실이 파나마 로펌 모색 폰세카 유출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포스코의 해외법인 인수 과정을 보여주는 모색 폰세카 내부 자료는 계약서와 각종 증서, 이메일 등 수백 건에 달한다.

문제의 법인은 EPC Equities(이피씨). 영국 런던 인근에 주소지(Invision House, Wilbury Way, Hitchin, Herts, SG4 0TW, U.K)를 두고 있는 유한책임회사(LLP)다. 모색 폰세카 내부 자료와 포스코 공시자료에 따르면 2011년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은 이 회사의 지주회사 격인 파나마 소재 S&K홀딩으로부터 각각 50%(394억 원), 20%(157억 원)의 지분을 인수했다. 또 2014년에는 남은 지분 30% 중 10%(약 59억 원)의 지분을 추가로 인수했다. 모색 폰세카는 이피씨 측의 법률대리인 자격으로 이 계약에 참여했다. 포스코는 이 법인의 지분을 사들일 당시 ‘남미 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을 인수 이유로 밝힌 바 있다.

법인 설립지인 영국 국세청에 ‘자산 없는 휴면법인’으로 신고

그러나 모색 폰세카 유출 자료를 보면 이피씨가 영국의 기업등록관청인 컴퍼니 하우스(Companies House)와 영국 국세청(HM revenue&customs)에 세금 관련 신고를 하면서 스스로 실적이 전혀 없는 회사라는 내용의 서류를 제출한 사실이 확인된다. 연간 재무제표와 세금신고서(Tax Return)에 두 기업 모두 Dormant, 즉 휴면법인이라고 기재돼 있다.

▲ 컴퍼니 하우스(왼쪽)와 영국 국세청(오른쪽) 서류

▲ 컴퍼니 하우스(왼쪽)와 영국 국세청(오른쪽) 서류

포스코가 인수하기 전인 2009년부터 최근까지 자산(고정자산, 유동자산)이나 영업실적이 전혀 없었다고 매년 신고했다.

포스코가 인수한 뒤 이 기업의 실적도 의문 투성이다. 포스코건설과 엔지니어링이 552억 원을 들여 사들인 이피씨는 4년만에 완전히 껍데기 회사가 됐다. 2013년과 2014년, 두 번에 걸쳐 장부가액을 감액한 결과다. 그러나 사실상 껍데기 회사가 된 직후에도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은 S&K가 갖고 있던 이피씨의 지분 30% 중 10%를 추가로 매입했다. 자산감액과 지분 추가 인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뉴스타파는 이 의문을 밝힐 단서도 모색 폰세카의 유출자료에서 찾아냈다. 바로 포스코가 이피씨의 대주주였던 S&K와 맺은 지분 인수 계약서다.

▲ 포스코와 S&K의 지분 인수 계약서

▲ 포스코와 S&K의 지분 인수 계약서

계약서에 따르면, 포스코는 2011년 첫 지분 인수 계약 당시 이미 S&K로부터 이피씨의 지분 100%를 2017년까지 모두 인수하는 계약을 맺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 이뤄진 지분 10% 추가 인수는 이 계약에 따른 것이었다.

지분 매도자인 S&K는 ‘땅짚고 헤엄치기’ 계약

그런데 계약서에서 이상한 점이 확인됐다. 사실상의 페이퍼 컴퍼니인 이 법인의 추가 지분을 인수하면서 포스코에 불리한 계약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었기 때문.

2017년까지 매입하게 돼 있는 마지막 지분 20%의 경우, 이피씨의 경영이 아무리 나빠져도 매도자인 S&K는 최초 책정 가격, 즉 2011년 매도가격의 90% 이상을 보장받도록 계약이 설계돼 있다. 심지어 법인이 합병되거나 청산될 경우에도 포스코는 남은 지분 20%를 1272만 달러, 우리 돈 148억여 원을 주고 인수해야 하는 조건까지 포함돼 있었다.

같은 회사인데 공시내용 200배 차이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포스코건설과 포스코엔지니어링의 공시내용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됐다. 이피시에 대한 두 회사의 공시내용이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같은 회사인데도 매출, 순이익 등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2012년의 경우, 포스코건설은 이피씨의 총자산이 366억여 원, 순손실은 1억 4000여만 원이라고 밝혔는데, 같은 회사에 대해 포스코 엔지니어링은 676억여 원의 총자산과 330억 원의 순손실이 났다고 공시하고 있다. 같은 회사인데 같은 회계연도의 손손실 액수가 200배 넘게 차이가 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포스코의 공시내용에 의문을 제기했다.

같은 회사에 대한 공시인데, 자산과 손익이 다른 수치가 기재됐다는 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 김경율 회계사

인수 당시 포스코 건설 대표이사, “그런 회사 모른다”

뉴스타파는 각종 의혹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포스코에 질의서를 보냈다. 포스코측은 뉴스타파 보도 당일인 8일 오후 6시에 보낸 서면 답변서에서 “EPC에쿼티스 자회사인 페루 현지법인이 수행하는 발전소 프로젝트의 손실로 EPC에쿼티스 지분가치가 하락 되어, 당사는 회계기준에 따라 EPC에쿼티스의 투자주식을 감액 처리했다. S&K와의 계약은 공정계약이다. 공시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은 단순한 업무 착오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2011년 최초 인수 계약 당시 포스코건설의 대표이사였던 정동화 전 포스코 건설 부회장은 “그런 회사는 모른다”며 인터뷰를 거부했다. 정 전 부회장은 2011년 인수 계약 당시 포스코건설 측 대표 자격으로 모색 폰세카에 여권사본까지 제출한 바 있다.

한편 포스코는 한때 세계 1위(조강생산량) 철강기업이었으나 최근엔 5위권으로 위상이 추락했다. 2008년 4조 원 넘는 순이익을 냈지만 지난해엔 적자로 돌아섰다. 50만 원대를 유지하던 주가도 20만 원대로 추락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 이후 진행된 무차별적인 인수합병이 경영 부실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포스코는 2008년 이후 전세계에서 총 63개의 법인을 사들이거나 설립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매년 적자를 내며 포스코의 부실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진행된 검찰수사 과정에서 해외비자금 조성, 주요 임원들의 횡령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금, 2016/04/0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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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2017년 3월까지 9,842명이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보상을 받았다.

건국훈장 보상금이 약 525만 원인 반면 민주화운동 보상금은 이보다 10배 많은 1인 평균 5,572만 원이었다. 민주화유공자 유가족들에게 부여한 공직시험 가산점에 대해서도 과도하거나 치우침이 없도록 바로잡겠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20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를 찾아 보훈⠂안보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말한 내용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지난 20일 평택 해군 2함대를 찾아 보훈 공약을 발표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지난 20일 평택 해군 2함대를 찾아 보훈 공약을 발표했다.

1.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보상받은 사람이 9,842명?

사실이 아니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에 따르면 2017년 4월 20일 기준, 민주화운동으로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총 4,937명이다.

홍 후보가 잘못 언급한 9,842명은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명예회복을 인정받은 사람의 숫자이다.

2. 민주화운동 보상금이 1인당 평균 5,572만 원?

홍 후보가 발언한 지난 20일 기준, 법 제정 이후 민주화운동총 지급된 전체 보상금액은 1146억 2,500만 원으로 파악됐다. 실제 보상금을 지급 받은 4,937명으로 총금액을 나누면 1인당 평균 약 2,320만 원이다.

홍 후보가 언급한 1인 평균 5,572만 원과는 두 배 넘게 차이가 난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개개인에게 적용될 수 있는 차이가 커서 일괄로 평균을 산정하는 것부터 실제 현실과 안 맞는 부분이 많다.”고 답했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관련자 및 그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금 등을 심의 결정하는 국무총리 소속 위원회이다.

3. 민주화운동 보상금이 건국훈장 보상금의 10배?

자유한국당에 문의한 결과, 홍 후보가 언급한 ‘약 525만 원의 건국훈장 보상금’은 ‘독립유공자 보훈제도’에 근거해 건국훈장 1~3등급에 해당하는 애국지사 본인에게 매달 5,258,000원씩(2017년 기준) 지급되는 ‘보훈급여금’을 지칭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 후보는 매월 지급되는 보훈급여금 한달치와 일괄지급하는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단순비교해 10배 차이가 난다고 말한 것이다. 게다가 민주화운동 보상금의 액수와 대상자는 실제보다 2배나 부풀렸다.

2017년도 보훈급여금 월지급액

▲2017년도 보훈급여금 월지급액


취재:연다혜

화, 2017/04/2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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