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기금 및 연회비 납부현황
입춘이 막 지난 다음날 가벼운 차림으로 설레는 등산길 나섰다. 과거 민주화운동선배 친우들과 서울 구룡산, 대모산 등산 나들이 가기 위해서 ...
약속한 9시 양재시민의 숲역 앞에 모인 사람은 모두 11명 그다지 큰 모임은 아니다..
정치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예전과 같지 않은가...
나부터도 어려운 처지에서 살면서도 정치에 그다지 관심은 없다. 그래도 올바른 정치가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은 가져야 되겠지만.
대학 다니던 때 생각이 난다. 개인적으로 학교생활 내내 모든게 어려웠었다 철학공부도
어려웠고 또 사회과학도 어려웠고 취업준비 가정상황 등등 모든게 풀기 힘든 어려움이었다.
삶에 대한 뚜렷한 목표나 각오 없이 살다보니 모든게 실패였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하고 식구들과 안산에 내려와서 나름 열심히 살았던 거도 같은데
모든게 뜻대로 안돼서 친구들과 연락도 두절하고 산지 20년 가까이 되는듯하다. 그동안
체중 늘고 배나오고 건강도 별로 안 좋은 상태...
어찌됐건 정말 오랜만에 선배 친구들 만나고 산행에 나서니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오를 수나 있을까 등산이 시작되고 구룡산 자락 주택가를 벗어나 경사진 산길로
200미터도 못가 숨이 가쁘다, 몸이 무겁다, 식은땀이 흐른다. 구룡산 정도야.. 하고 별 준비
도 없이 나왔는데 너무 힘들어 자꾸 뒤쳐졌다
겨우 정상에 올랐다.
사진도 찍고 강남도심을 내려다보았다 시원한 느낌... 이제 내려가야지.
대모산을 지나 하산길에 탄허 기념박물관에 들렀다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다
민재가 설명해주었다. 학승으로 유명한 탄허. 화엄사상을 집대성하고 노장사상과 주역에도
조예가 깊었던 분.
몇 년전 증산도장 나가면서 개벽에 대해 공부하면서 탄허스님 예언에 대해 좀 들은바가 있
다. 우주가 후천 대 개벽으로 들어선다는 거 지축이동이하며 지구가 태양주위를 정원궤도
로 공전하게 된다는 것 등등..
5시간 정도의 산행을 마치고 산기슭에 하우스가든에서 식사 겸 마무리....
막걸리로 피로를 씻고 닭도리탕으로 안주 삼아 소주 몇잔 마셨다 편안한 느낌..
그러나 그동안 사회운동에 관심이 없어서 좀 어색했다 낄 자리가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이제부터라도 정치사회 관심 좀 갖고 선배님들로부터 배우고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해야지..
이제 헤어지나 했는데 인근에 유네스코 지정 유적이 있단다.
광평대군묘등 왕족무덤 700기가 안장돼 있는 거대 한 집단 매장지 ...
등산 내내 민재가 설명을 많이 해주었다 인명 지명 듣기 힘든 야사 비사들까지...
역사에 조예가 깊은 것 같네.
우리는 가벼운 산행을 했지만 친목도모에 역사탐방에 건강까지 위하며 유익한 등산이었다.
산행은 계속해야 할 것 같다. 사람들과도 자주 어울리고 변화를 해야지 살기 위해서는 누구
나 변화해야한다.
개인적으로 그동안 했던 일은 운전일, 동네마트운영, 대리운전, 네트웍 사업 등등이다.
생계를 위해서 하는 일 외에 하는 일은 깨달음 영성관련 서적 보는 것. 그동안 본거로는
데이비드 아이크 동이문화원 외계은하문명, 한민족의 비밀, 그리스도예수가 아닌 임마누
엘 예수 소위 음모론, 유대 시온의정서, 그림자정부 , 유에프오와 외계인 지구차원전환,
천상의 메시지, 주역, 정역, 증산 등등 이다
정치인 중에는 허경영의 도인정치 등이
나의 관심사이다..
인류가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위대한 인간성을 찾기를 원한다.
인간은 지구행성의 주인이자 우주의 주체이며 창조자다.
모든 만물은 생명이고 모든 생명은 하나다. 그 하나가 곧 하나님이다.
인간은 모두 우주에서 왔고 우주의 주인이며 우주의 일부분이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다 희생하신 이동환(83/철학)학형을 비롯한 민주열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며 삼가 재배 올립니다.
박영숙(84/사학)운영위원이 단장으로 있는 지역아동센터중앙지원단 사무실에서 2월 운영위가 열렸다. 박영숙운영위원은 사무실 회의실에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간식과 음료까지 마련하여 줘 모두 감사의 마음으로 운영위를 시작하였다.
또 2016년 들어 첫 운영위인 이날 임정태부회장도 참석하여 사뭇 분위기가 더 좋았다.
이날 운영위에서는 2015년도에 연회비 및 기금 납부 상황을 공유하고 2016년은 2015년 보다 더 많은 회원들의 참여를 위해 운영위원들이 열심히 뛰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2016년 서강민동 총회를 평가하면서 2017년에는 총회 참가비 3만원을 공지하기로 하였다.
안건으로는 의기제36주년을 맞아 의기준비단, 서강대총동문회와 연계하여 서강민동회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초대하는 작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더불어 올해에도 300만원을 준비단에게 지원하기로 하였다.
두 번째로는 조직 확대와 재정 확충을 위해 운영위에서 지속적으로 논의하기로 하였으며 2월부터 경조사 등 여러 부분으로 참여를 하고 있는 회장에게 월 20만원씩 판공비를 지급하기로 결정하였다.
김상옥열사 22주기 추모제 엄수되다.
2016년 2월 21일(일요일) 오후 12시 반에 이천 민주공원에서 추모제가 있었다. 마석모란공원에서 작년 말 이장 후 첫 번째 추모제였다. 그동안 김영수(80/정외)동문과 80학번 동기들이 주도적으로 김열사 추모제를 진행해왔었는데 이번부터 직접 김열사에게 공부했던 82학번들이 주도적으로 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그래서 이번 행사 진행부터 비용부담까지 82학번이 맡았다. 행사에는 유장수(79/ 정외)동문부터 김영수, 김젬마, 김영이 등 80학번 동기들과 82학번이 다수 참가하였고 고교 동기와 한민노련과 민족민주연구소 동료들도 참가했다.
김영수동문의 이장 등 경과보고에 이어 강경대 아버님의 다소 긴 인사말이 있었다. 사회를 맡은 전원배(82/정외) 전 민동회장은 ‘이장 및 이 민주공원 설치에 따른 설왕설래는 우리 관심이 아니니 앞으로 그런 말은 삼가달라’고 점잖게 충고했다. 이어서 오세제(81/철학) 민동회장이 김열사를 회상하며 ‘이 엄혹한 시대에 희망을 얻으러 왔다’는 지극히 간단한 인사말을 했고, 큰누님의 인사말을 듣고 마구잽이 공연을 보았다. 정일수(79/경제)와 이주섭(83/불문), 이장길(89/경제) 삼인이 함께 삼인 진혼무를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추고 고인의 넋을 위로했고, 이어서 가족부터 선후배까지 절하고 제사를 마쳤다. 인근 식당으로 옮겨 늦은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나의 구속투쟁기1
- 개만 격렬하게 저항하고
2015년 9월 13일, 이 땅 2천만 노동자의 목을 죄는 끔직한 합의가 노사정간에 이루어졌다. ‘9.13 노사정 야합’이 바로 그것이다. 그날 합의한 것들은 그 어떤 노동법보다 노동자에게 치명적이고, 악랄한, 대놓고 노동자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내용들이었다. 대한민국에서 ‘해고’라는 단어가 문제가 된 것이 김대중 정권 초기인 1998년이었다. 그때 정리해고제를 막기 위해 무던히도 싸웠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옥쇄투쟁을 마지막 보루삼아 정권과 사투를 벌였으나 끝내 정리해고제 입법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영상의 긴박한 어려움이 있을 때 노사가 합의나 협의를 해야 가능한 정리해고가 아닌, 사장이 보기에 업무성적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마음대로 해고를 시킬 수 있는 일반해고법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정리해고가 판치고 있는 살벌한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마음대로 해고법’을 지들 마음대로 만들겠다는 선전포고인 것이다. 게다가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이고, 취업규칙도 마음대로 바꾸고, ‘임금피크제’를 통해 50대 가장들의 임금을 대폭 깎겠다고 한다. 드러내놓고 자본천국, 노동지옥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100만원이 약간 넘는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27%, 200만원을 못 받는 노동자가 60%를 넘는 대한민국이라는 삭막하고 살벌한 땅,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하는 젊은이들. 2014년 보훈처가 취업한 제대군인 3천 61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62.6%가 비정규직이고, 평균 연 소득은 2천 525만원으로 파악됐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를 넘어, 인간관계와 집을 포기하는 5포 세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꿈과 희망까지도 포기한 7포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그들. 이번 야합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노동조합이라는 최소한의 방패막이도 없는 중소영세미조직노동자들과 비정규직, 그리고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취업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젊은이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무자비하고 무제한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로 인해 ‘노동개악’을 ‘노동개혁’으로 생각하는 국민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경제학자 존 K. 갤브레이스의 말대로 통념은 진실일 필요는 없다. 통념으로 한번 굳어지면 다중의 힘에 의해 거대한 파도로 나타나기 때문에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깨지기 힘들다. 문제는 이러한 통념이 대중의 작은 믿음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세력에 의해 조작되고 세뇌되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더 이상 사무실에 앉아서 이 사태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시민들을 직접 만나서 이번 야합의 본질을 이해시키고, 같이 투쟁해 줄 것을 호소하기 위해 2015년 10월 12일 민주노총 경기도본부는 수원역 광장에다가 천막을 치고 농성에 돌입했다. 그 농성을 실질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조직국장이 당시 나의 직책이었다.
천막농성을 시작한지 보름이 넘은 10월 29일, 아침 선전전을 마치고 허기를 달래고 있는데 급한 연락이 날아들었다. 본부 미조직비정규국장 집에 압수수색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밥을 먹다말고 본부장, 사무처장과 함께 그 집으로 달려갔다. 압수수색은 거의 마무리가 돼가고 있었다. 이게 뭔 짓이냐고 소리쳐봐야 허공에 대고 외치는 대답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그저 망연히, 허탈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압수수색 물품은 이번 노동절 때 입었던 옷과 신발, 선글라스, 목도리 등이고, 이유는 그날 경찰버스를 당겼던 밧줄을 가방에서 꺼내는 장면이 사진에 찍혔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경찰이 보여준 사진 속에 내 모습은 없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치 앞을 못 본 바보같은 생각이었다는 것이 바로 다음날 명쾌하게 드러났지만 말이다. 민주노총 중앙사무실에 연락을 하고, 법률원 변호사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대책회의를 하는 등 부산을 떨었으나, 당장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상황을 계속 지켜보기로 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다음날 출근을 하려고 아파트 문을 나서는데 갑자기 시커먼 놈들이 달려들더니 “국장님, 들어가시죠.”하는 것이었다. ‘이 아파트에서 나를 국장님이라고 부를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데 누구지’ 순간 뒤통수를 강하게 치는 생각, ‘허, 짭새들이구나’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아무런 생각도,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순간, 그들이 내 손에서 핸드폰을 압수하고 말았다. 그때서야 드는 생각, ‘핸드폰에 저장된 중요한 내용들을 지웠어야 하는데. 모든 정보가 통째로 넘어 가버렸으니, 아,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압수수색에 순순히 임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파트 복도의 열린 창문을 보고 저리로 핸드폰을 던져버릴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할 수 없이 아파트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건장한 ‘떡대’들 5명의 호위를 받으면서. 출근한다고 나간 사람이 다시 들어오니 자기 방에 있던 아들 녀석이 잠깐 나와 보고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직까지 출근도 안하고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우고 있던 가장님은 부스스한 모습 그대로 무슨 일인가 하고 안방에서 나왔다. 집에서 키우는 개만 주인에게 해코지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던지 낯선 침입자들에게 격렬하게 저항을 했다. 그나마 위안이 됐다. 개에게라도 위안을 삼아야 하다니, 내 처지도 참...
경찰버스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힘차게 끌고 있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찍힌 사진을 보여주면서, 그들은 압수수색 물품 명단을 통보했다. 핸드폰, 핸드폰 케이스, 모자, 마스크, 반팔티, 청바지, 신발이 그 대상이었다. 대충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얼굴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진 속 인물이 내가 아니라고 우기면 지들도 증명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진 속의 증거물품들을 확보하기 위해 친히 방문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5월 1일에 있었던 사건을 이제야 들춰내는 것도 이해가 됐다. 사진 속 인물이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박선봉이라는 것을 특정하는데 5개월 가까이 걸린 것이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압수 물품을 직접 찾아주겠느냐고 물어서 알아서 찾아가든 말든 맘대로 하라고 하고, 소파에 주저 앉아버렸다. 항상 정신이 없는 우리 집 꼬락서니를 고려하면 그 물품들을 다 찾는데 고생깨나 할 거라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앉아있는데, 웬걸, 그 시간은 10분을 넘지 못했다. ‘헐, 이럴 수가. 나도 한 시간은 찾아야 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도대체 저걸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그것도 정확하게 찾아낸단 말인가. 이것들이 미리 집안 수색을 하고 갔었나. 아니면 가장님이 혹시 저들과 내통을 했나? 혹시 격렬하게 저항하던 개가?’ 지미럴, 짭새들도 잘하는 것은 있었다.
그들이 난리법석을 떨고 난 뒤에 본부장과 사무처장이 숨을 헐떡거리며 들이닥쳤으나 이미 상황은 끝난 후였다. 총연맹에 연락을 하고, 변호사들과도 통화를 하고, 대책회의 시간을 정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난 후 수원 도본부 사무실로 향했다. 총연맹 관계자가 내려오고, 법률원 변호사들의 의견을 들어서 대책을 논의했다. 일단은 주변 정리가 필요해서 컴퓨터로 지울 수 있는 핸드폰의 SNS 내용은 다 지우고 모든 방에서 탈퇴를 했다. 관련 문서들도 없앴다. 다른 지부나 산별연맹에도 이런 사실을 알렸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소환장이 날아왔다. 저들의 총구는 명확하게 민주노총 경기도본부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소환대상자는 본부장과 조직국장인 나, 그리고 미조직비정규국장 등 3명이었다. 혐의는 특수공공물손상과 일반도로교통방해 등이었다. 총연맹의 판단은 1~2명은 구속이 불가피할 것 같다는 것이었다.
3번째 구속에 대비를 해야 했다. 첫 번째, 두 번째는 현장에서 검거가 돼서 곧바로 구속이 되는 바람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는데,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충분히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다. 제일 먼저 빵에 들어가서 읽을 책을 골랐다. 그동안 읽으려고 사놓기는 했으나 바쁜 일정에 밀려 책꽂이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책들이 20권이 넘었다. 그런 다음 주변에 널리 이 사실을 알리고 차근차근 충분하게 송별회를 가졌다. 거의 매일 송별회가 열렸고, 한 동안 먹지 못할 지도 모르는 술을 마음껏 마셔댔다. 이러다 구속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찜찜한 마음을 한구석에 묻어둔 채.
불안하고 초조한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11월 11일, 13시경에 총연맹 법률원 변호사를 대동하고 남대문 경찰서로 1차 소환조사를 받으러 갔다. 담당 형사가 보여주는 사진은 200장이 넘었다. 대부분이 내가 주인공인 사진들이었다. ‘아니, 저것들이 이 많은 사진을 언제 채증을 한 거야. 나는 도대체 이런 사실을 왜 몰랐을까?’ 조사 도중 쉬는 시간에 형사가 해준 얘기는 더 충격적이었다. 우리 집에까지 미행도 했다는 것이다. 9월 23일 집회가 끝나고 1차로 저녁을 먹고, 2차로 술을 먹은 장소는 물론이고, 전철을 타고 금정역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바꿔 타고 집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미행을 풀었다는 것이다. 섬뜩함과 함께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그 정도로 긴장이 풀어져 있었던 건가. 미행방지 교육을 수차례 받기도 했는데...
변호사와 상의를 해서 인정할 거는 대부분 인정을 했다. 마지막까지 다툼이 있었던 것은 공모사실 여부였다. 경찰 쪽에서는 당연히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차원에서 공모를 했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고, 우리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우겼다. 다른 하나는 경찰버스를 나는 당기기만 했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직접 버스 바퀴에 밧줄을 묶기도 했다는 것이다. 흐릿하게 내가 버스 바퀴 앞에 쭈그리고 앉은 사진이 있기는 했으나 그것만 가지고는 판단이 되지 않아 나도 완강하게 버텼다. 조사를 마치고 경찰서를 나오면서 변호사에게 물어보니,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2개월 정도는 감옥살이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2015년 12월 2일, 강추위와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던 날2차 소환조사를 마치고 남대문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박선봉동우의 출소를 축하하며-고진(82/불문>
○2016년 2월 서울민동 상임대표자회의록
*일시 및 장소: 2월6일 오전 11시 30분 인사동 풍류사랑
*참석: 고려대 박래군 회장, 서울대 이호윤 회장, 성균관대 장석교(명륜), 이화용(율전) 회장, 연세대 우영옥 회장, 백소라, 이현우 사무차장, 이창희 사무국장
<안건>
1. 세월호 희생자 추모 광화문 국민상주단 운영 및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
: 세월호 희생자 추모 국민상주단을 계속 운영하기로 하였고, 지금 참여하는 17개 민동(연세대민동- 2월 첫째 시작, 이화여대민동, 고려대민동, 서울대민동, 총신대민동, 단국대민동, 재경원광대민동, 경희대민동, 중앙대민동, 시립대민동, 아주대민동, 경기대민동, 재경경성대민동, 동국대민동, 성균관대민동, 서강대민동, 재경전남대민동(준) 등의 순서)외에 서울지역 다른 민동과 재경민동 등을 더 참여시키기로 함. 매주 3~4개 민동이 돌아가면서 토요집회에 참여하는 집중투쟁은 많은 다른 이슈에 연관된 집중투쟁 등과의 관계로 안 하고, 시간되시는 각 민주동문회 회원들이 나와서 전민동 깃발을 올리기로 함.
2. 4.19 서울민동 공동참배 날짜 정하기(4월16일/4월23일)
: 4.19 서울민동 공동참배는 4월 16일로 정하고, 아침 산행하고 11시 정도에 공동참배를 진행하여 점심 먹고 오후에 세월호 2주기 투쟁에 총집중함.
3. 민주시민교육강좌 참가 및 시민감사아카데미 논의
: 서울시 차원에서 3월부터 진행되는 민주시민교육강좌에 각 민동 회원들이 적극 참가하고, 민주시민교육의 실천적 차원에서 민주시민감사아카데미를 시민자치감사포럼 송병춘대표와 함께 4월말쯤에 진행하기로 함.(이틀 4강 구조로 진행되면 1주나 2주에 걸처 진행할 예정) 송병춘 변호사가 50~60대 왕년의 투사들이 자치단체 시민감사관을 지향하면서 많이 참여한다고 전함.
4. 건대 애학투련 30주년 사업 협조
: 건대 애학투련 준비위원회에서 각 민동으로 연락이 오면 각 민동에서 84, 85학번을 함께 준비하는 주체로 참여시켜 줄 것을 독려함. 또한 이 사업과 함께 지금부터 6월항쟁 30주년 준비사업 진행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로 함.(건대 애학투련30주년 준비위가 6월항쟁 준비위원회에 참여할 것을 적극 권함)
5. 노수석열사 20주년 추모제 참가
: 이번 3월 29일 노수석 열사 기일에 즈음한 추모제에 각 민동 회장님 등이 적극 참여하기로 함.) 더불어 김세진, 이재호 열사 30주년 기일에도 각 민동 회장님 등이 참여하기로 함.
6. 당면 서울민동 총집중투쟁 결의
: 2월 27일 4차 민중총궐기, 3월1일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전면무효투쟁, 4월 16일 2주기 세월호사건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투쟁에 총 집중하기로 함.
7. 기타
- 5.18 전민동 광주순례 날짜를 5월 14일 석가탄신일 관계로 5월21일로 전민동에 제안함
- 전민동 상임대표자 회의를 2월 27일이나 3월 1일 전국에서 서울집중 투쟁하는 날로 제안할 것을 논의함.
- 일본군 위안부 한일합의 전면무효 노숙 거리농성을 일본대사관에서 매일 진행하는 대학생들에게 30만원을 전달하기로 함.
○4차 민중총궐기
2016년 2월 27일(토) 오후2시 서울시청광장
2월 수입-지출 내역
2월 회비 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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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원) |
지출 (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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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역 |
금액 |
비고 |
내역 |
금액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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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월 |
3,118,0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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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
80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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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섭 |
100,000 |
연회비 |
식비 |
107,300 |
|
|
윤종화 |
300,000 |
연회비 및기금 |
임대료 |
100,000 |
|
|
장영란 |
10,000 |
월회비 |
통신비 |
100,000 |
문자/전화 |
|
민양운 |
100,000 |
연회비 |
회의비 |
15,600 |
사무국 |
|
박만수 |
100,000 |
연회비 |
회의비 |
30,000 |
운영위 |
|
이종회 |
100,000 |
연회비 |
연대비 |
50,000 |
전민동투쟁 기금 |
|
안철환 |
30,000 |
총회회비 |
경조사비 |
200,000 |
|
| 판공비 |
200,000 |
||||
| 근조기 |
60,000 |
||||
| 수수료 | 4,000 | 은행 | |||
| 수입총액 | 740,000 | 지출총액 | 1,666,900 | ||
|
총합계 |
3,858,091 |
|
잔액 |
2,191,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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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민주동우회 1차 포럼에 초대합니다.>
일시: 4월7일(목) 저녁 7:30~9:30
장소: 서강대학교동문회관 11층 키노빈스
진행자; 이영욱(78/사학)
“이제 우리 웬만큼은 살지 않았나 싶네요. 20대의 열기를 넘어 훌쩍 40대, 50대에 접어들어서면서 인생의 무언가 다른 차원을 만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깨달음’ 또는 ‘깨달음이후의 빨래감’ 같은 것 아닐까요? 남은 삶을 새로 정돈해서 ‘목적의식적’ 또는 의도적으로 살아나가는 것에 대해서 관점을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네요. 100살까지 산다는데요 뭐, 이제 또 새로 시작하는 거지요. 인생 고참으로서 나설 준비를 해보면 좋지 않겠습니까? 의식개발의 도구 ‘아봐타코스’를 소개하고 함께 나누어 보려합니다.” 미리 궁금하신 분은 연락주시면 책자를 보내드리겠습니다.
<2016 서울, 문화유산 걷기탐방 프로그램>
2015년 서강민주동우회의 산행은 넉넉하면서도 의미있는 소통공간이였습니다. 2016년에는 매월 첫 번째주 일요일은 산행을 지속하고, 걷기 좋은 달 토요일에 훌륭한 해설사 조민재(91/사학)님과 함께 문화유산 걷기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하면 더 좋은 프로그램이니 많은 동우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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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
일시 |
주요 장소 |
상세 구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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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4.16(토) 09시~13시 |
성북동 |
와룡공원~서울성곽~심우장~이태준생가~경신고교~ ~서울성곽~(구)서울시장공관~혜화문~성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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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5.21(토) 09시~13시 |
서 촌 |
배화여고~필운대~체부동~이상생가~청전생가~ 박노수미술관(벽수산장터)~윤동주하숙집~수성동계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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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6.18(토) 09시~13시 |
북 촌 |
헌법재판소~재동백송~박규수집터~중앙고~ 만해생가~배렴생가~인촌생가~여운형생가~운현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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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9. 3(토) 09시~13시 |
정 동 |
상동교회~배재학당~정동제일교회~중명전~ 이화학당~언더우드집터~경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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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11.19(토) 09시~13시 |
남 산 |
장충단공원~서울성곽(신라호텔, 타워호텔, 남산)~ 남산봉수대~안중근의사기념관~백범광장~남대문 |
○안동환(76/사학)동우가 2월6일 강남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빙부상을 치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연락처는 010-3732-0110이다.
○안산 단원을 19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인 부좌현(77/철학)동우가 3월6일(일) 오후 3시 단원구 광덕대로 141 밀레니엄빌딩B동 6층에서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한다. 지난 4년간 우직하게 맡겨진 소임에 열심히 인한 부 동우는 이날 개소식을 통해 20대에도 열심히 국민의 뜻을 실현하고자 노력할 것임을 다짐한다. 연락처는 010-3229-1212이다.
○서천에서 3선 군수의 경력을 자랑하는 나소열(78/정외)동우가 보령.서천의 더불어 민주당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나소열 동우는 “보령-청양-부여-공주-조치원’을 잇는 충청선(충청산업문화철도)을 조기 착공하고 보령·서천지역 관광인프라를 확대하는 등 과감하고 실질적인 정책으로 지역발전을 앞당기겠다”고 약속했다.
또, 나 동우는 장항선의 복선 전철을 추진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을 제도화하는데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어르신들 비율이 높은 지역특성(농어촌)을 고려해 노인복지 확대를 꾀하고 어린이 교육과 육아에도 의정력을 집중해 ‘젊은층이 모여드는 보령·서천’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피력했다. 연락처는 010-2838-7500이다.
○지난 1월 31일 서울 흑석동 원불교회관에서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는 창당 총회 및 창당 대회를 개최하고 노동자 계급정당의 창당을 공식화하였다. 이날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대표를 역임했던 이종회(78/사학)동우가 ‘사회변혁노동자당’의 당대표로 선출되었다. 동우는 창당선언문을 통해 ‘자본주의 억압착취에 맞선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투쟁역사를 계승하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주의 세상을 향한 열망으로 사회변혁 노동자당 창당을 선언하였다. 연락처는 010-6234-5574이다.
○고규홍(79/국문)동우가 2월4일 부천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모친상을 치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연락처는 010-5242-1356이다.
○이병하(81/국문)동우가 2월20일 서울 삼육의료원 추모관에서 빙모상을 치뤘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연락처는 010-3766-5670이다.
○이근호(81/사회)동우가 더불어민주당 서대문구 20대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근호 동우는 ‘서서울 고속버수터미널 유치’, 내부순환도로에 ‘터널식방음벽 설치,그리고 북가좌동야생화단지에 ’어린이전자도서관과 미디어센터‘ 건립을 약속했다. 연락처는 010-5388-0379이다.
○이훈(84/사학)동우가 20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 금천구에서 출사표를 던지며 이목희 의원, 최규엽 예비후보 등과 맞붙는다. 이훈 동우는 국회의원 출마 기자회견에서 "민주후퇴, 민생파탄, 평화공존을 포기한 박근혜 정부와 집권여당의 오만과 독선을 심판해야 한다"며 "김대중 대통령님의 '통합의 정신'과 노무현 대통령님의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정신을 계승하는 세력의 통합으로 이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연락처는 010-5388-0379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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