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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정치개혁시민연대]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⑤ 100인 정당, 한국에선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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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정치개혁시민연대]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⑤ 100인 정당, 한국에선 불가능한 이유

익명 (미확인) | 금, 2015/09/25- 19:40

 

'2015정치개혁시민연대'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거대 정당들의 정치독점을 공고히 하는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 250여 개 시민단체가 모인 연대기구입니다. 서울, 인천, 울산, 충북, 광주, 부산 등 지역 단체들과 여성, 청년 등 부문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당득표에 따른 의석 배분과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캠페인을, 국회를 상대로 거리와 지면에서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개혁 논의가 국회 안에 좁게 갇혀서는 안 됩니다. 전문가, 학계, 시민운동가, 이해당사자 등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모아 연재합니다. 
 
※ 이 칼럼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①] 국회의원 수 늘리는 것, 그것이 개혁이다 - 강우진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②] 전셋값 걱정, 이렇게 해결하세요 - 박창수 목사·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③] 여성의원수 190개국 중 111위, 부끄럽다 - 박진경 인천대 객원교수·여성연합 성평등연구소장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④] 소수자·약자 배려하는 선거제도 개혁되어야 - 이은영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 지도위원

 

 

 

100인 정당, 한국에선 불가능한 이유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⑤] 정하윤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시간강사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의 매개자로서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정당이 국민과 정부를 연결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당설립, 조직결성, 활동 등 정당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8조 제1항에서도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고 명시하면서 정당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에서 정당의 실질적 자유는 제한받고 있다.

 

1962년 헌법조항을 근거로 제정된 정당법은 자유로운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명목을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정당의 자유를 통제하고 새로운 정당들의 출현을 제한하려는 의도를 지녔다. 이후 몇 차례의 정당법 개정을 통해 개별 정당의 고비용 정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정당 자유에 대한 통제는 지속되었다. 

 

특히 현행 정당법의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시·도당 구성(제3조)', '중앙당의 중앙선관위 등록을 통한 성립'(제4조), '5개 이상의 시·도당'(제17조), '시·도당의 1천인 이상의 당원'(제18조) 조항들은 사실상 정당설립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과 기득권 중심의 사고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군소정당, 지역정당과 같은 소수 세력을 배제시킴으로써 안정된 다수 세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에 대해 그동안 비판이나 문제제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승자독식을 유도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선거제도 역시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이와 같이 기득권에 유리한 정치제도 하에서 새로운 세력은 도전장을 제출하기도 전에 경쟁의 장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 결과 중앙의 거대 정당들이 정치를 독점하게 되었고,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정치에 중앙정당이 참여하고 개입하였고, 지방선거에서는 중앙의 대리전 양상이 나타났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일당이 지속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어 지역주의가 고착화되었다. 다원화, 지방자치, 분권화의 시대에 이러한 중앙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정치제도는 오히려 역방향의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였다.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결집하여 정책으로 연결시키는 매개체로서의 정당 기능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외국 국가들의 경우, 정당설립 요건이 까다롭지도 않고, 정당원 수에 대한 최소요건이나 중앙당이 필요하다는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의 정당법은 정당 활동을 육성한다는 목적에 근거하여 선거참여의 진지성, 구성원 및 소재지 요건을 요구하지만, 시·도당이나 지구당 당원의 수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일본의 경우, 정당설립에 대한 규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정당으로 등록하면 정당으로 인정받게 된다. 일본 총선에는 정당이 일정한 득표율이나 의석이 있어야 후보 추천이 가능하지만, 지방선거에는 정치단체도 제한 없이 참여가 가능하다. 프랑스에서는 정치단체가 지방선거와 중앙선거 모두 참여할 수 있으며, 신진 세력의 진입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외 국가들에서는 정당을 의견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치단체로 간주하여 정당법보다는 정치자금법으로 정당을 규제하기 때문에 정당의 설립, 조직결성, 활동에 있어 실질적 자유가 존재한다. 외국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한국의 정당법은 새로운 정당들의 설립과 진입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

 

한편 정당법 개정을 통해 정당의 자유를 확대하는 경우, 일정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정당들이 난립하여 정치 불안정성이 초래된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복수 정당들이 정치과정에 진입하여 경쟁을 하게 된다면, 유권자의 선택의 폭 역시 확대될 수 있다. 

 

기존 정당이 간과하였거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였던 환경, 청년, 다문화, 소수자문제 등에 대한 유권자의 의견이 다양한 정당을 통해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정당 설립 요건이 낮아진다면, 동원이 아닌 유권자 참여에 의한 '상향식' 정당 설립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일상생활과 밀착된 문제까지 다룰 수 있게 된다. 만약 자격이 미달되는 정당이라면, 선거에서 유권자의 심판에 의해 자연스럽게 쇠퇴할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들의 경쟁의 장 진입 완화와 다당적 경쟁의 확대는 보장되어야만 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정당법의 중앙당 설립 요건을 폐지하는 경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지방정당이 등장하여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그러나 지역 수준에서 활동하는 지방정당의 허용은 오히려 지방정치를 활성화할 수 있다. 만약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이 지역 내부 동력을 통해 등장하여 성장할 수 있다면, 일당 지배에 도전이 되어 다원화된 경쟁이 이루어지고 결국 지역주의의 고착화된 틀을 깰 수 있다. 따라서 정당법의 서울에 중앙당을 두어야 한다는 규정은 중앙정치와 기득권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폐지되거나 완화되어야 한다.

 

헌법에는 복수 정당제가 명시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중앙의 거대 정당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다. 다양한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들의 자유로운 설립이 보장되어야만 정당의 자유로운 조직결성과 활동이 가능해진다. 즉 중앙정치에 예속되지 않는 자율성을 지닌 정당들이 등장하여 기존 정당과 신생 정당 간 경쟁과 견제를 하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의 복수 정당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개방된 정치과정 내에서 정당들의 다원화되고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유권자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 역시 고취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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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은 정말 ‘작아서’ 존재감이 없는 걸까?

김성희 정치발전소 상임이사

 

진보정당의 평범한 활동가라면 주변사람들로부터 “작은 정당에서 고생하지 말고, 큰 정당에 가서 네 뜻을 펼쳐보는 것이 어떠냐”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특히 이런 이야기는 대개는 가족이나 오랜 친구처럼 활동가를 잘 이해해 줄만한 사람들의 조언일 경우가 많아, 늘 대답이 곤궁해지거나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사람들이 ‘큰 정당에서의 정치’를 추천하는 것은 정치인으로 성공하거나 집권해 실질적인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작은 정당은 정치적으로 성장할 기회도 적고, 정치적 중요성도 낮다고 평가 절하된다. 이러한 생각의 이면에는 ‘큰 정당=큰 정치’ 즉, 정당의 크기와 정당의 능력은 비례할 것이라는 믿음이 상식처럼 자리잡고 있다. 그간 한국 정치의 현실을 보면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이런 생각이, 그러나 과연 온전히 참일까.

 

지난해 내가 일하는 정치발전소에서 독일의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 관계자를 초청에 강좌를 진행했다.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Friedrich Naumann Foundation for Freedom)은 독일의 정당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이 만든 정치재단이다.

 

강좌의 주제는 독일 통일이었지만, 정작 궁금한 것은 나우만 재단의 모조직이라 할 수 있는 독일 자민당이었다. 자민당은 통상 총선에서 7~8% 안팎의 지지를 받고 있는 대표적 소수정당이다. 특히 직전 선거인 2013년 총선에서 5% 진입장벽에 막혀 연방의석을 모두 잃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원외정당이다. 독일의 소수 정당이 갖는 어려움과 과제에 대해 한국의 소수정당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강좌가 끝나고 나우만 재단의 관계자에게 궁금증을 털어 놓았다. “자민당은 작은 정당인데, 앞으로 집권 정당으로 나아가기 위해 당의 볼륨과 능력을 키울 전략은 무엇이냐”라고 물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자민당은 이미 집권정당”이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당의 능력과 미래에 관해서도 그는 “독일 정치를 조금만 살펴봐도 자민당이 독일 정치와 민주주의에 기여한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며 “독일 자민당은 분명 기민당처럼 ‘모든 것을 다하는 정당(catch all party)’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자유주의 이념에 기초해 중소사업가들의 이익을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역할을 더 잘 하는 것이 독일과 유럽을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기에 처하면 당을 단단하게 만들기보다 당이 작아서 안 된다며 선거연합과 몸집불리기 통합을 반복해 온 것이 한국 소수정당의 부인할 수 없는 전사이다. 그러나 같은 소수정당이지만 자민당이 위기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당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선명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당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었다.

 

뒤에 나는 자민당이 기민당이나 사민당보다 더 오래 집권한 정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수정당인 자민당은 기민당, 사민당 등 연정파트너를 바꿔가며 약 40년 이상 집권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 외교나 통일, 독일과 유럽 경제에 있어 자민당의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연방독일을 만든 주요한 정치지도자이자 기본법을 기초한 호이스(Theodor Heuss, 1884~1963) 연방 초대 대통령, 독일의 최장기 외무장관으로 콜과 함께 독일 통일을 이끌었던 겐셔(Hans-Dietrich Genscher, 1927~2016) 외무장관 등이 모두 자민당 출신이다.

 

역시 소수정당인 독일 녹색당도 다르지 않다. 평화주의와 생태주의라는 강한 진보적 이념정당으로 출발한 녹색당은 선명한 이념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당의 실질적인 사회적∙지역적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통치능력 역시 발전시켜왔다.

 

특히 2000년대 들어 그들의 환경 의제가 사민당이나 좌파당, 심지어 기민당으로부터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그랬다. 독일 녹색당은 연방 의석은 작지만, 이미 통치하는 정당이다. 현재 녹색당은 독일연방의 가장 영향력 있는 주 중 하나인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temberg)의 제1당이자 집권당(녹-흑 연정)이다.

 

현대 독일의 정치는 이들 소수정당의 역할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혹자는 제도 덕분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제도만으로 현재 독일 정치의 발전을 다 설명하기 어렵다. 독일의 다원적 정치를 이끄는 챔피언의 자리는 기민당과 사민당 같은 큰 정당이 아니라, 부분으로서 정체성을 발전시키며 동시에 사회적·지역적 기반과 통치능력을 끊임없이 개척해 온 자민당과 녹색당 같은 책임 있는 소수정당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

 

자민당과 녹색당의 사례는 작은 정당도 자신의 특별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정치의 세계에서 충분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부분을 대표하지만 통치의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이정미 의원(왼쪽)과 박원석 전 의원(오른쪽). ⓒ프레시안

나 스스로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진보정당 안팎에서 “당의 규모 때문에 뭘 못 하겠다”라는 식의 불평을 자주 듣는다. 대안으로 제도의 문제를 많이 거론하지만, 정작 정치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실질적 노력은 뚜렷하지 않다.

 

독립적 정체성을 더 예리하게 만들기보다 수권정당처럼 보여야 한다는 것을 알리바이 삼아 큰 정당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매일의 정치 의제를 쫒아 논평 내는 것이 당과 지도자의 능력으로 치부되었다. 선거 때마다 노동을 대표한다고 자임하면서도 실제 ‘노동’을 다루는 당의 정치적 능력과 전문성에서 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보다 더 낫다고 보기 어렵다.

 

큰 정당을 따라하는 외양과 갈수록 빈약해지는 사회적, 지역적 기반 등 내실의 부조화는 진보정당을 뚜렷한 존재감 없이 여론 속에 부유하는 정치세력으로 왜소화 시켰다.

 

경쟁적 정당체제에서 스스로의 존재이유가 분명하지 못한 정당이 제대로 서기 어렵다는 것은 자명하다. 잠정적 차이나 인물에 의존해서는 오래가는 좋은 정당을 만들기 어렵다. 어떤 유권자를 대표하고 무엇을 위해 정치하는지가 분명해야, 지지자들의 열정을 모을 수 있고, 이에 뒤따르는 사회적, 지역적 기반 역시 개척할 수 있다.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의 조각과 인사청문회에 밀려 세간의 관심에서는 비껴 있지만, 대표적인 작은 정당인 ‘정의당’의 당직 선거가 한창이다. 당의 크기와 정치적 중요성이 꼭 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좋은 소수정당이야 말로, 민주정치의 미래를 보는 창이다. 정의당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냐 여부는 곧 한국에서 다원적 민주정치의 가능성과 직결된다. 새롭게 등장하게 될 진보정치의 리더십이, 구 리더십이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정당 만들기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을까. 넘겨받는 짐이 적지 않다.

 

정치의 세계에서 작은 것은 분명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작은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수, 2017/07/0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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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국회에 정치관계법 개정의견 제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법인·단체 정치자금 기탁 금...
목, 2015/06/0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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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현대 민주주의의 최초 모델 가운데 하나인 영국에서 처음 민주주의를 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 의미를 어떻게 정의했을까. 그것은 정당 정부(party government), 즉 정당이 정부가 되는 체제였다. 의회 주권이 강화되면서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는 못한다’는 규범이 자리 잡게 되었는데, 그때 등장한 것이 ‘그럼 누가 통치할 것인가(who governs)?’의 문제였다. 긴 논란 끝에 ‘선거에서 다수 시민의 지지를 받은 정당이 정부를 맡는다’는 정당 정부의 원리가 만들어졌고, 본격적인 제도화 기점은 1868년 총선이었다. 이 선거에서 윌리엄 글래드스톤이 이끄는 자유당이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이끄는 보수당에 압승을 거둬 자유당 정부를 구성했다.

정부가 다수 시민의 지지와 요구에 반응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위임된 시민 주권은 해지된다는 책임 정부(responsible government)의 원리 역시 이 정당 정부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발전했다. 정당이 책임 정치의 보루가 되지 못하면 그때의 통치자는 ‘선출된 군주’에 가깝게 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극 역시 ‘새누리당 정부’로 불릴 수 없게 된 것, 다시 말해 집권당을 ‘박근혜 정부’라고 하는 사인화된 정부의 도구로 전락시킨 것 때문에 발생했다. 특정 정당의 후보로 선출된 대통령이 자신의 정당을 통해 책임 정치를 실천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에서도 ‘선출된 전제정(elective despotism)’은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잘 보여준 것이다. 다음 정부는 어떨까. ‘문재인 정부’나 ‘안철수 정부’처럼 특정 개인의 정부로 불리지 않고 공통의 정견과 가치, 정책을 갖춘 ‘민주당 정부’ ‘국민의당 정부’로 부를 수 있게 될까.

민주주의에서라면 정당은 사회적으로 책임 있고 조직적으로 유능하고 정책적으로 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정부라는 거대한 공공재를 이끌 수 있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선거를 하고 제아무리 좋은 사람을 청와대로 보낸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의 국정 담론과 정책 공약이 화려해도 지켜지거나 실현되지 않는 것은 정당의 조직적, 사회적 기반이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정치가 제도나 형식에만 매달려 존재할 뿐, 민주적 책임성을 감당할 수 있는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나 조직적 토대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다음 정부가 되고자 하는 정당들이 해야 할 역할일 텐데 상황은 밝지 않다.

우리 정당들은 평소에 언론과 뉴미디어에만 존재하다가 선거 때 비로소 사회로 내려오지만 그나마도 개인 캠프가 주도하고 여론조사의 수치 올리기에만 매몰돼 있다. 이래서는 제대로 될 게 있을 리 없다. 후보 개인과 수치화된 여론에 따라 유동하는 선거를 치러서 누군가 집권한다고 한들 안정된 정당의 뒷받침 없이 대규모의 정부 조직과 행정 관료제, 시장경제와 노사 관계, 교육과 문화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수많은 영역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사회 구성체를 무슨 재주로 운영할 수 있겠는가.

지금 한국의 정당들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다. 다른 당 후보를 탓하기 전에 뒤를 돌아 자기 정당부터 돌아봐야 할지 모를 정도로 무질서하고 무조직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한다 해도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감동적인 화음을 만들어 내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지휘자가 청중을 등지고 자신의 팀을 향해 서 있을 때 가능하다. 각각의 악기는 그 자체로는 불협화음이다. 이를 거대한 화음으로 조율해 내는 것이 지휘자인데, 그 아래에서 악기 파트들과 악장들의 역할이 살아나야 좋은 소리는 가능하다. 무대 뒤 보이지 않는 스태프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 모든 게 제대로 되어야 관객들의 반응이나 태도도 제 몫을 하게 된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정치가가 여론을 향해 인기를 끌려고 하는 동안 자신의 정당은 공허해지고 끊임없는 당내 불협화음으로 시민들을 괴롭힌다면 어찌될까. 자신의 정당이 하나의 조직이자 팀으로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치가라면 여론을 뒤에 둘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정당을 제대로 기능하게 만드는 정치가가 대통령이 되고 그런 정당이 책임 있고 유능한 정부를 이끌 때, 민주주의라는 ‘시민의 집’은 제 모양을 갖춰 갈 수 있다. 지금 우리가 또 다른 선출직 군주를 뽑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번 정부가 될 정당을 선택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411/83793110/1#csidx1819994f3f2711ab04a7f7a6dbb3ed8

화, 2017/04/1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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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의 민주주의 교실 <민주주의 강독> Season 3

Season 3에서 함께 읽을 책

  • 절반의 인민주권(샤츠슈나이더, 후마니타스)
  •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앤서니 다운스, 후마니타스)
  • 정당과 정당체계의 변화(피터 메이어, 오름)

 

일시 : 2017년 10월 16일 ~ 11월 20일 오후 7:30(매주 월)
장소 : 정치발전소
수강료 : 6만원(비회원 12만원, 1005-203-267406 우리은행, 사단법인정치발전소)
수강신청 : http://bit.ly/democracy2017-3
회원가입 : http://bit.ly/join_powerplant
문의 : [email protected] / 카카오톡 @정치발전소

* 교재는 개별 지참입니다.

금, 2017/09/15-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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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9일, 청년허브에서 동아시아포럼 : “정당정치: 변화의 정치, 헬조선, 귀도, 같은 좌절, 다른 대안”이 진행되었습니다.

홍콩, 대만, 일본, 한국의 정당 및 시민단체의 청년 활동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각 나라의 정치 상황과 그 속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청년들의 고민을 나눴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가했던 ‘어니언스’에서 발제자들이 나눴던 이야기를 기사로 정리해주었습니다.

발제자들이 가졌던 고민이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를 또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기사 보러 가기 : https://onience.com/2016/12/16/youthforum1/

월, 2016/12/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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