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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정치개혁시민연대]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⑤ 100인 정당, 한국에선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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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정치개혁시민연대]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⑤ 100인 정당, 한국에선 불가능한 이유

익명 (미확인) | 금, 2015/09/25- 19:40

 

'2015정치개혁시민연대'는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거대 정당들의 정치독점을 공고히 하는 선거제도를 바꾸기 위해 250여 개 시민단체가 모인 연대기구입니다. 서울, 인천, 울산, 충북, 광주, 부산 등 지역 단체들과 여성, 청년 등 부문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정당득표에 따른 의석 배분과 비례대표 확대를 위한 캠페인을, 국회를 상대로 거리와 지면에서 펼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개혁 논의가 국회 안에 좁게 갇혀서는 안 됩니다. 전문가, 학계, 시민운동가, 이해당사자 등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모아 연재합니다. 
 
※ 이 칼럼은 오마이뉴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①] 국회의원 수 늘리는 것, 그것이 개혁이다 - 강우진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②] 전셋값 걱정, 이렇게 해결하세요 - 박창수 목사·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③] 여성의원수 190개국 중 111위, 부끄럽다 - 박진경 인천대 객원교수·여성연합 성평등연구소장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④] 소수자·약자 배려하는 선거제도 개혁되어야 - 이은영 전국철거민협의회 중앙회 지도위원

 

 

 

100인 정당, 한국에선 불가능한 이유

[선거제도만 바꿔도 달라진다⑤] 정하윤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시간강사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과정의 매개자로서 국민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의 선택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정당이 국민과 정부를 연결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정당설립, 조직결성, 활동 등 정당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헌법 제8조 제1항에서도 '정당의 설립은 자유이며, 복수정당제는 보장된다'고 명시하면서 정당의 특별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에서 정당의 실질적 자유는 제한받고 있다.

 

1962년 헌법조항을 근거로 제정된 정당법은 자유로운 정당 활동을 보장한다는 명목을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정당의 자유를 통제하고 새로운 정당들의 출현을 제한하려는 의도를 지녔다. 이후 몇 차례의 정당법 개정을 통해 개별 정당의 고비용 정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정당 자유에 대한 통제는 지속되었다. 

 

특히 현행 정당법의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시·도당 구성(제3조)', '중앙당의 중앙선관위 등록을 통한 성립'(제4조), '5개 이상의 시·도당'(제17조), '시·도당의 1천인 이상의 당원'(제18조) 조항들은 사실상 정당설립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과 기득권 중심의 사고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군소정당, 지역정당과 같은 소수 세력을 배제시킴으로써 안정된 다수 세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에 대해 그동안 비판이나 문제제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승자독식을 유도하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선거제도 역시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이와 같이 기득권에 유리한 정치제도 하에서 새로운 세력은 도전장을 제출하기도 전에 경쟁의 장으로부터 배제되었다. 그 결과 중앙의 거대 정당들이 정치를 독점하게 되었고,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다. 지방정치에 중앙정당이 참여하고 개입하였고, 지방선거에서는 중앙의 대리전 양상이 나타났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일당이 지속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어 지역주의가 고착화되었다. 다원화, 지방자치, 분권화의 시대에 이러한 중앙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정치제도는 오히려 역방향의 부정적 효과를 초래하였다. 다양한 국민의 의견을 결집하여 정책으로 연결시키는 매개체로서의 정당 기능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외국 국가들의 경우, 정당설립 요건이 까다롭지도 않고, 정당원 수에 대한 최소요건이나 중앙당이 필요하다는 규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독일의 정당법은 정당 활동을 육성한다는 목적에 근거하여 선거참여의 진지성, 구성원 및 소재지 요건을 요구하지만, 시·도당이나 지구당 당원의 수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일본의 경우, 정당설립에 대한 규정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정당으로 등록하면 정당으로 인정받게 된다. 일본 총선에는 정당이 일정한 득표율이나 의석이 있어야 후보 추천이 가능하지만, 지방선거에는 정치단체도 제한 없이 참여가 가능하다. 프랑스에서는 정치단체가 지방선거와 중앙선거 모두 참여할 수 있으며, 신진 세력의 진입장벽은 존재하지 않는다. 

 

해외 국가들에서는 정당을 의견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모인 정치단체로 간주하여 정당법보다는 정치자금법으로 정당을 규제하기 때문에 정당의 설립, 조직결성, 활동에 있어 실질적 자유가 존재한다. 외국 사례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한국의 정당법은 새로운 정당들의 설립과 진입요건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필요가 있다.

 

한편 정당법 개정을 통해 정당의 자유를 확대하는 경우, 일정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정당들이 난립하여 정치 불안정성이 초래된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복수 정당들이 정치과정에 진입하여 경쟁을 하게 된다면, 유권자의 선택의 폭 역시 확대될 수 있다. 

 

기존 정당이 간과하였거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였던 환경, 청년, 다문화, 소수자문제 등에 대한 유권자의 의견이 다양한 정당을 통해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정당 설립 요건이 낮아진다면, 동원이 아닌 유권자 참여에 의한 '상향식' 정당 설립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일상생활과 밀착된 문제까지 다룰 수 있게 된다. 만약 자격이 미달되는 정당이라면, 선거에서 유권자의 심판에 의해 자연스럽게 쇠퇴할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들의 경쟁의 장 진입 완화와 다당적 경쟁의 확대는 보장되어야만 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정당법의 중앙당 설립 요건을 폐지하는 경우,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지방정당이 등장하여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그러나 지역 수준에서 활동하는 지방정당의 허용은 오히려 지방정치를 활성화할 수 있다. 만약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세력이 지역 내부 동력을 통해 등장하여 성장할 수 있다면, 일당 지배에 도전이 되어 다원화된 경쟁이 이루어지고 결국 지역주의의 고착화된 틀을 깰 수 있다. 따라서 정당법의 서울에 중앙당을 두어야 한다는 규정은 중앙정치와 기득권을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폐지되거나 완화되어야 한다.

 

헌법에는 복수 정당제가 명시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중앙의 거대 정당들이 정치를 독점하고 있다. 다양한 의견을 대변할 수 있는 새로운 정당들의 자유로운 설립이 보장되어야만 정당의 자유로운 조직결성과 활동이 가능해진다. 즉 중앙정치에 예속되지 않는 자율성을 지닌 정당들이 등장하여 기존 정당과 신생 정당 간 경쟁과 견제를 하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의 복수 정당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 개방된 정치과정 내에서 정당들의 다원화되고 자유로운 경쟁이 이루어진다면, 유권자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 역시 고취될 수 있을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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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된다?

자유한국당, 개헌 앞 '욕심' 버려야

 

최택용 콜리젠스 정치정책연구소장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에 전국의 지방분권단체들이 총결집된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와 문재인·홍준표·안철수·유승민·심상정 5당 후보는 '지방분권 개헌 국민협약'을 체결했다. 개헌을 2018년 6.13 지방 선거 때까지 완료하겠다는 것이었다. 대통령후보 TV토론에 참가했던 주요 5당 후보가 모두 약속한 것이다. 물샐 틈 없는 약속처럼 보였다. 아울러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사이에 일 년이 넘는 시차가 있었기에, 여야가 합의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이야 말로 개헌이 가능하리라 기대했었다. 

 

오랜 군부독재 통치의 끝자락에서 헌법을 개정한지가 30년이 넘었다. 헌법이 국가 공동체의 작동원리로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 개헌을 미룰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다. 비대한 수도권과 낙후된 지방의 균형발전을 위하여, 중앙집중형 국가시스템을 지방분권형 국가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문제는 정파 간 이견을 찾기 힘든 사회적 합의였다. 변화된 사회상을 반영한 국민 기본권, 국민 주권 강화도 민주적 공동체를 위하여 더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문재인 대통령이 야 4당 대통령 후보와 함께 약속했던 개헌 공약을 지키자고 촉구하고, 개헌 골든타임을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서 정부 개헌안을 낸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각 정당의 입장이 다른 권력구조 개헌을 제외하더라도, 합의 가능한 지방분권과 국민기본권 확대를 담는 개헌이라도 국회에서 합의해달라고 거듭 요청한 것도 지극히 상식적이다. 

 

더구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통령 후보가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와 협약한 지방분권 개헌은 권력구조 개헌을 전제로 협약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한국당은 왜 약속을 어기려 하는 걸까? '정략적 판단'을 제외하고 답을 찾기 힘들다. 국회의원 3분의 2이상 찬성이 필요한 개헌안 국회의결은 국회의 권한 중에서도 가장 중차대한 권능이다. 입법부인 국회의 책무 중에 법률의 모태인 헌법을 개정하는 것보다 본질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정략에 의해서 헌법을 대하는 것이야 말로 스스로 입법부를 모독하고 한국 정당정치의 모순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개헌 국민투표와 동시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높다. 자유한국당에 불리하다.' 

 

유추 가능한 자유한국당의 '정략적 판단'이다. 민주공화국에서 민심이 덜 반영된 낮은 투표율을 원하는 정당이 존재하고, 자유한국당이 그런 정당이라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너무 슬프다. 기실, 개헌 국민투표와 동시에 치러지는 지방선거가 자유한국당에 불리하다는 근거도 불명확하다. 현실적으로 개헌안은 여야합의에 의해서만 국회를 통과하여 국민투표에 부칠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투표를 하는 개헌안은 특정 정당의 안이 아닌 '국회 합의 안'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정당정치 무용론'이 두렵지 않는가? 

 

소위 '여의도 정치'로 불리는 한국 정당정치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막지 못하였고 스스로 해결하지도 못했다. 결국 국민들이 추운 겨울 거리에 직접 나와서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촛불시민혁명을 통하여 나라를 바로잡아 주셨다. 그러나 국회와 여의도 정당정치는 촛불시민혁명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새 정부출범이라는 변화된 환경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구태의연하고 무리한 정략만이 난무하고 있다. 

 

정당정치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가 좋아지는 것은 힘들 것이다. 그것을 쉽게 방증하는 것이 5당 대통령 후보가 함께 약속했던 '개헌 국민투표와 지방선거 동시 실시'가 무산되고 있는 여의도 정당정치 현장이다. 당원권과 국민주권에 의해서 작동되고 통제되지 않는 정당은 정치인의 기득권에 의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국민을 위한 상식과 합리가 설 자리는 없다. 상대 정당이 실패해야 더 큰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무한 정쟁의 욕구만이 범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나는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 국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을 가져야 한다"라는 헌법 8조 2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구현하는 선거법, 정당법 개정이 앞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여의도 정당정치는 오랫동안 스스로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촛불시민혁명은 단지 정권을 바꾸라는 뜻이 아니었다. 오작동 되고 있는 대의정치에 경고를 보내는 국민주권의 외침이었다. 대의민주주의든 직접민주주의든, 두 가지가 잘 조화된 '뉴(new)민주주의'든 간에 촛불시민혁명 이후의 정치는 달라져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사회주의 개헌·정책 저지 투쟁본부"를 만드는 이 시간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서 '북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이 '종북좌파'로 기울고 있다고 걱정할 참인가? 부끄러움과 염치를 모르는 정치세력은 몰락하기 마련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국익과 국민의 삶이 희생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국민과 약속한 개헌이 정당의 욕심에 의해서 좌절되지 않을 때 여의도 정당정치는 명예롭게 변화될 가능성이라도 보일 것이다. 촛불시민혁명을 일으켰던 국민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월, 2018/04/16-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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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시대와 민주주의

 

포퓰리즘 시대와 민주주의: 정치의 실패인가 전환인가?

 

포퓰리즘은 더 이상 불편한 낙인으로 봉인할 수 있는 과거의 유령이 아닙니다.

포퓰리즘은 현대 정치와 사회질서의 한계를 드러내는 현재의 떨림이자, 비극과 희극 사이 우리가 선택해야할 미래로 가는 서막일 수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와 서울대 아시아도시센터가 함께 준비하는 이번 토론회는 국내외에서 확산되는 포퓰리즘 현상들의 원인과 흐름, 그리고 이 현상과 얽혀있는 ‘위기’의 의미를 진단하고, 이미 확산되는 포퓰리즘에 대해 시민사회운동, 정당, 연구자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해 실천적으로 논의하는 작은 출발을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일시

2018년 11월 30일(금) 오후 2시

 

장소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사회

김윤철 / 참여사회연구소, 경희대

 

패널

진태원 /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손희정 / 문화평론가

장석준 / 글로벌 정치경제연구소

장선화 / 한국외대

정정훈 /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이승원 / 서울대 아시아도시센터

 

문의

참여사회연구소 02-6712-5248, [email protected]

서울대 아시아도시센터 [email protected]

 

화, 2018/11/1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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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주권의 재구성

 

이관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촛불 이후 가장 주목받는 정치개혁 과제는 선거제도의 변화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그동안 한국정치의 대표성 왜곡 문제, 곧 유권자의 투표와 실제 의석수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어 논의되어 왔다. 그 원리는 정당의 득표율과 국회의 의석수를 가능한 일치시킴으로써 정당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를 실제 의석수에 반영하는 것이다. 즉,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에서의 높은 사표율의 발생, 투표-의석 간 낮은 비례성, 거대정당의 과다대표와 군소정당의 과소대표 현상을 해결하는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교섭단체를 형성한 2개의 보수적 정당을 제외한 소수정당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합의했다. 여당인 민주당은 뚜렷한 입장을 내 놓지 않고 있으나 과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정한 바 있다. 또한 국민의 다수가 현행 소선거구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의에서 하나 빠져있는 것이 있다. 왜 정당의 득표율이 연동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요컨대, 득표율과 의석이 '연동'된다는 원칙에서 전자와 후자간의 인과성은 '정당'을 빼면 존재하지 않는다. 연동형비례대표제가 투표율과 의석간의 비례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자주 반복되어 왔지만, 그 메커니즘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 왜 정당이어야 하느냐는 질문은 그 동안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다른 방식의 연동형비례대표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독일식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여러 비례대표제 중에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통해 지역구 의석이 불균형을 보상하는 체제라면, 한국식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성별이나 연령을 기준으로 낙선자 중에서 당선자를 추가 보상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다른 나라에서 그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든지 간에, 이론적으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제도 자체에 정당이 비례적으로 대표되어야 한다는 근거는 없는 것이다. 정당이 '연동'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 선거제도 밖에서 별도의 논리적 근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우리가 정당을 연동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호나 의사표현이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보다는 정당을 지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명백한 증거, 혹은 그렇게 간주해야 한다는 당위적인 논리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는 동시에 각 정당이 비교적 일관되게 특정한 계급적, 정책적,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있으며, 유권자가 그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투표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가정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 더해 유권자들이 본인들의 투표 기준이 실제로 무엇이었든 간에 그것을 정당에 대한 지지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동의한다는 일종의 합의가 존재해야 한다.

 

가령 2018년의 한국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이 각각의 특정한 가치를 표방하고, 각 정당들은 그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대표하거나, 하려고 노력하거나, 적어도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다수의 국민들이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이 어느 정도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서 정당의 득표율을 기준으로 한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유의미한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지금 우리에게 적절한 제도일까?

 

물론 결과적으로 사회의 큰 발전을 가져왔던 모든 제도가 높은 수준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든 일반 국민이 새로운 제도에 대해 사전에 완전히 이해하고 특정한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가령, 사람에 한 표, 정당에 한 표를 찍는 현행 1인 2표제라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만 하더라도 고(故) 노회찬 의원의 헌법소원 청구의 결과였지 국민적 합의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다. 개혁의 과정에서 필요한 질문들을 분별하고, 그것을 통해 개혁의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그 논의의 순서를 잘 정립해 놓는 것은, 정치개혁이 정치적 기만이나 타협의 산물이 되는 것을 막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논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선행 질문은 무엇일까? 그것은 300개의 지역구 선거구로 나뉘어 뽑힌 정치적 대표들이 주권(입법권)을 구성하는 방식이 지금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지역구에서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라는 선거제도는 근대적 보통선거권이 발현되는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이다. 사실 같은 곳에 거주하는 것만으로 누구에게나 동등한 정치적 권리가 부여된다는 것은 실로 혁명적인 평등주의적 발상이었는데, 이는 고대 아테네에서 클레이스테네스가 유권자의 개념을 각각의 부족구성원에서 도시의 거주자, 곧 시민으로 바꾼 것이 그 시초다. 그 이후 같은 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평등한 정치적 권리의 전제조건으로 다시 간주하게 된 것은 2000년 뒤 근대 혁명과정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들면서 지역적 이익보다는 사회경제적 계층을 중심으로 한 이익과 가치들이 충돌하면서, 지역적 대표성보다는 가치를 중심으로 대표 개념의 재조직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동시에 젠더, 종교, 종족, 민족, 환경 등 가치 지향이 정치적 대표를 통해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일부는 실제로 반영되기 시작했다.

 

지역구에서 선출되는 대표가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표의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은 '사실상의 대표(virtual representation)'가 '실제의 대표(actual representation)'의 역할을 해 달라는 요청이다. 직접 그 유권자에게 뽑히지 않은 대표들이 그 유권자들을 위해 일 할리 만무하다. 요컨대, 선거제도의 개혁은 정당의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선거제도 개혁으로 예상되는 '결과'다. 선거제도 개혁의 '이유'는, 지금 대한민국의 입법권이, 주권이 지역구의 대표들을 통해 구성되도록 하는 것을 놔두어도 될지, 아니면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익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변경해야하는지의 필요성에 있다. 중대선거구제와 연동형비례대표제가 결코 동일 선상에서 대안으로 논의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월, 2018/11/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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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스토리, 꿈, 비전 제시
당당한 거창 지역정당 설립 (정치개혁)
거창 군민에게 함박웃음 선사
지속가능한 생태도시 지향 및 친환경 계획(바이오필릭시티) 추진
도심 빗물 저장시설(녹색댐, 도시댐) 구축 및 가로수 관리 책임제
트레킹 루트(국립/도립공원)를 활용한 산악 허브 도시 조성
청년 귀환 및 양질의 일자리 창출 (농촌 맞춤 창업 프로그램, 창업 센터 운영, 지역브랜드 육성, 거창 대표기업 만들기)
아이 키우기 좋은 동네 만들기 (거창교육공동체 정립 및 활성화 조례, 미래 직업교육 위원회, 거창군립 한국어학교 설립 추진)
자율을 존중하는 문화·예술 지원 및 활성화 (거창 박물관 활성화, 지역축제 재고, 공공디자인 연구소, 연극축제 집중)
다문화, 장애인, 노인을 위한 가족·아동 중심 기본정책 전환 (장애인 여행 코디네이터, 시니어 레지던스 선도)
생애 주기별 스포츠 지속 추진 (창포원 활력 프로젝트, 빈집 활용, 1가구 1자동차세 감면, 노후 아파트 재개발, 생활스포츠/건강프로그램 연계)
생활인구 활성화를 위한 거창 싱크탱크 구축 및 거창의 자긍심 높은 도시 조성

이 글은 AI 가 수집 요약한 글 입니다..
토, 2026/06/13-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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