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고] 괜찮다, 괜찮다

지역

[기고] 괜찮다, 괜찮다

익명 (미확인) | 수, 2016/01/06- 12:22

괜찮다, 괜찮다

확 마음이 엎어질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은 예상치 못한 때 온다. 요즈음 만인을 즐겁게 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있었다. 몇 회였지… 어머님 상을 치른 덕선이 아빠가 택이에게 묻는다. “너는 언제 엄마가 보고 싶냐?” 택이는 대답한다. “매일 보고 싶어요….”

그 친구의 볼에 깊이 흐르던 눈물을 보며 주체할 수 없이 엎어졌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맥없이 터졌는데, 지치도록 울었다. 울다가 생각했다. 나는 뭐가 이렇게 슬픈 거지? 세월호 엄마들의 그리움도 뒤집어썼고,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황상기 아버지의 설움도 뒤집어썼다. 지난해 정동진 바다에 뿌린 염호석, 또는 별이 아빠 최종범, 멀리는 배달호와 박창수, 강경대…. 나는 살았는데, 이제는 살아 있지 않은 이들이 빼곡히 떠올랐다. 참 괜찮지 않았다.


마음이 베이고 빼앗겼고 애통했다


그리고 며칠째 영화 제목 하나를 떠올렸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라는 오래된 영화. 줄거리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유독 제목만 기억에 남은 영화. 되뇔 때마다 자꾸 가슴에서 칼이 솟아올랐다. 조계사에서 나오던 한상균,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코와 입에서 쏟아지던 피, 딸들이 흘리던 눈물. 뒤숭숭한 꿈으로 괴로웠던 밤은 불면으로 지새웠다. 결국 제대로 음식을 소화하지 못하던 날, 깨달았다. 가슴에 칼이 돋으면 내 심장이 먼저 베이는 거구나. 마음이 깊이 베인 것을 알게 되었다.


살펴보니 그렇게 되었다. 이미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시키는 국가와 공권력, 자본 때문이다. 끊임없이 숙제를 내주는 그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법, 제도들. 그들은 쉬지 않고 ‘질서’를 이야기했다. 그들은 시간의 승리자였다.


반대편에 서 있으니 기진맥진했다. 빼앗겼고 애통했다. 그들이 조성하는 공포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동하는 공포’에서 파생적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다. 실제 위협이 출현하든 안 하든 인간의 행동을 제약하는 공포에 대해서 그것은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순환되는’ ‘파생적’ 공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또한, 그러하기에 심연에 도달해 있기도 했다. 더 이상 빼앗길 수 없기에 벼랑 끝에 선 자들이 되었다. 민주주의 정체는 괴물과 같다. 예측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갈하게 줄을 서 준법을 외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다. 어쩌면 공포를 조장하는 자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일지 모른다. 본 적 없기에 상상해본 적 없기에 피해가고 싶은 공포가 있다. 그래서 모순적이게도 그들이 먼저 공포를 조성한다.



보지 않았기에 두근거리는 ‘무엇’


조심히 가다듬어보았다. 역사를 바꾼 이들의 정체가 무엇이었나.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기에 역사의 주인이 되었던 자들, 민주주의 정체는 그런 것이다. 지금 몇 가지 제도를 빼앗겼다고 징징거리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해결책은 기승전 박근혜도 아니며, 기승전 새누리당도 아니다. 기승전 자본주의도 아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아니다.

진짜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을 기다리는지 모르겠다. 보지 못했기에 두렵지만, 보지 않았기에 두근거리는 무엇. 응팔, 1988년. 주인공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화합과 전진의 축제, 세계인이 하나되는 자리, 88올림픽’ 세대. 이제 더 이상 어차피 덕선이 남편은 택(어남택), 어차피 남편은 류정환(어남류)에 관심은 없다. 우리 세대는 안다, 로맨스는 끝났다는 것을. 그래서 선택하자면 어차피 민주주의… 닭의 목을 쳐야만 온다는, 그 민주주의. 그러니 당신들은 괜찮다, 괜찮다.


2015.12.31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원문보기 

괜찮다, 괜찮다




* 아래 '공감' 버튼, 페이스북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마이나 키아이」방한 5일차(24일)

세월호 유가족 면담 및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 방문, 백남기 가족 면담 이어가

 

마이나 키아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하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보)은 24일(일) 공식조사방한 5일차 일정을 소화했다. 마이나 키아이는 24일 (일) 오전 11시 경기도 안산시 세월호 정부 합동 분향소를 방문하여 조의를 표하고 4.16 세월호 가족협의회 전명선 대표와 유경근 집행위원장 등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 면담을 가졌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의 안내로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에 가서 유품들을 직접 확인하며, 가족들의 요청으로 예정에 없었던 단원고를 방문하여 빈 교실들을 둘러보고 가족들을 위로 했다.

 

마이나키아이 안산 방문 

  ▲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중인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보 

 

마이나키아이 안산 방문

▲ 단원고를 직접 방문한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보

 

마이나 키아이 유엔 특보는 오후 4시경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앞을 찾았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평화나비 김샘 대표로부터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과정과 의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왜 농성을 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비석을 꼼꼼히 읽었다. 바닥에 이불 몇 장 깔고 농성 중인 대학생들에게 “춥지 않냐”고 물었고, 이에 한 대학생은 “마음이 따뜻하다”고 답했다.

 

마이나 소녀상 방문

▲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찾은 마이나 키아이 유엔특보

 

이후, 11월 14일 민중총궐기시 경찰의 최루탄이 섞인 물대포를 맞고 현재까지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 어르신의 따님인 백도라지님, 11월 14일 민중총궐기 국가폭력조사단 단장 이정일 변호사, 백남기 어르신이 물포에 의해 피해를 입으실 당시 현장에 함께 했던 목격자 등과의 면담을 통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당시 상황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마이나 백남기님 가족 면담

▲ 백남기 어르신 가족인 백도라지님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마이아 키아이 유엔특보

 

공식조사 6일차인 25일(월)에는 경주 발레오 지회 농성장 방문을 방문하고 농성중인 노조원들과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고 26일(화)에는 정부기관과의 면담이 예정되어 있다.  특별보고관의 공식 출국 기자회견은 방한 일정이 마무리되는 1월 29일 오후 2시 30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2016. 1. 24.

공권력감시대응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유엔인권정책센터, 인권운동사랑방,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참여연대, 천주교인권위원회

 

 

일, 2016/01/24- 20:14
268
0

국가폭력을 고발한다 카드뉴스 1탄: 

'공권력'이라 쓰고 '국가폭력'이라 읽는다.


1-01.jpg
1-02.jpg
1-03.jpg
1-04.jpg
1-05.jpg
1-06.jpg
1-07.jpg
1-08.jpg
1-09.jpg
1-10.jpg













* 아래 '공감' 버튼, 페이스북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월, 2016/01/18- 17:36
266
0


작년 1차 민중총궐기에서 백남기 어르신에게 직사되었던 물대포. 

위해성 장비로 분류되는 물대포가 다시는 집회 현장에서 쓰여서는 안됩니다. 

더불어 백남기 어르신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불처벌의 관행이 계속되어서는 안됩니다. 


집회에서의 물대포 사용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받고 있습니다. 

보내주신 서울시청 전광판을 통해 다른 시민들과 공유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금, 2016/12/16- 11:24
260
0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모르겠다. 지나는 사람들의 종종거리는 발걸음이 더욱 시려 보이는 것은. 몇 십 년 만에 찾아 온 한파에 대한민국 곳곳이 얼어붙었다. 빙판이 된 거리, 날지 못하는 비행기, 얼어버린 세탁기 배관과 터져버린 보일러들. 영하의 추위에 얼어붙은 한국사회는 재난이 닥쳐오면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함이 탄로 났다. 복지, 사회적 안전망, 안전과 그 비슷하게 불리 우는 수많은 따뜻함의 조건들은 이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온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국가적 재난에도, 갑자기 바뀌어버린 날씨에도 안전하지 못한 사회는 개개인의 삶과 안녕을 지켜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두말하면 지겨운 이야기가 되었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광화문 한 가운데, 하이디스 농성장의 그/녀들이다.




▲ 민주노총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26일 공장을 폐쇄하고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와 먹튀자본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민중의 소리 정의철 기자)


광화문 한가운데 그/녀들의 이야기

“4조 3교대였어요. 주말에 휴가도 동료들과 시간을 맞춰서 가야했어요. 트러블도 있었죠. 3교대, 4조 3교대, 그러다가 다시 주간. 이렇게 일을 하다보니까 한 15년을 계속 일하고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취업으로 들어간 첫 직장이었어요. 이렇게 짤리고 나니까, 지금은 공장만 다시 돌리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어도, 다시 배우고, 다시 일하고 싶어요. 3교대로 일했지만 그때가 행복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행복했던 걸 몰랐던 것 같아요.”

34살 효선 씨가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하이디스에 취업 한 그녀는 15년의 세월을 하이디스와 함께했다. 하이디스는 그녀의 일상이었다. 가끔은 휴가를 맞추기 위해 동료들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고된 일과가 끝나고 시원한 맥주한 잔에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3교대 근무에 피곤함이 몰려와도 매달 쌓이는 통장의 월급에 웃음이 피어올랐을 것이다.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는 길을 15년 동안 걸으며, 오늘과 다르지 않은 평온한 일상을 보냈을 그녀였다. 하지만 평온함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한 순간. 그녀와 그녀의 동료 330여명은 공장에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330여명의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 그 늘어선 이름들의 의미는 늘 반복되던 일상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330여 명 중 109명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희망퇴직을 신청 했어요. 그리고 희망퇴직하지 않은 인원 78명을 정리해고 했어요. 원래는 현대 하이디스였는데, 중국의 BOE 하이디스로 분할 매각되었죠. 그때도 중국에서 중요한 핵심 기술은 다 빼갔어요. 그 다음에는 대만의 영풍그룹으로 넘어갔어요. 시설투자나 설비투자는 하나도 없었죠. 핸드폰 액정 관련한 특허권이 있는데 대만 영풍 그룹은 특허권만 쏙 빼가고, 공장을 폐쇄한데요. 몇 차례 해외로 매각되면서 중요한 기술들은 쏙 빠져나가고, 결국에는 노동자들만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죠.”

지난 10여 년간 하이디스는 수차례 국적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대만으로. 회사는 이윤의 논리에 따라 국적을 바꾸고, 국적의 변화에 따라 핵심기술들은 하이디스를 떠나갔다. 현재 하이디스의 실소유주인 대만의 이-잉크 자본(영풍그룹 계열사)은 특허기술을 외부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매년 몇 백억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시설과 설비투자는 없이 앙상한 공장을 만들어갔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이 핵심기술을 빼가고, 몇 십 년을 일한 노동자들의 삶을 거리로 내모는데도, 노동자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한국 정부기관은 없었다. 노동자들 스스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대만 영사관이 있는 광화문 한복판에 농성장을 차리고, 대만으로 원정 투쟁을 떠났다.


낯선 나라에서의 환대

“저는 2,3차 원정투쟁에 함께 갔어요. 원정투쟁은 대만에 하이디스 상황을 알리고, 영풍그룹을 압박하려는 거였어요. 만나서 협상이라도, 아니 면담이라도 해달라는 바람이었죠. 저는 대만에서 15일인가, 16일인가 만에 강제출국 당했어요. 정말 낯선 곳이었는데 대만 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한국에서도 잘 모르는 사안인데, 대만 분들은 자기 일처럼 함께 해줬어요. 영풍그룹이 그랬다는 것에 같이 화내주고, 정리해고 때문에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더 미안해했어요. 한국정부에서는 외면하지만 대만에서의 따뜻함에 너무 고마웠어요.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근데 다시 갈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억울함을 알리고, 호소하기 위한 원정투쟁이었다. 영풍그룹에 상처받은 마음에 대만의 시민들은 따뜻한 온기와 환대를 보내주었다.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연대.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자본에 맞선, 국경 없는 노동자/시민들의 연대였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향후 몇 년간은 대만에 입국하지 못한다. 대만 입국 자체가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자본은 국경의 벽을 허물었지만, 저항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국경의 벽은 견고했다.
 
언제까지 할 거예요?

“사람들이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물어봐요. 나는 앞으로 1년을 더하고 싶어요. 근데 모르겠어요. 법원 판결등도 남았으니까. 그거 끝날 때까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니까 포기할 수 없어요. 아직 내가 원이 풀릴 만큼 싸워보지 못한 거 같아요.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작년에 사랑하는 동료를 먼저 보내기도 했어요. 배재형, 제가 참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나중에 내가 하늘나라 가게 되면 잘 했다고 칭찬 듣고 싶게. 그렇게 싸우고 싶어요. 적어도 꿀밤 맞지는 말아야죠. 그리고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버틸 수 있어요.”

지난해 5월 하이디스에 배재형이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먹튀 자본의 정리해고는 소중한 목숨마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노동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고통, 그것이 정리해고의 본뜻일 것이다. 누군가는 삶을 포기했지만, 회사는 이 끔찍한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희망퇴직을 받아놓고, 그 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희망퇴직을 했을 시 주는 위로금의 액수도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도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쉽지만은 않은 시간들이다. 추운 겨울바람보다 더 매서운 것은, 노동자들을 끝으로 밀어 붙여버리는 회사와 법이었다. 330여명의 정리해고가 발표된 시점부터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시간은 멈췄다. 아무리 회사의 경영과 법이라 한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희망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결코 옳은 경영과 법이 아닐 것이다. 법과 이윤의 잣대로 노동자의 삶을 재단하기에는 그들의 삶과 일상은 너무도 소중하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소박하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일하는 것. 국가의 주요한 기술을 유출하지 말고, 함께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이 외침을 외면하는 국가를 대신해서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추운 겨울을 농성장에서 보내고 있다. 국가가 외면한 곳에 동료들의 온기와 타국에서 보내온 연대의 훈훈함이 넘쳐흐른다. 제발 이 엉터리 국가가 노동자들의 외침을 듣기를. 그들이 스스로를 돌보기 이전에 이 사회가 모진 삶에 치인 이들을 먼저 막아주는 안전망이 되기를. 그리고 이 겨울이 끝자락으로 가기 전 에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든 일터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2016년 2월 1일 미디어스

랄라(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광화문 하이디스, 그/녀들의 겨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목, 2016/02/04- 10:33
257
0

국제 인권-노동단체 백남기 농민 애도, 부검영장 재청구 우려 긴급 공동성명 발표

국가폭력, 집회결사의 억압 강력 규탄 

* 참여연대는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및 살인 정권 규탄 투쟁본부>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2016년 9월 26일 오후 (제네바, 브뤼셀, 파리 현지시간) 국제인권연맹, 유럽노총, 국제노총, OECD 노동조합 자문위원회가 경찰 폭력으로 사망한 백남기 농민을 애도하며 국가 폭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당국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4개 단체는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대해 애도나 사과도 없이 곧바로 고인의 시신 부검을 요구하여 책임과 처벌을 회피할 구실을 찾고 있는 한국 정부의 행태를 규탄했습니다. 또한 작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에 대한 경찰의 권력남용과 관련하여 국내외의 규탄과 비난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사과하기를 거부하는 경찰과 고 백남기씨 살인미수 고소고발 건에 대해 적절한 조사를 미루어온 검찰을 규탄했습니다. 

 

국제인권연맹 등은 지난 2015년 민중총궐기 당시 발생한 경찰 폭력에 대해 투명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강력히 촉구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에게 집회의 자유와 관련한 경찰 지침, 특히 물대포 사용에 관한 지침을 철저히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집회금지통보를 남발하고, 차벽을 설치하며, 캡사이신이 포함된 물대포를 평화로운 시위대에 발사하는 등 집회결사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또 2016년 6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발표된 마이나 키아이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보고서를 인용하여 한국 정부가 국제기준에 따라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국제인권연맹/유럽노총/국제노총/OECD  노동조합 자문위원회 공동성명서 한글본

 

대한민국: 농민 활동가 백남기씨, 경찰 폭력으로 인한 부상으로 사망,
경찰은 지속적으로 책임 회피

 

파리, 제네바, 브뤼셀, 2016년 9월 26일- 농민활동가 백남기씨가 2016년 9월 25일 (일) 급성신부전으로 사망했다. 그는 2015년 11월 14일 서울에서 개최된 시위에서 물대포를 맞아 부상을 입고 쓰러진 후 의식불명 상태에 놓여있었다. 우리는 백남기씨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며, 동시에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평화로운 집회에 참석한 활동가들에게 부당한 공권력을 행사하고도 책임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한국 정부를 규탄한다.

 

병원이 발급한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백남기씨의 사인은 급성신부전과 급성 경막하 출혈이다. 그러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가 2016년 9월 25일 발표한 의견서는 급성 경막하 출혈이 경찰이 백남기 농민과 다른 시위대를 향해 쏜 물대포로 입은 부상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유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부검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현지 시간 일요일 오후 2시경부터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누워 있는 병원 모든 입구를 차단하고 장례식장으로 시신이 안치되는 것을 방해했다. 월요일 자정을 조금 넘겨 서울중앙지검은 부검과 고인의 진료 기록에 대한 압수수색을 위한 영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했다. 법원은 부검 영장은 기각하고 진료기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철수 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인의 진료기록을 확보하기 위해 병원을 압수수색했다. 2016년 9월 26일 자정이 되기 전 검찰은 서울 중앙 지방 법원에 부검 영장을 재청구 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참가자들에 대한 경찰의 권련 남용에 대해 국내에서 격렬한 항의가 빗발치고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사과하기를 거부하고 검찰은 11월 14일 당시 경찰에 의한 부상에 대해 공식적으로 조사하기를 거부했다. 검찰은 생애 마지막 몇 달을 의식불명 상태로 지내야 했던 백남기씨의 부상에 대한 조사도 거부했다. 무자비한 공권력을 조사하는 대신에 검경은 집회 참가자와 주최측에 대해 광범위한 조사를 펼쳤으며 결과적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간부 약 20여명을 기소했다. 여기에는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도 포함되어 있다(자세한 내용은 2016년 7월 13일에 발행한 긴급 청원 참조). 경찰들은 집회시위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부상이나 죽음에 대해 매번 사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2016년 9월 초에 열린 백남기 국회 청문회에서 이와 같이 말함). 동시에 경찰은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 백남기씨 사태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나타나듯이 활동가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탄압을 지속해 그들이 과도한 권력을 사용한 것에 대해 처벌을 받지 않으려 한다.

 

우리는 평화로운 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공권력의 무자비한 탄압에 대해 책임지기를 회피하고 정의 실현을 지체하려는 정부당국의 시도를 규탄한다. 현재 한국에서 만연한 집회결사의 자유 탄압 또한 규탄한다. 우리는 2015년 11월 14일 발생한 사건에 대해 투명하고 독립적인 조사를 실시할 것을 촉구하며 군중 통제 및 집회의 자유에 관한 경찰 지침, 특히 물대포 사용에 대한 지침을 철저하게 재검토 할 것을 촉구한다.

 

나아가 우리는 한국에서 현 정권 아래 집회결사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2015년 11월 14일 집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경찰은 계획된 집회 혹은 시위에 대해 금지통고를 내렸으며 서울, 경기도, 그리고 인천 경찰청은 갑호비상령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경찰은 248개 부대 20,000여명의 경찰관들을 동원했으며 물대포와 캡사이신 스프레이 장비로 무장한 700여대의 버스로 차벽을 세웠다. 경찰은 사전에 집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조치를 취했으며 백남기씨를 포함한 평화로운 행진단에게 물대포와 최루액을 직접 쏘아댔다. 2016년 한국에 대해 보고서를 발표한 유엔 평화로운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 마이나 키아이씨가 언급한 대로 이처럼 집회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공격적으로 탄압하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다. 유엔 특별보고관은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 사용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특히 백남기씨의 비극적인 부상은 한국의 평화로운 활동과 시민사회가 위축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물대포 사용을 비판했다. 우리는 한국 정부에게 국제 기준을 존중할 것과 한국 사람들이 평화로운 집회, 결사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국제 인권-노동단체 공동성명서 영문본 

 

Joint Press Release

FIDH (International Federation for Human Rights)
European Trade Union Confederation (ETUC)
International Trade Union Confederation (ITUC)
Trade Union Advisory Committee to the OECD (TUAC)

 

South Korea: Farmer activist Nam-gi Baek dies from injuries due to police force; police continue to evade accountability

 

Brussels, Geneva, Paris; 26 September 2016 – Mr. Nam-gi Baek, the farmer activist who was left in a coma after being pummelled by water cannons at a demonstration in Seoul on 14 November 2015, succumbed to his injuries and died of kidney failure on Sunday, 25 September 2016. Our organisations express our condolences to Mr. Baek’s family, and condemn the authorities’ ongoing repression of free expression and refusal to ensure accountability for their use of undue force against peaceful activists. 

 

According to the death certificate issued by the hospital, Mr. Baek’s death was caused by acute renal failure and subdural haemorrhaging. A statement released by the Association of Physicians for Humanism on 25 September 2016 confirmed that this haemorrhage was due to the injuries Mr. Baek sustained when police fired water cannons on him and other demonstrators. The police nevertheless demanded that an autopsy be carried out, notwithstanding opposition from Baek’s family. Starting at around 2:00pm local time on Sunday, police blocked the exits of the hospital where Mr. Baek had died in order to prevent his body from being taken to the funeral home. Just after midnight on Monday morning, the Seoul Prosecutor’s Office submitted a request for an autopsy and a request for the confiscation of Baek’s medical records to the Seoul Central District Court. The Court rejected the request for an autopsy as unnecessary and unjustifiable, but did authorise the confiscation of Mr. Baek’s medical records. The police then evacuated their posts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but not before raiding its medical records office to seize Mr. Baek's records. Just before midnight Seoul time on Monday 26 September, the Prosecutor’s office re-applied for an autopsy warrant to the Seoul Central District Court.

 

Despite national outcry and international condemnation of the police’s use of undue force against demonstrators during the 14 November rally, law enforcement agencies refuse to apologise or to launch an official investigation into the injuries that resulted from the police intervention during the 14 November rally, including the injuries that left Mr. Baek in a coma for the last months of his life. Instead of investigating the alleged police brutality, the authorities launched an extensive inquiry into the participants and organisers of the rally, ultimately indicting 20 members and officers of the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KCTU), including KCTU President Sang-gyun Han who is currently serving a 5-year prison term for having organised the rally(For more information, see Urgent Appeal by The Observatory on 13 July 2016). Police officials have even stated that it would be “inappropriate*” to issue an apology for every injury or death during a crackdown on demonstrations, and continue to harass activists and their families to ensure impunity for their use of undue force, as exemplified by their actions on Sunday and Monday regarding Mr. Baek’s case. *(Seoul’s former police chief Kang Sin-myeong had issued these comments at a Parliamentary hearing on Mr. Baek’s situation earlier in September 2016)

 

Our organisations strongly condemn the ongoing attempts by the authorities to evade accountability and justice for their brutal crackdown of peaceful demonstrators, and the repression of free expression and assembly that is now commonplace in South Korea. We call for a transparent and independent investigation into the events of 14 November 2015 and for a thorough review of police protocol regarding crowd control and freedom of assembly, notably regulations of the use of water cannon trucks.

 

Furthermore, we are deeply concerned by the significant obstacles to the exercise of freedom of association and assembly in South Korea under the current government. Prior to the rally on 14 November 2015, the National Police issued a prohibition against any planned assemblies or demonstrations, and mobilised the Seoul Metropolitan, Gyeonggi Provincial and Incheon Metropolitan Police agencies to be on highest alarm. Police then mobilised some 20,000 officers from 248 squadrons, and formed barricades on the streets with almost 700 buses armed with water cannons and capsicum spray liquid. The police took pre-emptive and aggressive measures against the demonstrators, firing the water cannons and tear gas directly at peaceful marchers, including Mr. Baek. This aggressive repression of the right to freedom of assembly constitutes a serious violation of human rights, as noted by UN Special Rapporteur on Freedom of Assembly and Association, Maina Kiai, in his June 2016 report on the Republic of Korea. The UN Special Rapporteur denounced the excessive use of force by the police as a breach of international law, and specifically denounced the use of water cannons, citing the tragic injury of Mr. Baek as a ‘symbol’ of the shrinking space for civil society and peaceful activism in the country. We thus call on the government to respect its international obligations and allow the people of South Korea to exercise their rights to peaceful assembly, free association and free expression. 
 

화, 2016/09/27- 16:18
24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