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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 아청법 = 빅브라더 강요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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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 아청법 = 빅브라더 강요하는 나라

익명 (미확인) | 화, 2015/12/29- 13:46

카카오 + 아청법 = 빅브라더 강요하는 나라

글 | 오픈넷

2015년 11월 4일, 검찰은 이석우 전 다음카카오 대표를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이하 아청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검찰은 기소 사유로 이 전 대표가 카카오 대표로 재직할 당시 온라인서비스 제공자로서 아동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한 기술적 조치를 하지 않아 지난해 6월 14일부터 8월 12일까지 ‘카카오그룹’에서 약 7,115명에게 아동음란물이 배포됐다고 밝혔습니다.

카카오의 모임서비스 카카오그룹

 

카카오 “기술적 조치 했다” vs. 검찰 “조치가 부족하다”

카카오 측은 “음란물 유통을 막기 위해 사업자로서 가능한 모든 기술적 조치를 취했고, 성인 키워드를 금칙어로 설정, 해당 단어를 포함한 그룹방 이름이나 파일을 공유할 수 없도록 사전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검찰의 기소에 반박했으나, 11월 10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보도자료를 내고 이 전 대표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제17조 제1항과 시행령 제3조에 의거 온라인서비스제공자로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아청법 제17조(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의무) 중

    ① 자신이 관리하는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거나 발견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즉시 삭제하고, 전송을 방지 또는 중단하는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정보통신망에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기 위하여 상당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아니하였거나 발견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전송을 방지하거나 중단시키고자 하였으나 기술적으로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아청법 시행령 제3조(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 발견을 위한 조치) 중

    ① 법 제17조 제1항 본문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조치”란 다음 각 호의 모든 조치를 말한다. 다만, 다른 법률에서 정한 조치를 함으로써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할 수 있는 경우에는 다음 각 호에 해당하는 조치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하지 아니할 수 있다.
    1. 이용자가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로 의심되는 온라인 자료를 발견하는 경우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게 상시적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
    2. 온라인 자료의 특징 또는 명칭을 분석하여 기술적으로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로 인식되는 자료를 찾아내도록 하는 조치
    ②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로 판단하기 어려운 온라인 자료에 대해서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8조에 따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③ 여성가족부장관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아동ㆍ청소년이용음란물을 발견하고 삭제 등의 조치를 하는 데 필요한 행정적 지원을 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하여 온라인서비스제공자, 관계기관 및 관련단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검찰은 카카오 측이 먼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상시적 신고 기능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음란물을 신고하려면 5단계나 거쳐야 하므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신고를 위해 들어가야 하는 메뉴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설정 → 도움말 → 문의하기 → 그룹생성오류 → 유해게시물신고

그리고 두 번째 근거로 금지어(금칙어) 등을 통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필터링 기능을 도입하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카카오의 다른 서비스인 ‘카카오스토리’에는 이용자 본인을 소개하는 프로필에 음란물을 상징하는 단어를 금지어로 등록했고, 카테고리를 등록할 때 사용하는 단어에도 금지어 사용 불가 기능이 존재했지만 ‘카카오그룹’은 없어 그런 기능이 없어 유포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즉, 필터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청법 시행령의 제3조 제1항 중 제1호가 상시적 신고 기능, 제2호가 필터링 조치를 뜻합니다.

 

카카오는 정말 필터링 조치를 허술하게 했나

현재 널리 사용되고 있는 필터링 기술은 데이터베이스(DB) 필터링과 키워드 필터링 정도가 있습니다. 아동음란물뿐만 아니라 저작물, 일반 음란물 필터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DB 필터링은 아동음란물로 판단된 자료에서 추출한 URL, 해시값, DNA 등의 DB를 기반으로 필터링하는 것입니다. 즉, 이미 유통되고 있는 아동음란물을 찾아내서 분석하지 않으면 DB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매일 새로 쏟아지는 아동음란물을 걸러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동음란물의 “소지”도 처벌하는 아청법을 엄격하게 해석하자면 목적이 어떻든지 간에 사업자들은 DB의 소지만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정부나 수사기관에서 필터링의 기반이 되는 DB를 제공하면 사업자들이 협조하기가 편하겠지만, 여성가족부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별도의 아동음란물 DB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현재 사업자들은 민간 필터링 업체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키워드 또는 금칙어 필터링은 키워드를 조금이라도 바꾸면 무용지물이 되는 데다가 아동음란물에만 국한된 키워드가 매우 한정적이라서 실효성이 별로 없습니다. 예컨대 “로리”라든지 “교복” 같은 키워드가 사용되었다고 해서 꼭 아동음란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현재로써는 컴퓨터가 아동음란물을 자동으로 걸러내는 기술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웹하드 업체 등 사업자들은 최선을 다해 필터링하고 있지만, 아동음란물이 발견되기만 하면 필터링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못한 것이 되어 처벌을 받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사기업이 이용자의 모든 자료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결국, 카카오와 같은 온라인서비스제공자가 아동음란물을 완벽하게 필터링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은 이용자가 공유하는 모든 이미지와 동영상을 육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카카오그룹과 같은 폐쇄형 소셜미디어(SNS)에서는 이용자의 통신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이라는 점에서 “감청”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인에 의한 감청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입니다. 설령 카카오에 이러한 권리를 허용한다 하더라도 극소수의 범죄자를 찾아내기 위해 모든 이용자의 헌법상의 기본권(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결과가 초래됩니다.

만약 육안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더라도, 아동음란물은 법적인 개념이고 음란물인지 아닌지는 맥락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여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물론 누가 봐도 명백한 아동 포르노가 있겠지만, 예컨대 교복물이나 애니메이션의 경우 계속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아청법 제2조(정의) 중

  1.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란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

오픈넷이 제기한 아청법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2015년 6월 25일 5:4의 결정으로 해당 정의 규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외모, 신원, 제작 동기와 경위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실제 아동·청소년으로 오인하기에 충분할 정도의 사람이 등장하는 경우를 의미함을 알 수 있고,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물” 부분도 전체적으로 표현물을 등장시켜 각종 성적 행위를 표현한 매체물의 제작 동기와 경위, 표현된 성적 행위의 수준, 전체적인 배경이나 줄거리, 음란성 등을 종합하여 판단할 때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비정상적 성적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행위를 담고 있어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수준의 것에 한정된다고 볼 수 있으며, 기타 법관의 양식이나 조리에 따른 보충적인 해석에 의하여 판단 기준이 구체화되어 해결될 수 있으므로,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

– 헌법재판소, 2013헌가17, 2013헌가24, 2013헌바85(병합) 이유의 요지 중

그러나 어떤 표현물이 성범죄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수준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성인교복물이나 애니메이션의 경우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사업자나 이용자의 입장에서 판단하기가 어렵고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이렇게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아동음란물로 판단하고 삭제를 하게 됩니다.

 

과도한 필터링 의무 부과, 국제적인 흐름에 역행한다

아청법상 필터링 의무는 이런 기술적 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정보매개자에게 불법정보에 대해 일반적인 감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는 국제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정보매개자란 다양한 정의가 있을 수 있지만, OECD 보고서를 보면 “인터넷상 제3자들이 생산한 정보의 공유가 가능한 플랫폼을 제공해주는 자”를 말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기준에 맞기만 하면 ISP든, 검색엔진이든, SNS든 다 정보매개자가 됩니다. 다만 정보를 편집하거나, 직접 제작하거나 유통하는 경우에는 정보매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정보매개자의 책임이란 이러한 정보매개자가 제3자, 즉 이용자들이 유통하는 불법정보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의 문제입니다. 불법정보를 게시하거나 직접 유통한 자는 당연히 책임을 져야겠지만, 정보매개자의 서비스가 단순히 불법정보 유통에 사용된 경우에는 달리 봐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택배를 통해 마약이나 무기가 거래된 경우 택배사도 같이 처벌해야 할까요?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정보매개자의 책임 제한을 논의하게 됩니다. 현재 책임 제한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 첫째, 피난처(세이프 하버; safe harbor)
  • 둘째, 일반적 감시 의무 금지

피난처는 일정한 조건하에서 정보매개자를 제3자가 유통한 정보에 대한 책임으로 면책을 시켜준다는 것인데, 주로 권리자나 이용자에 의한 통지가 있어서 정보매개자가 불법정보에 대해 알게 된 경우에만 책임을 진다는 내용입니다.

즉, 일반적 감시 의무 금지는 말 그대로 정보매개자에게 정보를 일반적으로 감시, 즉 모니터링할 의무를 지워서는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일반적 감시 의무 금지는 말 그대로 정보매개자에게 정보를 일반적으로 감시, 즉 모니터링할 의무를 지워서는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왜 정보매개자의 책임을 제한해야 하는가

그럼 왜 정보매개자의 책임을 제한해야 할까요? 나아가 일반적인 감시의무 내지 필터링 의무 부과는 금지되어야 할까요? 그 필요성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인터넷의 문명사적 의미입니다. 헌법재판소에 의하면, 인터넷이란 익명 표현을 통해 민주주의 발전의 물적 토대를 제공하며, 사상의 자유시장에 가장 근접한 매체로 가장 참여적인 매체입니다. 즉 인터넷은 개인들이 타인의 허락 없이 공적 소통을 할 자유가 있는 공간으로, 그 특성으로 인하여 인류의 역사를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소통을 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된 공간이 인터넷인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이런 공간을 제공하는 정보매개자들에게 자신이 알 수 없는 불법행위들에 대해 책임을 지우기 시작한다면, 정보매개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개개인의 소통을 검열하고 제한하거나, 아예 닫아버리게 됩니다. 그럼 결국 문명사적 중요성을 획득한 인터넷의 원천이 파괴될 수 있습니다. 허락받은 소통만이 가능한 공간은 더는 인터넷이 아니게 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 99헌마480 중

두 번째 이유는 이용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서입니다. 사업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사적 검열은 이용자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합니다. 특히 그러한 검열이 카카오톡이나 이번에 문제가 된 카카오그룹 같은 통신 수단에 대해 이루어진다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감청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또한, 이런 검열은 위축 효과를 불러오게 됩니다. 그리고 정보매개자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만한 정보라면 차단하고 삭제해서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것입니다. 특히 책임이 클수록, 제한 요건이 불분명할수록 그럴 것입니다. 이는 온라인 표현의 자유를 또한 심각하게 침해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인터넷 산업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입니다. 필터링 기술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아동음란물과 같은 법적 판단이 필요한 정보의 경우 결국은 육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모니터링 내지 필터링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는 것은 1인 사업자나 대기업이나 마찬가지인데, 단지 정보매개자라는 이유로 이러한 과도한 부담을 지게 된다면 관련 산업을 위축시킬 뿐만 아니라 진입장벽을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국제적인 흐름은 이러한 일반적 감시의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시민단체가 성안한 정보매개자책임에 관한 마닐라 원칙에서도 “정보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할 의무를 부과해서도 안 된다”고 하고 있고, EU의 전자상거래지침, 저작권에만 적용되긴 하지만 미국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역행하여 일반적 감시의무를 부과하는 법들이 많습니다.

마닐라 원칙

마닐라 원칙

  1. 정보매개자는 제3자의 정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법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2. 사법당국의 명령 없이 정보 제한을 의무화해서는 안 된다.
  3. 정보 제한 요청은 명확하고, 모호하지 않으며, 적법절차를 따라야 한다.
  4. 정보 제한 관련 법, 명령 및 관행은 필요성과 비례성의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5. 정보 제한 관련 법, 정책 및 관행은 적법절차를 존중해야 한다.
  6. 정보 제한 법, 정책 및 관행은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립해야 한다.

특히나 아청법 제17조는 정보매개자 책임과 관련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동음란물 규제는 필요하지만, 제작자나 유포자가 아닌 단순한 정보매개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 문제입니다. 정보매개자도 기여 정도에 따라 제작자나 유포자, 또는 방조자로 처벌하면 되는데, 사전적인 필터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하여 처벌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정보매개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정보매개자를 범죄를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범죄자와 동일시하여 과도한 형사책임을 지우는 것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오픈넷은 해당 규정이 최대한 빨리 폐기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니면 사업자가 발견한 경우에는 신고 의무를 지우는 정도로 수정되어야 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사업자를 아동음란물 단속의 파트너로 보고 자율규제를 장려하고 선진국의 사례처럼 사업자-관계당국-시민사회의 원만한 협조체계를 구축해서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도 동시 게재하고 있습니다. (2015.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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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20. 11. 5.(목)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제4 간담회실에서 ‘공익제보와 개인정보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발제문의 요약문입니다. https://opennet.or.kr/18973 

개인정보보호법은,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만 생활과 행복추구에 긴요한 서비스나 재화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의 향후 이용이나 제3자제공을 미리 제한할 협상력이 없을 정도로 개인정보처리자와의 힘의 비대칭에 놓인 정보주체를 ‘정보감시’ 또는 정보감시의 가능성으로부터 오는 ‘위축효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법제로서 정보주체에게 자신에 대한 모든 정보에 대해 소유권과 유사한 통제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짜로 하고 있다. 

  한편 법이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게 기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개인정보처리가 정보주체의 통제권 하에 놓여지면 도리어 힘없는 개인정보주체들이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를 통해 행사할 수 있는 저항권이 제한되므로 정보주체의 통제권을 정교하게 재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대부분의 개인정보보호법제들은 첫째 GDPR 및 GDPR이행입법들의 상당수는 공익 및 정당한 이익을 위해 정보주체의 동의가 없는 정보수집 및 제3자 정보제공을 허용하고 둘째 단순히 제도권 언론의 취재보도만을 면책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론 “목적”의 정보처리에 대해서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제3자가 언론에 제보하는 행위도 예외에 포함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개인정보보호법은 특히 공익제보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3자제공, 언론목적 정보처리, 개인정보처리자의 해석 등에 있어서 국제기준에 비추어 개정해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법 
수집이용
우리법
3자제공
GDPR (수집, 이용, 3자제공)
타법률 O O O (4c)
공공기관업무 O O O (4f)
계약이행 O X O (4b)
정보주체보호 O O O (4d)
정보처리자의 
정당한 이익
O X O (4f)
공익보호 X X O (4e)

개인정보보호법 제58조(적용의 일부 제외)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개인정보에 관하여는 제3장부터 제7장까지를 적용하지 아니한다. . . . .4. 언론, 종교단체, 정당이 각각 취재·보도, 선교, 선거 입후보자 추천 등 고유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집·이용하는 개인정보

GDPR의 경우 다음과 같이 주체를 한정하지 않고 “언론 목적의. . 처리(processing for journalistic purposes)”에 대해 표현의 자유 및 정보의 자유와의 화합을 도모하도록 개별국가가 법제화를 하도록 의무화하고(“shall”) 있음.

Article 85 Processing and freedom of expression and information 

1. Member States shall by law reconcile the right to the protection of personal data pursuant to this Regulation with the right to freedom of expression and information, including processing for journalistic purposes and the purposes of academic, artistic or literary expression.

수, 2020/11/18-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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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갑질·독점적 지위 남용 방지 위한 제도화 논의 시급

플랫폼 승자독식 전략, 입점업체는 물론 소비자 피해도 우려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제정으로 반독점 규제 논의 불붙여야

 


카카오모빌리티가 ‘우티', ‘타다' 등 카카오T와 제휴하지 않은 가맹택시 기사는  ‘카카오T’를 이용할 수 없다고 지난 7월 공지한 데에 이어, 실제로 일반 호출 중개 서비스에서 다른 브랜드 택시를 배제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2015년 시장 진입 당시 호출 서비스 등을 무료로 제공해 시장점유율을 급격히 높여왔다. 그 결과 현재는 호출 플랫폼 시장의 80%를 장악한 사실상 시장지배적 사업자다. 문제는 카카오모빌리티가 시장점유율을 한껏 높인 뒤 호시탐탐 유료화를 시도하는 데다가 다른 기업의 시장진입까지 막고 있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불공정거래행위이며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하는 시장 경제 교란행위가 아닐 수 없다. 카카오모빌리티 뿐만 아니라 많은 플랫폼 기업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시장질서를 왜곡하고 있는데도 이를 규제할 방안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이다. 변화와 확장이 매우 빠른  플랫폼 경제의  특징을 고려할때 온라인 플랫폼의 갑질과 독점 문제를 방치하면 혁신을 빙자한 착취 등  갑질과 독점 폐해로 소도 잃고 외양간도 손 못대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국회가 이번 정기회에서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지배적 지위남용과  불공정 거래행위 근절을 위한 입법 논의를 적극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 

 

모든 기업들이 독점에 대한 유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존 산업에 비해 플랫폼 경제는 그 특성상 더욱 독점을 추구한다. 시장진입 초기에 막대한 자금력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 시장을 장악하고, 이후 유료화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 하는 한편, 경쟁기업의 시장 진입을 막는 것을 플랫폼 기업들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이유이다. 운송시장에서는 전국 택시기사 90%인 23만 명, 승객 가입자 2,800만 명이 가입하여 시장 80%를 장악한 카카오모빌리티가 대표적이다. 2019년 본격적으로 가맹택시 사업에 진출하며 심판이면서 선수가 된 카카오모빌리티의 타사 가맹택시 배제 행위는 사실상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이며, 부당 거래 거절, 차별 취급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 

 

한편, 미국의 경우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반독점법 제정에 나서면서 플랫폼 기업들에 대항하고 있다. 지난 6월 25일 민주당과 공화당이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겨냥하여 공동 발의한 반독점 패키지 법안 ‘더 강한 온라인 경제: 기회, 혁신,  선택(A Stronger Online Economy: Opportunity, Innovation, Choice)’이 미 하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중 ‘미국 온라인 시장의 혁신 및 선택에 관한 법률 (American Innovation and Choice Online Act)’에 따르면 카카오모빌리티의 타사 가맹택시 배제와 같은 ‘자신의 제품·서비스·사업을 타 사업자에 비해 우대’하거나, ‘타 사업자의 제품·서비스·사업을 배제하고 불이익’을 주거나, ‘서로 유사한 지위에 있는 사업자들을 차별 대우’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뿐만 아니라 지난 7월 바이든 대통령은 독과점적 시장구조의 개선 및 경쟁제한 폐해 시정을 위해 ‘미국 경제에서의 경쟁 촉진에 관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 on Promoting Competition in the American Economy)’에 서명한 바 있다. 이미 EU나 일본은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를 규율하기 위한 법을 시행 중이다. 플랫폼의 불공정행위와 독점적 지위를 남용한 과도한 이익추구 행위가 입점업체와 소비자 피해를 초래하고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해 공정한 중개거래 질서 구축을 넘어 독점 규제를 위한 행정적 조치와 입법 시도가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적 흐름과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확장 속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규제화 논의는 첫발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각종 피해가 켜켜이 쌓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법안 논의를 미루며 강 건너 불구경 중이다. 규제 사각지대에서 혁신으로 포장된 갑질과 독점 횡포를 방치할 경우, 그 피해는 입점업체와 소비자는 물론이고, 결국 산업 전반으로 향할 것이다. 정기국회에서 쿠팡, 카카오 등의 불공정거래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처리하고, 이를 발판 삼아 소수의 거대 플랫폼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문제를 예방 및 해소하기 위한 논의로 나아가야 한다. 재차 강조하지만, 시간이 없다. 국회가 온라인 플랫폼의 갑질과 독점 방지를 위한 법안 논의에 박차를 가할 것을 촉구한다.  

 

 

▣ 논평 [https://docs.google.com/document/d/1SMzX_hXA3ZN-H6bt6O8VkIbkoDY7bfoAw5ba... rel="nofollow">원문보기/다운로드]

 

수, 2021/09/08-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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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성기(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장)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서비스 제공자나 사업자 중에서 정보나 콘텐츠를 직접 제작·제공하는 자가 아닌 정보의 전달을 ‘매개’하는 서비스의 제공자를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 혹은 정보 매개자(Internet intermediary)라 부른다. 각종 인터넷 포털, 검색엔진, 메신저, SNS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대부분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에 해당한다.

현행법에서는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 혹은 정보 매개자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지만, 정보통신망법 상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 중 ‘정보의 제공을 매개하는 자’, 저작권법 상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 중 ‘이용자들이 정보통신망에 접속하거나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저작물 등을 복제·전송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그를 위한 설비를 제공 또는 운영하는 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자신이 매개하는 정보나 콘텐츠가 음란하거나 명예훼손, 혹은 저작권 침해 등의 불법정보에 해당하는 경우, 그 정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는 져야 할까? 자신이 매개하는 정보가 음란하거나 명예훼손, 혹은 저작권 침해 등의 불법정보에 해당하지 않는지를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는 일반적‧상시적‧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할 의무를 져야 할까? 등의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우선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아도, 일반적‧상시적‧적극적 모니터링 의무를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에게 법적으로 부과하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에게 일반적‧상시적‧적극적 모니터링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우려해서이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에 대해서 일반적‧상시적‧적극적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하면,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법적 책임과 관련하여 애매모호한 정보는 모두 삭제를 하려고 하거나 할 수밖에 없는 소위 ‘사적 검열’을 하게 된다. 따라서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책임이나 의무의 과도한 부과는 결과적으로 위축효과를 유발해,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를 매개로 유통되는 정보의 ‘총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고, 궁극적으로 그 사회에서 유통되는 정보의 ‘총량’에 영향을 주게 된다.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규제를 시도할 때 항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효과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우려 때문에,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는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불법정보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그러한 불법정보를 인지하기 위해 모든 게시물을 일반적‧상시적‧적극적 감시할 의무가 없다는 원칙이 국제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3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에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사업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재화 등에 관한 정보 교환을 매개하는 경우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각종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내용이 있는데, 이러한 의무가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에게 일반적‧상시적‧적극적 감시의무를 법적으로 부과하는 것으로 해석될 위험성은 없는지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들은 플랫폼을 통해 재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내용과 형태의 정보를 공유하는데, 그 정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한 각종 예방 책임과 의무를 지우게 되면, 재화 등에 관한 정보의 교환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교환되는 정보가 불법정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일반적‧상시적‧적극적으로 감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관련 규제정책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은 항상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며, 특히 정보매개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규제를 시도할 때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 이 글은 IT조선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1.07.13.)

화, 2021/07/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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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성기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리나라의 방역 및 대응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코로나 대응전략은 투명성, 개방성, 민주성 등으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러한 전략의 수행과정에서 개인정보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된 후에 우리나라의 감염병 예방에 관한 전반적인 시스템을 반성적으로 회고하고 성찰하는 시기가 올 것이다. 비록 현재까지는 세계적인 모범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100점 만점짜리 전략이나 시스템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향후 시스템의 점검 및 개선에 있어서는 감염병 예방을 포함한 공중보건시스템과 개인정보를 포함한 프라이버시 보호의 문제를 균형있게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감염자의 과거 위치정보를 국가기관이 제공하는 확진자 동선(이동경로) 공개 정책과 자가격리자의 격리장소로부터의 이탈 방지 및 감시를 위한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의 문제를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확진자 동선 공개 정책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장관은 감염병 확산으로 인해 주의 이상의 위기경보가 발령되면 감염병 환자의 이동경로, 이동수단, 진료의료기관 및 접촉자 현황 등 국민들이 감염병 예방을 위하여 알아야 하는 정보를 신속히 공개해야 한다. 여기서 공개되는 정보에는 개인정보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개인정보는 개인의 동일성을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일체의 정보를 의미하고, 성별, 연령, 이동경로, 이동수단, 진료의료기관 등은 서로 결합되어 개인을 식별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개되는 개인정보의 범위이다. 예컨대,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와 날짜 및 시간대만 공개하면 되지 성별, 연령 등 개인을 구체적으로 식별할 수 있게 하는 개인정보는 공개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의 의문이 제기된다. 독일에서 우리나라의 확진자 동선 공개 정책과 비슷한 제도의 입법을 논의하다가 프라이버시 침해를 이유로 중단하고, 감염자의 휴대폰에 근접한 휴대폰에 자동으로 경고신호를 보내주는 방식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민이 엿보인다.

다음으로 자가격리자의 격리장소로부터의 이탈 방지 및 감시를 위한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이다.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도 피부착자의 위치와 이동경로 등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피부착자를 24시간 감시할 수 있도록 해 개인정보 침해 문제를 갖고 있다. 문제는 현재 법적인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손목밴드 착용 강제는 불가능하다. 문제는 법률을 개정해서 도입하는 경우에도, 그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남는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자가격리 처분에 따르지 아니한 자에 대해서는 이미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의해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기 때문에(처벌 수준이 너무 낮은 것이 아니냐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에 더해서 손목밴드 착용 강제까지 추가하는 것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문제제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이 제안됐을 때부터, 빅 브라더의 출현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강력한 시민통제장치들의 도입 유혹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했다.

결국 확진자 동선 공개 정책과 손목밴드 착용 강제 정책의 문제는 전체주의적 감시체제의 강화, 시민의 자유와 권리 수호 사이의 극단적인 대립 내지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감염병 예방을 위한 개인정보의 활용 방식 및 범위와 관련해 고민하게 하는 화두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보다 심도있는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아시아경제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5.08.)

목, 2020/05/1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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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픈넷 이사)

역사는 항상 희극과 비극이 섞여 있는 회색 덩어리 같은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말은 보통 역사의 비극에 초점을 두고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상징한다. 그런데 비극으로부터 배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비극에 갇혀 있을 수도 있다. 공산주의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만으로 가득 찬 사회는 자본주의의 착취로 나아갈 수 있고, 그 반대 벡터도 가능하며 양극단 사이에서의 진동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될 것이다. 비극의 관점에서만 역사를 볼 것이 아니라 비극이 실현되지 않은 경우의 수들, 즉 희극도 엄연히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칭했다고 하여 명예훼손 유죄가 선고되었다. 과거에 공산주의자라는 칭호가 국민들에게 씌웠던 누명과 천형을 생각하며 종북몰이에 대한 경계심을 갖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필자도 수년 전 이정희 의원에게 ‘종북’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민사 손해배상 판결이 난 것에 대해서 ‘국가보안법의 역습’이라고 자위했다. 진보적인 인사들이나 독재에 순응하지 않은 사람들을 부당하게 처벌하고 심지어는 정치에 무관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엮었던 역사를 생각해본다면, ‘종북’ 칭호는 상대를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며 맹목적인 반공 사회의 사법적 피해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라고 볼 수 있었다. 분단사회의 질곡이라는 역사로부터 배우려면 저런 판결도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공산주의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역사의 비극으로부터 너무 많이 배우려다가 역사의 비극 속에 갇히는 사례가 될 것이다.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세계 각국에서 사문화하거나 폐지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명예란 도대체 무엇인가? 불특정 다수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평가의 집합, 곧 평판이다. 평판은 나를 고찰하는 사람의 사상과 의견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내가 통제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 내가 아무리 천사처럼 살아도 아무런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할 수 있다. 그런데 내 평판이 훼손되었다고 해서 훼손의 씨앗이 된 말을 한 사람의 신체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비례성에 어긋난다. 민사 손해배상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더욱이 명예훼손이 형사처벌의 형태로 존재하면 기소와 압수수색만으로도 피의자들의 삶을 피폐화할 수 있는 검찰은 쉽게 권력 연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역사의 희극은 더 이상 종북몰이가 먹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민중은 완전히 승리하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승리했다. 역사는 항상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역사의 비극, 즉 분단사회에서 진보 인사들이 받은 핍박에만 매몰되어 종북 발언, 공산주의자 발언을 형사처벌까지 하려고 든다면 그 역사의 다른 면에 갇힐 수밖에 없게 된다. 이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에서도 유지된다면 이제 문재인 정권을 ‘독재’라고 불러도 나를 포함한 문재인 정권 지지자들은 할 말이 없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공산주의’를 포함한 다른 진보적인 사상들, 즉 사회주의 등등은 우리 사회가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극악의 지표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을 절대로 진보적인 판결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이다.

명예훼손으로 법정 구속된 종편 출신 송아무개 기자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송에게 쏟아지는 비난의 수위는 송의 디지털스토킹이 불러왔을 피해자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피해자가 송의 ‘만행’을 먼저 알렸다면 피해를 막지 못했을까? 혹시 알리지 못한 이유는 거꾸로 송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할 위험 때문 아니었을까? 우리가 피해자가 겪은 비극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에만 매몰되어 형사처벌을 통한 검열에만 심취한다면, 소비자들의 이용후기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죄 없는 기업들의 블랙컨슈머리즘에 대한 고발도 같이 위축될 것이다. 역사로부터 배운다는 말은 항상 반만 옳다.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한 글입니다. (2020.09.03.)

금, 2020/09/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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