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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1] 국제난민 문제의 특징과 경향: 인도적 위기, 정치적 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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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주제1] 국제난민 문제의 특징과 경향: 인도적 위기, 정치적 무관심

익명 (미확인) | 월, 2015/11/02- 18:04

국제난민 문제의 특징과 경향: 인도적 위기, 정치적 무관심

 

송영훈 l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일란 쿠르디의 모습은 2015년 가을 국제사회의 난민위기에 대한 무관심에 경종을 울렸다.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통해 유러피언 드림을 이루고자 보트에 몸을 싣는 난민들과 말라카 해협을 지나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새로운 피난처를 구하고자 하는 미얀마 로힝야족에 대한 소식들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국경을 열지는 못했었다. 아일란의 죽음 이후 독일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이 난민 수용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그도 잠시 대부분의 국가들은 다시 국경통제를 강화하였다. 국제사회가 난민들의 인도적 위기 상황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피난처를 구하고자 하는 난민들의 드림은 쉽게 실현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급증하는 난민, 장기화되는 난민위기

 

국제사회의 난민위기를 설명할 때 우리는 흔히 난민(refugees)과 국내피난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 기타 다른 형태의 피난민들을 구분하지 않고 분쟁과 박해, 폭력과 인권유린 등으로 인해 고향과 고국을 떠난 사람들을 모두 난민이라고 한다. 그런데 엄밀히 구분하면 이들은 각각 다른 범주의 강제이주민(forced migrants)이며 그에 따라 그들에 대한 국제적 지원도 달라진다. 우선 난민은 제네바협약의 규정에 따라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이며, 이들은 국제난민협약이 정한 기준에 따라 지원과 보호를 받는다. 국내피난민은 고향을 떠났지만 국내의 다른 곳에서 대안적 피난을 구하는 사람인데 이들에 대한 지원과 보호는 본국 정부의 의지와 능력에 달려 있으나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그리고 국제법과 피난국의 법규에 따라 난민인정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비호신청자(asylum seekers)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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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UNHCR, Global Trends 2014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 강제이주민의 수는 2014년 말 기준 5,950만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난민은 1,950만 명이며 이들 중 510만 명은 팔레스타인 난민이다. 또한 3,820만 명은 국내피난민이며 180만 명이 비호신청자이다. 이러한 규모를 개별 국가의 인구 규모와 비교하면 세계 24위에 해당한다. 2014년 한 해에만 1,390만 명의 강제이주민이 새롭게 발생했으며, 분쟁과 박해를 피해 집을 떠나 국내 혹은 국외에서 피난을 구하는 강제이주민들이 매일 42,500명에 이르며 이는 4년 전에 비하면 거의 4배에 해당하는 통계이다. 유엔난민기구 안토니오 구테레스 대표가 강조하듯이 난민발생의 규모나 그에 대응하는 국제사회의 부담이 전례 없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난민을 가장 많이 발생시킨 나라는 시리아(390만 명), 아프가니스탄(260만 명), 소말리아(111만 명)이다. 이들 세 나라 출신 난민의 수는 전 세계 난민의 53%에 해당하며 수단과 남수단 출신의 강제이주민까지 합하면 62%에 이른다. 콩고민주공화국, 미얀마,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이라크, 에리트리아 등도 난민 발생국 상위 10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국가들에서는 모두 내전과 정부의 조직적 폭력 및 박해 등이 수년 동안 계속하여 발생하고 있다. 이 지역의 분쟁과 박해가 장기화됨으로써 난민을 포함한 강제이주민들이 고향으로 귀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고 있어 난민들의 인도적 위기는 장기화되고 심각해지고 있다.

 

1980년 이후 난민 발생국 상위 20위 안에 이름을 올렸던 국가들은 모두 50개이다. 이 중 앙골라, 수단, 콩고민주공화국, 부룬디, 소말리아 등을 포함한 12개 국가는 지난 35년 동안 최소 20회 이상 순위에 기록되었다. 최근까지 아프가니스탄이 항상 가장 많은 난민을 발생시킨 국가로 기록되었지만, 2012년부터 3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 대신 시리아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쟁과 분쟁이 이들 국가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난민이 많이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종전이 되고 국내불안정이 완화되어도 안전에 대해 위협을 느끼는 난민들이 본국으로 귀환을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난민을 가장 많이 수용하고 있는 나라는 터키(160만 명), 파키스탄(150만 명), 레바논(115만 명), 이란(98만 명) 순으로 대부분 시리아 난민의 유입의 영향이 컸다. 에티오피아 다음으로 요르단(65만 명)도 6위를 기록하였다. 상위 세 나라는 전체 난민의 30%를, 상위 10개 국가는 모두 전체 난민의 57%를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들은 모두 시리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시리아 난민의 95%가 이들 국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냉전 이후 난민들의 국제적 이동이 상당히 제한되고 있으며 고국과 인접하고 있는 국가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들의 대부분은 난민캠프에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면서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선진국들이 난민의 수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고 난민을 일부 수용하면서 인도적 원칙을 준수하는 것처럼 주장하곤 한다. 그런데 전 세계 난민들의 86%는 개발도상국가에 머무르고 있으며, 저개발국가들은 전체 난민의 약 25%를 수용하고 있다. 구매력평가 기준 일인당 국내 총생산(GDP PPP per capita) 1달러 당 난민 수용 부담을 고려하면 상위 30개 국가 모두 개발도상국가가 차지하고 있다. 전체 인구대비 난민 수용 부담을 고려하면 레바논과 요르단이 압도적으로 1위와 2위를 차지하고 있어 시리아 위기로 인해 난민 수용 부담이 가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의 난민 수용 부담이 증대되고 있다고 해서 선진국들이 난민 수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유럽 국가들과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난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들은 냉전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난민들을 자국으로 재정착시켰으며, 난민 발생국가의 전쟁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냉전 종식 후 난민의 정치적 가치가 감소하고, 1990년대 중반 유럽에서 난민위기가 발생하면서 이들은 다른 지역의 난민들을 유럽과 미국으로 정착시키기보다는 발생국 주변에 난민캠프를 설치하고 그 곳에 머무르도록 하는 전략을 선택하였다. 더욱이 유럽의 난민위기를 우선적으로 다루면서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난민위기 해결을 위한 재정지원도 축소하였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상이 2000년대 이후 계속 심화되고 있다.

 

난민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25,000명 이상의 난민들이 한 곳에서 최소 5년 이상 거주하는 장기화된 난민 상황(protracted refugee situations)이 확산되고 있다. 본국의 불안정 요인이 해소되지 않고, 국제사회의 지원이 감소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처한 난민들은 스스로 생존을 모색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케냐의 다다브 난민캠프에 거주하는 소말리아 난민들은 스스로 캠프 안과 밖에서 경제활동을 해야만 한다. 캠프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소말리아에 가 본 적도 없고 소말리아 정치에 대한 관심도 적다. 그들은 케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런데 케냐 정부는 소말리아 내전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 난민들이 케냐 내에서 발생하는 테러를 감행하는 알샤바브 단체를 지원한다고 주장하며 이들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 20년 이상씩 국경을 떠나 캠프에서 생활을 한 이들이 본국에서 경쟁력 있는 사회구성원으로 생활할 가능성이 극히 낮다. 따라서 난민위기가 장기화되면 될수록 근본적인 난민문제의 해결이 더욱 어렵게 된다.

 

난민위기: 안보와 주권, 그리고 정치의 문제

 

전쟁의 역사만큼이나 난민의 발생과 국제사회의 인도적 활동의 역사도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난민위기는 해결되기 어려운가? 1951년 난민지위에 관한 제네바협약 체결과 1967년 난민지위에 관한 의정서 채택 이후에도 국제사회의 난민위기 해결을 위한 법적 제도의 보완은 꾸준히 이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은 계속하여 증가하고, 국내피난민의 수는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인도적 위기는 난민들의 그것과 다름이 없지만 국제사회의 체계적 지원과 보호활동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난민과 관련된 문제들을 지나치게 법적, 인도적 차원의 문제로만 접근하는 시각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난민과 관련된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난민’ 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요소에 대한 이해를 겸해야 한다. 즉 난민들을 법적인 보호의 대상으로만 이해하기보다 그들로 인해 파생되는 정치적 현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난민과 난민위기가 개념적으로 가지는 정치적 속성은 난민지위 부여과정에서의 개인중심, 난민의 발생과 수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국제규범과 주권과의 갈등, 난민의 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안보위기 등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속성으로 인해 난민문제의 인도적 위기를 정치적으로 안보적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반복하여 나타난다.

 

첫째, 난민지위는 개인을 대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국적국의 보호를 받기 원하지 않는 ‘개인’을 의미한다. 따라서 난민지위의 인정은 집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로 이뤄지는 것이다. 즉 시리아 국민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 난민지위를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가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국적’(nationality)이라는 해석 때문에 최근의 상황을 고려하여 시리아 국적을 가진 사람은 자동적으로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아야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난민 정의의 원인에 포함된 국적은 오히려 민족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것으로, 시리아인들이 국가들 떠났어도 그들이 경제적 이주를 선택한 것인지, 박해를 피해서 떠나 온 것인지 수용국 정부가 따지게 된다. 물론 이에 대한 구분이 모호하고 어렵지만 난민지위가 개인별로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수용국가에서는 쟁점이 되는 사안이다.

 

둘째, 난민지위의 인정은 수용국가 정부와 발생국가 정부의 주권 및 정통성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난민문제는 국가 간 관계의 영향을 받는다. 우선 정부는 자국 시민에 대한 일차적 보호책임이 있다. 따라서 난민지위의 인정은 발생국 정부가 시민보호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어서 두 나라 간 외교적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시리아 내전사태와 같이 국제적 긴급성이 인정되는 경우 주변 국가들이 시리아와의 외교적 고려에 앞서 난민을 잠정적으로 수용한다. 그런데 중국은 미얀마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되었을 때 중국 내 미얀마 난민의 근본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지만 미얀마 정부와의 관계가 개선되었을 때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미얀마 난민들의 일시적 체류를 허가한다. 또한 난민지위의 인정은 국제사회가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의 정부는 국제적 기준에 맞는 절차에 의해 난민을 수용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으며 그러한 결정은 재정적 부담을 수반하기 때문에 개별 국가의 주권과 관련된 사항이 되는 것이다. 9월 22-23일 유엔난민 특별회의에서도 글로벌 쿼터제와 시리아 내 안전지대 설치 등 난상토론은 있어도 유엔과 국제사회가 유럽국가에게 난민수용을 강제하지 못한다.

 

셋째, 난민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결정은 국가마다 안보의 문제를 고려하기 때문에 달리 나타난다. 각국 정부는 대규모 난민의 유입을 국가안보의 심각한 위협으로 인식한다. 현재 유럽 국가들도 중동으로부터 유입되는 난민 행렬 속에 이슬람국가(IS) 대원이 포함되어 있을 것을 우려한다. 또한 대규모 난민의 유입은 정주민들과의 제한된 자원과 일자리 확보를 위한 경쟁을 유발하기도 하며, 정부 재정의 급속한 악화로 이어져 국내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이 확산될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소규모의 난민의 유입에 대해서 국가들은 포용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으나 하루에 15,000명이 넘는 난민이 계속 유입된다면 아무리 포용적인 독일 메르켈 정부라고 하더라도 국경에서 IS 대원의 적발을 위한 수사를 하는 등 난민문제를 안보 관점에서 다루게 된다.

 

난민의 문제가 안보와 주권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다고 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난민문제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존엄성을 누구나 동등하게 가지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과 도덕적인 차원에서 난민들의 문제는 국제사회가 협력해서 해결해야할 일인 것이다. 그런데 난민의 이동이 안보와 주권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특징이 국제정치 현실에서 지니는 함의는 인도적 위기의 해결은 정치적 의지가 수반되어야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독일 정부가 9월 초 유럽연합 내에서의 ‘망명쇼핑’을 방지하기 위해 최초 입국 국가에서 난민신청을 하도록 한 더블린 조약의 유예까지 선언하면서 시리안 난민 수용에 나섰지만, 그로부터 한 달 후 독일정부는 난민에 대한 현금지원 삭감, 난민신청 결격자 신속 귀국 조치 등 난민규제 강화를 추지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난민위기의 속성을 반영한다. 정부의 인도적 원칙과 그에 따른 정책도 국내 정치적 반발이 거세진다면 국익과 안보의 차원에서 난민정책을 바꾸게 되는 것이다.

 

정치적 의지 없이 인도적 위기의 해결도 없다!

 

난민의 대모라는 칭호와 더불어 탈냉전 후 난민보호활동의 기반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를 받는 전 유엔난민기구 대표 사다코 오가타는 “난민은 죄인이 아니다. 난민을 만든 정치와 국가, 정부의 책임이다”라고 하였다. 그녀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소용돌이의 국제정치 속에서 방탄조끼만 입고 내전과 분쟁의 현장을 찾아 난민 구호에 앞장섰다. 그런 그녀가 10년의 재임기간의 교훈으로 난민에 대한 지원과 보호활동은 인도적 규범과 동인에 의해서 이뤄지지만 난민위기의 본질적 해결은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 없이 이룰 수 없는 꿈임을 강조하였다.

 

난민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는 두 가지 차원에서 필요하다. 첫째는 난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의 지원과 이들의 재정착에 대해 정치적 결단이 요구된다. 시리아 난민위기가 국제적 수준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 유럽으로의 정착을 희망하는 피난민들이 최소한 난민지위 인정을 위한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개별 국가에 수용하는 것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동시에 시리아 난민캠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 규모도 늘릴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난민발생을 야기하는 근본원인의 해소에 국제사회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그리고 IS까지 개입된 분쟁을 해결하지 않고서 시리아 난민위기의 근본적 해결은 불가하다. 최근 IS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조 속에서 시리아 내전은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의 역내 주도권 경쟁으로 더욱 국제화되고 정치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다. 이 문제는 인도적 책무로만은 해결될 수 없는 지극히 정치적인 해결이 요구되는 것이다.

 

난민의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이들의 인간안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노력이 확대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제사회의 현실은 문제해결을 위한 정치적 의지의 부재 속에 오히려 난민위기의 악화를 유발하고 있다. 아일란의 죽음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책무를 자극하였듯이 이 기회가 각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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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병원의 사과만으로 메르스 확산책임 덮지 못해 메르스 방역에 실패한 정부도 책임을 인정해야

 

 

오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하여 대국민사과를 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이찬진 변호사)는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사과에 대하여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메르스 확산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하며, 더 나아가 메르스 방역에 실패한 정부도 하루빨리 책임을 인정하고 대국민사과를 할 것을 요구한다.

 

메르스 확산과 관련하여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삼성서울병원이 대국민사과를 하였다는 점은 늦은 감이 있지만 그동안의 과오를 인정하면서 지적되어 온 응급실 환경개선, 음압병실 확보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의심환자가 응급실에 내원하였을 때 메르스 발병 병원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환자를 응급실에 2박 3일간 입원시키는 등 감염병 방역관리를 소홀히 하여 감염병 치료시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증언들이 나오고 있고, 그 결과 80명 이상의 확진자를 포함한 수많은 격리치료자들을 양산한 책임이 분명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 않고 “죄송하고” “끝까지 책임지고 치료하겠다”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미흡하다.

 

더 나아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달 말에 삼성서울병원을 소유한 삼성생명공익재단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였을 뿐 그 이전까지 삼성서울병원의 운영에 직접 관여한 적이 없는바, 이번 대국민사과에서 삼성서울병원을 대표하는 인사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오히려 여러 편법의 과정을 거쳐 경영권 승계를 완성해가고 있는 이 부회장이 이 국가적 재난을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공식화하는 계기로 활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법 하다.

 

또한 민간병원조차 대국민사과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일찍 제공하지 않고 방역 범위를 좁혀 메르스 확산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는 정부가 아무런 책임도 인정하지 않고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에게 메르스 확산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대국민사과와 더불어 공공병원 확충, 의료민영화 정책 중단, 시민들에 대한 위험정보 즉각 공개 등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화, 2015/06/23-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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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한국판 조지오웰

 

 

『댓글부대』 저자, 소설가 장강명

 

 

글. 박상규 
얼마 전까지 오마이뉴스 기자였다. 회사를 그만둔 지금은 지리산 자락에서 사는 백수지만, 여전히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다. 
사진. 박영록

 

솔직히, 장강명의 말은 그의 소설만큼 재미있지 않았다. 추위에 몸을 웅크린 채 집으로 가며 걱정했다. ‘이 인터뷰 기사를 어떻게 정리하나...’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소설가는 작품으로 말하면 된다. 소설가가 말까지 재밌게 할 필요는 없다. 그에게서 재밌는 말을 끌어내지 못한 기자가 문제라면 문제일 터. 

그는 결코 걸려들지(?) 않았다. 누군가를 강하게 비판하거나 전선이 명확한 의견, 또는 선악이 뚜렷하고, 진보와 보수의 색깔이 분명한 말을 선호하지 않았다. 재미로만 따진다면 그런 자극적인 표현들이 딱인데, 장강명은 오히려 그런 문화와 분위기를 경계했다. “가끔씩 울컥하는 단점이 있다”면서도 그는 인터뷰 내내 평온했다. 

 

집으로 돌아와 인터뷰가 담긴 음성 파일을 녹취록으로 만들면서 ‘재미없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쳤고, 소설만큼 흥미롭게 그의 말을 읽었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만큼 괜찮은 르포집이 한국에서 나오겠군. 그걸 장강명이 곧 쓰겠군.’

세상을 보고 대하는 장강명의 시각이 이런 기대를 품게 했다. 누군가는 ‘<동아일보> 출신 기자가, 그것도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는 장강명이 그렇게 될 수 있겠어?’라고 말할 것 같다. 나와 독자 모두 섣부른 판단과 예측은 금물. 

 

참여사회 2016년 1월호

 

기자에서 소설가로

장강명은 <동아일보> 기자로 약 11년을 살았다. ‘조중동을 박멸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게 가진 사람들에겐, <동아일보> 기자가 <한겨레> 문학상으로 등단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충격이자 뉴스였다. 
등단 이후 장강명 작가는 『한국이 싫어서』나 『댓글부대』처럼 직설적인 제목의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썼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장 작가가 순식간에 <동아일보> 색깔을 지우고 있다’ ‘금방 이쪽 세계로 넘어 오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편 가르식 시선은 오해를 낳고, 무엇보다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편견과 편 가르기, 당위와 규범에서 벗어나야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그래야만 장강명이 보인다. 

 

‘소설가 장강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른 여러 ‘소설가의 탄생’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대학에서 SF 관련 글을 쓰다가 소설가를 꿈꿨다. 소설가가 되려면 등단을 해야할 것 같아서 여러 언론사의 신춘문예 공모에 응모했다. 모두 낙방해 언론계로 눈을 돌렸지만 역시 모두 낙방. 일단 먹고 살아야 했다. 
“먼저 건설회사 취업을 했어요. 그러다가 ‘언론사 공채 시험 한 번만 더 쳐보자’는 마음으로 사표를 냈죠. 밤에는 고시원에서 자고, 낮에는 영어교재 만드는 알바 하면서 공부했어요.”

 

장강명은 2002년 <동아일보> 공채에 합격했다. 기자 생활은 적성에 맞았으나,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기자 5년차가 됐을 때 “기사쓰기가 재미없어지는” 위기가 찾아왔다. 자신을 위한 글을 쓰고 싶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소설을 썼다. 주인공은 신문기자였다. 
“이걸 한 3년 썼어요. 아내에게 보여주니까,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상심했다가 며칠 뒤에 보니까, 정말 제가 봐도 좀 그렇더라고요.”

 

마음을 잡고 다시 소설을 썼다. 아침 일찍 출근해 모든 조간 신문을 훑으며 ‘물 먹은 건 없나’를 챙기고, 오후에는 피 말리는 마감을 하고, 저녁에는 취재원과 술 마시는 신문기자 생활을 이어갔다. 글은 주로 주말이나 휴가 때 썼다. 『표백』을 쓰는 데 3년이 걸렸다. 이 작품으로 <한겨레> 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밥 벌이의 무서움’ 때문에 기자직을 한동안 유지했다. 작품 2~3편 더 써서 대박을 터트리면 쿨하게 사표를 던지고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으나, 그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1년 3개월만 전업 작가로 살고, 성과가 나지 않으면 재취업 하겠다”고 약속하고 기자직을 버렸다. 
“집에서 전화기 끄고 최소 하루 8시간씩 소설을 썼어요. 초조하니까 정말 미친듯이 썼죠. 소설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어느 정도 되지 않으면 재취업하기로 했거든요.”

 

<한겨레> 문학상 출신 작가여도 ‘수입 견적’이 나오지 않았다. 기자로 일하면서 받은 연봉의 반도 안 되는 금액이 목표였지만, 고지는 늘 저 멀리 있었다. 다행히 상복이 터졌다. 장 작가는 올해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 작가상,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 『댓글부대』로 제주 4·3평화문학상을 받았다. 덕분에 한동안 재취업 걱정을 안 해도 된다. 
그의 작품에는 기자 생활로 다져진 내공이 많이 보인다. 취재 아이템처럼 소재는 사회성이 있으며, 문장은 간결하다. 소설을 쓰면서도 발품을 많이 팔아 취재하는지 상황 묘사가 생생하다. 특히 국정원 ‘댓글부대’를 연상케 하는 『댓글부대』는 ‘이게 소설인지, 르포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그만큼 흡입력이 강하다. 

 

참여사회 2016년 1월호참여사회 2016년 1월호참여사회 2016년 1월호

 

한국판 조지오웰을 꿈꾸다

어쩌면 이 작품 때문인지도 모른다. 꽤 유명한 저명인사가 “장강명이 르포를 쓰면 정말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논픽션으로 ‘월담’ 할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제가 조지 오웰이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 같은 르포를 참 좋아합니다. 그의 글쓰는 자세도 좋아하고요. 저도 지금 르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뭘 준비하고 있을까.
“문학 공모전에 대한 르포를 준비하고 있어요. 공모전을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 운영하지 않는 출판사 대표, 공모전을 하다가 접은 대표를 이미 인터뷰했어요. 작가 지망생 합평회 하는 모임도 가봤고, 공모전 폐지를 주장하는 소설가도 인터뷰 했습니다.”


기자 출신답게 그는 자신이 취재한 사람들을 길게 열거했다. 그런데 왜 하필 장강명은 공모전에 꽂혔을까.
“문학 공모전도 한국의 특이한 문화로 자리잡은 공채 제도 중 하나예요. 한국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문제를 내고, 그걸 풀게 해서 순위 매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해요. 대기업 입사 시험, 대입, 문학공모전…. 다 동일한 시험이라고 봐요. 점수로 합격·불합격을 나누는데, 합격한 순간 ‘이너 써클’의 구성원이 됩니다. 합격한 사람은 우월감을 느끼고, 불합격한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죠. 대기업 시험 떨어지면, 중소기업에서 실력 키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지방지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중앙지 신춘문예에 다시 도전해요. 시험의 권위가 사람을 압도하고 있어요. 
심지어 자녀 배우자를 볼 때, 학력을 따지는 어른들이 많잖아요. 아니 자녀 배우자를 판단하는 데 19살 때 본 수능시험 성적이 왜 중요하죠? 회사에는 사람 뽑는 조직인 인사팀이 따로 있잖아요. 이들이 사람을 뽑아서 “얘 써봐”하면서 자리에 꽂아요.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 의견도 묻지 않고. 물론 공채 제도에 좋은 점도 있죠.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노력하면 판·검사도 될 수 있으니까요. 어쨌든 르포를 통해 공채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잘 보여주고 싶어요.” 

 

2015년 노벨 문학상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받았다. 그녀는 시, 소설을 쓰는 작가보다는 현장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녀가 쓴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오랜 시간 현장을 취재하면서 사람들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스베틀라나, 조지 오웰이 아니어도 해외 여러 나라에는 좋은 르포작가와 작품이 많다. 그에 비하면 아직 한국의 르포는 규모와 질에서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제가 그런 걸 하고 싶어요. 한국 논픽션 시장은 에세이 위주예요. 좋은 르포를 쓰는 저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언론사에서 일하는) 후배들을 만나면 말해요. 르포 쓰는 거 한 번 생각해 보라고요. 한쪽에선 기자가 할 일 없어서 울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자들이 해야 할 일이 비어 있어요.
사실 닥치는 대로 사람 많이 만나서 이야기 엮는다고 다 책이 되는 건 아니거든요. ‘야마(주제, 핵심)’를 잡고, 취재를 하는 게 생각보다 초심자들이 하기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하루짜리 기사로 소비돼서는 안 될, 기자들이 오래 취재해서 한 권의 책으로 만들면 좋은 현장과 주제가 정말 세상에는 수두룩합니다.”

 

참여사회 2016년 1월호

 

보수와 진보를 넘어선 이야기 ‘댓글부대’

장강명은 “기자는 이래야 한다”, “정치인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식의 당위론을 불편해한다. 당연히 후배 기자에게 ‘훈수’ 두는 걸 싫어한다. 생활인으로서의 기자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쉽게 말하는 걸 스스로 경계한다. 그가 『댓글부대』에 쓴대로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기자는 이래야 한다, 책 만드는 출판사는 이래야 한다, 기업은 이래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걸 싫어합니다. 밥벌이, 돈벌이 이거 엄청 치열한 싸움입니다. 이런 현실에 앞서 내가 생각하는 당위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무리라고 봐요. 기자 후배들에게 ‘댓글 달듯이’ 쉽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게 제가 보수주의자가 된 바탕이 아닐까 싶어요. 현실의 무거움을 크게 받아들이는 것”


『댓글부대』는 여론 조작 댓글팀 ‘팀알렙’이 진보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그야말로 박살내는 작업이다. 소설은 여론 조작을 의뢰하고 이를 실행하는 사람들의 문제만 부각하지 않는다. 진보의 폐쇄성 혹은 세상이 쉽게 바뀔 것이라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순진함(?)도 서늘하게 지적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진보의 폐쇄성은 일부 있다고 봐요. 자기의 뜨거운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도덕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그룹들이 있거든요. 어려움에 처한 현실도 도덕적 우월성으로 돌파하려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고요.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나의 우월성을 강조하면, 대화·토론·협상이 불가능합니다.
진보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지금 ‘너는 악마’ ‘너는 빨갱이’ 이런 식의 문화가 넓게 퍼져 있어요. 정치권도 마찬가지고요. 2015년 한국의 불행이죠. 신앙인들끼리 서로 ‘종교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아요.”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자신이 믿는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성향도 있다. 편 가르기를 하고, 사회의 여러 현상을 ‘좌우 이념’으로만 보면 결국 한쪽의 진실만 보인다. ‘너는 이래야만 한다’는 당위론과 ‘저 사람은 분명히 그럴 거야’라는 짐작에서 벗어나야 진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 
진정한 사회주의자가 되고 싶었던 조지 오웰이 그랬다.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또는 좌파라고 자기 진영의 사람을 편들고 무조건 아름다운 희생자로 그리지 않았다. 그는 현장의 구체성과 목소리를 택했다.
조지 오웰은 영국 북부 탄광으로 직접 들어가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기록하면서도 그들이 얼마나 모순적이고도 다양한 인격을 가졌는지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다. 

 

당위론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고, 도덕적 우월감을 경계하는 작가, 장강명. 현장 취재도 열심히 하니, 전형적이고 정답이 정해져 있는 지금까지의 ‘한국형 르포’를 벗어나 꽤 괜찮은 작품을 쓸 것 같다. 
보수주의자가 기록한 생생한 르포, 나는 장강명의 소설보다 이게 더 기대된다. 

월, 2015/12/28-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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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정치시평 312]
 

왕이 되고 싶은 박근혜 vs. 신민이 되기 싫은 시민

허위의 정치를 넘어서자

 

이양수 한양대학교 강사

 

국회법 개정안에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이미 위헌 논란을 제기하던 터라, 모처럼 여야 합의의 중재안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는 메르스 국면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

 

국회의장의 간곡한 부탁에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물론 어느 정도 예측된 바였다. 다만 어떻게 논란을 종식시키고, 어떤 판단 근거를 제시할 것인지가 관심거리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발언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합리적 판단을 기대한 국민들에게 25일 국무회의에서의 대통령 발언은 예상 밖을 넘어 경악 수준이었다.

 

거부권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삼권 분립 정신에 의거하여 권력 간 균형을 잡는다는 취지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지금까지 76번의 거부권이 행사되었고, 그때마다 정국은 소용돌이에 빠지곤 했다. 대통령의 합법적인 권한 행사인 만큼, 거부권 행사에는 그에 알맞은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상황과 이유에 따라 언행은 다르게 평가될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안정적인 정국 운용을 위해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것만이 민주주의 헌정 체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이자 민주주의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76번째 거부권 행사는 권력 남용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 만하다. 대통령은 국민을 설득시키지도,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지도 못했다. 대신 여당 지도부를 향한 분노, 조롱, 경멸의 메시지를 퍼부었다. 5쪽 분량, 16분 동안 읽어 내려간 직설적이고 감정적인 대통령의 언어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일어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발언이다. 그것은 독선과 아집의 언어였다. '짐은 이렇게 생각한다'는 투로 대통령은 자신만이 옳다고 말했다. 말로는 '위민(爲民)'을 내세우지만, 대통령에게 동등한 주권자로서 시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마치 복종의 대상, 신민으로 여길 뿐이다. 이 모든 것이 세월호의 데자뷔처럼 아른거린다. 대통령은 태생적인 무능,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무책임은 무능의 징표이다. 그럼에도 이번 발언에는 무능과 무책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대통령은 대통령 나름의 정치를 하고 있다. 대통령의 사적 보복으로 정치를 활용하고 있다.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처단할 것을 주문한다. 여당 원내대표에 대해 공개적인 불만을 제기했다. 거부권 행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던 것이다. '배신의 정치인'으로 지목 받은 유승민 원내대표. 그를 축출하려는 친박 진영의 압박. 대통령은 이렇듯 여당을 한 치 앞에 내다볼 수 없는 정쟁으로 몰아넣었다. 더더욱 놀라운 일은 대통령은 배신자들을 다음 선거에서 심판해 달라고 호소한 점이다. 이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거부권 행사에서 제시한 대통령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이를 두고 수많은 해석이 오고가고 있지만, 어느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인지, 대통령의 진의는 무엇인지 헤아리기 어려워 보인다. 분명한 건, 대통령의 발언으로 날선 정파 갈등이 전면화되고 있다. 줄 세우기의 무자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메시지의 진의는 대체로 수신자의 수용 과정에서 밝혀진다. 대통령은 의당 국민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국민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메시지는 공교롭게도 여당을 향해 있고, 또한 즉각적인 반응도 여당에서 나왔다. 여당의 정파 논리가 대통령의 의지를 결정한다. 친박, 비박의 한판 싸움의 전운이 감도는 이유이다. 어찌 되었든 대통령은 정치를 혐오한다. 정치인 모두를 구태 정치로 몰아치면서 국민에게 심판해줄 것을 요구한다. 물론 그 국민은 대통령에게 표를 던질 유권자들이다. 이번 정부의 수사를 빌리자면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시국을 조성하고 있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이 전개되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의 대통령에 대한 공개사과, 반성문 작성. 친박의 조직적인 사퇴 압력, 의총 의결의 거부. 이 모든 과정은 비-민주주의적 발상이고, 왕정체제의 행태들이다. 주말 사극에 나올 법한 이 현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민주주의의 시계는 과거에 멈춰있다. 마땅히 주인이어야 할 주권자는 정치에서 사라졌다. 우리 모두는 이전투구(泥田鬪狗) 정치인들을 구경하는 방관자일 뿐이다.

 

대통령은 시민을 기만하고 있다. 위민을 내세우지만 국민은 안중에 없는 기만인 것이다. 이것은 공약 준수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의 기본인 언행의 일치, 신뢰조차 사라진 '허위의 정치'의 산물이다. 누구도 듣지 않고 지키지 않는 언행에는 현재도 미래도 기대할 수 없다. 진실한 말과 행동에서만 미래가 있을 수 있다. 소통 안에서 얻어진 말과 행동의 의미만이 진실인 것이다. 무릇 진정성에 기반한 소통이 필요한 이유이다. 대통령의 발언에는 주권자에 대한 존중마저 없다. 당청 간 소통 부재를 해결해 달라고 국민에게 떼쓰고 있는 꼴이다. '저 배신자를 처단해 달라'고 호소한 대통령.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대통령의 호소는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자부하는 우리들을 혼란하게 한다. 주춧돌 없는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듯이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무너진 민주주의. 21세기 우리 민낯이 드러나는 현주소이다. 아니 민주주의는 죽었다. 오직 관념으로 이해될 뿐이다. 다양성에 대한 관용, 정당 정치는 현실에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권력 투쟁으로 귀결된다. 당장 내년으로 다가온 국회의원 선거에 살아남느냐의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모든 것이 허용된 권모술수만 난무할 것이다. 기득권 사수를 위해서는 민주주의는 허울일 뿐이다. 음모는 음모를 낳고 입에서 입으로 회자될 것이다. 여기서 사라진 것은 시민의 정치 참여 기회이다. 지금 우리는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빠져 있다. 국정 안정을 책임져야 할 대통령이 만든 무책임한 상황이다. 앞장 설 선장도, 나아갈 방향도 오리무중이다. 이런 현실은 내일에 대한 믿음마저 갉아먹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상황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을 수 있는가? 지금 우리는 원론적인 물음에 봉착하고 있다. 믿을 것은 우리 자신들이다. 희망을 품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희망은 우리라는 생각에서 나오고, 시민으로 거듭나는 태도에서 싹 터 오른다. 대통령도 인정하고 있다. 최종 심판자는 우리 자신들, 시민 정치의 주권자들임을. 지역주의, 지연주의야말로 구태이다. 구태는 허위를 키우는 정치다.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허위의 반대는 진실임을.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메르스 국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허약한 공공성의 기반이 문제가 아니던가. 공공성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는다. 또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상호 신뢰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오로지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축적되고 전승된다.

 

더 이상 방관적 태도론 미래가 없다. 소수의 손에 흔들리는 정치, 국민의 위상을 변두리에 두는 정치에서는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이를 벗어나야 한다. 그 첫걸음은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요구대로 심판하는 것이다. 주권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 새로운 정치를 위한 발판이다. 대통령에게 기대할 수 없다면 우리가 나서야 할 때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http://www.pressian.com/ '시민정치시평' 검색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수, 2015/07/0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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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UTERS/Yannis Behrakis

© REUTERS/Yannis Behrakis

 

레바논 정부가 8일 시리아 난민 100명 이상을 본국에 강제 송환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국제앰네스티가 밝혔다. 송환되지 않은 난민 약 150명은 여전히 레바논 베이루트의 라픽 하리리 국제공항에서 발이 묶인 채로 수 시간 내에 강제 송환될 위기에 처해 있다. 레바논 정부는 뒤이어 도착하는 현지 시간 오후 9시 30분 항공편으로 이들을 돌려보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터키로 향하기 위해 시리아에서 항공편을 이용해 베이루트에 도착한 난민들로, 1월 7일 베이루트를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터키 정부의 난민 입국 제한 정책이 8일부터 시행되면서 시리아 난민에 대한 비자 규정도 변경되었고, 이에 앞서 터키항공 항공편 2대가 취소됨에 따라 난민들의 발이 묶이게 되었다.

“100명이 넘는 난민들을 강제로 시리아에 돌려보낸다면 레바논 정부는 충격적일 수준의 퇴보를 저지르는 것이며 이들 난민을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게 된다. 이는 시리아의 유혈사태와 박해를 피해 온 모든 난민을 보호해야 할 레바논의 국제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말도 안 되는 행위”
– 셰리프 엘세이드-알리(Sherif Elsayed-Ali) 국제앰네스티 난민이주민권리국장

셰리프 엘세이드-알리(Sherif Elsayed-Ali) 국제앰네스티 난민이주민권리국장은 “100명이 넘는 난민들을 강제로 시리아에 돌려보낸다면 레바논 정부는 충격적일 수준의 퇴보를 저지르는 것이며 이들 난민을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게 된다. 이는 시리아의 유혈사태와 박해를 피해 온 모든 난민을 보호해야 할 레바논의 국제법적 의무를 위반하는 말도 안 되는 행위”라며 “터키 정부가 새롭게 시행한 이번 비자 규제로 시리아의 분쟁으로부터 벗어날 안식처를 절실히 찾고 있는 시리아인들에게 또 다른 장애물이 되는 한편 이러한 제한이 난민들에게 초래할 수 있는 엄청난 결과를 목격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영어전문 보기

Lebanon: Forcible return of more than 100 refugees to Syria a shocking setback

More than 100 Syrian refugees have been forcibly returned to Syria by the Lebanese authorities today, Amnesty International has learned. Around 150 others are still stranded at Beirut’s Rafic Hariri International Airport and are at risk of imminent deportation in the coming hours. The authorities are reportedly planning to force them to leave on the next flight at 9:30pm local time.

The refugees had arrived in Beirut on flights from Syria with the intention of travelling on to Turkey. They were due to depart on 7 January but were unable to leave as two Turkish Airlines flights were cancelled ahead of new visa regulations for Syrian refugees imposed by the Turkish authorities that came into force today restricting access to the country.

“By forcibly returning more than 100 refugees to Syria the Lebanese government has stooped to a shocking new low and is putting these people in mortal danger. This is an outrageous breach of Lebanon’s international obligations to protect all refugees fleeing bloodshed and persecution in Syria. The Lebanese government must halt all further deportations of Syrian refugees immediately,” said Sherif Elsayed-Ali, Head of Refugee and Migrants’ Rights at Amnesty International.

“The new visa regulations in Turkey present yet another hurdle for Syrians desperate to seek sanctuary from the conflict and show what devastating consequences such restrictions can have for refugees.”

월, 2016/01/11-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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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16기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2015년 7월 6일(월)부터 8월 6일(목)까지 5주 동안 진행하게 됩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26명의 10~20대 청년친구들이 함께 참여하는데, 이 5주 동안 우리 청년공익활동가학교 친구들은 인권과 참여민주주의, 청년문제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직접행동을 기획하고 진행함으로써 미래의 청년시민운동가로 커나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청년공익활동가학교란?
청년공익활동가학교는 그 동안 방중마다 실시되었던 참여연대 인턴프로그램의 새로운 이름입니다. 청년들의 공익활동을 위한 시민교육과 청년문제 해결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공부하는 배움 공동체 학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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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날이라 모두들 서로 어색하기에 우선 아이스브레이킹 게임을 진행하였습니다. ABC초콜릿 8개씩을 각자 가지고 서로에게 인사하며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초콜릿 1개를 주는 형식의 게임이었는데, 10분 동안 가장 많은 수의 초콜릿을 얻은 사람이 16기의 장이 되는 것이었죠. 물론 기장이 된다는 사실은 게임 종료 후에 이정민간사가 알려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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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는 두 명의 사람이 짝지어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근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메르스(MERS) 때문에 의회인턴이 취소되어 다른 의미있는 활동을 찾다가 ‘예기치 않게’ 이곳으로 오시게 되었다는 변현지님, 다양한 청년들과 건강한 생각을 공유하고 싶어서 오셨다는 장유리님, 시민단체 활동과 주택문제에 관심이 많아 오셨다는 강성준님, 참여연대 회원이신 부친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오셨다는 문동욱님 등 다양한 사연과 목적을 가지고 참여연대에 모인 26명의 청년들을 보니 아직 한국사회는 밝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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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5주동안 진행되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은 활동가학교 친구들이 직접 후기를 작성하여 앞으로 계속 소개될 예정입니다. 참여연대 활동가학교 16기의 멋진 활동을 기대합니다! 많은 응원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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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07/13-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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