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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말?]근현대사 비중 줄인 이유가 150년으로 짧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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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말?]근현대사 비중 줄인 이유가 150년으로 짧아서?

익명 (미확인) | 수, 2015/10/2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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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홍보하기 위한 별도의 특별 홈페이지(링크)를 만들었습니다.

▲ 교육부 홈페이지에 마련된 국정 역사교과서 홍보 웹페이지

▲ 교육부 홈페이지에 마련된 국정 역사교과서 홍보 웹페이지

국정교과서로 전환하겠다고 밝힌지 10일이나 됐는데 갑자기 홍보 웹페이지를 만든 것을 보니 점점 커지고 있는 국정화 반대 여론에 교육부도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주겠다고 만든 Q&A 코너를 보니 사실이라고 믿기엔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Q9. 다른 선진국들은 모두 검정제나 인정제를 채택하고 있다는데 왜 우리나라는 과거의 국정으로 돌아가려고 하나요?

나라마다 역사가 다르고, 역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문제와 논쟁의 양상도 다릅니다. 각국은 사정에 따라 최적의 교과서 제도를 채택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으며 역사 인식의 차이로 인한 이념대립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국가가 올바른 시각의 교과서를 책임지고 발행해야 합니다.

우리처럼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기는 통일 전 독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서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통일이 될 때까지 역사교과서에 있어 줄곧 검정과 인정을 함께 사용해왔습니다. 국정교과서를 사용한 쪽은 지금의 북한처럼 동독이었습니다.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 사정에 따라 최적의 교과서 제도를 채택해야한다는 대목에선 ‘한국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던 유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립니다.

Q10. 근현대사의 비중에 대한 논란이 많은데, 왜 줄이려고 하는 건가요? 혹시 현대사에서 있었던 지도자들의 잘못들을 은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닌가요?

현재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근현대사는 150년 정도의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약 50%의 비중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시간의 길이를 고려한다면 대단히 확대되어 있고 상대적으로 매우 자세하여 해당 년도의 월별 사건까지 암기하게 되는 등 학습부담이 큽니다.

우리민족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위해,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우리 역사를 검증된 사료에 따라 정확하게 기술하고, 8․15 광복 이후 국가 기틀을 마련하여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고 과학,문화,예술 각 분야의 눈부신 발전을 달성한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공정하고 균형 있게 기술할 것입니다.

시간의 길이를 기준으로 교과서 내용을 배당한다는 건 태어나서 처음 들어봐요. (웃음) 근현대를 가르치고 싶지 않다는 거 아닌가요?

교육부 홈페이지에 실린 QnA 내용에 대해 질문하자 윤세병 교사(유성생명과학고)로부터 돌아온 반응입니다. 시간 길이로 정확히 따지면 근현대사는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에서 3/100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근현대사 비중을 3% 정도로만 해서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요?

중국의 역사교육을 박사논문으로 썼던 윤 교사는 유구한 전근대사를 자랑하는 중국도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약 70%로 압도적으로 많다고 말했습니다. 또 일본의 경우도 고교교과서가 일본사 A와 일본사 B로 나뉘어져 있는데 일본사 A는 거의 근현대사이고 일본사 B도 5대5의 비중으로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육훈 독산고 교사(역사교육연구소장)도 나라마다 국가 성립의 시기와 과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근현대사 비중을 늘리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라면서 역사가 짧은 미국은 당연히 교과서 대부분이 근현대사이고 1870년대에 국가가 형성된 독일도 약 60%가 근현대사라고 설명했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과거를 통해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배우는 것인데 가장 가까운 역사가 학생들의 관심도 많고 현재의 문제를 정확하게 바라보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근현대사를 많이 다룰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육부는 5대5의 비율이던 전근대사와 근현대사 비중을 약 6대4의 비율로 바꾸려 하고 있습니다.

Q11.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면 암기 분량이 늘어나고 학습 부담이 커지지 않나요?

하나의 교과서로 공부하는 것이 학습 부담이 적습니다. 내용 편차가 있는 8~9종의 교과서보다 신뢰할 수 있는 교과서 한 권이 학습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면서 평가 방식을 절대평가제(9등급제)로 개선하고, ‘학교 수업을 충실히 받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만점을 받을 수 있도록 쉽게 출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분량과 내용은 현장과의 충분한 소통 속에서 학생의 학습 부담과 불안감을 경감하는 방향으로 결정될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여러 개의 검정교과서 보다는 국정교과서 하나로 공부하는 것이 수험생 부담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수차례 수능 출제위원으로 참여했던 윤세병 교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수능 출제의 기본원칙은 교집합을 내는 것입니다. 최소한 6종-7종 이상의 교과서에 (공통적으로) 모두 들어있는 내용만 출제해야 해요. 오지선다의 정답도 8종에 다 들어있어야 합니다.

마치 검정제 하에서는 수험생이 여러 개의 교과서를 모두 공부해야 하는 것처럼 교육부가 호도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수능이 EBS 교재에서 70%이상 나오도록 돼 있기 때문에 현재 수험생들이 검정교과서로 배운다고 해서 학습부담이 큰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1종으로 국정교과서를 하게 되면 전국 수십만 명의 수험생이 하나의 교과서로 수능을 치르기 때문에 출제자는 난이도를 맞추기 위해 국정교과서의 구석에 박혀있는 보조설명에서 문제 일부를 출제하게 된다고 합니다. 수험생은 좋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선 교과서 구석구석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국정교과서를 쓰면 출제자가 편하고 검정교과서 제도에서는 수험생이 편하다’는게 수능출제위원의 생각입니다.

정부는 국정을 홍보할 책임이 있고, 이것이 의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사실에 의거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정책 홍보는 정부가 말하는 국론의 통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3년이라는 교육과정 예고 제도가 이례적으로 2년으로 앞당겨지고 집필진이 구성되기도 전에 난데없이 교육부 차관이 물러나는 상황. 심지어 ‘올바른 역사관 확립’이란 중차대한 국가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회 몰래 정식 예산이 아닌 예비비를 빼내 사용하는 국정교과서 사업은 홍보의 측면에서도 설득력을 찾아 보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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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학교가 사학비리로 쫒겨난 김문기 전 총장을 우상화하는 교육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문기 전 총장이 쓴 책을 교재로 사용하는 인성교육 수업을 모든 신입생들이 듣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선 인성교육이 아니라 ‘김문기 종교’수업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상지대, 김문기 우상화한 책으로 신입생들에게 인성교육 강요

상지대는 올해부터 김문기 전 총장이 쓴 교재로 인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1학점 짜리 수업인 인성교육은 교양필수 과목은 아니지만, 대학 측이 일괄적으로 수강신청을 해 모든 신입생들이 듣도록 하고 있다. 인성교육 강의는 2005년부터 시행돼 왔지만 김문기 씨가 쓴 교재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 상지대와 상지영서대는 올해부터 김문기 씨가 쓴 책으로 신입생 모두에게 인성교육을 강제하고 있다.

▲ 상지대와 상지영서대는 올해부터 김문기 씨가 쓴 책으로 신입생 모두에게 인성교육을 강제하고 있다.

문제는 교재의 내용이다. 김문기 전 총장은 상지대 재단 이사장 시절 공금횡령, 부정입학 등 혐의로 기소됐고, 1994년 대법원에서 부정입학 비리가 인정돼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사학비리 전과자다. 2014년 8월 다시 총장으로 다시 상지대에 복귀했지만, 복귀한 지 11개월 만에 다시 교육부 감사에서 교육용 재산을 부당하게 사용한 점이 드러나 지난해 7월 총장직에서도 해임됐다

하지만 상지대 인성교육 교재인 <김문기 선생의 철학 ‘상지정신’>책은 김문기 전 총장을 마치 위인처럼 묘사했다. 상지대가 인성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김문기 선생의 철학 ‘상지정신’>이라는 책에는 아래와 같이 김문기 씨를 일방적으로 미화한 내용이 나온다.

김문기 선생은 평생을 살아오시면서 매사에 충실했다…김문기 선생은 젋은이들에게 교수 자리를 주선한 것이 부지기수이며 직장도 많이 잡아 주었으니 이 또한 남을 위한 충 아닌가? 열거하면 끝도 없다.13P

김문기 선생께서는 교육, 사회, 정치, 문화, 체육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업적을 남기셨고, 각 분야에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훈장과 큰 상을 수상하신 분이다.16p(책의 저자는 김문기 씨지만, 김문기를 선생으로 표현하고 경어체로 서술한 점을 봤을 때, 다른 사람이 써준 것으로 보인다)

김문기 전 총장을 일방적으로 미화한 이 교재에는 사실관계가 틀린 내용도 나온다. 책 곳곳에는 김 전 총장이 상지학원 설립자라고 표현돼 있지만 그는 설립자가 아니다. 2004년 대법원은 상지학원 설립 당초 임원과 관련한 소송에서, 상지학원 설립자는 상지학원의 전신인 청암학원의 고 원홍묵 선생이라고 판결했다. 또 2014년 교육부도 김문기 전 총장이 상지학원 정관에서 김문기 등 8명을 설립당초 임원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 원래대로 원홍묵 등 8인으로 시정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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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같이 사실관계도 다르고 김 전 총장을 일방적으로 미화한 책으로 인성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총학생회가 신입생 200명을 대상으로 의견서를 접수한 결과 187명이 인성교육을 반대한다고 표명했다. 신입생 의견서에는 “인성교육은 김문기 종교다”, “인성교육과 상관없는 쓰레기 수업”등등의 불만이 담겨있다. 실제 취재진이 만난 상지대 신입생 임홍렬(산업디자인과 1)씨는 “인성교육은 사학비리 전과자로 판명된 사람의 입장을 학생들에게 세뇌시키는 수업”이라며 “400만 원 넘는 등록금을 내면서 이런 수업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는 게 답답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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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영서대도 올해부터 인성교육 ‘교양필수 과목으로…김문기 책 1500권 교비로 구입

이같은 인성교육은 상지대와 같은 재단인 상지영서대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상지영서대는 올해부터 인성교육을 교양필수 과목으로 지정했다. 교재는 상지대가 사용하는 <김문기 선생의 철학 ‘상지정신’>으로 동일하다.

취재결과, 상지영서대는 1500권에 달하는 교재를 구입하는 데 교비 900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학생 등록금을 김문기 전 총장을 우상화하는 교육에 사용한 것이다. 책의 저자가 김문기 전 총장인만큼 책의 인세도 김 전 총장에게 흘러갔을 것으로 보인다.

상지대는 교재 구입비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언론 대응을 담당하는 상지대 언론홍보팀은 “인성교육은 특성화기초대학에서 모두 관리하는 것으로 타 부서에선 일체 내용을 모른다”고 말했다. 특성화기초대학 이제원 학장에게 인성교육 수업을 개설한 목적은 무엇인지, 교재는 어떤 비용으로 구입했는지 물었으나 답변이 오지 않았다.

이사장, 총장 자리에서 모두 쫒겨난 김문기…이사회 장악해 여전히 실권 행사

낯뜨거운 교재를 동원해 김문기 전 총장을 우상화하는 작업은 인성교육 말고도 학교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김문기 전 총장은 지난해 7월 총장에서 해임됐지만, 학교 본관에는 1층부터 5층까지 김문기 전 총장의 사진이 걸려있다. 상지대 대학원관 1층 입구에는 김문기 전 총장의 정치활동에 관한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 상지대 정문 옆에 세워진 김문기 기념관. 대저택을 방불케하는 이 곳에는 김문기 씨를 미화한 각종 게시물들이 진열돼 있다.

▲ 상지대 정문 옆에 세워진 김문기 기념관. 대저택을 방불케하는 이 곳에는 김문기 씨를 미화한 각종 게시물들이 진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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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정문 옆에는 대저택을 방불케하는 김문기 기념관도 세워져 있다. 기념관에는 김문기 전 총장이 쓴 책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자신을 미화한 게시물들로 가득하다. 이 곳은 학교역사를 제대로 알린다는 목적으로 지역주민들과 총동창회에 개방하고 있지만, 총학생회에 대해서는 주거침입이라며 방문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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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 전 총장이 자신의 기념관에서 업무를 보며 여전히 학교운영에 개입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방정균 한의예과 교수(전 상지대 비상대책위원장)는 “김문기 기념관에 보직교수들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김문기 전 총장에게 허가받고 재가받고 그러고 있는 상황”이라며 “김문기 씨가 법적으로는 상지대와 관계가 정리됐다지만, 여전히 이사회와 학교행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취재 : 홍여진 연다혜
촬영 : 김수영
편집 : 윤석민

목, 2016/05/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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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그는 지난 50여 년간 검사·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검찰총장·법무부 장관, 국회의원·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며 한국 현대사의 오욕의 순간 어디에나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국 현대사 곳곳에 흔적을 남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하지만 솔직하고 성실했던 포레스트 검프와 달리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몰랐다”는 류의 해명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부정해왔다. 형사처벌을 피해가며 자신의 과오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35살에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 올라 75살에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낸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며 자신의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만큼 초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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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은 지난 40년동안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장면에서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박근혜정부 들어 공작정치의 막후설계자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사에 신화적 존재로 남을 것만 같았던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시 국정 농단 사태로 국회와 국민에게 호출되고 있다.

‘내부자’ 로서 수 십년간 권력을 누려온 그의 잘잘못이 이번엔 제대로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흑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든 지금의 사태를 명명백백 밝히기 위해서도 그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유신 헌법, 간첩 조작 등 주도한 유신독재의 앞잡이

1939년 11월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나 그는 “머리가 비상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경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인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그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의 1기 장학생이 되며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다.

“가치 중립적 타협, 화합은 없다…회색 지대 無(무)…강철같은 의지로 대통령, 대한민국 보위.”, “국가 정체성과 헌법 가치 수호 노력.”, “전사들이 싸우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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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법률지식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잡은 것은 오히려 죽은 김영환 전 민정수석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잡은 것과 같다. 그렇지만 김영환의 업무일지에 대해서도 김기춘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sbs)

최근 공개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기록된 그의 말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 일가와 인연은 맺은 뒤 그는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보위’에 온몸을 바친다. 물론 그가 강철같은 의지를 보이며 보위했던 대상은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등 특정 정권과 반공주의라는 일그러진 가치였다.

그가 현대사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발자취를 남긴 것은 1972년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하면서다. 1967년 부산지검 검사, 1969년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71년 법무부 법무과 검사로 출근한 김 전 실장은 신직수 당시 법무부 장관의 눈에 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단장 시절 법무 참모를 지내기도 했던 신 장관은 이후 요직마다 김 전 실장을 데리고 다니며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부정하지만,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했던 헌법학자 한태연은 2001년 한국헌법학회가 연 ‘역사와 헌법 학술대회’에서 “신직수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당시 언론 본도를 보면 김기춘은 텔레비전에 나와 유신헌법을 해설했다고도 한다.

5.16장 학생이 박정희 정권의 근간이 됐던 유신체제의 설계자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 똘똘’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만큼 정권의 보위에 최선을 다했다. ‘후견인’ 신직수 장관이 1973년 중앙정보부장이 되며 불러들인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고 육영수 여사에게 총을 겨눈 문세광의 자백을 하루 만에 받아내 35살의 나이에 대공수사국장에 오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 전 실장을 신뢰하는 계기가 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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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은 유신헌법 제정에 기여한 공로로 30대의 나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에 올랐다. 그리고 간첩조작사건 등으로 유신독재정권의 첨병 역할을 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아직도 당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공수사국장시절의 김기춘의 모습.

대대적인 간첩조작 사건을 지휘하며 박정희 체제를 유지하는데도 핵심적인 열할을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자백>이 다룬 ‘학원침투 북괴간첩단’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국에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몰아간 사건으로 사건 관련자들은 중앙정보부에서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재심에서 이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여러 인터뷰와 글에서 “김기춘은 유신정권 7년 중 4년 반을 중정 대공수사국장을 지내며 본격적인 조작 간첩 사건의 시대를 열었다”고 지적했다. <자백>에서 이를 묻는 말에 김 전 실장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유서대필 사건 기획…초원복집 사건에도 기사회생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뒤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과정에서도 김 전 실장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는 부인하지만 5공화국 실세 허화평에게 장문의 충성맹세 편지를 보낸 일화는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다. (‘법 주무르며 누린 ‘기춘대원군’의 40년 권력’)

심재륜 전 고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그에 대해 “높이 평가할 만한 면이 있기는 하더라. 검사 때 법무부 장관 눈에 띄려고 날마다 장관 집 앞 언덕에 올랐던 노력, 남들 잠자는 시간에 일어나 하염없이 벌인 그 노력이 놀라웠다” 고 평가하기도 했다. (“식물정부 수사에 눈치 볼 이유 있나?“)

전두환 정권에서 와신상담하던 그는 노태우 정권 출범 뒤 검찰총장에 오르며 다시 칼을 휘두른다. 그는 유신헌법 대신 반공주의라는 무기를 들고 민주화 운동 탄압의 선봉에 섰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그는 “좌경세력은 무좀과 같아서 약을 바르면 일시적으로 치유된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곤 한다. 체제수호에 검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고 검찰 간부들에게 역설했다고 한다.

그는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뒤 법무부 장관에 올라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지휘하기도 했다. 물론 이 사건은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악명’을 전국에 떨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92년 12월11일, 그는 초원복집에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등을 불러모아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등의 말을 하며 제14대 대통령 선거 관권 개입 방안과 지역감정 조장 계획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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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해 검찰해 출두하는 모습. (사진 출처: 경향신문)

한국 정치사에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된 초원복집 사건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참고로 그의 아내는 광주 출신이다.). 이때 검찰이 김 전실장을 불구속 기소하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가 1993년 4월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내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의 공소가 취소됐다.

‘기춘대원군’…현대사의 살아있는 악마

초원복집 사건이 발목을 잡을 듯했지만 ‘처세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그는 이후 국회의원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복귀하며 노년까지 권력의 정점에 선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헌법재판소에 탄핵안을 접수하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의 멤버로서 정권창출의 일등 공신이 되는 등 2000년대 이후에도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사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김기춘7인회01
무능하고 퇴행적인 박근혜정부의 배후에는 김기춘이 있었다. 그는 7인회 멤버로 박근혜정부의 탄생에 기여했고, 이후 비서실장으로 박근혜정부의 퇴행을 막후에서 주도했다.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권력 주변에 기생하며 온갖 반민주적 악행을 저지른, 현대사의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까지도 최순실도,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도 “몰랐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영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비망록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언론 탄압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말이다.

비망록에서 엿보이는 그의 사고는 여전히 50여 년 전 유신체제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계속 자리를 유지한 것은 한국 사회 과거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질지, 역사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을지는 아직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광장에 타오른 수백만의 촛불을 통해 한국 사회는 변화를 선택했다.

최근 국회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최순실 씨를 모른다”고 시종일관 주장하던 김 전 실장이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누리꾼의 제보에 당황하며 “죄송하다. 저도 나이 들어서….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이제 보니까 제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의 신화에 균열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인듯싶다.

화, 2016/12/2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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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8월 상지대 총장으로 학교로 복귀한 김문기 전 상지대 이사장.

지난해 7월, 김 씨는 상지대 총장에서 해임됐다. 그러나 김 씨는 총장에서 해임된 뒤에도 자신이 장악한 이사회를 바탕으로 학교의 절대 권력자로 군림하고 있다.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교수와 학생들 수십 명을 징계하는가 하면, 이사회와 학교의 주요 보직에는 자신의 친인척과 지인을 배치해 놓았다.

이렇게 김 씨가 학교를 좌지우지하면서 상지대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D-를 받고, 지방대학 특성화(CK-1) 사업이 중단돼 교육부가 예산을 회수해가는 등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끝나지 않은 ‘김문기와의 싸움’…이어지는 징계

2014년과 2015년도 총학생회에서 활동하며 김문기 총장 퇴진 운동을 펼쳐온 전종완 씨. 2015년에는 총학생회장을 맡아 김문기 반대를 외치며 삭발을 하고, 본관 옥상에 오르고 국회 앞 상경 집회를 이끌었다. 학교 측은 업무방해와 총장 집무실 무단 난입 등을 이유로 전 씨를 두 차례 징계한 끝에 올해 2월, 제적을 통보했다. 전 씨는 “김문기 씨 쪽에서 보기에는 내가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그래서 보복성, 징계성으로 제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재단과 김문기 복귀 반대 투쟁의 최전선에 섰던 정대화 교수. 2014년 12월, 상지대 이사회는 정 교수를 파면했다. 이어 박병섭, 공제욱, 방정균 교수가 2015년 7월, 나란히 파면당했다. 학교 비방과 선동, 명예훼손 등이 이유였다. 교원소청심사위원회와 법원은 이들 4명의 교수에 대해 파면 무효를 결정했지만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김문기 반대 투쟁을 하다 파면당한 상지대 방정균, 정대화, 공제욱, 박병섭 교수. (좌측부터)

▲ 김문기 반대 투쟁을 하다 파면당한 상지대 방정균, 정대화, 공제욱, 박병섭 교수. (좌측부터)

이렇게 지금까지 모두 40명이 넘는 교수와 직원, 학생들이 징계를 받거나 재계약, 재임용이 거부됐다. 김문기 전 총장을 반대하는 학교 구성원들이 쫓겨나는 동안 김문기, 그리고 구재단과 가까운 인물들은 하나 둘 학교의 요직을 차지했다.

이사회 장악한 김문기…요직 차지하는 측근들

지난 2014년 교육부 특별종합감사에서 부당 채용된 것으로 드러나 총장 해임 사유까지 됐고, 결국 직권면직 됐던 김문기 전 총장의 측근, 남 모 씨와 조 모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각각 총무부장과 학생지원부 과장으로 다시 학교에 복귀했다.

김문기 반대 교수들의 징계 관련 소송에서 구재단 측, 즉 김문기 쪽을 대리해 온 정석영 변호사는 지난 해 11월, 석좌교수로 채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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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나 연구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지만 급여로 매달 800만 원이 지급되고 있다. 정 변호사는 구재단을 대리한 소송의 수임료를 교수 급여로 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부분도 감안한 것이다. 학교가 다른 소송 대리인을 선임할 경우 많은 비용이 드는데 내가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학교가 재정을 절감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소송 수임료를 급여 형태로 교비에서 변칙 지출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 김문기 전 총장의 친인척과 지인들로 구성된 상지대 이사회 현황.

▲ 김문기 전 총장의 친인척과 지인들로 구성된 상지대 이사회 현황.

김문기 씨는 정관에 상근 임원직을 신설해 자신의 장남 김성남 씨를 연봉 1억 3천 상당의 상임이사 자리에 앉히고 친척 관계인 최선용, 김일남 씨, 그리고 같은 문중 인사인 김길래 씨를 이사로 기용하면서 이사회를 완전히 장악했다. 총장에서 물러났지만 김 씨가 여전히 교내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배경이다.

김문기 체제 아래 무너지는 학교 운영

상지대가 이렇게 김 씨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학교는 급속하게 망가지고 있다. 상지대는 3년마다 있는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지난해 D-를 받았다. 지난 7월 파면된 박병섭 상지대 법학과 교수는 “평가 지표를 보면 학생들의 취업 지원 예산 등이 일반 예산보다 훨씬 높은 점수가 부과돼 있다. 그런데 우리학교는 오히려 그 예산을 깎은 것이다. 바보가 아니면 점수를 안 받기로 작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지대는 2014년 김문기 씨가 총장이 되기 전, 지방대학 특성화(CK-1) 사업에 선정돼 95억 원의 국비 지원을 확보했지만 김 씨가 총장으로 들어온 후 교육부와 약속한 이행사항을 지키지 않아 사업이 중단되고 국비 지원금이 환수되는 상황도 벌어졌다.

지난 9일, 취재를 위해 찾은 상지대 캠퍼스 한가운데서 김문기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현재 상지대 상임이사인 자신의 장남 김성남 씨와 함께 학교 부동산 관련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총장에서 해임됐는데도 여전히 학교를 떠나지 않고 있는 이유를 묻자 “내가 설립자기 때문에 일이 있을 때마다 학교에서 좀 와달라고 한다. 오늘은 학교 부지 이런 것을 정리해 주려고 온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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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0일, 교육부에 상지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지난 2014년 교육부의 특별종합감사로 김문기 씨가 총장에서 해임됐지만 여전히 사태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방정균 상지대 한의예과 교수는 “지난 교육부 감사에서 이사회에 대한 감사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 김문기 전 총장 해임 후에도 사태가 악화되고 있으면 당연히 재감사를 나와야 한다. 교육부의 이사회 개편, 임시이사 파견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빨리 진행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목, 2016/05/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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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종 “홍보수석 본연의 업무” .. 과연?

어제 (6월 30일) 공개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보도 개입 녹취와 관련해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오늘 (7월 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모르기 때문에 제 소신을 말씀드릴 수 없지만 추측컨대 홍보수석으로서 통상적인 업무 협조를 요청한 것이라고 본다.

이원종 비서실장의 해명은 말이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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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정무수석 시절에도 KBS에 전화해 ‘보도지침’ 내려

뉴스타파는 어제 이정현 홍보수석이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3번 걸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정현 ‘수석’이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건 것은 모두 4번이다. 왜냐하면 이정현 수석은 홍보수석이 되기 전, 정무수석 시절 당시에도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기 때문이다. 김 전 국장의 비망록을 보면, 이정현 수석은 2013년 5월 13일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정현 씨는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이 아니라 정무수석이었으며 6월 3일 홍보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정현 ‘정무수석’이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던 2013년 5월 13일은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방미 중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지 3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방송들마다 연일 윤창중의 성추행 사건을 톱으로 다루던 때다. 이정현 정무수석은 김시곤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잘 다뤄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길환영 당시 KBS 사장은 김시곤 전 국장에게 “윤창중 사건을 톱으로 다루지 말라”고 지시했다.

‘정무수석’ 이정현의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당시 지상파 3사가 윤창중 사건을 다룬 순서를 확인해보면, 이 같은 지시와 요구는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KBS
9시 뉴스
MBC
뉴스데스크
SBS
8시 뉴스
5.10
5.11
5.12
5.13 2번째
5.14 4번째
5.15 9번째 3번째
5.16 15번째 4번째 3번째
5.17 7번째 6번째 4번째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화를 걸었던 5월 13일부터 KBS에서는 윤창중 성추행 관련 리포트가 점점 뒤로 밀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KBS는 뉴스뿐 아니라 특집 프로그램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성과를 홍보했다.

2013.5.10 <특별좌담 – 박근혜 대통령 방미 결산 한미 네오 파트너십>
2013.5.11 <심야토론-한미 정상회담, 성과와 과제는?>
2013.5.18 <한미동맹 60년, 글로벌 파트너십의 미래>

세 번의 특집 방송에서 윤창중 대변인의 성추행 사실은 전혀 다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이 가운데 통화 이후인 5월 18일 나간 <한미동맹 60년, 글로벌 파트너십의 미래>는 앞선 방송들과 내용이 중복되는 등 사장의 무리한 제작 지시로 인해 보도본부와 제작본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다 MC와 VCR은 보도본부가, 스튜디오 연출과 큐시트 제작은 제작본부가 담당하는 기형적인 과정을 거쳐 제작됐다. 임창건 당시 KBS 보도본부장은 이와 관련해 “대통령의 방미가 망가진 상황에서 성과를 보도하라고 해서 굉장히 난감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나(임창건 보도본부장)와 시사제작국장이 여러 차례 길환영 사장에게 이야기했지만 사장이 재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한 바 있다.

결국, 윤창중 사건을 축소하고 방미 성과를 띄우라는 이정현 ‘정무수석’의 요구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청와대의 해명은 틀렸다.. 다시 해명하고 사과해야

이같은 상황을 종합해보면, 이정현 씨가 한 일이 “홍보수석의 통상적인 업무였다”는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해명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공영방송의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9시 뉴스에 개입하는 것이 정무수석이 해야 할 “본연의 업무”라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이정현 전 수석의 월권 행위에 대해 다시 해명하거나 사과해야 한다. 이정현 전 수석은 현재 방송법 위반 혐의로 언론노조와 세월호 특조위에 의해 고발된 상태다. 검찰은 이정현 씨가 홍보수석이 아니라 정무수석으로서 공영방송의 보도에 적극 개입했다는 사실을 충분히 감안해 이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

※ 이정현 – 김시곤 통화내용(전체)

금, 2016/07/0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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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BBC, “왜 역사를 국정화하려 하는가?” – 박근혜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분석해 – 일본, 미 텍사스 주 사례 열거 하며 독재체제라 비판 근본적인 질문 속에 근본적인 답이 있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독재자 이미지-친일장교 이미지를 세탁하고자 한다. 국정화를 추진하는 근본 배경이다. 영국 BBC는 이런 근본적인 해답을 일본, 그리고 미국 텍사스주의 사례와 함께 제시해준다. 특히 BBC는 한국에서 ...
토, 2015/12/05-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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