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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오빤 다 알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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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오빤 다 알아ㅎ

익명 (미확인) | 수, 2015/10/07- 15:33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말을 들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최근에 등장한 용어로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기본적으로 뭔가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맨스플레인을 주제로 한 대회(?)가 열렸는데요? 이름하여 ‘천하제일 맨스플레인 대회’입니다. 약 일주일간 접수된 글 중 1위를 차지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 여자애들 00이 싫어하는 거, 예쁘고 인기 많아서잖아

(여자) 아니, 걔가 동기들 간에 이간질을 해서 평판이 좀 그래

(남자) 에이, 아니잖아. 인기 많으니까 질투하는 거잖아.
여자애들은 자기보다 예쁘고 인기 많으면 다 질투하잖아

(여자) 내가 여잔데, 여자라고 다 그러는 거 아니거든

(남자) 네가 그 심리를 어떻게 아냐. 여자들 심리는 다 그래

공감이 가는 면도 있고, 순위를 가리는 대회이다 보니 다소 과장된 면도 있어 보입니다. 특히 남자들 입장에선 뭐 그 정도 가지고 까칠하게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웃고 넘기기엔 여자들 입장에선 무척이나 자주 경험하는 짜증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특히 맨스플레인을 하는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인식을 살펴보면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우선 이 말이 처음 나오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죠. 2008년 미국의 웹사이트 ‘톰 디스패치’엔 한 편의 기고문이 실립니다. 제목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인데요. 여성인 필자가 파티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자신이 작가라고 밝히자, 남자는 최근 자신이 본 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시종일관 여성 필자의 말을 끊으며 계속해서 늘어놓았다는 경험담입니다.

20151007_01

이 기고문은 그동안 남자들에게 가르침당하고, 무시당하고, 말을 가로채인 경험을 한 수 백 명의 여자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 됩니다. 이를 계기로 ‘맨스플레인’이란 말은 2010년 뉴욕타임즈 올해의 단어에 선정되고, 2014년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수록되기까지 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맨스플레인의 문제에 대해 살펴볼까요? 기고문의 필자인 리베카 솔닛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따라서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이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운다.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 –

솔닛의 설명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맨스플레인은 일상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세대 페미니즘을 여성 참정권 추구로, 2세대 페미니즘을 제도적,문화적 평등 추구로 구분할 경우 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솔닛은 페미니즘이 이미 완료된 사업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주장합니다.

여성들이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와 페미니즘이라는 되찾은 용어로 조명하고자 하는 현실은 페미니즘이 이미 완료된 사업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여성은 아직 평등한 세상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핵심 과제는 우선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 리베카 솔닛,『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 –

솔닛의 말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라는 표현입니다. 맨스플레인, 즉 남자가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자를 ‘지적으로 부족하고 잘 모르는 존재’라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성적인 특성을 지적인 특성으로 일반화시키는 문제가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맨스플레인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습니다. UN여성 친선 대사로 임명된 영화배우 엠마 왓슨에게 한국의 한 칼럼니스트가 쓴 글 때문인데요. 칼럼의 주된 내용이 ‘페미니스트’인 엠마 왓슨에게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논객들이 해당 칼럼에 대한 반박글을 내놓으며 뒤늦은(?) 맨스플레인 논란이 불붙게 됩니다. 반박글의 주된 내용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우선 칼럼에서 소개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설명에 오류가 많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고 아는 체를 했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신은 잘 모를 것이다’라고 전제한 후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를 한 것이죠.

그 중 논란이 됐던 표현 하나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말랄라의 페미니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온 경험의 소산입니다. 당신이 연설에서 술회한 당신 성장기의 ‘여성스럽지 않음’에 사람들이 별난 눈길을 보낸 것과는 경험의 질이 다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던) 말랄라라는 페미니스트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잘 자란)엠마 왓슨은 ‘경험의 질’이란 면에서 ‘페미니스트’로서는 충분치 않다는 의미인데요, 거칠게 말하면 ‘고생도 별로 해 보지 못한 네가 진정한 페미니즘이 뭔지 잘 알겠어?’라는 뉘앙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필자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두 사람을 비교하려 드는 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글의 전체적인 구조가 일단 주장하고 바로 뒤에 ‘꼭 그런 건 아니다…’라는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성에 의심을 살만 합니다.

더구나 칼럼의 필자는 ‘남성’입니다. 정말 ‘경험의 질’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가를 요체라면 평생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남자로만 살아 온 필자가 ‘여자’인 엠마 왓슨의 경험에 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고 맙니다.

어떻게 단 한 순간도 여자였던 경험이 없었던 그 사람은 평생을 여자로 살아온 엠마 왓슨에게 “경험의 질이 다릅니다”라고 평가하듯 말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뭘 근거로 본인이 UN홍보대사인 엠마 왓슨보다 인권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판단하는 걸까.

– 허핑턴포스트, <엠마왓슨 보기 부끄럽다> 중 –

차라리 애초에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최근의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자기 나름의 비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자연스러운 페미니즘 논쟁이 됐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상대방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내가 가르쳐 주마’라는 틀에 굳이 스스로를 밀어 넣음으로 인해서 주장하는 모든 바가 ‘맨스플레인’이란 함정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맨스플레인’이 꼭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고 시작하는 말은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자들, 특히 어린 남자들의 경우 매우 자주 듣게 되니까요.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남자들 역시 주눅이 들어 말을 못하게 되죠.

한편 파티에서 레베카 솔닛에게 자신이 본 책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솔닛의 말을 계속 잘라 먹던 한 남자는 솔닛의 친구가 내뱉은 한 마디에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이 친구(솔닛) 책이라니까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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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뉴스타파 목격자자들 통해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방송(전쟁1부, 두개의 기억)이 나간 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에서는 지난해 11월 국방부로부터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참전 단체들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은 조작됐거나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은 1964년 9월 11일 1차 파병을 시작으로 1965년 10월 2차 파병 때부터 지상전 전투부대를 베트남에 보낸다. 8년 동안 32만 명의 청년이 참전했다. 대부분의 한국 참전 군인들에게 베트남전은 우방인 미국과 함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베트콩과 싸운 ‘정의로운 전쟁’으로 생각한다.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사무실에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참전용사에게 격에 맞는 대우를 실시하라’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사무실에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참전용사에게 격에 맞는 대우를 실시하라’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무고하게 희생당해야 했던 베트남 민간인들이 있다.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 한국군 ‘증오비’가 세워져 있다. 증오비는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 대를 기억하리라”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12월 3일부터 6일까지. 인근에 주둔하던 한국군 청룡부대 1개 중대가 저지른 것으로 조사된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이 현장에서 학살당한 이가 430명, 이 가운데 어린 아이가 180명에 이른다.

▲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 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에 있는 한국군 증오비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존재하는 베트남전. 한국군 증오비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의 증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지만, 이들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책임지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베트남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가? 우리 사회가 스스로 되돌아볼 시점이다.

▲ 지난 2월, 베트남에서 열린 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에서 ‘베트남 평화기행단’으로 참여한 한국인들이 참배를 올리고 있다.

▲ 지난 2월, 베트남에서 열린 빈안학살 50주년 위령제에서 ‘베트남 평화기행단’으로 참여한 한국인들이 참배를 올리고 있다.

금, 2016/05/27-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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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서울대학교 경제학부가 72년 역사 상 처음으로 한국인 여성 교수를 뽑는다는 뉴스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서울대 경제학부는 2009년 조교수로 중국인 여성 교수 1명을 채용했을 뿐, 개교 이래  그동안 한국인 여성 교수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알려져 충격을 주었습니다.


관련 기사 - '여교수 0명' 서울대 경제학부, 첫 한국인 여교수 나온다


여성 교수가 없는 것은 비단 서울대 경제학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겨레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3개 대학 경제학과 전임교원 총 102명 중에 여성 교수는 단 2명 뿐이라고 합니다. 국내 대학을 통틀어서 '경제'라는 명칭이 들어가는 학과 164개 전임교원 1057명 중에서도 여성은 74명으로 7%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뉴스는 한국의 대학 사회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합니다.

관련 기사 - 아직도 유리벽에 막힌 ‘애덤 스미스의 딸들’


정보공개센터는 '한국교육개발원'의 교육기본통계자료를 통해 전국의 4년제 종합대학 전임교원 중 여성이 몇 명이나 되는지 확인해보았습니다. 또, 직급에 따라서 구성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살펴보았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2017년을 기준으로 전국 대학 전임교원 중 여성의 비율은 22.9%입니다. 전체 대학생 205만 명 중 중 여성은 84만명(41%)입니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이 여성이지만, 교수들의 경우 10명 중 2명만 여성인 상황입니다. 특히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이끌어가야 할 국공립대의 경우 여성 교수의 비율이 14.9%에 불과한 실정이라, 성인지적 관점에서 고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듭니다. 또, 전국의 대학총장 174명 중 여성 총장은 15명에 불과하며, 국공립대의 경우 여성총장이 아예 전무하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임교원 중에서도 직급에 따라 성비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조교수의 여성 비율이 35.2%를 차지하지만, 부교수로 올라가면 25.4%, 교수에 이르러서는 15.3%에 그칩니다. 국공립대의 경우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같은 성비 불균형이 성차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여성의 대학 진학률과 학위 취득률이 남성에 비해 낮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몇 가지 데이터를 더 찾아봤습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2013년에 발간한 이슈 브리프에 따르면 2012년 8월과 2013년 2월에 배출된 신규 박사 학위 취득자의 34.6%가 여성입니다. 직장을 병행하지 않고 학업에 전념하는 경우, 보통 30.8세에 박사과정을 시작해서 35.9세에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보통 신임 교수로 임용되는 평균 나이가 40대 초반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박사 학위를 받고 4~5년 후쯤 교수에 임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수신문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 하반기에 임용된 신임교수 중 여성 교수는 42명으로, 24%에 불과합니다. 시기 상 2013년 이슈 브리프에서 분석한 박사 학위 취득자들이 2017년 하반기 임용 시장에 나섰을 가능성이 높은데, 박사 학위 취득자 비율에 비해서 여성이 교수로 임용되는 비율은 현저히 낮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단지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학위 취득률이 남성보다 낮기 때문에 교수로 임용되는 여성의 비율이 낮게 나타나는 것 만은 아니라는 뜻이죠.


다행히, 2010년 이후의 추세를 보았을 때 대학의 여성 교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긴 합니다. 여성 교수가 전무했던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여성 교수를 뽑는다는 것 자체가 캠퍼스 내 성비불균형 문제에 대한 변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멉니다. 적어도 교수의 성비가 학생의 성비만큼이라도 맞춰져야, 대학 캠퍼스의 남성 중심적 구조가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금녀의 학부' 같은 수식어가 더이상 필요하지 않도록, 여성에게도 열려 있는 대학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화, 2018/05/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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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선거연령 18세’ 시대적 요구 수용하라 

1월 임시회에서 처리하여 18세 유권자 정치참여 서둘러 보장해야 
표현의 자유와 후보자 검증 가로막는 선거법 독소조항도 함께 개정해야

선거연령 18세, 새누리당은 수용하라

 

어제(1/9),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 조정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안행위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20대 국회는 ‘선거연령 18세’를 정치적 유불리로만 계산할 것이 아니라 참정권을 보다 폭넓고 두텁게 보장해 정치개혁을 이뤄내야 할 것이다. 특히 올해 조기대선이 예측되는 만큼 1월 내 법안을 통과시켜 18세 유권자들의 정치참여, 선거참여를 하루 빨리 보장할 것을 촉구한다. 또한 유권자 표현의 자유와 후보자 검증을 가로막고 있는 선거법 독소조항도 함께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18세 국민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양한 정책 결정에 의견을 개진하고, 정치적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18세는 운전면허, 혼인, 공무원 시험 등이 가능하고 군에 입대할 수 있는 연령인데 투표권 행사만 배제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OECD 34개국 가운데 선거연령을 19세로 정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며 일본이 2015년 20세에서 18세로 선거연령을 하향 조정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점차 선거연령이 낮아지는 세계적 추세를 반영해야 한다. 그러나 유권자가 자유롭게 말하고 후보를 검증하고 정책을 호소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은 채 18세 투표권만 보장하는 것은 그저 ‘선거 당일만 주권자’가 더 늘어나는 셈이다. 선거 180일 전부터 포괄적인 정치적 의사표현을 제한하는 93조1항과 정당한 후보자 검증과 비판을 ‘비방’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으로 처벌하는 후보자비방죄를 폐지하여 유권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해야 한다. 

 

투표권 확대, 유권자의 정치참여 보장 등이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로 제기된 상황에서 새누리당의 입장은 무엇인가. 새누리당은 그동안 선거연령 하향 조정, 투표시간 연장과 같은 참정권의 핵심인 투표권 확대방안에 반대했고 차기 선거부터 논의하자며 법안처리를 지연시켜왔다. 20대 총선을 앞두고서는 “우리 당에 불리한 선거연령 하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치적 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또 다시 참정권 확대에 주저하는 반(反)정치, 반(反)유권자 세력으로 남을 것인가. 새누리당이 ‘선거연령 18세’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고 1월 임시회 처리에 협조할 것을 촉구한다.  

 

 

 

화, 2017/01/1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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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 합헌 결정 유감

국회는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여론수렴, 공론 형성 위해 선거 기간 인터넷 실명제 폐지해야 해

 

어제(7/30), 헌법재판소가 선거기간 중에 언론사 홈페이지에 정당 및 후보자에 대한 글을 올릴 때 실명확인을 거쳐야한다는 내용의‘공직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82조의6 제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소장 :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헌재의 이번 결정이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축시키고, 여론 수렴과 공론 형성이라는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는 결정이라고 보며, 깊은 유감을 표한다.

 

이번 헌재 결정은 수사와 선거관리의 편의을 위해 실명확인제를 둠으로써 선거시기 정치적 의사 표현을 행사하는 국민들뿐 아니라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표현의 자유는‘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존립과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기본권이며 이를 최대한도로 보장하는 것은 헌법의 기본원리의 하나'이다. 특히 익명표현의 자유는“정치적 보복이나 차별의 두려움 없이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전파해 권력에 대한 비판을 가능하게 하며 이를 통해 정치적 약자나 소수자의 의사를 국가의 정책 결정에 반영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에 핵심”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선거에 대해 유권자가 가장 활발하게 의사표현할 수 있는 선거운동기간 동안 선거에 대한 익명표현을 제한하는 것은 이 같은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또한 2012년 8월 헌재의 위헌결정에 따라 평시 인터넷 실명제가 없어졌고, 인터넷 선거운동이 상시 허용된 마당에 선거운동 기간에만 실명확인제를 두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실명 확인을 전제하지 않는 소셜 네트워크가 이미 널리 사용되는 상황에서 규제의 실효성도 높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결정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시대착오적인 결정이다. 

 

헌재 결정으로 지난 7월 28일, 국회 정치개혁특위 공직선거법소위가 의결한 '공직선거법 상의 인터넷 실명확인제' 폐지 결정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선거는 정당․후보자만이 아니라 모든 유권자의 축제여야 한다. 하지만 실상은 유권자의 참정권은 선거 당일 투표장에서 표를 던지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회는 이 점을 고려해 선거법 상의 인터넷 실명확인제 폐지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할 것이다. 

금, 2015/07/3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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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되어야 하는가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한 청소년의 목소리

 

이은선 | 울산총학생회장단연합(UHAS) 대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상임공동대표

 

 

올해 나와 친구들은 청소년 인권을 알리는 활동의 일환으로 전국의 고등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각 학교의 학생생활규정(학칙) 내용을 수집했었다. 홈페이지에 생활규정 내용을 게시하지 않는 학교가 상당수 있어 모든 고등학교의 생활규정을 수집하지는 못했지만, 가능한 범위에서 수집한 결과 조사대상 절반 이상의 고등학교에서 ‘학생이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제한 규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울산지역의 한 일반계 공립고등학교의 생활규정에는 “정치에 관여하여 행동을 한 학생은 퇴학까지 가능”하다는 내용마저 있었다. “학교장의 허락 없이 대외 행사에 참여”한 경우 징계하는 규정이 있는 학교도 다수였다. 더 슬픈 것은 꼭 생활규정에서 노골적으로 학생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은 경우라도,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정치적 권리를 제한 당하는 게 현실이라는 점이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울산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수많은 인권침해를 경험하고 목격했다. 2017년 6월 울산 우신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체벌 사건과 관련한 내용이 SNS를 통해 “우신고를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으로 확산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지만 교육청도 학교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울산 교육청에 학생인권 전담부서도 없고, 국가인권위 사무소도 없어서인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책임있는 그 누구도 나서서 도와주는 어른이 없었다. SNS 폭로를 계기로 우신고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당시 울산 교육청에서는 우신고등학교의 학생 인권 침해 사례 조사를 목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기는 하였다. 하지만 ‘우리 학교의 체벌을 통해 학교가 명문 고등학교라고 느끼는가’와 같은 황당한 질문을 담은 설문조사로 악화된 여론을 수습해보려 하였을뿐, 체벌·폭력에 대처하는 교육청의 수준은 기대 이하였다. 나를 포함한 다수의 학생들이 울산에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자는 서명운동을 벌였는데, 그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관련 학생들을 교무실로 불러 위협을 하는 일도 있었다. 또 울산의 모 대학교 청소노동자의 복직을 위해 청소년들이 집회를 했을 때에도 울산 교육청은 ‘청소년을 선동한다’며 집회를 이끈 관련 청소년의 학교생활을 조사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울산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박근혜 탄핵 집회’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학생을 징계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민주주의의 시작은 모든 사람의 의견이 존중 받는 것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인 청소년들도 스스로를 이 나라의 주권자라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민주주의의 목적은 자유와 평등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이루는 것이다. 인간은 존엄성은 사람이라는 이유 그 자체만으로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힘은 구성원의 다수가 공동체의 운영과 결정에 참여하여 능동적인 시민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때 발휘된다. 현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투표는 민주주의의 힘을 완성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며 또한 시민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이자 도구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청소년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며 청소년의 참정권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민주주의의 관점으로 보면, 시민으로서 ‘미성숙한’ 태도란 다른 시민의 의견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며, 청소년을 동료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 태도야말로 ‘미성숙’하다 할 만하다. 청소년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동적인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사회가 길을 터주어야 한다. 청소년이 세상에 영향을 미칠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내고 그 의견을 존중받는 것에 왜 나이 제한이 필요한가? 국가도 학교도, 청소년의 정치 참여를 막아서는데 정당한 명분은 없다. 우리나라가 진정 민주공화국이라면 청소년의 정치적 목소리를 더 이상 묵살해서는 안 된다. 나는 청소년으로서 나의 목소리가 존중받길 원한다. 나는 국민이지만, 국민이고 싶다. 한쪽 집단에게만 부여되는 권리는 권리가 아닌 권력이다.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영역에서의 노력이 필요하다. 청소년 투표 참여를 위해 선거연령을 하향하는 것과 현행 만 19세 미만에게는 불법인 정당가입 및 선거운동 연령제한을 없애는 것 등 국회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영역이 있을 것이고, 청소년 참여 활성화 정책 및 참여기구 실질화 등 중앙 및 지방정부 차원에서 담당해야 할 과제도 있다. 그러나 개별 학교 및 지역사회, 가정에서 모든 시민이 해야 하는 역할도 있다. 바로 청소년의 의견에 “어린 것이 어디서 말대꾸야”라는 식으로 반응하기를 멈추고, 존중하며 귀 기울여 듣고 소통하고 의사결정을 함께 하는 것이다. 투표할 권리와 일상에서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는 멀지 않고, 속성상 다르지도 않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청소년에게는 ‘촛불혁명’이 오지 않았다

지난 겨울, 청소년도 이 나라의 국민이기에 촛불을 들어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켰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촛불 시민이 승리하였다고 했다. 청소년도 함께 했었기에 승리의 결과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청소년을 민주주의에서 배제해온 적폐들은 청산되지 않았다. 청소년은 국정 농단 대통령을 파면시킨 민주주의의 주역인데, 국가와 학교에서는 여전히 입시 공부하는 기계이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 취급을 당하고 있다. 촛불광장에서 많은 청소년이 청소년 참정권을 외쳤지만 앞당겨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청소년은 배제되었다.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해 청소년들이 입는 피해도 다양하다. 표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들과 정당들은 투표할 수 없는 청소년의 현실 따위는 중요시하지 않고 외면하기 십상이다. 또한 현행법상 청소년은 당원이 될 수 없기에 청소년의 목소리는 정당의 주관심사와 당론이 될 수 없다. 청소년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과제들은 늘 국회에서도 정부에서도 후순위로 밀려왔다. 가정에선 청소년들이 입시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을 할까 봐 정치 참여를 막고, 학교에선 학생들의 의견 표명과 목소리에 ‘말대꾸’, ‘선동’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징계를 내리고 불이익을 준다.

 

청소년은 어른들에게 대신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기 지쳤고, 그렇게 해서는 해결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촛불 광장에서는 청소년도 같이 민주주의, 민주주의하며 그렇게 외쳤지만 여전히 이 사회는 아직 민주 사회가 아니다. 청소년의 삶에는 아직 촛불 혁명이 오지 않았다. 최근 몇 년 사이 만 18세 선거권 부여가 공론화 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선거할 수 있는 연령을 한 살이라도 낮추는 것은 중요하지만 사실상 청소년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대변되기에는 부족하다. 선거연령을 확 낮추고 교내·외에서의 청소년의 정치 활동이 보장되어야 청소년의 삶에도 비로소 민주주의가 올 것이다. 아직 청소년의 삶에는 촛불 혁명은 오지 않았다.

 

촛불혁명 이후 청소년 참정권의 외침

2017년 9월에 출범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이하 ‘제정연대’)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비롯하여 어린이청소년인권법·학생인권법 제정 등 청소년이 시민다운 대접을 받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청소년 참정권 영역에서는 청소년의 선거권뿐만 아니라  피선거권, 정치와 선거에 대해 말할 권리(선거운동),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도록 선거법, 정당법 등을 개정하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박근혜 퇴진 촛불 1주년이었던 지난 10월, 제정연대에서는 “촛불 1년, 우리에게는 아직 민주주의가 오지 않았다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청소년 행동”을 진행하였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시대라고 하는데 청소년의 삶은 아직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음을 알리고 변화를 요구했다. 

 

11월에는 만 16세로 선거연령 하향을 요구하면서 국회 청원을 진행하기도 했다. 청원 기자회견 제목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 만 16세 선거권을 국회로! – 정치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큰 걸음, 만 16세 선거권 청원 기자회견”이었다. 청원인으로 함께한 만 16세 청소년 한 분은 “정치는 우리 모두의 생활이며 엄연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국민으로서, 사람으로서 함께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발언하였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과 함께 정당법 및 선거법 개정안 발의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다. 개정안의 내용은 현행 만 19세 미만에게 금지되어 있는 선거운동과 정당가입의 권리에서 연령제한을 폐지하는 내용이었다.

12월에는 청소년의 정당활동 권리 요구를 알리기 위해 “청소년, ‘정당’하다”라는 이름으로 여의도 각 당사 앞을 행진하며 돌면서 청소년들이 입당 원서를 제출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청소년을 선거에서 배제하는 선거법에 대한 헌법소원도 진행했다.

 

청소년도 시민으로서 참정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요구는 최근에서야 시작된 것이 아니다. 내가 이 활동에 함께하기 전부터 청소년의 인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여 온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목소리는 늘 등한시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청소년을 배제한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 불러선 안 된다. 청소년은 우리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며,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진=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된다면?

헌법 제2장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말한다.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된다면, 청소년의 삶의 질은 지금과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참정권과 여타의 인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된다면 먼저 학교가 변할 것이다. 어른들이 말로만 하는 ‘학교 자치’가 아닌, 진짜 학교 자치가 보장되고 학생이 학교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학생회에 출마하기 위해서 공약을 학교 학생생활지도부에서 검열을 받는 일은 근절될 것이다. 학생회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등 실질적인 권한을 획득할 수 있도록 법의 재정비도 조속히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실질적인 권한이 학생회에게 부여된다면 대학 입시를 위한 직책이 아닌 학생들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한 학생회가 구성될 것이고, 학교는 변할 것이다.

 

학내의 표현의 자유 보장도 가능해질 것이다. 현재 다수의 중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대자보를 붙이는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대자보뿐만 아니라 청소년 모임이나 행사의 홍보물조차 불이익이 우려되어 게시판에 붙이지도, 학생들에게 나눠주지도 못한다. 게시판에 게시물을 붙이기 위해서는 학생생활지도부에 검열을 받아야 하며, 그 규칙을 어길 시 징계를 받는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변화할 것이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현실의 정치에 대해 교사 및 다른 학생들과 토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학생이 수업 중 정치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어려서 아직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기 십상이다. 청소년은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치에 대해 알 필요도 없다고 여겨진다. 청소년의 참정권의 보장된다면 교사와 청소년이 함께 정치와 법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는 실질적 정치 수업이 가능해질 것이다.

 

청소년에게 참정권이 보장된다면 학교 밖에서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청소년과 관련된 정책 비전을 가진 후보와 정당에 투표가 가능해지고, 지역주민으로서 주민발의도 할 수 있게 된다. 환경 문제를 좌우할 신고리 5호기 공사 재개 여부를 결정할 공론화위원회에서 청소년이 배제되고 ‘학생인권조례’에조차 주민발의에 함께할 수 없었던 지난날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질 것이다. 

 

청소년의 표를 정부와 정치권이 의식하게 되면 청소년 관련 예산도 확대될 것이다. 단순히 교육 예산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위한 예산, 탈학교 청소년을 위한 예산, 청소년의 문화·여가생활의 위한 예산도 늘어날 것이다.

 

청소년이 직접 국회의원 등으로 출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정당에 가입해 전문적으로 훈련받고 경험을 쌓은 청(소)년들이 출마하고 정치인으로서 역할을 하는 일이 흔하다. 예를 들어 2014년 스웨덴 교육부 장관에 취임한 구스타프 프리돌핀은 32살의 나이에 교육부 장관이 되었다. 그는 11살에 스웨덴 녹색당 당원으로 가입하고 19살에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32살에 교육부 장관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청소년의 참정권이 보장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의 삶을 청소년도 함께 변화시키기 위해, 청소년 참정권 보장은 꼭 필요하다. 참정권은 시민권의 핵심 권리이자 상징이다. 참정권이 보장될 때, 청소년은 비로소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대우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홈페이지(http://youthact.kr/) 활동소식을 참고하였다.

월, 2018/01/01-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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