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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오빤 다 알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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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오빤 다 알아ㅎ

익명 (미확인) | 수, 2015/10/07- 15:33

맨스플레인(mansplain)이란 말을 들어보신적이 있으신가요? 최근에 등장한 용어로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의 합성어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기본적으로 뭔가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맨스플레인을 주제로 한 대회(?)가 열렸는데요? 이름하여 ‘천하제일 맨스플레인 대회’입니다. 약 일주일간 접수된 글 중 1위를 차지한 사연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 여자애들 00이 싫어하는 거, 예쁘고 인기 많아서잖아

(여자) 아니, 걔가 동기들 간에 이간질을 해서 평판이 좀 그래

(남자) 에이, 아니잖아. 인기 많으니까 질투하는 거잖아.
여자애들은 자기보다 예쁘고 인기 많으면 다 질투하잖아

(여자) 내가 여잔데, 여자라고 다 그러는 거 아니거든

(남자) 네가 그 심리를 어떻게 아냐. 여자들 심리는 다 그래

공감이 가는 면도 있고, 순위를 가리는 대회이다 보니 다소 과장된 면도 있어 보입니다. 특히 남자들 입장에선 뭐 그 정도 가지고 까칠하게 그러느냐고 할 수도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웃고 넘기기엔 여자들 입장에선 무척이나 자주 경험하는 짜증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특히 맨스플레인을 하는 남성이 여성에 대해 갖는 기본적인 인식을 살펴보면 그냥 웃고 넘길 수만은 없습니다.

우선 이 말이 처음 나오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죠. 2008년 미국의 웹사이트 ‘톰 디스패치’엔 한 편의 기고문이 실립니다. 제목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인데요. 여성인 필자가 파티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자신이 작가라고 밝히자, 남자는 최근 자신이 본 책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시종일관 여성 필자의 말을 끊으며 계속해서 늘어놓았다는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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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고문은 그동안 남자들에게 가르침당하고, 무시당하고, 말을 가로채인 경험을 한 수 백 명의 여자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확산 됩니다. 이를 계기로 ‘맨스플레인’이란 말은 2010년 뉴욕타임즈 올해의 단어에 선정되고, 2014년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수록되기까지 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맨스플레인의 문제에 대해 살펴볼까요? 기고문의 필자인 리베카 솔닛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어느 분야에서든 종종 괴로움을 겪는다.

따라서 여자들은 나서서 말하기를 주저하고,
용감하게 나서서 말하더라도 경청되지 않는다.

이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운다.

–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 –

솔닛의 설명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맨스플레인은 일상적인 차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세대 페미니즘을 여성 참정권 추구로, 2세대 페미니즘을 제도적,문화적 평등 추구로 구분할 경우 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솔닛은 페미니즘이 이미 완료된 사업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주장합니다.

여성들이 맨스플레인이라는 신조어와 페미니즘이라는 되찾은 용어로 조명하고자 하는 현실은 페미니즘이 이미 완료된 사업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여성은 아직 평등한 세상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페미니즘의 투쟁에서 핵심 과제는 우선 여성을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 리베카 솔닛,『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중 –

솔닛의 말에서 특히 눈길이 가는 부분은 ‘신뢰할 만하고 경청할 만한 존재’라는 표현입니다. 맨스플레인, 즉 남자가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태도를 보이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자를 ‘지적으로 부족하고 잘 모르는 존재’라고 규정하기 때문입니다. 성적인 특성을 지적인 특성으로 일반화시키는 문제가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맨스플레인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습니다. UN여성 친선 대사로 임명된 영화배우 엠마 왓슨에게 한국의 한 칼럼니스트가 쓴 글 때문인데요. 칼럼의 주된 내용이 ‘페미니스트’인 엠마 왓슨에게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형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수많은 논객들이 해당 칼럼에 대한 반박글을 내놓으며 뒤늦은(?) 맨스플레인 논란이 불붙게 됩니다. 반박글의 주된 내용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우선 칼럼에서 소개하는 페미니즘에 대한 설명에 오류가 많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페미니즘에 대해 잘 모르고 아는 체를 했다는 지적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당신은 잘 모를 것이다’라고 전제한 후 페미니즘에 대해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를 한 것이죠.

그 중 논란이 됐던 표현 하나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말랄라의 페미니즘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온 경험의 소산입니다. 당신이 연설에서 술회한 당신 성장기의 ‘여성스럽지 않음’에 사람들이 별난 눈길을 보낸 것과는 경험의 질이 다릅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살았던) 말랄라라는 페미니스트에 비해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잘 자란)엠마 왓슨은 ‘경험의 질’이란 면에서 ‘페미니스트’로서는 충분치 않다는 의미인데요, 거칠게 말하면 ‘고생도 별로 해 보지 못한 네가 진정한 페미니즘이 뭔지 잘 알겠어?’라는 뉘앙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필자는 바로 다음 문장에서 두 사람을 비교하려 드는 건 아니라고 말하지만, 글의 전체적인 구조가 일단 주장하고 바로 뒤에 ‘꼭 그런 건 아니다…’라는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성에 의심을 살만 합니다.

더구나 칼럼의 필자는 ‘남성’입니다. 정말 ‘경험의 질’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가를 요체라면 평생 (우월적 지위를 누리는) 남자로만 살아 온 필자가 ‘여자’인 엠마 왓슨의 경험에 질을 논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되고 맙니다.

어떻게 단 한 순간도 여자였던 경험이 없었던 그 사람은 평생을 여자로 살아온 엠마 왓슨에게 “경험의 질이 다릅니다”라고 평가하듯 말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뭘 근거로 본인이 UN홍보대사인 엠마 왓슨보다 인권에 대해 더 잘 안다고 판단하는 걸까.

– 허핑턴포스트, <엠마왓슨 보기 부끄럽다> 중 –

차라리 애초에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최근의 페미니즘에서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자기 나름의 비판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자연스러운 페미니즘 논쟁이 됐을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상대방은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내가 가르쳐 주마’라는 틀에 굳이 스스로를 밀어 넣음으로 인해서 주장하는 모든 바가 ‘맨스플레인’이란 함정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죠.

그런데 생각해 보면 ‘맨스플레인’이 꼭 여성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니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라고 시작하는 말은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자들, 특히 어린 남자들의 경우 매우 자주 듣게 되니까요.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면 남자들 역시 주눅이 들어 말을 못하게 되죠.

한편 파티에서 레베카 솔닛에게 자신이 본 책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솔닛의 말을 계속 잘라 먹던 한 남자는 솔닛의 친구가 내뱉은 한 마디에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이 친구(솔닛) 책이라니까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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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탐사저널리즘네트워크(GIJN)가 주최한 국제탐사보도총회(아래 총회)가 지난 11월 16일부터 나흘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렸다. 올해로 열 번째를 맞는 이번 총회에는 영국 BBC와 미국 뉴욕타임스 등 유력 매체들부터 주최 대륙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매체 기자들까지 130여 개 나라 1천 3백여 명의 기자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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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회는 세계 탐사기자들의 협업과 연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공감하는 기회였다. 지난해 파나마페이퍼스 프로젝트와 올해 파라다이스페이퍼스 프로젝트 등 최근 들어 국제협업 탐사보도의 성공적 모델로 기록될 만한 성과들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이번 총회 기간 중 뉴스타파를 필두로 한 아시아권 탐사보도 전문기자들이 새로운 협력 네트워크인 ‘워치독 아시아’의 구성을 공식화하기도 했다.

총회 기간 중 모두 140개 세션에서 200여 명의 기자들이 발표자로 나서 그간의 탐사보도 성과물과 취재 기법들을 공유했다. 특히 데이터저널리즘의 새로운 흐름과 여러 비영리 탐사매체들의 운영 노하우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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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취재진도 3개 세션에 발표자로 참가했다. 김성수 기자는 최근 보도했던 세월호 화물칸 차량 블랙박스 영상의 입수 및 분석 과정과 그 의미를 소개했다. 임보영 기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보도된 뉴스타파의 여러 기사들과 독자적인 취재 기법을 상세히 소개해 큰 관심을 모았다.

비영리매체 관련 세션에서는 김용진 대표가 발표자로 나서, 뉴스타파의 성공적 운영 비결은 정치·자본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파괴력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임을 강조해 큰 호응을 얻었다. 데이비드 캐플런 GIJN 대표는 “후원회원 모델을 기반으로 훌륭한 보도 성과를 이어가고 있는 뉴스타파는 전세계 탐사매체들의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이번 총회는 ‘탈진실의 시대, 미디어의 힘’을 주제로 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미 콜럼비아대 교수의 한 기조발표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오는 2019년 제11회 국제탐사보도총회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릴 예정이다.

목, 2017/11/30-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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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많은 것이 바뀐 한 해였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은 이제 세상을 좀 바꿔보겠다는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모여 만들어낸 촛불혁명의 결과였습니다.

뉴스타파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시작부터 그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함께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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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박근혜 ‘40년 우정’ 동영상 발굴 (2016년 9월 29일)
박근혜-최순실 체제의 <부역자들> 시리즈
독일 말 중개업자 “최순실 소개로 청와대서 박근혜 독대” (2017년 2월 2일)

곳곳에 쌓인 적폐들을 걷어내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달려온 뉴스타파의 2017년을 돌아봤습니다.

01. 영화 <공범자들> : 바뀐 언론, 바뀔 언론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간의 언론탄압 잔혹사를 다룬 영화 <공범자들>. 인터뷰를 안하겠다며 달아나는 MBC의 전 사장들과 숨막히는 추격전을 펼치며 ‘액션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며, <공범자들> 개봉 이후 이어진 KBS와 MBC 파업에도 힘을 실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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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801_04 

02. 세월호 : 진실규명, 끝까지 함께

2017년 3월, 세월호 선체가 올라왔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 꼬박 3년만이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수면 위로 올라온 선체를 분석해 그동안 침몰 원인 중 하나로 제기됐던 ‘외부 충돌설’을 검증하고 선체 인양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점을 보도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세월호 화물칸에 실렸던 차량 블랙박스의 영상파일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했습니다.

2017122801_05

– [특별기획] 세월호 선체가 말해주는 것들 (2017년 3월 30일)
– [최초공개] 세월호 침몰 순간의 목격자 ‘블랙박스’ (2017년 9월 15일)

언론으로서 처음으로 다가온 뉴스타파.
세월호 진실규명이 될 때까지 제대로 보도하고 파헤칠 언론.

전명선 / 4.16 가족협의회 위원장

03. 해병 잡는 해병대 : 제보의 힘

뉴스타파는 지난 10월, 해병대에서 각종 도구를 이용한 폭행과 가혹행위가 지속됐고 내부에서 이를 감춰 왔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뉴스타파의 취재가 시작되자 해병대사령부는 자체 조사에 나섰고, 보도 직후 가해자 이 모 중사를 구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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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잡는 해병대 (2017년 10월 25일)
해병대 가해 중사 구속… ‘감찰 은폐’ 여전히 의혹 (2017년 10월 27일)

이례적으로 빠른 조치를 불러온 이번 보도는 해병대 병사들의 제보로 시작됐습니다.

저희 힘으로 해결이 안 되다 보니까 답답한 마음에 제보를 했어요.
보도 후 사건 처리도 굉장히 빨랐고 병사들이 받는 피해도 없도록 잘 진행됐기 때문에
제보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해병대 제보 병사

제보자들은 자신에게 있을 지 모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용기를 내야 하잖아요.
그런 용기들이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종화 뉴스타파 PD

04.핵 안전 : 끝까지 추적한다

대전 유성구 주민 거주 지역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사용후핵연료를 부실하게 운반하고 저장해 온 사실이 뉴스타파 <목격자들>팀의 취재로 드러났습니다. 원자력연구원이 그동안 핵발전소와 맞먹는 양의 방사능 물질을 배출해 왔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이후 <목격자들>팀은 원자력연구원에서 진행 예정이던 파이로프로세싱의 위험성과 연구 부실에 대해서도 집중 취재하며 원자력 관련 보도를 꾸준히 이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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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대전 판도라 (2017년 1월 20일)
[목격자들] 핵 재처리 프로젝트 – 파이로프로세싱의 비밀 (2017년 3월 27일)
[목격자들] 핵 재처리 프로젝트 2 – 위험한 경주 (2017년 4월 8일)
[목격자들] 핵 재처리, 드러난 부실과 예산폭탄 (2017년 11월 17일)

파이로프로세싱 예산은 12월 초 국회 심의과정에서 대폭 삭감 후 임시 배정됐고 파이로프로세싱 R&D(연구개발)는 원점 재검토가 결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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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는 보도를 잘 안 하거든요.
1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문제를 제대로 알려주는, 뿌리를 뽑는 취재를 하시면 좋겠고
그렇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죠.

안옥례 / 대전 유성구 주민

05.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 : 공권력의 거짓을 벗기다

누명을 벗는데 무려 8년이 걸렸습니다.

2009년, 경찰의 음주 단속에 항의하다 경찰의 팔을 꺾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박철 씨가 지난 11월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뉴스타파는 2014년부터 박철 씨에 대한 수사와 판결 과정의 의문점을 계속해서 보도해 왔습니다.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 (2014년 12월 19일)
[칼럼]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풀리지 않는 의문들 (2014년 12월 30일 화요일)
“경찰 팔 꺾지 않았다”…6년 만에 무죄 (2015년 8월 26일)
“경찰 팔 꺾지 않았다”…대법원 무죄 확정 (2015년 11월 26일)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 …법원 재심 결정 (2017년 4월 27일)
“경찰의 헐리우드 액션 가능성”… 재심 무죄 (2017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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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과 한 개인의 긴 싸움 속에서 공권력이 부당한 행동을 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발을 담궈서 취재하려는 언론사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뉴스타파였기 때문에 이 일을 캐내서 보도까지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박철 / 8년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

06.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 탈세와의 전쟁 2017

탈세와 자금 은닉 등을 위해 조세도피처에 간 한국인들. 뉴스타파는 올해도 어김없이 이들을 추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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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2017년 11월~현재)

국세청은 뉴스타파 보도 이후 이들을 포함한 역외탈세 혐의자 37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습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대한 정밀 검증도 진행 중이라고도 밝혔습니다.

관세청은 또 지난해 뉴스타파가 보도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를 토대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 오픈블루 사건을 조사해 천억 원 대의 재산국외도피, 자금세탁을 적발하고 관련자 8명을 검거했습니다.

뉴스타파의 보도는 역외탈세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탈세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경각심을 일깨워줬습니다.

국세청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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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12/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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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많은 것이 바뀐 한 해였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은 이제 세상을 좀 바꿔보겠다는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이 모여 만들어낸 촛불혁명의 결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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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체제의 <부역자들> 시리즈
독일 말 중개업자 “최순실 소개로 청와대서 박근혜 독대” (2017년 2월 2일)

곳곳에 쌓인 적폐들을 걷어내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달려온 뉴스타파의 2017년을 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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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801_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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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세월호 : 진실규명, 끝까지 함께

2017년 3월, 세월호 선체가 올라왔습니다. 참사가 일어난 지 꼬박 3년만이었습니다. 뉴스타파는 수면 위로 올라온 선체를 분석해 그동안 침몰 원인 중 하나로 제기됐던 ‘외부 충돌설’을 검증하고 선체 인양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문제점을 보도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세월호 화물칸에 실렸던 차량 블랙박스의 영상파일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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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획] 세월호 선체가 말해주는 것들 (2017년 3월 30일)
– [최초공개] 세월호 침몰 순간의 목격자 ‘블랙박스’ (2017년 9월 15일)

언론으로서 처음으로 다가온 뉴스타파.
세월호 진실규명이 될 때까지 제대로 보도하고 파헤칠 언론.

전명선 / 4.16 가족협의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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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잡는 해병대 (2017년 10월 25일)
해병대 가해 중사 구속… ‘감찰 은폐’ 여전히 의혹 (2017년 10월 27일)

이례적으로 빠른 조치를 불러온 이번 보도는 해병대 병사들의 제보로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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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후 사건 처리도 굉장히 빨랐고 병사들이 받는 피해도 없도록 잘 진행됐기 때문에
제보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해병대 제보 병사

제보자들은 자신에게 있을 지 모를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용기를 내야 하잖아요.
그런 용기들이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종화 뉴스타파 PD

04.핵 안전 : 끝까지 추적한다

대전 유성구 주민 거주 지역 바로 옆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사용후핵연료를 부실하게 운반하고 저장해 온 사실이 뉴스타파 <목격자들>팀의 취재로 드러났습니다. 원자력연구원이 그동안 핵발전소와 맞먹는 양의 방사능 물질을 배출해 왔다는 사실도 밝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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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들] 대전 판도라 (2017년 1월 20일)
[목격자들] 핵 재처리 프로젝트 – 파이로프로세싱의 비밀 (2017년 3월 27일)
[목격자들] 핵 재처리 프로젝트 2 – 위험한 경주 (2017년 4월 8일)
[목격자들] 핵 재처리, 드러난 부실과 예산폭탄 (2017년 11월 17일)

파이로프로세싱 예산은 12월 초 국회 심의과정에서 대폭 삭감 후 임시 배정됐고 파이로프로세싱 R&D(연구개발)는 원점 재검토가 결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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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곳에서는 보도를 잘 안 하거든요.
1회성으로 그치지 않고 문제를 제대로 알려주는, 뿌리를 뽑는 취재를 하시면 좋겠고
그렇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죠.

안옥례 / 대전 유성구 주민

05.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 : 공권력의 거짓을 벗기다

누명을 벗는데 무려 8년이 걸렸습니다.

2009년, 경찰의 음주 단속에 항의하다 경찰의 팔을 꺾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던 박철 씨가 지난 11월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뉴스타파는 2014년부터 박철 씨에 대한 수사와 판결 과정의 의문점을 계속해서 보도해 왔습니다.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 (2014년 12월 19일)
[칼럼]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풀리지 않는 의문들 (2014년 12월 30일 화요일)
“경찰 팔 꺾지 않았다”…6년 만에 무죄 (2015년 8월 26일)
“경찰 팔 꺾지 않았다”…대법원 무죄 확정 (2015년 11월 26일)
“경찰의 팔은 누가 꺾었나” …법원 재심 결정 (2017년 4월 27일)
“경찰의 헐리우드 액션 가능성”… 재심 무죄 (2017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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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과 한 개인의 긴 싸움 속에서 공권력이 부당한 행동을 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발을 담궈서 취재하려는 언론사는 별로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뉴스타파였기 때문에 이 일을 캐내서 보도까지 갈 수 있지 않았을까…

박철 / 8년만에 재심에서 무죄 판결

06.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 탈세와의 전쟁 2017

탈세와 자금 은닉 등을 위해 조세도피처에 간 한국인들. 뉴스타파는 올해도 어김없이 이들을 추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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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2017년 11월~현재)

국세청은 뉴스타파 보도 이후 이들을 포함한 역외탈세 혐의자 37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습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대한 정밀 검증도 진행 중이라고도 밝혔습니다.

관세청은 또 지난해 뉴스타파가 보도한 파나마 페이퍼스 프로젝트를 토대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 오픈블루 사건을 조사해 천억 원 대의 재산국외도피, 자금세탁을 적발하고 관련자 8명을 검거했습니다.

뉴스타파의 보도는 역외탈세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탈세를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경각심을 일깨워줬습니다.

국세청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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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7/12/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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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9일, 국회 의원회관

1년 전인  2017년 1월, 뉴스타파는 시민단체 3곳과 함께 국회를 상대로 정보공개 청구를 시작했다. 국회의원 의정활동 전반에 대한 관련 자료와 예산 내역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감춰졌던 국회 예산의 전모를 파악해 유권자인 국민의 알 권리를 찾기 위한 작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국회 측은 잇따라 비공개 처분을 통보했다. 뉴스타파의 이의 제기 이어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국회 측과의 따분한 입씨름이 계속됐다.  20대 국회의원들의 예산 내역 공개를 둘러싸고 국회와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2017년 여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2017년 9월 중순, 국회에서 연락이 왔다. 일부 자료의 열람을 허용해주겠다는 것이다.  곧 열람 날짜를 논의했고 9월 29일로 정했다. 이날 취재진은 하승수(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변호사와 함께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열람 장소를 찾았다. 오랜만에 받아낸 정보공개 열람인만큼 사뭇 기대가 컸다.  

그런데 이날 국회가 유일하게 공개한 것은 국회 사무처 직원들의 특근매식비였다. 그러니까 사무처 직원들이 야근할 때 먹은 식대 영수증을 공개한 것이다. 사무처 직원들의 특근매식비 실태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 역시 국민의 세금이 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 보고 싶은 자료는 따로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독립적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 관련 예산 집행 내역이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하며 국민이 낸 세금을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날 이에 대한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다. 취재진은 국회사무처 직원에게 이런 하소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취재기자 : 정작 중요한 저희가 보고 싶은 국회의원들의 업무추진비, 특수활동비, 예비금, 특정업무경비 이런 것들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어요. 그게 저는 답답한 거예요. 이렇게 비공개하는 이유가 뭐예요?

국회사무처 직원  : 제가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은데…

세금을 내는 국민이 알 수 없는 국회의원 ‘깜깜이’ 예산은 얼마일까?

업무추진비 88억 원, 정책 및 입법개발비 132억, 특수활동비 81억 원, 특정업무 경비 27억 등이 지금까지 그 사용처를 공개하지 않은 채 매년 국회의원들이 쓰고 있는 국회 예산이다.  국민이 낸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없는 국회 예산은 2017년 기준으로 약 328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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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활동비의 경우 그 사용처의 문제점이 명확하게 드러난 바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015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2008년 원내대표 시절에 지급받은 특수활동비를 쓰고 남아서 생활비로 썼다’고 고백한 바 있다. 국민의 세금을 사적인 용도로 썼음을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국회는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의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여당 원내대표는 한 달에 5천만 원, 야당은 2, 3천만 원 가량 지원받아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을 뿐, 그 사용처는 베일에 싸여 있다.

국회와 1년째 정보공개 소송 전쟁

뉴스타파가 시민단체와 함께 지난 1년 동안 국회를 상대로 정보 공개를 요청한 내역은 국회의원들의 정책 및 입법개발비, 업무추진비, 특수활동비, 해외출장 내역, 예비금, 특정업무 경비 등의 예산 집행 내역과 관련 지출증빙 서류였다. 모두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과 정책개발 명목으로 국민의 세금을 쓰고 있는 항목이다. 국회는 대부분 공개를 거부했다. 국회가 내건 비공개 사유를 요약하면 이렇다.

공개될 경우 정치적 쟁점을 야기하고 국회운영에 차질을 초래하는 공정한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특수활동비 및 업무추진비 비공개 사유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고 공개될 경우 의원실의 입법 및 정책개발활동을 제약하여 공정한 업무수행에도 차질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증빙 서류 비공개 사유

한해 132억 규모로 알려진 입법 및 정책개발비는 국회의원 의정활동의 핵심인 각종 토론회와 간담회  개최, 정책자료집 발간비용, 정책연구 용역 등을 집행하는 데 쓰인다. 의원 한 사람이  한해 최대 4,500만 원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국회의원 이름으로 발간하는 정책자료집과 정책연구는 국회가 우수 의원을 선정하는 주요 기준이 된다. 또 일부 의원들은 정책자료집을 자신의 웹사이트에 공개해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회는 그 정책자료집의 발간비용을 공개할 경우 입법활동을 제약하고 공정한 업무 수행에 차질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비공개한다고 주장한다. 궤변에 가까운 설명이다.  

결국 뉴스타파와 시민단체는 국회를 상대로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 1일까지 국회의원 의정활동과 관련한 예산 사용 내역과 지출증빙 서류에 대한 정보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소송에 들어갔다. 모두 3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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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4일 국회 본관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하승수 변호사와 함께 다시 국회를 찾았다. 이번엔 20대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내역의 열람이 허용됐다. 정보공개를 청구한지 두 달만에 얻은 기회였다. 20대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횟수는 확인된 것만 110회, 세금 40억 원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에 대한 지출 증빙 자료를 열람하게 된 것이다.

▲ 2017년 12월 14일 국회 본관 2층에서 20대 의원들의 해외출장 내역을 열람했다.

▲ 2017년 12월 14일 국회 본관 2층에서 20대 의원들의 해외출장 내역을 열람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열람실 안에는 국회사무처 직원 20여 명이 나와 있었다. 방대한 지출 증빙 자료를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국회사무처는 정보공개 청구인 한 명에게만 열람을 허용했고 그것도 이날은 3시간 동안만 볼 수 있도록 했다.  

▲20대 의원들의 해외출장 지출증빙 서류는 12월 14일 이후 한차례 더 열람할 수 있었다.

▲20대 의원들의 해외출장 지출증빙 서류는 12월 14일 이후 한차례 더 열람할 수 있었다.

촬영도 거부당했다. 취재진은 열람실 밖으로 나와야 했다.  이날 자료의 1/3 가량 밖에 확인하지 못했다. 다음 열람을 기약해야 했다. 3시간 열람 이후 해외출장 지출증빙 서류는 다시 사무처로 옮겨졌다.

해외출장 지출 증빙서류를 확인하며, 업무추진비 사용처 단서 확인

그렇다고 이날 성과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동안 비공개했던 국회의원 업무추진비 사용처의 작은 단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국회의원들의 해외 출장 때 쓰는 격려금 영수증이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현지 대사나 영사에게 현금으로 500유로, 천 달러 씩 현금을 격려금 명목으로 주고 있었다.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증빙서류를 확인하던 중 무더기로 발견한 격려금 지급 내역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증빙서류를 확인하던 중 무더기로 발견한 격려금 지급 내역

이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현지 대사가 의원들에게 밥을 사는 경우가 있는데, 밥값 대신 격려금 형태로 돌려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 액수를 떠나 국민의 세금이 이렇게 쓰여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정세균 국회의장 등 의장단, 국회 정보위원회 해외출장은 비공개

국회의원 해외출장 내역 가운데 국회의장 등 의장단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해외출장에 대한 지출 증빙 서류는 확인하지 못했다. 국회 사무처는 관련  내역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공개될 경우 국익을 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6년 20대 국회 개원 이후 정세균 의장의 경우  모두 10차례, 18개 나라를 공식 방문했다. 해외순방 때마다 언론은 정 의장의 일정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 국회와는 사뭇 다르다.  미국의 경우 1994년부터 모든 하원 의원과 의회 직원들의 해외출장 내역을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해외출장에 쓰인 하루 평균 숙식비와 교통비를 분기별로 공개해 의원별 해외출장 내역을 확인할 수 있다.  

※ 미국 하원의원 해외출장 보고서(Foreign Travel Reports) 확인 하기

예를 들어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던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의 경우 서울에 체류했던 나흘동안 숙식비로는 하루 평균 1,034달러를 썼고 교통비로는 10,466달러를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 의장의 출장 내역도 쉽게 확인이 된다.

▲ 폴 라이언 미 하원의장의 2017년 4월 영국 등 해외출장 지출경비

▲ 폴 라이언 미 하원의장의 2017년 4월 영국 등 해외출장 지출경비

2007년 제정된  “정직한 리더십과 공개 정부법(Honest Leadership and Open Government Act of 2007)”에 따르면 하원 의원이 다른 외부기관이나 개인으로부터 지원받아 해외출장을 다녀올 경우,  해외 출장 내역을 반드시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로비 또는 외유성 해외 출장을 감시하기 위한 조치다.

세금을 구입한 도서목록 공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뉴스타파가 국회예산 중 입법 및 정책개발비 지출내역을 분석한 결과 지난 5년간 국회의원 도서구입비 지출 비용은 1억 2천여만 원인 것으로 확인했다. 모두 400 건으로 기간은 2012년 6월부터 2017년 4월까지다.

지출월 금액(단위: 원) 비율
1월 4,898,080 4.06%
2월 4,217,070 3.50%
3월 4,805,780 3.99%
4월 5,202,600 4.32%
5월 9,958,600 8.26%
6월 7,437,690 6.17%
7월 3,961,940 3.29%
8월 5,421,390 4.50%
9월 7,530,260 6.25%
10월 7,204,970 5.98%
11월 10,328,540 8.57%
12월 49,177,210 40.80%
미 기재 400,200 0.33%
총액 120,544,330  

▲ 월별 국회의원 도서구입비 지출내역 (기간 2012년 6월 ~ 2017년 4월)

국회의원들의 도서구입 지출은 매년 12월에 집중됐다. 12월에만 전체의 40%가 넘는 4천 9백여만 원을 구매했다. 12월을 제외하고는 모든 달에서 천만 원 이하였다. 왜 12월에 몰릴까? 일부 의원실은 실제 12월에 한꺼번에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영수증을 모아서 12월에 제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취재 중 만난 모 의원실 보좌관은 다른 설명을 했다.

안 쓰면 그냥 다시 국고에 환수되는 거니까. 이왕 나온 예산 써야 되지 않겠어요.

000 의원실 보좌관

실제 책을 구입하는데 쓰는 예산 항목인 입법 및 정책개발비는 의원 1인당 한해 4,500만 원 가량이지만, 의원실이 신청할 경우 사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신청하지 않을 경우 불용 처리된다.

의원명 도서구입비
지출 건수
금액
(단위: 원)
김동철 29 14,312,040
이한성 51 8,392,770
김성찬 4 5,733,670
박인숙 27 5,182,200
강기정 6 5,167,150
이석기 52 4,490,320
김영주 3 3,665,000
민현주 7 3,570,460
윤후덕 3 3,029,940
조해진 1 3,000,000

▲ 도서구입비 지출 금액 상위 10명 국회의원 명단과 금액(기간 2012년 6월 ~ 2017년 4월)

지난 5년 동안 도서구입비가 가장 많았던 의원은 김동철 의원이다. 모두 29건으로 지출액은 1,431만 2,040 원이다. 의원실 직원은 “상임위 관련해 서적을 많이 구입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책이지만 국회의원들이 어떤 책을 구입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국회사무처는 뉴스타파에 각 의원별로 도서 구입 비용만 공개했을뿐, 구매목록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의원실도 책 구입목록을 전부 언론에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의원별 도서구입비 전체 목록 (기간 2012년 6월 ~ 2017년 4월)

2018년 1월 29일, 뉴스타파 정보공개 소송 1심 선고 예정

국민이 낸 세금으로 각종 활동을 하고 있는 국회의원들. 국회에 입성하는 순간, 세비와 의원실 각종 경비를 포함해 1년에 3억 원 넘게 지원받는다.  이 가운데 의정활동 명목으로 지원받는 비용은 어떻게 쓰이는지 제대로 공개된 적은 없다. 또 하나의 성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국회를 상대로 한 정보공개 청구소송 가운데, 국회의원들이 쓴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집행 상세내역 공개에 대한  1심 선고가 1월 25일 나올 예정이다.  의원들은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 항목에서 정책자료집과 정책연구 등의 비용을 청구해 쓰고 있다.  과연 국회의원들이 쓰는 328억 원의 진실이 이번엔 드러날 것인가?  

※ 관련 기사 : [국회개혁] 대한민국 국회의 민낯 : 1부 세금의 블랙홀


취재 : 박중석, 최윤원, 임보영
데이터 : 최윤원
촬영 : 김남범, 오준식
편집 : 정지성, 윤석민, 박서영
타이틀/그래픽 : 정동우
웹디자인 : 하난희
자료조사 : 최유리

공동기획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좋은예산센터

금, 2018/01/1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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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망 원인 세균, ‘신생아실 싱크대’에서 검출

4명의 신생아들을 사망에 이르게 했던 시트로박터 프룬디균이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내 싱크대에서도 검출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감염경로와 부실한 감염관리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핵심 단서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2) 주사제 1병 쓰고 5병 값 계산…보험급여 부당청구 시도

이대목동병원이 신생아 사망 사고 전날, 신생아 5명에게 스모프리피드 한 병을 나눠서 투약하고도 각각 한 병씩을 투약한 것처럼 진료비 계산서를 발급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병원 측은 과거에도 같은 방식을 통해 건보공단 급여를 과다 청구했던 사례가 있었음을 확인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앵커 멘트

지난 한 달간 숨진 신생아들의 부모들을 만나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궁극적으로 국가의 책임일 수밖에 없는 감염관리 시스템이 무너진 자리에 안전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잘못된 관행이 들어섰고, 그로 인해 생떼 같은 아이들을 속절없이 떠나보내야 했다는 점에서 이 사건도 세월호 참사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참사의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도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참사의 원인을 명백히 밝혀 책임자들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내리는 것, 그리고 다시는 이런 슬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수, 2018/01/17-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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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bedyt] https://www.youtube.com/watch?v=4DxhigqC0A8[/embedyt]

  지난 해 9월 원자력안전연구소 한병섭 박사는 한수원으로부터 내용증명 요청서를 받았습니다. 한빛 원전 부실공사에 대한 인터뷰가 '허위사실'이라는 주장인데요, 그 근거에 대해 물으니 '아직 논의 중'이랍니다... 원본 영상  : 뉴스타파 목격자 http://newstapa.org/43255
금, 2018/01/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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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영상)- 헬조선 탈출로 가는 비상구.. 선거제도 개혁!!
안좋은지표는 최고고 좋은지표는 최저인 우리나라, 정치가 제대로 작동 안하고 사회문제를 해결안하니까 문제는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해 선거제도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영상을 보고 서명에 동참해주세요! 그리고 주변 분들께 널리 공유해주세요!

영상기사: https://news.v.daum.net/v/20181101170756746

선거제도 개혁, 서명운동!
http://bit.ly/정치개혁서명

링크는 인터넷주소에 옮겨서 이동해주세요!

금, 2018/11/0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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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정보공개센터 10주년 후원의 밤을 맞이하여 제작한 10주년 축하 영상과 10주년 기념 활동 영상을 공유합니다.


아낌 없는 축하의 메시지 전해주신 정치하는엄마들, 대학교육연구소, 손은숙 활동가,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여성가족부 진선미 장관,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와 문준영, 심인보 기자, 대구참여연대, 함께하는 시민행동, altlab, 박원순 서울시장, 그 외 10년 동안 후원을 아끼지 않으신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 드립니다. 특히 영상 제작에 힘써주신 이도훈 운영위원님의 노고 절대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정보공개센터 10주년 축하 영상






정보공개센터 10주년 활동 소개 영상

수, 2019/03/0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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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과 달리 과거엔 정치를 소재로 한 ‘정치 풍자’ 프로그램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 시작은 87년 민주화 항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당시 전국민적인 민주화 열기 속에서 여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후보조차 자신을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오랫동안 억눌렸던 민심이 민주화 열기와 함께 폭발하면서 권력을 비판하고 조롱하는 정치 풍자 프로그램도 가능해 진 것입니다.

이후 각 방송사들은 앞 다투어 정치 풍자 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가상의 대기업 비룡그룹이 등장해 인사비리, 불법선거자금 등을 비꼰 KBS <유머 1번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공자’ 대신 ‘탱자’를 등장시켜 세상의 어리석음을 꾸짖던 KBS <유머 1번지> ‘탱자 가라사대’ 등 그야말로 정치 풍자 프로그램의 전성시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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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리 잡은 정치 풍자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 속에서 점점 더 과감해지고 세련되어지게 됩니다. 정치인의 성대 모사가 붐을 이루었던 1990년대를 거쳐, 대통령을 비롯해 각종 정치 사건까지 다루는 2000년대까지 정권이 바뀌는 것과 상관없이 꾸준히 발전을 거듭합니다.

하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치 풍자 프로그램은 서서히 퇴조하기 시작합니다. 소위 이명박 정권의 ‘언론 장악’ 이후 언론이 친 정부적 성향을 띄게 되면서 현 정부를 포함한 권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조는 박근혜 정권 들어서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최근 가장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인 ‘민상토론’이 얼마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게 단적인 예입니다. 프로그램에서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풍자한 것을 두고 ‘품위 유지’ 조항을 위반했다며 징계 조치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민상토론에서 표현한 풍자의 수준은 이미 모든 언론, 심지어 친 정부적 성향의 언론들에서조차 정부를 비판한 수준에 불과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과도한 징계 조치였던 셈이죠.

국민 예능이라고 하는 무한도전 역시 징계를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무한도전의 징계 사유는 좀 더 황당한데요, 메르스 감염예방 기본수칙을 말하면서 ‘낙타’ 앞에 ‘중동지역’이란 표현을 빼먹었다는 게 그 이유입니다. 심의규정 14조인 ‘객관성’을 위반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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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코미디와 예능 프로그램이 각각 ‘품위 유지’와 ‘객관성’이란 이유로 징계를 받은 셈입니다. 품위 유지와 객관성이 과연 코미디와 예능 프로그램에 이토록 엄격하게 적용되어질 잣대일까 의문이 드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이 두 가지 잣대를 가장 엄격하게 적용해야 할 시사 프로그램의 경우엔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요즘 시사 프로그램에선 패널들의 ‘막말’이 그야말로 대유행입니다. 특히 종편에서 제작하는 수많은 시사 프로그램들엔 신뢰도가 낮은 패널들이 등장해서 출처가 불분명한 말들을 격한 표현을 섞어 이야기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 당연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패널들이 징계 기간이 지난 이후 다시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막말을 이어간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얼마 전 한 패널은 연합뉴스 TV의 뉴스에 등장해서 박원순 시장의 메르스 대응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막말을 합니다.

쿠데타고 내란음모다.
옛날 같으면 삼족을 멸하는 그건데,
뭘 믿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연합뉴스TV, 6월 28일-

이 패널은 지난해 모 종편에서의 막말로 이미 한 차례 징계를 받았던 인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편들은 자사 시사프로그램에 그를 계속 출연시켰고, 그는 계속해서 막말을 하게 됩니다. 결국 종편들은 해당 인사의 막말 사고를 방치 내지 조장한 셈입니다. 민언련에서 해당 방송 내용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요청을 했다고 하니, 과연 방심위가 코미디와 에능 프로그램 이상의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지 지켜봐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 <권력과 풍자>에 등장하는 한 구절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자유롭게 막말이 오가고, 코미디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풍자조차 금지되는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더불어 풍자를 금지했을 때 우리가 무엇을 놓치게 되는지에 대해 곱씹어 볼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풍자가 기승하는 시대는
탄원도, 읍소도 무력한 소통 불가능의
역행적이고 퇴행적인 시대와 겹친다.

몸이 아픈 것이
몸의 이상 현상을 알리는 신호이듯,
풍자는 사회의 이상 현상을 알리는
경계 신호이다.

음란하고 음험한 비속어와 풍자가 팽배한 시대는
그만큼 많이 ‘아픈’ 시대이다.
– 『권력과 풍자』中 –

수, 2015/07/1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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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명분으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합니다. 하지만 전쟁 개시 후 채 1년도 안 되어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렇다면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전쟁을 시작한 부시 대통령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까요? 놀랍게도 화가 났다고 합니다.

전쟁을 시작한 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찾지 못했을 때
나보다 더 충격을 받고 화가 났던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위 발언을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표현으로 해석하면 ‘유체이탈’ 화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토대로 전쟁을 개시한 것이 다름 아닌 부시 대통령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 역시 잘못된 정보에 속은 피해자 시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시 대통령의 책임 회피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집니다. 포로 수용소에서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을 고문 및 학대하는 사진이 공개됐을 때도 몇몇 병사들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혐오스럽다.
가해자들은 우리 국가에 먹칠을 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자 뒤늦게 사과를 하지만, 이조차도 자신의 책임은 쏙 뺍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이라크 병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겪은 굴욕에 대해 유감이다.

2008년 터진 금융위기 때도 대통령의 책임 회피는 계속 됩니다. 금융권의 부실 감독에 대해 사과를 표하긴 하지만, 궁극적인 책임은 10년 전 정권에게 돌립니다.

역사를 기록할 때 사람들은 월가에 대한 많은 결정들이
내가 대통령이 되기 10여 년 전에 이뤄진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책임 회피도 카트리나 사태 때는 통하지 않게 됩니다.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뒤 5일 후에야 등장한데다가, 정부의 구조 대책이 전혀 없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의 잘못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합니다.

정부는 충분히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하지만 초기대응을 해야 했던 시간에 모 행사에 가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과는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국민들로부터 이미 신뢰를 상실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반면 부시 대통령과 달리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모든 잘못이 자신의 책임이라며, 주저 없이 사과를 한 대통령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취임한 지 불과 2주만에 자신이 복지부장관으로 내정한 인사가 탈세 의혹에 휩싸이자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사과를 합니다.

내가 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납세에 있어서 평범한 시민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다른 규율을 적용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낸 셈이 됐다.
그런 내 자신이 절망스럽다. 다 내 책임이다.

자신의 핵심 공약이었던 오바마 케어가 웹사이트의 부실로 인해 원성을 샀을 때도 자신의 책임임을 인정합니다.

웹사이트 문제에 대해 둘러대거나 변명하지 않겠다. 내 책임이다.
이 나라의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헬스케어 웹사이트를 빨리 고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실제로 5주에 걸쳐 웹사이트는 정비되었고 이후 오바마케어 가입자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말로만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잘못을 바로 잡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나치게 자주, 그리고 직접 사과한다 싶을 정도로까지 보이는 오바마 대통령은 어떠한 이유로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걸까요? 2010년 디트로이트 공항 테러 미수 사건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했던 대국민 연설에서 ‘대통령의 책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가 남 탓을 할 수 없는 까닭은
제가 최종 책임자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통령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야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모든 책임은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에 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은 사실 매우 상식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에선 이 상식적인 생각이 적용되고 있을까요? 메르스 사태와 관련하여 박근혜 대통령이 보인 행보를 보면 안타깝게도 오바마 대통령보다는 부시 대통령에 가까워 보입니다. 정부의 무능한 대처가 자신의 책임임을 인정하는 대신 해당 장관과 공무원들을 질타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과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정부의 무능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심지어 사과를 받는 모습까지 보였기 때문입니다. 메르스 사태 발원지로 알려진 삼성병원의 병원장과 박근혜 대통령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책임 전도의 희극적인 상황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메르스 종식으로 들어가도록
책임지고 해 주시기를 바란다.(박근혜 대통령)

대통령님과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
너무 죄송합니다.(삼성병원장)

수, 2015/07/0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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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국에서 5~6건씩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켜서 뉴스를 찾아보면 너무나 쉽게 그리고 자주 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일에 놀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흔해서도 무감각해져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다름 아닌 ‘일하다가 사람이 죽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뉴스에선 흔히 ‘산업 재해’라고 합니다. ‘산업 재해’라는 말이 다소 건조하게 느껴져서일까요? 아니면 워낙 기업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사람이 죽는 일조차 기업 활동의 일부로 여겨져서일까요? 실제로 산업재해를 다룬 많은 뉴스에선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뉘앙스보다 산업현장에서의 사건이나 사고의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러한 뉘앙스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언론도 독자도 사람의 목숨에 대한 감수성이 무척이나 무뎌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노동자’ 즉 일하는 사람에 대한 감수성이 무척이나 무뎌져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거대한 타워 크레인은 보이지만, 80m 높이나 되는 크레인 위를 사다리 하나에 의존해 올라가는 노동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에 땀이 차게 되는데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며 노동자는 매일 사다리에 오릅니다.

물론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사측에 안전 승강 장치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외주화된 크레인 업체는 어떻게 해서라도 가격을 낮춰야 경쟁력을 갖기 때문에 승강 장치는커녕 비용 삭감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임금을 동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사에게 수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거나, 노후 된 곳의 수리보수 비용을 삭감하는 등 안전에 관한 비용까지도 줄입니다. 이는 크레인 기사의 목숨과 직결된 것임에도 말입니다.

당연히 크레인 사고가 자주 발생합니다. 흔히 허리가 꺾이는 크레인들은 이러한 안전 비용 삭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연적 사고가 아니라 필연적 사고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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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조선소 역시 하청업체들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데, 원청의 안전관리 소홀로 사고가 빈발합니다. 지난 6월엔 800kg의 철판이 떨어져 그 아래에서 작업 중이던 40대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안전작업인 ‘가용접’이 돼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안전점검조차 무시된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조선업 재해 사망자 69명 중 83%가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배 밖 작업은 정규직들이 맡는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간다고 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산업재해 처리를 할 경우 하청업체를 고용한 대기업은 보험료를 감면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산업재해를 경험한 조선업계 하청노동자 중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는 7.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반면 2013년 한 해 동안 대기업 사업장에서 감면받은 보험료는 6,114억원에 달합니다.

안전관리 책임을 져야하는 원청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에 그치곤 합니다. 2013년 현대제철 공장에서 아르곤 가스 누출 사고로 하청 노동자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안전모 하나만 달랑 쓰고 산소마스크와 가스누출 경보기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못 갖춘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입니다.

하지만 사고의 책임자로 지목된 원청의 부사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이에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이 사건의 2심 판결을 앞두고 판사에게 직접 탄원서를 씁니다.

언론에서 많이 다룬 큰 사고라 하더라도
세상은 곧 잊고, 기업에 대한 처벌은
늘 아주 가벼웠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고 목표인 기업에게
안전은 늘 뒷전이 되는 구조가
공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만약 원청 기업이 좀 더 책임의식이 있었더라면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참사였습니다.

판사님께 탄원서를 쓰게 된 이유는,
1심 판결에서 유예된 부사장에 대한 ‘구속’을
집행해 주시길 요청 드리기 위함입니다.
판사님이 선고할 수 있는 최고형을
선고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2심 선고에서도 부사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그래서 다시 모든 건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매일 5~6건 우리나라에선 일하다가 사람이 죽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져 버린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놀라지 않습니다.

수, 2015/07/2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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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는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3.1 운동으로 폭발한 민심에 놀란 일제는 힘으로만 누르는 무단 통치 대신 회유책을 병행하는 문화통치를 시작했고, 이로 인해 조선인들은 ‘나도 노력하면 일본인이 될 수 있다!’는 일제의 기만적 전술에 서서히 물들어 가기 시작합니다. 일제가 친일파를 본격적으로 양성(?)하는 것 역시 바로 이 시기부터입니다.

일부 명망가들 역시 상황 논리에 기대거나 체념하는 방식의 주장을 합니다. 일제는 너무 강하고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강대국의 동정을 얻어 독립을 이루자는 이승만의 외교론, 식민지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치를 이루자는 이광수의 자치론 등이 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전혀 다른 방식의 독립을 주장한 스물한 살 청년이 있었습니다.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쟁취하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 민중은 능히 적과 싸워  이길 힘이 있다.

그가 다름 아닌 의열단 단장 김원봉입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등장하는 바로 그 인물입니다. 기성세대와 달리 절망적 현실에 주눅 들지 않았던 그의 당당한 태도는 조국의 독립에 목말랐던 조선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수많은 청년들은 그와 함께 무장투쟁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김원봉을 중심으로 한 의열단은 우선 자신들의 타깃을 명확하게 규정합니다.

1. 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2. 일본 천황 및 각 관공리
3. 정탐노, 매국적
4. 적의 일체 시설물

일단 타깃이 정해지면 깔끔한 양복을 차려 입고 준비한 폭탄과 권총, 태극기 그리고 종이 한 장을 품고 홀연히 경성과 동경으로 떠나게 됩니다. 요인 암살과 일제 중요 기관 폭파가 이들의 최종 목표입니다.

1923년 1월 12일. 문화통치로 길들여진 잠잠한 경성 한 복판에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집니다. 온갖 고문이 가해졌던 종로경찰서에 누군가가 폭탄을 투척한 것입니다. 현장에서 범인을 검거하지 못한 경찰부장 우마노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기자들에게 설명을 합니다.

“민심이 너무 평온하기 때문에 일부러 과격한 독립파 사람들이 어찌할 수가 없어서 최후수단으로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이외다. 민심동요는 별로 근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마노는 민심 동요를 우려하여 보도 금지 조치를 내리고 즉시 정복 순사 1,000여 명을 풀어 수색을 지시합니다. 그렇게 10일 만에 경찰이 찾아낸 범인은 32살의 철물점 주인 출신인 의열단원 김상옥이었습니다. 의열단원 중에서도 명 저격수였던 김상옥은 권총을 양손에 쥐고 일본 경찰 400여 명을 상대로 무려 3시간이나 총격전을 벌이다 마지막 남은 한발을 자신에게 겨누고 숨을 거두게 됩니다.

당시 동아일보 기사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범인은 최후까지 권총을 두 손으로 쥐고 바른 손에는 사망한 후에도
둘째 손가락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걸고 권총을 힘 있게 쥐고 있었다며
여하간 범인은 처음에 발에 총을 맞았으나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 것과 최후까지 총을 쥐고 죽은 것을 보면 매우 대담한 사람이라고 말하더라.
(동아일보 1923년 1월 23일 ‘세군데 총을 맞고도 죽은 후에도 총을 쥐고 있어’)

1926년 12월 28일에는 토지수탈의 중심이었던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이 투척됩니다. 도심 한복판인 을지로, 그것도 백주 대낮에 말이죠. 심지어 뒤쫓는 경찰 7명을 권총으로 사살한 이 역시 의열단원인 나석주였습니다. 그는 자결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나는 조국의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2천만 민중아, 분투하여 쉬지 말라

의열단원들의 맹활약으로 인해 일제는 의열단 단장인 김원봉 잡기에 혈안이 됩니다. 암살과 폭파 자체가 일제에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는 없었지만, 자존감을 잃어가는 당시 조선인들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원봉은 심지어 김구보다 더 높은 현상금이 걸리게 됩니다. 현재 금액으로 치면 약 320억 원이란 어마어마한 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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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920년부터 1929년까지 조선총독부, 종로경찰서, 부산경찰서, 동양척식회사, 심지어는 동경의 황궁에까지 폭탄이 투척됩니다. 폭탄을 투척한 이들은 모두가 상하이에서 온 의열단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양복 품속에 거사를 위한 무기(총, 폭탄)와 태극기만이 아니라 또 다른 종이 한 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 종이는 단재 신채호가 김원봉의 부탁을 받아 작성한 의열단선언(조선혁명선언)이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이루고 싶었던 세상과, 그 세상을 이루기 위해 총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 장의 종이에 6,400자의 글자로 담겨져 있습니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혁명의 길은 파괴부터 개척할지니라.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大本營)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유일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잡고
암살, 파괴, 폭동으로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삭치(해치지)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단기 4256년 1월 의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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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의사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의거를 한 자리는 현재 1호선 종각 역 종각지하 쇼핑센터 8번 출구 바로 앞입니다. 그 앞엔 아주 작은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수, 2015/08/1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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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벌인 4대강 사업은 ‘녹조 라떼’라는 오명 만을 얻은 채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4대강 사업에 대한 평은 썩 좋지가 않죠. 하지만 청계천 복원사업은 좀 다릅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계천 복원 사업일 겁니다. 맞습니다. 대체적으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여전히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청계천 노점상들은 생계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노점상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성동공고 뒤편에 자리 잡았던 청계천 노점상들은 강제 철거로 집기류를 모조리 압수당했습니다.

 

좀 더 살펴볼까요? 2003년 청계천 노점상들이 청계천에서 강제 철거된 후 이주된 곳은 대략 3곳입니다. 동대문 운동장, 동묘 벼룩시장, 성동공고 근처 이렇게 말이죠. 그 중에서 900여 명의 노점상들이 이주했던 동대문 운동장은 현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럼 노점상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또 집단 이주를 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 59세의 노인 노점상은 오른쪽 눈 안쪽 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기까지 합니다. 용역업체 직원에게 벽돌로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노점상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에 잘 소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한 평가가 가능했던 게 말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언론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사람들이 청계천 복원사업의 실체를 잘 모르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본 편에서는 바로 그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이유가 4대강과 청계천 복원 공사의 결정적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이런 겁니다. 4대강 사업은 그야말로 소수 건설사들 배를 불려주기만 한 반면, 청계천 복원사업은 주변의 평범한 영세 상인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갔다는 것이죠.

실제로 청계천 복원 공사 이후 주위 상권은 급격하게 확장이 됩니다. 산책을 하러 오는 이들이 늘어 음식점이 호황을 맞게 되고, 덩달아 주위 건물들의 분양가도 상승을 합니다. 일부 도매상들의 경우 소매상들과 달리 이익을 기대했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청계천 복원 공사 덕에 적지 않은 ‘평범한 이들’이 이익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청계천 복원 사업의 ‘성공 이유’는 생태니 뭐니 하는 게 아니라, 상권과 부동산 가격 상승이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들어 온 서민들의 재산증식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들이 이명박에게 무엇을 기대했었는지, 왜 그에게 압도적인 표를 던졌던 것인지 이해가 갑니다. 지금은 역대 대통령 인기도 조사에서 거의 꼴지를 달리고 있지만 그는 분명 사람들이 무얼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서울시장 시절과 달리 대통령이 된 이후엔 소수의 이들에게만 원하는 걸 이루도록 해줬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에서 물러났으니, 이명박에게 사람들이 투사했던 무언가도 함께 사라졌을까요? 그가 인기가 없는 전직 대통령이니 서민들이 바랬던 그 무언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걸까요? 서민들이 바라는 그 무언가가 과연 이명박 시장 혹은 대통령 시절에 새롭게 생겨난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무언가를 바라는 게 꼭 나쁜 것일까요?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만약 그게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그걸 얻기 위한 방법이 노점상과 같은 가장 힘없는 이들의 것을 빼앗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요?

청계천 복원사업으로부터 이미 1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과 얻어야 할 답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만드는 내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절로부터 단 한 걸음도 내 걷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더불어 ‘다른 방법’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그 시절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수, 2015/08/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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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습니다. 최근엔 일부 언론들까지 가세해서 ‘통일 대박’을 합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북 강경책을 쏟아 붓던 정부의 평소 입장에 비춰 볼 때 일관성도 없는데다, ‘대박’이라는 표현 이외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통일을 이루어내겠다는 건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얼마 전 극한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남북대결 상황보단 현재의 분위기가 낫다는 데서 위안을 삼기는 합니다.

제대로 된 통일 방식, 그 방식에 기초가 되는 통일에 대한 철학을 살펴보려면 현 정부에겐 별로 기대할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어쩔 수 없는 독일로 눈을 돌렸습니다. 20년간 이어진 일관된 독일의 통일 절차에 있어 실질적 설계자였던 ‘에곤 바르’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1963년 그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습니다.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것인데요, 일단 ‘접근’해서 대화하고 협력을 하면 상대방이 ‘변화’하게 되고, 그 변화에 기초하여 좀 더 접근을 해 나갈 수 있다는, 어찌 보면 매우 상식적인 정책입니다.

그는 우선 동베를린시 당국자를 만나 수차례 대화를 한 끝에 ‘베를린 통행증 협정’을 체결합니다. 이 협정 덕에 120만 명의 서베를린 시민들이 헤어졌던 동베를린 가족을 만나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게 됩니다. 에곤 바르는 이처럼 정책 제안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성과를 현실에서 직접 증명해 냅니다.

1969년 들어선 빌리브란트 정권은 ‘접근을 통한 변화’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합니다.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고, 동독만이 아니라 동구권 공산국가들과도 화해협력 정책을 펼칩니다. 흔히 ‘동방정책’이라고 불리는 공산국가들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적극적인 외교정책입니다.

당연히 야당과 보수언론들의 질타가 이어집니다. 조국을 배반했다는 감정적 비난부터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는 게 오히려 분단을 영구히 한다는 논리적 비난까지 말이죠. 일종의 ‘애국심’이란 보수적인 관점으로 공격한 셈입니다. 이에 대해 에곤 바르는 애국심 대신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영민함을 보입니다.

언론은 여론의 어느 한쪽 입장에서 관찰하고 비판하면 됩니다.

하지만 정치가로서 회담이나 협상에 임할 경우,
상대방을 적으로 볼 것인가 파트너로 볼 것인가를 우선 결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나는 많은 경우에 상대방이 적일지라도
파트너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에곤 바르의 관점에 따르면 상대방을 ‘적’으로만 보는 건 ‘정치가’ 답지 못한 것이 됩니다. 정치가란 ‘협상’을 해야 하는 위치에 있고, 따라서 적과 아군의 이분법으로만 나누는 정치가란 한마디로 ‘함량미달’인 되는 셈입니다. 차분하게 말했지만 말 속에 칼이 들어 있네요. 더불어 ‘협상’이란 관점을 강조함으로써 ‘적’을 ‘파트너’로 바꾸어 일종의 ‘비지니스’의 범주로 관점을 이동시킵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승리와 패배’ 대신 협상의 ‘성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후 1970년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동서독의 협력 관계는 급물살을 탑니다. ‘우편 및 통신 협정’ (1971년), ‘여행 및 방문 협정’ (1971년), ‘교통협약’ (1972년) 등이 체결됨으로써 매년 동독과 서독간에는 무려 700~800만 명의 사람이 왕래하게 됩니다. 사람이 오고 가면 자연스레 물자도 오고 가게 됩니다. 특히 문화와 같은 ‘생각’도 오고가게 되죠.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다며 확성기로 시끄럽게 떠드는 수준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성과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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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엄청난 변화로 인해 1982년 헬무트 콜 총리가 이끄는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도 ‘동방정책’은 지속됩니다. 에곤 바르가 말했던 것처럼 ‘접근’을 통해 일어난 ‘변화’가, 이제는 ‘접근’을 지속하도록 만들어 낸 셈입니다. 에곤 바르 본인 역시 보수정권에서도 계속 동방정책의 실무자로 일하게 됩니다.

이처럼 정권의 성격과 상관없이 20년간 일관된 정책이 시행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1989년 동독 시민들은 스스로가 혁명을 통해 새로운 정부를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독일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통일을 이룹니다.

흥미로운 건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진보정권의 빌리 브란트 총리와 보수정권의 헬무트 콜 총리 모두 ‘통일’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목표를 정해 놓고 달려가기 보다는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집중했고 통일은 오랜 협력의 결과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에곤 바르가 오래전 제시했던 ‘접근을 통한 변화’라는 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우리가 이 정책을 아무런 환상 없이 추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이것이 평화전략이라는
정치라고 확신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기적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그건 정치가 아니다.
– ‘접근을 통한 변화’(1963) 중에서

에곤 바르는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금방 통일을 이룰 수 없다는 걸 알았고, 그럼에도 접근 그 자체만으로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무엇보다 정치란 기적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하나라도 더 얻어내야 하는 ‘비지니스’라는 걸 알았습니다.

통일은 대박이라고 외치는 현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여기에 장단을 맞추는 일부 언론들은 에곤 바르만큼 알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면 정 반대로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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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9/0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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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가 전성기였던 1989년, 한 명의 신인가수가 등장합니다. 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모범생 같은 앳된 외모. 하지만 그가 들고 나온 감미로운 발라드 ‘텅 빈 마음’은 변진섭과 이문세 같은 쟁쟁한 발라드 가수의 히트곡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합니다.

이에 기세를 몰아 1집은 물론 2집과 3집까지 차례로 대히트를 기록하며 당당히 유명 발라드 가수 대열에 오르게 됩니다. 수많은 팬을 거느린 ‘스타’가 된 것이죠. 하지만 그는 기존 스타들과는 좀 다른 길을 선택 합니다. 가수들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던 방송국 음악 프로그램 출연을 고사하고, 당시만 해도 척박하기 그지없던 ‘공연장’으로 향한 것이죠.

“방송국 앞에는 팬들이 두 줄로 서 있고,
그 앞으로 차가 들어와 가수들을 모셔갔다.
거기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우쭐거리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 선택이 현재 가수 이승환의 진짜 시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TV 스타’라는 편안한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한 이승환은 공연 위주의 활동을 하게 됩니다. 나아가 직접 제작사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은 남김없이 다시 음악에 투자합니다.

음악에 집중하고 더 좋은 품질의 음악을 만든다는 면에서는 매우 이상적인 활동이지만 ‘마케팅’이란 측면에선 충분한 수익이 보장되기 어려운 방식입니다. 실제로 그가 차린 회사는 파산 직전의 상황에 반복적으로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고수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무리다,
장사가 안 된다고 해도

마치 ‘독짓는 늙은이’처럼
그렇게 만들어 왔고,

그는 그게 기본적인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명석-

그렇게 무려 26년이란 긴 시간이 흐릅니다. 그 사이 그는 11장의 정규앨범과 무려 1,000회 이상의 단독 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방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냅니다. 특히 그의 공연은 음악을 선보이는 일반적인 콘서트를 넘어서서 하나의 ‘잘 짜여진 드라마’같다는 극찬을 받게 됩니다. 그로 인해 데뷔 초기 붙여졌던 ‘어린 왕자’라는 별명은 어느덧 ‘공연의 신’이라는 새로운 별명으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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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체를 하나의 잘 짜여진 드라마로 끌어올린 음악인이다.”
-대중음악평론가 김성환-

이젠 누가 봐도 자신의 영역에서 일가를 이룬 그였지만, 그의 마음 속은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속에 언젠가부터 일과처럼 생긴 ‘분노’를 인식했고 그걸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자신들도 더 잘 살게 될 줄 알고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찍어주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가수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 누구라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느낌을 모든 가수가 음악 활동으로 표현하는 건 아닙니다. 자칫 자신의 음악 활동에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합니다. 그가 26년간 늘 서 있었던 ‘무대’ 위에서 말이죠.

실제로 그는 2009년 용산 참사 유가족을 위한 콘서트, 2012년 방송3사 공동 파업 집회 등 여러 집회 공연 무대에 오릅니다. 더불어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자 그를 아끼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안위를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혹시라도 그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그런 말들을 들으며 오히려 왜 이런 걸 겁내야 하는 지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됩니다.

“몇 번 이런 자리에 섰었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이 다 말렸어요. 이상하게.. ‘그거 하면 너 이상해질지도 몰라’하면서.. 그러면서 사실 저도 많이 겁났습니다. 무서웠고. 그런데 순간 생각해 보니까 왜 내가 겁나야 하고, 무서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박수치시지 마시고… 왜냐하면 지금도 무서워요.”
-2012년 방송3사 공동 파업 집회 발언 중-

어쩌면 그는 정말 무서워해야 하는 것에 무서워하려 애쓴 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는 알아채게 됩니다. 300여명의 국민들을 구하지 않은, 그리고 그에 대해 책임도 지려하지 않는 ‘이상한 나라‘에 자신이, 그리고 국민들이 살고 있다는 진짜 무서운 현실을 알아채게 됩니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참 불쌍한 국민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국가가 우릴 지켜주지 못하는
혹은 지켜주지 않는

어떤 일에도 국가는
책임을 지지 않는
그리고 국민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하지 않으려는

그런 의지를 갖고 있는 이상한 곳임을 알아채버렸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 100일 집회 발언 중-

늘 그러하듯 그는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의 무대에 오르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합니다. 나아가 단식에까지 동참합니다. 하지만 1년여의 시간이 지나도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월호 참사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히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는 ‘면목 없는 어른’으로서의 자괴감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먹먹한 마음입니다. 우리 정말 가만히 있었구나,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가만히 있는 사람이 돼 버렸구나 라는 생각 때문에 유가족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특히 여기 와 있는 많은 어린 친구들, 학생 여러분께 면목 없는 어른이 된 것 같아서
더 이상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행사에서 이승환-

하지만 그는 자괴감에 매몰되지 않고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곡을 직접 만듭니다. 더불어 해당 곡을 다른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사용하기를 바란다며 해당 곡에 대한 저작권 포기를 선언합니다. 신곡과 그 곡의 저작권이면 가수가 가진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별이 된 아이들을 그리고
또 기리는 마음에
<가만히 있으라>를 만들었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하는데,
세월호의 슬픔을 공감하는데
뜻을 같이 하는 분에게는

이 곡의 지적재산권을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물론 이런 그를 모두가 다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특히 그를 발라드 가수로만 알고 있는 분들의 경우 다소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비록 일부지만 혹시 정치를 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의심어린 눈초리도 존재하고요.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런 시선에 문제를 제기 합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 제 상식을 얘기하면 정치인 하려고 그러는 거란
편협하고 조잡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겁니까?

연예인 이야기는 시시콜콜 그렇게들 하시면서 왜 정작 먹고 사는
아니 죽고 사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하는 겁니까?”
-이승환 페이스북-

더불어 자신을 걱정하는 주위 사람들과 팬들에게도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이 자리에 선다고 하니까 주위 분들,
특히 팬분들이 걱정을 많이 하더라.

왜 걱정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유치하거나
경직된 나라가 아니다.(관객들 웃음)

어릴 때부터 배워온 사람의 도리,
가수의 도리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거니 팬분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용산 참사 유가족 자선 콘서트 중-

‘도리’라는 말은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이란 의미입니다. 오래전 가수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른길을 위해 방송국 대신 TV를 택했던 그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을 위해 지금의 선택들을 해 나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 두 가지가 26년간의 시간 동안 조금씩 좁혀져 이제 하나의 길로 합쳐진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하는 사람, 이승환’ 안에서 말이죠.

‘음악 하는 사람은 세상과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수 이승환-

수, 2015/10/2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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