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튀니지: 동성애혐오에 맞서다

지역

튀니지: 동성애혐오에 맞서다

익명 (미확인) | 금, 2015/10/02- 09:47
 ⓒAmnesty International

ⓒAmnesty International

튀니지에서 22세 대학생이 ‘동성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징역 1년이 선고되면서 동성애 관련 논란에 불이 붙었다. 모하메드 살라흐 벤 아이사 튀니지 법무장관은 29일 공개적으로 동성애 비범죄화를 촉구하는 획기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튀니지 수스 법원은 9월 22일 필명 ‘마르완(Marwan)’으로 알려진 남성에게 항문 성교의 “증거”를 인정받고자 항문 검사를 강행한 끝에 유죄를 선고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성적 지향성 또는 성 정체성만을 이유로 체포 및 구금된 경우 양심수로 간주한다.

9월 6일, 경찰은 수스에서 발생한 한 남성의 살인 사건과 관련해 마르완을 소환했다. 마르완은 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은 일절 부인했으나 살인 누명을 쓸 수도 있다는 경찰의 위협으로 피해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을 인정했고, 이 때문에 튀니지 형법 230조에 따라 징역 3년까지 처해질 수 있는 “남색” 혐의로 기소되었다. 형법 230조는 “여성 동성애”역시 범죄로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 레즈비언 여성을 구금하는 데 적용된 경우는 거의 없다.

튀니지의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인터섹스(LGBTI) 활동가들은 마르완 사건에 빠르게 대응했다. 이들 활동가 단체는 올해 초 진보적인 성향의 새로운 연립정부가 들어서면서 힘을 얻어 최근 더욱 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동성간의 합의된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것은 튀니지의 신규 헌법에 명시된 주요 권리 두 가지인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와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여 왔다.

일부 단체는 심지어 강제 항문 검사를 철폐할 것을 촉구하는 온라인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는 튀니지에서 전례가 없었던 움직임이다.

모하메드 살라흐 벤 아이사 튀니지 법무장관은 마르완의 유죄 판결이 나온 지 수 일 뒤에 진행된 언론 인터뷰를 통해, 현행 형법 230조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사생활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으며 폐지되어야 할 조항임을 인정했다. 튀니지의 인권활동가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발언이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튀니지의 동성애 담론의 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마르완 사건만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최근 튀니지의 성폭력 근절 캠페인을 진행하며 2009년부터 2014년 사이 게이 남성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체포, 구금, 기소 사례를 다수 기록한 바 있으나 활동가들은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훨씬 더 많다고 주장한다.

튀니지의 게이 남성들은 단지 “여성스러워” 보이거나, 게이 남성들아 자주 찾는다고 알려진 장소에서 다른 남성과 이야기를 나눴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었다고 국제앰네스티에 전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완과 마찬가지로 증거도 없이 체포되어, 항문성교 여부를 증명한다는 이유로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항문 검사를 강요당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렇게 항문 검사를 강요하는 것도 고문 또는 부당대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성전환자들 역시 단지 성별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과 사회적 표준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공중도덕 위반 혐의로 체포, 기소되었다고 국제앰네스티에 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습법으로 인한 영향은 언제 체포되고 기소될 지 모르는 위험에 처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동성애가 범죄화된 경우 LGBTI에 대한 폭력이 더욱 만연해지고, 이들이 경찰에게 인권침해와 가혹행위 대상이 되거나 가족과 사회로부터 위협받는 것에 관대한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타깝게도 튀니지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국제앰네스티와 인터뷰를 나눈 LGBTI 중에는 그들의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성 때문에 칼에 찔리거나 베이고, 머리를 걷어차이고, 담배꽁초에 지져지고, 살해 위협까지 당한 사람들도 있었다. 경찰에 신고한다 해도 형법 230조로 인해 무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의 경우 경찰이 국제법적 의무에 따라 이러한 동성애, 성전환 혐오 범죄를 절차대로 조사하는 대신, 레즈비언 여성을 비롯한 생존 피해자들에게 본인이 기소되고 싶지 않다면 고발을 취하하라고 경고하거나 공개적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어떤 사례에서는 이렇게 기소될 것을 우려한 LGBTI들의 두려움을 이용해 경찰관들이 이들을 협박하고 금품을 갈취하거나 때로는 성추행까지 저질렀다. 게이 남성이나 성전환자들은 체포되지 않기 위해 경찰관에게 뇌물을 주거나 휴대폰 또는 귀중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강간이나 성폭행을 당한 LGBTI 피해자들은 대부분 경찰에 나서서 신고하기를 꺼리고 있다.

튀니지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합의하에 동성 파트너와 성관계를 갖는 것을 범죄화하는 것은 국제법과 국제기준에 위반되는 일이다.

최근 튀니지에서 LGBTI 인권에 대해 실질적인 공론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움직임은 이 사안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작지만 중요한 걸음을 마침내 내딛고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형법 230조를 폐지하고 합의하의 동성간 성관계를 완전히 비범죄화해야만 튀니지 정부에 차별과 폭력을 막는 적절한 보호대책을 마련할 것이라는 희망이 생길 것이다. 정부는 마르완을 즉시 석방하고,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성만을 이유로 체포되거나 기소되는 사람이 없도록 관련법 개정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막달레나 무그라비(Magdalena Mughrabi) 국제앰네스티 북아프리카 조사관

영어전문 보기

Challenging Tunisia’s homophobic taboos

The case of a 22-year-old student sentenced to one year in prison for engaging in “homosexual relations” has finally sparked public debate on same-sex relations in Tunisia. Yesterday, the Minister of Justice Mohamed Salah Ben Aissa made a ground-breaking public call for the decriminalization of same-sex relations.

A court in Sousse convicted the man, known under the pseudonym Marwan, on 22 September after forcing him to undergo an anal examination to establish “proof” of anal sex. Amnesty International considers people who are arrested and detained solely on the basis of their sexual orientation or gender identity to be prisoners of conscience.

On 6 September, police had summoned Marwan in relation to the murder of a man in Sousse. When he denied any involvement in the crime, but admitted to having sex with the victim reportedly after the police threatened to bring a murder charge against him, he was charged with “sodomy” under Article 230 of the Penal Code which carries a maximum three-year prison sentence. The article also criminalizes “lesbianism” although it is rarely used to detain lesbian women.

Tunisia’s 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and intersex (LGBTI) activists quickly adopted Marwan’s case. Such groups have become increasingly vocal in recent months, emboldened by the creation of a new, more liberal, coalition government earlier this year. They have campaigned against the criminalization of consensual same-sex relations stressing that it violates two key rights guaranteed under Tunisia’s new Constitution – the right to a private life and non-discrimination.

Some groups have even launched an online campaign calling for an end to forced anal examinations – an unprecedented move in Tunisia.

Speaking in a media interview days after Marwan’s sentencing, Minister of Justice Mohamed Salah Ben Aissa acknowledged that Article 230 violates the constitutional right to private life and should be repealed. Tunisia’s human rights defenders must seize this momentum and change the course of the country’s discourse on this issue to ensure that words are turned into action.

Sadly, Marwan’s case is not isolated. As part of its campaign to end sexual and gender-based violence in Tunisia, Amnesty International has recently documented several cases of arrest, detention and prosecution of gay men between 2009 and 2014, but activists say that many more go unreported.

Gay men in Tunisia have told Amnesty International that they were arrested purely because they appeared to look “effeminate” or because they were seen speaking to another man in an area known to the police to be frequented by gay men. Like Marwan, many were arrested without evidence, and were forced to undergo an anal examination to establish proof of anal sex despite the fact that there is no scientific basis for such invasive examinations. Amnesty International believes forced anal examinations amount to a form of torture or other ill-treatment.

In other cases, transgender individuals told Amnesty International that they were arrested and prosecuted for offending public morals merely because they do not conform to established gender stereotypes and social norms.

But the impact of these laws reaches far beyond the constant risk of arrest and prosecution. Around the world, the criminalization of same-sex relations fosters violence against LGBTI people and creates a permissive environment where they can be subjected to police abuse and harassed and intimidated by their families and communities. Unfortunately, Tunisia is no exception.

Amnesty International has spoken to LGBTI people who have been stabbed or slashed with knives, kicked in the head, burnt with cigarette butts and threatened with death because of their gender identity or sexual orientation. Their reports to the police however, were often dismissed or ignored because of provisions in Article 230.

In some cases, instead of duly investigating these homophobic and transphobic crimes – as is their obligation under international law – the police warned or openly threatened survivors, including lesbian women, to drop their complaints if they did not wish to be prosecuted themselves. In other cases police officers have exploited LGBTI people’s fears of prosecution to subject them to blackmail, extortion and, at times, sexual abuse. Gay men and transgender individuals who do not want to be arrested are often forced to bribe police officers and give up their phones or other valuables.

Because of this, LGBTI survivors of rape and other sexual assault are often reluctant to come forward and report such attacks to the police.

The criminalization of consensual sex between same-sex partners whether in Tunisia or elsewhere in the world is contrary to international law and standards.

The recent moves to open up real, public debate on LGBTI rights offer a glimmer of hope that Tunisia is finally taking small but crucial steps in the right direction for progress on this issue.

But ultimately, only through repealing Article 230 of the Penal Code and decriminalizing consensual same-sex relations once and for all, will the Tunisian authorities have any hope of providing adequate protection against violence and safeguarding against discrimination. The Tunisian authorities should immediately release Marwan and embark on a process of amending legislation to ensure that no one is arrested and prosecuted on the basis of their gender identity and sexual orientation.

Magdalena Mughrabi, North Africa Researcher Amnesty International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히로카 쇼지(Hiroka Shoji)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이 글은 The Diplomat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과거의 잔혹행위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려는 태도는 오늘날 일본 사회의 여성관에도 그대로 스며들어 있다.

일본군 ‘위안부’에 소속된 중국인 소녀가 미얀마 랑군(양곤)의 한 캠프에서 들것에 앉아 심문을 기다리고 있다. (1945년 8월 8일)

선명하지 못한 흑백 화면 속, 커다란 구덩이에 여성 시신 수십 구가 버려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불과 19초에 지나지 않는 영상이지만, 정의를 요구하며 수십 년간 계속된 투쟁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중국 운남성에서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이 영상은 1932년부터 2차대전 종전까지 지속된 일본군 성노예제 역사의 한 장면을 담고 있다.

이 영상은 2018년 2월 서울시와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공개한 이후 전 세계 언론에서 널리 보도됐지만 일본 정부는 이에 관한 언급이 거의 없었다. 근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일본 정부는 여전히 자국의 전쟁 기록에 직면하기를 거부하고, 보상 문제에 대한 합의는 끝났다고 주장하며 잔혹행위가 자행됐다는 사실도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의 잔혹행위, 특히 여성에게 저지른 잘못을 적절하게 인정하길 거부하고 있는 일본의 태도는 오늘날 일본 사회의 여성관에도 스며들어 있다. “위안부”라는 조직적인 전쟁범죄의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정의를 요구하고 있지만, 생존자들을 “직업적 창부”로 지칭하거나 증언 및 증거의 타당성을 공격하는 등 이를 부인하고, 비하함으로써 (성노예제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여전히 만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군 성노예제에 대한 보도가 아직도 이러한 부당함에 시달려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일본군 성노예제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해도, 그 뿌리는 일본의 분쟁과 점령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기원한다. 당시 일본이 성노예제를 고안하고, 운영하고, 확장시킨 방식 역시 일본의 뿌리 깊은 젠더 불평등과 타국민 차별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오늘날 일본 사회에도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지난 70년 동안 일본에서 여성의 지위는 극적인 수준으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가 갈 길은 멀다. 2017년 세계경제포럼 조사 결과 일본은 성평등에 있어서는 144개국중 114번째로 최악 수준에 꼽혔다. 정부 및 공공, 민간기관에서 여성이 요직을 차지한 경우는 충격적이리만치 드물다. 일본 여성은 사회 각계 각층에서 일상적으로 성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며, 세계적으로 여성 운동이 힘을 얻고 있는 지금도 이 문제는 좀처럼 주목받지 못한다. 최근 오사카국제대학교 조사 결과 정부부처, 경찰, 언론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힌 사례도 150건에 이르렀다.

젠더 고정관념이 팽배하며, 성차별적 태도는 여성들의 일상 생활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친다. 일본 형법에서 규정하는 강간의 정의는 그 범위가 지나치게 좁고, 부부강간을 명확히 범죄로 규정하지 않는 등 국제기준에 따르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로, 20세기 초 2차대전 종전까지 한반도, 중국 등지에서 일본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의 후손 역시 여전히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소위 ‘자이니치’라 불리는 한국계 일본인에 대한 공격도 만연하다. 한국계 학교는 고등학교 학비 면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혐오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거의 매일같이 위협으로 다가온다.

실제로 벌어진 잔혹행위의 규모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일본군에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 처형된 여성이 총 몇 명인지도 결코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이 감금되어 있던 “위안소”의 위치와 수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모두 파기되었다. 최근 성노예제에 관한 문서와 영상자료를 공개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전쟁범죄를 은폐하려는 시도에 대항하고, 지금도 국가의 손으로 자행되는 불의를 입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범죄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넓은 범위의 개혁과 재발 방지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피해자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하지 않을 구실이 될 수는 없다. 생존자 대부분이 현재 90대 노인으로 그 수가 계속해서 줄고 있으며, 생존자들의 증언도 확보하기 어려워질 것이므로 배상에 관한 문제 해결은 나날이 더욱 시급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군 성노예제처럼 일정 기간동안 여성을 대상으로 강간을 자행하도록 국가가 직접 조직한 제도는 유례가 없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조직적 폭력이 일본만의 특이한 역사라고 보기는 어렵다. 구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콩고민주공화국, 과테말라 등 최근 역사를 통해 우리는 여성폭력이 불러온 암울한 결과를 여러 차례 목격해 왔으며, 오늘날 미얀마에서도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의 책임을 인정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피해자에게 전적이고 실질적인 배상을 하는 것은 물론 이러한 범죄의 기저에 있는 여성 차별 문제의 해결을 위해 포괄적인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일본군 성노예제 생존자를 위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도덕적 의무일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거의 인권침해를 바로잡는다면 오늘날 여성과 소수자의 상황을 개선하고, 이처럼 끔찍한 범죄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화, 2018/07/10- 12:42
105
0

성실하고 카리스마 있는 학생 굴리게이나 타시마이마이티Guligeina Tashimaimaiti는 굴곡 없이 순탄한 인생을 살아왔다.
굴리게이나는 최근 말레이시아 공과대학(UTM)에서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했고, 박사과정에 합격했다는 소식까지 들은 참이었다.
총명한 학생이었던 그녀는 영예롭게 졸업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결국 자신의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말 못할 어려움

굴리게이나 타시마이마이티(31)는 말레이시아 공과대학에서 유일한 중국 위구르 출신 학생으로, 2010년부터 이곳에서 학부 과정을 시작했다.
굴리게이나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역 북부의 일리 지역에서 태어났다. 7년간의 말레이시아 유학 생활 동안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학비를 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굴리게이나 역시 틈틈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사로 일하며 돈을 보탰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일리로 돌아갔을 때, 굴리게이나의 삶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녀는 아버지가 경찰에 불려가 기나긴 심문을 당했음을 알게 되었다. 굴리게이나와 독일에 사는 그의 언니 굴지레까지, 가족 중 2명이 외국에 산다는 이유로 가족 전체가 표적이 된 것이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새미(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함)”는 굴리게이나의 절친한 친구다. 그녀는 일리 경찰이 굴리게이나에게 여권과 학위증명서 사본은 물론 혈액과 DNA 샘플까지 요구했으며, 그 사실을 굴리게이나에게 직접 들었다고 전했다. 경찰은 학업을 마치면 중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친필 각서까지 요구했다.

굴리게이나의 아버지는 중국 정부로부터 딸이 졸업 이후 귀국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감옥에 보내겠다는 위협을 당했다고 굴리게이나에게 말했다. 복잡한 심정으로 말레이시아에 돌아온 굴리게이나는 학업에만 매진했고, 기록적인 시간 안에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최대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새미는 굴리게이나가 성실한 태도와 우수한 성적뿐만 아니라 봉사활동까지 참여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말했다.

새미는 굴리게이나가 밤낮 없이 쉬지 않고 학업에 몰두하는 모습이 걱정된다고 말을 꺼냈지만, 굴리게이나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를 꺼리며 가족에게 자신이 필요하다는 말만을 남기곤 했다. 새미는 위구르 자치구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점차 친구가 말 못할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굴리게이나의 언니 굴지레는 20년째 독일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결혼해 자녀 두 명을 뒀다. 굴지레는 중국 정부가 가족이 외국에 있는 위구르 사람들을 집중 탄압하고 있다는 소식을 친구들과 이웃 사람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굴리게이나가 석사논문을 마친 후 일리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하자, 굴지레와 새미는 그녀를 만류하려 했다. 새미는 중국에서 수많은 위구르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에 굴리게이나의 안위를 걱정했다.

강제실종 전의 굴리게이나가 보낸 사진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다

굴지레는 굴리게이나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재교육 캠프”에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2016년부터 위구르 자치구역에는 “반극단주의센터” 또는 “교육변화센터”라 불리는 구금시설이 대량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을 정해지지 않은 기간 동안 임의로 구금하고, 이들에게 중국의 법과 정책을 강제로 교육시키는 시설이다.

굴리게이나는 자신은 정치 활동이나 “분리주의” 활동에 전혀 관여한 적이 없으니 중국 정부에 공정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고 굴지레와 새미에게 말했다.
굴지레는 전화 및 위챗(중국의 인기 소셜미디어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부모와 연락하는 것이 갈수록 까다로워지고 있으며, 많은 친구들이 위챗에서 두 자매를 조직적으로 차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굴리게이나는 일리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금방 말레이시아로 돌아올 것이라고 친구들을 안심시켰다.
새미가 마지막으로 굴리게이나를 본 것은 세나이 국제공항에서였다. 새미는 비행기까지 그녀를 배웅하며, 안전하다는 신호로 매주 위챗의 프로필 사진을 교체해 달라고 부탁했다.

굴리게이나는 2017년 12월 26일 말레이시아를 떠났다. 그 뒤로 그녀의 소식을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굴리게이나는 일리에 도착하고 일주일 뒤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다. 이후 그녀의 프로필 사진은 수 주간 변화 없이 유지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배경 사진이 감방처럼 보이는 어둡고 우울한 흑백 사진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바뀐 굴리게이나의 프로필 사진

언니인 굴지레는 위챗을 통해 굴리게이나와 연락을 취하려 했고, 말레이시아의 친구들 역시 메시지를 보냈다. 현지의 이웃 주민들과 친구들에게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한 이웃 주민은 굴지레가 끈질기게 추궁하자 굴리게이나가 “교육 수용소”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는 힌트를 남긴 후 위챗에서 그녀를 차단했다. 이웃 주민, 친구, 가족들까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차례로 굴지레를 차단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걱정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제 위챗에 남은 연락처는 하나도 없어요. 모두 저를 차단했거든요.” 굴지레는 그렇게 말했다.

굴지레는 2017년부터 “재교육 수용소”에 대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족이 외국에 있거나 외국에서 막 귀국한 위구르 사람들은 표적이 되어 “재교육”을 위해 끌려갔다.
굴지레는 굴리게이나 역시 그런 곳으로 끌려간 게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돼요. 석사학위까지 취득한 학력이 있고, 박사과정에도 합격했는데 갑자기 저나 말레이시아 친구들과 연락을 끊을 이유가 없잖아요.”

 

위구르인 집단 구금

이처럼 굴리게이나의 행방이 묘연해진 것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역을 대상으로 한창 탄압이 이루어지던 시기였다. 중국 정부는 “극단주의” 및 “분리주의”를 근절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며 위구르인을 비롯해 이슬람계 소수민족 구성원을 집단으로 구금해왔다. 위구르 자치구역에서 전해온 소식에 따르면 본인이나 가족이 외국에 거주하는 위구르인 다수가 표적이 되어 위협을 당했고, 중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갖가지 구금시설로 끌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언론에서는 위구르 자치구역에서 이루어지는 탄압과 관련해 계속해서 보도하고 있지만, 해당 지역에서 관련 내용을 독립적으로 보도하려면 많은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또한 “재교육 수용소”에 관한 특정 정보를 입수하고 확인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걱정에 빠진 학교 친구들과 교수진

굴리게이나는 말레이시아로 돌아와 2018년 2월 18일부터 박사과정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지금까지도 언니인 굴지레는 물론 말레이시아에 있는 굴리게이나의 학교 친구들과 교수들 역시 그녀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굴리게이나의 학교 동료 및 친구, 지도교수들은 말레이시아 공과대학에 굴리게이나의 소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콸라룸푸르의 중국 대사관에 서한을 보내, 굴리게이나가 중국에서 온 친구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며 다양한 국가 출신의 외국인 학생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고 호소했다.
이 서한에는 “그녀는 매우 사교적이고, 중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활발히 활동했다”고 적혀 있다.

우리는 그녀와 연락을 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수십년 동안 역경과 고난을 견딘 끝에 그녀는 마침내 말레이시아 공과대학의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굴지레는 동생이 있을 만한 장소를 전혀 짐작할 수 없어 매우 괴로운 심정이라고 했다.

“굴리게이나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에요. 항상 주변이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걸 좋아했죠.” 굴지레는 그렇게 말했다. “평생을 공부만 해 온 아이예요. 정치적인 활동 같은 건 한 적도 없어요. 재교육 수용소에서 지낸 경험은 그 아이에게 상처로만 남을 거예요.”

굴리게이나의 학교 친구인 새미는 그녀가 결국 받지 못한 석사학위와 학교에서 수여한 상장을 보관하고 있다.

어서 굴리게이나가 일상으로 돌아와서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공부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다들 많이 걱정하고 있어요.”

월, 2018/07/16- 11:48
107
0

국제앰네스티는 오늘 발표된 보고서를 통해 예멘 남부의 기밀 수용소가 세상에 알려진지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예멘 수용소의 조직적인 강제실종과 고문, 전쟁범죄에 필적하는 다양한 학대 등 참혹한 인권침해 상황이 현재진행형임을 전하고 있다.

<그가 살아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안다>“God only knows if he’s alive” 는 제목의 이번 보고서는 예멘 정부의 통제 밖에서 활동 중인  UAE군 및 예멘군에 의해 임의 체포, 구금된 남성 수십 명이 실종된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이중 다수가 고문을 당했고, 일부는 구금 중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용자의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가 UAE 의 지원을 받는 보안군에 의해 강제 실종된 순간부터 끝나지 않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며  “가족이 어디에 수용되어 있는지, 살아있기는 한지를 문의해도 돌아오는 것은 침묵과 위협 뿐”

– 국제앰네스티의 티라나 하산Tirana Hassan 위기대응 국장

 

하산은 “강제실종된 이들을 포함해 일부 수용자들이 최근 몇 주 사이 석방되었지만 혐의도 없이 수개월 , 길게는 2년까지 갇혀있던 끝에 풀려난 것”이라며,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피해자들에게 구제를 약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UAE는 2015년 3월 예멘 분쟁에 개입한 이래 ‘시큐리티 벨트와 엘리트 포스Security Belt and Elite Forces’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지역 보안군을 조직해 훈련과 장비, 자금을 지원해오고 있으며, 예멘 정부를 통하지 않은 채 치안 당국과 협력 중인 상태다.

국제앰네스티는 2016년  3월부터 2018년  5월 사이 아덴, 라즈, 아비안, 하드라마트, 샤브와 지역에서 보안군에 의해 구금된 남성 51명의 사례를 조사했다. 이들 사례 중 대다수가 강제실종을 당했으며, 19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다. 앰네스티는 과거 수용자와 실종자들의 가족, 활동가, 정부 관리를 포함해 총 75명을 인터뷰했다.

국제앰네스티가 확인한 임의체포, 강제실종, 고문 등의 사례를 기록한 예멘 남부의 수용소 현황. (공식 수용소와 비공식 수용소를 모두 포함하였다. 국제앰네스티가 확인한 사례가 있는 수용소만 표시하였으며 인권침해가 발생한 모든 수용소를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들의 추적도 수포로 돌아가

사라진 가족의 소식을 찾아 헤매는 이들은 국제앰네스티에 애타는 심정을 전했다. 강제실종된 남성들의 어머니와 아내, 누이들은 정부와 검찰, 치안 당국, 교도소, 군부대, 인권 관련 기관을 오가며 지난 2년간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

2016년 말 아덴에서 체포된 44세 남성의 누이는 국제앰네스티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동생이 어디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살아있는지도 신만이 아시겠죠.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셔서 한 달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아들의 행방도 모른 채로요. 우리는 그저 동생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목소리라도 듣고, 어디에 있는지라도 알고 싶을 뿐이에요. 지은 죄가 있다면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하지 않나요? 최소한 재판이라도 받을 수 있게, 가족들이 면회를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법원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식으로 잡아가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일부는 가족이 수감 중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으나, UAE의 지원을 받고 있는 예멘군 지도부는 이를 부인했다.

“동생의 생사 여부만이라도 확인해 주고, 얼굴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답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하루에도 수 백번씩 죽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들은 우리의 심정을 몰라요.” 2016년 9월 체포로 실종된 후 사망했다고 알려진 남성의 누이가 호소했다.

2018년 6월 19일, 강제실종된 수감자들의 어머니, 누이, 아내들이 아덴의 대통령 궁 밖에서 불법 구금에 항의하고 있다.

UAE가 지원하는 보안군에 의한 수감자 고문

국제앰네스티의 이번 보고서는 예멘과 UAE의 수용시설에 만연한 고문과 각종 학대를 기록하고 있다.

전, 현 수감자와 그 가족들은 수용소에서 구타와 전기고문, 성폭력 등 끔찍한 학대가 벌어지고 있음을 고발한다. 아덴 지역 반테러 부대가 비공식적으로 운용중인 악명 높은 “와다 홀Waddah Hall”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 한 남성은 동료 수감자가 반복적으로 고문을 당한 끝에 시신 운반용 부대에 담겨 끌려나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보았습니다. 거기서는 햇빛도 못 보고 지냅니다. 제게 온갖 혐의를 씌우고 구타했죠. 그러더니 어느 날 밤에 갑자기 저를 풀어주면서 다른 사람과 착각했다고 하더군요. ‘신원 조회 착오였다, 미안하다’라고 하면서요 . 저는 내내 전기고문으로 고통 받으며 지냈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 말투였어요.”

아덴 지역 연합군 부대 소속  UAE군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항문에 물체를 삽입하는 고문을 받았다는 전 수감자도 있었다. 머리를 제외한 몸 전체가 땅에 묻힌 채 그 자세로 대소변을 본 일도 있었다고 한다.

“고문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때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라고 말했었죠. 제가 실제로 당하기 전까지는요.”

– UAE수용소에 수감되었던 한 남성

앰네스티의 보고서에는 자택에서 엘리트 포스에 의해 체포된 지 몇 시간 만에 가족의 집 근처에 버려진 채 발견된 남성의 이야기도 실려있다. 이 남성은 발견 당시 위독한 상태였고 몸에는 뚜렷한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곧 숨을 거뒀다.

티라나 하산은 “예멘 남부에서 암암리에 활동 중인 UAE가 법 밖에 존재하는 평행 치안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며  “그곳에서 끔찍한 폭력이 걷잡을 수 없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산은 이 같은 상황에서 발생하는 책임성의 공백 때문에 구금의 적법성을 따지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멘 검찰이 일부 수용 시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도, UAE군이 이를 무시하거나 석방 명령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 하에 표적이 되는 사람들

UAE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연합군에 참여 중인 핵심 국가로, 연합군은 2015년 3월 이래 예멘 분쟁에 개입 중이다.

‘시큐리티 벨트와 엘리트 포스’의 개입 명분은 “테러와의 전쟁”이다.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와 자칭 ‘이슬람국가IS‘의 조직원들을 검거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다수의 체포가 근거 없는 의심이나 사적인 보복에서 비롯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역사회 인사, 활동가, 언론인, 무슬림형제단 예멘 지부인 알-이슬라당의 당원 및 지지자들과 같이 연합군과 UAE의 지원을 받는 보안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이들이 검거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AQAP와 IS 단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가족, 처음에는 연합군과 함께 후티스 반군에 맞서 싸웠지만 이제는 연합군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된 이들 역시 표적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수감자들은 직장이나 거리에서 체포되어 끌려가고, 그 과정에서 의식을 잃을 때까지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복면을 쓴 자들”로 불리는 무장 보안군에 한밤중에 자택을 기습당하고 체포되는 사람들도 있다.

당국은 지난 2년 간 아덴과 알-무칼라에서 시위를 이어온 수감자 및 실종자들의 여성 가족들을 위협하거나 공격하기도 했다.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UAE는 예멘 내의 불법 체포 관행에 개입하고 있다는 혐의를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한편 예멘 정부는 UN 전문가 패널에 UAE가 훈련과 지원을 제공한 보안군에 대해서는 통제권을 갖고 있지 않음을 알렸다.

예멘의 무력 분쟁 맥락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인권 침해 행위를 전쟁 범죄로 조사해야 한다. 예멘 정부와 UAE 정부는 즉각 현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동시에 남편과 아버지, 형제와 아들을 잃은 가족들에게 응답해야 한다.”

– 국제앰네스티의 티라나 하산Tirana Hassan 위기대응 국장

하산은 또 ”미국을 포함한 UAE의 반테러 파트너들도 고문 관련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며, 예멘 내 수용시설에서 미국인들의 역할을 수사하고 고문이나 학대를 통해 얻은 정보를 활용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 2018/07/20- 18:22
107
0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수감생활을 했던 송인호씨와 히로카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관

히로카 쇼지(Hiroka Shoji) 동아시아 조사관

이런 날이 오기를 꿈꾸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고 수감생활을 했던 송인호씨

지난달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연이은 감옥행에 종지부를 찍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 소식이 알려진 후 송인호씨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송인호씨의 꿈은 머지않아 실현될지도 모른다. 헌재 판결에 따라, 한국 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해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해야 하며, 입법자들은 2019년 말까지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러나 인호씨에게는 너무 늦은 판결이었다. 송인호씨는 사회에 봉사하려는 의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심에 따라 병역 의무 이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2016년 8월 석방될 때까지 14개월간 수감 생활을 해야 했다.

 

종신형

인호씨를 비롯해 매년 수백 명의 한국 청년들이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대부분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교도소로 향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양심을 거스르고 군에 복무할 것인지, 아니면 감옥에 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난감한 처지에 놓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보통 18개월간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데, 형사처벌 기록이 전과로 남아 사회에서 소외되면서 이들 중 많은 수가 형기를 마치고도 경제적, 사회적 불이익에 계속해서 시달린다. 대부분 전과 기록 때문에 평생을 사회적 낙인이 찍힌 채 불이익 속에서 “종신형”이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인호씨를 처음 만난 건 2014년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관해 조사하고자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지난 수년 동안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은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 범죄화 중단을 위해 활동해 왔다. 앰네스티는 개인별 사례를 통해 현 상황을 알리고, 헌법재판소에 관련 사안에 관한 법적 견해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에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캠페인을 통해 전세계 100개국 이상의 앰네스티 지지자들이 국방부장관에게 이 청년들의 고통을 끝내라고 촉구하는 등 국제앰네스티의 세계적인 저력이 드러났다.

국제앰네스티의 옹호 활동과 국제적 연대 활동에 더불어 유엔 전문가들 역시 힘을 보탰다. 국제앰네스티의 양심적 병역거부자 캠페인이 시작된 지 6개월 후인 2015년 11월, 유엔 인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병역을 거부할 권리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즉시 모두 석방하라”고 재차 촉구했다.

2016년, 수감 중이던 백종건씨가 내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로 전과가 남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다. 종건씨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힘든 시간 중에도 앰네스티의 도움을 받은 것은 제게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각자의 노력과 도전이 당장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겠지만,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고 결국 그 움직임들이 모여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전과가 남아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한 백종건씨

 

행동해야 할 때

한국 정부는 이제 행동에 나서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로 한국 정부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18조에서 명시한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이러한 관행을 끝낼 기회를 얻었다. 국제법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어떠한 법적 또는 그 외의 제재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에 남겨진 문제는 여전히 많다. 대상자의 대체복무제도 적합 여부를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평가할 것인가? 대체복무제도가 군이 아닌 민간 통제 하에 운영된다고 보장할 수 있는가? 정부는 대체복무를 요청한 사람이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는가? 앞서 형이 선고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전과 기록은 말소될 것인가?

우리가 정부의 행동을 기다리는 사이, 변화는 이미 다른 곳에서부터 일어나고 있다. 2015년부터 하급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상대로 무죄를 선고하는 경우가 빈번해졌고, 80여 명 이상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오랜 기다림 끝에 헌법재판소가 합헌 판결을 내놓은 것은 축하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타당한 이유 없이 입대하지 않을 경우 징역형에 처한다고 명시한 현행 병역법에 대해서는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병역법은 개정 없이 현행대로 유지되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앞으로 한동안은 여전히 감옥에 보내질 수 있다.

이제 세간의 이목은 대법원에 쏠리고 있다. 양심에 따라 군복무를 거부한 사람들의 처벌을 두고 오는 2018년 8월 30일 대법원 공청회가 열릴 예정이다.

대법원 심리 결과와 상관없이, 한국 정부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이다. 한국의 국제법적 의무를 지체 없이 이행하고, 병역 의무를 대신할 순수한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 제도를 도입하고, 감옥살이로 삶이 황폐화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전원 석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호씨는 최근 헌재 판결이 나온 이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제게도 꿈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미뤄 두고 있었어요. 제 전과기록 때문에 실현될 수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이제는 저도 그 꿈을 다시 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는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다시 꿈꿀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금, 2018/08/03- 17:20
241
0

국제앰네스티 최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사무총장이 탄생했다. 요하네스버그 방문으로 임기 첫 직무를 시작하는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이 16일 세계 최대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자신만의 비전을 제시했다.

인권 운동이 오늘날 인류가 마주한 난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크고, 대담하고,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이 밝혔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인권은 인류가 마주하는 일부 불의와 관련된 것일 뿐 다른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낡은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세계가 맞닥뜨린 복잡한 문제는 그래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인류가 현재 겪고 있는 억압의 유형은 모두 상호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후변화 위기가 불평등과 인종에 관한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에 대해 논할 수 없으며, 성차별이 여성의 경제적 배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면 그에 대해 다룰 수 없다. 기본적인 경제 정의를 요구하려 할 때 정확히 시민적, 정치적 권리의 탄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현재 인류가 현대 역사상 가장 분열된 시기를 살아가고 있으며, 세계 주요 지도자들은 증오와 공포에 눈이 먼 사회에 악몽처럼 끔찍한 비전을 제공하고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해 왔다. 인권과 같이 인류를 하나로 묶는 공통된 가치 아래 하나가 될 때에야 비로소 이러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역설했다.

“사무총장으로서 가장 먼저, 국제앰네스티는 전세계 구석구석, 특히 남반구까지 뻗어 나가는 순수한 의미의 글로벌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음을 분명히 전하고자 한다. 앞으로는 더욱 포용적인 인권 단체로 나아갔으면 한다. 2018년에는 인권옹호자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는 노동조합, 학교, 종교단체, 정부, 기업체까지 삶의 각계 각층 어디서나 탄생할 수 있다.”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 우리는 여러분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으며, 더 나은 활동을 위해서는 여러분의 이의 제기와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 젊은이들은 미래를 이끌어 갈 주역일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 이곳에 필요한 리더이기도 하다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믿음이다. 아헤드 타미미, 엘린 에르손, 시본길레 은다쉬처럼 시민 불복종에 나서거나 ‘순진하고 이상적’이라고 손가락질 받기를 서슴지 않았던 모든 사람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용감한 롤모델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닥친 불의를 출신과 배경에 상관없이 자신의 일처럼 여긴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단체다. 지구 반대편의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위해 낯선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싸울 때, 변화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실은 더욱 명백하게 증명되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모두 힘을 합쳐 압제자에 맞서야 할 시기다. 현재와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 자녀와 손녀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 불의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사람이라면 우리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국제앰네스티는 여러분의 목소리와 참여를 필요로 한다. 인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우리의 운동에는 여러분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임 사무총장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살릴 셰티 전 사무총장이 지난 8년간 국제앰네스티에 공헌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한 점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살릴 셰티 전 사무총장이 남긴 업적을 바탕으로 이를 더욱 확장시켜, 세계적으로 단합된 운동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규칙을 깨고 변화를 만들다

쿠미 나이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나 평생을 사회정의운동에 바친 활동가다. 1965년 더반에서 출생한 쿠미는 15세 때 처음으로 액티비즘에 발을 들이게 된다. 당시 그는 반 인종격리 정책 시위를 조직하고 이에 참여했다가 결국 퇴학을 당했다.

1985년, 시위 도중 끌려나가는 쿠미 나이두

그때부터 쿠미는 지역사회 액티비즘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됐고, 인종차별적 정권에 맞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1986년, 21세가 된 쿠미는 비상사태 관련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어쩔 수 없이 도피 생활을 해야 했던 그는 결국 영국으로 망명하기로 결정하고,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어 해방운동에 관한 금지조치가 해제될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렀다.

인종차별 정권이 붕괴되자, 쿠미는 1990년 남아공으로 돌아와 아프리카민족회의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았던 것은 교육이었는데, 특히 성인의 문맹률 낮추기 운동과 선거 교육 운동 등을 통해 그동안 역사적, 제도적으로 외면당했던 지역에 힘을 불어넣었다.

쿠미는 여러 차례 대표직을 역임했지만, 그 중에서도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이사장 재임 시절은 시민 불복종 운동을 대표하는 용감한 활동가로서 그의 명성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시기였다. 특히 2011년 북극 원유 시추에 반대하는 탄원서명을 직접 전달하고자 그린란드의 석유굴착장치를 오르다 체포된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다. 그로부터 1년 후에는 러시아 북극의 바렌츠해에 있는 러시아 석유굴착장치를 점거하기도 했다.

쿠미가 가장 최근 맡았던 직책은 범아프리카단체인 정의, 평화, 존엄을 요구하는 아프리카 궐기(Africans Rising for Justice, peace and dignity)의 공동설립자 겸 임시 의장이었다. 노동조합과 종교 및 시민사회단체간 파트너 관계를 구축한 이 단체는 아프리카 대륙 자체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아프리카인들은 늘어나는 부와 권력을 분배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62년 국제앰네스티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재판에 감시대표를 파견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쿠미가 앰네스티의 세계적 대표직인 사무총장에 지원하게 된 것은 그 편지 덕분이었다.

국제앰네스티의 신임 사무총장직 임기가 시작되기 전날 밤, 쿠미는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장소인 더반의 채스워스 중학교를 방문했다. 1980년 퇴학당한 이후 처음으로 찾은 모교였다.

아침 조회 시간에 모인 아이들에게 쿠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목소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에 납득하지 마세요. 리더십은 내일 발휘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가만히 있으면 내일은 오지 않습니다. 인류에 대한 봉사는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배경

사무총장은 국제앰네스티 사무국의 대표자이자 주요 대변인이며, 국제이사회의 이사장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권 단체로, 전세계 70개국 이상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직원 2,600명, 회원과 자원봉사자, 지지자 총 700만명을 보유하는 등 세계적인 입지를 자랑한다.

사무총장은 국제앰네스티 국제이사회가 임명하며, 4년간의 임기를 수행한다. 임명은 세계적으로 폭넓게 후보를 물색한 결과에 따라 이루어진다.

쿠미 나이두는 기후대응을 위한 세계캠페인 의장, 빈곤퇴치행동을 위한 세계캠페인 초대의장, 세계시민단체연합회(CIVICUS) 사무총장 및 최고경영자 등 다수의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쿠미 나이두의 전임자인 살릴 셰티 전 사무총장은 지난 2010년부터 사무총장직을 연임했다.

목, 2018/08/16- 17:12
128
0
초록색 손수건은 캐나다 작가 마가렛 앳우드의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 소설

초록색 손수건은 캐나다 작가 마가렛 앳우드의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 소설 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리엘라 벨스키Mariela Belski 국제앰네스티 아르헨티나지부 국장
이 글은 TIME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아르헨티나 상원에서는 임신 14주 이내의 낙태 시술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부결됐다. 법안이 통과되면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상원은 16시간에 걸친 기나긴 토론 끝에 이 법안을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임신을 중단해야 하는 여성들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사망 및 투옥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무언가는 분명 돌이킬 수 없이 변했다.

그날 밤,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된 군중 수십만 명이 하나가 되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상원의회 앞 거리를 가득 메웠다. 우리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몇 시간이고 함께 자리를 지켰다. 에메랄드빛 녹색 손수건은 이제 라틴아메리카를 휩쓴 낙태 옹호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날 밤 우리는 상원의원 대부분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지리라는 것도, 우리가 승리를 거둘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차디찬 빗속에서, 얼굴에 녹색 페인트가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처럼 엄청난 인파가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간 낙태를 둘러싸고 있던 낙인과 수치, 비밀은 모두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낙태 비범죄화 법안이 부결되면서, 이제 아르헨티나는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거나 산모의 생명 또는 건강이 위험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1921년 법을 여전히 유지하게 됐다. 그 외의 이유로 임신을 중단해야 하는 사람은 안전하지 못한 환경에서 비밀리에 낙태 시술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실패는 있었지만, 더 이상 변화는 피할 수 없다. 이제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서로 자랑스럽게 연대하고, 내 몸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이제 하나가 된 우리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거리에 모인 여성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하면서 마침내 큰 원동력을 얻은 것이다. 이 문제는 의회에서 한바탕 큰 이슈가 되었으니, 더 이상은 이를 침묵 속에 묻어둘 수도 없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주로 젊은 여성 세대 덕분이었다. 거리와 학교, 버스, 나이트클럽까지 녹색 물결은 멈추는 법이 없었다.

최근 몇 주 사이 아르헨티나의 주류 언론은 젊은 층의 포용적인 언어 사용에 대해 설명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대명사 ‘la’나 남성대명사 ‘el’을 사용하는 대신, 젠더 중립적인 ‘les’를 사용하고 있다.

젊은 여성들은 재생산에 대한 권리가 최우선 정치 의제로 다뤄질 수 있도록 신속하게 움직이며 열정적인 활동을 벌였고, 동시에 성추행과 성폭력에 관한 대화의 물꼬를 트기도 했다.

오늘날 여성들이 이렇게 연대할 수 있는 것은 이전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수 년에 걸쳐 여성 인권을 위해 투쟁해 왔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예인 넬리 민예르스키는 지칠 줄 모르는 활동가다.  8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상징적인 인물로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상원이 개정안을 부결시켰다고 해도 넬리와 그녀의 활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https://youtu.be/BySIxJb32-M
우리가 경험한 역사적인 순간은 이제 멈출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여성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및 그 지지자들이 폭넓게 연대한 ‘합법적이고 안전하며 자유로운 낙태를 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국민운동’은 2005년 처음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낙태 합법화 법안을 일곱 차례 제출했다. 최근 상하 양원에서 표결이 진행되는 동안 대규모 철야 집회가 두 차례 열렸고, 여기에 수십만 명이 참여했다. 또한 ‘국민운동’은 학교 성교육과 피임법 이용 등 이전까지 터부시되던 문제를 국가적 의제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낙태법이 부결된 직후,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재생산과 가족계획에 관한 정책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마침내 우리의 목소리를 듣게 만든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음에도 일궈낸 성과다. 지난달, 모국인 아르헨티나에서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를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이루어진 우생학적 수술에 비유했다. 아르헨티나 상원은 교회의 압력을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법안에 관해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천주교회는 ‘생명을 위한 미사’를 거행했다.

녹색으로 무장한 여성들은 잘 알고 있다. 낙태 합법화가 실제로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며,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낙태금지법 때문에 벌어지는 죽음을 막는 것이라고 말이다. 낙태를 반대하는 것은 사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여성이 남성보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여성 의원들은 반대 14표, 찬성 14표로 골고루 표가 나뉘었던 반면 대다수의 남성 의원들은 반대표를 던졌다.)

무엇보다도 이 젊은 활동가들은 이번 표결이 아르헨티나의 낙태 허용 여부만을 결정하는 것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법이 어떻든 낙태는 언제나 이루어진다. 이번 표결은 이러한 낙태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시술이 될 것인지, 아니면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의원들은 더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낙태를 받은 여성을 범죄자로 만드는 쪽을 선택했다. 그러나 예전처럼 침묵의 시대로 후퇴시킬 수는 없다.

인권 변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지난 수요일 밤, 상원 앞에 모인 수많은 여성들은 좌절감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고 희망을 갖겠다는 발언을 했다.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은 확성기를 들고 이렇게 외쳤다. “성차별주의자들 잘 들어라, 라틴아메리카가 온통 페미니스트로 가득 찰 것이다.” 앞으로 수 년 후 의제를 상정하고 표결하는 주역은 이들이 될 것이다.

비록 표결 결과는 우리의 패배였지만, 이 변화를 만들기 위해 캠페인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이만한 진전을 이룩했다는 점에 대해 모두 자랑스레 여겨야 한다. 여성인권을 지지하기 위해 수백만 명이 한자리에 모였던 것이다.

이번 법안은 내년 3월 본회의가 열릴 때까지는 다시 논의될 수 없지만, 그 사이 비슷한 운동들이 라틴아메리카 대륙을 휩쓸고 있다. 멕시코, 에콰도르, 칠레, 콜롬비아, 페루 등지에서는 자국에서 합법적 낙태 요구 운동을 벌이기 위해 저마다 손수건을 준비하고 있다. 유럽의 연대 운동 규모 역시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아르헨티나 상원은 여성 인권에 등을 돌렸지만, 이번 운동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는 물론 그 너머까지 거대한 창문이 활짝 열렸다. 이제 전세계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됐다. 결국 승리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금, 2018/08/17- 16:54
197
0



인권옹호자인 텝 바니Tep Vanny가 735일의 수감 생활 끝에 사면을 받고 풀려났습니다. 국제앰네스티 Global Operations의 부국장 미나 핌플Minar Pimple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평화적인 운동을 하다 부당하게 구금된지 2년이 지난 후, 텝 바니가 드디어 그녀의 가족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소식은 정말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석방은 진작 이뤄졌어야 합니다. 텝 바니는 근거도 없는 정치적 혐의와 부정적인 재판 끝에 갇혔습니다. 그녀는 애초에 투옥될 수 없었습니다.”

“캄보디아 당국은 더 이상 보복의 두려움 없이 텝 바니가 다시 활동을 할 수 있도록하는 것은 물론이고,그녀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을 무효로 하고 다른 미결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를 중단해야 합니다.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수감되어 있는 다른 양심수들도 즉시, 조건없이 석방되어야 합니다.”

배경

텝 바니는 캄보디아 프놈펜의 벙깍 호수를 개발하려 당국이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강제퇴거 시키는 것에 저항한 주거권 활동가이자 인권옹호자입니다. 2007년 벙깍 호수에 첫 공사가 시작된 후 수천 가구가 불법적인 강제퇴거를 당했고 지금은 완전히 모래로 메꿔졌습니다. 텝 바니는 벙깍 호수에 살던 사람들의 공동체 지키고자 활동했고, 캄보디아 정부는 그녀에게 괴롭힘을 일삼았으며 정치적인 이유로 범죄혐의를 씌웠습니다. 텝 바니는 2013년 이후에만 최소 6번 체포되었습니다. 2017년 2월 23일, 프놈펜 제1심 재판소는 텝 바니에게 “심각한 상황에서의 의도적인 폭력” 혐의가 있다며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이 판결은 2013년 3월 총리의 집 앞에서 열린 벙깍 호수 공동체의 활동가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에 텝 바니가 평화적으로 참여했던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텝 바니가 평화로운 인권 활동을 펼치다가 구금된 양심수로 보고 그녀의 석방을 요구하는 BRAVE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전 세계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수, 2018/08/22- 17:12
121
0

조슈아 로젠스와이그Joshua Rosenzweig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사무소 부국장
이 글은 한겨레에 동시 게재되었습니다.

한국이 마침내 양심적 거부자를 범죄자 처벌, 구금하고 낙인찍었던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마감할 것인가?

6월 28일, 한국 헌법재판소는 역사적인 판결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사실상 인권으로 인정했다. 양심적 거부자에 대한 처벌과 수감이 위헌이라고 판결하는 데까지는 미치지 못했지만, 군과 관계없는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는 병역법 5조 1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차기 법적 전쟁터는 대법원이다. 8월 30일 대법원은 병역 의무를 거부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에 양심이나 종교적 이유에 따른 병역거부도 해당하는지에 대한 공개변론을 개최한다. 현재 천여 명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인생이 걸린 모든 재판이 올해 말로 예정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며 계류 중이다. (국제앰네스티 의견서 보기)

국제법과 국제규범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보장되어야 하며 양심적 거부자들이 법적 처벌을 비롯한 어떤 종류의 불이익도 받아서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이유로 범죄자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는 세계인권선언 18조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가 보장하는 사상과 양심, 종교의 자유에서 비롯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6월 판결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공익 관련 업무에 종사하도록 한다면, 이들을 처벌하여 교도소에 수용하고 있는 것보다는 넓은 의미의 안보와 공익실현에 더 유익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며 “국가와 사회의 통합과 다양성의 수준도 높아지게 될 것”이라며 양심적 병역거부가 국가 안보와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는 한국 정부의 오랜 입장을 뒤집었다. 판결 이후 국방부는 헌재 결정을 존중하며 2007년에 제안된 바 있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4년 대법원이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판결을 내린 이래,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한국이 양심적 거부를 인정하도록 더욱 압박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UN인권위원회는 한국의 사례 5건을 포함한 16건에 대해 적절한 대체복무 선택지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처벌하는 것은 인권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판단했다. UN인권위원회와 UN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병역거부권을 인정할 것을 권고했다. 유럽에서도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여럿 나왔다.

오늘날 한국과 같은 규모로 병역거부자를 수감하는 나라는 지구 상에 없다. 이 문제로 계속해서 시간을 끄는 데 대한 변명은 있을 수 없다.

대법원은 대체복무의 형태 역시 결정해야 한다. 대법원에서 어떠한 판결이 내려지든 간에, 모든 대체복무는 반드시 국제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대체복무는 지원자 평가를 포함, 복무의 내용과 관리, 행정 등 모든 면에서 순수하게 민간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 국방부 관리 하의 “비전투 복무” 및 대체복무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복무 기간이 군 복무 기간보다 긴 대체복무와, 성격과 조건상 처벌적, 차별적으로 여겨지는 형태의 대체복무 역시 마찬가지다. 대체복무를 하는 이들이 복지 제도 및 연금 혜택, 교육과 채용에 있어 차별이나 미래의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

끝으로, 모든 대체복무는 개개인의 양심적 거부 사유를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단일 형태의 대체복무제는 부적절하다.

한국 정부가 시급히 답해야 할 문제는 이 외에도 많다. 현재 수감 중인 100여 명의 양심적 거부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2만 명에 달하는 양심적 거부자들의 전과 기록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양심적 거부자들과 그 가족이 수감으로 인해 잃어버린 3만 7천 시간(여호와의 증인의 추정치)에 달하는 세월은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이웃 국가와의 충돌에 따른 정치적 분쟁을 겪은 후 2003년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한 바 있는 아르메니아의 사례는 참고할 만 하다. 당시 도입된 대체복무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군으로부터 독립된 민간 대체복무가 아니었기 때문에 양심적 거부자들은 그 후로도 10년 간 복무를 거부했고, 이들에 대한 처벌과 수감도 계속되었다. 국제 사회의 긴밀한 감시 속에 여러 법적 절차를 거친 후에야 정부는 거부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2013년 제도를 개정하였으며 대법원은 거부자들에 대한 판결을 파기했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단번에 제대로 해결할 기회를 맞이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양심적 거부를 인정하고 제대로 된 대체복무제를 도입하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부끄러운 과거를 뒤로 하고 수 천 명의 청년들에게 미래라는 기회를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지금이 한국의 양심적 거부자들에 대한 처벌과 차별에 종지부를 찍을 시간이다. 전 세계가 한국의 다음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목, 2018/08/30- 15:22
87
0

히로카 쇼지Hiroka Shoji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담당 조사관

아름다운 섬 제주도는 매년 관광객 수백만 명이 찾는 한국의 인기 관광지다. 올해 이 제주도를 찾은 방문객 중에는 어린이를 비롯한 예멘 난민 수백 명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예멘인들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섬을 찾은 이유는 여느 관광객들과는 다르다.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 피난처를 찾아서 온 것이다.

이들의 고향은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예멘에서는 지금까지 16,0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200만 명이 피난을 떠나야 했으며, 어린이 340만 명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예멘 전체 인구의 75%에 해당하는 2,220만 명은 생존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상태다.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피난을 떠난 사람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16,000명 이상
200만 명
340만 명

예멘 난민에 대한 주요 통계

죽거나 다친 민간인 수
최소16,000만 명
피난을 떠난 사람들
200만 명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
340만 명

 

2018년 1월부터 5월 사이, 약 550명 정도의 예멘인이 말레이시아를 통해 제주도에 도착했다. 난민을 법적으로 규제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말레이시아의 난민 신청자들은 구금, 기소되거나 채찍질형에 처해질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해 강제 송환될 수도 있다. 예멘인들은 30일간 무비자 입국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와 임시 비자를 발급받아 난민 신청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예멘인들은 한국에 도착한 뒤로 친절보다는 대부분 적대적인 시선을 받아왔다. 2018년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예멘 난민들이 한국의 경제적 안정성을 이용하려는 “가짜 난민”이라고 주장하며, 난민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청원에 714,000명 이상이 서명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청원이었다.

청와대 웹사이트 캡쳐

한국은 난민 신청자들이 흔히 찾을 만한 곳은 아니다. 한국은 난민협약에 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지위를 인정하거나 인도적 차원에서 체류를 허가하여 매년 받아들이는 난민 신청자의 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국의 난민 인권단체인 난민인권센터(NANCEN)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약 1만 건에 이르는 난민 신청 중 한국 정부가 받아들인 건수는 그 중 1.5%에 불과했다.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예멘인 550명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이처럼 난민 수용에 익숙하지 않은 점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2018년 7월 4일, 예멘인 비호 신청자 모하메드 살렘 두하이쉬.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게 만든 예멘에서의 위협은 현실적이며,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수백만 명의 예멘 민간인들이 ‘철저히 인간이 초래한 재앙‘ 속에 휘말린 채 갇혀 있으며, 그 재앙은 만연히 이루어지는 인권침해와 국제인권 및 인도법을 위반하는 행위로 더욱 악화되고 있다. 분쟁의 당사자들은 구호품 조달을 빈번히 제한하며, 학교와 병원 등의 민간 시설을 계속해서 공격하거나 파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은 민간인과 민간 시설에 무차별적으로 과도한 공습을 수십 건 감행했고, 이로 인해 주택과 학교, 시장, 예식장, 병원, 모스크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공격의 대부분은 국제법상 전쟁범죄에 해당된다.

엄청난 반대 여론에 대한 답으로,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 심사 기간을 단축시키고 9월 말까지 1차 심사를 완료할 예정이라고 8월 1일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밝혔다. 또한 제주도민들의 안전을 위해 난민을 더욱 철저히 관리하고 통제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2018년 7월 30일 서울에서 열린 반난민 집회

난민 신청을 신속히 처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절차는 반드시 공정해야 하며, 신청자 개개인은 법적 대리인의 도움을 받아 심사 결과에 항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정부는 각각의 난민 신청건을 필요한 만큼 충분히 검토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여론의 압력을 이유로 심사 절차를 성급히 처리해서는 안 된다.

피난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시민권이 없는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인류로서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앞으로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마다 맡은 역할이 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 예멘 난민들의 망명 신청을 거부해 달라는 국민 청원에 답변을 해야 한다. 2017년 대선 후보였을 당시, 문 대통령은 난민협약을 이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리더십을 발휘해, 망명 신청 절차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고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에게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그 약속을 지킬 때다.

 

 

금, 2018/08/24- 15:43
122
0

이 글은 워싱턴포스트에 동시게재되었습니다.

라샤 모하메드Rasha Mohamed 국제앰네스티 예멘 조사관

노래하는 아이들을 가득 태우고 소풍길을 떠난 버스가 간식을 사기 위해 예멘 북부 사다의 한 시장에 멈춰 섰다. 그 순간 무자비한 공습이 가해졌고, 이제는 악명 높은 사건이 됐다.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은 이날인 8월 9일 공습에 대해 “정당한 군사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51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 중 40명 이상이 어린이였다.

사건 이후, 현장 인근 자모우리 병원의 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원장은 당시 폭발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영안실에는 시신 대신 산산조각이 난 팔다리와 신체 부위들만이 계속해서 들어왔다고 했다. 너무나 많은 어린이들의 생명이 순식간에 파괴되었다. 폭격 현장에서는 미국이 생산하고 공급한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제 정밀유도탄이 발견됐다.

안타깝게도 벌써 4년째 계속되는 처참한 예멘 내전 중, 폐허가 된 민간 시장과 주택, 병원, 호텔 속에서 미국제 탄약을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의 공습이 시작된 이후, 국제앰네스티는 8개 지역의 공습 현장 수십 곳을 방문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물론 영국과 브라질에서 생산된 탄약의 잔해를 여러 차례 발견할 수 있었다. 유엔과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 조사팀 역시 이와 비슷한 신뢰할 수 있는 증거를 발굴했다.

그러니 유엔 산하기구가 금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내전에 이용될 수 있는 무기 공급을 자제해야 한다고 각국을 대상으로 냉정하게 권고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 아마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미국이 지금처럼 사우디 연합군에 계속해서 무기를 공급한다면 전쟁범죄의 방조자가 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 점일 것이다.

국제앰네스티가 기록한 사례 중 하나를 보면, 2017년 8월 25일 미국에서 생산된 레이시온Raytheon사의 레이저 유도 폭탄 페이브웨이가 예멘 최대 대도시 사나의 민간 주택가를 가격했다. 다섯 살 부타니아는 가족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두 살부터 열 살 사이였던 부타니아의 형제 자매 다섯 명과 어머니, 아버지까지 모두 숨졌다.


2016년 8월 15일, 또 다른 페이브웨이 유도탄이 한창 바쁘게 운영 중이던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을 직격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직원 1명을 포함해 11명이 숨지고 19명이 다쳤다. 이 때문에 본래도 부족했던 필수 의료 서비스 제공 인력이 더욱 감소했고, 국경없는의사회는 결국 예멘 북부지역에서 운영하던 여섯 개 병원의 인력을 모두 철수시켰다.

올해 초 유엔 전문가위원회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이를 통해 영국과 미국에서 생산된 페이브웨이 시스템이 9개 공습에 이용된 증거를 제시했다. 이 공습으로 민간인 84명이 숨지고 77명이 다쳤으며, 사망자 중 33명은 단 한 번의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2017년 8월 23일 아르합의 한 모텔에 페이브웨이 유도 시스템을 이용한 고성능 폭탄이 떨어졌던 사건이었다. 이 모든 사건은 분명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2013년 12월 13일, 예멘 수도 사나에서 한 소년이 “왜 내 가족을 죽였나?”라는 글귀와 함께 미국의 드론을 묘사한 벽화 앞을 지나고 있다. 드론 공격으로 인해 결혼식에 참석한 17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국제적으로 금지된 확산탄을 비롯해, 미국제 무기가 국제인도법(전쟁법)을 위반한 공격에 사용되며 예멘에서 민간인 사망자와 부상자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증거가 이처럼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는 전혀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2016년 오바마 정부 당시 민간인 사상자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무기이전을 유예하기로 결정했지만 이를 번복했고, 리야드 방문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어마어마한” 무기거래를 성사시켰다고 직접 자랑하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상세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예멘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모든 분쟁 당사자들에게 이전되는 무기와 군사적 지원을 즉시 중단하라고 모든 무기 공급국에 촉구하고 있다.

2018년 3월 20일,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왕자 모하메드 빈 살만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대 사우디 무기 수출 차트를 들어보이고 있다.

미군 관계자들은 미국산 무기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당히 난처해하는 기색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지난 화요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문제를 추궁당하자 사우디 주도 연합군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국회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압력을 가하고 있다. 최근 통과된 2019년 미국국방수권법(NDAA)에 따르면 국방부장관은 미국 또는 동맹국이 예멘에서 인권침해를 저지르고 있는지를 검토해야 하며, 아랍에미리트연합군과 그 동맹국에 사로잡힌 예멘 구금자들의 심문 과정 역시 이러한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또한, 연합군이 민간인 사상자를 줄이기 위해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국무부장관의 인증이 없는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및 UAE 전투기는 미군으로부터 재급유를 받을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국회의 관리감독에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NDAA에 서명하며 남긴 서명문을 보면 백악관은 이러한 조항에 구속된다고 여기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트럼프 정부가 최근 사우디 주도 연합군에 대한 레이시온 정밀유도무기 판매를 차단하려는 밥 메넨데스 상원의원의 노력을 무산시킬 가능성도 있다.

미국 정부는 사우디 주도 연합군에게 이처럼 변함없는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결과 수많은 민간인들이 비사법적 살인 및 부상을 당하고, 가옥과 학교, 병원이 파괴되고,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앙을 발생시킨 데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반드시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양쪽을 다 택할 수는 없다. 미국 정부는 예멘에 구호물품을 공급하며 인도적 지원을 가속화한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자랑스레 여길 만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린 아이들을 살해하는 폭탄 역시 함께 공급하고 있다.

이 문제를 바로잡을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전된 무기가 예멘의 전쟁법 위반 행위에 이용되는 한, 연합군에 대한 미국의 모든 무기이전을 유예하는 것이다.

금, 2018/09/14- 13:46
194
0

스페인 정부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비롯한 전쟁범죄 공모 위험이 있는 대상에 무기 수출 승인을 중단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홀로그램 시위, 네덜란드

2016년, 사우디 연합군의 예멘 폭격을 비판하기 위해 주네덜란드 사우디 아라비아 대사관에서 진행된 홀로그램 시위

사우디 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에 여전히 무기를 공급하고 있는 국가들은 예멘에서 벌어지는 전쟁범죄에 공모한 것으로 역사에 기록될 위험에 놓여 있다고 국제앰네스티가 17일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스페인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및 군사장비 이전 유예 여부를 놓고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9월 4일, 스페인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레이저 유도 폭탄 400기를 판매하기로 한 계약을 취소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예멘에서 통학버스를 겨냥한 공습으로 어린이 40명이 숨지면서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진 데 따른 것이다.

그런데 9월 12일, 스페인 정부는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며 이 결정을 번복했다. 이전 정부가 사우디 아라비아와 맺은 모든 거래 계약은 지난 수 주간 재검토를 거쳤으며, 이미 발급한 라이센스를 취소할 것인지, 새로운 계약 체결을 유예할 것인지에 대한 최종 결정은 9월 19일 수요일 내려질 예정이다.

 

스페인 정부가 사우디 아라비아에 대규모 무기이전을 취소한다는 소식에 미처 기뻐할 새도 없이, 정부는 부유한 고객인 사우디를 달래기 위해 이미 발표한 내용을 번복했다.”

스티브 콕번(Steve Cockburn) 국제앰네스티 글로벌이슈 부국장

스티브 콕번(Steve Cockburn) 국제앰네스티 글로벌이슈 부국장은 “예멘에서 처참한 내전이 발발한 이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민간인 수천 명이 사망했고 명백한 전쟁범죄 기록은 갈수록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인은 물론 다른 국가들이 사우디 주도 연합군을 계속해서 무장시켜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또한 “스페인 정부는 19일 발표를 통해 분명한 태도를 취하고, 사우디 아라비아와 그 외 연합군 소속 국가들이 예멘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의 이전을 유예해야 한다. 이외에 다른 행동을 취한다면 스페인 정부는 예멘 민간인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보다 재정적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더 우선한다는 메시지가 명백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스페인은 사우디 아라비아에 9억 3,200만 유로 어치의 무기를 판매하고, 12억 3500만 유로 어치의 라이선스를 판매했다.

스페인이 사우디 아라비아에 이전할 계획인 정밀유도탄은 예멘 전역에서 처참한 피해를 끼치는 데 사용되고 있다. 호텔과 병원, 우물, 주택, 공장은 물론 최근에는 통학버스까지 그 공격 대상이 되면서, 충격적인 숫자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고 민간 시설이 초토화되었다.

스페인은 무기거래조약(ATT)의 비준국이다. 무기거래조약은 전쟁범죄에 사용될 수 있다고 알려졌거나 국제인권법 및 인도주의법을 중대하게 위반하는 행위에 기여할 상당한 위험이 있는 무기, 탄약 및 관련 물품의 국가간 이전을 금지한다.

무기수출에 관한 스페인 국내법 역시 이전된 무기가 인권침해행위에 사용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혹이 있는 경우 무기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제네바협약에 따라 스페인은 협약 위반행위에 사용될 수 있는 무기 공급을 자제하는 등 국제인도주의법을 존중하고 이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세계적 반발

많은 국가들이 수년째 계속되는 예멘의 처참한 내전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주도 연합군에 무기를 공급해왔지만, 최근 수 주간 주요 공급국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해졌다.

9월 11일, 영국 하원은 해당 문제에 관한 긴급 토론회를 개최했고, 이 자리에서 영국 정부는 무기 판매를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같은 날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 영국 국민 중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무기 판매를 지지하는 비율은 13%에 불과했다.

9월 12일, 미국 국회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예멘의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강행했다. 트럼프 정부는 두 국가 모두 “민간인과 민간시설에 대한 피해를 경감하기 위해 입증 가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히며, 앞으로도 미국의 지원은 계속될 것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최근 다행히도 상황이 변화할 징조가 일부 나타나기도 했다. 지난해 벨기에, 독일, 노르웨이, 그리스 등 다수 국가가 여론의 압박에 응답하며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연합군 소속 국가들에 대한 무기이전을 일부 또는 전면 유예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는 정부가 법적 의무를 이행하고 예멘에서 사용되는 무기 공급을 중단하도록 강제하기 위한 소송이 현재 진행 중이다.

예멘을 폭격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 및 연합군에 무기를 공급하는 것은 국제법 및 인도주의 원칙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국가들이 더욱 늘고 있는 한편, 미국, 영국, 프랑스와 같은 국가들은 국제적 중론과는 맞지 않는 아주 잘못된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스티브 콕번(Steve Cockburn) 국제앰네스티 글로벌이슈 부국장

“선택은 이번 주 스페인 정부의 몫이다. 예멘 주민들에게 더욱 끔찍한 고통을 안길 수도 있는 무기거래 계약을 이행함으로써 평소처럼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고, 인도주의 원칙과 국제법에 따른 접근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및 연합군 소속 국가에 대한 모든 무기이전을 유예할 수도 있다. 스페인 정부는 다른 국가들에 모범이 되는 행보를 보이고, 스페인 역사에 더 이상 수치로 남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배경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은 수백 건에 이르는 불법 공격을 감행했으며, 무차별적이고 과도한 공습으로 민간인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주택, 학교, 병원, 시장, 모스크 등 민간 시설을 파괴했다.
후티 반군은 민간 거주지에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했으며, 특히 예멘 제3의 대도시인 타이즈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반군은 대차량지뢰를 무차별적으로 매설하고, 국제적으로 금지된 대인지뢰를 사용하고 어린이를 전투에 동원했으며, 이들이 점령한 지역의 주민들은 임의 구금, 강제실종, 고문을 당했다.
금, 2018/09/28- 17:14
120
0

국제앰네스티 쿠미 나이두Kumi Naidoo사무총장

가나는 자국에서 가장 훌륭하기로 손꼽히는 인재를, 아프리카는 한 명의 거인을, 세계는 도덕적 잣대를 잃었다. 그를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온 특별한 삶에 영향을 받았던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 역시 비통함에 빠져 있다. 같은 아프리카 출신이자 평화와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리더로서, 나 역시 감히 그들 중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코피 아난

무엇보다도, 그의 아내인 나네를 비롯한 아난 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적 관점에서, 또 그가 한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현재 우리가 분투하고 있는 문제의 관점에서 코피 아난에게 경의를 표하려 한다.

코피 아난은 유엔 사무총장 재직 당시 ‘우리 연합국 국민들’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 유엔 헌장의 서문을 재차 강조하곤 했다.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가장 먼저 내세운 표현처럼, 유엔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제1의 원칙이었다.

국제앰네스티 쿠미 나이두Kumi Naidoo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각국 정부에게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포용적으로 접근할 때 가장 효율적인 거버넌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비정부단체(NGO)부터 노동조합, 종교단체까지 시민사회 모든 분야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유엔 의제를 강화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코피 아난이 가난한 이들에게 보인 헌신은 깊고도 개인적인 것이었기에 절대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그는 새천년개발목표(MDG)가 무사히 채택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일부 강대국들의 설득에도 나섰다. 그는 MDG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최소한의 개발 목표”라며 혹독하리만치 솔직하게 평가했고, 항상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분투했다. HIV/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각하던 시기에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과감히 나섰고,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제 HIV/AIDS는 현대 주요 질병 문제 중 하나로 당당히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빈곤층 산모와 영아들 사이에서 HIV/AIDS가 확산되지 않게 막기 위한 연구 개발에 엄청난 재정 자원을 투자했다. “세상의 부당함을 내 일처럼”이라는 국제앰네스티의 슬로건처럼, 그는 가난과 불의, 불평등을 진심으로 자신의 일처럼 여겼으며 깊이 공감했다.

코피 아난은 기후변화에 맞선 투쟁에도 앞장섰던 활동가였다. 그는 기후변화가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 평화, 안보, 성평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고,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막으면 지구를 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그들의 미래까지도 지킬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평생을 헌신했던 사람답게, 코피 아난은 기후변화가 특히 아프리카와 도서국가, 최빈개발도상국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했다. 유엔 사무총장 재직 중 기후변화 문제에 상당한 우선 순위를 부여했던 그는 유엔을 떠난 뒤에도 핵심 과제로 삼아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

평화에 대한 그의 헌신 역시 한결같았다. 은퇴 후 한가로운 생활을 즐길 만한데도 그는 불굴의 용기와 저력을 발휘해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평화를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했다. 국제 원로 자문그룹인 디 엘더스(The Elders)의 의장이 된 그는 케냐를 비롯해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가장 최근에는 미얀마의 로힝야인들에게 평화와 정의를 보장하라고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의 행적이 완벽하지만은 않다는 점은 누구보다도 코피 자신이 먼저 인정할 사실이다. 르완다의 안타까운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은 세계적인 강대국들이 그의 앞길을 방해한 결과물일 때도 많았다. 코피가 애석해했던 것 중 하나는 2012년 6개항 평화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이후 유엔-아랍연맹의 첫 번째 합동특사직을 사임해야 했던 일이었다. 강대국들이 시리아 국민들의 생명보다 지정학적 이익을 우선하면서 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코피는 자신의 활동으로 위기감과 이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라크 사례에서 코피는 국제법과 국제규약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재차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찬성하는 국가까지도 포괄해 세계 대중들의 의견을 파악하고 이해했던 현명한 목소리였다.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코피는 유엔에 애정을 갖고 인류의 연대와 정의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전적으로 헌신했지만, 한편으로는 민주성, 준수 및 일관성 부족이라는 유엔의 한계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유엔이 1945년 당시의 지정학에 머물러 있다고 대담하게 소신을 밝혔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편을 위해 분투했지만, 그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코피 아난을 추억하면서, 우리는 그가 남긴 업적에 존경을 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투쟁을 이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취약하며, 소외된 자들을 위한 투쟁이다. 우리는 코피 아난이 대표적으로 보여줬던 대담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는 포용적이고 효과적인 유엔을 필요로 한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과제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고 안전보장이사회를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계속해서 처참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는 지금, 변명 대신 야심찬 조치가 필요한 때다.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이 급격히 무너지고 민간인들이 끔찍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지도자들은 정의로운 평화의 가능성을 과감히 믿고 끈질긴 투쟁을 이어 나가야 한다. 지속가능한 개발목표의 시대에, 누구도 낙오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행동과 책임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사회 전반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 확신한다. 코피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투쟁, 기후변화에 맞선 싸움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더욱 증폭시키고자 했다. 그가 떠난 것은 그를 세상에 내보냈던 아프리카 대륙뿐만 아니라,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를 사랑하고 지지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상실이다.

코피 아난의 삶은 세상을 더 안전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고, 포용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큰 영감으로 남을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쿠미 나이두Kumi Naidoo사무총장

그가 그립겠지만, 그를 잊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도덕적인 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세상에, 코피의 삶이 앞으로도 그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영감으로 남기를 바란다.

금, 2018/10/12- 15:37
69
0

  • 실망스러운 미 국무부 성명, 민간인 사상 발생 책임 떠넘겨

  • 공습으로 라카 지역 80%가 파괴되고 민간인 수백 명이 사망
  • 국제앰네스티 조사 중 민간인 피해자 수십 명이 추가 존재했다는 증거 밝혀져

미국 주도 연합군이 라카에서 충격적인 규모의 민간인 피해를 입히고 파괴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대해 적절한 조사를 진행하기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일상과 삶의 터전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생존자들에게 모욕과도 같은 일이라고 국제앰네스티가 밝혔다. 1년 전 미국 연합군은 무장단체 자칭 이슬람국가(IS) 축출을 명목으로 라카 지역에 공습을 가했다.

2017년 10월 17일, 4개월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 연합군의 현지 동맹인 쿠르드계 시리아 민주군(SDF)은 IS를 대상으로 승리를 선언했다. IS는 자신들이 점령한 라카에서 민간인들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전쟁범죄를 자행해 왔다. 승리에는 처참한 대가가 따랐다. 도시의 약 80%가 파괴되고 민간인 수백 명의 시신이 거리에 널렸다. 대부분 연합군의 폭격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2018년 9월 10일 국제앰네스티로 보낸 서한을 통해, 미국은 민간인 사상자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라카를 대상으로 한 대부분의 공습과 포격은 미군이 가한 것이었다. 연합군은 라카 생존자와 피해자 유족들에게 보상을 제공할 계획이 없으며, 수많은 민간인이 숨지고 부상을 입었던 공습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거부했다.

미국이 라카에서 벌인 ‘절멸 전쟁’으로 민간인 수백 명이 숨졌지만 미 국방부는 이들에게 사과를 하려는 의지조차 없어 보인다. IS의 폭정에 시달리다 연합군에 재앙과 다름없는 집중포화를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유족들에게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모욕이다.”

쿠미 나이두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또한 “전투가 끝난 지 1년이 지났지만,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정의구현을 향한 길은 여전히 거대하고 험난한 장애물로 가로막혀 있다. 연합군이 민간인 사상자 대부분을 발생시킨 데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며, 책임을 인정하더라도 그 피해자들에게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민간인 사상자 집계의 허점

연합군이 자체 추산한 민간인 사상자 수는 지나치게 적은 수준인데, 공습으로 인한 피해상황 파악을 위해 현지 조사를 수행하겠다던 약속을 연합군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도 한 몫 했다.

국제앰네스티가 2018년 6월 보고서 “절멸전쟁: 시리아 라카 지역 민간인들이 치른 처참한 대가(War of Annihilation: Devastating Toll upon Civilians in Raqqa – Syria)”를 발표하기에 앞서, 연합군은 지금까지 라카에서 수행한 군사작전을 통틀어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는 23명뿐이라고 밝혔다. 놀랍게도 공격이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백 건의 공습이 이루어졌지만 영국 국방부는 여전히 민간인 사상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군 관계자와 정치인들의 거센 항의가 빗발치자, 연합군은 7월 말 민간인 사망자 77명이 더 있었다고 조용히 인정했다. 거의 모두 국제앰네스티 보고서에 기록된 사례들이었다.

이전 발표에 비해 300% 이상 많은 수의 사례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음에도, 연합군은 여전히 이러한 민간인들이 사망했을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밝히기를 거부하고 있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민간인 수백 명이 숨진 만큼,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당연히 궁금증이 생긴다. 무기 오작동인가, 정보 오류인가, 사람의 실수인가, 아니면 근본적인 부주의였나. 연합군은 공격 대상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인가? 아니면 탄약을 잘못 사용한 탓인가? 사실을 확인해 정당성을 평가하고, 향후 비슷한 실수가 되풀이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교훈을 배우려면 이러한 세부적인 내용이 반드시 필요하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법적 의무이며,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세부사항 파악은 가장 핵심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는 국제앰네스티에 “최종 답변”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미군의 공습으로 수많은 민간인이숨지고 부상을 당했지만 이러한 공습을 감행할 당시의 상황과 그 이유에 대해 국방부는 더 이상 질문에 답할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허위 주장

국방부는 또한 국제앰네스티의 노련한 조사관들과 군사 및 법조계 전문가들이 국제인도법(전쟁법)을 잘 모르고 있다며 비논리적인 주장을 펼쳤다. 국방부는 국제앰네스티가 민간인 사망 사건에 관해서만 위법 사실이 추정되는 사건을 바탕으로 추궁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국제앰네스티가 기록한 사례에서 민간인들이 숨지고 부상당했던 공습 현장에 IS 대원은 없었다는 핵심적인 증거를 무시한 것이다. 국제앰네스티는 이 사실이 당시 공습이 국제인도법을 위반한 행위임을 입증할 확실한 증거라고 보고 있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앰네스티 조사 결과 가장 중요한 의문점은 연합군이 민간인에게 미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전쟁법에서 요구하는 만큼 필요한 예방 조치를 취했는가에 대해서다. 연합군은 이 정보를 제공하기를 거부하고 있지만, 증거를 통해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민간인을 보호하려면 그럴싸한 말로 치장해 약속을 하는 것 그 이상으로, 민간인 사상자에 대한 적극적인 조사와 투명성, 그리고 민간인 피해 위험을 최소화하지 못하는 절차가 있을 경우 이를 보완하고 교훈을 얻으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또한 민간인에게 미치는 전체 피해 규모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정의 구현과 책임 이행, 보상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쿠미 나이두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제임스 매티스 미 국무장관은 미군이 ‘착한 사람’이라고 주장해 왔다. ‘착한 사람’이라면 전쟁법을 준수하고, 자신들의 행동으로 죄 없는 민간인들이 고통에 시달린다면 마땅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해야 할 것이다.”

 

더 넓은 패턴의 민간인 사상자 발생에 관한 새로운 증거

연합군이 라카에서 벌인 군사 작전으로 민간인에게 끼친 피해를 조사하는 데 의미 있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가운데, 국제앰네스티는 라카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는 패턴이 더욱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증거를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다. 지난 주까지 라카에서 네 차례 진행한 현지 조사 결과를 비롯해,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 및 위성사진에 대한 포괄적인 전문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연합군이 계속해서 현실을 외면하는 동안, 우리는 현지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가능한 모든 도구를 동원해 민간인 사상자 규모를 전면적으로 밝히고,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해 정의구현과 충분한 보상을 요구할 것이다”

쿠미 나이두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국제앰네스티는 최근 이전까지 기록되지 않은 다수의 연합군 공습 사례를 추가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세부적인 내용을 밝혀냈다. 연합군의 공습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당시 인근 지역에서는 분명 IS 대원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숨진 민간인 중 20명은 메르바드와 알 타드피 가족의 일원으로, 이들은 2017년 6월과 9월 각각 가해진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국제앰네스티는 또한 얼마 전 연이은 연합군의 공습으로 바드란 가족 39명과 그 외 민간인 10명이 숨진 것에 대해서도 추가로 조사를 진행했다. 연합군은 이러한 사망자 중 44명에 대해서는 책임을 인정했으나 나머지는 “신뢰할 수 없다”며 책임 인정을 거부했다. 그러나 2017년 9월 10일이라는 정확한 날짜와 시간까지 제시한 정보가 입수됐다. 이날 마지막으로 가해진 공습에서 바드란 가족 2명과 민간인 3명이 숨졌고, 그 중에는 라카의 전직 검찰총장이었던 70세 남성도 있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외에도 새롭게 밝혀진 사례들의 자세한 내용을 빠른 시일 내에 전면 공개할 예정이다. 이러한 공습으로 거의 수백 명에 이르는 민간인 사상자들이 발생했지만 지금도 연합군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연합군이 계속해서 현실을 외면하는 동안, 우리는 현지에서 활동을 이어가며 가능한 모든 도구를 동원해 민간인 사상자 규모를 전면적으로 밝히고,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해 정의구현과 충분한 보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 2018/10/19- 15:12
65
0

국제앰네스티는 미얀마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한때 자신이 옹호했던 인권적 가치를 외면하고 있는 수치스러운 현실을 고려하여 아웅산 수치의 국제앰네스티의 최고 영예인 양심대사상 수상을 박탈한다고 오늘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는 당신이 양심대사상 수상자로서 자격을 유지하는 것에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 이에 침통한 마음으로 당신의 양심대사상 수상을 박탈합니다.

쿠미 나이두(Kumi Naidoo)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11월 11일, 쿠미 나이두(Kumi Naidoo)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2009년 그에게 수여했던 양심대사상을 박탈한다고 전했다. 아웅산 수치의 임기 절반이 지나고 있고, 그가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지 8년이 지난 가운데,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아웅산 수치가 그의 정치적, 도덕적 권위를 미얀마의 인권과 정의 및 평등 수호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해 실망을 표하면서, 그가 미얀마군의 잔혹행위와 날로 늘어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에 철저히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서한을 통해 아웅산 수치에 이렇게 전했다.
“우리는 당신이 국제앰네스티의 양심대사로서 도덕적 권위를 사용해 미얀마 국내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불의를 목격할 때마다 목소리를 낼 것을 기대했습니다.
당신이 더는 희망과 용기, 영원한 인권 수호의 상징이 아니라는 사실에 크나큰 실망을 감출 수 없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당신이 양심대사상 수상자로서 자격을 유지하는 것에 정당성이 없다고 판단, 이에 침통한 마음으로 당신의 양심대사상 수상을 박탈합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인권침해

아웅산 수치가 2016년 4월 미얀마 정부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된 이후, 미얀마 정부는 다수의 인권침해 행위를 사주하거나 고착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해 왔다.
국제앰네스티는 아웅산 수치와 그가 이끄는 미얀마 정부가 라킨 주에서 로힝야를 대상으로 자행된 미얀마군의 잔혹행위에 대해 어떠한 발언도 하지 않은 점을 거듭 비판해왔다. 라킨 주의 로힝야 사람들은 수년 전부터 극단적 인종차별정책에 버금가는 격리 및 차별적인 제도에 시달려 왔다. 지난해 로힝야에 대한 폭력적인 군사작전이 감행되면서, 미얀마군은 수천 명을 학살하고, 여성들을 강간하고, 남성들을 구금 및 고문했으며, 수백 개의 가옥과 마을을 불태웠다. 72만 명 이상의 로힝야 사람들이 방글라데시로 피난을 떠났다. 이와 관련, 유엔 보고서는 미얀마군의 고위 관계자들을 조사하고 대량학살 범죄로 기소해야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비록 정부가 군에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지만, 아웅산 수치와 그가 이끄는 미얀마 정부는 인권침해 의혹을 묵살, 경시하거나 부인하고 있으며, 인권침해행위에 대한 국제적인 조사를 방해하는 등 책임 추궁으로부터 군을 감싸왔다.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 정부는 로힝야를 “테러리스트”로 명명하고, 자기 집을 스스로 불태운 것이라 비난하며 그들의 피해를 “가짜 강간”이라고 매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로힝야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하고 있다. 그동안 미얀마 국영 언론에서는 로힝야를 “혐오스러운 인간 벼룩”이자 뽑아내야 할 “가시”에 빗대며 선동적이고 비인간적인 기사를 게재해왔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아웅산 수치가 로힝야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은, 국제앰네스티가 더는 그의 양심대사상 수상자 자격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유 중 하나”라며 “그가 잔혹행위의 규모와 심각성을 부인한 것은, 방글라데시에서 불안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거나 라킨 주에 남아있는 로힝야 사람 수만 명의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거의 없음을 의미한다. 로힝야에 대한 끔찍한 범죄가 자행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미얀마 정부가 앞으로의 잔혹행위로부터 로힝야 사람들을 보호하는 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또한 카친 주 및 북부 샨 주의 상황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이 지역은 아웅산 수치가 자신의 영향력과 도덕적 권위를 사용해 군의 인권침해를 규탄하거나, 전쟁범죄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거나, 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소수민족 민간인들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지 않은 또 다른 지역이다. 게다가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미얀마 정부는 인도주의적 접근조차 엄격히 제한하면서, 분쟁으로 국내실향민이 된 10만여 명 이상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

군부가 휘두르는 힘이 강력함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정부는 인권 증진을 위해, 특히 표현과 결사, 평화적 집회의 자유와 관련된 개혁안을 제정할 수 있는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웅산 수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난 2년 동안 인권옹호자와 평화적 활동가, 그리고 기자들은 자신들의 활동을 이유로 체포, 수감되거나 위협, 괴롭힘, 협박을 당했다.

아웅산 수치 정부는 억압적인 법을 폐지하는 데도 실패했는데, 아웅산 수치 본인을 비롯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활동하던 활동가들을 구금하는 데 사용되었던 법률 중 일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오히려 아웅산 수치는 이러한 법률의 집행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특히 미얀마군의 학살을 기록하던 로이터통신 소속 기자 2명을 기소하고 구금한 판결에 관하여 이 법률을 더욱 옹호하고 나선 바 있다.

아웅산 수치는 그의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인 민주화운동 및 인권활동을 인정받아 2009년 국제앰네스티 양심대사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당시 그는 가택연금 상태였고, 정확히 8년 전 오늘 자유의 몸이 되었다. 2013년 마침내 양심대사상을 수상했을 때, 아웅산 수치는 국제앰네스티에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말고, 관심을 잃지 말고, 미얀마가 희망과 역사가 어우러진 나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국제앰네스티는 그날 아웅산 수치가 했던 요청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로부터 절대 눈을 떼지 않는 이유”라면서 “아웅산 수치의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미얀마의 정의와 인권을 위해 계속해서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끝.

화, 2018/11/13- 02:05
56
0

올 한 해 동안 전 세계 약 700만 명에 이르는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은 시위와 편지쓰기, 탄원서명 등 다양한 활동으로 세계 각지의 인권을 옹호하고 향상시켰다.

우리의 활동은 엄청난 효과를 일으켰다. 부당하게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은 풀려나고, 법이 바뀌었으며 전 세계의 용기 있는 사람들이 연대하고 행동에 나선 것이다!

연말을 맞아 2018년 한 해 동안 이룩한 놀라운 인권 성과를 정리했다.

2월

2월에는 엘살바도르에서 징역 30년이라는 터무니없는 형을 선고받았던 테오도라 델 바스케스가 법원의 감형으로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녀는 사산한 후 낙태 혐의로 고발되어 유죄까지 선고받았고, 이미 감옥에서 10년을 보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낙태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탄원서명부터 항의 시위까지, 국제앰네스티는 2015년부터 테오도라의 석방을 위해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벌였다. 노르웨이 지부에서는 테오도라 사건을 알리기 위해 방송을 통해 조난신호를 보내기까지 했다. 앰네스티는 앞으로도 테오도라와 같은 여성들이 재생산권을 보호받기보다는 오히려 처벌받는 일을 막기 위해 엘살바도르의 낙태 비범죄화 캠페인을 계속할 것이다.

테오도라 바스케스(Teodora Vasquez )

멕시코에서는 세르지오 산체스가 감옥에 갇힌 지 8년 만에 풀려났다. 그는 일관성 없는 증거로 허술한 재판을 받았다. 살인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고 수감되어 있었다. 세르지오의 변호인단은 거리 행진과 시위에 참여하는 등 앰네스티 지지자들이 보여준 활동이 세르지오가 석방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

석방된 후의 세르지오 산체스

또한 에티오피아에서 구금되었던 활동가, 기자, 블로거 등이 석방되기도 했다. 그 중에는 국제앰네스티 양심수인 에스킨더 네가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국제앰네스티 지지자들은 에스킨더를 위해 엄청난 양의 편지를 보냈고, 이러한 노력은 결국 결실을 거뒀다.

가족들을 통해 국제앰네스티에서 보낸 지지 편지를 받아보았습니다. 이 편지들 덕분에 저는 용기를 잃지 않았고, 가족들도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에스킨더 네가Eskinder Nega

2018년 2월 14일, 에티오피아의 에스킨더 네가는 아디스아바바의 칼리티 감옥에서 풀려난 뒤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사상 최초로 인권 구성요소가 포함된 초등학교 교육과정이 승인됐다. 국제앰네스티 우크라이나 지부의 끊임없는 옹호 활동과 교육과정 수립 실무단 참여 덕분에 이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베냉에서는 국제앰네스티의 결연한 노력 덕분에 사형수 14명이 감형되었다. 앰네스티는 교도소와 법무부, 국회의장 등의 관계자들을 방문해 사형을 감형할 것을 촉구했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탄원서명을 모았다. 이에 앞서 감비아에서도 사형집행 유예를 선포하는 긍정적인 진전을 보였다.

3월

3월에는 우크라이나에서 연대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열린 여성 인권 시위에서 위협과 폭력을 사용하는 반대 단체에 경찰이 영합했고, 일부 시위 참여자들이 “선동적인”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공공집회에 관한 규칙을 위반했다며 시위 주최자 중 한 사람인 올레나 셰브첸코를 부당하게 고발했다. 3월 15일 올레나가 법원에 출석할 무렵, 소셜미디어를 통한 앰네스티 우크라이나 지부의 호소가 수천 명에게 전달되었고 해당 법정은 기자와 지지자, 외국 대사관 관계자들 등으로 가득 들어찼다. 법원은 올레나에게 혐의가 없다고 판결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4월

4월에는 미얀마에서 보기 드문 좋은 소식이 있었다. 새로 취임한 윈 민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8천여명에 이르는 양심수들이 석방된 것이다. 그 중에는 앰네스티가 석방 캠페인을 벌였던 덤다우 나웅 랏, 랑자우 감 셍, 라파이 감 등 미얀마 소수민족 카친의 목사 세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4월 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헌법재판소는 전시 강간피해자 및 민간인 피해자의 보상 요구가 기각됐을 경우 이들에게 소송비용을 청구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앰네스티는 트라이얼 인터내셔널(TRIAL International)과 함께 이러한 사건의 비용 청구 폐지를 위해 오랫동안 활동을 벌여 왔으며, 이러한 운동은 다른 생존자들 역시 정의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힘을 북돋울 수 있었다.

5월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의 낙태 금지 조항을 폐지하게 된 놀라운 결과는 여성인권의 커다란 성과로 기록되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수많은 활동가들이 수 년에 걸쳐 헌신적인 활동을 벌였던 덕분에 이룬 쾌거였다. 앰네스티는 2015년 발표한 보고서 <아일랜드: 그녀는 범죄자가 아니다 – 아일랜드 낙태금지법이 미치는 영향>에서 여성들의 개인적인 증언을 바탕으로 낙태와 관련된 장벽과 낙인을 기록했다. 2018년에는 해외 거주 국민까지 아일랜드로 돌아와 국민투표에 참여하며 의견을 표현하는 등 민중의 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되었다.

아일랜드 국민투표 결과 찬성표 우세로 낙태금지법 개정이 통과됐다

이번 캠페인은 희망이자, 여성의 건강과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를 소중히 여기는 활동이었습니다. 이 캠페인 자체가 놀라운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카트리나 그래험 아일랜드 여성인권 캠페이너Catriona Graham

말레이시아에서는 총선에서 나지브 라자크 전 총리가 그의 정치적 스승인 마하티르 모하마드에게 패배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 이후 야당 지도자이자 양심수인 안와르 이브라힘이 석방되는 기쁜 소식이 있었다. 안와르 이브라힘의 석방은 말레이시아 인권의 기념비적인 순간이었으며 덕분에 앞으로의 개혁에 대한 희망이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5월 말, 부르키나파소 국회에서는 형법상 사형을 폐지하는 형법 개정안을 채택했다.

몰도바 교육부는 국제앰네스티 몰도바지부에서 마련한 인권교육과정을 초등학교 및 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으로 채택했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 처음으로 거둔 성과였으며, 그보다 앞서 진행된 시범 계획에는 22개 학교에서 약 70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6월

시리아 문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활동을 벌인 끝에, 미국 연합군은 마침내 민간인 사상자 발생 의혹과 관련해 이미 종결된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당초 미국 연합군은 라카 지역에서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앰네스티의 조사 결과를 부인하고 비난했으나, 조사 결과 새로운 증거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7월 말, 연합군은 6월 발표한 앰네스티 보고서에서 기록한 79개 사례 중 77개를 사실상 인정했으며, 라카 지역에서 발생한 민간인 사상자 수를 300% 높였다. 앰네스티는 이것이 여전히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보고, 새로운 암호 해독 프로젝트인 “Strike Tracker”를 발족했다. 또한 에어워즈(Airwars) 등의 단체와 협업해 연합군 공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한 경위를 더욱 포괄적으로 파악할 예정이다. 분석 결과는 2019년 초 공개된다.

국제앰네스티는 미얀마의 로힝야를 상대로 자행되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의 책임에 관해 기념비적인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특정 군부대와 관계자 13인을 반인도적 범죄의 유력한 가해자로 지목했다. 보고서가 발표되기 2일 전 EU는 미얀마 보안군 관계자 7인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는데, 그 중 6인이 앰네스티가 선정한 유력 가해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7월

7월에는 중국의 아티스트 류샤가 근 8년간의 불법 가택연금 끝에 마침내 독일로 떠날 수 있게 되었다. 류사는 지난 2010년 남편 류샤오보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이후 지금까지 자택에 감금되어 있었으며, 그 동안 공안요원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으며 제한적인 상황 외에는 전화를 사용할 수 없었다. 올해 초, 국제앰네스티와 PEN은 류샤의 석방을 요구하며 유명 작가들이 그녀의 시를 발췌해 읽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류샤가 헬싱키 국제공항에 도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17세 활동가 아헤드 타미미가 8개월간의 징역형을 21일 일찍 마치고 석방됐다. 아헤드는 중장비로 무장한 군인에게 위협을 가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점령 서안지구 오페르 군사법원에서 부당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모리타니아에서는 노예제에 반대하는 활동가 2명이 3년간의 형기 중 2년을 채우고 석방되었다. 압달라히 마탈라흐 세크와 모사 비람은 앰네스티에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여러분의 지지로 모리타니아의 정의를 위한 이 싸움에서 우리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비람의 말이다. “모든 앰네스티 회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모리타니아 반노예제 활동가의 석방을 위해 멋진 활동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불의에 맞서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활동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의 지지로 모리타니아의 정의를 위한 이 싸움에서 우리가 외롭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모사 비람Moussa Biram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는 스릅스카 공화국 국회가 전시 고문피해자 보호법을 채택했다. 마침내 내전 당시 자행된 강간 등의 성폭력 피해자를 인정하고 보상과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앰네스티는 전시 성폭력 생존자들의 사법제도 접근과 보상을 보장하는 이러한 법이 제정되기까지 지역 파트너 단체들과 협업해 오랫동안 캠페인을 벌여 왔다.

8월

캄보디아의 유명 토지권 및 인권활동가인 텝 바니가 수감 735일만에 마침내 석방되었다. 평화적인 시위만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그녀는 형기 만료를 불과 6개월 앞두고 수많은 인권활동가 및 시위대와 함께 국왕 특별사면을 받아 풀려나게 됐다. 텝 바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캠페인에는 전세계 20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석방된 텝 바니

제가 석방되어 아이들, 부모님과 다시 만날 수 있게 캠페인에 참여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악수를 청합니다. 여러분은 제게 큰 위안이었고, 저를 외롭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다정함과 세계 각지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텝 바니Tep Vanny

9월

국제앰네스티가 온라인 액션 진행 소식을 알린 지 불과 며칠 만에 38만명이 액션에 참여했다. 중국 남서부에서 위구르, 카자흐 등 이슬람계 소수민족이 집단으로 구금된 사건에 항의하는 내용이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만난 한 카자흐인은 열세 살 딸이 석방된 것도 앰네스티의 캠페인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아랍에미리트연합 국적의 위구르 남성 1명이 중국으로의 강제송환을 막기 위한 앰네스티 캠페인 끝에 석방되었다.

인도에서는 마침내 대법원 결정으로 동성 성인 사이의 합의된 성관계가 비범죄화되었다. 대법원은 또한 성적 지향성을 기반으로 한 모든 차별은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카타르의 만연한 노동착취 문제를 폭로하기 위한 앰네스티의 조사와 캠페인 활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9월 카타르 정부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의 출국 허가 제도를 폐지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의 허락 없이 카타르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는 카타르가 국제노동기구(ILO)의 파트너로서 이행한 첫 번째 주요 개혁이었으며, 2022년 월드컵 경기장 현장을 비롯해 카타르 전역에 만연히 이루어지는 노동 착취를 폭로하기 위한 국제앰네스티의 수년 간의 조사와 캠페인 활동에 따른 결과였다.

유럽 의회는 전자동 무기체계, 일명 ‘살인로봇’을 국제적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앰네스티의 요청에 응답했다. 이 결의안은 자동무기체계의 개발과 확산 및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자동무기체계는 스스로 공격 대상을 선정하고 인간의 개입 없이 표적을 살해할 수 있다.

르완다의 야당 대표인 빅투아르 잉가비레와 가수 키지토 미히고가 카가메 대통령의 사면을 받고 감옥에서 풀려났다. 두 사람은 여전히 여러 제약을 받고 있지만, 앰네스티는 이들이 석방된 것만으로도 올바른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라고 인정한다. 빅투아르 잉가비레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한 것과 관련해 유죄가 선고되었는데, 이는 그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또한 그녀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역시 침해당했다. 앰네스티는 지난 수년 간 잉가비레 사건을 두고 여러 차례 우려를 제기해 왔다.

빅투아르 잉가비레

10월

세계 사형폐지의 날을 맞아, 신임 말레이시아 정부는 사형을 전면 폐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금은 집권당이 된 전 야당 의원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수년에 걸쳐 사형폐지 옹호 활동을 벌여 온 덕분이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워싱턴주에서도 사형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워싱턴주는 미국에서 20번째로 사형을 폐지한 주가 됐다.

베트남에서는 블로거 “버섯엄마”가 2년 반만에 감옥에서 석방됐다. 블로그 필명 ‘메 남(버섯엄마)’로 알려진 응우엔 응고크 누 쿠인은 2016년 10월 10일 체포되어 2017년 7월 20일까지 독방에 구금되었으며, 2017년 7월 29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앰네스티의 니콜라스 베클린(Nicholas Bequelin) 동남아시아 지역국장은 성명을 통해 “이번 굿뉴스 덕분에 수감 2년만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다. 이 소식은 정권을 비판하는 사람은 누구나 투옥시키고 있는 베트남의 악화되는 인권상황을 재차 조명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버섯엄마가 더 이상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고는 해도, 그녀의 석방 조건은 망명이었으며 지금도 100명 이상이 공개적으로, 블로그에서, 또는 페이스북에서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감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11월

수년 간 계속된 캠페인 끝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북 가우텡 고등법원은 남아공 정부가 선주민들의 합의 없이는 졸로베니에서의 티타늄 채광을 허가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는 졸로베니 선주민들에게 크나큰 성과였다. 이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을 채굴하는 데 합의할 것인지 아닌지를 사전에 결정하고 상의할 권리를 얻기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 왔다.

“우리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지역에서 식량과 토지, 사랑 등 모든 것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권력자들은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 알아냈고, 우리에게서 빼앗으려 했다.” 아마디바 선주민 인권활동가인 노늘레 음부타마는 이렇게 말했다. “동료들 중 몇 명은 이미 살해당했고, 나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다.”

스위스에서 국내법을 국제법보다 우선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은 최근 진행된 국민투표에서 스위스 국민들이 인권 옹호를 선택하며 결국 무산되었다.

스위스 국민은 기만적인 공약에 넘어가지 않고, 대신 투표를 통해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적용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분명한 신호를 전달했다.

쿠미 나이두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Kumi Naidoo

12월

앰네스티는 ‘충분하지 않은 영향력(Not Enough Impact Report)’을 발표하고, 지난해 이룩한 앰네스티의 성과와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용감한 사람들의 도움을 기렸다. 무엇보다도 아직 남은 과제와, 지금도 불의에 맞서 끈질기게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기회였다.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의 편지쓰기 캠페인 Write for Rights을 진행했다. 올해 앰네스티는 인권 활동으로 수감되고,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당하기까지 했던 용감한 여성 인권 옹호자들을 주목했다. 이들이 외롭지 않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용기에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과 연대했고, 이들을 지지하는 편지 수천 통을 작성했다. 여러분의 지지와 캠페인 활동, 편지쓰기 활동에 감사하는 마음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덕분에 정말로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었다!

목, 2018/12/27- 12:28
7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