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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청계천 복원 사업이 성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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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다큐]청계천 복원 사업이 성공한 이유

익명 (미확인) | 수, 2015/08/26- 18:01

이명박 대통령이 벌인 4대강 사업은 ‘녹조 라떼’라는 오명 만을 얻은 채 실패로 귀결됐습니다.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4대강 사업에 대한 평은 썩 좋지가 않죠. 하지만 청계천 복원사업은 좀 다릅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청계천 복원 사업일 겁니다. 맞습니다. 대체적으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여전히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청계천 노점상들은 생계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이곳저곳을 떠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많은 노점상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성동공고 뒤편에 자리 잡았던 청계천 노점상들은 강제 철거로 집기류를 모조리 압수당했습니다.

 

좀 더 살펴볼까요? 2003년 청계천 노점상들이 청계천에서 강제 철거된 후 이주된 곳은 대략 3곳입니다. 동대문 운동장, 동묘 벼룩시장, 성동공고 근처 이렇게 말이죠. 그 중에서 900여 명의 노점상들이 이주했던 동대문 운동장은 현재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럼 노점상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당연히 또 집단 이주를 당합니다. 그 과정에서 당시 59세의 노인 노점상은 오른쪽 눈 안쪽 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기까지 합니다. 용역업체 직원에게 벽돌로 맞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노점상들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에 잘 소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한 평가가 가능했던 게 말이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언론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서 사람들이 청계천 복원사업의 실체를 잘 모르는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본 편에서는 바로 그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어쩌면 바로 이 이유가 4대강과 청계천 복원 공사의 결정적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이런 겁니다. 4대강 사업은 그야말로 소수 건설사들 배를 불려주기만 한 반면, 청계천 복원사업은 주변의 평범한 영세 상인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갔다는 것이죠.

실제로 청계천 복원 공사 이후 주위 상권은 급격하게 확장이 됩니다. 산책을 하러 오는 이들이 늘어 음식점이 호황을 맞게 되고, 덩달아 주위 건물들의 분양가도 상승을 합니다. 일부 도매상들의 경우 소매상들과 달리 이익을 기대했다가 오히려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청계천 복원 공사 덕에 적지 않은 ‘평범한 이들’이 이익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청계천 복원 사업의 ‘성공 이유’는 생태니 뭐니 하는 게 아니라, 상권과 부동산 가격 상승이 본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들어 온 서민들의 재산증식 수단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면 사람들이 이명박에게 무엇을 기대했었는지, 왜 그에게 압도적인 표를 던졌던 것인지 이해가 갑니다. 지금은 역대 대통령 인기도 조사에서 거의 꼴지를 달리고 있지만 그는 분명 사람들이 무얼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서울시장 시절과 달리 대통령이 된 이후엔 소수의 이들에게만 원하는 걸 이루도록 해줬을 뿐일지도 모릅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에서 물러났으니, 이명박에게 사람들이 투사했던 무언가도 함께 사라졌을까요? 그가 인기가 없는 전직 대통령이니 서민들이 바랬던 그 무언가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걸까요? 서민들이 바라는 그 무언가가 과연 이명박 시장 혹은 대통령 시절에 새롭게 생겨난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 무언가를 바라는 게 꼭 나쁜 것일까요? 아니면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만약 그게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그걸 얻기 위한 방법이 노점상과 같은 가장 힘없는 이들의 것을 빼앗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요?

청계천 복원사업으로부터 이미 10여 년이 흘렀지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과 얻어야 할 답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만드는 내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절로부터 단 한 걸음도 내 걷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더불어 ‘다른 방법’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영원히 그 시절에 갇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들었습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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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청문회12-3

[4대강 청문회 열자] 빼앗긴 어부의 삶... 이제 낙동강 '저주'를 풀어주세요

4대강 사업, 그 뒤 5년. 멀쩡했던 강이 죽고 있습니다. 1000만 명 식수원인 낙동강 죽은 물고기 뱃속에 기생충이 가득합니다. 비단결 금강 썩은 펄 속에 시궁창 깔따구와 실지렁이가 드글거립니다. 혈세 22조원을 들인 사업의 기막힌 진실. '4대강 청문회'가 열리도록 '좋은기사 원고료 주기'와 '서명운동'에 적극적인 동참을 바랍니다. 이번 탐사보도는 환경운동연합, 대한하천학회, 불교환경연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이 공동 주최하고 충남연구원이 후원합니다.
  이명박씨, 어제(26일) 낙동강에서 한 어부의 배를 탔습니다.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녹색강. 당장 물속에서 녹색 괴물이 튀어나올 것같이 을씨년스러웠습니다. "에게~ 대체 이게 뮙니까?" 김해 내수면어업회 회장인 어부 박남용씨(68)가 자망을 걷자 김종술 기자가 혀를 찼습니다. 3일전에 쳐놓은 자망에는 물고기 한 마리도 없었습니다. 7개 한 묶음으로 이루어진 통발엔 새우 몇 마리와 동자개 치어 몇 마리만 올라올 뿐이었습니다.

"이빨이 몽당 빠져버릴 것 같다니까..."

4대강청문회12-1 ▲ 김해시 대동면 앞 낙동강에서 어민이 통발 7개를 건져 올렸다. 빈 통발에는 좁쌀만한 고기뿐이다. 어민은 "4대강 사업 후 물고기가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 정대희

통발을 걷어올리는 박남용씨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습니다. 아주 어릴 때 공주에서 이곳 김해 대동으로 와 50년 넘게 조업을 해온 베테랑 어부의 눈에 눈물인지 빗물인지, 물기가 맺혔습니다. "녹조가 말도 못하게 피고, 강바닥이 썩은 뻘로 뒤덮혀 있지. 고기가 살 수가 있겠나. 낙동강이 죽어버린 것이여. 4대강 사업 때문에. 이명박을 생각하면 이가 갈려서 이빨이 몽땅 빠져버릴 것 같다니까요. 나, 원 참~" 4대강 탐사보도팀은 물고기 씨가 마른 낙동강의 모습을 어부의 배 위에서 생생하게 페이스북 라이브 생중계를 했습니다.

4대강청문회12-2 ▲ 김해시 대동면 앞 낙동강 배 위에서 <오마이뉴스> 4대강 현장 탐사보도팀이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고 있는 모습. ⓒ 정대희

배를 몰고 있던 유점길씨(71)에게 마이크를 돌렸습니다. - 언제부터 물고기 수가 줄었나요? "4대강 사업 이후부터죠. 물이 썩어서 물고기도 살 수 없어요." - 얼마나 줄었나요? "99%. 이젠 낙동강에 그물 던지는 어부가 거의 없어요. 기름값도 안나옵니다." - 잡히는 어종도 변했나요? "잡히는 물고기가 있나요? 없어요, 없어... 변할 것도 별로 없습니다." 이명박씨, 낙동강 어부의 탄식이 들리시나요?

지역경제 살리기? 지역경제 죽이기!

부산경남 내수면어업회 어부들의 총 수는 488명이라 합니다. 이중 지금도 낙동강에서 물질을 하는 어부는 두 손으로 꼽을 정도랍니다. 4대강 사업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는 당신의 약속은 휴지조각이었습니다. 아니, 강도 죽이고 몇 대째 이어온 삶의 터전도 앗아갔습니다. 4대강 사업 이전에 이곳에서 잘 잡히던 물고기는 잉어, 붕어, 메기, 장어였답니다. 이걸 잡아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 집 사줘서 결혼도 시켰답니다. 하지만 물고기 씨가 마른 강에서 그나마 잡히는 어종은 베스나 블루길 같은 외래어종뿐이라고 합니다. 생계가 막막해진 것입니다. 선착장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이구동성으로 4대강 사업을 성토했습니다. 4대강 사업 전의 기대는 물거품으로 돌아와 더욱 분노가 커진 것입니다. "4대강사업 기간부터 지난 7년 동안 정부가 해준 보상이라곤 4대강사업 기간 휴업 보상 390만원에 4대강사업 후 3년 회복기간 보상이라 해서 300만원 남짓 준 것이 전부입니다."

황금어장의 물고기 씨를 말렸다

4대강청문회12-3 ▲ 김해시 대동면 앞 낙동강 배 위에서 어민이 3일 전 쳐놓은 통발 7개를 건져올렸으나 시장에 내다 팔 고기는 한 마리도 없었다. ⓒ 정대희

내수면어업회 한희섭 사무국장의 말입니다. 그 옆에서 어부 조형국씨(65)가 말을 보탭니다. "그 보상, 아무것도 아니지요. 4대강사업 전에는 한번 나가면 70~80만 원 벌이는 했는데, 그 돈은 몇 번만 조업을 나가도 벌 수 있는 돈인데 그걸 보상이라고 주니 참 기가 막혀 살 수가 없습니다. 이곳은 예전에는 황금어장이었어요. 재첩해도 얼마나 많은지 알아요? 섬진강 재첩, 그게 재첩입니까? 이곳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답답한 어민들은 이런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지 않은 수자원공사와 국토부를 향해 선상시위도 세 차례나 벌였답니다. 수자원공사와 국토부를 찾아간 것도 수십 번입니다. "찾아가도 만나주지고 않고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정말 막막합니다." 이것이 낙동강의 현실입니다. 낙동강은 지금 거대한 물저장소일 뿐입니다. 그것도 녹조라떼 가득한 거대한 시궁창 말입니다. 강바닥은 썩은 펄입니다. 그 펄 속에는 실지렁이 같은 4급수 오염 지표종들만 득실거릴 뿐입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물고기를 비롯한 수생물이 살 수가 있겠습니까. "하루빨리 보를 없애야 합니다. 하굿둑도 터야 합니다. 그래야 물고기가 살고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 방법뿐입니다. 안 그러면 모두 죽습니다. 우린 죽어요." 조씨는 손짓발짓을 해가며 절규했습니다.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이명박씨, 낙동강은 1300만 시도민의 식수원입니다. 맹독성물질이 창궐하는 녹조와 실지렁이 득실거리는 강바닥 무엇보다 물고기도 살 수 없는 이런 낙동강의 강물을 정수해서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수치상 안전하다고 하지만, 물고기도 살 수 없는 강물이 과연 안전할까요? 어민들의 주장처럼 하루빨리 낙동강 보를 없애든가 보의 수문을 상시개방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고기도 살고, 어민들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습니다.

이명박씨, 4대강에 울퍼지는 당신에 대한 저주

4대강청문회12-4 ▲ 김해시 대동면 앞 낙동강 위에 배가 떠 있는 모습 ⓒ 정대희

이명박씨, 이날 빈 그물을 걷은 박남용 씨의 목소리는 잠겨 있었습니다. 쇳소리가 났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목소리가 잠깐 쉰 게 아니었습니다. 그가 원래의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은 4대강 사업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사실 4대강 사업 초기에는 꿈에 부풀어 있었답니다. 4대강 공사 기간인 2년간의 휴업을 누구보다 잘 참고 견뎠답니다. 그러나 그건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답니다. 2012년 4대강 보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부터 잡히는 물고기가 점점 줄어들었답니다. 위기의식을 느낀 그는 동료 어부들과 함께 국토부를 찾아가 따졌습니다. 시위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것은 냉대뿐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2013년 10월 24일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로 쓰러졌답니다. 다행히 뇌출혈은 치료는 했지만 그날부터 목소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어부가 '4대강 독립군 특별취재단'을 만나 처음으로 내지른 말은 이명박, 당신에 대한 저주였습니다. 쇳소리는 비바람치는 녹조의 강으로 퍼졌습니다.

이명박씨, 이제 당신이 낙동강에 쏟아부은 '저주'를 풀어주세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말씀 드립니다. 환경운동연합, 불교환경연대, 대한하천학회,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은 지난 23일부터 '4대강 청문회를 열자'는 제목의 탐사기획보도는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현장 탐사보도의 마지막 날입니다. 많은 분들이 4대강 독립군에게 '좋은 기사 원고료'로 응원을 해주셨습니다. 많은 분들이 서명운동에 동참을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영주댐과 내성천의 현장 탐사 보도도 이어집니다. 9월 중순까지 기획 기사를 통해 4대강 사업의 폐해를 낱낱이 보여드리겠습니다. '좋은 기사 원고료 주기' 목표액 3000만원, '4대강 청문회 서명운동' 10만 명이 될 때까지 힘을 모아 주십시오. 지치지 않고 4대강 독립군들이 4대강을 회복시킬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을 모아주십시오. - 글 : 정수근 대구환경연합 사무국장 ※ 관련기사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①] “제발 이명박 씨 죗값을 치르게 해주세요”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②] 비겁하게 도망가지 말고, 숨어서 떠들지 말고, 나오십시오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④] 이상돈 국회의원 “MB 사기극에 박근혜 동조… 4대강 유령 취급”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⑤] 독성물질 확산, 4대강 국가재난사태 선포해야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⑥] 4대강에서 마주친 충격적인 생명체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⑦] 비교 보기 극과극, 2009년 금강 vs. 2016년 금강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⑧] 드론으로 찍은 ‘독조의 강’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⑩]구덩이 파니 물이 '출렁'... 땅 속에서 무슨 일이?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⑪] 단독-낙동강 4급수 지표종 실지렁이 첫 발견 [4대강 탐사보고-청문회 열자⑫]이명박씨, 당신이 물고기 씨를 말렸습니다

※ 청원페이지 바로가기 : 4대강, 청문회 열자

댐졸업후원-수정
월, 2016/08/2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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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문개방으로 복원 물꼬트는 4대강, 동시 퍼포먼스

수문개방으로 복원 물꼬트는 4대강, 동시 퍼포먼스

수문개방으로 복원 물꼬트는 4대강, 동시 퍼포먼스

◎ 일 시 : 2017년 6월 1일(목), 오후 14시 00분 ◎ 장 소 ▸낙동강 강정고령보 (문의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사무처장 010-2802-0776) ▸낙동강 함안보 좌안 주차장 (문의 : 마창진환경운동연합 임희자 정책실장 010-8267-6601) ▸금강 공주보 (문의 :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국장 010-9400-7804) ◎ 퍼포먼스 : 2시 수문개방에 맞춰서 ‘4대강사업 적폐청산’, ‘흘러라 4대강’, ‘보수문 개방 확대’라고 쓰인 손 현수막을 펼침.
○ 지난 23일,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사항으로 4대강 보 수문개방이 결정되었습니다. 4대강 10개 중 6개 보에 한정되고, 수위저하가 예상보다 미흡하지만 4대강 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 것만은 사실입니다.   ○ 이에 환경운동연합은 전국 주요 보 현장을 찾아서 수문개방을 축하하고 수문개방 확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동시에 펼칩니다. 많은 취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7년 5월 31일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권태선 박재묵 장재연 사무총장 염형철

  4대강후원배너
수, 2017/05/3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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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국에서 5~6건씩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켜서 뉴스를 찾아보면 너무나 쉽게 그리고 자주 접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일에 놀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흔해서도 무감각해져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다름 아닌 ‘일하다가 사람이 죽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뉴스에선 흔히 ‘산업 재해’라고 합니다. ‘산업 재해’라는 말이 다소 건조하게 느껴져서일까요? 아니면 워낙 기업의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사람이 죽는 일조차 기업 활동의 일부로 여겨져서일까요? 실제로 산업재해를 다룬 많은 뉴스에선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뉘앙스보다 산업현장에서의 사건이나 사고의 뉘앙스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러한 뉘앙스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언론도 독자도 사람의 목숨에 대한 감수성이 무척이나 무뎌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노동자’ 즉 일하는 사람에 대한 감수성이 무척이나 무뎌져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거대한 타워 크레인은 보이지만, 80m 높이나 되는 크레인 위를 사다리 하나에 의존해 올라가는 노동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한참을 오르다 보면 자연스럽게 손에 땀이 차게 되는데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며 노동자는 매일 사다리에 오릅니다.

물론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사측에 안전 승강 장치를 요구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외주화된 크레인 업체는 어떻게 해서라도 가격을 낮춰야 경쟁력을 갖기 때문에 승강 장치는커녕 비용 삭감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임금을 동결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사에게 수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거나, 노후 된 곳의 수리보수 비용을 삭감하는 등 안전에 관한 비용까지도 줄입니다. 이는 크레인 기사의 목숨과 직결된 것임에도 말입니다.

당연히 크레인 사고가 자주 발생합니다. 흔히 허리가 꺾이는 크레인들은 이러한 안전 비용 삭감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연적 사고가 아니라 필연적 사고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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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조선소 역시 하청업체들이 많이 고용되어 있는데, 원청의 안전관리 소홀로 사고가 빈발합니다. 지난 6월엔 800kg의 철판이 떨어져 그 아래에서 작업 중이던 40대 하청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주 기본적인 안전작업인 ‘가용접’이 돼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전에 안전점검조차 무시된 상태에서 일어난 사고입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조선업 재해 사망자 69명 중 83%가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배 밖 작업은 정규직들이 맡는다고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간다고 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산업재해 처리를 할 경우 하청업체를 고용한 대기업은 보험료를 감면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산업재해를 경험한 조선업계 하청노동자 중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는 7.2%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반면 2013년 한 해 동안 대기업 사업장에서 감면받은 보험료는 6,114억원에 달합니다.

안전관리 책임을 져야하는 원청의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에 그치곤 합니다. 2013년 현대제철 공장에서 아르곤 가스 누출 사고로 하청 노동자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안전모 하나만 달랑 쓰고 산소마스크와 가스누출 경보기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도 못 갖춘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입니다.

하지만 사고의 책임자로 지목된 원청의 부사장은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이에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이 사건의 2심 판결을 앞두고 판사에게 직접 탄원서를 씁니다.

언론에서 많이 다룬 큰 사고라 하더라도
세상은 곧 잊고, 기업에 대한 처벌은
늘 아주 가벼웠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최고 목표인 기업에게
안전은 늘 뒷전이 되는 구조가
공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만약 원청 기업이 좀 더 책임의식이 있었더라면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참사였습니다.

판사님께 탄원서를 쓰게 된 이유는,
1심 판결에서 유예된 부사장에 대한 ‘구속’을
집행해 주시길 요청 드리기 위함입니다.
판사님이 선고할 수 있는 최고형을
선고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2심 선고에서도 부사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납니다. 그래서 다시 모든 건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오늘도 매일 5~6건 우리나라에선 일하다가 사람이 죽습니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해져 버린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놀라지 않습니다.

수, 2015/07/2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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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선 총리에 오른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는 주류 언론을 완전히 장악한 후, 이를 바탕으로 기득권 보수 우파의 장기 집권을 착실하게 마련해 나갑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무슨 대단한 비책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저 정부의 실정에 대해 언론이 철저하게 침묵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더불어 국민들의 관심을 비정치적 영역으로 돌려놓는 것을 병행합니다. 반민주적인 정권이 늘 사용하는 익숙한 방식입니다. 효과적인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 때 국민들의 분노를 신랄한 정치 풍자로 해소해 준 한 명의 코미디언이 있었으니, 그가 다름 아닌 ‘베페 그릴로’입니다. 과거 TV에서 전 총리를 비판했다가 퇴출을 당했던 사람이죠. 그는 이후 TV 밖에서 공연 등을 통해 시민들을 직접 만나며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언론에 불만을 품은 국민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를 얻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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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0년 블로그 개설을 기점으로, 베페 그릴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 때부터 베페 그릴로와 그의 블로그는 단순히 팬덤 성격을 넘어 기성정치에 분노한 시민들이 모이는 포스트의 역할을 담당하게 되죠.

블로그를 통해 온라인에서 서로를 알게 된 사람들은 어느덧 오프라인 모임을 만들고, 각 지역별 단위 모임이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2005년에는 전국적 그룹 활동으로 급성장을 합니다. 급기야 2년 뒤인 2007년엔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을 터뜨리며 그릴로와 함께 무려 200만 명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2008년 총선에서 베를루스 코니에게 3선 총리의 자리를 내어주고 맙니다.

결국 베페 그릴로와 그의 친구들은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서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새로운 정치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데요, 그것이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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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치는 거칠게 요약하면 대의민주주의와 미디어 정치로 대변될 수 있습니다. 이는 거꾸로 말해 대의된 체제 상층부와 언론을 장악하면 민의를 좌지우지 하거나, 심지어 민의에 반하고도 권력을 장악 및 유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변화시키려면 이미 장악된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으론 부족하고,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거나 제도권 언론의 힘을 빌지 않고도 공론의 장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이와 같은 정치 운동이 시도되었었는데요, 오성운동 역시 그러한 맥락을 지니고 있습니다.

일단 1부에서는 오성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까지의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현실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흥미로우실 겁니다.

수, 2016/05/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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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의 낙동강 하굿둑 개방 결정 환영, 4대강 보 수문개방으로 이어져야 한다   부산시의 낙동강 하굿둑 점진적 개방 결정을...
목, 2015/09/24-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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