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해수부 “세월호 수색중단 이후 미수습자 유실방지 조치 없었다”

지역

해수부 “세월호 수색중단 이후 미수습자 유실방지 조치 없었다”

익명 (미확인) | 월, 2015/08/24- 22:56

해양수산부가 지난해 11월 11일 세월호 수색중단 발표 직전 미수습자 유실 방지를 위해 선체 개구부를 밧줄 등으로 봉인한 이후 9개월 이상 지난 지금까지 유실방지 장치들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단 한 차례도 검증하거나 보완한 적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당시 설치된 유실방지 장치는 불과 수 개월 이상 버티기 힘든 재질이어서 현재는 상당 부분 훼손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세월호 내 미수습자 시신들이 이미 유실됐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해수부는 지난 10일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월호 인양 관련 자료 제출을 공식 요청한 데 대해 최근 일부 자료들을 첨부한 정식 회신 공문을 보냈다. 회신된 자료는 세월호 인양 입찰 공고문과 제안요청서, 과업지시서, 입찰 업체 평가 결과 등 인양 입찰 관련 내용들과 지난 6월 88수중개발이 촬영한 세월호 수중영상, 지난 1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조사해 제작한 세월호 선체 3D 영상 등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수부는 이 가운데 “현재까지 실시한 유실방지 장치의 내용과 방식”을 회신하라는 특조위 요청 사항에 대해 “지난해 수색종료 및 해경 등의 폐쇄 조치 이후, 현재까지 실시한 유실방지 장치 관련 사항은 없다“고 공식 답변했다. 지난해 11월 11일 이후 9개월이 지나는 동안 유실방지 장치가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조차 전혀 확인한 바가 없다는 뜻이다.

▲ 지난해 9월 촬영된 세월호 유실방지 장치 모습.

문제는 당시 설치된 유실방지 장치들이 현재는 대부분 훼손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지난해 세월호 수중수색에 직접 참여했던 한 잠수사는 “당시 유실방지 장치는 수색 완료 구역이 확정될 때마다 해당 구역을 드나들던 창문과 출입문 등에 대해 순차적으로 설치됐으며, C-클램프(물체를 고정하는 데 쓰이는 C자 형태의 공구) 2개 이상을 고정시킨 뒤 밧줄을 엮어놓는 방식이었다”면서 “마지막 설치 작업은 수중수색 중단 발표 하루 전인 11월 10일에 수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이 장치는 수중수색 중단 직후 오래지 않아 선체가 인양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취했던 임시적 조치의 성격이 강했다”면서 “당시 설치된 C-클램프의 재질과 밧줄의 결박 강도 등을 감안할 때 9개월 넘는 시간이 흐른 현재는 다수가 부식돼 해체돼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올해 6월 촬영된 세월호 유실방지 장치 모습

실제로 뉴스타파가 입수한 세월호 선체 영상들을 통해 이는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지난해 9월 세월호 수색구조팀이 촬영한 선체 표면 영상에서는 C-클램프와 밧줄을 이용해 수색 완료 구역의 개구부를 엉성하게나마 막아놓은 모습이 나타났지만, 올해 6월 88수중개발이 촬영한 영상에서는 선체 표면에 수직으로 서 있어야 할 C-클램프가 뉘어져 있거나 밧줄의 매듭이 풀려 물결에 일렁이는 모습이 일부 포착된 것이다.

4.16가족협의회는 지난 7월 이같은 문제를 제기하며 직접 세월호 선체에 대한 수중촬영을 시도하고자 했으나 해수부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인양업체 기술평가에서 미수습자 유실방지책의 적정성에 단일 항목으로는 최대 점수인 10점을 부여했고 협상 과정에서도 가용한 모든 유실방지 방안을 동원하도록 업체에 요구하는 등 정부 차원의 유실방지 노력을 계속해 왔다”면서 “인양 업체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현장조사 결과를 본 뒤 유실방지책을 다시 보완할 예정이며 관련된 촬영 결과물 등도 향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에 따라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해수부 설명은 현 시점 이후부터의 유실방지책 마련과 검증에 대한 계획일 뿐, 기존의 유실방지책 미흡에 따라 미수습자 시신이 이미 유실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제기와는 무관하다. 이와 관련해 권영빈 세월호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은 “세월호 선체 인양의 근본 목적은 미수습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사고 원인 규명의 중요한 증거물인 선체를 훼손 없이 확보하는 것”이라며, “향후 인양 과정에서 이중 어느 한 쪽이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에 대비해 현 시점에서의 선체 상태를 객관적인 기관에서 확인해 둠으로써 향후 책임 추궁의 잣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특조위의 기본 입장이므로, 인양 업체가 선체를 실제로 부양시키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특조위 차원의 수중촬영을 해수부에 지속적으로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월의 마지막째주 월요일.

청년참여연대와 공익활동가 17기 친구들이 함께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저녁 10시쯤 도착한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엔 찬바람이 가득했지만 도란도란 앉아서 이야기하며 몸을 녹일 수 있는 곳이 참 감사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제 전기매트가 깔렸다곤 하지만 추위를 이겨가며 소녀상을 지키는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우선 유족들이 머무는 방에서 몸을 녹인 저희는 저녁 11시부터 세월호 농성장 당직 서시는 분들이 이용하시는 천막카페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곳에서 세월호 당시에 들었던 감정들, 굳이 너가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농성장 당직을 나온 이야기 등을 나눴습니다. 


무엇보다 오늘 나오신 대부분의 분들은 큰 대의도 있지만, 내가 불편해서 내가 화가 나니깐 나오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행동들을 어떻게 할 지도 가볍게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모두의 의견을 모은 것은 아니지만, 2월엔 노란리본 만들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3월엔 팽목항 가는 버스에 올라 현장에 가보고 4월엔 2주기 관련 집회에 참석하기로 하였습니다. 


무언가 당장 큰 일을 할 순 없지만, 청년참여연대 회원님들께서 함께 참여해주시면 그들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진실을 인양하라고. 우린 아직 잊지 않았다고.

 

20160125_평화분과_세월호농성장당직 (1)

20160125_평화분과_세월호농성장당직 (2)

20160125_평화분과_세월호농성장당직 (3)

20160125_평화분과_세월호농성장당직 (4)

20160125_평화분과_세월호농성장당직 (5)

 

진실을 인양하라!

수, 2016/01/27- 17:28
367
0
  295명이 주검으로 돌아왔고, 9명은 여전히 그 날 그 바다에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의 계절을 지나 2016년 오늘,...
금, 2016/04/15- 19:58
366
0
[취재 요청]
 
2016.6.22.(기자회견 2건을 안내합니다.
 
❚ 전교조 주최 기자회견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 촉구와 4.16 세월호 참사 800일 계기수업 선포 기자회견
    ❍ 2016.6.22.(오전 11광화문 세월호광장
    ❍ 문의송재혁 전교조 대변인 (010-4690-2670)
 
❚ 민주교육과 전교조 지키기 전국행동’ 주최 기자회견
    교원 노동기본권 보장 입법 촉구 기자회견
    “20대 국회는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시대적 책임을 다하라!”
    ❍ 2016.6.22.() 13시 국회 정문 앞
    ❍ 문의 유현경 평등교육실현을위한서울학부모회 대표
                  (010-8212-5650)
 
※ 기자회견 자료는 현장에서 배부하며동시에 전교조 홈페이지 보도자료 게시판에 탑재하고 기자님들께 메일로 전송하겠습니다.
 
화, 2016/06/21- 22:16
365
0

이번 '몸살'에는...

-지난 6월 10일 하늘나라로 간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오렌지가 좋아에 대한 이야기

-다산인권센터 신입활동가 아샤의 인사글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몸살 2015년 4,5,6월호 다운받기 


몸살56.pdf




* 아래 '공감' 버튼, 페이스북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화, 2015/06/30- 13:03
364
0

지난해 4월 16일, 해경 123정보다도 4분 앞선 오전 9시 26분에 세월호 참사 현장에 도착했던 B703기가 해경 지휘라인의 지시 없이 자체적으로 위급 상황이라는 판단에 따라 이동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B703은 고해상도 영상수집 장치를 통해 당시 세월호의 상황을 어떤 구조세력보다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음에도, 해경은 당시 B703에게 세월호 내에 승객들 대부분이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반대로 B703기로부터 현장 정보를 보고받은 일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 전망이다.

“B703 임무와 활동 내역은?” 질문에 해경청장 등 ‘꿀먹은 벙어리’

12월 14일 서울 중구 YWCA회관 대강당에서 진행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첫날 일정은 참사 당일 해경 구조세력들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특조위원들 17명 가운데 여당 추천 위원 5명이 전원 불참한 가운데, 증인석에는 김석균 당시 해양경찰청장과 김수현 당시 서해지방경찰청장, 김문홍 당시 목포해양경찰서장, 그리고 구속수감 중인 김경일 123정장 등 당시 해경의 주요 지휘라인들이 모두 출석했다.

▲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2015년 12월 14일)

▲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2015년 12월 14일)

이 자리에서 김서중 특조위원은 증인들에게 “사고 당시 B703은 오전 9시 26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123정보다도 4분이나 빨랐다. 더구나 구명벌 5개가 비치돼 있고 항공구조사도 탑승할 수 있게 되어 있음에도 세월호 구조에 투입시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이춘재 당시 해경 경비안전국장과 김석균 청장은 “B703은 고정익 항공기로 핵심 임무는 현장에 투입된 항공기들에 대한 관제이고 다음 업무는 현장 상황에 대한 수집 및 보고”라며 “당시 항공구조사는 탑승하지 않은 상태여서 구조업무에 나섰다 해도 구명벌 투하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 B703기와 같은 CN235기 자료사진. 35명이 탑승할 수 있고 구명벌 5개를 보유하고 있다.

▲ B703기와 같은 CN235기 자료사진. 35명이 탑승할 수 있고 구명벌 5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이 “그렇다면 B703으로부터 받은 현장 정보는 무엇이냐”고 묻자 김석균 청장 등 해경 간부들은 하나같이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러자 김 위원은 “특조위가 당시 B703 기장이던 강두성 경정에 대해 조사한 결과, 당시 B703은 중국 어선 정찰 업무를 하던 중 진도VTS의 교신 내역을 청취하고 자체적으로 위급 상황이라고 판단해 현장으로 이동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뉴스타파가 확보한 B703의 사고 당일 전보용지에 따르면 당시 B703은 오전 7시 18분 김포공항을 이륙해 서해상 중국어선의 활동 내역에 대한 순찰 활동을 벌이다가 오전 9시 15분에 세월호 사고 관련 ‘상황 수신’에 따라 현장으로 이동해 9시 26분에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특조위에 따르면 이때의 ‘상황 수신’이 해경 지휘라인의 공식적인 지시를 받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B703이 진도VTS의 교신 내용을 듣고 세월호가 위급하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움직였다는 것이다.

▲ 2014년 4월16일 B703기 서해해상 순찰 결과보고서

▲ 2014년 4월16일 B703기 서해해상 순찰 결과보고서

김서중 위원은 이어 “강두성 기장은 당시 해경 지휘라인으로부터 세월호와 관련한 어떤 정보도 직접 받은 것이 없으며, 만약 승객들 대부분이 선내에 있었다는 정보만 있었다면 자체 판단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직접 구조에 나섰을 것이라고도 진술했다”고 말했다.

B703도 123정도 “‘승객들 선내 체류 중’ 사실 전혀 몰랐다”

B703에 대한 특조위 조사 내용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이유는 참사 당시 해경이 세월호의 선내 상황을 어느 지휘라인에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구조세력을 통제했고, 이것이 현장에 도착한 어떤 구조세력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만든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 청문회의 대부분은 참사 당일 사고 접수 이후 해경 본청과 서해청, 목포서 등 주요 지휘라인 및 현장지휘정으로 지정된 123정 가운데 누구도 세월호와 직접 교신을 통해 선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경위가 무엇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참사 당일 오전 9시 6분 세월호와 직접 교신에 성공한 것은 진도VTS였다. 123정이 현장으로 이동하던 9시부터 9시 30분 사이 진도VTS와 세월호의 교신 내역에는 “배가 많이 기울어져서 승객들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즉, 승객들 대부분이 선내에 머물고 있다는 뜻이다.

장완익 특조위원은 123정이 이같은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현장에 도착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집중 추궁했다. 이와 관련해 유연식 당시 서해청 상황담당관은 “진도VTS에서 실시간으로 상황 보고를 해줘야 하는데 보고가 늦어졌다. 또 세월호 선장이 빨리 상황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일관했다.

이호중 특조위원은 “수난구호법을 보면 광역구조본부인 해경은 지역구조본부를 지휘감독할 책임이 있다”며 “세월호와 교신하고 있는 진도 VTS에게 교신 내용을 보고하라고 왜 지시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이춘재 당시 해경 경비안전국장은 “하급기관은 상급기관에 당연히 보고하는 것이므로 (보고가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특별히 지시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 위원은 또 “현장에 도착한 123정이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경 본청에 첫 보고를 했을 때 ‘명단 작성은 안 됐냐’고 되물었다는 것은, 구조를 제대로 하기보다는 윗선에 보고할 내용을 찾는 데만 급급했던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현장 투입 헬기 기장들, ‘방송장비 구비해야’ 운영 규칙도 몰라

구조 초기 시점에 현장에 투입됐던 또 다른 구조세력이었던 해경 헬기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김재전 당시 서해청항공단 B512 기장과 고영주 당시 제주청항공단 B513 기장은 하나 같이 “현장으로 이동해 구조할 때까지 접수받은 세월호 관련 정보는 전체 승객이 450여 명이라는 것뿐이었으며 선내에 대부분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특히 권영빈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이 “구조 대상에게 고지할 수단인 방송장비를 갖추지 않고 현장에 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들은 “헬기에는 방송장비가 본래부터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권 위원장이 “해경항공운영규칙 27조 6항에 따르면 수색구조에 참가하는 항공기는 생존자에게 정보전달이 가능한 통신장비를 설치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이런 규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라고 재차 따져묻자 이들을 비롯해 해경 지휘라인 증인들 모두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월, 2015/12/14- 21:35
36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