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고]수원시장이 팔아치운 것

지역

[기고]수원시장이 팔아치운 것

익명 (미확인) | 수, 2015/08/19- 16:24

지난 7월 어느 날 평상시와 달라진 것 없는데 개운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늠하지 못했는데 눈썰미 있는 이가 보내 준 사진 한 장을 보고, 불쾌함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도로 표지판이 달라져 있었다. 표지판에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 쓰여 있었다. 영문 표기는 ‘시립’ 조차 넣지 않은 ‘Suwon I Park Museum of Art’ 였다. 수원시의회는 5월 21일 미술관 운영조례를 통과시키며 명칭과 운영에 대해 빠른 시일 내 개정안을 상정하라는 단서 조항을 명시했었다. 시민들 반대에 부딪혀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후 몇 달 수원시는 현대산업개발 측과 성의 있는 대화를 진행한 흔적이 없다. 오히려 10월 개관 앞두고 ‘아이파크 미술관’이라는 명칭을 기정사실화하는 작업을 진행했을 뿐이다.

 

“그깟 이름이 뭐라고?” 양측이 똑같이 듣는 질문이다. 기업 이름도 아니고 고작 브랜드 이름을 시립미술관 명칭으로 밀어붙인 수원시나 이를 반대하는 이들 모두 말이다. 그러나 그깟 이름이 아니기에 몇 달째 씨름중인 것은 분명하다. 이름이 중요해지는 순간을 돌아보면,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일제시대 창씨개명 거부가 지금이야 숭고한 결단으로 존중받지만, 과거로 돌아가면 어땠을까? 창씨개명 선택하고 강요하던 이들 입장에서 그깟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며 지조 지킨 이들을 폄하하지 않았을까? “목숨보다 중요해? 자식새끼 앞날보다 중요해?”라고 하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 지나 보니 이름 지킨 것과 지키지 못한 것이 얼마나 큰 차이로 돌아오는가. 물론 ‘다카기 마사오’처럼 후대가 누리는 영광과는 무관한 일이다. 제대로 과거청산 된 사회가 아니니 말이다. 그러나 대통령조차 부친 과거 이름에 영향 받는 걸 보면, 이름이 ‘그깟’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IMF 즈음 한국사회 모든 가치가 돈에 사고 팔리기 쉬워진 어느 날, 대학건물 이름은 기업 브랜드로 바뀌기 시작했다. A관, B관, C관. 그와 동시에 밀고 들어온 프렌차이즈 업체들. 건물 지어주고 이름 하나 붙인 건데 무슨 상관있나 싶었다. 유명 상품들이 들어오니 나쁠 것도 없다 싶었다. 영세한 업주들이 눈물 흘리며 쫓겨났다. 그들 같은 규모로 다시는 호시절을 누리지 못하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리둥절 있어보니 공공기관들도 기업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범한 엄마나 아빠들이 들어 설 자리는 없어졌다. 장애인 재활을 위한다거나 명분을 만들지 않으면 시장은 열리지 않았다. 너무 스리슬쩍 당해버렸다. 문제제기 조차 없이, 그냥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여 버렸다. IMF라는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하루살이처럼 잘려 나갔다. 삶이 나락으로 추락할 때, ‘그깟’ 이름이 뭐가 대수였겠나. 그러나 돌아보니 알토란같던 모든 것은 거대한 공룡들이 모두 잡아 드시는 무림이 되어있었다. 돌이킬 수 없었다. ‘정상’질서가 되어 있었다.

2015년. 기업 이름도 아니고 기업이 파는 물건 이름을 공공기관에 갖다 붙인 첫 사례가 수원시에 탄생하게 되었다. 해괴한 일, 어디 전례가 있나 찾아 봤으나,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권선동에 아파트 지어 수천억인지 수조원인지 알 수 없는 이문 얻었으면 이익 환수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 기업이 지불하는 돈 몇 푼에 감지덕지…. 수원시장과 의회는 수원시와 수원시민의 낯을 뜨겁게 만들고 있다. 단지 이름이라고? 이름 아래 팔리는 것이 무언지, 역사를 돌아보라 조언할 뿐.

 

2015. 8. 18 경기일보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원시장이 팔아치운 것 

 

 

 

 

 

 

* 아래 '공감' 버튼, 페이스북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온 동네 다, 소문냈는데 아직 모르는 이가 있을까봐 한 자 적자면 “쉬고 있습니다, 쭉~”. 휴가다. 20년 넘게 인권운동하며 몇 달 쉬거나 여행 다니기도 했지만 365일이라는 알짜배기 하루하루를 선물받은 건 처음이다. 쉬기로 결심한 즈음에 심하게 휘둘리고 있었다. 인권이란 것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에 문제 있어 찾아오는 이들 삶이란 벼랑 끝이다. 벼랑 끝 사람들을 스무 해쯤 만나며 병이 쌓였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툭하면 눈물이 났고 툭 치면 다리가 꺾였다. 쉬어야겠다, 생각할 때쯤 세월호가 찾아왔다. 내 고통이 그들 고통보다 클까 싶은 생각에 또 달리게 되었다. 아픈 줄 알지 못했다. 의사 선생이 그랬다. “설사한 지 6년째네요. 죽고 싶으세요?”


논리가 없으면 예의라도 있어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들이 휴가 다녀온 것에 대한 언론의 논조가 우습다. ‘집회를 대리인들에게 맡기고 피서를 다녀왔다’ ‘농성의 절박함은 사라지고 이제 피서를 갈 정도로 ‘일상’이 된 것이다’라는 둥. 삼성 보도자료를 받아썼는지, 토씨 몇 개 바꾼 기사가 넘쳤다. 노는 처지에 노는 사람 변호에 나서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쏟았다. (왜 안그러겠나, 할 일도 없는데!)


글을 쓴 이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단 하루도 한뎃잠 자보지 않았을 것이다. 맨바닥 잠이란 도시의 소음과 진동을 온몸으로 받아안는 경험이다. 장마가 시작되면 속옷까지 곰팡이가 핀다. 햇살이 달궈놓은 보도블록 열기의 깊은 밤을 아는가. 새벽 4시쯤 나타나는 취객의 눈물은 얼마나 깊으며, 진상인지….


그런 것을 300일쯤 해야 하는 사람들의 동기란 무엇인지, 성찰도 고려도 없다. ‘삼성에 반대하기 위한 이유만 남았다’는 얄팍한 기사에는 논리도 없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다. 따뜻하거나 시원한 아랫목 놔두고 뭐가 좋다고 거리 잠을 청할까?


223명이 희귀질병에 걸렸다. 그중 76명이 죽었다. 반올림이라는 민간단체에 제보된 수만. 그런데 삼성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과도 피해자를 중심에 둔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여전히 돈이면 다 된다는 태도로 피해자들을 갈라치기하고 모욕한다.


이런 상황인데 농성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까? 과학과 의학이 반도체 백혈병의 위험성을 밝히지 못할 때, 내 딸이 죽었고 우리 아버지가 죽었다는 제보가 반올림의 싸움을 만들었다. 그런 이들의 비명을 외면하라고? 삼성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고작 그런 이유로 맨바닥에서 300일 잘 수 있는 체력과 인내심이 당신에게는 있는가?


인간이기에 존엄하게 살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눈감지 못하기에 버티는 시간에 대한 폄훼가 가당치도 않다. 그런 노고를 알기에 인권재단 ‘사람’의 활동가들이 ‘연대’했다. 반올림 활동가들이 쉬게 하기 위해 또 다른 활동가들이 바닥에서 잠자며, 할애한 시간이었다. 개돼지가 아니기 때문에 나눈 고통이었다. 타인의 아픔이 내 마음으로 전이되는, 외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말이다. 그것을 근대 시민혁명 이후 ‘박애’ ‘우애’ ‘연대’라 부른다. 누구들 언어로는 ‘외부세력’의 ‘불순한 의도나 침투’ 같은 것이겠지만.


그동안 굿럭!


누군가의 위험신호를 외면하지 못해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레드라이트를 끌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라도 쉬고 놀며 76명의 죽음을 잊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쨌든, 변명과 변호도 여기까지. 나는 당분간 ‘Thaad가 온다 할지라도!’ 스위치를 꺼두기로 했으니. 그동안 그대여, Good luck.


2016.7.28 한겨레 21 노땡큐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월, 2016/08/01- 09:50
238
0

오! 마이 어버이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은 서러움과 경고의 여운을 남긴다. 몇 살을 경계로 노인이 되는 것일까…. 자각 못하는 새 중년이 되었다. 그렇게 노년도 올 것임을 깨달았다. ‘밝고 빛나는 청춘’일 때는 몰랐다.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나서야, 청춘에 대한 찬사가 클리셰가 아님을 깨달았다. 한 발짝 늦게 알고 깨닫는 새,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소멸의 대가로 경험과 지혜를 선물받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을 보자. 사회학자와 정치인들이 나서 “사회보장 적자는 노인들 때문이며, 의사들이 노인을 살리는 것은 공익은 뒷전이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한 이윤 행위”라고 비난한다. 정부는 노인을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노인들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법적으로 제한되고, 수용소로 끌려가기에 이른다. 잡혀가기 직전 탈출한 주인공에 의해 반란이 조직된다. 그러나 정부의 바이러스 유포로 반란은 좌절된다. 살해당하는 순간 주인공은 말한다. “너희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


“65살은 괜찮아요. 70살은요? 손해의 시작이죠.” 손익분기점 위에 놓인 순간 늙음은 손해의 시작이다. 노인의 지혜는 계산에 포함되지 못한다. 생산으로부터 배제된 인간에 대한 경멸이 담겨 있다. 생산의 가능성을 가졌으나 아직 성장 중인 아동에 대한 오래된 ‘하대’ 역시 그 때문 아니던가.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물론 소비할 수 있는 노인은 예외다. 노인이라 불리지도 않는다. ‘박근혜’ ‘이건희’ 등의 고유명사는 ‘노인’이라는 일반명사에 포함된 적이 없다. 그들의 손익분기점은 늘 충만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노년은 폐지를 수렴하거나 가족에게 부양 책임이 된다. 육아와 가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남성 노인일 때는 어휴, 말도 하지 말자. 그래서 이렇게 되었을까? 충만함보다 박탈감이 앞섰기 때문일까? 애국심을 2만원으로 충분히 보상받았기 때문일까? 연일 신문 기사에 오르는 ‘어버이’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툭 튀어나온 말에는 혐오감이 담겨 있다. 캠페인 할 때 나이 든 남성 노인이 다가오면 본능적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욕설, 멱살이라도 잡히는 모욕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런 노인들에게 벌어진 일이다. 추문은 연일 이어진다. 아직 납득할 만한 해명조차 듣지 못했으나 새로운 사실이 쏟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청와대, 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진 커넥션. 서로 간의 변명은 책임 전가로 이어진다.


노인의 지혜를 들을 수 있는 사회였다면, 추잡한 스캔들 한가운데서 ‘어버이’이라는 이름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나서 국민을 이리저리 찢어놓으려 그 어버이들을 앞세우는 꼴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 마이 어버이’들이 연출하는 블랙코미디는 최악의 예능이다. 베르베르의 같은 소설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도서관이 되었을 그들의 자리를 훼손하는 국가와 돈 있는 자들의 탐욕을 단죄해야 한다. 노인들의 명예를 살해하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21/ '노 땡큐'/ 2016.5.2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오! 마이 어버이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수, 2016/05/04- 10:34
224
0

IMF 세대에 새로운 경험을 허하라

 

 

54b2ac6a373d992196a30a401b9763ce.jpg

김성욱 | 건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1세기를 전후하여 한국사회에서 1997년 12월 IMF 외환위기 만큼 전체 구성원에게 이토록 장기간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사건이 또 있었을까. IMF 위기는 미시적으로 개인 및 가구의 삶, 가치관과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거시적으로 노동시장과 가족구조, 그리고 더 나아가 복지국가 체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로 인한 충격은 20년이 지난 현재도 가족해체, 돌봄의 위기, 최고 수준의 경제적 자살, 소득불평등, 실질임금수준의 지속적인 하락, 계층 및 세대 간 갈등과 같은 형태로 분화되고 심지어 누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IMF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 이후 출생한 아이들은 현재 성인이 되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 대학생이거나 사회초년생들은 지금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의 연령에 도달해 있을 것이며, 기업도산과 구조조정 등에서 살아남은 당시의 4~50대들은 현재 노인이 되어 그 중 다수는 기초연금의 대상이 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기계적인 예상과는 달리 97년 이후 20년은 개인들에게 단순히 시간적 배열에 따른 자연스러운 생애과정을 허용하지 않은채 이전 세대가 경험한 위험을 다시 그 다음세대가 경험하는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는 20년 전 청년세대나 중장년세대가 경험한 경제위기의 충격과 고통이 20년 후 그들이 자녀세대인 현재의 청년 또는 중장년 세대에게 그 형태를 달리한 채 전승되고 있음을 쉽게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20년이다. 몸 한 자리의 고통이 하루만 지속되어도 참기가 힘들 터인데, 몸 전체가 20년 간 아파왔지만 문제는 원인도 대책도 아직 잘 모른다. 무엇보다도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지 못할뿐더러, 내 자식도 똑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잔인하다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1997년은 아직도 변하지 않고 진행 중이다.

 

하지만 변하는 것도 있다. 입 다물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강압을 변태적으로 즐기던 자들에게, 복지과잉이 망국의 지름길이라며 한 달 전기세 앞에 두고 목숨 끊는 이들의 마지막 길 마저 외면하던 자들에게, 부모의 능력을 자랑하며 가난한 자를 모욕하던 자들에게, 열아홉살 비정규직을 추모하는 포스트잇과 손에 든 초의 구매출처를 수사하라는 자들에게, 최저임금이라도 주라는 CF 광고에 손가락질 하는 자들에게, 자기편이 아닌 모든 자는 빨갱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자들에게, 국민에게 용서를 빌 게 없다는 부끄러움 따윈 개나 줘버린 정치인들과 박 전 대통령에게 시원하게 손가락 하나 날려주고 보니, 우린 어쩌면 느리더라도 세상이 조금씩은 나와 내 자손이 살기에 더 나은 곳으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 같은걸 본 건 아닐까.

 

이제 대중들은 다른 경험을 해야 할 것이다. 생각을 내 목소리로 표현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교실 내 억압을 사회에 그대로 투영한 채 숨죽여 살던 개인들에게 광장에서 소심하게나마 구호라는 걸 외쳐보도록 하는 경험을 넘어서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가 법으로 또 제도로 실현되어 그것이 밥이 되고 나무가 되고 깨끗한 물과 동네 친구가 되어 세상을 풍요롭게 했다는 경험 말이다. 그래서 세상이 나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바뀐다고 나라가 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와 내 자손, 이웃이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에 살 수 있었음을 회상하고 추억하고 두고두고 자랑하게 해야 한다. 새로운 꼰대주의를 만들어줘야 한다. 야근을 당연하게 여기며 주말에도 회사 야유회에 다니고 부장의 이삿짐을 날라줬다며 아랫사람을 나무라는 그런 꼰대 말고 말이다.

 

일, 2017/01/01- 17:15
222
0

 그 많던 노동자는 어디로 갔을까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10년 전쯤 알아주지 않는 싸움이 하나 있었다.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 노동자 싸움. 그 동네에서는 어떻게 다뤘는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모르는 일이었다. 알게 된 건 부산 가서였다. 생경했던 무인매표기. 아직 수도권에 일반화되지 않은 무인매표기가 사람을 대신하고 있었다. 교통카드는 무용지물이고, 지폐는 물리고, 동전은 없고…. 물어볼 사람조차 없는 매표기 앞에서 생각했다.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딸기밭에 가보았을까?


부산교통공사는 정규직 공무원의 매표 업무를 용역회사에 넘겼다. 파견노동자들이 일을 맡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사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파견노동자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일방적이었다. 그들 자리는 무인매표기로 채워졌다. ‘나도 이런 지경인데 교통 약자라 불리는 노인, 어린이, 이주민과 관광객은 어떻게 대처할까…?’ 기계는 온기만 없는 게 아니었다. 대답도 없었다.


인공지능과 바둑 싸움에서 인류가 4번 지고, 1번 이겼다. 넘치는 말 중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은 두려움이다. 인공으로 만든 것에 압도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다. ‘부.지.매’(부산지하철 매표소 노동자)라 불리던 그들이 궁금해졌다.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금꽃 나무>의 김진숙 글 속에 그들은 이렇게 등장한다. “마흔일곱에도 해고자로 남아 있는 제가 20년 세월의 무력감과 죄스러움을 눙치기 위해 스물일곱의 신규 해고자에게 어느 날 물었습니다. 봄이 오면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 내게도 저토록 빛나는 청춘이 하루라도 있었다면… 볼 때마다 꿈꾸게 되는 맑은 영혼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원피스 입고 삼랑진 딸기밭에 가고 싶어요. 적개심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닌… 그 순결한 꿈이 이루어지는 봄이길….”


정규직 업무를 비정규직 파견노동으로 채우고 비용을 이유로 무단으로 해고하는 세상에서 이제 중고가 되었을, 스물일곱 해고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삼랑진 딸기밭에는 가보았을까?

인공지능에 패배한 인류는 공포에만 젖어 있지 않다. 영민한 자본은 희망을 연출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나누어주고, 기계화된 편리한 세상이 더 풍요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가능한 일일까. 기계 문명이 유토피아를 열어줄까. 이미 넘치는 편리와 이익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는 세상이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의 말대로 ‘잘못된 분배가 빈곤을 낳는 것’이지, 자원의 부족이 빈곤을 낳는 것은 아니다.


틀린 ‘수’ 쓰는 시스템


사람 없는 무인매표기 앞에서는 아는 게 없고, 가진 게 없을수록 더디고 서럽다. 새로운 것이 생산될수록 불평등의 골은 깊어진다. 비용의 이름으로, 효용의 명분으로 버려지는 인생이 즐비하다. 승부 이후, 정부는 ‘AI(인공지능) 종합육성정책’을 발표하고 투자 금액도 늘릴 계획이라 한다. 아뿔싸… 인공지능에 패배한 것보다 두렵다. 여전히 틀린 ‘수’를 쓰고 있는 시스템 때문이다. 알파고를 앞세운 혁신의 시작과 끝에 여전히 ‘체제’가 있다. 공포도 희망도 새롭지 않은 ‘사람’ 말이다.


2016. 3. 25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그 많던 노동자는 어디로 갔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화, 2016/03/29- 10:38
217
0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최규석의 만화 <송곳>을 보는 내내 아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손색없는 꼰대들의 하나 마나 한 조언이 유일한 정답인 현실에서 어떤 이들은 부당함을 참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떠밀린 그곳이 벼랑 끝이었기에 시대의 한복판으로 나왔다. 내가 아는 ‘송곳’의 ‘이수인’… 들은 그랬다. 허세 가득한 비겁하고 지리멸렬한 세상에서, 유독 송곳처럼 삐져나와버린 사람들.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책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들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기억났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이수인들, 고구신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부진노동상담소의 ‘고구신’도 아는 사람이었다. 풀처럼 단단히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모래처럼 쓸려나가는 현실을 ‘참지 말라’ 조언하는 사람. 그 운명들이 어떻게 부서지는지 번번이 보면서 그럴 때마다 ‘참으라 할 것을 그랬을지 모른다’고… 쓴 소주를 마른 위장에 부으며 스스로 벌주는 사람. 모든 신호등이 꺼져 있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차들 사이에서, 사람이 있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달리는 그곳에서,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토끼나 고라니 같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그이들의 두려움이 온몸을 흔들어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웃으면서 먼저 걸어가야 하는 사람. 그런 얼굴도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내 얼굴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수인’들과 ‘고구신’들은 남다르게 정의롭고 대단히 훌륭하지만은 않다. 그들은 자주 무능하고 가끔 무모하며 지나치게 경직되었거나 적당히 비겁하기도 했다.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권력의 정점보다 옆의 비루한 동료들을 더욱 경멸하기도 했다. 눈 감고 고개 돌리면 나 하나는 지킬 수 있는 세상과 자신의 거리를 좁혀주는 빌어먹을 지혜를 늘 주머니에 챙기고 다녔다. 주머니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지면 떠나기도 했다.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이들은 세상을 등졌다. “또 도망쳐야 하나? 도망쳐서 온 곳이 여긴데 다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저 밖 어딘가에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을까?” 그러나 떠나든 등지든, 남든 ‘웰컴 투 더 리얼 월드’를 만난 이후 ‘이수인’들에게 세상은 이전과 같은 세상일 수 없다.

<송곳>은 헌법에만 있는, 지키려 악을 써야만 지킬 수 있는 노동3권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착하고 순수한 인간 말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그냥 인간.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을 깨달은 인간,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우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두드려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거야. 이토록 부당한 세상에서 모두 왜 침묵하는지 견딜 수 없어”라고 절망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섬에서 탈출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


푸르미 노조 조끼를 입은 ‘이수인’과 노동자들, 그리고 ‘고구신’이 당신에게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그들이 이겼는지 졌는지 알 수 없으나 다른 섬이 되어줄 준비가 된, 어떤 이들이 있다는 것만은 믿게 될 것이다. “섬에서 탈출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다른 섬의 존재다. 가능하면 더 나은 섬.”


2015. 5. 28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한겨레 21] 송곳



* 아래 '공감' 버튼, 페이스북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화, 2015/06/02- 15:26
21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