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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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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진범

익명 (미확인) | 월, 2015/08/03- 11:02

 

 

4차례 자백한 진범이 잡혔는데도

 

일명 ‘약촌 오거리 택시 강도 살인사건’이라고 들어보셨는지. 2000년 8월10일 새벽 2시. 택시기사 유씨는 사납금도 훌쩍 넘게 번 운수 좋은 날,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 짜장면을 후루룩 마셨을 것이다. 손님이라 생각하고 경적 울리며 어떤 이를 태웠다. 약촌 오거리로 가자던 손님은 강도로 돌변했다. 유씨는 10여 군데 칼에 찔려 운명했다. 병원으로 달려갔던 아내는 “그 진동하던 피비린내를 무슨 말로 표현할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라고 지금도 말한다. 범인으로 15살 소년이 체포됐다. 최성필(가명). 소년은 처음부터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절규했다. 그러나 모진 고문이 있고 나서 “죄송합니다. 내가 택시기사를 죽였습니다”라고 자백했고, 별다른 증거 없이 10년을 감옥에서 살았다.

 

3년 뒤 진범 김모씨가 체포됐다. 그는 “나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최성필에게 미안하다”며 4차례 자백했다. 진범 아니면 불가능한 진술도 했다. 사건 당일 그를 숨겨준 친구 임모씨 진술도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검찰은 살인범을 풀어주었다. 자신들이 가둔 범인이 감옥에 있는데, 이를 번복하면 따라올 책임이 두려웠을 것이다. 결국 소년은 10년을 꼬박 채우고 감옥에서 나왔다. 이제 서른이 넘었다. 살인자라는 낙인을 안고 살았다. 그는 재심을 청구했다. 피해자 유가족도 재심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가는 2년 넘도록 대답이 없다. 공소시효는 곧 끝난다.

 

이 사건은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로 알려진 무기수 김신혜의 담당 변호사 박준영에 의해 세상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함께 작업한 박상규 기자가 여론을 일구고 있다. 두 사건 모두 우리 삶이 얼마나 허당인지,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것이 나라인가’라는 낙망에 이르게 한다. 발밑에 숭숭 구멍 뚫린 체제와 제도를 깨닫게 한다. 두렵다, 그렇다 두려움이다. 15살 소년의 일생과 허기진 배로 살아보려 애썼던 한 가장과 그의 가정을, 국가는 매정히 버렸다.

 

 

휴먼드라마 아닌 잔혹영화

 

“전 제 자신을 포기했어요. 다음 생애에 태어나면 달라지겠죠.” 몇 해 전 <한겨레21> 기획 연재 ‘인권 OTL’ 중 ‘일터로 내몰린 이주·탈북 청소년들 이야기’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후 목소리가 잊혀진 적이 없었다. 포기하도록 내몰린 삶들. 오롯이 개인이 짊어져야 하는 삶들. 최성필은 “계속 맞았어요. 울면서 내가 안 죽였다 애원해도 소용없었어요. 자신들이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저를 때렸어요”라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국가정보원 사찰 소문과 최성필의 울부짖음이 오버랩된다. 진범을 잡아야 한다. 예승이 바보 아빠 이야기는 휴먼드라마가 아니라 잔혹영화였다.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그렇다. 8월9일 공소시효 만료 전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 하기는 인권운동가 박래군마저 감옥에 가두는 세상… 민주주의를 심폐 소생할 시간도 별로 남지 않았다.

 

2015. 7. 29 한겨레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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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모르겠다. 지나는 사람들의 종종거리는 발걸음이 더욱 시려 보이는 것은. 몇 십 년 만에 찾아 온 한파에 대한민국 곳곳이 얼어붙었다. 빙판이 된 거리, 날지 못하는 비행기, 얼어버린 세탁기 배관과 터져버린 보일러들. 영하의 추위에 얼어붙은 한국사회는 재난이 닥쳐오면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함이 탄로 났다. 복지, 사회적 안전망, 안전과 그 비슷하게 불리 우는 수많은 따뜻함의 조건들은 이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온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국가적 재난에도, 갑자기 바뀌어버린 날씨에도 안전하지 못한 사회는 개개인의 삶과 안녕을 지켜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두말하면 지겨운 이야기가 되었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광화문 한 가운데, 하이디스 농성장의 그/녀들이다.




▲ 민주노총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26일 공장을 폐쇄하고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와 먹튀자본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민중의 소리 정의철 기자)


광화문 한가운데 그/녀들의 이야기

“4조 3교대였어요. 주말에 휴가도 동료들과 시간을 맞춰서 가야했어요. 트러블도 있었죠. 3교대, 4조 3교대, 그러다가 다시 주간. 이렇게 일을 하다보니까 한 15년을 계속 일하고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취업으로 들어간 첫 직장이었어요. 이렇게 짤리고 나니까, 지금은 공장만 다시 돌리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어도, 다시 배우고, 다시 일하고 싶어요. 3교대로 일했지만 그때가 행복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행복했던 걸 몰랐던 것 같아요.”

34살 효선 씨가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하이디스에 취업 한 그녀는 15년의 세월을 하이디스와 함께했다. 하이디스는 그녀의 일상이었다. 가끔은 휴가를 맞추기 위해 동료들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고된 일과가 끝나고 시원한 맥주한 잔에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3교대 근무에 피곤함이 몰려와도 매달 쌓이는 통장의 월급에 웃음이 피어올랐을 것이다.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는 길을 15년 동안 걸으며, 오늘과 다르지 않은 평온한 일상을 보냈을 그녀였다. 하지만 평온함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한 순간. 그녀와 그녀의 동료 330여명은 공장에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330여명의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 그 늘어선 이름들의 의미는 늘 반복되던 일상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330여 명 중 109명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희망퇴직을 신청 했어요. 그리고 희망퇴직하지 않은 인원 78명을 정리해고 했어요. 원래는 현대 하이디스였는데, 중국의 BOE 하이디스로 분할 매각되었죠. 그때도 중국에서 중요한 핵심 기술은 다 빼갔어요. 그 다음에는 대만의 영풍그룹으로 넘어갔어요. 시설투자나 설비투자는 하나도 없었죠. 핸드폰 액정 관련한 특허권이 있는데 대만 영풍 그룹은 특허권만 쏙 빼가고, 공장을 폐쇄한데요. 몇 차례 해외로 매각되면서 중요한 기술들은 쏙 빠져나가고, 결국에는 노동자들만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죠.”

지난 10여 년간 하이디스는 수차례 국적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대만으로. 회사는 이윤의 논리에 따라 국적을 바꾸고, 국적의 변화에 따라 핵심기술들은 하이디스를 떠나갔다. 현재 하이디스의 실소유주인 대만의 이-잉크 자본(영풍그룹 계열사)은 특허기술을 외부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매년 몇 백억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시설과 설비투자는 없이 앙상한 공장을 만들어갔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이 핵심기술을 빼가고, 몇 십 년을 일한 노동자들의 삶을 거리로 내모는데도, 노동자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한국 정부기관은 없었다. 노동자들 스스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대만 영사관이 있는 광화문 한복판에 농성장을 차리고, 대만으로 원정 투쟁을 떠났다.


낯선 나라에서의 환대

“저는 2,3차 원정투쟁에 함께 갔어요. 원정투쟁은 대만에 하이디스 상황을 알리고, 영풍그룹을 압박하려는 거였어요. 만나서 협상이라도, 아니 면담이라도 해달라는 바람이었죠. 저는 대만에서 15일인가, 16일인가 만에 강제출국 당했어요. 정말 낯선 곳이었는데 대만 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한국에서도 잘 모르는 사안인데, 대만 분들은 자기 일처럼 함께 해줬어요. 영풍그룹이 그랬다는 것에 같이 화내주고, 정리해고 때문에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더 미안해했어요. 한국정부에서는 외면하지만 대만에서의 따뜻함에 너무 고마웠어요.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근데 다시 갈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억울함을 알리고, 호소하기 위한 원정투쟁이었다. 영풍그룹에 상처받은 마음에 대만의 시민들은 따뜻한 온기와 환대를 보내주었다.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연대.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자본에 맞선, 국경 없는 노동자/시민들의 연대였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향후 몇 년간은 대만에 입국하지 못한다. 대만 입국 자체가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자본은 국경의 벽을 허물었지만, 저항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국경의 벽은 견고했다.
 
언제까지 할 거예요?

“사람들이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물어봐요. 나는 앞으로 1년을 더하고 싶어요. 근데 모르겠어요. 법원 판결등도 남았으니까. 그거 끝날 때까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니까 포기할 수 없어요. 아직 내가 원이 풀릴 만큼 싸워보지 못한 거 같아요.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작년에 사랑하는 동료를 먼저 보내기도 했어요. 배재형, 제가 참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나중에 내가 하늘나라 가게 되면 잘 했다고 칭찬 듣고 싶게. 그렇게 싸우고 싶어요. 적어도 꿀밤 맞지는 말아야죠. 그리고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버틸 수 있어요.”

지난해 5월 하이디스에 배재형이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먹튀 자본의 정리해고는 소중한 목숨마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노동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고통, 그것이 정리해고의 본뜻일 것이다. 누군가는 삶을 포기했지만, 회사는 이 끔찍한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희망퇴직을 받아놓고, 그 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희망퇴직을 했을 시 주는 위로금의 액수도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도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쉽지만은 않은 시간들이다. 추운 겨울바람보다 더 매서운 것은, 노동자들을 끝으로 밀어 붙여버리는 회사와 법이었다. 330여명의 정리해고가 발표된 시점부터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시간은 멈췄다. 아무리 회사의 경영과 법이라 한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희망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결코 옳은 경영과 법이 아닐 것이다. 법과 이윤의 잣대로 노동자의 삶을 재단하기에는 그들의 삶과 일상은 너무도 소중하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소박하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일하는 것. 국가의 주요한 기술을 유출하지 말고, 함께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이 외침을 외면하는 국가를 대신해서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추운 겨울을 농성장에서 보내고 있다. 국가가 외면한 곳에 동료들의 온기와 타국에서 보내온 연대의 훈훈함이 넘쳐흐른다. 제발 이 엉터리 국가가 노동자들의 외침을 듣기를. 그들이 스스로를 돌보기 이전에 이 사회가 모진 삶에 치인 이들을 먼저 막아주는 안전망이 되기를. 그리고 이 겨울이 끝자락으로 가기 전 에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든 일터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2016년 2월 1일 미디어스

랄라(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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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하이디스, 그/녀들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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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6/02/04-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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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온 동네 다, 소문냈는데 아직 모르는 이가 있을까봐 한 자 적자면 “쉬고 있습니다, 쭉~”. 휴가다. 20년 넘게 인권운동하며 몇 달 쉬거나 여행 다니기도 했지만 365일이라는 알짜배기 하루하루를 선물받은 건 처음이다. 쉬기로 결심한 즈음에 심하게 휘둘리고 있었다. 인권이란 것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이기 때문에 문제 있어 찾아오는 이들 삶이란 벼랑 끝이다. 벼랑 끝 사람들을 스무 해쯤 만나며 병이 쌓였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툭하면 눈물이 났고 툭 치면 다리가 꺾였다. 쉬어야겠다, 생각할 때쯤 세월호가 찾아왔다. 내 고통이 그들 고통보다 클까 싶은 생각에 또 달리게 되었다. 아픈 줄 알지 못했다. 의사 선생이 그랬다. “설사한 지 6년째네요. 죽고 싶으세요?”


논리가 없으면 예의라도 있어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들이 휴가 다녀온 것에 대한 언론의 논조가 우습다. ‘집회를 대리인들에게 맡기고 피서를 다녀왔다’ ‘농성의 절박함은 사라지고 이제 피서를 갈 정도로 ‘일상’이 된 것이다’라는 둥. 삼성 보도자료를 받아썼는지, 토씨 몇 개 바꾼 기사가 넘쳤다. 노는 처지에 노는 사람 변호에 나서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쏟았다. (왜 안그러겠나, 할 일도 없는데!)


글을 쓴 이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단 하루도 한뎃잠 자보지 않았을 것이다. 맨바닥 잠이란 도시의 소음과 진동을 온몸으로 받아안는 경험이다. 장마가 시작되면 속옷까지 곰팡이가 핀다. 햇살이 달궈놓은 보도블록 열기의 깊은 밤을 아는가. 새벽 4시쯤 나타나는 취객의 눈물은 얼마나 깊으며, 진상인지….


그런 것을 300일쯤 해야 하는 사람들의 동기란 무엇인지, 성찰도 고려도 없다. ‘삼성에 반대하기 위한 이유만 남았다’는 얄팍한 기사에는 논리도 없지만,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다. 따뜻하거나 시원한 아랫목 놔두고 뭐가 좋다고 거리 잠을 청할까?


223명이 희귀질병에 걸렸다. 그중 76명이 죽었다. 반올림이라는 민간단체에 제보된 수만. 그런데 삼성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제대로 된 사과도 피해자를 중심에 둔 보상도 하지 않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여전히 돈이면 다 된다는 태도로 피해자들을 갈라치기하고 모욕한다.


이런 상황인데 농성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갈까? 과학과 의학이 반도체 백혈병의 위험성을 밝히지 못할 때, 내 딸이 죽었고 우리 아버지가 죽었다는 제보가 반올림의 싸움을 만들었다. 그런 이들의 비명을 외면하라고? 삼성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라고? 고작 그런 이유로 맨바닥에서 300일 잘 수 있는 체력과 인내심이 당신에게는 있는가?


인간이기에 존엄하게 살기 위해 타인의 고통을 눈감지 못하기에 버티는 시간에 대한 폄훼가 가당치도 않다. 그런 노고를 알기에 인권재단 ‘사람’의 활동가들이 ‘연대’했다. 반올림 활동가들이 쉬게 하기 위해 또 다른 활동가들이 바닥에서 잠자며, 할애한 시간이었다. 개돼지가 아니기 때문에 나눈 고통이었다. 타인의 아픔이 내 마음으로 전이되는, 외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말이다. 그것을 근대 시민혁명 이후 ‘박애’ ‘우애’ ‘연대’라 부른다. 누구들 언어로는 ‘외부세력’의 ‘불순한 의도나 침투’ 같은 것이겠지만.


그동안 굿럭!


누군가의 위험신호를 외면하지 못해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레드라이트를 끌 시간이 필요하다. 잠시라도 쉬고 놀며 76명의 죽음을 잊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쨌든, 변명과 변호도 여기까지. 나는 당분간 ‘Thaad가 온다 할지라도!’ 스위치를 꺼두기로 했으니. 그동안 그대여, Good luck.


2016.7.28 한겨레 21 노땡큐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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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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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6/08/01-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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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어버이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은 서러움과 경고의 여운을 남긴다. 몇 살을 경계로 노인이 되는 것일까…. 자각 못하는 새 중년이 되었다. 그렇게 노년도 올 것임을 깨달았다. ‘밝고 빛나는 청춘’일 때는 몰랐다.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나서야, 청춘에 대한 찬사가 클리셰가 아님을 깨달았다. 한 발짝 늦게 알고 깨닫는 새, 노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 소멸의 대가로 경험과 지혜를 선물받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을 보자. 사회학자와 정치인들이 나서 “사회보장 적자는 노인들 때문이며, 의사들이 노인을 살리는 것은 공익은 뒷전이고 고객을 잃지 않기 위한 이윤 행위”라고 비난한다. 정부는 노인을 위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노인들에 대한 의료서비스가 법적으로 제한되고, 수용소로 끌려가기에 이른다. 잡혀가기 직전 탈출한 주인공에 의해 반란이 조직된다. 그러나 정부의 바이러스 유포로 반란은 좌절된다. 살해당하는 순간 주인공은 말한다. “너희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이다.”


“65살은 괜찮아요. 70살은요? 손해의 시작이죠.” 손익분기점 위에 놓인 순간 늙음은 손해의 시작이다. 노인의 지혜는 계산에 포함되지 못한다. 생산으로부터 배제된 인간에 대한 경멸이 담겨 있다. 생산의 가능성을 가졌으나 아직 성장 중인 아동에 대한 오래된 ‘하대’ 역시 그 때문 아니던가. ‘인간’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필요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 물론 소비할 수 있는 노인은 예외다. 노인이라 불리지도 않는다. ‘박근혜’ ‘이건희’ 등의 고유명사는 ‘노인’이라는 일반명사에 포함된 적이 없다. 그들의 손익분기점은 늘 충만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노년은 폐지를 수렴하거나 가족에게 부양 책임이 된다. 육아와 가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남성 노인일 때는 어휴, 말도 하지 말자. 그래서 이렇게 되었을까? 충만함보다 박탈감이 앞섰기 때문일까? 애국심을 2만원으로 충분히 보상받았기 때문일까? 연일 신문 기사에 오르는 ‘어버이’들을 보며 만감이 교차한다.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 툭 튀어나온 말에는 혐오감이 담겨 있다. 캠페인 할 때 나이 든 남성 노인이 다가오면 본능적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욕설, 멱살이라도 잡히는 모욕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그런 노인들에게 벌어진 일이다. 추문은 연일 이어진다. 아직 납득할 만한 해명조차 듣지 못했으나 새로운 사실이 쏟아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청와대, 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진 커넥션. 서로 간의 변명은 책임 전가로 이어진다.


노인의 지혜를 들을 수 있는 사회였다면, 추잡한 스캔들 한가운데서 ‘어버이’이라는 이름을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나서 국민을 이리저리 찢어놓으려 그 어버이들을 앞세우는 꼴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 ‘오! 마이 어버이’들이 연출하는 블랙코미디는 최악의 예능이다. 베르베르의 같은 소설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다.” 도서관이 되었을 그들의 자리를 훼손하는 국가와 돈 있는 자들의 탐욕을 단죄해야 한다. 노인들의 명예를 살해하는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한겨레 21/ '노 땡큐'/ 2016.5.2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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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이 어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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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6/05/04-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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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많던 노동자는 어디로 갔을까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10년 전쯤 알아주지 않는 싸움이 하나 있었다.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 노동자 싸움. 그 동네에서는 어떻게 다뤘는지 모르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모르는 일이었다. 알게 된 건 부산 가서였다. 생경했던 무인매표기. 아직 수도권에 일반화되지 않은 무인매표기가 사람을 대신하고 있었다. 교통카드는 무용지물이고, 지폐는 물리고, 동전은 없고…. 물어볼 사람조차 없는 매표기 앞에서 생각했다.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딸기밭에 가보았을까?


부산교통공사는 정규직 공무원의 매표 업무를 용역회사에 넘겼다. 파견노동자들이 일을 맡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공사는 비용 절감을 이유로 파견노동자들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일방적이었다. 그들 자리는 무인매표기로 채워졌다. ‘나도 이런 지경인데 교통 약자라 불리는 노인, 어린이, 이주민과 관광객은 어떻게 대처할까…?’ 기계는 온기만 없는 게 아니었다. 대답도 없었다.


인공지능과 바둑 싸움에서 인류가 4번 지고, 1번 이겼다. 넘치는 말 중 가장 많이 읽히는 것은 두려움이다. 인공으로 만든 것에 압도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다. ‘부.지.매’(부산지하철 매표소 노동자)라 불리던 그들이 궁금해졌다. 기계에 일자리를 빼앗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소금꽃 나무>의 김진숙 글 속에 그들은 이렇게 등장한다. “마흔일곱에도 해고자로 남아 있는 제가 20년 세월의 무력감과 죄스러움을 눙치기 위해 스물일곱의 신규 해고자에게 어느 날 물었습니다. 봄이 오면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 내게도 저토록 빛나는 청춘이 하루라도 있었다면… 볼 때마다 꿈꾸게 되는 맑은 영혼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원피스 입고 삼랑진 딸기밭에 가고 싶어요. 적개심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닌… 그 순결한 꿈이 이루어지는 봄이길….”


정규직 업무를 비정규직 파견노동으로 채우고 비용을 이유로 무단으로 해고하는 세상에서 이제 중고가 되었을, 스물일곱 해고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삼랑진 딸기밭에는 가보았을까?

인공지능에 패배한 인류는 공포에만 젖어 있지 않다. 영민한 자본은 희망을 연출한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노동을 나누어주고, 기계화된 편리한 세상이 더 풍요로운 세상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 그러나 가능한 일일까. 기계 문명이 유토피아를 열어줄까. 이미 넘치는 편리와 이익이 제대로 분배되지 못하는 세상이다.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의 말대로 ‘잘못된 분배가 빈곤을 낳는 것’이지, 자원의 부족이 빈곤을 낳는 것은 아니다.


틀린 ‘수’ 쓰는 시스템


사람 없는 무인매표기 앞에서는 아는 게 없고, 가진 게 없을수록 더디고 서럽다. 새로운 것이 생산될수록 불평등의 골은 깊어진다. 비용의 이름으로, 효용의 명분으로 버려지는 인생이 즐비하다. 승부 이후, 정부는 ‘AI(인공지능) 종합육성정책’을 발표하고 투자 금액도 늘릴 계획이라 한다. 아뿔싸… 인공지능에 패배한 것보다 두렵다. 여전히 틀린 ‘수’를 쓰고 있는 시스템 때문이다. 알파고를 앞세운 혁신의 시작과 끝에 여전히 ‘체제’가 있다. 공포도 희망도 새롭지 않은 ‘사람’ 말이다.


2016. 3. 25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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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노동자는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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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6/03/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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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최규석의 만화 <송곳>을 보는 내내 아는 얼굴들을 떠올렸다. 손색없는 꼰대들의 하나 마나 한 조언이 유일한 정답인 현실에서 어떤 이들은 부당함을 참지 못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떠밀린 그곳이 벼랑 끝이었기에 시대의 한복판으로 나왔다. 내가 아는 ‘송곳’의 ‘이수인’… 들은 그랬다. 허세 가득한 비겁하고 지리멸렬한 세상에서, 유독 송곳처럼 삐져나와버린 사람들.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다 책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들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기억났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이수인들, 고구신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부진노동상담소의 ‘고구신’도 아는 사람이었다. 풀처럼 단단히 뿌리내리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모래처럼 쓸려나가는 현실을 ‘참지 말라’ 조언하는 사람. 그 운명들이 어떻게 부서지는지 번번이 보면서 그럴 때마다 ‘참으라 할 것을 그랬을지 모른다’고… 쓴 소주를 마른 위장에 부으며 스스로 벌주는 사람. 모든 신호등이 꺼져 있는,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차들 사이에서, 사람이 있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달리는 그곳에서, 도로에 갑자기 뛰어든 토끼나 고라니 같은 사람들의 손을 잡고, 그이들의 두려움이 온몸을 흔들어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웃으면서 먼저 걸어가야 하는 사람. 그런 얼굴도 떠올려보았다. 어쩌면 내 얼굴을 가장 먼저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수인’들과 ‘고구신’들은 남다르게 정의롭고 대단히 훌륭하지만은 않다. 그들은 자주 무능하고 가끔 무모하며 지나치게 경직되었거나 적당히 비겁하기도 했다.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권력의 정점보다 옆의 비루한 동료들을 더욱 경멸하기도 했다. 눈 감고 고개 돌리면 나 하나는 지킬 수 있는 세상과 자신의 거리를 좁혀주는 빌어먹을 지혜를 늘 주머니에 챙기고 다녔다. 주머니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지면 떠나기도 했다. 무게를 견디지 못했던 이들은 세상을 등졌다. “또 도망쳐야 하나? 도망쳐서 온 곳이 여긴데 다시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저 밖 어딘가에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곳이 있을까?” 그러나 떠나든 등지든, 남든 ‘웰컴 투 더 리얼 월드’를 만난 이후 ‘이수인’들에게 세상은 이전과 같은 세상일 수 없다.

<송곳>은 헌법에만 있는, 지키려 악을 써야만 지킬 수 있는 노동3권에 대한 이야기다. 또한 “착하고 순수한 인간 말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그냥 인간.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존중이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을 깨달은 인간, 빼앗기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서 싸우는 인간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두드려도 세상은 변하지 않을 거야. 이토록 부당한 세상에서 모두 왜 침묵하는지 견딜 수 없어”라고 절망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섬에서 탈출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


푸르미 노조 조끼를 입은 ‘이수인’과 노동자들, 그리고 ‘고구신’이 당신에게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그들이 이겼는지 졌는지 알 수 없으나 다른 섬이 되어줄 준비가 된, 어떤 이들이 있다는 것만은 믿게 될 것이다. “섬에서 탈출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다른 섬의 존재다. 가능하면 더 나은 섬.”


2015. 5. 28 한겨레 21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한겨레 21] 송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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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5/06/0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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