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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하늘로 올랐다. 그가 죽음을 곁에 두고 사경을 헤맸던 317일, 경찰도 검찰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피해사실에 대한 부인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오후 2시경 이미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안치될 장례식장을 새까맣게 에워싸고 있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 규명을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고 했고, 경찰과 검찰은 부검 영장을 청구했다. 우리가 1년 가까이 익히 알고 있었던, 경찰의 집회·시위 진압과정에서 한 농민이 물대포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인권침해를 풀어가는 첫 단추는 피해사실의 인정이다. 그러나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시점부터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경찰은 한 번도 피해사실도,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민중총궐기 진압 현장의 총지휘를 맡았던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 청장은 작년 11월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물대포를) 쏟아붓다 보니 생긴 불상사”로 사건을 규정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더 나아가 “영상이 공개됐지만,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피해사실을 부인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진상조사단을 꾸렸다고 하지만 외부로 공개된 사실은 없었다. 다만,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현장의 책임자인 기동단장은 영등포 경찰서장으로, 당시 경비국장은 강원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뿐이다.
밝혀지지 않은 지휘책임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지 300여 일이 지난 9월 12일, 15만 시민들의 청원으로 가까스로 국회 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경찰 총책임자였던 강신명 경찰청장에서부터 구은수 전 경찰청장 그리고 살수차 조작 경찰관까지 증인으로 섰다. 백남기 농민을 겨냥했던 충남살수 9호를 조작한 경찰이 현장에 투입된 것은 처음이며, <살수차운영지침>에 따라 사람을 향해 직사살수 할 때 가슴 밑을 겨냥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시야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살수차 안에서 감으로 액셀을 밟으며 수압을 조절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마땅히 밝혀져야 할 것들이 밝혀지지 않았다. 지휘책임이다. 당시 <살수차운용지침>에 따라서 경고살수와 직사살수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조준 살수 명령은 없었는지, 직사살수 명령은 누가 내렸는지 어느 지휘관도 살수차 조작 경찰도 제대로 진술을 하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고 2시간이나 지나서야 사고를 파악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과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현장의 사고상황을 제때에 보고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지휘 공백은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진술은 없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서린교차로를 담당하고 있었던 현장 기동단장이 왜 현장 상황을 즉각 파악해 긴급구호 조치를 할 수 없었는지, 직사살수 명령을 본인이 직접 내린 것인지 아닌지도 모호했다.
그런데도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법적 책임이 가려지면 그때 가서는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진정한 사과는 책임자 처벌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인간적인 사과의 의미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사과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공식적인 사과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국제인권규범에서 ‘공식적’ 사과는 사실인정과 책임수용을 포함한다. 그 책임은 책임 있는 개인들에 대한 사법적·행정적 제재까지도 의미한다.
국가의 인권침해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불처벌(impunity)’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인권 침해에 대해 어떤 조사도 되지 않고 법률상 또는 사실상 인권침해자의 책임추궁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위임받은 국가의 권력은 힘이 세다.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집행하는 경찰력도 힘이 세다.
우리는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지 꼭 1년이 되는 그 날, 바로 그 장소에서 ‘우리가 백남기’라며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다시 섰다. 그 힘센 공(公)의 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고서도 처벌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생명을 위협해도 된다는 ‘무사통과’ 신호를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경찰이 시민들을 보호하지 않고 물대포를 동원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가로막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보호받고 승진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위험하다. 그래서 백남기 농민의 생명을 앗아간 공(公)의 권력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우리가 모두 백남기가 되어 끝까지 싸울 수밖에.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16년 3호(통권 58호)에 실린 글입니다.
국제앰네스티는 150개국에서 활동하는 세계최대 인권단체 입니다. 앰네스티가 수많은 국가의 인권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캠페인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세계 700만명의 회원 및 지지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20년 가까이 활동해 온 독일지부 회원이 한국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성별. 나이, 사는곳, 언어가 달라도,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이들을 위해 펜을 들어온 앰네스티의 오랜 회원이 여러분에게 보내는 메시지, 지금 확인해보세요.

ⓒ 권은비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되었던 뮌스터대학 송두율 교수를 위한
탄원 활동을 벌였고, 이후 독일로 돌아온 송교수와 만났습니다.
탄원 캠페인을 했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아서인지
그가 겪은 고초를 들었던 그 밤을 잊지 못합니다.– 한스 부흐너 –
한국의 앰네스티 회원분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한스 부흐너(Hans Buchner) 입니다. 독일지부 회원이자 지난 19년간 남북한 공동그룹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올해 그 직함을 내려놓고 다시 보통의 회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대표직함을 내려놓고 다시 그룹회원으로 돌아가는 올해, 한국을 위해 활동해온 지난 20년의 시간을 짧게나마 나누고 싶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독일지부에는 뮌헨의 남한 그룹과 베를린의 북한그룹이 있었습니다. 두 그룹의 회원들이 1998년 11월 모임을 갖고 남북한을 위한 활동그룹을 만들었어요. 그 해는 한국에서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해라 더 선명히 기억나네요.
뮌헨에 10명, 베를린에 2명 등 많지 않은 회원으로 구성되었지만, 함께 탄원편지를 쓰는 것 이외에도 <Korea konzentriert>이라는 계간 뉴스레터를 만드는 등 한국에 대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독일 의회 의원부터 대학까지 다양하답니다.
제가 맡았던 대변인은 그룹 대표와 같은 의미입니다. 기자, 의회,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문의가 있을 때 남북한그룹의 공식 연락창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룹 내 월간 모임도 열고, 그룹 구성원간 역할을 조정하기도 하구요. 한국소식을 모니터링 하고 회원들과 공유하기도 한답니다. (한국의 그룹활동과도 저희와 비슷한가요?)
아마 제가 20년이나 그룹의 대표역할을 한것이 놀라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이렇게 오래 맡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원래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나 문화, 사회 발전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기소 당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독일인이지만 독일에 대해서만 활동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인권상황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앰네스티의 활동방식도 저의 생각과도 잘 맞았구요. 저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상당히 만족스러웠어요. 그래서 이렇게 오랬동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편지 덕분에 다시 힘을 내게 되는 것이 앰네스티 활동인 것 같습니다. 어느날인가 연대편지를 보냈던 한 수감자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 누군가는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편지를 받게 될 때마다, 좌절하거나 포기할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활동의 의미가 더 뚜렷해지곤 했어요.
뮌스터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송두율 교수와의 만남도 기억에 남습니다. 송 교수는 2003년 한국을 방문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되었고, 우리 그룹은 그를 위해 탄원편지를 보내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독일로 돌아온 그는 나와 내 아내를 베를린의 한 한인 식당에 초대해 탄원 활동을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탄원 캠페인을 했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게 되는 일이 흔치 않은데, 그래서인지 그가 겪은 고초를 들었던 그 밤을 잊지 못합니다.
최근 지난 20년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바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수 주의 걸친 촛불 시위입니다. 오랜 기간 한국을 지켜 봐왔던 사람으로서 가장 감명 깊었습니다. 전세계 민주주의의 표본이 되었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저는 조만간 대표 자리에서 물어납니다만 그룹 활동은 계속 할 생각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노동자의 책’이라는 전자도서관을 운영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진영씨를 위한 탄원에 참여했고, 독일지부가 수여하는 인권상후보에 한국의 박래군 활동가를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조만간 한국의새정부가 들어서는 대로 다시 탄원을 보내는 활동을 재개할 것입니다. 한국의 사형제 폐지 요청이 그 첫 번째가 될 것 같습니다.
새정부가 시작된 한국에서 인권 증진을 기대해 봅니다. 그 길에 독일의 남북한 공동 그룹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잊지 말아주세요. 고맙습니다.
2017. 04. 06
한스 부흐너 드림
이스라엘은 지난 50년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회-시위를 원천 금지해 왔다.
8월 27일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평화적인 정치적 의견 표현을 금지하는 ‘명령 101호’를 발부한 지 50년째를 맞는 날이다. 이 명령을 위반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 또는 무거운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제 50년이 된 명령 101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기간만큼이나 오래된 조항이지만 여전히 서안지구의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적용될 수 있다.
이처럼 가혹한 군법 조항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 네 가지 사실을 통해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행사의 목적이 정치적인 경우나, 행사 중에 정치적인 주제 또는 그렇게 여겨질 만한 연설을 하거나 논의하는 경우라도 반드시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1967년 이후로 이스라엘은 군법에 따라 여성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수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을 체포, 구금했다. 그중 다수가 정치적으로 보이는 평화적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명령 101호가 적용되어 체포되었다.
팔레스타인 인권옹호자인 파리드 알 아트라시(Farid al-Atrash)와 이사 암로(Issa Amro)는 현재 이스라엘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에게 적용된 다수 혐의 중 하나는 “무허가 행진에 참여”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국제적으로 형사범죄라고 인정되지 않는 혐의다. 두 사람은 2016년 2월 26일,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안에 불법으로 정착촌을 조성하고 있는 것과 헤브론 구시가지에 차별적으로 이동 제한을 부과하고 있는 것에 반대하며 평화적인 행진을 벌였다.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와 함께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비롯해 이스라엘이 당사국으로 있는 다수의 인권조약에도 명시되어 있는 권리다.
지난 50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포스터를 방에 붙이거나,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고 구금되었다.
1993년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이러한 행위는 범죄로 처벌되고 있다.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 팔레스타인은 유엔 비회원 참관 국가 지위를 획득했고, 135개국 이상의 유엔 회원국에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군 지휘관의 허가 없이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거나, 방에 ‘부적절한’ 포스터를 붙이는 것은 여전히 이스라엘 군법상 범죄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현재 군사재판이 진행 중인 이사 암로(Issa Amro)는 ‘무허가 시위’에 참가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행위로 해석되기 때문에 범죄라는 것이다.
대다수 팔레스타인 정당과 학생회가 이러한 불법 단체에 속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깃발을 흔들거나, 찬송가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단체’로 간주한 정당 또는 학생회 또는 노조를 지지할 경우, 명령 101호에 따라 체포될 수 있다.
기자와 학생, 교사, 농부, 정치인, 운전기사까지 팔레스타인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이 명령에 따라 체포, 구금되고 고문과 부당대우를 받기도 한다.
전 양심수 바셈 타미미(Bassem Tamimi)는 2012년 11월 6일, 이스라엘 정착촌을 반대하는 평화적 시위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징역 4개월과 5천 셰켈(당시 환율로 미화 1,280달러)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법원은 이에 더해, 사전형량조정(plea bargain)을 통해 이미 3년 형을 선고하고 집행유예 3개월도 부과했다. 바셈 타미미는 명령 101호를 위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전형량조정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군사법원에 선 팔레스타인 사람은 사실상 모두 유죄를 선고받으며, 대부분의 경우 사전형량조정을 거쳐 형이 선고됐다. 팔레스타인 피고인들은 사법제도 자체가 매우 불공정해 그대로 재판을 받을 경우 더욱 무거운 형량이 선고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 통제와 인권침해방지책 없는 테러방지법 시행령(안)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5년 11월에 있었던 대규모 집회 주최자라는 이유로 실형 3년과 벌금 50만원을 선고받고 수감중입니다. 그가 수감되고 일년 사이 대한민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접견과 서신을 통해 한상균 전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아래는 한상균 전 위원장의 서면 인터뷰를 요약/편집 하였습니다.
출소하면 백남기 농민을 찾아뵙고, 어르신의 투쟁이 세상을 깨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곡차를 올리고 싶습니다
2016년 12월 13일, 그로부터 일년 전 있었던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이하, 민중총궐기)를 두고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시위대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고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차벽과 물대포는 정당하다’는 항소심 재판이 있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검찰과 1심 재판부를 비호한 판결을 내렸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습니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민중총궐기가 폭도로 마침표 찍힌 지 1년만에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고 들불처럼 타올랐습니다. 1년 전과 같았던 집회신고 행진코스에 대해 법원은 정당한 권리라며 주권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토록 내어주지 않았던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턱밑까지 말입니다.
출소하면 백남기 농민을 찾아뵙고 어르신의 투쟁이 세상을 깨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곡차를 올리고 싶습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노총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한국사회의 한 축이 아니라
정치적 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IMF이후 20년 동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 끝에 노동삼권단결권, 단체권,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되었고,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 힘의 균형은 완전히 기울어졌습니다. 비정규직은 늘어만 가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월 200만원 이하 노동자가 500만 명이나 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교섭하고, 사측의 부당한 대우에 파업이라는 유일한 무기로 맞서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라고 국제노동기준에도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파업권을 행사하면서 해고나 구속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 노동 삼권의 완전한 회복, 최저임금 만원과 더불어 주 40시간 이상 초과 노동할 수 없도록 해야하고, 위험하든 안전하든 상시적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바꾸기 위해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현실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은 넘쳐납니다. 실제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단결이 필수적입니다.
2016년 11월 @Amnesty International
아빠의 무등을 타고 끝없이 파도치는 위대한 촛불을
맑은 눈망울 속에 담은 아이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분노와 절망이 우리 스스로를 이 땅의 주인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위기는 또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촛불을 들었던 경험이 앞으로 닥칠 위기에서 또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화석처럼 굳어있던 정치신념의 뿌리가 전 세대와 지역에서 허물어졌습니다. 아빠의 무등을 타고 끝없이 파도치는 위대한 촛불을, 맑은 눈망울 속에 담은 아이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성장할 것이기에 대한민국이 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찬 이유입니다.
@Amnesty International
동료와 가족들의 죽음을 멈춘 것은 연대의 손길이었습니다
저는 쌍용차 해고자이자 28명의 동료와 가족들을 하늘로 보낸 상주입니다. 해고는 살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죽음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저항은 ‘살고 싶다’는 절규였고, 함께 아파하고 도움의 손길, 연대의 손길은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유엔, ILO, OECD, 국제노총, 국제노동단체, 앰네스티, 인권운동가, 석학 등 국제적 연대는 잔혹한 자본독재에 맞서 당당히 싸워갈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도 한국 대사관을 찾아 항의하며 야만 국가로 남을 것인지,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설지를 선택하라 압박해 주셨습니다.
민주노총도 국제사회와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노동이 존중되는 윤리적 소비자 운동 등 실천활동을 강화하려 합니다.
그리고 국제앰네스티의 따뜻한 연대와 지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80만 민주노총 전 조합원의 마음을 담아 뜨거운 동지애를 전합니다. 한국사회 민중의 봄을 함께 만들고 있는 앰네스티는 영원한 동지입니다.
저를 포함해 노동탄압에 맞서 싸우다 구속된 많은 동지들은 감옥에서, 법정에서, 노동자답게 싸우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주권자 스스로 지켜내지 않는다면,
위임 받은 권력은 언제든지 스스로를 주인이라 생각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투쟁!
2017년 2월23일
춘천교도소에서 한상균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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