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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보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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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보내는 길

익명 (미확인) | 월, 2015/06/15- 15:47

다산인권센터의 자원활동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을

지난 6월 12일 하늘로 보내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떠나보는 길 함께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사진은 박김형준님이 촬영해 주셨습니다.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의 명목을 빕니다.ⓒ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떠나 보내는 길 ⓒ박김형준




고 엄명환(오렌지가좋아)님 연혁

1981년 9월 18일 출생(만 33세)

1996년 샘터야학 입학
1998년 샘터야학 학생회장 역임
1999년 샘터야학 졸업
2007년 장애인직종개발을 위한 입법청원서 운동
2008년 촛불 시민으로 광우병, 한미FTA, 의료민영화 반대 활동 참여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시작(2015년 현재까지 활동)
2009년 쌍용자동차 공권력 감시단 활동, '희망의 인문학' 공동운영자,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자원활동시작

           (2015년 현재까지 활동)
2010년 제2회 화성과 사람들 그룹전

           장애청소년과 함께하는 '하늘 달리기' 사진스탭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열린 안로브(아시아 산재피해자 권리 네트워크)

           연례회의 참석
2011년 부천 은빛날개 어르신 영정 사진봉사(2011, 2012년)

           기초법개정공동행동 참가
           희정 작가 르포 <삼성이 버린 또하나의 가족> 사진 제공 
2012년 신장병환우를 위한 모임 서울경기방 총무(2014년까지 역임)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사진전 사진 제공
2013년 방통대 미디어영상학과 입학
           '오렌지가 좋아'의 반올림 사진전 - 또 하나의 가족을 만나다

           제5회 화성과 사람들 그룹전

          기초법개악저지 빈곤문제해결을 위한 민생보위 위원
2014년 밀양 공권력 감시단 활동
           '오렌지가 좋아'의 <그날의 기억을 기억하다> 사진전

           4시간 16분 동안의 전시 그룹전

           제6회 화성과 사람들 그룹전

           김태윤 감독 영화 <또하나의 약속> 사진 삽입

           홍리경 감독 <탐욕의 제국> 출연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 사진전

           삼성백혈병 항소심 승소 기념 촬영
           골목잡지 <사이다> 사진작가로 참여(2015년 5월까지)
2015년 사회다큐사진집단 비주류사진관-제1회 페북 사진전 '세월호' 전

           광화문 4.16 기억·진실· 약속 안전의 거리 전시회 참여


2015년 6월 10일 14시 40분 영면에 들다

몇 줄의 말들로 정리 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거리와 삶이 치이는 현장에서 렌즈로 세상을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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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오렌지가 좋아’(이하 오렌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랫동안 신장병으로 투석을 받았던 그였기에, 때로는 일을 부탁하러, 때로는 그의 안부를 물으러 그에게 전화를 했더랬다. 그 날도 현장에 인터뷰를 가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했던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낯선 목소리는 오렌지가 쓰러졌고, 아주대학교 중환자실에 누워있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낯선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이야기들. 어쩌면 오래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닥친 그 시간은 너무도 낯설었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모습(사진=다산인권센터)

          

2주 동안 오렌지는 병실에 누워있었다. 아주대병원에 지인을 만나러 와서 급작스레 심정지가 왔다고 했다. 만약 아주대병원으로 오는 버스 안이었으면, 집이었다면, 아마도 며칠 지나서야 그의 소식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병원에서 쓰러져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다. 늘 친절했고, 배려심이 많은 그였기에 주변 사람들이 마음을 준비할 시간을 주려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평생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을 고단한 자신에게 주는 마지막 휴가였을지도 모른다. 늘 곁에 있어왔지만 오렌지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그가 오래도록 신장병을 앓아왔다는 것, 혼자 살고 있다는 것, 기초생활수급자라는 것,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생활해 왔는지, 8년의 시간동안 친구로 지내왔지만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오렌지가 누워있는 2주 동안 가족을 만났고, 오렌지가 다녔던 샘터 야학 사람들을 만났고, 신장병 환우회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분주히 돌아다니며 마음을 내어주고, 셔터를 눌러 기억해주던 사람들을 만났다. 어쩌면 오렌지가 누워있는 2주는 자신 주변에 떨어져 있던 모든 이들을 연결해주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함께 기억해달라고, 함께 아파해달라고 그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아봐달라고 말이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모습(사진=다산인권센터)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렌지가 살아온 삶의 퍼즐 조각을 맞춰갔다. 초등학교 4학년 신장병이 시작되었고, 투병으로 인해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야학에서 어렵사리 공부를 이어갔다는 샘터 야학의 기억. 기초생활 수급자로 당사자 운동을 해왔던 빈곤 활동가들의 기억. 2008년 한미FTA, 광우병 촛불에 나오며 현장 사진가로 살아왔던 다산인권센터의 기억,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사진을 찍고 같이 아파했던 반올림의 기억. 신장병 환우회 카페에서 조언을 해주고, 의료민영화에 맞서 싸웠던 기억. 골목잡지 사이다에서 객원기자로 일하며 수원을 누볐던 기억. 그리고 오렌지가 뛰어다녔던 수많은 현장의 기억들이 하나로 모아졌다. 2주 동안 35년을 살다간 오렌지의 퍼즐 조각들을 맞추고 나서야, 진짜 오렌지가 보였다. 그리고 퍼즐조각이 다 맞춰질 즈음, 6월 10일 오후 2시 40분 오렌지가 떠났다.

오렌지의 가방은 늘 무거웠다. 카메라, 노트북, 외장하드 등 늘 한 짐 가득 가방에 짊어지고 다녔다. ‘제발 좀 가볍게 하고 다니라’고 잔소리를 해도 그 때 뿐이었다. 현장을 담아야했고, 편집을 하고, 기록해야겠기에, 오렌지의 가방은 늘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렌지는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현장으로 향했었다. 쌍용차, 밀양, 용산, 세월호 등 시시각각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내동댕이쳐진 이들을 사진으로 담았다. 가끔은 경찰들에게 연행 될 뻔하기도, 몸싸움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현장을 기록하느라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 다른 이들의 눈물과 아픔, 삶을 기록하려 수천/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자신은 영정사진을 할 만한 변변한 사진 한 장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포즈를 요구해야 할 오렌지가 하얀 꽃에 둘러싸인 영정사진 속에 있다는 게 제자리를 찾지 못한 것처럼 어색하기만 했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모습(사진=다산인권센터)

          

늘 카메라를 들이대는 오렌지였다. 가끔은 그만 좀 들이대라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오렌지가 다산인권센터 자원 활동가를 시작한 이후 몇 년간 나의 기록 역시도 오렌지의 렌즈에서 나왔다. 다산인권센터의 활동과 오렌지가 관계 맺었던 수원지역 많은 단체의 활동을 기록해주고, 기억해주는 것, 오렌지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제는 남은 이들이 오렌지를 기억해주고, 기록해줄 차례였다. 쓰러진 이후 카페에 있는 오렌지 사진을 긁어모으고, 개인 SNS에 있는 사진과 기록을 모았다. 그리고 오렌지가 지나쳐간 발자국들을 따라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오렌지와 관계 맺고 있었다. 그리고 오렌지의 기록에 고스란히 우리가 남겨져 있었다. 그렇게 분주하게 기록하느라, 함께 하느라 아픈 몸 돌보지 못했구나. 미안함이 밀려왔다.

오렌지가 떠나는 마지막 날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오렌지가 생전에 다니고, 만났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억하고, 추모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모였다는 것, 이렇게 많은 이들이 슬퍼하고, 아파했다는 것을 오렌지는 알고 있을까? 오렌지가 늘 모두와 함께 했듯 마지막 떠나는 여행길 외롭지 않게 많은 이들이 동행이 되어주었다. 오렌지가 늘 지나던 행궁길 골목, 다산인권센터 사무실, 저 멀리 보이는 서장대. 잊지 말라고, 그리고 하늘에서도 길 잃어버리지 말고 찾아오라고 영정 사진 가득 담아주어 보냈다.

사람이 한 줌의 재가 되는 시간은 1시간 30분에서 2시간. 한 많은 세상을 살아온 이들이 떠나는 시간은 살아온 시간이 길던, 짧던 그 시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 평생 온전히 살아온 육신이 재가 되는 순간은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러닝 타임과 비슷하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을 영화 같다 하는지도 모르겠다. 6월 10일, 35년을 살아 온 오렌지의 영화가 끝났다. 오렌지가 떠나는 마지막 많은 사람이 울었다.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모르겠다. 그저 열린 결말쯤, 평생 잊히지 않을 영화라고 해두자. 오렌지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오렌지를 기억하고 함께하니 말이다.


▲ '오렌지가 좋아' 활동가의 화장 전 활동했던 다산인권센터를 찾은 모습(사진=박김형준)


2015. 6. 16 미디어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늘 '현장'을 누비던 오렌지의 '휴가'를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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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6/1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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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소년이 있었다.


물놀이하다 발에 난 작은 상처는 아이의 온몸을 독으로 덮었다. 죽음의 고비를 넘었다. 겨우 살아난 소년은 후유증으로 콩팥이 망가졌다. 다행히 신장을 이식했지만 하루 걸러 하루, 피를 걸러내는 투석과 합병증이 따라붙었다. 병은 몸을 괴롭혔고 병원비는 가족을 괴롭혔다. 소년은 어린 나이에 가족과 헤어져 사는 길을 선택했다. 수급자가 되어야만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홀로 상경한 소년은 혹독한 시간을 보냈다. 병원 식당 같은 곳에서 새우잠도 잤다. 그러나 야학을 찾았고 검정고시를 보았다. 걷기조차 힘든 자신이 싫어 검도를 배우다 사범까지 했다. 소년은 참 열심히 살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소년이 청년이 되었을 때 만났다. 2008년 가을이었는지 겨울이었는지, ‘수원 촛불’을 찾아왔다. 환자로서 수급자로서 의료민영화를 반대해서 거리에 나왔다 했다. 투석하는 팔뚝은 엄청나게 두꺼웠다. 팔뚝은 굵어졌지만 심장 쪽 혈관은 좁아지고 있었다. 투석환자들에게 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질환 중 하나였다. 심장에 인공적인 시술을 두 번이나 했지만 버티지 못한 심장이 정지했다. 좁아진 혈관으로 흐르지 못하는 피가 심장에 닿지 않았다. 2주일간 기계를 달고 누워 있었다. 마침 나라에는 중동에서 넘어온 ‘메르스’라 불리는 전염병이 창궐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누군가 ‘어륀지’라는 발음으로 국민들 영어 발음 교정에 나서 헛웃음을 산 적이 있었다. 청년은 ‘오렌지가 좋아’라는 별칭을 쓰기 시작했다. ‘어륀지’가 아니라 ‘오렌지’가 좋다는 저항이었다. 우리는 그를 그냥 오렌지로 부르게 되었다. “오렌지! 다산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 해볼래?” 인연은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지원 반올림 활동, 빈곤 당사자 운동까지 그를 안내했다. 해고된 노동자, 쫓겨난 철거민, 산재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의 현장을 다녔다. 사진을 배우고 싶다 했다. 수급비를 알뜰히 모아 카메라를 샀고 방송통신대에 입학했다. 이후 그와 그의 무거운 사진기는 어느 현장에나 있었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고 황유미의 황상기 아버님은 그의 카메라가 있어 삼성 본관 앞에서 경찰과 삼성 경비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다 했다. 그는 소박하나마 개인전을 두 번 치른 작가도 되었다.

그런데 어제 오렌지가 죽었다. 거짓말처럼 떠났다. 함께 활동한 동료뿐 아니라 야학 교사, 방통대 동기, 동료 사진작가와 시민사회 선후배들이 장례식장을 찾았다. 34살,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살았기에 더 아픈, 더 살리고 싶었던 슬픔이 흐른다. 그러나 누구보다 가까운 환우회 동료들은 찾아오지 못한다. 그에게 사회적 의식을 최초로 심어준 양어머니도 오지 못한다. ‘메르스’ 때문이다. 치사율이 낮아 만성질환자가 아니라면 걱정하지 말라는 ‘메르스’는 그들에게 치명적이다. 반올림 피해자들도 올 수 없다. 정부가 통제 못한 전염병은 오렌지와 같은 이들에게 괜찮지 않다. 아플수록 보호받지 못하고 가난할수록 병들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은 도대체 얼마나 괜찮지 않은가.

어수선하게 장례 치르다, 정신 차려보니 노 땡큐 마감이다. 나누던 이야기 잦아들고 모두 잠든 시간 글 앞에 앉았다. 동료들의 숨죽여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엄명환. 외롭지 않게 가는구나. 가난과 병, 모두 어깨에 짊어졌으나 너는 지지 않았다. 씩씩하게 살아줘서 고맙다. 잘 가라, 오렌지!


2015. 6. 18 한겨레21 [제1066호]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잘 가라,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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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5/06/19-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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