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고] 명환아, 오렌지야... 너 참 잘 살다 갔구나

지역

[기고] 명환아, 오렌지야... 너 참 잘 살다 갔구나

익명 (미확인) | 월, 2015/06/15- 13:09



오렌지야, 명환아.

너 때문에 청소 안 했던 것도 아닌데, 삼우제 마치고 돌아와 변기 밑까지 손을 넣어 닦았다. 너 때문에 미뤄뒀던 것도 아닌데, 세탁소에 맡길 겨울 옷들을 모두 꺼냈다. 몇 시간째 쓸고 닦고 꺼내고 넣고 수선을 피웠더니 모든 게 새삼스럽다. 그 사이 우리들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애써 생각하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는구나. 지난 몇 주, 네 심장을 대신하던 에크모(ECMO)와 깨어날 듯하던 순간들과 포기하던 순간들 간격이 너무나 짧았던 기억까지 모두….

임종의 시간과 장례를 시작하던 시간, 너를 찾아온 많은 이들의 눈물과 입관하러 들어가던 네 낯선 얼굴들까지 모두, 정말, 있었던 일인가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 네가 없다는 것. 그게 또 떠오르니 뭐 더 청소할 것은 없는지 두리번거리게 된다.

이별이란 원래 갑작스럽다 하더라. 준비된 이별이라고 느긋할 수 없다더라. 이별 앞에 후회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더라. 후회는 그래서 뒤늦다 하더라. 이렇게 말하게 돼서 미안하다. 잘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하다. 한 겨울 얼음 씹으며 와삭거리는 이유도 묻지 않았다. 다만 유별스럽다 생각했다. 묻기만 했어도 만성신부전증 환자들은 물 한 모금 벌컥 마시지 못해 얼음 씹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을 텐데 말이다.

전화 받지 않는 너를 구박했었다. 부탁한 일인데 책임감 없다 생각했었다. 투석이 얼마나 피 말리는 고통인지 좀 더 세심했으면 알았을 것이다. 괜찮다고 하니까, 진짜 괜찮다 생각하고 말았다. 무엇이든 눈을 빛내며 궁금해 했다. "박진, 이건 뭐냐?"고 늘 조심스레 물었다.

지나친 진지함과 남다른 따뜻함이 부담스러워 건성으로 대답했다. 뭐든지 오지랖이고 언제나 넘친다 생각했다. 12살에 걸린 병, 16살에 홀로 상경해 살아내기 위해 쌓은 조심스러움인줄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이 자상했던 것을, 사람들 추억을 통해 재구성하고 알았다.

그러지 말 것을... 부질없는 후회의 순간들



▲ 고 엄명환('오렌지가 좋아')님의 빈소 ⓒ 박김형준




각막과 장기 기증 딱지가 네 주민증에 붙어 있었다. '아무렴, 오렌지 답네…' 그런데 2주 동안 제 기능 하지 못한 장기는 남에게 줄 수 없는 상태였다. 숨넘어가던 순간 네 운명을 지키기 위해서 안구 적출 위한 수술대에 올리지 못했다. 살아온 삶만으로도 안구나 장기보다 더 많은 것을 남겼기에 네 유지를 받들지 못했다.

네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장례기간 내내 확인했다.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마웠고 너를 찾게 한 네 삶에 감사했다.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죽는가,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장례 오신 분들이 말했다. 죽는 순간까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런 네가 자랑스러웠다.

2008년 너를 만났다. 광화문 촛불 열기가 잠잠해졌던 때, 수원 작은 촛불에 찾아왔다. 신장병 환자며 수급자라 소개했다. 신장 이식 받았지만 다시 투석중이라 얘기했고 검도 사범이라 말했다. 의료민영화에 반대해서 나왔다 말했다. 꼬박꼬박 출석부에 도장 찍는 너를 보며 다산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 해 보지 않겠냐 물었다.

그러지 말 것을 그랬다. 그러지 않았다면, 네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꿈을 꾸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토록 거칠고 메마른 땅에 널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촛불 들다 사그러질 때 쯤 다른 흥미 거리 찾아 떠났을지 모른다. 네 한 몸 건사하며 하고 싶은 것 하며 살도록 했어야 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을 만나거나, 쌍용차, 용산, 안산, 세상의 모든 현장 속으로… 무거운 사진 가방 메고 이리 뛰고 저리 뛰지 않았을지 모른다.

지난 5월 1일과 2일 세월호 시행령 폐기 촉구 밤샘 집회 사이 캡사이신 흠뻑 맞는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 이후 붓기가 가라앉지 않는다 말했는데 그것도 깊이 듣지 못했다. 네 짧은 생에 기름을 부었던 것은 아닌지 아프다. 부질없는 후회의 순간이 너무 많다.

현장을 돌아다니다 피곤하면 피자 한판 먹고 잠든다 말할 때 눈치 챘어야 했다. 신장 환자는 피로하면 안 되고 짠 음식 피해야하는 것을 다 늦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가방 무게 줄이라고 잔소리 더 했어야 했고, 잠 못 잘 부탁은 하지 말아야 했다. 혹시라도 이렇게 떠나면 어떻게 해줘야 했는지 소상히 들어야 했다. 그 중에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구나.

네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 우리에게 남겨두렴



▲ 오렌지가 떠나기 전, 다산인권센터 앞에서 그의 동료들이 마지막 환한 미소를 짓는 모습 ⓒ 박김형준



지인 만나러 갔다 병원 벤치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2주간 깊은 잠에 든 너를 보며, 살려고 그랬나 싶었다. 살려고 오렌지가 병원에서 쓰러진 거야….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시간 동안 보고 싶은 사람들 불러 모으려고 그랬던가 보다. 좋아지는 소식 없이 조금씩 스러지는 네 생명의 시간들, 많은 이들이 다녀갔고 많은 이들이 치료비를 모아주었다. 회복을 기원했다.

쓰러진 지 딱 2주, 6월 10일 오후 2시 40분 영원히 깊은 잠에 들 때 쯤 깨달았다. 오렌지가 보고 싶은 이들이 참 많았음을.

"이 눔의 시키. 민중항쟁의 날 갔네…. 4시 16분…. 4.16시간에 맞추지는 못했네…. 그거 맞출려고 버텼을 거야, 오렌지 답다, 참…"

그렇게 우리를 한 번 더 웃게 해 주었다. 너는.

네 장례식은 발 디딜 틈 없었다. 다산인권, 인권교육 온다, 반올림 식구들, 수원촛불, 수원지역 선후배, 골목잡지 사이다, 인권활동가, 사진작가, 맘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 쌍차, 기륭전자, 삼성전자서비스, 금속노조 삼성지회, 민주노총, 아 뭐 그리 아는 사람들이 많던지… 네 덕분에 알게 된 샘터야학, 신장병 환우회(메르스 때문에 정작 제대로 병문안도, 조문도 못 온 이 분들이 가장 마음 아팠다).

아프고 병중이던 삶이 언제나 걱정과 근심거리였을 가족들에게 마지막 순간, 점수 모두 만회했기를…. 가수 박준씨는 추모제에 달려와 너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꽃다지의 '당부'였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아직 많으니. 후회도 말아라, 친구여. 다시 돌아간대도 우린 그 자리에서 만날 것을."

35살. 살아갈 날은 더 이상 없지만, 다시 돌아간대도 그 자리에서 만나게 될 수 있겠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거기 언제나, 누군가 분명히 있었음을 알게 해준 친구. 그래서 위대한 친구."

누군가 그러더구나. 너를 위한 추모제를 모두 마쳤을 때…. 사실 너는 그렇더구나. 영정들고 다산인권센터 사무실과 수원역, 네가 살던 집, 삼성전자 앞을 지날 때… 너를 모신 유골함 들고 납골묘로 걸어갈 때. 오렌지가 있었으면 이 모든 순간을 빨빨 뛰어다니며 기록했을 거야. 언제나 거기 있었기에 있는 줄도 몰랐던, 너의 부재를 하나씩 발견하며, 웃는 연습도 해야겠지.

참 열심히 살다간 친구, 참 치열하게 싸웠던 동지, 무수한 수식으로 장식할 수 있음을 보내고야 깨달았다. 고맙다. 오렌지. 네가 만들고 싶었던 세상, 우리에게 남겨두렴. 다시는 아프지도 말고 다시는 가난하지도 말고 다시는 외롭지도 않을, 그 세상에서 쉬고 있으렴. 연화장 추모의 집에서 그토록 마음 아파했던 단원고 친구들 만나면 사진 예쁘게 찍어주고… 세상이 그들과 너를 기억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해주렴.

고마웠다. 샘터 야학 작은 새 반 명환아, 신장 환우회 1등 팔뚝감 엄명환, 다산인권센터와 수원촛불, 반올림의 오렌지.

굿나잇 굿럭(Good Night Good Luck). 참 잘 살다 갔구나. 명환아, 오렌지야.


2015. 6. 15 오마이뉴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명환아, 오렌지야... 너 참 잘 살다 갔구나 



* 아래 '공감' 버튼, 페이스북 좋아요 한번씩 눌러주시면 

더 많은 분들께 이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다.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노조가 있었다면 그렇게 죽지 않았겠죠"

[기고] 삼성전자 서비스·에버랜드 노동자들, 반올림 대담 "이대로 살 수는 없어서 노조 만들었죠"

2016년 7월 14일, 농성 282일을 맞이한 반올림 농성장은 땀을 흠뻑 뺄 만큼 무더웠다. 삼성과 대화의 문을 열기위해 시작한 반올림의 농성이 가을, 겨울,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했다. 7월 28일 반올림 농성 300일 “삼성과 대화의 문을 열음” 문화제를 예정하고 있다. 그 사전행사로 7월 14일 목요일 저녁, 특별한 이들을 초대해 이어말하기를 진행했다. 무노조 삼성의 문을 두드린 이들. 삼성서비스노동조합 곽형수, 금속노조 삼성지회(에버랜드 노동조합) 조장희, 반올림의 임자운 활동가와 함께 삼성에서 노동조합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았다.


"저성과자 새벽 바다 입수, 극기훈련 시킨 적도… 바꾸려고 노조 만들었다"


삼성은 이병철의 유언에 따라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노동자의 권리를 외친다.


“정말 이대로 살 수 없어서요.” 삼성에 노동조합을 만든 이유를 묻자 삼성 서비스지회 부지회장 곽형수씨는 한마디로 답했다. 얼마 전 서비스 센터의 한 노동자가 작업 도중 추락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추락한 노동자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순간에도 삼성은 "미결수준 위험. 한건이라도 더 처리하라"는 문자를 직원들에게 보냈다. “같이 일했던 동료가 사경을 헤매고 있지만 알려주지 않아요. 일을 해야 하는 직원들이 혹시나 알까 쉬쉬하죠.” 성과를 위한 삼성의 태도는 잔혹했다.


그는 “CMI(고객 만족도 평가 지표) ‘매우 불만’이 뜨면 출근 안 하는 토요일, 아침 새벽 6시에 바다 입수를 하기도 하고, 산에서 극기훈련을 하기도 해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에는 연간 CMI 하락자들에게 고강도의 훈련을 시켰어요. 다녀 온 사람들은 해병대 캠프보다 더 힘들다고 하더군요. 직장인지 군대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고 말했다.


삼성은 사람의 가치가 돈보다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다. “더 이상 내 후배들, 동료들 죽어 나가는 거 나 몰라라 하고 혼자 살 수 없었어요. 같이 뭉쳐보자. 뭉쳐서 바꿔보자. 뭉치면 바꿀 수 있다. 그 힘을 믿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3년째 삼성과 힘겨운 싸움을 해 오고 있습니다.” 곽형수씨를 비롯한 조합원은 “우리가 사람이다”라고 말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현재 삼성전자는 서비스 품질지수 1위라고 한다. 1위를 만든 것은 삼성이 아니라 ‘노동자’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 지난 7월14일 저녁 반올림 농성 300일을 앞두고 무노조 삼성의 문을 두드린 삼성서비스노동조합 곽형수, 금속노조 삼성지회(에버랜드 노동조합) 조장희, 반올림의 임자운 활동가가 반올림 농성장에 모여 대담을 가졌다. 곽형수 삼성전자서비스 부지회장이 이어말하기를 하고 있다. 사진=이기화 제공


'S그룹' 문건엔 "노조생기면 신속히 복수 노조 준비하라. 고소·고발 준비하라"


삼성 그룹 내 또 다른 노동조합인 에버랜드(삼성)지회는 2011년 7월 11일 만들어졌다. 이 노동조합은 삼성 그룹 역사상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에버랜드(삼성)지회 부지회장 조장희씨가 해고됐다. 해고 5년 차. 지금도 여전히 싸움중이다.


2013년 심상정 의원실에서 삼성그룹이 출처로 의심되는 ‘S그룹 노사전략’문건을 공개했다. 삼성은 자신들의 문서가 아니라고 하지만, 에버랜드 노동조합을 탄압하며 벌인 일들이‘S그룹 노사전략’에 그대로 나와 있었다.


조씨는 “신분상승을 위해 네 명의 문제 사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고 나와 있어요. 그들이 말하는 신분상승은 뭘까요? 어찌 보면 맞는 말 같아요. 노동조합을 만들어 다시 내 인생과 의식을 되돌아볼 수 있었어요. 그들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의 기준으로 신분이 상승되어 가고 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외에도 S문건에는 "노조를 만들 경우 놀라지 말고, 신속히 복수 노조를 준비하라. 고소와 고발을 준비하라. 감시와 회유를 하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삼성이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잘 담겨져 있다.


반올림 "삼성전자 1급 발암 요인은 무노조 경영이다"


강경한 삼성에 맞서 9년 동안 반도체 직업병 싸움을 하고 있는 반올림에게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이는 반올림이 노동조합 이야기를 왜 하냐며 질문을 던진다. 반올림이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래는 임자운 활동가의 답이다.


“저희가 외치는 구호 중 '삼성전자 1급 발암 요인은 무노조 경영이다'가 있습니다. 사실 법은 굉장히 구멍이 많습니다. 원칙만 이야기 하죠. 법의 내용을 채우고, 예방조치는 어떠한 것이며, 얼마나 실효성 있게 운영이 되어야 하는 것인가는 노동자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상당부분은 노동자들이 요구를 하고 사측이 받아들이며 만들어집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발생할 수 있는 산재사고에 상당부분을 다루지 못합니다.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죠. 특히 직업병 문제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래서 노조가 있는 사업장과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산재 발생률 차이가 나는 거죠.”


그는 노조가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삼성 반도체·LCD 공장의 직업병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 지적했다. 임자운 활동가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 분들 사용하는 화학물질 이름, 성분도 모르고 일했습니다. 물어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던 거죠. 설령 관리자한테 물어봤으면 어땠을까요. 관리자가 빨리 일하라고 하지 않았을까요?"라면서 " 노조가 있었으면 개별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을 것이고 (사업주를 움직일)실체적인 힘이 되어 여러 규율들이 만들어지고 지켜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성전자에는 그게 없었죠. 그래서 유미씨가 세상을 떠났고 숙영씨가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일갈했다.


삼성서비스지회, 에버랜드 노조, 반올림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음을 확인했다. 삼성이란 거대 기업에 맞서 사람의 권리, 노동의 권리를 외치는 것으로 우리는 이어져 있었다. 제품을 만드는 노동자와 수리하는 노동자는 떨어져 있지 않다. 이재용의 3대 세습과 삼성이라는 곳에서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삼성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 삼성의 시대에 사는 모두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반올림의 농성을, 삼성노동자들의 싸움을 그냥 흘려 들어서는 안된다.


▲ 지난 7월14일 대담회 참가자들이 행사 종료 후 삼성전자 본관 앞 반올림 농성장에서 "삼성 무노조의 문을 열음"을 외치고 있다. 사진=이기화 제공

삼성 무노조의 문을 ‘열음!’


3년 전, 2013년 7월 14일, 삼성전자서비스센터 노동조합이 처음 만들어졌다. 14일 3주년을 맞이한 곽형수님은 “해야 할 것이 많기에 300년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삼성은 무조건 덮어 버리기에 문제가 아닌 곳이 없다. 삼성은 문제들을 드러내고, 치유하고, 정상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 가운데 노동자로서 낼 수 있는 목소리를 내고 바꿔나가야 한다. 삼성을 바꿔서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것이 저희 서비스지회의 목표다.”라고 전했다.


사람이기에 마냥 용기가 나진 않지만, 나 외에 다른 동료들을 만나서 즐겁고, 동료들이 즐겁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아 행복하다던 이들의 이야기에 바람이 분다. 선선한 바람. 세차고 강한 바람은 아니지만 ‘언제나’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바람. 다독여주는 손길 같은 바람. 삼성에 쨍쨍 내리쬐는 무노조의 볕이 아니라, 노동권의 바람이 불길 바란다. 사람을 사람답게,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선선한 바람이 불기를 바라본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금, 2016/07/29- 13:54
297
0

장윤선박정호의팟짱-김광진-안진걸-시민의정치.jpg

 

매주 월요일 오마이뉴스에서 제작하는 팟캐스트 <장윤선·박정호의 팟짱>에 참여연대 안진걸 협동사무처장이 출연합니다.
 
2/15 이번회는 "홍용표, 북한 세입세출 모르고 메가톤급 발언" 입니다.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www.podbbang.com/ch/8155?e=21902749

월, 2016/02/15- 18:50
294
0

8월 29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500일하고도 하루가 더 지났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날 하루 동안 서울 곳곳에서 열린 추모행사에서 시민들과 유족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습니다.

추모합창문화제가 열린 8월 29일 토요일 밤 광화문. 지난 4월 16일 열린 1주기 추모문화제에 비하면 모인 사람들이 많이 줄었습니다. 단원고 2학년 5반 건우 군의 아버지 김광배 씨는 “세월호 사건이 잊혀진다는 건 우리 아이들이 잊혀진다는 얘기”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더운 날씨에도 추모 행사를 끝까지 지키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열여섯 살 고등학생 성지윤 양은 자신도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참사 이후 쭉 광화문을 찾아오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배우 맹봉학 씨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세월호 참사 501일, 망각과 싸우는 시민들의 마음이 그나마 유족들의 아물지 않는 아픔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일, 2015/08/30- 03:00
276
0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모르겠다. 지나는 사람들의 종종거리는 발걸음이 더욱 시려 보이는 것은. 몇 십 년 만에 찾아 온 한파에 대한민국 곳곳이 얼어붙었다. 빙판이 된 거리, 날지 못하는 비행기, 얼어버린 세탁기 배관과 터져버린 보일러들. 영하의 추위에 얼어붙은 한국사회는 재난이 닥쳐오면 최소한의 방어막이 되어주지 못함이 탄로 났다. 복지, 사회적 안전망, 안전과 그 비슷하게 불리 우는 수많은 따뜻함의 조건들은 이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온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국가적 재난에도, 갑자기 바뀌어버린 날씨에도 안전하지 못한 사회는 개개인의 삶과 안녕을 지켜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 그것은 한국사회에서 두말하면 지겨운 이야기가 되었다. 이런 한국사회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다. 광화문 한 가운데, 하이디스 농성장의 그/녀들이다.




▲ 민주노총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가 26일 공장을 폐쇄하고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와 먹튀자본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민중의 소리 정의철 기자)


광화문 한가운데 그/녀들의 이야기

“4조 3교대였어요. 주말에 휴가도 동료들과 시간을 맞춰서 가야했어요. 트러블도 있었죠. 3교대, 4조 3교대, 그러다가 다시 주간. 이렇게 일을 하다보니까 한 15년을 계속 일하고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취업으로 들어간 첫 직장이었어요. 이렇게 짤리고 나니까, 지금은 공장만 다시 돌리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어도, 다시 배우고, 다시 일하고 싶어요. 3교대로 일했지만 그때가 행복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때 행복했던 걸 몰랐던 것 같아요.”

34살 효선 씨가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하이디스에 취업 한 그녀는 15년의 세월을 하이디스와 함께했다. 하이디스는 그녀의 일상이었다. 가끔은 휴가를 맞추기 위해 동료들과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고된 일과가 끝나고 시원한 맥주한 잔에 수다를 떨었을 것이다. 3교대 근무에 피곤함이 몰려와도 매달 쌓이는 통장의 월급에 웃음이 피어올랐을 것이다. 공장과 기숙사를 오가는 길을 15년 동안 걸으며, 오늘과 다르지 않은 평온한 일상을 보냈을 그녀였다. 하지만 평온함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한 순간. 그녀와 그녀의 동료 330여명은 공장에서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었다. 330여명의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 그 늘어선 이름들의 의미는 늘 반복되던 일상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330여 명 중 109명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희망퇴직을 신청 했어요. 그리고 희망퇴직하지 않은 인원 78명을 정리해고 했어요. 원래는 현대 하이디스였는데, 중국의 BOE 하이디스로 분할 매각되었죠. 그때도 중국에서 중요한 핵심 기술은 다 빼갔어요. 그 다음에는 대만의 영풍그룹으로 넘어갔어요. 시설투자나 설비투자는 하나도 없었죠. 핸드폰 액정 관련한 특허권이 있는데 대만 영풍 그룹은 특허권만 쏙 빼가고, 공장을 폐쇄한데요. 몇 차례 해외로 매각되면서 중요한 기술들은 쏙 빠져나가고, 결국에는 노동자들만 정리해고 대상이 되었죠.”

지난 10여 년간 하이디스는 수차례 국적이 바뀌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그리고 대만으로. 회사는 이윤의 논리에 따라 국적을 바꾸고, 국적의 변화에 따라 핵심기술들은 하이디스를 떠나갔다. 현재 하이디스의 실소유주인 대만의 이-잉크 자본(영풍그룹 계열사)은 특허기술을 외부에 대여하는 방식으로 매년 몇 백억의 수익을 올리면서도, 시설과 설비투자는 없이 앙상한 공장을 만들어갔다.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이 핵심기술을 빼가고, 몇 십 년을 일한 노동자들의 삶을 거리로 내모는데도, 노동자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한국 정부기관은 없었다. 노동자들 스스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것.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대만 영사관이 있는 광화문 한복판에 농성장을 차리고, 대만으로 원정 투쟁을 떠났다.


낯선 나라에서의 환대

“저는 2,3차 원정투쟁에 함께 갔어요. 원정투쟁은 대만에 하이디스 상황을 알리고, 영풍그룹을 압박하려는 거였어요. 만나서 협상이라도, 아니 면담이라도 해달라는 바람이었죠. 저는 대만에서 15일인가, 16일인가 만에 강제출국 당했어요. 정말 낯선 곳이었는데 대만 분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한국에서도 잘 모르는 사안인데, 대만 분들은 자기 일처럼 함께 해줬어요. 영풍그룹이 그랬다는 것에 같이 화내주고, 정리해고 때문에 한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이 더 미안해했어요. 한국정부에서는 외면하지만 대만에서의 따뜻함에 너무 고마웠어요. 된다면 다시 가보고 싶어요. 근데 다시 갈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억울함을 알리고, 호소하기 위한 원정투쟁이었다. 영풍그룹에 상처받은 마음에 대만의 시민들은 따뜻한 온기와 환대를 보내주었다. 국경을 넘어선 노동자들의 연대.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자본에 맞선, 국경 없는 노동자/시민들의 연대였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향후 몇 년간은 대만에 입국하지 못한다. 대만 입국 자체가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자본은 국경의 벽을 허물었지만, 저항하는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국경의 벽은 견고했다.
 
언제까지 할 거예요?

“사람들이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물어봐요. 나는 앞으로 1년을 더하고 싶어요. 근데 모르겠어요. 법원 판결등도 남았으니까. 그거 끝날 때까지는 해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니까 포기할 수 없어요. 아직 내가 원이 풀릴 만큼 싸워보지 못한 거 같아요. 중간에 힘들어서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작년에 사랑하는 동료를 먼저 보내기도 했어요. 배재형, 제가 참 좋아하는 분이었어요. 나중에 내가 하늘나라 가게 되면 잘 했다고 칭찬 듣고 싶게. 그렇게 싸우고 싶어요. 적어도 꿀밤 맞지는 말아야죠. 그리고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더 버틸 수 있어요.”

지난해 5월 하이디스에 배재형이란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먹튀 자본의 정리해고는 소중한 목숨마저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노동자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고통, 그것이 정리해고의 본뜻일 것이다. 누군가는 삶을 포기했지만, 회사는 이 끔찍한 게임을 계속하고 있다. 회사는 지난해 희망퇴직을 받아놓고, 그 기간을 연장하고 있다. 희망퇴직을 했을 시 주는 위로금의 액수도 점점 커지고 있다. 현재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의 마음을 흔들기 위해서다. 중앙노동위원회 역시도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쉽지만은 않은 시간들이다. 추운 겨울바람보다 더 매서운 것은, 노동자들을 끝으로 밀어 붙여버리는 회사와 법이었다. 330여명의 정리해고가 발표된 시점부터 하이디스 노동자들의 시간은 멈췄다. 아무리 회사의 경영과 법이라 한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희망을 빼앗는다면 그것은 결코 옳은 경영과 법이 아닐 것이다. 법과 이윤의 잣대로 노동자의 삶을 재단하기에는 그들의 삶과 일상은 너무도 소중하다.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소박하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서 일하는 것. 국가의 주요한 기술을 유출하지 말고, 함께 방법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이 외침을 외면하는 국가를 대신해서 하이디스 노동자들은 추운 겨울을 농성장에서 보내고 있다. 국가가 외면한 곳에 동료들의 온기와 타국에서 보내온 연대의 훈훈함이 넘쳐흐른다. 제발 이 엉터리 국가가 노동자들의 외침을 듣기를. 그들이 스스로를 돌보기 이전에 이 사회가 모진 삶에 치인 이들을 먼저 막아주는 안전망이 되기를. 그리고 이 겨울이 끝자락으로 가기 전 에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정든 일터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2016년 2월 1일 미디어스

랄라(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원문보기 

광화문 하이디스, 그/녀들의 겨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목, 2016/02/04- 10:33
257
0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즉각 제정하라" (참세상)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 2,400여 명. 하루 6명꼴로 발생하는 산재사망 사고, OECD 산재사망률 1위까지…. 한국사회에서는 산재사망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올해에도 최근 두 달 사이 현대중공업에서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막아야만 하는 죽음이지만, 기업의 가학적 노무관리와 정부의 무관심 속에 한국의 노동자는 노동건강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민주노총은 28일 오후 2시 보신각에서 산재사망추모 투쟁결의대회를 열고 각 업종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의 처벌 강화, 파견확대 입법 폐기, 산업안전보건법 개악 중단, 하청산재 원청 책임강화 등을 요구했다.


아래 주소에서 기사 전문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출처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0828

토, 2016/04/30- 16:38
24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