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n Net – Harvard Berkman Center Seminar on Intermediary Liability
오픈넷, 하버드 버크맨센터와 함께
“정보매개자 책임의 국제적 흐름” 국제 세미나 개최
5월 28일 목요일 사단법인 오픈넷은 미 하버드대학교 버크맨 인터넷과사회 연구센터(Berkman Center for Internet and Society)와 함께 “정보매개자 책임의 국제적 흐름 – 이용자 권리 보호와 ICT 산업 발전을 위한 플랫폼사업자의 책임원칙” 국제 세미나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한다. 동 세미나는 박주선 의원실, 염동열 의원실(이상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유승희 의원실(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회입법조사처, 그리고 (사)한국언론법학회, 한국인터넷법학회, 고려대학교 법학연구원, 서울대학교 기술과법센터가 함께 주최하며,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후원한다.
정보매개자(Intermediary)란 인터넷상에서 타인의 정보를 매개하는 자를 통칭하는데, ISP뿐만 아니라 네이버와 다음 같은 포털, 검색엔진, SNS 등이 모두 포함된다. 오늘날 인터넷상 정보의 유통은 다양한 정보매개자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정보매개자의 책임과 관련된 정책은 인터넷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정보매개자 책임에 대한 논의가 미미한 실정이어서, 이번 국제 세미나를 통해 관련 논의를 활성화하고 국제적 흐름에 부합하는 정보매개자 책임 정책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 세미나는 10시 개회식을 시작으로, 박경신 오픈넷 이사가 세미나의 개최 취지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정보매개자 책임 제도인 정보통신망법상 임시조치 제도와 저작권법상 전송중단 제도에 대해 평가한다. 이어 제1세션 <정보매개자 책임에 대한 이해>에서는 박경신 이사를 좌장으로 하여, 하버드대 교수이자 버크맨센터 소장인 어스 개서(Urs Gasser) 교수가 세계 각국의 인터넷과 사회 연구센터들의 합의체인 NoC(Global Network of Internet & Society Centers)에서 진행한 “국가별 온라인 매개자 가버넌스 연구(Governance of Online Intermediaries)”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정보매개자 가버넌스 정책 설정에 고려되어야 할 사항들을 제시한다. 일본 엔데버 법률사무소의 나오코 미즈코시 변호사는 “일본의 정보매개자 책임 원칙”에 대해 사례발표를 하는데, 특히 2001년 제정된 「특정전기통신역무제공자의 손해배상책임 제한 및 발신자정보의 개시에 관한 법률」과 관련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소개한다.
제2세션 <정보매개자 책임과 ICT 생태계>에서는 고려대 김제완 교수가 좌장을 맡고, 미 UC데이비스 로스쿨의 아누팜 챈더(Anupam Chander) 교수가 “e-실크로드와 정보매개자 책임”이라는 주제로 미국 실리콘 밸리의 성공비결이 표현의 자유를 포용한 인터넷기업 책임 제한 법제에 있음을 논증하고 한국의 제도와 비교평가한다. 유럽ISP협회(EuroISPA) 올리버 쥬메(Oliver Sueme) 회장은 유럽 전자상거래지침상 정보매개자 책임 규정의 해석과 함께 불법 콘텐츠 삭제 요구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과 필터링 의무 금지 원칙 및 관련 판결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제3세션 <정보매개자 책임과 저작권 제도>에서는 연세대 박덕영 교수를 좌장으로 하여, 미 산타클라라대 로스쿨의 에릭 골드먼(Eric Goldman) 교수가 OSP의 면책을 위해 제정된 디지털밀레니엄저작권법(DMCA) 상의 통지 및 삭제(Notice-and-Takedown) 조항이 법원의 판결에 의해 어떻게 피난처(safe harbor)로서의 기능을 잃고 있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호주 모나쉬대 레베카 깁린(Rebecca Giblin) 교수는 18개월에 걸쳐 진행된 “삼진아웃제에 대한 평가”라는 연구 프로젝트에서 나타난 삼진아웃제의 실효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의 결함을 설명하고 한국의 삼진아웃제도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그리고 종합토론 시간에는 영국 옥세라 컨설팅의 파트너 데이빗 제번스(David Jevons)가 “피난처가 인터넷 매개자인 스타트업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이라는 주제로 옥세라 팀원들과 함께 제작해서 보내온 특별 동영상을 상영할 예정이다.
세미나 참가 신청은 오픈넷 홈페이지(opennet.or.kr/opennetkorea.org)를 통해서 받고 있으며, 사전등록자를 우선으로 자료집과 기념품이 제공될 예정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열리는 정보매개자 책임에 관한 국제 세미나인 만큼 정책담당자, 연구자,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많은 참여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지난 2월15일 동남아시아표현의자유네트워크(SAFEnet)과 함께 인도네시아 11/2020법의 시행령인 우편, 통신, 방송령 (RPP Postelsiar) 안의 제15조가 인도네시아 역내에서 활동하는 모든 콘텐츠제공자가 통신사와 별도의 파트너십을 체결하도록 의무화한 것에 대해서 망중립성에 위배되는 ‘전송료 지불 의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당일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일 기자회견에서는 유럽통신규제기관인 BEREC이 2012년에 그리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가 2015년 망중립성 명령에서 그리고 이 망중립성명령이 트럼프행정부에 의해 취소되자 2015년 망중립성 명령의 내용을 계승하기 위해 통과된 캘리포니아망중립성법이 각각 인터넷에서는 망사업자가 전송료 지불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금지하였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기자회견에서는 해당 조항이 “국익” 및 “소비자이익”을 위해 트래픽관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에 대해 망중립성은 망사업자들이 그렇게 불분명한 이유로 트래픽관리를 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켰다. 유럽의 2015년 망중립성법은 명확히 트래픽관리는 법적 의무 이행, 사이버보안 및 일시적 트래픽 순화 외에는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BEREC’s comments on the ETNO proposal for ITU/WCIT or similar initiatives along these lines, 14 November 2012, BoR (12) 120 rev.1; BEREC, An assessment of IP interconnection in the context of Net Neutrality, Document number: BoR (12) 130; FCC 2015 Open Internet Order, paras. 113, 120 (superseded by the Trump Administration in 2018 but expected to be revived under the Biden Administration); California Net Neutrality Act Section 3101(a)(3) (“It shall be unlawful for a fixed Internet service provider to engage in . . requiring consideration, monetary or otherwise, from an edge provider. . , in exchange for . . .delivering Internet traffic to, and carrying Internet traffic from, the Internet service provider’s end users.”)
사단법인 오픈넷은 2021년 5월 18일에 망중립성 등 인터넷 정책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했다. 본 세미나는 오픈넷과 주한미국대사관, 고려대학교 미국법 센터, 한양대학교 과학기술윤리법정책센터(HY CELPST)와 공동주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변화하는 미국 내 인터넷 정책을 살펴보고 국내 인터넷 생태계와 정보접근권에 미치는 영향을 논의했다. 특히 망중립성과 미국이 예전부터 꾸준하게 추진해왔던 ‘정보흐름의 자유 정책’과의 관계를 조망하고 이것이 어떻게 한미관계에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았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FCC가 취소했던 오바마 FCC 망중립성 명령을 바이든 정부가 복원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 망중립성법에 대한 집행정지 소송도 취하해서 법의 효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상황이다. 오바마 FCC 망중립성 명령의 경우 캘리포니아 망중립성법과 마찬가지로 ‘망이용료’ 수령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한다. 이번 웨비나에서는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을 2016년부터 시행된 발신자종량제 상호접속고지와 2020년 서비스 안정화 의무법, 2021년 현재 새로 나온 전혜숙 위원 법안으로 이어지는 국내 상황과 상호 관계 및 영향력을 살펴보았다. 더불어 바이든 정부 이전 국무부가 추진해온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Free flow of information) 외교정책과 망중립성의 관계를 검토하고 비교를 위해 유럽통신규제기구의 ‘망이용료’ 정책에 대해 논의했다.
[개회사] 마이클 케베나, 주한미국대사관 경제공사대리(Michael Cavanaugh, Acting Minister Counselor for Economic Affairs, U.S. Embassy)
마이클 케베나는 이번 웨비나의 주제가 한국과 미국 양자 협력에 있어 매우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인터넷 네트워크의 규모가 커지면서 확대된 사회적 힘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의학, 교육, 커뮤니케이션, 엔터테인먼트까지 미치는 영향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렇기에 인터넷 문제에 있어 규제당국은 디지털 통상을 담당하기 때문에 그 역할이 중요함을 주장했다. 케베나는 이 문제에 대해 소비자들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혁신을 도모하고 그 안에서 한 쪽에만 혜택을 주는 차별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또 규제를 최소화하면서 이상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해결을 위해 디지털 통상 문제에서 데이터와 관련한 국제 우수사례를 다루는 것이 한미동맹의 측면에 있어 미국과 한국 간의 경제협력에 있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케베나는 한국의 소프트파워, 콘텐츠가 성장한 이유를 인터넷의 디지털 배달 덕분이라고 분석하면서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이 최고 수준의 보호 안에서 최고의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안에서 양국의 경제협력과 파트너십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양국이 서로 협력하여 공유되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 이상욱, 한양대학교 철학과 교수, 과학기술윤리법정책센터(HY CELPST) 센터장
팰컨은 망중립성의 역사 및 배경을 설명하고 자신이 몸담은 전자프런티어 재단(EFF)을 소개했다. EFF는 최대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통해 법정들과 사법시스템을 연결하여 사람들을 돕고, 표현의 자유 및 혁신을 도모하는 등 공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어서 그는 망중립성에 대한 역사를 소개했다. 그는 망중립성 역사가 비차별 정책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특히 주목할 부분은 예전 물자나 전화 등의 사례들을 통해 확인 가능한 독점상태의 커뮤니케이션이 분산화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팰컨은 이전 커뮤니케이션 분산화의 원인을 연방 차원의 법과 조치라고 분석하며 이를 통해 인터넷 시스템의 분산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다.
그는 인터넷이란 오래된 시스템이 아니므로 기존 커뮤니케이션 법을 가져와 개정한 형태로, 주요 아이디어는 기관 인프라 이동통신서비스가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필수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커먼캐리어 정책과 비차별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동통신서비스와 정보서비스를 구분하게 되면서 시스템의 개방성을 강조했고,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특히 콘텐츠 업체와 기술기업 간의 갈등과 송사가 많았던 시행착오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팰컨은 오바마의 ISP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면서 망중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넷플릭스 등의 사례를 통해 정보콘텐츠를 제공하는데 있어 엑세스 독점 문제와 비용지불 문제 사이의 혼잡의 원인이 기업에 있었음을 설명하면서, 정부가 이에 중재역할을 했음을 설명했다. 그는 여러 사례를 검토하면서 망중립성 관련 논의에 있어 인터넷의 개방성과 정부의 역할이 중요할 뿐만 아니라 많은 소비자들이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만 인터넷의 가치를 최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정책에 대해서는 망중립성을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진 것으로 평가하면서, 앞으로는 연방 차원이 아닌 주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캘리포니아가 추진하고 있는 콘텐츠 업체와 ISP의 관계를 규제하거나 제로레이팅을 금지하는 법안 등을 소개하면서 현 바이든 정부가 오바마의 유산을 이어받아 망중립성 관련한 내용을 연방법으로 만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추가적으로 그는 최근 인터넷 이용에 있어 소비자들에게 차별적으로 과금되는 문제를 지적하고 대기업의 주도에 의해 소규모 업체들이 불리한 위치를 점유할 수밖에 없는 부분에 대해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망중립성의 역사와 미국 내 다양한 정책과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망중립성이 표현의 자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안들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강조했다.
이상욱: 제로레이팅은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 팰컨이 미국의 인터넷 비용 관련 데이터를 소개해주는 데 있어 미국에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보여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는 비용 부과의 이유를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으로 밝히고 있는데, 팰컨의 발표가 이러한 한국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발표2] “IP-interconnection, charging mechanisms and net neutrality a perspective from BEREC”
– 크리스토프 메르텐스, 독일연방망위원회, 유럽통신규제기구(Christoph Mertens, Bundesnetzagentur, Germany and BEREC[Body of European Regulators for Electronic Communications])
메르텐스는 독일 연방의 네트워크와 베렉(BEREC)을 소개하면서 망중립성 주제를 유럽의 시각에서 다뤘다. 그는 베렉이 IP 상호접속이나 망중립성에 대한 포괄적인 내용들을 다뤄왔으며 특히 전화 세계와 인터넷 세계의 비용의 차이와 이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들을 고민한다고 설명하면서 2012년 전기통신연합에서의 제안에 대한 베렉의 비판이 무엇이었는지 말했다.
그에 따르면 유럽의 유선전화 시대에는 발신자에게 과금되는 CPP라는 과금 모델을 사용했는데, 이 모델은 착신망 사업자가 사용자에게 과금을 하게 되기 때문에 독점권 행사가능성 때문에 독점규제의 필요성을 필연적으로 야기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인터넷 시대는 유선전화 시대와 달리 착신자 과금 메커니즘으로 개인이 송수신 비용을 모두 지불하게 되므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빌랭킵을 제안했다. 그는 빌랭킵의 장점은 도매 사업자가 상호접속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개별 접속마다 개인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대안이 규제와 무관하게 유선전화 시대보다 효율성이나 경제적인 면이 더 뛰어나다고 말했다. 반대로 유선전화 시대 메커니즘과 유사한 발신제종량제의 경우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메르텐스는 피어링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이도 전체적인 구조적 측면에서 유선전화 시대와 양쪽 모두에게 과금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과금이 양쪽에 다르게 부과될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착신독점권을 남용할 수 없도록 한다는 점이 이 시스템의 장점이라고 소개한다. 메르텐스는 팰컨의 발표에서 언급된 미국법의 원칙과 유럽이 약 6개월간 진행한 망중립성 규제의 핵심이 유사하다고 분석하면서 베렉에서는 일명 베렉 지침을 통해 유럽 망중립성의 구체적 조항을 실질적으로 제안하고 유럽 전역에 일관적인 망중립성 규칙을 진행하고 또 만들고자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상호접속 그 자체가 곧 망중립성은 아니며, 그 둘이 긴밀한 관계를 갖고 상당부분 겹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유럽에서 상호접속에 발신자종량제를 실시하자는 에트노의 제안에 대해 반대하는 베렉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발신제종량제는 유선전화 시대의 과금 메커니즘을 인터넷 환경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에 불과하며 동시에 독점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구시대적 과금 메커니즘을 새로운 기술환경에 적용하게 되면 시장 참여자 간 교섭이 균형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또 다른 비판점으로 에트노의 제안서는 특정 사업자가 특정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고 이해될 수 있는 가능성에 있다고 밝히면서, 이는 경쟁환경에서 무임승차와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메르텐스는 트래픽 비대칭성을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하면서 비용이 발생했을 때 그 책임 문제를 분명히 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사업자들의 전략적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으므로 규제당국의 개입 없이 시장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상욱: 함축적으로 여러 내용을 잘 전달해주셨다. 지불의 책임에 대한 문제를 명확히 말해주면서 유선전화 시절과 인터넷의 차이를 짚어주셨는데, 전체적인 발표에서 망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발표3] “세계 유일의 ‘망이용료’ 법제화 시도는 소비자 피해만 키울 뿐”
–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경신 교수는 발표 전 팰컨과 메르텐스에게 질문을 던지고 더 확장된 논의를 진행했다.
박경신: 캘리포니아 2018년 망중립성법과 관련된 캘리포니아 민법 3101조 A항의 내용, ‘인터넷서비스제공자는 부가통신사업자, 인터넷서비스제공자의 이용자들이 인터넷 트래픽을 전달하는 금전적 또는 어떠한 대가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팰컨: 이는 우선전송권 관련해 만든 조항이다. ISP들이 우선순위를 매겨 정보를 전송하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데이터 품질이 낮아지는 문제가 생겼는데, 이게 우선전송권의 문제였다. 또한 이는 ISP들에게 인터넷 접속료를 내라고 의미인데 돈을 지불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기에서 차별적인 활동들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미국에서는 돈을 내고 대가를 받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는데 ISP가 일부 기업들을 선택해서 이런 혜택을 제공해온 것이 문제가 되었다. ISP는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들과 기업을 연결해주면서 우위를 점하다보니 소비자들이 다소 불리한 감이 있었다. 소비자들은 이미 인터넷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는데, 이에 추가적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데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 부당하고 차별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박경신: 우선전송권은 이 법안이 생기기 전에도 문제가 있었다. ISP가 우선전송권에 있어 대가를 원하고 있다. 이는 콘텐츠 전달 그 자체에도 과금하는 것을 문제 삼고 싶다, 그리고 이런 관행을 멈춰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팰컨 님이 대가에 대해 말씀했는데, 이것은 광범위하게 법조항을 만들면서 제로레이팅에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경신: 베렉에서 정보배달료를 내게 만드는 것을 굉장히 근본적인 수준에서 금하고 있는 입장으로 이해된다. 발신자종량제 같은 경우는 배달료에 해당하는 시스템 같다. 그럼 페이드피어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 경우 대금지불이 데이터 전송량에 기반하는 것이 아니라 커넥션 전송량에 기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페이드피어링은 발신자종량제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메르텐스: 페이드피어링은 금지사항은 아니다. 어떤 조항도 금하고 있지는 않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도 페이드피어링은 사람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예전 이 협약은 임원진 수준에서 이루어졌다. 트래픽 비대칭성이 증가하게 되면서 페이드피어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금하는 사항은 아니지만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페이드피어링과는 협상력의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는 그 유사성이 있다. 페리드피어링은 나중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호접속의 메커니즘을 블랙박스로 본다. 이제 페이드피어링은 모니터할 가치가 있는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고 본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인기를 얻고 있기도 하고, 우리는 이게 앞으로 문제가 될지 여부와 규제가 필요할지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
박경신: 페이드피어링이 특정 시점에서 이루어지더라도 당사자들의 관찰이 필요하다. 그럼 페이드피어링은 남용의 여지가 있다는 말인가? 프랑스의 경우 남용사례가 있을 때는 바로 개입을 한다.
박경신 교수는 간단한 질의응답 후 망이용료 관련해서 발표를 진행했다. 그는 오바마 정부의 망중립성 명령 113번, ‘망사업자는 고객들에게 콘텐츠 제공자의 데이터를 전달한다고 해서 제공자로부터 돈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우리나라의 전송료로서의 망이용료를 명시적으로 허용한 개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허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 우려를 표했다. 다시 말해, 망사업자들 사이에서 데이터 전송에 대한 책임을 분산시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발신자종량제와 콘텐츠제공자 안정화의무법을 합쳐놓으면 데이터가 제대로 제공되기 위해서는 제공자가 망이용료를 내야한다는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규제 방법과 여부에 따라 한국 콘텐츠가 해외에 제대로 전달되거나 혹은 반대로 해외 콘텐츠를 한국으로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나라마다 각기 다른 내용의 망이용료 법제화가 이루어지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며, 해외에서 망이용료 징수 사례는 극히 짧은 시간에 예외적으로 존재했다 사라졌음을 강조했다. 박경신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이미 발신자종량제가 있기 때문에 페이드피어링을 허용할 경우 콘텐츠제공자에게 과금을 하는 상황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표현의 자유에 있어 인터넷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망이용료에 대한 국가마다 다른 규제는 한류에도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상욱: 박경신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우리가 다양한 망중립성 이슈부터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대해 거론했는데, 제목 마지막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루지 않았던 것 같다. 박 교수님의 말씀이 이 법안이 한국 국회에서 입법이 되려고 하는데, 이는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또 한류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언급을 해주셨다. 외국의 외부 콘텐츠를 많이 접하는 시기에 발신자종량제가 실시된다면 다방면으로 이러한 콘텐츠를 사용하는 데이터 교역이나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유럽,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해 많이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박경신: 실제로 통상 관련 이야기는 충분히 나누지는 못해 한 가지 측면을 추가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현재 콘텐츠사업자 서비스안정화의무법의 조문을 잘 보면 데이터가 ISP 고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 것에 책임을 가질 수 있도록 모든 CP들에게 의무가 부과되어 있다. 예를 들면 트위터의 경우 서버를 국내에 만들어야 하는 일이 생긴다. 해외 기업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 때 국내에 서버를 구축해야 한다면, 이는 WTO의 규준에 위배되는 것이다.
2019.11.15. 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 전국도덕교사모임이 주최한 “학교성평등교육, 어디로 가야하나? – 광주시교육청의 도덕수업 사법처리를 통해 본 현실과 과제” 토론회가 전교조본부 4층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토론회에 오픈넷 오경미 연구원이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경찰 기소의견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발제했다.
[발제문]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경찰의 기소의견을 비판해야 하는 이유
오경미 오픈넷 연구원
광주의 중학교 도덕교사인 배이상헌 교사가 ‘성과 윤리’ 단원 수업 중 성평등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광주시교육청에 의해 수사의뢰와 직위해제를 당한지 벌써 4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결국 경찰은 지난 9월 배이상헌 교사를 아동복지법 위반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말았다. 광주시교육청은 해당 사건을 성비위로 판단하고 성급하게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처분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교육 영역의 특수성과 전문성, 수업을 위해 채택된 자료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고려한다면 해당 사건은 성비위 사건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이 기소 처분을 내린다면 교육 영역 전반에 대한 악영향은 물론이고 교사의 재량권 위축으로 수업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한 스쿨미투와 페미니즘에 대한 왜곡과 비난을 초래할 소지도 있다. 따라서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는 하루빨리 중단되어야 하며 광주시교육청은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를 취소하고 학교로 복직시키고,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려야 할 것이다.
학교내 성희롱의 개념과 유형
당사자가 직위해제된 이틀 후인 7월 25일에 열린 학교 성고충위원회는 광주시교육청의 판단과 달리 성비위 혐의사실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또한 당사자는 자신이 성비위 혐의로 수업에서 배제된 것을 알게 된 다음날인 7월 19일에 광주시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에 교권침해 구제 신청을 하였고, 직위해제된 이후 시민들을 대상으로 당시의 수업 내용을 공개하는 등 해명을 위한 개인적인 노력을 지속하였다. 교사단체와 시민단체 역시 광주시교육청의 판단에 언론 매체를 통해 거듭 이의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이의 제기에 광주시교육청은 교육부의 성비위 매뉴얼에 따라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성고충 민원을 접수, 전수조사하고, 성비위 혐의 사실을 확인, 해당 교사를 피해 호소 학생들과 격리한 것일 뿐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와 같은 광주시교육청의 답변과 응대에 대한 신뢰는 이 사건을 성비위사건으로 볼 수 있는가의 여부에 달려있을 것이다. 사건을 성비위사건으로 분류할 것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교육부에서 배포한 「학교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과 서울시교육청에서 배포한 학교관리자 연수자료인 「교원 성비위 징계처분 사례 및 판례」를 통해 성희롱의 개념을 명확히 하고 해당 자료가 제시하고 있는 유형과 사례를 살펴보자.
교육부에서 배포한 성비위매뉴얼인 「학교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에서 학교내 성희롱·성폭력은 학교 내 구성원 간에 상대방의 동의 없이 성적인 언행을 일방적으로 행하는 것을 의미하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강간, 추행, 성희롱 등 성을 매개로 일어나는 모든 신체적·정신적·언어적 폭력을 포괄함”이라고 성희롱과 성폭력의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학교내 성폭력은 형법을 기본으로 하며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아동복지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고, 성희롱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아동복지법」, 「양성평등기본법」,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법적 근거를 둔다. 성폭력은 관계법령에서 범죄의 유형이 열거식으로 정리되어 있어 개념규정을 대신하고 있으나, 성희롱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 해당 매뉴얼에서는 학교 내 성희롱을 ‘학교 내 구성원 간에 성적 언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수치심,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개념을 정의하고 있다. 나아가 학교 내 성희롱의 대상이 아동·청소년일 경우, 아동복지법 제17조 제2호[1] 및 관련 판례에 근거하여 아동·청소년에게 성적 수치심,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건전한 성적 가치관의 형성 등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발달을 현저하게 저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개념을 정의한 후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의 유형을 예시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교원 성비위 징계처분 사례 및 판례」 역시 위의 매뉴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료집에서 성희롱은 “성적 언동 등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거나 성적 언동 또는 그 밖의 요구 등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더불어 학생대상 성비위의 사례와 징계처분의 결과를 함께 제시하고 있는데, 사례는 아래와 같다.
[사례1] 고등학교 교사가 회식 중 기숙사에 있던 여학생에게 전화를 하여 외박하라고 하면서 “너랑 자고 싶다.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 하고 문자를 보내 성희롱 ☞ 징계처분 결과 : 파면
[사례2] 교사가 술을 먹고 아르바이트하던 가게 앞에 쓰러져 있는 여학생에게 강제로 손을 깍지 끼고 데려가서 “너랑 자고 싶다”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여 성희롱 현행범으로 체포 ☞ 징계처분 결과 : 해임
[사례3] 중학교 교장이 수학여행 중 버스안에서 여학생 1에게“백화점에서 옷 한 벌 해 줄테니 남아서 데이트하자”라고 말하고, 여학생 2에게 “너 가슴크다”라고 말하고, 여학생 3에게 “얼마나 컸나 안아보자”라는 등의 언동을 하여 성희롱 ☞ 징계처분 결과 : 해임
[사례4] 고등학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복도를 지나가는 여 교사를 가리키면서 “저 여자 제가 놀다버린 여자입니다.”라고 말하고, 방학 중 쌍꺼풀 수술로 학교에 못나온 또 다른 학생에게 “너 산부인과 갔지?”라고 말하고, 또한 맨발로 슬리퍼 신은 학생에게 “너 섹시하다”라고 말하는 등 상습적으로 여학생과 여교사들에게 성희롱 ☞ 징계처분 결과 : 해임
[사례5] 중학교 교사가 핸드볼 선수인 여학생들에게 “섹시하네, 야하다, 속옷은 무슨 색이냐”등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는 언어를 사용하여 성희롱 ☞ 징계처분 결과 : 해임
위의 유형별 예시와 사례는 교사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의 구체적인 상황과 언행, 실행방법 등을 열거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학교내 교사에 의한 학생대상 성희롱은 학교 내외부에서 교사가 한정된 범주의 그룹이나 개인을 특정해 자신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들에게 성적 언동을 하여 학생이나 학생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 학생의 의지에 반하여 신체접촉을 시도하거나 특정한 호칭으로 부르거나 스토킹하거나 개인연락처로 문자나 영상, 사진 등을 보내는 등의 행위, 수업의 내용과 무관한 성적 언동을 하는 것, 신체나 외모에 대한 평가나 여성에 대한 편향된 평가를 일삼아 여성이나 여성의 신체는 물론이고 성도덕에 관해 그릇된 인식을 유발하는 행위 등으로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의 본질과 남은 문제
앞의 논의로 돌아가면, 애초 이 사건은 사건을 구성하는 형식적인 요소들에 의해 성비위사건으로 분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잘 알다시피 본 사건은 ‘성과 윤리’라는 성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수업에서 성을 주제로 한 수업교재에 불편함을 느낀 몇몇의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건 자체가 성이라는 문제와 분리불가능하기 때문에 성비위로 접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건의 시발을 조금 더 따져보면, 본 수업에 대한 이의 제기는 사실 올해가 아니라 지난 해 이미 한 차례 학생들에 의해 제기되었다고 한다(교재, 교재를 감상하는 여건, 교재를 상영하는 주체인 교사의 성별 등[2]). 이 학생들이 올해 해당 수업을 재수강하게 되었는데, 자신들이 지적한 지점들이 시정되지 않은 것을 깨닫고 문제를 제기하게 된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은 표면상 성이라는 문제와 연루되었기 때문에 성비위 사건으로 분류된 것이지 사건의 본질은 교사가 학생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거나 멸시하여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는 성희롱이 아닌 수업 자체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였던 것이다.
더군다나 수업의 내용적 측면들을 따진다면 이 사건은 성비위사건으로 분류할 수 없으며, 그렇게 보아서도 안 된다. 성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바로 수업의 내용이며(그가 수업시간 중에 발설한 성에 관한 내용은 모두 수업의 내용과 직결된 것이다), 수업을 위해 채택된 자료인 엘레노르 푸리아의 영상 역시 수업의 내용과 무관한 음란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엘레노르 푸리아의 영상인 〈억압받는 다수〉(2010)는 남성과 여성의 성역할과 성관계가 완벽하게 역전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를 통해 현재 우리의 현실을 미러링하고 패러디한다. 영상은 남성으로 태어났기에 남성이 살아가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을 위협과 굴욕, 멸시를 가상의 스토리로 대리체험해보라는 것과 이것이 여성이 매일 겪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을 짧고 직설적으로 전달한다. 이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감독은 폭력 장면과 거친 언설을 여과없이 재현하거나 오히려 과장한다. 영화의 직설적 화법은 영화의 의도 전달을 용이하게 해 수용층의 폭을 확장한다는 장점이 있으나 미러링의 특성상 현실의 암담함과 참담함이 잔인하게 반복된다는 것과 문제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뚜렷한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영상 자체, 감독이 현실의 문제를 재현하기 위해 채택한 재현의 방식과 이 방식으로 인해 영화 내용에 거북함을 느꼈을 학생들이 있으리라는 가정은 쉽게 할 수 있다. 성인들도 미러링에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거부감은 영상의 정치적 급진성 때문인 것이지 영상의 음란성 때문은 아닌 것이다. 영상이 수업의 목적에 부합하고, 배이상헌 교사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해당 영상을 학생들에게 상영한 것이 아니므로 교육부에서 배포한 「학교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는 물론이고 서울시교육청에서 배포한 학교관리자 연수자료인 「교원 성비위 징계처분 사례 및 판례」에 제시된 성희롱의 개념 정의나 제시된 성희롱 사례·유형별 예시에서도 본 사건에 해당하는 유형을 찾을 수 없다. 경찰 기소의견의 근거가 된 아동복지법 제17조 제2호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불평등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불쾌감을 유발할 수밖에 없다. 이 영상을 시청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낀 불쾌감이나 불편함이 문제라면 성적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에서 필연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신체나 생식기를 설명하기 위해 신체의 이미지나 생식기의 이미지를 보여주거나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 역시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A가 아닌 사건을 A를 해결하는 절차대로 하고 있으니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광주시교육청의 응답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
다만 해당 수업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학생들이 지적했던 사항 중 하나가 배이상헌 교사에게 성인지적인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이 문제제기는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바는 없다. 공식적인 문제제기의 창구가 없어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했고, 교육청을 통해 사건을 민원형식으로 접수할 수밖에 없었다면 학생들이 고충을 쉽게 토로할 수 있는 공식적인 창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학교 차원에서 행해진 성고충위원회가 배이상헌 교사의 수업이 성비위는 아니나 교사가 성인지적감수성 향상을 위해 일정시간의 교육을 이행할 것을 권고한 결정 사항과 일치한다. 그러나 성인지적인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성비위 교사로 징계하거나 아동복지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부분은 성고충위원회가 권고한 바와 같이 별도의 교육과정이나 연수를 통해 해결하면 될 사안이다.
교육청이 수업배제 조치를 취했으나 교사가 불복하고 수업을 강행한 것이 학생들에게 위협을 주었기 때문에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학생들에게 2차가해 내지는 학생들에게 위력을 행사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왜 수업강행이 이루어졌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신고를 접수받은 교육청은 당사자 학생들과 당사자 교사를 분리해야 하는 원칙에 따라 배이상헌 교사를 수업에서 배제하였다.[3]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에게 사건의 경위를 알려주면 고발한 학생을 특정할 수 있으므로 학교와 교육청은 교사 본인에게 사건 경위를 알리지 않았다. 이에 배이상헌 교사는 이 과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수업배제 결정에 불복해 수업을 강행했다. 본 사건을 여성주의 단체에서 스쿨미투로 연결하기 시작한 시점은 이때부터라고 한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기 전부터 광주시교육청은 어떤 교사가 성비위로 연루되기만 했다면 혐의 없음으로 판결이 나더라도 해당 교사들에 대해 행정상으로 반드시 징계처분을 내려왔다고 한다. 때문에 그간 광주시교육청에 대한 교사들의 불신이 차곡차곡 쌓여왔다고 한다. 배이교사의 수업 강행은 광주시교육청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속사정에 대한 이해가 없는 누군가에게 배이 교사의 대응은 위협적으로 비춰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수업강행이 학생들의 입장에서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배이 교사에게도 책임은 있다. 결국 학교내 성폭력·성회롱에 대한 전문적인 검토를 결여한 그러면서 과도하게 권위주의적인 광주시교육청의 행정절차, 이 기관을 불신한(불신할 수밖에 없는) 당사자의 대응과 이 대응이 의도치 않았으나 필연적으로 지목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관계자가 이 대응에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을 고려해 여성단체들이 학생 보호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일이 진행되어 왔다.
스쿨미투의 잣대는 조심스럽게 적용해야
현재 이 사건에 대해 학생이 제기한 문제의 입장과 반대되거나 다른 견해는 그 학생에 대한 가해로 해석되거나, 본 사건을 페미니즘의 광풍, 스쿨미투의 부작용으로 간주하는 입장이 서로의 의견을 고수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추이를 섬세하게 읽지 않고 사건의 두 당사자인 학생과 배이 교사 사이의 갈등과 대립에 초점을 과도하게 맞추는 시각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킨다.
광주시교육청과 광주여성노동자회, 광주여성민우회, 광주여성센터, 광주여성장애인연대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이 이 사건을 스쿨미투로 간주할 것을 촉구하고 있으며, 배이상헌 교사를 비롯해 그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은 이 사건을 스쿨미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광주시교육청은 교사가 학생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수업 도구, 자료를 택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로 엄중한 원칙을 가지고 스쿨미투 사건으로 처리할 예정이라 하였다.[4] 이에 대해 교사 당사자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학부모 단체들도 나서서 성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에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채택된 영상을 보는 것, 해당 수업을 진행하면서 겪었던 불편함과 수치심을 성희롱으로 겪은 불편함과 수치심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을 문제 삼으며 스쿨미투로 판단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5]
광주시교육청의 주장과 달리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수업 도구와 자료를 택한 것은 성비위도 될 수 없으며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 역시 스쿨미투가 될 수 없다. 재차 말하지만 성 욕구를 채우기 위해 해당 자료를 상영하였다면 성비위가 될 것이나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수업의 자료를 택했다는 것은 유화를 막 그리기 시작한 학생에게 반 고흐의 작품을 주고 그리라고 한 것 혹은 철학 수업시간에 고도로 현학적인 철학자의 책을 탐독하라고 과제를 내어준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과제의 난이도 여부는 교육청에서 판단할 것이 아니라 이 분야의 전문가인 교사들이 모여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학교 성고충위원회 역시 수업자료 선택시 학년별 수준에 대한 고려가 더 필요하다는 권고를 내렸으나 해당 사건에 대한 성비위의 여부는 근거없음으로 결론내렸다.
여러 가능성을 언급하며 본 사건을 스쿨미투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수업의 특성상 지식과 의견의 전달의 전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거나 학생들에게 쉽게 수업의 내용을 이해시키기 위해 제공하는 자료는 어느 정도 일방적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민원의 내용 중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해당 교사가 학생들에게 성적 위력이나 위력을 행사해 수업을 강행했다는 내용은 언급되지 않고 있으므로 이 사건을 스쿨미투 사건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또한, 학습 교재로 인해 불거진 불쾌감을 권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 역시 있는데, 이 역시 수업이나 강의와 같은 지식전달 시스템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접근이다. 해당 사건을 성적 위계의 문제나 젠더 폭력, 성폭력의 문제로 접근하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접근은 성폭력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 적용하므로 문제적이다. 성폭력의 범주를 이렇게 광범위하게 확장하게 되면 학생과 교사나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과 같이 지식이나 의견을 전달하거나 지시를 내려야하는 관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갈등을 모두 성폭력으로 간주할 가능성을 높여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6] 이와 같은 접근은 궁극적으로 스쿨미투의 원래 취지를 왜곡시켜 이 운동에 대한 불필요한 적대감만을 높일 우려가 높다. 스쿨미투의 본질은 교사가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교권을 이용해 학생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등의 언행으로 학생에게 성적 수치심과 모멸감을 야기하는 것을 고발하고 이들이 실질적인 처벌을 받도록 만드는 실천운동이다. 스쿨미투의 정의범주를 좁힐 필요가 있다.
광주여성연합이 본 사안을 스쿨미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시점과 스쿨미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는 광주시청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광주여성연합이 본 사안을 스쿨미투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시점은 배이 교사가 수업배제에 불복하고 수업을 강행한 시점부터이다. 광주여연은 방학이 끝나는 8월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의 내용과 피해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해당교사 측의 문제제기 방식은 학생들에 대한 어떠한 고려도 없었”으며 배이 교사와 교사를 지지하는 모임이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 하는 언급들이 문제제기를 한 학생들을 “수업을 이해하지 못한 미숙한 학생”이라고 보이게 할 수 있으며 논쟁의 구도를 교육청과 교사의 대립으로 한정해 본 사건의 본질인 해당 교사의 수업에 대한 학생의 문제제기를 지워버렸다고 비판했다. 또한 광주교육청 역시 “피해자 보호를 빌미로 침묵”하고 “해당 교사에게 소명 기회”를 주었는가 의문스러우며, “침묵하며 경찰조사에만 의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피해자 보호가 아닌 2차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광주여연은 이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판가름하자는 비판을 한 것으로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수업의 문제점과 부족한 점을 지적한 것이 사건의 본질인데,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본질이 잊히고 있다고 비판한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지점은 중요하다. 사건의 본질은 수업 자체에 대한 불만이었을 것인데 그 구체적인 지점에 대한 내용은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추후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학생들을 보호하면서도 그들의 문제제기를 어떻게 공론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이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당사자의 문제제기는 곧 2차가해 혹은 피해자를 권위로 짓누르는 ‘남성적인’ 행위로만 해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성희롱과 성폭력이 발생하지 않은 이 사안을 스쿨미투로 보는 것은 스쿨미투 운동에 불신을 초래할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스쿨미투 취지를 왜곡시킬 소지가 다분하므로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광주시교육청은 배이 교사의 직위해제 취소와 복직을
일부 학생들이 거부감을 느꼈다고 해서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헌법에 보장되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에 의해 보장되는 교사의 교육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해당 영상은 ‘성과 윤리’라는 단원 수업을 위한 학습자료로 선택된 것이며, 자료의 선택은 교사의 재량이다. 교사가 음란물, 명예훼손물, 또는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배포했다면 법적 개입이 필요하겠지만, 수업을 위해 합법적인 자료를 선택했다면 사회 상규에 어긋나거나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이라 해도 학교 내에서 교육전문가들을 포함하는 교육의 당사자들이 학습 자료 선택의 옳고 그름에 관해 자주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옳다. 수업을 위해 어떤 자료를 선택할 것인가는 교육철학과 교육윤리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이 논쟁하고 논의할 문제이지 경찰이나 검찰이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비전문적인 판단으로 전문적이고 특수한 영역의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 된다. 경찰은 자료로 활용된 영상이 어떤 수업의 어떤 목적과 목표를 위해 채택되었는지와 같은 지점들은 무시한 채 신체의 노출 정도, 폭력 재현의 수준과 방식 같은 1차원적이고 기계적인 판단에 근거해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법적 처벌을 시도하고 있어 영상자료가 비윤리적인지를 진지하게 다투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 중요한 것은, 형사처벌은 교육의 영역에 대한 국가의 일방적인 개입이 되어 정권이 지향하는 이념과 취향에 좌우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법적 처벌이 현실화된다면 교사들이 수업을 위해 채택하는 자료의 범위는 현저하게 축소될 것이다. 법적 처벌은 교사들에게 위축 효과로 작용해 수업 내용 구성과 학습자료의 범위를 자발적으로 검열하고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수사중단을 촉구하며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려줄 것을 요구한다. 광주시교육청 역시 사태해결을 위해 형사처벌에 의존해 배이상헌교사를 직위해제하였다면 이를 취소하고 교육당사자들 사이의 논의부터 시작할 것을 요청한다.[7]
[2] 2019년 11월 10일 정오경 전교조 회원인 모교사와의 통화로 알게 된 내용이다.
[3] 배이상헌 교사에 대한 수업배제와 경찰 수사의뢰, 직위해제는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배이상헌 교사가 수업배제를 통보받은 뒤 이에 불복해 수업을 강행하여 교육청이 수사의뢰를 하고 직위해제를 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하는데,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세 개의 조치를 동시에 취한다는 교육청의 통보는 배이상헌 교사에게 보낸 내용증명서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2019. 10. 29.-30. 양일간 “제12회 아시아 인권포럼: 신기술 시대의 인권과 인권경영”이 여의도 전경련회관 다이아몬드홀에서 개최되었다. 제12회 아시아 인권포럼은 고려대학교 인권센터(센터장 서창록), 휴먼아시아,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에섹스(Essex)대학교 경제사회 연구위원회(ESRC) 빅데이터와 기술 프로젝트, 한국인권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번 포럼은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2019년 6월 한국 정부의 주도로 채택된 ‘신기술과 인권’ 결의를 바탕으로 하여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으로 표상되는 신기술의 인권에 대한 영향을 살펴보고, 이에 대한 기회 및 과제를 분석하고자 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오픈넷에서는 박경신 이사와 김가연 변호사가 참석했다.
김가연 변호사는 29일 오후에 열린 “세션 2. 인권에 대한 인공지능(AI)의 영향”의 지정토론자로 참석해 두번째 발제자인 Surya Deva 홍콩시립대 교수가 언급한 인공지능과 젠더 이슈에 대해 인공지능 음성비서는 왜 여성형이 많은가를 주제로 좀 더 자세한 토론을 펼쳤다.
토론문
김가연 오픈넷 변호사
여성의 입장에서 두번째 발제자인 Surya Deva 교수님의 발제에 첨언을 하고자 합니다. Deva 교수님은 인공지능 기술이 성차별을 재생산하고 강화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시리나 알렉사 같은 음성비서의 사례를 언급하셨는데, 이에 대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애플 시리, 삼성 갤럭시 빅스비, 네이버 클로바, 아마존 알렉사 등 음성비서 또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아마 가장 친숙한 형태의 AI일 것입니다. 대부분 기본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세계의 인공지능 음성비서 시장을 선도하는 아마존,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가 ‘여성 비서’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존의 알렉사(Alexa)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따 온 여성형 이름이고, MS의 코타나(Cortana)는 비디오게임 ‘헤일로’에 여성의 이미지로 등장하는 홀로그램 인공지능 이름이고, 애플의 시리(Siri) 아이폰 공동개발자 중 한 명의 이름이자 고대 노르웨이어로 ‘승리로 인도하는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뜻입니다. 이들 주요 기업의 인공지능 음성비서들은 이름과 목소리뿐만 아니라 ‘정체성’(personality)도 여성에 가깝습니다. 개발자들은 사용자들이 인공지능과 대화할 때 진짜 인간과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인공지능의 개성과 성장과정, 이력과 같은 세세한 ‘인간적인’ 면도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하는데, 이러한 정체성이 대부분 여성을 상정하고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여성형 음성비서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에 대해 세 가지 가설이 있습니다.
1. 여성의 목소리를 선호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2008년 인디애나 대학의 Karl Macdorman 교수는 485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목소리의 성별 차이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 연구했는데, 남성 그룹과 여성 그룹 모두 여성의 목소리를 “더 따뜻하게 느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2011년 스탠포드 대학의 Clifford Nass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컴퓨터나 기술에 대해 배울 때는 남성의 목소리를 선호하고, 관계에 대한 조언이나 파트너로는 여성의 목소리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나스 교수는 “인간의 뇌는 여성의 목소리를 좋아하도록 발달했다(“It’s a well-established phenomenon that the human brain is developed to like female voices.”)”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시장 조사에서 일반 유저들이 여성 목소리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2. 여성 인공지능이 덜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여성형 인공지능이 많은 이유가 대중문화에서 접한 남성형 인공지능의 위협적 성향 때문이라는 가설도 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 2017년 개봉한 ‘에일리언 커버넌트’의 휴머노이드 월터와 데이비드 등 남성형 인공지능은 살인을 저지르는 등 종종 매우 위협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워싱턴 대학의 Gender, Women & Sexuality 학과 Michelle Habell-Pallan 교수는 다수의 엔지니어들이 일반인들이 새로운 기술을 위협적으로 느끼거나 거부감이 들게 하지 않도록 여성형의 인공지능을 채택하며, 또한 엔지니어의 다수가 남성인 점도 영향이 있다고 합니다.
3.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재현의 결과 혹은 트렌드를 페미니스트들은 전통적으로 여성이 비서 역할에 자연스럽기 때문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스탠포드대학의 Londa Schiebinger 교수는 “실제로 애플, MS, 아마존 등 음성 비서를 개발한 기업의 사무실에서는 여성 비서들이 일하고 있을 것”이라며 “이런 환경이 IT 과학자들의 무의식 속 성 편견을 형성하고, 자연스럽게 편견이 반영된 과학 기술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인공지능 음성비서의 기본값이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 이유가 사회적 성역할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결과라고 파악합니다. IT 업계 핵심 직종의 종사자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것은 우리들에게 이미 익숙한 사실이며, 이를 고려한다면 음성비서가 여성으로 성별화되어 있다는 것이 IT 과학자들의 무의식 속 성 편견의 반영물이라는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몇몇 기록에 의하면 여성 목소리 선호 성향이 2차 세계대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비행기 조종석의 항법장치에 여성의 목소리를 채택했는데 조종사들이 남성밖에 없어 여성의 목소리가 잘 들렸기 때문입니다. 전화교환원(operator)도 전통적으로 여성의 직업이었고 사람들이 여성의 목소리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게 만들었습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처음으로 자동화된 음성 시스템을 설치했을 때 운전자들이 압도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며, 현재 대부분의 네비게이션이 여성 목소리를 기본 설정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전통적으로 ‘여성’ 비서가 수행하길 바라는 기능을 현재 인공지능 비서가 수행하길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남성형’ 인공지능과 ‘여성형’ 인공지능에 할당된 역할에는 꽤 차이점이 있는데, 남성형의 경우 지식과 권위에 관한 것이고, 여성형의 경우 검색이나 일정 잡기 등의 서비스 역할에 관한 것이라는 경향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2019년 유네스코가 발표한 보고서(I’d Blush if I could)는 ‘시리’를 비롯한 음성 인식장치들이 대부분 ‘젊은 여성’ 목소리를 기본값으로 설정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답을 내놓게 돼 있어, 여성 역할을 수동적·소극적이며 명령자에 복종하는 역할에 한정해 젠더에 대한 편견을 강화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유가 어떻든지 간에 인공지능에게 여성성을 부여하는 것은 몇 가지 문제점을 시사합니다. 이것은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 외에도, 여성형 인공지능에게 단순히 일정을 잡는 것을 넘어 비윤리적인 역할을 기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몇몇 로봇회사는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로봇, 섹스로봇을 개발하고 있는데 대부분 여성형입니다. 유네스코 또한 그 진짜 원인이 어디에 있든, 인공지능들이 여성 일변도의 정체성을 갖는 것은 그 자체로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고 지적합니다. 인공지능 음성비서의 목소리가 점점 더 진짜 인간의 말투에 가까워지고, 인공지능이 일상 속에서 급속도로 활용 폭이 넓어질수록 ‘복종만 하는 여성의 목소리’가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대중들에게 여성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고객만족’이 가장 중요한 목표인 대다수의 인공지능 음성비서는 사용자가 부적절한 대화를 걸어오더라도 이를 거부하거나 반박할 수 없습니다. 특히 “인공지능 비서와의 대화 내용 중 5%가 성희롱”이라는 로빈 랩(Robin Lab)의 발표에서도 알 수 있듯, 인공지능은 갈수록 늘어나는 부적절한 대화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 미디어 ‘쿼츠’ 기사에 의하면 주요 기업의 인공지능 음성비서들에게 미국언어학회에서 규정한 성희롱에 해당하는 몇 가지 말을 반복적으로 해 본 결과, 모두가 극도로 소극적인 반응으로 일관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이 매춘부 같은 것!”과 같은 모욕적인 말에도 시리는 “할 수 있다면 얼굴을 붉혔을 거예요”, 알렉사는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글 어시스턴트는 “미안해요, 못 알아들었어요”라는 대답을 할 뿐이며, 코타나는 대답 대신 인터넷에서 야한 동영상을 찾아 준다고 합니다. 이처럼 부당한 대우에도 최소한의 대응조차 할 수 없는 ‘여성의 목소리’와 일상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여성에 대한 편견 또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 우려하는 것은 결코 과도한 걱정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논란은 결국 현실의 사회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그대로 투영된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수준의 인공지능 비서들이 미투 운동을 벌이거나 성전환을 하는 건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고 성평등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처럼 AI 기술의 활용에 있어서도 같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들은 인공지능 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할 때 UN 기업과 인권 이행 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을 준수해야 하고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들의 ‘창조주’인 기업의 행위를 감독하는 주주이자 소비자로서 그들의 제품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만큼 기업들이 발빠르게 개선책을 찾도록 하는 좋은 유인책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단법인 오픈넷이 1월 20일(월) 오전 10시 30분부터 고려대학교 CJ법학관 리베르타스홀에서 “인공지능의 윤리와 데이터 거버넌스”를 주제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한다. 이번 세미나는 사단법인 오픈넷, 고려대학교 미국법센터, 인터넷사회연구센터 국제네트워크, 하버드대학교 버크맨클레인센터, 디지털아시아허브가 공동 주최한다.
이번 컨퍼런스의 핵심은 컨퍼런스에서 처음으로 발표되는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사이버법 클리닉의 제시카 필드 교수가 중요한 AI 윤리 원칙을 매핑하는 백서와 데이터 시각화의 결과물인 “원칙에 입각한 AI 프로젝트(Principled AI Project)”일 것이다.
또한 데이터 거버넌스와 AI는 물론이고 개인정보보호법과 오픈데이터 이니셔티브가 어떻게 AI의 포용성에 영향을 미치는지에도 초점을 맞출 것이다. 현재진행형으로 발전 중인 AI가 머신러닝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한, 머신러닝을 위해 제공되어야 하는 트레이닝 데이터에 관한 규범은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AI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특히 1월 9일 통과된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이 한국에서의 AI와 데이터 거버넌스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다. 데이터3법은 가명처리를 거친 가명정보를 통계작성, 과학적 연구 등의 목적일 경우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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