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한국 사회] 관행과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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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3769.html#csidx5b3b013576160548d22e461482d2e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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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 후보지를 경북 성주군으로 확정해 전격 발표했다. 성주읍 남동쪽에 자리 잡은 성산포대를 사드 기지 후보지로 정한 것이다. 마을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이다. 갑작스런 사드 배치 소식을 들은 성주 군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 사드 배치 후보지로 확정된 성주군 성산포대, 마을까지 거리가 약 200m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7~80년대 시대에 정치하는 거랑 똑같습니다 민주주의가 어딨어요. 민주주의가 없잖아요. 지금 예고 없이, 예고 없이 삽시간에 3일 만에 딱 결정 납니다 이거는 전 세계에도 이런 경우는 없지 싶습니다.백영철 / 성주군민
이날 성주군수와 군민들은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국방부를 찾았다. 군수 일행은 성주 군민 2만 명이 넘게 참여한 사드배치 반대 서명서와 혈서를 국방부에 전달하고 장관 면담을 요구했다. 5시간 만에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나타났다. 한 장관은 사드의 유해성에 대해 괴담이라고 일축했다.
이 사드 무기 체계는 어디 괴담처럼 돌아다니는 이야기에서 나오는 거처럼 위해하거나 문제가 있는 무기 체계가 아닙니다. 사드가 배치되면 제가 제일 먼저 그 레이더 앞에 서서 전자파가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제 몸으로 직접 시험해서 여러분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한민구 국방부 장관
장관이 전자파 검증을 한다 하는데 어떻게 검증을 할 건데요? 사드 배치 해놓고 여기 와서 하루 있어서 그게 검증이 돼요? 우리는 10년, 20년 살 건데 하루 사드 앞에 있어서 그게 검증이 되냐고요. 괜찮으면 청와대에 설치하라고요.성주군민

▲ 지난 13일 성주군민들이 국방부 장관에게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기 위해 국방부에 갔다.
성주 군민들과 국민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 넣은 한반도 사드 배치.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한민구 장관은 사드 레이더로부터 100미터 이내만 위험지역이고 그 외에는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성주읍 대부분이 전자파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 육군 교범에 따르면 사드의 레이더 원점으로부터 3.6km까지 관계자 외 출입제한구역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할 경우 성주읍내 대부분 지역이 출입 제한 구역에 해당된다. 또 5.5㎞까지는 폭발위험이 있는 모든 장비와 전투기 조종ㆍ정비하는 인원의 출입이 통제된다. 국방부가 사드 전자파 위험반경을 축소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 국방부는 사드 레이더로부터 100m이상 떨어지면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2012년 미 육군 교범에서는 비통제인원 출입제한구역을 3.6km로 설정하고 있다.
또 한 의학전문가는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자파에 직접 노출되지 않더라도 강력한 자기장 때문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레이더의 길에 있는 건 당연히 위험하고요 왜냐하면 이 레이더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레이더 길에 있는 건 엄청나게 위험하고 그 밖에 레이더 길 내에 원통형으로 그려지는 어떤 장이 있는데 그 장에 형성되는 전자파의 밀도 이런 것들에 영향받을 수 있어서 사실 이 어느 장까지가 위험할 것인가 이 부분이 상당히 논란이 되는 것이죠.이상윤 /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미국의 경우 사드 배치 지역에 지속적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해오고 있다.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 내에 배치된 사드 레이더의 경우 마을에서 떨어진 해안 쪽에 자리 잡고 있다. 레이더 방향도 해안을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자파로 인한 안전과 환경 문제 등 환경영향평가를 지난 2009년, 2012년, 2015년 세 차례에 걸쳐 진행했다.

▲ 미국 괌 앤더슨 공군기지 내 사드포대
그런데 한국 정부는 사드 배치 후보지 발표에 앞서 별도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주군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사드 기지 레이더 때문에 피해를 입은 지역이 있고 여전히 전자파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도 사전에 환경영향평가 없이 사드 배치 지역을 먼저 지정한 것이다.
북한은 현재 1천여 기의 미사일을 갖고 있다. 국방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고도미사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드를 배치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드 1개 포대에서 한꺼번에 대응할 수 있는 미사일이 48기에 불과하다. 또 재장전을 하는 데 30분이상이 걸리는 것을 고려하면 사드로 북한의 미사일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마저도 사드의 최대 요격거리는 200km이기 때문에 사드가 성주군에 배치될 경우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서울과 수도권은 방어가 불가능하다.

▲사드의 최대요격거리는 200km로 성주에 사드가 배치될 경우 수도권 방어는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조차 사드의 실효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013년 미 연방 상원에 제출된 보고서에는 한국에서 사드의 효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적혀있다. 또 미 국방부의 미사일 운용시험평가국장은 지난 2015년 3월 미 연방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진술서에 사드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고 자연환경 실험에서 결함을 보였기 때문에 사드가 배치되려면 이 같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답변했다.
지금까지 비행실험과 신뢰성 실험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사드 시스템의 구성요소들은 지속적이고 꾸준한 신뢰성 향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극한 온도와 온도충격, 습기, 비, 얼음, 눈, 모래, 먼지 등을 견뎌내는지 등 시스템 성능을 시험하는 자연환경 실험에서도 결함을 보였다. 이는 사드가 언제, 어디에 배치되든 적절하게 운용될 수 있음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꼭 해결돼야 한다.마이클 길모어 / 미 국방부 미사일운용시험평가국장 서변 답변서 중
사드 배치 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사드 배치와 관련된 불필요한 논쟁을 멈출 때”라는 말만 남긴 채 7월 14일 아셈 참석 차 몽골로 출국했다가 18일 귀국했다. 성주군민들의 반대에도 사드 배치를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 주 월요일부터 닷새동안 여름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취재작가 박은현
글구성 정재홍
연출 김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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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양형위원회의 공무집행방해범죄군 양형기준 수정안의 요지
수정안의 배경
참여연대는 아래와 같은 이유에서 이번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수정안이 타당성과 합리성을 결여하고 있어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철회를 요청함.
▣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수정안에 대한 참여연대 의견서
정치발전소 회원모임인 ‘정치가 평전읽기’ 모임이 지난 1월 21일에 끝났습니다.
시즌 1과 2을 거쳐 긴 시간 이어졌던 모임이었습니다.
긴 모임에 함께 했던 후기 및 마지막으로 읽었던 김대중 자서전에 대한 서평을 ‘유성민’회원이 써주었습니다.
편견의 안개가 걷히자, 정치가가 보였다.
– 정치가 평전읽기 모임, ‘김대중 자서전’ 독서 후기 –
유성민
#1
정치가 평전 읽기 모임에 참여한 동기는 사소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정치적으로 뭔가를 이것저것 해봤는데 여전히 잘 되지 않았고. 하다못해 나는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SNS 사진 업로드를 이유로 계약을 해지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으로 인해 공적-사적으로 여러 부침을 겪고 있었다. 회복이 필요하고, 위로가 필요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에서 반 발짝 정도 떨어져서, 책을 읽고 사람들과 얘기를 할 수 있는 모임이 필요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무조건적인 예찬을 경계한다. 두 정치인의 행적 중 동의하지 않는 부분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말하지만 평전 읽기 모임에서 ‘김대중 자서전’이란 커리큘럼은 사실 마케팅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김대중/노무현 자서전 읽기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활동이니까. 그래서 김대중 자서전에 대한 고민이나 기대보다는, 다른 해외 정치인들의 사례에서 위로를 받고 교훈을 얻고 싶었다.
사생아였던 빌리 브란트, 암살당한 올로프 팔메, 2권이라는 만만찮은 길이로 모두의 시간을 하얗게 불태운 빌 클린턴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간적 실수와 약점, 다른 정치인과 여론의 공격에 고뇌하고 대응하는 그들에게 마음껏 감정을 이입했다. 그러한 감정이입과 공감 속에서 난 어느 정도 위로와 교훈을 얻었다. 여름의 아픔과 분노는 어느덧 가을의 차분한 안정으로 변했다.
부패한 정치인이 된 룰라, 다소 재미가 없지만 단단함을 느꼈던 메르켈을 지나 마지막으로 읽은 자서전은 드디어 김대중. 민주화와 한반도 평화, 그리고 신자유주의. 그런 정치적 평가를 뒤로 하고 그의 삶에서 배우고 얻을 것은 무엇일까. 책이 너무 두꺼워서 읽는데 오래 걸리진 않을까. 그런 기대와 우려로 겨울의 마지막 평전 읽기를 시작했다.
본격적인 감상을 말하기 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는 너무 작았고, 우려는 너무 컸음이 드러났다. 드라마같은 삶의 전개, 눈물이 나오고 코가 찡한 장면들, 담담히 서술된 노(老)정객의 이야기에서 나는 배움에 더해 감동도 얻었고, 읽는데 1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가장 감정이입이 잘 된 정치인이었다.
#2
이유는 간단했다. 솔직하게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면서도, 유난히 많은 실패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 실패들을 온전히 다 거치고 난 우뚝 선 정치인이었기에, 김대중 대통령은 정말 “위대한 정치가”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청년사업가, 요새로 치면 스타트업을 하면서 주거래은행에 법인계좌 만들고 마침내 신사업에 성공해 대금을 예치했는데, 다음 날 전쟁이 나서 은행 계좌가 동결되고 알거지가 된다면 나의 정신상태는 온전할까.
우리가 대부분 알고 있듯, 선거란 후보에게 특히 고달픈 일이다. 특히 패배는 한 순간에 그를 나락으로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국회의원은 1번만 해도 전(前) 의원이다.”란 말로 2번, 3번을 도전했다. 목포에서 1번, 인제에서 2번을 떨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4번째만에 연고지도 아닌 인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지 하루 만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서 당선증도 못 받고 국회가 해산되었을 때, 나였다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정권으로부터 납치되어 현해탄에 수장될 위기까지 넘긴 상황에서 나는 다시 나의 정치적 신념을 유지하고, 나와 함께 하던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까. 그런 상황을 겪고 또 다시 쿠데타를 겪고 나서는, “대통령 빼고 다 줄 테니 우리에게 협력해라”라고 하는 쿠데타 세력에게 “내가 당신들한테 협력은 할 수 없으니 날 죽인다 한들 내가 어찌 하겠소.”라고 말할 용기를, 자신있게 낼 수 있을까.
한일기본협정 당시의 김대중의 모습처럼, 국민들 다수가 지지해주지 않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소신은 끝까지 지켜내고, 설득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까.
그런 그의 말들 중에서도 묘하게 먹먹한 말이 있었다.
“김 총재와 나를 라이벌로만 보지 마십시오. 나라가 잘 되려면 여러 인물이 커야 합니다. 내가 민주 회복 때까지 살아남아 있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고, 김 총재가 살아남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니 제2, 제3의 김대중이와 김 총재가 필요합니다. 이래서 하나가 쓰러지고, 하나가 병들더라도 올바른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민주 회복이 되면 이까짓 것 따질 필요 없습니다. 그때 국민 여론과 여러분 의사로 결정하면 그만입니다. 애도 낳기 전에 이름 갖고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김 총재는 오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장래 이 나라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단견으로 시국을 보지 않고 10년, 20년 뒤를 내다 보고 “더 많은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 자신과 파가 다른(김대중은 신파, 김영삼은 구파 출신이며 상도동/동교동 계로 계파가 다르다.) 사람도 “커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자신과 주변의 생존에 급급해 허우적대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적 옳음을 위해 정치적 상대방을 키우는 정치. (설사 그로 인해 훗날 자신의 기회가 뒤로 미뤄진다 해도 말이다.)
정말 먹먹했다. 나는 현재 내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정치인을 본 지가 너무 오래 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멀리 내다보는, 대국적인 정치”는 그의 정치 일생 내내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가령 의석 수 67대 6의 이기택 씨와의 통합 협상에서 “통합을 하려면 상대에게 내 것을 다 준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70%를 주고 30%를 갖는다는 마음으로 해야 가능하다.”란 말을 하고 5대 5의 비율로 협상을 한다거나, 압도적인 지지율 차이에도 내각제 개헌을 수락하고 DJP 연합을 성사시킨다거나 하는 일들은 모두 그의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의 조화, 멀리 내다보는 혜안에서 비롯됐다.
“정치꾼”이나 “정치인”이 아니라, 그가 “정치가”로 불릴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정치가의 “가”는 집 가(家)자를 쓴다. 정치일문, 한 일가를 이룬다는 것이다.
물론, 그의 자서전에 있는 내용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그의 집권 때 행했던 정책 중 일부는 동의가 안됐고, 이는 자서전을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였던 문제, 정부 조직구조를 민간 컨설팅회사에 조직진단을 맡긴 일, “관치”를 없애겠다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부분은 동의할 수 없었다. 특히 자신이 추진한 정책에 대한 반대에 대해, “정치권의 반대”란 표현은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반대가 정략적이라는 것만큼 정략적인 반격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그의 인생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입장을 동의나 수용은 못해도 이해는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는 군사독재에 항거하면서 늘 부정부패, 정경유착의 강한 “관치”를 30년간 지켜 본 사람이었다. 사실 그의 “대중경제론” 등 ‘산업민주화’ 등도 지금 관점에서 보면 민영화 정책을 포함하고 있었다. 어쨌든 정치 민주화 이후의 “경제 민주화”는 남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3
“돈”과 “정치”에 대한 그의 자서전 속 말도 한번쯤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정주영씨는 정치에 입문하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다. 그와는 여러 자리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는데 정치를 너무 쉽게 보는 듯 했다. 지방에 다니며 온갖 공약들을 다 쏟아내고, 당에도 거액의 지원금을 약속했다. 그러나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돈으로 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결국 그는 정치인으로는 실패했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 정치는 이러나 저러나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인간의 사단칠정이 다 녹아있는 행위의 예술이다. 돈은 칠정, 희로애락애오욕을 움직일 수 있을지언정, 사단, 인의예지를 차마 움직일 수 없다. 인의예지, 정치인에게 있어 이 “사단”을 움직일 수 있는 도덕과 신념, 이른바 사람을 움직이고 끌어갈 수 있는 ‘소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이 있어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물론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듯, 돈은 “주조된 자유”다. 돈은 내 마음과 본능이 욕망하는 것을 행하기 위한 ‘자유이용권’이다. 인간의 네트워크는 돈을 통해 오가는 마음과 물질을 통해 보다 더 단단해지고, 시간이 필요한 많은 것들은 돈을 통해 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가 많은 사람, 이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우러르고 따르게 된다. 그래서 돈은 힘이 되기도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착각하곤 한다. 정치는 돈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일까, 돈이 있어서 하는 것일까,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정치는 재분배의 과정이다. 각 계층의 이익을 재분배하는 과정이고, 재분배 과정에 대한 관점들의 대결이다. 기업집단 같은 조직 내에서의 정치, 재분배는 “이익과 인센티브”가 제일 중하지만, 사람 사는 사회가 어디 그런가. 사회의 재분배는 보통 그 사회의 구성원이 믿는 신념과 가치, 문화가 물질적 이익과 함께 재분배된다. 물질적 토대를 기반으로 한 치열한 신념의 대결과 설득의 과정이 바로 정치다. 그래서 정치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 내가 당신에게 돈을 줄 수 있다는 확신보다 더 중요한, “소신”(소명)이 필요한 것이다.
돈으로는 사람의 능력, 그 사람이 한 행위의 결과물을 살 수 있지만, 정치가의 소신은 사람의 마음, 사람 그 자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소신은 수시로 흔들린다. 돈을 위시하여 사람의 “칠정”을 움직이는 갖가지 변수에 의해. 그 무수한 흔들림을 이겨내는 “단단함”을 벼리는 과정이 아마 정치꾼이 정치인으로, 정치인이 정치가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4
국민의 정부 5년을 거치며 그의 인생 막바지를 통해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김대중이란 정치가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 바로 소명이었다. 자서전에 적힌 그의 집권 5년은 순탄하지 않았다. 2000년 총선은 패배했고, 자민련과의 공조도 붕괴했다. 남북정상회담과 뒤이은 노벨평화상 수상 등 그의 소신인 “한반도 평화”를 이뤄낸 영광의 순간들도 있었지만, 북-일, 북-미 수교와 핵 폐기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꿈꾼 김대중-클린턴 구상은 뒤이은 조지 W. 부시의 당선과 9.11 테러로 무너져 내린다. 2003년 정권을 물려받은 참여정부는 대북송금 특검을 통해 그의 통치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열린우리당 창당,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파동을 통해 그가 구축한 호남과 청년의 민주개혁세력을 실망시켰다. 이명박 정부의 불통은 그가 죽기 직전까지 심각했고, 급기야 그의 마음과 건강까지 앗아갔다.
그럼에도 그는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전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참여정부와 노무현 대통령은 그의 뒤를 좇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행동하는 양심”을 촉구하며 대의 앞에서 뜻을 같이 하고 불의 앞에 같이 맞서려 했던 이였다.
책을 다 읽고 나자 비로소 편견의 안개가 걷히고, 민주화 이래 우리 곁을 다녀간 어떤 위대한 “정치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에게 만약 정치적으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그 꿈을 누군가가 물어봐 준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그저 “정치가”를 분골쇄신해 도울 수 있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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