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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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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익명 (미확인) | 화, 2017/02/21- 10:44

<대선후보자 시리즈>

다른백년은 ‘금주의인물’ 코너를 통해 매주 소개해 온 인물 가운데 이번 대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을 추려 <대선후보자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어떤 후보자는 소개 시점이 빨라 지금 상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직 소개하지 않은 후보자도 있습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과거 행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이번 시리즈가 올바른 선택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2016. 9. 13)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2016. 10. 14)

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2017. 1. 20)

계급배반을 꿈꾸는 금수저, 남경필 경기도지사 (2017. 2. 14)

아스팔트 우파의 마지막 희망,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대통령 권한 대행은 ’관운’이 좋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는 1980년 만성 담마진(두드러기)로 병역을 면제받고 이듬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징병 신체검사를 받은 365만여명 가운데 담마진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남성은 4명에 불과하다 (2016년 6월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자료). 

2006년과 2007년 검사장 인사에서 두 번이나 미끄러졌지만 고검장은 사법시험 동기 가운데 가장 빨리 올랐다. 고검장을 끝으로 검사복을 벗었지만 박근혜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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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은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장관,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 권한대행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 박근혜 탄핵 이후 방향을 잃은 냉전보수세력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국무총리에 오를 때도 운이 따랐다. 2015년 5월 이완구 총리가 성완종 게이트로 취임 두 달 만에 낙마하며 갑자기 국무총리가 됐다. 2016년 11월에는 김병준 책임 총리 후보자가 임명되며 ‘실업자’가 될 뻔 했지만, 복잡한 정치 상황 속에서 오히려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맡았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대선 출마를 포기하자 여권 주자 가운데 여론조사 지지율 1위에 오르며 ‘황교안 대망론’까지 불고 있다. 

이제 그의 운은 시험대에 올랐다. 박근혜 정권의 핵심이었던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을 함께할지, 아니면 억세게 좋은 운이 그에게 다시 날개를 달아줄지 말이다.

“나는 흙수저”…유신시절 학도호국단장

 “여러분은 나를 금수저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흙수저 중의 무수저다.”

2016년 12월27일 기자 간담회에서 황 권한대행은 자신이 ‘무수저’라며 6.25 전쟁 당시 월남한 가족사를 언급했다. 그는 1957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는데, 북에서 피난 온 아버지가 고물상으로 가족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그는 법무부 장관 재직시절 모교인 봉래초등학교에 방문한 자리에서 부유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돈을 많이 벌거나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초·중등학교까지 황 권한대행은 반장을 도맡아 하는 등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지금의 그의 성향은 경기고 재학시절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동기생이던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노회찬 정의당 대표는 유신 선포 1주년을 맞아 유신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뿌렸지만 황 권한대항은 이에 동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3학년 때 학도호국단의 연대장(학생 대표)을 맡기도 했다. 학도호국단은 박정희가 장기집권을 위한 ‘10월 유신’ 을 밀어붙이며 학생회를 폐지하고 만든 준군사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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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왼쪽부터 황교안, 이종걸, 노회찬. 이들은 경기고 72회 동기들이다. 아래 사진은 1975년 경기고 학도호국단 연대장때의 황교안 총리(맨 앞쪽 어깨띠와 완장을 찬 이)의 모습. (사진 출처: 경기고 졸업사진)

그가 총리에 올랐을 때 이종걸과 노회찬은 “황교안 총리는 학창시절 모범생이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도 대부분 학생들이 독재 정권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어용조직인 학도호국단 간부를 맡으려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서울대 법대를 노렸지만 실패한 그는 재수 끝에 1977년 성균관 법대에 입학해 고시공부에 매진했다. 반유신 투쟁이 본격화되는 시기였지만, 그는 ‘운 좋게’ 병역면제를 받은 뒤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총리 청문회 당시 군 병원의 공식 진단 6일 전에 병역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끝내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되지 않았다.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 피부병을 앓고도 사법시험에 합격한 것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기도 했다.

확신형 공안검사…민주정부에서 밀려나

그는 검사로 임용된 뒤 공안검사의 길을 걸었다. 대부분 공안검사들이 공안 경력을 내세우기 꺼리지만, 그는 법무부 장관 시절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장관보다 공안검사가 가장 적성에 맞는다”고 밝혔다. 

그는 1987년 서울지검 공안검사를 시작으로 대검찰청 공안 1·3과장과 서울지검 공안2부장을 지냈으며, 공안을 총괄하는 서울지검 2차장을 맡았다. 김현희 칼(KAL)기 폭파 사건과 임수경 방북 사건, 1980년대 말 학생 운동 등 여러 굵직한 공안 사건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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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이 1988년 펴낸 ‘국가보안법’. 그는 이 책으로 ‘미스터 국보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며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그는 공안검사의 ‘본색’을 고수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김대중 정부 출범 첫해인 1998년  <국가보안법 해설>이란 책을 써서 ‘미스터 보안법’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2009년에 쓴 <집회·시위법 해설>에서 “집시법 역시 4·19 혁명 이후 각종 집회와 시위가 급증하여 무질서와 사회 불안이 극에 달한 상황 속에서 5·16 혁명 직후 제정됐다”며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규정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공안검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꿋꿋이 고수했다.

아예 그는 ‘좌파정권에 저항하다 밉보인 투사’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사장 인사에 밀린 것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미운털이 박혀서라는 주장이었다. 

2011년 그는 부산고검장 시절 교회에서 한 특강에서 이렇게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김대중씨는 계속 재야활동을 했었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조사를 받고 검찰에서도 조사받고 정부하고는 계속 갈등했던 분이다. 그런데 이런 분이 대통령 딱 되고 나니까 그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던 검사들이 전부 좌천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공안부 검사들에 의해 대우중공업 사태와 관련해 구속까지 된 분이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여전히 곱지가 않았다”

박근혜 아바타…공안통치 좌장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그는 법무부 장관, 총리를 거치며 정권의 해결사 노릇을 했다. 

2013년 9월 법무부 장관 재직 당시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지휘하던 중 ‘혼외자’ 의혹이 불거진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의 감찰을 지시해 옷을 벗게 했다.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하자 “법률가의 양심”을 이유로 반대 입장을 보였다. 당연히 대선개입 사건 수사는 힘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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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은 법무부장관시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를 노골적으로 방해했다. 이 사건이 박근혜정부의 정통성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철저히 박근혜의 아바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헌정 사상 최초인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를 총지휘하기도 했다. 

검찰이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 123 정장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하려던 것을 막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에 그는 20일 현재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으며 야당의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실정법보다 교회법이 우선

공안검사와 함께 그를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다. 문제는 그의 신앙이 공적인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경기도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 교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다가 탈레반에 납치됐을 때 무분별한 선교활동에 대한 비판이 일자,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그런데 과연 납치된 그들은 비난받을 일을 한 것인가?”라고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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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권한대행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데다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 사진은 2012년 2월 열린 ‘변호사 친교의 밤’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는 황교안의 모습. 오른쪽은 아내 최지영씨가 낸 복음성가집 앨범 (사진 출처: http://www.bluetoday.net/)

그가 쓴 <교회와 법 이야기>에서 “주일에 사법시험 치르는 것을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결정해 유감이다”라며 실정법 위에 교회 논리를 앞세우기도 했다. 

결국 그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공안검사’, ‘독실한 기독교 신앙’, ‘박근혜 정권의 해결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철저하게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지향했고, 이른바 ‘애국 보수세력’의 가치를 대변해왔다. 

실제로 그의 대망론을 부채질하는 것은 자유한국당(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몸으로 막겠다는 ‘아스팔트 우파’들이다. 

그는 현재 자신의 대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안 하며 주가를 높이고 있다. 황 권한대행의 출마 가능성에 대해 여론조사지지율이 20%까지 오르지 않으면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권한대행이라는 중책을 쉽게 내려놓는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분명한 건 광장의 촛불 민심은 그를 황교안 개인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의 ‘아바타’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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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천하

이병한 선생님, 새해 벽두에 보내주신 개벽소식 잘 받아보았습니다. 마침 새해 첫 출근길이었습니다. 천지가 잠자고 있을 때 서울에서 보낸 편지를 천지가 깨어날 무렵에 열차 안에서 읽을 수 있다니, 새삼 물질개벽의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첫날 일과를 마치고 대학 근처의 심야카페에 와서 답장을 쓰고 있습니다. 곧 자정이 되려 합니다.

편지를 일독하고 나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논어』에 나오는 “후생가외”라는 말의 의미였습니다. 대개는 후학의 <실력>의 출중함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인데,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실력>보다도 <힘>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세대의 기상이 넘쳐 기성세대가 두려움을 느낄 정도라는 것이죠.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프레시안》에 쓰신 글의 부제가 “유학국가에서 동학국가로”여서 깜짝 놀랐는데, 이번에는 “개벽국가의 탄생”이라는 표현에 거듭 놀랐습니다.

제가 아무리 개벽파를 자칭한다고 해도 “동학국가”나 “개벽국가”와 같은 대담한 표현은 감히 쓰지 못합니다. 지식이나 지혜는 배울 수 있을지 몰라도 기개나 기운은 압도당하는 것이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정보가 공유되는 세상에서는 “역발산(力拔山) 기개세(氣蓋世)”와 같은 패기가 정말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지난 겨울에 소개해주신 하자센터의 ‘공공하는 청년들’에게서도 같은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한반도의 대통령인양 나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거리로 뛰쳐나와 남북평화를 노래하기 시작했더니 거짓말처럼 남북대화가 시작됐다는 그 용감한 십대들 말입니다. 평화의 뒤에는 용기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이런 패기는 젊은 세대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제 있었던 원광대학교 시무식에서도 박맹수 신임총장께서 “개벽대학”이라는 표현을 쓰시더군요. 신임 이사장님도 신년사에서 같은 표현을 쓰셨고요. “원광대학이 다시 개벽하여 개벽대학으로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이 기세에도 제가 압도당했습니다. 두 분 다 저보다는 한 세대 위의 분들입니다. 이번에는 “선생가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원불교 이념으로 “개벽의 일꾼”을 길러내자고 개교한 원광대학교가 왜 그동안 “개벽대학”이라는 슬로건을 내놓지 못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혹시 뭔가에 억눌려 주저주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개화(서학)나 척사(유학)에 억눌려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원광대학교의 모습이 그동안의 대한민국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첫 번째 화두로 제기하신 중국의 ‘다시 천하’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제가 모르는 중국의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문득 “천하위공(天下爲公)”을 “천하이공(天下二公)”으로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이 스스로를 ‘공’(보편)이라고 자처하던 시대에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이 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고공(古公)과 신공(新公)의 상박(相搏)이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이 이공(二公) 사이에서, ‘척사’와 ‘개화’ 사이에서,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서, 김태창선생님 식으로 말하면 ‘공공’을 열기 위해서, ‘개벽’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식의 근대의 시작이었고, 그래서 “한국 근대의 탄생”은 “한국 개벽의 탄생”으로 바꿔 말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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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시 근대

사실 제가 ‘한국의 근대’라는 진부한 주제를 다시 꺼낼 수 있기까지에는 기타지마 기신 교수님의 ‘인도-아프리카 연구’와 선생님의 『유라시아 견문』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동학에서 원불교에 이르는 개벽종교만으로는 “개벽이 근대”이고, 그 근대는 “영성적 근대”였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프리카가 그랬고, 인도가 그랬고, 이란이 그랬고, 러시아가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성속합작”을 하고 있다는 전문가와 견문가의 ‘증언’을 듣고 나서야 확신이 설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선생님께서 작년 5월 1일에 원광대학교에서 발표하신 <나와 동북아시아/유라시아 연구>의 충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치 『장자』에 나오는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의 자라에게 바다이야기를 처음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동안 동아시아 전통과 서구 근대에 갇혀 있던 자신의 좁은 시야를 뼈저리게 반성하게 해준 자리였습니다. 30여 년 전에 서울에서 김용옥 선생님의 동양학 저서를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15년 전에 일본에서 Brook Ziporyn 교수의 노장 해석을 처음 접했을 때 이후로 받은 세 번째 지적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작년에 꼽은 최고의 글은 당연히 선생님의 견문록입니다. 특히 《프레시안》에 실린 두아라 교수와의 인터뷰, 1979년의 이슬람혁명 이야기, 그리고 《한울안신문》에 실린 인터뷰가 압권이었습니다. 세상이 ‘다시 개벽’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칭 ‘개벽파’라면서 원광대에 나타나셨을 때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제서야 비로소 우리의 치우친 근대사를 다시 쓸 수 있는 고수가 나타났구나 하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도 한국의 젊은이들 중에는 과거의 제가 그랬던처럼, 개화와 척사 사이에서, 서학과 유학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들이 많을 것입니다. 적어도 다음 세대에게만큼은 제가 걸었던 것과 같은 정신적 방황의 길을 반복시키고 싶지는 않습니다. 앞 세대를 원망하면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부디 잊혀진 ‘개벽사’를 복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돕겠습니다.

 

3. 부채와 치유

몇 년 전에 우연히 서울의 홍은동에 있는 대종교 총본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총본사라고는 하지만 굽이굽이 비탈길을 올라가서 산꼭대기에 허름한 건물이 두어 채 있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놀란 것은 창고에 방치된 채 쌓여 있는 방대한 대종교 경전과 문헌들이었습니다. 그 귀중한 문서들이 전혀 관리되지 않은 채, 방 한 곳에 랩으로 쌓여 있었습니다. 도서목록도 없었고 자료정리도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자료실이나 박물관 같은 것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럴 인력이나 재정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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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중추였음에도 방치되어 있는 대종교 문헌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이나 안동에 있는 국학진흥원에 비교하면 너무나도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유학 연구에는 나라에서 방대한 재정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항일독립투쟁을 가장 치열하게 전개했다고 하는 대종교에 대해서는 왜 저렇게 냉정하고 무심하나 싶었습니다. 신종교라는 편견이 있어서일까요? 이렇다 할 가문이 없어서일까요?

저는 비록 종교는 없지만 그냥 한국의 소중한 사상자원으로 느껴졌습니다. 가문을 떠나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주벌판의 혹한의 전장에서, 혹독한 감옥에서, 수련을 해가면서 써내려간 경전과 문헌들입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규장각, 고전번역원, 안동의 국학진흥원… 온통 조선시대 유학을 연구하는 기관들뿐입니다.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한국학의 편중과 독식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유학이 싫어서가 아니라 불균형은 불건강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오구라 기조 교수가 한국인들은 ‘우리’ 아니면 ‘남’이라고 했는데, 유학은 ‘우리’지만 대종교는 ‘남’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대종교는 비록 ‘개벽’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을지 몰라도 ‘개천(開天)’을 말했습니다. “새로운 하늘을 연다”는 개천은 “새로운 세상을 열자”는 개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종교도 큰 틀에서는 개벽종교이자 개벽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에게 개벽이 ‘부채’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전공에 상관없이 이 땅에서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연구해야 할 숙제 같은 느낌입니다.

개벽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최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나온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근대성에 관해 토론한 책이었는데, 어느 선생님께서 “개벽파는 척사파의 일종이 아닌가요?”라는 발언을 하시더군요. 불과 몇 년 전의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개벽사상을 모르고서 한국의 근대를 논한다는 것은 계몽주의를 모르고서 서구의 근대를 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한국의 근대에 관한 모든 논의는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모래성을 쌓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개벽의 역사는 어두운 과거, 패배한 역사라서 보기가 싫다고도 하는데, 그렇기에 더더욱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피해가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개벽사를 읽어내려 가다 보면 거기에도 밝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부채’이자 동시에 ‘치유’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지적하신대로 중국의 지식인들이 천하를 고수하고, 일본의 위정자들이 개화에 기댈 때, 한국의 민중들은 개벽을 창안했기 때문입니다.

 

4. 개벽의 힘

지난 연말에 일본의 동북대학에서 ‘토착적 근대’를 주제로 한일공동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발표자로 참석하신 동경대학교의 이타가키 유조 명예교수께서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동학의 보편성을 설명하는 일이다”는 총평을 하셨습니다. 주최측인 동북대학의 가타오카 류 교수는 학술대회 후기에서 “한국의 동학이나 촛불혁명과 비견할만한 일본사상의 지하수맥을 발견하는 작업을 한국과의 공동연구의 형태로 지속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근대성을 주제로 몇 년 동안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한 끝에 마침내 양국 연구자의 의견이 하나로 모아졌음을 느꼈습니다. 비록 소수의 인원이었지만 해원상생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개벽의 힘”입니다.

일본 동북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

학술대회가 끝나고 우리는 일본적 개벽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하치노헤에 있는 안도 쇼에키 자료관을 방문했습니다. 18세기에 동북지방에서 활약한 안도 쇼에키는 극심한 기근에 3천여명의 농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당시의 사무라이 지배층을 “성인의 이름을 빌려 무위도식하는 도둑놈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성인 중심의 지배질서를 정면으로 비판한 동아시아 최초의 사상가였습니다. 동학식으로 말하면 향벽설위에서 향아설위로의 전환을 시도했다고나 할 까요? 비록 동학처럼 세력화가 되지는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메이지시대에 농민들과 함께 공해반대 운동을 벌인 다나카 쇼조의 유적지를 찾아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지적하신대로 개벽의 가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서구 근대의 중독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최근에 일본에서 활동하는 어느 중국인 연구자가 한국에 와서 “전 세계에서 서구 근대의 독을 가장 많이 먹은 나라는 한중일 삼국이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곡을 찌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정작 중독이 된 당사자들은 이 말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아프리카 케냐의 작가 구기와 지 옹오는 “정신의 탈식민지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 디톡스 작업이야말로 개벽학에서 말하는 정신개벽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아직도 개벽이 여전히 진행중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으로 첫 번째 답신을 마치고자 합니다. 좋은 대화의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금, 2019/01/1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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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의 재정개혁 특위는 제 역할을 못한 듯 조용히 해산되었다.

이는 사회적 혁신과 가치를 표방하고 출범했던 현정부가 실제적인 개혁을 포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술적으로는 생애를 통한 복지 등 포용정책을 확대하겠다고 하지만 현재의 재정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대저 역사의 변혁을 이루는 데는 조세정책이 성공의 여부를 가름하였다.

선택적 양수론揚水論을 정책적 수단으로 삼아 인간중심의 시민경제를 실현하려면 당연히 시민권력의 정부가 주도하는 변혁적 조세정책이 변화의 핵심적 근간을 이루어야 한다. 사회경제 운용의 기본적 원칙으로 자유와 시장을 기반으로 하되 물적 토대의 재구성을 통한 확대와 혁신, 지구 생태와 환경의 지속적 순환, 개인의 존엄과 사회의 상생적 가치를 융합해 내기 위해서는 조세 정책에 사회철학을 담아내는 큰 변화의 밑그림이 필요하다.

우선 국가운용에 필요한 재정적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는 평면적이고 일차적 측면에서의 조세역할은 진부한 고전적인 주제로, 약한 정부를 지지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과 강한 정부를 요구하는 케인즈적 입장이 충돌하면서 지난 수십 년 간 서구 정치의 논쟁적 내용을 장식하였다.

산업화의 진행으로 전통적 가족체계가 붕괴하고 독점적 자본주의가 성립되면서 풍요를 제공해 주던 시장이 수탈적 성격으로 전화되면서, 인간으로서 삶에 필요한 자원을 친밀성에 기초한 개인적 관계에 의존할 수 없으며 변화무쌍한 기업의 입지와 탐욕으로 변질된 시장에도 기대할 수 없는 조건에서, 정부가 일차적인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국가 존립의 일차적 근거이다.

이에 모든 국민들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최소적 조건을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를 주권자로서 시민들은 당연히 거부해야 하고, 정히 불가피하다면 전복시켜야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인류의 희망으로 떠 올랐던 재분배 기능중심의 사민주의가 20세기를 거치면서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기득권 체계의 유지강화라는 측면에 급급해지면서 제도적 한계를 분명하게 드러났다.

따라서 미래국가의 모습은 사회안전망과 순환적 재분배라는 기능뿐만 아니라, 물적 기반의 재구성을 통하여 혁신적 역동을 꾀하면서 인간적 가치와 존엄 그리고 사회적 상생과 자유 조건의 확대가 모두에게 일상적이며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교량 역할로서 조세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집행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의 정부는 현존의 극심한 불평등과 불균형의 양극화를 해결하는 단초로서 산업과 경제운용 성과를 기간적 개념으로 파악하는 집중集中과 세대간을 넘어서 형성되는 축적蓄積이라는 두 개의 핵심적 문제점을 동시적으로 해결하는 정책적 방도를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양극화의 주범인 집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살펴본다

부의 집중에 대응한 조세의 기본 방향은 누진적 세율의 적용이다. 우선 현재의 시장적 조건은 20 세기의 20 : 80 수준의 빈부격차를 훌쩍 넘어서 1 : 99 또는 0.1 : 9.9 : 99의 양상으로 악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는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소득과 재산의 5 분위 배수를 기준으로 하는 통계자료는 연속적 추이분석 이외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다.

최상위 부자 및 공생하는 집단의 분포는 10 분위 배수의 통계와 최상위 1%가 갖는 부의 집중도의 자료가 제공되어야 비로소 현실 상황을 보다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국민순소득 중에 자본과 자산에 대한 배분율이 35-40 % 수준을 넘어서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단순한 경제활동 소득의 분포를 넘어서 자산소득을 포함한 종합소득 분석의 통계를 도입해야만 유의미한 판단 자료를 얻을 수 있다.

누진적 소득세율에 대해서는 우선 서구의 전후 골디락스 시대인 1946-1970대의 80-90% 고율 경험에 대한 연구가 전제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에 적용되고 있는 최고 소득세율은 과거 80년대 레이건 시대의 공급중심과 낙수효과의 이론을 제공했던 레퍼 교수의 주장(레퍼곡선 이론)에 따라 매우 낮은 40% 선에 머물고 있으나. 이제는 공급이 아니라 순환과 수요 중심으로 경제정책이 이동해야 하는 시점이며 더구나 낙수효과가 허구임이 드러난 현재에 이를 더 이상 고집해야 할 근거는 전혀 없다.

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사회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북유럽의 경우에는 여전히 60% 이상을 적용하고 있으며, 불평등 연구의 대가로 알려져 있는 영국의 액킨슨 교수 역시 65%선이 불평등 완화의 최적 세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최근 미국 민주당의 민주사회주의그룹(DSA) 의원들이 주장하는 최고세율 70%에 대하여 뉴욕시립대 크루그만 교수는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며 뉴욕타임즈 기고를 통해 세법 연구 대가들의 성과와 결론을 소개하면서 75%가 경제를 최적화하고 선순환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수치라고 밝히고 있다.

상기의 논쟁을 근거로 한국의 부의 편중이 세계 최악의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경제의 흐름과 운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기술적 범위에서 한국 소득세의 최고 누진 세율을 현재 40% 에서 70% 수준까지 상향 조정할 이유와 근거가 충분하다. 이에 더하여 한국경제의 고질적 적폐인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유세를 실제 거래가격 기준 삼아 누진적으로 1-2% 수준까지 올려야 한다. 이는 조세의 수입효과 이전에 상생하는 공동체적 규범과 원칙의 문제이다.

법인세의 경우, 소득세와 이중과세라는 논쟁점이 있고 이미 자본의 이동에 국적이 없어진 세계화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단위국가라는 국경을 넘어서는 매우 조심스런 주제이며, 국제적 수준의 합의와 기준 설정이 절실하다. 유엔과 같이 국제조세 행정기구의 설립이 시급한 사안이기도 하다.

다만 자본 자유도가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높고 자본시장에서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우량 상장기업들의 외국인 소유지분이 대단히 높은 한국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외국투자자에 대한 배당세율을 현재 5% 수준에서 가능하다면 10% 이상으로 높여야 하며, 외국인 지분이 집중된 우량 기업들에 대한 선제적인 과세를 위해서, 예건데 연간 세전 수익이 1조를 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추가적으로 과감히 높이는 방안도 연구해볼 만하다. 외국인 투자가 한국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측면을 전적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주식매매차익을 포함하여 발생한 자본 수익에 대해서는 당연히 합리적인 절차와 수준에서 적정한 과세를 하는 것이 국민경제적 주권의 입장에서도 옳다고 본다.

여기서 미래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매우 중요한 영역이 있다. 인터넷 망을 공유기반으로 사용하는 거대 ICT기업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연구해야 한다. 이러한 제안을 하는 배경으로 FAANG로 상징되는 ICT 기업중심으로 26명의 초거대 부자들이 인류의 절반에 해당하는 36억 명의 재산을 능가하는 현실을 이대로 지속적으로 허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마침 국내 재야 재정학자인 이동욱 선생이 정규직 일인당 세전 부가가치액 기준으로 강력한 누진세를 적용하자고 주창하고 나섰다. 그의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강력한 누진적 법인세율을 정규직의 고용에 연동을 하면, 이윤이 많은 기업은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여 보다 낮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을 것인지, 아니면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지 않고 높은 법인세율을 적용 받을 것인지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기업이 정규직의 고용을 확대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증가하고, 노동소득이 증가하여 소득분배가 확대될 것이고,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누진적 법인세가 증가할 것이므로 세수가 증가하고, 세수증가에 따른 세출증가를 통하여 소득분배를 확대하고 일자리를 더 만들 수가 있다. 법인세율을 정규직 1인당 평균부가가치(생산)를 기준으로 강력하게 누진화하면 좋은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기업간 격차도 감소하고, 고용확대로 노동으로의 소득배분도 증가하고, 세수도 증가하여 소득분배는 획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이동욱 선생의 정규직 고용과 연동한 누진적 법인세를 초과이윤을 실현하는 ICT 산업분야에 적용하자는 필자의 제안은 해당산업 분야가 인터넷 플랫홈을 무상으로 이용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이윤을 남기는 반면에 실제로 고용 기여의 효과가 거의 전무하다는 점에 착목한 것이다.

예건데 해당 국가단위로 정규직 일인당 세전 수익이 1억을 넘는 경우 60%, 2억을 넘기는 경우 75%, 3억을 넘기는 경우 90%를 적용한다면, 그들이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소위 공유경제가 단순히 플랫홈을 공동사용 하면서 형성된 편의성의 과잉 포장된 일면적 사고를 넘어서, 이에 발생하는 독점적인 초과수익을 강력한 조세정책을 통해 모두가 함께 향유할 수 있는 공공적 재원으로 환수하여야 비로소 참다운 공유재적 경제 질서가 실현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 때 발생하는 조세수입이 e-Flatform 공유재라는 기반에서 형성되는 것을 감안하여 모든 국민들의 기본소득 등 공공재적 재원으로 활용해 봄직하다. 인류 전체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마침 이 글을 통해서 이동욱 선생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세금공제 제도에 대하여 살펴보자면, 세액 공제 제도는 초기에 정부가 정책적으로 부실하고 사회적 기능이 미약하여 산업, 교육, 복지 문화 등 정책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좋은 취지로 도입되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정부의 제도와 정책들이 점차 완비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제 제도가 무절제하게 남발되고 과도하게 중첩되면서, 여기저기서 온갖 비리와 부패가 발생하고 보편적 원칙을 지켜야 할 세정 질서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

이에 가급적 공제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공제제도를 완벽하게 없애는 것이 최상이다), 법정 세율과 실제 부과되는 세액이 가능한 일치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이에 따라 추가 유입되는 재정의 여력을 각 부처별로 정책적 목표와 용처에 맞추어 산업과 과학기술, 복지와 노동, 교육과 문화 등 모든 영역에 구체적 사안과 실적에 따라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마땅하다.

상기에 언급한 내용들을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그래도 재원이 부족한 경우에는 필요한 만큼 소비세율을 높이는 등 과감한 조세개혁을 실시하여 조세를 포함한 국민부담율이 35% 수준에 이르러야 비로소 사회정책적으로 포용적 국가군에 진입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대를 넘어 형성되는 축적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상속이라는 주제를 살펴본다

2018. 11월 국무총리 산하에서 주관한 사회적 상속에 관한 토론회가 있었다. 당시의 문제제기는 참신하였지만, 개념과 용어가 전적으로 잘못 설정되어 사회적 상속에 대해 오해와 혼선을 야기했다. 당시 내용을 유추하면 사회적 상속이라는 용어 대신에 사회적 기부라는 이름을 사용했어야 한다. 사회적 상속과 사회적 기부는 사람과 원숭이만큼이나 엄청난 질적인 차이를 가진다.

사회적 기부 또는 기부 자본주의는 기득권 또는 개인소유적 물적 기반과 자산의 상속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기존의 체제내적 개념에서 개인의 자비와 선의에 의해 일정 부분을 사회에 기부하도록 유도하여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체제가 양산해낸 불평등과 불균형에 대한 저항을 일부 완화하거나 현실모순에 대하여 부정적 판단을 둔감시키는 조치이다.

반면에 사회적 상속은 개인의 일생 동안 이루는 성취를 시장경제의 원리에 의해서 유도하고 활성화시키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성취의 누적이 인연을 통한 타인 또는 혈통을 통한 가족들에게 상속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종신 과정에서 이를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개념이다. 해당 사회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물적 기반과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개인의 일생 동안 사적 소유라는 동기를 부여하고 시장경제의 활력기제로 활용하되, 사적 소유의 기간을 개인의 일생으로 한정하고 사후에는 해당 사회의 소유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부와는 차원을 크게 달리하는 것이다.

마치 성서의 유대사회에서 이야기 하듯이 50년이 지나면 대희년이라는 관행을 통해 개인적인 부채를 면제하면서 사회적 물적 기반의 조건을 모두에게 공정한 새로운 출발점으로 되돌리는 과정과 유사하며, 또한 조선 초기 실시했던 과전제처럼 당시의 물적 기반인 토지를 사대부가 관직에 있을 때 보수(녹봉)의 대가로 할당하여 수조권을 부여하되, 사후에는 다시 국가에서 환수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사회적 상속이라는 사상의 역사적 흐름에는 유토피아를 그린 토마스 무어에서 출발하여, 자연에서 나오는 일체의 자원은 모든 사람들의 소유에 해당한다는 토마스 페인의 생각, 팔랑주라는 산업생산의 공동체적 원리를 통해 현대적 사회보장제와 기본소득 개념을 제시한 샤를 푸리에, 케인즈와 함께한 소그룹 연구모임 막내였던 제임즈 미드 교수의 사회배당과 노동지분 개념 및 이를 지지하며 재산소유적 민주주의를 주장한 존 롤즈를 거쳐, 현재 하버드 대학의 종신교수인 로베르토 웅거에 이르러 구체적이며 실천적인 형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잠깐 로베르토 웅거 교수(1947생)를 소개하면, 브라질의 명문가 출신으로 하버드 법대에 진학에 29세에 종신 교수직을 획득한 전설적인 인물로 미국의 비판법학계를 이끄는 주역의 한 사람이다. 오바마의 지도 교수로 후보시절 자문역을 맡았으나, 이후 오바마의 행보에 실망하여 공개적으로 지지를 철회하기도 하였으며, 브리질 룰라 대통령 시절에 전략기획장관을 맡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볼사-파밀리아(빈민가정 생계지원 제도) 정책을 기획하고 책임진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사유재산권이라는 법적 제도는 합리적 논리나 사회적 필요에 의해서 구성되었다기 보다는 역사적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 관계가 얽히고 정치척 투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우연히 형성된 측면이 강하다고 판단하면서, 사유재산권은 서로 다른 성격의 다기한 권리들이 우연히 묶여 만들어진 일종의 다발이라고 파악한다. 권리의 다발로서 사유재산권을 획득, 소유, 사용, 배제, 이전 및 상속 등으로 다시 세분하여 각각의 성격을 분리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본 글의 주제인 증여와 상속이라는 항목에 대해, 이는 기득권 체계를 강화시키면서 변화와 미래를 향한 전진에 저항하는 장애물로 파악하면서, 타인증여와 가족상속 자체를 기본적으로 부정한다. 웅거의 구상에 따르면, 증여와 상속 자산을 사회적으로 귀속시키면서 이를 통상적인 국가 재정에서 분리하여 향후 세대를 위한 ‘사회상속계좌’로 전환하며 이를 위하여 가칭 ‘중앙투자기금’이라는 이름 설립하여 국민연기금처럼 운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증여와 상속의 재산을 사회로 귀속시켜 형성된 ‘중앙투자기금’의 목적과 용도는 기득권 체계에 묶여 있는 물적 기반을 해방시켜 모든 시민들의 일상적 경제활동을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지원하는 시민 모두의 자산으로 재구성하여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때 ‘중앙투자기금’을 거점으로 시민경제적 원칙에 따라 전문적으로 자금의 배분역할을 진행할 전문적인 자산운용회사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현장에서 일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행위주체들, 개인 단체 법인 조합 연구조직 등에게 재원을 투입함으로써, 산업과 경제 활동 영역 전체를 세대에 거쳐 점차적으로 혁신 과정을 통해 재구성하고 확장하여 나가는 것이 그의 전망이다.

현재 생존해 있는 웅거는 여전히 문제의 수많은 저작들을 현재까지 저술하고 있으며, 한국에는 건국대에서 법철학을 가르치는 이재승 교수가 ‘주체의 각성 The Self Awakened’ 과 ‘민주주의를 넘어 Democracy Realized’를 번역 소개하였고, 중국청화대 교수인 추이 츠이안이 웅거의 여러 저술을 재편집한 ‘정치 Politics –운명을 거스르는 이론’ 등이 소개되어 있다.

핵심은 증여와 상속에 대한 적용세율로 역시 위에서 언급한 서구의 골디락스 시대에 적용되었던 최고 세율 80-90% 수준에서 검토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당시의 세율의 수준은 부의 축적에 대한 기여도 평가를 통해 합리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비록 시장경제의 활력과 확장이라는 동기를 부여하기 위하여 개인이 자유롭게 부를 취득하고 점유하고 소비하는 것을 인정하되, 개인이 획득한 부의 배경에는 역사적 흐름과 문화적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조건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적 배경의 공헌도가 80-90% 이라면 개인의 몫은 10-20%라는 논리적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한국의 현재 증여상속 세제는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산층의 경우 자녀에게 상속재산을 내리 물려주는 과정에 전혀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 다만 1% 이내의 부유한 계층에 한하여 현존의 세법에 더하여 예건데 100억 규모가 넘는 증여와 상속 재산에 한하여 80-90%의 추가적인 누진 과세만 보태면 된다.

또 하나 반드시 지적해야 하는 사항은 기업상속 공제제도의 허구적 논리이다. 대한항공 일가의 행태에서 보듯이 개인과 가문의 일방적이고 전횡적인 경영지배는 군사적 또는 개발독재 시대에나 가능하며 추격이 가능했던 구시대의 산업전략으로 유효했던 측면이 있으나, 지식과 혁신이 주도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큰 장애물이 된다. 미래에는 기업 종사자 모두의 자발적 참여와 적극적 협업과 창의적 사고를 필요로 하고 경영과 소유에 있어서도 집단적 성격을 요구할 것이다. 이는 경영학에서도 이미 입증된 사실로 명령적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율체계 DAO (Diversified Autonomous Organization)로 전환하는 것이 정답이다. .

따라서 기업상속을 위한 공제제도는 구시대적 사고이며 기존의 기득권 유지를 위하여 미래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자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유념할 것!). 당연히 전면 폐지되는 것이 합당하다. 다만, 현금과 포트폴리오 형태로 존재하는 상속과 증여 자산은 곧바로 과세의 시행이 가능한 반면, 개인적 소유의 고정자산은 일시적 처분이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당사자 선택에 따라 일정 법정이자를 적용하면서 20-30 년간의 분할적 상환방식이라는 기술적 유예조치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기업상속의 공제라는 제도의 핑계 거리인 경영권의 지속성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해당 기업에 대해서는 해당 부처나 기관 또는 합의된 시민기구에서 기준과 상황에 맞게 직접 개입하고 지원하는 것이 정답이다.

결론이다. 원칙적으로 사회적 상속으로 형성된 재원은 주로 기존의 물적 기반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하여 모든 시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산업적 생산기반의 지속 혁신 확장이라는 영역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활용되어야 하는 반면에, 전통적인 조세개혁을 통하여 확보한 재정은 국가 운용의 필요 경비와 사민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재원에 주로 사용해야 한다.

전통적 조세의 개혁을 통한 재정을 형성하든, 사회적 상속제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든, 인류가 현단계까지 형성해온 물적 기반과 조건을, 신자유주의에 의해 반인륜적으로 작동하는 기득권적 구질서로부터 탈구시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사회적 공동선과 자유 조건의 영역적 확대를 재구성하여야 하며 지속적인 확장을 위해 혁신 기제가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다음 장에서는 사회적 혁신 기제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추신: 본 글이 완성된 즈음해서 마침 다른백년 이사인 서강대 김종철교수가 번뜩이는 통찰력을 담아내어 ‘금융과 회사의 본질’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는데, 내용 중 필자와는 다른 시각과 접근을 통해 개별화된 ‘사회적 상속’을 제안하고 있다. 향후 논쟁과 상합을 통하여 보다 발전된 내용물을 기대하여 본다.

목, 2019/03/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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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매매가와 전세가는 폭락 중인가?

단도직입으로 묻자.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는 폭락하고 있는가? 통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아래는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가운데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토대로 만든 표와 그래프다.

이 표와 그래프를 보면 13년 8월부터 19년 1월까지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3년 8월 85.1로 2010년 이후 최저점을 찍은 후 횡보하다 박근혜 정부가 재건축 아파트 관련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무력화하고 LTV 및 DTI를 완화를 본격화하기 시작한 14년 가을부터 상승추세로 돌아선 후 상승기조를 계속 유지했다.

한편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96.8이었는데 17년 11월에 이 지수의 기준점을 돌파한 후 18년 11월에 109.1로 최고점을 찍었다. 그리고 9.13대책 등의 여파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9년 1월에 108.5로 극히 미미하게 하락했다.

정리하자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는 13년 8월 85.1로 저점을 찍은 후 줄기차게 올라 18년 11월 109.1로 정점을 찍었고 지금 고작 0.6퍼센트 포인트 하락한 108.5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지수를 기준으로 볼 때 지난 5년간의 상승폭에 비해 지난 2개월의 하락폭은 하락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그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의 추세는 어떨까? 아래는 한국감정원이 발표하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가운데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를 토대로 만든 표다.

위의 표를 보면 2017년 11월 100을 돌파했던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가 18년 2월 100.7을 거쳐 18년 6월 99.5로 약간 떨어졌다 9.13대책 이후인 18년 10월 100.4로 오히려 반등한 것을 알 수 있다. 역전세난 운운하는 미디어들의 호들갑과는 달리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는 19년 1월 현재 99.7에 머문다. 18년 2월의 정점인 100.7과 비교할 때 고작 1퍼센트 포인트 하락한데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주효했는가?

위의 통계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서울 아파트는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상승을 멈추고 하락세에 돌입한 수준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작년 여름과 가을, 서울을 온통 불태웠던 투기열풍이 가라앉고 시장이 소강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서울 아파트 시장이 하락세에 접어든 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때문인가?

여기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2014년 가을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 배경과 원인을 알아야 한다. 2010년 이후 꼼짝도 하지 않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투기심리를 부추기기 위해 올인한 덕분이다. 먼저 이명박 정부가 보유세 및 양도세 등의 불로소득환수장치를 무력화시켰다. 뒤이어 박근혜 정부가 재건축 관련 시장정상화조치를 형해화시키고, 그래도 시장이 움직이지 않자 LTV 및 DTI를 풀었다. 그런 정책들이 누적적으로 효과를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2014년 가을 무렵부터였다. 투기라는 괴물은 우리에서 풀려나면 잡기가 매우 어렵다. 2014년 가을 이후 우리에서 탈출한 투기라는 이름의 괴물은 계속 기승을 부렸다. 문재인 정부 들어 보유세 등이 강화될 거라는 시장의 예측이 빗나가자 투기심리가 더욱 창궐하여 2018년 여름 같은 대폭등 랠리가 일어난 것이다.

공급이 부족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폭등한다는 주장은 객관적 근거 없는 곡학아세다. 공급이 부족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뛴다면 2010년 이후부터 2014년 가을까지 사실상 거래절벽 상태이던 서울 아파트 시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2018년 11월 이후 하락세로 접어든 서울 아파트 시장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010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서울에 아파트가 남아돌았나? 작년 여름부터 가을 사이에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던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세가 하락세로 반전된 게 공급 때문인가? 그렇다면 작년 11월 이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서울에 갑자기 아파트 수십만호가 들어서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런 상식에 비추어 봐도 공급부족론은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을 합리화해주는 사후적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의 원인이 전적으로 투기적 가수요에 의한 것이라면 해법은 명확하다. 보유세를 높여 기대수익률을 낮추고, 대출을 조여 레버리지를 없애는 것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대책은 9.13대책이 극명히 보여주듯 금융규제가 중심이다. 매우 미약하긴 하지만 공시가격 인상, 세율 인상 등을 통해 보유세도 높이고 있긴 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서울 아파트 시장이 2018년 11월을 정점으로 꺾인데에는, 비록 늦긴 했지만 문재인 정부의 ‘강한 금융규제 + 약한 보유세 강화’조합이 주효했다고 평가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거기에 더해 5년간의 대세상승 랠리로 서울 아파트 가격이 이미 오를 만큼 오른 측면도 크다.

 

문재인 정부, 무엇을 할 것인가?

서울 아파트 시장을 진정시킴으로써 문재인 정부는 발등에 붙은 불을 끈 상황이다. 그렇다고 만족하거나 안심할 처지는 결코 아니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과 관련해 해야 할 과제들이 무언지를 살펴보자.

우선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을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쓰려는 유혹을 멀리해야 한다. 최근의 예타면제 논란이 보여주듯 문재인 정부도 과거 정부들처럼 토건에 의존한 경기부양책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지표에 매몰된 나머지 겨우 안정을 찾은 부동산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시도한다면 그 결과는 재앙으로 귀결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과 관련된 정책기조를 투기에 친화적인 방식으로 퇴행시켜서는 절대 안 된다.

다음으로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 할 보유세 강화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2005년 5·4대책을 통해 2017년까지 보유세 실효세율 1%달성을 천명한 것과 같은 수준의 담대한 보유세 개혁 로드맵을 문재인 정부가 설계해 발표한다면 만악의 근원 부동산 문제 해결의 영구적 실마리가 형성됨은 물론이고 공정경제와 공평과세의 기틀이 마련될 것이다. 부동산 가격의 하향안정화는 덤이다. 모쪼록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공화국 혁파의 첩경인 보유세 강화 로드맵을 마련하길 간절히 바란다.

수, 2019/02/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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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망언을 계속 주장하는 지만원을 국회까지 초대해서 강연을 듣고 자한당 국회의원들이 그의 주장을 옹호하는 인사말 하면서 또다시 수면에 오른 5.18 망언이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 같다. 이번 5.18망언사태를 각별히 주목하고 비상하게 대처해야 하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5.18을 국가차원에서 민주화운동이라고 역사적으로 정리한 것을 부정하고 있고, 둘째, 한국사회의 오랜 패악인 이념프레임- 빨갱이, 종북, 종북좌빨 등으로 국민을 선동으로 갈라 치고 억압하며 정권을 유지해온 통치수단을 아직도 이용하는 집단이 제1야당 안에 있었음을 확인하였고, 셋째, 한국사회가 이런 극우정파를 용인하며 보호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5.18 광주민주항쟁 역사풍속화> 한지에 붓그림, 2017년 5월에 그림, 김봉준 작

첫째 문제는 민주주의를 해치는 발언은 법적으로 처벌하는 법적 엄정성이 필요하고. 둘째 문제는 국회에서 발생한 망언에 책임을 지고 국회의원들을 제명 조치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아직도 한국사회가 극우적 정치발언을 용인하고 보호하고 확대 재생산하려는 일부 시민과 언론인이 있어서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5.18 망언뿐만 아니라 세월호 거짓보도 옹호, 청와대 주사파 점령설, 문재인대통령의 김정은과 내통 밀약설(비서), 북미대화와 북미평화협정으로 한국 붕괘설, 촛불혁명은 좌파가 선동해서 만든 가짜 민주화운동설, JTBC뉴스가 폭로한 태블리피씨 가짜설 등 무수한 가짜를 양산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5.18 망언사태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극우적 선동선전을 계속하는 사회세력이 아직도 유권자의 10~20%를 점유하면서 한국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하다. 5.18진상을 재규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헬기 기총사격이 있는지 조사하자니까 북한특수군 광주침입설도 조사하고 유공자 명단도 다 공개하라는 것이다. 정보 공개에는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왜 하필  5.18 민주유공자만 공개해야 하나? 다른 유공자들을 공개한 전례도 없고 다 공개할 시 발생할 국가보훈체계가 형평성 논란을 야기하며 사생활 침해까지 주는 부담을 갖게 되며, 불필요한 국론분열을 야기할 것이다. 이걸 노려 정치적으로 끝없이 선전에 악용하려는 의도이다.  북한 특수군 개입설은 너무 상식 이하의 발언이라 반론조차 필 가치도 없지만 한마디만하면 1980년 5월은 신군부의 계엄치하이고 미군의 정보망이 시퍼렇게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게 가능한 일인가? 북한 김일성의 특수부대가 그렇게 신출규몰한가. 특수군 600명이 들키지 않고 광주에 잠입하고 임무수행하고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니 귀신도 곡할 노릇이다. 지만원은 과학적으로 입증했다면서 600명을 사진대조를 해서 다 밝혔다고 사진증거까지 제출한다. 물론 이것은 법원에서 가짜로 판결까지 받아 유죄를 선고 받았음에도 아직도 그 소리를 계속하고 있다. 18일 어제도 태극기부대에서도 또 그런 주장을 하며 이게 사실이 아니면 왜 나를 잡아 가두지 않느냐고 말한다. 전진 이상이 있는 사람 같다.

더 대꾸하고 싶지도 않다. 여기서 집고 싶은 것은 국론분열로 국가권력 집권 전략을 삼는 세력들이 제1야당 세력에 있다는 사실이다. 불법 극우 정파가 국민의 세금을 받아 챙기면 나라를 어지럽힌다. 이들은 두 국민국가로 여론을 갈라 놓고 극우가 우파를 견인하며 제1야당을 극우중심정당으로 바꾸려는 전략이다. 최근에 자한당의 여론지지율 상승도 태극기부대의 당 가입과 그들의 여론전 덕택인 걸 보면 극우 중심 정당으로 기울어 가는 것이 기우가 아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우파와 극우는 전혀 다른 종자다. 감기와 독감이 전혀 다른 병이듯이 극우는 폭력을 불사해서라도 애국주의를 선동하는 무리다. 한국에서 아직도 폭력선동이 판치는 건 우파와 극우파쇼가 밀회 동거를 오랫동안 같이 해온 역사 때문이다. 이 식민지 유산이 권력으로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온다.

나부터 밝히련다. 나도 5.18민주유공자다. 나는 그 때 광주에 없었다. 그러나 5.18 과 연루된 사건에 있었기에 인정받았다. 5.18을 알리려고 서울에서 ‘5.18 사태’를 알리는 유인물 배포 사건을 주동한 혐의로 계엄포고령 위반자가 되었다. 첫 직장도 잃고 1년을 수배 당하고 계엄포고령이 해제 되고서야 한달 조사받고 겨우 풀려났다. 광주에 없었지만 5.18 민주 유공자가 된 경우다. 이런 경우도 많다. 이해찬 민주당대표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류되어 유공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1999년경 5.18유공자 대상신청자 마지막 접수를 받는다는 신문공고를 접하고 나는 가슴이 뛰었다. 암투병을 하던 병실에서 병원비 마련에 고심하다가 생각한 것이다. 힘든 생활고를 벗기 위해서도 이를 신청한 것이다. 이것으로 혜택을 받았다. 직장을 잃어서 받은 생계비 피해를 계산해 주니 나로선 큰돈이 되어 기뻤다. 그러나 병원비 생계비 급한 것 쓰고 돈 관리를 하려고 백화점 점포 입점에 투자 했다가 분양사기에 걸렸다. 남의 말 듣고 결정한 것이다. 회사측과 입점자 사이 재판분쟁에 아직도 휘말려 이름뿐인 점주고 은행 빛만 갚아가는 신세가 되버렸다. 괜히 신청했다가 아직도 코가 낀 신세가 되버린 것이다. 그 덕분에 아직도 빚같으며 밥벌이에 허덕거리며 산다.

<3.1백주년맞이 만북울림 포스타> 디자인, 판화 김봉준 작

“5.18은 국가예산 축내는 괴물들이다”

“5.18은 북한군 600명이 침투해서 벌린 난동이다.”

이게 국회의원 입에서, 그들의 국회행사에 초대된 패널 입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유공자명단 공개를 마지노선처럼 내민다. 다른 건 사과하지만 투명한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꼬리로 얼굴을 덮어 버린다는 식이다. 조금이라도 문제를 잡아내서 5.18 전체의 명예와 가치를 훼손 시키겠다는 것이다. 여론에도 밀리니까 그거로라도 명분을 잡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5.18망언을 계속 방치하면 나라의 역사를 뒤집어버릴 것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박정희 정신 계승정권이 되고, 남북대화와 남북평화를 가로막고 전쟁불사를 선동하며 냉전시대로 되돌릴 것이다. 그뿐인가 일제침략을 정당화하며 위안부문제, 강제노역자 배상문제, 독도문제 등에서 친일협력으로 갈 것이며 한미일군사동맹을 추진하며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것이다. 이번 5.18 망언으로 꼬리가 잡힌 것이니 지금 꼬리를 놓아버리면 다시 꼬리를 감추고 합법적 의회 정당활동이라며 이슈를 이유로 덮으며 대여공세를 늦추지 않은 것이다.

이제 3.1 대혁명이 발생한지 어느덧 100주년이 되는 3.1절이다. 범정부 차원이며 범시민적 차원에서 100주년을 자축하는 국민축제를 기획하고 준비 중입니다. 우리 문화예술인들도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응 펼쳐 ‘한겨레 큰줄당기기’와 ‘민족예술열두마당’을 26일부터 펼치고 3월1일 당일에는 ‘만북울림’ 전국 풍물패들이 나라굿을 친다면서 몰려들어 문화패만 1만명 이상 참가할 것이다. 광장에 10만 국민이 모이기는 촛불 이후 처음일 것이다. 100년의 민족 수난을 딛고 이제 버젓한 정상적 민주시민사회로 가는 길을 여는 거대한 축제가 될 것입니다. 범국민대회에서 모든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도 참여한다.

이때도 어김없이 소위 태극기부대도 참가할 것이고 극우적 발언과 몸짓으로 과격한 선동과 폭력적 언행을 불사하며 행사를 방해할 지도 모릅니다. 자기들끼리 하면 소외 되어서 인지 광화문 한 복판에서 대형 스피커 켜고 연설하고 심지어는 단식연좌농성도 한다 더이다. 이번에 그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불가피하게 접할 것입니다. 2년전 촛불집회에서도 그들의 세력은 거대한 시민대회에 밀려서 세력이 크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두고 볼 일입니다. 이번 3.1 100주년기념 축제는 태극기로 태극기를 덮을 것이며, 극우 폭력을 평화의 힘으로 압도할 것입니다. 이번이 계기가 되어 대한민국이 거듭나서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로 가기를 두 손 모아 빈다.

<민족평화신명천지축전 포스타> 디자인과 그림, 김봉준 미술감독
화, 2019/02/2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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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담화에 대한 참여연대 논평

2016. 11. 4.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담화 모습. ytn 생방송 화면 캡쳐.

 

변명으로 일관한 사과, 제 갈 길 가겠다는 일방적 선언뿐

대통령직 사퇴 없이 공정한 수사도 국정 정상화도 불가능
국정 조사와 별도의 특검법 제정, 국회가 나서야

 

 오늘(11월 4일) 대통령이 국정농단과 각종 불법행위와 관련해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국민들께 사과하고, 검찰 수사를 받고, 특검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수사를 핑계로 국정농단의 진상에 대해 제대로 고백하지 않았다. 국정을 사인에게 맡겨놓고도 ‘국정공백’을 막기 위해, 검찰에 진상규명을 맡기고 자신은 직무를 계속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야와 탄핵에 대한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임에도 대통령직 진퇴와 최근 진행된 일방적 개각 등에 대해서도 일언반구도 없었다. 박 대통령은 오늘 사퇴를 표명하거나, 최소한 국정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국회와 국민들이 동의하는 이들에게 국정을 맡기겠다고 밝혀야 했다. 그러나 오늘의 담화는 국민과 맞서 제 갈 길 가겠다는 일방적 선언일 뿐이었다. 

 

 대통령은 최근 드러나고 있는 국정농단과 재벌과의 정경유착 문제를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라며 옹호했다. 여전히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거니와, 모르쇠 하는 것이다. 각본에 의한 검찰 ‘꼬리 자르기’ 수사로 국면을 모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검찰에게 진상규명을 요구할 것이라면 대통령은 직무수행을 중단하거나, 물러나야 한다. 청와대가 지휘하는 수사가 공정하게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방적인 개각은 취소해야 한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정조사를 당장 실시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별도의 특별검사법을 제정해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특검의 임명과정에서 청와대나 새누리당은 개입해서는 안 된다.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금, 2016/11/04-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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