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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 사회] 나이와 참정권 / 서복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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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한국 사회] 나이와 참정권 / 서복경

익명 (미확인) | 수, 2017/01/25- 14:31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최근 어떤 정치인의 대통령선거 후보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공직선거법 16조 ‘선거일 현재 국내에 5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이라는 문구의 해석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장의 나머지 부분,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는 조건은 어떤가? 왜 서른아홉 살까지는 자격이 안 되고 마흔이 되어야만 자격이 생기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또 같은 조항에 따르면,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회 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자가 되려면 ‘25세’가 되어야 한다. 선거권이 발생하는 19세도 아니고 굳이 ‘25세’가 기준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법조문에 어떤 규정이 있으면 으레 합당한 이유가 있으려니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피선거권을 40세, 25세로 제한한 규정에는 민주주의 원리나 가치, 다른 법률 규정들과의 형평성, 국제규범 등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1948년 제헌헌법을 만들 당시에는 대통령을 국회에서 선출했다. 국회의원인 자 중에 대통령을 선출했기 때문에 대통령 후보의 자격기준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다. 1952년 개헌으로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게 되면서 선거법에 자격기준을 만들었는데, 그때 처음 도입된 것이 ‘40세’가 되어야 출마할 수 있다는 규정이었다. 1963년 제3공화국 헌법을 개정할 때 이 조건은 헌법에 삽입되었고, 1987년 헌법에도 이 조항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니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1952년 전란 와중에 군대를 앞세워 진행된 ‘발췌개헌’으로 대통령 직접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2대 국회의원들이 급조한 자격요건을 헌법에까지 반영해 지금까지 물려받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국회의원 피선거권 ‘25세’의 역사적 연원은 이보다 더 깊다. 1948년 제헌국회 국회의원선거는 미군정기 만들어진 선거법에 따라 실시되었다. 미군정기 한인 입법 자문기구였던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는 피선거권 자격을 25세와 30세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고 결국 25세로 결론이 났다. 제헌국회는 선거법에 이 조항을 그대로 반영했고 지난 수십년 동안 이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당시 25세 기준에도 어떤 연원이 있지 않았을까?

글쎄다. 대한민국의 해방 이전 법통을 찾으라면 당연히 임시정부다. 1940년 충칭으로 근거지를 옮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1월 임시정부의 헌정 구상을 종합해 ‘건국강령’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선거권 연령 기준은 18세였고 피선거권은 23세였다. 물론 신앙, 교육, 출신, 재산, 성별에 따른 제한도 없었다. 임시정부의 참정권 인식은, 제헌국회보다 더 앞서 있었을 뿐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보다도 더 진일보해 있었던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보통선거권 체제는 인류가 신분이나 재산, 성별, 인종 등 참정권을 제한했던 요건을 어렵게 폐지해온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이 체제에서 ‘모든 국민’은 가능한 한 제한 없이 참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현존 민주주의 체제들이 마지막으로 유지하고 있는 제한요건이 ‘나이’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부단히 그 문턱을 낮추어온 것이 세계 민주주의의 흐름이었다. 어차피 현재 참정권을 제한하고 있는 ‘나이’가 선대 입법자들이 뚜렷한 이유 없이 만든 기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일 뿐 그럴듯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면, 1941년 임시정부의 ‘건국강령’ 수준으로 되돌아가보는 것은 어떤가. 게다가 지금은 ‘나이’가 사회적 능력을 보증해주었던 농경사회가 아닌 21세기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80250.html#csidxa1bc33267b35990aa5804306fd447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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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캠프-Recovered

정치발전소에서 ‘노잼? 꿀잼! 청소년정치캠프’ 를 준비합니다.

부모가 자녀가 함께 참여하여 정치에 대해 배우고 생각하고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8월 8일(토) 서울혁신파크 내 창문카페에서 진행됩니다.

참가신청 : http://bit.ly/잼잼캠프_1

금, 2015/07/1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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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꼰대가 되어버린 민주화운동의 선두주자 ─ 386 세대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퇴근 후에 넥타이를 풀고 찾아와 / 옛 추억에 잠겨 노래 한곡 워어어어 / 케케묵은 노래들을 불러대며 울어대네 / 아름다운 젊음이여 흘러간 내 청춘이여 / 너희들이 정녕 민주화를 아느냐 / 이 손으로 일군 민주주의 대한민국 / 요즘 어린 것들은 몰라도 한참 몰라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 밤섬해적단, < 386 sucks >

 

제목이나 가사 모두 도발적인 이 노래는 2010년에 나온 밴드 ‘밤섬해적단’의 ‘386 sucks’이다. 이 노래 속의 386세대는 과도한 자부심에 휩싸여 젊은 세대에게 훈계만 늘어놓는 존재다. 사실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386세대에 대한 비판이 들린 지는 이미 오래다. 언젠가부터 젊은 세대의 눈에 비친 386세대는 과거의 영광에 매여 달라진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꼰대’일 뿐이다.

정치권의 386세대는 후배 세대로부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전락해버린” 정치세력이며 “후배 세대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새로운 비전 제시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 옛 ‘386’ 세월무상…”길을 비켜달라” 30대 정치 신인에 압박 받아, 한겨레, 2015년 7월 15일) 민주화와 새로운 시대의 상징이었던 이들은 어쩌다 ‘꼰대’로 불리며 혁신의 대상, 냉소의 대상이 되었을까.

20대가 만드는 팟캐스트 <서복경의 정치생태보고서> 6화는 386세대의 등장 배경과 변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본다. 그저 이 집단 자체만의 문제라고 비난만 해서는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386세대에 속하는 게스트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과 진행자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그리고 20대 방송팀원 두 명이 함께 386세대의 공과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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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이한열 열사의 운구 행렬이 서울 시청앞 광장을 지나가는 모습.

민주화의 주역, 386 세대

‘386세대’라는 말은 90년대에 처음 등장했다. 90년대 당시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 생인 세대를 당시 유행한 386컴퓨터에 빗대어 부른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386은 이제 486을 거쳐 586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10년 단위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이제는 앞 숫자를 빼고 ’86세대’라고 부르자 하기도 한다.

사실 386세대라는 용어는 명확한 개념은 아니다. 서복경 교수는 “1993년 기준으로 대학 진학률이 30%밖에 되지 않았다”며 386이란 용어가 또래 모두를 “대학생, 대졸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점에서 부정확한 개념이라고 봤다. 이철희 소장 역시 “그 당시에 태어난 모두를 386으로 묶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소장은 본인은 386세대를 “80년대 운동권이었던 사람들 중 정치권에 진입한 사람”이라는 좁은 의미로 한정해 사용한다고 했다.

386세대는 그야말로 민주화를 이뤄낸 세대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항쟁 이후 폭발적으로 일어난 학생운동은 이후 80년대 전 시기를 거쳐 지속됐다. 그 절정이 1987년이었다. 1987년 6월 10일부터 29일 사이엔 전국 24만여 명이 참가한 국민대항쟁기간이 이어졌다. 마침내 6월 29일 직선제 개헌을 핵심으로 하는 6.29선언으로 민주화가 이뤄졌다. 그 중심에 대학생이던 386세대가 있었다. 386세대 이전에도 비슷한 운동세대로 4.19세대(1960년), 6.3세대(1965년) 등이 있었다. 그러나 386세대는 이들에 비해 운동을 함께 한 기간도 길었고 규모도 압도적으로 컸다. 무엇보다 민주화를 성취했다. 이들의 자부심과 연대감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화 이후의 386세대

민주화 이후 30여년이 흘렀다. 대학생이던 386세대는 어느새 대학생 자녀를 둔 가장이 됐다. 가장 급진적이었다고 하는 386세대, 그들이 사회의 주역이 된 이후의 한국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이철희 소장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대표적으로 386세대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인 정치권을 중심으로 이들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386세대는 2000년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들어갔다. 16대 총선이 있던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른바 ‘젊은 피 수혈론’을 주장했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이때 대거 발탁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 출신인 오영식, 이인영 의원,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 학생회장 출신인 송영길 전 인천지사, 우상호 의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정치권에 새 바람을 몰고 오리란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카리스마적 리더십과 진정성으로 민주화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5년이 흐른 지금 386세대 정치인들이 거둔 성적은 초라하다.

이철희 소장은 386 정치인들이 “실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을 꼽았다. 우선 이렇다 할 사회적 의제를 던지지 못한 점이다. 이 소장은 이들이 “자신들이 정치권에 서 할 게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아젠다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평했다. 다음은 당 내에서 뚜렷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90년대부터 원내에 진출한 386그룹은 어느덧 당내 중진급이 됐다. 그런데 이들은 그 수가 적지 않음에도 “당내 개혁 분파로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는 게 이 소장의 냉정한 평가다. 이철희 소장이 제기한 386그룹의 마지막 문제는 바로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이 소장은 “정통 학생운동 세력이라고 하는 전대협 세력의 본류”에서 나온 인물이 한 명도 없다며 아쉬워했다.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유력 대선후보, 당권후보 모두 대표적인 운동권 그룹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화를 이뤘다는 우월의식이 386을 꼰대로 만들어

386정치인들이 이토록 무능하단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복경 교수는 운동세력의 목적 자체가 “기존의 체제를 폐절하는 데 있었지, 건설하는 데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현실정치에는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하는 데에 필요한 경험이나 지식이 필요한데, 운동세력은 기존 체제를 흔드는 게 우선이었기에 그 부분은 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왜 새로운 체제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느냐 질책하는 것은 쉽지만, 당시의 한국 사회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철희 소장은 냉정한 평가를 이어갔다. 그는 “그들이 (학생운동할 때) 배운 것과 그들이 정치권에 뛰어들었을 때 시대가 요구하는 것에 미스매치가 있었다”며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 미스매치를 적극적으로 맞추는 것이 바로 정치”라며 정치적으로 변하지 못한 386 정치인들을 지적했다.

이철희 소장은 이어 386 정치인들이 현실의 요구에 따라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은 이유를 짚었다. 이 소장은 “그 근저엔 우리가 학생운동을 해서 민주화를 ‘이뤘다’는 엄청난 우월의식이 있다”고 말했다. 이미 이 사회에 기여한 바가 많다는 ‘우월의식’이 대중의 요구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노력을 게을리 하게 만든 요인이라는 것이다.

 

청년세대와 386세대

이철희 소장이 말하는 이 ‘우월의식’은 정치권 밖에서도 386세대가 반감을 산 가장 큰 요인이었다. 특히 청년 세대의 386세대에 대한 반감은 이 우월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방송에 출연한 <정치생태보고서>의 팀원 한민금 씨(23)는 “‘왜 우리처럼 나가서 행동하지 않느냐’는 말을 들으면 반감부터 생긴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팀원인 오태환 씨(25)는 “‘요즘 애들은 패기가 없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판단하고 말하는 태도가 바로 세대갈등의 원인인 것 같다”고 했다. 제작진이 사전에 만난 20대 청취자들도 “먹고 놀아도 취직 잘 되던 시기의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한다”, “젊은 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는 등의 비슷한 불만을 쏟아냈다.

젊은 세대의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이철희 소장은 우선 386세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청년들이 처한 어려운 사회경제적 상황을 만든 책임 역시 386세대에게 있다”면서 먼저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년세대가 처한 어려운 조건을 바꾸려면 정치가 중요하며 그러기 위해선 청년세대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세대들이 눈총과 지탄을 무기로 욕을 하고 화를 내야 정치가 달라진다”며 청년세대들에게 유권자로서 감시와 요구를 멈추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더 많은 이야기는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 링크: www.podbbang.com/ch/9418)
글: 정치발전소 팟캐스트 팀원 이선욱, 이심지

화, 2015/12/1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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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된장녀, 김치녀, 맘충’이라는 낙인 | 여성혐오

 

된장녀, 김치녀, 맘충. 이제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단어들이다. 이 단어들은 온라인상에서 쉽게 목격되고, 미디어에서도 볼 수 있으며, 일상영역의 용어로도 진출했다. 일상을 즐기는 여대생은 ‘된장녀’로, 육아부담을 혼자 짊어지게 된 엄마들은 ‘맘충’으로, 나아가 한국 여성의 전반이 뭉뚱그려져 ‘김치녀’로 치환되는 시대인 셈이다. 한 매체에서는 2015년을 여성혐오 폭발의 원년이라 칭하기도 했다. (△ 메갈리안···여성혐오에 단련된 ‘무서운 언니들’, 시사인, 2015년 9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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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연합뉴스)

 

여성혐오적인 단어들, 맥락들이 익숙해질 법도 했던 한국사회에 최근 ‘메르스 갤러리’, ‘메갈리아’가 등장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 현재 존재하는 현상들 중 어디까지가 여성혐오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발굴해낸다. ‘김치녀’가 ‘김치남’으로, ‘맘충’이 ‘애비충’으로 뒤집히는 순간 그들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전혀 새로운 담론의 장이 열렸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여성주의에 대한 담론이 오가고 있다.

‘메갈리아’는 정치적이다. 집단적으로 혐오에 대항하고, 논쟁을 만들어냈으며, 이제는 여성 문제를 다루는 국회의원에게 후원금까지 보낸다. (△ 메갈리안들, 경찰청장에 ‘소라넷’ 엄격한 수사 촉구 진선미 의원에 십시일반 후원 1000만 원, 여성신문, 2015년 11월 26일) 20대가 만드는 정치 팟캐스트인 <서복경의 정치생태보고서>가 여성혐오와 메갈리아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작진은 약자에게 낙인을 찍으며 개인을 억압하는 것은 정치의 불능이라고 진단한다. 문제를 개인이나 한 집단만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회가 나아지게 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에 정치의 영역에서 약자에 대한 문제를 끌어안아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여성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혐오’ 시리즈의 2편인 ‘지금, 여기의 여성혐오’ 방송은 여성혐오의 언어가 함의한 정치적 효과와 의미를 확인하고 이를 한국정치가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방송에는 젠더정치연구소 이진옥 대표, 여성문화이론 연구소 손희정 연구위원, 남자 대학생 단청이 함께 했다.

 

여성혐오 언어의 변천사

여성혐오에 대한 표현들은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손희정 연구위원은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가 가시화된 계기를 1999년 군가산점제 폐지 논란에서 찾는다. 이후로 2005년 개똥녀, 2006년 된장녀, 2007년 군삼녀, 2009년 루저녀 등의 단어가 해마다 등장했다. 이 단어들은 하나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여자가 그랬다’며 여성 일반의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이 단어들은 ‘김치녀’로 모아진다. 특정 발언이나 특정 행동을 하는 여성들을 향했던 혐오가 이제는 한국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로 번진 것이다.

‘○○녀’와는 다른 맥락의 단어들이 있다. ‘맘충’과 ‘이대녀’가 그렇다. ‘맘충’은 자기 자식만 귀하게 여기고 민폐를 서슴지 않는 엄마들을 일컫는 말이다. 방송은 ‘맘충’ 너머의 사회를 짚어본다. 육아는 여전히 여성들의 몫이며 아이들을 맡길 공적 대안은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맘충’이라는 말은 이러한 사회의 문제를 덮어버리고 엄마들의 잘못으로 떠넘긴다.

‘이대녀’는 조금 더 복잡하다. 혐오와 선망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진행자인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는 시사인 천관율 기자의 기사를 통해 이야기를 진행했다. (△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시사인, 2015년 9월 17일) 통계청의 2010년 인구총조사 결과에 5년을 더해 보면 대략적인 현재의 인구를 확인할 수 있는데, 20~34세 구간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47만 명 더 많다. 성비가 불균형한 상황에서 연애·결혼을 하려면 남성들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서 상대적 박탈감이 혐오로 나타난다. 또한 서 교수는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성을 고용시장에서의 경쟁 대상으로 여기게 된 것도 혐오감정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대녀’는 이런 사회구조의 상징과도 같은 언어다.

여성혐오의 언어들을 정확하게 뒤집어서 사용하는 곳이 ‘메르스 갤러리’, ‘메갈리아’이다. 미러링의 방식을 주장하는 메갈리아는 이제껏 존재했던 여성혐오적 언어와 명제의 주어만 바꾸어서 사용한다. ‘김치녀’를 ‘김치남’으로 바꾸는 식이다. ‘김치녀’는 얼마든지 허용했던 ‘디시인사이드’ 커뮤니티는 ‘김치남’류의 단어들을 금지시켰고 페이스북에서는 16만 명이 좋아요를 누른 ‘김치녀’ 페이지는 건재하지만 ‘메르스 갤러리 저장소’ 페이지는 삭제됐다. 단청은 이제껏 자신들(남성)이 써왔던 단어, 행동들이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왔을 때의 충격의 여파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을 꿰뚫는 능력담론

한국의 남성들이 여성혐오 담론에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유인은 무엇일까. 서 교수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능력 담론이라고 답한다. 능력 담론은 사회구조적으로 발생시키는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한다. 능력담론 아래에는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약자가 된다. 능력이 없는데 소비를 하는(것으로 짐작되는) 여성, 능력이 없는(것으로 짐작되는)데 좋은 곳으로 시집가고 싶은 여자가 혐오의 대상이 된다면 좋은 혼자리가 아닌 남성들도 쉽게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또한 능력담론은 개인을 원자화시킨다. 불평등에 직면한 개인들에게 능력담론은 연대하고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노오력’을 하라고 강요한다. 능력담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약자들은 무임승차자들이며 혐오의 대상이다. 이진옥 대표는 문제를 공동체의 영역에서 풀지 않고 약자에게 낙인을 찍는 방식으로 풀려고 하는 것은 정치의 불능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서 교수는 이에 “한국 사회의 현재는 열악한 노동조건, 해체되어버린 공동체, 건강한 정치의 목소리를 표출할 공간의 부재가 종합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답한다.

여성 문제를 비롯한 약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결과적으로 정치가 좋아져야 한다는 점에 진행자와 게스트 모두가 동의했다. 또한 어떻게 해야 정치가 나아질지, 차별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고민했다. 이진옥 대표는 여성이 정치의 영역에 진출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희정 연구위원은 사회에서 차별과 약자, 혐오에 대해 더 많은 논의가 오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단청은 메갈리아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다. 더 많은 이야기는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방송 링크:http://www.podbbang.com/ch/9418)

글 | 정치발전소 팟캐스트 팀원 신승민, 이은빈

 

기사 링크: http://goo.gl/hkxb5x

 

월, 2015/11/3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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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이면 박근혜 대통령 당선 3주년이 된다. 당연히 주요 공약과 정책들의 성과를 눈여겨보게 된다. 특히 정부3.0 정책은 박근혜 정부에 의해 세계 최초로 그리고 전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었기에 더욱 주목된다. 정부3.0의 기치 아래,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했다. 정부의 정책과 업무를 있는 그대로, 전 과정에 걸쳐 소상하게 국민 중심으로 공개하겠다고 했다. 모든 정보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비공개 정보를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행정감시가 필요한 정보는 국민이 요청하지 않아도 사전에 공개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장밋빛 정부3.0 시대에 우리는 난데없는 정부 예비비 자료 공방을 지켜보고 있다. 야당은 2013년에도 정부가 예비비 사용내역 자료를 국회에 사전 제출한 사례가 있다며 공개를 요구하는 반면, 최경환 부총리는 예비비 공개가 “헌법과 국가재정법에서 정한 삼권분립 정신에 위배된다”며 “정부가 자체적으로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공개하는 것 외에는 정부가 국회에 예비비 각목명세서까지 제출한 사례가 없다”고 공개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국민이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을 몰라야 하는지는 전적으로 정부가 판단한다. 화사한 파스텔톤 정부3.0 자료집에 실린 약속을 글자 그대로 믿은 게 실수였다. 자료집에 나온 ‘국민’은 내가 아는 국민이 아닌 듯하다. 부총리는 헌법정신에 위배된다고 한다. 그 헌법이 보장하는 주권자의 알권리는 어디로 접어둔 것인지 답답하다. 그나마 알리고 감추는 기준조차 정부가 “자체적으로” 판단한단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새삼 궁금하다. 그 기준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것은 아닌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영화 제목이 떠오르는 현실이 무섭다. 세월호, 메르스…. 때마다 어김없이 국민의 알권리는 무너져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알권리’에 대해 “국민이 국가권력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의사 형성이나 여론 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접근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이에 대한 방해를 제거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규정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국민은 스스로의 판단에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어떠한 방해도 거부할 권리가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예비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왜 공개하지 못할까? 무엇이 그렇게 비밀스러운 것일까? 정부의 모든 업무와 활동은 기록으로 남고, 기록은 활동의 증거로, 그리고 이용을 위해 공개된다. 예비비를 사용했거나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면 공개하면 그만일 것이다. 왜 감춰서 논란을 더 증폭시키는가?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정보에 대한 비공개는 스스로 감추고 싶은 것이 있거나, 떳떳하지 못한 것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지만, 국민의 알권리는 실종되었다. 이제는 받아내야겠다. 정부3.0의 투명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무지갯빛 약속을 되돌려 받아야겠다. 국민 중심으로 공개하겠다는 약속을 되돌려 받아야겠다. 행정감시가 필요한 정보를 사전 공개하겠다는 다짐을 되돌려 받아야겠다. 그리해야 우리가 살겠다. 알권리가 숨을 쉬겠다.



김유승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


*이 칼럼은 <한겨레> 2015년 11월 5일자 "왜냐면"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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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5/11/0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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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강령은 정당의 정체성이자 지향을 보여주는 문서입니다.
정당이 어떤 정당인지는 그 강령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작년 정치발전소의 ‘여성과 정치’ 책읽기 모임에서 유럽 정당들의 강령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그 당시 공부했던 자료들을 올립니다.

스웨덴 사민당 강령은 박원석 전 국회의원실에서 번역한 자료라고 합니다.
다른 자료들은 검색을 통해 번역된 자료를 구한 것이고요.

좋은 자료를 볼 수 있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네델란드 사회당 강령

독일 사민당 강령

새로운_프랑스_사회당_강령

스웨덴 사민당 강령(원문,번역문)

스웨덴 사민당 청년위원회 강령(원문,번역문)

스웨덴 사민당 청년위원회 정관(원문,번역문)

월, 2017/03/06-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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