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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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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는 보수주의자, 유승민 의원

익명 (미확인) | 금, 2017/01/20- 11:59

“이대로 가면 정말 희망이 없어 보인다. 계층·신분은 상속돼 세습자본주의가 되고, 능력·실력에 따른 능력주의가 파괴되고,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부패와 불공정이 만연하고 있다. 대한민국이란 공동체가 내부로부터 붕괴할 위험에 처해 있다. 헌법이 말하는 민주공화국 중 공화국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이나 정의당 정치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큰 감흥은 없었을 것이다.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이 공화주의니 세습자본주의니 하고 목소리를 높이니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5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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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의원은 한국정치에서 오랫동안 왜곡된 진짜 보수의 가치를 바로세우는데 전력을 쏟는다. 지난 5일 성균관대에서  ‘경제위기와 정치의 역할’로 강연하는 모습.  (사진 출처: https://twitter.com/ddeohee)

박근혜와 대립각 세우며 존재감 부각

공천 파동을 거친 지난해 4월 총선 후 한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유 의원은 성균관대 강연에 나타나 평소 소신을 쏟아냈다.

5·16이 ‘쿠데타’라고 다시 한번 못 박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보수는 ‘성장’이고 진보는 ‘분배·평등’이라는 이분법은 낡은 진영논리에 불과하다”고 외치는 유 의원에게 진보층도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여권 후보군으로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2위를 기록했는데 정의당 지지층에서 25.9%, 진보층에서 17.7%로 전체 평균 지지율인 13.1%보다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유 의원이 여권(혹은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게 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선명한 대립각을 세우면서부터다.

‘원조 친박’에서 ‘멀박’과 ‘탈박’, 그리고 ‘정의로운 보수’에 이르는 변신은 어쩌면 한 발짝 한 발짝 치밀한 포석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그저 조용한 샌님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외모 뒤에는 빈틈없는 계산이 숨어 있다고 봐도 지나친 해석은 아닐 터다.

유승민 의원은 지난 13일 ‘육아휴직 3년법’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바른정당의 1호 법안으로 포함된 이 법안은 유 의원의 대선 공약에서도 핵심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권 행보 궤도에 올라섰다는 신호탄이다.

오는 25일에는 대선 출마도 공식화할 예정이다. 유 의원은 언론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전하기로 최종 결심하면 그건 이 일에 도전하는 게 의미 있다고 해서 발심하는 것이다. 지지도가 높아도 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안 하고, 낮아도 하는 게 정치하는 이유라 하면 하는 거다.”

유수호 의원 막내 아들…DJ 경제정책 비판하다 쫓겨나

유승민 의원은 1958년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공부에만 빠져 있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가출한 친구를 찾아오기 위해 집을 나가기도 하고 음성 서클의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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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은 경북고를 57회로 졸업했다. 당시 같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로 기재부 차관을 지낸 류성걸 전 의원, 행자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의원 등이 있다.

고교 시절 한 친구는 이렇게 말한다.

“(유승민은) 모든 친구들과 두루 잘 지내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당시엔 아무래도 성적순으로 끼리끼리 교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보통인데, 유독 이 친구만은 모든 친구들과, 특히 퇴학당한 친구들과 아주 가깝게 지내는 독특함이 있었다.”

유 의원은 1987년 유학 뒤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된다. 그 후 2000년까지 13년을 경제학자로 살았다. 몇 가지 계기가 없었다면 정치인이 아니라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린 중견 경제학자로서 인생을 계속 이어나갔을지도 모른다.

우선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판사였던 아버지 유수호는 박정희 대통령이 ‘3선’을 달성한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개표조작 사건을 벌인 울산시장을 구속시킨다. 박정희 쪽의 부정선거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어서 이 일로 정권에 밉보여 쫓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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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 유수호 전 의원. 유승민이 “나의 하느님”이라고 말하곤 했던 부친은 그가 정치인이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민주정의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한 뒤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영삼 중심으로 재편된 민주자유당에서 탈당한 뒤 통일국민당에 합류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대선을 돕기도 한다. 유 의원은 정치인 아버지 밑에서 자연스럽게 선거운동 등을 도우며 정치권에 가까워질 수밖에 없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부의 재벌 구조조정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가 국책연구기관인 KDI에서 나와야 했던 것은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그의 전공은 시장에서의 독과점 문제, 공정거래 및 공정경쟁, 국내 산업조직과 정책 등을 다루는 산업조직학이다. ‘자유 경쟁’을 중요시하던 그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재벌의 사업에 개입하는 일에 부정적이었다. 유 의원은 IMF 외환위기의 한 원인이 되고 만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에 대해서도 ‘경쟁 촉진’을 이유로 긍정적인 보고서를 써낸 전력이 있다.

당시 성과급 1등이었던 유 의원은 거듭된 정부 비판으로 본봉이 절반으로 깎이는 중징계를 받았다. 연구원에서 계속 있게 되기 어려워진 상태에서 그를 정치권으로 이끈 건 한나라당 총재였던 이회창이었다.

이회창 통해 정계 입문…박근혜 비서실장 지내

유 의원은 이회창 총재의 신임을 받으며 2000년에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게 된다. 2002년 대선 과정에서 유 의원은 이회창 후보의 핵심 정책 참모로 활동했다.

유 의원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다.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로 위기에 빠진 당을 총선에서 극적으로 구해내며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하던 때였다.

2005년 박근혜 대표는 삼고초려 끝에 유 의원을 대표 비서실장으로 앉힌다. 초선 비례 의원이 친박 핵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원조 친박’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해 유 의원은 비례대표직을 버리고 대구 동구을 재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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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원조 친박이었다. 사진은 2005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사진 출처: 허핑턴코리아)

2007년 대선 국면 당내 경선에서 유 의원은 박근혜 후보의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아 일한다.

‘줄·푸·세’ 공약도 그의 손을 거쳤다.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이명박 저격수’로 나서길 서슴지 않았다. BBK와 도곡동 땅 의혹을 집중 제기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4대강 사업 등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친박’에서 점차 멀어지게 된 건 2011년부터로 알려져 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이 꺼낸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변경안에 유 의원은 ‘정체성이 없다’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다.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패배,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태 등으로 당이 위기에 처하자 홍준표 대표 체제를 차고 나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고 박근혜 비대위 체제를 조기에 안착시킨 주역이 바로 그였다.

왜 정작 ‘친박’에서는 멀어지게 됐을까.

박근혜가 찍은 ‘배신의 정치인’

박근혜와 이명박 사이에서 유승민 의원의 판단은 간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많은 ‘배운 보수’들이 그랬듯 부패 사범 이명박과 달리 박근혜의 청렴성(독신이라는 점까지 포함해서), 국가에 대한 헌신 의지 등을 높이 샀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박근혜가 당의 중심에 서고 대통령까지 됐지만 유 의원은 오히려 원심력이 작용한 것처럼 멀어진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는 어설픈 외교안보 정책을 비판하면서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맹공한다.

2015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는 단기부양책과 창조경제, 증세 없는 복지까지 박근혜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을 모두 비판하면서 청와대를 정조준한다. 동시에 양극화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다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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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이라는 정치인을 다시 돌아보게 된 계기는 2015년 4월, 원내대표 연설이었다. 이 연설에서 그는 사회적 양극화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표명함으로써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없는 복지를 정면으로 비판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인’으로 찍히게 됐다.

결국 박 대통령과 유승민 의원은 정면으로 부딪친다. 유 의원은 박 대통령이 거부한 국회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키면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라는 말까지 듣고 원내대표 사퇴를 종용받는다.

13일 동안 청와대의 사퇴 압력을 버틴 뒤 그가 내놓은 말은 ‘민주공화국’이었다.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헌법까지 들먹이며 박근혜 대통령과 아예 대척점에 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중들은 그제야 유승민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김무성 당대표를 제치고 여권 내 지지율 1위로 급부상했다.

변신이냐 소신이냐, 결국은 콘텐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유승민 의원은 그날 성균관대 강연에서 19세기 이탈리아 통일운동을 주도한 공화주의 정치가 주세페 마치니의 말을 소개했다.

“조국은 땅이 아니다. 땅은 그 토대에 불과하다. 진정한 조국은 모든 시민들에게 시민적·정치적 권리뿐만 아니라 일할 권리, 그리고 교육받을 권리까지 보장해야 한다.

조국은 함께 사는 집 같은 곳이어서 우리와 비슷하고 가까운, 그래서 이해할 수 있고 소중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에 찬성하고 재벌 구조조정에 반대했던 ‘경쟁지상주의’ 경제학자에서 공화주의 정치인으로 변신한 유승민 의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화주의가 시장경제와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공화주의는 전 공동체가 시장 논리에 경도돼 다른 가치가 인정받지 못하고 양극화와 사회 해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경계하는 사상이다. 경쟁이나 시장주의와는 다른 개념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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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박들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박근혜 정부의 원죄를 공유한 이들이 과연 정당을 갈아탐으로써 쇄신할 수 있을지 관심거리이다. 지난 2월 18일, 경남 진주시에서 열린 경남도당 창당대회에서 인삿말을 하는 모습 (사진 출처: 뉴스1코리아)

역설적으로 그런 변신이 유승민 의원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원조 친박이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맞섰다. 정통 대구·경북(TK) 보수 정치인이지만 개혁을 외치는 데 앞장선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지내면서 민간 출신 국방 장관이 임명된다면 ‘0순위’으로 꼽히기도 하고 사드 배치에 적극 찬성한다.

한편으로 민생이나 경제 분야에선 공화주의를 기치로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런 독특한 입지가 시민들에게 유승민이란 이름을 각인시키고 있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당의 이념 정체성은 중도개혁과 정통보수가 섞여 있다. 안보는 보수적이되, 민생·경제·복지·교육·노동 등은 중산층 서민을 향한다.”

반기문의 ‘진보적 보수주의’가 언뜻 떠오른다. 친박에서 반(反)박으로, 시장경쟁 지상주의자에서 공화주의자로… 그의 궤적은 보는 사람에 따라 ‘변신’으로 평가절하할 수도 있고 ‘소신’으로 치켜세울 수도 있다.

유 의원은 새누리당 탈당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뒤 친박 지도부와 2선에 숨은 핵심 실세들의 행태를 보며 0.1%의 개혁 가능성도 없다고 판단하고 절망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너도 책임져라”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차례 책임을 인정한 데다 대립각을 세우기까지 한 그에게 큰 타격을 주기는 적어도 어려울 것이다.

소신이든 변신이든 그 안에 얼마나 콘텐츠가 담겨있는지가 관건이다. 유승민의 소신 혹은 변신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까.

‘사드’를 기준으로 안보관을 나누는 구태의연한 태도를 보면 아직까지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개혁적 보수라는 것도 아직은 구호만 있을 뿐 가장 중요한 경제 문제에서 재벌 중심, 기득권 중심으로 짜인 체제에 어떤 메스를 들이댈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새누리당·보수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태가 그랬다. ‘경제민주화’ 공약은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았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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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6/03/1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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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고한 세월호 관련 비밀전문 등을 입수해 최초로 공개합니다. 뉴스타파는 미국 국무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이 문서들을 입수했습니다.

이번에 입수한 미국 국무부 문서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발생 당일부터 2015년 9월 4일까지 1년 5개월 동안 생산된 46건의 외교전문입니다. 아쉽게도 문서의 상당 부분은 삭제된 채 공개됐습니다. 아직 전면 공개하기엔 민감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공개된 내용만으로도 미국이 세월호 참사를 얼마나 세밀하게 관찰했고, 박근혜 정부의 대응을 얼마나 면밀하게 살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미국정부로부터 공개받은 주한 미대사관의 전문을 모두 3차례에 걸쳐 연재합니다. 1편은 세월호 참사 발생 후 한달 간, 2편은 한달 이후부터 100일까지, 3편은 100일 이후부터 나머지 기간까지 생산된 전문의 주요 내용을 다룹니다. 각 편 마다 외교전문 원본과 번역본을 전부 첨부합니다.

뉴스타파는 앞으로 미국 정부가 삭제한 채 공개한 전문 내용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정보공개를 요청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록을 찾는 노력을 계속 기울이도록 하겠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미국도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초대형 이슈였다. 2014년 4월 16일 참사 발생 첫날부터 한달째인 5월 15일까지 주한 미대사관은 세월호 참사를 다룬 외교전문 13건을 본국에 보냈다. 2,3일에 한 건 꼴이었다. 주한 미대사관은 이 전문을 통해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예의주시하며 여론 동향과 언론의 오보,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추이, 6.4 지방선거 변수 여부 등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13건의 전문 중 9건이 일일보고(Seoul Daily) 형식이었고, 나머지는 박근혜 대통령 입지와 지방선거 동향을 주제로 한 특별보고서같은 형식이다. 특히 주한 미대사관은 세월호 침몰 이틀만에 “세월호 부실 대응이 박근혜 대통령의 향후 입지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담은 전문을 보낸다. 박근혜 탄핵 이후인 현 시점에서 보면 상당히 의미 심장한 대목이다.

2014년 4월 16일 ~ 17일

2014년 4월 16일 세계표준시로 07시 44분,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후 4시 44분 주한 미대사관은 ’서울 일일보고(Seoul Daily)’라는 제목 하에 본국 국무부에 세월초 침몰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한다. 3급비밀(confidential)로 분류된 이 전문은 첫 문단에 미 해군이 한국해군사령관의 ‘공식요청(official request)을 받고 미 7함대 소속 강습상륙함 본험 리처드함 전단을 급파해 현지 시각 오후 5시 쯤 사고해역에 도착할 예정이라는 사실을 보고한다. 전문은 이어 통신사 뉴스를 인용해 당시까지의 사망자 및 실종자 현황과 구조 현황 등을 알린다. 이어 (주한 미대사관) 영사부가 세월호 승객 명단에 미국 시민권자는 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중대본에 도착한 시각이 오후 5시 15분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미국대사관은 자국민의 안전 여부를 빨리 확인해서 사고 1보에 담아 본국에 알렸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 전문은 전체가 3페이지 분량이지만 이 문단만 빼고는 전부 삭제된 채 공개됐다.

주한 미대사관은 세월호 침몰 다음날인 4월 17일에도 일일보고를 통해 사고 해역의 수색작업 재개 소식을 전하며 언론보도를 인용해 9명이 사망하고, 287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라는 상황을 본국에 보고했다.

4월 18일

참사 발생 이틀 뒤인 4월 18일자 전문은 ‘일일보고’가 아니라 “높은 박근혜 지지율과 휘청거리는 야당…여객선 침몰 비극이 시험대가 될 것인가?(Park’s Approval High as Opposition Stumbles; Ferry Sinking Tragedy a Challenge?)”라는 제목이 달렸다. 제목 그대로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와 여야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하고 있다.

이 전문은 세월호 참사 발생 이전까지 박근혜 대통령이 높은 지지율을 받는 이유로 외교안보 정책,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혼란스러운 상황, 그리고 ‘부정적인 영향을 노련하게 피하는 박 대통령의 능력’을 꼽았다. 이 보고서는 ‘박 대통령은 과거 논란들에 대한 책임을 피해 왔으나, 당선과 동시에 공공의 안전을 우선시하겠다는 공약에 비춰 볼 때 이번 여객선 침몰사고 및 이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대응이 박 대통령의 입지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주한 미대사관은 한국정부가 세월호 구조 상황을 거짓으로 발표한 게 드러났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날 전문은 4월 17일 ‘성난 희생자 가족들과 만난 박근혜 대통령은 (중간 부분 삭제) 정부 관계자들에게 희생자 가족들이 구조작업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주문’했다고 서술하고, 바로 다음 부분에서 같은 날 세월호 선체 내에 공기를 주입한다는 해경의 발표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는 대목을 추가해 박 대통령의 지시가 말뿐이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꼬집었다. 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와 경기도교육청이 구조된 승객 숫자 발표를 번복하면서 여론의 분노를 샀다는 점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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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8일 자 보고서에는 뉴스타파의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된 내용도 들어있다. 이 전문은 ‘한 온라인 뉴스채널은 4월 17일 정부가 안전기준 준수여부를 제대로 감독하지 않았고, 해수부 문서를 통해 안전점검에 선박 한 척 당 고작 몇 분씩만 할애한 사실을 보도했다. 소셜미디어에 이 보도가 널리 알려지면서 해당 언론사의 웹사이트가 다운되기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14년 4월 17일 뉴스타파는 ‘정부 재난관리시스템 불신 자초‘라는 제목의 보도로 정부의 미흡한 대처와 세월호에 대한 점검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도하며 큰 주목을 받았고, 실제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4월 21일 ~ 28일

주한 미대사관은 미국 측의 세월호 수색 작업 지원 현황을 본국에 지속적으로 보고했다. 4월 21일 자 전문은 ‘2014년 4월 21일 현재 본험 리처드함은 여전히 세월호 침몰 해역에 머물며 한국 해군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다.’, ‘미 해군 구난함 세이프가드함은 한국 해군이 이번 작전에 세이프가드함이 할 역할이 없다고 밝히면서 철수한 상태’라고 보고한다. 다음날인 4월 22일 자 전문은 ‘한국 해군작전사령관과의 긴밀한 협의와 합의에 따라 주한미군사령관은 4월 22일 본험 리처드함의 수색과 구조작전을 종료할 것을 지시했다. 본험 리처드함의 임무 종료는 한국군 사령관들이 한국(군) 소속 선박과 항공기만으로도 향후 수색과 구조를 하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내용을 본국에 알린다.

주한 미대사관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한국 정부의 움직임과 여론 동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4월 21일 전문은 정부의 세월호 사고 대응을 비판하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항의하려는 희생자 가족의 행진을 경찰이 막았다고 기록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재난대응 절차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 방문을 요청했고, 여성가족부는 대형 재난사고 생존자 및 가족에게 제공하는 상담서비스와 관련된 미국 측의 경험에 대해 문의했다는 사실도 체크해 본국에 알렸다. 4월 22일 자 전문은 금융감독원이 청해진해운 조사에 착수했음을 전하고 있다.

4월 28일 자 전문은 정홍원 전 국무총리의 사임 소식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 추락 사실을 담고 있다. 주한 미대사관은 정 전 총리의 사임이 ‘세월호 대응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고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더욱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또 정 총리의 사임에 대해 ‘한국의 대통령제는 총리보다 대통령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기 때문에 박근혜 정권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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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4월 30일자 전문은 하루 전인 4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합동분향소를 방문했을 때 터져나온 유가족들의 격한 반응을 상세히 기록했다. 미 대사관은 유가족들이 박 대통령 조문 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는 등의 현장 분위기와 함께 유가족의 거센 항의에 박 대통령이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는 것도 함께 전했다. 이날 전문은 또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가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에 대해 보도통제를 시도했다는 내용이 담긴 방통위 내부보고서가 공개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방통위 측의 해명도 함께 담았다.

5월 2일 ~ 15일

2014년 5월 2일부터 15일 사이에 본국에 보낸 외교 전문에서 주한 미대사관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에 세월호 사건이 미칠 영향을 주로 분석했다. 또 방한이 예정된 미국 고위 관료들 위한 사전 참고자료로 세월호 사건 이후 나타난 한국의 국가적 추모 분위기와 여론 동향을 보고했다.

주한 미대사관은 5월 2일 자 전문을 통해 ‘ 6.4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 세월호 사건의 정치적 영향력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전한다. 5월 12일 자 전문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했음에도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인 전체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만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한 미대사관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가적 반성의 시기에 다가온 지방선거(Local Elections Coming at Time of National Reflection over Tragedy)’’라는 제목의 5월 15일 자 전문에서 세월호 참사가 6.4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상세히 분석해 본국에 보고한다. 주한 미대사관은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환멸이 낮은 선거율로 이어지고, 새누리당의 보수 지지 기반의 경우 과거에도 선거 당일 높은 투표율을 보여온 것으로 볼 때 여러 핵심 경쟁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을 국무부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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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대사관은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거세진 비판 여론이 박 대통령에게 어떤 정치적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날 전문은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뒤늦게 대응하고 초기에 사고의 심각성에 대해 잘못된 정보를 배포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조심스럽게 쌓아온 박 대통령의 결단력 있고 유능한 이미지도 손상됐다’고 평했다. 또 익명의 정보원을 인용하며 ‘이공계 출신인 박 대통령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준비하는 것을 좋아하는 꼼꼼한 스타일의 지도자이지만, 사람들은 애도의 시기에 공감해 줄 수 있는 리더를 원한다’며 박 대통령의 공감 능력 부족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이 5월 15일 자 보고서는 총 4페이지 분량으로 미국 국무부가 뉴스타파에 공개한 46건의 전문 유일하게 비교적 온전히 공개된 전문이다.

*세월호 참사 발생 한달 동안 생산된 미 국무부 문서 13건의 원본과 번역본은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번역 정리 : 임보영
정보공개청구 : 김수린

– 미국 국무부 입수 문서 한글 번역본(PDF)

금, 2017/04/14-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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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18일.

박정희 유신독재 반대를 외치는 마산 시민들의 시위가 격렬했던 당일 밤, 유치준(당시 51세) 씨는 실종됐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고 통금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리고 나서도 유 씨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일 격렬한 시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가족들은 다음날 경찰서와 의료원을 찾아가 수소문을 했지만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다.

부산과 마산을 중심으로 부마민주항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경찰 두 명이 유치준 씨 집을 찾아왔다. 경찰은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일러줬다. 경찰은 가족들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이미 부검에 가매장까지 한 상태였다. 아버지의 소지품에는 주민등록증이 있었다. 그런데 경찰은 뒤늦게 가족에게 아버지가 숨졌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박정희가 죽지 않았다면 가족들은 영원히 아버지의 행방을 모른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도시락 안에서 뒤늦게 주민등록증을 발견했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아버지는 회사 가실 때 항상 도시락을 들고 가셨거든요. 도시락 안에 주민등록증이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제가 어린 나이에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니까요.

당시 열아홉 살이던 유치준 씨의 아들 유성국 씨는 “도시락 안에 주민등록증이 있었다”는 경찰의 말이 의아했지만 더 이상의 진실을 알 수 없었다. 너무 어렸고 시절은 엄혹했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을 보낸 가족들은 2011년 지인의 소개로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를 찾게 된다. 그 곳에서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가족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인 고 유치준 씨의 가족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인 고 유치준 씨의 가족들. 하지만 정부는 아직까지 유치준 씨를 부마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다.

부마민주항쟁 기념 단체들은 1989년 부마항쟁 10주년을 기념해 자료집 한 권을 발간했다. 이 자료집에는 부마항쟁 당시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들의 취재 보고 기록이 남아 있다. 거기에는 “50여 세로 보이는 노동자가 대림여관앞 도로변에서 죽어 있었다”는 내용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 나이, 옷차림 등이 모두 유치준 씨와 일치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유일한 사망자의 신원이 처음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5월 국회에서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항쟁보상법)이 통과됐다. 부마항쟁 진상규명과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부마민주주의재단 설립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과거사에 대한 비판을 피하고 영남 민심을 달래기 위해 부마항쟁 관련 공약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법이 통과된 이후에도 1년 넘게 위원회 구성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부마민주항쟁 35주년을 며칠 앞둔 2014년 10월이 돼서야 위원을 임명했다.

유치준 씨 가족은 부마항쟁 진상규명위가 설립되자 아버지를 부마항쟁 관련자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정부로부터 또 한번 상처를 받아야 했다. 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돼 어떤 활동을 해온 것일까.

위원회 구성에 1년을 허비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원 선정에서 또 한번 실망을 안겼다. 행정자치부 장관, 경상남도지사 등 당연직 위원 4명을 제외하고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10명의 위원 중에 4명은 박근혜 선거 캠프 또는 인수위 출신, 2명은 박정희와 역사교과서를 옹호하는 인사들이었다. 위원의 3분의 2 이상이 이른바 ‘친박’ 인사들로 구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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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항쟁보상법상 본위원회에는 부산과 창원의 부마항쟁 관련 단체가 추천하는 2인이 반드시 위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은 기존에 수십년 동안 활동해온 기념사업회가 아니라 2013년 법률 제정 이후 설립 등기를 한 ‘동지회’라는 단체에서 추천한 인사들을 위원으로 임명했다. 부산동지회, 마산동지회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지지 기자회견을 했던 인사들이 가입해 있는 단체였다. 기념사업회 추천 인사들은 본위원회에서는 배제된 채, 2개의 실무위원회에만 위원으로 임명됐다.

진상규명위의 운영도 파행이었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철저히 비밀에 가려졌다. 기념사업회에서 추천된 일부 위원들이 제대로 진상규명을 해보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기념사업회 추천 실무위원 4명은 지난해 10월 “더 이상 들러리 노릇을 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특히 진상규명위는 유치준 씨 사건과 관련해 당시 창원지방검찰청이 작성한 1장 짜리 검시사건부를 찾는 것 외에 조사의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서둘러 ‘관련자 아님’으로 결정을 내리려다 기념사업회 추천 실무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유치준 씨의 가족이 신청을 철회했다.

▲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시민은 16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가 출범한 후 관련자로 신청한 사람은 194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6명은 인용되고 28명은 기각됐다.

▲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으로 부산과 마산에서 연행된 시민은 16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 2014년 10월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위가 출범한 후 관련자로 신청한 사람은 194명에 불과하다. 이 중 166명은 인용되고 28명은 기각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지만 현재 진상규명위는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들 그대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진상규명위는 오는 10월까지 진상조사를 마치고 내년 4월까지 보고서를 내게 돼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조차 현재 상태에서는 보고서를 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진상조사보고서가 자칫 국정교과서처럼 관련 단체들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용도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취재 조현미
촬영 정형민 김기철 김남범 오준식
편집 박서영 이선영
CG 정동우
그래픽 하난희

목, 2017/08/24-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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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모로 홍역 앓는 민주당 완전국민경선제, 타 정당원은 걸러낼 수 있을까?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5일부터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선출을 위한 선거인단을 모집 중이다. 이번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당원뿐 아니라 인터넷, 전화, 현장 접수 등을 통해 선거인단으로 신청한 모든 국민에게 1인 1 투표권을 부여하는 완전국민경선제로 시행된다.

▲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의 대선 경선 선거인단 모집 안내

▲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의 대선 경선 선거인단 모집 안내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공식 카페에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자는 글이 올라오면서 불붙었던 역선택 논란에도 불구하고 선거인단 신청 시작 5일째인 2017년 2월 20일 기준 민주당 선거인단 누적신청자는 51만 명을 넘겼다.

유력 대선 후보들 간의 역선택 논쟁은 추미애 당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를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간의 공방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정당 선거인단이 참여하면 고소고발?

더불어민주당은 애초 선거인단 접수 홈페이지 이용약관 5항에 “다른 정당의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선 선거인단에 신청한 경우 더불어민주당의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경선 선거인단이 될 수 없으며, 이를 속이고 신청하는 경우 관계 법령에 따라 민형사상 고소·고발될 수 있습니다.”라는 조항을 삽입해 역선택과 같은 문제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용약관에 다수의 정당 선거인단에 중복으로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이미 고지를 했고 신청자의 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업무방해 혐의로 민형사상 고소·고발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선거인단 신청자 중 타 정당의 당원인 자는 정당법 55조에 의거 1년 이하의 징역 1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도 있다.

▲ 민주당 선거인단 신청서의 이용약관에 ‘민형사상 고소고발’내용이 언급돼 있다.

▲ 민주당 선거인단 신청서의 이용약관에 ‘민형사상 고소고발’내용이 언급돼 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역선택이나 다른 정당의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 경선 선거인단 참여자를 내부적으로 직접 검증해 걸러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인정했다.

업무를 진행하면서 고소·고발이 가능하다고 공지한 것일 뿐, 공개적으로 발각된 경우가 아니라면 개개인이 다른 정당의 선거인단으로 등록했는지 당 내부적으로 직접 확인할 방법은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인단을 모집하면서 당적 증명서 혹은 주민등록증 등의 서류를 받지 않고 있으므로 당내의 선거인단관리시스템은 경선 진행을 위한 도구일 뿐 검증이나 제재를 취하는 데 사용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밝혔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은 다른 당의 당원이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거나 다른 당의 경선에 참여하면서 민주당의 경선에 중복 참여하는 경우 이를 확인할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박사모를 비롯해 역선택 의도를 가지고 더불어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표심을 왜곡시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마땅한 대처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또한 ‘민형사상 책임’에 대한 고지는 인터넷으로 선거인단을 신청할 경우에만 고지되고 전화 접수 시에는 안내되지 않고 있어 전화로 접수한 신청자의 경우 나중에 적발된다 하더라도 해당 규정에 대해 고지받은 적이 없다 한다면 업무방해죄 성립조차 어려울 수 있다.

둘 이상의 정당에 동시에 선거인단으로 등록했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선거인단 명부가 결정됐을 때 각 당이 공조하여 명단을 공유해 크로스체킹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각 당이 협조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판단된다. 가능한 방법으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차원에서의 관리가 유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중복 선거인단을 걸러낼 수 있을까?

뉴스타파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한 결과, 중앙선관위는 정당끼리 협의해서 의뢰한다 하더라도 개입할 수 없고, 당내 경선의 경우 정당법이나 선거법에 위반되는 경우에만 조사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선거운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등 정치관계법 위반에 해당하면 개입할 여지가 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말하고 있는 업무 방해에 해당하는 범죄에는 선관위가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현재로서는 없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동 단위까지) 세 가지 정보만 가지고는 다른 정당의 당원조차 경선 선거인단에서 걸러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불어민주당이 해당 규정을 삽입했던 이유는 ‘박사모’의 역선택 독려 글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검증할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신청하신 분의 양심에 맡기는 것뿐이고, 저희가 신청하신 분께 제재를 하는 자체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완전국민경선제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의 경선은 일반 국민들의 폭넓은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장점 외에 이른바 ‘역선택’의 부작용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취재: 연다혜

월, 2017/02/2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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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출연자

  • 진행 : 안진걸 공동사무처장 (참여연대)
  • 고정출연 : 정태인 소장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한상희 교수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 이슈손님 : 권영국 변호사 (박근혜퇴진비상국민행동 법률팀장/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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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팟 64회  #닥치고탄핵! '운명의 12월 9일' / 이철성 경찰청장의 망언

 

지난 12월 3일 범국민 촛불집회에는 한국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인 232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전국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쳤습니다. 이제 국회는 이런 시민의 뜻에 '탄핵안 가결'로 답해야 할 것입니다.

 

참팟 64회는 탄핵안 의결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권영국 변호사와 함께 얘기 나눴습니다. 또한, 최근 법원이 청와대 100m 앞 행진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집회의 자유 권한이 크다고 하는데 그건 법원의 입장, 법원의 입장과 경찰의 입장은 다르다, 앞으로도 율곡로까지만 행진을 허용하겠다”는 등의 법치를 무시하는 이철성 경찰청장의 발언에 대한 문제점을 따져보았습니다. 

 

 

* 플레이어가 보이지 않는 경우 : https://goo.gl/0SMIrb
* 아이튠즈로 듣기 : https://goo.gl/ScE3Zk

 

 

같이보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참여연대 팟캐스트 

 

목, 2016/12/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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