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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답안’ 혐의 류철균…3개월 전엔 “정유라가 직접 시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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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답안’ 혐의 류철균…3개월 전엔 “정유라가 직접 시험쳤다”

익명 (미확인) | 월, 2017/01/02- 18:45

“(2016년) 6월 11일 정유라가 (학교에) 나와서 시험을 쳤습니다.”

“온라인 강의는 85%정도 들어서 패스했습니다”

“정유라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지난해 10월 뉴스타파가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필명 이인화)에게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학점 특혜 의혹에 대해 묻자 류 교수는 이처럼 태연하게 둘러댔다.
그리고 2달여 뒤인 2017년 1월 2일, 류 교수는 수의 차림으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정에 섰다. 정유라 씨가 2016년도 1학기 교양과목으로 수강신청한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A’ 담당 교수였던 그는 정 씨가 오프라인 시험을 보지 않았는데도 마치 시험을 친 것처럼 조작해 학점을 준 혐의(업무방해 등)를 받고 있다. 박영수 특검의 제 2호 구속영장 대상이 된 류 교수의 구속여부는 오늘(2일) 밤이나 3일 새벽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류철균 호송 사진

■ 뉴스타파, 지난해 10월 류철균 상대 정유라 학점특혜의혹 추궁

뉴스타파 취재진은 지난해 10월 18일 이화여대의 정유라 학점 특혜 의혹과 관련해 류철균 교수(융합콘텐츠학과)를 인터뷰했다. 독일 체류를 이유로 자신의 전공 분야 시험마저 과제물로 대체했다던 정유라가 전공도 아닌 교양과목의 시험을 학교에 나와 직접 치르고 학점을 받았다는 것이 선뜻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 교수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정유라가 오프라인 시험에 직접 출석해서 시험지를 제출했다”며 “(정 씨가)답을 거의 쓰지 못했지만, 시험을 아예  치르지 않은 학생들도 있어서 시험지를 제출한 학생들은 모두 통과시켰다”며 학점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류 교수는 특히 정 씨가 시험을 친 날짜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류철균 교수 음성녹취 (2016.10.18)]

(정유라 씨 관련해서 (정 씨가) 교수님 수업 듣고 학점을 이수했던데, 이 수업은 대부분이 온라인 수업이고 오프라인이 필참이던데 그건 참석을 했나요?)

-그건 안했구요. 오프라인 특강은 안 나왔구요. 오프라인 시험만 쳤습니다.

(오프라인 시험은 그럼 어떻게 쳤어요?)

-거의 (답을) 못 썼는데요, 거의 못 썼는데 오프라인 시험 치기만 하면 기본 점수를 받아가지고 70점 커트라인 받아서 통과했고요. 전체 276명이 들었는데, 이 학생보다 성적이 낮은 학생은  오프라인 특강도 안 나오고 오프라인 시험도 안 친, 27명이 논패스고요. 이 학생은 패스가 되었습니다.

(오프라인 시험을 쳤다는건, 오프라인으로 (학교에)나와서 쳤다는 거예요?)

-네네, 6월 11일날 시험을 친 걸로 돼 있습니다.

(6월11일날 학교를 나와서 시험을 봤다고요?)

-네네

(출석을 단 한 번도 안 한 수업도 많은데 여기 나와서 시험을 봤다는 얘기에요?)

-네네. 결강이 많아서 시험을 3번에 나눠서 쳤거든요. 그 중에 6월 11일에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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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요즘 논란이 되서 아시겠지만, 자기 전공수업도 안 들어가는데 여기 시험을 봤다는게 되게 신기하네요. 시험은 잘 봤나요?)

-아니요. 거의 못 썼어요. 거의 못 썼는데, 거의 기본점수에서 5점 더 받았나.거의 못 썼습니다

(이번에 국회(국정감사)에 이대 교수들이 학점 이수 관련 자료를 다 제출했던데, 교수님도 제출하셨나요?)

네네, 다 제출했습니다.

(정유라 학생이 시험 본 것도 제출하셨어요?)

-네네.

그러나 이 같은 그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교육부는 지난해 10월 특별감사를 통해 해당 과목 시험 당일 정유라 씨가 독일 체류 중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특검은 교육부 감사를 앞두고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류 교수의 지시로 정 씨의 시험 답안지를 대리 작성했다는 조교의 진술을 확보했다. 대리 답안이 작성된 시점은 정유라 씨가 학교에 나와서 시험을 쳤다고 류 교수가 언급한 6월 11일이 아닌 교육부 특별감사(2016년10월31)가 시작된 지 사흘 뒤 쯤으로 알려졌다.

국회 교문위 관계자는 “이화여대 국정감사 당시 류 교수는 정유라 시험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회 국정감사에 정유라 시험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던 주장도 거짓이었던 것이다.
류철균 교수는 2016년 1학기에 정유라 씨가 ‘영화스토리텔링의 이해A’를 정상적으로 이수한 것으로 처리하고 3학점을 줬다. 강의계획안에 따르면 이 과목은 온라인 수업 50%, 오프라인 특강 15%, 오프라인 시험 35%로 구성된 ‘패스/논패스’ 강의다. 70%이상 온라인 수업에 참여하고, 반드시 오프라인 시험을 치러야 통과할 수 있다.

■ 류철균 “정유라, 온라인 강의 85% 들어”…교육부 ‘대리수강’ 흔적 발견

류 교수는 지난해 10월 취재진과의 통과에서 정유라 씨가 온라인 강의를 대부분 수강했다고 주장하며 특혜를 부인했다.

(온라인 강의 같은 경우는 총 3개 모듈로 구성이 돼 있어서 이거를  70점 이상이어야 패스라고 하던데, 온라인은 그럼 다 이거를 70점 이상 받았나요?)

그것도 열심히 안 했고, 85%정도를 통과해서요.

최소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이수를 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특별감사 결과 온라인 강의도 누군가 대신 수강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특검은 현재 누가 정 씨의 강의를 대신 수강했는지, 대학본부의 조직적 개입은 없었는지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 “정유라가 누군지 몰라”…특검선 “최순실 안다” 진술

류철균 교수는 또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정유라가 누군지도 모르고, 국정감사 때 논란이 돼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정 씨를 만나셨어요?시험 볼 때  (학교에)나왔다면)

-아니요. (전체 수강 학생이)276명이니까 (정 씨가)나왔겠지만 제가 누군지는 모르죠.

(그럼 그때 정유라 씨 라는 사람이 이 수업을 듣는다는 사실은 아셨어요?)

-몰랐죠. 누군지도 몰랐죠.

(그럼 이번에 이제 논란이 돼서 아신 거예요?)

-예예. 아니 이번에도 (이화여대) 학적과에서 (연락해)와서 알았어요. 276명이니까 학생이름을 기억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유라를 몰랐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류철균 교수의 변호인은 2일 영장심사에서 “김경숙 전 학장이 3번이나 부탁해 지난 4월 최순실과 정유라를 직접 만났고, 답안지 조작 역시 김경숙 전 학장이 정유라를 잘 봐달라고 부탁해 하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정유라를 몰랐다는 류 교수의 답변은 거짓이었으며, 학점특혜 의혹 역시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류철균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영원한 제국>, <인간의 길> 등을 펴낸 유명 소설가다. 1997년 발표한 <인간의 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한 내용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4년 최순실 씨의 측근 차은택 씨와 함께 대통령 산하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박 대통령 제안으로 대기업들로부터 수백억원을 모금해 2015년 10월 출범한 청년희망재단의 초대 이사를 맡기도 했다.

시민들의 의견

지난 5월 서울 송파구에서 3살 된 아이가 햄버거 패티가 들어간 맥모닝 세트를 먹고 설사를 하다가 3일째 되는 날에는 혈변까지 했습니다. 병원 진단명은 출혈성 장염. 아이의 가족은 햄버거병 피해 가족의 법률 대리인을...
목, 2017/07/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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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를 진행한 법무법인 혜 황다연 변호사에 따르면 B군은 지난 5월17일 오전 9시께 서울 송파구에 있는 맥도날드 잠실역점에서 햄버거패티 등이 포함된 맥모닝세트를 먹은 후 복통을 호소하고 하루에도 수십 번 설사를 하는 등...
목, 2017/07/1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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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청와대를 방문하는 관람객과 인사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대통령이 직접 SNS를 통해 여민관 집무실에서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관람객과 인사를 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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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7/14-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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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없는 나라로’ – 순례단 선포식 기자회견  – 청와대 앞 100미터 경찰측의 일방적 제지로 지연 – 양심수 없는 나라로 만들어 달라 요구  – ‘양심수 전원 석방’이 더 용기있는 개혁 편집부 7월 8일 토요일 광화문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양심수 석방’을 위한 문화제가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양심수 석방 추진위원회는 ‘양심수 없는 나라로 – 동행’이란 명칭으로 7월 13일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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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7/07/15-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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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정지윤(32)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송파구 한 옥탑방에 전세로 이사했다. 그는 지난 6월 옥상을 흰색 차열 페인트로 칠하는 '쿨루프(cool roof)' 시공을 했다. 그는 "루프톱 파티를 하겠다는 낭만을 갖고 들어온 집인데 여름이...
토, 2017/07/1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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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평화활동가 크리스틴 안, 한국 입국이 금지되다

국제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던 재미 평화활동가 크리스틴 안(Christine Ahn, 한국명 안은희)이 7월 13일 한국정부로부터 입국금지 통보를 받았다. 안 씨는 뉴스타파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자신의 입국금지 결정은 “박근혜 정부 시절 보복 차원에서 내린 결정일 것”이라며 반발했다.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메어리드 맥과이어는 안호영 주미한국대사에게 항의 서한을 보냈다(관련기사 : 뉴욕타임스 <미 평화활동가 남한 입국 금지>).

여성 평화운동단체인 ‘위민크로스DMZ’(이하 WCD) 국제협력 담당관으로 일하고 있는 안 씨는 7월 24일 한국에서 위안부 피해자 수요집회에 참석하고, 27일 명동에서 열리는 WCD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안 씨는 7월 13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아시아나 항공편에 탑승하기 위해 수속을 밟던 중, 입국금지 통보를 받고 항공편 탑승을 거부당했다. 안 씨는 현재 중국 난징에 머물고 있다.

안 씨가 소속된 WCD는 지난 2015년 15개국 30명의 여성들로 구성된 방문단을 조직해 비무장지대(DMZ)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행사를 벌였다. 당시 북한 노동신문은 안 씨 등이 김일성을 찬양했다는 내용을 보도했고, 일부 한국 언론도 안 씨와 WCD가 친북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보수단체인 나라사랑어머니연합은 안 씨를 포함한 WCD 회원 12명에 대한 영구 입국금지 청원을 통일부에 제출했다.

▲ 2015년, 위민크로스DMZ는 비무장지대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행사를 벌였다

▲ 2015년, 위민크로스DMZ는 비무장지대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행사를 벌였다

“우리는 남북한 프로파간다 전쟁에 끼어버렸다”

안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노동신문과 일부 한국 언론이 모두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고 말했다. 김일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북한 기자의 질문에 “어머니가 김일성이 일제에 맞서 싸운 사실을 알고 계셨다”고 말했는데, 노동신문에 자신이 김일성을 찬양한 것처럼 왜곡 보도됐고, 남한 언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안 씨는 “안타깝게도 우리는 남한과 북한의 프로파간다 전쟁에 끼어버린 것”이라며, “한국이 처한 이 전쟁이 북핵이나 비무장지대에 매장된 120만 개의 지뢰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심리전이자 냉전이고, 이것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안 씨는 또 WCD가 ‘종북’ 단체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도 “한 번도 북한의 인권 침해 실태를 부인한 적이 없다.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것은 대화를 침묵시키는 방편”이라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법무부에 안 씨에 대한 구체적인 입국 거부 사유를 물었지만, 법무부 출입국심사과 관계자는 “출입국관리법 11조에 보면 입국금지 사유가 일반적으로 돼 있어서 포괄적 적용이 가능하긴 하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뉴욕타임즈에 한국의 “국익과 공공의 안전에 위해를 끼칠”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서 안 씨를 입국금지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안 씨와의 일문일답(펼치기)


영상편집 : 박서영

화, 2017/07/1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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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 주재 국무회의에서 성충동약물치료법 개정안 의결하면서 '화학적 거세' 대상에 몰카범·강도강간 미수범 포함 되었습니다. 개정안은 성충동 약물치료 대상 범죄에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강도강간미수죄, 아동·청소년 강간 등 살인·치사죄와 상해·치사죄를 추가한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 초소형 몰래 카메라가 다양한 모습으로 시중에 유통되면서 공공 화장실이나 수영장 탈의실 등을 이용하는 여성들은 불안감이 매우 큽니다. SNS반응을 뉴스프로에서 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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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7/1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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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소시오패스의 9가지 징후 -미국인의 3.8%가 소시오패스 -소시오패스의 가장 극단은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를 알면 피하는 것이 최선책 타임지는 아이오와 카버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인 도널드 블랙 박사의 말을 기초로 소시오패스를 알아볼 수 있는 9가지 징후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타임지는 기사에서 소시오패스 혹은 반사회적 인격장애(ASP)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존재하여, 한 쪽 끝에는 가벼운 거짓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그리고 다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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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7/07/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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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청와대 캐비넷 문건’을 통해 박근혜 정부가 ‘아스팔트 우파’를 조직적으로 지원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국가보훈처가 부처 홍보비를 극우보수 매체에 몰아준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 보훈처는 심지어 이전 집권당이던 새누리당 기관지에도 국민 세금으로 홍보비를 집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뉴스타파는 이학영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통해 국가보훈처의 지난 5년 간 홍보비 집행내역을 입수해 분석했다. 국가보훈처로부터 홍보비를 많이 받은 상위 5개 매체는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오늘의 한국>, 중앙일보 순으로 나타났다.

압도적 1위를 기록한 동아일보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부터 문재인 정부 출범 전인 2017년 3월까지 매년 국가보훈처 홍보비를 타냈다. 6건에 총 7천 7백만원이었다.

조선일보에는 같은 기간 3건에 3천 2백만 원의 보훈처 홍보비가 집행됐다. 조선미디어그룹의 자회사인 조선영상비전이 2013년 ‘정전60주년 특집다큐’를 만든다며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은 홍보비 1천 5백만 원은 제외한 액수다. 문화일보에는 3건에 1천 7백만 원, 중앙일보에는 2건에 1천 4백만 원의 홍보비가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훈처로부터 모두 5건에, 천 5백 만원의 홍보비를 따내 유수의 신문, 잡지를 제치고 보훈처 홍보비 랭킹 4위를 기록한 <오늘의 한국>은 극우논객 지만원 씨가 회장으로 있는 잡지다. 보훈처는 심지어 새누리당 중앙위원회가 발행하는 기관지 <새누리비전>에도 호국보훈의 달 광고비 6백만 원을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는 2016년 3월 ‘서해 수호의 날’ 광고비로 각각 2백 2십만 원씩 집행된 것이 전부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올 3월까지 국가보훈처가 신문, 잡지 등 인쇄매체에 집행한 홍보비 내역은 다음과 같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국가보훈처 대변인실에 “홍보비의 집행 기준이 무엇인지, 왜 일간지 별 광고 집행 액수에 큰 차이가 나는 것인지, <오늘의 한국>처럼 대중 홍보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보이는 잡지 등에 대한 홍보비 집행 내역이 한겨레나 경향신문보다 몇 배나 높은 이유가 무엇인지,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새누리비전>에 국민세금으로 홍보를 하는 게 적합한 행위였는지”를 질의했다.

국가보훈처 대변인실 관계자는 홍보비는 한국언론재단의 홍보 기획안을 기본으로 국가보훈처가 선택한 것으로 이념적 성향에 따라 홍보비를 집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훈처 관계자는 <오늘의 한국>에 대한 광고홍보 집행은 과거에 국가보훈처가 임의로 선택했었던 것 같고, 정당 기관지인 <새누리비전>에 국민 세금으로 홍보비를 집행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고 인정했다. 국가보훈처는 앞으로는 신문 발행부수 등의 기준에 따라 광고 집행을 원하는 신문사 모두에게 공정하게 홍보비를 집행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취재: 최경영, 최윤원

금, 2017/07/21-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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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MP, 탈북자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진 임지현 씨 그녀가 북한으로 돌아가 한 말은 – 지옥같은 남한 자본주의에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 북한 중상모략은 한국 TV에서 대본에 써 준 내용 – 탈북자들, 가족 빼내 오려다 중국 접경에서 강제귀환 당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모란봉 클럽이라는 토크쇼와 남남북녀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에서 유명인이 된 탈북자 임지현 씨가 최근 북한 방송에 출연해 ‘지옥 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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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17/07/2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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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노원구청장은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자신이 오랫동안 관리해온 노원 병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박춘희 송파구청장 서울 자치구 관계자는 “내년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 현 구청장과 시의원 등 후보군들이...
토, 2017/07/2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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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을 기록하며 차별에 저항해 온 고 박종필 감독의 영결식이 오늘(7월 31일) 오전 10시 광화문광장에서 ‘인권사회장’으로 엄수됐다. 빗속에서도 수 백여 명의 시민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박종필 감독의 마지막 길을 뉴스타파 카메라에 담았다.

고 박종필 감독(1968~2017)은 1998년에 ‘독립다큐멘터리제작 다큐인’ 대표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미디어 활동을 시작했다. 박 감독의 카메라는 언제나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들을 기록했다. 제1회 장애인 영화제에서 ‘끝없는 싸움 – 에바다(1999)’로 우수상을 수상했고, 제28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장애인이동권투쟁보고서-버스를 타자!(2002)’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4.16연대 미디어위원장’을 맡으며 세월호를 기록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선체 조사 작업을 기록했다.

고 박종필 감독은 2015년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의 부당함을 다룬 뉴스타파 <목격자들> ‘우리는 홀로 설 수 없나요’을 연출했다. 같은 해 서울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목격자들> ‘사람이 산다’를 프로듀싱했다.


촬영 : 오준식
편집 : 박서영

월, 2017/07/31-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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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출근을 했더니 옷이며, 마네킹, 돈까지 모두 사라졌어요. 심지어 옷을 다리던 스팀다리미까지 없어졌어요. 제 가게에서는 다른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고, 너무나 황당하고 억울합니다.

쇼핑의 메카인 서울의 명동. 명동 한복판에서 하루아침에 가게가 사라지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명동에 있는 대형쇼핑몰 ‘DI몰’의 지하1층에서 벌어진 일이다. 현재 이곳에선 (주)패션인터내셔널에서 운영하는 ‘세일50’이라는 업체가 영업 중이다. ‘세일50’은 지하1층 전체공간(450평 규모)을 사용하고 있다. ‘세일50’은 전국 25개 매장을 둔 대형 악세사리 제조, 판매업체다.

▲ 명동에 있는 대형 쇼핑몰 ‘DI’

▲ 명동에 있는 대형 쇼핑몰 ‘DI’

20여 일 전인 7월 7일까지는 DI몰 지하1층 한쪽에 ‘데어’라는 작은 의류매장이 입점해 있었다. 데어는 동대문과 명동에서 의류판매를 하는 소규모 업체다. ‘데어’는 7월 8일 갑자기 사라졌다. 12평 규모의 매장을 채우고 있었던 옷가지와 마네킹, 옷걸이, 행거, 심지어 스팀다리미까지 모두 사라졌다. ‘데어’의 장기웅 대표의 계산으로는 8천 만 원 상당의 물품들이었다. 7월 8일 출근 했던 직원들은 황당했다. 건물 관리회사인 ‘DI엠앤유’ 측에 이 사실을 알리고 경찰에 신고했다.

CCTV를 확인해보니 물건을 치운 사람들은 같은 층에 입점한 ‘세일50’ 측이었다. ‘세일50’은 7월 8일 새벽까지 인테리어 작업을 했다. CCTV를 살펴보면, 7월 8일 새벽 4시 경, ‘세일50’ 측에서 매장 리모델링을 위해 고용한 작업자들이 ‘데어’ 매장의 옷가지와 각종 물건들을 모두 철거하는 모습이 찍혀있다. 일사분란하게 ‘데어’의 물품을 치우고 그 자리에 ‘세일50’의 물품을 세팅했다. ‘데어’ 측에는 사전논의나 통보도 없었다. 그리고 20일이 넘도록 철거했던 물건들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현재 ‘데어’의 자리에는 ‘세일50’ 측이 영업을 하고 있다.

‘데어’의 장기웅 대표는 “하루아침에 가게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물건을 절도한 사람들은 사과는 커녕 아직까지 물건도 돌려주지 않는다. 자신의 영업을 위해 소규모 업체는 그냥 없애버려도 된다는 것인지 너무 화가난다”고 토로했다.

▲ 명동 DI몰 지하1층에서 2015년 4월부터 영업을 해왔던 의류업체 ’데어’(좌측). 7월8일 새벽 데어의 옷가지와 현금, 각종 물품들은 모두 철수됐고, 다음날 아침 세일50의 악세사리 매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 명동 DI몰 지하1층에서 2015년 4월부터 영업을 해왔던 의류업체 ’데어’(좌측). 7월8일 새벽 데어의 옷가지와 현금, 각종 물품들은 모두 철수됐고, 다음날 아침 세일50의 악세사리 매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갑자기 사라진 12평 의류매장…누가, 왜 없앴을까?

사건의 발단은 지난 7월 1일 대형 악세사리 업체 ‘세일50’이 DI몰에 입점하면서부터다. 당초 DI몰 지하1층에는 10여 개의 소규모 매장들이 모여 있었다. ‘세일50’측은 지하1층 전체를 임대하기를 원했다. 건물 관리회사인 ‘DI엠앤유’ 측도 해당 층을 통으로 임대하는 편이 더욱 수익이 높기 때문에 소규모 업체들을 설득해 보상금을 주고 계약기간 이전에 철수시켰다.

하지만 의류업체 ‘데어’는 매장 철수에 동의하지 않았다. 계약기간이 2018년 4월까지 남은 데다, 매장이 쇼핑몰 입구쪽에 위치해 매출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계속 영업하고 싶었다. 매장을 철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DI엠앤유’ 측에 밝혔다. 결국 건물관리회사 ‘DI엠앤유’는 ‘데어’의 영업 공간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만을 ‘세일50’에 임대했다. ‘DI엠앤유’ 측은 “‘세일50’과 계약할 때, ‘데어’의 매장을 승계해야한다고 분명히 고지했고, ‘세일50’ 측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두 업체가 한 공간에서 함께 영업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리모델링을 하면서 발생했다. ‘세일50’은 가게 오픈에 앞서 7월 초 리모델링을 했다. ‘DI엠앤유’ 측은 ‘데어’ 측에 ‘세일50’이 7월1일부터 일주일간 인테리어를 해야하기 때문에 잠시 영업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 데어측은 당장 영업 피해가 예상됐지만 장기적으로 악세사리 업체가 들어오면 의류매장 영업에 시너지가 될 것 같아 요청을 받아들였다. 해당 기간 동안 ‘데어’의 장 대표도 자신의 의류매장 인테리어를 다시 했다. 가게 오픈 예정일은 7월 7일이었다. 하지만 ‘DI엠앤유’ 측에선 ‘세일50’이 리모델링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다며 오픈 날짜를 하루만 연장하자고 했다. 장 대표는 그것도 동의했다. 그리고 7일 밤 9시까지 ‘세일50’ 인테리어 작업자들 틈에 끼어 자신의 매장 물품 정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데어’의 물건은 모두 사라졌고, 매장도 없어졌다.

영문을 몰랐던 ‘데어’의 장 대표가 경찰서에 절도사건으로 고소장을 접수하고 있는데, ‘세일50’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세일50’의 이OO 사장은 “고의적으로 (물건을) 치운 것은 아니다. 야간 공사업자가 실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믿을 수 없었다. “사건 전날 밤에 ‘세일50’ 작업자들 사이에서 우리도 같이 매장 정리를 하고, 오픈 준비를 하는 것을 다 봤는데 갑자기 실수로 우리 물건을 치운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이 사장은 “고의적인 게 아니었다고 하면 어떤 여지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법대로 하세요.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20일 넘도록 연락이 없었다. 물건도 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데어’의 매장에선 ‘세일50’이 계속 영업을 하고 있다.

장 대표가 실수로 치웠다는 ‘세일50’ 측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는 CCTV화면 때문이다. 장 대표는 “당시 CCTV를 보면 의류매장 물건이 철거되던 현장에 ‘세일50’ 사장이 있었고, 물건을 트럭에 싣는 과정을 지시하는 듯한 사장의 모습도 보인다”며 “당시 사장이 현장에 있었고 작업자들에게 지시하는 듯한 장면까지 찍혔는데 이제와서 고의가 아니었다는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 말했다. 장 대표는 “고의든 아니든, 형사절차와 별도로 우리 물건을 돌려주고, 다시 영업을 할 수 있도록 매장을 비워줘야 하는데, 우리 매장에서 ‘세일50’이 계속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게 제일 문제”라고 말했다.

▲ 7월8일 새벽 4시경 찍힌 ‘DI몰’ 지하1층 CCTV화면. 매장 안에선 ‘세일50’ 측 작업자들이 일사분란하게 ‘데어’의 옷가지와 각종 물품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세일50’의 악세사리를 진열하고 있다

▲ 7월8일 새벽 4시 30분 경 찍힌 ‘DI몰’ 외부 CCTV화면. 세일50의 이OO 대표가 ‘데어’의 물품(행거)을 옮기는 작업자들에게 지시하는 듯한 장면이 찍혀 있다.

▲ 7월8일 새벽 4시 30분 경 찍힌 ‘DI몰’ 외부 CCTV화면. 세일50의 이OO 대표가 ‘데어’의 물품(행거)을 옮기는 작업자들에게 지시하는 듯한 장면이 찍혀 있다.

쇼핑몰 관리회사도 “지켜보는 상황”…영세업체만 발동동

‘세일50’ 이OO 사장은 뉴스타파와의 전화통화에서 “정말 고의로 치운 게 아니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지만 철수되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물건을 돌려주고 싶어도 우리가 보유한 물류창고가 7개인데, 그 중 한 곳에 물건이 들어가 있는지 혹시 폐기된 것은 아닌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정확한 것은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조만간 전 직원을 풀어서 어디에 물건이 있는지 찾아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물건의 행방을 알아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데어’의 물건이 없어진지는 20일이 넘게 지났다.

그러면서 이 사장은 “사실 우리 매장을 무단 점유하고 있던 쪽은 의류매장인 ‘데어’”라며 “우리는 ‘DI몰’ 측과 지하1층 전체를 사용하기로 임대계약을 맺고 입주했는데, ‘데어’가 무단 점유했던 것이다. 그래도 워낙 작은 공간이라 그대로 놔두려고 했는데 실수로 치워버렸다. 물건은 어딨는지 모르지만 손해배상은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세일50’ 측 주장대로라면, 건물관리회사인 ‘DI엠앤유’에서 데어와의 계약기간이 2018년 4월까지로 9개월 가량 남은 상황에서 세일50에 전체 매장을 내어주는 이중계약을 체결한 셈이다

이에 대해 건물관리회사 ‘DI엠앤유’측은 “‘데어’가 사용했던 12평 공간을 무단 점유하고 있는 쪽은 명백히 ‘데어’가 아닌 ‘세일50측”이라며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DI엠앤유’ 측은 “우리도 황당하다. 분명히 ‘세일50’과 임대계약을 맺으면서 ‘데어’ 매장의 영업권한을 승계하기로 구두로 합의했다. 그런데 갑자기 새벽에 철거를 했더라”며 “이번 문제가 생기면서 추가약정서를 통해 데어 매장의 계약을 승계하는 것으로 다시 한 번 문서로 못 박았다. 만약 구두합의가 없었다면 ‘세일50’ 측에서 추가약정서를 체결할 이유가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일50’ 측에 누차 ‘데어’의 영업권을 보장하고 사태를 해결하라고 얘기했다. 세일50측에서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해 일단 그 말을 믿고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세일50’과 ‘DI엠앤유’가 체결한 원래 임대차기본거래계약서를 보면, 데어의 영업권 승계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사건발생 3일 뒤인 7월 11일 체결한 추가 약정서에는 분명히 “‘데어’와의 특정매입 계약을 인정, 승계하는 데 합의한다”고 적혀있다.

▲ 세일50과 건물관리회사 DI엠앤유가 7월11일 체결한 추가약정서 내용. 제2조1항에는 협력사인 ‘세일50’이 쇼핑몰 ‘DI엠앤유’가 기존 체결한 ‘데어’와의 계약을 인정, 승계하는데 합의한다고 적혀있다.

▲ 세일50과 건물관리회사 DI엠앤유가 7월11일 체결한 추가약정서 내용. 제2조1항에는 협력사인 ‘세일50’이 쇼핑몰 ‘DI엠앤유’가 기존 체결한 ‘데어’와의 계약을 인정, 승계하는데 합의한다고 적혀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쇼핑몰 측은 대형 업체에 입점을 위해 기존의 소규모 업체들을 정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쇼핑몰과 대형 업체의 임대차 계약에는 계약 기간이 남아 있는 소규모 업체의 영업을 보장하는 내용이 빠져있다. 대형 업체는 ‘고의인지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소규모 업체의 매장을 일방적으로 정리했다. 소규모 업체의 물품은 현재 행방불명 상태다. 대형 업체는 영업을 하고 있지만, 소규모 업체는 영업도 못하고, 물건도 찾지 못하고 있다. 경찰이 대형 업체 대표를 입건해 조사 중이지만 언제 해결 될 지는 기약이 없다.

건물관리회사인 ‘DI엠앤유’와 ‘세일50’의 엇갈리는 주장 속에 소규모 의류업체 ‘데어’의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월 매출을 3천만 원 이상 올렸다던 ‘데어’는 현재 아예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태다.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행거 등 8천만 원 상당의 물품의 행방도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다. 인력 피해도 크다. ‘데어’에서 일했던 직원은 정직원 3명과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생 6명이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일터를 잃었다. 사태를 해결해야할 건물관리회사 측은 “이번 사건은 회사 간에 해결해야할 일이다. 지켜봐달라”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데어’의 장기웅 대표는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수 년의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 ‘세일50’은 지금처럼 계속 우리 자리에서 영업을 할 것”이라며 “세일 50은 전국적으로 세를 확장해가는 회사인데, 우리가 침묵하면 어디선가 또 우리처럼 하루 아침에 내쫓기는 작은 업체가 생길지 모른다. 그런 마음에 뉴스타파에 알리게 됐다. 이번 사건을 방치한 관리회사, 우리 물건을 마음대로 치워버린 ‘세일50’ 측으로부터 진정성있는 사과를 받고, 다시 영업을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월, 2017/07/31-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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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마지막 주에 두 명의 미국인이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한국계 미국인이었고, 다른 한 명은 미국 남부 출신이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캘리포니아에 살았던 한국계 미국인 전순태, 그리고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베츠 헌틀리는 나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80년 광주항쟁은 우리를 잇는 끈이었고, 우리는 한국의 평화와 정의를 함께 염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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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태

나는 1980년부터 1982년 사이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 살면서 처음 전순태를 알게 됐다. 당시 그는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가방 가게를 운영했는데, 광주항쟁 이후 현지 한인 사회에서 매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각성의 일환으로 북한에 있는 친척들을 방문하기로 결심했고, 북한의 고향땅을 찾은 한 최초의 한국계 미국인 중 한 명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 씨는 한때 방문이 금지됐던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많은 한국인들을 도왔다. 이후 그는 한국계 미국인 영화제작자 디앤 보르셰이 림과 램지 림의 한국전쟁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잊혀진 전쟁의 기억에 출연하면서 약간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영화 웹사이트 중 전 씨에 대한 소개페이지 참조). 영화제작자 림 씨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전 씨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전순태는 우리 영화의 핵심 출연자로서, 그의 인생 이야기는 한국전쟁의 참담한 실상과 끔찍하게 지속되는 한국의 분단,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염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국의 해방과 평화 통일을 위해 싸운 위대한 투사였다.

전 씨의 고향 개성은 38선 이남이지만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지배를 받게 됐다. 영화에서 전 씨는 1950년 6월 개성의 한 저수지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했던 수영 시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음날 저수지에 총탄이 떨어지고 기관총과 박격포 쏘는 소리에 잠이 깬 그는 북한군이 개성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휴전 회담으로 개성이 봉쇄 되는 바람에 전 씨는 개성 밖에, 전 씨의 아버지는 개성 안에 발이 묶였고, 그는 다시는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전 씨는 남자형제 둘과 여자형제 하나와도 생이별을 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그는 1964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거의 20년 후, 그가 첫 북한 방문을 한 뒤에 나는 그를 인터뷰했다. 놀랍게도, 나는 그가 이승만의 독재에 항거한 4.19 혁명 시기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그 시대는 정치, 사회적 혼란기이자 국가의 분단상황을 타개하려는 열망이 큰 시기였다.

그는 “나는 행렬의 맨 앞에 있었다”고 말했다.

살아남은 게 행운이었죠. 그러나 4.19 이후 내가 기억하는 것은 밤이건 낮이건 모든 사람들이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는 당시 통일에 관한 메시지가 남북 학생들 사이에 오갔으며, 판문점에서 양측 회담을 열기 위한 계획이 준비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모든 논의는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소장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북한과의 모든 접촉을 금지시키면서 돌연 중단됐다. 전 씨는 “박정희가 역사의 흐름을 막았다”고 슬프게 말했다. 1980년, 전두환이 유사한 방식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박정희의 쿠데타를 떠올리게 했고, 전순태 씨는 다시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에 뛰어들었다.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자주 방문했던 시기 외에 그는 남은 일생을 캘리포니아에서 보냈다. 지난 6월 마지막 주에 그는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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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베츠 헌틀리 목사

6월 26일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숨을 거둔 베츠 헌틀리 목사는 아내 마사와 함께 광주에서 장로교 목사로 여러 해 일을 했다. 1980년 5월, 광주기독병원에서 의사 겸 원목실장으로 일하던 당시 그는 전두환의 특수부대가 자행한 학살과 그 이후 계엄군으로부터 광주시를 해방하기 위해 일어난 광주항쟁을 목격했다.

당시 광주에 머물고 있었던 많은 외국인들과 달리, 헌틀리 목사와 그의 아내는 광주를 떠나 피신하라는 미국 정부의 권고를 거부했다. 그들은 오히려 계엄군의 공격을 피해 찾아온 사람들을 피신시켜 주었다. 지난 7월 7일, 광주 MBC는 헌틀리 목사의 공헌을 기리는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헌틀리 목사 부부는 내가 처음으로 만난 광주 항쟁의 직접적인 목격자들이었다. 1981년 2월, 나는 2달 간의 방한 일정 말미에 광주를 방문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부모님의 선교사 친구들을 통해 헌틀리 부부 이야기를 들었다. 헌틀리 부부는 나를 자신들의 집에 따뜻하게 맞이했다. 당시 헌틀리 목사의 집에서 나는 며칠을 지내며 광주항쟁의 희생자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과, 광주 시민들이 총알, 곤봉, 군화, 총검에 당한 끔찍한 부상을 직접 들었다.

헌틀리 부부가 준 정보를 바탕으로 나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전두환의 광주 항쟁 진압에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탐사를 시작했다. 헌틀리 부부를 방문한 지 15년 후, 나는 마침내 광주항쟁에서 미국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미국 정부의 기밀해제 문서 더미(‘체로키 파일’을 말함-역주)을 입수했다.

내가 입수한 문서 중 하나는 ‘광주 폭동에 대한 내부자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가 미 국무부로 보낸 외교전문이었다. 광주 항쟁에 대해 미국 정부가 선호하는 ‘폭동’이라는 거짓 단어를 쓴 것이었다. 해당 문서에 나오는 내부자는 익명으로 처리되었지만, 나는 그것이 헌틀리 목사의 증언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문서는 광주 항쟁에 대해 미국 정부가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은 인간적인 시선을 담고 있었다.

헌틀리 목사는 이런 인상적인 구절을 남겼다.

우리가 광주에서 본 것은 자유로운 사람들의 집회를 지나치게 탄압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1773년 영국 본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이 보스턴 항에서 동인도회사의 배에 실려 있던 홍차 상자들을 바다에 버린 사건. 이는 이후 미국독립혁명의 발단이 됐다 -역주)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그는 또 “5.18은 공산주의자의 선동이나 침투, 또는 영향을 받아 일어난 게 아니었습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광주항쟁이 시민들의 정의와 민주주의 요구에 기반한 항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 광주항쟁 당시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에 보낸 외교전문. “광주 폭동에 대한 내부자의 증언”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안타깝게도 미국 정부는 헌틀리 목사의 증언에 거의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1981년 헌틀리 목사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 또한 미국 정부의 기밀 문서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나와 광주 시민들은 모두 그에게 큰 빚을 졌다.

전순태 씨와 베츠 헌틀리 목사 모두 특별한 사건에 휘말린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부디 두 분 다 영면하시길.

※ 기사 원문(영어) 보기 | See original version(EN)


취재: 팀 셔록
번역: 임보영

화, 2017/08/0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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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2017/08/0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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