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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중심에서 인터넷을 재학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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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중심에서 인터넷을 재학습하다

익명 (미확인) | 금, 2016/11/04- 17:02

아시아의 중심에서 인터넷을 재학습하다

글| 허광준 (오픈넷 정책실장)

 

이 글은 2016년 9월 태국에서 열린 2016 아시아태평양 인터넷 거버넌스 스쿨(APSIG)에 참가한 뒤 그 경험을 쓴 글입니다. (필자)

“그래, 누군가 그런 일을 해야 하긴 하겠지!”

내가 인터넷 거버넌스와 관련한 교육 행사에 갈 예정이라고 말을 했을 때, 지인 중에서 이런 반응을 보인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행사의 내용에 주목하지 않았다. 출장을 가는 시기나 장소만이 잠깐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들 탓만은 아니다. ‘거버넌스’라는 낯선 말이 붙는 경우는 대개 다 그렇듯, 인터넷 거버넌스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도무지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

 

인터넷 거버넌스? 

‘인터넷 거버넌스’는 쉽게 말하면 단일한 관리자가 없는 세계적 통신망인 인터넷을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여러 영역의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집단적’ 노력과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나름의 ‘규칙’이 필요하다. 우선 IP 주소와 도메인 네임, 그리고 기술적 프로토콜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네트워크로서 인터넷이 작동하기 위한 기술적인 조정이 필요하다. 또한 인터넷이 우리 삶과 사회의 일부가 되면서, 스팸, 보안, 저작권 등 인터넷으로 인해 새롭게 등장한 문제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이와 같이 인터넷의 안정적인 운영, 이용과 관련된 공공정책의 결정, 그리고 그러한 정책의 원칙들과 정책결정 과정 등을 ‘인터넷 거버넌스(Internet Governance)’라고 한다.” (진보넷, [정보인권의 이해] 중에서)

※ 참고 동영상(한국어 자막): Who runs the Internet’s address book?

9월 11~15일 태국 방콕의 AIT(Asian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열린 ‘2016 아시아태평양 인터넷 거버넌스 스쿨(APSIG)’은 그런 목적으로 개설되었다. 인터넷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지에 관심이 큰 사람들이 모여 거버넌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집단으로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다. 주관하는 측은 ‘아시아태평양 인터넷 거버넌스 포럼(APrIGF)’이다. ‘스쿨’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하루종일 강의 형태의 수업을 듣고 마지막에 조별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일정이 진행되었다.

 

아시아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박사 

행사 첫 순서인 11일 저녁 식사 자리는 이채로웠다. 참석자들이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였는데, 국가와 소속 기관이 다양함은 물론이고 그 연령대가 20대 초반에서 70대까지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행사에서 강의를 맡은 강사들이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긴 했지만, 평균 연령을 확 끌어올린 것은 아시아 지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 첫 APSIG가 성사된 것은 오로지 전 박사님과 그가 이끄는 스태프들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전 박사님은 행사 기획 및 준비는 물론이고 행사 기간 내내 일정을 주도하며 성공적인 교육이 되도록 보살폈다. 직접 강의를 맡기도 했다. 인터넷의 기술적 측면을 조망하는 강의였다. 아시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전 박사님에게 보이는 존경은 절대적인 것이었으며, 이번 행사는 나로서는 말로만 듣던 전 박사님의 지도력을 실제로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APSIG에서 강의하는 전길남 박사

APSIG에서 강의하는 전길남 박사

행사가 열린 AIT는 방콕 외곽에 있는 대학과정 교육 기관이다. 기술, 공학, 경영학 중심 특성화 대학인데, 그곳의 컨퍼런스 센터에서 행사가 진행되었다. 나흘 일정이 강도 높게 이어진 데다, AIT는 공항을 중심으로 방콕 시내와 반대 방향에 있어서, 나는 이번 여행에서 방콕 등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행사장인 AIT는 1959년에 설립되었다. 컨퍼런스에 딸린 숙박 시설도 연륜의 흔적을 보였으나, 학술 행사를 진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숙소에는 간소한 침대와 책상이 놓여 있었다. 수도원 같은 분위기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았다. 서구 숙박시설의 경우 이곳에 성경 한 권이 놓여 있게 마련이다. 요즘은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위해 성경을 치우는 곳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AIT의 객실 서랍 속에는 자그마치 네 권이나 들어 있었다. 성경 두 권, 꾸란 한 권, 그리고 “The Great Teaching of Buddha”라는 영문판 불경 한 권이었다. 낯선 숙박시설에서 잠을 설치는 편이지만, 무려 세 종파의 성인이 보호하는 곳에서라면 아주 편안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자간 모델, 망중립성

강의는 월요일 아침, EFF(Electronic Frontier Foundation)의 제레미 말콤(사진) 하는 다자간(multi-stakeholder) 모델 수업으로 시작되었다. (인터넷 거버넌스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우선 마구 쏟아져 나오는 각종 영어 약자와 친해져야 한다. 관련 단체나 개념이 모두 영어 약자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전길남 박사가 편찬한 영문서 [아시아 인터넷사(An Asian Internet History)]의 앞부분에는 ‘두문자어(Acronyms)’라는 표제 아래, 책에서 쓰인 인터넷 관련 영어 약자가 무려 8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정리돼 있다.)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관련 두문자어들

물밀듯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관련 두문자어들

다자간 모델은 인터넷을 관리하는 이상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특정한 한 측이 인터넷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정부)·시민사회·기업·학계 등 관심이 있는 모든 당사자가 동등한 지위로 참여하여 협의하며 관리해 나가는 방식이다.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하면, 사실 다른 접근이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국가가 주도하여 성장한 기존 통신 인프라와는 달리, 인터넷은 자율적인 민간 기구가 주도하는 형태로 진화되어 왔기 때문이다. 말콤은 △인터넷망에 개별 국가의 법령을 적용하기 어렵고 △국제 단위에서는 대표자를 뽑아 결정을 맡기는 민주 대의제를 적용하기 어려우므로 그 대안으로 다자간 참여-협상 모델이 필요할 수밖에 없음을 설명하였다.

다자간 참여-협상 모델(멀티 스테이크홀더리즘) 

“인터넷 거버넌스는 민주적인 다자간 협의·결정 과정에 기초하여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부, 사기업, 시민사회, 기술공동체, 학문공동체, 이용자를 포함한 모든 당사자가 의미 있게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당사자 각각의 역할과 책임은 논의되는 이슈의 맥락 안에서 융통성 있게 해석되어야 한다.” (NETmundial Initiative, 2014)

두 번째 시간은 인도 ComFirst의 디렉터 마에시 우팔이 망중립성에 대해 강의했다. 이번 행사에는 인도에서 여러 사람이 강사와 학생으로 참석했다. 엄청난 인구와 급신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여 인터넷 사업에 매진하는 분위기가 잘 전달됐다.

첫날 오후에는 APNIC(Asia Pacific Network Information Center)의 파블로 히노호사(사진)가 특이한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인터넷망을 통해 전달되는 패킷과 그 전달 규약을 설명하기 위해 특수 제작한 카드를 선보인 것이다. 그는 이 카드를 참석자에게 나눠주고, 그 속에 담긴 암호에 규정된 대로 패킷이 전달되는 양상을 시연하면서 인터넷의 구조를 이해시켰다. 게임을 하듯 진행하다 보니 정보 전달 흐름과 그 규약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인터넷 거버넌스

 

“새로 10억 명 연결하기” 

매일의 마지막 시간은 분반 토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각 스테이크홀더 영역별, 즉 정부·시민사회·사기업·기술-학계의 네 팀으로 나누어,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주제를 토론했다. 공동 주제는 “새로 10억 명을 연결하기”였다.

오늘날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는 35억 명,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다. 그중 60%가 아시아인이다. 인구가 많으므로 이용자 숫자도 크지만, 인터넷 보급률로 따지면 세계 평균에 뒤처진다. 아시아 지역은 앞으로 급격한 양상으로 이용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견된다. 이렇게 새로 늘어날 이용자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하고, 개인과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할 것인가가 새로운 숙제가 된다. 참가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문제를 조망하고 토론을 벌였다. 토론 내용은 마지막 날에 취합하여 발표되었다. 소속 위치에 따라 문제를 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랐지만, 결국 다양한 측이 서로를 보완하면서 거버넌스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둘째 날은 인터넷을 둘러싼 사회정치적 환경에 대한 수업이 진행되었다. ICANN(Internet Corporation for Assigned Names and Numbers)의 애덤 피크가 인터넷 거버넌스의 원칙들에 대해 강의하였고, 일본에서 활동하는 짐 포스터가 인터넷을 둘러싼 정치 사상적 측면을, 그리고 고려대 교수이자 오픈넷 이사인 박경신 교수가 법률적인 측면을 강의하였다. 나중에 공개된 교육생 강의 평가에 따르면, 모두 흥미롭고 의미 있는 수업이었다.

인터넷의 법률적 측면에 대해 강의하는 박경신 교수

인터넷의 법률적 측면에 대해 강의하는 박경신 교수

인터넷의 다양한 특성과 그에서 촉발되는 법률적 이슈들

  • 소통 수단 → 표현 규제와 감시 규정들, 프라이버시
  • 대량 소통 → 저작권
  • 통제의 분산 → 단대단(end-to-end) 원칙 → 망중립성
  • 익명성 → 프라이버시
  • 사기업의 개입 → 정보매개자 책임
  • 사기업의 개입 → 반독점 법안
  • ICANN의 주소 할당 → 도메인 이름 논쟁
  • 세계 차원의 소통망 → 국가단위 규제 곤란 → 형사사법공조조약, 관할권 논란 (박경신 교수 발표자료 중에서)

셋째 날에는 전길남 박사가 기술적 측면에 대하여 직접 수업을 진행했고, 박경신 교수가 인권 관련 주제를 놓고 다시 한 강의를 맡았다. 마지막 수업은 프로그램 전체에 대한 평가와 토론이었는데, 개별적 강의에서부터 아시아 인터넷의 전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를 놓고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화기애애하고도 에너지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분반 토론에서는 각 국가사회의 상황에 따라 구성원의 기대와 요구가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컨대 한국처럼 인터넷 보급률이 높고 많은 사람이 이미 연결된 곳에서는 어떻게 인터넷을 자유로운 소통망으로 유지해 나갈 것인가가 주요한 화두였다. 그러나 방글라데시, 네팔 같은 곳에서는 우선 인터넷과 통신 인프라를 최대한 많이 구축하고 보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제로 레이팅 같은 주제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이슈였다. 어떤 곳에서 제로 레이팅은 인터넷 사업자 간 불공정 경쟁 관계를 초래하는 부정적 요소로 인식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이용자가 값싸게, 혹은 무료로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선물로 간주되었다. 지역적, 세계적 차원의 인터넷 관리 정책에 접근할 때 국가별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제로 레이팅이란?

“통신사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 이용을 위한 데이터를 무료로 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SK텔레콤이 자사 가입자들에게 11번가 쇼핑몰을 이용할 때 드는 데이터를 가입자의 데이터 한도액에서 차감하지 않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 망중립성 옹호론자들은 특정한 콘텐츠나 애플리케이션에 기반하여 통신사가 이용자의 접근성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중립성 위반으로 보고 있다. … 그러나 제로 레이팅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는 기업의 가격 차별화의 한 형태일 뿐이며, 한정된 주파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시장의 작동이라고 주장한다.” (진보넷, [정보인권의 이해] 중에서)

 

다양한 참가자와 만든 추억들  

참가자 단체 사진. 구성원의 다양함이 세계 네티즌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참가자 단체 사진. 구성원의 다양함이 세계 네티즌의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참가자 몇 사람과 특히 친해졌다. 그중 하나는 캄보디아에서 온 시티쿤 리였다. 그와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그 때마다 내 휴대폰에서는 찰칵, 찰칵 소리가 났다. 리는 한국산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 인위적인 셔터 소리가 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의 중고 휴대폰이 캄보디아로 많이 흘러들어와서, 그 전화기를 쓰는 캄보디아 사람들 역시 똑같은 증상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멀리 외국에서 타국인과 더불어 고국의 가부장적 정책을 비웃으며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 행복한 경험은 아니었다.

행사가 열린 태국에서 참가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는, 자신이 관여하는 운동이 ‘공주’가 조직하여 이끄는 것이라고 하여 나의 봉건적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의 딸이 주도하는 사회 운동인 모양이었다. 권력 분산을 지향하는 인터넷과 정보사회 운동을 봉건적 권위체가 추진한다는 것은 특이한 모습이었지만, 국가가 주도하던 새마을 운동, ‘영애’가 주도하던 새마음 운동을 여전히 이상화하는 나라 출신으로서 딱히 낯설게 볼 이유는 없었다.

교육 마지막 날 저녁은 참가자 전원이 차 세 대에 나눠타고 강변의 식당으로 나와 함께 식사했다. 낯선 밤거리라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는데,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태국 남부의 젖줄 짜오프라야 강 중류에 있는 분위기 좋은 식당이었다. 해산물(강산물?)을 중심으로 한 음식도 괜찮았고, 밤의 강변 풍경도 좋았으며, 라이브 가수들이 튀지 않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르는 흘러간 팝이 독특한 정취를 불러일으켰다.

지카 바이러스를 머금었을지 모르는 모기들이 달려드는 것이 옥에 티라면 티였다. 태국 여행자에게는 지카 바이러스 주의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반바지를 입고 있었던 나는 급히 화장실로 가서 두꺼운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식사 뒤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느라 짐을 다 싸 들고 온 게 다행이었다.

시원한 강바람과 동남아풍 올드팝이 잘 어우러졌던 강변 식당 Baan Nhuer Nham

시원한 강바람과 동남아풍 올드팝이 잘 어우러졌던 강변 식당 Baan Nhuer Nham

 

아직 아시아 인터넷 보급률은 45%

2015년 기준으로 한국의 가구별 인터넷 보급률은 84.4%다. 10년 전에 이미 75% 선에 이르렀으니, 10년 동안 불과 10% 포인트 늘어난 셈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은 91%다. 국민 대부분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보급될 만큼 다 보급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아시아 전체로는 상황이 다르다. 아시아의 인터넷 보급률은 올해 기준으로 45.6%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APSIG 행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행사 전체에서 장년이나 노년의 원숙한 기운이 아니라 역동적인 청년의 활기 같은 것이 넘실거렸다.

새로운 상황은 기회이자 도전이다. 엄청난 수의 이용자를 새로 수용하면서 동시에 기존 인터넷 시스템에 존재하던 여러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일 것이다. 여기에는 통신망 인프라의 구축에서부터 법령 정비, 인터넷 비즈니스 육성, 이용자들의 권익 보호, 더 나아가 인터넷을 자유롭고 열린 정보 유통망으로 유지하기 위한 모든 일이 포함될 것이다.

협력 협동 사람 인간 장애 비장애인

 

인터넷 거버넌스의 주체는 바로 우리 

이러한 일은 국가사회의 한 측이 전담하여 수행할 수 없다. 인터넷과 관련한 모든 측이 서로 밀고 당기고 협력하며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인터넷 거버넌스 관련 국제회의에서는, 참석자 중 원하는 사람이 모두 발언 기회를 얻고 그런 방식을 통해 일정한 합의에 이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 근본에서부터 민주적이고 분권적인 인터넷 거버넌스의 방식이다.

아시아에서 조만간 새로 합류하게 될 수많은 네티즌 역시 그런 거버넌스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될 것이다. 인터넷 거버넌스는 누군가 해야 할 일이고, 그 누군가란 다름 아닌 인터넷으로 연결된 모든 이해당사자다. 올해 처음으로 열린 APSIG은 참석자들에게, 아시아태평양 지역 앞에 무한한 기회와 쉽지 않은 과제가 동시에 펼쳐져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주었다.

APSIG는 앞으로도 매년 같은 장소에서 계속 열릴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이용자가 아시아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면 싶다.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 앞서 인터넷의 축복을 맛보았고 통신 인프라 측면에서도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한국의 경험이 다른 나라에 중요할 수 있고, 거꾸로 한국 역시 이들로부터 배우는 바 많기 때문이다.

 

* 위 글은 슬로우뉴스에 게재하였습니다. (201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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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8일 오후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실(위원장 노웅래)이 주관하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주최하는 ‘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역차별, 그 해법은’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오픈넷 박경신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 PDF: 토론문(1)_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역차별, 그 해법은_오픈넷 박경신

피해자 없는 역차별 논의, 번짓수 틀린 과대소득 논의

 

I. “역차별” 담론 마저도 일관되게 갈라파고스적

“인터넷사업자는 국내법상 존재하는 각종 규제를 준수해야 하지만 해외 사업자는 동일한 법 적용을 받지 않고 있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다. 이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업자에게 똑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여당 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적반하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국내 인터넷기업을 ‘차별’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가 우리나라에서만 유일무이하게 만들어 적용하고 있는 갈라파고스적 규제들이다. 게시물이 불법이 아니라도 요청만 있으면 30일 동안 게시물을 차단해야 하는 임시조치제도, 게시물이 불법이 아니라도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을 위해 필요’하다면 삭제차단하겠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제도, 우리 국민이 접속하는 웹사이트로서 자본금 1억 이상이라면 무조건 신고를 해야 하는 부가통신사업자신고제도, 불법물을 사전차단하지 않으면 형사처벌까지 당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 의무조항들, 청소년의 합법적인 콘텐츠 접근을 막기 위해 실명제까지 하라는 청소년유해매체물실명제, 청소년유해물도 아닌 인터넷게임을 하려는 사람들도 실명확인을 하라는 인터넷게임실명제, 이들 실명제를 위한 온라인 상의 본인확인 방식도 이동통신사의 배만 불리는 고비용의 휴대폰본인확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강요하는 본인확인기관제도, PC방을 포함한 모든 스타트업들의 전용회선료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있는 발신자부담 종량제 상호접속고시, 모든 온라인결제와 행정민원 서명에 공인인증서를 요구하는 공인인증서제도, 밤 12시부터 새벽 6시 사이에 청소년을 잠을 자야 한다는 폭력적인 전제에 만들어진 게임셧다운제, 진실이나 감정표현도 불법물로 분류하여 매년 1만건 넘는 기소가 이루어지는 명예훼손/모욕죄 법규 등 수많은 제도들이 국내기업들을 괴롭혀 왔다. 이 법들이 우리나라에 공익적으로 좋은지 안좋은지를 지금 다투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이 규제들은 OECD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에서만 존재하고 있으면 우리나라 인터넷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미국에서 50년대에 법률로 유색인종들인 기차 버스 앞에 못타게 하였는데 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백인들도 기차 버스 앞에 못타게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보통 국가가 공익적인 목적으로 만든 규제에 대해 기업들이 과도하다고 불만을 표시하면 공익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제도개선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는 해외 인터넷기업들에까지 그 제도를 적용해서 ‘평등한 규제환경’을 만들겠다는 특이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자국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역차별’이라고 부르면서 외국 기업에 부담을 돌리려 하는가? 갈라파고스 제도로 사고를 쳐놓고 갈라파고스적인 해법을 내놓는 형국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대부분의 법의 관할은 애시당초 국내에서 활동하는 해외 인터넷기업에 적용되어 왔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 개인정보보호법 등등 어느 법도 그 적용이 국내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기업에 관할이 한정된다고 명시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2009년에 구글이 유튜브의 한국세팅에서 게시기능을 떼어낸 이유는 당시 정보통신망법 상 인터넷실명제가 적용되었기 때문이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당연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대상이 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 결함 있는 물건을 판매하면 당연히 한국법원의 제조물책임소송의 대상이 되듯이 한국에 결함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당연히 한국의 규제당국의 규제를 받게 된다.

공정거래법에서만 역외적용 논의가 별도로 있는 이유는 외국 기업의 행위의 효과가 물건을 매개로 직접 국내에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된다는 특성 때문이었다. 공정거래법은 거의 유일하게 사람의 행위가 신호나 거래를 통하지 않고 ‘시장’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실체를 통해 타인에게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제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외국 회사 A와 B가 가격담합을 하고 국내인이 A와 B의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또 국내인이 A와 B 사이의 가격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않더라도 이들의 가격담합이 국내가격에 영향을 준다는 가정을 두고 있다. 공정거래법에서 역외적용이 명시적으로 논의되는 이유는 인과관계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집행력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기업들은 국내망을 통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불법적인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불법영업을 하는 외국 웹사이트를 차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미국에 국제전화를 하면 AT&T를 통해서 미국의 수신자와 통화를 하게 된다. 전화로 음란한 대화를 들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 국민들이 이를 많이 이용한다고 하자.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AT&T에 우리나라 통신규제를 적용하자고 하는가? 우리가 중국에서 유해장난감을 주문하면 국제택배로 물건을 받을 수 있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중국업체에 한국의 유해물 규제를 적용하자고 하는가? 보통은 AT&T와의 연결을 끊도록 하거나 유해장난감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세관에서 걸러낼 것이다.

해외 인터넷기업은 해외에 있기 때문에 매우 쉽게 국내 규제당국의 집행력의 영향을 받게 된다. 위의 여러 규제들의 집행력을 뒷받침해 줄 메타규제라고 할 수 있는 부가통신사업자 신고제도도 지금 당장 구글과 페이스북 본사에게 신고의무를 적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관련자를 2년의 징역에 처하게 할 수도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96조) 당장 신고되지 않은 부가통신사업은 범죄가 되므로 이를 “교사 및 방조하는 정보”인 웹사이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통해 차단을 할 수도 있다. (정보통신망법 제44조의7 제1항 제9호) “임시중지제도”가 별도로 필요한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관할과 집행력이 외국업체에 대해 존재하는 상태에서 역차별적 효과가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규제당국 자체가 자신이 집행하는 규제가 너무 갈라파고스적임을 알고 있어 규제집행의 의지가 없거나 규제를 실제로 집행하기 어려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부가통신사업자신고제도가 자유국가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도임을 규제당국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역차별에 대한 해답은 자명하다. 부가통신사업자신고제도, 임시조치제도 등등 갈라파고스 제도들을 없애서 규제환경이 국제수준에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위의 규제들이 소비자나 공익 보호를 위해 명백히 필요하다면 모를까 그런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불법이 아니라도 요청이 들어오면 차단해야 한다는 임시조치제도는 누구를 위한 공익인가?

한국인터넷기업협회 회장 박성호 사무총장이 국내 인터넷기업들을 대표하여 토론회에서 한 말을 기억해보자. “역차별을 빌미로 규제가 새로운 규제를 낳고 있는 형국이다”. 즉 국내 인터넷기업을 “피해자”인 것처럼 치장시켜놓고 실제로는 국내 인터넷기업들을 옥죄는 새로운 규제들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논의에 따라 아래 제안들에 대해 차례로 간략히 의견을 표명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 역외적용 명문화 – 불필요함.
  • 국내대리인제도 – 연락을 전달하는 ‘대리인’으로 기능하는 한에서는 반대하지 않음.
  • 임시중지제도 – 반대함. 제2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만드는 것에 불가함.
  • 부가통신사업신고제 – 제도 자체를 폐지할 필요가 있음.
  • 국제공조체계 –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분명함.
  • 인터넷시장현황파악 – “부가통신서비스의 위상과 영향력이 증대”된 것에 대한 현황파악은 필요하나 이를 위해서는 정보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다른 산업과의 비교가 필요함. 예를 들어, 언론사의 광고주들과 네이버/다음 중에 누구의 메시지가 더 영향력이 있는가? 더욱 중요한 것은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가 제공하는 컨텐츠들은 대부분 이용자들이 제공하는 것인데 이런 경우에 이들 플랫폼을 통해서 유통된다고 해서 이들 플랫폼의 영향력이 증대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 부가통신사업자 적용 규제 새로이 개발 – 이미 충분한 규제들이 존재하고 있음. 더 이상의 부가통신사업자 규제는 불필요함. 독점규제법은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시장이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기만’의 요소가 없는 한 독점규제법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임. 2018년4월 EU 온라인중개플랫폼 규제는 기업들과 소비자들간의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들에 한하여 (1) 검색 및 매대 랭킹투명성 (2) 제재투명성 (3) 분쟁해결신속성을 요구하는 규제임. 우리나라에는 그런 규제가 없는가? 이런 규제가 역차별의 원인인가?

 

II. 망 이용 대가 논란

망 이용 대가는 역차별해소의 또하나의 방식으로 논의되고 있다. 즉 해외사업자들이 국내에서 돈을 벌어가고 있으니 망사업자에게 별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구글, 네이버, 카카오 등의 인터넷기업에 ‘망 이용 대가’를 물려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다. 5G 시대에는 망사업자들이 인터넷기업들에 ‘고속’ 인터넷을 비싸게 팔 수 있어야 한다거나 국외 인터넷기업들에 국내 접속료를 받아야 한다는 등의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인터넷이 정치적, 경제적 민주화의 도구로 여겨져온 것은 인터넷의 ‘참여적인 매체’로서의 성격 때문이었다. 힘없는 개인들도 방송이나 신문과 같이 대중에게 동시에 호소할 수 있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생산자가 되어 이들의 ‘참여’ 아래 여론과 산업이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만인이 만인에게 한꺼번에 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은 어떻게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수억 개의 모든 단말이 다른 단말에 직접 연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터넷의 혁명은 그렇게 하지 않고도 모두가 서로 통신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모두가 서로의 전령이 되어주기로 한 것이다. A와 Z 사이의 통신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B, C, D, E, F, G 등 많은 단말들이 물을 먼 곳에서 길어서 불을 끌 때 사람들이 줄을 서서 양동이를 전달하듯, 차례대로 정보 전달을 하기로 약속했다. 모든 단말이 각자 자신의 이웃 단말이 전달한 정보를 다른 방향의 이웃 단말에게 전달하는 소임에만 충실하면 모두가 모두에게, 즉 C도 W에게, L도 H에게 통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인터넷의 혁명이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또 하나의 원칙이 필요했는데 각자가 자신의 이웃 단말과의 통신에 대해서 돈을 받지 않기로도 약속한 것이다. 우편이나 전화처럼 발신자나 수신자에게 돈을 받으려 했다면 발신자와 수신자는 중간에 몇개의 단말을 거쳤는가에 따라서 비용을 물고 그 비용은 각각의 중간 단말에게 배분됐어야 할 것인데 이를 정산하는 거래 비용만으로 인터넷은 붕괴되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망 이용 대가’를 받자는 주장이 유럽에서 2012년도에 한 번 있었지만 단박에 폐기되었다. 유럽의 방송통신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 BEREC은 “발신자부담원칙(Sending Pary Network Pays)은 인터넷의 분산화되고 효율적인 라우팅 방식을 통한 정보전달에 근본적으로 충돌한다”)고 하였다.1)

결국 자신에게 전달된 정보가 누구에게서 왔고 누구에게로 가는지 어떤 내용인지에 관계없이 다음 사람에게 무료로 전달해준다는 원칙이 정립됐다. 이렇게 모두가 모두의 정보 전달에 기여하는 대신 서로간에 배달료를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 바로 망중립성이다. 정보 전달에 대해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더 빠른 전달 또는 더 안정적인 전달에 대해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과 등가이고 망중립성의 더 잘 알려진 표현인 ‘우대 금지(no prioritization)’ 원리이다. 또 정보의 내용이나 수발신인의 신원에 따라 정보전달을 차별한다는 것은 정보전달가격을 무한대로 한다는 것과 등가이니 역시 ‘차별금지(no discrimination)’도 여기서 도출된다. 인터넷의 민주성은 모두가 서로의 정보 전달에 무상으로 기여한다는 참여적인 기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덕분에 인터넷은 무료 정보의 바다가 되기도 했다. 내 웹사이트에 다른 대륙의 누군가가 접속하여 정보를 퍼간다고 해서 내가 정보전달료를 물어야 한다면 나는 웹사이트에 무료로 정보를 올리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정보까지 받아 올려 또다른 사람들이 퍼가도록 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다음 메일, 네이버 검색, 카카오톡, 유튜브, 페이스북을 우리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망중립성 덕택이다.

그런데 시대가 흘러 서로간의 연결을 대행해주고 돈을 받는 기업이 생겨났다. 이게 바로 망사업자이다. 망사업자는 많은 단말들 사이의 연결을 통제하게 되어 지금은 A에서 Z까지 가는 동안 30개의 단말을 거친다면 그중 10개쯤을 통제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망사업자들은 ‘정보전달 전 구간은 아니라도 상당 부분을 책임지므로 배달료를 받겠다’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전선의 용량을 키워서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자신과 오가도록 하는 접속료와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이게 바로 한국 망사업자들이 ‘망 이용 대가’라고 부르는 것인데 외국에서는 이런 표현 자체가 없다. 굳이 대응되는 단어를 찾자면 ‘(망사업자의) 최종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요금’을 발신자로부터 받겠다는 의미로 ‘터미네이션 피’(termination fee)라고 부른다. 전화망 사업자들끼리는 이것을 받지만 인터넷에서는 금기시되어왔다.

‘망 이용 대가’라는 개념은 인터넷의 작동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결국 인터넷의 참여적 매체로서의 기능을 마비시킨다. 국내 망사업자가 그렇게 돈을 번다면 외국의 망사업자들도 자신이 한국 국경까지 정보 전달을 한 것에 대한 ‘망 이용 대가’를 한국의 이용자나 망사업자들로부터 받으려 들 것이다. 심지어는 유력한 정보 제공자들은 국내 이용자가 정보를 퍼갈 때만 유료로 하려 들 것이며 ‘정보의 바다’는 한국에서만 귀신같이 증발해버릴 것이다.

 

III. 해외 paid peering 사례에 대한 오해

많은 통신사업자들이 다음 사례들을 들면서 ‘망 이용 대가’를 해외 인터넷기업들로부터 국내 망사업자들이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미국 Comcast vs. Level3, 2014년 (미국) Comcast vs. 넷플릭스; 2012년 (프랑스) France Telecom v. Cogent; 2013년 (프랑스) 구글 vs. Orange; 2013년 (프랑스) 페이스북 vs. vs. Orange”

그러나 위의 사례들은 모두 콘텐츠사업자들이 망사업자와 직접 접속하면서 만들어진 paid peering사례들이며 국가가 이를 강제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협상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이며 망중립성을 준수하면서 이루어진 것들이다. 망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업자가 망 가치가 낮은 사업자로부터 접속료를 받는 것은 망중립성을 위반하지 않으며 이는 꼭 전 세계 모든 라우터들과의 연결을 책임지는 완전중계접속(full transit)료가 아니라 partial transit이라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SKB-페북 사태 재발 방지…망이용료 가이드라인 만든다(김위수 기자  [email protected] | 입력: 2018-12-14 18:04)”는 보도가 떴는데 방통위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1) 직접접속을 강제한 후 fee 협상에 개입하거나 (2) 캐시서버 IDC설치비용 협상에 개입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으로 국내기업들이 OECD내 최고의 망접속료를 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역차별을 해소하려면 외국기업들이 캐시서버 비용을 물도록 하거나 paid peering을 하도록 강요하고 그 액수까지 개입하면 역차별은 해소될지 모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결국 국내기업들이 물고 있는 망접속료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다. 과연 국가가 이렇게 통신3사의 담합을 장려하여 망접속료를 높게 유지하여 취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더욱이 이와 같이 사기업들의 협상에 국가가 개입하여 한쪽을 협상을 지원하려고 하는 것은 미국 기업들의 경우 FTA 위반 문제가 발생할수 있다. 결국 국내에서 온라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망접속료의 형태로 금전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해외 기업과 국내 기업과의 협상을 우리 기업쪽에 유리하게 이끄는 것은 정부의 의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국내 기업들도 장기적으로 성장을 마비시키는 행위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BEREC’s comments on the ETNO proposal for ITU/WCIT or similar initiatives along these lines, 2012년11월14일 https://berec.europa.eu/eng/document_register/subject_matter/berec/others/1076-berecs-comments-on-the-etno-proposal-for-ituwcit-or-similar-initiatives-along-these-lines “IP interconnection agreements only involve the provision of capacity of the interconnection link and not the end-to-end transmission of particular data flows across different autonomous IP networks. Unlike voice traffic on old PSTN networks, data does not travel over an exclusive, dedicated network connection, and it is not possible to ascertain the nature or volume of a particular data flow end-to-end (and so not possible to charge for it that way either. . . ETNO’s proposed end-to-end SPNP approach to data transmission is totally antagonistic to the decentralised efficient routing approach to data transmission of the In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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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8/12/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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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규모의 경제’라는 말은 많이 쓰지만 ‘규모화’(scaling)란 말은 치과 갈 때 말고는 한국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규모화’는 문제의 규모에 적합한 규모의 해법을 찾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공무원 1명이 건물 수십만개의 소방점검을 1년 안에 해야 하는 상황은 규모화가 필요하다.

옛날에 ‘운동’이란 골방에서 등사한 삐라 수십장을 감시를 무릅쓰고 뿌리기로 상징되었다. 수천만 국민을 향한 홍보수단으로는 전혀 규모화가 되지 않은 해법이었고 변화는 무지한 대중의 거듭된 배신을 거치며 고통스럽게 느린 속도로만 찾아왔었다. 그런 고통의 한 면에는 어떤 방송·신문도 보도해주지 않는 청계천 의류공장의 살인적 청소년노동을 알리기 위한 22살 청년의 분신도 있었다.

인터넷은 약자들 간의 소통을 규모화했다. 방송·신문의 외면을 받는 힘없는 개인에게도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기회를 주었다. 인터넷 중에서도 월드와이드웹의 구실이 컸다. 부지불식의 다수가 내 웹사이트를 ‘방문’할 수 있게 하여 이메일보다 훨씬 더 확장성 있는 소통이 가능해졌다. 검색엔진은 그런 ‘방문’의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1인이 불특정 다수의 수백만명에게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는 문제에 인터넷은 규모화된 해법이 되었다.

결국 인터넷은 운동을 규모화해내었다. 더 이상 운동은 목숨을 건 소수에 의존하는 위험한 것일 이유가 없게 되었다. 인터넷이 운동을 주도하진 않지만 대중참여의 촉매제가 된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이 인터넷이 다른 기술과 다른 점이다. 지금까지의 신기술들은 항상 상대적 불평등 그리고 억압을 심화하는 부작용 때문에 진보세력들에게 고민의 대상이었지만 인터넷은 더 많은 사람을 공론과 생산의 주인 자리로 호명하는 긍정적 효과가 명백했다. 1995년 이후 소위 ‘디지털 권리’ 수호단체의 수가 세계적으로 급증한 이유이다.

거대 인터넷기업들의 등장을 가리키며 ‘인터넷이 집중화되어 있어 더 이상 민주화와 해방의 도구가 아니다’라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네이버, 유튜브를 통해 뿌려지는 정보와 동영상은 누구의 것인가? 바로 이용자들이 생산한 것이다. 인터넷기업들은 이들 정보가 무료로 지나가는 경로일 뿐이다. 경로의 점유율이 높아진다고 해서 경로 운영자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45%가 케이티(KT) 망을 이용해 인터넷에 접속한다고 해서 케이티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게 아니다. 경로 운영자에 대한 감시가 필요한 것이지 운동의 규모화를 의심할 일이 아니다.

운동의 규모화가 가능했던 것은 망중립성 덕분이다. 망중립성은 동네에 불이 나면 동네 주민들이 모두 저수지까지 나란히 서서 양동이를 ‘옆으로 전달’하여 불을 끄듯이 모든 단말들이 서로 간에 타인의 정보를 내용과 수·발신자에 관계없이 무료로 배달해준다는 원칙이다. 세계 누구든 정보를 요청한 사람에게 정보를 보내주는 월드와이드웹식 소통모델이 가능해진 것은 망중립성 덕이다. 수많은 개인과 회사가 무료 앱, 무료 정보, 무료 플랫폼을 정보배달료(소위 요즘 ‘망이용 대가’로 불리우는) 걱정 없이 인터넷에 올린 것도 망 중립성 덕이다. 망 중립성 없이는 민중의 지식 기반과 상호 소통 능력을 강화했던 인터넷의 역할은 없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 망중립성을 각종 방식으로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정치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이동통신사 등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망 이용 대가’ ‘무임승차’ 등등 대중을 속이는 개념이 동원되고 있다. 우리를 다시 골방으로, 최루탄 앞으로, 불편하고 위험한 운동방식으로 몰아넣으려는 움직임을 마주하여 단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

이 글은 한겨레에 기고했습니다. (2019.01.17.)

금, 2019/01/1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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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8일 오후2시,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실(위원장 노웅래)이 주관하고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주최하는 ‘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역차별, 그 해법은’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오픈넷 박경신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습니다.

 

* PDF: 토론문(2)_국내외 인터넷 기업 간 역차별, 그 해법은_오픈넷 박경신

우리나라 인터넷 접속료: 과대소득을 올리고 있는 이가 누구인가?

역차별 해소와 해외 기업 망이용료 주장들은 해외 기업들이 국내에서 소득은 올리고 책임을지지 않는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해외 기업의 국내 소득 과세 문제를 따져보자. 기업은 전 세계에 재화와 용역을 수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수출 기업은 외국에서 소득을 올린다. 그렇다고 해서 현지 정부에 소득세를 내지는 않는다. 소득세는 소득을 올리기 위한 행위가 어디에서 벌어지는가를 기준으로 과세한다. 이는 국제 세법의 상식이고 이중과세를 방지한다. 구글·페이스북의 국내 소득에 대해 과세하려면 현대, 기아 자동차의 미국 내 소득 과세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논의되는 ‘구글세’는 소득에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부가가치세다. 국경이 없는 인터넷의 성격을 전제로 하고 새로운 국제 세법을 만들려는 OECD의 논의가 마무리돼간다.

이 외에 살펴볼 것은 국내 망사업자들이 제공하는 인터넷접속료이다. 보통 인터넷접속료는 Mbps당 가격으로 비교하는데 우리나라는 $9.22로서 “미국과 유럽의 각각 4.3배, 7.2배 정도인 것으로 나타남 (Telegeogrphay 2018자료)”로 나타난다. 이에 대해 예상되는 통신사 반박은 “아시아지역 평균보다는 낮다”는 것인데 아래 Figure 4와 Table 4(2013년)를 보라.1) 마닐라나 뭄바이 등은 접속료가 매우 높다. 이들 도시들을 비교대상으로 할 것인가? 우리나라보다 낮은 홍콩, 싱가폴, 일본을 대상으로 할 것인가?

인터넷접속료는 세계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드는데 왜냐하면 망사업자들 사이에서 무정산직접접속(peering)을 더 많이 하면서 또는 무정산직접접속이나 중계접속을 더 쉽게 할 수 있는 IX에 접속하는 망사업자가 늘어나면서 각 망사업자들이 자신들의 고객인 개인이나 기업들에게 전 세계 라우터들과의 인터넷접속을 제공하기 위해 더 높은 망 가치를 가진 망사업자들에게 지불해야 하는 서비스 원가라고 할 수 있는 중계접속료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Telegeography의 2018년 보고서2)를 보면 일본은 2불/mpbs, 싱가포르 1불 39센트/mbps로서 우리나라의 $9.22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동안 뭄바이도 가격이 떨어져 이제 한국보다 더 싸다(2016년 자료).3)

그 원인은 무엇일까? Figure 5를 보라. 통신사 경쟁상황과 GDP대비 인터넷접속료가격의 상관관계를 보라.4)

결국 우리나라의 높은 인터넷접속료는 우리나라의 시장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즉 대기업 3개사가 모바일의 100% 및 유선 85%를 과점하고 있는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2013년 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 보고서https://www.unescap.org/sites/default/files/Discussion%20Paper-Transit-…

2) https://blog.telegeography.com/outlook-for-ip-transit-prices-in-2018

3) Brianna Boudreau, Senior Analyst, TeleGeography http://www2.telegeography.com/hubfs/2017/presentations/telegeography-pt…

4) 전게서, 2013년 UN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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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12/2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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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적인 ‘역외적용’론

글 | 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오픈넷 이사)

 

“국내 인터넷 사업자는 국내법상 존재하는 각종 규제를 준수해야 하지만 해외 사업자는 동일한 법 적용을 받지 않고 있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현저히 저하되고 있다. 이 역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외국업자에게 똑같은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이 같은 주장이 방송통신위원회와 관련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나와 인기를 얻고 있다.

적반하장이다. 국내 인터넷 기업을 ‘차별’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가 우리나라에서만 유일하게 만들어 적용하고 있는 갈라파고스적 규제들이다. 게시물이 불법이 아니라도 요청만 있으면 30일간 게시물을 차단해야 하는 임시조치제도, 게시물이 불법이 아니라도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을 위해 필요’하다면 삭제차단하겠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요구제도, 우리 국민이 접속하는 웹사이트로서 자본금 1억원 이상이면 무조건 신고해야 하는 부가통신사업자신고제도가 그렇다. 또 불법물을 사전차단하지 않으면 형사처벌까지 당할 수 있는 ‘기술적 조치’ 의무조항들, 청소년유해물도 아닌 인터넷게임을 하려는 성인들도 실명 확인을 하라는 인터넷게임실명제, 이들 실명제를 위한 온라인상의 본인 확인 방식도 이동통신사의 배만 불리는 고비용의 휴대폰 본인 확인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강요하는 본인확인기관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외에도 PC방을 포함한 모든 스타트업들의 전용회선료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이고 있는 발신자부담 종량제 상호접속고시, 모든 온라인 결제와 행정민원 서명에 공인인증서를 요구하는 공인인증서제도, 자정부터 새벽 6시 사이에 청소년은 잠을 자야 한다는 폭력적인 전제로 만들어진 게임셧다운제, 진실이나 감정 표현도 불법물로 분류하는 명예훼손 법규가 국내 기업들을 괴롭혀 왔다.

이 법들이 공익적으로 좋은지 안 좋은지를 지금 다투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이 규제들이 OECD 국가들 중 우리나라에만 존재하고 있으면서 우리나라 인터넷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역외적용론’은 마치 미국에서 1950년대에 법률로 유색인종들은 기차와 버스의 앞에 못 타게 했는데 그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백인들도 기차와 버스의 앞에 못 타게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느 나라가 자국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두고 ‘역차별’이라고 부르면서 외국기업에 부담을 돌리려 하는가? 갈라파고스제도로 사고를 쳐놓고 갈라파고스적인 해법을 내놓는 형국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위에서 말한 법들 모두 애시당초 국내에서 활동하는 해외 인터넷 기업에 적용이 가능했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망법, 전기통신사업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어느 법도 그 적용이 국내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기업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2009년 구글이 유튜브의 한국세팅에서 게시기능을 떼어냈던 이유는 당시 정보통신망법상 인터넷실명제가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당연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또 해외 인터넷 기업들은 국내망을 통하지 않으면 국내에서 활동할 수 없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망사업자에 대한 권한을 통해 불법적인 콘텐츠를 제공하거나 불법영업을 하는 외국 웹사이트를 차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구글 본사가 부가통신사업자 신고를 안 한다고? 전기통신사업법상 징역 2년에 처해지는 범죄이고 유튜브 사이트는 이를 ‘교사 방조하는 정보’이므로 방통심의위의 심의를 거쳐 차단하면 된다.

법도 있고 집행력도 있는데 외국업체에 대해 집행하지 않는 이유는 규제당국 자체가 규제가 너무 갈라파고스적임을 알고 있어 집행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역차별’에 대한 해답은 자명하다. 부가통신사업자신고제도, 임시조치제도 등 갈라파고스적 제도들을 없애서 규제환경을 국제수준과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관련 토론회에서 국내 인터넷 기업을 대표한 이상적인 발언이 나왔다. “규제가 규제를 낳고 있는 형국이다. 역차별 논의 반대한다.” 역차별론으로 더 이상 국민을 가두지 말라.

* 이 글은 경향신문에 기고했습니다. (2019.01.03.)

월, 2019/01/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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