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기본소득, “한 번 해볼만 하다”

지역

기본소득, “한 번 해볼만 하다”

익명 (미확인) | 화, 2016/11/01- 02:03

지난 7월초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제16차 대회가 전 세계인들이 모인 가운데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진행되었다. 불과 한달 전에 실시하여 전세계 매스컴을 달구었던 스위스의 국민투표와 더불어 ‘기본소득’이라는 주제어가 우리에게 매우 친숙해 졌다.

그동안은 연구자들 간 논쟁과 이를 간간히 소개하는 신문기사라는 틀 속에 갇혀 있었던 내용들이 비로소 살아서 움직이며 우리에게 미소담은 모습으로 손을 흔들면서 다가오는 느낌이다. 가시적인 것은 곧 현실적인 것이고 현실적인 것은 실천의 과정을 준비하게 마련이다.

NISI20160707_0011893185_web
지난 7월, 서강대 다산관에서 제16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회가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핀라드, 스위스, 독일, 캐나다 등의 경제학자와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일부 보수언론의 기사와 칼럼내용은 기본소득이 실시되면 세상이 무너지고 큰일이 날 것으로 우려한다. 물적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 세력들은 좌익불순분자들을 바라보는 듯 경계의 눈치를 거두지 못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세상사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는 듯 과다한 희망을 품는 사람들도 있어 보인다. 복지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와 내용 역시 오랫동안 축적과정을 거치면서 변해가는 현실의 환경과 조건에 맞추어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고 필요에 따라서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되풀이해 오고 있다.

이번 주제 역시 진화와 적응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의 영역을 확대해가는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기본소득 운동의 역사

한국에서 기본소득의 운동은 서울시립대 곽노완 교수와 한신대 강남훈 교수 등이 10여전부터 학문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고, 진보정당의 활동가들이 결합해 국제조직인 BIEN(Basic Income Europe Network)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한국내 조직인 BIKN(Basic Income Korea Network)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기본소득운동의 오랜 역사이야기와 개념적 정의 그리고 정책적 내용이 소상히 소개되여 있다. 필자는 BIKN에 소개되여 있는 내용과 16차 대회에서 발제되였던 주제들을 살펴보며 외부자라는 비판적 시각에서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의 역사는 중세가 무너지고 근대로 넘어오는 문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엔클로우저 운동으로 양들이 농민을 잡아먹고 있다고 한탄했던 ‘유토피아’의 저자이자 영국 헨리8세 시대의 대법관이였던 토마스 무어(1478-1535)와 그의 절친이였던 벨기에 루뱅대학의 비베스 교수에서 초보적인 생각들을 읽어낼 수 있다 한다. 특히 비베스 교수는 ‘국가의 역할은 모든 국민에게 공공적 부조를 제공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수백년이 흐른 후, 미국인이면서도 주로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영국의 노동자운동과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미친 토마스 페인(1737-1809)를 통해 기본소득에 대해 더욱 농(濃)해진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

페인은 ‘토지를 중심으로 한 자연은 하늘이 부여한 모두의 공유재산이므로, 자연에게 노동을 가해서 발생한 산물 역시 일정 몫을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녔다 한다. 여기서 인민주의자 페인의 사상이 신자유주의의 태두가 된 로크와 노직의 주장과는 근본부터 다른 애민(愛民)적 품격을 발견하게 된다.

1
미국 독립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던 토마스 페인(왼쪽)과 공상적 사회주의자 샤를 푸리에

과학적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맑스주의자들에게 조롱을 받았던 프랑스의 인간적인 사회주의자 사를 푸리에가 복지의 역사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였다. 산업화과정을 지켜보면서 인류의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던 푸리에는 팔랑지테리에( Phalansterie, Phalanstery) 구상을 통해 공동체의 구성과 운영원칙을 밝히면서 근대적 개념의 사회보험제도와 ‘모두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제2차 대전이 지나는 시점에서 최후의 케인지안이라고 불리는 노벨경제학수상자인 제임스 미드교수와 동료 콜 박사는 모든 국민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경제운용의 성과에 대해 주권자로서 당당하게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시민배당‘ 개념을 제시하였다.

미드에게서 영향을 받아 미국 하버드 대학의 자존심이였던 존 롤스교수는 ’재산보유제적 민주주의‘를 구상하였고, 제임스 토빈, 갈브레이스, 폴 사뮤엘슨 등 우리의 경제학 교사로 통하는 쟁쟁한 저명인사를 포함하여 천여 명의 학자군이 기본소득을 청원하는 서명서를 백악관과 미의회에 제출하는 일대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안타깝게도 정식 채택에 이르지 못한 채, 이를 지지했던 맥거번이 대선에 실패하고 레이건이 등장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열기가 잦아 들었다. 레이건 이후 공급중심 경제정책과 금융우선주의가 설치게 되면서 기본소득논쟁은 맥이 끊겼고, 오늘의 미국에는 극심한 부의 편재와 양극화가 형성되었고 트럼프같은 괴물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1960년 이후에도 유럽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들이 끊이지 않았으나, 각국 나름대로 독자적 방식으로 진행되였다. 이러한 논쟁과 시민운동들은 개별적 단계에서 자연스레 국경을 넘어서서 많은 국가들이 함께하는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의 창립에 이르게 된다.

1984년 3월 수백년 전에 비베스가 활동했던 벨기에 루뱅대학교를 중심으로 연구자 그룹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함께 힘을 합쳐 기본소득에 대한 도발적인 시나리오를 “샤를푸리에그룹”이라는 집단 필명으로 출판하였고, 여러 나라가 참여한 가운데 1986년 9월 루뱅 신시가지에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BIEN)’를 출범시키기로 결정했다.

이후 네트워크는 정기적인 뉴스레터를 발간했고 2년마다 지구네트워크회의를 개최하면서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시키면서 오늘에 이른다.

기본소득이란 무엇인가

위의 간략한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기본소득에 대한 구상과 제안 및 진행과정은 국내 수구적인 인사들이 생각하듯이 과격한 좌익 혁명세력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학창시절 역사수업을 통해서 위인과 지성으로 칭송받던 훌륭한 인물들이 주도하여 전개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사회주의진영에서는 기본소득이 자본제적 시장경제를 유지시켜 주는 받침목으로 판단하여 수용을 부정했을 법하다.

기본소득의 정의는 매우 단순하다. “국가 또는 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 개개인에게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제도”라고 단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좀 더 부연하면 기본소득운동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해 오는 벨기에 루뱅대학의 필립 판 파레이스(Van Parijs) 교수의 주장대로 1) 모두에게 2) 무조건 3) 현금으로 4) 개별적이며 5)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사회복지정책이다.

300
(이미지 출처: http://basicincome.tistory.com/)

1)’모두에게’는 무상급식과 같이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억만장자라도 포함하여 예외없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다.

2) ‘무조건’이라는 개념은 자산과 노동참여 여부 등 조건을 앞세워 지급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3) ‘현금으로’는 서비스와 재화 기타 다른 형태가 아닌 반드시 현금방식으로 지급함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4) ‘개별적’이라는 것은 가족과 단체 또는 선정된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이루어 져야 함을 의미한다.

5) ‘정기적’이라고 함은 일시적 또는 한번에 이루어지는 배당 방식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매주, 한달 또는 일년 단위로 지급이 이루어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판 파레이스 교수의 규범적인 정의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갖는 고도의 추상적 성격으로 인하여 현실적 적용과정에서 어려움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특히 성숙기 이전의 이행과정에 있어서는 현실적 절충과 변형적 유연성이 매우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기본소득의 아이디어들

개념의 정의가 매우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소득을 바라보는 시각과 내용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우선 신자유주의와 금융중심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기본 소득을 주장하는 제안을 살펴보면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재미있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거두인 밀턴 프리드만이 ‘음의 소득세 (우리에겐 근로저소득보충세- earning income tax compensation로 알려져 있음)을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기초생계보장과 함께 빈곤 속에 갇혀있는 가난한 시민을 대상으로 일정 금액 이하 소득을 국가가 보장하는 제도이다. 자유시장중심의 경제정책에서 발생하는 폐해를 부분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궁여지책으로 시혜적 정책의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다. 또한 가난이라는 조건을 단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이 가지는 보편적 취지에는 맞지 않지만, 국가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일정한 소득을 보장한다는 큰 취지에서 기본소득 논쟁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225px-Portrait_of_Milton_Friedman
시카고학파의 태두인 밀턴 프리드만이 내놓은 ‘음의 소득세’ 아이디어도 기본적으로는 기본소득 아이디어와 맥을 같이 한다.

다른 주장의 하나는 ‘사회출발지원금’이라는 제안으로 청소년기를 지나 18-20세 정도의 성년 나이에 이르면 국가나 지자체에서 상당한 고액(영국기준으로 일억원 정도)의 금액을 일시에 지급하여 이를 본인의 책임 하에 일생동안 투자하고 운영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참여자본주의를 주장하는 학자군의 일부에서 제안하는 것으로 그 배경에는 국가경제운영의 성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곳이 자본시장이므로 성인이 된 시민으로서 자기책임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윤을 확대할 수 있도록 투자를 유도하여 자본시장의 혜택을 공유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선 주기성이라는 기본소득의 원리와 상충되고 있으며, 투자가 실패한 경우에 대한 대안이 전혀 없고 오히려 수탈적인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이 엿보이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생각에는 성인이 되어 시장에 참여한 이후 어떤 이유로 시장에서 실패한 경우에 이를 구제하는 방식으로 평생토록 (전매가 불가한) 공공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제공하는 것이 차라리 현실적이다.

기본소득 제도의 장, 단점

기존의 복지체계는 선별적 안전망 구성이든, 기여중심의 사회보험방식이든, 집중적 효과를 위한 사회수당정책이든, 모두 제각기 조건과 상황을 검토해야하며 시행과 집행에 복잡한 지침과 절차를 필요로 하여 적지 않은 관리비용이 발생하는 문제점이 있다.  더구나 사회적 인프라와 신뢰자본이 부족한 국가의 경우 시행 과정에서 비리와 부조리가 발생하기 쉽다. 이에 따라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조세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기본소득은 무조건 일반적으로 집행되므로 자격조건과 자산조사를 실시해야하는 추가적인 관리비용을 줄일 수 있고, 비리와 부조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여 사회적 신뢰를 높일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경우 사람마다 처해있는 상황과 위상이 다른데 이를 단순하게 현금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

현금보다는 서비스와 교육 그리고 돌봄이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많으며, 때에 따라서는 전문적인 정책판단이 개입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정책적인 선택과 필요성이 개입하기 어려운 점이 기본소득제도가 가지는 가장 큰 약점이다. 

보편적 복지가 발달된 노르딕 국가 중에서 핀란드의 경우 세계화와 노키아의 파산 등으로 국가경제가 몇 년째 뒷걸음치면서 중장기적인 복지재정전망이 매우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복지의 관리비용축소와 도덕적 누수를 줄이기 위해 사민당과 노조가 반대하는 가운데 집권세력인 중도우파가 중심이 되여 기존의 복지체계를 보완 또는 대체하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는 계획이 진행 중이며, 내년에 기초적인 시행안이 제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biennews_finland-flag
핀란드의 우파정부가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기존의 복잡한 복지제도를 기본소득 하나로 통합해 결과적으로 기존의 복지제도를 축소하려는 의도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소득층을 지원해왔던 기존의 복지제도가 일부 축소될 것으로 전해지면서 많은 논쟁을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복지체계와의 절충과 이행과정에 매우 큰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한 것이다.

최근 BIEN 홈페이지에 올라온 소식으로는 실험적으로 수천 명의 실업자들을 임의 선정하여 한화로 매달 70만원 수준을 지급하는 것으로 기획안이 결정되었다 한다. 일단 실험의 단계를 거쳐 성과에 대한 분석과 보완의 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도입을 예고한다고 볼 수 있다.

이웃한 나라인 네덜란드 역시 정치권중심으로 기본소득제 도입을 활발히 논의하고 있어서 이들 나라들의 시행여부와 경험은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기본소득

토마스 페인의 ‘부분적 공유’ 개념과 제임스 미드 교수의 ‘시민배당’이라는 새로운 케인즈적 접근은 제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면서 현실적인 중요성이 매우 커지게 되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지난 시기의 산업혁명과 다른 주요 차이점은 과거에는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종래보다 더 많은 일자리와 직업이 창출된 반면, 제4차 산업혁명은 로봇과 인공지능의 역할로 생산현장의 육체노동자뿐만 아니라 일반관리자, 전문업 종사자 그리고 서비스영역에 걸쳐 광범하게 일자리를 축소시킨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이다. 

케인즈가 예언하였듯이, 고도 산업기술시대로 진입하면서 경제활동인구가 평균 주당 15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을 여가와 휴식 등으로 충만한 생활을 즐긴다면 일자리문제가 쉽게 해결될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의 근무형태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단기간에는 10%, 장기적으로는 태반의 일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 실제로 매우 불안정한 직업형태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급증하는 현실은 다가올 음울한 미래에 대한 전조로 받아들여진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일자리의 형태, 근무시간과 여가, 조세와 배분의 조건, 시장수요로서 순환문제 등 많은 분야에서 기존의 방식을 벗어난 사회혁명적 수준의 새로운 변화가 요구된다.

복지체계로 국한하여 본다면 제2차 산업기에는 사회보험적 방식이 유효했고, 제3차 산업시기에는 생애주기적 사회수당이 적합했다. 다가오는 제4차 산업혁명기에는 공유개념과 함께 기본소득의 도입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다.

존엄한 인간의 조건으로서 기본소득

기본소득이 미치는 가장 중요하며 근본적인 변화는 인간의 존엄과 해방(emancipation)에 대한 시각이다. 인권, 자존, 자유, 참여, 민주주의, 자아실현, 관계 등의 방대한 개념을 짧은 지면에 함부로 다룰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현실적인 주제로 한정해 몇가지 측면만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기본소득이 사람에게 게으름을 조장하여 경제전반에 부정적인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영국 역사에서 나타난 스핀햄랜드법(The speenhamland Act 1795, 저임금노동자의 임금을 가족 수에 따라 연동적 비율로 보충해 주는 제도)의 실패사례를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핀햄랜드법의 문제점은 산업화라는 역사적 흐름에 역행하는 저항과 산업자본가와 향토 지주간의 갈등 그리고 시혜적 자선과 미숙한 정책적 실수들이 잘못 결합돼 발생했다.

오히려 기본소득은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제4차 산업혁명의 활달한 전개를 위한 환경과 여건과 전제로서 매우 중요한 순기능적 역할을 할 것이 확실하다.

또한 인간은 항상 양면적 존재이여서 한편에서는 매우 탐욕적이고 이기적일 수 있다. 예컨대 기본소득의 수입이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시켜 줄만한 수준이 된다면 분명 경제활동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기본소득은 인간적 존엄에 대한 최소 수준에 머물 것이 확실하다.

다운로드
기본소득에 대한 가장 상투적인 비판은 공짜 돈을 주면 사람들은 노동하지 않고 게을러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그럴지, 아니면 재밌고 의미있는 일에 더 열정적으로 몰두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와 함께 지금의 노동이 과연 원해서 하는 것인지, 생계를 위한 강요된 노동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미지 출처: https://brunch.co.kr/@wineflora/67)

따라서 게으름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본소득도입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노동자의 최저임금 수준을 대폭 상향 조정하여 참여적 동기를 강화함으로써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적 측면을 넘어서서 기본소득이 미칠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분야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혁명적 수준이다.

제16차 서울대회에 참여했던 독일연방의원 카티아 키핑은 기본소득은 개개인에게 사회적 평등과 정치적 참여의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적 권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기득권적 소수에 대한 일반적 다수의 통제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한마디로 ‘기본소득, 그것은 민주주의 일반이다’라고 정리했다.

한국측 발제자로 참석했던 정남영은 기본소득의 핵심은 단지 임금을 더 받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구속, 다른 말로 생활수단의 획득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의 발견과 존재의 충만함으로 나가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진보정당 관련 여러 발제자들은 해방 이후 수구적 족쇄에 갇혀있는 한국정치를 진보적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계기로서 기본소득운동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다.

기존 복지제도와의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기본소득을 실제로 적용하는 과정에는 몇가지 주요한 과제를 극복해야한다. 첫째는 기존에 실시되고 있는 복지정책과의 관계설정과 이행경로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재정수요에 관한 것이다.

위에서 핀란드의 예를 들었지만, 기존에 복지정책이 실시되고 있는데 이에 덧붙여 기본소득을 도입하게 되면, 이행과정에서 여러 가지 복잡함과 혼선이 예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지정책의 ‘계속진행’ 여부, ‘병렬적 시행’, ‘대체적 소멸’, ‘신규 도입’ 등 여러 경우의 수를 검토하고, 주제와 사안별로 명확한 분석과 판별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우선 기존에 집행되고 있는 출산 및 장애지원 수당, 의료, 교육 및 주거 정책은 기본소득과 상관없이 지속되고 강화시켜야 할 것이다. 기초생계보장과 국민연금 등은 이미 국민들과의 약속으로 시행하고 있는 만큼 약속시한이 소멸되는 기간 동안 세대를 걸쳐 사선적(downward slide)으로 기본소득과 대체해가야 할 주제이다.

실업 등 기존에 시행되었던 각종 수당 중 일부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기본소득으로 교체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며, 기본소득의 도입의 범위와 수준에 따라 새로운 내용이 추가 도입될 것이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노르딕 모델에서 시행하는 정책적 사회수당과 기본소득에서 제안하는 보편적 현금지급방식 간에는 서로 보완해야하는 장,단점이 각각 존재한다. 이런 장, 단점을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향후 복지체계 혁신과정에서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핵심 사안이라고 믿는다.

1
기본소득이 아주 꿈만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스위스, 핀란드, 네덜란드 등에서는 정책실험의 관점에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매경)

기본소득의 적용과정 역시 1) 실험적 2) 제한적 3) 부분 또는 병행적 4) 전면적 단계로 나누어 검토해야 할 것이다.

1)실험적인 단계에서는 선정된 몇 개의 기초 지자체수준에서 시행해봄 직하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에 경험했던 경제특구방식에 준하는 실험단계의 과정이나, 조만간 시행할 유럽국가들의 사례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2)제한적 단계에서는 광역 지자체단위로 확장하거나 농어민과 예술인 등 특수한 계층으로 확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부분 또는 병행적 단계에서는 경제활동을 하면서 발생하는 참여소득과 기본소득의 관계를 검토하여 혼합형인 하이브리드 방식을 고려해 볼 수 있다.

4)본격적인 전면적 도입단계에서도 생애주기적 조건을 따져 연령 단계별로 지급액를 달리하여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재정수요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마지막 주제는 기본소득을 도입하면서 발생하는 재정 수요에 관한 것이다.

필자는 한국의 복지체계를 오로지 기본소득체제로 편성하는 것에 반대하며, 노르딕 복지체계와 혼합하여 재구성해야한다고 본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초고도 과학기술시대의 핵심 과제는 생산과 공급 측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비와 순환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현재 모범적으로 평가되는 북유럽 국가들의 사례를 참조해 보면, 국민경제가 만들어 내는 총부가가치의 80%이상이 시민사회 내의 공정한 배분과정을 통하여 시장의 수요로 소비되어야 비로소 경제의 적정한 선순환적 고리가 형성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복지체계에서 편입되어 완전히 정착되는 성숙기를 기준으로 국민경제 부가가치총액의 30% 이상이 복지성 지출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행히 한국이 현재 복지영역에 지출하는 국민경제비중이 10%선 미만이므로, 향후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복지체계를 설계할 경우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정책과 중첩되는 분야를 감안하면 20% 이상의 재정적 여유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한국은 복지체계가 빈약하여 기본소득을 도입하는데 큰 장애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시작단계에서는 부가가치총액의 15-20%에서 출발하여 편성하고, 한 세대라는 기간을 두고 30%선으로 상향되도록 설계하는 것이 무리가 없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본다.

재원을 마련하는 근거로서 1)공유재 활용 2)일년단위 국민경제운영성과의 적정한 배분 3)상속 및 증여에 대한 세율조정 4)단기적 균형수단으로 국가화폐발행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1)공유재 수입 중 가장 큰 영역은 공공소유의 부동산을 활용하는 것이다.

공공소유의 토지사용에 대한 지대와 건물과 기타 시설재 사용에 대한 임대료, 공공 주파수 사용료, 환경개선을 위한 벌금 등 다양한 공공재의 활용형태로 수입과 과세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2)일년 단위 국민경제의 운용성과, 즉 총부가가치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현재의 10% 수준의 복지지출을 지금이라도 15%이상으로 증액하고 장기적으로는 30% 수준으로 높여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조세와 세정에 큰 폭의 개혁작업이 요구될 것이다.

3)상속과 증여에 대해서는 현행 소득세수준의 세율을 누진적으로 최고 80% 수준까지 대폭 상향조정하고, 여기서 발생한 재원을 기본소득을 중심으로 한 복지재정과 미래 먹거리를 위한 혁신활동에 투입해야한다. 미국의 황금기인 프랭클린 루즈벨트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까지 최고 상속세율이 90% 이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4)재원 마련방안으로 국채발행을 통한 한국은행 차입방식이 아니라 국가신용을 바탕으로 무이자 방식의 국가화폐를 발행하는 것을 검토할 수 있다. 다만 국가화폐의 용처를 철저하게 복지영역으로만 제한하여야 할 것이다. 적정한 수준의 국가화폐발행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수입의 재분배효과를 동반할 수 있다.

기본소득, 해볼 만한 실험이다!!

결론적으로 실험적, 제한적, 부분적 과정을 겪으며 때로는 기존의 정책적 복지정책을 재조정하면서 기본소득 지급액 수준을 2016년 기준 불변가격으로 매월 40만원을 목표수준에서 시작한 뒤 한 세대 이내에 매월 80만원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본다. 

시대적 흐름과 현실적 요구를 정치적 영역에서 결의해낸다면 한국경제의 규모와 실력으로 충분히 실천가능한 수준이다.

2016-01-29-1454029823-7362171-vlsj294
한국의 녹색당은 기본소득 제도 도입을 위한 재정충당계획과 목표를 단계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올봄 스위스에서 실시된 기본소득 실시 국민투표에 대해 대다수 보수 언론들이 왜곡 보도를 했다.

우선 스위스는 기본소득 때문에 특별히 국민투표를 한 것이 아니라 일 년에도 몇 번씩 일상적으로 국민투표가 이루어진다.

둘째, 스위스는 유럽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국가여서 급격한 사회변화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기본소득이라는 주제를 국민투표로 청원한 진보적 시민활동가 그룹은 처음부터 통과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기본소득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을 목표를 삼았다.

또 기왕 소개하면서 정치적 임팩트를 주기 위해 GDP의 30%가 넘는 수준인 1인당 매월 한화기준 300백만원을 지급액으로 설정해 극적인 효과를 노렸다. 준비과정에서 이들은 약 5% 수준의 지지를 얻어도 성공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선거 캠페인을 통하여 기대 이상으로 스위스 국민들 속에 관심과 열기가 형성됐고, 결과적으로 23% 이상의 지지를 얻었다다. 더구나 젊은층의 지지율은 40%선이였고, 산업화된 일부 도시에서는 50%를 상회했다. 일부에서는 지급액을 현실적 수준인 절반으로 낮추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하기도 한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국민투표 결과는 ‘실패’가 아니라 대단한 가능성을 열어준 ‘예비된 성공’이었다.

(사족: 제16차 지구네트워크대회에서 발제자로 참여한 안효상 공동대표는 “기본소득의 채택  여부가 아니라 어떤 기본소득을 도입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필자의 글이 기본소득과 관련된 논의와 내용을 제대로 소개하는데 조그만 역할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글은 필자의 절친이며, BIKN 공동대표인 강남훈 한신대 교수와의 대화에서 얻은 아이디어에 기초해 쓰여졌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사단법인다른백년은 12월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한반도 양국체제와 동북아데탕트’를 주제로 ‘2017 백년포럼 시즌3’을 열었다.

촛불혁명 1주년을 기념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시나리오들‘의 두 번째 순서로 열린 이날 포럼은 포럼에서는 김상준 경희대 교수의 ‘양국체제’ 주장에 대해 이남곡 연찬문화연구소이사장, 김누리 중앙대교수, 이일영 한신대교수, 남문희 <시사인> 전문기자가 지정토론을 벌였다.

김 교수는 발제에서 “70년 분단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두 국가가 상호 영토와 주권, 정통성을 인정하고 관계정상화를 이루는 양국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70년 가까운 세월을 항시적 위기에 짓눌려 지내온 남북한이 적대의 근원을 해소해야만 남과 북 모두 비정상적인 ‘비상국가체제’를 벗어날 수 있고 구조적이며 반복적인 ‘마(魔)의 순환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남곡 연찬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양국체제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면서도 양국체제론의 현실인식 등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면서 양국체제론이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다수의 동의를 얻거나 반대에 부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지나친 낙관’이라고 지적했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독일 통일의 기반이 된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은 사실은 동독과의 양국체제론이었다”면서 “그런 점에서도 양국체제에 대한 논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일영 한신대학교 교수는 “기존의 분단체제론이 분단체제 극복 방법론의 하나로 변혁적 중도론을 제기하고 있는데. 이는 양국체제론에서 제기하는 출구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남문희 <시사인> 전문기자는 지난 2014년 7월 7일 북한이 발표한 정부성명 중 통일방안을 제안한 세 번째 항, ‘새로운 합리적 통일방안으로 연방연합제를 추진하자는 것’ 에 주목해 양국체제론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했다.

포럼 영상과 자료집을 함께 소개한다.

수, 2017/12/13- 09:35
277
0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서울엔 연트럴파크가 있다. 농담이 아니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가좌동 방면으로 길게 이어진 공원이 바로 연트럴파크다. 이 연트럴파크엔 늘 사람이 많다. 연트럴파크 덕분에 변두리이던 연남동은 졸지에 핫 플레이스가 됐다.

959f0737-22a6-4e83-b882-425bf7a3de44
개발의 수혜지인 서교동 및 동교동의 반대편에 위치한데다 경의중앙선 철로와 내부순환로의 존재로 인해 접근성과 개발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곳에서 트리플 역세권 형성과 경의선 폐선 부지의 공원화로 일약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는 서울 연남동. (사진: 중앙일보)

 

본디 연남동은 개발의 수혜지인 서교동 및 동교동의 반대편에 위치한데다 경의중앙선 철로와 내부순환로의 존재로 인해 접근성과 개발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저렴했다. 그러던 연남동이 상전벽해의 변화를 맞으니, 홍대입구역이 공항철도와 지하화한 경의중앙선이 지나가는 트리플 역세권이 되고, 경의선 폐선 부지가 공원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교통 인프라가 밀집되고 공원까지 생기니 사람들이 밀려드는 건 당연지사. 연남동의 땅값과 집값과 임대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연남동은 2015년 거래가격이 150% 정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임대료 상승률도 최대 300%에 이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3년 1분기 연남동 소재 상가 임대료는 ㎡당 2만4000원이었는데 올해 2분기에는 3만6000원을 기록했다.([젠트리피케이션②]연남동, 화교상권서 철길따라 ‘길맥’상권으로,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927_0000107254&cID=13001&pID=13000)

연남동은 가로수길과 삼청동과 서촌과 홍대와 경리단길 등이 걸어간 길을 정확히 뒤따라가고 있다. 연남동 케이스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경로가 보인다.

 지대가 낮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활하고 창작활동도 한다

→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교통 인프라와 공원 등의 문화 인프라를 확충한다

 → 유동인구가 급증한다 → 각종 영업시설이 들어선다→ 지대가 폭증한다

→ 땅과 집과 상가를 소유한 사람들은 부가 급증한다

→ 임차인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쫒겨난다 

 

온갖 문화.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되고, 문화자본이 투입되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이치. 특정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면 지대가 치솟고, 지대가 치솟으면 땅값이 폭등한다. 부동산 소유주들은 단지 특정 공간에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와 타인이 만든 부를 독식하는 것이다. 특정 공간의 자리에 연남동을 놓으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물론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합법이다. 그러나 그처럼 부정의하고 비효율적인 일도 세상에 드물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최소주의적 정의(justice)는 “기여한 자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가져가는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이 최소주의적 정의에 완벽히 반한다. 나는 연남동 케이스처럼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의 극단적 결합을 알지 못한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부동산을 통한 이익은 불로소득이며, 합법의 탈을 쓴 강탈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모든 불로소득의 어머니며 특권의 우두머리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비롯한 특권이 온존하는 한 대한민국의 정상적 발전은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연남동 케이스처럼 공공과 정부의 노력과 기여에 따라 상승한 개발이익의 환수에 노력해야 한다. 그게 공정이고, 정의다. 공공의 것은 공공에게 귀속되어야 하고, 개인의 것은 개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목, 2017/12/14- 20:05
211
0

북핵 문제가 새로운 페이지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화성-15형’ 미사일을 발사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계속해서 ‘최대의 압박’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클린턴 행정부가 실제 북한 타격까지 논의했다는 기밀문서가 최근 해제돼 주목받기도 했지만, 지금이 더 위험한 시기일 수 있다는 탄식까지 나온다.

반전의 기운도 감지된다. 아직 북한의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은 미완성일 공산이 크지만, 북한은 적어도 이 마지막 단계로 넘어가지 않겠다는 ‘미끼’를 가지고 미국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이제 북한이라는 골칫덩이가 자칫 미국 본토까지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로 위협이 되면서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어쩌면 두 나라가 전격적으로 핵동결과 제재 해제를 맞바꿔 합의하고 관계 개선을 이뤄낼 수도 있다.

이런 시기에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58)이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닷새간 북한을 다녀왔다. 유엔 고위급 관계자의 방북은 2010년 2월 펠트먼의 전임자였던 린 파스코 사무차장, 2011년 10월 발레리 아모스 인도주의 업무조정국장 이후 아주 오랜만이다. 북한이 펠트먼 사무차장의 방북을 타진한 것은 이미 지난 9월 유엔 총회기간이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북한은 ‘화성-15형’ 발사 다음날인 지난달 30일에야 유엔에 ‘공식 초청장’을 보냈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소집된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방북에 대해 “이런 위험한 시기에 출구를 모색하고 협상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기회”라고 말했다. 9일 북한에서 귀국한 뒤 경유지인 베이징에서도 “북한은 현재의 상황이 가장 긴박하고 위험하다는 것에 동의했다”며 “이 상황은 오직 외교적 해결책으로 풀 수 있다. 계산착오를 막고 분쟁의 위험을 줄이기 위한 채널을 여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펠트먼의 방북이 북미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펠트먼은 평양을 찾아 리용호 북한 외무상 등을 만났고, 조선중앙통신은 펠트먼의 귀국 소식을 전하며 “유엔과 의사소통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모든 채널이 막힌 상태에서 북한이 유엔을 대화창구로 삼으려 하고, 유엔 역시 ‘북핵 중재자’로 나서려 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NHK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한 대화의 틀을 만들려 했다”며 펠트먼의 방북 배경을 설명했다.

유엔이 중재에 나서더라도 여전히 대화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펠트먼은 당초 일정보다 체류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하긴 했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면담은 성사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간 김정은은 북중 접경지역을 시찰하고 있었다. NHK는 북한이 펠트먼과의 대화에서 핵·미사일 개발은 미국 탓이라는 기존 입장만 되풀이했다고 전했다.

302C8EBF-6685-45D5-BE41-41C8B53CFC92_w1023_r1_s
평양을 방문한 제프리 펠트먼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왼쪽)이 7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만났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중동 분쟁 현장을 발로 뛴 정통 외교관

펠트먼 사무차장은 30여년 간 미 국무부에서 일한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아랍어, 프랑스어, 헝가리어에도 능통하다. 1959년 미국 오하이오주 그린빌에서 유대인 부모 아래 태어났다. 인디애나주의 볼 주립대에서 역사와 미술을 전공했다. 이어 터프츠대 플레처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 미 국무부 외교국에 들어가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영사관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1988에는 주 헝가리 미 대사관에서 일했고, 1991년에는 로런스 이글버거 당시 국무부 부장관실에서 동·중유럽 지원 담당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요르단 대학에서 아랍어를 공부한 펠트먼은 이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담당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는 1995년 텔아비브에 있는 주 이스라엘 미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가자지구 경제문제를 담당했다. 1998년에는 주 튀니지 미 대사관에서 정치 및 경제 부문 책임자로 일했다. 2000년에는 당시 마틴 인디크 주 이스라엘 미 대사의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2000~2001년간 진행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 프로세스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2001년에는 예루살렘 주재 미 영사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인 2004년에는 아르빌의 이라크 임시정부에서 근무하기도 했으며 이후 2008년까지는 레바논 주재 미 대사로 일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국무부 중동(근동) 담당 차관보로 재직했다.

정무담당 사무차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임명했다. 정무담당 사무차장은 분쟁지역 갈등 해결이라는 유엔 본연의 임무를 총괄한다는 점에서 사무차장급 부서장 중에서도 가장 핵심 요직 중 하나로 꼽힌다. 사무총장에게 국제적 안보 이슈에 대해 조언하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프리카 등에서 직접 현장을 뛰며 예방 외교와 평화 증진, 평화 유지 활동을 한다. 유엔의 국제적 중재 역할을 감독하면서 매년 수십 개 회원국에서 이뤄지는 선거 지원 임무도 총괄한다. 외교 관례상 국가의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

이력에서 알 수 있듯 펠트먼은 얽히고설킨 중동 문제,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현장을 발로 뛰며 겪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에는 중동 화해 무드 정착에 일조했다. 2009년 3월 당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중동 담당 차관보였던 펠트먼을 시리아에 특사로 파견한다. 전임 부시 행정부 시절 ‘악의 축’으로 지칭할 정도로 최악이었던 시리아와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취지였다. 시리아 방문 중 펠트먼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평화협상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펠트먼 방문 뒤 미국은 부시 행정부 시절 철수시켰던 시리아 대사를 재파견하기도 했다.

2010년 말 튀니지에서부터 불기 시작해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쓸기 시작한 ‘아랍의 봄’ 당시에도 현장을 지켜봤다. 2011년 1월 튀니지 혁명 때는 국무부 중동담당 차관보로서 직접 방문해 “미국은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리비아의 카다피 국가원수가 튀니지 혁명을 ‘외세의 이익’에 이용당했을 뿐이라고 비판하자 이를 일축한 것이다. 3월에는 반정부 시위가 격화됐던 바레인에 특사로 파견되기도 했다.

펠트먼은 리비아에서 카다피가 실각하는 과정에서 카다피의 핵심 측근인 무사 쿠사 리비아 외무장관의 망명 이탈을 중개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2011년 5월에는 리비아 반군의 거점 도시 벵가지를 직접 방문해 반군의 대표기구인 국가위원회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해 주기도 했다. 8월에는 “카다피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카다피가 즉각 권좌에서 물러나는 것이며 이는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책”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으로서는 2014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충돌이 일어나자 이를 중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2015년에는 이슬람국가(IS)가 세계 평화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경고하면서 IS를 추종하는 트위터 계정이 5만여 개, 각 계정의 팔로워가 평균 1000여명에 이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6년에는 시리아 내전 중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알레포 폭격이 처벌받아야 할 전쟁 범죄이며 책임자를 색출해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트럼프 차기 미 대통령을 겨냥해 이란 핵 합의를 꾸준히 지켜나가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 대선 당시에는 힐러리 클린턴의 e메일이 공개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공개된 e메일에서 클린턴재단의 직원 더그 밴드는 2009년 레바논계 나이지리아인 사업가로 클린턴재단 기부자인 길버트 샤구리의 청탁을 받고 힐러리의 측근인 셰릴 밀스에게 연락해 ‘레바논 업무를 실질적으로 다루는 사람을 샤구리와 연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역시 힐러리의 측근인 후마 애버딘은 펠트먼 당시 주 레바논 대사를 소개해줬다는 것이다.

R658x0
펠트먼 사무차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자들이 자신과 대화에 열중했다면서, 북한 측에 핵과 미사일 개발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공동체에 우려라는 의견을 재차 전했다고 말했다.

■ 북미 대화의 시발점?

세계의 분쟁 현장을 누벼 온 ‘베테랑 외교관’ 펠트먼이 이번 북한 방문에서는 어떤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교도통신은 지난 11일 자성남 주 유엔 북한 대사가 펠트먼 사무차장과 회담하고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법적 근거를 검증할 국제 법률전문가 포럼 설치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결의의 부당성을 부각하려는 것이지만, 여기엔 미국의 참여도 인정해 북미 대화를 재개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방북 성과에 따라서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가능성까지도 점쳐진다. 펠트먼의 방북이 트럼프 행정부와의 조율을 거쳤다는 점도 기대를 갖는 이유다.

반면 그저 북한이 ‘대화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를 보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압박 공조 움직임에 균열을 내려고 한 것일 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인이자 국무부의 정통 외교관 출신인 펠트먼이 유엔 대표 자격으로 가지만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메시지도 전할 것이라는 해석에 대해 미 국무부 역시 “지금은 대화할 시기가 명백히 아니다” “펠트먼이 미국의 메시지를 갖고 간 것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못 박기도 했다. 결국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못 만난 것 자체가 ‘미국의 메시지’가 없어서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북한의 펠트먼 방북 요청은 유엔이 제재 하에서도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 오고 있다는 점에서 새 사무총장 취임 이후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어쨌건 펠트먼의 방북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대화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다. 펠트먼은 12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에 방북 결과를 설명한 뒤 기자들과 만나 “리용호 북한 외무상 등과 15시간 넘게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전쟁방지를 할지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방북은 새로운 교류의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와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라고 촉구하고, 위기를 관리하기 위한 군사 핫라인 같은 소통 채널을 열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도 밝혔다. 펠트먼은 이번 북한 방문이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고도 했다.

마침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1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우리는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트럼부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북한과 회동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결국 북한 핵·미사일을 둘러싼 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태도 변화에 달린 문제다. 펠트먼 방북이 북미 간 대화의 시발점이 될지 아니면 그저 의례적인 제스처에 불과할지 지켜볼 일이다. 펠트먼 사무차장은 “우리 논의가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지만, 우리는 문을 조금 연 것 같다”고 말했다.

 

금, 2017/12/15- 16:31
127
0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서울엔 연트럴파크가 있다. 농담이 아니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가좌동 방면으로 길게 이어진 공원이 바로 연트럴파크다. 이 연트럴파크엔 늘 사람이 많다. 연트럴파크 덕분에 변두리이던 연남동은 졸지에 핫 플레이스가 됐다.

959f0737-22a6-4e83-b882-425bf7a3de44
개발의 수혜지인 서교동 및 동교동의 반대편에 위치한데다 경의중앙선 철로와 내부순환로의 존재로 인해 접근성과 개발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곳에서 트리플 역세권 형성과 경의선 폐선 부지의 공원화로 일약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는 서울 연남동. (사진: 중앙일보)

본디 연남동은 개발의 수혜지인 서교동 및 동교동의 반대편에 위치한데다 경의중앙선 철로와 내부순환로의 존재로 인해 접근성과 개발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저렴했다. 그러던 연남동이 상전벽해의 변화를 맞으니, 홍대입구역이 공항철도와 지하화한 경의중앙선이 지나가는 트리플 역세권이 되고, 경의선 폐선 부지가 공원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교통 인프라가 밀집되고 공원까지 생기니 사람들이 밀려드는 건 당연지사. 연남동의 땅값과 집값과 임대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연남동은 2015년 거래가격이 150% 정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임대료 상승률도 최대 300%에 이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3년 1분기 연남동 소재 상가 임대료는 ㎡당 2만4000원이었는데 올해 2분기에는 3만6000원을 기록했다.([젠트리피케이션②]연남동, 화교상권서 철길따라 ‘길맥’상권으로,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70927_0000107254&cID=13001&pID=13…)

연남동은 가로수길과 삼청동과 서촌과 홍대와 경리단길 등이 걸어간 길을 정확히 뒤따라가고 있다. 연남동 케이스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경로가 보인다.

 

#  지대가 낮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활하고 창작활동도 한다

→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교통 인프라와 공원 등의 문화 인프라를 확충한다

→ 유동인구가 급증한다 → 각종 영업시설이 들어선다→ 지대가 폭증한다

→ 땅과 집과 상가를 소유한 사람들은 부가 급증한다

→ 임차인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쫒겨난다 #

 

온갖 문화.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되고, 문화자본이 투입되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이치. 특정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면 지대가 치솟고, 지대가 치솟으면 땅값이 폭등한다. 부동산 소유주들은 단지 특정 공간에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와 타인이 만든 부를 독식하는 것이다. 특정 공간의 자리에 연남동을 놓으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물론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합법이다. 그러나 그처럼 부정의하고 비효율적인 일도 세상에 드물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최소주의적 정의(justice)는 “기여한 자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가져가는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이 최소주의적 정의에 완벽히 반한다. 나는 연남동 케이스처럼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의 극단적 결합을 알지 못한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부동산을 통한 이익은 불로소득이며, 합법의 탈을 쓴 강탈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모든 불로소득의 어머니며 특권의 우두머리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비롯한 특권이 온존하는 한 대한민국의 정상적 발전은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연남동 케이스처럼 공공과 정부의 노력과 기여에 따라 상승한 개발이익의 환수에 노력해야 한다. 그게 공정이고, 정의다. 공공의 것은 공공에게 귀속되어야 하고, 개인의 것은 개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월, 2017/12/18- 16:28
320
0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서울엔 연트럴파크가 있다. 농담이 아니다.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가좌동 방면으로 길게 이어진 공원이 바로 연트럴파크다. 이 연트럴파크엔 늘 사람이 많다. 연트럴파크 덕분에 변두리이던 연남동은 졸지에 핫 플레이스가 됐다.

본디 연남동은 개발의 수혜지인 서교동 및 동교동의 반대편에 위치한데다 경의중앙선 철로와 내부순환로의 존재로 인해 접근성과 개발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비교적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저렴했다. 그러던 연남동이 상전벽해의 변화를 맞으니, 홍대입구역이 공항철도와 지하화한 경의중앙선이 지나가는 트리플 역세권이 되고, 경의선 폐선 부지가 공원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교통 인프라가 밀집되고 공원까지 생기니 사람들이 밀려드는 건 당연지사. 연남동의 땅값과 집값과 임대료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2013년을 기준으로 연남동은 2015년 거래가격이 150% 정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임대료 상승률도 최대 300%에 이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3년 1분기 연남동 소재 상가 임대료는 ㎡당 2만4000원이었는데 올해 2분기에는 3만6000원을 기록했다.([젠트리피케이션②]연남동, 화교상권서 철길따라 ‘길맥’상권으로)

개발의 수혜지인 서교동 및 동교동의 반대편에 위치한데다 경의중앙선 철로와 내부순환로의 존재로 인해 접근성과 개발가능성이 매우 떨어지는 곳에서 트리플 역세권 형성과 경의선 폐선 부지의 공원화로 일약 ‘핫 플레이스’가 되고 있는 서울 연남동. (사진: 중앙일보)

 

연남동은 가로수길과 삼청동과 서촌과 홍대와 경리단길 등이 걸어간 길을 정확히 뒤따라가고 있다. 연남동 케이스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경로가 보인다.

#  지대가 낮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활하고 창작활동도 한다

→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교통 인프라와 공원 등의 문화 인프라를 확충한다

→ 유동인구가 급증한다 → 각종 영업시설이 들어선다→ 지대가 폭증한다

→ 땅과 집과 상가를 소유한 사람들은 부가 급증한다

→ 임차인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쫒겨난다 #

온갖 문화.사회적 인프라가 집중되고, 문화자본이 투입되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이치. 특정 공간에 사람들이 몰리면 지대가 치솟고, 지대가 치솟으면 땅값이 폭등한다. 부동산 소유주들은 단지 특정 공간에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와 타인이 만든 부를 독식하는 것이다. 특정 공간의 자리에 연남동을 놓으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물론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합법이다. 그러나 그처럼 부정의하고 비효율적인 일도 세상에 드물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최소주의적 정의(justice)는 “기여한 자가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가져가는 것”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의 전유는 이 최소주의적 정의에 완벽히 반한다. 나는 연남동 케이스처럼 ‘비용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의 극단적 결합을 알지 못한다.

누가 뭐라고 말해도 부동산을 통한 이익은 불로소득이며, 합법의 탈을 쓴 강탈이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모든 불로소득의 어머니며 특권의 우두머리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비롯한 특권이 온존하는 한 대한민국의 정상적 발전은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연남동 케이스처럼 공공과 정부의 노력과 기여에 따라 상승한 개발이익의 환수에 노력해야 한다. 그게 공정이고, 정의다. 공공의 것은 공공에게 귀속되어야 하고, 개인의 것은 개인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월, 2017/12/18- 16:56
327
0

 열어보지도 못한 ‘초대장’이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2일(현지시각) “전제조건 없이 북한과 첫 만남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일단 만나보자. 북한이 원한다면 날씨 얘기를 할 수 있다. 사각 테이블인지 둥근 테이블인지에 흥미를 갖는다면 그것에 관해 얘기할 수도 있다. 일단 최소한 테이블에 앉아 얼굴을 마주 봐야 되지 않겠냐. 북한이 핵프로그램을 포기할 준비를 하고 대화 테이블로 돌아오라고만 얘기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라고도 틸러슨 장관은 밝혔다. 한국 국제교류재단과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실의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환태평양 시대의 한미 파트너십 재구상’ 토론회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정부 고위 관계자가 처음으로 ‘북한과의 조건 없는 대화’를 말하자 반응은 뜨거웠다. 미국이 그동안 내건 ‘북한의 핵포기’라는 선결조건의 철회로 보였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감동적이고 환영한다”고 밝혔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한반도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생각과 제안에 대해 환영한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들도 ‘한반도 정세 중대 분수령’, ‘파격적 선언’, ‘북핵 국면 전환의 계기’ 라며 모두 북한의 반응에 집중했다. 다만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북한이 도발과 위협을 중단하고 대화에 복귀해야 한다는 미국 쪽 입장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으로 평가한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반전’은 북한이 아닌 미국에서 벌어졌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가 다음 날인 13일(현지시각) “대북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분명히 지금은 대화의 때가 아니다. 북한은 추가적인 도발을 자제하고 비핵화를 향한 진지하고 의미 있는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해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조차 같은 날 정례브리핑에서 “북한이 평화로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신뢰할 만한 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대화에 열려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과의 ‘엇박자’에 틸러슨 장관조차 15일(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장관급 회의에서 대화의 전제로 ‘북한의 위협적 행동의 지속적인 중단’을 언급했다. 북한이 입장을 밝힐 

틈도 없이 ‘틸러슨 발언’은 사흘 만에 해프닝으로 끝났다.

00502492_20161212
(사진 AFP 연합뉴스)

 ■ 트럼프 정부 첫 국무장관 된 석유 사업가

 트럼프 대통령처럼 틸러슨 장관도 기업가 출신이다. 1952년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틸러슨 장관은 텍사스대 공대(토목공학)를 졸업한 뒤 1975년 엑손에 엔지니어로 입사했다. “석유 산업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던 틸러슨 장관은 매니저, 인접주 경영 총괄, 예멘과 러시아 근무를 거치며 1999년 합병된 엑손모밀의 부회장에 올랐다. “최고경영자(CEO)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지만 그는 2006년 총괄부사장에 임명됐다.

 석유 산업에 매진한 덕에 틸러슨 장관은 러시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됐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동안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협상을 벌이다 인연을 맺어 2012년 러시아 ‘우정 훈장’까지 받았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끈 러시아 제재에도 부정적이었던 그다. 이윤을 쫓던 기업가였던 그는 차드, 파푸아뉴기니, 베네수엘라, 리비아 등 국제투명성기구의 상위권 부패국가와 거래하기도 했다.

 정치나 공직 경험이 전혀 없는 그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무장관으로 내정했다. 인준안이 2월1일(현지시간) 상원에서 찬성 56표 대 반대 43표로 통과되면서 미국의 외교사령탑이 됐다. 틸러슨 장관의 임명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뒤 밝힌 ‘대북 강경책’의 연장선으로 이해됐다. 그는 청문회에서 “우리가 세계를 이끌지 않으면 세계는 더 깊은 혼란과 위험으로 빠져들 것”이라며 미국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이란과 북한 같은 대항세력들이 국제규범을 거부하기 때문에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며 “중국의 (북한) 유엔 제재 이행 강제를 위한 조처(세컨더리 보이콧·3자 제재)를 검토하는 건 적절하다”고 그는 말했다.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서면답변에서도 “북한이 이웃국가와 국제사회에 제기하는 다수의 도전들을 ‘선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 접근법을 만들기 위해 유관기관, 동료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며 “새로운 전략에는 ‘군사력을 통한 위협’에서 외교적 해법까지 모든 선택지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한·중·일 순방에서도 틸러슨 장관은 “과거 20년간의 대북정책은 실패했다.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도쿄)”, “전략적 인내는 끝냈다.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서울)”, “한반도 긴장이 꽤 높고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는데 시각과 느낌을 공유했다(베이징)”라고 발언했다. 미국 대통령과 국무장관의 대북 강경책을 향한 일치단결에 한반도에는 불안의 파도가 넘실대는 듯했다.

 ■ 미 대통령·국무장관 ‘북한이몽’에 흔들리는 한반도

 하지만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의 ‘북한이몽’이 더 큰 불안 요소가 됐다. 틸러슨 장관은 지난 8월22일(현지시각) “북한 정권이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자제의 수준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기쁘다. 가까운 장래에 언젠가 대화의 길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대화의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9월30일 중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우리는 북한에 ‘대화하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우리는 평양에 여러 접촉선을 갖고 있다”는 틸러슨 장관의 발언이 북미 대화 재개의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10월1일(현지시각) “틸러슨에게 ‘리틀 로켓맨(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 협상을 시도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켓맨한테 잘 대해주는 것이 25년간 효과가 없었다. 지금이라고 효과가 있겠나?”라는 트위터로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untitled
(사진:연합뉴스)

 비슷한 시기 틸러슨 장관이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불렀다는 보도까지 터졌다. 10월14일(현지시각) 미국 <엔비시>(NBC) 방송은 틸러슨 장관이 7월 국방부에서 열린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라고 불렀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즉각 이 보도에 대해 부인하거나 해명했지만 ‘갈등설’에 이어 ‘경질설’까지 나오면서 사태는 수습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틸러슨 장관이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했다 백악관 눈치에 바로 거둬들인 최근의 상황을 가볍게 보기는 어려워졌다. 틸러슨 장관이 꾸준히 북한과의 협상을 주장했지만, 트럼프 대통령도 같은 생각일지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택이 북한과의 대화인지 강경대응인지 알쏭달쏭한 탓에 남북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갈팡질팡하고 있다.

금, 2017/12/22- 10:40
144
0

민주당 대 공화당. 한국이 생각하는 미국의 정치 구조다. 그러나 이렇게 미국을 보면 지금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이 한국의 정치 담론에서 워낙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미국 문화와 제도는 무조건 ‘선진’이라는 믿음이 고착화되어 미국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미국 제도가 쇠락하고 있음을 인정하면 그 동안 한국이 쌓아온 가치와 우선순위의 모순점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한국이 미국의 정치를 보수 대 진보의 대립 구조로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믿음과 맞지 않는 사실이 발견되어도 결국엔 보수-진보의 이분법에 어떻게든 끼워 넣는다.

사실 미국 정치는 3개 정치 세력이 합종연횡(合從連橫)을 반복하는 삼국지에 가깝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아직 탄핵 당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 삼각구도 덕분이다. 그럼 우리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는 미국판 삼국지 양상을 살펴보자.

영어 표현 ‘삼각 투쟁(three-way fight)’은 2006년 8월 3일 매튜 라이언스 (Matthew Lyons)가 블로그에 올린 논평 <적의 적을 지킨다(Defending My Enemy’s Enemy)>에서 시작됐다. 좌편향적이긴 하지만, 미국의 정치 현실을 정확히 짚어낸 글이다. 좌파와 우파, 억압과 해방의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다. 글로벌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지배층과 혁명 좌파, 혁명 우파 등의 3개 진영에서 벌어지는 ‘삼각 투쟁’이다. 혁명 우파라고 하면 글로벌 자본의 지배구조를 다른 억압적 사회 질서로 대체하려는 극우파와 파시스트 등이 모두 포함된다고 그는 적었다.

이 글에서 나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지배층’ 대신 세계화를 신봉하는 ‘글로벌리스트’, ‘혁명 좌파’ 대신 ‘반세계화 진보’, ‘혁명 우파’ 대신 ‘반세계화 보수’로 명칭을 바꿔 설명하겠다.

171204_FullHouse_Trump(kr)
미국의 정치 구조는 더 이상 민주당 대 공화당이 아니다. 미국 정치는 이제 3개 정치 세력이 합종연횡을 반복하는 삼국지에 가깝다. 우리의 상식과 전혀 맞지 않는 미국판 삼국지 양상을 알아야 트럼프도, 미국 정치도 제대로 보인다.

 

지금 미국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내전이 천천히 전개되고 있다. 갈등은 가속화될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되면 트럼프 정부가 아무리 원치 않아도 실질적 무력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도 생긴다.

한국인만큼 미국인도 자국의 모순된 정치 내러티브로 혼란을 겪고 있다. 이는 미디어 탓이 크다. 주류 언론에 한계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민 대부분은 거대 미디어 기업 외에 다른 정보 경로가 없다.

고등교육을 받은 진보 중상위층의 노동자 무시도 삼각구조를 형성하는 데 한몫을 했다. 중상위 진보 계층은 가난한 노동자와 어떤 연결고리도 없기 때문에 소외된 노동자들은 흑인 등의 이민자로 구성된 엘리트 계층보다 반세계화 우파가 자신들을 더 대변해 준다고 믿는다. 반대로 진보 세력은 백인 저소득 노동자가 대표하는 이들 계층을 ‘무식한 인종 차별주의자’로 일축하며, 진정으로 소통하거나 이들의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 빈 자리에 트럼프가 뛰어들었다. ‘무시 받았다’고 믿는 이들 노동자 대부분은 백인이지만, 민주당을 지지하는 백인 계층과는 성격이 아주 다르다. 트럼프는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외제차 수입 중단과 함께 미국 우선주의와 경제적 국수주의를 내세웠다. 민족 다양성만 주장하고 계급간 이슈나 전체 근로자 계층에 별다른 관심이 없고 기업의 돈을 많이 받는 민주당 의원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연설이다. 이렇게 트럼프는 적어도 노동자 백인에게는 확실한 점수를 땄다.

반세계화 진보의 눈에도 트럼프가 더 나은 선택이었다. 자유무역과 군수산업, 기성 정치와 글로벌 금융에 지나치게 밀착된 클린턴보다는 급진적 인종차별주의와 고립주의를 주장하긴 해도 트럼프가 덜 위험해 보였을 것이다.

이들은 (반세계화 보수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트럼프가 미국의 제국주의적 면모를 털어주길 바랬다. 트럼프라면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거나 중동에서 분쟁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겠다느니, 1992년 이라크 침공이 실수였다느니 어이없는 발언을 많이 하긴 했다. 문제 발언 대부분 진심으로 한 말이겠지만, 그래도 당시에는 트럼프가 가져올 변화의 가능성을 믿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치 아마추어 트럼프는 군수산업 쪽에 어떤 인맥도 없었다.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그는 정치’꾼’들에 둘러싸여 우리에 가둬지고 말았다. 그리고 극우파가 써준 대본이나 읽는 존재가 됐다.

그럼 진보 대 보수가 아닌,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진보, 반세계화 보수가 누구인지 살펴보자.

 

글로벌리스트

글로벌리스트가 신봉하는 이데올로기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이들은 진보처럼 자본 규제나 지방자치 정책을 주장하지 않으며, 보수처럼 기독교적 가치를 믿거나 인종과 민족, 성 정체성에 따라 어울릴 상대를 정하지도 않는다. 이들이 원하는 건 글로벌 자본을 온전히 통제하는 힘이다. 국가 제도에 관한 이들의 정치관은 가정환경에 따라 형성된 경우가 많으며, 이들에게는 세계 자본과 시장을 장악하려는 욕구가 모든 정치적 문제보다 우선한다. 이들의 세계관에 동의하고 글로벌 자본의 주요 원칙(상업은행의 자유로운 투자활동 보장, 이들을 위한 공적 자금 투입)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신 또한 글로벌리스트다.

이들 글로벌리스트를 대표하는 후보가 바로 힐러리 클린턴이다. 제프 부시나 테드 크루즈 또한 글로벌리스트다. 글로벌리스트는 초당적 존재다. 골드만삭스나 록히드마틴 입장에서는 클린턴이나 부시, 크루즈가 다를 바 없다. 단지 일반 대중을 향한 언어가 소속 정당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민주당이 다양성과 기회, 혁신을 이야기한다면, 공화당은 기독교적 가치와 애국주의, 강한 국방, 법치주의를 내세운다.

매일경제
미국의 월가가 지지하는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글로벌리스트를 대표한다. (이미지 출처:매일경제)

언어가 달라도 이들 글로벌리스트가 추구하는 이익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돈을 받는 대상이 다를 뿐이다. 민주당이 할리우드와 미디어, 제약사, 투자은행에서 돈을 받는다면, 공화당은 화석연료 기업과 방산업체, 월마트 같은 유통업체에서 돈을 받는다. 공략 대상과 사용 언어가 다르다고 글로벌리스트에 진보와 보수가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중요한 건 권력을 형성하는 돈이 어디에서 오느냐다. 그렇기 때문에 공화당 글로벌리스트는 트럼프처럼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싶어도 자신에게 돈을 후원하는 투자은행을 내칠 수 없고, 지지자들이 아무리 원해도 자유무역을 반대할 수 없다.

다양한 정치 분파가 ‘글로벌 자본’ 하나만 보고 뭉친 글로벌리스트 진영에서는 서로 경쟁 구도가 형성되면 외부의 반대파에 손을 내미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원칙은 하나다. 무엇을 논의하더라도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는 결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부시와 크루즈의 경우 공화당의 지도자가 보여야 하는 강압적 카리스마를 보여야 하는 까닭에 권위적인 모습에 집중하다 보니 글로벌리스트들은 참여 정치와 다양성을 내세운 클린턴 쪽으로 기울었다.

 

반세계화 진보

보다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반세계화 진보는 적임자에게 나라를 맡기기만 한다면 정부가 그런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다. 반세계화 진보 중에는 최근 정치에 입문해 정치판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세력이 많아지고 네트워크도 탄탄해졌지만, 사실 1940년대 이후 이들 반세계화 진보는 주류 정치에서 밀려나 있었다. 세력을 회복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리긴 했지만, 지난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가 받았던 열렬한 지지를 생각했을 때 다른 형태의 민중 운동이 가능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세계 사회주의 웹사이트(WSWS: World Socialist Web Site)와 트루스디그(Truthdig) 등 반세계화 진보 (혹은 혁명) 미디어를 보면,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긴 해도 기사 수준이나 품질 면에서 이미 뉴욕타임스를 앞지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들 웹사이트를 잘 모르겠지만, CIA 애널리스트 중에서는 유의미한 분석을 위해 비밀리에 이들의 기사와 보고서를 읽는 경우가 많다. 이미 기고를 하고 있거나 정보를 주고 있을 가능성 또한 크다.

한국에서는 눈치채기 어렵겠지만, 반세계화 진보는 미국에서 조용히 세력을 늘려가는 중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커졌고, 5년 전과 비교했을 때 체제를 거부하는 혁명적 사고가 놀라울 정도로 널리 퍼졌다. 지난 대선의 버니 샌더스 열풍이 이를 잘 보여준다. 샌더스는 대선 기간 반세계화 진보 중 상당수를 지지층으로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그의 지지율이 급등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샌더스가 민주당의 권력구조를 흔드는 게 아닐까 크게 불안해 했다. 샌더스의 연설을 들으면 계급주의 사회에 대한 1930년대식 은유와 표현을 느낄 수 있다. 이후 샌더스가 자신들을 배신했다며 민주당을 떠난 반세계화 진보가 많다. 아직 조직력이 약하긴 하지만, 이들은 곧 자신만의 조직을 정비해 유의미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Zack W., left, listens to Maurice Hardwick at a protest while Republican presidential candidate Donald Trump delivered an economic policy speech to the Detroit Economic Club in Detroit, Monday, Aug. 8, 2016. (AP Photo/Paul Sancya)
(사진: AP)

 

반세계화 보수

도널드 트럼프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반세계화 보수는 계급과 정치 음모, 거대한 제도적 부패 쪽에서 점차 담론을 이끌고 있다. 진보 진영이 부패 문제를 몰상식한 개인의 범죄로 인식한 반면, 반세계화 보수는 이를 제도의 실패로 파악한다. 반세계화 보수 웹사이트 프리즌 플래닛(Prison Planet)은 충성스런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1930년대처럼 흑인과 무슬림을 쫓아내기 위한 움직임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 다음 차례는 유대인과 아시아인이 될 것이다. 이들은 9/11 사건 음모론에 대해서도 상세히 보도한다. 반세계화 보수는 뉴욕타임스가 확정한 9/11 사건의 내막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사우디 테러 분자 19명이 비행기를 납치해 세계무역센터(WTC)와 국방성 펜타곤을 공격했다는 주장이 말도 안 된다는 전문가 발언을 인용한다. 이런 음모론은 우익과 좌익 양쪽에서 제안된 바 있지만, 주류 언론과 클린턴, 샌더스, 촘스키 등이 대표하는 진보 정치 및 지식인 진영에서는 그런 말 자체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론 폴과 도널드 트럼프처럼 반세계화 보수를 결집하려는 정치인들은 음모론을 공공연히 언급한다.

반세계화 보수는 따라가기 쉬운 단순 내러티브를 선호하며, 하버드 등 엘리트 기관에서 소외된 노동자 계급을 향해 손을 내민다. 트럼프가 미국의 체제 전체를 공격하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이들의 소외감이 깊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정치적 기반을 닦으려면 이들 반세계화 보수의 지지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방 정치인이라면 이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오바마는 히스패닉아시아계뿐 아니라 동성애자 친구들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투자은행가 혹은 변호사 등 엘리트 계층이다. 오바마는 아주 신중하게 말을 가렸지만, 지난 대선에서 그가 클린턴을 지지한 건 결국 어떤 의미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반면, 트럼프는 대선기간 중 누군가를 총으로 쏴도 지지자들은 날 떠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하고도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런 폭탄 발언을 하고도 대통령직에 당선되다니, 선례가 없는 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빈부격차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정치는 계급 투쟁으로 변모한다. 트럼프의 자문이었던 스티브 배넌은 이런 근본적 변화를 눈치챘다. 그러나 이런 변화를 맞닥뜨린 적 없는 기성 정치인들은 변화하는 미국의 정치 구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는 ‘잊혀진 계급’ 백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고, 그들은 트럼프에게 맹목적 충성심을 바쳤다. 트럼프가 기독교적 가치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고, 자신들과 성분이 다른 억만장자라 하더라도 이들의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다.

소위 급진적이라는 민주당 의원조차 당에서 정한 방침 때문에 노동자 계급이 가장 아프게 감내했던 자유무역의 부작용에 대해 거론하지 못했지만, 트럼프는 자유무역을 맹렬히 비판하며 이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줬다. 그렇게 해서 트럼프를 누구보다 먼저 지지하게 된 백인 중하위 계층은 지금도 트럼프의 ‘시멘트 지지층’으로 남아 있다. 트럼프 자신은 글로벌리스트에 가깝지만, 그는 청중이 원하는 걸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나다. 트럼프는 지지층의 요구를 알아내고 이에 적절히 대응했기 때문에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반세계화 보수와 백인 국수주의자들이 트럼프를 백악관에 밀어 넣긴 했지만, 사실 트럼프는 이들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그는 (반세계화 진보와 보수 모두가 싫어하는) 이스라엘과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반세계화 보수 중에는 이스라엘이라면 질색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트럼프의 이스라엘 편들기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반세계화 보수 사이에서 유대인 공격이 벌써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진보, 그리고 반세계화 보수. 이들이 이룬 삼각형 안에서는 사안과 전략에 따라 서로 공격하고 편을 먹는 이합집산이 이어진다. 어쩔 때에는 반세계화 보수가 반세계화 진보와 팀을 이루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선례가 없는 이 현상은 최근 들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진보

소위 ‘배운 집안’ 출신이 많은 금융 쪽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다문화적 세계관과 관용의 원칙을 체화한 사람이 많다. 금융 자본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세력만 아니라면 이들은 반세계화 진보 인사를 파티에 초대해 기꺼이 그의 강연을 들을 수 있다.

인도적 지원 및 복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판을 뒤흔드는 혁명 정도가 아니라 의례적 진보 수준에 머문다면, 글로벌리스트는 기꺼이 이들의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글로벌리스트가 반세계화 진보와 의견을 같이 하는 분야가 바로 기후변화다.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글로벌리스트는 (자본의 이익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 분야에서는 둘 사이 많은 협력이 이루어진다. 글로벌리스트가 고안한 탄소거래제를 반세계화 진보에서 받아들이는 모순까지 감내할 정도다. 반세계화 진보는 도시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고, 아직까지 그 수가 많지 않다. 이들의 정치관에 동조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 정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세계화 보수처럼 교회 네트워크를 구심점으로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들은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힘들다. 게다가 진보 지식인의 경우 굳이 선택하라면 백만장자에 가까울 정도로 부유층 출신이 많아서 노동자와 쉽사리 가까워지지 못하기 때문에 글로벌리스트와 연합할 필요성이 있다.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보수

반세계화 보수에 어필하기 위해 ‘권리’와 ‘자유’를 내세우는 건 글로벌리스트의 고전적 전략이다. 반세계화 보수가 애착을 갖는 낙태 및 흑인 범죄 등의 정치 이슈에 관해 공화당내 글로벌리스트가 반세계화 보수 편을 들어주면, 이들은 반대로 글로벌리스트에게 중요한 무역 및 금융 쪽에서 글로벌리스트를 지지하는 맞교환이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다. 항상 효과가 좋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보수의 가장 일반적 협력 방식이다.

교도소 산업은 글로벌리스트와 반세계화 보수를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다. 지금 미국의 교도소는 도시 슬럼가 출신 소수민족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 상당수가 시민의 안전보다 교도소 사업에 투자한 글로벌리스트의 투자 이익을 위해 갇혀 있다고 보는 냉정한 평가가 있다. 주로 한적한 지방에 위치한 교도소의 간수직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백인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특히 군 복무 경력을 이용해 경찰이나 간수로 전역하는 코스가 아주 인기가 좋다. 저소득 백인은 글로벌리스트와 이들이 다른 국가 일에 여기저기 간섭하며 일으키는 제국주의 전쟁을 증오하지만, 얄궂게도 이들 전쟁은 저소득 백인 청년이 군인으로 경력을 쌓아서 경찰이나 교도소 간수로 옮겨갈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를 제공한다. 반세계화 보수는 군수 계약뿐 아니라 교도소 건설에 투자하는 글로벌리스트와 의도치 않는 공생관계를 갖는다. 글로벌리스트는 반세계화 보수의 이런 모순점을 공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31378_23192_570
트럼프는 ‘잊혀진 계급’ 백인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고, 그들은 트럼프에게 맹목적 충성심을 바쳤다.

반세계화 진보와 반세계화 보수

반세계화 진보와 반세계화 보수의 연합은 삼각구도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만남이다. 신기하게도 극우와 극좌는 무역 및 금융 정책에서 의견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정부의 정당성을 완전한 부정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반정부 캠페인에서 극우와 극좌가 연합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2016년 대선 기간 트럼프는 위키리크스 지지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고, 샌더스를 지지하는 진보 웹사이트에는 보수 진영에서 만든 클린턴 비난 자료가 올라오기도 했다. 트럼프는 기성 정치인과 이들에게 돈을 대는 금융자본 및 미디어는 자신을 보호하고 배를 불린다는 오직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 기득권은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수조 달러를 얻을 수도, 잃을 수도 있다. 이들은 워싱턴에서 권력을 손에 쥔 자와 글로벌 특수 이익집단을 위해 일한다. 이들에게 국민의 안녕은 안중에도 없다는 연설을 했는데, 이런 트럼프의 정부 기득권 비판은 진보 쪽에서도 많은 사람이 지지를 했기에 계속 될 수 있었다.

트럼프의 정부 비판 논리는 다수 유권자에게 먹혔다. 그는 버니 샌더스도 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신랄하게 기득권과 정부를 비판했다. 당연히 진심은 아니다. 트럼프의 뒤에는 억만장자들이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표를 얻기 위해 한 말이거나 정말 별 생각 없이 한 말일 수 있다.

트럼프는 의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기 힘들지만, 힐러리 클린턴이라면 손쉽게 통과시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힐러리는 더 많은 분쟁을 일으키고 더 많은 피해를 줄 능력이 있다. 에너지 기업과 유착관계를 가진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기후변화를 악화시킬 재난적 프로그램을 트럼프보다 쉽게 통과시킬 것이라는 녹색당 대통령 후보자 질 슈타인의 발언을 보면 어떻게 해서 반세계화 진보와 반세계화 보수가 서로 손을 잡았는지, 그리고 왜 트럼프를 지지했는지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정치를 끌고 가는 삼각구조와 필요에 따른 이들의 연합을 설명했다. 2000년 이후부터 미국에서는 미국식 정치의 근간을 형성했던 가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부와 의회, 정치인은 국민을 소외시키는 정치를 펼쳤다. 국민은 이에 염증을 느꼈고, 떠나려는 지지자를 잡기 위해 수정된 정치 노선과 담화는 지금처럼 복잡하고 모순된 양상을 띠게 됐다.

삼각 대립과 이들의 합종연횡은 미국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독특하게 만들었지만, 언론에서는 이 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보수 대 진보의 이분법적 시각으로 지금의 미국 정치를 바라본다면 끊임 없이 이어지는 삼각구조의 권력 다툼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금, 2017/12/22- 17:46
322
0

 지난 12월 13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한신대 이일영 교수는 필자가 제안해 온 ‘한반도 양국체제론’이 오랜만에 제기되는 ‘국가 대전략 논의’라고 환영했다. 고마운 일이다. 필자 역시 이 논의가 진지하고 생산적인 ‘플러스 알파’에 이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양국체제론이 나온 국제적 배경에 대한 이교수의 이해는 다소의 보완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이일영 교수의 글은 아래 첨부)

양국체제란 한반도와 동북아에 점증하고 있는 위기를 근원에서 해결할 방안이다. 동북아 당사국 모두의 이익과 세계사 전환의 방향에 부합한다. 이교수가 칼럼에서 대안으로 제기한 동아시아 ‘지역-국가 네트워크 체제’도 한반도 양국체제가 성립돼야 본격화될 수 있다. 지면 제약 상 충분히 말할 수는 없다. 거두절미를 양해 바란다.

현재 한반도 전쟁 위기는 1994년 6월 이후 최고 수위에 이르고 있다. 94년 미 국방부의 전쟁 시나리오는 한반도 전역에서 100만명 이상의 사상자가 난다고 했다. 당시 북한의 국력과 전력(戰力)이 극저점에 있었음을 고려하면, 이번 전쟁은 그보다 훨씬 큰 사상자가 날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위기도 94년처럼 요행히 봉합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일까?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하면 위기는 더욱 심각한 상태로 되풀이되기 마련이다.

문제의 근원이 무엇일까? 북의 호전성일까? 북미 간의 치유불가능한 적대감일까? 혹자는 북미간의 협상에 한국은 끼어들어갈 틈이 없다고 말한다. ‘코리아 패싱’을 자인하는 말이다. 한국전쟁이 미국과 북한의 전쟁이었던가? 사실과 크게 다르다. 휴전협상에서 한국이 빠졌던 건 전쟁에서 한국이 흘린 피가 적어서가 결코 아니다. 휴전 협상을 거부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고집 때문이었을 뿐이다.

북이 미국과만 협상하겠다고 우기는 것은 그만큼 한국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북은 미국의 군사력보다 한국의 발전상이 체제 유지에 더 위협적이라고 느낀다. 열세에 처해 있기 때문에 더욱 호전적으로 나온다. 양국체제란 북의 이러한 불신과 불안을 근원에서 해결하는 방안이다.

양국체제란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고 공존하자는 것이다. 없는 걸 새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남북은 이미 1991년 유엔에 동시가입한 두 개의 국가다. 유엔헌장은 회원국 상호의 주권과 영토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다. 이미 당시에 양국체제가 절반은 성립한 셈이다. 당시 한국이 소련, 중국과 수교한 것처럼, 북도 미국, 일본과 수교했다면 남북의 수교도 가능했을 것이다. 현재 남은 190개국, 북은 160개국과 수교 중이고, 그 중 157개국은 남북 모두와 수교상태다(외교부 『2016 외교백서).

왜 그 길로 가지 못했을까? 그 길로 갔다면 현재와 같은 ‘누구도 원치 않는’ 상황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부영 선생이 어디선가 지적한 데로 평양에 한국, 미국, 일본의 대사관 또는 대표부가 존재하여 상시 교류가 있는 상황에서도 지금과 같은 긴장 고조와 핵개발을 상상할 수 있을까?

결국 양국체제=동아시아 평화공존체제가 완성되지 못하여 현재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이 탓을 이제 누구에게 돌릴까? 우린 국제 문제의 책임을 남 탓으로 돌리는 데 익숙하다. 우리가 외교의 주동차가 되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남북문제 국제관계에서 주동적 움직임, 이니셔티브를 쥐어 본 경험이, 쥐어볼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87년에서 91년에 이르는 기간 대한민국에는 대단히 큰 힘이 존재했다. 87년 민주화의 동력이다. 그 동력을 온전히 모아냈다면 양국체제로 가는 길은 그때 획기적으로 단축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분열된 민주세력은 이 길로 힘을 모을 수 없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87년 이후 30년만에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위대한 민주동력이 되살아났다. 촛불혁명이다. 촛불이 진정 ‘혁명’이 되려 하면 ‘체제전환’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 체제전환은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전환이 될 것이다.

촛불은 4.19, 87년에 이은 30년의 민주분출의 세 번째의 거대한 파고다. 이번에 양국체제로의 전환에 실패하다면, 이 분출조차 그 이전의 두 번의 분출이 그러했던 것처럼 또 다시 어두움 속으로 침몰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l_2013030401000237800019331
‘동방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1972년 당시 빌리 브란트 총리(왼쪽)와 에곤 바르 특임부 장관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제 묻고자 한다. 과연 누가 한반도의 빌리 브란트가 될 것인가?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동서독간 평화공존을 이룩했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독일형 복지국가, 사회국가(Sozialstaat)를 건설할 수 있었다. 브란트 동방정책의 핵심은 동독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이었다. 성급하게 통일을 앞세우지 않았다. 거꾸로 “통일을 원할수록 통일을 말하지 말자”고 했다. 1991년 동독의 흡수통일은 우연의 결과였을 뿐, 동방정책의 목표가 아니었다. 동방정책의 목표는 오히려 무리한 통일을 배격하고 평화로운 공존과 교류를 통해 상호 번영하는 데 있었다. 브란트 동방정책의 요체는 양국체제론과 같다.

브란트 동방정책은 총리 재임 중의 정책으로 끝나지 않았다. 브란트의 동방정책-사회국가 노선은 서독의 새로운 국시(國是)가 되었다. 슈미트 총리가 충실히 이었고 이후 기민련의 콜 수상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다. 브란트가 만든 평화와 복지의 양두마차가 없었다면 오늘의 독일은 없다.

다시 묻는다. 이 시점에 누가 한반도의 브란트가 될 것인가? 노태우 대통령이 북방정책으로 첫 해빙을 시도했지만 결국 미완으로 그쳤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완수해 보려 했으나 역시 실패했다. 우리는 이 두 경험에서 배워야 한다. 너무 조심스러워서도 안 되고, 너무 조급해서도 안 된다. 한반도 양국체제는 해방 후 100년이 되는 2045년까지 최소한 30년은 존속할 체제다. 우리는 이 정도의 호흡을 가져야 한다. 이 시간 동안 남북 서로의 불신을 줄이고 교류와 협력의 폭을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

이 길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국시가 되어야 한다. 남북이 두 나라로 공존한다는 믿음이 생기면 남북수교와 북미·북일수교는 멀지 않다. 이로써 1991년 미처 다 이루지 못했던 양국체제는 정착된다. 브란트 당시 동서독 화해에 주변 강대국들이 강하게 반대했던 역사적 이유가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을 했던 남북 두 당사자가 적대를 눅이고 화해와 공존의 주역으로 나설 때 주변국이 반대할 이유와 명분이 없다.

한반도 양국체제는 세계인의 보편적 여망과 다르지 않다. 칸트 ‘영구평화론’의 핵심은 국가 간 적대의 소멸에 있었다. 지독한 전쟁을 했던 한 민족 두 국가가 상호적대를 소멸시켜 간다면 이는 칸트의 꿈이 한반도에서부터 실현되어 가는 일이다.

 

[경제와 세상]‘양국체제’는 실현가능한가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경제와 세상]‘양국체제’는 실현가능한가

반도체 경기는 뜨겁고 비트코인 투기는 광풍 수준이다. 그런데 얼마 전 김정은이 영하 22도의 백두산 천지에서 찍은 보도사진이 서늘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올해 많은 일을 겪어냈고, 나라 분위기도 얼마간은 수습이 되었다. 그래도 다들 찜찜해하는 구석이 있다. 최근 지인들에게서 여러 차례 들은 물음이다. “우리 내년은 어떻게 되는 거야?”

사회 전체가 위기에 둔감하다. 불안의 근본 문제를 회피하는 체념상태가 만연해 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그때그때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 국가와 사회의 중장기 의제는 부각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단지 정부나 정치권에만 책임을 미룰 일이 아니다. 그런데 마침 시민사회와 지식사회에서 국가 대전략에 관한 논쟁이 제기되었다. 지난 12월7일 민간 싱크탱크인 (사)다른백년에서 김상준 교수는 ‘분단체제론’을 비판하고 ‘한반도 양국체제’의 해법을 주장했다. 반가운 일이다. 오랜만의 대전략 논쟁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양국체제란 “남북이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상호 인정하고 정상적인 수교관계를 맺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체제를 말한다.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까지 ‘비상국가체제’가 남북 모두를 지배해 왔다. 이는 기존 분단체제론과 인식을 함께한다. 단 분단체제론은 세계체제론과 연결되지만, 양국체제론은 이를 비판한다. 둘째, 양국체제론은 분단체제론에 출구전략이 없거나 모호하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 중간과정·출구전략을 양국체제로 제시한다. 그리고 양국체제를 남북통일로 가는 중간역으로 못 박지 않는다. 

양국체제론이 지닌 오해와 약점은 향후 수정·보완될 것으로 본다. 논쟁이 진행되면서 국가 대전략의 골격이 더 선명해질 것이다. 논의의 출발점에서 몇 가지 조언하고 싶다. 양국체제론에서는 세계체제와 별도로 한반도 양국체제가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이 오히려 분단체제 출구전략으로서의 양국체제 성립 가능성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양국체제론의 첫 고리는 남측이 먼저 북측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북을 이적단체로 규정한 헌법의 영토조항도 개정해야 한다고 한다. 이는 북핵 위기나 남북관계 현실을 너무 단순하게 본 것이다.

북의 핵개발은 거의 완성에 가까운 단계에 와 있다. 지금은 남북의 군사적 역관계가 역동적으로 전환하고 있는 국면이다. 이는 남북이 각각 적대·위협 관계를 체제작동의 원리로 삼고 있는 과정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남북관계는 남북의 국가체제, 동아시아 지역체제, 세계체제의 영향을 받으면서 형성되어 왔다. 남북 각각의 정치·군사·경제체제는 동아시아 지역체제 속에서 형성된 동아시아 국가모델의 일종이다. 

 동아시아는 서구와 구별되는 나름대로의 길을 걸어왔다. 1950년대~1980년대 말에는 고강도·저강도의 열전 속에서 급진적 산업화가 진행되었다(동아시아모델 1.0). 1980년대 말~2010년경까지는 동아시아 네트워크가 북한을 구조적 공백으로 남겨놓고 발전했다(동아시아모델 2.0). 북의 핵개발은 북을 제외한 네트워크화의 귀결이다. 2010년경 이후는 뉴노멀의 대전환 시대에 들어섰다. 미·중 간 세력전이, 저강도 공황, 4차 산업혁명 등이 진행 중이고, 북한은 이에 대응하는 생존방식으로 핵무기를 체제화하고 있다. 

과연 한국을 중심에 놓는 일국적 접근방식으로 양국체제를 형성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그러면 무엇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까? 필자는 ‘체제혁신’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고 싶다. 남북의 국가 간 대결관계는 네트워크관계로, 남북 내부의 권위적·명령적 국가체제는 분권적·수평적 네트워크 체제로 혁신해야 한다. 분단체제를 혁신하는 대안모델은 ‘네트워크형 국가·지역’이다.

그런데 당장 북·미 간 대결과 북핵 위기가 남북관계를 가로막고 있다. 전쟁 위기와 핵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한·중·일 간의 안보협력 대화를 실무선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다각적·지역적 안보협력 체제를 논의하는 계기를 잡아내야 한다. 속초·강릉 일원과 서해안 연평도 일대를 글로벌 평화공원 지역으로 개발하는 것도 추진해볼 만하다. 정부·지자체·민간·국제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개발 프로젝트는 대북 제재 조건에서도 ‘평화 공유재’가 될 수 있다.

남북 양국체제는 현실에서 바로 작동시키기 어려운 아이디어이다. 분단체제 이후의 길은 국가·시장·네트워크가 혼합된 다양한 혁신의 방식으로 열어갈 수 있다고 본다.
 

 

화, 2017/12/26- 08:35
262
0

미국의 유엔 분담금을 대폭 삭감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려는 미국의 입장을 유엔이 거부한 것에 대한 충격 및 이에 따른 보복이라고 대체로 해석된다. 그러나 니키 헤일리(Nikki Haley) 주유엔미국대표부 대사가 뭐라고 언급했건, 도널드 트럼프의 유엔 연설과 존 볼튼(John Bolton)이 일찍이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했던 논평 속에는, 유엔을 통한 전 세계 거버넌스에서 미국의 참여를 획기적으로 축소하거나 아예 종료하려는 의도가 계속 시사되어 왔다.

미국이 국제사회를 실망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글로벌 거버넌스를 향한 최초의 노력을 좌절시킨 것이 1919년 미국 의회의 국제연맹(the League of Nations) 비준 실패였고, 훗날 일본과 독일이 국제연맹을 용이하게 탈퇴하고 결국 파국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한 것이 바로 신흥 강대국의 비극적인 의지 부재였다.

국제주의가 미국에서 일반적인 주제로 다루어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에 불과하다. 어쩌면 미국이 애초의 고립주의로 되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도로서의 유엔을 실질적으로 포기하는 일이 2018년에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어쩌면 한 술 더 떠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할 수도 있다. 이러한 행위가 파리기후협약 탈퇴 결정보다는 덜 충격적일 것이다.

이란과의 핵 협정을 일방적으로 폐기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가 보여준 국제법과 국제협약에 대한 무시는 미래에의 나쁜 징조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유엔 이탈이 남한과 한반도에 함축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국 지인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불안감이다. 결국 한국인들은 그들의 나라를, 미국의 지속적인 보호와 지원이 필요한 주변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래 싸움에 끼인 새우”로 본다.

2015091101842_0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본부 건물(사진: AP 뉴시스).

그러나 모든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기회의 순간을 낚아챌 배짱이 있기만 하다면 말이다.

정책 결정자들의 이러한 정서 속에서 다자주의를 실행할 만한 한국의 능력이 미국과의 동맹 때문에 제한되고 있기는 하지만, 무역과 외교 및 안보에서 한국만큼 다자주의에 의지하는 국가는 없다. 좌우를 막론하고, 남한에는 모든 주변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놀랄만한 합의가 존재한다. (여기서 오로지 북한만 제외되는 일은 주목할 만하다.)

유엔본부를 뉴욕에서 한반도로 이전하자고 남한이 제안하면 어떨까? 어쩌면 서울로 말이다.

우선 트럼프 행정부가 이 제안을 환영할지도 모른다. 지난 한 해 동안 다자주의 협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했던 모든 일들을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나아가, 최근의 고립주의 회귀에 비추어, 미국에게 유엔 본부를 유치할 자격이 더 이상 없다는 목소리가 세계 전역에서 점증하고 있기도 하다.

주요 유엔기구가 동북아시아에 위치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이 지난 수년간 이어져 왔다. 지금까지, 동경의 국제연합대학과 몇몇 소규모 사무소를 제외하면, 유엔의 주요 기구들은 제네바(그리고 유럽의 여타 도시), 나이로비, 뉴욕시, 그리고 워싱턴 D.C.에 자리 잡아 왔다.

동북아시아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중심이자 그 비중이 점점 높아가는 새로운 문화생산의 원천으로서, 유엔기구의 본부들을 이전할만한 타당한 장소이다.

그러나 유엔본부를 중국이나 일본 등 일방주의 전통을 지닌 강대국으로 옮기는 것은 곤란하다. 남한이 최적의 장소일 수 있다.

한국에게는 제국주의 혹은 식민주의의 전통이 전혀 없고, 한국은 처음부터 유엔과 깊은 교감을 가져왔다. 이러한 전통을 시작한 것은 반기문이 아니다. 글로벌 거버넌스를 향한 노력에서 수행했던 한국의 중심적인 역할을 추적하면,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보냈던 고종의 호소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한국인들은 유엔의 전조 격인 이 회의를,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한국에게 가장 호의적인 기관으로 보았다.

400px-United_Nations_General_Assembly_Hall_(3)
유엔총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남한 국민의 절대다수는 다자주의가 그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본다. 남한이 유엔 본부를 유치하는 데 적합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엔의 내부 개혁 그리고 유엔이 확고하게 추진하고 있는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와도 연계될 수 있다. 한국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미래에 관하여 솔직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더욱 개방적이고 유연한 환경을 제공한다. 금융 권력이 한복판에 자리 잡은 뉴욕 시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통일은 향후 유엔이 이루어 나가야 할 중대한 임무의 하나가 될 것이란 점이다. 유엔 본부를 남한에 두는 일, 어쩌면 결국에는 북한과 남한 양쪽에 사무소를 설치하는 일은, 이 주변 지역의 미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담대한 시도가 될 수 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점점 글로벌 거버넌스의 핵심이 되는 상황에서, 녹색기후기금(Green Climate Fund)이 한국에 자리 잡는다는 사실은 한국이 유엔 본부를 이전하기에 더욱 매력적인 장소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게 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실제로 존재한다. 문제는 남한이 이렇게 제안할 의지가 있느냐이다.

화, 2018/01/02- 14:21
157
0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권력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진원지다. 32세의 무함마드 빈 살만(Mohammad bin Salman) 왕자가 2017년 6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균열이 발생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현 국왕이 80세 나이로 왕좌에 오른 지 2년 만에 형제세습이라는 왕가 내 신사협정을 깨고 부자세습에 나선 충격파는 예상 밖으로 커 보인다.

무함마드 왕자가 왕세자로 책봉된 이후 반년 사이 사우디에서는 왕세자의 점재적 경쟁자인 11명의 왕자가 부패 혐의로 체포ㆍ구금 되는 등 사실상 숙청됐다. 강력한 정적으로 꼽혔던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는 의문의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숨졌다. 예멘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사우디 남서부의 아시르주 부지사였던 만수르 왕자는 왕세제(왕위를 이어받을 왕의 동생)였던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의 아들이다. 무크린은 앞서 사우디 전통에 따라 살만 국왕이 2015년 1월 왕위를 물려받을 당시 왕세제에 책봉됐지만 석 달여만에 살만 국왕에 의해 폐위됐다. 아라비아반도 20여개 부족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1927년 사우디를 건국한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초대 국왕이 ‘왕자의 난’을 우려해 남겼던 “왕위를 형제끼리 연장자 순으로 상속하라”는 형제세습 유훈이 깨지면서 우려했던 피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 왕좌를 넘어 중동의 맹주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시리아 내전과 예멘 내전에 잇따라 개입하며 시아파 맹주 이란과의 전선을 넓히고 있다. 사우디를 중심으로 한 수니파 블록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전략 탓에 아랍 민중들은 피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알리 압둘라 셀레 전 예멘 대통령 피살,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의 사임 발표와 번복,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한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공식 선언까지 일련의 사건 또한 무함마드 왕세자의 부상과 떼놓고 볼 수 없다. 사우디와 이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트럼프 미 행정부까지 엮여 중동의 새 질서를 만들기 위한 파워게임이 본격화하는 중심에 무함마드 왕세자가 서 있다.

 

NISI20170621_0013129283_web
(사진:뉴시스)

사우디 왕좌 목전 둔 32세 왕세자…”나이에 비해 영리

무함마드 왕세자는 1985년 사우디 남서부 제다에서 태어났다. 홍해안의 항구도시 제다는 이슬람의 성지 메카로 향하는 관문으로 순례자 대부분이 거쳐가는 상징적 도시다.

시작은 비슷했지만 사우디 왕가의 여느 왕자와는 다른 길을 걷는다. 초등학교부터 줄곧 사우디에서 공부한다. 미국이나 유럽 등지로 유학한 대부분의 사우디 왕가 왕자들과는 다른 선택이다.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수도 리야드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 왕국 상위 10등 안에 드는 수재였다. 대학도 초대 국왕의 이름을 딴 국립대 킹사우드대(KSU)로 진학해 법학박사 학위를 딴다.

졸업 후에도 사우디를 떠나지 않았다. 정부 관련기관에서 일하기 전까지 몇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등 민간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리야드경쟁력위원회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킹압둘아지즈재단 이사회 의장 특별보좌관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자신이 만든 비영리단체 미스크(MiSK)재단 활동에도 공을 들였다. 국제 포럼 등을 통해 사우디 청년들의 리더십을 키우고,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 스타트업 창업 의지를 심어주는 일이 재단의 주된 활동이었다. 이를 토대로 무함마드 왕세자는 포브스 중동판이 선정한 201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사우디 국내에 머물면서 이른 나이에 정치에 참여할 수 있었다. 2007년 사우디 정부 내각의 전임고문 자리를 꿰차며 정치에 입문한다. 만 21세부터 후계자 수업이 본격화한 셈이다. 2009년에는 당시 리야드 주지사를 맡고 있던 아버지 살만 국왕의 특보로도 이름을 올리며 행정가로서의 경력까지 덧입힌다. 이때부터 사실상 “아버지의 그림자”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리고 2015년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살만 국왕이 즉위하면서 무함마드 왕세자는 아버지의 자리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만 29세의 세계최연소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방장관으로 지명되면서 왕좌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사우디 내부 정치에 공을 들이는 선택은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오랜 시간을 두고 내부 지지세력을 차곡차곡 쌓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살만 국왕의 장남인 술탄 빈 살만 왕자 등 배다른 형제들을 후계경쟁에서 제칠 수 있었던 주요한 배경이다. 술탄 왕자는 미 시라큐스대학을 졸업하는 등 주로 서방을 무대로 활동했다. 1985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발사한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해 아랍인 최초 우주비행사로 한때 국민적 영웅이 되기도 했지만, 동생에 밀려 관광국가유산위원회 위원장으로 사우디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다. 영국 옥스퍼드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학자로서 명성이 높은 파이잘 빈 살만 왕자도 무함마드 왕세자의 벽을 넘지 목한 채 메디나 주지사에 머물러 있다.

외가의 영향력도 빼놓을 수 없다. 살만 국왕의 세 번째 부인인 파흐다 빈트 팔라흐 반 슐탄 빈 히탈라인은 아즈만 부족 출신으로 19세기 명성을 떨쳤던 아랍 지도자 라칸 빈 히탈라인의 손녀다. 아즈만 부족은 아랍에미레이트연합(UAE)를 구성하는 7개 토후국의 하나일 정도로 이슬람 내 세력이 크다. 뉴욕타임스(NYT)는 서방 외교관들의 입을 빌어 “파흐다 부인이 자신의 장남인 무함마드 왕자에게 대권을 안기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왔다”고 사우디 왕가 내부 분위기를 전한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국방장관에 오른 뒤 보여준 호전성이 외가의 혈통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아즈만 가문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손에 꼽히는 호전적 집단으로 악명이 높다.

무함마드 왕세자 스스로도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 왔다. 방탕한 생활로 지탄을 받는 다른 왕족과 달리 술ㆍ담배를 일체 멀리하고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모습을 노출시키며 이미지를 관리했다. NYT 보도에 따르면 2015년 5월 미국의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담 당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를 만난 뒤 “정말 아는 게 많고 똑똑하다. 나이에 비해 영리하다”는 평가를 내놨다.

01_15177047_1

이란 전선 확대하며 수니파 맹주 꿈… “미숙함과 성급함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5년 1월 국방장관이 됐을 때만 해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로열패밀리의 일원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경제개발위원장 등 요직을 독차지한 데 이어 3개월이 채 안돼 부왕세자로 전격 지명됐다. 왕위 계승서열 2위 자리를 꿰차자 그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다. 당시까지 국왕과 후계자들이 모두 초대 국왕의 아들들이었다. 3세대 왕자의 부왕세자 지명으로 왕실의 세대교체를 위한 첫 물꼬가 트인 사건이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가만히 때를 기다리기보단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행보를 본격화한다. 시아파 맹주 이란과의 전선부터 확대한다. 수니파를 이끄는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단시간에 쌓으려는 그의 전략적 선택에 따르는 대가는 아랍 민중의 피였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국방장관에 임명된 직후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맞서고 있는 반군에 대한 지원을 결정한다. 시리아 정부군이 시아파 맹주국 이란과 레바논의 친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우디의 참전 이후 알아사드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러시아까지 뛰어들며 시리아 내전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같은 해 3월에는 예멘 내전에 개입한다. 이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예멘의 시아파 후티 반군을 몰아내기 위한 전투기 공습을 주도했다. 민간인 사망자가 속출했다. 예멘 반군과 유엔에 따르면 사우디의 개입 이후 최근까지 예멘에서 9,000명이 사망했고, 5만명이 부상했다. 사망자의 60%가 민간인으로 추산된다.

사우디는 두 개의 전쟁에서 사실상 패했다. 하지만 군부에 대한 장악력을 키워온 무함마드 왕세자는 자신의 입지를 공공이 했다. 2017년 6월 친위부대를 동원해 무함마드 빈 나예프 당시 왕세자를 가택 연금한 뒤 폐위시킨다. 차기 국왕 자리를 차지한 뒤에는 또다시 이란과의 전선을 더 넓히는 전략을 선택한다. 이란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알카에다 조직을 지원했다는 명분으로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하며 고립 작전에 나선 것이다. UAE와 바레인, 이집트 등 수니파 국가들이 동조했다. 하지만 카타르가 이란ㆍ터키와 교역을 확대하며 버티면서 카타르 봉쇄 전략도 사실상 실패했다. 영국일간 가디언은 “빈살만 왕세자는 혈기왕성하고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라며 “최근 사태에서 그의 외교적 미숙함과 성급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혹평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폭주할 수 있는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밀월관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예루살렘 수도 선언’을 미리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뉴스위크는 “사우디는 이란보다는 차라리 이스라엘을 믿을 만한 국가로 여긴다”며 “트럼프의 유대인 사위 쿠슈너 선임고문이 여러 차례 사우디를 방문해 무함마드 왕세자와 사전 교감했다”고 보도했다. 이 때문에 무함마드 왕세자의 부상은 미국의 중동 재편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8bb3c1d-2cdf-4eb6-a4fb-896921191dab
지난해 6월 빈 살만 왕자를 새로운 왕세자로 책봉하는 자리에 모인 사우디 왕가의 왕자들.(사진: EPA=연합뉴스)

호전적 몽상가? 개혁적 이상가? 기로에 선 미스터 에브리싱

무함마드 왕세자는 호전적 외교 정책에도 불구하고 사우디 내부 개혁을 주도하며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여성의 운전 허용 결정을 이끌어 냈다. 이슬람 강경 보수 진영의 거센 반발을 무릅쓴 결정이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여성 운전을 금지한 유일한 국가’라는 오명을 벗게 됐고, 무함마드 왕세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는 뜻의 ‘미스터 에브리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그리스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노 연주자 겸 자곡가인 야니의 사우디 순회공연장에서 남ㆍ녀 관객들이 같은 객석에서 공연을 감상해 아랍 현지에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슬람 근본주의 영향력이 강한 사우디에서는 공공장소 남녀 합석이 엄격히 금지돼 왔다. 여성들은 외출 시 스카프로 머리와 얼굴까지 가려야 한다. 알 아라비야 방송은 “야니 콘서트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국가개혁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라고 선전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중장기 사회ㆍ경제 개혁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6년 선포한 ‘비전 2030’이 대표적이다.. 특히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사우디 경제 구조를 개혁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건설ㆍ관광ㆍ기술 산업 등을 육성해 경제의 펀더멘탈을 탄탄히 하고,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통해 경쟁력 강화와 정부 재정건전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사우디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고, 사우디 서북부 홍해 연안 지역에 5,000억 달러(약550조원)를 투자해 서울보다 44배 큰 규모의 신도시 ‘네옴(NEOM)’을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한 예다. 이 도시는 석유가 아닌 풍력과 태양광 에너지를 기반으로 세워질 계획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사우디는 유가 하락과 왕실의 사치 등으로 국고가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함마드 왕세자는 반부패위원회 위원장 지위를 활용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수환을 보이고 있다. 11월에만 아랍권 최대 부호인 왕족들을 포함한 기업가ㆍ정부 관료 등 200여명을 체포ㆍ구금하는 전방위적 사정 작업을 통해서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에 철퇴를 가해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한편 과징금 등을 통한 재산환수로 국고를 채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부패 혐의로 왕족과 기업인 등을 체포한 뒤 보유 재산 상당 부분을 내놓는 조건으로 석방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사우디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 정부가 부패척결을 통해 최고 3,000억(약330조원)달러 규모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물론 무함마드 왕세자가 부패척결을 포함한 개혁을 주도할 자격이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2015년 러시아 보드카 재벌로부터 132m 길이의 호화 요트를 5억5,000만 달러에 사들인 사실과 같은 해 2억7,500만 유로(약3,500억원)를 주고 프랑스 파리의 호화 대저택을 구입한 사실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부패하지 않은 개혁가로서의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최근에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미술품 경매 역사상 사상 최고가인 4억달러에 낙찰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예수 초상화인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ㆍ구세주)를 구매한 실제 주인공 무함마드 왕세자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난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수, 2018/01/03- 17:56
412
0

박근혜 정부의 황태자 최경환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만약 최경환의 혐의가 재판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면 최경환의 죄는 결코 작지 않다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최경환이 범한 잘못(물론 사법심사의 대상은 아니다) 가운데 으뜸은 부동산 투기라는 이름의 괴물의 잠을 깨운 것이다.

98788_162714_144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사진: 뉴스1)

박근혜 정부 당시 실세 경제부총리가 된 최경환은 초이노믹스라는 그럴 듯한 명칭의 경기부양책을 펼쳤다.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기실 초이노믹스의 핵심은 부동산 투기를 통한 경기 부양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참여정부가 힘써 만들어놓은 ‘부동산 시장 정상화 조치’의 틀을 허물었다면, 거기에 대못을 박은 건 최경환이다.

최경환은 2014년 7월 취임하자마자 50~60%였던 LTV를 70%로 높이고, DTI도 60%(이전엔 서울 50%, 인천-경기 60%)로 완화했다. 주택구매자 입장에서 더 많은 돈을 금융권으로부터 빌릴 수 있게 된 것인데, LTV 및 DTI완화는 부동산 경기부양에 올인한 이명박도 차마 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부동산 시장이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자. 최경환은 재건축을 대폭 용이하게 만들고(재건축 가능연한을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 ‘재건축시 임대주택 의무건설 비율 완화’등), 주택청약제도 역시 유주택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편했다. 전매제한 기간도 2~8년에서 1~6년으로 단축했다.

한마디로 초이노믹스의 부동산 대책에 담긴 메시지는 ‘정부가 나서서 시민 여러분들이 빚을 더 많이, 더 쉽게 내 집을 살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재건축 규제 완화 등으로 더 많은 불로소득도 보장하겠습니다. 주택이 있는 분들도 청약시장에 뛰어들어 전매차액을 노리십시오. 이래도 집을 사지 않으시겠습니까?’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초이노믹스에 힘입어 가계신용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의 비중과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한국은행통계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은 2008년 311조 1,584억원에서 2016년 545조 8,396억원으로 폭증했다. 특기할 건 주택담보대출규모가 이명박 시대 5년간 93조원이 증가한 반면, 박근혜 정부 4년간 무려 141조원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20140813185943874905
초이노믹스의 부동산 대책에 담긴 메시지는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주택담보대출의 비중과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이미지: 아주경제)

부동산 경기부양에 올인한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도 초이노믹스로 대표되는 투기 부추기기에 올인한 결과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보고 있는 바와 같다. 금융위기 이후 잠 들었던 부동산 투기라는 이름의 괴물이 깨어나 세상을 투기판으로 만들고 있다. 특히 강남과 서울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부동산투기괴물은 초이노믹스의 직접적인 결과이며 정책실패(차라리 재앙이라는 말이 정확하다)의 대표적인 케이스라 할 것이다.

부동산 투기괴물을 깨워 자산양극화를 결정적으로 심화시키고, 가계부채를 폭증시키며, 가처분소득을 크게 줄이고, 국민경제를 병들게 만든 최경환의 죄를 감옥에 들어간 최경환은 과연 인지하고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모를 것이다.

 

 

금, 2018/01/05- 10:04
234
0

문재인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 등에도 불구하고 서울 아파트값, 그 중에서도 강남(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아파트값이 뛰는 원인에 대해 자칭 타칭의 전문가들이 하는 설명 중 내가 정말 어처구니 없다고 여기는 건 ‘강남을 대체할 만한 곳이 없어서’와 ‘돈 있는 사람들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을 피하기 위해 똘똘한 집 한채만 보유하려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가장 똘똘한 집이 강남 아파트다’라는 견강부회다.

강남대체재 부재 운운 하는 말은 도통 이치에 닿지 않는다. 그럼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최경환이 LTV 및 DTI를 풀고 재건축규제를 형해화 하기 전인 2014년 가을까진 강남을 대체할 만한 곳이 있어서, 혹은 강남에 공급이 넘쳐서 강남 아파트값이 맥을 못 췄다는 말인가?

강남 아파트 단지-뉴시스
서울 강남의 아파트단지들(사진:뉴시스)

똘똘한 강남 아파트 한채 보유 운운하는 소리도 터무니 없긴 마찬가지다. 이미 강남에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다면 모를까 문 정부가 부동산을 바짝 조이는 이 판국에 왜 굳이 똘똘한 집 한채를 남기겠다고 가격이 오르고 있는 강남 아파트를 추격매수한단 말인가?

강남대체재 부재 혹은 똘똘한 강남 아파트 한채 보유 같은 견강부회보단, 2014년 이후의 강남 아파트 가격 폭등의 원인은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올인하며 시민들의 투기심리를 부추기기 위해 안간힘 썼던 이명박근혜의 누적된 노력과 빚내 집 살 것을 강권했던 최경환의 만행이 결합해 시장참여자들을 강남아파트값이 계속 폭등할 거라는 비이성적 낙관과 자기실현적 예언에 빠지게 만든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한결 합리적이다.

기실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4년 가을무렵까지 하락 내지 침체를 겪었지만,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데다 가격도 싼(물론 대구 같은 경우 수급 불균형 측면도 일부 작용했다), 그래서 기대수익률이 높은 대구나 부산이나 광주 같은 지역들은 2010년 이후 투기광풍이 불었고 가격도 폭등했다. 심지어 대구 수성구 같은 경우 아파트 평당 평균 매매가가 2천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즉 2010년 무렵부터 비교적 근년까지 시장의 유휴자금이 돈 되는 곳을 찾아 대구, 부산, 광주를 훓은 후 2014년 무렵부터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결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물론 투기세력과 유휴자금이 강남과 서울 그리고 수도권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는 초이노믹스였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역대 가장 강력한 부동산 대책 중 하나로 평가받는 8.2부동산대책을 내놓는 등 투기 억제에 노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강남과 서울(부산 집값이 하락하는 등 지방의 집값은 완연한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의 아파트 가격은 왜 수그러들지 않는 것일까?

대략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투기 자체가 가지는 내적 메커니즘이랄까 관성 같은 것인데, 참여정부 때 신물나게 경험했듯 투기심리는 한번 불이 붙으면 어지간한 정책들로는 진정 시키기가 매우 어려운 속성을 지닌다.

투기가 시작되고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턴 가격이 계속 우상향할 것만 같고, 삽시간에 투기심리가 전염돼 너도 나도 시장에 뛰어들 궁리만 하게 되는 것이다. 투기라는 불은 연료가 떨어질 때까지 타는 경향이 강한데 연료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른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시장상황을 좀 안이하게 본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선거 공약에 보유세 강화가 슬그머니 묻힌 것, 취임 초 불로소득과 투기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지 않은 것, 8.2대책 같은 종합대책이 취임 후 3개월 지나서 나온데다 보유세 강화 로드맵이 빠진 것, 아직까지도 보유세를 참여정부 수준으로라도 올리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하지 않은 것 등이 시장참여자들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준 듯 싶다.

불은 이명박과 박근혜와 최경환이 내고, 문재인 정부는 소방수 노릇을 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고 화가 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문재인 정부의 운명이고 숙제인 것을.

월, 2018/01/08- 14:58
16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