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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대학’을 꿈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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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대학’을 꿈꾸는가

익명 (미확인) | 화, 2016/08/23- 15:48

얼마 전, 이대에서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문제로 학생들과 학교 간에 충돌이 있었다. 교육부의 평생교육 대학 설립 사업에 참여하려던 이대는 고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뷰티 웰니스’ 교육과정을 제안해 승인을 얻은 상태였다. 

 2016년 8월, 이대의 ‘미래라이프’ 대학

학생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학교가 돈에 눈이 멀어 학위 장사를 하는 것은 이대가 지켜온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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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교수들>은 기업화된 미국 대학의 현실과 추락한 대학교수들의 모습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미국 대학의 모습이지만, 한국 대학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미 평생교육원이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새로 성인교육 단과대학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으며, 사업비 30억이 온전히 해당 사업과 교육 여건 개선에 쓰이리라는 것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사업이 결과적으로 재학생들의 학업환경을 악화시킬 것이며,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비판했다. 

졸업생과 동문회까지 가세하여 시위자의 수는 나날이 늘어났고, 1600여 명의 경찰 투입이라는 학교 측의 초강수에도 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학교는 백기를 들었고, 사업은 백지화됐다.

당장은 학생들의 승리였다. 그러나 이대를 비롯한 대학의 앞날은 그리 순탄치 않아 보인다.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은 대체 어떤 피난길로 내몰리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가장 먼저 챙겨야 하고, 절대 빠뜨릴 수 없는 마지막 봇짐은 무엇일까.

기업화된 대학,  위태로운 교수들

<최후의 교수들>은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이 마주한 현실을 교수들이 처한 상황을 통해 살펴보고 있다. 저자 프랭크 도너휴는 오하이오 주립대 영문학과 정교수이다. 이 책에서 그는 나날이 심화되는 미국 대학의 기업화와 시장화, 그에 따른 인문학 교수들의 지위 하락을 살펴보고 있다.

도너휴에 의하면, 지금의 대학은 정규직 교수의 종말,  곧 ‘최후의 교수’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대학 교수는 종신 재직권(tenure)을 통한 신분적 안정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연구 활동을 보장받았다.

원래 대학은 중세의 길드(guild)를 배경으로 했는데, 경제적 사회적 제도적 독립을 통해 학문과 교육의 자율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교수의 신분 보장 또한 이에서 비롯됐다. 대학의 독립과 자율성은 곧 학문과 교육의 주체인 교수의 독립과 자율성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서보명, <대학의 몰락>, 동연,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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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대학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자치공동체의 모습으로 존속했다. 이는 대학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기반이 됐다. 종신교수직도 학문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였다.

그러나 도너휴는 이러한 대학과 교수의 독립적, 자율적 지위는 나날이 와해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회복되기 어려울 거라는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이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대학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대학의 기업화, 시장화가 본격화되면서  대학은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기능과 역할보다는 취업과 지표에 주력해야 하는 영리 목적 기관이 되었다. 테일러주의(Taylorism)의 논리에 따라 대학의 생산성에 대한 행정과 관리가 강화됐고, 대학의 본령이었던 학문탐구와 인문교양 교육은 계량화된 연구실적과 취업률, 직업교육 강화에 밀려났다.

교수들의 지위 역시 급락했다. 교수직의 상당수가 비정규직화됐으며, 지금까지 교수직의 필요조건으로 여겨진 종직 재직권 또한 의문시됐다. 대학은 이제 더 이상 상아탑이나 교학상장의 공동체일 필요가 없으며, 교수들은 보고서와 취업률에 쫓겨야 하는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위기의 학문, 인문학

이 과정에서 가장 타격을 입는 것이 인문학 전공자들이다. 기업화, 시장화된 대학에서는 생산성이 절대적 가치가 된다. 돈이 되지 않는 인문학과 그 전공자들은 가장 먼저, 가장 신속히 사라져야 할 폐기물이 된다. 

대학들은 앞다퉈 인문학 관련 학과와 전공들은 축소, 폐지했고, 인문학 교수직과 정규직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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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인문학이 퇴출된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뉴스이다. 인문학에 적대적인 환경에서 인문학은 항상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이미지 출처: http://blog.besunny.com/?p=7353)

대학은 몇몇 저명한 인문학 교수들에게만 종신재직권을 허용했기 때문에 교수 사회 내 경쟁은 더욱 가열됐다. 얼마 안 되는 종신재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이건 대중적이건, 인지도를 높여야 했고, 이 때문에 가시적인 학문적 지표들, 곧 연구물의 수와 단행본의 출간 등에 매달리게 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은 연구환경의 근간이 되는 연구비 지원과 출판 및 도서관에 대한 재정 역시 축소시켰다. 이로 인해 교수들은 자비로라도 연구와 출판의 활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최소 투자, 최대 효과’라는 냉혹한 생산성의 논리는 교수사회에도 예외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른바 ‘열정노동’ 혹은 ‘헝그리 정신’.

인문학 전공 대학원생들 역시 해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인문학 전공 박사들은 실업자와 동의어가 됐다. 졸업 후 첫 일자리가 ‘맥도널드’라는 우스개소리는 당사자들에게는 전혀 우습지 않다.

도너휴는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대학이 사라진 미래에는 이들을 위한 일자리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나마 학문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높은 몇몇 소수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학자와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이어가려 하겠지만, 기약 없는 ‘고속도로 인생(우리 식 표현으로는 보따리 장수)’에서 하나, 둘씩 지친 탈락자만 늘어갈 뿐이다. 바야흐로 인문학 박사 학위는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처럼 무용하고 쓸쓸하다.

미국의 경우 인문학에 대한 적대와 공격은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20세기 초부터 카네기를 위시한 자본가들이 끊임없이 대학의 인문학적 지향을 비판하고 공격했다.  

카네기는 전통적인 대학교육을 받고 졸업한 사람들을 “다른 행성에나 어울릴 녀석” 이라고 폄하했다. 셰익스피어나 호머 따위를 연구하는 일은 시간을 허비하는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대학 교수란 노동자이기를 거부하는, 고집 세고 교만한 자들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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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기의 모습. 카네기도 대학의 인문학자들을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했다. 그래서 그는 사재를 출연해 1905년 노동자계층 자녀들을 위한 직업훈련학교로 카네기공업학교(Carnegie Technical Schools)를 세웠다. 이 학교가 이후 멜론연구소와 통합해 종합대학인 카네기-멜론대학이 됐다. 자신이 세운 학교가 그토록 경멸했던 종합대학이 된 사실을 카네기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미 당대에 ‘대학 무용론’에서부터 ‘교양대학론’, ‘실용주의 대학론’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기능과 위상에 대한 온갖 논쟁이 있었으며, 이 와중에 인문학은 언제나 그 ‘무용함의 유용함’을 알지 못하는 몰이해 속에서 외롭고 고독한 존재증명을 해야 했다. 

한국의 대학, 쿼바디스?

해방 후 한국엔 미국식 시스템이 자리를 잡았다. 교육제도와 대학 체제 역시 예외가 아닌데, 한국의 대학은 기본적으로는 미국의 ‘대중 대학 모델’에 기초하고 있다. 

즉 고등교육 재정의 상당부분을 국가가 담당하는 독일이나 프랑스 등 일부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미국 대학의 경우 그 태생적 논리가 수요자 중심에 기초하고 있으며, 재정 역시 학생들이나 기업 혹은 몇몇 거대 비영리 재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국립대는 물론이고 대다수의 사립대학들은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대학의 공공성에 근거한 지원이라기 보다는 한국적 국가주의의 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미국 대학과의 차이는 미국 대학이 비영리 재단이나 기업 등 좀 더 직접적으로 자본의 영향을 받은데 비해, 한국 대학들은 교육부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본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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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겪는 첫번째 사회경험은 ‘실업’이다. 대학이 졸업생의 취업을 고민하고, 진로를 도와주는 일은 불가피하다. 모두 학자가 될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대학은 본래의 대학에서 궤도를 이탈하게 된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 역시 미국에  기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서울대가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한 것이 1990년대 중반부터인데, 이는 정확히 미국식 모델을 모방한 것이다.  서울대가 학부를 축소하고 대학원 정원을 늘리면서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자 다른 대학들도 이를 따랐다. 이는 미국의 경우에서 발견되듯이, 대학들이 위계화, 서열화되어 있는 곳에서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중앙일보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대학 순위를 매기고 공개함으로써 고등교육 기관 평가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이 역시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 대학에서 이뤄진 행태였다. 

이 모든 변화의 배후에는 물론 교육부가 있다.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통제와 재정 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예속시켰다. 예컨대 1980년대 대학진학률이 80퍼센트에 이르렀던 배경에는 당시 전두환 정권 교육부의 너그러운 졸업정원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뒤  첫번째 사회경험이 ‘실업’이고, 조만간 학령인구도  40만명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는 예전처럼 교육부의 후원 아래 맘 편히 ‘학생 장사’만 하기에는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가 이번에 내든 카드는 ‘대학 구조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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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대학은 교육부의 손아귀에 있다. 최근에는 구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돈을 풀어 대학을 길들이고 있다. 생존이 급급한 대학으로서는 그 돈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얻는 생존은 대학의 본질을 크게 훼손한 뒤에 얻은 성과에 불과하다. (이미지 출처: http://kkh1119.tistory.com/242)

최근의 BK(Brain Korea) 21, SSK(Social Science Korea), 프라임 사업(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등은 모두 대학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는 정책들이다. 이들 정책의 명분은 화려하지만, 실상은 알량한 푼돈을 쥐고, 대학들을 줄 세우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냉혹한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의 논리 앞에서 대학들은 다시 눈 먼 좀비처럼 교육부 앞에 도열한다. 앞서의 이대 사태는 이러한 맥락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어떻게 밥만 먹고 사나

그 결과 책에서 언급된 미국 대학과 교수 사회의 변화는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이미 몇몇 대학들은 실질적으로 기업의 경영통제를 받고 있고, 인문학 관련 학과의 통폐합이나 대학 구조조정이 일상사가 되고 있다. 

대학의 강단은 스스로를 ‘일용잡직’이라고 자조하는 비정규직 강사들로 채워진지 오래이며, 인문학 박사들은 보따리 장수가 되어 오늘도 이 학교 저 학교을 헤맨다. 1-2년의 단기 계약과 저임금, 모욕적 처우 속에서 그저 지식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정규직 교수들의 사정 역시 편치 않다. 교수의 능력이 펀드나 사업따기로 평가되고, 수시로 재임용 탈락의 위협을 받는다. 논문이 아니라 보고서를 쓰느라 밤을 새고, 어떻게 하면 평가지표를 맞출까 전전긍긍한다. 학과의 생존이 자신의 생존이며, 취업률은 생존을 담보하는 유일한 필살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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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졸업생의 취업률, 인문학, 사회와 격리된 학문탐구…지금 한국의 대학은 존립의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 중인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대학의 본분이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http://sgsg.hankyung.com/apps.frm/news.view?nkey=2014092900443000051&c1…)

이런 대학에서 무슨 학문을 하며, 무슨 교육이 있겠는가. 백년을 내다보는 연구, 미래인재를 키우는 교육은 공허한 빈말일 뿐이다. 

혹자는 대학 밖은 더 치열하다며 ‘우는 소리 그만 하라’고 힐난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말은 대학을 대학으로 만들었던 근본을 버리라는 말과 같다. 그걸 버리면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이 아니다. 

대학은 원래 사람과 삶, 공동체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하는 곳이다.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곳이 대학이다. 문제는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해야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런 쓸데없는 질문을 매우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우리 자신에게 끊임없이 “지금 잘 살고 있는지” 묻는다.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지, 그 길의 끝에서 행여 낭떠러지를 만나는 것은 아닌지 묻는 것이 인문학이다.  

인문학만으로는 살 수 없지만, 또한 인문학없이도 살 수 없다. 정말 우리는 인문학 없이 살기를 원하는가. 

한국의 대학에게 묻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대학 스스로 자신의 운명이나 처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 대학이 스스로의 사명과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는지 의심스럽다.

대다수의 대학들은 기업화와 시장화에 저항하기는커녕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인구는 줄어가고 평균 수명이 길어져 가는 상황에서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대학의 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어차피 고령화 사회에 필요한 기성세대의 재교육은 대학의 역할이고, 또 대학 자체의 개방과 유연화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렇더라도 대학이 대학 아닌 것으로 변질되면서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때의 대학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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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와 교육은 대학의 양대 기둥이다. 인문학도 그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차분히 고민하기에는 현실의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는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말라 죽은 뒤 길을 찾으면 무슨 소용인가. 대학과 인문학에 대해 사회적 고민을 심화시켜야 할 시점인 듯 하다. (사진 출처: 건국대 제공)

나는 다소 허황되게 들릴, 공상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된 인문학 교육을 강화하자!  

지금과 같은 단순한 물량공세 위주의 대학교육을 진짜 대학교육으로 질적으로 심화시키라는 것이다. 이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을 도도하게 거스르라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이상주의자의 허황된 꿈일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이상은 현실의 불가능한 꿈이었고, 그 꿈의 존재로 인해 현실도 조금씩 개선됐다. 꿈이 없는 현실은 지옥이다. 인문학은 현실의 지옥을 인간의 세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도너휴는 향후 대학에서 인문학이 극소수 대학이나 학생들의 전유물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비판적 지성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는 것이기에 기업화된 대학의 한켠에서 인문학은 초라하지만 굳세게 명맥을 이어갈 것이다.

어쩌면 그런 모습은 과거 수도원에 갇혀 진리탐구와 인문교양교육을 하던 일부 스콜라들의 모습과 유사할 수 있다. 어쩌면 이토록 막강한 실용의 세상에서 오늘의 인문학자들은 벌써 그렇게 돼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최후의 교수들>은 쉽고, 속도감 있게 읽힌다. 또 미국 대학의  속사정을 여러 사례로 보여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번역 또한 매끄럽다. 옮긴이 차익종은 국문학을 전공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그 자신 인문학자이다. 이런 이들 덕분에 태평양 너머의 생생한 지식을 편하게 앉아 읽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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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조선일보 온라인 판에 실린 주간조선 편집장의 글 (혁명이 지나고 나면…)을 읽고 나서, 필자는 그동안 써왔던 ‘다른백년을 꿈꾸며’라는 미래구상적 칼럼을 일단 중단하고 당장의 현실을 비판하는 시론의 형식으로 글을 올린다. 상기의 글에서 차마 쓰지 못한 주간조선 편집장의 속내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추론해본다.

“황교안 대행체제가 잘 버텨주고, 시민들의 촛불 열기가 점차 수그러들면서 생활과 경제가 어렵다는 공론이 돌고, 헌재의 탄핵 인용이 시간을 끄는 과정에서 반기문과 결합한 새누리당이 다시 부활해 차기 재집권에 성공하면 기득권 체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이 무지몽매한 군중들이 야기한 사회적 혼란을 피하는 현실적 방책이다. 친일파 조상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초안대로 시행하고,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합의를 인정하고, 미군의 군사적 식민지임을 자인하는 사드배치를 강행하고, 탈법과 정경유착의 비리부정을 일삼았던 재벌의 행태를 눈감아 주는 것이 프랑스 혁명에서 보여준 마녀사냥과 집단광기, 그리고 혼란을 방지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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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카니발이 끝나고 나면, 대중들의 마음 속에는 무질서와 폭력에 대한 염증이 자라나고, 정치엘리트들의 권력투쟁으로 반혁명이 시작된다. 사진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테르미도르 반동을 묘사한 그림. 한 병사가 로베르스피에르에게 권총을 쏘고 있다.

촛불을 끄려는 보수세력

참으로 적반하장 격의 황당한 논리이다. 프랑스 혁명은 근대 세계를 열어준 인류의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물론 역사에서 배워야 할 대목은 있다고 인정하자. 우선 21세기에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지난 8주간 한국 시민들의 광장에서 보여준 열기와 요구를 복잡계라는 이론적 시각에서 분석하였던 필자의 지난 칼럼(제도정치와 시민정치가 손잡아라)을 다시 반복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창발적 격변의 방식보다는 일상적 혁신을 통한 진화적 과정이며 이것이 성숙된 정통적인 민주국가의 모습이고 향후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하는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를 넘어서 지난 9년간 이명박근혜의 황당한 국정운영과 약탈행위의 누적은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로 진화(evolution)하는 과정을 원천 봉쇄하였다. 광장의 시민적 열기와 요구로 대변되는 격변의 모습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창발(emergence)의 과정이 우연적 필연처럼 현재 우리에게 과제상황으로 다가온 셈이다.

기존체계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기득권 연합은 시민적 동력이 쇠잔할 때까지 온갖 구실로 지연과 핑계와 김빼기를 시도하다가 허점을 보이면 언제라도 공세로 돌변할 것이다. 만만치 않은 사태이다. 기본적으로 법적 절차와 과정을 존중하고 지켜야 하지만, 명백한 범죄자가 형해만 남은 법적 절차를 핑계로 사태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한다면, 당연히 절차적 법의 기능을 뛰어넘어 정치적 상황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절차와 인내의 과정이 있겠지만, 불가피하다면 촛불시위를 시민적 혁명으로 전진시켜 나가야 한다.“

법과 제도라는 가증스런 포장 때문에 시민적 요구가 외면당하고 다른 절차적 대안 모두가 봉쇄되고 거부당한다면, 당연히 시민적 권리와 의무로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포위하고, 더 나가서 청와대를 점거하여 박근혜를 끌어내려야 한다.

때로는 역사적, 정치적 사건을 통해 법적으로 규정당한 시민권적 절차를 뛰어 넘어야 한다. 왜 시민혁명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는 오로지 기득권과 권력적 탐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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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촛불혁명의 에너지를 질서있는 사회개혁으로 마무리해야 할 단계에 진입했다. 시민혁명의 에너지가 정치적 반동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체계적이고, 질서있는 개혁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사진 출처: http://weekly.donga.com/)

현재 진행중인 광장의 창발적인 시민 열기는 제도정치권의 명백한 한계와 무능에서 시작된 것이다. 동시에 지난 30년간의 답답했던 정치시스템에 대한 평가이자 대폭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제안이기도 하다.

김영삼의 삼당합당이라는 황당한 논리의 귀결로 온국민이 고통을 당했던 IMF 사태, 기대에 찼던 국민들의 열망을 배신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만 가중시킨 민주정부 10년,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위임한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오로지 사익을 위해 악용하고 은폐하였던 사기꾼 이명박 정부의 교활함.

이에 더하여 마치 대통령직을 봉건제의 황제로 착각하고 국민위에 군림했던 박근혜와 내시들에 대해 참고 참았던 실망과 분노의 거대한 표출이다.

대한민국을 젊은 세대의 희망에 배반하는 금수저의 나라로 만들고, 합의된 원칙과 공의가 무너진 채 온 국민을 빚더미 위에 올려놓은 현실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질서있는 혁명을 하려면…

주간조선 편집장의 우려를 긍정적인 조언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가 이야기하는 질서있는 격변의 과정을 그려본다.

첫째, 박근혜, 최순실 그리고 이들에게 협조했던 주변의 부역자들을 역사적 심판대에 세워 처벌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이는 해방 이후 이루지 못한 민족의 정기를 바로 찾는 일이요, 국가의 기강과 공의를 굳건하게 세우는 일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를 거부하면 역사의 흐름을 거슬리는 민족적 반역행위에 해당한다. 당연히 해체시키고 재구성해야 한다. 역사는 체제와 법적 논리를 훌쩍 뛰어 넘는 것이다. 반드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

둘째, 이명박근혜의 사익적 약탈정권에서 이루어졌고 진행 중인 잘못된 제도와 결정들에 대한 권한과 시행을 중단시켜야 한다. 당장 사드배치를 보류하고 국정교과서를 취소하고, 강요된 공공영역의 업무평가제를 중단하는 일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셋째, 국민적 역적인 이명박과 박근혜를 배출한 새누리당을 거부하고 개혁과 진보라는 가치로 연대한 세력을 통하여 새로운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기득권세력은 아직도 제도적, 물적으로 강력한 기반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수구와 개혁 간의 세력대결이라는 차기 대선의 역사적 중요성을 깨닫고 시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진보적 개혁을 공유가치로 매개하여 광범한 연대를 구성해야 한다.

한 개인의 정권에 대한 야심이나 특정 정파의 탐욕으로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될 일이다. 정치세력 간의 공명정대하고 당당한 경쟁에는 당연히 박수와 지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적 식견과 프로그램과 미래의 비전을 내팽겨치고, 정치셈법으로 비방과 꼼수와 속좁은 계산 등 온갖 구정물로 오염된 소인배식 한국 정치사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당당한 내부 경쟁을 통하여 가능한 개혁세력 모두가 함께하는 연합정부를 구상하여 예비적 내각의 명단을 국민들에게 미리 제시하고, 더 나가서 건전한 보수세력도 참여하는 거국적 정부를 실현해 낼 수 있다면 더욱 환영할 일이다.

개헌은 차기 정부로 넘겨야

다원적 민주주의에서 개헌논의는 누구라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헌정사가 보여 주듯이, 제도 정치권의 유력인사들에 의해 개헌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더구나 이 엄중한 시기에 개인적 욕심으로 졸속 처리돼서는 절대 안 된다. 차라리 유력한 대선주자들 모두가 반드시 차기정부 임기 내에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대선 이후 충분한 논의와 시민적 공론의 과정을 통해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헌법개정을 해내는 것이 순리이다.

개헌
촛불혁명의 마무리를 지금 당장의 개헌으로 하자는 주장에 반대한다. 개헌처럼 중차대한 문제는 좀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의견을 담아내는 대대적인 작업이 돼야 한다. 따라서 개헌은 차기 정부에서 질서있게 진행하는 것이 맞다. (이미지 출처: http://www.hyongo.com/)

권력구조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지방자치와 분권, 경제민주화와 사회보장 등 광범한 주제를 검토하고, 논의해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 당장 개헌하자는 세력은 반시민적 반역사적으로 정권의 사취를 시도하는 사악한 집단이다.

넷째, 차기정부는 시대개혁적 과제를 혁명적 관점에서 검토하되,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질서있게 추진해야 한다.

주요한 과제들을 사안별로 정리하고 이를 다시 중요도와 완급을 따져서 분류하고 현재의 조건과 실력으로 실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부터 순서대로 처리해 나가야 한다.

시민적 지지를 확고히 하고 명분과 기반과 힘을 갖추지 못한 채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처리하고자 하면 주간조선 편집장의 우려대로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대체로 당장 시급하게 처리해 내야 할 사안과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주제,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합의해 내야 할 미래과제로 나누어 보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형성되는 집단지성을 기초로 하여 검증된 시민단체의 대표자들, 학계 및 각계의 전문인들, 책임있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입체적으로 결합하여 역사적 작업을 진행하여야 한다.

차기정부의 핵심 과제들

필자가 제안하는 차기정부의 시급한 우선적 현안과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적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 단순 다수제에 의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기득권을 지키는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것이다. 정상배들의 친목회 같은 현재의 무능한 정당제를 혁파하여 전문적인 정책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명부제를 도입하여 경험있고 헌신적인 전문적인 인사들의 비례대표 선출을 지역구 의원과 동수로 확대하는 등 민의를 비례적으로 반영하는 의원선출 방식으로 개정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소수정당의 우선배려 제도와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의 투표에 결선제를 도입하는 것 등을 깊이 토론해야 한다.

개헌은 이미 앞서 언급했다. 다만 선거법개정과 함께 개헌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강력히 제안하고자 한다.

한국의 헌정사를 살펴보면, 제헌헌법이 이승만이라는 유력 정치인에 의해 농락을 당했고, 4.19혁명 헌법을 제외하고는, 모든 개헌과정은 부당하고 불법적 집권을 정당화 하기위해 이루어 졌거나, 정권적 탐욕에 눈이 어두워 야합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개헌과 선거법 개정과정은 직업정치인들을 배제하고 중립적 전문인 집단과 시민적 집단지성이 결합된 방식과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차기정부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매우 중요한 사안이지만, 서둘러 진행할 일은 아니다. 국가운영의 대원칙을 세우는 일답게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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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를 바꾸고 싶으면 먼저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고 싶으면 국회의 권능을 강화하고, 권력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는 이들 과제를 최우선 개혁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무소불위한 대통령의 권력 집중의 폐해를 이미 충분히 경험한 바, 삼권분립(필요하다면 사권, 오권 분립도 검토해야)의 확립을 위하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검찰총장 등 주요 인사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거나, 대통령을 배제한 채 최소한 국회가 지명하도록 해야 한다.

감사원을 국회 아래로  이동시키고, 검사의 기소권 독점을 제한하고, 지역의 주요 검사장과 경찰청장은 반드시 지역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는 것을 검토해야한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기무사, 정보사령부 등 공안과 정보기관들이 깊숙이 개입한 것을 우리 모두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파동에서 보듯이, 일부에서는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휴전이 되었지만 분단 상황이 지속되면서 지난 수십 년간을 무식하고 무지한 냉전와 반공의 논리를 앞세워 정보기관들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한국 정치를 감시하고 때로는 협박하며 좌지우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차기정부는 반드시 공안과 정보기관을 재정립하여 국내정치에 일체 관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만의 하나라도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반드시 탄핵과 내각총사퇴 요구로 대응해야만 한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주로 정치적 제도와 절차에 관한 것으로, 이러한 제도에 새로이 담겨질 사회경제 시스템의 민주화와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재벌에 대한 국민통제권 강화 등의 사안은 보다 많은 토론과 지혜와 합의가 필요한 주제들로 차기정부의 미래전략과 연계하여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반드시 시민의 힘으로 시민적 합의를 통하여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만들어 가자!!

월, 2016/12/19-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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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보고서가 최근 유엔총회에서 공개됐다.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 의해 작성돼 유엔총회에 제출된 이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복잡한 양상이며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면서 “심각한 위반 양상이 지속적으로 목격되고 특히 억류된 사람들의 상황이 우려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가 국내의 그리고 외국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과거와 비교하면 사회의 더 많은 분야에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북한의 혼재된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된 기회를 활용하는, 현장에서의 즉각적이고도 실제적인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는 평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지난 1년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인권에 관한 대화에 심각한 장애가 되어 왔다”면서 “국제사회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현재의 노력을 지원하고 적대감을 완화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남한이 추구하고 있는 관계개선 정책을 통해 인권 의무에 관한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고, 최고 지도자의 부패 척결과 통치방식의 개선 약속이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주민의 자유와 존엄을 보장하고 북한 정부가 국제협력의 틀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가능성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권고하는 한편 국제사회에 대해서는 “유엔 헌장의 원칙과 실질적 정책변화의 긴급함에 발맞춰 적절한 자원과 전문기술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을 지원해야만 한다”고 촉구했다.

이 보고서의 결론부와 권고사항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북한-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토마스 오헤아 퀸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결론>

북한인권 혼재된상황, 변화 가능성 고려하는 평가 필요

1.북한의 인권상황은 몇 가지 측면에서 복잡하며 변화하고 있다. 독립적인 인권감시기구의 접근이 제한되고 있지만, 심각한 위반 양상이 지속적으로 목격된다. 특히 억류된 사람들의 상황이 우려된다. 외국에서 본국으로 강제 송환된 주민들의 상황 역시 우려된다.

납치된 외국인들의 소재에 관한 조사에는 전혀 진전이 없고, 정치적인 고려가 한국전쟁 이후 헤어진 이산가족의 재상봉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다. 비공식 경제의 빠른 확산이 공공분배시스템의 구조적인 결핍을 보완하여 왔고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행을 한다거나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이는 만연한 부패를 그 대가로 치른 결과이다.

정부가 국내의 그리고 외국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지만, 과거와 비교하면 사회의 더 많은 분야에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은 유엔 인권기구에 접근하고 특정 권리의 실현방안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는 조치를 취했다. 북한 내부에서 활동하는 국제 비정부기구의 지원 속에 여타 조치들 역시 진행되는 중이다.

북한의 혼재된 상황을 고려하면, 이러한 상호작용을 통해 창출된 기회를 활용하는, 현장에서의 즉각적이고도 실제적인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는 평가가 필요하다.

2. 지난 1년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인권에 관한 대화에 심각한 장애가 되어 왔다. 국제사회는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현재의 노력을 지원하고 적대감을 완화해야만 한다. 남북대화는 1953년 휴전선을 경계로 헤어져 다시 만나기를 갈망하는 수천의 이산가족들은 물론 모든 한반도 주민을 위한 것이다. 남북대화 속에 인권에 관한 고려를 포함하기 위해서는, 지역적 그리고 국제적인 조치가 취해져야만 한다. 동시에 북한은, 아직까지 거의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생존 및 발육 관련 필요 사항에 최우선 순위를 두어야만 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우선순위를 이와 같이 전환하도록 하는 데에는, 충돌을 방지하고 신뢰를 형성하려는 노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3. 북한 주민의 보호를 주창하는 데에서 책임성을 요구하는 일은 여전히 핵심적이며, 관리들에게 책임을 지우는 방안은 다양하다. 국제형사재판소 기소 가능성에 관한 논의가 지속되면, 최근 유엔 인권기구와의 접촉하고 있는 북한 정부가 인신매매, 고문과 감금시설에서의 학대, 성폭력과 성차별적 폭력 등 몇몇 중대한 위반에 대하여 즉각적인 구제와 치유를 보장할 수 있다. 남한이 추구하고 있는 관계개선 정책을 통하여 인권 의무에 관한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고, 최고 지도자의 부패 척결과 통치방식의 개선 약속이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북한은, 주민의 자유와 존엄을 보장하고 북한 정부가 국제협력의 틀 안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이러한 가능성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국제사회의 각국 역시, 유엔 헌장의 원칙 그리고 실질적 정책변화의 긴급함에 발맞춰, 적절한 자원과 전문기술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을 지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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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장면. (이미지: MBC 방송 화면 캡처)

<권고사항>

강제 송환된 이들에 대한 처벌이나 보복 삼가야

  1. 이 특별보고서는 북한에게 다음을 권고한다.

(a) 강제 송환된 이들에 대하여 어떠한 형식의 처벌 혹은 보복을 삼가야 한다.

(b) 중국 국경 인근의 수용소를 포함하여, 외국에서 돌아온 어린이와 남녀에게 폭력을 행사한 감금시설 관리를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c) 국제적십자위원회, 유엔 국가별 팀의 관련 기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국제 인권기구와 관련 시민사회조직 등이 감금시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d) 북한 국내에서 그리고 외국과의 관계에서, 정보와 소통의 제한을 철폐해야 한다.

(e) 남한과 이산가족 상봉을 재개하고 상봉을 신청한 북한의 가족들에게 공정하고도 투명한 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f) 납북 일본인에 대한 조사를 재개하고, 향후 대화 의제에 납북된 남한 주민의 사례를 포함해야 한다.

(g) 인권 규범에 의거하여, 주민이 필수 공공 서비스에 접근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건넨 뇌물을 수령한 중앙 및 지방 관리에 대하여 조사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h) 식량배급에 관한 공정한 기준을 확립하고, 감금시설 수용자 등 가장 취약한 이들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i) 장애인의 권리와 관련하여 특별보고서와의 협력을 지속하고, 가능한 기술지원을 확인하기위해 인권이사회의 특별 절차에 접근해야 한다.

(j) 권고사항 이행에 대한 정기 보고를 포함하여 협약의 주체와 지속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k) 북한의 인권상황에 관한 특별 보고서의 의무를 기준으로 여타 유엔 인권 시스템과 협력해야 한다.

(l) 유엔의 임무 수임자(mandate holder)가 가까운 장래에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초청해야 한다.

 

남한, 대북 교섭에서 인권을 우선순위로 둬야

2. 이 특별 보고서는 남한에 다음을 권고한다.

(a) 북한과의 교섭 노력에서 인권에 관한 북한의 의무를 높은 우선순위 의제로 두어야 한다.

(b) 경제 및 인도적인 분야에서의 향후 협력에서, 북한 공공 서비스 분배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고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c)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의 권고에 따라,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된 사람들 모두의 권리와 안전을 온전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유엔, 북한과 신뢰와 평화를 형성하려는 시도 지원해야 

3.이 특별 보고서는 유엔에 다음을 권고한다.

(a)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가 북한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충분하게 평가해야 한다. 특히 제재가 주민의 생계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에 관하여 초점을 두어야 한다.

(b)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을 감소하기 위하여, 유엔 회원국 및 비정부기구 등이 북한과 신뢰와 평화를 형성하려는 시도를 지원해야 한다.

(c) 북한에 대한 기술지원 프로그램을 확립해야 한다. 취약 그룹의 상태에 특히 유의한, 모니터링과 평가에 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포함해야 한다.

(d) 포괄적이고 주기적인 평가에서 나온 권고와, 필요한 경우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를 포함하는 여타의 협약과 권고 중 수용된 사항을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북한에 배양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e) 정책 전환을 압박하는 실질적 수단을 통하여, 인권 침해에 대한 북한의 책임성을 증진해야 한다.

(f) 감금시설 수용자를 비롯한 가장 취약한 그룹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확산을 추구해야 한다.

 

시민사회, 감시와 함께 대화 늘려야

4. 이 특별 보고서는 시민사회기관들에게 다음을 권고한다.

(a) 유엔 인권이사회 및 여타 협약을 기준으로 삼아 북한의 인권상황을 감시해야 한다.

(b) 인권에 관하여 북한과 대화할 기회를 늘려가야 한다. 여기에는 인접한 아시아 개발도상국들과의 대화 역시 포함된다.

(c) 북한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권단체들은, 기술지원 프로젝트의 수혜가 돌아가야 할 가장 취약한 그룹을 확인함과 동시에, 당국 간의 가교 역할을 지속해야 한다.

(d) 후원자들과의 교류를 지속하고, 인도적 지원과 갈등 예방 그리고 인권감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를 이행할 능력을 배양하는 데 후원자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월, 2017/10/2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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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미 간 무역전쟁이 한창이다. 미국은 1차로 지난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총 50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산 수입품에 추징관세를 부과한데 이어, 최근 다시 2,000여억 달러에 대한 추가적인 관세를 부과하였다. 중국도 이에 맞서 미국산 제품에 대해 상응한 보복관세를 매김으로써 맞대응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이제 누구의 눈에도 양국이 전면적인 무역전쟁에 돌입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 세계경제를 이끌고 있는 G2 두 나라 간의 무역전쟁은 분명 국제질서 전반과 한반도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핵무기의 존재 때문에 강대국 간의 갈등이 ‘전쟁’으로 전면화할 수 없는 오늘날 조건에서, 이렇듯 거의 전 산업에 걸친 대규모의 ‘전면적 무역전은 전쟁을 제외한 강대국 간 갈등의 최고 표현 형식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직전 열강들은 먼저 자신의 세력권을 배타적으로 ‘블럭화’ 하였는데, 이 같은 보호무역을 실시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면 전쟁이 시작되었다.

칼럼_181005 바이두
사진: 바이두

그렇다면 이렇듯 양국 간에 무역전이 전면화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금번 무역전쟁은 오바마정권 때 본격화한 ‘아시아 회귀전략’으로 대표되는 대중국 억제전략의 연장이자, 그 새로운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바마정부의 ‘아시아회귀전략’ 은 처음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대리전적 갈등’을 출발점으로 삼았다. 당시 미국은 필리핀을 앞세우고, 베트남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 역내 관련국들의 권리주장을 적극 부추기면서 그 배후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형국을 취하였다. 이 단계는 필리핀정부의 국제중재법원에의 제소가 승소판결을 받은 2016년7월에 정점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후 점차 기세가 누그러지면서, 특히 당해 말 실시된 필리핀 대선에서 아키노정부를 잇는 친미파가 정권을 상실하고 현재의 비교적 자주적이며 친중국 성향의 두테르테 신정부가 탄생함으로써 ,이 단계에 있어 미국의 전략은 거의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남중국해 카드가 실패로 끝나면서 미국은 할 수 없이 새로운 전장을 물색하게 된다. 이 경우 미국에게 남겨진 것은 ‘대만’ 과 ‘무역전쟁’ 두 개의 카드라 할 수 있다. 그중 대만 카드는 자칫 중미관계의 근저를 뒤 흔들면서 진짜 ‘전쟁’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위험한 카드이기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 예컨대, 대만독립파인 현 민진당 정부가 미국의 지원을 믿고 진짜로 독립을 선언할 경우, 중국은 ‘반국가분열법’에 의해 자동적으로 대만을 무력통일하게 된다. 그럴 경우 미국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트럼프정부로서도 대만카드에 대해선 아직까진 신중한 접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무역전쟁’이 중미 대결의 제2단계 주요형식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둘째로, 미국 내부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대해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로부터 지금의 중미대결이 ‘무역전쟁’이라는 형식을 빌려 표출할 수밖에 없는 직접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되는 다른 문제들, 예컨대 미국이 자신의 동맹국으로까지 무역전을 확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도 이해할 수 있다.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는 미국의 경우 내적 연관을 갖고 있다. 이들은 ‘쌍둥이 적자’로 일컬어지는 대단히 미국적인 현상인데, 1980년대 중반 레이건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쌍둥이 적자’ 가운데 발단은 ‘재정적자’라 할 수 있다. 즉,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미국정부가 달러 발행을 남발하게 되고, 그 다음 증가된 달러를 가지고 국내의 공급부족에 따른 물품 결핍을 해외수입을 통해 메우다 보니 무역적자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직 세계 기축화폐인 달러를 보유한 미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참고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아래 표에서 보듯 현재 이미 GDP의 130%에 육박하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 같으면 파산선고를 해야 할 수준이다.

칼럼_181005(1)
출처: 한국 국가통계포털 (KOSIS)

어떻든 이 같은 재정적자로 인해 야기된 ‘무역적자’는 최종적으로 국내의 산업공동화고용문제를 야기한다. 이 때문에 미국의 통치세력으로서는 언제까지나 이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한 기층 대중들의 불만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러 미국사회 불안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정작 이 같은 대중들의 불만을 등에 업고 등장하였기 때문에,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고 차기 재선을 노리고 있는 그로선 어떻게든 일자리문제에 있어 내세울 만한 업적을 만들어야 만하는 처지이다. 그를 위한 좋은 소재가 바로 타국과의 무역 분쟁을 이슈화 하는 것이다. 트럼프정부는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거대한 무역적자가 바로 중국을 비롯한 대미 흑자국가들 때문이라고 하면서, 그들로부터의 수입을 규제함을 통해 국내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낡은 공약을 내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라는 ‘우연적 요소’ 역시 간과될 수 없다. 사실 앞서 열거한 두 가지 요인 사이에 모순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트럼프이기 때문이다. 그간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은 세계 각국의 개방화와 지구화시대의 경제일체화를 선도하여 왔다. 이처럼 시대적 흐름을 이끌어 왔기에 미국은 탈냉전 이후의 지구화시대에 있어 패권국가로서의 지위와 리더십을 지금까지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앞서 쌍둥이 적자와 관련된 부분은 사실상 미국에게 ‘보호무역주의’로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다. 비록 유일패권을 노리는 미국에 있어 대중국 억제전략이 시급한 것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 와서 중국을 억제하기 위해 그간 자신의 주장을 스스로 부정하면서까지 지구화시대에 역행하는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서 워싱턴 정가의 정통노선과 이질적인 트럼프의 등장은 얼마간 이 같은 모순을 완화시켜 줄 수 있다. 트럼프는 이 경우 하나의 ‘우연적’ 사건으로 간주될 것이며, 미국 전략의 내적 모순에 대한 일종의 절충적 해결방안으로 치부되게 될 것이다. 사실 트럼프 자신이 매우 모순적인 존재이다. 그가 이끄는 행정부는 얼핏 보아도 상호 충돌하는 정책들로 가득 차 있다. 예컨대, 한편에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국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동맹국들과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같은 포퓰리즘적 국수주의 정책을 미국 내에선 ‘신고립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최근 오바마정부가 어렵사리 성사시킨 이란과의 협정을 파기하면서까지 중동에 대한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강력한 미국’ 노선의 관철을 위해 군비를 대폭 증강하는 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며, 트럼프정부가 여전히 세계 패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돌출적이며 예측할 수 없는 ‘개성’은 워싱턴의 정통엘리트들을 한편에선 골치 아프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 그의 ‘파격’과 ‘돌발성’은 미국의 서로 다른 전략 목표들 간의 모순을 은폐시켜 준다.

우리는 이상에서 금번 중미 간 무역전쟁이 기존의 대중국 억제전략의 한 단계 발전이자 ‘쌍둥이 적자’의 누적과 관련되어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와 동시에 새로 등장한 트럼프정부의 독자적인 경제·정치 정책이라는 우연적 요소 역시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금, 2018/10/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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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핀란드의 9대 대통령 마우노 꼬이비스토가 사망했다.

핀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통령이었던 그는 재임 중 복지국가, 개헌, 중립평화외교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독립 100년 만에 이뤄낸 핀란드의 성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의 재임 중 성과를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으로 나눠 2회에 걸쳐 싣는다. 

1. 국내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1), 어떻게 복지국가와 개헌을 이뤄냈나 

2. 대외정책 편: 핀란드가 사랑한 대통령(2), 어떻게 중립평화외교를 확립했나

대통령으로서 마우노 꼬이비스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빠시끼비-께꼬넨 노선’(Paasikivi-Kekkosen linja)로 알려진 전임 대통령들의 중립 평화 외교 노선을 한 단계 심화 발전시킴으로써 동서 냉전의 해체와 유럽 통합 등 국제질서의 대전환기를 지혜롭게 헤쳐나간 일이다.

동과 서 사이에서, 중립 평화 외교의 계승자

폴란드, 체코, 헝가리, 발트3국, 우크라이나 등 다른 ‘경계국가’(border country)들처럼 핀란드도 동과 서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요소로 인해 20세기 내내 내전과 전쟁, 냉전 제약 등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의 평화조약 협상을 주도했던 외교관 출신 대통령 빠시끼비는 핀란드가 ‘지리’(geography)를 바꿀 수는 없는 이상 “동쪽의 이웃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며 서방과 소련 사이의 중립적 외교 노선을 천명했다.

보수당 출신이지만 합리적 실용주의자였던 그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이다”는 말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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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중립평화외교의 기틀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는 빠시끼비 대통령(사진 왼쪽)과 께꼬넨 대통령

빠시끼비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오른 께꼬넨도 같은 노선을 견지했다. 그는 핀란드는 국제관계 문제의 ‘재판관’(judge)이 아니라 ‘의사’(doctor)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권 초기의 정치적 불안정과 1950~60년대의 대소 관계 위기(소련이 민주화와 인간적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를 무력 진압할 당시 핀란드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등을 집중된 권력의지와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극복한 께꼬넨 대통령은 빠시끼비의 소극적 중립외교 노선을 한층 업그레이드된 적극적 평화외교로 발전시켰다.

실제로 중도우파인 농민당(현 중앙당) 출신이면서도 적극적 대소 우호 정책을 펼친 그는 후르시초프, 브레즈네프 등 소련 서기장들과 사우나 외교를 통해 막역한 친구 관계를 맺었다. 이 시기 오히려 소련으로 치우친 듯 보였던 핀란드 정부의 대외 중립 외교 정책은 서구의 외교 이론가들로부터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 불리며 비판받기도 했다.

재임 초기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그 진의를 의심할 정도로 소련과의 전폭적 신뢰 관계를 구축한 께꼬넨은 국내 권력 기반이 안정되고 세계적인 데탕트(해빙) 물결이 시작되던 1970년대 적극적 평화외교정책을 추진한다.

미국과 소련, 서구와 동구 사이의 소통의 메신저로서 평화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그 결실은 역사적인 1975년의 헬싱키 평화협정 체결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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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7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에서는 동서 양 진영의 34개 나라 정상이 ‘최종의정서’ 체결을 통해 ‘인권 존중’과 ‘국경 및 체제 존중’을 맞바꾸는 헬싱키협약을 체결했다.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uvx&articleno=78138…®dt=20160403185527)

20세기 핀란드를 대표하는 건축가 알바르 알토(Albar Aalto)가 설계한 헬싱키 핀란디아홀(Finlandia Hall)에서 개최된 <유럽안보협력정상회의>에 미국의 닉슨 대통령, 소련의 브레즈네프 서기장 등 동서 진영의 34개국 정상이 한데 모여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절차와 방안을 담은 협약에 서명한 것이다. 당시 동독과 서독의 수상도 함께 참여하여 회담하는 등 큰 성과를 올린 역사적 정상회의 개최로 핀란드의 국제적 위상도 한껏 고조됐다.

그러나 아직 냉전 질서는 강고했고, 미소 간의 핵무기 군사경쟁 등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께꼬넨 대통령이 연로한 나이와 체력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에 연거푸 나선 데는 불안정한 국제관계에 대한 (독단적) 책임감도 작용했다. (당시 쓴 일기들에서 그는 종종 세계정세의 불안정한 발전에 대한 우려와 책임감을 토로하고 있다.)

께꼬넨의 사임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꼬이비스또에게는 빠시끼비와 께꼬넨으로 이어진 중립 평화외교를 한층 발전시키는 동시에 국제질서의 대변동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이중의 과제가 주어졌다.

같은 시기 미국에서는 신보수주의를 표방한 레이건 정부가 들어섰고, 소련은 이내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주도하는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변화의 급물살을 타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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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비스토 대통령은 ‘빠시끼비-께꼬넨’으로 이어지는 중립 평화 외교를 계승 발전시켰다. 1990년 미소 정상을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가장 큰 외교적 업적으로 꼽힌다.

꼬이비스토 대통령은 핀란드 공산당과의 경쟁 관계에 있는 핀란드 사민당에 대한 소련 권부의 전통적 불신을 극복하며 외교적 성공의 첫 발걸음을 뗀 뒤, 점차 미소간 핵무기 감축과 평화 협상을 촉진하는 메신저 겸 중재자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그는 러시아어를 직접 익히고 소련의 고위 인사들과도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소련 내부의 사정에 정통했고, 레이건과 부시 등 미국의 대통령들은 그의 해박한 식견과 외교적 역량을 존중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1990년 미국의 조시 부시 대통령 내외와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 내외를 헬싱키로 초청해 공동 정상회담을 개최한 일은 그의 외교 활동 중 백미로 꼽힌다.

대전환기, 유럽통합으로 향한 길

1980년대 후반에는 세계정세가 급변하면서 중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1990년 독일 통일, 그리고 1991년의 군사쿠데타 실패에 이은 고르바초프의 실각과 소련 해체 등이 꼬이비스토 대통령의 재임 2기에 발생했다.

사태는 꼬이비스토의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빠르고 급진적으로 전개되었다. 대소관계의 안정적, 평화적 관리에 최우선적 역점을 둬왔던 전후 핀란드의 외교안보 정책에 첨예한 도전 과제가 제기된 것이다.

꼬이비스토는 신중하게 사태를 관찰하며 핀란드 외교정책의 전환을 준비했다. 우선 소련 해체 직후인 1992년, 1948년부터 체결해온 소련과의 ‘우호협력⦁상호지원조약’의 연장을 중단했다.

냉전 시기 이 조약이 부과한 정치 군사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뒤에는 서방으로 눈을 돌려 유럽연합(EU) 가입을 추진했다.

핀란드는 1994년 국민투표를 통해 EU 가입을 결정했다. 100년 전 러시아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한 핀란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소련이 부과한 제약에서 다시 온전히 벗어나 새로운 초국적 정치경제 공동체의 일원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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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비스토는 ‘전환기의 대통령’이었다. 독일 통일과 소련의 갑작스런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자 그는 외교 전략을 전환해 핀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을 추진, 성사시켰다.

꼬이비스토의 뒤를 이은 아흐띠사리, 할로넨 대통령도 유럽연합과 UN 등 국제무대에서 핀란드의 평화 인권 외교를 지속, 확대하며 변화된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들을 수행해냈다. (아흐띠사리는 2008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10년대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 크림반도를 일방 병합하는 등 유럽 외교안보 질서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고, 현 핀란드 대통령 니니스뙤(보수당, 2012~재임 중)는 국제사회의 요청으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나 대화를 중재하는 등 2000년 헌법 질서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꼬이비스토의 유산이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적 혁신과 통합을 위한 리더십

마우노 꼬이비스토 대통령이 서거한 지 2주 뒤인 2017년 5월 25일(목) 오후 1시부터 헬싱키 대성당에서 부인 뗄레르보와 딸 아씨(Assi Koivisto) 등 가족과 친지, 그리고 전현직 대통령들과 현 총리 유하 시삘라(Juha Sipilä)를 비롯한 삼부 요인과 각국 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경건한 장례 미사가 거행되었다.

생명을 다한 그의 육신은 하얀 바탕에 파란 십자가와 붉고 노란 사자 문양이 새긴 핀란드 국기로 감싼 관에 담겨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대성당을 출발한 장례 차량이 헬싱키 대학, 상원 광장, 정부청사, 중앙은행, 대통령궁, 의회를 지나 묘지가 있는 히에따니에미(Hietaniemi) 공원으로 향할 때 거리에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은 조용한 침묵의 눈길로 깊은 존경과 추모의 인사를 보냈다.

청명한 북구의 초여름 하늘 아래 신록으로 빛나는 자작나무 가지들이 군악대의 연주를 실은 바람결에 고요히 나부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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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5일 꼬이비스토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우르호 께꼬넨 대통령 옆 자리에 그가 묻힌 헬싱키 국립공원 묘소에는 시민들의 참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이 글의 필자가 묘역을 방문한 2017년 6월 14일의 풍경.

어린 나이에 직업 활동을 시작하고 전쟁에 참전했던 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은행장, 재무장관, 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되어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통찰하며 핀란드형 복지국가, 합의 민주주의, 중립 평화외교를 완성해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유라시아 대륙의 맞은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우리는 아직 20세기가 강요한 내전과 전쟁 상태를 완전히 종식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관점이 정치적으로 온전히 대표되는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현대 자본주의의 사회구조의 변동에 대응하는 역동적 복지국가 시스템을 수립하지 못했다.

대통령 탄핵과 촛불 시민혁명이라는 비상한 계기를 통해 등장한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시민들이 보내는 높은 기대는 동시에 한국사회가 처한 엄중한 위기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새 정부가 검찰, 국정원, 언론 개혁 등 부패한 구체제(ancien régime)의 청산과 극복, 경제사회적 불평등 해소 및 지속가능한 복지사회 건설, 한반도 분쟁 완화 및 평화공존체제로의 전환, 헌법 개혁과 선거제도 개편을 통한 민주주의 질서의 재구성 등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탁월한 역량과 리더십을 발휘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 글의 저자인 서현수 박사는 지난 5월 핀란드 땀뻬레대학에서 핀란드의 의회정치와 시민참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은 여기(☞Reaching Out to the People)를 클릭해 다운받을 수 있다)

수, 2017/07/1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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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5월 3일, Foreign Policy in Focus에 실린 Trump and the Rush to Deploy THAAD 를 번역한 것입니다.)

4월 26일 새벽, 서울에서 남동쪽으로 300여 킬로미터 떨어진 성주의 골프장으로 경찰들이 집결했다. 경찰은 잠에서 덜 깬 주민들을 밀어내고, 사드를 실은 미군들을 호위했다.

사드 배치는 중국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한국에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5월 9일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드가 배치됐다는 것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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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전 0시부터 주한미군은 4시간여 만에 사드 발사대 2~3기, 사격통제레이더, 교전통제소 등 핵심장비 대부분을 성주골프장에 반입했다. 사전예고도 없이 신속하게 배치된 이번 결정의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현재 당선이 유력한 문재인이 더 많은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는데도, 이렇게 신속 배치된 것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드 비용 청구, 한미FTA 폐기

이 일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드 신속 배치는 결국 한국 정치를 우회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한미 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국내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사드 배치에 찬성했는데도 한국 측에 10억 달러의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한미FTA를 재앙(horrible deal)이라고 부르며 폐기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는 안보이슈와 무역이슈를 연계하면서 한국이 안보를 해결하려면 무역에서 양보해야 할 것이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전쟁 이후 미국이 유지했던 한국과의 가치공유 전략를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동맹은 경제적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사드는 가격이 맞으면 변경 또는 폐기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트럼프에게 군대란 민주주의나 자유시장을 위해 헌신하는 군대가 아니라, 국가간 수지를 맞추기 위한 용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5월 1일, 트럼프는 북한의 김정은과 만날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틸러슨 국무장관은 중국의 계속된 제안에도 불구하고 북한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또 얼마 전에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행동이 임박했다고 했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숨은 의도는?

미국의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에 한국인들은 트럼프 행정부를 비이성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며, 충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드 비용 청구는 사드에 대한 문재인의 의구심을 키웠고, 한국의 반미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금 문재인은 보수세력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사드 배치를 비판하고 있다.

사드를 배치 과정에서 완전히 절차가 무시되면서 반미감정이 커지고 있다.  현재 황교안 권한대행은 그런 결정을 할 정당성이 전혀 없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회와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드 배치를 결정했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국회에서 사실상 어떤 토론도 없었다.

사드는 단순히 북한의 위협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사드를 자신의 방어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사드 배치는 한국, 일본, 러시아 등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무기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

중국은 7000기에 달하는 미국의 핵무기에 대항해 3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만, 사드가 자신들의 핵능력을 무력화한다고 생각한다면, 핵무기를 수 천기로 늘릴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인들은 어떻게 사드 배치가 이렇게 신속하게 결정됐는지 알지 못한다. 아마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해리스 미국 태평양사령관 사이에 내려진 결정일 것이다. 두 사람은 모두 호전적인데다 군수업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번 결정에 트럼프 대통령은 별로 관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한 일이라곤 한국의 중국의 일부였다는 말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일일 것이다. 트럼프는 국무부에서 아시아 전문가를 모두 해고하는 바람에 그의 주변에는 전문가가 없다.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꾼 것도 이처럼 관련 전문가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시 코리아패싱?

만약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된다면, 지난 10년 간의 보수정부와 달리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이다. 그럴 경우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관계처럼 한미 관계가 긴장국면에 진입할지도 모른다.

보수주의자들은 지난해 개성공단 폐쇄로 DJ의 햇볕정책을 완전 끝장냈다고 생각할테지만, 문재인은 어쩌면 그 햇볕정책을 복원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북한과의 대화를 추구하면서 전시작전권 환수를 추진하고, 미국과의 균형외교를 추구할 것이다.

사실 문재인정부에서 한국은 가장 독립적인 동맹국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북핵 도발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무시 전략은 한국인들을 실망시켜왔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워싱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대북접근 정책을 취할지도 모른다.

북한은 리비아의 가다피정권이나 이라크의 후세인정권이 몰락한 것은 충분한 억제력이 없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자신의 정통성과 국가운명을 핵무기 개발에 걸고 있는 김정은으로서는 더욱 양보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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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사드 비용 청구, 한미FTA 폐기 발언 등으로 한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가 불쑥 “영광스럽게 김정은과 만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식적인 접촉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대신 한반도 문제가 중국, 일본과만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코리아 패싱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에 대한 숱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반도 개입은 점차 축소되는 양상이다.

반대로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는 중국어 학교가 전국적으로 성업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지난 4월 시티뱅크는 한국지점의 3분1을 폐쇄하기로 했고,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숫자는 큰 폭으로 감소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북한과의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인데도 미국은 지난 1월19일 마크 리퍼드 주한대사가 물러난 이후 신임 대사 후보조차 준비하고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지난 2월 아베 일본 총리와, 지난 4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 문제를 논의했다. 황교안 권한 대행은 지난 3월 틸러슨 국무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녁식사 약속조차 잡지 못했다.

결국 사드 문제는 100여 년이 넘는 한미관계의 일부분이다. 북한이 연일 미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지만, 한국, 즉 남한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거의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 문제 외의 사안에 대해 한미 간의 공동 이해와 행동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한국 내에서는 다시 반미감정이 득세하면서 미국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될 것이다.

목, 2017/05/0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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