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좋은 헌법은 없다

지역

좋은 헌법은 없다

익명 (미확인) | 금, 2016/07/08- 15:29

이 짧은 글의 결론부터 말하면 이렇다. 정치가들이 개헌론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민주정치 발전에 유익하기보다는 유해하다.

‘론’으로 끝나지 않고 진짜로 개헌을 하면 어떨까? 지극히 재난적일 것이다. 지금 정당들의 능력이랄까 혹은 조직적 실력으로는 개헌처럼 지극히 위험한 과업을 감당할 수 없다.

반면 현행 헌법을 가지고도 정치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유익한 일은 수천, 수만 가지다. 정치가들은 바로 그 부분에서 최선의 노력과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민주정치는 헌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다.

새 헌법을 만들면 정치가 좋아질까?

필자가 기억하는 한, 민주화 이후 지난 29년 동안 어느 한 해도 개헌론이 없었던 적은 없었다. 그 가운데 실제로 개헌을 하고자 했던, 이른바 ‘개헌의 정치’가 있었던 적은 단 한 차례였다.

20151122000075_0 (1)
87년 민주화 이후 개헌이 현실적으로 성사될 수 있었던 때는 1990년 내각제 개헌을 명분으로 3당 합당이 이뤄졌을 때였다. 이때를 제외하면 모두 ‘말’ 뿐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5112200…)

1990년, 내각제 개헌을 합의 사항으로 당시 세 정당이 득표율 합 73.4%에 의석수 217석의 거대 정당을 만들었을 때였다. 방법이 비민주적이었지만, 개헌을 위해 구체적인 정치 행동을 했던 것은 이 삼당합당 때가 유일했다. 그 나머지는 일종의 여론정치로서 ‘개헌론의 정치’가 있었을 뿐이다.

올해 주인공은 정세균 신임 국회의장이었다. 김무성과 문재인 등 여야 대표급 정치인들이 그 뒤를 이어받아 각자의 개헌론을 반복했다. 이재오 같은 단골 내각제 개헌론자는 물론이고, 여당 내 중심 세력이라 할 친박, 친이계 인사들도 가세했다.

남경필, 박원순, 안희정 등 광역자치단체장들 역시 분권화를 위한 개헌론을 말하며 ‘수도 이전’을 주장했다. 야당 내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알려진 우윤근 신임 국회 사무총장은 내년 4월 재보선 시기에 국민투표를 하자며 아예 시기까지 못 박고 나섰다.

1987년 헌법이 제정된 지 30주년이 되는 내년이 적기란다. 글쎄, 그들이 말하는 대로 새 헌법을 만들면 정치가 좋아질까? 그나저나 서로가 말하는 개헌안이 다 다른데, 대체 ‘어떤 헌법’이란 걸까? 무조건 새 헌법이면 되는가?

개헌에 대한 당론부터 정하라

개헌은 너무 위험한 사안이다. 그렇기에 헌법 문제를 갖고 함부로 실험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개헌을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먼저 당론으로 개헌안을 정하는 노력부터 해야 할 것이다.

민주정치에서 중대 사안의 출발점은 바로 거기에서부터이다. 하지만 어느 개헌론자도 자신의 정당이 헌법과 헌법 개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토론을 이끌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론 혹은 언론에 대고 개헌을 이야기하지, 돌아서서 자신의 정당 안에서부터 논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혹자는 “개별 의원들 하나하나가 헌법 기관이나 다름없기에 당론과는 무관하게 국회에서, 오로지 국가의 장래만을 생각하며 논의를 이끌어 결정해 가자.”고 말하는데,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건 ‘귀족정적인 의회주의’의 원리일 뿐, 민주정과는 거리가 멀다.

민주정은 그를 대표로 뽑아주고 권력을 갖게 한 시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을 말한다. 지난 선거에서 자신이 속한 정당과 그 공약에 책임성을 가져야 하는 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국회에서 결정하면 된다는 식은, 정당의 후보로서 선거에서 당선되고 국회의장이 되고 사무총장이 되었으면서도 이제 그런 책임은 끝났고 법제정 권력은 온전히 자신들의 소관으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당이 책임정치의 기반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의회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정치의 무능을 헌법 탓으로 돌려서야

개헌안이 당론으로 확정된 다음에는 정당의 선거 공약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정당의 공약 제시는 주권자인 시민에게 판단을 요청하는 단계의 시작을 가리킨다. ‘정치적 의제의 형성과 이를 중심으로 한 공적 논쟁’의 과정이 없다면, ‘시민이 최종적 결정권자로서 역할을 하는 민주주의’는 의미를 가질 수가 없다.

그런데 이를 곧바로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개헌론자들의 그런 발상은 사실상 ‘중우정치’를 하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kuktu2-e1444204822986
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것은 난센스다. 개헌에 대한 높은 지지 여론은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돼야 한다. 정치의 잘못을 헌법의 잘못으로, 대표자의 심의 책임을 여론의 판단으로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93358)

국민투표는 여론동원정치를 대표하는 결정방식이지 결코 민주적 결정 방식이 아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의 경험에서 보았듯, 그들이 즐겨 향유한 것은 국민투표였고 야당을 협박할 때도 늘 “그럼 국민투표로 하자!”였다. 극우 선동 정치에 휘둘리고 만 영국의 ‘브렉시트’ 역시 국민투표의 부정적 효과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도 개헌론자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며 개헌에 찬성하는 의견이 많다고 말한다.

글쎄, 필자가 보기에 일반 여론조사에서 개헌에 찬성한다는 대답은, 지금과 같은 정치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낼 뿐이다.

시민들이 개헌을 열망한다? 개헌을 둘러싼 당론도 없고 제대로 된 공적 논쟁도 없는 조건에서, 개헌 찬성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가 신뢰성을 가질 수 있을까?

민주주의에서 정치가란 누구인가? 선출된 시민의 대표들이다. 시민은 모든 일을 직접 할 수도 없고 또 직접 하고자 할 만큼 어리석지도 않기에, 선출된 정치가들에게 민주적 과업을 일정 기간 맡기는 것, 그게 민주주의다.

그런데 그들이 책임 있게 정치를 하지 않아서 화가 난 시민들에게 개헌론자들은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헌법 때문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제헌의회 선거를 한 것도 아닐뿐더러, 개헌안 공약도 없이 당선된 그들이 헌법 개정 권력을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고는 전혀 인정할 수가 없다.

대통령답지 못하고 여당답지 못하고 야당답지 못하다는 것이 시민 다수의 합당한 불만인데, 그에 대한 정치가의 무책임한 대답이 “그럼 개헌을 논해 봅시다!” 라는 식이라면 솔직히 사양하고 싶다.

그들이야말로 정치의 기능과 역할을 스스로 파괴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좋은 헌법’은 없다.  지금 필요한 건 ‘좋은 정치’

필자가 만나서 대화를 해본 국회 개헌론자 가운데, 헌법에 대한 자각적 이해나 판단을 가진 의원은 없었다. 지금과 같은 대통령제에 뭔가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정도의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그 가운데 얼마나 ‘헌법 때문’이고 ‘헌법 이외의 문제’는 또 어떤가에 대한 판단을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각제는 문제가 없을까 혹은 이원집정제를 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에 대한 이해도 없다. 이런 조건에서 개헌이 본격화한다면 어찌될까?

누군가는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답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이원집정부제 하자고 하고, 또 누군가는 내각제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등, 제각각일 것이다. 거기서 끝날까?

누군가는 통일헌법 만들자 하고 재벌들은 헌법 119조의 경제민주화 조항 폐지하자고 할 것이다. 또 누군가는 연방제 개헌하자고 하자거나 지방분권화 개헌하자고 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주요 세력과 영향력이 모두 동원되어 자신들을 위한 권력구조를 만들고자 할 것이며, 학계와 언론 역시 편을 나눠 맹목적 주장을 반복할 텐데, 아무리 봐도 지금의 정당들과 개헌론자들에게 그런 무한정의 갈등 확산을 통제할 힘은 없다.

1
독일 바이마르헌법은 역사상 가장 훌륭한 헌법으로 평가받았지만, 극심한 정치적 혼란 속에서 나치의 집권을 초래하고 말았다. 문제는 헌법이 아니었고, 정치였다. 좋은 헌법이란 없다. 좋은 정치가 있을 뿐이다. (이미지 출처: http://slideplayer.org/slide/2826705/)

좋은 헌법은 없다. 프랑스식 이원집정부제 헌법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프랑스처럼 민주주의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식 내각제를 한다고 한국정치가 독일정치처럼 된다? 미국처럼 대통령 중임제가 되면 한국정치의 문제가 해결된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중앙집권은 무조건 나쁘고 지방분권은 다 좋은가? 전혀 아니다. 중앙집권이냐 지방분권이냐가 다가 아니라, 책임성의 원리가 어떤 방법으로 실천되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

독일과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강력한 지방분권 체제라 하더라도 책임 정치의 기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른 결과를 낳는다. 지방분권도 얼마든지 나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는 장단점을 나눠 갖는다. 그것의 좋은 효과는 제도의 법-형식적 측면에서 발원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 외적인 조건’, 즉 정치가 그것을 뒷받침할 만큼 사회 속에 잘 뿌리내리고 있는지, 경제를 움직이는 주요 생산자 집단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얼마나 공동체적인지 등에 의해 영향 받는 바가 더 크다.

20세기 초 독일 바이마르 헌법의 사례가 말해주듯, 최상의 헌법도 헌법 외적인 조건으로부터 뒷받침을 받을 수 없으면 최악의 헌법이 된다.

전후 독일 민주주의의 발전을 ‘본(Bonn) 헌법’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기민당과 사민당이 중심이 된 정당 정치 혹은 공동 결정과 직장 평의회에서 보듯 좋은 노사관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나을까?

좋은 헌법을 갖고 싶다는 정치가의 바람이 진짜라면, 그는 무엇보다도 좋은 경제와 좋은 노동시장, 좋은 교육-문화적 조건을 위해 정치가 해야 할 좋은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과를 낳는 것에 비례해서 우리에게 맞는 헌법의 문제는 – 누가 작위적으로 개헌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 가장 빠르게 제 길을 찾아가게 될 거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앞선 민주주의 국가들의 역사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민주주의는 법치가 아니나 정치를 잘하는 데 그 매력이 있고, 좋은 헌법은 그것의 덤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지난 20여 년간 주주지상주의가 팽배해지면서, 다국적 회사(corporation)의 무책임성과 비윤리성이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회사의 행위에 대해 그 어떤 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 대주주가 회사 경영에 간섭하고 회사의 잔여이익의 최종적 취득자로 됨으로써, 다국적 회사의 비윤리적이고 무책임한 경영을 부추겼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백혈병, 림프종 등의 암으로 사망한 삼성전자의 노동자들, 삼성중공업의 태안반도 기름 유출 사건, 옥시의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 사건 등에서 대기업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는 그 어떤 도덕적, 법적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재벌가는 4% 내외의 작은 지분으로 거대 회사집단을 지배하고 있지만, 이들이 누리는 이 거대한 권력과 특권에 비해 그에 따르는 사회적 책임은 전무하다.

이러한 대주주의 책임면제는 회사법상에서 보장된 것으로서 계약권(contractual right)과 재산권(property right)이라는 모순적 권리를 둘 다 주주가 향유할 수 있도록 회사법이 보장하기 때문에 회사의 비윤리성과 무책임성이 허용되고 강화된 결과이다.

 

※ 본 글은 다른백년연구원 젊은연구자 내부 연구모임에서 김종철 교수(서강대 정치외교학과)가 발표한 것으로서,『국제정치논총』 56집 2호에 실린 논문이기도 합니다.  

월, 2016/08/22- 17:38
279
0

 

<정치기사 모니터링>
안녕하세요, 정치기사 모니터링팀입니다.

정치기사 모니터링팀은 지난 세 달 동안 세미나를 진행해왔는데요, 드디어 긴 준비기간을 마치고 모니터링팀의 액션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

정치기사 모니터링팀 스터디 모습

정치기사 모니터링팀 스터디 모습

 

먼저, 세 달 동안 진행한 세미나의 결과물로서 <정치 기사 뒤집어보기>라는 제목으로 프레시안에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치 기사 뒤집어보기>는 세미나를 통해서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원들이 얻은 문제의식을 시민들과 공유하며, 앞으로 한국 정치 보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 지에 대한 정치기사 모니터링 팀의 의견을 제시하는 연재글입니다.

첫번째 글은 정인선 팀장님이 작성해주신 <‘정치 혐오’ 유발자는 누구?> 입니다. 정치기사 모니터링팀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잘 짚어주신 글입니다.
<정치 기사 뒤집어보기>는 앞으로 매주 화요일, 목요일 총 11회에 걸쳐 게시되오니, 관심 갖고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프레시안 <정치 기사 뒤집어보기>링크 ☞  바로가기

 

수, 2015/09/23- 11:26
278
0

제너럴모터스(GM)의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이 발표되면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이 있다. 배리 앵글(Barry Engle·53)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GM International) 사장이다. 지난 19일 방한이 벌써 세 번째다. GM 본사에서도 한국GM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말 한국에 들어왔던 그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백운규 산업자원통상부 장관, 고형권 기획재정부 제1차관에 이어 청와대 고위관계자 등과 잇달아 만나 비공개 회담을 가졌다. 한국GM 유상증자에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참여해준다면 신차 배정을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한국 정부는 경영정상화 방안을 검토한 뒤 결정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자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시장 철수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배리 앵글은 지난 7일 다시 입국해 한국GM 노조, 유정복 인천시장과 면담했다. 1월에만 해도 비공개로 정부 관계자들을 만났지만 점점 더 공개적인 행보를 이어갔다. 여론 압박까지 염두에 둔 셈이다. 그럼에도 별 신통찮은 소득을 얻었는지 지난 13일 GM은 결국 군산공장 폐쇄를 전격 발표했다. 정부 지원이 없으면 아예 철수할 수도 있다는 노골적인 협박 카드를 내민 격이다.

19일에 다시 방한한 배리 앵글은 국회 여야 의원들을 만났고, 또 다시 산은 회장, 산자부 차관, 기재부 1차관 등을 만났다. 백운규 산자부 장관에게도 다시 면담 요청을 했지만 백 장관이 일정 때문에 만날 수 없다고 하자 부산까지 찾아가겠다고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일보
배리 앵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 사장(가운데)이 2월 20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한국GM 대책 TF 위원장 등 의원들과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다(사진: 한국일보)

■ 실질적인 GM의 해외전략 책임자

배리 앵글 사장은 브리검영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1992~1997년, 2000~2008년 사이에는 포드에서 근무하면서 미국, 멕시코, 일본, 브라질, 캐나다 등에서 근무했다. 이 기간 동안 브라질과 남미공동시장의 포드 사장(2005~2006)을 역임했다. 그는 1980년대부터 아르헨티나에서 살면서 일했을 정도로 남미 지역에 정통하다고 한다.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모두 할 수 있다.

큰 회사 경험만 있는 건 아니다. 1997~2000년에는 독특하게도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크라이슬러 대리점에서 자동차 소매 영업을 하기도 했다. 2008~2010년에는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농기계 업체 뉴홀랜드 사장을 지냈다. 2010~2011년에는 노르웨이의 전기차 업체인 싱크의 사장을 맡기도 했다. 여기서 그는 미국 내에서 싱크의 전기차 판매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2011년부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Agility Fuel Systems의 CEO를 지냈다.

배리 앵글이 GM에 합류한 것은 2015년 9월이다. 총괄 부사장 겸 남미 부문 사장을 맡았다. GM은 본래 북미, 남미, 중국, 유럽, 그리고 한국·호주·인도 등을 포함하는 IO(International Operations)로 사업부가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유럽에서 철수하고 호주 공장을 폐쇄하고 인도에서 사업을 축소하는 등 해외 사업 분야가 급격히 축소됐다. 급기야 지난해 10월에는 북미와 중국 외의 모든 사업부를 묶어 GM International(GMI)로 통합했다. 기존 남미 책임자였던 배리 앵글이 이 사업부문을 총괄하게 됐다.

현 한국 GM의 사장인 카허 카젬이 취임했을 때 일각에서는 그가 인도에 있을 당시 내수시장 철수를 주도한 이력을 들어 구조조정이 임박한 것 아니었냐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바지 사장’일 뿐 실제 GM의 글로벌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배리 앵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상하이차와 합작으로 진행하는 중국 시장을 제외하면 북미와 GMI 뿐인데 둘 중 하나인 GMI의 책임자가 배리 앵글이기 때문이다.

■ 연 24만대 생산 공장은 어디에?

2010년 24만대에 육박하던 군산공장 생산량은 2017년 10분의1인 2만3000대 수준으로 줄었다. 2011년만 해도 군산공장의 수출액은 39억 달러로 전북 수출액의 30%가 넘었다. 불과 3년 뒤인 2014년 수출액은 반토막이 났다. 이번엔 공장까지 폐쇄한다고 하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00502834_20170307
전북 군산시 소룡동 한국지엠 군산공장(사진: 연합뉴스).

대우차 군산공장은 1997년 세워졌다. 당시 고건 총리가 처음 생산한 차 ‘누비라’의 보닛에 기념 사인을 했다. 불과 2년 뒤 대우그룹이 무너졌고 GM이 대우차를 인수했다. 2002년 GM대우가 탄생했다. GM이 67%의 지분을, 산업은행이 28%를 가졌다. 불과 5000억 정도의 금액으로 인수했는데 ‘공장 부지만 팔아도 그것보다 비싸다’라는 비판이 나왔다. 대우차에 묶여 있던 12조원의 채권단 빚은 1조5000억원가량의 우선주를 대신 지급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거의 저리로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7년 동안 법인세, 소득세 면제 등도 뒤따랐다. 특혜였다.

한때 GM 전체 생산량의 5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잘 나갔지만 그뿐이었다. 본사의 글로벌 전략이 수정되자 한국GM은 곧 나가떨어졌다. 임금이 높아서도, 효율성이 낮아져서도 아니었다. GM은 군산공장에서 제작해 수출하던 크루즈를 호주, 멕시코 등에서 현지 생산하기 시작했다. 유럽 시장에서 철수하면서 갈 길조차 잃게 된다. GM은 ‘온 세상에서 팔리는 차’라는 전략을 버리고 되는 시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자율주행차, 전기차에 초점을 맞추고 자동차 제조업이 아니라 GM이란 브랜드 가치를 팔아먹는 ‘자동차 서비스업’으로의 변신을 추구했다.

AKR20180223140000065_01_i
“군산공장 폐쇄 즉각 철회” 한국GM 노조 결의대회(사진: 연합뉴스)

GM 본사의 꼼수는 치밀했다. 한국GM은 2011년부터 국내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본사에서 3조원 가까운 돈을 차입했다. 그것도 다른 완성차업계의 2배에 달하는 4.8~5.3%라는 고금리였다. 연평균 이자만 1343억원이다. 차입금의 상당수가 운영자금에 쓰인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이 인수 당시 지급했던 1조5000억의 산업은행 보유분 우선주를 되사오는 데 쓰였다. 2013년부터 7%의 배당을 해줘야 하자 다시 되사온 것이다.

2012~2016년 사이 영업이익은 5000억대 적자였지만 당기순이익은 2조 가까운 적자가 났다. 이런 쓸데없는 이자비용에 더해 모기업이 업무지원을 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걷어가고 쉐보레 유럽과 러시아 철수 비용까지 떠넘긴 탓이다. 정말 한국GM의 장기적인 발전을 생각했다면 본사의 자금 대출이 아니라 출자 형식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저 ‘단물’만 빨아먹겠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군산공장을 폐쇄한다고 해서 당장 한국GM 전체가 철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GM으로서도 트랙스, 스파크 등을 제작·수출할 수 있는 능력을 당장 한국GM 외에서 찾기는 쉽지 않다. 이번 군산공장 폐쇄 발표는 이를 계기로 정부로부터 더 많은 특혜와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 요구조건이란 대강 이렇다. 우선 이달 말에 만기도래하는 본사 차입금 5억8000만달러(약 6200억원)에 대해 한국GM이 부평공장 부지 등을 담보로 제공하는 것을 수용해달라는 것이다. 또 한국GM이 본사로부터 빌린 27억달러(약 2조9200억원)의 차입금을 출자전환할 테니 산은도 지분비율(17.2%·약 5000억원)만큼 참여해 달라고 했다. 두 가지 외에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지만 요약하면 군산공장 폐쇄방침은 변함없고, 다른 곳은 잔류한다는 조건으로 1조원 이상의 지원과 세제 혜택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GM은 한편으로 미국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5만 명에게 1인당 1270만원씩, 모두 636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한다. 또 미국 현지 공장에 2800억원을 신규 투자키로 했다고 한다.

GM이 군산공장 폐쇄라는 카드를 들이밀기 전까지 수차례 경고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이 그동안 손 놓고 있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010년 산은은 한국GM의 독자적 생존기반을 만들기 위해 GM 본사와 ‘GM대우 장기발전 기본합의서’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GM이 철수하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기반을 만들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정작 구체적 내용은 지금도 베일에 싸여 있다. 당시 산은은 GM으로부터 한국 자회사 물량 배정을 보장받으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이미 한국GM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 한국GM, 꼭 GM이어야 하나

일단 한국GM은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이달 말 만기인 차입금 회수를 정부의 실사가 끝날 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차입금 보전을 위한 인천 부평공장 부지 담보 제공도 철회하기로 했다. 하지만 3월말까지로 예정된 실사를 마치고 정부는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군산공장과 협력업체를 합해 15만5000명의 일자리가 달린 일이다. 군산공장 폐쇄에 따라 지역경제가 위축되고 여론까지 악화될 판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운신의 폭은 더욱 좁다. 더구나 군산공장 폐쇄 자체는 거의 되돌리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imagesA518F6FZ
(이미지: 연합뉴스)

GM은 늘 해외에서 경영난을 겪으면 해당국에 지원을 요구했다가 거부당하면 매각하고 철수하는 일을 반복했다. 2009년 계열사 오펠이 경영난에 처하자 독일 정부에 지원금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뒤 지난해 결국 철수했다. 사브 역시 스웨덴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자 매각했고, 호주 홀덴도 마찬가지로 호주 정부의 지원이 중단되자 폐쇄의 길을 걸었다.

외환위기 이후 해외에 매각된 사업은 대부분 크고 작든 ‘먹튀’의 길을 걸었다. 대우차의 특별한 상황은 아니다. 정부의 지원과 특혜만 먹고 필요 없어지면 도망가는 사례를 지금껏 너무나 많이 봐 왔다.

기업은 시장논리에 따라 움직이지만 기업 자체의 힘만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한국GM, 과거 대우차와 같은 재벌 계열사는 정부의 엄청난 지원과 특혜를 먹고 자랐다. 국민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셈이다. 어느 정도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기업들을 그저 시장 논리에 내맡긴 채 해외 자본에 매각한 것 자체가 어쩌면 내 지갑을 통째로 남의 손에 맡긴 일이었을 수도 있다.

미국 정부는 2009년 GM이 파산보호 신청을 냈을 당시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대신 60%가 넘는 지분을 소유하며 사실상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했다. 한때 GM은 공기업이었던 셈이다. 한국GM의 주인이 꼭 GM이어야 하는 법은 없다. 당장은 철수하지 않겠지만 이대로 한국GM이 유지된다 해도 서서히 무력화될 것이 뻔하다. 배리 앵글의 얼굴을 하고 다가올 GM과의 협상에서 좀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참고기사]

[이데일리 2018.2.21.]‘밀당의 달인’ GM 앵글 사장이 한국서 만난 사람들

http://www.edaily.co.kr/news/news_detail.asp?newsId=01193926619112816&mediaCodeNo=257&OutLnkChk=Y

[경향신문 2018.2.24.] 한국지엠 사태, ‘제3의 대안’ 마련도 필요하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2241646001&code=940100

[경향신문 2018.2.21.][GM 사태, 어디로](2)4년 전부터 ‘철수’ 경고음…제조업 재편 손 놓고 있다 ‘된서리’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802212209005&code=920501

[노컷뉴스 2018.2.26.] GM이 여전히 못 미더운 이유…돈만 받고 떠나는 ‘먹튀의 달인’

http://www.nocutnews.co.kr/news/4930322

[프레시안 2018.2.23.]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지나쳐선 안 될 GM의 논리와 주장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7033

[프레시안 2018.2.18.]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이 진짜 노리는 것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6436

[프레시안 2018.2.12.]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한국GM, 세무조사할 때가 됐다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85909

[프레시안 2017.9.25.]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3년간 2조 손실? 해괴망측한 GM의 회계장부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70580

[프레시안 2017.9.21.]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GM, 정말 자동차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 맞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70150

[한겨레21 2001.9.26.] GM은 대우차를 거저먹었다

http://h21.hani.co.kr/arti/3578.html

월, 2018/02/26- 15:44
278
0

영화 <매트릭스>는 구원자에 관한 이야기다. (거칠게 요약하면) ‘네오(키아누 리브스)’라는 인물이 갑자기 ‘준비된 자’로 불리고, 컴퓨터 시스템의 지배를 받는 인류를 구원하는 영화다. 영화는 ‘네오’를 처음부터 신봉하는 사람들과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그를 의심하는 이들의 갈등을 부각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정치도 매트릭스의 ‘네오’를 기다린다. 기존 정치권 바깥의 구원자를 열망하고, 또 이에 실망하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정당은 국가 지도자를 키워내지 못하고, 국민들은 희망을 주지 않는 기존 정치권을 불신하고 혐오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¼¿ö½ÌÅÏ(¹Ì±¹)=´º½Ã½º¡½¹ÚÁÖ¼º ±âÀÚ = ¹Ý±â¹® À¯¿£ »ç¹«ÃÑÀåÀÌ 31ÀÏ ¿ÀÈÄ(ÇöÁö½Ã°£) ¹é¾Ç°ü À̽ºÆ®·ë¿¡¼­ ¿­¸° °¢±¹ Á¤»ó¾÷¹«¸¸Âù¿¡ Âü¼®Çϱâ À§ÇØ ¹é¾Ç°ü¿¡ µµÂøÇϰí ÀÖ´Ù. 2016.04.01.  park7691@newsis.com
반기문 대망론. 내년 대선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지 여부일 것이다. (사진 출처: http://www.starseoultv.com/news/articleView.html?idxno=404827)

이러한 흐름을 발판 삼아 대선 주자에 명함을 내미는 ‘3지대형’후보들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15대 대선을 앞두고 박찬종•이인제 전 의원, 17대 대선을 앞두고 고건 전 총리, 문국현 전 창조한국당 대표 등이 등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안철수 현상’을 불러일으킨 안철수 의원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들은 기존 정당의 밖이나 비주류에 있다가 갑자기 대선 후보로 부상했다.

대선을 1년 앞둔, 한국 사회는 또다시 네오를 호출하고 있다. 최근 내년 1월 귀국 의사를 밝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이야기다. 그를 두고 정치권의 계산은 복잡해지고, 유권자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있다. 그는 과연 ‘헬조선’의 ‘구원자’일까, 아니면 이전의 대선 후보들처럼 ‘바람’으로만 그칠까. 

40년 외교관에서 ‘UN의 투명인간’으로

일단 그를 향한 국내외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모두 알다시피 그를 대표하는 이력은 정치인도, 대선후보도 아닌 외교관이다. 

1944년 충북 음성의 한 작은 마을에서 출생한 그는 일찍부터 외교관을 꿈꿨다. 충주고 재학시절 미국 정부가 주최하는 영어 웅변대회에서 입상해 미국을 방문한 구는 존F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장래희망을 외교관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반 총장은 당시를 “외교관의 꿈을 다진 시기”라고 회상한다. 

49a87ec643066
외교관을 꿈꾸던 학창시절의 반기문 총장의 모습. 오른쪽에서 두번째. (사진 출처: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fabiano&list_id=105…)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에 합격해 1970년 외무부에 들어가 40년 넘게 외교관의 길을 걸어왔다. 

49a87ecc644c2
반기문은 고교시절부터 사귀던 유순택씨와 1971년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뒀다. 사진은 1984년 하버드대학 장학생으로 있을 때,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출처: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fabiano&list_id=105…)

하지만 외교관 이력의 정점인 유엔 사무총장 재직시절 그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동안 외신들의 평가를 소개하면 반 총장은 ‘무능하고 최악의 총장’으로 요약된다.

 

  • 반기문은 최고로 아둔한 역대 최악의 총장 중 한 명”(영국 <이코노미스트> 2016년)
  • 반기문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직위에 있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유명무실한 인물”               (미국 <뉴욕타임스>2013년)
  • 유엔을 심각하게 약화시킨 사무총장”(영국 <가디언> 2010년)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너무도 무능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이다.”                                                         (미국 외교전문 격월간지 <포린 폴리시> 2009년)
  • 유엔의 투명인간”(미국 <월스트리트저널> 2009년)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저지른 말실수와 국제 분쟁에서 무력한 모습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 친미 성향이라는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는 지구온난화 분야와,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유엔 사무총장인 탓에 받을 수밖에 없는 엄한 평가이긴 하지만, 일단 그의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3ec9a3105183fefb38e0fd2fe92c47b
2015년 8월, 백악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higoodday.com/?mid=allNews&act=dispOnpostContentView&doc_srl…)

위인전에서 걸어나온 사람

“위인으로 떠올랐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남정호 중앙일보 기자, 김영사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그는 교과서에 나오기까지 하는 등 ‘위인’에 가까운 지위에 올랐다. 2006년 한국인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임명되고 2011년 연임에 성공하며 그에 대한 대한민국 일반의 평가는 하늘로 치솟았다. 

이에 `대망론’이 불거진 뒤, 주요 여론조사 차기 대통령 선호도에서 그는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조사만 봐도 그는 최근 4개월 동안 평균 27%의 지지도를 얻으며 선두를 달리는 상황이다. 

9월 26일 <조선일보>와 미디어리서치의 여론조사를 보면, 반 총장은 여야 13명 예비 후보의 다자 대결 가상 여론조사에서 27.4%로 선두를 달렸고, 유력한 야권의 대선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28.1%)와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14.5%)과의 3자대결에서도 38.5%로 1위를 기록했다. (9월23~24일 1000명 휴대전화 RDD(임의 번호 걸기) 전화 면접조사.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서 3.1%p, 응답률 13.1%) 

게다가 충청권을 중심으로 ‘반딧불(潘)이’, ‘반사모(반기문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의 팬클럽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1
충북 음성 초입의 반기문로에 조성된 반기문 기념광장(사진 왼쪽). 반기문의 생가 앞에 세워진 그의 동상.(사진 출처: http://www.jnjl.kr/m/M_bbs/board.php?bo_table=s1_1&wr_id=1317)

사람도, 대망도…모든 것이 ‘반반’

이는 민주개혁성향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보수성향의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각각 집권한 지난 20년 동안 강화된 정치혐오의 토양에서 ‘비여의도’ 인사에 대한 국민들의 호감이 밑바탕을 깔고 있다. 보통 정치인에 대한 여론조사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여의도의 각종 논란에서 멀어질 때 높게 나타나는 경향도 있다. 

여기에 유력한 친박 대선 주자가 없는 새누리당의 복잡한 사정이 반 총장 ‘대망론’을 부채질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 5월 30일 “한국에서는 반 총장이 유엔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온도 차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처한 딜레마와 닮았다. 대선 후보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게 없지만 ‘준비된 자’로 호명되는 상황 말이다. 

1
역대 선거때마다 등장했던 제3후보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찬종, 이인제, 고건, 문국현, 안철수. 안철수의 도전은 아직 진행중이고, 이번에는 반기문이 제3후보로 등장할지가 관심사다. 제3후보의 부상은 한국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깊은 불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제3후보가 성공한 적은 없다.

이는 이전 3지대 후보들이 겪었던 상황과도 유사하다. 이제 본격적인 검증과 대선 레이스에서 부딪히고 깨지며 그의 대망론이 이어질지 중간에 소멸할지 판명이 날 것이다. 이전 후보들은 그 과정에서 주저앉았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정치권의 각종 풍랑을 거치며 대선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

현재 그의 강점과 단점은 명확하다. 일단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그는 향후 대선의 캐스팅보트를 쥘 것으로 보이는 충청지역의 탄탄한 지지와 여권의 핵심 지지층인 50·60대의 지원을 업고 있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그는 야권의 유력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에 견줘 40~60대에서 강세를 보인다.

반면, 애매한 어법으로 누구에게도 욕먹지 않아 적이 없다는 의미로 쓰인 반반(半半)이란 별명과 아무리 곤란한 질문을 해도 이리저리 빠져나간다는 뜻인 ‘유만(기름 바른 장어)’이란 별명은 앞으로 벌어질 레이스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884b8ddc644a482685ca41063453b089
2014년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 등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은 뉴욕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첫번째 일정으로 UN사무총장 관저에서 반기문을 만났다. 반기문 대망론이 힘을 얻는 것은 친박 진영에 포스트-박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친박 후보라는 이미지는 반기문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 될 것이다.

또 친박세력의 지원을 받을 경우 중도층과 야권 지지층의 외면을 받아 ‘확장성’에 한계를 보일 수도 있다. 

물론 대선을 1년 넘게 앞둔 지금의 전망은 무의미하다. 결국 누가 ‘시대정신’을 선점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냐에 승부는 달려 있다. 

2000년대 이후 대선을 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타파’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민 성공시대’로,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제시해 당선됐다. 

그가 ‘네오’가 될지, 그저 미풍으로 스쳐 지나갈지는 내년 1월 귀국 뒤 행보에 따라 윤곽이 그려질 것이다. 

금, 2016/09/30- 13:47
278
0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상태에서 대통령기록물 지정 권한이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있다는 국가기록원의 자의적인 법률해석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서 중요한 증거가 될 기록물이 폐기되거나 은폐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모든 과정 및 결과가 기록물로 생산.관리되도록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연히 대통령 직무와 관련한 결재문서, 전자기록, 통화기록 등 모든 형태의 자료가 포함된다. 또한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기록물 외에도 비서실이나 경호실 등 소속기관에서 작성한 기록도 모두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한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업무일지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일지 중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이나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 역시 직무수행 과정에서 생산된 결과물이므로 대통령기록물에 포함된다.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 56권은 미르와 K스포츠재단 모금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삼성 지배구조 개편에 관한 대통령의 세세한 지시내용이 담겨 있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구속되는데 이른바 스모킹 건 역할을 했다. 김영한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 등이 담겨 있어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구속에 결정적 단서가 되기도 했다. 이처럼 대통령기록물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혐의를 규명하는데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다.

2017031701_03

문제는 국가기록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상태에서 대통령기록물 지정 권한을 황교안 권한대행이 행사할 수 있다고 해석한데서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황교안 권한대행이 엉뚱한 기록을 지정하거나 불필요하게 과잉지정할 경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차질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청와대 내에서 조직적으로 기록물을 파기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기록물법 2조 1항 문서

국가기록원은 대통령기록물법 제2조 제1항을 근거로 “권한대행에 지정 권한이 있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기록물 관리 전문가들은 국가기록원의 이같은 해석이 잘못됐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관련법에 명시된 조문은 “생산주체를 정의한 것이지 지정권한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또 “대통령기록물 지정은 그 성격상 대통령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정하도록 만들어 놓은 제도”라며 “권한대행의 경우 권한대행 자신의 직무에 관련된 기록물 경우에는 지정권이 있겠지만 권한을 대행하는 그 대통령, 즉 탄핵된 전 대통령의 기록물에 대해서는 지정권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 여부를 규명할 자료가 될 기록이 은폐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황교안 권한대행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전반에 있어 사건들을 은폐하거나 부정하는 방식으로 관여를 해왔다”며 “책임을 져야 할 있는 황 대행이 그런 중요한 결정을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국가기록원의 법률해석이 법제처의 공식적인 유권해석을 거치지 않았다는데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행정자치부 자문 변호인단으로부터 의견을 받은 만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록물 전문가들은 “커다란 논란에도 불구하고 기록원이 법제처의 유권해석조차 받지 않은 것은 매우 경솔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한시바삐 검찰이나 법원이 법죄혐의와 관련된 증거들이 대통령기록물로 봉인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되면 최장 30년까지 봉인되기 때문에 수사나 재판 자료로 활용하는데 제약을 받게 된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국회 재적인원의 ⅔ 이상이 찬성하거나 관할 고등법원의 영장이 있어야만 열람이 가능하다.


취재: 이보람, 연다혜
촬영: 신영철, 정형민, 김기철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금, 2017/03/17- 16:21
27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