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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참을 수 없는 판결의 가벼움: 신생아에게 직접 산재보험을 청구하라는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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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참을 수 없는 판결의 가벼움: 신생아에게 직접 산재보험을 청구하라는 법원

익명 (미확인) | 월, 2016/06/20- 12:16

임신 중인 여성 노동자가 일터에서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노출되어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성노동자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태아의 선천성 질환을 산재로 인정해달라는 이 여성노동자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업무환경과 태아의 선천성 질환과의 인과관계가 부인된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면 현행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에 대해 적용되는데, 이미 출생한 자녀의 선천성 질병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업무상 환경에 의해 장애를 입고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는 아무런 보호를 하지 않겠다는 것일까요? 조영관 변호사의 비평칼럼을 통해 이번 고등판결의 문제점을 살펴보겠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태아의 선천적 장애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서울고등법원 판결

 

참을 수 없는 판결의 가벼움 : 신생아에게 직접 산재보험을 청구하라는 법원

서울고등법원 2015누31307 요양급여신청반려처분취소

 

조영관 변호사

조영관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상근변호사

 

법은 최소한이다. 

 

독일의 법학자 엘리네크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여 마땅히 지켜야 하는 원칙 중 최소한을 “법” 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한다는 뜻이다. 세상 모든 일을 빠짐없이 ‘법“으로 정해둘 수 없기 때문이고, 뒤집어 생각해보면 “법”이 미처 정하지 못한 공백은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상식적인 원칙에 따라 메워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법의 흠결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를 위해 우리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자신의 “양심” 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103조). 가장 정제된 법 규범에 의하여, 가장 논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법관에게 “양심” 이라는 뜨거운 명령을 따라야 한다고 정한 이유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양심에 따라 심판하는 것은 법관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법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법 해석에 매우 소극적이다. 강자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판결에서는 무슨 뜻인지 분명하게 정의할 수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신의성실, 사회통념상 합리성, 관습헌법)이 자주 사용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형식적인 법논리에 매여 정작 중요한 원칙은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 유행어에 빗대면, “뭣이 중헌지” 전혀 모르는 모양새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판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만약, 임신 중인 여성노동자가 일터에서 일하다 업무상 유해요소에 노출되었고, 이로 인하여 태아가 유산되었다면 업무상재해로 인정되어 산재보험의 적용대상이 된다. 그런데 만약 태아가 포태 중 사망하지 않고,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라면 어떨까? 태아에게 발생한 질환이 출생 이후의 요인에 의한 후천적 질병이 아닌 선천성 질환이 분명하고, 그 발병요인도 포태 중 업무상 유해요인에 의한 것임이 의학적으로 분명하다면 태아의 선천적 질환 역시 “업무상 재해”에 준하여 치료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사안은 이렇다. 2009년 제주의료원 소속 간호사들 중 15명이 임신을 하였는데, 그 중 5명은 유산을 하였고 4명은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다. 결국 간호사의 근로여건과 작업환경이 노사간 쟁점이 되었고, 제주의료원은 2011년에 노사합의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하였다. 역학조사 결과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제주의료원에서 임신 중에 근무하면서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 주야간 교대근무, 임산부와 태아에게 유해한 약물 등과 같은 작업환경상의 유해요소들에 일정 기간 지속적ㆍ복합적으로 노출된 후 선천성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를 출산하였으므로, 이러한 선천성 심장질환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넉넉히 추단할 수 있다” 고 하여 업무상 인과관계가 인정되었고, 이에 선천성 심장질환을 출산한 근로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신청을 하였다. 1심 법원은 업무에 기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산재보험의 대상이 되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 된다고 판단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이를 뒤집고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항소심 법원은 산재보험은 “근로자 본인의 질병”을 적용대상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근로자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질병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항소심 법원은 판결문에서 “출산 이후에는 어머니가 아닌 출산아가 지닌 선천성 질병으로 바뀌므로 그 업무상 재해는 원고(어머니)들과는 독립된 법인격체인 원고들의 자녀에 대한 질병” 이라고 하면서, “출산으로 모체와 출산아가 분리되는 이상 그 질병은 출산아가 지닌 것” 이므로, “산재보험법이 업무상 사유로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린 그 근로자가 요양급여를 청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 이상 원고들이 아닌 자녀(신생아)에게 보험급여의 수급권이 인정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 되므로 원고들에게는 수급권이 인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엄마 뱃속에서 태아로 있을 때는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던 질병이, 살아서 태어난 이후에는 독립된 법인격체인 신생아의 선천성 질병으로 바뀐다는 해석도 기괴하고 소름이 돋지만, 산재보험의 수급권이 신생아에게 있을 뿐 근로자인 산모에게 없으니 청구를 기각한다는 대목에서는 그 논리의 가벼움에 부끄러워 더 이상 읽을 수가 없다. 태아가 산재보험을 청구하면 근로자가 아니라서 인정할 수 없다고 할 텐데. 앞으로 임신한 여성노동자는 출산을 앞두고 태아의 이름으로 산재보험에 가입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인가? 선천성 질환이라는 상처를 온몸으로 껴안고 태어난 것이 무슨 잘못이기에 공적인 보호를 배제하겠다는 것인가? 산재보험 제도가 정말 그런 것인가?

 

산재보험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적보험이다. 

 

국가는 모성의 보호를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6조 제2항). 우리 헌법이 모성권 보호를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는 임신과 출산, 양육이라는 재생산 과정 없이 공동체가 존속할 수 없으므로 임신, 출산, 양육에 필요한 보호를 개인에게 전가하지 아니하고 공공영역에서 마련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 헌법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는다고 선언(헌법 제32조 제4항)하고 있는데, 이는 임신과 출산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업무상 유해요소로부터 여성과 태아가 충분한 보호를 받아야 함을 뜻한다. 

 

그러나 모성보호와 여성근로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천명하고 있는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하여 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는 임신 중인 여성근로자에 대한 내용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현대 산업보건학계에서 유산이나 불임, 2세의 선천성 질환과 같은 생식보건의 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이 적지 않을 뿐더러, 다양한 분야의 산업현장에 만연한 교대근무제가 노동자의 생식기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도 많다. 즉 생식보건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능히 예상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에 해당함에도,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는 그 위험에 적절히 대비하고 있지 못하다. 특히 ‘2세의 선천성 질환’ 문제에 대하여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 매우 중대한 제도적 불비이고 입법의 흠결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우리 법원처럼 형식적인 해석을 하지는 않았다. 

 

독일의 경우가 좋은 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여성 노동자가 임신 중에 업무에 기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고 그로 인해 선천성 장애아가 출생한 사건에서 “산재보험에서 보험사고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업무상의 사유로 근로자에게 발생한 재해[…]” 라고만 규정하고 있었던 당시의 독일제국보험법(RVO) 제539조 제1항을 해석․적용함에 있어서 그 장애아를 산재보험급여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독일기본법 제20조 제1항의 사회국가원리를 구현함에 있어서 ‘본성상 단일체’(natürliche Einheit)인 임신한 여성근로자와 태아를 합리적 근거 없이 차별하는 것이어서 독일기본법 제3조 제1항의 평등의 원칙에 위반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위헌결정을 하였다. 1977년에 있었던 판결이다. 

 

이후, 입법부는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취지를 반영하여, 독일사회법제 제7권 제12조에서  “임신 중 모(母)의 보험사고로 인한 태아의 건강손상도 보험사고에 해당하며, 그러한 한도 내에서 태아는 피보험자와 동일하다. 업무상 질병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모에게 업무상 질병을 야기할 수 있을 정도의 유해요소로 인하여 태아에게 건강손상이 발생하였다면 (비록 모에게는 업무상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는 보험사고로 본다.” 라고 규정하였다. 동일하게 임신한 여성 노동자의 업무에 따른 태아의 건강손상에 대한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40년 가까운 시간을 거슬러 두 나라 법원이 보여준 상반된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제도의 목적은 “작업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보건상의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만 전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이를 분담토록 하는 것”(서울행정법원 2014. 11. 7. 선고 2011구단8751 판결 등)이다. 이 사건 원고들의 자녀가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것은 제주의료원에서 발생한 안전보건상의 위험에 해당하고, 그러한 위험을 사용자나 근로자 어느 일방에게 전가하지 않고 공적 보험을 통해 산업과 사회 전체가 분담토록 하는 것이 산업재해보상보험 제도의 목적에 충실한 해석이다.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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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여섯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2년 12월 27일 합헌으로 결정한 구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등에 관한 법률 부칙 제2조 제1항 위헌제청 (“전자발찌”소급적용 사건)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는 비평을 서보학 교수(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가 집필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전자발찌 부착명령’의 소급적용을 매우 폭넓게 허용한 전자장치부착법 부칙 제2조 제1항에 대해 전통적 의미의 형벌과 구분되는 보안처분이며 보안처분에는 형벌불소급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며 헌법상 비례성의 원칙을 충족함으로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려습니다. 이번 판결비평에서는 헌재가 결정한 합헌 논리가 타당한지에 대해 따져봤습니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①]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 장철준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②]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 이종수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③] 국가의 DNA 채취행위, 첫 제동이 걸리다 / 조지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④]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다워야 / 하태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⑤]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 / 이상희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⑥] 국가형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둔감한 헌재 / 서보학

국가형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둔감한 헌재

구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등에 관한 법률 부칙 제2조 제1항 위헌제청

(별칭 : “전자발찌”소급적용 사건) 2010헌가82, 2011헌바393 병합

재판장 이강국 재판관 송두환 박한철 이정미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보학(경희대_법학전문대학원).jpg

서보학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문제가 된 구 전자장치부착법 부칙 제2조 제1항은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국가통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전자장치(통칭 전자발찌) 부착명령’의 소급적용을 매우 폭넓게 허용하였다.

즉 전자발찌의 소급부착을 (i) 유죄 선고가 확정되어 형 집행 중에 있는 자 및 심지어 (ii) 출소 후 3년이 경과하지 않은 형 집행 종료자에 대해서까지 허용하였다. 이 조항의 위헌성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합헌결정을 내렸다. (i) 전자장치부착 명령은 전통적 의미의 형벌과 구분되는 보안처분이며 보안처분에는 형벌불소급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ii) 성폭력범죄자의 재범을 막고 사회를 방위하기 위한 목적의 전자발찌는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되며 중대한 공익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므로 법익균형성원칙에도 합치된다. 헌법상 비례성의 원칙을 충족한다는 것이었다. 아래에서 과연 헌재 결정의 합헌 논리가 타당한지 따져보자.

 

 

첫째, 전자발찌는 보안처분인가

 

일반적으로 형벌은 과거의 행위책임을 근거로 부과되는 제재이고 보안처분은 재범가능성이라는 미래의 위험성 때문에 부과되는 제재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대법원 2009.5.14. 선고 2009도1947, 2009도5 판결)은 전자발찌를 보안처분의 일종으로 보고 있으나 형법은 전자발찌의 법적 성격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생각건대 전자발찌의 법적 성격은 부과근거 및 제재효과를 근거로 실질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외국에서는 전자감시가 가석방시 보호관찰과 결합된 중간제재의 형태나 경미한 범죄에 대한 대체제재로 도입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전자장치부착은 가석방과 집행유예시 보호관찰과 결부시키는 유형보다는 형집행 종료 후 피처분자의 감시와 통제를 위한 목적에 중점을 두고 도입되었다. 특히 징역형 종료 후의 전자장치부착은 최대 30년의 기간 동안 부착을 명할 수 있고, 여기에 준수·제한사항까지 부과할 수 있어, 비록 자유의 완전한 박탈은 아닐지라도 그 어떤 형사제재보다도 강력하고 가혹한 제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특히 전자장치부착이 일정한 준수·제한사항과 결합될 경우 피부착자의 직업선택의 자유 및 거주이전의 자유에 중대한 제한을 가져오게 된다. 따라서 전자장치부착은 그 자체로서 이미 형벌이거나 형벌과 함께 제재의 효과를 더욱 가중시키는 목적을 가진 부수형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전자장치부착제도의 법적 성격은 보안처분이 아니거나 적어도 순수한 보안처분이 될 수 없다. 앞의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전부위헌의 입장에 섰던 재판관(송두환)의 견해도 이점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 “전자장치부착의 제재를 부과하는 목적과 의도, 전자장치부착으로 인하여 그 대상자에게 미치는 실제적 효과 등에 비추어 보면, 전자장치부착은 형벌에 못지않은, 강한 ‘형벌적 성격’을 가진 형사상 제재이므로, 전자장치부착이 형벌적 성격을 갖는 이상, 일정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하여 전자장치부착을 명하기 위해서는 그 범행 당시에 이미 전자장치 부착의 근거가 되는 법률이 제정, 시행되고 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 전자발찌의 법적 성격이 순수한 보안처분이 될 수 없고 실질적인 형벌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형사제재임을 부인할 수 없다면 당연히 소급효금지 원칙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둘째, 설혹 전자발찌를 보안처분으로 보더라도 소급적용을 허용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과거의 행위책임을 근거로 부과되는 형벌은 소급적용이 엄격하게 금지되나 행위자의 위험성을 근거로 장래의 범죄를 예방하고 사회를 방위하기 위해 부과되는 보안처분은 그러한 원칙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형벌과 구별되는 보안처분에도 소급효금지 원칙이 적용되는가에 관해서는 학설상 다툼이 있고 각국의 입법례도 다르다. 형사법학계의 다수설은 보안처분이 기본권의 제한·침해의 정도에 있어서 형벌 못지않은 불이익의 실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보안처분에 대하여 소급효금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면 형벌불소급원칙의 의의가 상실될 우려가 있으므로 당연히 보안처분의 소급 적용은 금지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형법은 일부 보안처분의 소급적용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오스트리아 형법은 이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생각건대 법치국가 형법에서 소급효금지 원칙이 인정되는 근거는 단순한 책임원칙의 준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질서에 대한 시민의 예견과 신뢰를 보호하고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침해를 방지함으로써 법적 생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소급효금지 원칙의 근본적 의미와 목적은 국가권력의 구속과 제한에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 보안처분은 명칭에 있어서만 일반 형벌과 다를 뿐 시민의 자유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실제 제재의 효과에 있어서는 형벌과 아무런 차이를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독일 형법학계에서는 보안처분이 명칭만 다를 뿐 실질에 있어서는 형벌과 다름이 없기 때문에 국가의 형사제재가 보안처분이라는 미명하에 법치국가적 제한을 벗어나려고 한다면 이는 ‘명칭사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가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사실상 형벌과 다름없는 제재수단인 보안처분이 사후에 만들어져 소급 적용되거나 피처분자에게 사후적으로 불리하게 변경되어 적용된다면 시민의 권리가 예측할 수 없는 방법으로 침해당하고 그로 인해 법적 안정성이 크게 훼손당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국가의 형사제재수단인 보안처분도 소급효금지 원칙의 적용대상에서 결코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셋째, 헌법상 비례성의 원칙에 합치되는지

 

전자발찌의 소급 적용은 입법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그리고 법익균형성의 관점에서 비례성의 원칙에 반한다. (i) 국가가 이미 자신의 죗값을 정당하게 치룬 사람들을 부당하게 희생시켜 사회방위라는 공익목적을 추구하려는 부칙 제2조 제1항의 입법목적은, 시민 개개인을 목적으로 존중하고 개인의 법적 안정성을 보호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현행 헌법질서에 의해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 (ii) 전자발찌의 부착은 피처분자의 감시와 처벌에 중점이 놓여 있기 때문에 ‘재범방지’와 ‘성행교정을 통한 재사회화’ 목적을 달성하는데 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iii) 형이 확정되어 형의 집행 중에 있거나 형 집행의 종료로 이미 죗값을 치룬 사람들에 대해서는 보호관찰이나 치료프로그램 등 보다 덜 침해적인 수단을 선택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률적으로 가장 중한 제재수단일 뿐만 아니라 재사회화의 효과도 불분명한 전자발찌를 부착하도록 명령하는 것은 ‘피해의 최소성’ 요구에 반한다. (iv) 전자발찌를 소급하여 부착하는 경우 재범방지라는 공익에 비해 피부착자가 입는 피해(정상인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다는 신뢰에 대한 침해, 직업선택의 자유 및 거주이전의 자유 등에 대한 중대한 제약, 그로 인한 재사회화의 어려움 등)가 매우 중대하여 공익과의 균형성을 유지할 수 없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강력범죄, 특히 성폭력범죄에 대한 강력대응의 일환으로 전통적 의미의 형벌과 보안처분의 성격을 벗어난 다양한 종류의 형사제재가 도입되고 있고 그 적용에 있어서도 소급효금지 및 과잉침해금지의 한계를 벗어나는 예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 형사제재는 피처분자의 생명 또는 자유의 박탈 및 제한을 내용으로 하기 때문에 시민의 인권 및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가에 의한 형사제재의 부과는 인권 및 법적 안정성의 보장을 핵심으로 하는 헌법의 기본가치질서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기본원칙을 확인하고 지켜야 할 헌법재판소가 국가 형벌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 매우 둔감함을 드러낸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헌재가 기본권 수호의 최후 보루라는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결정이었다. 6기 헌법재판소의 각성을 기대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판결비평은 <오마이뉴스><슬로우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화, 2018/10/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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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다섯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8년 8월 30일 일부위헌으로 결정한 민주화보상 제18조 제2항(과거사 민주화보상법 ‘재판상 화해 간주’ 사건)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는 비평을 이상희 변호사(참여연대 공익제보자지원센터 실행위원)가 집필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권력이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나 조작의혹사건은 일반적인 손해배상청구권과 다른 특수성이 있으므로 그에 대해 소멸시효에 관한 일반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습니다. 뒤늦게나마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무리한 법해석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결정이지만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였다는 점 등 아쉬운 지점에 대해서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①]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 장철준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②]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 이종수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③] 국가의 DNA 채취행위, 첫 제동이 걸리다 / 조지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④] 영장주의의 예외는 예외다워야 / 하태훈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⑤]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 / 이상희

 

사법부가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부가 저지른 국가범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 제2항 위헌소원

(별칭 : 과거사 민주화보상법 ‘재판상 화해 간주’ 사건). 2014헌바180

재판관 이진성 재판관 김이수 김창종 안창호 강일원 서기석 조용호 이선애 유남석

 

이상희.JPG

이상희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의 문제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진성 소장이 퇴임을 앞두고, 사법 농단 의혹이 있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확정된 과거사 판결에 대해 위헌 여부를 선고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기대 반 우려 반으로 그 날을 기다렸다. 그들 중에는 1980년대 초반 노조 활동으로 해고되어 노동운동에 헌신하다가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사망한 여동생 A를 위해서 국가에게 불법행위 책임을 묻겠다고 소송을 제기했으나 소멸시효로 패소한 오빠도 있었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제대로 취업도 못하고 평생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살다가 나중에 진상규명이 되어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민주화보상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각하 판결을 받은 피해자 B도 있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10년 6월 30일 동일방직, 청계피복, 원풍모방, 서통노조, 태창섬유노조, 남화전자 노조 등에 대한 노동기본권 등 인권침해 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노동조합활동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조합원들의 해고를 지시하여 노동조합을 와해시켰으며 블랙리스트의 형태로 해고 노동자의 명단을 관리하고 배포하여 그들의 생존권을 위협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일부 피해자들이 먼저 소송을 제기하여 국가배상판결을 받았다. A의 유족과 B는 늦게 연락을 받고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이 있은 지 2년이 지나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같은 사건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판결을 받은 선례가 있었기에 A의 유족과 B는 1심에서 당연히 승소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국가는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사실관계를 부인하거나 소멸시효를 주장하면서 책임을 부인하였고, 1심 판결에 대하여 항소를 했다.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항소심도 당연히 승소할 거라고 생각했다. 항소심 법원(서울고등법원)은2013. 5. 10. 첫 변론기일을 진행하면서 바로 그 날 변론을 종결하고 2013. 7. 12.로 판결선고기일을 지정하였다. B는 2006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하 ‘민주화보상법’이라고 함)에 따라서 생활지원금을 받았다. 다른 소송에서는 국가가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이 법에 의한 보상금 등의 지급결정은 신청인이 동의한 때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에 대하여 민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재판상 화해가 성립된 것으로 본다)에 따라서 소각하 주장을 하였는데, 이 사건에서는 국가가 그런 주장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일어났다. 재판부가 갑자기 이미 지정한 선고기일을 취소하더니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선고기일을 지정하지 않은 것이다.

 

B가 위암 투병 중에 있어서 필자가 수시로 법원에 선고기일 지정요청을 하였으나 소용 없었다. 그 사이 대법원은,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생활지원금 등의 보상금을 받았다면 민주화보상법 제18조 제2항에 따라 손해배상청구등 그가 보상금을 지급받은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입은 피해 일체에 대하여 재판상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고 보고 손해배상청구를 각하한다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15. 1. 22. 선고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 판결 / 관련 판결비평은 http://bit.ly/2CjkcYn 참조). 서울고등법원은 위 대법원 판결 이후 변론기일을 다시 지정하더니 국가에게 재판상 화해규정에 따른 항변할 기회를 준 다음 2015. 12. 18. B청구에 대하여 각하 판결을 하였다. 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기 위해 1년 6개월이 훨씬 넘는 시간 동안 선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판 내용만큼이나 재판절차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의문은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이 2018. 5. 25. 발표한 조사보고서를 통해 조금이나마 밝혀졌다. 위 조사보고서에서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 체제는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사례 중 하나로 ‘과거사정리위원회 사건’과 ‘대통령 긴급조치 사건’에서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그 요건을 정립’한 것을 들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소멸시효를 제한한 판결과 위 대법원 2012다204365 전원합의체 판결을 들었다. 즉, 양승태 체제의 대법원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한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정권에 협력하기 위하여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기 위하여 위 판결을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 하에, 대법원은 1심에서 승소하여 서울고등법원에 올라온 B 사건에 대하여 선고를 연기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서울고등법원이 1년 6개월 이상 선고기일을 미룬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난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7:2의 의견으로 민주화보상 제18조 제2항에 대하여 일부위헌 결정을 하였다.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위자료)배상청구까지 재판상 화해로 보아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는 일반적으로 적극적·소극적·정신적 손해에 대한 청구로 분류되는데, 민주화보상법 상 보상금 등의 지급대상과 그 유형별 지급액 산정기준 등에 의하면 보상금은 적극적·소극적 손해에 상응하지만, 정신적 손해에 대한 청구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에 대한 국가배상청구마저 금지한 것은 국가배상청구권을 침해한 것이고,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규정한 헌법 제10조 제2문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으로서 지나치게 가혹한 제재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뒤늦게나마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무리한 법해석을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B의 사건으로 돌아가 보자. B는 민주화보상금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공권력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운영에 위법하게 개입하였는지 알지 못했다. 민주화보상법의 입법취지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희생된 사람과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명예회복과 보상을 하여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므로, 처음부터 공권력의 위법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은 위원회의 업무가 아니었다. ‘블랙리스트’에 대하여 유령처럼 떠도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원고의 블랙리스트를 공권력이 작성·운영하여 B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였다는 사실은 2010년 6월 30일이 되어서야 규명되었다. 

 

유엔은 2005. 12. 16.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에 따라서 이미 인정되고 있는 피해자의 권리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국가의 법적 의무를 한데 모은 「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행위와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행위의 피해자 구제와 배상에 대한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이하 ‘피해자 권리 기본원칙’)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는데, 피해자의 권리를 정의·배상·진실에 대한 권리로 규정하였다. 사실의 인정과 진상규명, 법적 배상은 이러한 권리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이다. 피해자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통해 공권력의 위법성에 대하여 법적판단을 받고 배상을 받는다는 점에서, 정의·배상·진실에 대한 권리의 실현을 위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국가배상청구의 핵심은 ‘공무집행의 위법성’과 이에 대한 국가의 법적책임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국가배상청구가 갖는 의미와 성격을 고려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민주화보상법 제2조 제1호 정의규정("민주화운동"이란 1964년 3월 24일 이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하여 헌법이 지향하는 이념 및 가치의 실현과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신장시킨 활동을 말한다.)을 통하여 보상의 대상이 되는 행위의 불법성을 일정 부분 인정하였다”고 보고 보상금 수령을 통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까지 일부 면책된다는 취지로 결정하였다. 법원이 공권력의 불법행위를 제대로 직시하지 않고 면죄부를 준 사이, 박근혜 정권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판사블랙리스트를 통해 국가범죄를 반복하였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판결비평은 <오마이뉴스><슬로우뉴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화, 2018/10/1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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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이진성·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등 5명의 헌법재판관이 임기(2012~2018)가 만료되었습니다. 이로써 막을 내린 헌법재판소 5기 재판부는 헌법재판으로 분류되어 있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신청사건 및 특별사건 등 여섯가지 종류의 재판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5기 재판부가 내린 결정 가운데 시민들의 요구와 기대에 부흥했거나 또는 기대에 못 미쳤던 판결을 골라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을 진행합니다. 5기 재판부에 대한 판결비평을 통해 새로 임기를 시작하는 차기 재판부에 대한 사회적 기대를 그려보고자 합니다.

 

특집 두 번째로 헌법재판소가 2017년 3월 10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결정에 대해 의미를 짚어보는 비평을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집필하였습니다. 특히 재판관 전원 일치의 탄핵인용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추사유들에 대한 법 위반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에 대한 평가와 함께 현 사법농단 사태에 주는 교훈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①] ‘정치적 인간’들을 위한 정당법

[판결비평 헌재5기특집②]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광장의 성난 민심이 스스로 민주공화국의 시민임을 확인하다

대통령 탄핵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2016헌나1

재판장 이정미(소장대행) 재판관 강일원(주심) 김이수 이진성 김창종 안창호 서기석 조용호

 

이종수(연세대 로스쿨 교수).PNG

이종수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최종 선고가 예정된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말 그대로 폭풍전야의 팽팽한 긴장감이 헌법재판소와 그 주위를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에 온 국민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졌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서 석 달여가 흘렀다. 그새 헌법재판소에서는 세 차례의 변론 준비 기일과 열일곱 차례의 변론 기일을 통해 변론과 증거조사가 진행되었다. 최근에 뒤늦게 알려졌듯이 그 시간에 청와대와 군(軍) 일각에서는 만일 탄핵이 기각되는 경우에 위수령 발동과 심지어 계엄 선포를 준비했다하니 실로 전운(戰雲)이 감돌았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닐 터이다. 어쨌든 숨 가쁘게 진행되어온 탄핵정국은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으로 막을 내렸다. 이것이 해피 앤딩인지 새드 앤딩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현직 대통령이 임기 중에 직에서 쫓겨나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임은 분명하다. 필자 또한 한 시민으로서 짐작과는 다르게 대통령직을 잘 수행해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어 주기를 진정 바랬다. 그런데 실망은 기대의 좌절이라고들 한다. 애당초 기대한 바가 적었으니 크게 낙담할 일도 아닌 셈이다. 스모킹 건이 된 문제의 태블릿 PC를 탓할 일이 아니다. 마지막 한 짐이 지친 낙타를 쓰러트린 게 아닌 것처럼.

 

여느 시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결정 선고가 있기까지 필자를 포함해서 대다수 법학자들은 드러난 비리사실로 판단할 때에 이번 탄핵심판에서 인용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헌법재판관 전원이 일치된 의견으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이 결정이 있고서 일각에서는 정치적인 재판이라며 강하게 반발한다. 헌법재판이 본질적으로 정치적 사법작용이기에 일부는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의적인 재판은 결코 아니다. 지난 2004년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의 기각결정이 이를 방증한다.

 

국회가 제기한 여러 탄핵소추사유를 두고서 헌법재판소는 ① 비선조직에 따른 인치주의로 국민주권과 법치국가 원칙 등 위배, ② 대통령의 권한 남용, ③ 언론의 자유 침해, ④ 생명권 보호의무 위반과 직책 성실 수행 의무 위반 등 4가지 유형으로 소추사유를 다시 정리하였다. 구두변론과정에서 대통령측 소송대리인들은 탄핵심판의 적법요건과 관련하여 소추사유의 불특정성, 탄핵소추안의 국회 의결절차상 위법성 그리고 8인 재판관에 의한 탄핵심판 결정의 부당성을 문제 삼았으나 헌법재판소는 조목조목 이 주장들을 모두 배척하고서 탄핵소추가 적법하다고 밝혔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박탈하는 것으로서 국정 공백과 정치적 혼란 등 국가적으로 큰 손해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해악이 중대하여 대통령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커야 한다. 즉 ‘탄핵심판 청구가 이유 있는 경우’란 대통령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한 헌법이나 법률 위배가 있는 때를 말한다.” 이 부분에 관한 판단 법리는 지난 2004년에 있었던 노무현대통령 탄핵심판사건(2004헌나1)에서 이미 정리된 바가 있기에 헌법재판소는 이를 거듭 재확인한 셈이다.

 

혼군방벌(昏君放伐), 즉 “어리석은 임금을 내치다.”

 

관건은 대통령이 범한 법 위배 행위의 ‘중대성’ 여부에 있다. 헌법재판소는 최순실 등의 사익 추구를 위해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등에서 정하는 공익실현의무 위반, 사익 추구의 목적으로 기업들에게 거액의 기금 출연 등을 강요하여 헌법상 보장되는 기업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 및 중요한 국가기밀이 포함된 다수 문건의 유출에 따른 국가공무원법상의 비밀 엄수 의무 위배를 확인하였다. 그간 검찰 및 특검 조사에 대한 불응 등 대통령의 헌법수호의지 박약을 탓하면서, 헌법과 법률에 위배된다고 인정된 여러 소추사유들이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행위로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임을 밝혔다. 이어서 이 같은 법 위배 행위가 헌법 질서에 미치게 된 부정적 영향과 파급 효과가 중대하므로 국민으로부터 직접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대통령 파면에 이르는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확인하고서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파면을 결정하였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대응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 위반을 밝히는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 그리고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니는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관련 헌법 개정을 촉구하는 안창호 재판관의 보충의견이 덧붙여졌다.

 

재판관 전원 일치의 탄핵인용결정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추사유들에 대한 법 위반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부분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헌법 제84조에서 정하고 있는 이른바 ‘형사불소추특권’으로 인해 피청구인인 현직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어렵고,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도 불응하는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의 증거조사에 나름 한계가 있다는 사실에 한편 수긍하지만, 헌법재판소가 결정문에서 거듭 확인하듯이 탄핵심판의 본질과 성격이 형사재판과는 다름을 전제한다면 이 부분은 보다 적극적으로 달리 판단할 수 있었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로서는 중대한 법 위반으로 인정되는 여러 소추사유들로도 피청구인의 파면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이 확보되었지만, 만일 기각결정이 내려졌다면 헌법재판소가 인정하지 않은 일부 소추사유들이 두고두고 내내 시비꺼리가 되었을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결정이 있고서 관련 여러 사건들에 대한 특검의 본격적인 수사와 기소에 따라서 법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세월호 사고 이후 대통령에 대한 최초 보고시간과 당일 동선 등이 조작·은폐되었음이 드러났고, 아직 최종심급은 아니지만 문체부 고위 공무원 사직 강요행위 등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유죄가 선고되었다. 헌법재판소가 받아들이지 않은 일부 소추사유들의 정당성이 뒤늦게 확인된 셈이다. 이로써 김이수, 이진성 두 재판관이 덧붙인 보충의견에 못내 아쉬운 눈길이 쏠리고, 한편 다행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헌법재판소의 이 결정이 있고서 수많은 촛불은 들불로 번지지 않은 채 조용히 사그라졌고, 광장은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다시 떠들썩하다. 선거를 통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서 그간 북핵으로 인해 일촉즉발의 긴박한 위기상태에 놓여있던 한반도는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한 정상들 간의 대화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다. 흔히들 재판이 분쟁의 평화적 해결수단이라고 말하는데, 헌법재판소의 이번 탄핵인용결정은 정치공동체에 다시 평화를 가져오고, 또한 민주헌법국가에서 헌법적 질서에 반하는 그 어떤 무소불위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값진 교훈을 남겼다. 최근 불거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에 즈음해서 관련 법관들에 대한 탄핵 역시 더 이상 금기가 아니게 된 셈이다. 이번 결정과 함께 남겨진 교훈은 이렇듯 그 힘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이라 굳게 믿으면서 글을 맺는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금, 2018/10/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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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xe_content"><blockquote> <p>해방 직후의 어두운 한국 현대사 속에서는 유독 '법'의 얼굴을 쓰고 자행된 국가 폭력이 많았습니다. 이런 불행한 과거사들을 마주하는데 있어서 오늘날의 법원이 보여야할 태도는 무엇일까요.</p> <p>지난 1월 17일에 선고가 나온, 제주4·3사건 수형 생존자 18명에 대한 재심 재판은 어두운 과거사를 대하는 현대 사법의 역할과 태도에 대해 시사점을 주는바가 많습니다. 법적근거나 절차가 불분명한 '군법회의'를 빌미로 무고한 제주도민들에게 내려진 70년 전의 유죄판결을 법원이 바로잡는 과정과 의미에 대해, 김종민 전 국무총리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이 되돌아봤습니다. </p> </blockquote> <p> </p> <h1>실체적 진실에 충실한 역사적 판결</h1> <h2>[광장에 나온 판결] 제주4·3사건 생존 수형자 18명에 대한 재심 무죄판결(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 재판장 제갈창 판사, 2017재고합4)</h2> <p> </p> <p><img alt="" src="http://www.peoplepower21.org/files/attach/images/37219/447/585/001/3826…; style="width:139px;height:183px;" /></p> <p><strong>김종민 전 국무총리소속 4·3중앙위원회 전문위원</strong></p> <p> </p> <p>판결문 <a href="https://drive.google.com/open?id=1e5f1EfF2Lh-FxnK0wZzppqwmmRTIjFkJ&quot; target="_blank" rel="nofollow">[원문보기 / 다운로드]</a></p> <p> </p> <p>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제갈창)는 2019년 1월 17일 ‘제주4·3군법회의’ 수형인 18명에 대한 재심사건(2017재고합4)에서 모두에게 사실상의 무죄판결인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하였다. 이로써 재심 청구인들은 70여 년 만에 억울한 ‘전과자 낙인’을 지울 수 있었다. 판결문조차 없는 사건에 대해 재심개시 결정을 한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거니와 공소기각 판결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선고 당일에 즉각 환영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는 이 판결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가 워낙 크기 때문일 것이다.</p> <p> </p> <p> </p> <p><strong>탄압, 항쟁, 그리고 대학살</strong></p> <p> </p> <p>이 사건 판결의 의미를 따져보기 위해 우선 ‘제주4·3’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00년 제정된 4·3특별법에 따라 구성된 국무총리소속 4·3위원회는 2003년 공식 보고서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p> <p> </p> <p>해방 직후부터 제주도 밖에서는 치열한 좌·우 이념대립 속에서 1946년 ‘대구 10월 사건’ 등 인명이 희생되는 큰 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제주도는 미군정청 공보관인 케리 대위가 신년사에서 “육지와 달리 불행한 소요사태가 없었다는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제주신보』, 1947. 1. 1.)이라며 감사의 말을 할 정도로 평온했다.</p> <p> </p> <p>하지만 1947년 3·1절 기념식 때 다른 지방에서 온 응원경찰의 무분별한 발포로 주민 6명이 희생된 사건은 제주도를 순식간에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뜨렸다. 경찰 발포에 항의해 대대적인 ‘민·관 총파업’이 벌어졌고, 이에 대해 미군정 경찰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규정하며 검거 선풍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4·3무장봉기가 벌어질 때까지 1년간 무려 2,500명이 구금되었다. 그 무렵 미군 감찰반이 “제주도 유치장은 최악이다. 3.3평의 한 감방 안에 35명이 갇혀 있다”고 보고할 정도로 유치장은 차고 넘쳤다. 무장봉기 한 달 전인 1948년 3월에는 경찰에 의한 3건의 고문치사 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탄압의 국면’이었다.</p> <p> </p> <p>그러자 ‘항쟁의 국면’이 펼쳐졌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경, 한라산 중허리 오름마다 일제히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이를 신호로 약 350명의 무장대가 제주도내 경찰지서 12곳을 동시에 공격했다. 또한 서북청년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지목, 습격해 살해했다. 무장대는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 조국의 통일독립”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무장대는 5·10선거를 무산시키기 위해 주민들을 산으로 올려 보냈다. 결국 제주도는 3개의 선거구 중 북제주군 갑구와 을구 2곳의 선거가 무산되었다. 전국 200개 선거구 중 제주도의 2개 선거구만이 무효화된 것이다.</p> <p> </p> <p>곧이어 참혹한 ‘대학살의 국면’이 전개됐다. 군·경 토벌대는 ‘해안선에서 5㎞ 이외의 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하라’는 명령과 함께 불법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중산간마을을 불태웠고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였다. 특히 토벌대가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약 4개월 동안 벌인 이른바 ‘초토화작전’ 때 중산간마을 주민들이 치른 희생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을을 포위한 군인들은 다짜고짜 집집마다 불을 붙였고 불기운에 놀라 뛰어나오는 주민들을 70~80대 노인부터 젖먹이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 </p> <p> </p> <p>해변마을로 소개(疎開·강제 이주)한 사람들의 희생도 컸다. 토벌대는 가족 중에 한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 가족’이라 하며 수시로 학살했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은 고통의 시간이 짧으니 그나마 괜찮은 경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토벌대는 걸핏하면 ‘무장대 지원 혐의’가 있다며 총질을 했다. 야수로 돌변한 토벌대에 의해 글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여성들의 수난도 컸다. 이러한 행위의 책임은 당시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여전히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었던 미군에게 있다.</p> <p> </p> <p>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학살극이 재연됐다. 제주도내에서는 이른바 ‘예비검속’으로 1,000명 가량의 목숨이 희생됐고, 또한 불법적인 군사재판을 받아 전국 각지의 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2,500여 명의 제주도민이 인민군에게 쫓기며 패닉상태에 빠져있던 이승만 정권에 의해 집단학살당했다. 이처럼 7년 7개월간 벌어진 사건의 전개과정은 ‘탄압의 국면’, ‘항쟁의 국면’, 그리고 탄압이나 항쟁이라는 용어를 무색케 하는 엄청난 ‘대학살의 국면’이 중첩되면서 차례로 펼쳐졌다.</p> <p> </p> <p>이로써 4·3무장봉기 당시 무장대 숫자는 350명에 불과했으나, 희생자는 당시 제주도 인구의 1/10 가량인 무려 3만 명에 이르렀다. 중산간마을 대부분이 폐허로 변하는 등 재산피해도 컸고, 육체적·정신적인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p> <p> </p> <p> </p> <p><strong>4·3군법회의 수형인, ‘불법 계엄령’과 ‘유령의 국방경비법’에 의해 희생</strong></p> <p> </p> <p>그렇다면 이번 재심사건과 관련 있는 ‘4·3군법회의’는 무엇이며, 수형인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형무소에 감금됐던 것일까? 필자는 1988년부터 ‘제주4·3사건’에 대해 공부해오며 피해자 및 유족 약 7천명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그중에는 4·3군법회의 피해자들의 유족도 있었고, 구사일생 살아 돌아온 4·3군법회의 수형인도 있었는데 이들의 증언은 한결같았다.</p> <p> </p> <p>유족들은 “말이나 소에게 먹일 꼴 베러 들녘에 나간 아버지와 형이 지나가던 군인들에게 잡혀 트럭에 실려간 후 육지형무소로 끌려갔다고 하던데 그 후 행방불명되었다”거나, “학살극을 피해 한라산에 올랐다가 ‘하산하면 살려준다’는 삐라를 보고 내려왔는데 주정공장에 가뒀다가 육지형무소로 끌려갔다”고 말했다. 수형인들은 “제대로 된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육지의 형무소로 끌려갔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수형인들이 6·25전쟁 전에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가 거의 유일한 근거였다. 엽서에는 형무소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다.</p> <p> </p> <p>그러던 중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인 1999년 9월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4·3특위 부위원장 추미애 의원이 정부기록보존소(현 국가기록원)에서 수형인명부를 발굴해 공개함으로써 비로소 전모가 밝혀졌다. 같은 해 12월에는 재미학자 고(故) 이도영 박사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6·25전쟁 직후 대전형무소 등지에서 수형인들이 집단학살 당하는 사진과 문서를 찾아냄으로써 희생사실이 확인됐다. </p> <p> </p> <p><수형인명부>에는 ‘4·3군법회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2,530명의 명단이 기재돼 있다. ‘4·3군법회의’라 함은 1948년 12월과 1949년 6~7월 등 두 차례에 걸쳐 마치 열렸던 것처럼 허위로 자료에 기재된 군법회의를 가리킨다.</p> <p> </p> <p>1948년 12월의 제1차 군법회의 때는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된 상태여서 민간인을 군법회의에 회부해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일제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적용했다. ‘4·3계엄령’은 헌법의 규정과 달리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불법적으로 선포되었다.</p> <p> </p> <p>제2차 군법회의는 1949년 6~7월에 열린 것처럼 <수형인명부>에 기재돼 있는데, 이때 끌려간 사람들은 1948년 가을 계엄령이 선포돼 무차별 학살극이 벌어지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을 에는 듯이 추운 겨울에 한라산 기슭으로 올라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1949년 3월경 “하산하면 죄를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소위 선무공작 삐라를 보고 내려온 피난민들이었다. </p> <p> </p> <p>그런데 제2차 군법회의 시기인 1949년 6월~7월은 계엄령이 해제된 때라 민간인을 군법회의에 회부할 수 없었지만 무리하게 국방경비법을 적용했다. 국방경비법은 기본적으로 군법(軍法)이므로 대개의 조문은 “군인 및 군속으로서~”로 시작되는데, 제32조(소위 이적죄)와 제33조(간첩죄)만은 “여하한 자로서~”로 시작된다. 이를 근거로 군인 및 군속이 아님에도 민간인을 역시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제32조와 제33조를 적용해 군법회의에 회부한 것이다.</p> <p> </p> <p>학살극을 피해 은신했다가 하산한 피난민들을 느닷없이 ‘이적죄’와 ‘간첩죄’ 혐의를 씌워 군법회의에 회부한 것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방경비법 자체가 제정 주체도 모호하고 법률 호수도 없는 유령법이라는 점이다. 일부 법령집에는 국방경비법이 ‘법률호수미상(法律號數未詳)’으로서, 1948년 7월 5일 ‘공포’됐고, 같은 해 8월 4일부터 ‘효력 발생’했다고 슬그머니 끼워놓았다. 그리고 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국방경비법을 제정한 것처럼 표기했다. 그러나 1946년 12월 12일 개원식을 가진 미군정기 조선과도입법의원은 1947년 5월 6일 제1호 법률(Public Act)을 제정한 것을 시작으로 1948년 5월 19일 제12호 법률을 제정한 후 이튿날인 1948년 5월 20일 해산되었는데, 조선과도입법의원이 제정한 12개의 법률은 국방경비법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따라서 국방경비법은 실체가 없는 유령법이고, 유령법이기에 법률 호수조차 없는 것이다.</p> <p> </p> <p> </p> <p><strong>서종철·김정무·전부일 등 제주 주둔군 장교들조차 “군법회의 없었다” 증언</strong></p> <p> </p> <p>백보 양보해 계엄령이 합법적으로 선포된 것이고, 국방경비법이 실제로 제정·공포된 법률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당시 군법회의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허구의 재판이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수형인들이나 심지어 수형인들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호송했던 경찰 출신들조차 “형무소에 도착하니 간수나 형무소장이 죄명과 형량을 알려주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증언했다. </p> <p> </p> <p>군법회의가 열리지 않았다는 증언은 피해자들의 일방적 주장이 아니다. 제1차 군법회의가 열렸다는 1948년 12월 제주 주둔 제9연대 부연대장이었던 서종철(국방부장관·초대 한국야구위원회 총재 역임)은 “군법회의를 열었던 기억이 없다.”라고 증언했고, 제9연대 군수참모였던 김정무(준장 예편, 육사2기 동기회장 역임)도 “군법회의에 대해 모른다.”고 4·3위원회에 증언했다. 증언 내용은 모두 캠코더로 녹화했다. 제2차 군법회의 당시 제주 주둔 제2연대 1대대장이었던 전부일도 “군법회의에 대해 모른다.”고 증언했다. 무려 2,530명이 군법회의를 받았다고 하는데, 주둔군 간부들조차 부인하고 있는 건 군법회의가 허구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p> <p> </p> <p> </p> <p><strong>군법회의는 ‘구색 맞추기’…주둔군 교체기에 형무소로 보내</strong></p> <p> </p> <p>제9연대의 초기 작전은 주로 ‘무장대로 여겨지는 젊은 청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1948년 11월 중순께부터 전개한 ‘초토화작전’ 때에는 젖먹이부터 노인, 그리고 부녀자들까지 무차별 총살했다. 그렇다면 이 때 왜 일부 젊은이들은 총살하지 않고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냈는가? 젖먹이 아기와 노인들은 ‘죄질이 무거워’ 즉결총살했고, 젊은이들은 그 보다 죄가 가벼워 징역형을 선고해 형무소로 보냈다는 말인가? 젊은이의 ‘죄’가 젖먹이의 ‘죄’보다 가벼워 총살대신 징역형에 처했다는 점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p> <p>이는 ‘구색 맞추기’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군법회의가 구색 맞추기임을 증명해줄 구체적인 사료는 아직 발굴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런 자료가 있다 해도 비밀해제 되지 않았거나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상식에 비춰 구색 맞추기 외에 다른 설명은 불가능하다. </p> <p> </p> <p>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내졌던 것일까? 제1차 군법회의(1948년 12월) 수형인들은 대개 1948년 11월 초토화작전이 벌어지기 전 여름철에 끌려간 사람들이다. 증언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들녘에 촐(꼴) 베러 갔던 젊은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군인들에게 끌려갔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는 초토화작전이 벌어지기 전이라 무차별 총격을 가하지 않을 때여서 9연대 군인들은 일단 청년들을 붙잡아 주둔지인 제주농업학교에 설치한 ‘천막 수용소’에 가뒀던 것이다. 그리고 1948년 12월말 제2연대와 교체하기 위해 제주를 떠나게 되자 천막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을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보낸 것이다.</p> <p> </p> <p>제2차 군법회의(1949년 6~7월) 수형인들은 학살극을 피해 한라산으로 숨었던 사람들이다. 1948년 가을부터 초토화작전이 벌어져 무차별 학살극이 본격화되자 주민들은 살을 에는 추위에도 불구하고 한라산 기슭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던 중 무장대 세력이 약화된 1949년 3월 이후, 토벌대는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전단지를 비행기로 살포했다.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전단지를 본 후 나무에 옷가지를 매단 이른바 ‘백기(白旗)’를 들고 내려왔다. 이때 토벌대(제2연대)는 하산한 주민들을 일단 ‘주정공장’에 감금했다. 주정공장은 당시 가장 넓은 공간이어서 많은 주민들이 그곳에 수감됐다. 제2연대는 1949년 여름 제주에서 철수하게 되자 주정공장에 감금했던 사람 중 젊은이들을 전국의 형무소로 보냈다.</p> <p> </p> <p> </p> <p><strong>담당 변호사와 판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까닭</strong></p> <p> </p> <p>이번 재심사건에서 피고인측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김세은 변호사에게 참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필자는 군법회의의 부당성에 대해 오랫동안 공부하고 글을 써 왔지만, 재심개시 결정이 내려지고 무죄판결과 다름없는 공소기각 판결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피해자들이 죽기 전에 가슴 속에 묻어뒀던 한을 마지막으로 토로하는 자리쯤으로 생각했다. 두 변호사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여겼던 이 재심사건을 맡아 열정을 다해 헌신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p> <p>재심개시 결정을 내리고 이어 공소기각 판결을 한 제주지법 제갈창 판사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필자는 재심개시 결정 전에 임재성 변호사의 요청을 받아 소위 ‘전문가 증언’을 하였다. 변호사는 필자에게 “통상적으로 판사들은 전문가 증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20~30분이면 끝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제갈창 판사는 정말로 ‘실체적 진실’을 궁금해 했고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나중엔 마이크를 끈 채 질문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필자의 증언은 2시간이 넘게 진행됐다.</p> <p> </p> <p><수형인명부>에는 한 사람당 달랑 한 줄씩 이름, 본적지, 형량, 복형장소가 적혀 있을 뿐 이를 뒷받침할 판결문은 없다. 판결문 등 재판기록이 있어야 원 판결이 잘못됐는지 여부를 따져 볼 수 있을 텐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재심결정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그동안 ‘내가 본 자료’와 ‘내가 들은 증언’에 대해 법정에서 성실히 증언할 뿐이었다. 그런데 판사의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지자 ‘아! 형식적인 재판이 아니구나!’라는 좋은 느낌을 받았다.</p> <p> </p> <p>제갈창 판사는 4·3군법회의가 판결문조차 없지만, 군인들이 실질적으로 사법권을 행사했으므로 재판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4·3군법회의가 절차상 하자가 많고 검찰이 시간, 장소, 방법 등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재심개시 결정과 공소기각 판결을 했다. 법조문에 얽매이지 않고 실체적 진실에 따라 재심결정을 내렸고, 사실상의 무죄판결인 공소기각 판결을 한 것은 우리나라 사법부 역사에 중요하게 기록될 것이다.</p> <p> </p> <p> </p> <p><strong>검찰의 결단도 높이 평가해야</strong></p> <p> </p> <p>검찰은 처음엔 공소사실을 진술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공소장변경 신청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보면 추측에 기반한 것이었다. 즉 수형인명부에 적힌 대로 제1차 군법회의 대상자에겐 ‘형법 제77조 내란죄’를 제2차 군법회의 대상자에게는 ‘국방경비법 제32조(이적죄)와 제33조(간첩죄)’를 옮겨놓을 뿐 구체적인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했다. 피고인들이 형무소에 가서야 죄명과 형량을 간수나 형무소장으로부터 듣는 등 처음부터 ‘허구의 군법회의’였으므로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p> <p>그럼에도 검찰의 마지막 태도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검찰은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하지 않았다. 또한 검찰은 무죄구형의 성격을 띤 ‘공소기각 요청’을 했고,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이번 재심사건은 1심 법원의 판결만으로 확정되었다. 이전 정부라면 검찰의 태도가 어땠을까? 만일 검찰이 법원의 재심개시 결정에 대해, 또한 공소기각 판결에 대해 각각 불복해 대법원까지 끌고 갔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 최종 결과도 가늠하기 어렵거니와 수형인들의 맺힌 한은 어떻게 풀 수 있었을까? 대한민국 정부가 적어도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묻지 않는다는 너무나도 상식적인 수준에는 도달했다는 증거이다.</p> <p> </p> <p>지난 2월 7일 이번 재심사건 청구인 중 한 명인 현창용 할아버지가 지병으로 인해 향년 88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졌다.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이 난 지 불과 20여 일 지났을 때이다. 살아계실 때 확정판결이 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실감나는 소식이었다.</p> <p> </p> <p> </p> <p><strong>‘4·3특별법’ 개정해 군법회의 결과 무효화해야</strong></p> <p> </p> <p>이번 재심사건은 현재 국회에 발의돼 있는 4·3특별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통과되어야 함을 웅변해 주고 있다. 개정안에는 ‘4·3군법회의 무효화’ 조항이 포함돼 있다. 4·3군법회의를 무효화하지 않는다면 ‘운’이 좋아 형무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와 지금까지 장수하면서 재심을 청구한 18명은 ‘무죄’이고, 형무소에 수감 중 6·25전쟁 직후 이승만 정권에게 학살당한 분들은 여전히 ‘유죄’로 남는 큰 불합리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p></div>
목, 2019/02/2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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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반도체 백혈병 피해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최종 중재안의 철저한 이행을 해야
– 삼성은 중재안의 성실한 이행을 통해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해야 –
– 정부는 산업재해 은폐를 방지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

10년 넘게 진행되어온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사건이, 지난 7월 조정위원회의 공개제안에 당사자들이 2차 조정안을 내용과 상관없이 수용하겠다고 밝혀 사실상 합의가 이루어진 이 후, 어제(11.1) 조정위원회의 최종 중재안이 전달되어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과가 발효되었다.

이번 중재안은 2007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 황유미씨의 사망이후 피해자 가족들을 중심으로 함께 싸워온 ‘반올림’의 절실한 노력과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일궈낸 열매이다. 중재안에 담긴 보상대상, 보상안, 삼성전자의 사과, 재발방지 및 사회공헌 등의 내용이 반드시 성실하고 철저하게 이행되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우리 사회에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출되면서 까지 묵묵히 일해왔던 노동자들이 없었다면, 삼성전자가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했음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경제력과 권력을 이용하여, 반도체 백혈병 피해사실을 어떻게든 인정하지 않고, 숨기며, 보상조차 제대로 하지 않으려 애써왔다. 이제 삼성전자는 그간의 일을 피해자와 가족, 국민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윤리적인 기업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지금도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에 대해 은폐와 축소가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의 경우 여전히 입증도 쉽지가 않다. 정부와 국회에서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태와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산업재해에 대한 실효성 있는 방지책을 만들어서 제도화 해야만 한다.
<끝>

금, 2018/11/0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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