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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참여사회 2023년 4월호 (통권 3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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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참여사회 2023년 4월호 (통권 304호)

admin | 수, 2023/03/29- 10:46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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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노인연령 상향 조정 시도를 즉시 중지하라

노인빈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연령 상향은 국민들의 빈곤 심화와
복지축소 야기하는 무책임한 것으로 비판받아야

 

어제(5/26) 새누리당은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대한노인회의 노인연령 기준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높여야 한다는 입장표명을 높게 평가하며 긍정적으로 검토 후 본격적인 제도 개선에 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위원장 : 이찬진 변호사)는 여당이 노인단체의 견해 표명을 빌미로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 급부 적용대상 연령 기준을 기존의 65세에서 상향 조정을 하려고 하는 것은 OECD 회원국 기준 가장 심각한 수준의 노인빈곤문제를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무책임한 결정임을 비판한다. 노인빈곤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 노인연령기준을 상향조정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노인복지를 축소시켜 노인빈곤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정년연장이 가속화되는 우리나라 경제현실을 고려하여 국민연금이나 특수직역연금에서 노령연금의 지급 연령을 점차 65세 상향조정하고 있으며 기초연금제도에서도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인복지법이나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등에서도 주요한 노인대상 사회보장서비스 정책에서도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노인의 복지증진에 힘써야 할 국가가 노인빈곤문제와 궁극적으로 노인대상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치밀한 대책 없이 특정단체의 의견을 빌미로 삼아 일부 노인층을 기초연금이나 공적 연금 등 사회보장급부 대상에서 제외하려고 시도한다면 재정부담 문제만으로 65세 이상 70세 미만의 170만 명 이상의 노인 인구를 희생양 삼는 것이며 재정부담 책임을 모면하려는 것으로써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반인권적 처사임을 강력히 규탄하는 바이다.

 

이번 여당의 태도는 불평등 심화로 발생하는 노인문제를 단순히 노인연령 상한으로 의미없는 수치만 줄여 빈곤에 피폐해지고 있는 국민을 방치하겠다는 처사이다. 또한 노인연령 기준을 높여 국가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하여 국민연금,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전반적인 사회보장제도를 퇴행시키고자한다면 이는 그들이 총선에서 내세우고 대선에서 내세웠던 복지공약을 송두리째 파기하는 것으로써 국민들의 지탄과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강력히 경고한다. 따라서 여당은 노인연령 조정에 대한 입장을 당장 철회하고 노인층에 대한 기초연금 확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 기초생활보장 확대 등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 설 것을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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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5/05/27-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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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민연금공단 남원지사를 방문했다. 국민연금 의무납입 기간이 올해 2월 마감되어 몇 가지를 상담받았다. 나는 2026년에 노령연금을 받는데 월 64만 원가량이 지급된다고 한다. 예상보다 많았다. 공단에서는 ‘임의 계속가입’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연금 수령 전까지 매월 일정 금액을 내면 연금 액수도 늘어나서 월 69만 원 정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내가 79개월 동안 의무 연금을 내지 않았는데, 수령 시기 전까지 해당 금액을 납입하면 월 81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일단 임의 계속가입을 신청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이리저리 헤아려 보았다. 3년 후에 월 81만 원을 받고 절에서 주는 약간의 용돈까지 더하면, 우리 절에서 나는 고액 연봉자가 되는 셈이다. 이런 정리를 마치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선 직감적으로 안심이 되었다. 큰 액난1이 닥치지 않는 이상 누추하지 않게 살 수 있겠다. 부양가족이 없으니 이 정도면 최소한의, 아니 최적의 생활비로 충분하다.

이어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산중의 수행자도 노년을 앞두고 돈에 대한 생각이 이럴진대 노년을 맞이할, 혹은 이미 맞이한 사람들 대다수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노년의 항산은 우리 시대 화두

지금의 고령화 사회에서 다시 맹자를 호명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 백성들의 민생을 탐구하면서 여민동락2을 말한 맹자가 그토록 강조한 것이 항산恒産이고 항심恒心이다. 맹자는 항산에 중점을 두었다. 항산은 생활하는 데 필요한 일정한 재산이나 생업, 즉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말한다. 오늘날 언어로 말하면 주거·의료·식생활 등이다. 맹자는 “항산이 무너지면 도덕과 예의, 즉 변함없이 늘 떳떳한 마음인 항심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오죽하면 붓다도 “가난이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비굴해진다”고 말했을까? 맹자의 말을 재생해 보자.

“항산이 없는 자는 항심이 될 수 없으니, 만약 항심이 없어 바깥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면 방탕하고 편벽하고 사악하고 사치하는 등 못할 것이 없다. 그러니 인민이 이러한 죄에 빠진 연후에 이를 처벌한다면 그것은 그물을 쳐서 인민을 잡는 것이다. 어찌 어진 임금이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물을 쳐서 인민을 잡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맹자에 따르면 사회의 약자와 취약계층에 대한 책임은 국가의 몫이다. 따라서 경제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난, 특히 극단에 내몰린 취약한 노년의 항산은 우리 시대의 화두라 하겠다.

또한 사람들의 생태계는 그물과 같아서, 유년-소년-중년-장년-노년이라는 연결망 속에서 살아간다. 어느 한쪽의 그물이 허술하면 건강한 생태계는 유지될 수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을 새삼스럽게 받아들일 때 우리가 함께 살길이 열린다. 그러니 모든 세대가 어떻게 항산 속에 항심을 유지하고 키워갈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누구나 청년이었고, 또 누구나 노년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항산만큼 항심 또한 중요하다. 항심을 유지하고 배양하는 것은 존엄한 삶의 필수 항목이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항산이다. 동시에 사람이 빵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뜻도 담겨있다. 항심이다.

노년은 세월이 주는 선물이다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은 대개 이런 생각을 한다.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노년에는 쾌락을 누릴 수 없다.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 현상만을 보면 그럴듯하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면 맞지 않는 말이다. 아니, 매우 위험한 말이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조목조목 짚어보자.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고? 큰일이 뭐 그리 중요한가. 행복이 어디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큰일’에만 있겠는가.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이 당연한 흐름을 왜 거부하려고 하는가. 노년에는 쾌락을 누릴 수 없다고? 왜 감각적 쾌락만 생각하는가.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그럼, 천년만년 살려는가.

과거에 살고 있으니 현실이 늘 우울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에서는 환생을 하고 청춘도 재생하지만, 늙지 않는 청춘은 현실에 없다. 청춘에 붙잡혀 판타지에 매여 사는가. 과거에 매몰되면 항심을 유지할 수 없다. 항심을 얻기 위하여 노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통념을 전복해야 한다. 그리고 전복은 전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

키케로가 쓴 《노년에 관하여》의 명문장을 인용해 본다.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이는 노년의 삶에 주목한다면, 앞으로 남은 생이라는 ‘여생’이라는 말로 어찌 노년을 정의할 수 있겠는가. 키케로가 평생의 친구 아티쿠스에게 한 말을 들어보자.

“세월이 정말로 젊은 시절의 가장 위험한 약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준다면, 그것은 세월이 우리에게 주는 얼마나 멋진 선물인가!”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금’에 이른 노년에게 선물은 무엇인가? 노년이 새롭게 만들어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어질고 덕스러운 삶, 예의와 염치가 있는 삶, 부끄러움을 알아가는 삶, 넉넉하게 베푸는 삶, 경험과 지혜를 전해주는 삶. 이런 삶들이 모이면 다음 세대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도 노년을 저렇게 살고 싶다.”

‘노년이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사람들은 대개 늙음을 ‘생의 쇠락’, ‘활력의 결핍’, ‘감추고 싶은 모습’으로만 인식한다. 심지어 혐오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또 어떠한가. 불안이고 두려움이다. 그래서 영생을 꿈꾸면서 다음 생을 기약하기도 한다.

붓다는 생로병사가 “고통 그 자체”라고 했다. 그러나 붓다도 노쇠와 죽음을 피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해탈했다”는 붓다의 선언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붓다의 진심은 이렇다. 늙음과 죽음 자체는 고통이 아니다. 이에 대한 그릇된 해석이 고통을 불러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을 거역하려는 어리석은 태도가 바로 고통이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늙음과 죽음을 혐오하며 거부하고 피하려는 발상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러므로 우리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생명불식生命不息 즉, 생명은 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머물러 있으면 박제된 사물이지 생명체일 수 없다. 노년의 생명력은 성숙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곱게 든든하게 내실 있게 익어가는 모습이 성숙이다. 배우고 탐구하고 사색할 때 비로소 지난 세월의 경험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고 향기를 피워낼 수 있다.

노년에 성숙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한다. 성찰과 반성 없이는 삶을 전환할 수 없다. 성찰은 자신을 향한 정직한 관찰에서 시작된다. 지난 삶에 대한 공정한 관찰자의 자리를 유지해야 성찰할 수 있다. 노년이여, 무엇을 망설이는가. 지금 당장 단호한 결단을 내려 더 위엄 있고 원숙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노년에 외롭지 않으려면 먼저 내면이 단단해야 하고,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우정을 키워야 한다. 우정은 같은 세대와만 나누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이들의 처지와 개성을 존중하면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노년은 스스로 고립되어 외롭다.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른’은 단지 나이로 정의되지 않는다. 어른의 권위와 존엄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겸양의 미덕, 너그러운 포용, 높은 도덕성, 모범이 되는 태도, 조용한 응원, 그리고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겠다. 이런 덕목을 갖는다면 젊은 세대가 노년을 멀리하지 않을 것이다. 덕불고 필유린3 德不孤 必有隣을 깊이 생각해 보자. 우정의 필수 품목은 ‘지갑’이 아니라 ‘덕’이다.

노년이 아름다운 삶을 위해서는 항산과 항심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항산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하고, 항심은 각자가 부단히 노력해야 할 일이다. 법정 스님의 말을 빌려 아름다운 삶의 길을 밟아가 보자.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우리도 저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과 능력이 다하게 되면 언젠가는 이 지상에서 덧없이 사라져 갈 것입니다. 이 순간순간 우리가 하는 일이 곧 구체적인 내 인생의 내용이 되고 개인의 역사가 됩니다. 내 인생은 나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누가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 삶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시시로 현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떳떳한 인간으로서 향상의 길로, 보다 값있는 길로 털고 나서야 합니다. 그때마다 내 인생을 내가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새롭게 살아갈 때,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됩니다.”

1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
2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다’라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이다.《맹자》에서 유래되었다.
3  덕이 있으면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으므로 외롭지 않다는 뜻


법인 스님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16세에 광주 향림사에서 천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대흥사 수련원장으로 ‘새벽숲길’ 주말 수련회를 시작하면서 오늘날 템플스테이의 기반을 마련했다. 〈불교신문〉 주필, 조계종 교육부장,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다. 현재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지리산 실상사에서 수행 중이며 지은 책으로 인문에세이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중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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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3/03/2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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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찬섭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2월 초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하철 재정적자’를 거론하며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을 현행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지하철 재정적자 타개’를 이유로 지하철 요금 인상을 발표했다. 두 지자체장의 방침은 모두 유보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노인연령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필요하다면 노인연령을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조정하더라도 어떤 근거에서 어떻게 조정할지가 중요하다. 또 노인연령만 조정하면 되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이와 관련해서는 노인 기준연령이 65세가 된 배경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노인연령 문제가 논란이 되자 여당 정책위의장은 “현행 노인 기준연령은 비스마르크 시절에 정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옛날에 정해진 것이어서 오늘날에 맞지 않다는 뜻이다. 사실관계를 들여다보면, 65세라는 기준이 오래전 정해지긴 했지만 비스마르크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고 2차 세계대전 후에 정해진 게 맞다. 그러면 왜 하필 65세일까? 답은 퇴직제도와 연관돼 있다.

자본가들이 바랐던 ‘퇴직’, 자본주의가 만든 ‘노인연령’

오늘날엔 퇴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만, 인간의 역사에서 퇴직은 대단히 새로운 제도이다. 자본주의 이전 시대에는 극히 일부 귀족계층을 제외하고 퇴직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퇴직할 만큼 오래 살지 못했고, 더 중요하게는 죽을 때까지 일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가 확립된 후에도 상당 기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자본주의가 독점자본주의로 전환하는 19세기 중후반, 노인을 퇴직시키고 청년을 고용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려는 자본가들을 중심으로 퇴직제도의 필요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퇴직 이후 생계 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제도가 도입되기 어려웠다. 자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퇴직제도는 한동안 도입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공공서비스 효율화’를 명분으로 먼저 퇴직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가장 선진국이었던 영국이 19세기 후반에 공무원·우체부·교사·경찰 등 정부가 통제하는 부문에서 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퇴직이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이때 퇴직연령은 통일되지 못해서 직역에 따라 62세, 65세 등으로 제각기 달랐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국가들은 공적연금을 명실상부한 복지국가 제도로 확립했다.1 이는 몇 가지 결과로 이어졌다.

첫째, 퇴직제도가 보편화되었다. 공적연금이 확립되자 퇴직 이후 생계 수단이 확보되어 비로소 사람들이 퇴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둘째, 공적연금 수급 개시연령인 65세가 노인 기준연령으로 정해졌다. 셋째, 생물학적으로는 아무 근거가 없는 공적연금 수급 개시연령에 맞춰 노인 기준연령이 정해지면서, 사람의 개별적 특성과 상관없이 획일적으로 노인연령이 만들어졌다. 넷째, 노인연령이 획일화하면서 자본주의에서 노령은 생물학적 연령보다는 ‘퇴직’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더 강하게 갖게 되었다. 다섯째, 획일화된 노인연령을 중심으로 사회구성원 전체의 생애주기가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공적연금 수급 개시연령을 노인 기준연령으로 삼고 이를 중심으로 사회구성원 전체의 생애주기를 편성했다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에서 노인 기준연령이나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가 사회적・인위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적 여건이 바뀌면 노인 기준연령과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도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해방 후 자본주의를 택하고 1960년대부터 퇴직제도를 보편화한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노인연령 문제가 교육개혁까지 연결되는 이유

그러면 노인 기준연령의 변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주의에서 노령은 생물학적인 연령과 함께 퇴직의 의미도 갖는다. 따라서 노인 기준연령의 조정은 퇴직 및 공적연금의 문제로도 접근해야 한다. 노인연령에 맞추어 제도화한 각종 복지제도와의 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노인 기준연령을 단순히 노인만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노인연령이 인위적으로 정해지면서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도 그에 맞춰 편성되었으므로 사회적 생애주기 조정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현재와 같은 생애주기 편제가 적절한지 판단해야 한다. 이때는 교육 기간의 연장으로 아동기가 늘어나는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아동기가 연장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는데 노인 기준연령을 65세 그대로 고수한다면, 노동기간은 짧아지고 퇴직 기간은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생애주기 편제는 적절하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아동연령과 노인연령을 동시에 상향하는 등 전체 생애주기의 연령을 조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에 따라 생애주기를 조정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매우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사안이다.

우선 노인 기준연령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퇴직 시기를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퇴직 시기를 조정하려면, 노동자를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에 조기 퇴직하게 만드는 기업 운영방식이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임금체계 개편과도 연결된 사안이며, 임금체계 개편은 숙련 형성체계 개편과 연결된다. 또한 숙련 형성체계 개편은 전반적인 교육제도 개편과 연결되고, 이는 아동기(교육기)의 조정과도 연결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퇴직 시기를 조정하려면 수급 개시연령과 맞지 않는 국민연금의 현 가입 상한연령도 상향해야 한다. 국민연금 가입 상한연령을 높이려면 고령자 노동시장의 열악한 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현재 비정규직은 60세 이상 노동자의 비중이 가장 큰데,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둔 채 가입 상한연령만 조정하면 고령노동자 간 격차를 더 키울 우려가 있다.

즉, 이 문제는 노인 기준연령만 조정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노인연령 문제를 빨리 논의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단순히 ‘지하철 재정적자’와 같은 돈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결코 안 된다. 사회 전체의 생애주기 조정, 그와 연관된 기업과 노동시장, 공적연금, 숙련 형성체계, 교육제도 전체의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거시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평등하게 늙어가지 않는다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생애주기 변화가 계층별로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람은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나와 사회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지만, 30대 초중반까지 아동기(교육기)를 연장해도 생계에 지장이 없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 일찍 노화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양호한 노동조건에서 충분한 소득을 올리면서 경제활동을 해서 나이가 많이 들어도 건강에 별 탈이 없다. 퇴직 후 연금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노년기를 어렵게 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충분한 연금을 받으면서 여유롭게 생활하는 노인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노인 기준연령과 생애주기 조정을 세대 문제나 재정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은 매우 근시안적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퇴직 시기의 조정과 노동시장 및 기업 개혁,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 매우 복잡한 사안과 연결된 문제다. 동시에 생애주기의 계층별 불평등을 해소하면서 풀어나가아 할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계층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더 빨리 늙는데 노인돌봄서비스 이용연령을 65세 혹은 70세로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차 세계대전 후 일률적으로 정해진 노인 기준연령을 그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사회 구조에서 또다시 일률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맞는지 재고할 필요가 있다.

물론 노인 기준연령을 유연화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더 고민해야겠지만, 다시 노인 기준연령을 획일적으로 정한다면 생애주기의 불평등 문제를 외면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평균수명 연장만 강조하면서 생애주기가 계층별로 불평등하게 작동하는 현실을 경시한다면, 어렵게 생애주기를 조정해도 사회적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만 악화시킬 것이다.


1  독일은 1880년대 후반 공적연금을 도입했고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독일을 따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공적연금을 도입했다. 그러나 그에 따른 급여는 최소한으로만 지급하는 ‘구빈법’ 수준이어서 복지국가 제도라기보다는 빈곤구제 제도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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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3/03/2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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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문제의 해답을 찾기 어려울 때는 난감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언제나 해답을 찾을 방도가 있다는 점에 그나마 위로가 된다. 그런데 해답 사이에 뛰어넘기 어려운 모순이 있으면 난감한 감정을 넘어 마치 덫에 걸린 듯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노인 기준연령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깊은 이유이다.

배경이야 어찌 되었든 혹은 몇 살로 사회적 조정이 이루어지든, 현재 노인 기준연령에 대한 논의를 보면 두 가지 지점이 우려된다.

기준선을 바꾼다고 국가 책임이 사라지나

먼저, 노인 기준연령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정부의 의도 사이에 껄끄러운 불일치가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노인을 가르는 기준연령은 65세이다. 그런데 평균수명이 84세에 근접한 현 상황에서 ‘65세 이상’은 노인으로 분류하기에 젊어도 너무 젊다. 현대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고려하면 노인 기준연령을 높이는 것이 합리적이다.

신체적 활동에 어려움이 없고 인지적 기능도 양호한 대다수 65세 이상 사람들은 노인이라는 표식이 반갑지 않다. 뒷방의 적막함에 익숙해져야 하는 노인의 시기가 늦추어지면 사람들은 안도할 수 있다. ‘장년의 시간이 연장되었다’는 사회적 재가는 자신이 늙지 않았다는 혹은 충분히 젊다는 인정으로 읽힐 것이다. 대중에게 ‘노인 기준연령 상향’은 이러한 의미다.

그런데 정부의 관심은 65세 이후에도 사회구성원 다수는 충분히 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국가가 부양할 노인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했다는 위기의식이 주요 동인이다. 정부 입장에서 노인 기준연령 상향은 사회적 부담을 완화할 ‘절묘한 해법’이다. 참으로 값진 노인 기준연령의 쓰임새이다. 물론 일부 노인은 ‘노인 기준연령을 상향해 국가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즉, 노인을 비롯한 다수 대중은 노인 기준연령 문제가 노인부양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연동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2023년 노인 인구는 약 950만 명으로 추정된다. 노인복지 예산은 전체 사회복지 예산의 25.1%를 차지하고,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70% 노인에게 지급하는 노인 기초연금 예산은 약 18.5조 원에 이른다. 노인 인구 증가로 사회적 부양의 부담은 큰 폭으로 확대되었고 앞으로 더 확대될 것이다. 특히 그 부담이 현재와 미래의 근로 세대에 지워진다는 이유에서 노인 기준연령 상향은 마치 노인부양 부담을 둘러싼 세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해법인 양 과장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인 기준연령의 상향은 노인복지 급여를 받는 기준연령 또한 상향된다는 뜻이다. 기초연금·노인장기요양보험·경로우대 서비스를 받는 연령은 상향된 노인 기준연령에 맞추어 변경될 것이다.1 지금도 법적 정년 (60세)과 연금수급 개시연령(62세)의 차이로 인한 소득절벽기가 퇴직자의 빈곤을 악화시키고 있다. 연금수급 개시연령은 2033년까지 65세로 늦춰질 예정인데, 노인 기준연령이 상향되면 그보다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이러한 정책변화의 결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한국의 노인빈곤율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연금수급 개시연령 상향이 소득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년을 연장하거나 노동자가 희망하는 경우 65세까지 계속 고용을 보장하는 등 제도부터 정비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이유로 별다른 대책 없이 연금수급 개시연령을 상향해 소득 공백기를 늘리고 방치해왔다. 노인 기준연령 상향이 불러올 부정적 결과에 대해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대응할지 우려되는 이유다.

현대인의 달라진 신체적·정신적 건강 상황 때문에 노인 기준연령을 상향한다면, 65세 이상의 건강한 장년이 노동시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사회적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는 제도적 보완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초연금 등 노인복지 사업의 수급연령이 늦춰진 탓에 빈곤이 확대되지 않도록 취약집단의 피해를 완화하는 제도적 정비가 선결되어야 한다.

노인 기준연령이 몇 살이 되든 소득 보전이 필요한 사람,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인의 기준을 바꾸고 기준선 안에 있는 사람의 머릿수를 줄인다고 해서 국가의 부양책임이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연령을 기준으로 금 그어진 선 밖에서 누군가는 더 비극적인 상황을 감내해야 한다.

꿈꾸는 노인을 위한 나라

두 번째 우려는 노인 기준연령 상향에 대한 논의가 노인을 향한 부정적 시각을 재현한다는 점이다. 몇 살이 노인으로 인정되든, 노인은 ‘부담’이란 단어와 손잡은 존재, 사회적 가치를 상실한 존재로 가정된다.

인간의 생을 몇 개의 단계로 묶어 일렬로 배열한 생애주기적 관점은 ‘인간의 삶에는 앞선 시간과 구분되는 불연속의 단층들이 존재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인생의 단층마다 개인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고, 이 과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는가에 따라 성공적인 삶이 결정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오랫동안 인간의 사고를 지배했다.

아동기와 청년기에는 가정과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에 유용한 인간’으로 자라야 하는 과제를 부여받는다. 자본주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공공 교육제도는 아동을 ‘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노동 인력’으로 배출하는 기제가 되었다. 청장년기에는 노동시장에 진입해 일정한 직업을 갖고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사회적 생산과 생물학적 재생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노년기에는 노동시장에서 벗어나 직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체성을 대체할 새로운 자신을 찾고 죽음을 수용해야 한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서 현재의 자신을 재정의하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노인의 삶’으로 묘사된다. 물질적 가치를 생산하는 역량이 감소한 노인은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고 죽음의 상징으로만 인식되는 것이다.

예컨대 ‘N포세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21세기 한국 청년의 비극은 ‘꿈의 상실’에 있다. 그런데 높은 빈곤율과 자살률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한국 노인의 삶 또한 매우 위태롭다. 그런데도 노인의 삶이 처한 비극적 요소에서 ‘꿈’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꿈을 잃은 청년의 문제는 사회적 쟁점이 되지만, ‘도전하는 노인’, ‘꿈꾸는 노인’은 일종의 형용모순으로 여겨지고 사회적 관심도 받지 못한다. 노인은 죽음, 즉 미래가 없다는 전제를 중심으로 규정되고, 이러한 시각에서 미래의 도전인 ‘꿈’은 노인과 조화될 수 없다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생애주기적 관점이 비교적 유용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교육을 마친 후 무리 없이 노동시장에 진입하고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노후소득을 보장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산업사회에서는 ‘일자리 없는 성장’으로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 시점이 늦어지고, 노동자들도 노동시장 진입과 퇴출을 반복하며 지속해서 재교육을 받는다. 고용주를 특정하기 어려운 플랫폼노동 등의 비전형적 일자리가 증가하면서 일정 규모의 노동자는 고용계약 관계를 기초로 하는 사회보험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실업보험은 소득 중단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국민연금은 노인 생계를 책임질 만큼 미덥지 못하다.

이런 사회에서 표준적 생애주기 모델은 더 이상 맥을 추지 못한다. 탈산업사회는 생의 과업을 교육·노동·여가로 구분하고 노년기를 ‘교육과 노동이 배제된 여가의 시기’로, 노인을 ‘비생산적 존재’로 인식해온 사회적 관성에 도전한다.

‘무엇이 생산적인 삶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탈산업화가 추동한 사회적 변화에 맞춰 노년기는 교육·노동·참여가 통합된 시기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노인은 적극적으로 교육의 기회를 얻고, 가족과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활동을 지원하고, 사회적 의사결정 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은 노년을 경작하는, 꿈꾸는 주체여야 한다.

노인 기준연령 논의 속에 담긴 ‘노인’, ‘노년’에 대한 낯설게 보기가 필요한 때다.


1  기초연금, 노인장기요양보험,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노인여가복지시설(경로당), 경로우대제, 노인주거복지시설, 노인건강진단, 노인일자리(공공형, 사회서비스형), 독거노인 공동생활 홈서비스, 단기 가사서비스(독거), 이동통신비 감면, 노인 치과 지원, 노인 틀니·임플란트 지원, 행복주택, 응급안전안심서비스, 노인 외래 정액제, 어촌 가사도우미, 고령자전세임대주택(전세금 지원), 고령자 복지주택, 예방접종, 노인 이동통신비 감면, 학대피해노인상담지원, 학대피해노인 쉼터, 노인양로시설 등 24개 주요 노인복지사업 대상자의 기준연령은 65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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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3/03/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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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기현 작가,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저자

“비참해지고 싶지 않아요. 자식이 무슨 죄입니까. 폐 끼치기 싫어요.”

모임에서 대화를 나누던 도중, 한 남성이 언성을 높였다. 그는 치매가 있는 부모를 돌보다가 몇 년 전 떠나보낸, 70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부모나 배우자를 돌보았던 중고령층 시민들이 모여서 ‘돌봄’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자리였고, 이미 몇 차례 모임에서 대화를 이어온 터였다. 진행자였던 나는 그의 반응에 당황했다. 평소에 자신의 돌봄 노하우나 부모가 임종할 때 상황 등을 찬찬히 들려주던 그였기에 더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그날의 대화 주제는 ‘나에게 치매가 시작된다면?’이었다. 이제까지 돌봄을 제공하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눴으니, 반대로 돌봄을 받는 위치에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의존하는 나’를 상상하는 건 쉽지 않았다. 누군가 “치매를 앓는 나는 상상하기도 싫다”고 말하자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치매 진단을 받기 전에 미리 치매보험을 들어놔야 하고 진단을 받으면 제 발로 걸어서 요양원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도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언성을 높였던 그는 다시 숨을 고르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모여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다 몸이 건강하고 인지능력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 건강해야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다들 바쁜 사람들이에요.”

실제로 그의 말처럼 모두가 바빴다. 돌봄을 하는 사람은 돌봄과 파트타임 일을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돌봄이 끝난 이들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군가는 은퇴 후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해서 중간고사 기간에는 모임 참석이 힘들다고 했고, 누군가는 국가공인자격증을 여럿 따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지역에서 이런저런 직책을 받아서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빽빽한 캘린더를 보여주며 “젊었을 적 못지않게 빈틈없는 일상을 산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다양하게 도전하고 교류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에 활력을 느끼면서도, 어쩐지 내 마음에 불안이 피어올랐다. 그때는 내가 왜 불안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다.

‘마처세대’라는 신조어를 알게 된 건 그 이후였다. 마지막으로 부모를 돌보는 세대이자 처음으로 자녀에게 돌봄 받지 못하는 세대를 뜻하는 말이다.1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베이비붐 세대가 부모를 부양하면서 동시에 아직 자립하지 못한 자녀까지 부양하는 이중부담에 시달린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그들이 돌봄이 필요한 시기가 되니 ‘셀프케어’, ‘셀프부양’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이 ‘마처세대’라는 말을 듣고, 나는 내가 느낀 불안의 정체를 조금 더 선명하게 인식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쓸모’가 없어지면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이었다. 앞으로 내가 잘 돌봄 받는 미래보다 죽을 때까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미래의 전망이 더 뚜렷해지는 듯했다. 우리는 무사히 노인이 될 수 있을까?

영 케어러는 ‘돌봄 받는 나’를 상상하지 못했다

그날 ‘치매가 시작된다면?’을 주제로 한 대화는 막막하게 끝이 났지만, 어찌 보면 더 묵직한 질문을 남겼다. 왜 돌보는 사람은 정작 자신이 돌봄 받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는 걸까?

중고령층뿐 아니라 영 케어러young carer, 즉 돌봄 청(소)년에게도 이 질문은 막막하게 다가온다. 돌봄 청년들이 모인 자조 모임에서 “우리가 나이가 들면 어떤 돌봄을 받을 수 있을지 상상해보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난 돌봄 경험에 기대어 내가 돌봄 받는 미래를 상상해보려고 해도 구체적인 상이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를 돌본 우리의 경험을 생각하면, 이렇게 막막한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내가 없으면 해결할 수 없었던 돌봄의 위기 상황들을 혼자서 헤쳐 나갔고, 돌봄 받는 사람이 요양기관이나 시설에서 어떻게 취급받는지도 현현하게 보았다. 모임에 참여한 20대 여성은 어머니를 돌보고 있었는데 “돌봄 받는 나를 상상하자는 제안이 마치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보라는 것처럼 여겨졌다”고 했다. 누군가를 잘 돌보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 돌봄 받는 상황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금 한국의 저출생 고령화 추세를 보면 이런 아이러니가 사회에 더 만연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통계청이 2021년 12월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2020년~2070년’을 보면 2070년 고령인구는 1,747만 명으로 증가한다. 반면 생산연령인구는 2020년 3,738만 명에서 10년간 357만 명이 감소하고, 2070년에는 1,737만 명으로 줄어든다. 2070년이면 일대일의 부양 구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한 명이 여럿을 돌볼 가능성도 크다.

아무 돌봄을 받지 못하는 노인 1인 가구가 가장 보편적인 가구 형태가 되진 않을까? 2070년에 78세가 되는 나는 과연 친밀한 관계에서 돌봄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결국 셀프케어와 셀프부양이 답일까?

유병장수가 겁난다면 ‘돌봄의 사회연대’를 만들자

그러나 셀프케어와 셀프부양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우리 중 누구도 생애 전체를 셀프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셀프’는 ‘인간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허구적 개념에 기대서 증식한다. 우리 삶의 기반은 돌봄이고 의존이다. 하지만 의존은 혐오의 대상이 되고, 의존하는 인간상은 사회에서 배제된다. 셀프케어, 셀프부양 대신 ‘돌봄과 의존’을 다시 상상할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모두가 돌봄을 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돌봄을 받았고, 받고 있으며, 앞으로도 받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인간이 돌봄을 받는데도, 누구는 돌봄을 하고 누구는 돌봄을 하지 않는다. ‘무임승차자’가 있는 셈이다. 《돌봄 민주주의》의 저자 조안 C. 트론토는 돌봄에 무임승차 하는 특권을 회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고 남성이라는 이유로 돌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버려야 돌봄 민주주의가 시작될 수 있고, 돌봄이 모든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한국 사회는 돌봄을 하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려고 방향을 모색하는 듯 보인다. 정부는 돌봄 공백을 AI 복지사, 돌봄로봇 등의 기술로 대체하려는 시도에 힘을 싣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을 이슈화했다.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한술 더 뜬다. 지난 3월 20일 외국인 가사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법안을 발의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 속에서 ‘떠넘길 수 있을 때까지 돌봄을 떠넘기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 이런 추세가 가속화된다면 돌봄을 하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사람도 함께 소외될지도 모른다. 돌봄의 가치가 더 폭락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돌봄 하는 나’와 ‘돌봄 받는 나’를 상상해야 한다. 이러한 상상을 통해 돌봄의 가치를 말로만 내뱉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수행할 수 있는 돌봄의 가치를 곱씹을 수 있다. 또한 돌봄 받는 이의 의존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사실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다. 그랬을 때 돌봄은 미래세대와 노년세대의 갈등의 장이 아니라, 사회연대의 장으로 힘을 얻을 것이다.

최근 연금개혁 논의가 한창이다. 모두를 포괄하는 노후소득 보장을 위해 사회연대가 중요하듯이, 아무도 배제되지 않는 돌봄을 위해서도 사회적 연대가 꼭 필요하다. 모두가 돌봄의 역할을 나눠 가질 때 위험은 줄고 안정은 늘기 때문이다.

걱정 없이 늙어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산적하다. 노동시간을 늘리려고 하는 윤석열 정부가 돌봄을 할 시간은 보장할 수 있을까? 돌봄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한 서울사회서비스원을 오세훈 서울시장이 축소하려는데 이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인구 재생산 관점을 넘어 ‘혈연이나 혼인 바깥의 돌봄’을 사회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여성에게 편중된 돌봄에 남성들이 더 많이 참여하게 만들 수 있을까? 언제쯤 능력주의와 공정담론을 넘어 우리 모두가 취약하며 서로가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까?

이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서 이제부터라도 우리 생애 중심에 돌봄을 두고 삶을 전망해야 한다. 아프고 노쇠해 돌봄 받는 삶이 두렵지 않은 세상을 위해서 말이다.


1  ‘“내 나이 환갑, 자격증 열공중”…셀프부양 위해 일터찾는 노부모들’, 매일경제, 2022.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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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3/03/2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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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참여사회> 도서관 기증 캠페인. 동네에서 시작하는 참여사회 만들기 포슽

 

월간<참여사회> 도서관 기증 캠페인

"동네에서 시작하는 참여사회 만들기"

 

지난 몇 해 동안 총회 등 회원행사에서 많은 회원들이 월간<참여사회>를 함께 읽거나 선물하기를 바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회원님들의 그 마음과 의견을 바탕으로, 전국 공공도서관에 월간<참여사회>를 기증하는 캠페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과 월간<참여사회>를 함께 읽어보세요. 
회원님이 한달에 3,000원을 더 내면, 동네 도서관으로 월간<참여사회>를 배송해 드립니다. 
전국에는 동네 작은 도서관까지 포함해 19,000여 개가 넘는 도서관이 있습니다. 먼저 공공도서관부터 시작하여 점차 기증 범위를 넓히려고 합니다. 도서관에서 더 많은 시민들이 월간<참여사회>를 읽을 수 있도록, 회원들의 많은 참여바랍니다.

 

* 기간 : 2016년 6월 - 12월
* 문의 : 참여연대 미디어홍보팀 02-725-7105/723-4251

신청하기 ☞ https://goo.gl/egJ6u1

명단은 신청 5분 후 자동게시됩니다

수, 2016/06/0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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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를 응원하는 또 하나의 방법,

알라딘에서 『참여사회』 7-8월 합본호 구입하고 마우스패드도 받으세요!

그동안 『참여사회』 혼자 보기 아까우셨죠? 이제 알라딘에서도 참여사회를 만나실 수 있어요. 
『참여사회』  7-8월호를 구입하여 주변 지인에게 회원가입도 권유하고,

참여사회 표지로 만든 예쁜 마우스패드도 받아보세요~! 

참여사회_이벤트

 

* 기간 : 2017년 7월 5일~8월 31일까지 

* 참여사회 7-8월호 알라딘 판매 수익금은 검찰개혁, 사드반대, 이통비 인하 등 2017년 참여연대의 주요 활동비로 쓰입니다.  


『참여사회』 7-8월호 100% 활용법!  
하나, 참여사회 7-8월호로 지인들에게 참여연대 회원가입 권유하기 
둘, 평소 시민단체에 관심 많은 회사 동료, 지인들에게 참여사회 선물하기 
셋, 여름방학 기간 자녀와 함께 참여사회로 시민단체에 대해 공부하기 
넷, 정기 후원은 어렵지만, <참여사회> 구입으로 참여연대 응원하기 

 

『참여사회』 7-8월호 내용 미리보기 

특집 - 비정규직 제로 
통인 - 백도라지 故백남기 농민 장녀 
만남 - 변영주 영화감독
기획 - 좌담회 'SNS 시대, 언론의 역할과 시민의 참여' 
기획 - MB정부 자원외교의 실체
 
 

화, 2017/06/2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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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1-비정규직 제로

여기 
‘사람이 있다


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우연히 살아남은 비정규직
이게 사는 것인가. 편의점에서 일하다 봉투값 20원 때문에 살해당하고, 케이블방송 신입 조연출로 노동착취가 일상화된 제작환경 아래 시달리다 자살하고, 꿈많은 고교생인데도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노동현장으로 떠밀려 감정노동에 혹사되다 스스로 저수지에 몸을 던지고만 청년노동자들. 메탄올이 치명적인 위험물질인지도 모른 채 삼성전자와 LG전자 하청업체에서 작업하다 실명에 이른 지방공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욕설과 괴롭힘을 동반한 아파트입주민의 상습 갑질에 그만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생을 버린 중고령 비정규 경비노동자. 


조선소에서, 건설현장에서, 위험·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제조업체에서, 석유화학단지에서, 지하철과 철도에서, 지역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매일 이윤에 눈먼 자본가들의 넋나간 돈놀음 속에서 산업재해의 말단 희생양이 되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국 사회는 산재사망자 규모로만 3개월에 한 번씩 세월호 참사를 겪고 있다. 헬조선이란 청년들의 한탄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연히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세상이 나아졌다지만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각박하고 참담한 현실은 이윤지상주의 자본왕국에서 여전히 공고하다.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이 구속됐지만 일터에서 자본의 위세는 아직도 거칠 것 없다. 

 

작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죽었다. 성수역, 강남역에 이어 세 번째였다. 커다란 사회적 반향이 일었다. 연이어 6월 23일 삼성전자서비스 가전 AS 기사가 에어컨 실외기 수리 작업을 하다 추락해 죽었다. 재작년 LG전자 AS 기사가 똑같은 사고로 죽었고, 3년 전에는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AS 기사가 전봇대에서 작업하다 떨어져 죽었다. 이대로 두면 안된다는 사회적 각성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연이어 희생된 노동자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외주하청업체 비정규직이란 점이었다. 위험한 작업을 외주화한 하청고용구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주범이었던 것이다. 죽음을 부르는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됐지만 아직 변화는 더디다.

 

추락사한 삼성전자 서비스 진 모 기사의 차량엔 점심시간을 한참 지나고도 미처 먹지 못한 아내가 싸준 도시락이 유품으로 남았다. 구의역 김 군도 먹지 못한 컵라면을 유품으로 남겼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작 끼니도 건너뛴 채 취약한 작업환경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다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한국 사회는 위험을 넘어 죽음을 외주화하는 비정한 정글이 됐다.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1997~1998년 IMF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한국의 노동시장은 양극화와 하향평준화로 치달았다. 민주개혁 정부 10년, 이명박근혜 정부 9년을 통틀어 친기업 노동정책의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지체된 채 한국 사회는 가장 나쁜 형태의 격차사회로 전락했다. 노동조합 조직율이 10% 내외로 고착된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심화·확대는 가속화됐다.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도 무력화돼 정작 노조가 가장 필요한 취약계층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대부분은 노동권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중앙정부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도외시한 국회, 정규직 중심 조직노동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을 둘러싼 주관적, 객관적 조건이 사면초가에 갇힌 형국은 오래도록 지속됐다.


가장 심각한 건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6년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과반을 훨씬 넘긴 1,100여만 명에 이른다. 차별도 심각하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은 절반에도 못미치고,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불법을 감내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2백만 명을 훌쩍 넘는다. 사회보험 가입률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1/2~1/3에 머무르고, 사내복지 격차는 더욱 심각해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1/3~1/4 수준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중 최악인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비정규직도 급증하고 있어 비정규직 고용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노동3권 보장의 유무 지표가 되는 노조 조직율도 심각하다. 전체 노조 조직율도 10% 내외로 낮지만 비정규직 노조 조직율은 2% 내외로 거의 헌법기본권이 무력화된 수준이다. 무노조 삼성이 위헌경영을 하고도 한국 사회 슈퍼갑으로 군림해온 이유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이런 노동 현실이야말로 하루빨리 혁파해야 할 적폐다.

 

더욱 우려되는 건 이런 추세가 한 번도 반전된 적이 없이 꾸준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역진불가逆進不可로 굳어져온 만큼 해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가 신분의 격차처럼 벌어진 게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상생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호는 침몰이 불가피하다. 항로 변경을 해야 공멸을 막고 모두가 살 수 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돼 다행이지만 아직 장담하긴 이르다. 기대가 우려로 변하지 않도록 모두가 힘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암담한 일상이 개선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질 수준이 대한민국호의 평형수平衡水다.
첫 번째 시금석은 최저임금 1만 원 조기 달성 여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시급 1만 원 달성을 공약한만큼 꼭 지켜야 한다. 최저임금은 국민임금이라고 부를 정도로 저임금 대상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최저임금 차상위 적용 노동자까지 합치면 500여만 명에 이를 정도다. 노조로 조직된 전체 조합원 수의 2.5배가 넘는 규모다. 양질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함께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실현되면 한국 사회는 빠르게 정상화 궤도로 올라설 수 있다.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상생의 공동체로 거듭날 호기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유령이 아니다. 숨겨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엄연한 국민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제 몫을 하고 있음에도 홀대받고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건 선진국 그룹인 OECD 가입국으로서 낯뜨거운 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얼굴이 환해지는 만큼 한국 사회는 인간다운 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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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참여사회> 7.8월호 특집 '비정규직 제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전체 특집 기사는 <참여사회> 7-8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7/07/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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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를 요약하다

변영주 회원/영화감독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김경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변영주


그물에 걸리지 않은 자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훑어본다. 1993년 아시아의 국제매매춘을 다룬 다큐영화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으로 데뷔했으니 20년이 넘는 세월을 감독으로 산 셈이다. 그 긴 세월 때문에 더욱더 도드라지는 숫자가 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일, 2017년 5월 8일. 한 달하고 14일 된 회원의 변명(?)을 들어보자. 
“그날, 김덕진(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씨가 술자리로 불러서 나갔어요. 가보니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우르르 앉아 있더군요. 안진걸 사무처장이 회원가입서를 주는데 그때 참여연대에 아직 후원을 안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 약간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고, 그 자리에서 참여연대랑 다산인권센터랑 몇 군데를 동시 가입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술 먹다 가입서 주길래 이름을 썼다? 안진걸 때문에 쓴 거 아닙니다. 그걸 꼭 밝혀주세요. 누구였어도 했을 거라고.”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조합, 지성과 위트. 그녀의 농담에 긴장으로 팽팽했던 내 배의 근육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영화작업을 안 하실 때는 주로 시민운동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지는 않구요. 그 정도로 시민운동이 널널하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부탁받는 일은 사회를 봐 달라, 강연을 해 달라 이런 건데 이건 시민운동하는 데서는 일도 아닌 것 같거든요. 전 그저 비정규적인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은 사람? 그래서 부탁이 들어오면 돕는 거죠.”

 

남는 시간엔 쌍용자동차 농성장에서 사회를 보거나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 고공시위 현장에 가는 감독. 그런 그녀의 입에서 이 사회의 엄청난 부조리 하나가 폭로된다. 

“근데 저 블랙리스트에 없어요. 하하하.”

 

이 시점에서 우리가 지적해야 할 것은 이전 정권의 무능인가, 관료조직의 한계인가.

“블랙리스트가 2012년도에 문재인 지지선언 한 사람부터 시작되었잖아요. 생각해보니까 전 지지선언을 안 한 거예요. 그때 한창 유세장에서 지원유세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지서명을 받는지도 몰랐어요. 세월호 때는 제가 서명운동을 벌이자고 제안한 사람 중에 한 명으로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직접적인 서명은 안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줄 알았으면 박근혜정부 4년 동안 뭐라도 받아두는 건데, 아쉽죠.”

 

정리하자면, 더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거물들이 오히려 그물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 이 웃픈 일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왕 할 거면 제대로 크게 사고치는 게 낫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영화나 문화예술계에서 블랙리스트로 힘들었던 사람들은 저 같은 사람이 아니라 독립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이나 연극을 하시는 분들 혹은 부산국제영화제처럼 정부나 지자체의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쪽에 계셨던 분들이에요. 재정적으로 가장 취약한 이들을 먼저 흔들고 나서는 거죠.”

 

권력이 휘두르는 주먹에 가장 먼저 매를 맞는 사람들. 그들의 뒤편에 서 있어 지금은 아닐지라도, 언젠간 우리들 중 누군가의 차례가 올 것이기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는 시혜의 문제가 아닌 호혜의 문제다. 

 

출세하고픈 자 
인터뷰 중간 중간 그녀는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 좋은 선택을 많이 해 온 사람이란 말을 했다. 나이를 잘 먹은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다. 

“아, 이 질문 어렵다. 개인적으로 저는 저한테 자주 반해요. ‘대단한데, 잘했어!’ 이렇게. 인간으로서도 그런데, 감독으로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을 때 반하죠. 그런 순간이 <낮은 목소리> 1편과 3편 그리고 <화차> 이렇게 세 번 정도 있었던 같아요. 영화 개봉 후 첫 6개월은 타인의 평가가 중요하구요, 1년이 지난 후엔 스스로의 평가가 중요하죠. 그 이후에도 스스로 부끄럽지 않다면 다음 작품을 시작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 영화 <낮은 목소리>. 처음엔 ‘저 할머니들이 뭔데 나를 쫓아내지?’하는 억울함에서 시작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사람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작업, 그것이 그녀의 영화 인생의 시작점이었기에, 그녀의 젊음은 시간을 두고 성장할 수 있었다.

“영화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더 잘 만들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영화 한 편을 완성하고 났을 때 내 상태가 산산이 재가 되어 있는 정도가 아니면 그 뒤에 꼭 후회가 생기죠. 그래서 평소에도 일상을 규칙적으로 꾸리려고 노력해요. 감독은 영화의 주인공 옆에서 같이 숨 쉬는 사람이 되어야지, 주인공을 창조하겠다고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 영화는 날아가 버리고 말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제어하고 강박하는 걸 좋아한다. 그 힘이 외부에서 올 때도 스스로가 동의할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얘가 시키는 건 다 해야지’ 하며 그녀가 동의한 외부세력들, 시인 송경동,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고동민, 인권운동가 박래군,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박진…. 이들의 숫자가 제발 두 자리를 넘지 않았으면 한다고 그녀는 절규하듯 말했다. 

“인터뷰에 쓰면 되게 웃길 것 같긴 한데, 가끔 더 출세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니까 변영주가 어떤 집회에 가면 확실히 도움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요. 사회적 영향력이라고 말하면 되게 멋있게만 들리니까, ‘출세’라는 말이 훨씬 더 나를 얍삽하게 표현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제가 집회나 농성장 같은 곳을 다니며 이런 저런 일을 하는 것도 사실은 내 일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제가 쌍용자동차 농성장에서 사회를 보면서 했던 말이 있어요. 결국 영화 하는 사람들이 잘되려면 사람들이 극장에 많이 와야 하잖아요. 금요일 밤에 가족들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영화 한편 보고 밥 먹을 정도의 여유가 모두에게 있다면 극장을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죠. 삼성 이재용도 극장 올 때 영화표 1장을 사고 평범한 이들도 1장을 사는데 그렇다면 우리한테 중요한 건 평범한 사람 100명이 금요일 밤에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삶의 조건인 거예요. 그런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게 곧 영화 산업에도 도움 되는 일인 거죠.”

 

신화학자 나카자와 신이치의 <카이에 소바주(야생적 사고의 산책)>시리즈 5권은 ‘인간은 곰이고 곰은 인간이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 안의 모든 것이 그렇다. 굳이 대칭성인류학이니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식이니 떠드는 어렵고 지루한 책을 다섯 권씩이나 읽지 않아도, 나는 감독 변영주의 삶이 해고노동자 고동민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나의 삶이 타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할 때, 사람은 병신이 된다. 내가 이런 거친 표현을 지면에다 쓰는 것도 다 내가 변영주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밖엔 오랜 가뭄의 끝을 알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영화를 볼 시간이다. 

 

이 글은 <참여사회> 7-8월호에 실린 인터뷰를 재구성하였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참여사회> 7-8월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금, 2017/07/0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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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1_비정규직 제로

여기 
‘사람이 있다


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우연히 살아남은 비정규직
이게 사는 것인가. 편의점에서 일하다 봉투값 20원 때문에 살해당하고, 케이블방송 신입 조연출로 노동착취가 일상화된 제작환경 아래 시달리다 자살하고, 꿈많은 고교생인데도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노동현장으로 떠밀려 감정노동에 혹사되다 스스로 저수지에 몸을 던지고만 청년노동자들. 메탄올이 치명적인 위험물질인지도 모른 채 삼성전자와 LG전자 하청업체에서 작업하다 실명에 이른 지방공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욕설과 괴롭힘을 동반한 아파트입주민의 상습 갑질에 그만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생을 버린 중고령 비정규 경비노동자. 


조선소에서, 건설현장에서, 위험·유해 화학물질을 다루는 제조업체에서, 석유화학단지에서, 지하철과 철도에서, 지역과 업종을 가리지 않고 매일 이윤에 눈먼 자본가들의 넋나간 돈놀음 속에서 산업재해의 말단 희생양이 되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한국 사회는 산재사망자 규모로만 3개월에 한 번씩 세월호 참사를 겪고 있다. 헬조선이란 청년들의 한탄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겐 더욱 절박하게 다가온다. 오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연히 살아남은 것인지도 모른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세상이 나아졌다지만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각박하고 참담한 현실은 이윤지상주의 자본왕국에서 여전히 공고하다. 삼성그룹 부회장 이재용이 구속됐지만 일터에서 자본의 위세는 아직도 거칠 것 없다. 

 

작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동차에 치여 죽었다. 성수역, 강남역에 이어 세 번째였다. 커다란 사회적 반향이 일었다. 연이어 6월 23일 삼성전자서비스 가전 AS 기사가 에어컨 실외기 수리 작업을 하다 추락해 죽었다. 재작년 LG전자 AS 기사가 똑같은 사고로 죽었고, 3년 전에는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AS 기사가 전봇대에서 작업하다 떨어져 죽었다. 이대로 두면 안된다는 사회적 각성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연이어 희생된 노동자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외주하청업체 비정규직이란 점이었다. 위험한 작업을 외주화한 하청고용구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주범이었던 것이다. 죽음을 부르는 위험의 외주화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됐지만 아직 변화는 더디다.

 

추락사한 삼성전자 서비스 진 모 기사의 차량엔 점심시간을 한참 지나고도 미처 먹지 못한 아내가 싸준 도시락이 유품으로 남았다. 구의역 김 군도 먹지 못한 컵라면을 유품으로 남겼다. 먹고 살자고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작 끼니도 건너뛴 채 취약한 작업환경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다 목숨까지 잃고 말았다. 한국 사회는 위험을 넘어 죽음을 외주화하는 비정한 정글이 됐다.

 

극심한 불평등과 양극화
1997~1998년 IMF 외환위기를 분기점으로 한국의 노동시장은 양극화와 하향평준화로 치달았다. 민주개혁 정부 10년, 이명박근혜 정부 9년을 통틀어 친기업 노동정책의 기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지체된 채 한국 사회는 가장 나쁜 형태의 격차사회로 전락했다. 노동조합 조직율이 10% 내외로 고착된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 양산과 차별 심화·확대는 가속화됐다.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도 무력화돼 정작 노조가 가장 필요한 취약계층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대부분은 노동권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에 소극적이었던 중앙정부와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도외시한 국회, 정규직 중심 조직노동의 한계에 이르기까지 비정규직 문제 개선과 해결을 둘러싼 주관적, 객관적 조건이 사면초가에 갇힌 형국은 오래도록 지속됐다.


가장 심각한 건 비정규직 노동자 규모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6년 8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과반을 훨씬 넘긴 1,100여만 명에 이른다. 차별도 심각하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임금은 절반에도 못미치고, 최저임금에도 못미치는 불법을 감내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2백만 명을 훌쩍 넘는다. 사회보험 가입률도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1/2~1/3에 머무르고, 사내복지 격차는 더욱 심각해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1/3~1/4 수준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고용형태 중 최악인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비정규직도 급증하고 있어 비정규직 고용의 질도 나빠지고 있다. 

 

노동3권 보장의 유무 지표가 되는 노조 조직율도 심각하다. 전체 노조 조직율도 10% 내외로 낮지만 비정규직 노조 조직율은 2% 내외로 거의 헌법기본권이 무력화된 수준이다. 무노조 삼성이 위헌경영을 하고도 한국 사회 슈퍼갑으로 군림해온 이유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이런 노동 현실이야말로 하루빨리 혁파해야 할 적폐다.

 

더욱 우려되는 건 이런 추세가 한 번도 반전된 적이 없이 꾸준하게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역진불가逆進不可로 굳어져온 만큼 해결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이가 신분의 격차처럼 벌어진 게 2017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상생의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호는 침몰이 불가피하다. 항로 변경을 해야 공멸을 막고 모두가 살 수 있다. 촛불시민혁명으로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돼 다행이지만 아직 장담하긴 이르다. 기대가 우려로 변하지 않도록 모두가 힘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암담한 일상이 개선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질 수준이 대한민국호의 평형수平衡水다.
첫 번째 시금석은 최저임금 1만 원 조기 달성 여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까지 시급 1만 원 달성을 공약한만큼 꼭 지켜야 한다. 최저임금은 국민임금이라고 부를 정도로 저임금 대상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최저임금 차상위 적용 노동자까지 합치면 500여만 명에 이를 정도다. 노조로 조직된 전체 조합원 수의 2.5배가 넘는 규모다. 양질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함께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실현되면 한국 사회는 빠르게 정상화 궤도로 올라설 수 있다.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상생의 공동체로 거듭날 호기를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유령이 아니다. 숨겨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엄연한 국민이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제 몫을 하고 있음에도 홀대받고 차별받고 착취당하는 건 선진국 그룹인 OECD 가입국으로서 낯뜨거운 일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얼굴이 환해지는 만큼 한국 사회는 인간다운 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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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비정규직 제로 2017_7-8월호 월간 참여사회
1. 여기 사람이 있다
2. 비정규직 남용 실태와 대책
3. 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인가
4.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서의 인간
 

수, 2017/07/19-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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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2_비정규직 제로

비정규직 남용 
실태와 대책

 

글.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외환위기 전에는 기업이 사람을 뽑으면 대부분 정규직이었다. 요즘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외환위기 때는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마땅한 정부 통계가 없었다. 통계청이 매달 조사하는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상용직은 정규직, 임시직과 일용직은 비정규직으로 간주하고 그 추이를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상용직 가운데 분명히 비정규직이 있음에도 그 규모를 추정할 방법이 없었다. 

 

비정규직 규모, 정부와 노동계 수치가 다른 까닭
2000년 8월부터 매년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실시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해소되었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똑같은 자료를 분석해도 정부는 2016년 8월 기준 비정규직을 644만 명(전체 노동자의 32.8%)이라 하고,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874만 명(전체 노동자의 44.5%)이라 한다. 이러한 차이가 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정부는 임시직과 일용직 중 절반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하고, 나머지 절반(230만 명)을 정규직으로 분류하는데, 한국노동사회연구소는 임시직과 일용직 모두 비정규직으로 분류한다. 임시직과 일용직 중 절반이 정규직이라니?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15년 동안 정부와 노동계 통계는 이를 두고 줄곧 평행선을 달려왔다.

 

비정규직노동자수

한데 두 통계 모두 빠진 게 많다. 통계 조사방식의 한계 때문이다. 국내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가 100만 명인데,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는 대부분 빠진다. 사내하청이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두 통계 모두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잘못 분류한다. 설문 문항에 사내하청이 없다 보니 정규직으로 잘못 분류되는 것이다. 이주 노동자 100만 명과 사내하청 100만 명을 합하면 비정규직이 1,100만 명에 육박한다. 자영업으로 분류되어 비정규직 통계에서 빠지기 쉬운 특수고용 노동자까지 감안하면 1,200만 명을 넘어선다. 

 


지금까지 비정규직 규모를 파악할 때는 통계청이 조사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사용해 왔다. 이 조사를 통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한계도 많다. 이 조사에서는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33만 명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노동부가 고용형태 공시제를 실시하면서 전수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190만 명이나 된다. 이처럼 수치가 크게 차이 나는 이유는, 통계청 조사는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분류하는데, 노동부 조사는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190만 명 중 93만 명은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이고, 나머지 97만 명은 직접고용 비정규직이다.

 

300인이상사업체비정규직노동자수


상시·지속적 일자리는 직접고용 해야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을 없애야 한다. 법 개정만 좇다 보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기 쉽다. 어느 정부 들어서나 국회 의석은 여야가 나눠 갖기 때문에, 원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법 개정만 쳐다보다가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한 채 끝나 버릴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따라서 법 개정보다는 행정조치나 집행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우선 ‘상시·지속적 일자리는 정규직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이는 박근혜 정부도 이야기한 원칙이다. 일종의 ‘사용사유 제한’인데, 박근혜 정부는 공공부문 직접고용에 한정해서 운용했다. 서울, 인천 등 지방자치단체는 한 걸음 나아가 간접고용에도 이 원칙을 적용했다. 공공부문에서는 직접고용이든 간접고용이든 상시·지속적 일자리면 정규직으로 직접고용 해야 한다. 생명안전 업무도 관련 법 개정을 기다리기보다는 행정조치 등 가능한 수단을 사용해서 직접고용 해야 한다.


청년 인턴 제도는 없애는 게 낫다. 우리가 젊었을 때 인턴은 대학병원 의사밖에 없었다. 선배로부터 많은 노하우를 전수받고 숙련을 쌓아야 하기 때문에 인턴 제도가 필요한 것인데, 요즘은 뭐든 인턴이라며 임시직으로 사용하는 방편이 되고 있다. 


민간 부문은 어떻게 해야 할까? 10대 재벌 사내하청 노동자가 40만 명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은 93만 명이다. 이 가운데 사내하청 정규직화가 문제가 됐던 곳은 현대자동차 정도다. 민간 대기업 사내하청은 상당 부분 불법 파견에 해당되기 때문에, 정부가 현행법에 따라 단속을 강화하면서 불법파견으로 판명 나는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사내하청이나 파견용역은 정규직 직접고용으로 전환한다 해도, 사외하청이나 하도급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때는 사용자 정의를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임금, 고용 등 노동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는 사용자로 간주하고 하도급 업체와 연대 책임을 지는 공동 사용자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3권을 보장하고, 사회보험을 적용해야 한다.


고용형태별 차별 금지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조항을 법제화한다고 해서 곧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도 남녀고용평등법에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조항이 있다. 그렇지만 남녀 간 임금격차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크다. 법률 조항 하나 들어간다고 해서 순식간에 임금격차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꺼번에 다 지켜지지 않는다 해도 이 조항이 법제화되는 것은 필요하다. 그것은 그만큼 정부의 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며, 이후 개선의 마중물이 되기 때문이다. 

 

상시지속적일자리

 

특집. 비정규직 제로 2017_7-8월호 월간 참여사회
1. 여기 사람이 있다
2. 비정규직 남용 실태와 대책
3. 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인가
4.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서의 인간
 

수, 2017/07/19-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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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3_비정규직 제로

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인가


글. 김혜진 세종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에 대해, 남용금지와 차별금지를 많이 이야기한다. 남용금지가 정규직을 써야 할 일자리에 비정규직을 쓰는 것을 금지하는, 흔히 말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의미한다면, 차별금지는 비정규직을 쓸 경우 정규직과의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2006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노동계 안에서도 비정규직 보호의 초점을 남용금지에 둘 것인지 차별금지에 둘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보더라도 차별금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중요한 한 축임에 틀림없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한 축, 차별금지
비정규직의 월평균 임금총액은 2015년 기준 146만 7천 원으로 정규직의 54.4%에 불과했다. 비정규직의 주당 근로시간이 35.9시간으로 정규직의 44시간에 비해 적다는 것을 감안해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임금격차가 아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적용비율은 국민연금이 36.9%, 건강보험이 43.8%, 고용보험이 42%로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 현상에 있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사업주들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데는 저임금 등으로 인건비를 줄이려는 것이 주요 이유이기는 하나, 업무의 계절성·전문성 등 노동수요의 단속성이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단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사용하는 비정규직은 정규직화를 통한 남용금지로 해결될 수 있지만, 업무의 단속성으로 인한 비정규직 사용은 차별금지와 같은 노동조건의 공정성 확보가 중요한 해결 방안이 될 것이다. 

더구나 남용금지와 차별금지는 상호 분리된 해결방안이 아니다. 비정규직 차별을 엄격히 금지할 경우, 단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사업주들에게 그 이유를 없앰으로써 비정규직 사용 자체를 줄일 수 있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해소는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적용이 가장 중요한 방안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란, 직무에 관계없이 동일가치노동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은 동일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미국 등에서 남녀 임금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사용되기 시작한 원칙이다. 남녀 임금차별 해소를 위해서 처음부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확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으로 출발하였으나, 남성과 여성의 직무가 분리되어 있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여성운동을 중심으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조금 더 진전된 ‘유사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거쳐 직무가 다르더라도 동일가치노동의 경우에는 동일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이 정립된 것이다. 


미국의 기준을 채택하여 한국에서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8조에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고 있으며, 동일가치노동의 기준으로 ‘직무 수행에서 요구되는 기술, 노력, 책임 및 작업 조건’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사업주가 임금차별을 목적으로 설립한 별개의 사업은 동일한 사업으로 본다’고도 명시되어 있다. 기술, 노력, 책임, 작업조건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면, 남성 기술자와 여성 어린이집 교사의 직무도 상대적 가치가 얼마인지 계산할 수 있으며 이 상대적 가치에 따라 임금을 비교할 수 있는 것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성별로 분리된 남녀임금차별의 경우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차별에 훨씬 용이하게 적용될 수 있다. 시설관리, 청소와 같이 과거 정규직이었던 직무가 비정규직화 되었거나, 정규직의 직무를 약간 변형하여 비정규직 직무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남녀 간보다 비교의 대상이 더 명확하다. 

 

궁극적인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하여
현재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는 정규직과의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기간제노동자에 대한 차별 대우를 금지하고 있는데, 사업장 내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는 동일노동의 개념보다는 조금 넓지만 한 직무 전체를 비정규직화 하는 상황에서는 비교가 어렵다. 따라서 우선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법률에서도 남녀평등을 위한 법률과 마찬가지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명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법적 명시만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해소되지는 않는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노동조합, 사업주, 전문가들이 함께 팀을 구성하여 장기간에 걸친 조사와 합의를 통해 평가절하되어 왔던 여성의 임금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맞게 올리는 과정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015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남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하나의 사업장이 아닌 동일한 사업주가 운영하는 모든 사업장으로 비교대상을 넓히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률 명시와 이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노사의 노력이 성공에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으나, 한국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방안들이 필요하다. 


첫째, 이 원칙의 적용대상을 간접고용 노동자까지 확대하여 대기업 정규직과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하고, 현재 차별시정기관인 노동위원회에 조사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당사자만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조합이나 노동위원회도 차별소송의 주체로 인정하는 등, 직접적으로 이 원칙의 적용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둘째, 동일가치노동 판단을 위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고용공시제에 임금 등을 포함하여 전 사회적으로 임금격차에 대한 현상을 파악하고, 공공부문부터 정규직·무기계약직·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직무평가 틀을 마련해야 한다. 민간부문에서도 대표적 업종의 벤치마킹 직무에 대한 직무평가를 정부 지원으로 실시해야 한다. 이렇게 실시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기초적 직무평가 결과는 직무평가 사이트의 형태로 구축하여 산업전반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법처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동일 사업주의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특히 대기업에서, 간접고용까지 그 비교대상을 확대하는 것으로는 사회 전반적으로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차별을 해소하기 어렵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기업주를 뛰어넘어 산업별 혹은 업종별로 임금을 비교하고 평가하기 위한 중장기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완전한 실현은 오랜 동안의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공동체의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현실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소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새로운 정부가 비정규직의 남용금지뿐 아니라 차별금지와 관련해서도 당장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과제들이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비롯한 최소한의 노동조건 준수를 원청 사용자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이나, 고용공시제의 확대·강화, 공공부문의 직무평가 시행 등 행정적 의지로 가능한 일들이 있다. 이러한 행정적 실천은 평등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을 모음으로써 국회에서의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법적 명시와 관련 법 제개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특집. 비정규직 제로 2017_7-8월호 월간 참여사회
1. 여기 사람이 있다
2. 비정규직 남용 실태와 대책
3. 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인가
4.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서의 인간
 

수, 2017/07/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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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사회읽기모임

 

청년참여연대 <참여사회> 읽기 모임에 초대합니다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 <참여사회>를 함께 읽는 청년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참여사회>는 매월 호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이슈를 다룬 특집과 화제의 인물,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일상의 참여를 이어가고 있는 회원의 인터뷰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청년참여연대의 다른 청년들과 <참여사회>를 함께 읽고,

세상과 청년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첫 모임은 참여연대아카데미에서 서클대화 형식의 독서모임을 이끌고 계신 이은주 선생님과 함께 합니다.

 

 

특히, 이런 분들에게 권해 드립니다.

 

- 다른 독서모임을 경험해 봤지만, 발제나 토론 방식이 부담스러웠던 분

- 지식자랑이나 논쟁이 아니라 안전한 대화가 있는 독서모임을 원했던 분

- 누구에게 부담 지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독서모임을 경험하고 싶은 분

- 다른 청년들과 한달에 한번 부담없는 대화 모임을 원하는 분

 
일시 : 3/14(수) 오후 7시

창소 :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

참가비 : 5천원 (김밥, 샌드위치 등 다과비용)

문의 : 청년참여연대(02-723-4251)

 

참가신청하기 (클릭)

 

금, 2018/03/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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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참여사회 5월 이달의 문장이달의 문장 

참여사회 2018년 5월호 (통권 255호)

 

 

1. 결혼할 사람도, 생각도 없는데 ‘언제’냐고 물을 땐 늘 곤혹스럽습니다.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라고 묻는다면 얼마든지 대답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3쪽)

 

2. 권좌에 오른 주군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칠 듯하더니 탄핵당하고, 구속되고, 유죄판결을 받아도 누구 하나 나서는 이가 없다. 국회의원직을 내던져서라도 충성심을 보일 법한데 아직 의원직을 건 이도 없다. (4쪽)

 

3. 우리는 비혼여성입니다. 결혼하지 못한 미혼여성이 아닌,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선택한 비혼여성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립된 섬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홀로 꽃필 수 있고, 함께 꽃필 수도 있는 자유롭고 완전한 존재입니다. (9쪽)

 

4. 개인은 젓가락 한 짝처럼 불완전한 미완성품이기에, ‘세트’를 맞춘 자들만을 바람직한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승인한다. 내 새끼손가락은 텅 비었고, 나는 반쪽이 아니고, 인간은 짚신이 아닌데 말이다. (12쪽)

 

5.  . 구교 기독교나 고려 불교가 모두 성적 결합이나 결혼을 부정하는 교리를 갖고 있었다. 또 동시에 고려 시대 절에서의 ‘탑돌이’가 오늘날 ‘불륜’이라고 부를만한 성관계를 상징하듯이, 서구의 구교 사제들도 사실혼 관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종합하면, 중세에는 성관계와 사랑이 결혼/가족제도와 반드시 일치하지 않았다. (17쪽)

 

6.  꿈꾸던 직장에 들어가도 자아실현을 바랄 수는 없고, 오히려 실망만 많아지고 착취나 당할 뿐이다, 즉 노동은 노동일뿐이라는 풍조가 만연해진 거다. 자아실현은 노동이 아닌 곳에서 하는 거고, 노동은 그저 돈을 버는 일일 뿐이라는 거.  (26쪽)

 

7. 길을 가는 데 길동무가 있어야 해요. 길동무가 없으면 사람이 금방 지쳐요. 다리 아프다고 좀 앉고 싶다고 앉으면 그냥 거기 주저 앉아버려서 못 일어서거든요. 그렇지만 동무가 있으면 “야, 해지기 전에 좀 더 가자 하며, 서로 끌고 밀고 당기면서 가잖아요. 그래서 동무가 필요한 거예요. 참여연대가 가는 길이 바로 그런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31쪽)

 

8. 아버님 누군가 누군가가 우리 모두가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빈부의 격차를 떠나 산다는 의미의 지혜가 이처럼 허무하게 느껴지는 현실에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고 봐야 한다는 여러 사람들의 생각에 폭탄을 터뜨리기 위해선 성냥이 필요합니다.(33쪽)

 

9.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김지영’ 씨의 내일을 신혼부부 주택 공급이나 국공립 어린이집 신청, 그리고 찾아가는 산후도우미 서비스로만 제시하려는 것이다. (34쪽) 

 

10.  마라톤에는 어김없이 각종 특산물과 이색 음료가 가득했으니, 이 책을 읽고 괌 마라톤에 출전하려다가 술과 음식에 취해 출발선에 서지도 못하고 돌아온 동료의 경험담이 새삼 떠오른다. (38쪽) 

 

11. 여행지에 가서 달리기라니 많이들 의아해하실 텐데 현지인들 틈에서 같이 뛰면, 살아보는 여행 그 이상으로 도시에 대한 깊숙한 친밀함이 느껴진다. (42쪽)

 

12. 우리는 304명의 희생자들을 생각하며 노란 바람개비를 심었습니다. 노란 바람개비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하늘의 별이 된 이들이 왔다 간 줄 알겠습니다. (46쪽)

 

13. 사드를 철거해야 할 이유는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반도 정세에 역행하는 부지 공사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봄처럼 소성리에도 봄이 와야 합니다. (50쪽)

 

14. 심지어 “참여연대의 내로남불과 도덕성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면서 ‘엉터리 광우병 소동’, ‘천안함 괴담’ 등의 표현을 통해 참여연대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문제제기를 근거 없이 폄하했다. 

 

15. 과연 선거 당일 투표만 하면 유권자로서 나의 역할은 끝일까? 지방선거와 당선자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이토록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이렇게 시민들의 관심이 적은데 우리나라 지방선거, 혹은 지방자치는 이대로 괜찮을까?

 
목, 2018/05/03-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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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센터, 안경점, 한의원, 치과, 약국, 카페, 동물병원, 음식점, 슈퍼, 컴퓨터수리, 게스트하우스... 온라인 쇼핑몰도 괜찮습니다. 

업종에 상관없이 회원이나 회원의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나 업체라면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등대가게로 신청하시면 참여연대 회원가입서와 홍보물을 보내드립니다. 사업장에 비치해 주시면 됩니다. 

회원의 가게 정보는 온라인 지도로 제작해 참여연대 홈페이지, SNS, 월간<참여사회> 고정란을 통해 홍보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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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8/07/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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