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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액션: 아프간 사람들을 위해 연대의 메세지를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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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 액션: 아프간 사람들을 위해 연대의 메세지를 올려주세요

admin | 목, 2021/08/26- 23:48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위한 연대 액션을 요청하는 포스터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위해 연대해 주세요

8월 31일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를 앞두고 아프간 사람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회원과 지지자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안전과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모으고자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용감한 아프간 사람들을 위해 연대의 메시지를 올려주세요.

Q. 무엇을 하면 되나요?

8월 31일까지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 #UniteForAfghanistan #TogetherForAfghanistan와 함께 연대 메시지 혹은 짧은 연대 영상을 올려주세요!

*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연대의 메시지를 올릴 때는 @amnestysasia를 태그해주세요.

샘플 메세지

메시지 1)
아프가니스탄의 인권옹호자, 여성 리더와 학자, 활동가 등 많은 사람들이 탈레반 보복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한 목소리로 이들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UniteForAfghanistan #TogetherForAfghanistan
메시지 2)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20년간 지켜온 인권의 진전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탈레반의 통제 아래 여성과 소녀들은 더 큰 위험 안에 있습니다. 용감한 아프간의 사람들과 연대합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UniteForAfghanistan #TogetherForAfghanistan
메시지 3)
“전세계가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용기 있는 아프간 인권옹호자와 연대합니다”
#UniteForAfghanistan #TogetherForAfghanistan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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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페미니스트인 것은 중요합니다.
딸들은 이제 모든 남성에게 성평등적 가치관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성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은 당연히 남성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남편으로서, 파트너로서, 남자친구로서, 우리는 진정으로 평등한 관계를 위해 끊임없이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2016년 8월 글래머지에 기고한 “This is What a Feminist looks Like”에서
(한글 번역 Feminisits in Korea에서 발췌 인용)


유명인이 페미니스트인 것은 중요합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여성의 권리를 위해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는 것은
페미니즘에 대한 그릇된 공격과 비난을 걷어내고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여성이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화, TV, 인터넷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유명한 얼굴들이
이제 흔하게 페미니스트임을 보여주는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최근에는 문재인 후보와 배우 유아인씨도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습니다.
이미 페미니스트인 심상정 후보도 있지요.
이처럼 한국에서도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페미니스트를 보기를 원합니다.


여성으로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위해, 서로를 위해,
정의를 위해, 모두를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어디 출신이든,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미셸 오바마


저는 사회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존중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세상의 어떤 나라도 성 평등을 성취했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내가 아니면 대체 누가 하죠? 지금이 아니면 대체 언제 하죠?

–엠마 왓슨


너무나 많은 국가의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같은 언어를 말한다. 침묵의 언어다.

–힐러리 클린턴


화, 2017/03/0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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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표창을 받아 포상금을 전액 기부합니다. 작은 뜻을 이뤄 기쁘고 행복합니다. 언제나 국제앰네스티를 응원하겠습니다.”

11월 초, 국제앰네스티는 백승윤 회원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2007년부터 3년간 국제앰네스티에서 영어 번역봉사를 해온 백승윤 회원이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인권 보호에 힘을 보태 주었다. 그녀를 만나 근황을 묻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백승윤 회원1

ⓒ Amnesty International Korea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 드립니다.

평범한 5년 차 회사원이에요. 얼마 전까지는 홍보를 담당해서 기사 쓰고, 사진 촬영을 다니는 게 주요 업무였어요. 그리고 현재는 법무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처음 해보는 업무라 그런지 어렵지만, 열심히 배워가고 있는 단계에요. 이전에는 보통 제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입장이었는데, 막상 인터뷰 대상자가 되어 보니 많이 떨리네요. 잘 부탁 드릴게요.

앰네스티와 인연이 깊다고 들었어요.

대학생 때 한 3년 정도 번역봉사를 했었어요. 앰네스티를 알고 연락 드렸던 건 아니었고요. 무작정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앰네스티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고, 번역봉사 하고 싶다고 연락 드렸죠. 2007년부터 3년 가까이 다양한 사례와 자료를 번역했어요.

봉사활동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당시 UA(Urgent Action, 긴급행동) 사례를 주로 번역했는데, 길이도 길고 일상 회화에서 자주 사용되지 않는 용어가 많기 때문에 사전을 계속 찾아보며 번역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시간도 꽤 걸리더라고요. 학교 다니면서 앰네스티 번역봉사를 매주 3~4시간 정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3학점짜리 수업 하나를 더 듣는 기분이었어요. 그래도 3년 정도 꾸준히 하다 보니 점점 번역 속도도 붙기 시작했는데, 취업을 준비하면서 자원봉사를 더 이상 못하게 되니 많이 아쉽더라고요.

백승윤 회원2

ⓒ Amnesty International Korea

3년이면 정말 긴 시간이네요. 그렇다면 혹시 기억에 남는 사례 같은 건 없으세요?

한번은 사형제도 캠페인 자료집을 번역한 적이 있었어요. 사형제도와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포괄적으로 다룬 자료집이었는데, 번역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료집 내용도 인상적이었는데, 사형제가 왜 폐지되어야 하는지, 사회통념은 어떻고 실제는 어떤지 등에 대한 내용을 객관적이면서 냉철한 시각으로 담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번역하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그만큼 배운 것도 많았어요.

이번에 특별한 계기로 후원을 해주셨다고 들었어요.

최근에 저한테 여러모로 감사한 일들이 많았는데요. 저희 회사는 계열사마다 커뮤니케이터가 저처럼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번 커뮤니케이터들의 활동을 돌아보고 표창을 수여하는데요. 감사하게도 제가 올해 그 표창을 받게 되었어요. 제가 한 일에 비하면 정말 과분한 상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한 만큼 더더욱 기부하고 싶었어요.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고요. 자원활동 할 때부터 나중에 사회에서 인정받고 상을 받게 되면 그건 꼭 기부하기로 마음먹었었거든요.

앰네스티 후원이 버킷리스트 중 하나라니, 영광입니다! 버킷리스트는 많이 달성하셨나요?

아니에요. 이제 시작이죠. 다음 거는 한 10년 후쯤에나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TED 아세요? 열심히 일해서 제 전문 분야를 가지고 TED에 가서 발표해보고 싶어요. 버킷리스트는 이렇게 두 개예요. 그러고 보니 벌써 반은 달성했네요. 너무 많은 걸 정해놓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계획하고 이뤄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수많은 단체 중 앰네스티에 기부하고자 한 이유가 무었이었나요.

이전부터 인권을 옹호하는 게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앰네스티에서 오랜 시간 자원봉사를 한 이유이기도 하죠. 봉사활동 하다 보면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많은 이슈를 접하게 되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 일하는 게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 느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에도 큰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무엇보다 제가 몸담았던 곳이니까 가장 먼저 생각난 게 아닐까요?

몸담았던 곳’이라는 표현이 참 좋네요. 회원님에게 인권이란 무엇이죠?

‘존중’이란 단어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어요. ‘인권’이라 하면 뭔가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 것 같은데, 존중이라는 단어로 바꿔 생각하면 오히려 쉽게 와 닿아요.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인권이고,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백승윤 회원3

ⓒ Amnesty International Korea

마지막으로 앰네스티 회원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앰네스티에서 봉사활동 했던 경험은 대학생 때 했던 활동 중 가장 가치 있는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앰네스티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 생각의 폭을 넓혀주었고 세계 각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인권 이슈를 접할 수 있는 유익한 활동이었어요. 많은 분들도 이런 활동에 참여해보시라고 꼭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수, 2016/12/14-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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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이 하늘로 올랐다. 그가 죽음을 곁에 두고 사경을 헤맸던 317일, 경찰도 검찰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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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사실에 대한 부인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오후 2시경 이미 경찰은 백남기 농민이 안치될 장례식장을 새까맣게 에워싸고 있었다. 경찰은 “정확한 사망 원인 규명을 위해 부검이 필요하다”고 했고, 경찰과 검찰은 부검 영장을 청구했다. 우리가 1년 가까이 익히 알고 있었던, 경찰의 집회·시위 진압과정에서 한 농민이 물대포로 인해 사망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인권침해를 풀어가는 첫 단추는 피해사실의 인정이다. 그러나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시점부터 세상을 떠나는 그 날까지 경찰은 한 번도 피해사실도,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민중총궐기 진압 현장의 총지휘를 맡았던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 청장은 작년 11월 16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연히 (물대포를) 쏟아붓다 보니 생긴 불상사”로 사건을 규정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더 나아가 “영상이 공개됐지만,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피해사실을 부인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진상조사단을 꾸렸다고 하지만 외부로 공개된 사실은 없었다. 다만,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쓰러졌던 현장의 책임자인 기동단장은 영등포 경찰서장으로, 당시 경비국장은 강원경찰청장으로 영전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뿐이다.

 

밝혀지지 않은 지휘책임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지 300여 일이 지난 9월 12일, 15만 시민들의 청원으로 가까스로 국회 청문회가 열렸다. 당시 경찰 총책임자였던 강신명 경찰청장에서부터 구은수 전 경찰청장 그리고 살수차 조작 경찰관까지 증인으로 섰다. 백남기 농민을 겨냥했던 충남살수 9호를 조작한 경찰이 현장에 투입된 것은 처음이며, <살수차운영지침>에 따라 사람을 향해 직사살수 할 때 가슴 밑을 겨냥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시야가 전혀 보이지 않는 살수차 안에서 감으로 액셀을 밟으며 수압을 조절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러나 마땅히 밝혀져야 할 것들이 밝혀지지 않았다. 지휘책임이다. 당시 <살수차운용지침>에 따라서 경고살수와 직사살수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조준 살수 명령은 없었는지, 직사살수 명령은 누가 내렸는지 어느 지휘관도 살수차 조작 경찰도 제대로 진술을 하지 않았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지고 2시간이나 지나서야 사고를 파악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과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현장의 사고상황을 제때에 보고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지, 지휘 공백은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진술은 없었다.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서린교차로를 담당하고 있었던 현장 기동단장이 왜 현장 상황을 즉각 파악해 긴급구호 조치를 할 수 없었는지, 직사살수 명령을 본인이 직접 내린 것인지 아닌지도 모호했다.
그런데도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법적 책임이 가려지면 그때 가서는 사과를 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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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과는 책임자 처벌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인간적인 사과의 의미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사과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공식적인 사과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다. 국제인권규범에서 ‘공식적’ 사과는 사실인정과 책임수용을 포함한다. 그 책임은 책임 있는 개인들에 대한 사법적·행정적 제재까지도 의미한다.

국가의 인권침해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있다. 바로 ‘불처벌(impunity)’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인권 침해에 대해 어떤 조사도 되지 않고 법률상 또는 사실상 인권침해자의 책임추궁이 불가능해지는 것을 일컫는다. 위임받은 국가의 권력은 힘이 세다. 국가의 이름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해 집행하는 경찰력도 힘이 세다.
우리는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지 꼭 1년이 되는 그 날, 바로 그 장소에서 ‘우리가 백남기’라며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다시 섰다. 그 힘센 공(公)의 권력이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고서도 처벌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생명을 위협해도 된다는 ‘무사통과’ 신호를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 이는 ‘경찰이 시민들을 보호하지 않고 물대포를 동원해 집회·시위의 자유를 가로막고, 심지어 목숨을 앗아가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보호받고 승진도 할 수 있다’는 신호를 주기 때문에 우리 모두에게 위험하다. 그래서 백남기 농민의 생명을 앗아간 공(公)의 권력이 법의 심판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우리가 모두 백남기가 되어 끝까지 싸울 수밖에.

※ 이 글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소식지 2016년 3호(통권 58호)에 실린 글입니다.

목, 2016/12/0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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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150개국에서 활동하는 세계최대 인권단체 입니다. 앰네스티가 수많은 국가의 인권문제를 국제적으로 알리는데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을 위해 캠페인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세계 700만명의 회원 및 지지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20년 가까이 활동해 온 독일지부 회원이 한국 회원들에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성별. 나이, 사는곳, 언어가 달라도, 얼굴 한번 본적 없는 이들을 위해 펜을 들어온 앰네스티의 오랜 회원이 여러분에게 보내는 메시지, 지금 확인해보세요.


ⓒ 권은비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되었던 뮌스터대학 송두율 교수를 위한
탄원 활동을 벌였고, 이후 독일로 돌아온 송교수와 만났습니다.
탄원 캠페인을 했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는 일은 흔치 않아서인지
그가 겪은 고초를 들었던 그 밤을 잊지 못합니다.

– 한스 부흐너 –


한국의 앰네스티 회원분들께,

안녕하세요. 저는 한스 부흐너(Hans Buchner) 입니다. 독일지부 회원이자 지난 19년간 남북한 공동그룹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올해 그 직함을 내려놓고 다시 보통의 회원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대표직함을 내려놓고 다시 그룹회원으로 돌아가는 올해, 한국을 위해 활동해온 지난 20년의 시간을 짧게나마 나누고 싶어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독일지부에는 뮌헨의 남한 그룹과 베를린의 북한그룹이 있었습니다. 두 그룹의 회원들이 1998년 11월 모임을 갖고 남북한을 위한 활동그룹을 만들었어요. 그 해는 한국에서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해라 더 선명히 기억나네요.

뮌헨에 10명, 베를린에 2명 등 많지 않은 회원으로 구성되었지만, 함께 탄원편지를 쓰는 것 이외에도 <Korea konzentriert>이라는 계간 뉴스레터를 만드는 등 한국에 대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독일 의회 의원부터 대학까지 다양하답니다.

제가 맡았던 대변인은 그룹 대표와 같은 의미입니다. 기자, 의회,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한국의 인권상황에 대한 문의가 있을 때 남북한그룹의 공식 연락창구라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그룹 내 월간 모임도 열고, 그룹 구성원간 역할을 조정하기도 하구요. 한국소식을 모니터링 하고 회원들과 공유하기도 한답니다. (한국의 그룹활동과도 저희와 비슷한가요?)

아마 제가 20년이나 그룹의 대표역할을 한것이 놀라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이렇게 오래 맡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저는 원래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나 문화, 사회 발전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기소 당하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돕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독일인이지만 독일에 대해서만 활동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인권상황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는 앰네스티의 활동방식도 저의 생각과도 잘 맞았구요. 저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도 상당히 만족스러웠어요. 그래서 이렇게 오랬동안 활동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20년간 활동해주신 한스 부흐너씨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한국지부에서 작은 공로패를 전달드렸습니다!

 
한국활동을 회고해 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은  앰네스티 양심수였던 (故)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입니다. 하지만 집권 이후 여전히 수천 명의 양심수들이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접하면서 기대만큼 실망도 많았습니다. 여기에는 뇌졸중과 마비증세에도 불구하고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던 당시 세계최장기수(42년 수감)였던 우용각씨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무리 편지를 보내도 긍정적인 변화 하나를 확인하는데 너무 오래 걸리다 보니 자주 좌절했습니다.

하지만 편지 덕분에 다시 힘을 내게 되는 것이 앰네스티 활동인 것 같습니다. 어느날인가 연대편지를 보냈던 한 수감자에게 편지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 누군가는 나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 편지를 받게 될 때마다, 좌절하거나 포기할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활동의 의미가 더 뚜렷해지곤 했어요.

뮌스터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이던 송두율 교수와의 만남도 기억에 남습니다. 송 교수는 2003년 한국을 방문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되었고, 우리 그룹은 그를 위해 탄원편지를 보내는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독일로 돌아온 그는 나와 내 아내를 베를린의 한 한인 식당에 초대해 탄원 활동을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탄원 캠페인을 했던 사람을 실제로 만나게 되는 일이 흔치 않은데, 그래서인지 그가 겪은 고초를 들었던 그 밤을 잊지 못합니다.

최근 지난 20년간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바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수 주의 걸친 촛불 시위입니다. 오랜 기간 한국을 지켜 봐왔던 사람으로서 가장 감명 깊었습니다. 전세계 민주주의의 표본이 되었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저는 조만간 대표 자리에서 물어납니다만 그룹 활동은 계속 할 생각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노동자의 책’이라는 전자도서관을 운영했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이진영씨를 위한 탄원에 참여했고, 독일지부가 수여하는 인권상후보에 한국의 박래군 활동가를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조만간 한국의새정부가 들어서는 대로 다시 탄원을 보내는 활동을 재개할 것입니다. 한국의 사형제 폐지 요청이 그 첫 번째가 될 것 같습니다.

새정부가 시작된 한국에서 인권 증진을 기대해 봅니다. 그 길에 독일의 남북한 공동 그룹도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잊지 말아주세요. 고맙습니다.

2017. 04. 06
한스 부흐너 드림

목, 2017/05/25-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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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50년

군사명령 101호의 충격적인 네 가지 진실

 

이스라엘은 지난 50년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회-시위를 원천 금지해 왔다.

8월 27일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의 평화적인 정치적 의견 표현을 금지하는 ‘명령 101호’를 발부한 지 50년째를 맞는 날이다. 이 명령을 위반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 또는 무거운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제 50년이 된 명령 101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한 기간만큼이나 오래된 조항이지만 여전히 서안지구의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언제든지 적용될 수 있다.

이처럼 가혹한 군법 조항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 네 가지 사실을 통해 그대로 느낄 수 있다.


 1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군의 사전 허가 없이 10명 이상이 모이는 행진, 집회, 농성에 참여할 수 없다.

행사의 목적이 정치적인 경우나, 행사 중에 정치적인 주제 또는 그렇게 여겨질 만한 연설을 하거나 논의하는 경우라도 반드시 이스라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1967년 이후로 이스라엘은 군법에 따라 여성과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수만 명에 이르는 팔레스타인인을 체포, 구금했다. 그중 다수가 정치적으로 보이는 평화적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명령 101호가 적용되어 체포되었다.

팔레스타인 인권옹호자인 파리드 알 아트라시(Farid al-Atrash)와 이사 암로(Issa Amro)는 현재 이스라엘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두 사람에게 적용된 다수 혐의 중 하나는 “무허가 행진에 참여”했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국제적으로 형사범죄라고 인정되지 않는 혐의다. 두 사람은 2016년 2월 26일, 이스라엘인들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안에 불법으로 정착촌을 조성하고 있는 것과 헤브론 구시가지에 차별적으로 이동 제한을 부과하고 있는 것에 반대하며 평화적인 행진을 벌였다.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와 함께 평화적인 집회의 자유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비롯해 이스라엘이 당사국으로 있는 다수의 인권조약에도 명시되어 있는 권리다.

 

 2 

이스라엘군 허가 없이 특정 깃발 또는 상징, 정치적인 내용의 문서 또는 이미지를 공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지난 50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포스터를 방에 붙이거나,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고 구금되었다.

1993년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오슬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이러한 행위는 범죄로 처벌되고 있다.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 팔레스타인은 유엔 비회원 참관 국가 지위를 획득했고, 135개국 이상의 유엔 회원국에 국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군 지휘관의 허가 없이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거나, 방에 ‘부적절한’ 포스터를 붙이는 것은 여전히 이스라엘 군법상 범죄행위로 간주되고 있다.

현재 군사재판이 진행 중인 이사 암로(Issa Amro)는 ‘무허가 시위’에 참가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팔레스타인 국기를 흔들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행위로 해석되기 때문에 범죄라는 것이다.

 

 3 

군사명령에 따라 불법으로 간주하는 단체의 활동 또는 목적을 지지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대다수 팔레스타인 정당과 학생회가 이러한 불법 단체에 속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깃발을 흔들거나, 찬송가를 부르거나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단체’로 간주한 정당 또는 학생회 또는 노조를 지지할 경우, 명령 101호에 따라 체포될 수 있다.

기자와 학생, 교사, 농부, 정치인, 운전기사까지 팔레스타인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이 이 명령에 따라 체포, 구금되고 고문과 부당대우를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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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 101호를 위반할 경우 누구나 10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무거운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전 양심수 바셈 타미미(Bassem Tamimi)는 2012년 11월 6일, 이스라엘 정착촌을 반대하는 평화적 시위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징역 4개월과 5천 셰켈(당시 환율로 미화 1,280달러)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법원은 이에 더해, 사전형량조정(plea bargain)을 통해 이미 3년 형을 선고하고 집행유예 3개월도 부과했다. 바셈 타미미는 명령 101호를 위반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전형량조정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군사법원에 선 팔레스타인 사람은 사실상 모두 유죄를 선고받으며, 대부분의 경우 사전형량조정을 거쳐 형이 선고됐다. 팔레스타인 피고인들은 사법제도 자체가 매우 불공정해 그대로 재판을 받을 경우 더욱 무거운 형량이 선고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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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17/09/0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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