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아프가니스탄의 미군 철수를 앞두고 아프간 사람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국제앰네스티는 전 세계 회원과 지지자와 함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안전과 인권 보장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모으고자 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용감한 아프간 사람들을 위해 연대의 메시지를 올려주세요.
Q. 무엇을 하면 되나요?
8월 31일까지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 #UniteForAfghanistan#TogetherForAfghanistan와 함께 연대 메시지 혹은 짧은 연대 영상을 올려주세요!
* 트위터, 인스타그램에 연대의 메시지를 올릴 때는 @amnestysasia를 태그해주세요.
샘플 메세지
메시지 1)
아프가니스탄의 인권옹호자, 여성 리더와 학자, 활동가 등 많은 사람들이 탈레반 보복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한 목소리로 이들의 안전한 이동을 보장해야 합니다. #UniteForAfghanistan#TogetherForAfghanistan
메시지 2)
아프가니스탄은 지난 20년간 지켜온 인권의 진전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탈레반의 통제 아래 여성과 소녀들은 더 큰 위험 안에 있습니다. 용감한 아프간의 사람들과 연대합니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겠습니다. #UniteForAfghanistan#TogetherForAfghanistan
메시지 3)
“전세계가 아프가니스탄의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용기 있는 아프간 인권옹호자와 연대합니다” #UniteForAfghanistan#TogetherForAfghanistan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5년 11월에 있었던 대규모 집회 주최자라는 이유로 실형 3년과 벌금 50만원을 선고받고 수감중입니다. 그가 수감되고 일년 사이 대한민국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접견과 서신을 통해 한상균 전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아래는 한상균 전 위원장의 서면 인터뷰를 요약/편집 하였습니다.
출소하면 백남기 농민을 찾아뵙고, 어르신의 투쟁이 세상을 깨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곡차를 올리고 싶습니다
2016년 12월 13일, 그로부터 일년 전 있었던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이하, 민중총궐기)를 두고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시위대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하고 법질서를 지키기 위한 차벽과 물대포는 정당하다’는 항소심 재판이 있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검찰과 1심 재판부를 비호한 판결을 내렸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습니다.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민중총궐기가 폭도로 마침표 찍힌 지 1년만에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분노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었고 들불처럼 타올랐습니다. 1년 전과 같았던 집회신고 행진코스에 대해 법원은 정당한 권리라며 주권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토록 내어주지 않았던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턱밑까지 말입니다.
출소하면 백남기 농민을 찾아뵙고 어르신의 투쟁이 세상을 깨워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며 곡차를 올리고 싶습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 ⓒ민주노총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한국사회의 한 축이 아니라 정치적 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IMF이후 20년 동안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노력 끝에 노동삼권단결권, 단체권,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되었고,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 힘의 균형은 완전히 기울어졌습니다. 비정규직은 늘어만 가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월 200만원 이하 노동자가 500만 명이나 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입니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조합으로 단결하여 교섭하고, 사측의 부당한 대우에 파업이라는 유일한 무기로 맞서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라고 국제노동기준에도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파업권을 행사하면서 해고나 구속뿐만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비준, 노동 삼권의 완전한 회복, 최저임금 만원과 더불어 주 40시간 이상 초과 노동할 수 없도록 해야하고, 위험하든 안전하든 상시적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바꾸기 위해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현실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책은 넘쳐납니다. 실제로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단결이 필수적입니다.
2016년 11월 @Amnesty International
아빠의 무등을 타고 끝없이 파도치는 위대한 촛불을 맑은 눈망울 속에 담은 아이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분노와 절망이 우리 스스로를 이 땅의 주인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앞으로도 위기는 또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촛불을 들었던 경험이 앞으로 닥칠 위기에서 또 큰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화석처럼 굳어있던 정치신념의 뿌리가 전 세대와 지역에서 허물어졌습니다. 아빠의 무등을 타고 끝없이 파도치는 위대한 촛불을, 맑은 눈망울 속에 담은 아이들이 이 나라의 주인으로 성장할 것이기에 대한민국이 이 절망 속에서도 희망찬 이유입니다.
@Amnesty International
동료와 가족들의 죽음을 멈춘 것은 연대의 손길이었습니다
저는 쌍용차 해고자이자 28명의 동료와 가족들을 하늘로 보낸 상주입니다. 해고는 살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죽음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저항은 ‘살고 싶다’는 절규였고, 함께 아파하고 도움의 손길, 연대의 손길은 죽음의 행렬을 멈추게 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유엔, ILO, OECD, 국제노총, 국제노동단체, 앰네스티, 인권운동가, 석학 등 국제적 연대는 잔혹한 자본독재에 맞서 당당히 싸워갈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외국에서도 한국 대사관을 찾아 항의하며 야만 국가로 남을 것인지,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설지를 선택하라 압박해 주셨습니다.
민주노총도 국제사회와 연대를 더욱 강화하고, 노동이 존중되는 윤리적 소비자 운동 등 실천활동을 강화하려 합니다.
그리고 국제앰네스티의 따뜻한 연대와 지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80만 민주노총 전 조합원의 마음을 담아 뜨거운 동지애를 전합니다. 한국사회 민중의 봄을 함께 만들고 있는 앰네스티는 영원한 동지입니다.
저를 포함해 노동탄압에 맞서 싸우다 구속된 많은 동지들은 감옥에서, 법정에서, 노동자답게 싸우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주권자 스스로 지켜내지 않는다면, 위임 받은 권력은 언제든지 스스로를 주인이라 생각한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소셜미디어는 자신의 목소리를 퍼뜨리기 좋은 수단이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를 통해 배우고, 단결하고,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면서 전세계 활동가들에게 날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인권 현장에서 활발한 액티비즘에 대한 소식을 발 빠르게 얻고 싶은 당신을 위해, 2018년, MUST 팔로우 해야 할 계정들을 소개한다.
뉴욕의 활동가들 (Activist of New York City)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뉴욕시는 인권 퇴보에 반대하는 시위의 중심지가 되었다. 현장의 동향이 궁금하다면, ‘뉴욕의 활동가들’을 확인해보자. ‘뉴욕의 활동가들’은 뉴욕시에서 벌어지는 액티비즘, 시위, 사회정의 운동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다. 변호사에서 사진가로 전향한 신디 트린(Cindy Trinh)이 이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뉴욕 거리 현장의 상황을 기록하는 거예요.” 신디는 이렇게 밝혔다. “사람들이 뉴스에서 소식을 접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접하고 있어요. 활동가들이 이런 사건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사진은 아름답고, 메시지는 강력하다. 미국에서 열린 국제앰네스티 인권회의에서 신디의 사례를 다루기도 했다!
베페카두 하일루(Befekadu Hailu)라고도 알려진 베페카두(Befeqadu)는 수상 경력에 빛나는 에티오피아의 작가이자 활동가, 블로거로, 얼마 전까지는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구금되었던 양심수였다. 베페카두는 블로거 그룹 ‘Zone 9’의 회원들과 함께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에서 에티오피아 인권에 대한 활동과 캠페인을 벌였다는 이유로 2014년 테러 혐의로 임의 체포, 기소되었다. 지금은 석방된 상태지만, 베페카두는 여전히 “집필을 통한 폭력 선동”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 다작가인 그는 2013년 그의 소설 ‘부모의 아이들(Children of their Parents)’로 2012 버트 어워드(Burt Award) 아프리카문학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언론인보호위원회의 국제언론자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주로 에티오피아의 인권상황에 대해 트윗을 올린다.
State's Human Rights Commission in #Ethiopia, revealed sever physical abuse perpetrated by police against 16 defendants of #QilintoFire case. Agbaw Setegn, for e.g., had his left leg pierced with nail. pic.twitter.com/kRbcu82bab
쿠르드의 기자이자 영화감독, 인권활동가인 베루즈 부차니는 호주 정부의 구금 조치에 대한 항의의 수단으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그가 구금된 마누스 섬은 파푸아뉴기니의 외딴 섬으로, 난민들의 구금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베루즈는 이란 정부가 동료들을 다수 구금하자 이란에서 몸을 피했다. 그러나 2014년 베루즈가 호주에 도착하자 호주 정부는 마누스 섬의 악명 높은 난민 수용소로 그를 강제 이송했고, 이곳에서 그는 700여명의 난민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다. 베루즈는 평화적인 시위에 참여했다고 정부의 표적이 되어 지난 4년 동안 난민 수용소에 구금되어 있었다. 베루즈는 마누스 섬의 구금 생활에 대해 가슴 아픈 일기를 작성하고, 자신을 포함한 난민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등 다수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곤란한 처지를 용기 있게 기록했다. 또한 그는 난민 수용소 내부에서 오로지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해 촬영한 영화 “차우카, 제발 시간을 알려줘(Chauka Please Tell Us the Time)”의 공동 제작자이기도 하다. 잠시 시간을 내어 베루즈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둘러보자. 이 시대 최대의 인권 위기에 한 줄기 빛을 비추는 용기 있는 활동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Here is the Manus resistance manifesto I have written based on my experiences over the past months. I would like to invite Australian society to read this piece. I wrote it in a way to wake Australia up.#Manushttps://t.co/dpVoaJ6KdU
찰리는 영국 런던의 DJ이자 시인이다. 2007년 결성되어 호황리에 운영 중인 런닝 동호회, 런뎀 크루(Run Dem Crew)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런뎀 크루는 평범한 동호회들과는 조금 다르다. 다음 세대를 위해 힘을 북돋우고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활동하는 다면적인 단체인 것이다. 런뎀 크루는 런던 전역의 젊은이들과 함께 멘토링과 상담을 제공하고, 안전하고 포용적인 환경에서 런던을 답사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찰리는 앰네스티 콜렉티브(Amnesty Collective)의 일원이기도 하다. 앰네스티 콜렉티브는 젊은 아티스트, 활동가, 영향력 행사자들이 각자의 플랫폼을 이용해 중요한 이슈에 대해 발언하는 다양성 집단이다.
프란체스카 램지(Franchesca Ramsey)는 코미디언이자 활동가, 배우이다. 인종차별부터 대중문화까지, 체스칼레이는 자신이 걱정하는 문제에 대해 거리낌 없이 발언한다. 게다가 그녀 못지 않게 그녀의 동영상 역시 유쾌하다. 체스칼레이는 인터넷 덕분에 활동가들이 출신에 상관 없이 세상 일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흑인 활동가, 사회 각계각층의 활동가들에게 인터넷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를 통해 배우고, 각자의 가정과 공동체에서부터 변화를 일으킬 방법에 대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만남의 장소가 되었어요. 활동가라면 누구나 신이 나는 시기예요.”
리비아계 미국인 헨드 암리는 ‘폭풍트윗’을 할 때는 재치 있고 예리하면서도 유쾌한 사람이다. 사실은 영감 그 자체다. 그녀는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인종차별, 이슬람 혐오, 불평등과 같은 문제에 기발하고 유쾌한 트윗으로 대응하면서 두려움 없이 맞선다. 헨드는 관심을 잃지 않는 한, 누구나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날의 뉴스에 대해 언급하고, 고민이 필요한 사건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면 누구나 활동가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의 텀블러도 매우 유쾌하다.
"Anti-blackness among Asians and Arabs is seeped in history, partly a hangover from colonialism & has continued on largely due to ignorance, choice & of course the role of global media in this." Not just failed statehood,criminality & impunity-racism underpins #SlaveryInLibyahttps://t.co/fYikDzDoNO
캣 블라크는 페미니스트 유튜버,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그리고 작가이기도 하다. 캣의 동영상은 젠더와 성, 인종은 물론 이러한 문제들이 서로 어떻게 교차하는지에 대해 솔직하고, 진정성 있으면서도 대담하게 다루고 있다. “나는 여성이자, 흑인이자, 굴곡 있는 몸매의 트랜스젠더다. 나는 아주 많은 문제에 대해 다룬다.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의 교차점 그 자체로서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흑인 여성 페미니스트로서 수도 없이 쏟아지는 온라인상의 괴롭힘과 욕설을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캣은 거리낌 없이 대담하게 대응하며, 팬들은 이런 점에 더욱 열광한다. 지난해 캣은 온라인상에서 그녀에게 괴롭힘을 가한 남성을 공개적으로 밝혔고, 허핑턴포스트지에 관련 글을 기고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분노에 공감했고,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캣의 대응으로 가해자 남성의 직장에서는 해당 사건의 조사에 착수했고, 결국 가해자 남성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마이 코이는 “베트남의 레이디 가가”라고 불릴 정도로 직선적이고 거침없는 뮤지션이다. 마이는 정치적으로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은 용납되지 않는 국가인 베트남에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다. 섹슈얼리티와 LGBTI 인권,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그녀는 평화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베트남 정부의 표적이 되었다. 그로 인해 마이는 소지품을 챙기지도 못한 채 강제퇴거를 당했고, 스토킹과 괴롭힘을 당했으며, 임의로 구금되기도 했다. 마이의 콘서트 역시 습격을 당했다. “이곳에 표현의 자유 같은 건 전혀 존재하지 않아요.” 마이 코이는 그렇게 말한다. “사전에 허가를 받지 않으면 거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집에서 개인적으로 공연을 진행할 수도 없어요.” 2016년, 마이는 공산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에 베트남 연예인으로는 최초로 무소속 후보자로 출마하면서 전세계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결국 그녀의 출마 신청은 거부되었다. 같은 해 마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베트남의 인권 상황을 논의했다. 마이의 소셜미디어에서는 주로 그녀의 음악활동을 다루고 있지만, 그녀의 노래 가사는 현 시대의 다양한 인권 문제를 다루면서 여전히 비판적인 색을 유지하고 있다.
낸시는 인권에 관심이 많은 노르웨이의 젊은 여성이다. 2016년 낸시가 투고한 “우리는 뻔뻔한 아랍 여성, 이제부터 우리의 시대가 시작된다”라는 기사를 계기로, ‘뻔뻔하다(shameless)’는 단어를 주창하는 여성들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2017년 낸시는 소피아 네스린 스로르, 아미나 바일과 함께 저서 “Shameless”를 출간했다. 일반적인 젠더 규범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당한 소녀들의 개인적인 경험담을 다룬 책이었다. 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뒀고, 이에 대해 낸시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소녀들로부터 내 덕분에 목소리를 낼 용기를 얻었다는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정말 자랑스럽다. 나부터 용기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도 할 수 있다고 느낀 것이다. 불의에 대항해 싸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우리가 목소리를 냄으로써 더 큰 표현의 자유를 이룩할 수 있다.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지만,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살아갈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안 세레이보스는 정치 블로거이자 캄보디아 청년들의 활발한 정치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노안은 지금은 폐쇄된 웹사이트 “폴리티코피(Politikoffee)”의 상임위원이자 정기 기고가였다. 폴리티코피는 현 정치 및 사회 문제에 대해 청년들의 활발한 토론을 장려하는 사이트였다. 캄보디아의 억압적인 정치 분위기로 인해 폴리티코피는 2017년 11월 27일부터 운영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세레이보스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주며 캄보디아의 현재 정치 상황과 진행 과정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있는데,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새해를 맞아 폴리티코피 계정에서 트윗을 작성하면서, 올 3월부터 운영을 재개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18년은 캄보디아의 미래에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Crackdowns make activists, CSOs, union leaders afraid to talk & run their activities, less active & collective work while voters just remain silent. #ElectionsKH is coming soon but…people are very worried & pessimistic. People just wish both big parties not in conflicts anymore
사크리스는 10대 시절,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성별이 자신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사크리스는 핀란드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가장 먼저, 그가 자신의 정체성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이름으로 개명을 하려면 우선 “정신 이상” 진단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별이 법적으로 인정되려면 불임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젠더 정체성 때문에 인간 이하의 존재로 분류되는 기분이었다. 역겨웠다.” 위협과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사크리스는 핀란드의 트랜스젠더를 위해 더 공정한 제도를 마련하고, 다시는 자신과 같은 일을 겪어야 하는 사람이 없도록 용감하게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앰네스티를 팔로우해 보자! 앰네스티 계정에서는 한 해 동안 인권을 옹호하며 놀라운 활동을 보여준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있다. 더불어, 앰네스티는 1961년부터 세계적으로 인권 캠페인을 벌여 왔다. 정의와 자유, 진실과 존엄이 인정받지 못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여성과 남성,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을 훌륭하게 해낼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바로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도 계속해서 앰네스티와 함께 해주시길!
영화의 제목만으로는 무언가를 말하겠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입소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하는 영화인지 알고 봅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우리가 보기 위해 영화관에 입장한 그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꺼내지 않습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다룬 영화는 몇 편 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비를 마련하고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귀향>이 있고 티브이에서도 방영된 <눈길>도 있습니다. 두 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시점과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영화 <귀향>은 사회적으로 성노예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으로 인해 모인 성금으로 제작되고 제작과정에서도 많은 사람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참여가 있었으며, 수익금은 성노예 피해자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이렇듯 분명 좋은 의도로 만든 영화지만, 영화 내부적으로는 분노를 강요하는 듯한 구체적이고 자세한 가학적인 장면은 불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피해자들을 수동적이고 폭력의 대상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한 점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귀향>의 존재의미는 과거에 있었던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잔혹한 실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귀향>은 과거입니다.
<눈길>은 과거의 끔찍한 경험으로 현재에도 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에게 필요한 “치유”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주인공 종분(김영옥)은 수십 년 전에 그 끔찍한 문이 열리는 소리가 아직도 꿈에서 생생히 들려 잠에서 깰 때가 많습니다. 그런 종분의 집 한쪽에는 수요집회에 참여했을 때 찍힌 자신의 사진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장면만으로 <눈길>은 성노예 피해자들이 현재 겪고 있는 상처와 그 상처를 지닌 채로 지금 하는 행동에 주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옆집 여고생의 사연은 주인공이 당했던 남성성의 폭력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이렇듯 영화 <눈길>은 현재입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이 둘 영화와는 조금 다릅니다. 우선 영화 전체에 흐르는 정서는 경쾌함입니다. 참혹함과 처절함이 가득한 <귀향>이나 슬픔이나 서늘함 속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눈길>과는 반대로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합니다. 그리고 앞선 두 편의 영화는 말할 수 없음을 전제로 하므로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장치를 개인의 내면에서 찾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 말할 수 없었던 것을 외부로 표출하고 치유도 주변을 통해 얻습니다.
영화 초반은 옥분(나문희)이 어떤 인물인지를 그녀의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옥분이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줍니다. 시장에서 의류 수선가게를 하는 옥분은 8천 건의 민원을 넣어 구청에서는 도깨비 할머니로 불립니다. 그런 그녀 앞에 원칙주의자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가 나타나면서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릅니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옥분은 평소에 영어공부를 해도 늘지 않는 실력에 고민을 해왔고, 우연히 민재가 영어강사와 유창한 영어회화를 하는 모습을 보고, 민재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조릅니다. 민재는 처음엔 거절하지만, 자신의 동생 영재에게 밥을 차려주는 옥분의 모습을 보고 영어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그녀가 우리 주변에 있는 평범한 인물이라는 것과 동시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외국인들에게 영어로 말을 거는 장면을 통해 옥분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옥분이 유일하게 의지하며 지내는 정심(손숙)이 위독해지고 비로소 이야기하기로 결심하면서부터 영화는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이유와 주제를 접목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옥분이 미국 하원 의회 청문회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에 옥분을 대하는 옥분의 주변 인물들의 모습입니다. 아픔을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왜 함께 나누지 않았냐며 되려 서운해하는 진주댁(염혜란), 항상 다투고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옥분의 사연을 듣고 몰래 달러를 전달한 족발집 주인(이상희), 청문회를 마치고 돌아온 옥분을 평상시처럼 대하는 시장 사람들에게서 상처가 있는 사람을 대하는 숭고함마저 느껴집니다. 그리고 민재가 옥분을 찾아가 건넨 한마디, “죄송합니다”는 우리 모두를 대신해 전하는 목소리입니다.
옥분은 청문회 참석을 마음먹었을 때, 잊으면 지는 거라고 읊조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인간의 존엄이 훼손당한 참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체력을 기르기 위해 공원을 걷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다니며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이 캔 스피크>는 미래입니다.
*하다스 탈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과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고 있는 인권침해행위에 반대하며 2017년 8월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8월 7일 처음 체포된 이후, 지난 10월 16일부터 세 번째 징역형이 시작되었다. 아래는 지난 8월 3일 하다스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린 병역을 거부하는 성명을 번역한 것이다.
저는 열여덟 살, 하다스 탈Hadas Tal이라고 합니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저는 입대 예정일인 8월 7일, 입대를 거부할 생각입니다. 그로 인해 아마도 감옥에 갇혀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겠죠.
저는 10학년이 될 때까지 점령지역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9학년 때 직접 그렸던 지도를 최근 발견했는데, 점령지역은 텅 빈 공간으로만 남겨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10학년이 되면서 정치의식을 키우기 시작했고, ‘로컬 토크Local Talk‘의 게시물과 ‘브레이킹 더 사일런스*Breaking the Silence‘의 증언들, 소셜 네트워크상의 관련 게시물을 접하면서 지금까지 몰랐던 점령지역의 현실을 알게 됐습니다. 군의 통제를 받는 무력한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특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언어를 쓰는 군인들이 한밤중에 집에 들이닥치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11학년이 되면서 저는 이미 병역을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이스라엘 퇴역 군인들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역 근무 당시를 증언하고 인식을 높이고자 활동하는 이스라엘 비정부단체
이스라엘 국민이 아닌, 소수 집단의 이익만 옹호하는 체제는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체제하에서 군은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이며 폭력적인 조직으로 군림하며, 점령체제 유지를 최우선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한 것은 군입대가 50년 넘게 이스라엘 군이 점령 정책을 시행하는 동안 그 모든 일을 모른 체하며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반복하는 것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령 정책으로 수백만 명은 기본권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들의 존재조차 모릅니다. 이 수백만 명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정부를 직접 선출할 수도 없습니다. 이 체제 아래서는 모든 해결책은 폭력이 됩니다. 그저 무력을 이용해 공격하고, 우월을 과시하며 지배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란 대체 어떤 사회입니까?
제가 군에 입대하기를 거부한 것은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점령지역이나 이스라엘에 국한된 일이 아니며, 오직 부유한 자와 정부를 위해서만 운영되는 자본주의라는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실제로 이는 제3 세계와 소외집단을 착취하고, 천연자원을 파괴하고, 전쟁과 갈등을 부추기며 우리를 파괴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 예로, 이스라엘은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등 지금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독재자와 압제자에게 군사 지원을 제공해 왔습니다. 이는 이념과 당파를 초월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병역을 거부한다고 해서 점령이 중단되거나 자본주의가 붕괴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거부하는 이유는, 이러한 점령과 체제가 아무런 저항 없이 유지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의 병역 거부자들은 그들이 맞서 싸웠던 점령 제도를 무너뜨리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행동으로 큰 의의를 남겼습니다. 관련 인식을 높였고, 논의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들은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알았고, 그저 원래 그랬기 때문에, 또는 그게 더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것은 거부했습니다.
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해명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이는 국민과 거주민이 아닌 국가를 향한 맹목적인 충성과 무비판적인 현실 수용이 문제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부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군에 입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며, 당연한 일이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왜 이스라엘 사회와 인류사회, 자연에까지 피해를 주는 조직에 합류하고 복무해야 합니까?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의사결정자들은 국민의 복지와 미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속이고, 빼앗고, 착취하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를 위해 책임을 다하는 방법은 뿌리까지 썩어버린 제도에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판하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폭력과 혐오의 악순환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 발렌타인 데이에도 전세계 수백만 명이 그들의 사랑을 기념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국가와 사회에서 당신의 사랑을 동등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아시아 각국의 LGBTI 활동가 다섯명이 이번 2월 14일을 어떻게 보낼지와 함께, LGBTI에 대한 모든 차별을 중단시키기 위해 각자가 바라는 점을 전해 왔습니다.
하이커 치우는 42세가 되어서야 자신이 인터섹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날 때부터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동시에 지니고 있었던 그는 인터섹스에 대한 대만 사회의 인식을 높이고 수용을 촉진하기 위해 OII(Organization Intersex International)를 설립했다. 하이커는 올해 발렌타인 데이에 누구나 사랑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자신의 젠더 정체성에 대해서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항상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제 몸에 일어나는 변화가 다른 여자아이들과는 달랐거든요. 엄마는 제가 “두 가지 모습”을 지니고 태어난 거라고만 하셨어요. 그때는 인터섹스라는 젠더가 있다는 것도 몰랐죠. 초등학생 시절에는 내가 괴물이 된 것 같다는 일기를 쓰기도 했어요. 저는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의사를 찾아가도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죠.
제가 인터섹스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마흔 두 살 때였어요. 제 의료기록을 다시 읽어보는데, 여섯 살 때 “확대된 클리토리스”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걸 보고 제 상태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해봤고, 저는 두 가지 종류의 생식기를 가지고 있었을 뿐,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었어요.
대만 사회에서는 인터섹스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나요?
중화권 사회에서는 어느 정도 인터섹스의 존재를 알고는 있지만, 전통적인 성별 이분법 때문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사람들은 차별을 받아 왔어요. 인터섹스는 재생산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고, 또 중화권에서는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인터섹스인 사람은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집안이 많아요. 또 종교나 미신적인 믿음에 따라서, 간성인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가 저지른 죄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하기도 하죠.
대만에 양의학이 도입된 것은 1950년대인데, 그때부터 두 살이 되지 않은 간성 아이에게 수술을 하기 시작했어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상태를 제거함으로써 아이들이 사회에 통합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그 부모는 “수치”를 면하게 해 준다는 의미였죠. 인터섹스는 사회에서 거의 “제거”되었어요. 저는 2010년 무렵 인터섹스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는데, 그 이후로 지금까지 대만에 있는 다른 간성인에 대해서는 거의 소식을 접한 적이 없어요.
대만의 인터섹스들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부모를 지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해요. 저희 부모님은 거의 평생을 저에 대한 죄책감과 슬픔 속에서 사셨어요. 저는 제 몸이 부모님에게 왜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전혀 몰랐어요. 제가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어요.
하지만 이제 인터섹스는 생물학적으로 자연스러운 변형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인터섹스 아이가 태어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걸 부모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어요. 인터섹스는 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한 수술도 받을 필요가 없어요. 부모들도 그 사실에 슬퍼할 필요가 없고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더 많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해요. 인터섹스는 보기 드문 존재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해요. 우리를 차별하면서 “수치스러운”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도요. 왜 우리 같은 인터섹스들과 그 부모들이 사회의 편견에 따른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거죠?
의사들도 생각을 바꿔야 해요. 의사의 개입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인터섹스에게 어떻게 더 좋은 치료를 제공할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본인의 동의와 우리 몸에 대한 우리의 결정을 존중하고, 인터섹스를 질병으로 여기는 것을 중단해야 해요.
정부는 아직 인터섹스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예요. 우리에게 긍정적인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대중이 우리를 사회의 가치있는 일원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육할 방법을 고민해야 해요. 과거에는 젠더에 대한 생각이 매우 편협하고 제한적이었지만, 이제는 마음을 열고 인터섹스를 인정해야 할 때예요.
당신의 활동이 어떻게 대만의 인터섹스 운동 상황을 변화시켰나요?
인터섹스에 대한 대만인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인터섹스 유아에게 선택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수술을 강행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도록 독려하고 있어요. 이제는 대만의 젠더 운동이 상대적으로 성숙해졌고, 사회가 젠더 다양성에 대해 더욱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도움이 되었어요.
제가 활동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것은 사랑이 전부예요. 인터섹스도 사람이에요. 우리도 사랑을 하고,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받기를 원하거든요. 제 이름의 한자 뜻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언덕 위의 러브그래스’라는 뜻이죠. 저희 부모님은 저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고, 제가 지금의 성과를 이룰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셨어요.
대만에서는 인터섹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인터섹스들이 사랑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회가 여전히 우리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면, 관계를 시작하기는 매우 어려울 거예요. 저는 제가 남들과 많이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자신의 사랑이 동성애인지, 이성애인지 혼란스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죠. 또 출산에 대한 압박도 있어요.
발렌타인 데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발렌타인 데이는 사랑에 대한 희망을 전파하는 날이에요. 모든 사람이 저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요.
제가 커밍아웃한 이후, 중국 본토에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소개해줄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친구들은 자신을 이해해줄 만한 파트너를 찾기가 힘들거든요. 중국 본토에서는 여전히 결혼과 출산에 대한 압박이 심한 편이에요. 평범한 사람들은 인터섹스들의 신체적, 정신적인 느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우리는 그들의 연애와 결혼, 출산, 성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없거든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해요. 더 이상 결혼과 출산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 갇혀 있어서는 안 돼요. 사랑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잖아요. 이 문제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더욱 높아지면, 앞으로는 우리 환경도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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