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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입장문] 국민의 힘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 조부의 일제강점기 행적 논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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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제연구소 입장문] 국민의 힘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 조부의 일제강점기 행적 논란에 대해

admin | 토, 2021/08/14-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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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힘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 조부의 일제강점기 행적 논란에 대해

 

12일 국민의 힘 최재형 대선 예비후보(이하, ‘최 후보’)의 공보특보단에서 ‘민족문제연구소의 궤변에 경악한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내놓았다.

우리 연구소는 최재형 예비후보 캠프가 경악할만하다고 이해하면서도 ‘궤변’이라는 지적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문제의 발단은 최 후보 측에서 최 후보 본인과 집안의 미담을 과도하게 포장하여 홍보한 데서 비롯됐다. 그 와중에 최 후보의 조부 최병규가 독립운동가라는 주장이 기정사실로 유포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핵심은 최병규를 독립운동가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독립운동가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최병규의 일제강점기 행적은 국내의 면협의회원 재선과 도의원 출마, 국방헌금 납부 등과 만주 목단강성 해림촌 공소(公所) 조리원(助理員), 조선인거류민단장 재임 등으로 정리된다. 이런 행적은 국가보훈처의 독립운동가 서훈에서 재고의 여지 없는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 특히 최병규가 만주에서 독립자금을 조달하고 조선인 정착에 기여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당시 만주의 실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1940년대 만주는 일제에 완전히 장악되었으며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선인 이주가 장려되고 있었다. 괴뢰 만주국의 관공리로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이야말로 궤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최재형 후보의 캠프는 여러 차례 논평을 내고 민족문제연구소를 폄하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우리 연구소는 대선 예비후보에 대한 언론의 검증 과정에서 의뢰를 받아 일제강점기 전문 연구기관으로서 견해를 밝히고 입증 근거를 제시했을 뿐이다.

거듭 확인하지만 최병규의 독립운동설은 ‘설’일 뿐이다. 오히려 부일협력의 혐의가 짙다고 판단된다.

지도자를 선택할 때 역사인식이 어떠한가에 대해서 다른 어떤 가치 기준보다 엄중한 잣대를 적용할 수밖에 없다. 최 후보가 독립운동을 영예로 여긴다면 당사자의 역사인식을 명확히 밝히면 될 일이다. 캠프도 견강부회식의 억지주장으로 물타기에 분주할 일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친일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전반에 대한 후보의 솔직한 소신과 정책을 정리해 공개하길 기대한다.

 

2021. 8. 13.
민족문제연구소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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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친일파 박제봉 고택 문화재 지정 건의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성명서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가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고택을 후손들이 경기도문화재로 지정해달라는 움직임이 있다”며 “집 앞에 단죄비를 세우고 이 땅에 친일파와 같은 부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3일 부천 민문연은 ‘부천 친일파 박제봉 고택 문화재 지정 건의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하고 “친일 행적이 뚜렷한 친일파 박제봉이 살았던 집을, 후손들이 경기도문화재로 지정해달라는 움직임이 있다”며 “건축학적 의미와 역사뿐만 아니라 박제봉의 친일 행적을 함께 알려 시민들이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담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후손들이 경기도문화재로 지정해달라는 이유에 대해 “128년 된 고택이 조선 말기의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나타내 학술적·역사적·건축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이라며 “고택을 평가함에 있어 역사와 건축학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누가 이 집에 살았는지도 중요하다. 고택은 절대 집주인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부천 민문연에 따르면 박제봉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가 있으며 죽성제봉으로 창씨개명을 했다. 박제봉은 1941년 10월 17일부터 11월 4일까지 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과 메이지신궁(明治神宮) 등을 순례한 후 “저는 이세신궁 신 앞에 배례하며 황국신민의 선서를 소리 높여 제창했는데, 지금까지도 가슴이 뛸 정도로 감동이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황국신민이 되었던 것은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즉 일청전쟁부터라도 생각합니다. 이로부터 일로전쟁 후에는 메이지천황의 은덕이 더욱더 반도(半島)에 미쳐 결국은 한국을 병합하게 되어 완전한 황국신민이 되었던 것입니다”라는 소감을 남겼다.

또한 조선총독부 제7대 미나미(南次郞)총독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오노(대야綠一郞)가 퇴임할 때 칭송하는 전별시(餞別時)를 남기기도 했다. 이들은 “박제봉의 일생을 요약해 보면 교육자로서 또는 유학자로서 당대 지식인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방기하고 일제에 적극 조력하였으며, 심지어 친일 찬양까지 했다. ‘내선일체·황국신민화·대동아성전’ 등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주장을 선전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라고 밝혔다.

이어 “문화재 지정은 국민의 세금으로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관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된 백인제 가옥은 친일파 한상룡이 지은 집이며, 전북 부안군 줄포면에 있는 김상만 고택은 국가민속문화재 제 150호로 지정되었다. 이들 문화재에 친일파와 관련된 내용은 들어있지 않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부천은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우고 없애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기억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세계적으로도 홀로코스트 기념관, 남아공 넬슨 만델라의 감옥이 있는 로벤섬, 난징대학살기념관 등을 국가적으로 보존하면서 다시는 어두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활용하고 있는 다크 투어(dark tour)가 대세인 것처럼 부천시도 박제봉 고택을 친일잔재의 문화재로 활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인수 기자 [email protected]

<2021-03-23> IBS뉴스 

☞기사원문: 부천 민문연, 친일파 박제봉 고택 ‘단죄비’ 세워야

화, 2021/03/2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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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다운로드]

국방부는 국정교과서 집필자 나종남 교수의 대령 진급 결정을 즉각 취소하라

1.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사 국정교과서 현대사 집필진이었던 나종남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가 무려 15대 1의 경쟁력을 뚫고 대령 진급 심사를 통과하였다고 한다. 나종남 교수는 반 헌법적인 역사관인 이른바 ‘건국절 사관’을 주장하는 뉴라이트계열의 한국현대사학회 회원이며,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편찬한 『대한민국 건국의 재인식』의 공동 필자이기도 하다.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건국절 사관은, 항일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격하시키고, 친일파를 건국공로자로 역사 세탁하는 한편,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5·16군사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으로, 박정희를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아버지’로 미화하는 ‘역사쿠데타’이다.

2. 나종남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 “박정희의 모든 것을 파헤친다!”는 제목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에 대해 학자들이 언급한 글을 공유 했다. 게시물에는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이야말로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가장 크게 기여했다” “자유라는 것은 그 나라의 수준에 맞게 제한돼야 하는데 이를 갖고 독재라고 매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3. 나종남 교수의 독재자 박정희 찬양론은 국정교과서 집필에도 이어져, 국정교과서가 ‘경제발전 앞세운 군 정신교재 판박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국정 역사교과서 현대사 기술이 국방부의 『정신교육 기본교재』와 유사하다는 지적이었다. 국방부 교재 저자 중 한 명인 나 교수가 국정교과서 현대사 집필진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이에 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박정희를 미화한 국방부 정훈교재처럼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편향된 역사관을 심어주려 했다”며 “국정 역사교과서를 즉각 폐기하고 집필료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주권의 촛불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을 약속하였다. 국정교과서는 촛불민심이 선정한 “박근혜 체제가 낳은 6대 적폐” 가운데 하나였다. 그 결과 정부 출범 사흘 만에 교육 분야 첫 번째 업무 지시로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함으로써 국정교과서는 폐지되었다. 그리고 정부 각 부처마다 ‘적폐청산 TF’를 꾸려 지난날의 폐단을 일소함으로써 과거와의 단절을 시도하였다.

5. 이에 반해 국방부는 적폐청산은커녕 박근혜 정권의 교육적폐 중의 적폐인 국정 역사교과서의 집필자에게 대령 진급이라는 ‘훈장’을 달아 줌으로써, 원칙과 상식이 존중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를 무색케 하였다. 국방부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 헌법적인 역사관을 지닌 인사를 대령으로 진급시킨 데 국민 앞에 사죄하고, 진급 결정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

2019년 10월 22일
역사정의실천연대

화, 2019/10/2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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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죽산인가’…강화서 되새기다

민족연 ‘역사 현장 시민답사’
이원규 작가 강연·안내 성황
“국가유공 수훈이 진정한 복권”

▲조봉암 연구의 권위자인 이원규 소설가가 ‘조봉암의 생애와 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는 22일 ‘강화 죽산 조봉암 생가터와 청년기 활동 및 추모비’를 살펴보는 ‘역사 현장 시민답사’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답사는 강화에서 나고 자라 청년기를 보냈던 죽산의 생애를 돌아보고 그의 업적과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기획됐다.

죽산 연구에 독보적인 지위를 굳혀 온 소설가 이원규 작가의 강연과 안내로 진행된 행사에는 강화와 인천지역 주민, 민족문제연구소 회원 등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답사단 일행은 죽산의 모교인 강화초등학교를 출발, 생가터 표지석이 남아 있는 강화읍사무소를 거쳐, 갑곶돈대 앞 진해공원추모비와 선원면 생가터를 차례로 살펴봤다.

이원규 작가는 답사에 앞서 진행된 강연에서 ▲죽산의 출생과 소년시절 ▲3.1 만세운동과 청년시절 ▲독립운동과 고난기 ▲광복 후의 영광과 굴레 ▲53년 만의 무죄선고 ‘햇빛 속으로’ 등 시기별로 조봉암의 생애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강화지역 조봉암 생거지 및 활동지역 현장답사 참가자들이 이원규 작가로부터 죽산의 독립운동사와 정치역정에 대한 강연을 듣고 있다.

-죽산의 생애

죽산은 1899년 강화 선원면에서 출생했다. 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한 뒤 강화군청 사환 임시고원으로 취직했지만 3.1 만세운동에 참가해 구속과 고문을 되풀이하며 ‘민족적 각성’을 다져 나갔다. 일본과 러시아 모스크바 유학을 거치면서 사회주의자의 길로 접어든 죽산은 국내와 중국 상하이를 오가며 눈부신 독립운동을 펼쳐나갔다.

중국에서 체포돼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형극의 수감 기간을 겪은 뒤 출옥해 인천에 정착했지만, 광복 직전인 1945년 1월 예비구금령으로 헌병대에 구속돼 감옥 안에서 해방을 맞았다. 해방 직후 여운형, 박헌영 등과 손잡고 건국준비위원회와 민전(민주주의 민족전선)을 조직했으나, 미군의 공작으로 전향 성명을 내고 공산당을 떠나 ‘비(非) 공산정부 건립’을 기치로 내걸었다.

1947년 하반기에 우파와 결합해 단독정부안을 받아들인 뒤, 48년 5월 제헌의원으로 당선돼 헌법 기초 의원으로 활동했으며, 그해 7월에는 초대 농림부장관으로 취임해 “혁명 없이 신속한 토지 균등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은 ‘농지개혁법’을 주도했다.

국회부의장으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죽산은 1952년 8월 5일 2대 대통령에 출마해 79만 표를 얻었으며, 56년 5월 15일 치러진 3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216만 표를 획득, 이승만 정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956년 11월 진보당을 창당했으나 그의 득표력에 위기를 느낀 이승만 정권은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 1심 형량인 5년을 2심에서 뒤집고 사형을 선고한 뒤, 1959년 7월 31일 재심이 기각된 지 17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하는 ‘사법살인’을 저질렀다.

20세 청년기에 3.1 운동에 뛰어들어 모진 고초를 감내하며 20여 년간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광복 뒤에는 ‘농지개혁’ 등 화려한 업적을 남긴 죽산은 “내가 비록 사형을 당해도 애국심에는 변함이 없다”는 유언을 남긴 채 60세의 나이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강화지역 조봉암 생거지 및 활동지역 현장답사 참가자들이 이원규 작가로부터 죽산의 독립운동사와 정치역정에 대한 강연을 듣고 있다.

– 죽산의 꿈과 남겨진 과제

지난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재심 권유에 따라 2011년 2월 11일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해 50여 년 만에 ‘간첩죄’의 누명을 벗었으나, 지금까지도 ‘독립유공 서훈’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죽산이 가졌던 꿈’과 그가 뿌린 ‘씨앗’에 대해 이원규 작가는 “죽산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관철시켜 신속한 시간 안에 세계 최고 수준의 토지균등성 확보에 성공했고, 이는 농민들이 공산혁명을 거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면서 “자경농이 된 농민들은 자녀교육에 집중해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평등과 정의의 사회’는 여전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진보당 강령인 ▲민주주의 체제 확립과 책임 있는 혁신정치 실현 ▲생산분배의 합리적 통제를 통한 민족자본 육성 ▲평화적인 조국 통일 실현 ▲교육의 완전 국가보장제 및 노동자 권리 보장 등은 “오늘 왜 다시 죽산인가?”를 대변하고 있다.

▲이원규 작가가 죽산의 생가터로 추정되는 금월리 가지마을을 가리키고 있다.

– 죽산의 생가터, 선원면 금월리 가지마을 26-3

갑곶돈대 앞 ‘진해공원 추모비’에 이어 선원면 생가터를 찾은 답사단 일행은 이 작가의 안내에 따라 죽산의 정확한 출생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나갔다. 죽산이 태어난 곳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맞서고 있다. 한쪽은 강화군 선원면 선원사를 등지고 바라보이는 마을 왼편 구릉지대인 ‘지산리 남산대’ 를 다른 쪽은 바로 옆 100m 지점의 ‘금월리 가지 마을’이라고 주장한다.

‘남산대’를 주장하는 쪽은 먼 친척형으로부터 “‘너희들은 기억하고 있다가 후손에게 알려 줘라. 독립운동가인 봉암이라는 우리 집안 사람이 남산대에서 태어나 강화 성내 소학교를 다녔는데 대문고개를 넘으며 책을 읽었다’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한다. 반면 이 마을 출신 친척인 전직 교장 조규성 씨는 “1957년 강화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직후 출생지가 ‘선원면 가지마을’로 표시된 죽산의 생활기록부를 봤다”고 기억한다.

이에 대해 이 작가는 “현장 확인과 증언 등을 종합하면, 금월리 가지마을이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가지마을의 지적도에 나오는 대지 7필지에 대해 현지에서 전수 조사한 결과, 26-3 한 곳의 내력이 확인되지 않는 점에 비추어 이 곳이 가장 유력한 출생지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답사를 마치는 자리에서 “죽산은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이 양 날개처럼 선의의 경쟁을 하는 ‘잘 사는 나라’를 추구했고, 남북이 대화를 통해 평화통일을 이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면서 “죽산의 국가유공 수훈이 관철되는 것이 진정한 복권이자, 국가 양심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정찬흥 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준비위원 [email protected]


이원규 작가
1947년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고와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1984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단편소설 ’겨울 무지개‘가 당선돼 문단에 등단했다. 활발한 저술 활동을 벌이는 가운데도 동국대와 인하대에서 소설 강의를 맡는 등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분단에 대한 진보적 시각을 온건한 필체로 표현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세 차례의 조봉암 평전과 김원봉, 김산 평전 등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조명하는데도 열정을 기울였다. 대한민국 문학상, 현대문학상, 박영준 문학상, 동국 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인천지역 역사현장 시민답사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죽산 조봉암 생가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0-11-22> 인천일보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 ‘죽산의 생애와 꿈 돌아보기’ 행사 개최

 

화, 2020/11/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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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로드] [성명서]

[성명서] 

반민족적·반헌법적·반인권적 역사인식을 지닌
정경희 교수의 미래한국당 비례 후보 선정을 규탄한다

1.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반민족적·반헌법적·반인권적 역사인식을 지닌 정경희 교수(영산대, 미국사)를 당선안정권인 비례대표 후보 7번에 선정하였다. 정경희 후보는 지난 2014년 교육계와 역사학계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 교육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교학사 한국사교과서를 ‘대한민국의 시각에서 제대로 쓴 최초의 교과서’로 치켜세우며 이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고 나섰던 인물이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1)식민지 근대화론을 지지하는 반민족적 (2)5·16 군사쿠데타와 10월 유신을 옹호하는 반 헌법적 (3)제주4·3을 “폭동, 방화, 살인”이 자행된 무장반란으로 규정짓는 반인권적 역사관을 피력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 때에는 ‘복면집필단’ 필진으로 참여하여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역사 변조에 일조하였다.

2. 정 후보는 2015년 출간한 저서 『한국사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통해 반민족적 역사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 후보는 일제 식민지 지배의 수탈적 성격을 부정하고, 오히려 “자본주의 근대화 과정이 실제 통계수치 등을 통해 입증”된다면서,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두둔했다. 나아가 “친일 청산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훼”한다며, 친일반민족행위자와 그 추종세력을 비호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정 후보의 역사관은 지난 해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반일종족주의』의 이영훈 교수, ‘위안부 매춘부 망언’의 류석춘 교수 등 극우 역사수정주의자들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실제로 정경희 후보는 『반일종족주의』의 저자 이영훈 교수가 주도하고 류석춘, 주익종, 강규형 등 뉴라이트 학자들이 함께하는 ‘이승만학당’의 강사로 출연했다.

3. 정 후보는 국민의 존엄과 가치를 무시하고 기본권을 외면하는 반 헌법적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정 후보는 2014년 논문 「제3공화국의 정체 확립과 근대화전략」에서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를 조국근대화, 정치개혁 등으로 미화하였다. 그러나 4.19혁명을 짓밟은 5.16쿠데타가 정당하다고 하면, 3·1운동과 4·19혁명의 정신을 계승하는 대한민국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특히 유신독재는 대통령 1인이 사회 모든 분야에서 통수권을 행사함으로써 민주공화국의 핵심적인 가치인 국민주권주의, 삼권분립, 법치주의를 말살하는 국가 폭력적 체제인 것이다. 박정희 종신집권을 위해 헌정질서를 파괴한 유신체제를 찬양하는 것은 자신이 파시스트임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다.

4. 정 후보는 2019년 저서 『대한민국 건국이야기』에서 제주4·3을 ‘폭동’으로 매도하고 3만 희생자들의 절규를 살인과 방화로 왜곡함으로써 이승만 정권의 인권유린 치부를 덮는 대신, 이승만을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했다. 그러나 제주4·3의 실체적 진실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편찬한 「제주4·3사건 진상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진상보고서는 “1948년 제주도에서 국제법이 요구하는 문명사회의 기본 원칙이 무시됐고, 국가공권력이 법을 어기면서 민간인을 살상하는 등 중대한 인권 유린과 과오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한 4·3의 책임 소재에 관해 “집단 살상에 관한 책임은 당시 군통수권자인 이승만 대통령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쥐고 있는 미군에 있다”고 하여, 미군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을 학살책임자로 분명히 적시하였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에 대해,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제주도를 방문하여 제주도민과 유족에게 정부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를 표명하였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조차, 2012년 12월 후보 시절 “4·3은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가슴 아파하는 사건으로 그동안 정부의 많은 관심이 있었지만 부족했다.”며, “국가 추모기념일 제정을 비롯해 제주도민들의 아픔이 가실 때까지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다짐하고 2014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였다.

5. 우리가 이번 총선을 통해 선출하고자 하는 국회의원은 민주주의와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대변할 수 있는 국민의 대표이지, 식민지 지배를 동경하고 추종하는 ‘식민주의자’, 국가폭력과 독재를 옹호하는 ‘파시스트’가 아니다. 우리는 반민족적이고 반 헌법적이며 반 인권적인 인사를 비례후보로 추천한 미래통합당을 규탄하며, 투표를 통해 국민들의 엄중한 심판이 있기를 바란다.

2020년 4월 7일
친일·독재미화와 교과서개악을 저지하는
역사정의실천연대

화, 2020/04/07-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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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크 램지어 교수의 일본군 ‘위안부’ 부정론에 대한
한국 역사학계 및 시민단체의 규탄 성명

지난 2020년 12월 국제학술지 『국제법경제학리뷰(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IRLE)』 온라인판에 하버드대학교 로스쿨 존 마크 램지어(John Mark Ramseyer) 교수의 논문, 「태평양전쟁에서의 성(性)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 게재되었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2021년 1월 28일 이 논문을 요약 보도한 이후 그 내용의 부적절성과 연구 윤리의 중대한 위반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램지어 교수는 20세기 전반 일본과 한국에 존재했던 공창제(公娼制, licensed prostitution)와 관련하여, 성매매 업자와 여성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성노동’의 보상에 대한 계약관계가 성립했다고 전제했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관계가 아시아·태평양전쟁기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소’에도 적용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그는 일본군 ‘위안부’를 전쟁 전 성매매 여성이 맺었던 계약관계와 비슷한 관계에 있는 존재로 보고, ‘위안부’ 여성들이 자발적인 계약을 맺었으므로 ‘위안부’ 피해와 일본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램지어 교수는 1991년 김학순, 1992년 얀 루프 오헤른(Jan Ruff O’Herne) 등 ‘위안부’ 피해생존자의 증언이 이어진 이래 30년간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 시민사회와 학계의 헌신적 노력과 연구 성과, 수많은 증언과 문서 증거를 외면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핵심 주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는 데 실패했고 1차 자료와 2차 연구를 매우 자의적으로, 심지어 왜곡해서 이용했다는 것이 국내외 학자들의 비판적 검토에 의해 여실히 드러났다. 또한 그가 부정론과 혐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한 ‘게임이론’도 오용한 것임을 전 세계 경제학자들이 수차례 지적한 바다. 즉, 그의 글을 둘러싼 논란은 학문의 자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연구의 윤리에 관한 문제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고, 『국제법경제학리뷰』도 그의 글을 끝내 게재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과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구체적인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학술 논문이 지켜야 할 연구윤리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사료를 선택적으로 활용하거나 왜곡했기 때문이다. 그는 논문의 핵심 논거인 ‘위안소’의 계약관계를 뒷받침할 한국인 ‘위안부’의 계약서가, 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시인했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를 근거로 ‘위안부’가 계약기간 종료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도 주장했지만, 해당 자료에는 계약의 존재나 ‘위안부’의 귀환 이유가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램지어 교수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가 겪었던 삶의 전체 맥락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많은 수입을 올린 것으로만 왜곡했고, 그녀가 저금해놓았던 일부 수입조차 돌려받지 못한 채 작고한 사실은 외면했다. 이는 문옥주의 증언을 ‘위안부’ 부정론의 시각으로 절취하여 피해자의 목소리를 찬탈하고, 가해자의 입장을 정당화한 것이다. 문옥주의 증언과 관련한 책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이를 인용하지 않고 우파 성향의 익명 블로그에 있는 왜곡된 내용을 인용하기도 했다. 그의 행위는 연구자가 마땅히 준수해야 할 학문적 성실성과 진실성을 훼손하는 심각한 연구 부정행위이다.

둘째,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식민주의와 전쟁, 가부장제 아래에서도 모든 인간의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합의를 위반했다. 그는 여성의 신체를 상품이자 군수품처럼 취급했던 당시의 상황을 외면하고, 여성들이 자발적인 계약에 따라 돈을 벌기 위해 ‘위안부’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발생했던 체계적 강간과 ‘성노예제(sexual slavery)’ 개념을 확립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 불이행을 문제시하며 여성의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확립하고자 했던 유엔 국제노동기구(ILO)와 인권위원회의 보고서, 인권이사회의 권고, 국제법률가협회(ICJ)의 보고서,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 여성국제법정의 판결과 권고 등을 모두 무시하는 반인권적 처사이다. 이는 2007년 만장일치로 통과된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위안부’ 문제를 20세기 최대의 인신매매 사건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전쟁범죄 축소 노력을 비판한 것과도 배치된다. 그의 주장은 그간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세계의 시민단체, 학계의 성과와 노력, 합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셋째,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와 양립할 수 없는, 의도적인 역사부정론과 혐오의 맥락 위에 있다. 역사학은 인문과학으로서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동일 사안을 두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합당한 근거에 기반하지 않았고, 방대하게 축적된 ‘위안부’ 피해자와 가해자의 증언을 외면했으며, ‘위안소’ 관리의 주체였던 일본군 관련 자료도 심각하게 왜곡했다. 이는 그가 지난 1월 12일 산케이신문의 영문 저널 ‘재팬 포워드(JAPAN Forward)’에 ‘위안부에 관한 진실 회복’이라는 글을 기고하면서 한국인 ‘위안부’ 여성이 성노예로 끌려갔다는 것은 허구라고 주장했던 역사부정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위안부’가 ‘성노예’가 아닌 ‘매춘부’라는 그의 주장은 일본 극우의 ‘위안부’ 혐오, 소수자 혐오 담론과 공명한 것이다. 그는 다른 글에서도 피해자와 소수자를 조롱하고 모욕해왔다. 이러한 행위는 결코 학문과 표현의 자유로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학문과 연구 윤리를 위반하고 인류의 보편적 합의에 위배되며 의도적인 역사부정론과 혐오의 맥락 위에 있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발표되고 유통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홀로코스트를 부정하여 의도적인 역사왜곡으로 판결을 받은 영국의 데이빗 어빙(David Irving)의 사례와 같이, 학문적 성실성과 진실성을 훼손하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무시하는 글에 대해서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부정론자들의 양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부정론자들은 참과 거짓에 상관없이 신념이나 감정에 따라 주장을 내세운다. 이들은 실증적으로 자료를 제시하는 것처럼 가장하며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여론을 호도한다. 우리는 ‘가짜뉴스’와 ‘탈진실’이라는 이름의 반지성주의가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며, 이 사태가 단순히 램지어 교수 한 명의 일탈에 그치지 않을 것을 우려한다. 더구나 그의 주장이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한·미·일 극우세력의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혐의가 짙다는 점에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이에 우리는 이번 사태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연구를 성찰하고 앞으로 더욱 심도 있는 연구를 축적해가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의 옹호를 위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전 세계의 시민사회 및 학계와 뜻을 함께할 것을 밝히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램지어 교수는 본인의 반여성적이고 반인권적인 역사 인식과 학술활동에 대하여 반성하고 사과하라.

『국제법경제학리뷰』는 지금이라도 램지어 교수의 논문 게재를 철회할 것을 요청한다. 아울러 우리는 이 사태가 세계 학계와 시민사회가 반지성주의와 역사부정론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2021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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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3/20-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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