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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사유] 공공서비스, 불필요한 본인인증은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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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사유] 공공서비스, 불필요한 본인인증은 차별이다

admin | 월, 2021/07/19- 20:28

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

2021년 6월 23일부터 정보공개 제도에는 주요한 변화가 하나 생겼다. 그동안 공공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할 때마다 제출해야 했던 청구인의 주민번호를 더 이상 기재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앞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할 때는, 주민번호가 아닌 생년월일 정보를 기입하면 된다.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의무적으로 주민번호를 쓰라는 것은 개인들의 민감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는 것일뿐더러, 개인정보 유출의 우려를 키운다는 점을 지적해왔기에, 이번 개정은 매우 소중하고 반가운 변화다(이미 2015년 개인정보위원회에서 이 같은 주민번호 수집이 불필요한 절차임을 의결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6년 만에 개정이 이뤄진 것은 안타까운 속도긴 하지만 말이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 이후, 기대되는 마음으로 정보공개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직접 청구를 해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행정의 변화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법에서 생년월일만 기입하면 된다고 했던 것과 달리 청구를 하려면 생년월일 이외에 주민번호 뒷자리의 첫 숫자, 즉 성별 정보까지 기입해야 했고, 이에 더해 '본인인증' 절차를 거치라는 문구가 튀어나와 청구서 접수를 가로막았다.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고 회원가입을 하다 보면 본인인증을 하라는 요구가 별 것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 절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왜 필요한 것인지 좀 더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본인 인증 자료화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본인인증

지난해 1월,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시민이 '공공도서관에서 본인 명의의 휴대폰이나 아이핀이 없는 사람들도 가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을 국민청원사이트에 올렸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이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면 '본인인증'을 통해 먼저 회원가입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복잡할 절차를 통과하기 힘든 노인이나 장애인,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가 없는 어린이, 빈곤으로 휴대폰이 정지된 사람들은 도서관을 이용하기가 너무나 힘든 현실을 목도한 것이다. 청원인은 ‘모든 사람에게 누구나의 책을’ 이 도서관학 다섯 법칙 중의 하나이지만,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본인 명의 휴대폰이 없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인에게, 어린아이에게, 장애인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장벽을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라면, 그 시스템이 어찌 공공성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본인인증은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된 자리에 대체적인 수단으로 손쉽게 도입된다. 그러나 본인인증이라는 절차는 답답하고 불편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와 목적을 포기할 만큼 험난한 장벽이다. 이는 이미 현존하는 차별이며, 때문에 본인인증을 도입할 때에는 그것이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검토해 최소한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고, 필수적으로 필요한 경우라면 배제된 사람들에게 접근권을 보장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보공개 청구를 할 때 본인인증은 정말 꼭 필요한 걸까?

다른 나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유독 '자격'에 집착하는 한국?

행안부는 '청구권자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본인인증 절차를 두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가 청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자격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현행 정보공개법은 정보공개 청구권자를 국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국내에 사무소를 둔 법인/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청구인이 혹시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모두가 본인인증을 먼저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본인인증을 요구하는 관행은 정보공개청구를 하려는 사람들을 번거롭게 할 뿐 아니라, 청구인들에게 신원 추적에 대한 불안감을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앞서 보았듯 어떤 사람들은 인증의 장벽을 넘지 못해 직접 공공기관을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청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청구권자의 자격을 확인하는 것이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본다면, 득에 비해 실이 너무나 크다.

작년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랐던 공공도서관의 본인인증 완화 요청 ⓒ국민청원 사이트 캡처

사실 정보공개 청구는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공개해달라는 요청이기 때문에, 누가 그 요청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축적된 많은 판례와 운영지침에서도 청구인이 누구인지나, 청구 목적을 추궁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청구 내용을 보고, 요청한 정보가 혹시라도 비공개 대상에 해당하는지 판단하여 공개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본인에게만 공개해야 할 정보들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특별한 경우에 한 해 자료를 공개하는 시점에서 본인인증 절차를 활용하면 될 일이고, 정보공개포털은 이미 그렇게 운영되어왔다.

게다가 공익적으로 중요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알아야 할 정보라면 그것이 외신 기자든, 한국 시민이든 누구의 요청이든 상관없이 공개되어 널리 활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정보공개 제도가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적이나 나이 등 다른 조건 없이, '누구나' 정보공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언어나 문화의 장벽으로 외국인의 청구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말이다. 많은 이웃 나라들과 달리 유독 요청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고 나아가 주민번호를 바탕으로 손쉽게 그 자격을 검증하려는 관행은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축시키고 불신을 조장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의 영역에서 불필요한 본인인증으로 불합리하게 시민들이 부담을 떠안는 일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란다.

 

* 정보공개센터가 매 달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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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일, 서울행정법원은 대학원생 A씨가 사법연수원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처분취소 소송에서 어이없는 이유로 사법연수원의 손을 들어줬다. 사법연수원을 대상으로 했던 정보공개청구에서 ‘비공개’결정을 받은 A씨가 이에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사법연수원은 이를 기각, 결국 행정소송에 이르게 된 것이다. 헌데, 사법연수원은 A씨에게 ‘비공개’ 결정 통지문을 보냈는데 행정법원은 사법연수원이 ‘공개’를 한 것이라며 사법연수원의 처분이 위법한 것이라 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1. 서울시립대학교 일반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 A씨는 사법연수원을 대상으로 2019년도 사법연수원에서 발간한 민사집행법 외 7권에 해당하는 교재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진행하였다. 이에 사법연수원은 ▲‘사법연수원 교재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저작권 침해 우려가 있는 단행본 또는 전자파일 형태로 사법연수원 교재를 제공할 수 없다’ ▲‘사법연수원 교재는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법원도서관 등에서 열람, 대출이 가능함을 알린다’며 비공개 결정을 하였다. 이에 A씨는 이의신청 등의 과정을 거쳐 ‘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그런데 서울행정법원은 사법연수원이 ‘해당 정보의 소재 안내’의 방법으로 공개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소송을 기각하였다.

 

2. 사법연수원은 2018년도 까지 사법연수원에서 발간한 교재들을 단행본의 형태로 시중 서점 등을 통해 판매하였으며, 관련 법학자, 변호사 등은 물론 일반인들도 얼마든지 해당 교재를 구입하여 볼 수 있었다. 하지만 2019년도부터 사법연수원 교재를 일반인을 포함 변호사에게도 공개하지 않고 외부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일명 로스쿨) 학생들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후퇴를 택한 것이다. 2018년도까지 모두에게 공개하던 정보에 대해 갑자기 2019년도부터 그 접근을 제한하고 특정 소속의 사람들만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정보 인권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는 시대에 오히려 국민 대다수의 정보 접근권과 알권리를 후퇴시키는 차별적 정책이다.

 

3. 정보공개 청구 당시 사법연수원은 해당 교재를 제공할 수 있었음에도 ‘도서관에서 열람, 대출이 가능함’을 이유로 “비공개 결정”을 했다. 그런데 법원은 이를 ‘공개’의 형식으로 인정하였고 해당 사건을 기각하기에 이르렀다.
사법연수원은 이미 해당 교재의 전자적 형태의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를 공개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청구 당시 2019년도 교재는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즉, 사법연수원이 ‘공개’했다고 법원이 인정한 소재 정보 역시 잘못된 정보였으며, 청구인인 국민의 정보 공개 요청을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관한 법률’ 제15조 

공공기관은 전자적 형태로 보유·관리하는 정보에 대하여 청구인이 전자적 형태로 공개하여 줄 것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그 정보의 성질상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청구인의 요청에 따라야 한다. 

 

4. 게다가 사법연수원은 대법원 산하 조직인 공공 기관이므로 사법연수원의 기록물, 간행물 등 저작물은 공공 저작물로 저작권법 제24조2 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 규정에 따라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이 저작재산권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보유한 사진, 영상, 음원, 연구보고서 등으로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저작물”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법연수원은 해당 저작물을 “저작권법상 보호되는 저작물”이라고 주장하며 “저작권 침해 우려가 있는 단행본 또는 전자파일 형태로 사법연수원 교재를 제공해 드릴 수 없다”고 답했다. 하지만 해당 교재의 2019년 이전 저작물 등은 국회도서관 등을 통해 얼마든지 피디에프(PDF) 형식의 전자 파일로 취득할 수 있음을 고려해보면 ‘저작권 침해’를 우려하는 사법연수원의 답변이 어불성설임을 알 수 있다. 결국 A씨가 요청한 정보는 애초부터 공공 저작물로서 모두에게 전자 파일로 제공했어야 마땅함에도 ‘저작권’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았다.

 

5. 정보공개청구제도는 “공공기관이 업무 수행 중 생산하여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국민에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더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국정운영에 대한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이다. 이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보다 많은 국민의 알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보공개청구 요구에 공공기관의 적극적인 협조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 공공저작물의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국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도록 사전에 공개되어야 한다. 특히 자유로운 열람 및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전자 파일의 형태로 누구나, 어디서나, 언제나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6. 따라서 우리 단체는 공공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사법연수원의 정책적 퇴행을 개선하여 모든 저작물에 공공누리를 적용, 국민 모두에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며, 서울고등법원은 1심의 오류를 바로잡고 국민의 알권리와 정보접근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올바른 판결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

 

2020.5.27.

 

공공운수노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지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정보공유연대 IPLeft, 진보네트워크센터

 

[첨부] A씨_사법연수원교재_정보공개소송_의견서법원제출

담당자: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강성국 활동가
전화: 02-2039-8361 E-MAIL: [email protected]


A씨_사법연수원교재_정보공개소송_의견서법원제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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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5/2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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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2020년 10월 6일, 416가족협의회는 국회의 ‘국민동의청원’에 두 개의 청원을 올렸다. 그중 하나가 ‘4.16 세월호참사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기록물 공개 결의에 관한 청원’이다. 가족협의회는 청원의 이유로 “4.16 세월호 피해자들은 신원의 권리, 진실(진상규명)에 관한 권리가 있으며 시민들 역시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10만명의 동의가 있어야만 국회 관련 상임위에 다뤄지는 이 청원은 지난주만 해도 몇만명이 모자라 맘을 졸이게 하더니 마감을 임박한 하루 이틀 사이에 결국 10만명의 동의를 얻어냈다.

그리고 같은 날인 10월 6일, 또 다른 사건의 유가족인 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공무원의 친형은 국방부에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했다. “자료를 통해 북한군이 공무원을 발견한 9월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시신이 불에 타기 시작해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 오후 10시 11분을 거쳐 불빛이 사라진 오후 10시 51분까지의 시간대에 국방부가 공무원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전혀 다른 두 사건의 정보공개요구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는 사건이 발생했던 당일의 정부 조치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요구를 다른 사람이 아닌 사건의 직접당사자인 유가족이 한다는 것이다.

어쩌다 유가족들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세월호 유가족의 정보공개요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들은 지난 6년 동안 숱하게 정보공개를 요구했다. 시민사회도 함께했다.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소송도 하고, 헌법소원까지 했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들이 원했던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법원도, 헌법재판소도, 정부도 모두 대답은 같았다. ‘이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

북 피살 공무원 유가족의 정보공개요구 또한 계속 이어지고 있다. 10월 14일에는 ‘해경의 월북 발표를 신뢰하기 어렵다’며 해양경찰청에 해경진술서를 정보공개청구했다. 며칠 전인 10월 28일에는 정보를 은폐하지 말고 공개해달라며 청와대에도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이들은 또 앞으로 몇 번의 싸움을 더 해야 할까.

세월호참사 기록 공개 못 한다는 이유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가장 쟁점이 되는 대통령기록은 2014년 4월 16일 사고가 났던 당일에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다. 그중에서도 사고가 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대면보고도, 이렇다 할 조처도 취하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이다. 2014년 4월 16일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뚜렷하게 밝혀진 게 없다.

비공개에 대한 정부의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날의 기록이 “대통령 지정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번 국회청원에서 “봉인된” 대통령의 기록물을 공개해달라고 한 것이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제17조에 따르면 민감하거나 중요한 내용의 대통령기록일 경우 지정기록으로 정해 15년 동안 (개인정보의 경우 최장 30년까지) 보호할 수 있다. 정보공개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열람이나 사본제작 등을 허용하지 않거나 자료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을 수 있는것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있을 경우, 고등법원장의 영장이 있을 경우, 대통령기록관 직원이 업무 필요에 따라 대통령기록관장의 사전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열람이나 사본제작, 자료제출이 허용된다. 하지만 이렇게 제한적으로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자 그대로 공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법 19조에는 지정기록을 열람한 사람은 열람한 기록에 포함된 내용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다. 지정기록 열람은 제한된 일부에게만 열람이 허용되는 것이지, 전 국민에게 공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북 피살 공무원 유가족에게 공개 못 한다는 이유

유가족이 국방부에 정보공개청구한 내용은 ‘사망한 A씨가 북측의 총에 맞아 숨진 9월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오후 10시 51분까지 우리 군의 북한군 대화 감청 녹음파일과 A씨의 시신을 훼손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꽃이 관측된 같은 날 오후 10시 11분부터 51분까지 40분간 녹화 파일’이다. 그리고 국방부는 11월 3일 유가족에게 ‘공개가 불가하다’고 통지했다. 국방부는 “유가족 측이 요청한 정보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보 공개법이 적용되는 대상이 아니며, 군사기밀보호법 상 비밀로 지정돼 정보공개가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군사기밀보호법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면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군 관련 문서, 도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 또는 물건으로서 군사기밀이라는 뜻이 표시 또는 고지되거나 보호에 필요한 조치가 이루어진 것과 그 내용”을 1급~3급 비밀로 구분해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법이다. 하지만 군사기밀이라고 해서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군사기밀보호법 제9조에 따라 모든 국민은 군사기밀의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 비밀보호서약 등 보호조치를 취하고 난 후 제한적으로나마 군사기밀을 제공하거나 설명할 수도 있다(같은 법 8조). 하지만 그때는 법률에 따라 군사기밀의 제출 또는 설명을 요구받을 때, 군사외교상 필요할 때, 군사에 관한 조약이나 그 밖의 국제협정에 따라 외국 또는 국제기구의 요청을 받았을 때, 기술개발, 학문연구 등을 목적으로 연구기관 등이 요청할 때, 이상 네 가지 이유에서만 가능하다. 군사기밀과 관련한 피해당사자의 권리구제가 필요할 때 등의 이유는 언급조차 되어있지 않다.

정부와 국회는 누구의 곁에 있나

지금까지의 정부 대응과 현행법의 한계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유가족들의 정보공개청구한 정보들이 공개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유가족들도 이를 모를 리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왜 유가족들이 멈추지 않고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일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서일 것이다. 정보가 없으면 진상규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는 유가족들이 사건이 났던 그 날에서 단 하루도,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는 정부의 말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 피살 유가족은 정보공개청구를 하며 내용의 민감성을 감안해 공개에 따르는 비밀서약까지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는 가족을 잃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가족의 요청보다는 국가안보의 손을 잡았다. 세월호 유가족은 기록을 공개해달라며 한 달 새에 10만명을 모아 국회에 요구했다. 그러면서 이 기록을 국회의원뿐만이 아닌 특조위와 피해자들에게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에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본다. 어쩌다 유가족들은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진상규명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사건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정보가 없으니 진실을 알 수 없고, 가족을 앗아간 사건이 여전히 납득 될 리 없다. 온전한 진실과 정부의 짧은 말들은 너무나 멀리 있다.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답할 차례다. 유가족들의 요구에 이들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국민보다 소중한 국가안보와, 탄핵된 대통령의 예우가 다 무슨 소용인가.


정보공개센터

정진임 소장

수, 2020/12/0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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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업의 ESG 경영이 강조되고 있다.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은 기업의 재무제표상 이익뿐 아니라 기업활동이 환경과 사회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관리하며 운영하는 기업 경영의 새로운 경향이다. 단순히 이익 창출만이 아닌 사회 구성원으로서 환경을 파괴하거나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같은 시대적 요구이며, 앞으로의 기업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체질 개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세계 투자자본이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하여 투자 여부를 결정하면서 더욱 가속화 되고있는 실정이고,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이 ESG 평가지표를 바탕으로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책임투자원칙을 내세우면서 국내 기업도 더이상은 ESG 경영을 무시할 수 없는 환경이 서서히 조성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 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사회적책임투자(ESG) 글로벌 공시, 평가 및 법적 쟁점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2021.03.11.ⓒ뉴시스

해외기업의 ESG 경영 핵심을 채우고 있는 것은 친환경적인 생산과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이다. 유럽과 미국 등이 최근 선제적으로 근미래에 화석연료를 퇴출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한 것도 이러한 기업의 변화에 대한 결과물과 맞물려 있다. 한국도 기업의 ESG 경영을 투자 또는 정부의 기업지원과 혜택의 전제조건으로 제도화한다면 기후위기 등 환경문제, 정경유착, 불공정거래, 노동탄압 등의 개선도 어느 정도 기대할 수 있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저변도 넓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SG 경영이 기업의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으로 견고하게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ESG 경영 실행 여부와 실행되고 있다면 실행 수준과 결과를 평가할 수 있는 관련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그것이다. 하지만 정작 ESG 경영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ESG 경영에 관련된 정보는 원활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현재 국민들이 확인할 수 있는 ESG 경영과 관련된 정보는 크게 두 가지로 주주의 권리, 이사회 및 감사위원회의 구성과 운영현황, 외부감사인의 독립성 등과 같은 기업지배구조 관련 사항들을 담은 ‘기업 지배구조보고서’와 기업의 환경 관련 위기요인 및 대응계획, 노사관계·성평등과 같은 사회 이슈 관련 개선 노력을 담은 ‘지속가능보고서’이다. 이 두 보고서는 공개는 되고 있지만 2020년 기준으로 ‘기업 지배구조보고서’는 211개 기업이, ‘지속가능보고서’는 2019년 기준으로 20개 기업만이 공개하는 실정이라 한국 기업 전반의 ESG 경영 상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금융당국도 ESG 관련 정보의 공시의무화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진행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여기에 더해 ESG 평가지표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투자를 결정하는 국민연금의 ESG 평가지표에도 정보공개에 대한 평가는 아예 포함되지 않고 있다. 지금처럼 투명한 정보공개라는 전제가 없다면 사실상 한국의 ESG 경영이 내실화되고 일반적인 경영문화로 자리 잡는 것은 요원한 상태다.

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강조하는 ESG 경영
기업정보를 더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보다 즉각적으로 ESG 경영을 정착하기 위해 관련된 정보공개를 제도화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정보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공개한다면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 즉 비재무적 리스크로서 ESG 정보의 공개를 제도화·정례화할 수 있다. 한국은 이미 기업에게 환경, 노동 등과 관련된 규제와 신고 절차를 마련하고 해당 정보를 기업으로부터 제출받고 있다. 온실가스 외의 환경을 파괴하는 각종 가스 배출량, 환경유해물질 배출관리, 사업장별 구체적인 산업재해 현황, 하도급법 위반현황, 작업장 안전관리 현황 등의 정보는 ESG 경영에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정보이며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 정보를 투자자본과 국민들에게 공개하고 ESG 경영 수준을 평가해 모범적인 기업에게 혜택을 제공한다면 ESG 경영은 자연스럽게 기업에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 및 노동 관련 규제를 위반한 사업장에 대한 정보는 기업의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고 정부 서버 깊숙이 저장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48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올해가 ESG 경영 확산의 원년"이라며 축사를 하고 있다. 2021.3.31ⓒ뉴스1

기업이 유발하는 기후위기 등 환경문제와 노동권 등 사회문제에 관련된 정보는 단순한 기업의 영업비밀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검증할 수 있는 공공성과 밀접한 정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정부는 기업 입장의 유불리를 떠나 이러한 성격의 정보를 국민 모두 알 수 있도록 최대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투명한 정보공개는 단순히 문제의 발견이 아닌,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에 대한 출발이다. 때문에 ESG 경영에 있어 기업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는 필수이며 우리 사회의 문제를 확인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기본 전제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 기업의 ESG 관련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 더불어 국민연금과 같은 공공기관의 ESG 평가 요소에도 기업의 정보공개를 주요한 평가 요소로 두어 보다 적극적인 기업의 정보공개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 해당 칼럼은 민중의소리 [공개사유]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월, 2021/04/2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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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4일, 여수 산업단지의 한 특수고무 생산 공장에서 컨베이어벨트를 청소하던 하청노동자가 산업용 로봇의 팔에 머리를 맞아 쓰러졌다. 로봇이 사람을 포장해야 할 제품으로 잘못 감지하여 작동한 것이다. 사람이 로봇에 접근하면 자동으로 멈추는 안전장치가 작동했어야하나, 공장에서는 포장 작업을 멈추지 않기 위해 안전장치를 강제 해제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기계를 정비하거나 청소하는 작업을 할 때 기계를 정지해놓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지만, 이 상식적인 안전조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포장 작업 공정에서 어떤 사고가 벌어질 수 있는지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로봇 팔에 맞아 쓰러진 노동자는 병원으로 옮겨진지 1시간 만에 숨졌다. 한 해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이 사고는 큰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에서 해당 사고가 일어난 공장의 구인 정보를 검색해보았다. 마침 최근에 구인 공고가 올라온 참이었다. 제품 생산라인보조, 3조 3교대, 고무 제품 검수 및 포장, 시급 8590원. 담당 업무를 설명하는 문장 맨 마지막은 ‘어렵지 않습니다.’로 끝났다. 이 모집공고를 보고 현재 13명의 구직자가 지원한 상태라고 표시되었다. 이 13명의 구직자들은 2년 전에 이 ‘어렵지 않은’ 일을 하던 누군가가 로봇 팔에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 길이 도무지 없다. 안전관리 미비로 사망 사고가 일어났던 공장임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지원서를 넣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한 해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나라에서, 어느 공장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하나하나 기억하는 사람이라곤 없으니까.

고용노동부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 화면
고용노동부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 화면ⓒ워크넷

비단 이 공장만의 일이 아니다. 연간 10만 명이 산업재해로 다치거나, 병에 걸리거나, 죽는 나라에서 구직자들은 내가 일하고자 하는 곳이 안전한 일터인지 미리 알 길이 없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매년 산업재해가 일어난 사업장 명단 일부를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긴 하지만, 아마 일자리를 찾으면서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를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수고를 들이는 구직자는 없을 것이다. 구직자들의 입장에서는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기업정보, 근무조건 이상을 확인하기엔 어려운 현실이다. 내가 앞으로 일할 직장에서 어떤 사고가 발생했는지, 산업재해가 얼마나 일어났는지, 얼마나 위험한 작업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산업재해 기업이 관련 정보 없이 구직광고 내는 현실
고용노동부 워크넷에 재해 정보 제공하고,
산업재해 사업장 정보를 오픈해 민간에도 제공하는 해야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의 명단을 공개하는 이유는 당연히 산업재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이를 예방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고용노동부 홈페이지나 관보에만 명단이 올라온다면,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어떤 사업장에서 어떤 사고가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명단 공개가 제대로 된 실효성을 가지려면, 무엇보다도 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앞으로 일할 당사자들에게 그 정보가 알려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구인공고가 올라올 때마다 해당 기업의 산재 발생 현황이 함께 제공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기업의 산재 발생 현황을 구직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차피 지금도 법으로 공개하고 있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간에서 운영하는 구인구직 사이트는 물론이거니와, 산업재해 예방의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가 운영하는 구인구직 사이트 워크넷에서도 구직자들에게 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 상황이다. 왜? 그럴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직업소개, 구인과 구직과 관련한 사항 전반을 규정하고 있는 법은 직업안정법이다. 현재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최저임금법을 위반한 구인 공고가 올라오지 않거나, 임금체불 사업주가 구인 공고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2015년에 임금체불 사업주 명단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직업안정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전국택배연대노조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본사 앞에서 롯데택배 택배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택배사에 대한 규탄과 과로사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조와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는 2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본사 앞에서 롯데택배 택배노동자 사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택배사에 대한 규탄과 과로사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마찬가지로 직업안정법을 개정하여, 구인공고에 구인 기업의 산업재해 현황 정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게 한다면 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명단 공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업의 산업재해 예방 책임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굳이 법 개정까지 가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도 많다. 직업안정법 시행규칙을 바꿔, 구인신청서에 필수적으로 적게 되어있는 업체 정보에 산업재해 현황을 기입하게 해도 충분하다. 고용노동부가 의지가 있다면, 지금 당장 산업재해 사업장 명단 데이터를 오픈 API로 제공하여 워크넷이나 민간 구인구직사이트에서 손쉽게 기업 산재 현황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70%를 넘겼다. 이제 ‘죽지 않고 일할 권리’가 시대적 과제라는 것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재해를 줄이고,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대해 정부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응답해야 한다. 기업의 산재 현황 정보를 제공하여, 구직자들에게 더 안전한 직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역시 그러한 수단의 하나일 것이다.

화, 2021/01/1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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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공개센터가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

 

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

국내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곧 시작된다. 백신이 과연 얼마나 효과를 나타낼 것인지,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것은 아닌지 등등 백신을 둘러싼 기대와 불안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다. 다행히 백신 접종률이 60%를 넘어선 이스라엘에서는 백신이 92% 이상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져오지만, 일부 부유한 국가가 아닌 지역의 사람들의 경우 언제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조차 좀처럼 기약이 없다.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확산되면서 '백신이 언제쯤 개발될 것인가'는 모든 이들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세계 각국은 백신 연구개발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전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임상실험과 약품허가 관련 규제 완화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은 10개월 남짓 만에 상용화 수준에 도달했다. 그런데 백신이 개발된 이후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백신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지 못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레니힝의 세보켕에서 마스크를 쓴 한 남성이 공공장소에서의 마스크 사용을 홍보하는 벽화 앞을 지나고 있다.ⓒ뉴시스/AP
 
 

물론 모든 국가들이 동일한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용화 초기부터 부유한 나라들은 제약회사와 선구매계약 경쟁에 뛰어들며 앞다투어 백신 확보에 나섰지만, 최빈국에 속하는 나라들의 경우 아직까지 단독적인 백신 구매 계약을 단 한 건도 맺지 못했다. 이에 지난 1월 WHO는 세계 14%에 해당하는 인구가 백신 생산량의 과반수를 독점하도록 만든 부국의 '사재기' 행태를 지적하며 '세계는 도덕적 실패 직전'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백신이 개발되면 코로나가 곧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세계 대다수의 인구가 백신에 접근할 수 없고, 따라서 코로나의 종식 역시 계속해서 멀어져만 가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백신의 공급량이 전 세계 인구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니 이 같은 현상은 당연한 것일까? 과연 공급을 늘릴 방법은 없는 걸까?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도덕적 실패'의 중심에는, 단언컨대 '지식과 정보의 독점'이라는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공개되지 않는 정보, 공유할 수 없는 지식

특정 국가나 기구가 백신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백신 생산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제약회사와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절대 공개되지 않는 것이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백신의 가격이다. 한국의 백신계약 과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약회사들은 계약을 맺는 모든 국가 혹은 기구에 대해 가격에 대한 비밀유지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약가 협상에 있어, 제약회사들은 마음대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반대로 구매를 하려는 측에서는 약가가 적당한지를 판단하기 위한 '시세'를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둘째는 백신에 소요된 연구개발비용과 자금의 구성 내역이다. 약을 구매하려는 국가는 해당 의약품의 제조원가가 얼마인지, 약품 개발에 있어 공적자금이 얼마만큼의 비율을 차지하는지를 가늠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 국가들은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약가협상을 체결할 수밖에 없고, 협상에서 제약회사들은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다.

이렇게 '눈 뜨고 코 베이는' 식의 계약이 이루어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제약회사가 기술을 독점하고 있어 약을 희소하게 만들기 때문인데, 언뜻 보면 이는 너무나 당연한 경제 상식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제약회사들의 기술 독점은 특허라는 고유한 제도를 통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허는 특정한 지식에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발명자가 이윤을 가져가게 하고, 이러한 보상을 동기 삼아 더 많은 혁신과 과학적 연구를 하도록 장려하는 제도다. 특허제도는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생산의 동기를, '지식을 상품화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것'으로 조건 짓는다는 데에서 굉장히 문제적이다. 이는 정보와 지식을 사회적 필요에 따라 생산하기보다는 산업적인 이윤의 가능성에 따라 생산하도록 만들며, 지식 및 그 결과물을 '공공의 자산'으로 유통될 수 없도록 강제한다. 또한 자본이나 개인 발명가에게 모든 권한과 보상을 귀속시킴으로써, 지식을 생산하는데 기여 하는 여러 주체들을 지식의 결과물로부터 소외시킨다.

코로나19 백신 기술을 예로 들면, 이러한 기술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은 제약회사의 노력 뿐 아니라, 백신 개발을 앞당기려는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의 자금지원, 임상실험에 기꺼이 참여한 개발도상국 거주민, 혈장을 기증한 감염병 환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기여한 결과다. 그러나 특허는 이렇게 구성된 전 인류의 지식을 제약회사가 홀로 독점하고 사유화하도록 함으로서, 백신이 공공재로 유통될 수 없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팬데믹을 장기화시켜 모든 사회를 위험에 처하게 만든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상품화 되어서는 안 될, 인간의 생명과 직결된 바이오·의약품 분야에서 특허출원은 매우 활성화되어있다. 그리고 이윤 추구를 우선하는 제약회사의 입장은 지금과 같은 팬데믹 속에서도 굳건하다. 코로나19에 유일하게 효과가 있는 치료제로 지목된 '램데시비르'를 만든 미국 길리어드 제약사는 1만 2천원으로 만들 수 있는 약을 약 46만원으로 책정해 판매하고 있고, 특허를 7년 더 연장하기 위해 희귀의약품 지정을 신청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자 철회한 바 있다. 백신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재까지 백신에 대한 특허를 내지 않거나 포기한 제약회사는 단 한 곳도 없다.

지난달 19일 독일 대도시의 백신 센터에서 의료진이 화이자-비오엔테크 코로나 19 백신 주사약병을 들고 있다. 2021.1.19.ⓒ사진 = AP/뉴시스

 

코로나 백신 및 치료제에 대한 '특허 면제' 조치 지지해야

특허로 보호되고 있는 백신의 높은 가격과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0년 10월,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에 대해서 특허권 조항을 면제하자는 제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상정했다. 현재까지 164개국 이상의 국가들이 찬성 의견을 냈지만, 코로나 백신을 개발한 선진국이 반발하면서 '특허권 면제' 안은 계속해서 결렬되어 왔다. 한국 정부 역시 말로는 '코로나19 백신의 평등한 국제적 분배를 촉구' 한다면서도 실제 제도적인 실행 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전 세계적으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코로나 종식은 어렵다. 이미 남아공, 영국, 브라질 등 세계 곳곳에서 변이 바이러스들이 나타나고 있고, 백신 공급이 최대한 빨리 이루어지지 않으면 계속해서 변이가 심화될 수 있다. 만약 특허라는 장벽이 없어지고 전 세계가 기술을 공유할 수 있다면, 인도 등 이미 대형 위탁생산이 이뤄지고 있는 나라나 한국처럼 생산 시설을 활용할 수 있는 많은 나라에서 최대한 많이 백신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3월 WTO 각료회의에서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특허권 면제 안'에 반드시 지지를 표명해야 한다.

한편으로 특허로 인한 건강권 박탈의 문제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허는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조건 지어왔다. 우리는 이번 팬데믹을 계기로 삼아 과학적 지식과 기술, 그리고 그 결과물들이 어떤 조건에서 만들어지고 유통되는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지식의 독점’에 대해 공공의 관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통제가 가능하도록 체계를 바꿔나가야 한다. 어쩌면 코로나19는 이미 누군가에게는 늘 자행되고 있었던 ‘도덕적 실패’를 가시화한 사건일 뿐이며, 이런 식의 ‘도덕적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의약품 접근의 문제를 ‘도덕’에만 맡겨 두지 않는 것이다. 

목, 2021/03/1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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