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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작가 하미나: 걸어간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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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작가 하미나: 걸어간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

admin | 월, 2021/03/08- 08:36

국제앰네스티는 2021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Women Against ViolencE》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여성 작가 8명과의 협업을 통해 파도가 되어 여성 폭력에 대항하는 다양한 일상의 목소리를 담아봅니다. 아래는 작가 하미나님의 기고문입니다.

 

걸어간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

하미나

 

돌이켜보면 한 번도 페미니스트가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활동가는 커녕 광장에도 제대로 나가본 일이 없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구호를 외칠 때면 혼자서 ‘아 근데 꼭 이것만 맞는 말인가?’ 딴 생각이 들며 군중 속에서 홀로 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열렬한 활동가로 지낼 거라는 상상을 못했던 건 “튀려고 하지마. 평범하게 살아.”를 반복하던 부모의 말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내 머릿속 심어진 활동가, 특히 페미니스트 활동가에 관한 편견 때문일 수도 있다. 활동가는 늘 확신에 차 있고 온갖 훼방에도 꿈쩍 않는 강한 사람들일줄 알았다. 나는 의심이 많고 툭하면 우는 사람이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확신보다는 질문이, 강함보다는 연약함이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것을.

나는 ‘페미당당’을 만나며 어쩌다 활동가가 되었다. 페미당당은 젊은 여성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이루어진 그룹으로 2016년 4월 총선 때 결성됐다. 페미니즘 의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기성 정당에 실망하여 “뽑을 당이 없다면 우리가 직접 창당하자”는 의지로 반쯤 농담처럼 모인 친구들 모임이었다.

활동이 무게감을 가지고 본격화된 것은 2016년 5월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 이후 일어난 시위에서 ‘거울행동’ 퍼포먼스를 하면서부터다. 가해자는 7명의 남성을 보내고 최초로 들어온 여자를 죽였다. 정확히 여성을 표적한 사건이었으나 세상은 여성혐오 범죄라는 말 대신 묻지마 범죄라는 이름을 붙였다. 페미당당은 이 사건이 여성이라면 누구라도 당할 수 있었던 범죄임을 보이기 위해 근조 리본이 달린 영정 크기의 거울을 들고 강남역 10번 출구를 함께 걸었다.

당시 나는 제자에게 상습 성추행을 저지른 대학교수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 중이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여성임을 자각하고 의식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기에서 이제는 반드시 자각하고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기로 이동하게 됐다. 삶의 모든 것이 재편되었다. 내가 입는 옷, 대화를 하는 방식, 공부의 방향, 관계를 맺는 방식, 가족과의 관계 등등. 페미당당과는 그 과정에서 만났다.

활동을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제까지 뭉쳐왔던 분노와 이를 동력으로 삼은 에너지가 가슴 속에서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주변인과 참 많이도 싸우고 이별했다. 나에게 종종 전화해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던 남성 과선배는 어느날 전화하더니 너 그렇게 살면 안된다며 “진정한” 충고를 하기도 했다. 이 시기 나와 내 주변을 바꿔가며 자기의 세상을 뒤엎어버린 또래의 여자가 많을 것이다. 그 과정은 무척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인생의 한 번은 꼭 하고 넘어가야만 하는 일이었다.

페미당당에서 나는 세미나를 맡았다. 나와 친구들처럼 ‘어쩌다 페미니스트’가 된 여자들을 위해 개최했다. 살려고 보니 사람들이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데, 그 말을 그토록 무서워하는데, 그러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리고 말겠는데, 근데 나는 충분히 페미니스트인가? 그러면 이 주제는 앞으로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세미나였다.

페미니즘 정치(“여성이 비로소 사람이 되었을 때”), 가스라이팅(“가장 약한 마음을 가장 강한 용기로 사랑하라”), 범죄(“‘괴물’앞에 선 여성들”), 대중문화(“페미니스트 분들 계시는 자리에 케이팝 틀어도 되나요?”), 트랜스젠더(“당신의 성별을 증명하시오”), 낙태죄(“나라님 말대로 낳고 말고 해야 한답니까”), 과학(“과학이 페미니즘을 만나 더 나은 과학이 되기를”), 학교(“우리가 하는 일은 이전에는 없던 길을 만들어가는 것”), 디지털 성폭력(“우리의 일상은 당신들의 포르노가 아니다)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다. 최근 이 세미나를 기반으로 책을 냈다. 제목은 <걸어간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여성으로 사는 삶을 자각하게 된 것은 사실 행운이다. 이전에는 행동으로 나설만큼 심각하게 차별을 체감하지 못했다는 거니까. 혹은 차별을 당해도 더 잘하면 된다고, 예외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똑똑한 여자들의 많은 수가 이런 착각을 많이 한다. 능력주의는 사회의 수많은 불평등을 해결하는 일을 너무 개인의 몫으로 남겨 둔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그런 때가 온다. 도저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해도 이루어질 수 없는 때.

여성으로 사는 삶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늦춰지는 건 앞선 여자들의 덕이다. 그들이 싸워서 얻어낸 것 덕분이다. 탁월한 단 한 명의 여성보다는 그럭저럭 평범한 여성 여럿이 사회에서 활개를 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우먼이 아니라 작당모의다. 앞선 여자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계속 간다.

페미니즘에 눈을 뜬 최초의 자각은 강렬했고 모든 것이 명쾌했다. 연대는 달콤하고 감동스러웠다. 그러나 분노가 엄청난 동력을 만들어낼수록 몸은 지쳐 나가 떨어졌다. 지금은 동질성보다는 차이를 더 자주 생각한다. 우리라는 말보다는 우리로 포함이 안되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뻣뻣한 연대보다는 유연한 연대를 생각한다. 분노보다는 유머와 상상력으로 나아가는 미래를 생각한다.

얼마전 내가 원하는 세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이런 결론이 나왔다. 나는 뭐든 돼도 되는 세상을 원한다. 정확히는 그런 상상이 두렵지 않은 세상을 원한다. 손상과 훼손과 약함이 두렵지 않은 세상을 원한다. 죽음과 질병이 두렵지 않은 세상을 원한다. 특이해지는 것이 두렵지 않은 세상을 원한다. 여성의 삶, 환자의 삶, 장애인의 삶, 노인의 삶, 유색 인종의 삶, 레즈비언의 삶, 트랜스젠더의 삶, 노동자의 삶, 가난한 사람의 삶, 페미니스트의 삶을 상상할 때 두렵지 않은 세상을 원한다. 원래 그렇게 태어났든, 그렇게 존재하겠다고 선택했든, 원하지 않았지만 뜻밖에 그렇게 되었든 관계없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원 장혜영이 추천사로 써주셨던 글을 인용하며 마무리짓고 싶다. “없던 길을 내면서 가는 저항자로서의 여성들이 여기에 있다. 성별이분법과 성차별, 성폭력으로 쌓아올려진 견고한 성채에 균열을 일으키는 최고의 무기는 질문이다. 어떤 질문이 우리를 가두고 길들이는가? 어떤 질문이 여성을, 나아가 우리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가? 질문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여성들은 길을 만든다. 그리고 걸어간다. 때로 막다른 골목을 마주치더라도, 가스등이 깜빡이더라도 멈추지 않는다. 아직 멈추고 싶지 않기에. 그렇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섬세하게 싸우고 복잡하게 연대하며 함께 걷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걸어간다, 우리가 멈추고 싶을 때까지.”

 

작가명

작가 하미나

참여 소감

분노로 너무 지치지 않기를, 유머와 상상력이 동력이 되기를.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던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작가 하미나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심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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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앰네스티는 2021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폭력에 대항하는 여성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Women Against ViolencE》캠페인을 진행합니다. 여성 작가 8명과의 협업을 통해 파도가 되어 여성 폭력에 대항하는 다양한 일상의 목소리를 담아봅니다. 아래의 작품은 앰네스티 캠페인에 함께 한 작가 민서영님의 작품입니다.

 

국제앰네스티 X 작가 민서영

국제앰네스티 X 작가 민서영

작가명

작가 민서영

참여 소감

느린 분노도, 작은 슬픔도, 낯선 두려움도 우리가 멈추지 않으면 변화가 되어 돌아온다.

 

작가 민서영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심볼

월, 2021/03/08-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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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7월 7일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 영향과 대응방향’이라는 정책 문서에서 3대 인구위험 가운데 하나가 지역소멸이다. 인구 구조의 불리한 변화 속에서도 수도권에는 여전히 몰려드는 인구로 북적이고, 살 집도 부족하고 대중교통은 만원이다.

반면 지역은 젊은층이 떠나고 지역을 지키는 주민들은 점차 늙어가면서 출생 아동이 줄어들고, 혁신할 수 있는 힘과 활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지역소멸이라는 표현 자체는 자극적이지만 일반 국민, 특히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서서히 다가오는 위협을 실감나게 표현한 단어다.

쇠퇴하거나 활력을 잃어가는 지역을 살리는 방안에 관해 광역, 기초 구분 없이 각 지방자치단체가 고민하고 있다. 가장 손쉽게 떠올리는 방안은 대기업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 지역을 살리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자원, 시장 접근성, 우수한 인력, 산업 생태계가 없는 지역에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음으로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로 거버넌스를 구축해 지역에서 투자를 유치하고, 혁신과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무작정 대규모 투자유치를 하겠다는 발상보다는 진전된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 있는 다양한 주체들은 나름대로 서로 다른 기대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이들을 모은다고 해서 혁신이나 개혁의 아이디어나 시너지 효과가 자동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된 거버넌스는 스스로 무엇을 하기보다 특별히 구체화된 혁신계획도 없이 중앙정부를 상대로 각종 사업자금을 많이 따오려는 로비나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데 골몰하기도 한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다가 은퇴 연령에 가까운 사람들은 농촌 및 어촌 등의 지역으로 집단적으로 이주해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방안을 찾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일부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농어촌에서 여유롭게 제2의 삶을 살겠다는 식으로 농어촌 마을이 아닌 지역을 바꿀 수 있다고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렇다면 지역소멸은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농어촌 마을 단위에서 지역쇠퇴를 막을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을 찾는 건 매우 어렵다. 농어촌에서 거주하는 인구가 대부분 60세를 넘는 고령자로서 새로운 시도나 혁신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혁신과 새로운 개혁을 시도하려는 의지를 가진 청년들이 모일 수 있는 소규모의 시나 군 단위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지역의 산업이나 무언가를 혁신할 할 때 혁신 역량이나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 거버넌스를 구축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지역의 산업, 제품, 서비스를 혁신하거나 새로운 관광 자원을 개발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할 땐 목표를 세우고 계획해야 한다. 계획을 세울 땐 유사하거나 다른 사례 및 제도를 참고하고, 사업 수행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고, 나아가 목표와 계획에 함께 세우고 사업을 함께 할 사람을 규합해야 한다. 이들과 함께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낸 상품이나 서비스는 시장에서 평가를 받는다.

중ㆍ대기업은 각 분야 별 오랫동안 축적된 조직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들 조직화된 혁신 역량이 시장에서 신제품, 서비스를 개발하고, 생산한 뒤 마케팅, 사후 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서 이익을 실현하고 있다.

지역소멸을 막고 지역의 산업, 서비스, 제품 혁신을 위해서 무엇보다 혁신 역량을 갖춘 사람이 필요하다. 역량은 지역 등에서 각종 사업의 다양한 실패와 작은 성공 경험을 하고, 다른 사례들을 배우는 가운데 형성되고 축적될 수 있다.

혁신 역량은 개별적 역량으로 시작해서 집단적이고 조직화된 역량으로 발전될 수 있다. 지역에서는 대기업과 같이 축적된 조직화된 역량을 갖추거나 유지하기도 어렵지만, 지역에서 개별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조금은 조직화되고, 문제 의식을 공유하는 모임이 있어야 경험이 쌓이면서 논의될 수 있다.

지역혁신을 위해서 이해 당사자 간 단순한 거버넌스가 아닌 이해관계를 넘어서 지역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나누고 공동으로 실험하면서 경험과 지혜를 쌓아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지역 일꾼의 모임을 꾸리는 게 중요하다. 지역의 산업, 업종, 서비스, 제품의 혁신도 결국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 글: 배규식 희망제작소 이사(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

화, 2021/07/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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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네스티 유스youth연령은 지부별로 조금씩 상이하지만, 공식적으로 14세에서 24세 사이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유스프로젝트에는 20~25세 유스들이 참여했습니다.

앰네스티는 전 세계 유스youth가 가진 긍정의 힘, 변화를 불러오는 힘을 믿고 유스와 함께 활동해왔으며 2020년까지 800만 명의 유스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더 많은 유스를 만나 소통하고 함께 행동하며 인권을 위한 변화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8월부터 약 15명의 다양한 색깔을 가진 유스들과 함께 유스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젠더gender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인권 의제이며,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일상에서 많이 맞닥뜨리고 고민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 오랫동안 자리한 젠더 규범과 불평등은 젠더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해왔으며, 이는 무엇보다 개인의 다양한 권리, 성과 재생산에 대한 권리, 사생활에 대한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침해해왔다. 참여자들은 본 프로젝트를 통해 젠더 이슈를 다양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분법적 젠더 규범을 벗어나 젠더 기반 폭력과 차별에 맞서기 위한 활동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본 프로젝트는 5개월간의 젠더 이슈 교육과 캠페인 기획 및 활동으로 구성되며, 현재까지 총 7회의 모임 중 4회가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당사자로서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풀어낼 수 있고 다양한 내 또래의 이들이 인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인 것 같아요.”

첫 번째 모임에서는 앰네스티가 어떤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며,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떻게 앰네스티 운동에 동참할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앰네스티 유스 전략은 무엇인지, 지역적·국제적 단위에서 진행되는 유스 활동에 무엇이 있는지 등 앰네스티 유스 활동 전반에 대해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모임을 서로에게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참여자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다 함께 약속문(ground rule)을 만들고, 앞으로의 활동에서 기대하는 점과 걱정되지만 동시에 극복하고 싶은 점을 나누었다. 한 참여자는 “비록 큰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앰네스티 회원으로서 앰네스티에 항상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한 중에 마침 앰네스티에서 유스와 함께 하는 활동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참여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두 번째 모임에서는 여성적, 남성적 젠더 박스를 만들어 봄으로써, 우리 안에 내재된 이분법적인 젠더 역할과 고정관념을 돌아보고 이런 젠더 규범(gender norm)이 누구 혹은 어디서 어떻게 학습되는지, 그리고 이를 벗어나고자 할 때 맞닥뜨리는 차별과 폭력에는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해 보았다. 그리고 젠더,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등 젠더 관련 용어를 살펴보며, 세상에는 여러 젠더가 있으며 다양한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으로 이를 존중하기 위해 혼자 혹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았다.

세 번째 모임에서는 각각 다른 나이,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 성별 정체성gender identity, 사회·경제적 지위 등을 가진 인물이 되어 질문에 따라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 위 요건들이 어떻게 권력의 위계와 불평등을 야기하며,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지 탐구해보았다. 또한, 이를 실제 자신의 주변 혹은 우리가 속한 사회와 연결하여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참여자는 “제 생활 속의 여러 요소가 어떤 이들에게는 ‘혜택’일 수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번 활동들을 통해서 그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그것이 박탈되었을 때 어떠한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전했다.

때로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들이 어떤 면에서 혜택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곤 해요. 이 활동은 그러한 부분에서 각자가 깨달을 수 있는 부분을 많이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해요.”

또한, 젠더 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 GBV)이 무엇이며 이러한 폭력이 개인의 어떤 권리를 침해하는지 살펴보고, 이에 맞서 활동하는 인권옹호자를 만나보았다. 인권옹호자가 겪는 도전과 어려움은 무엇인지, 특히 여성 혹은 LGBTI 인권을 옹호하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젠더 기반 폭력에 맞서는 인권옹호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이야기해보며, 젠더 기반 폭력에 맞서는 인권옹호활동이 갖는 특수성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았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모임에서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두 분의 인권옹호자/활동가(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WeTee-위티 양지혜 님과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큐브 심기용 님)를 직접 만나 사람책도서관 형식으로 이들의 인권옹호활동에 대한 경험을 듣고,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가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을 실천에 옮겨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위티의 양지혜님은 어떻게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었고, 왜 청소년 페미니즘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스쿨미투운동의 시작과 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점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의 활동 등을 나눠주었다. 한 참여자는 “제가 생각만 하고 있었던 것을 실천에 옮겨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그동안 유스프로젝트에서 강조되었던 연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며, 참여자들이 계속 연대할 수 있는 활동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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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큐브의 심기용님은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흐름과 큐브의 활동 전반을 이야기하고, 특히 성소수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군형법 92조의 6를 알리고 폐지를 위한 운동에 대해 나눠주었다. 한 참여자는 “군형법 92조 6의 경우, 단순한 법 해석의 문제를 넘어서, 대중의 전반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일인 것 같다”고 전했다.

지난 네 번의 만남 동안 함께 배우고 나누었던 것들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게 되는 것이니 설레네요. 앞으로 우리가 어떤 결과를 만들 수 있을지, 또 그 과정은 어떠할지 기대가 됩니다.”

유스프로젝트는 남은 하반기 동안 계속 진행될 예정이며, 현재 총 3회(+a)의 모임을 남겨두고 있다. 참여자들은 남은 세 달 동안 캠페인 역량강화 교육과 기획 워크숍을 통해, 앰네스티 캠페인을 함께 배우고 관련 이슈를 좀 더 깊이 이해하며, 변화를 위한 활동을 함께 모색하고자 한다. 앞으로의 남은 여정을 통해 서로가 좀 더 가까워지고 깊이 공감하며 풍성한 논의들이 오갈 수 있길, 앰네스티 유스의 목소리가 담긴 이야기들이 지속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수, 2019/10/0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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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녹색 물결 활동가의 손수건

아르헨티나 녹색 물결 활동가의 손수건

아르헨티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Alberto Fernández) 대통령이 국회에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을 제출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올해 3월 임신중지 합법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2018년, 아르헨티나에서는 임시중지 합법화를 위한 역사적인 표결이 진행되었다. 수많은 여성들과 여성·인권 단체들이 “녹색 물결“이라는 운동 아래 모여 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표결 결과 임신중지는 합법화되지 못했다.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해 여성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해 계속해서 싸워왔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스스로의 공약을 지켰고 임신중지 합법화를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 이제는 국회가 이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할 때다.”

국제앰네스티 아르헨티나 지부 사무국장 마리엘라 벨스키(Mariela Belski)

 

이번 대통령의 법안 제출에 대해 국제앰네스티 아르헨티나 지부 사무국장 마리엘라 벨스키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여성운동의 끊임없는 노력과 활동이 이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임신중지는 오늘날 가장 주목받는 정치적 의제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스스로의 공약을 지켰고 임신중절 합법화를 위한 법안을 제출했다. 이제는 국회가 그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할 때다. 여성과 소녀, 그 밖에 임신할 가능성을 가진 모든 이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인정할 수 있는 기회를, 국회는 놓쳐서는 안 된다.”

“이 순간을 기다리며 목소리를 높여 온 지난 몇 년을 돌아보건대, 아르헨티나에서 합법적인 임신중지는 즉각 보장되어야 한다. 상하원의 의사결정권자들은 이런 공통된 요구와 녹색물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십 수년간 이어진 성과 재생산권 침해를 이제는 멈춰야 할 때다. 임신중지를 합법화하는 것은 반드시 보장해야 할 인권이며 더욱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화, 2020/11/24-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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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일상회복을 방해하는 자, 누구인가

국제앰네스티 X 추적단불꽃

‘n번방’ 사건 이후 입법·사법·행정적으로 여러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법촬영과 지인능욕, 온라인 성착취, 비동의 유포 등 디지털 성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경로는 피해 유형만큼이나 다양하다. 지인에게 ‘당신의 사진을 본 것 같다’는 메시지가 오는가 하면, 온라인상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가해자에게 “너의 사진이 여기 올라와 있다. 사진이 다른 곳에 유포되길 원치 않으면 내 말을 들어라”는 등의 협박성 메시지를 받는 경우도 있다.
본인의 피해사실을 인지하게 된 피해자들은 ‘n차’ 가해를 일으키는 텍스트와 사진, 영상 등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지우기를 원한다. 이들은 각종 온라인 검색으로 찾은 가능한 모든 경로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경찰청,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산하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이하 디성센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물론, 착취물이 게시되어 있는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직접 신고를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한국여성의전화 및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나 추적단불꽃, 리셋 같은 단체의 도움을 얻어 삭제 및 신고를 진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정부 기관 및 단체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물 삭제에 열과 성을 쏟는다 해도, 완벽한 삭제는 힘든 게 현실이다. 피해자들의 영상 삭제를, 일상회복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피해자의 삭제 여정을 따라가 보니 빠른 삭제를 매번 가로막는 벽을 마주하게 됐다. 바로 플랫폼 기업이었다.
피해자의 삭제 여정을 따라가 보니 빠른 삭제를 매번 가로막는 벽을 마주하게 됐다. 바로 플랫폼 기업이었다.
한사성 서승희 대표는 “일반적인 오프라인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성돼 있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플랫폼이 존재한다”며 “폭력을 구성하는 주체인 플랫폼, 즉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가 온라인 성폭력에 있어 중요한 화두가 되어야 했음에도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그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지 못해 왔다”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플랫폼이 존재한다

—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
방심위에 따르면 지난 1월 30일부터 이달 7일까지 구글,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 국내외 플랫폼에 자율 규제를 요청한 디지털 성범죄 관련 정보 총 4,929건이 삭제됐다. 방심위는 플랫폼에서 자율 규제 요청에 대한 조치를 취할 때까지 중복 삭제 요청을 하므로 온라인상에 떠도는 디지털 성범죄 정보의 정확한 건수를 파악하는 건 사치인 수준이다. 최승호 방심위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이하 디성심의지원단 긴급대응팀장은 “전화, 이메일 등 삭제를 요청하기 위한 모든 창구를 동원해 자율 규제 조치를 하고 있고 한 번 요청하는 건 불안해 여러 번 요청한다”라며 “따라서 방심위가 해외 플랫폼에 자율규제를 요청한 건수는 삭제된 건보다 3배에서 10배 정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심위가 해외 플랫폼에 자율규제를 요청한 건수는 삭제된 건보다 3배에서 10배 정도 많을 것

— 최승호 방심위 디지털성범죄심의지원단 긴급대응팀장

피해물의 삭제 여정 = 무한 좌절의 연속

본인의 피해를 인식하게 되는 순간, 피해자 대부분은 가장 먼저 경찰을 떠올릴 것이다. 직접 경찰서를 방문하여 범죄 피해를 신고하거나, 사이버범죄신고시스템ECRM을 통해 온라인으로도 신고할 수 있다. 경찰에서는 가해자 검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피해자가 피해영상물 삭제를 원할 경우 디성센터나 방심위를 통해 피해영상물 삭제 지원을 연계한다. 경찰이나 시민 단체 등을 통해 디성센터로 연계된 피해자는 본격적인 피해영상물 삭제지원 서비스를 받게 된다. 영상물 삭제를 위해선, 우선 해시값복사된 디지털 증거의 동일성을 입증하기 위해 파일 특성을 축약한 수치, 디지털 지문이라고도 한다을 추출하기 위한 피해 원본 영상이 필요하다. 피해자가 피해 원본 영상과 대리삭제 동의서를 제출하면 디성센터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는 동시에 플랫폼에 피해 촬영물 삭제를 요청한다. 삭제 지원은 따로 기간 제한이 없다. 처음 3년 동안 지원받을 수 있으며 원할 경우 무제한 연장이 가능하다. 삭제 지원이 시작되면 한 달 주기로 3달간 삭제지원 결과보고서를 피해자에게 발송한다. 이후 1년 주기로 연간 결과보고서를 전달한다. 이외에도 디성센터는 수사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수사에 필요한 증거 자료를 작성하는 일을 돕거나, 피해자 거주 지역과 가까운 상담소의 의료 및 심리 치유 지원을 연계하거나 무료법률 도움을 연결해주기도 한다.
디성센터는 피해자 접수가 들어오면 유포 여부에 따라 대응을 하고 있다. 유포가 진행됐을 경우 삭제를 위해 플랫폼에 삭제 요청을 하고, 유포 불안일 경우 모니터링을 통해 현황을 확인한다. 이외에도 방심위에 사이트 차단 요청, 경찰 수사를 의뢰하기 위해 제출할 채증 자료 작성을 돕는다. (출처: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삭제지원 흐름도)

디성센터는 피해자 접수가 들어오면 유포 여부에 따라 대응을 하고 있다. 유포가 진행됐을 경우 삭제를 위해 플랫폼에 삭제 요청을 하고, 유포 불안일 경우 모니터링을 통해 현황을 확인한다. 이외에도 방심위에 사이트 차단 요청, 경찰 수사를 의뢰하기 위해 제출할 채증 자료 작성을 돕는다. (출처: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삭제지원 흐름도)

그러나 디성센터의 삭제지원에는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해외 플랫폼이 삭제 요청에 응답하지 않거나 삭제를 거부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디성센터는 방심위 측에 사이트 차단을 요청한다. 방심위는 신고 접수창구와 경찰청, 디성센터 등 유관기관 및 단체로부터 사이트 차단 요청이 들어오면 심의위원들이 심의를 거쳐 사이트에 강제 차단 조처를 내린다. 또한 방심위의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서도 디지털 성착취 관련 정보를 인지하고 심의를 진행해 문제가 되는 사이트는 국내 접속을 차단한다. 기관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인도 신고할 수 있다.삭제 방법은 플랫폼마다 상이하다. 플랫폼 내 신고 버튼이 있는 곳도 있으며, 방심위나 디성센터 같은 기관은 플랫폼 사와 핫라인 소통 창구를 구축해 신고가 들어올 경우 바로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전용 신고양식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해외플랫폼이 삭제 요청에 응답하지 않거나 애초에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가 없을 경우엔 요청 메일을 보낼 수조차 없다.

디성센터나 방심위, 경찰의 수사 지원을 받아도 플랫폼이 지금과 같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이상, 피해자들의 삭제 여정의 끝을 알 수 없는 긴 싸움이다. 각 기관과 활동가, 그리고 피해자의 노력 끝에 피해물이 삭제됐다고 해도, 가해자들이 피해물이 올라와 있던 시간 동안 본인 PC에 피해물을 저장하고 다른 플랫폼에 다시 올린다면 피해자가 경찰청과 디성센터, 방심위를 오가며 피해물을 지우고자 노력했던 삭제 여정이 무색해질 따름이다. 그렇게 다시 삭제 여정을 반복해야 하는 피해자는 언제 또다시 피해물을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평생을 시달릴 수밖에 없다.

디성센터나 방심위, 경찰의 수사 지원을 받아도 플랫폼이 지금과 같이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이상, 피해자들의 삭제 여정의 끝을 알 수 없는 긴 싸움이다.
피해자의 삭제 여정을 따라간 결과, 플랫폼의 불통으로 동일한 요청이 무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피해자의 삭제 여정을 따라간 결과, 플랫폼의 불통으로 동일한 요청이 무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게 다시 삭제 여정을 반복해야 하는 피해자는 언제 또다시 피해물을 마주해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평생을 시달릴 수밖에 없다.
※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디성센터와 방심위의 삭제지원 및 경찰의 수사 지원 외에도, 각 지역의 여성의전화나 성폭력상담소, 해바라기센터 등을 통해 심리상담 및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무료법률구조공단, 대한 변호사협회 법률구조재단을 통해 법률지원 또한 가능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증언:
피해물 대신 얼굴과 이름을 지울 수밖에 없던 이유

비동의 유포 및 재유포 피해자 P씨
“구글은 나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3년 전, 친구를 통해 내 영상이 온라인에서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엄마는 내게 성형을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권했다. 처음에는 ‘내가 왜 가해자들 때문에 내 얼굴을 바꾸고 삶을 단절시켜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피해와 단절되지 못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성형으로 내 얼굴을 바꾸고, 이름도 개명하는 일이었다.사이트에 올라온 내 사진을 삭제하려면, 먼저 사이트에 유포된 내 사진을 확인해야 했다. 사이트 내 유료 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사진을 확인하고자, 유료 포인트를 구매해 사진을 확인해야 했다. 내 피해물을 판매하는 가해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여태껏 쓴 결제한 포인트만 20만 원이 넘는다. 그렇게 내 피해 사진을 확인하고, 삭제를 요청해 왔다. 무려 3년 동안 말이다. 피해가 멈출 만도 한데 요즘도 나는 신고를 위해 경찰서를 들락날락한다.

비동의 유포 및 재유포 피해자 P씨

처음에는 ‘내가 왜 가해자들 때문에 내 얼굴을 바꾸고 삶을 단절시켜야 하나’ 생각했다. 그러나 피해와 단절되지 못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성형으로 내 얼굴을 바꾸고, 이름도 개명하는 일이었다.

사진 유포는 사이트에서 멈추지 않고 구글 드라이브로도 공유됐다. 몇백 장이 압축된 파일을 올리고 그 링크를 파는 것이다. 경찰에서는 내 신고를 받고 구글 측에 삭제 요청을 보냈다. 그러나 수사관이 전해준 말에 따르면, 나는 불법촬영을 당한 것도, 아동·청소년 피해자도 아니라 구글은 답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내 사진을 유포한 것을 동의한 적 없는데도 불구하고, 구글은 나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으며 삭제 요청을 거부했다.피해가 계속되니 결국 나는 내 몸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옷 입을 때나 로션 바를 때, 심지어 공부를 할 때도 글씨를 쓰는 내 손을 볼 수가 없었다. 내 신체를 보면 피해가 생각이 나고. ‘내가 여자가 아니었으면, 내가 몸이 없었더라면’ 등 나의 몸을 피해를 야기한 매개체로 인지하게 됐다. 어느덧 학업을 중단한 지 1년이 넘어간다. 이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과는 모두 연을 끊었다.

사진 유포는 사이트에서 멈추지 않고 구글 드라이브로도 공유됐다.
나는 내 사진을 유포한 것을 동의한 적 없는데도 불구하고, 구글은 나를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으며 삭제 요청을 거부했다.

사진 합성 및 유포 피해자 R씨의 언니 S씨
“플랫폼에 노출된 시간만큼 유포 불안 커져”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텀블러Tumblr라는 곳에 동생의 사진과 성적인 모욕 글이 함께 올라와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대체 왜 내 동생이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생의 피해 사진이 올라가 있는 가해 계정을 들어가 보니 수많은 일반인 피해자들의 사진과 성적인 글들이 1,000개 넘게 올라와 있었다. 하나하나 읽으며 더욱 화가 났고 이런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꼭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SNS 접속은 물론 스스로 피해물을 확인할 엄두를 못 내었기에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진 합성 및 유포 피해자 R씨의 언니 S씨

동생은 SNS 접속은 물론 스스로 피해물을 확인할 엄두를 못 내었기에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 연대를 결성해 국민 청원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SNS 계정을 해킹당하기도 했고, 나와 동생의 신상정보가 온라인에 노출되기도 했다. 휴대폰 번호도 여러 번 바꿨고, 노트북이나 휴대폰을 수시로 초기화했다. 전자기기의 카메라를 항상 가리고 사용했고 IP 우회 서버를 유료로 사용했다. 동생의 사진이 다른 어디에 퍼져있지 않을까 싶은 두려움에, 매일 밤 구글 등 검색엔진을 통해 동생의 이름, 신상정보를 검색했다. 발견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했다. 동생이 보면 어떡하나 싶은 불안한 마음과 함께, 사진을 올린 가해자들에 대한 증오가 솟구쳐올랐다. 사진과 정황을 채증해 경찰에 신고하는 동시에 삭제지원센터에도 삭제를 요청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증거가 삭제되면 수사에 차질이 생긴다는 경찰의 말에 혼란이 왔다. 결국 동생과 나는 사진 삭제와 수사 중 선택을 해야 했다. 신고해서 가해자를 잡고 싶은 마음과, 온라인상에서 하루라도 빨리 동생의 사진을 삭제하고 싶은 마음 중 무엇이 우선돼야 할지 혼란스러웠다.문제를 알게 된 이후 동생의 사진이 유포될 불안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체중이 10kg 가까이 빠졌다. 평소에 없던 불안 장애가 생겨서 손을 계속 물어뜯기 시작했고, 우울증이 생겨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다. 동생에 대한 오해나 이상한 시선, 뒷얘기가 도는 것도, 공공장소를 가거나 버스, 기차를 타는 것도 힘들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다.

증거가 삭제되면 수사에 차질이 생긴다는 경찰의 말에 혼란이 왔다. 결국 동생과 나는 사진 삭제와 수사 중 선택을 해야 했다. 신고해서 가해자를 잡고 싶은 마음과, 온라인상에서 하루라도 빨리 동생의 사진을 삭제하고 싶은 마음 중 무엇이 우선돼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눈감고 귀 닫은 플랫폼:
공식 기관 요청에도 묵묵부답

디성센터와 방심위는 피해 접수가 들어오면 여러 플랫폼 및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한다. 네이버, 카카오처럼 국내 플랫폼일 경우엔 ‘n번방 방지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인 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으로 제재가 가능하지만, 해외 플랫폼일 경우엔 공인된 기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최승호 방심위 디성심의지원단 긴급지원팀장은 “해외 플랫폼 사업자에게 자율 규제 요청을 보내도 바로 메일을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조급한 마음에 메일을 읽을 때까지 여러 번 삭제 요청 메일을 보내며 재촉했다가 소통 계정을 차단당한 적도 있다”고 증언했다.이렇게 소통 창구가 막히게 되면 삭제가 지연되고 그만큼 피해 규모는 확산된다. 해외 플랫폼도 디지털 성착취물 관련 정보는 규제 대상에 해당되어 방심위의 자율 규제 요청이 내려지긴 하지만 해외 사업자의 경우 요청에 이행하지 않아도 국내법으로 처벌할 근거가 없는 실정이다. 결국 해외 플랫폼에는 제재가 아닌 협력을 구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특히 텔레그램같이 본사가 어딘지 파악되지도 않는 경우엔 삭제 조치가 더욱더 어렵다. 겨우 연락처를 알아내 자율규제 요청을 한들, 플랫폼이 요청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해외 플랫폼일 경우엔 공인된 기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응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과 성인 비동의 피해물에 대한 플랫폼의 상이한 대응도 문제다. 경기도디지털성범죄피해자원스톱지원센터이하 경기디성센터의 삭제지원 담당자는 “피해자가 성인일 때와 아동 청소년일 때 플랫폼에서 삭제 요청을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속도가 다르다”며 성인 피해자의 경우 피해 사실을 증명하려면 플랫폼에 제출할 서류도 많아 삭제가 더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백미연 경기디성센터장은 “아동·청소년과 성인 피해자에 대한 삭제 정책이 다른 것도 문제”라며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3년, 5년 이상 지속되는 경우, 청소년이었던 피해자가 성인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로 입는 고통의 정도를 연령으로 가늠할 수 없음에도 많은 플랫폼이 성인 피해물의 경우 삭제 지원에 잘 협조하지 않고 있고, 재개정된 위장수사 역시 아동·청소년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적용 범위가 확장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많은 플랫폼이 성인 피해물의 경우 삭제 지원에 잘 협조하지 않고 있고, 재개정된 위장수사 역시 아동·청소년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적용 범위가 확장될 필요가 있다.

— 백미연 경기도디지털성범죄피해자원스톱지원센터장
포털 사용자의 편리성을 돕는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가해로 작용한다. 디지털 성범죄는 직접적인 피해 영상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의 URL이나 클라우드 링크가 삭제된다고 피해가 멈추지 않는다. 가해자들은 의도적으로 ‘ㅇㅇ대학교 ㅇㅇㅇ피해자 이름’, ‘n번방 ㅇㅇㅇ’ 등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연달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입력하는 것으로 2차 가해를 이어간다.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불법촬영 및 비동의 유포사건을 전담 수사하고 있는 수사관 A씨는 “구글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자동완성검색어’에 노출하고 있어 검색어 삭제를 요청했으나 수개월째 시정되지 않는다”며 “이를 본 피해자가 실시간으로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플랫폼은 ‘피해자 신상을 노출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피해자와 수사관의 요청에도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검색어 자동완성’ 기능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가해로 작용

삭제 지연은 ‘n차 유포’의 또 다른 시작:
플랫폼 책임 더 크게 물어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모든 기관은 플랫폼과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IT기업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피해 사실에 노출되거나 곱씹는 일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러나 플랫폼 기업이 방관하고 침묵하는 사이 거침없는 유포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어 국가기관과 민간기구, 피해 당사자의 삭제요청은 결국 무한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직접 피해 영상을 찾아봐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너무도 암담하다. 피해자 P씨는 피해 이후 ‘1초를 견디기 어렵다’라고 했다. 피해를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싶은 무력함이 일상 속의 1초를 견디는 것조차 버겁게 만든 것이다.플랫폼이 삭제 요청에 응하지 않아 피해물 삭제가 지연될수록 또 다른 가해자들의 ‘n차 유포’ 기회는 늘어난다. 수사기관 관계자는 “아무리 국내법 적용이 안 되는 글로벌 플랫폼 기업일지라도 우리나라에서 수익을 내는 이상,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최승호 방심위 긴급대응팀장은 “현재 성착취물이 올라온 해외 사이트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는 큰 의미가 없다. 그런 사이트들이 클라우드 서버로 이동 중인 만큼 디지털 성범죄는 더이상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앞으로 디지털 성범죄물을 삭제 지원하는 일에 글로벌 플랫폼이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함을 주장했다.

서승희 한사성 대표 역시 “디지털 성폭력 피해 지원을 하다가 막히는 건 결국 플랫폼의 대응”이라며 “플랫폼 사업자들의 협조가 없으면 피해물 삭제를 비롯한 형사 사건, 민사 사건 등 모든 사건 대응이 다 막혀 버린다”고 설명했다. 또한 “플랫폼이 삭제 및 수사 협조를 하지 않았을 경우 얼마나 큰 인권 침해가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 플랫폼 사업자들이 직시해야 한다”며 “사후적으로 피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사업자가 적극 협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플랫폼이 우선적으로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운영 정책을 만드는 등 예방적 접근을 설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대표는 “사업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인지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의 피해 회복에 있어 제도적 개선을 위한 중요한 구심체로서 기능하기 바란다”며 플랫폼 자체가 ‘장벽’이 아닌 도움을 줄 수 있는 주체가 될 것을 촉구했다.

피해 당사자와 국가기관, 민간기구는 입을 모아 플랫폼의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유포’라는 가해가 일어나는 현장이 플랫폼이라는 점, 피해물을 삭제할 수 있는 힘이 플랫폼 기업에 있다는 점을 볼 때, 디지털 성범죄 문제에서 글로벌 플랫폼 기업의 책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다.

피해생존자들은 정작 지워져야 할 디지털 성착취 피해물 대신 자신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우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와 추적단불꽃은, 지워져야 할 것은 성착취물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디지털 성폭력은 온라인에서 여성이 겪는 수많은 폭력 중 하나이며, 이러한 폭력들이 결국 온라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 여성이 안전하게 온라인 공간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어떤 새로운 상식과 논의가 필요할까. 오는 6월 말 공개할 <‘n번방’ 1년, 남은 질문들> 마지막화에서는 이에 대한 답변을 모색하며 총 4화의 콘텐츠를 마무리 짓는다.

금, 2021/06/1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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