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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9] 바이러스 격리 이후 세계는 개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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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9] 바이러스 격리 이후 세계는 개선될 수 있다

admin | 금, 2020/05/08- 22:15

엘리자베스 여왕은 최근 1939년에 유행했던 노래를 회상시키며 ‘우린 다시 만날 거예요, We will meet again”라고 말했다. 우리를 고무시키는 발언이며 정말 필요한 언급이었다. 그런데 팬데믹 이후 우리가 기대하는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위기를 함께 대처해온 경험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사실 코로나바이러스 이전의 세상은 온갖 종류의 문제로 가득 차 있었다. 불평등은 국가 간뿐만 아니라 개별국가 안에서도 만연했다. 가장 부유하다는 미국 내에서 수천 만 명이 의료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불필요한 질병에 시달렸다. 잘못된 긴축정책으로 유럽연합 내 취약한 시민들이 공적 지원과정에서 소외 당했다.

브라질과 볼리비아부터 폴란드와 헝가리에 이르기까지 반-민주적 정치가 성행하고 있다. 팬데믹 과정에서 공유한 경험들이 상기에 언급한 문제들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여왕이 위에 인용한 노래가 나온 지 오래지 않아, 유엔과 통화기금 그리고 세계은행 등이 1944-5년 사이에 탄생하면서 ‘다시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세계대전을 경험한 후 나라마다 발전을 이루는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몇 년간 식량부족을 겪었던 영국의 경우, 심각한 영양실조라는 사태에 직면했다. 필요한 식량의 절대적 부족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여, 영국은 합리적인 사회적 지원책을 통하여 부족하나마 식량을 골고루 나누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전통적으로 영양실조에 있던 계층은 어느 때보다 상태가 개선되었다. 비슷한 일이 의료분야에서 전개되어 함께 나누는 건강관리가 시작되었다.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전쟁을 겪은 1940년대를 지나면서 영국과 웨일즈 지역의 신생아 평균수명이, 이전 십 년간에 1.2년이 늘어난 반면에 6.5년이 늘어났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1.5년에서 7년이 연장되었다.

복지국가라고 알려진 새로운 시스템이 출현하면서 평등이 추구되고 빈민계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긍정적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전쟁 중에도 이후에도 보다 개선된 평등을 주장해온 Aneurin Bevan은 1948년 맨체스터에 있는 the Park Hospital에서 처음으로 국가의료서비스(NHS)를 시작하였다.

현재의 위기를 경험하면서 상기에 언급한 것과 같은 긍정적인 무엇이 전개될 수 없을까?

과거에서의 교훈은 위기를 어떻게 대처했으며, 무엇을 핵심적으로 다루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지점에서 정치가와 일반 시민간의 관계를 포함하여 정치가 매우 중요하다. 영국이라는 공화국이 전쟁과정에 식량부족과 의료관리를 잘 해결하고 개선시킨 반면에, 같은 시기인 1943년 영국 지배하에 있던 인도의 벵갈지역에 지독한 기근이 발생하여 3백만 명이 아사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의 통치자였던 Raj 는 사태를 방지하는 데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현재 진행중인 팬데믹에 대응하는 정치과정에 평등이라는 주제는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미국 내 사망자를 보면 백인보다 흑인이 비교할 수 없는 비율로 죽어가고 있다. 시카고의 예를 보자면 주민 구성의 1/3도 안되는 흑인들이 사망자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빈민계층에 대한 불평등한 상황은 브라질과 헝가리 그리고 인도 등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실정이다.

인도는 특히 심각하여 불평등한 상황이 광범하게 존재한다. 인도가 독립하여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한 이후에는 기근사태가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억압 받는자들의 주장을 들어주고 위험에 처한 이들을 보호하는,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인, 공공적 토론을 다양한 직간접적인 수단을 통하여 여론의 자유를 억제하고 정부기관이 여러 제약을 강화하고 있다.

부유층에는 현대적 의료가 진행되는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의료조치도 이루어 지지 않는 대비(contrast)와 현대화된 카스트 제도의 불평등에 가져오는 치명적인 비대칭 상황에 대하여, 이번 계기를 구실로 삼아 팬데믹의 대처를 평등하게 전개할 수 있는 모범의 기회로 삼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등에 관한 관심은 보이지 않고 있다. 반대로 기차와 버스 등 공공교통수단을 포함하여 갑작스런 봉쇄조치를 극적으로 취하면서, 고향에서 수백 마일 떨어져 일하고 있는 타지역 이주 노동자들, 가난 중에 가장 가난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에는 전혀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 않다.

물론 ‘거리두기’가 바이러스의 전염을 억제한다는 것은 확실하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이러나 이는 봉쇄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 상응한 조치인 수입, 식량, 의료제공과 접근성 등이 함께 결합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많은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인도에는 NHS같은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

거대한 불평등을 방치한 채, 팬데믹에 대처한다면 얻을 교훈은 없다. 현재대로라면, 슬프게도 우리가 다시 만나는 장소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불평등한 세상보다 나아질 것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 우리는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의 위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평등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은 많은 나라에서 고통을 줄일 뿐만 아니라, 미래에 더욱 평등해진 세상을 설계하는 일에 많은 아이디어를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이제 반도 진행되지 않은 듯한 위기의 과정 속에 감히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꿈꿀 수는 없을까?

 

아마티야 센(Amartya Sen)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으며 유엔의 인간개발지수(HDI)를 주도하였고 현재 하버드의 Nobel Thomas W Lamont 과정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참고자료

<보충자료. 한겨레 신문사와 몬드라곤 협동조합의 인터뷰기사> 협동조합 가치, 위기 때 더 빛나 “코로나 해법도 연대·협력에서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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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조야에서 智將으로 평가받는 Vincent Brooks가 한국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한 한반도프로세스의 구상에는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해도, 지난 70여 년간 한반도 분단과 냉전구도의 고착 및 지속 그리고 북한핵무장 등 모든 현안의 일차적 책임이 바로 미국, 미패권에 있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더구나 엄청난 인류적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적 협력체제가 절실한 현시점에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치 산업 평화 그리고 안전에 있어 미국과 대등한 아니 오히려 보다 중요한 국제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국을 봉쇄하고 발전을 저지하려고 거짓의 동맹을 앞세우는 몽유병 환자의 글인 듯싶다. 각설하고 한반도프로세스의 열쇠이자 출발점은 미국이 먼저 종전선언을 주도하고 북한에 가하고 있는 모든 제재를 순차적으로 해지하는 것이다. 분석을 겸한 국내 전문가의 의견(오마이뉴스 7월 31일자 게재내용)을 말미에 추가로 제공한다.


한반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은 북한의 근간이 되는 경제·군사정책의 결정적 전환을 단행했습니다. 조선인민군대를 우선시하던 아버지의 선군 사상에서 탈피하여 인민대중제일”People and Masses First”의 노선으로 대치하였습니다. 이러한 북한통치체제의 재편은 조선인민군대를 뒤로 물리고 노동당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김정일의 지속적인 권력강화를 추구하며 지원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침체를 겪고 있는 북한경제를 소생시키기 위한 노력의 발판을 마련하고 하는 것입니다.

최근 북한인민군의 자제 역시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 북한인민군대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6을 선보였으나 미국에 대한 공격적인 언사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습니다. 이는 2018년 9월에 있었던 지난 퍼레이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당시에는 앞선 퍼레이드와 마찬가지로 여러 탱크들 앞에 “미국제국주의 침략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맹렬한 적을 파괴하라!”라는 구호를 등장시켰습니다.

한미합동 군사연습과 순항 및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김정은의 비판도 한반도 긴장고조보다는 자제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올 여름에 추가적인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이러한 북한의 자제가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김위원장이 자신의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북한경제는 COVID-19로 인한 봉쇄, 각종의 국제제재 및 끊임없는 자연재해 등 복합적인 영향으로 황폐화되었습니다. 작년에만 북한은 8.5% 정도의 심각한 경제위축을 겪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위원장은 식량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표현했으며, 유엔식량농업기구는 북한의 기초식량수요가 공급분을 97만t 초과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제안보는 북한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당간부들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관료주의적 나태함과 부패를 퇴치하는 한편, 대중에게는 “심각한 어려움”과 “축적되는 고난”에 직면하여 김위원장에게 충성을 나타내도록 독려하기 위해, 인민대중제일주의라는 노선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김위원장은 조국의 미래와 경제안보를 담보할 수 있는 미국과 대화의 기회를 가로막지 않기 위해 군사행동의 전선에서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문재인 한국대통령에게 평양의 어려움은 기회로 다가옵니다. 두 지도자들은 비핵화의 진전, 북한의 중국의존도 감소, 남한의 긴밀한 지원 둥으로 북한이 궁극적으로 미국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통합되는 대가로 북한의 근본적인 안보문제, 특히 어려움에 처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동시에 한미 양국은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한미동맹강화의 목표는 북한이 한미동맹의 맹점을 이용하려는 기회를 배제하고 강력한 우위의 입장에서 북한에게 접근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월한 합동군사 및 외교력을 달성하는 동맹의 모습은 김위원장의 위협을 억제하며 북한과 항구적인 평화의 길을 여는 새로운 접근을 허용할 것입니다.

 

동맹은 더욱 굳건하게

첫 번째 단계로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이 주요 훈련시설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군사준비태세 유지의 핵심인 기동훈련 및 실탄을 사용할 수 있는 훈련구역의 접근이 제한되어, 미국은 아파치공격-헬리콥터 승무원과 같은 특정부대의 훈련을 위하여 일본과 알래스카에 재배치할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내의 정치적 압력이 훈련에 대한 제한의 주요 원인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이러한 포플리즘의 정책을 채택했지만, 최근에는 비정치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접근했습니다. 이러한 비정치적인 한국의 선택은 내년 3월의 대선을 앞두고 있는 선거운동 시즌에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바이든과 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의 강화를 위한 훌륭한 출발이었습니다. 한국에 COVID-19 백신을 제공하고 공동백신연구에 참여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한국과 관계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팬데믹 초기단계에 개인보호장비를 미국에 보내기로 결정한 한국정부의 지원에 보답하면서 상호적인 호의와 신뢰를 구축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또한 특히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초점을 맞춘 광범위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상호적으로 행동을 조정하겠다는 의도를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광범위한 협력은 동맹을 위한 새로운 전략적 지평을 열어주고 미국이 안보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동맹국(한국)의 관점을 고려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면서 한국지도부와 국민에게 안심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일관성 없는 한미동맹의 맹점을 이용하는 기회를 봉쇄해야 합니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강화에는 두 가지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첫째, 북한과 중국은 미국과 남한 사이에 쐐기를 박는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군사적 위협에서 외교적 약속에 이르기까지 김 위원장은 워싱턴과 서울에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는데 능숙합니다. 한편 중국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종 경제적 강압을 사용합니다. 2016년에 미국과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배치한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은 다양한 한국의 산업과 기업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영향을 받은 비즈니스 영역은 THAAD 배치와 직접 관련된 대기업에서 관광 및 K-pop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한미동맹은 굳건했고 중국은 궁극적으로 이를 중단했지만, 미국과 한국이 가까워질수록 중국으로부터 더욱 많은 괴롭힘을 예상해야 합니다.

한미 정상은 향후 중국의 경제적 강압행위에 대한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이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수단화와 정치적 전쟁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포함하도록 군사침략에 대응하는 전통적인 영역을 넘어 한미동맹 간에 공동방어태세를 확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한국이 대선이라는 정치시즌에 돌입하면 이와 관련하여 더욱 교활하고 음험한 개입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둘째, 한미동맹은 한국 대통령 선거기간 및 이후에도 연속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트럼프-문 시대 동맹약화의 주요 원인은 포플리즘적 민족주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국방비의 정치화이었습니다. 한국 정당들은 서로에게 매우 대결적인 반대입장을 지니고 있으며, 이미 포플리즘적 후보들이 반미주의와 반동맹의 주제를 정치화하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통합적인 대공 및 미사일 방어시스템의 개발, 공통지휘 및 통제시스템의 현대화, 보장된 미국 핵우산의 불확실성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전술핵무기 획득 등과 같은 매우 예민한 동맹의 주제들이 정치적 쟁점이 되고 포플리즘의 등장으로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

한미동맹 지도자들과 군사전문가들은 2021년 한해 동안 이룩한 가치있는 진전을 잃지 않도록 중요한 문제에 대해 초당적 지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광역의 인도-태평양지역에 존재하는 적국들에게 동맹의 지위에 대한 양보를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적국에게는 접근전략을

이러한 확고한 기반 위에서 미국과 한국은 점진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북한의 행동을 바꾸려는 동맹국들의 이전시도에는 군사적 압력, 국제적 경제제재, 비핵화를 위한 북경당국의 협력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은 북한이 지닌 중국과 경제적 (의존)관계 및 한미동맹이 초래한 군사적 위험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보다 나은 접근방식은 김위원장이 가장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방식, 즉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물론 한미정상은 상호신뢰가 강고히 구축되었을 때 더욱 깊은 협력의 단계로 나아가는 “전략적 신중함”의 정책을 채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만이 북한이 (한미동맹이) 제공하는 선의를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하는 것을 방지할 것입니다. 전략적 신중함은 또한 북한이 도중에 이탈할 경우 이전의 모든 과정을 취소하고자 하는 충동으로부터 한미동맹관계를 보호할 것입니다.

포용의 첫 번째 단계는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를 알리기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건설적인 대화에 참여하려는 북한의 의지가 입증되면 인도적 및 의료 지원의 형태로 즉각적인 경제적 구호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제적 지원은 미사일 및 핵무기 실험을 금지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연계된 유엔주도의 인도주의적 역할의 일부로 제공될 수 있습니다.

군사전선에서 초기목표는 긴장을 완화하고 분쟁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공동약속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잠재적인 인화점(불안)이 한반도에서 급속하게 갈등을 확대하고 실제의 전쟁을 재개할 위험을 계속 제기합니다. 포괄적인 군사협정(CMA)로 2018년과 2019년 사이에 군사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지만 이후의 협력은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기의 협정을 만든 軍對軍의 채널은 6.25전쟁의 종전선언과 긴장의 영구적인 완화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통로 중 하나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진전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과의 종전선언은 한반도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잠재적으로 김위원장이 미국과 한국에 대한 북한의 정치적 수사(rhetoric)를 부드럽게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것은 비핵화를 향한 길을 열 수 있는 추가적인 신뢰구축의 조치를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북한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다면적 안보보장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다만 종전선언을 현재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으로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종전선언문은 현재의 정전체제의 변경을 의미하지 않으며 향후 당사자 간에 협상해야 하는 평화조약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해서도 안됩니다.

미국과 한국의 지도자들은 김정은에게 그가 가장 원하는 방향, 즉 그의 경제적, 정치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중국에 대한 입장을 재조정하는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금융투자기관들이 북한에 10년 무이자대출을 제공하는 기반시설 개발기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남북간의 자유무역 협정에 서명하는 것은 기반시설 개발기금을 보완할 수 있고, 한반도의 현안에 대한 한반도(남북 공히)의 솔루션을 개발하는 방법으로 틀을 잡아갈 수 있으며, 분단된 민족의 양측 모두가 함께 접근하는 밑그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제패키지는 중국에 대한 북한의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한은 새로운 투자유입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북한의 역량강화와 사회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경제적 이익을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증된 진전에 대응하여 교환해야 합니다.

한미동맹과 북한은 군사관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은 한반도 주변바다에서 전통적인 해양분쟁을 방지하고 중국인들의 불법조업을 근절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또한 비무장지대(DMZ)에서 확실한 보안과 안정성을 제공해야 하며, 남한과 북한 간에 갈등의 고조됨이 없이 조정이 가능할 때 유엔군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입니다.

다음단계는 당사자 간의 평화조약이 될 것입니다. 비핵화가 검증되고 남한과 북한의 군대가 현실적으로 서로를 침공할 수 없을 때 정전을 영구적으로 대체하는 협정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조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진행의 과정에서 적절한 조치와 양보를 하도록 한미동맹이 전략적 신중함을 계속 채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까지 미군과 한국군은 확고한 방위태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지속가능한 평화제안

마지막 단계에서 한미는 평화협정을 넘어 북한을 (한미)동맹주도의 질서로 완전히 통합해야 할 것입니다. 남한은 북한의 무역 및 직접투자의 주요 제공자로서 앞장서게 될 것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두 번째 주요 교역파트너이자 국제자금조달의 주요 조력자가 될 것입니다. 경제플랜으로 평양의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유도하고 남북의 자유무역 협정을 인도-태평양 무역 파트너십으로 확장하여 북한이 아시아전역의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주선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는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경제질서를 공고히 하여 수천만 명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영구적인 평화계획은 평양이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고 핵무기를 파괴했음을 확인함으로써 안보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재구성된 북한과의 관계는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새로운 힘의 균형을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방해할 수 있는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경제에 대한 지배적인 독점권을 쉽게 양도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의 외교계획을 방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더욱이 국제사회의 긴장이 완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장래에 북한이 붕괴될 것 같은 쇠약함에서 북한을 “구하는” 위험을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북한을 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당 지배구조와 100만 명 이상의 조선인민군, 개탄스러운 국가의 인권유린 등을 상당기간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 북한의 정상화를 돕는 데 따르는 위험 때문에 이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국가들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동맹지도자들은 이러한 장애물과 기타의 많은 어려움들과 씨름하면서도, 다시는 전쟁의 도가니를 거치지 않고, 북한의 용인할 수 없는 현재 상태를 보다 나은 미래로 변화시키는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출처 : Foreign Affairs(포린어페어) on 2021-07-29.

Vincent Brooks

주한미군/한미연합사령관과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4성 장군출신으로 문무를 겸비한 智將으로 인정받고 있다

Ho Young Leem(임호영)

Brooks의 한미연합사령관 시절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한국군의 4성 장군출신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은 북미동맹을 제안했나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공동으로 기고한 ‘북한과의 대타협'(A Grand Bargain with North Korea)의 내용이 주목받고 있다.
핵심 내용은 북미 쌍방의 단계적 조치에 호응하여 궁극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동북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봉쇄하는 친미동맹, 즉 아시아식 나토에 가입하면 미국이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이러한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미국의 전략적 난처함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외교전략은 적의 동맹들을 속칭 ‘이간질’하여 해체(decoupling)하고 자신의 동맹을 확대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전략 아래 중소 분쟁 당시 중국과 수교했고, 중국-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과 수교했으며, 중국-인도 분쟁 이후 인도와 동맹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미국의 후원에 연명하던 엘친의 러시아가 푸틴의 지도력에 힘입어 미국의 적대 국가로 다시 부상했다. 중국 역시 시진핑 시절에 와서 과거 미국의 글로벌 지도력에 순응하던 태도를 버리고 공개적으로 미국과 경쟁하게 되었다.

여기에 북이 핵무장을 완성하고 미국의 본토를 겨냥하는 등 중러 수준의 안보적 위협으로 성장하였다. 공장 산업의 지지를 받는 트럼프가 반중 노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미국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북중러의 동맹이 강화되었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중러를 현실적인 적대국가로 설정함으로써 북한을 중러 동맹에서 이탈시킬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미국은 3개의 핵무장 국가를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 미국으로선 북중러의 동맹을 해체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가장 약한 고리인 북에 유화적인 손짓을 함으로써 반미 동맹에서 이탈시킬 필요가 있다.

 

남북이 중국과 대립하는 것은 불가능

브룩스 전 사령관의 주장은 더 나아가 북에 핵무기 포기와 친미동맹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중러에 더욱 공격적이다. 브룩스 전 사령관이 주장하는 장기적인 목표는 점진적으로 북한을 비핵·반중의 친미동맹에 포섭하는 것이다.

첫 단계에서 북이 먼저 가시적인 양보 혹은 양보 의사를 국제사회에 공표하면 미국이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도적 지원은 국제사회에서 적에게도 무조건적으로 하는 것이다. 즉, 미국이 먼저 인도적 지원을 하고 북이 이에 호응하는 것이 순리라는 점에서 수동적인 태도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북이 비핵화에 착수하면 한미가 북에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고 평화조약 전 단계인 종전 선언을 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킨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중국과의 동맹에서 이탈하는 조건으로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킨다.
문제는 이 단계에서 미국이 북에 대한 군사적 압박은 완화시키지만 정전협정과 유엔사 체제를 유지하고 한미군사훈련도 적정한 규모에서 정상적으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 북이 비핵화를 완료하고 한미와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의 반중 동맹에 참여하면 미국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북미상호불가침을 포함하는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또한 한미일과 인도, 호주 등이 참여하는 친미경제공동체 즉, 자유무역지대에 북이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점은 남북이 경제적 관점,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국의 반중 동맹에 가담하여 중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봉쇄의 주한미군을 더욱 강화하면 남북통일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브룩스 전 사령관이 주장하는 단기적 목표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대선주자와 한국의 유권자들에게 “반미는 한국의 국익에 반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브룩스에 따르면 반미는 민족주의적이며 포퓰리스트적 선동에 불과하다. 즉 남북이 번영하려면 중국이 아니라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브룩스의 당면한 요구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주한미군의 남한 내의 활동을 전면적으로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즉, 남한 정부와 국민들은 사드 기지의 확장과 유지를 허용하고, 해외에서 포격과 사격 훈련을 하는 미군에 남한 내의 훈련장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각종 미군기지에 대한 한국민의 민원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셈이다.

 

전향적이지만 반중 요구는 지나쳐

브룩스 전 사령관의 제안이 긍정적인 것은 북미 직접대화, 이른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인 쌍방 상호조치의 교환, 관계정상화와 불가침 등 평화조약 허용 등이다.

하지만 북한에 핵무기 포기 이외에 반중 친미 동맹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트럼프를 포함하여 과거의 그 어느 태도보다 미국국익 중심이고 반중국적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정당성에 대해 ‘북한의 위협에서 남한을 지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이 핵무장을 거의 완성함으로써 미국의 본토를 핵 공격에서 지키기 위해 북한과 더 이상 적대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주한미군의 정당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의 주장은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때문이라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한국 국민 중 미국을 위해 중국을 적대시해야 하고, 한국 땅에 미군을 주둔시켜 미중 간에 핵전쟁이 나도 좋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국민들은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반중노선은 비현실적이라고 여긴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성격을 반중동맹으로 인정하는 순간 한국 내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브룩스 전 사령관의 주장은 미국의 대승적인 관용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외교의 실패를 승리적 어구로 감추는 것에 불과하다.

 

출처: 오마이뉴스 2021-07-31.

브룩스 기고문 : ‘북한과의 대타협’ – 한국 대선 앞두고 반미감정 완화 목적도

김장민(sentir100)

<미국은 살아남을까>, <코리아를 뒤흔든 100년의 국제정세> 저자

월, 2021/08/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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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사위 문제’가 계속 쟁점화하고 있다. 법사위를 야당에 양보하기로 여야 간에 합의를 한 뒤에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이번 기회에 아예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자는 법률안을 발의하였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국회 공무원에 이관하겠다?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는 것은 세계 각국 어떤 의회에도 존재하지 않는 비정상적 왜곡 시스템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도입한 이 기형적 제도는 당연히 폐지해야 하며, 그것이 곧 우리 국회가 정상화의 길을 복원해나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민형배 의원의 법률 개정안은 법사위가 담당했던 법률안·규칙안 등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국회 법제실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박주민 의원의 개정안은 국회 사무처에 법제 전문기구를 둬 각 상임위 소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이를 심사하도록 했다.

바로 이 지점에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는 올바른 길이지만, 국회 공무원에게 이관하는 방식은 옳지 못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을 국회 공무원에게 넘기게 되면 그 권한을 장악한 국회 관료들의 힘만 키우게 되고 이로부터 온갖 왜곡과 폐단이 발생하게 된다.

다른 나라 의회 상임위에서는 각 상임위에서 소관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를 의원들이 수행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국회는 하나씩 하나씩 세계 의회의 ‘기본’과 ‘표준’을 적용해 나가야 한다.

 

공무원에 일을 넘기면, ‘주인은 공무원이고 의원은 그 허락을 받는 하부로 전락한다

한 가지 사례를 더 살펴보겠다. 공공기관에 정치권 주변의 ‘낙하산’들을 대규모로 내려보내는 일은 사회적인 비난을 많이 받는 사안이다. 이번 정부에서도 ‘낙하산’을 더 많이 내려보내기 위해 의원입법을 통해 공공기관 자리를 인위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얼마 전에 발의되었다. 그런데 이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고 수반 기관과 정부 지원액이 총 수입액의 2분의 1을 초과할 것으로 추계되는 기관 ·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합계 30% 이상의 자본금을 출자하는 기관을 설치하는 법률안을 심사할 경우, 그 타당성에 대해 재정 당국의 의견을 반드시 듣고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에 포함시키며, 이를 제안하는 국회 상임위원회는 미리 기획재정위원회와 ‘협의’하도록 하는 절차를 추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치의 무능, 국회의 무능이 관료주의를 심화시킨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재부 관료들과 협의하고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의 검토를 받는 것은 결국 대부분 관료집단의 힘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국회의원들은 매사가 이런 식이다. 항상 공무원들에게 심판관의 권위와 권한을 넘겨준다. 자신들의 무능을 스스로 인지해서 그리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조그만 어렵게 보이거나 귀찮은 일은 어떻게든 아랫사람시켜서 그저 편하게 군림하겠다는 심산인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국회의원들이 관료집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하부 구조로의 전락이다.

본디 관료집단을 통제해야 할 주체는 다름 아닌 정치와 국회이다. 그런데 정작 정치와 국회는 소명의식은 없는 채 안일과 군림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관료들의 특권화를 조장하고 있다. 이렇듯 정치의 무능, 국회의 무능이 관료주의를 더욱 악화시킨다.

 

공무원에 떠맡기지 말고 스스로 일하라. 의원이란 직접 입법업무를 하라고 뽑아준 것

필자는 우리 국회의 가장 근본적인 병폐가 국회의원 본인들이 스스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관행과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국회의원 본인들이 수행해야 할 ‘법률안 검토보고’ 작업을 국회공무원인 전문위원이 대신 검토보고하는 지금의 시스템이 그 대표적 사례다.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도 국회 공무원들이 법률 낭독을 비롯해 대부분의 진행을 맡는다. 왜 그러냐 물으면, 의원들은 “(지위가 높으신) 내가 (하찮게) 그것을 읽으라고?”라는 식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국회의원들이란 그런 일을 하라고 국민들이 선출한 것이란 점이다. 세계 모든 의회에서 그러한 업무를 의원 본인들이 직접 수행한다.

국회의원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입법권한을 스스로 수행하지 않고 관료들에게 떠넘기면, 바로 그 관료들이 입법의 주인으로 되는 것이다. 그 구조에서 국회의원들은 한낱 들러리로 전락한다. 일을 하지 않으니 ‘전문성’이 쌓일 리도 없다. 우리 국회는 그렇게 정작 자신에 부여된 입법업무로부터는 주변화된 채 매일 같이 SNS에서 말재간이나 자랑하고 마치 자신들이 연예인인 양 각종 이벤트에 열중하면서 습관적 무조건 반대의 정쟁만 일삼는다. 이것이 우리 국회 문제의 근본 문제이다.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어떤 국회개혁을 외쳐본들,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이요 “속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원 스스로 일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국회개혁도 반쪽짜리,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이제 다른 나라의 모든 의회처럼, 우리 국회의원들도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을 공무원에게 떠맡기지 말고 제발 스스로 일하라. 이것이 우리 국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핵심이요 기본이다.

 

소준섭

화, 2021/08/1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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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글은 어제 게재한 주한미군/한미연합 사령관출신 Brooks와 한국군 대장출신인 임호영이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칼럼이 나온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知韓派를 자처하는 미국의 지식인들과 싱크탱크의 한계와 결점을 그대로 들어내고 있다. 마치 자신들의 조국인 패권국가이자 전쟁범죄집단인 미국은 마치 무결점의 나라인양 묘사하면서, 70년간 저강도 전쟁체제와 대북제재로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의 취약점을 마치 김정은 단독의 책임으로 규정하면서 그의 약점만을 물어뜯고자 하는 야수적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일한 해답은 1954년 초 미국이 일방적으로 중단한 종전과 평화를 위한 협상을 조속히 재개하는 것이다.


지난 1월에 열린 북한의 제8차 당대회에서 참석자들 사이에서 활기를 돌고 있다고 국영매체가 보도하며 김정은 지도력의 미덕을 찬양하는 가운데, 외국의 뉴스들은 특이한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경제의 거의 모든 부문에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김위원장이 매우 중요한 당대회에서 이런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심각한 북한 경제상황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위원장이 4월 8일 회담에서 ‘고난의 행군’이라는 문구를 부활시킨 것도 북한의 어려움을 시사한 것입니다. 식량안보가 북한에 점점 심각한 현안이 되고 있으며, 지난 20년 이래 최악의 경제성과를 지켜보면서 김위원장은 시장자유화에 대한 입장을 점차 철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2020년의 극심한 여름홍수의 피해와 코로나-19로 야기된 재앙을 포함하여 지도부의 통제력을 넘어선 상황과 씨름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홍수로 인하여 불안정한 식량수급이 더욱 악화되었고 코로나 상황에 따른 봉쇄에 따라 북쪽국경을 가로지르는 접경무역량이 평소와 대비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축소되었습니다. 배경과는 무관하게, 김위원장은 이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두 가지 문제 즉 외교적 문제와 경제적 문제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외교적 실패

김위원장은 2018년과 2019년의 북미정상회담 계획에 스스로가 중심의 역할을 자처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높은 수준의 대화를 나누는 회담을 진행하였고, 또한 남한의 파트너(문대통령)와도 정상회담을 진행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클린턴 행정부와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 1994년 기본합의에서 미국의 협력을 얻었고 김대중 시대의 햇볕정책(1998~2003)도 진행되었습니다만, 상기 수준의 지평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역대의 미국 대통령과는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는 한편에, 문재인 대통령 역시 남북관계의 개선을 평양의 기조연설 주제로 삼았습니다.

처음에는 두 가지 모두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였습니다. 2018년 6월 트럼프와 김 위원장의 첫 번째 정상회담은 평화, 비핵화 및 기타 협력의 약속에 대한 열망이 담긴 문서에 공동으로 서명하는 것으로 마감했습니다. 남한과 관계에서는 김위원장 자신이 남한영토를 넘은 최초의 북한 지도자가 되면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두 방향의 대화는 순탄하게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상황은 2019년 2월 2차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이 갑작스럽게 결렬되면서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쌍방이 서로 상대방의 요구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이유이었습니다. 트럼프는 회담이 결렬된 배경으로 북한이 자신들에게 가해진 제재 전체를 해체하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반면에, 북한 측은 단지 부분적 해지를 요구했다고 해명했습니다.

남북대화는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사업 등 남북경협을 합작투자의 형태로 복원하는 등 여러 가지 타협점에 합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울뿐인 명목상 합의는 가시적 성과를 가져 오지 못했고, 합작형태의 경제사업은 재개되지 못했으며, 2020년에 있었던 북한측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파괴는 장면 그대로 상징적인 남북관계개선의 기둥을 무너뜨렸습니다.

 

잘못 진행된 5년의 시간

외교분야에서 김 위원장의 헛걸음은 5개년 경제계획의 실패를 더욱 악화시켰는데, 그런 배경에는 김정은 자신이 주도한 경제계획에 그의 선대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진행과정에서 지도자의 역할’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죽어가는 경제는 북한에 새로운 상황이 아니지만 일부에서는 김정은의 등장으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집권초기에 핵무기 프로그램을 물려받은 김위원장은 핵무기개발의 성공으로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안전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병진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농업집체화의 완화, 중공업에서 소비중시의 경공업으로 전환, 특별경제구역의 정력적 추진 등 개발계획을 자신이 직접 추진하였습니다. 중앙당국은 지방정부가 건설사업에 비교적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민간기업들과 협력을 장려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최근 생산공장에게 각자의 조업에 필요한 원료를 스스로 확보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2020년 인민국회의 보고서에서 국가예산을 확보하는데 결함(문제)이 발생했다고 확인했습니다. 2020년의 완만한 성장목표를 감안할 때 북한정부는 국가재정을 확보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런 모든 어려움이 제8차 당대회로 직결됩니다. 아버지와 정반대로 정책실패의 책임이 김정은 자신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의 당대회에서 김위원장이 자신의 실패를 인정한 것은 북한상황에 대하여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김정은의 계산

트럼프와 정상회담 결렬에 대해서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존 볼턴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나 폼페이오 국무장관보다 유연할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김 위원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자신 스스로가 고위급 회담을 모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양국 정상들이 각별한 개인적인 관계를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이를 유리하게 활용할 수 없었습니다.

트럼프가 지닌 딜-메이킹(협상의 달인)본능에 김위원장이 너무 많은 것을 의존한 것이 트럼프가 재선 과정에서 패배하자 매우 잘못된 것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반면에 바이든 행정부에 대한 김위원장의 전략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북한은 바이든 행정부와 외교적 접촉을 거부하고 3월에는 관례적인 미사일시험을 통해 새로운 미국팀을 환영하는? 시험하였습니다. 같은 달, 바이든 신임대통령은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 방식의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김과 같이 앉을 의사가 없다”고 확인했습니다. 남측과의 회담도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경제계획의 설계자라는 입장에 서있는 김위원장은 자신의 실책에 대한 변명이 궁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엘리트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는 불만이 김위원장의 행동을 바꿀 만큼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지만,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속되는 제재는 북한경제를 계속 압박할 것입니다.

이러한 김정은의 실패 속에서 미국은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들은 과거의 관행에서 탈피하면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인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신행정부는 북한의 탄도적 모험주의를 축소하고 군비통제협상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핵보유 사실을 인정하는 협상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경제상황과 김위원장의 지도력을 감안할 때, 바이든은 평양당국이 평소에는 받아들이지 않을 합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출처 : 태평양포럼(Pacific Forum/PacNet) on 2121-07-22.

Daniel Mitchum ([email protected])

Pacific Forum의 전임 Kelly Fellow으로 지난 12년 간 한국에 거주했으며,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에서 글로벌 정치 및 동아시아학 학사학위를, 서울에 있는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협력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화, 2021/08/1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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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잠정협상제안( Interim Deal Outline – IDO)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몇 년간 북한측에 의해 제시되었던 도전적인 기회를 직접 경험한 현장전문가들의 현실적이며 실천가능한 의견들을 수렴한 것으로, 한반도 중심과 동북아 지역의 발전을 위한 외교적 가능성으로 잠정적이며 점진적 협상의 내용을 제시한 것이다.

잠정협상의 제안은, 이제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지 8개월 그리고 문재인 정권의 남은 임기 역시 8개월인 현시점에서, 미국과 남한 당국의 정책수립에 직접적이며 중요한 의제를 담아내야 한다. 한편, 남한의 차기 정부는 역량과 성향의 측면에서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커다란 변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IDO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들은 지난 4년 동안 급변해온 미국과 북한 그리고 남한의 성명서와 회담 그리고 실행조치의 내용에 익숙한 분석가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진 것들이다. 명민한 한미 전문가들이 싱가포르 정상회담과 결렬로 종결된 하노이 회담을 포함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하여 미래의 협상에 대하여 중요한 의견을 제시하였으며, 이러한 제안들이 아래의 IDO에 담겨 있다.

모두는 아니지만 아래에 거명된 미국측 주요 인사들의 조언을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 Robert Gallucci, Joseph Yun, Joseph DeTrani, Frank Aum, Frank Januzzi, Glyn Ford, Robert Carlin, Robert Einhorn, Sigfried Hacker, and Vincent Brooks.

또한 IDO의 작성에 도움을 제공한 한국 측의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 위성락, 이종석, 문정인, 이재명, 이재강, 정세현, 정동영.

IDO에 담긴 의견들의 기본골격은 최소한의 신뢰를 재건하기 위하여 몇 가지의 합의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상응한 조치를 빠르게 시행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북한측은 영변 핵단지의 전면해체 또는 용도변경, 플루토늄과 우라늄에 기반한 모든 핵물질 생산의 중단, 대륙간탄도탄 ICBM의 실험중지, 핵관련 시설의 조사와 검수의 실행을 위한 IAEA 사찰단의 북한방문 등을 포함하여, 미국측이 핵무기와 ICBM 프로그램의 제약을 설정하는 것을 수용하고 궁극적으로 비핵화로 나가는 경로를 제시해야 한다.

미국 측은 2016년 말에 유엔의 제재로 북한에 가해진 5개 조항을 조속히 해지하고, 한미군사 훈련을 중단하며, 남북한의 물자교환 및 통상에 대한 미국과 유엔의 제제를 완화하는 등 기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북한의 경제활동이 활성화되는 것을 지원하며 북한에 대한 제제를 완화시키라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복된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협력을 보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다.

남한은 상기 합의의 내용이 실천되도록 역할을 다해야 한다. 모든 협상의 진행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 이를 강화하는 내용들을 주도하고 관리하는 남한의 광범한 역량을 확실하게 널리 인지시켜야 한다.  서울당국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핵심적인 협력과 지원 및 투자 절차 등에 관여해야 하며, 쌍방의 정부조직들과 관련기구들이 실행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과 쌍무적 협력을 주도해야 한다. 신규투자의 절차규정으로 이후 경제활동이 투명하고 부패가 개입하지 못하도록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남북한 간의 모든 새로운 협력은, 장기적인 인프라 사업을 포함하여, 지역 내의 미국의 이익을 보다 안정적이며 생산적으로 보장하면서 이를 더욱 강화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상기의 제안내용을 아래에 당사국 별로 다시 정리하여 본다.

# 북한의 몫

유엔의 IAEA 사찰 또는 국제기구의 감독하에 모든 영변 핵시설을 해체하거나 용도를 변경할 것.

플루토늄과 우라늄에 기반한 모든 핵물질의 생산을 중단할 것. 조속하고 실제적인 검사체계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할 것. 100% 확실한 검사가 현실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실제에 가깝도록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대륙간탄도탄ICBM의 한계(숫자)를 설정하고 현존 ICBM을 해체하는 로드맵을 제시할 것.

미국이 합의한 약속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향후 10년 안에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할 것.

# 미국의 몫

2016년 말에 이루어진 유엔의 일반적 제재 5개항을 해지할 것. 이의 조치는 신속하고 신뢰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행동계획이 없는 합의가 무의미하다.

스냅백의 조항(합의불이행시 과거로 복귀)는 유엔의 의결에 기반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경수로 LWR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면, 이의 준공에 대한 논의가 개시되어야 한다.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제한적 제재의 방식으로 기타의 대북제재에 대하여 광범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의 해지에 대한 조건들을 분명히 하고 대외적으로 공개되어야 한다.

남북미 당사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종전선언에 대한 협상을 개시하여야 한다.

북미 양자 간에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미국과 북한에 외교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미국시민들의 방북금지 조치는 중단되어야 한다.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의료장비와 코로나 관련 물품을 포함하여, 의료와 인도적 지원은 조속한 방식을 통하여 용이하게 이루어져 한다.

식량지원도 조속히 재개되어야 한다.

# 남한의 몫

IDO 사항을 추진하는데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 남북 간의 사업에 대하여 북한과 긴밀하게 협력하는데 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할 것.

남한의 주요 목표는 재래식 군사력을 감축시키고, 신뢰를 구축하며, 한반도와 역내의 인프라 건설을 위한 전략적 경제협력을 추진하는 것. 내용 중에 한반도 중간에 “광역지대 mega-region”라는 특별개발지역을 설정하고, 동해안과 서해안을 연결하는 다양한 통로를 개설하며, 일본열도와 한반도를 연결하는 터널을 장기적 사업으로 기획하는 것을 포함할 것. 상기의 사업은 미국의 목표와 이해뿐만 아니라 주변 이해 당사국들의 이익을 증진한다.

북한과 국제기구가 함께 참여하는 방식으로 협력과 투자의 절차규정을 마련할 것. 경제활동의 지원을 투명하고 높은 차원으로 유도하며 부패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면서, IDO의 구상을 견고하게 역량있게 지원하는 구조를 정립해야 한다.

북한이 동아시아 지역과 국제적 기구에 통합되는 것에 관심과 지원의향을 지닌 국가들과 연대협력을 형성하는 일을 주도할 것. 유엔산하 기구들과 국제투자금융기구들 그리고 기타 중요한 기관들을 연계하는 사업을 주도할 것.


This outline seeks to collect realistic and workable ideas from experienced practitioners about the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presented by North Korea, and sketch an outline for the next interim or small deal that would bring diplomacy back to the center of Korean Peninsular and Northeast Asian developments. An Interim Deal Outline (IDO) should be directly relevant to American and South Korean policy-making as the Joe Biden White House marks eight months in office and the Moon Jae-in Blue House marks eight months remaining in Moon’s term. The profile of the next South Korean government – both capabilities and intentions – looms as a large unknown variable in the background.

Most specific items in the IDO are well-known to analysts familiar with the last four tumultuous years of US, North Korean and South Korean statements, meetings and actions. Some of the most articulate thinkers have made suggestions for the next deal over the past few years – many based on the hopeful Singapore Summit and ill-fated Hanoi Summit. Many of those ideas inform the Outline. The list is not exhaustive, but includes Robert Gallucci, Joseph Yun, Joseph DeTrani, Frank Aum, Frank Januzzi, Glyn Ford, Robert Carlin, Robert Einhorn, Sigfried Hacker, and Vincent Brooks. Ideas from Seoul  come from Wi Sunglac, Lee Jong-seok, Moon Chung-in, Lee Jae-myung, Lee Jae Gang, Jeong Se-hyun, Chung Dong-young and others.

The fundamental exchange envisioned in this IDO is the capture of several urgent agreements and early steps taken to rebuild minimal trust. In North Korea’s case, these would include the dismantlement or repurposing of the full Yongbyon nuclear complex; a halt to all fissile material production, plutonium or uranium based; a halt to ICBM testing; and an invitation to IAEA inspectors to return to oversee inspections and implementation. This would allow the US to claim that the nuclear and ICBM programs are capped, and on a trajectory to rollback to zero.

In the US’s case the primary incentives would include the early suspension of the five general UN sanctions on the DPRK, imposed in late 2016, agreement on US and ROK military exercises, and relaxation of US and UN sanctions on North-South exchanges. This would allow expanded economic activity and answer the repeated urgings of NK, China and Russia to ease up on sanctions. In turn, China and Russia would be expected to help ensure that NK keeps its promises regarding denuclearization and cooperation.

South Korea’s role in the new deal would be expanded. Its unique stakein any deal and broad capabilities to lead and manage parts of the implementation would be clearly recognized. Seoul would contribute crucial cooperation, aid and investment mechanisms based on work already done, and play a leading role forming a coalition of supporting governments and institutions to support implementation. The new investment mechanisms are important, to ensure that much of new economic activity is transparent and uncorrupted. All new North-South cooperation, including long-planned infrastructure projects, would support and strengthen US interests in greater stability, security and productive spending.

From North Korea

Commitment to dismantle or repurpose all of the Youngbyon complex, under IAEA inspections and other monitoring.

Commitment to stop all fissile material production, plutonium and uranium based. A roadmap for an early and practical inspection regime. 100% certainty is not a realistic goal, but as close as practical could be significant.

Commitment to cap ICBM tests. Agreement on a roadmap to dismantlement of existing ICBM capability.

Commitment to ten year roadmap to full denuclearization, if other agreements are kept.

From the US

Suspension of the five general UN sanctions from 2016. This must be credible and quick. Without this action no agreement is possible. A snapback mechanism would be managed by a UN based coalition.

Begin discussion of completing the LWR project, if feasible.

Commit to broad-based review of remaining sanctions, so that they are tied to specific internationally recognized activities, and the conditions for lifting them are clear and public.

As a benefit to all sides, an End of War Declaration would be negotiated.

As a benefit to all sides, diplomatic liaison offices would be established between the US and DPRK. US bans on civilian travel would be ended.

As a benefit to all sides, medical and humanitarian aid would be facilitated and fast-tracked, including medical equipment and COVID supplies.

Food aid would be facilitated.

From South Korea

Take on greater responsibility for implementation of IDO elements. Gain greater flexibility to engage with North Korea on inter-Korean projects.

South Korea’s main goals would be conventional military de-escalation and trust-building, and strategic economic cooperation within a framework of Peninsular and regional infrastructure development. Elements could include specialized “mega-region” development zones in the central peninsula, multi-purpose corridors along the East and West coasts, and a long-planned Korea-Japan bridge/tunnel. All projects would support and benefit US goals and interests as well as those of all other states.

Set up cooperation, aid and investment mechanisms, with the participation of the North and international institutions. These would become some of the most robust and capable structures supporting the IDO, insuring that as much economic activity as possible is transparent, high-standard and non-corrupt. Not 100% but very consequential to DPRK growth and to US and South Korean interests.

Take the lead in forming a coalition of interested and invested countries to backstop DPRK integration into the region and into international institutions. Take the lead in enlisting the UN, IFIs and other relevant institutions.

 

출처: 당사자 특별기고문, 2021-08.

Stephen Costello

미국평화재단의 실무책임자를 역임하고 East Asia Peoduct의 대표로서 워싱턴을 중심으로 지난 20여 년간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교육과 강연 및 기고를 활발히 진행하여 왔으며, 현재 조지 워싱턴 대학(GWU) 한국연구센터와 경기연구원의 객원 연구원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수, 2021/08/11-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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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번 글을 시작으로 2주에 1번씩 함께살기의 복지국가 5.0 기획칼럼을 게재합니다. 필진은 8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시재생, 도시계획, 주거환경, 현실정치, 공론장, 지방분권, 주거/문화정책, 노인복지, 사회사상, 복지국가이론, 사회보장정책, 건강정책, 영유아 돌봄, 청년정책, 세대갈등, 고용정책, 기후변화, 환경/에너지 정책, 행정개혁, 성평등 등 여러분야에 대해 심층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2010년대 초반 무상급식을 중심으로 복지국가는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복지국가의 강화를 주창하는 것은 식상한 일이 되어버렸다. 일부는 진보진영이 때가 되면 떠들어대는 지겨운 레퍼토리로 치부하기까지 한다. 현재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는 기본소득제 논의도 복지국가의 한계에 대한 지적을 발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복지국가를 둘러싼 논쟁은 깊이 있는 분석과 사유에 기반하기 보다는 한 철의 유행으로 다뤄버리는 현실이기에 씁쓸하다. 정말로 복지국가는 무용해졌을까? 현대의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유럽에서도 복지국가가 이러한 대접을 받고 있을까? 더 나아가, 우리나라는 무용론이 적용될 만큼 복지국가였던 적은 있었던가?

 

통치패러다임으로서의 복지국가

나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였던 적이 없다. 복지국가는 단순히 제도나 정책의 묶음이 아니라 한 나라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통치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의 논리와 가치들을 중심으로 나라를 조직∙운영했던 적이 없다. 단지 부수적인 것으로 아니면 어려움이 있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회구성원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그때그때 이용될 뿐이었다.

패러다임은 패턴, 예시, 표본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파라데이그마(παράδειγμα)에서 유래한다. 현대에 와서는,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 공동체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믿음, 가치, 문제해결 방법 등의 총체’라는 의미로 사용된 후[1], 패러다임은 세계관, 사회관, 인간관, 믿음체계, 가치체계 등 보다 근원적인 요소들과 더불어 이들에 기반해 형성되는 문제의식, 문제해결의 방식과 도구, 제도와 정책 등의 요소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자리잡았다. 즉 하나의 영역이나 분야에 이러한 요소들이 지배적인 모습을 보일 때 패러다임이라 부르고 있다. 한 나라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것에도 이러한 패러다임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치패러다임이라 부를 수 있다.

통치패러다임은 한 나라를 통치하는 기준들에 대한 종합적인 틀이기에, 당연히 전 방위에 걸쳐 대부분의 영역에서 적용되고 정책을 결정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복지국가가 ‘복지’와 ‘국가’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용어이기에, ‘사회복지를 제공하는 국가’라고 여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통치패러다임의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이해는 매우 단편적이며 표면적인 잘못된 이해이다. 복지국가는 통치패러다임에 의거해 복지국가의 사회정책, 경제정책, 문화정책 등을 자율적이면서 체계적인 논리와 기준들에 따라 수립하고 수행한다.

현대의 복지국가는 기존의 다른 유형의 국가, 예를 들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여 구성원이 하는 것을 그대로 놔두는, 특히 경제활동에 개입하지도 않고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도 하지 않는 ‘야경국가 패러다임’을 교체하면서 대두되었다. 달리 말하면, 복지국가는 국민의 경제활동에도 개입하고 취약계층을 지원도 하며, 더 나아가 국민의 일상적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개입을 하는 국가이다. 즉 복지국가는 국가의 한 유형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재정 전 영역에서 동일한 기준과 방식으로 국가의 행위들을 규정하는 틀, 즉 통치패러다임을 구축한 국가이다. 이러한 통치패러다임의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국가패러다임을 통치의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인정하는 국가가 아니다.

 

복지국가패러다임은 사회보장의 상대적 자율성에 기반한다

복지국가패러다임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사회보장의 상대적 자율성이다. 사회보장은 인간은 생존유지, 인간적인 삶 그리고 자율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욕구를 본래적으로 갖고 있으며 이 욕구를 사회적 연대의 방식을 통해 충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것 자체로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는 객관적인 타당성을 갖고 있다. 다른 어떤 외부의 원인들로 인해 사회보장의 필요성이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자체에서 필요성이 도출되는 것이다.

이 존재이유가 침해되는 순간 인간의 삶은 불충분하게 되어 고통이 발생한다. 사회적 위험이란 바로 앞서 말한 근원적인 욕구들이 충족되지 않아서 고통이 발생한 상황을 말한다. 아파서, 마음 놓고 기거할 공간이 없어서,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어서, 역량 함양을 위한 교육이 너무 비싸거나 교육기관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인간의 반응은 명확하다. 고통의 해소를 추구하게 된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 노력하는 방법도 있고, 주위 사람들과 힘을 합쳐 공동으로 해소하는 방법도 있다. 바로 후자의 방식이 사회적 연대의 방식이다. 공통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여 위험을 해소하는 것이다. 사회보장이란 바로 이 공동의 대응방식을 포함한다.

하지만 단순히 제도와 실천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욕구와 그것이 충족되지 않은 사회적 위험에 자신들도 언제든지 노출될 수 있다는 잠재적 보편성에 기반한다. 즉 제도와 실천 이전에 인간이 나면서부터 갖고 태어나는 욕구와 그것의 미충족 가능성 그리고 그것에 대한 특정의 대응방식 등은 모두가 제도 이전에 인간을 구속하는 것들이다. 오히려 심층적인 요인들이 작동해 현실에서의 구체적인 제도와 실천이 만들어진다. 사회보장이란 이처럼 보다 심층적인 요소들과 더불어 현실에서 관찰 가능한 제도와 실천들 모두를 아우른다.

다만 인간이 사회보장을 실현함에 있어서 외부 환경이 이를 도와주거나 방해한다. 예를 들어, 경제체계는 이 외부환경에 속하면서 사회보장의 실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세기의 극단적 자본주의 경제체계는 사회적 위험을 발생시키고 이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회연대적 대응을 어렵게 하는 가장 큰 외부요인이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사회보장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이다. 내적으로 그 존재의 이유와 발생의 원인을 갖고 있기에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외부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자율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사회보장의 실현을 제1의 목표로 삼는 국가를 의미한다. 과거에는 개인이나 1차 집단이 주로 담당했던 역할을 이제는 국가가 담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 그리고 그 충족의 방식이 사회적 연대의 방식인데, 이러한 욕구 충족과 충족의 방식에 대해 국가가 전면적으로 이를 관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득보장,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등을 관할하는 최종심급이 국가가 된 것이며, 경제 영역에까지 사회보장의 논리를 적용시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가 모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이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직간접적으로 국가의 용인이 있어야 가능하게 되었다.

 

적응의 원리와 복지국가의 업그레이드

복지국가는 내∙외적 환경변화에의 적응(adaptation)을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로 삼고 있으며, 이 원리에 의거해 복지국가는 19세기 말에 태동한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사회보장의 실현은 결국에는 주어진 현실의 환경 속에서 이루는 것으로, 상대적 자율성의 성격에 따라 외부의 요인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적응은 바로 이 영향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이다.

적응의 과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근원적 욕구의 사회연대적 충족’이라는 목적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타당하다는 점이 재천명된다. 그리고 이 목적의 실현을 위해 선택한 기존의 방법과 도구들, 즉 제도, 관행, 실천 등이 목적 실현에 적절한 것인가를 심도 있게 고민한다. 그리고 보다 나은 다른 방법과 도구들이 없는지를 살펴본다. 그 결과 일부는 폐기하고 일부는 새롭게 선택된다. 이렇게 재구성된 방법과 도구들이 누수 없이 제대로 운용되고 있는가, 즉 최대의 결과물들을 낳고 있는지를 재검토한다. 이 과정을 통해, 관료주의가 개선되고 제도의 최종 성과물과 애초에 상정한 목표 사이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효율성을 갖추게 된다.

현대의 복지국가는 19세기 말의 1.0 버전부터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 경향의 확대에 적응한 4.0 버전까지 단계적으로 변화해 왔다. 19세기 전반기 내내 계속되었던 노동자들의 요구로 노동보호와 관련된 입법들이 19세기 후반부터 이뤄졌고, 1880년대부터 사회보험체계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취약계층에 대한 자선적 의미의 보호가 19세기 말부터는 국가의 의무이고 국민의 권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위생, 전연병, 공중보건 등도 국가의 몫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복지국가 1.0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 탄생했다.

태동기의 흐름은 1차세계대전과 2차세계대전 사이에 또 한번의 큰 변화를 경험하며 복지국가 2.0이 만들어졌다. 독점자본주의 폐해의 확대 및 1차 세계대전의 경험은 내∙외적 환경변화의 대표적 요소들이다. 이에 적응하기 위해, 독일의 바이마르헌법은 복지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렸고,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하고 적용대상자의 범위 또한 넓혔다.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당이 집권하여 가족정책과 주거정책 등에서 사회서비스를 국가가 제공하기 시작했으며 노동시장에서도 노사협의의 관행을 만들어냈다. 프랑스는 1930년대 인민전선이 집권을 함으로써 사회보장 제도들이 확대되었으며 미국에서조차 뉴딜정책과 사회보장법이 도입∙집행되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소위 ‘영광의 30년’을 보낸 복지국가 3.0이 형성됐다. 전쟁의 경험이 사회구성원의 삶의 질에 대한 사회보장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사전에 준비된 내용들은 입법의 과정을 거쳐 제도적인 토대를 갖추게 되었다. 이때의 복지국가는 분야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영역에서 진행되었다. 그리고 성격도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복지국가 3.0은 1970년대에 이르러 완전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복지국가패러다임이 명실상부하게 통치패러다임으로 인정되고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경제환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새로운 생산모델인 ‘다품종 소량생산’이 널리 퍼지고 경제 자유화 및 금융 자유화가 일어나 자원의 국제적 이동이 커지게 되었으며 해외직접투자도 점차 늘어났다. 이러한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위험의 내용도 달라졌다. 불안정고용의 증가, 장기실업의 등장 및 대규모화, 근로빈곤의 발생, 한부모 가구의 증가, 일∙가정 양립의 어려움, 각종 차별의 사회문제화, 도시환경의 낙후(도시재생 및 구역개발의 필요성 대두) 등, 소위 ‘신사회적 위험’이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들은 결국 각 나라가 구축한 복지국가 3.0의 문제해결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복지국가는 앞 서 2번의 적응능력을 보여주었듯 이번에도 적응에 들어갔다. 인적 역량의 강화를 강조하는 사회적 투자, 소득보장에 있어서의 최저소득보장체계의 강화, 중산층을 위한 복지의 상대적 축소 및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 강화, 사회서비스의 민간제공주체로의 확대(즉 복지혼합), 사회보장의 지방분권 강화 등이 방법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적응은 결국 복지국가 4.0 버전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버전은 다시 새로운 환경변화에 직면하여 또 다른 적응의 압력에 노출되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이 압력을 가중∙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서의 복지국가의 위상

1980년대의 이후 ‘복지국가의 위기’가 널리 회자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축적된 사회보장에 관한 자료들은 복지국가의 ‘후퇴’보다는 ‘안정적 지속’을 보여준다. 일련의 변화는 있었지만 복지국가패러다임이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는 않았다. 당시의 변화들은 GDP 대비 공적 사회지출이 대략 5% 정도 축소하는 결과를 나았다. 즉 복지국가의 합리화가 5%의 축소에 한정해 이뤄진 것이다. 특히 경제체계의 급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안정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2] 현재 코로나19 팬데믹은 복지국가의 실효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고 있다. 복지국가의 수준이 높을수록 팬데믹에 대한 대응 또한 잘 되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즉 2020년의 경제성장률은 그 나라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요소들이 국내외의 환경변화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 능력을 갖췄는지를 판단하는 종합지표이다. OECD 자료에 따르면, 복지국가가 가장 잘 발달되었다는 북유럽 국가들 증 덴마크가 0.7% 증가하고, 핀란드와 스웨덴은 0.89% 하락했다. 이러한 수치는 다른 선진국들의 보인 2~5% 대의 하락과 비교한다면 매우 도드라진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통계도 이와 유사하다. 북유럽 국가들이 0~3%대의 하락을 보인 반면, 다른 선진국들은 3~9%대의 하락율을 보였다. 결국 복지국가패러다임이 보다 공고히 자리잡은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더 높았다.

국제통화기금(IMF)는 각 국가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실시한 예산사업, 재난지원금 등의 현금 지원, 세액감면 등과 같은 직접적인 지원을 ‘추가지출 및 기존 세액감면(Additional spending or foregone revenues)’ 항목으로 집계해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3] 이 자료 또한 복지국가패러다임 구축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북유럽 나라들의 직접지원은 GDP 대비 1~4%인 반면, 미국, 영국 등의 영미형 국가들은 14~16%,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대륙형 복지국가들은 7~11%였다.

결국, 북구형 복지국가들은 팬데믹이라는 응급상황에서 다른 유형의 국가들보다 국가의 지원이 매우 낮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더 좋았다. 이는 복지국가패러다임에 의거한 제도들이 촘촘히 구축되어 있어서 내∙외적 위기에 보다 더 용이하게 대응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복지국가는 평상 시에도 국민의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위기 시에도 별도의 추가비용 없이 국민의 일상적 삶을 보호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러한 증명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가의 통치가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준다.

 

복지국가 5.0의 전면화 가능성 상승

서구 유럽에서의 코로나19 팬데믹은 복지국가의 위기대응 능력에 대한 인정을 넘어 새로운 업그레이드에 대한 여러 징후들을 낳고 있다. 복지국가의 후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인 영국에서조차 ‘복지국가의 복귀’가 언론상에 등장하고 있다.[4]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국가가 국민들에게 특히 중산층에게까지 여러 지원을 했고 이로 인해 복지국가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올라가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 속에서 과거 황금기의 복지국가가 새롭게 재구축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복지국가 5.0 버전의 출발을 암시하고 있다.

물론 복지국가 5.0의 등장은 1980년대 이후 형성된 복지국가 4.0이 해소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축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것들로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 여성의 경제참여 확대, 성평등의 제도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 및 정보에 대한 사회화, 지방 자치 및 분권의 공고화, 이민자의 사회통합 강화 등이 있다. 여기에 더해, 사회보장의 원리와 원칙이 경제영역에서 보다 더 확대되어야 한다. 그 동안 미뤄두었던 생산수단의 사회화, 기술 및 지식의 사회화, 생산과정에서의 경제적 민주주의 강화,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조직의 역할 증대, 더 나아가 사적 재산권에 대한 제한, 금융의 사회화, 화폐민주주의의 강화 등이 추가되어야 한다.

 

복지국가패러다임의 구축으로 복지국가 5.0을 만들어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은 한국사회에 내재된 여러 문제들을 표면화 시켰다. 사회보장의 기존 제도, 관행, 실천의 한계와 결함을 드러냈고, 지방자치단체의 역량 부족을 부각시켰다. 무엇보다도 IMF가 집계하는 직접지원이 GDP 대비 3.4%라는 점은 사회구성원에 대한 소득보장이 부실함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북유럽 나라들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구축되어 있어 위기상황에도 직접지원이 덜 필요한 반면, 우리나라는 그러한 기반이 없음에도 직접지원은 그들과 유사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팬데믹의 불가피한 소득결핍의 문제를 사회적 연대 방식이 아닌 개인과 가족의 자구방식, 특히 가계부채에 맡겼다. 이는 우리나라의 통치패러다임은 야경국가패러다임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위기는 기회이다’라는 격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미 유럽연합과 개별 회원국에서 나타나듯이,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존의 것을 넘어서는 발상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3개의 상이한 압력에 동시에 노출되어 있다. 아직 복지국가 3.0을 완료하지 못했기에 이를 보완해야 한다. 복지국가 4.0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아직 맛보기 수준이다. 거기에다 다가오는 복지국가 5.0이 해소해야 할 것으로 상정되는 문제들은 아직 문제제기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당면한 복지국가의 구축은 매우 방대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통치패러다임의 새로운 구성을 위한 공론의 장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서구복지선진국이 1945~1975년 사이 복지국가패러다임을 통치패러다임의 지배적 위치에 최종적으로 올려 놓은 그 작업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서구유럽의 경우 복지국가패러다임이 지배적 통치패러다임이 되기까지 거의 1세기가 걸렸다. 우리나라는 복지국가가 논의된 지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간 길들을 짧은 시간에 주파하는 저력을 보여왔다. 복지국가패러다임의 구축도 그러한 저력이 펼쳐져야 할 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해야 할 때이다.

 

[1] . Thomas 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2nd Edi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0.

[2] . Paul Pierson, The Welfare State Over the Very Long Run, Zes-Working Paper No. 02/2011, 2011.

[3] . IMF, Fiscal Monitor Database of Country Fiscal measures in Response to the COVID-19 Pandemic, 2021/02/03 참고.

[4] . The Economist, “Covid-19 has transformed the welfare state. Which changes will endure? The pandemic may mark a new chapter in the nature of social safety-nets”, 『Briefing』, 2021/03/06.

 

이권능

정책연구소 함께살기 소장. 정치학도로 시작해 프랑스 파리제1대학과 그로노블정치대학(IEP de Grenoble)에서 사회정책을 전공한 후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연구실장으로 활동했음. 현재는 복지국가를 마을에서부터 만들기 위한 운동을 진행 중. 사회사상, 복지국가와 복지정치, 사회보장, 건강 및 요양, 복지도시 등을 사회성(the social)과 이론-실천의 통합 관점에 기반해 연구 중

목, 2021/08/1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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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보고 – 기존의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으로 전환하면 전세계적으로 8백만 이상의 추가적인 일자리가 만들어 진다 “ 현재 약 18백만 명이 에너지 산업분야에 종사하고 있는데, 지구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노력이 진행되면 종사자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26백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탈탄소경제’로 전환에 대한 비평가들은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실직 상태로 만들 것이라고 종종 주장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기후정책를 추진하면 수백만 개의 화석연료 산업분야 일자리가 실제로 사라질 것이지만 금요일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전체 에너지부문 고용은 오히려 재생에너지 일자리의 증가로 실제로 2050년까지 40%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현재 화석연료 일자리의 80%를 구성하는 화석연료 일자리, 특히 축출(extraction) 일자리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지만 이러한 감소는 태양열 및 풍력 분야 일자리의 증가로 상쇄되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와 스웨덴 Chalmers 공과대학과 함께 RFF-CMCC가 진행한 ‘환경이 경제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내용이 ‘One Earth – 하나의 지구’ 잡지에 게재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금세기 안에 지구온도의 상승수준을 산업화 이전수준보다 2°C 이내로 혹은 더욱 야심찬 목표인 1.5°C로 유지하는 기후정책은 에너지 분야의 일자리를 현재의 18백만에서 26백만으로 더욱 늘어나게 할 것입니다.”

오늘날 석탄, 석유 및 천연가스 산업에서 1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파리기후협정에 명시된 목표인 지구온난화를 2°C 미만으로 유지하려면 상기의 세가지 화석연료 모두를 극적으로 감소시키고 저탄소의 에너지원으로 대체해야 합니다.

“이러한 에너지시스템의 변화는 기후목표를 달성하는 것 이상의 광범위한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라고 연구보고서는 말합니다. “기술적으로 문제없이 가능한 일이지만, 그것이 충분히 빨리 이루어질 수 있는지 여부는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특히 화석연료의 생산국가에서 기후정책에 대한 정치적 지원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는 화석연료산업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이 연구는 “2°C이하로 유지하거나 심지어 1.5°C 수준에 도달하려는 파리협정의 지구기후 목표를 달성하려면 저탄소 에너지의 급속한 성장과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가 필요합니다.”라고 지적합니다.

“한가지 현안은 에너지부문에 존재하는 직업의 위치와 유형에 상응하는 변화와 함께 오래된 산업이 쇠퇴하고 새로운 에너지 산업이 증가함에 따라 에너지부문 전체의 일자리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라고 보고서는 말합니다. “이러한 잠재적인 직업의 이동을 이해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로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화석연료의 생산과 수출이 중요한 경제에서 저탄소의 전환에 대한 정치적 지원은 일자리 와 환경 또는 기후에 대한 논쟁에 점점 집중되고 있는 과정에서 그러한 기후조치가 미래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종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자리”라고 설명하며 많은 정치인들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화석연료산업을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2016년 미국대선과정에서 트럼프 당시 후보는 석탄산업에 대하여 294번이나 언급하였으며, 석탄산업과 이에 관련한 일자리를 되살리자는 캠페인을 벌렸습니다.”라고 연구보고는 지적합니다. 이어서 그가 대통령이 되어 2017년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면서 발언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나는 우연히 석탄광부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강력한 기후정책에 맞서 화석연료산업과 관련 일자리를 보호하는 캠페인을 공약으로 들고 출마했던 스콧 모리슨 호주총리가 재선에 성공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둘째, 녹색정치인과 환경단체는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를 포함하여 과감한 기후행동을 취하는 것이 화석연료노동자를 재생가능에너지의 관련직업으로 재교육하는 것을 포함하는 ‘정당한 전환’과 함께 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전환프로그램의 정당함은 화석연료에서 일자리가 이동하는 규모를 제대로 이해해야 가능합니다.

기후목표인 2°C보다 낮은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 무렵 총 일자리 중 84%는 재생에너지 부문, 11%는 화석연료, 5%는 원자력부문에 형성되어 있을 것입니다.  화석연료의 일자리, 특히 현재 화석연료 일자리의 80%를 구성하는 축출 일자리가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 이러한 감축은 태양열 및 풍력 일자리의 증가로 감소분을 상쇄되는 이상으로 일자리가 늘어납니다.

태양열 및 풍력 일자리 증가의 상당 부분은(2050년 770만)은 지리적으로 국한되지 않은 제조업 일자리가 될 것이며, 이러한 일자리를 유치하기 위한 국가 간의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중동, 북아프리카, 미국 등이 재생가능에너지의 확장으로 전체 에너지 일자리에서 상당한 증가를 목격할 수 있지만, 중국에서는 석탄부문의 쇠퇴와 함께 일자리의 감소가 예상됩니다.

연구보고서의 작성 중 한 명인 Johannes Emmerling은 성명서에서 “현재 약 1,800만 명이 에너지 산업에서 일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우리가 지구기후목표에 도달하면 2,600만 명으로 오히려 증가하지 결코 감소하지 않을 것입니다. 재생가능 에너지원의 제조 및 설치는 잠재적으로 에너지분야 전체 일자리의 약 3분의 1 정도 될 수 있으며 지역별로 국가 사이에 경쟁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Emmerling은 “에너지전환은 매우 상세한 모델, 공간해상도, 시간척도 및 기술적 세부사항으로 점점 깊이 연구되고 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인문적 차원, 에너지의 접근, 빈곤, 그리고 분배 및 고용영향 등 종종 높은 수준의 세부사항에서 이를 신중히 검토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국가에서 대규모 데이터군을 수집하고 다른 산업분야에 적용되는 기술을 적용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출처 : CommonDreams.Org on 2021-07-23.

BRETT WILKINS

CommonDreams 상근 편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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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8/13-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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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 농업생산성 저하 및 미래의 전염병과 같은 잠재적인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황이 느리게 악화된다고 잘못 인식하면서 위협에 함께 대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CAMBRIDGE – 자신의 애상적(경고적) 회고록인 ‘어제의 세계’에서 나치로부터 망명한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상황에 심각한 변화의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관찰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오랫동안 서서히 악화되면서 이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에 쉽게 반응하지 않습니다만, 곧바로 재앙이 닥치면 행동하기에는 너무 늦습니다.

우리시대에도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에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불행히도, 천천히 끓는 개구리처럼 우리 대부분이 변화를 점진적으로 인식하면서, 시급하게 조정되고 결정적인 조치를 충분하게 취하기 어렵게 합니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는 전제에서, 우리가 직면할 수 있는 재앙들을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한 가지 분명한 유형의 재앙입니다. 이것들은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면적을 확대하고, 결국 거주가 가능한 지역의 인구밀도를 높여갈 것이며 이를 피하기 위한 대규모 인구이동을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 대부분은 기후피해자들이 일단 자신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문명권과 멀리 떨어져 있는 태평양의 작은 투발루 섬이 종종 최초의 희생지역 중 하나로 묘사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최근 기상이변으로 플로리다 , 중국 황하계곡 의 도시, 시애틀 및 뉴델리와 같이 전세계적으로 문화의 중심지에 가까운 지역에서 홍수를 일으키거나 인간이 살기에 너무 뜨거워지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각국정부와 국제기구는 수백만 명의 미래기후난민의 전망에 대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유엔에 따르면 2019년 말 전세계적으로 7,950만 명의 실향이주민이 발생하였으며 이는 기후조건으로 인한 역사상 가장 많은 이주민의 수치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대규모 강제이주가 일어난 이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치입니다. 계속되는 지구온난화는 상기의 수치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더욱 위험한 것은, 생물다양성의 손실 및 토양황폐화 와 결합된 기후이변이 농업생산성의 하락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지구가 79억 인구를 부양할 수 있게 한 녹색혁명 의 많은 이점을 감퇴시킬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농지개혁, 식단변경,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과 같은 사회경제적 변화를 포괄하는 작물의 유전자변형을 넘어 새로운 녹색혁명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집약적이고 산업화된 농업관행을 신속하고 대규모로 바꾸지 못하면 농작물의 실패와 굶주림이 증가할 것입니다. 영국과 같은 순수 식품 수입국의 경우, 전후에 우리가 익숙해져 왔던 풍요로움이 과거의 일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슈퍼마켓 진열대가 여전히 가득 차 있을 때, 사람들은 시스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받아들일까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거대한 침입과 관련된 또다른 유형의 재난은 동물숙주에서 인간으로 전이되는 인수공통 전염병의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최근 COVID-19 대유행은 이러한 메시지를 전세계에 심각하게 알렸습니다. 에볼라, SARS 및 MERS는 사전적인 경고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그러한 보건건강의 위기가 자주 반복될 것입니다. 전염병이 제대로 통제되었던 것처럼 보였던 인류역사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유사하게, 항균제 내성의 확산은 일부 오래된 감염전쟁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훨씬 더 치명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등장한다면 과연 인류는 지난 18개월 동안 우리 모두가 경험한 것과 같은 또다른 격변에 대비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종류의 사건은 민주주의든 권위주의적 정권이든 기존 정치시스템에 엄청난 압력을 가할 것입니다. 오늘날, 팡글로스주의적(지극히 낙관적인) 관찰자만이 20세기후반을 특징짓는 자유민주주의 경향으로의 손쉬운 복귀를 예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오히려 더욱 많은 비상사태에 대처해야 하는 필요성으로 인하여 서구사회를 더욱 권위주의적(국가중심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협력적 다자주의에서 지정학적 충돌로 후퇴가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문제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을 촉발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 중에는 이러한 우울한 생각은 단순히 여름휴가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언급한 작가 츠바이크의 경고를 염두에 두고 ‘만약에’ 를 고려하는 것은 아무런 해가 되지 않을 것 입니다. 지금 당장 사소한 행동이 아닌 거대한 변화의 행동이 필요한 때라면?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9월의 유엔 식품시스템 정상회담과 11월 글래스고의 유엔기후회의(COP26)는 점진적 개혁에서 상당한 진전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분명한 기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잠재적인 재앙을 모두 피하려면 시스템의 변경이 시급히 필요합니다. 잠재적 재앙들은 명백한 이유로 ” 사악한(심각한) 문제 “로 알려진 것 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황이 느리게 악화된다고 잘못 인식하면서 위협에 함께 대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도전과제의 대응은 실제로 리더십의 주요사항입니다. 글로벌 정치지도자들은 모두의 공통 이익을 위해 이러한 사악한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데 동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대학과 연구기관은 협소함과 지신들만의 점진적 발견을 보상하는 학문적 사일로와 경력구조를 해체해야 합니다. 기후과학자는 자신의 작업을 정치학자의 작업과 통합해야 하며, 전염병학자는 경제학자와 동일한 작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재앙의 위험을 제대로 분석하면 지금 바로 행동해야 할 소명을 느낄 것입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8-05 .

DIANE COYLE

캠브리지 대학교의 공공정책 분야 교수이며 최근에 출간된 ‘Markets, State, and People: Economics for Public Policy’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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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8/19-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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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나는 지식경제를 국한되고 얕은 형태와 확산되고 심화된 형태로 구분하여 해명하고 지식경제를 심화하고 확산시키기 위한 요구사항들과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기 위한 배경조건을 탐구하였기 때문에 이제 나는 이 주제에 관해 더 큰 세 가지 시각을 검토하겠다. 첫 번째 시각은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이 직면한 선택지들과 포용적 전위주의의 관계다. 두 번째 시각은 세계 최고 부국들의 정치경제학 및 정치와 포용적 전위주의의 관계다. 세 번째 시각은 경제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측면(공급과 수요의 상호수용이나 반복적인 불균형)에 대한 지식경제(고립적 형태이든 포용적 형태이든)에 관한 나의 주장이 갖는 중요성이다. 이 세 번째 시각은 이어서 경제이론의 일부 중심적인 문제들에 대한 이 책의 주장이 함축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세 번째 시각은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에 대한 연구가 경제생활의 가장 심층적이고 보편적인 특성들을 파악하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애덤 스미스와 카를 마르크스의 판단을 지지한다.

오늘날 개발도상국들은 명백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20세기 후반의 발전경제학의 중요한 공식은 산업화가 표준적인 형태의 포드주의 대량생산의 수립을 의미한다는 전제에서 산업화를 통한 가장 부유한 경제를 따라잡는 것이었다. 이 공식은 내가 차차 논의하려는 이유들로 인해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이 공식에 대한 대안, 즉 지식경제의 확산되고 포용적인 형태는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가장 강력한 제도적 역량과 교육적자원을 가진 가장 부유한 경제들조차 이런 방향에서 크게 전진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면, 포용적 전위주의의 요건에서 더욱 빈약한 개발도상국들이 전진한다는 것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을까?

낡은 전략은 실패한다. 새로운 전략은 낡은 전략에 대한 실현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너무 까다롭고 너무 동떨어져 있다. 오늘날 발전에 대한 모든 사유는 이 딜레마와 교전함으로써 시작되어야만 한다. 이 딜레마는 경제발전에 가장 절박한 실제적인 도전이 되었으며, 동시에 현재 활용 가능한 발전 관념들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폭로한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의 주요 메시지를 상기해보자.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은 기초 여건들, 즉 교육과 제도들에 의해 제약된다. 앞서 말했듯이 발전경제학이 ‘인적 자본’의 형성에 대해 했던 입에 발린 말에도 불구하고 발전경제학은 교육의 내용과 방법, 제도적 구조에 대해 할 말이 거의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에서 욕망의 현실적인 표적이었던 대량생산 방식의 산업화는 교육의 면에서 거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주요한 요구는 노동자들에게 기계처럼 움직이라는 것이었다. 너무 많은 교육은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타 근본적 제도들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발전경제학은 역사적 상황(규제받는 혼합적인 시장경제)에서 기성품으로 발견한 경제적 제도들을 거의 수정 없이 추천하는 것에 대체로 만족하였다. 중요한 관심사는 투자자들이 그들의 재산에서 또한 재산이 창출한 소득흐름에서 안전해야 한다는 점과 국가가 장기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이러한 전략을 단기정책으로 전환하는 업무를 전담하는 계획기구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의 주요 메시지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중단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최상의 방식은 노동자와 자원을 경제의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서 높은 부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실제로 농업에서 표준화된 대량생산 방식을 갖춘 제조업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대량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능력의 천편일률적인 특성과 대량생산을 위한 교육적 제도적 전제조건들의 상대적 소박성은 생산성 증가와 더불어 성장 증가가 단시간에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장 증가는 계속 전진하다가 기초 여건에서의 상응하는 전진을 이루지 못함으로써 한계에 직면한다. 그러나 선행하는 제약조건들과의 충돌은 위험요소가 되기보다는 그러한 한계들을 극복하고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관철된 부문(포드주의 제조업)으로 노동자와 자원을 이전시키면서 시작되었던 변혁을 지속시키는 자극으로 봉사할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자본집약적인 대량생산이 가장 부유한 사회들과 연결되었던 세계경제에서 산업화는 국제적 노동분업의 증가를 의미했다.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이러한 처방에 더는 의존할 수 없으며, 자신들과 가장 부유한 국가들 사이의 격차를 해소하는 작업에 착수할 수도 없다.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오래 전부터 너무 이른 탈산업화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을 겪어왔다. 또 다른 개발도상국들은 지식집약적인 생산의 거대기업들에 유용한 지구적 가치사슬에서 (국제기준에 비추어) 저임금과 분업화되고 종속적인 틈새를 결합함으로써 대량생산의 수명을 연장하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개도국들은 그 상부국가, 즉 전형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부국에서 실험주의적이고 지식집약적인 생산의 친숙한 고립적 형태를 범례적으로 보여주는 기업의 상품화된 측면을 끌어안았다. 소수의 국가들(특히 중국과 인도, 어느 정도는 러시아와 브라질)만이 언제나 고립적 형태로서 세계적인 지식경제의 전초기지들을 설치해왔다.

발전경제학의 표준적인 산업화 처방이 작동을 멈춘 데에는 서로 연관된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첫째, 세계에 산재한 그 독점적 기지들로부터 나온 선진적인 생산은 철 지난 대량생산을 점차 경쟁에서 물리칠 수 있다. 선진적인 생산은 전통적인 제조업의 제품들을 더 효율적으로 더욱 우수하게 생산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발견함으로써 직접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내가 초-전위주의라고 불러온 체제 아래서는 선진적인 생산은 생산라인의 표준화된 부분을 대체로 임금과 세금이 낮은 다른 나라에 위치한 공장에 할당함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업은 발전경제학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전위라기보다는 이제 지구적인 생산라인들에 대한 위성(짝패)으로 변한다.

둘째, 이러한 맥락에서 전통적 산업화는 국제적인 노동분업의 증가와 더 이상 연관되지 않는다. 세계 경제에서 더 유효한 구분선은 제조업과 여타 모든 것(특히 농업) 사이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한 구분선은 (과학적) 영농을 포함한 모든 부문에서 확립된 선진적인 생산의 프린지와 여타 모든 것 사이에 존재한다.

셋째, 고전적 발전경제학의 메시지의 중대한 전제라고 할 수 있는 부문들 간의 구분들은 효력을 상실한다. 이러한 구분들의 경직성은 상대적 후진성의 신호를 나타낸다. 모든 형태의 지식경제는 일천하고 제한적인 형태이든 발전되고 확산된 형태이든 이러한 구분들을 전복한다. 지식경제는 특히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차이를 약화시킨다.

넷째, 대량생산 제조업이 생존하는 경우에는 노동과 조세에서의 차익취득이 낙후한 생산의 입지를 몰아냄에 따라 대량생산 제조업은 더 낮은 임금과 더 작은 세금을 향한 경주에 입각해서만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생산의 기반설비로서 운송, 통신, 에너지 나아가 사람과 사람의 능력에 대한 공적투자 재원의 부재와 저임금은 전위부문을 향하는 운동을 위축시킨다.

그러나 고전적 발전경제학의 실패한 공식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가?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의 계승형태는 대체로 어떤 일반적인 견해와 처방을 포기하였다. 그 계승형태는 빈곤층에 대한 상이한 정책들의 차별적인 효과들에 대한 미시적 연구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고전적 발전경제학은 결함 있는 구조적 비전을 갖고 있었다. 그 계승형태는 현대사회과학의 지배적인 조류와 일치하여 구조적 비전을 전혀 갖지 않은 것을 선호한다.) 실패한 공식에 대한 대안은 오늘날 개발도상국의 경제 여건에서 이곳에서 그곳으로 이르는 데에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 매개적인 조치들을 통해 포용적 전위주의의 방향에로의 이동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낡은 메시지에 대한 대안을 찾는 사람들은 당연히 낙담할지도 모르겠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약속과 그다지 격차를 보이지 않는 경제체제에서도 포용적 전위주의가 외견상 영웅적이고 불가능한 기획으로 머문다면, 포용적 전위주의의 교육적, 도덕적, 제도적 요건을 충족시키는 일이 더욱 요원해 보이는 사회에서 포용적 전위주의는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까? 전체적으로 이러한 사회는 교육 및 법의 기초와 계속해서 씨름하고 극단적인 불평등과 방향들 및 체제들의 혼란(이러한 혼란은 노골적인 혹은 은근한 독재를 통해서만 중단된다) 사이에서 자주 표류하는 나라들이다. 이러한 나라의 시민들은 최저치에 대한 자신들의 이해도 허약한 상태인데 어떻게 우리가 그들에게 최대치를 요구할 수 있는가라고 반론을 펼지도 모른다.

이 반론에 대한 답변을 고려하기 전에, 이 문제가 21세기 초반의 브라질과 같은 경제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생각해 보자. 이 사례는 포용적 전위주의의 추구라는 과업이 제시한 도전이 부유한 경제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에도 불가피한 이유를 보여줄 것이다. 그러한 사례도 문제를 해결하기 적합한 형태로 다시 규정하는 작업에 일조할 것이다.

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의 자극 아래서 브라질의 남동부, 특히 상파울루 주에 위치한 브라질 제조업의 핵심은 대량생산이었다. 대량생산은 처음 설치된 시점에서도 이미 철 지난 것이었다. 대량생산은 제조업에서 탁월성의 기준에 도달하였고 그 이래로 일반적으로 이 기준을 유지해왔다.

어쨌든 대량생산은 기술적이고 조직적인 핵심에서 퇴행적인 제조업 생산양식으로 점차 변모해왔다는 부담 아래서 그렇게 해왔다. 이러한 철 지난 포드주의는 노동수익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빈번히 속류-케인스주의의 엄호 아래 제공된 신용보조금과 세금우대 등) 국가지원에 대한 의존을 대가로 해서만 경쟁력을 갖는다.

지식경제는 브라질에서도 출현했지만 매우 고립적인 형태로 몇 군데에서 신생기업들과 첨단 제조업과 서비스업으로 출현하였다. 유명한 준(準)국가적인 기술학교와 지원센터의 네트워크(바르가스 치세의 조합주의의 유산)는 선진적인 제조업에서 이러한 고립적인 활동들을 지원해왔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은행 중 하나를 포함하여 막강한 공공은행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또한 중소기업에 대한 가장 까다롭고 매우 이례적인 지원 형태, 즉 생산적 관행(농업 외의 확장 서비스)의 개선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기구도 보유한다. 이러한 지도관행에서 발전된 원리는 정부와 신흥기업 간의 분산적 협력관계와 그러한 기업들 간의 협력적 경쟁을 서술한 “지역적 생산 협정제도(local productive arrangements)”의 개념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경제체제들에서 전략적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선진적인 중견기업)은 대체로 결여되었다. 나아가 브라질의 제도적 장치나 발전의 원리들(수입대체 산업화에서 재정적 신뢰의 추구까지) 중 그 어느것도 브라질이 너무 이른 탈산업화의 가장 두드러진 실례가 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21세기 첫 10년간 상품가격의 상승과 농업, 목축업, 광업 제품에 대한 중국발 수요의 여파로 제조업은 생산과 수출품들의 백분율에서 극적으로 감소했다. 철 지난 포드주의는 대체되거나 전환되기보다 간단히 위축되었다. 브라질은 부자가 되기 전에 늙어가는 중이었으며, 지식경제를 성취하기도 전에 대량생산을 상실하고 있었다.

한편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활기찬 기업적 문화들 중 하나를 계속해서 지원했다. 두 번째 혼혈인종의 프티부르주아 계급과 이 계급의 경로를 따르려고 시도하고 독립성과 주도성을 추구하는 이 계급의 문화를 포용하는 수백만 명의 가난한 브라질 노동자들은 이러한 문화의 강력한 담지자들이었다. 수백만 명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자신의 포부를 실현할 수단도 갖고 있지 않으면서도 프티부르주아 계급의 경로를 따르고자 하였다.

동북부의 반-건조한 오지들과 같은 일부 극빈지역에서 17세기 선대제수공업부터 20세기 후반의 낡은 대량생산에 이르기까지 유럽 시장경제들의 다양한 관행, 법적 기구들, 심지어 기술이 공존하였던 페르남부코내지의 섬유산업지대와 같은 지역을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풍부한 기업가적 정신은 대체로 지원을 받지도 못하고 방향을 잃었지만 거의 기적적으로 원기를 회복하였다. 국가발전의 새로운 의제가 제시되기만 한다면 이러한 사례는 그러한 의제의 원재료였다.

이러한 상황들이 제기한 질문은 온 나라가 나중에 다른 것이 되기 위해 철 지난 포드주의의 연옥에서 한탄하면서 20세기 중반의 상파울루가 먼저 되어야만 할 것인지 아니면 이 나라와 이 정부가 남동부의 낡은 산업 중심지들 바깥에서 포드주의 이전 단계에서부터 포드주의 이후 단계로의 직접적인 이행을 조직할 수도 있는 지였다. 이 질문에 대한 전자의 답변은 이 장의 도입부에서 열거한 모든 이유들로 인해 어떤 희망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전자의 경로를 답습하는 것은 전자의 결과를 성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대답은 세상에 전례가 없는 어떤 것의 성취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앞선 지면에서 기술한 발전의 딜레마의 브라질다운 형태에 불과하였다.

브라질 사례는 발전 딜레마의 몇 가지 측면을 보여준다. 첫 번째 요점은 이 딜레마가 허위의 딜레마라는 점이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전진은 어떤 조건에서도 어렵지만, 개발도상국의 조건에서는 특히 어렵다. 그러나 전통적인 제조업에 사후(死後)세계를 부여하려고 시도함으로써 이러한 어려움에 응답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기보다는 더 나쁜 것이며 실로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한 제조업은 고전적 발전경제학이 가정하였던 것과 같은 “무조건적 수렴”의 매개체로서 더 이상 복무할 수 없으며, 앞서 내가 논의한 모든 이유들로 인해 작동할 가능성은 더욱 줄어든다.

공장제 대량생산은 더 이상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아니므로 고전적 발전경제학의 메시지는 더 위축되고 더 제한적인 어조를 띤다. 그 메시지는 개발도상국에게 “관례적으로 산업화하고 차례를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 메시지는 명백히 겸손함의 호소력을 갖는다. 메시지는 잘 알려진 경로에서 인내심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우리의 생산능력의 진화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세계 노동분업에서 일어날 불가역적인 변화들을 고려하지 못한다.

고전적 발전경제학의 주장은 모든 경제체제들이 자신보다 앞서는 경제체제들의 과거를 나중의 역사적 시기에 자신의 미래로 예행연습하면서 똑같이 가차 없는 진화의 순서도를 따라야만 한다는 견해에 의존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본성은 하나의 장소에서만 변화해온 것이 아니다. 그 본성은 세계의 모든 주요 경제체제에서 변화해왔으며 그 본성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입지는 직접적으로 또한 국제적인 노동분업에 대한 생산방식의 영향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량생산을 국가적 발전의 더 높은 수준으로 상승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브라질의 예에서, 브라질 경제의 나머지 부분을 20세기 중반의 상파울루로 바꾸려는 시도는 사라진 세계와는 다른 어떤 것(퇴각임과 동시에 투항으로 이해되는 후퇴, 달리 말하면 국제적 전위부문에서는 퇴각이고 생산의 전선에 도달한 국가들과 기업들에 대해서는 투항)을 생산해낼 수도 있다.

브라질의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두 번째 요점은 포용적 전위주의의 주요한 구성 요소가 세계의 많은 곳과 마찬가지로 브라질에서도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는 포용적 전위주의와 이전의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을 구분해주는 (앞의 장들에서 논의한) 조건들의 하나가 아니다. 이는 모든 선진적인 방식의 형성에 관건적인 자원(사회에 널리 확산된 부단한 활기와 기업가적 충동)이다. 그 특징적인 의식형태는 엄청난 수의 빈곤한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프롤레타리아적이기보다는 프티부르주아적이다.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의 성공과 독립성을 열망한다. 욕망의 기본 목표는 전통적이고 퇴행적인 가족기업이다. 경제의 핵심적인 불행은 기회와 수단의 부족으로 이와 같은 인간의 에너지와 생명의 엄청난 저량(貯量)을 거부하고 통제하고 위축시키면서 탕진하는 것이다.

어느 경제에서도 대량생산은 자립과 주도성의 세계로 진진입하려는 후보자들 중에서 소수만을 채용해왔다. 대량생산과 제조업의 제휴와 표준화의 이면으로서 대규모 대량생산에 대한 의존은 대량생산이 다수에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을 언제나 가로막았다. 고립적이고 일천한 전위주의의 엘리트주의적 제약 아래에 있는 것으로 현재 알려진 지식경제는 이와 같은 내재적 제약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용적이고 심화되는 지식경제로 가는 경로는 고단하다.

개발도상국의 상황에서 광범위한 경제성장을 위해 이와 같은 인간의 에너지를 활용하려면 두 가지 문제, 즉 정치적 전략적 문제와 개념적 제도적 문제에 대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치적 전략적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 기획을 자신의 대의로 삼는 좌파가 소생산자계급과 이들의 물질적 야망과 도덕적 태도를 공유하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에 대해 품고 있는 편견이다. 좌파들은 이러한 프티부르주아 계급을 이러한 계급의 관점에서 만나고 이 계급이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도 있는 형태들에 대한 관념을 확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대신에 전통적으로 이들을 적으로 선택하였으며, 이는 20세기 유럽 역사에서 재앙적인 결과를 낳았다.

개념적이고 제도적인 문제는 실제로 그러든지 혹은 말로만 그러든지 프티부르주아 계급에게 고립되고 후진적인 가족기업이라는 기본형태 이외에도 자신의 야망을 충족하는 방법을 제공해야할 필요성이다. 그것은 포용적 전위주의의 법적 제도적 조건에 대한 나의 앞선 논의에서 제시한 의제이다. 이 의제는 시장질서의 제도적 재구축에서 시작되고 거기에서 끝난다. 처음에는 생산자원의 접근 수단을 적절하게 수정함으로써, 그 다음에는 정부와 기업들 사이에 분권적이고 다원주의적이고 실험주의적인 조정을 형성하는 법적 혁신들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분권화된 경제주체들이 사회의 자본자원을 이용하고 서로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조건들의 근본적인 확대와 다각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브라질의 사례를 통해 예증된 세 번째 요점은 포용적 전위주의에 봉사하도록 시장질서의 쇄신을 시작할 제도적 기제가 단편적인 형태이기는 하지만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제도적 기제의 부분들은 모든 주요 경제에 존재한다. 제도적 쇄신작업은 맨땅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브라질 정부와 심지어 지역 주정부들도 내가 앞서 설명한 제도혁신의 첫 번째 단계에서 요구된 다수의 기구들에 의존할 수 있다.

즉 개발은행들, 자신의 관행을 개선하려는 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조직들, 개발도상국의 상대적으로 낙후된 기업들이 보유한 수용의 여건과 역량에 기술을 적응시킴으로써 기술의 개발과 전수를 목표로 한 기구들, 선진적인 제조업을 전담하는 지원센터와 학교를 포함하여 기술학교들의 준정부적인 네트워크 등에 의존할 수 있다. 여전히 결여된 요소는 이러한 도구들을 종합하고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의 프로그램에 복무하도록 활용하는 방식이다. 접근형태들을 조정하는 방식이 없다는 점보다는 대량생산이 절정에 이른 이후에 일어나는 발전경로에 관한 지도적인 이론적, 프로그램적 견해가 없다는 점이 더욱 중차대하다.

이러한 발전의 딜레마는 진짜 딜레마가 전혀 아니다. 이 딜레마의 한축(고전적인 발전경제학이 권고한 경로를 계속 따라가고 전통적인 대량생산을 개발도상국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도달지평으로 수용하라는 선택지)은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내놓는다. 딜레마의 첫 번째 축이 제공하는 것은 기껏해야 미래의 전망이 없는 현상유지책이다.

포용적 전위주의라는 접근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견해가 없으므로 이러한 후방진지는 현실주의라는 부당한 평판을 획득한다. 이러한 후방진지는 익숙한 것에 대한 공상적 견고함에 의존할 수 있다. 21세기 초에 부유한 북대서양 국가들에서 쇠락하는 대량생산을 국내외 경쟁에 맞서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일이 우파 포퓰리즘과 동시에 전통적인 사민주의의 경제프로그램의 큰 부분을 이루었다. 가장 부유한 국가에서 이와 같은 프로그램의 영향은 이윽고 정신적 식민주의의 확립된 작동기제를 통해 개발도상국들에서 그 위신을 높여왔다.

이 딜레마의 다른 축(개발도상국의 여건에서 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지식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러한 대안을 실천하는 열쇠는 불가능해 보이는 과업을 조각들로 분해하고 이를 단계별로 실천하는 것이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법적 제도적 요건들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하나의 체계를 실천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도중에 지도를 수정하면서 길을 걷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궤도를 따라서 ‘결합되고 불균등한 발전’은 이 경로를 여행하는 하나의 가능한 방법일 뿐만 아니라 거의 항상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지식]경제로 나아갈 가능성이 가장 부유한 국가들보다 주요한 개발도상국에서 더 제한적이라고 예상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주장을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극복이 가장 발전한 국가에서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야 다른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옳았던 것인지에 대한 마르크스의 추종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과 비교해 보자. 마르크스의 추론은 경제사회의 조직형태들이 단선적인 진화적 계기를 이룬다는 동일한 가정에 의존하였고, 이러한 가정이 그의 모든 사회경제이론을 고무시켰다.  오로지 선진경제들만이 불가피한 여정의 모든 단계들 완성하였을것이기 때문에 선진경제들은 역사가 지정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한 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역사는 마르크스가 예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상대적 후진성의 조건에서 수행된 이행은 과정과 결과에서도 이론이 제시한 모형을 따르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서유럽에서 착수된 혁명적 사회체제들의 짧은 경험들이 보여주었듯이 선진경제국에서도 이행은 그러한 모형을 따르지 않았다.

주변부 경제에 대한 중심부 경제의 우위성 관념은 도전적인 교란이 유발하는 독보적인 이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달리 말하면 그러한 관념은 다른 곳에서 수입된 제도적 안배들이 원래 있던 곳과는 달리 이곳에서 기능하지 않았고 기본적인 필요나 높은 희망을 충족시키지도 못함으로 인해 이러한 안배들을 거부하는 데에서 나오는 장점을 깨닫지 못했다. 중심부 경제에서 더욱 근본적인 대안들에 대한 개방성은 경제적 혹은 군사적 재앙의 자극이 없다면 점차 성취되기 어렵다고 드러났다. 그러한 자극이 존재하는 경우에도 엘리트들의 국가적 혹은 초국가적 연대는 역사적 기회의 창을 닫아걸고 중요한 대안들로 인해 동요하지 않는 질서를 복원한 정도로 강하다는 것을 대체로 증명하였다.

다음 두 가지 요인들은 서로 결합하여 개발도상국들(특히 자신을 세계에서 지배적인 이익과 사상에 저항하는 거점으로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나라들)에게서 고립적 형태보다는 포용적 형태의 지식경제를 발전시킬 기회를 빼앗았다. 첫 번째 요인은 이러한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허약성이다.

여기에서 민주주의는 집단적 전제주의에 희생되거나 아니면 그 변혁적 잠재력이 북대서양 국가의 헌법적 안배들을 모방하면서 빠져나갔다.

두 번째 요인은 정신적 식민주의이다. 개발도상국의 지적 생활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지만 가장 체념적인 나라들에서 우세한 사조에 굴복하는 현상이다. 정신적 식민주의에 대한 해독제는 발전과 제도의 지역적 이단을 육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독제는 해독제가 겨냥하는 메시지만큼 그 목표에서 국제적인 메시지를 공식화하고 전파하는 것이다. 즉 보편적 정통[무조건적 수렴테제]에 맞서 이단들을 보편화시키는 것이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프로그램은 기존 생산형태의 한계점에 도달한 사회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품이 아니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경제발전의 가장 믿을만한 공식[무조건적 수렴]이 어디에서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불편한 사실에 대한 응답이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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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8/21-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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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올림픽휴전을 선언한 이래로 올림픽은 인류사회에 주요한 외교의 기회였습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남한은 북한의 참가를 독려하여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외교적으로 성공시켰고, 이로써 잠재적 전쟁 가능성을 억제하고 남북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 당시 트럼프 미국대통령 간의 일련의 정상회담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도쿄올림픽 기간 동안 이와 유사한 외교적 돌파구는 없을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도쿄방문의 가능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돌출한 일본 고위외교관의 저속한 모욕으로 인하여 올림픽 참관을 거부했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말실수의 사고는 단지 지난 몇 년 간 얼어붙은 한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기회를 낭비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는 일본정부가 가장 가까운 이웃과 민주주의와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외교를 펼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재의 한일간 대치상태가 시작된 지 2년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한국이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예로 징집된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일본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에 일본은 첨단산업의 핵심소재들에 대한 수출통제를 시행함으로써 보복을 가해 외교적 소동을 일으켰습니다. 일본이 수출통제의 해제를 거부하자, 한국은 일본과 군사정보공유협정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했으나, 미국이 개입하면서 정보협정이 공식적으로는 취소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유예되었습니다. 2년이 지난 현재에도 상황은 개선의 기미가 없습니다. 일본의 수출통제는 여전히 유효하고 한국은 일본과 군사정보공유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총리는 2020년 9월 총리가 된 이후 문대통령과 한번도 정상회담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난 6월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한일간 정상의 짧은 만남으로 정상회담을 잠정 합의하였으나, 일본정부가 이를 취소된 뒤 문-스가 정상회담은 결렬됐습니다. 문대통령이 개막식에 참석하고 스가 수상과 만남을 갖는 등 두 나라가 다시 도쿄올림픽을 기회로 활용하는 것에 도전했지만 이의 실패로 양국관계는 빠르게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한국은 수출통제해제와 같은 실질적인 결과를 원했지만 일본은 배상을 명령한 한국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해결책을 테이블에 가져올 것을 요구했습니다. 정상회담의 형식도 문제였습니다. 한국은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1시간 동안의 회담을 원했고, 일본은 올림픽을 위해 방문하는 다른 고위인사들과 마찬가지로 15분간의 짧은 사간만을 고집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방의 사건이 터졌습니다. 소마 히로히사 주한 일본대사관 고위외교관(총괄공사)은 7월 16일 한국언론인과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이 회담제안에서 “자위행위를 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한국만큼 한일관계에 대해 주요하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일본 대사는 “매우 부적절하고 유감스럽다”며 사과했지만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었습니다. 발언사건 이전에는 한국대통령의 자문단 내에서 도쿄를 방문할지 여부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게 갈려져 있었으나, 발언이후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면서, 결국 개회식을 나흘 앞둔 7월 19일 청와대는 문대통령이 도쿄를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소마의 저속한 발언은 보다 커다란 문제를 암시합니다. 일본외교는 한국과 지저분한 불만에 휘말려 있습니다. 냉담하고 이익에 기반한 분석을 하였다면 번영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보다 개선된 관계를 선호했을 것입니다. 2년 전, 도쿄당국의 한국과 무역전쟁이 나쁜 생각이었다면, 현시점에서는 반도체 공급망의 보호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 및 국가안보문제 중 하나로 부상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거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도체 수급문제로 인하여 자동차 및 전자제품의 글로벌 공급부족이 발생하면서 가격이 치솟고 있습니다. 현재시점에서 세계에 자동차와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가장 정교한 유형의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과 대만 두 곳뿐이기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은, 특히 차세대 반도체 공급국가로 중국이 부상함에 따라, 이들 국가의 공급망을 보호하는데 노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만약 일본정부가 의도한대로 작동하여, 일본의 무역전쟁으로 한국의 반도체생산이 중단되었다면 글로벌 공급망이 훨씬 어려움을 겪으면서 매우 취약해 졌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무역전쟁은 일본의 힘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에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첨단소재의 수출을 제한하면 한국기업들이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만, 이는 틀렸습니다. 일본의 무역전쟁이 실패한 것은, 일본의 소재생산기업들이 다른 국가들보다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긴밀하고 효율적인 제조 프로세스를 지닌 한국회사들이 국제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신뢰가 사라지자, 한국의 하이테크 기업들은 신속하게 일본의 공급업체들을 미국, 대만, 중국의 국내 생산업체와 기타 공급업체들로 대체했습니다. 2020년 말까지 한국의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수출통제대상 3대 소재 중 하나)은 한국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야기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무역전쟁 이전의 수준보다 86% 감소했습니다. 도쿄당국은 한국기업들이 일본의 자비를 구걸하게 만드는 기술적인 우위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의 결과로 나타난 것은 무역전쟁으로 인하여 일본의 재료산업계가 피해를 입었을 뿐이었습니다. 최근판 특집에서 아사히 신문은  일본이 지불해야 하는 노예노동배상금보다 훨씬 큰 경제적 손실을 일본기업들에 가한 “극단적인 어리석음”으로 수출통제를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본당국의 자폐적 장애는 일본의 경제적 이익을 손상시키는 것 이상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 중국에 대응해 한·미·일 3국의 협력에 집착하고 있으나, 그동안 미국은 일본의 방해주의적 자세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최근 사례로 4월 2일 메릴랜드 주 아나폴리스에서 한미일3국 국가안보보좌관 회의가 열렸고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대북정책을 검토하였습니다. 서훈 국가안보보좌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 “에 동의를 표명한 반면에, 일본의 키타무라 시게루(Shigeru Kitamura)국정원장은 미국국가안보 보좌관인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이 짜증을 낼 정도로 북한에 대하여 매우 융통성없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스가 수상이 문대통령과의 회담을 거부할 때마다 일본이 3국 협력의 장애물이라는 강한 인상을 미국에게 심어주었습니다.

일본당국은 올림픽의 성공에 모든 노력을 경주한 최선의 계획을 무산시킨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책임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올림픽을 활용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값비싼 기회를 놓쳤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가혹한 평가가 아닙니다. 아마도 10월로 예정된 총선으로 스가 총리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하는 것은 일본의 입장을 개선하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무역전쟁은 한국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고, 어쨌든 한국대통령의 입장은 대법원에 판결내용을 스스로 뒤집으라고 명령할 수 없습니다.

한편, 미국이 3국협력을 더욱 강조하면 할수록, 전쟁범죄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의 강박관념은 부조리하게 보일 뿐입니다. 도덕적으로나 외교전략적으로나 일본당국이 취해야 할 바른 길은 항상 분명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유산(결과)을 인정하고, 배상금을 지불하고, 가장 가까운 민주주의 이웃국가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출처 : Foreign Policy(포린폴리시) on 2021-07-29.

S. Nathan Park

워싱턴에 거주하는 한국계 이민출신의 변호사이자 세종연구원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월, 2021/08/2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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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현재 미국의 공식적인 노숙자는 6십만 명으로 알려져 있으나 비공식적으로는 백만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가용자산이 1만 불도 없는 빈민층이 수천만 명에 이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팬데믹이 발생하고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임시법안의 조치로 세입자의 강제퇴거를 법적으로 제한하였으나 이의 시효가 7월말로 종료되면서 추가로 3-4백만 명이 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에 처했다. 연방의회가 결정을 미루는 가운데, 일단 백악관이 긴급행정의 조치로 사태를 봉합하는 양상이다. 아래 언급하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상황과 해법은 한국 수도권과 내용과 결을 같이하고 있다.


노숙자의 천막이 낮시간 동안 보관되어 있는 모습, 캘리포니아

여러분은 캘리포니아에 살지 않더라도 해변에 늘어선 텐트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오클랜드의 드넓은 노숙자 야영지의 사진이나 로스앤젤레스의 스키드 로우(Skid Row) 지역의 거리에 사는 사람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극단적이지만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노숙자 정책을 제대로 포착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노숙자의 숫자를 좀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캘리포니아에는 미국 전체인구의 거의 12%가 거주하고 있지만, 연방통계에 따르면 2020년 1월 현재 노숙자 인구의 28%가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보호받지 못하는 노숙자 인구 절반이상이 캘리포니아에 거주합니다. 연방정부의 가장 최근 집계에 따르면, 2020년 초 어느 시점 현재에  161,548명의 캘리포니아 주민들이 노숙자였으며 그 중 113,660명이 대피소에 머물렀으며 더구나 코로나-19가 미국을 위기에 빠뜨리기 직전이었습니다.

대량의 노숙자가 존재한다는 정치적 의미는 민주주의 시스템의 기초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흔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연한 노숙자는 민주주의 쇠퇴의 징후이자 앞으로 닥칠 최악 상황의 전조입니다.

이렇게 나빠지면 안 됩니다. 노숙자문제는 해결이 가능합니다. 핵심은 주거비 부담입니다 (반대파주장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신질환이나 약물남용 장애가 갑자기 증가한 것은 아니라 장기적인 주거불안에서 유발된 것입니다). 따라서 해결책은 주거비부담이 적은 주택을 보다 많이 마련하는 것입니다. 특히 현재 주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노숙자가 양산되는 것을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인도적 위기가 심화되면서 정치적 위기로 발전하였습니다. 노숙자문제는 올해 Gavin Newsom 주지사를 소환하고자 하는 캠페인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되었으며, 점점 많은 논평가들이 이를 “캘리포니아의 꿈”이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캘리포니아의 꿈을 이야기하거나 주지사의 선거전망을 운운하는 것은 보다 중요한 그림(주제)을 놓치는 일입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구조적 內因이 캘리포니아의 노숙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Richard Rothstein 은 그의 획기적인 책 “The Color of Law  에서 정부가 수십 년 동안 공공정책의 문제로 구조적 인종차별을 받아 들으면서 이웃을 분리하고, 흑인의 주택소유를 억압하고, 흑인 미국인과 다른 유색인종을 집중된 도시빈곤 지역으로 몰아넣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는 인종차별적 주택정책의 초기 주도지역이었습니다. 버클리는 주택공급을 제한하고 주택비용을 인상하는 단독주택 구역설정의 발상지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정책으로 저소득 가정, 특히 유색인종이 해당지역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설정했습니다.

제정된 지 한 세기가 넘은 버클리의 정책은 현재에 이르러 비로소 단독주택 구역설정을 취소하는 과정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시와 주 차원에서 시행하는 여러 인종차별 정책은 여전히 ​​법률로 남아 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유권자들이 저소득 공공주택의 개발을 제한하기 위해 1950년에 수정한 주의 헌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저소득층인 흑인거주자를 위한 적절한(저렴한) 주택에서 제외시키려는 캘리포니아의 수십 년 간의 노력은 계속해서 진행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흑인은 캘리포니아 주전체 인구의 6.5%를 차지하지만 노숙자인구의 40%를 차지합니다.

국가의 정치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른 경제적 불평등이 캘리포니아의 노숙자 문제 역시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큽니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관련연구자들이 소득불평등이 지역 내에서 주택 공급을 소득부재로 인하여 수요가 따르지 못하면서 노숙자를 양산시킨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 연구자들은 불평등한 도시에서 가장 부유한 가구가 기타 모든 사람의 주택비용을 올려서 저소득 거주자들에게 점점 더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만든다는 이론을 발표하였습니다. 이것은 IT 등 기술의 붐으로 창출된 엄청난 부로 인하여 소득분포의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독차지한 베이 지역(상류층 거주)에서 일어난 일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이 지역의 주택은 인구증가를 따라잡을 만큼 충분한 공급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중하위 소득거주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입찰가를 제시할 수 있는 재력으로 계속해서 가격인상을 강요하는 초부유층과 주택소유의 여부를 놓고 경쟁해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버클리의 주택은 올해 첫 3개월 동안 평균시가보다 약 19% 높은 거래가격을 시현하면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주택의 평균가격을 기록했습니다.

저렴한 주택을 보다 많이 짓는 것으로 이러한 악순환을 깨뜨릴 것입니다. 그러나 투표권을 확대하려는 연방정부의 노력과 마찬가지로 주택공급의 확대를 위한 캘리포니아주의 서민투쟁은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생각하는 상류층에 의해 방해를 받습니다. 저는 앞서 거부권의 한 가지 예를 언급했습니다만, 주 헌법 34조는 저소득 공공주택 프로젝트가 커뮤니티 안에 건설될 때 유권자의 승인을 받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자주 인용되는 다른 예는 일반적으로 새로운 개발에 대한 환경영향 평가를 요구하는 주의 환경품질법(California Environmental Quality Act, CEQA)입니다. 님비 “Not In My Back Yarders”는 환경품질법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법적으로 합리화시키면서 서민주택의 사업을 느리게 하거나 완전히 중단시킬 수 있습니다.

노숙자위기는 민주주의 위기와 같은 내재적 요인에서 성장했지만, 민주주의의 쇠퇴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만연한 노숙자에 대한 캘리포니아의 지속적인 정책실패는 주의 정치시스템에 대한 분노, 냉소 및 불만을 조장할 위험이 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어 보이는 국가는 국민들의 자체생존을 위한 설득력 있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 및 지방의 정책입안자들은 노숙자를 단순히 인도주의적 재난일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노숙자를 범죄화하거나 임시쉼터에 의존하여 노숙자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은 잔인하고 비효율적인 정책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캘리포니아가 적정한 주택공급을 극적으로 늘릴 수 있도록 정치적 자본(재정)을 지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이미 노숙자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즉각적인 주택우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주택우선정책은 약속을 전제로 시작되었습니다. 나의 일터인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노숙자주택 이니셔티브”의 풍부한 연구에 의해 검증된 내용처럼, 노숙자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제공하게 되면 주요한 사회서비스를 통하여 이들에게 행동건강관리 및 약물악용치료를 실시하면서 완전한 회복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됩니다.

다행히 이번 달에 캘리포니아는 올바른 방향으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Newsom 주지사가 서명한 가장 최근의 예산에는 주로 주택우선지원의 노력을 통해 노숙자 퇴치를 위해 배정된 120억 달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당한 금액이 배정되었지만 여전히 초기단계에 불과합니다. 노숙자 문제를 국가에서 수년 간 곪아 터지도록 허용했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결과를 되돌리려면 장기간 보다 많은 노력과 작업, 계획, 공공투자 및 법적 개혁이 필요할 것입니다. 직접적인 비용은 크겠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는 데 따른 간접적인 비용과 피해는 훨씬 막대합니다.

 

출처: 뉴욕타임즈(NYT) on 2021-07-26.

Ned Resnikoff

캘리포니아 대학의 노숙자 및 주택 이니셔티브 관련 정책 책임자

화, 2021/08/24-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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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불명예스럽게 떠났지만 모든 징후는 그가 차기 대선에 출마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지난 선거결과에 대한 그의 경멸은 이제 공화당의 신조가 되었습니다. 연방의회의 점거사태로 마침내 그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법을 깨뜨릴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상황은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걱정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한 가지 큰 불안의 근원 때문에 우리가 밤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만, 미국 안팎에서 그토록 지독한 편집광적인 에너지가 한때 한 사람에게 바쳤고 그가 어떻게 우리의 꿈까지 방해하게 되었는지를 되돌아 보면, 오늘 시점에 우리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매우 위안이 됩니다. 사실인가요? 우리가 그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사실, 그가 커다란 주황색 글씨로 떠벌리는 일은 소설-미디어SNS의 타임라인에서 사라졌고 Facebook과 Twitter의 경영진에 의해 추방되었으며, 이러한 금지조치 때문에 겨우 자신의 블로그를 운용하는 것으로 위축되어 있습니다. 과거 많은 Trump 기업들이 파산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정치행위는 조용히 포기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은 명백히 실패이며, 현재까지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일 아침 트럼프가 무슨 새로운 황당함을 저질렀는지 보기 위해 핸드폰의 화면을 손가락 사이로 엿보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상의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그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극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좋든 나쁘든, 달의 인력에 의해 조수처럼 끌려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여전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미래의 가능성을 엿보고 있기 때문에 그를 과거에 묶어둘 수는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가 차기 대선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고 당의 차기 백악관 후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시기상조이지만 다음 선거를 위해 공화당 후보로 추정되는 후보들의 여론조사를 살펴봅시다.

그는 항상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화당원의 76%가 그를 호의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번 주 오하이오주에서 트럼프가 지지하는 후보가 보다 나은 자격을 갖춘 경쟁자를 물리치고 공화당 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았습니다.  부시 대통령 시절 연설문 작가였던 데이비드 프럼(David Frum)가 트럼프 에 대해 “그가 죽거나 능력이 제거되지 않는 한 그가 2024년 가장 유력한 후보” 라고 말한 것은 사실 그대로 입니다.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 역시 그가 바이든 또는 트럼프에게 투표했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지표입니다.

장래에도 당신의 수면을 계속해서 괴롭힐 위험이 있다는 것은 끔찍한 전망입니다. 2024년 선거일은 조 바이든의 82번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날입니다. 대통령이 출마하면 그는 86세가 될 때까지 집무실에 남아 있게 됩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그가 대선출마의 요청을 수락하는 일에 회의적일 것입니다 (한편, 78세의 나이에 해당하는 트럼프는 상대적으로 젊은 후보로 출마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솔직히 대선후보가 바이든이든 카말라 해리스이든 또는 어떤 민주당 인사가 되든, 트럼프는 선거문화에 익숙한 선동의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 2016년의 대선은 그에게 승리를 안겨주었고 2020년에는 위험할 정도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상기의 시나리오는 시간상 아직 멀었고 너무 우울하다고 인정하고,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가정해 봅시다(트럼프가 대선출마를 않는다는). 그렇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트럼프가 절대로 출마하지 않더라도 트럼피즘은 이미 미국인들의 핏속에 강하게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1월 6일의 연방의회 점거의 반란시도로 마침내 트럼프의 주문을 깨뜨릴 수 있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역으로 그가 거칠고 조잡하고 편협하고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이기적일지라도 궁극적으로 무해하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트럼프에게 충성을 유지했던 공화당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습니다.

낙관론자들은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뒤집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는 군중들이 연방의회 건물을 습격하도록 폭도를 선동하는 미국대통령을 목격하는 것으로 마침내 대부분의 공화당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결국적으로 공화국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하원의 공화당의원들은 트럼프의 범죄에 대한 탄핵에 반대표를 던졌고 상원의 공화당의원들은 그의 무죄선고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이를 반대하던 의원들은 배척당했습니다. 보수강경파의 딸이라는 가계의 후광도 위대한(?) 지도자에 반대한 배경으로 하원지도부에서 제명된 리즈 체니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음모이론가인 Marjorie Taylor Greene과 그녀의 동지인 Matt Gaetz가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후자는 성매매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 졌습니다만, 중요하고 유일한 리트머스 테스트인 트럼프에 대한 충성도를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2020년 선거가 도난당했고 도널드 트럼프는 진정한 대통령으로 남아 있으며 바이든은 찬탈자라는 근거없는 주장은 한때 트럼프의 열광적인 망상에 불과했고, 패배의 진실로부터 상처받은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심리적 메커니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Stop Steal”은 이제 공화당의 신념이 되었습니다. 9개월 후, 공화당원 대다수는 모든 증거와 유권자 사기에 대한 모든 주장이 근거가 없다는 일련의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승리하고 바이든은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민주주의 의지를 강탈하기로 결정한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였다는 최근의 확인조차도 충실한 사람들의 신념을 바꾸지 못할 것 같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2월 법무장관 대행에게 “선거는 조작되었다고 선언하고 나머지 일은 나에게 맡기라”고 말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애리조나 주 상원의원들은 선거관리인들을 독방에 감금할 것을 촉구했었습니다.

공화당 지지집단이 2020년의 트럼피즘에 충성스럽게 고집하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코로나-19의 현실을 부정하고 바이러스를 저지하는 데 필요한 일(백신접종)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한 가장 큰 예측지수는 지난 11월 그들이 바이든과 트럼프 중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여부입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민주당원의 86%가 한번 이상 접종을 맞았습니다만, 공화당원은 45%에 불과합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백신접종을 나치의 유대인박해 또는 KGB의 방문노크에 비유하고, 개별 주차원에서 공화당의원들이 ‘백신을 너무 과도하게 밀어붙였다는 이유’로 공중보건공무원을 해고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트럼피즘에는 두 가지의 신조는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전문과학지식에 대한 경멸과 팩트에 대한 무시입니다. 전문가가 과학자든 선거관리자든, 혹은 사실이 바이러스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지 아니면 지난 11월에 투표한 총계와 관련이 있는지 여부가 하나입니다. 트럼피즘은 사실을 무시하고 강력한 조타수에게 무릎꿇을 것을 요구합니다. 통치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은 진리이지 이들에게 과학과 팩트는 진리가 아닙니다.

때때로, 자신이 속한 정당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는 공화당 인사들을 만납니다. 자신의 주 소속 의료관계자가 제공한 백신접종의 필요성에 대한 브리핑을 외치는 아칸소 주지사의 얼굴을 조명한 비디오 장면은 지켜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 순간 주지사는 자신이 속한 공화당이 더 이상 과학이나 민주주의를 믿지 않으며 트럼피즘이라는 바이러스가 모든 장기를 감염시켰다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 자신의 복귀여부는 실제로 부차적인 주제이나 트럼피즘이라는 질병은 이미 미국정치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정당을 집어삼켰고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출처 : The Guardians(영국 가디언) on 2021-08-06.

Jonathan Freedland

가디언 지의 정치분야 정기 기고자

수, 2021/08/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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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순전히 중국판 무협 판타지 장르라는 쉔환玄幻과 (짐작하시는 바와 같이 현학玄學의 나라 중국답게 판타지奇幻이나 SF科幻에 빗대어 이런 표현을 만들어 냈다.) 이미 5억명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중국 웹소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설맞이 영화대목(春節檔이라 불린다)에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영화<소설가를 암살하라刺殺小說家>를 보러갔다. 나뿐 아니라 같이 영화를 본 중국친구들 모두, 트레일러만 보고, 성공한 웹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지레짐작했었다. 한 유명 인문사회과학출판사가 영화의 원작이 된 중편소설집 <비행가飛行家>와 작가인 솽쉐타오雙雪濤를 띄우는 것을 보고, 중국 웹소설의 수준이 대체 어느정도인지 궁금해졌다.

솽쉐타오 双雪涛

진짜 디스토피아가 돼버린 홍콩을 대체해 대륙의 영화촬영지로 입지를 굳힌 수직도시 충칭重慶과 액자소설속의 전설버전인 경성京城의 몽환적이면서도 화려한 배경, 빠른 이야기 전개와 이에 걸맞게 게임을 방불하는 그래픽이 압도적이었다. 알리바바의 마윈을 노골적으로 상징하는 재벌기업의 총수가, 전설속에선 신이 된 빌런 적발귀赤髮鬼로 등장해 붉은 갑옷을 입은 ‘세일러문 전사’에게 응징당한다. 코믹하게 보일정도로 브리꼴라쥬 정신을 갖춘 중국판 X-man들이 소설가를 사이에 두고 목숨을 걸고 싸운다. 이런 2차원문화 (중국 청년들이 일본 망가의 영향을 흉내내어 보이는 기상천외한 정서를 의미한다) 요소들도 꽤 신선했다. 영화의 주인공인 루저屌絲소설가와 유괴당한 딸을 되찾아 주는 것을 댓가로 그 소설가의 암살을 강요받은 전직은행원은 둘다 작가의 분신이라는 것은 대충 알겠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대자본가를 처단하겠다는 뻔한 결기말고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책을 뒤늦게 사읽고 원작이 웹소설과 아무 연관이 없는 둥베이 문예부흥의 대표주자인 빠링허우 소설가의 순문학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가는 등단직후부터 타이완, 대륙의 문학상을 차례로 휩쓸어 왔다.

<역사, 기억, 생산>(2016)이라는 둥베이 지역문화연구서에 의하면 이곳은 우리가 흔히 조선족자치구가 있는 그 지역에 갖고 있는 편견과 달리, 50-70년대에 일제의 만주국이 남겨 놓은 공업기반과 6.25를 계기로 시작된 소련의 지원에 힘입어 1949년에 갓 건국한 ‘공화국의 장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 곳이다. 이곳은 당시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었고, 여기 사회주의식 노동자 문화를 꽃피워 민중들이 노동자 신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1978년 실은 바텀업으로 촉발된 중국의 개혁개방이 한때 농촌과 지역의 일시적 경제적 부흥을 가져왔다. 하지만, 90년대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글로벌 경제에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둥베이의 대공장은 구조조정으로 문을 닫고, 자산은 조각조각 나뉘어 사기업에 팔려나갔다. 마치 작가의 고향인 션양瀋陽을 연상시키는 경성이 적발귀에게 당한 것처럼. 이를 반대하고 공공의 자산을 보호하고 싶어하던 이들은 사적이익을 노리는 소인배들에게 문자그대로 ‘암살’됐다. <북방은 모든 것이 사라지고>에서 소설가의 아버지, <암살..>에서 적발귀에게 죽임을 당한 소설가의 극중 아버지 지우텐久天 이야기이다. 그렇게 둥베이는 점점 슬픈광야가 되어 갔다. 둥베이문학과 영상예술은 이 과정에서 벌어진 비루하면서 아름답고, 비장하면서 익살스러운 이곳 사람들의 만인보를 그려나간 작품들이다.

이때 ‘정리해고’를 당해 길거리의 노점상으로 나앉은 후에도 가부장적 체면에 죽고 사는 북방의 노동자들은 표정을 바꾸지 못했다. 하지만 그 자녀세대인 빠링허우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정글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필살기를 갖춰야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청소년기에 IMF사태를 겪은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가 가볍지 않다고 본 중국 정부는 둥베이부흥東北振興을 외치며 지역경제와 그 기반이 되는 대형국영기업을 살리기 위해 뒤늦게 돈을 쏟아부었다. 때마침 둥베이 집단, 향토, 사회주의 오락문화가 키워낸 쟈오번샨趙本山이 주도하는 희극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대도시에 진입하기 위해 분투하는 ‘촌스럽고 거친’ 둥베이인들의 위화감이 주요한 웃음의 소재였다. 리얼리즘의 대가 쟈쟝커도 둥베이를 가상다큐멘터리<24성이야기二十四城記>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션양에서 청뚜로 이주한 한 군수공장단지에 거주했던 노동자군상과 그 가족들의 연대기이다. 국영기업의 일터와 그 임직원이 거주하는 사택단지가 하나의 독립된 공동체이자 세계였던 중국의 ‘따유엔大院’문화를 잘 묘사했다. 한국의 강우석도 투자한 저주받은 블랙코미디 <공장의 피아노鋼的琴>도 둥베이의 회한을 연극적 무대로 잘 표현했다. 둥베이의 황금기에 대한 노동자들의 향수와 이를 재현하고 싶어하는 의지는 극중극의 환상속에서만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색된다. 2010년 이후에는 자오번샨의 후예라 할 수 있는 빠링허우 희극배우 따펑大鵬이 이번엔 둥베이출신 농민을 지식노동자와 사업가로 업그레이드한 루저屌絲男士씨리즈로 성공을 거뒀다. 작년에 그는 뜻밖에도 자신의 고향과 가족을 동원해, 희극대신 동아시아의 향촌마을, 친족관계의 ‘살아있는 화석’인 둥베이 이야기를 극사실주의로 표현한 <길상여의吉祥如意>(2020)를 선보이며 둥베이문예부흥을 이어간다.

“영화속에선 소설이 시작되는 장백산(백두산)도 이름을 지워 장소성을 희석했더군요. 마윈을 현실에서 물러나게 한 건 소설로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예술가가 아니라 소설속에서는 이미 죽어버린 (시)황제쟎아요? 지금 중국에서 대자본 욕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어요? 둥베이문학을 웰메이드 차이나 블록버스터로 완전히 탈바꿈시킨 감독의 역량을 극찬하던 중국의 평론가들은 결국 현실의 무력감을 철지난 포스트모던 타령으로 때우려는 것 아닌가요?” 좀 직설적으로 물어봤더니, 젊은 중국인 평론가가 의미심장하게 답한다. “제가 보니 이 소설은 왕샤오보王小波의 대표작 <완쇼우쓰萬壽寺>의 형식을 차용하고 있네요.” 중국의 카프카나 조이스로 불리는 요절한 천재 작가 왕샤오보는 글좀 쓰고 싶어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한시절의 성장통처럼 빠져드는 대표적 자유주의 지식인이다. 솽쉐타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액자소설 형식을 갖는 이 소설은 명문가출신 한족무장으로 한때 안록산의 난에 가담했다가 다시 황제에게 투항한 역사적 인물 설숭薛嵩과(그의 할아버지가 바로 고구려를 멸망시킨 설인귀이다!) 그 주위 여성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이 설화를 이리 비틀고, 저리 뒤집어 변주하는 수많은 ‘리셋’ 서사로 반복하면서 권력자와 지식인을 통렬하게 풍자한 소설속 작가의 입담에 배꼽을 잡게 된다. 만일 솽쉐타오가 정말로 이 소설을 왕샤오보에게 헌정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그의 근대성 비판은 실로 매우 중층적일 것이다.

둥베이문예부흥과 달리 중국 정부의 대규모 투자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고 지난 10년간 이 지역 인구의 30%가 감소했다. 100년전 이 지역에서 저들의 구호인 협력 및 화합과 달리 오족을 고통에 빠뜨린 일본제국주의의 만행도 역사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백약이 무효라지만, 북조선과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이 열린마음으로 ‘신오국협화’를 이룬다면 둥베이에 다시 공화국의 봄이 올지도 모르겠다. 얼마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주한 중국대사가 둥베이지역에 대한 한국의 관심과 투자를 환영한다는 말씀이 예사롭지 않다(SCMP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둥베이 지역 정부는 미국기업들에게도 둥베이 투자를 권유하고 있다).

 

*경향신문에 이 서평의 축약본이 실렸습니다. 경향신문의 허락을 득하여, 다른백년에도 전재합니다.

https://www.khan.co.kr/culture/book/article/202105281413001

목, 2021/08/2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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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기후위기를 가져오는 온실가스 효과에서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70% 수준이며, 메탄과 이산화질소, 오존 등이 나머지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산화탄소의 대기속 잔류기간은 백 년을 훨씬 넘기는 반면에, 메탄은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80배 이상으로 강력하지만 대기속 잔류기간은 10-20년 내외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향후 수십 년 동안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시간을 벌기 위하여 탄소중립 못지않게 메탄가스의 배출을 중단하는 것이 재앙을 피하는 핵심적 사항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구온난화와 극한기후를 초래하는 데 점점 더 중요한 원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의 방출을 국제사회가 과감하게 중단하지 않는 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으로만 기후재앙을 피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메탄의 제거는 우리에게 시간을 줍니다.” —Durwood Zaelke, 거버넌스 및 지속가능한 개발연구소.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IPCC은 지난 월요일에 1990년 이후 유엔의 여섯 번째 기후평가를 구성하는 세 보고서 중 첫 번째 보고서에서 메탄에 대한 경고를 발표할 것이라고 가디언이 지난 금요일 보도했습니다. 영국 신문에 따르면, 물리학(기상현상)을 다루는 IPCC의 차기 보고서 1부는 “세계가 돌이킬 수 없는 변화(tipping-point)에 얼마나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지를 자세히 보여줄 것입니다.”

이산화탄소는 대기 중에 훨씬 오래 남아 있지만(최소 백년 이상), 약 20년 동안 대기에 머무는 메탄은 이산화탄소와 대비하여 온실효과가 최대 87배 강력하여, 단기적으로는 지구온난화의 가장 주요한 동인입니다. 2020년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활동의 섯다운에도 불구하고 열포획가스hest-trapping gas의 배출량은 작년에 모두 기록적인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국립해양대기청(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이 밝혔습니다 .

메탄오염의 주요 원인에는 산업화된 축산, 매립, 화석연료추출 및 누출이 있습니다. 작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탄광, 석유 시추 및 소위 천연가스를 위한 수압파쇄 작업에서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최대 40% 많은 메탄이 방출되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한 기후 과학자는 이번 연구가 놀랍기는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해 우리가 즉각 행동할 수 있는 영역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5월 유엔환경 프로그램(UN Environment Programme)은 전세계의 메탄 배출량을 신속하게 줄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으며, 연구자들은 이 보고서가 “기온상승을 1.5°C로 제한하고 온난화의 속도를 빠르게 줄이려는 전세계의 노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전략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Guardian 은 IPCC가 다음 보고서에서 같은 메시지를 반복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거버넌스 및 지속가능한 개발연구소(Institute for Governance and Sustainable Development)의 회장이자 IPCC의 수석검토자인 Durwood Zaelke는 메탄의 감소가 아마도 단기적으로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C 높은 온도상승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메탄을 줄이는 것은 지금부터 2040년까지 온난화를 늦출 수 있는 가장 큰 기회”라고 말합니다. “아니면 우리는 티핑-포인트에 도달하는 비상사태에 직면합니다.”

메탄배출의 즉각적인 감소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대서양 해류시스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중대한 경고를 보낸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입니다.

Zaelke는 “기후변화는 마라톤과 같습니다. “우리는 경주를 계속해야 합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으로는 향후 10년 동안 기온상승억제의 효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며, 1.5도 이상으로 기온이 상승하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우리의 능력을 너무 심각하게 손상시키기 때문에 마라톤을 지속할 수 없게 됩니다. 메탄을 줄이는 것이 우리에게 일단의 시간을 벌어다 줍니다.”

영국은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제26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 (COP26)를 개최합니다. 이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2019년 이후 처음으로 만나 온실가스 오염을 줄이기 위한 국가공약NDC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UN에 따르면 기존에 제출한 각국의 배출감소 목표는 21세기에 치명적인 수준의 온난화를 방지하기에는 부적절합니다.

패트리샤 에스피노사(Patricia Espinosa)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지난 주에 “우리의 현실은 세기말까지 기후변화를 1.5°C로 제한한다는 파리협정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는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확인합니다 “사실, 우리는 3°C 이상 온도상승을 향해 반대편(최악)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IPCC의 포괄적인 3부의 평가(기후변화의 영향impact에 대한 두 번째 부분과 잠재적 솔루션에 대한 세 번째 사항)의 작성내용은 내년 초에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를 작성한 연구자들은 2021년 2월 이전에 발표된 모든 기후연구를 종합하여 준비하였으며 각국 정부가 기후행동계획을 세울 때 상기의 연구문건을 활용하여 주길 희망합니다.

Zaelke는 금요일에 정책입안자들은 100일도 채남지 않은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의 기후회담에 앞서 메탄에 대한 IPCC의 조사결과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COP26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라고 그는 Guardian에 말했습니다.

Zaelke는 “우리는 글로벌 수준의 메탄협정을 맺어야 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각국의 정부가 메탄배출을 줄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새로운 국제기후조약을 개발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출처 : CommomDreams.Org on 2021-08-07.

KENNY STANCIL

CommonDreams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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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8/2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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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적 형태의 지식경제를 발전시키지 못하거나 이러한 발전을 정치-경제적 기획으로서 상상조차 못한 것은 부유한 국가들뿐만 아니라 그러한 국가의 정치에서 좌파와 우파에게도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우리는 관념의 영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정치생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혹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요인들과 계급적 이해관계만으로는 부유한 국가들에서 정치의 방향을 설명할 수도 없고 이러한 요인들이 성장을 어떻게 촉진시키고 불평등을 어떻게 줄이는지를 알아낼 수도 없다.

이러한 사회들뿐만 아니라 여타 모든 사회들의 역사적 경험은 관념의 형성적 역할과 관념 부재의 형성적 역할까지도 동시에 보여준다. 이러한 역할의 실례로서 동시에 이 장에서 탐구한 여건들에 대한 배경으로서 미국과 여타 북대서양 국가들에서 1930년대부터 지금까지 집권한 진보파들과 개혁파들이 포용한 의제의 진화를 고려해보겠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그의 협력자 다수는 제도와 정책에 있어서는 견결하고 진정한 실험주의자들이었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은 변혁적 의제를 추구할 수 있는 비상한 기회를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뉴딜의 제도적 실험주의는 연방정부와 대기업 간의 조정된 행동에 관한 조합주의적 관념을 그 조직원리로 삼았다. 이러한 조합주의적 관념의 주요한 목표는 시장질서를 민주화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를 재안정화하는 것이었다. 조정된 행동의 실천은 나중에 전시경제의 여건 아래서 극단적으로 계속되었다. 경제 회복과 재건에 대한 활기찬 가정들과 회복과 고용을 위한 많은 정책들의 세부사항에서 초기 뉴딜은 초기 나치 정권을 포함하여 같은 시대 다른 국가들의 정부가 경제 불황에 대해 취한 대응과 닮았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정치인과 정책 입안자들은 그들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때에는 필요로 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들은 그들이 싸워야 할 유일한 장애물은 권력과 이익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민주당원과 독일 독재자는 모두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의 지배를 받았다. 조합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대안을 발견하고 싶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뉴딜 정책의 발전에서 조합주의적 충동은 경제불안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에 초점을 한정하였다. (사회보장 프로그램은 그 가장 중요한 실례였다.) 경제불안에 대한 해독제의 제공은 전쟁과 전쟁경제 이후에 대량소비를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들로 차례로 이어졌다. 대량소비로의 전환은 부채와 신용의 확대, 흑자경제와 적자경제 사이의 극명한 불균형, 그리고 대중적인 케인스주의의 정신에서 경기순환에 대응하는 경제운영에 의존했다.

궤도의 각 단계를 거치는 동안에 동일한 가정들은 여전히 유지되었다. 이러한 가정들에 따르면, 국가는 시장경제를 더욱 집중적으로 규제할 수 있고 누진세와 사회지출을 이용하여 불평등을 사후적으로 완화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할 수 없는 일은 시장체제의 구성적인 제도적 법적 안배들을 재발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안배들은 원래 그대로이다.

지식경제의 포용적 형태의 발전에 유용한 사유는 이러한 가정들에 도전해야만 한다. 하나의 청사진이나 하나의 체계라기보다는 하나의 경로로 이해되는 법적 제도적 요건들은 이러한 대안의 조건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다. 이 경로는 정책적 아이디어들의 기성 재고를 구성하는 기획들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 경로는 재산과 고용의 법적 체제들에 대한 혁신으로 나아간다. 그러한 혁신들은 국가에 맞서 시장의 공간을 증가시키거나 축소하는 것 그 이상을 행한다. 그러한 혁신들은 하나의 시장질서를 다른 시장질서로 대체한다.

이러한 관념과 경험의 역사는 현대 정치학과 정치경제학의 담론형태를 설명하는 데 일조한다. 한동안 북미와 서유럽에서 통치 엘리트들의 지배적인 기획은 기성의 경제적 제도와 법을 거의 수정하지 않으면서 미국식 경제적 유연성과 유럽식 사회적 보호를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국가적 정치의 중심을 차지한 중요한 의제는 사민주의를 효율성과 공정성의 이름으로 더욱 “유연하게” 만들고 동시에 자유주의를 “사회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사민주의를 자유주의적으로 만드는 주된 방법은 안정적이고 자본집약적인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내부자와 현직자들을 보호하는 노동법을 고쳐서 실업자와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사람들에게 손해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사회적 경제적 권리들이 어떤 특정한 직업보유에 의존하기보다는 보편적이고 휴대 가능한 것이 되도록 이러한 권리들을 설계하려는 것이었다.

자유주의를 사회적으로 만들자는 주요한 제안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에서 발생하는 이득에 비례하여 경제불안에 대한 보증수단들을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종종 실현되지 않은 약속으로 남았다. 이러한 제안의 이행은 (1945년부터 1975년까지 북대서양 국가들에서 흔히 있었던 것과 같이) 급속한 경제성장의 배경 아래서 행동하는 재정적으로 원활한 국가를 요청할 수도 있다. 그러한 성장은 경제 전반에 걸쳐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확산으로 가능하게 된 생산성의 지속적인 향상을 요청할 수도 있다.

경제적 기회와 권한을 향상시키고 불안정고용과 투쟁함으로써 자유주의를 사회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사민주의를 자유주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자랑할 만한 종합을 사실상 후퇴시키는 가운데 사민주의를 공동화하는 것이다.

요원한 경제적 정치적 성취물이 아니라 생생하고 영향력 있는 관념으로서 포용적 지식경제의 부재는 오늘날의 부유한 나라에서 우파와 죄파 나아가 중도파에게도 정치와 정책을 형성하는 데에 조력해왔다. 지식경제의 부재는 이러한 부재가 경제 침체와 불평등에 미치는 결과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렇게 해왔다. 지식경제의 부재는 또한 이러한 부재가 경제정책과 경제성장의 현재 경로에 대한 대안들의 가정에 대해 미치는 효과를 통해 직접적으로 그렇게 했다. 원리에서나 실제에서도 이러한 대안의 결여는 1930년대 위기에서 정부와 기업 간의 조합주의적인 조정 행동에 대한 발전된 대안의 빈곤이 야기한 영향만큼 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러한 사민주의적이고 사회자유주의적인 중도파의 왼쪽에는 경제에 대한 정부의 주도에 대한 신뢰를 잃었지만 제도적으로 보수적인 사민주의와 사민주의의 자유주의화가 진보파들의 역사적 목표를 완수하는 방법으로서 부적절하다고 인식하는 좌파들이 있다. 그 중도파의 오른쪽과 사회민주주의를 자유주의화하고 자유주의를 사회적으로 만드는 중도파의 프로그램의 오른쪽에는 우익 포퓰리즘이 존재한다. 우익 포퓰리즘은 중도파의 기획이 해결하지 못했거나 심지어 거론조차 못했던 문제들과 열망들을 가진 노동계급 다수의 충성을 얻으려고 한다.

이와 같은 우파와 좌파의 공유된 가정들을 고려하고 포용적 전위주의라는 대안을 인정함으로써 이들 간의 논쟁이 변화될 수도 있는 방식을 고려해 보자.

첫째로, 19세기 이래로 고전적 또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이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두 세력도 여전히 시장경제 또는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의 변형들”에 대한 문헌에서 탐구된 차이들과 같이 매우 제한된 범위의 변형만을 허용하는 안정적인 법적, 제도적 건축구조를 갖고 있다고 상정한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초기 단계를 넘어 발전을 이루려면 제산체제와 자유노동의 법형식에 대한 혁신뿐만 아니라 국가 또는 국가가 수립한 분권적 기구들이 기업과 함께 작업하고 기업들이 서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조건들을 규정하는 안배들과 같은 근본적인 안배들에 대한 혁신까지 요구하지만, 앞서 말한 좌파와 우파의 공유된 가정은 이러한 포용적 전위주의의 프로그램을 아예 배제한다.

둘째로, 현대의 진보파들과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대안적인 시장체제를 상상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경제의 공급측면에 대해 변혁적인 접근법을 가질 수 없다. 진보파들은 대체로 보수파들에게 공급측면을 내주고 수요지향적인 정책의 우선성에 전념해왔다. 공급측면에 대한 전통적인(고전적 자유주의적인 또는 신자유주의적인) 보수파들과 포퓰리스트들의 기획은 그들이 자명하다고 여기는 법적 제도적 내용을 가진 시장질서를 보존하거나 복원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경제적 제도들을 재편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경제에 대한 정부개입으로 낙인찍고 시장을 억압하는 것과 이를 쇄신하는 것도 구별하지 못한다. 이들은 다른 시장체제의 존재를 상상할 수도 없고 상상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셋째로, 구조적 대안이 없는 경우 이러한 좌파와 우파는 대량생산을 선진적인 제조업과 관련된 서비스업(경제생활의 부분들에서 지식경제가 취하는 형식)으로 전환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하기보다는 철 지난 공장제 대량생산을 방어하는 데 몰두한다. 스위트하트 약정은 해당 국가를 떠나거나 사업규모를 축소하겠다고 위협하는 기업들을 처리하고 무역 규제들도 동일한 [철 지난 공장제 대량생산]의 방향을 구성한다.

전통적인 대량생산을 더욱 발전된 후속 형태로 만들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시간을 벌기 위한 방법으로서 대량생산을 지지하는 것과 포드주의 제조업의 사후세계를 사라진 대안의 대체물로 사용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이다. 고전적 발전경제학이 계속 누리고 있는 권위에도 불구하고 철지난 포드주의 대량생산은 개발도상국에서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동일한 이유로 [선진국에서도] 미래가 없는 절망적인 정책이다.

넷째로, 이러한 좌파와 우파는 경제성장의 기본전략으로 금융완화정책(중앙은행이 시행하는 확장적 통화정책)의 사용을 묵인한다. 정부활동에 대한 재정적 제약은 확장적 재정정책의 역할과 특히 경제의 물리적 기반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공투자의 전망을 위축시킨다. 그러나 금융완화정책은 잃어버린 경제성장 전략을 대신할 수 없다. 성장과 고용을 촉진하는 금융완화정책의 효과는 곧 소진된다.

경제활동 규제의 범위, 공공 서비스와 사회적 권리들의 수준, 금융조달 및 재분배적 특성, 누진세의 미덕, 심지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공적자원과 정부시책의 이용과 관련하여 이러한 좌파와 우파의 차이들은 실질적이다. 그러나 정책의 수립과 실행에 이르면 그 차이들은 정도의 문제로 내려앉는다. 내가 열거한 실천적인 정치경제학의 공유된 가정은 이러한 차이들의 의미를 제한한다. 공유된 가정들은 사회적으로 포용적인 경제성장의 확보 실패가 공유된 가정들의 호소력을 떨어뜨리는 상황에서도 경제적 유연성과 사회적 보호를 결합하고 사민주의를 자유주의화하고 자유주의를 사회적으로 만드는 중도적 프로젝트의 생명력을 갱신한다.

정치와 실천적 정치경제학의 지평 축소는 그 의미를 해명해주는 역사적 배경(20세기 중반의 사민주의적 타협안과 타협 조건들에 대한, 내가 말한 중도파, 좌파, 우파의 재론실패)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 타협안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소란스러운 시기에 예견되었고 대전 직후 30년 동안 마무리된 협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협상의 조건 아래서 생산과 권력의 조직을 바꾸려고 시도했던 세력들은 이러한 도전을 포기했다. (혹은 이러한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에 그들은 국가정치의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 대가로 국가는 경제를 더욱 집중적으로 규제하고 누진적 과세와 사회지출을 통해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며 경기순환에 맞서 통화 및 재정 정책을 사용하여 경제불안을 완화시킬 권력을 획득할 수 있었다. 시장질서를 새로이 상상하고 만들려는 시도의 완전한 포기는 하나의 관념 그 이상으로 변하였다. 그러한 포기는 이러한 나라들에서 제도나 관행 나아가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경제적 교리로 정립되었다. 그러한 포기는 내가 말한 중도, 진보, 보수적 입장들의 제도적, 이념적 맥락을 규정했다. 이러한 입장들의 전제들은 각 입장의 가정들에서 유래하였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들 중 어떤 것도 이러한 타협안의 제도적, 이념적 여건들 안에서 해결될 수도 없고 심지어 거론조차 될 수도 없다. 그러한 문제들을 거론하고 해결하려면 우리는 경제적, 정치적 제도를 혁신함으로써 사민주의적 타협안의 조건들을 재론해야 한다. 어쨌든 우리는 구조적 변화가 일상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방식으로서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그러한 작업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19세기와 20세기의 급진적인 프로그램적인 의제들이 상상하듯이 하나의 확정된 제도적 체제를 다른 제도적 체제로 전면적으로 대체하는 형태로 일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들 가운데 선진부문과 후진부문 간에 경제의 계층적 분할이라는 문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분할은 대다수의 근로자와 기업이 더욱 생산적으로 되는 데에 필요한 수단을 거부하고 사회적으로 포용적인 경제성장의 기반을 파괴한다. 역사적인 형태이든 최신의 자유화된 형태이든, 사민주의적 타협안이 선진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 사정은 그러한 사회의 현재 정치생활에서 매우 특징적인 좌절, 즉 노동계급 다수에게 자신의 이익과 열망이 희생당해 왔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바로 여기에 세계 최고 부국들에 대한 포용적 전위주의 프로그램의 의미가 있다. 포용적 전위주의 프로그램의 가정과 제안들은 이러한 중도파, 좌익, 우익 진영의 그것과 차이를 보인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만 경제적 침체와 불평등에 응답을 제공할 수 있다. 포용적 전위주의 프로그램은 20세기 중반의 타협안이 배제한 것(시장과 국가의 관계에서 행동의 여지를 다소간 부여하기보다는 시장을 규정하는 안배들을 쇄신하려는 시도)을 고수함으로써 이러한 타협안의 조건들을 재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포용적 전위주의는 경제에 대한 하나의 아이디어 그 이상이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정치와 실천적 정치경제학에서 하나의 입장을 구성한다. 이러한 입장은 그와 같은 정치경제학의 핵심 내용을 이루는 세 가지 연결된 주제들 중 첫 번째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나머지 두 주제는 금융과 실물경제의 관계 나아가 노동과 자본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재정은 나쁜 주인보다는 좋은 하인이 되어야 한다. 재정은 스스로에게 봉사해도 무방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생산적인 의제들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자산의 창출을 위한 자금조달은 현재로서는 자본시장 활동의 작은 부분을 이루고 있지만 장차 주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지식경제는 단순히 효율성을 제고하고 자본을 절약하는 기획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집약적인 급진적 혁신을 요구한다.

우리는 부정적인 수단과 긍정적인 수단을 둘 다 활용함으로써 이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산출물 증가와 생산성 향상에 그럴 듯한 기여를 하지 못하는 금융활동을 억제함으로써 부정적인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 우리는 자본을 생산으로, 특히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자산의 창출로 연결시키고 자본에 대한 접근과 첨단 기술, 관행, 지식에 대한 접근을 조합하는 안배들을 만들어냄으로써 긍정적인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다.

지식경제가 갇혀 있는 고립적 전위부문들 바깥에서 더 높은 생산성을 추구하려면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서 노동의 지지를 강화하는 일련의 제도적, 법적 혁신들이 필요하다. 노동수익의 증가는 역사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혁신 작업을 지속적으로 전진시키는 데 거의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더욱이 노동의 권한을 강화하면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더욱 확산된 형태가 간직한 경제적 잠재력은 자산 소유자의 재정적 이익이나 경영자의 권력적 이익에 희생되지 않게 된다. 심화되고 확산된 지식경제는 자유노동의 여건에서 번창한다. 한마디로 더 자유롭다면 더욱 좋은 것이다.

포용적인 지식경제의 법적 제도적 요구사항들에 대한 나의 논의는 자본과 노동의 관계에 대한 그러한 요구사항들의 함축들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단기적으로, 우리는 생산의 재편이 세계경제에서 분산적인 계약상의 안배들과 노동과 세금 차익에 근거하여 노동력의 점차 많은 부분을 불안정한 고용에 내모는 것을 저지해야만 한다. 우리는 공장제 대량생산(민간고용)과 행정적 포드주의(정부고용)의 상황에 부응하는 기존 노동법 이 외에 새로운 생산의 현실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한 제2의 노동법을 만들어야 한다. 제2의 노동법은 시간제 업무, 임시적 업무 및 하도급 업무 혹은 임노동자가 누리는 보장과 혜택도 갖지 못한 임노동의 변형으로 수행된 비자발적인 자영업 등 변칙적인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의 조직과 대표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 노동자들이 적절하게 조직 및 대표될 수 없거나 조직과 대표의 결과들이 충분하지 못한 경우 제2의 노동법은 불안정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고용관계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보호형식은 가격중립성이라는 법적 요건일 수 있다. 이러한 조건들 아래서 수행되는 노동은 안정적인 전일제고용체제 아래서 수행되는 가장 근접한 등가적인 노동과 최소한 동일한 임금이 지급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임노동이 자유노동의 고차적인 형태, 즉 독립자 영업과 협동조합 또는 동업관계에 자리를 양보함에 따라 노동은 장기적으로 더욱 자유로워진다. 독립자영업과 협동조합이 자원의 대규모 집적의 요구[규모의 경제]와 양립할 수 없다면, 독립자영업과 협동조합은 자유노동의 지도적인 형태가 될 수 없다. 독립자영업과 협동조합은 생산의 자원과 기회에 대한 분산적 접근의 조건, 즉 재산 및 계약 체제에 대한 혁신이 없다면 그러한 요구와 화해를 이룰 수 없다. 전통적인 통일적인 재산권은 분산적인 경제적 주도권을 조직하는 몇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취급되어야만 한다. 재산과 계약에 관한 대안적인 사법체제들은 동일한 시장경제 내에서 실험적으로 공존해야만 한다.

지식경제의 보급되고 급진화된 형태의 확립, 금융을 생산에 더 훌륭하게 가동하기 위한 금융과 실물경제의 관계의 재편, 불안정노동의 보호에서 시작하여 자유노동의 고차적 형태인 독립자영업과 협동조합으로의 전진 등이 제도적으로 보수적인 사민주의와 자유사회주의와는 다른 대안의 핵심이다. 이러한 방안들은 20세기 중반에 자유화된 사민주의적 타협안이 더 이상 성취할 수 없는 과업, 즉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경제의 계층적 분할로 인한 불평등을 해결하는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경제적 의제의 주요한 축들을 규정한다. 이러한 정치경제학은 초기 단계들을 넘어 전진하려면 이 책의 앞부분[특히 제3장과 제4장]에서 논의된 사회, 정치, 문화에서의 여타 변화들에 의존해야만 한다.

첫째로, 실천적 정치경제학의 이러한 의제는 의제에 합당한 역량을 갖추려면 기계와 백과사전으로서의 정신에 맞서 상상력으로서 정신을 지지하는 교육방식에 의지한다. 이러한 의제는 모든 문화영역에서, 심지어 경제활동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영역에서도 실험주의의 강화에 의지한다. 이러한 광범위한 문화적 변화가 없다면, 우리 경험의 지배적인 성격은 발견에 대한 제약들과 함께 경제적 재건 프로그램을 압도하고 약화시킬 우려가 크다.

둘째로, 이러한 의제는 사람과 그 능력에 대한 투자라는 역사적 사민주의의 최대 유산을 포기하기보다는 발전시키는 것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적 포드주의(표준화된 공적 서비스의 관료적 제공)를 고수하는 것과 계약을 통해 공적 서비스를 이윤 추구 기업으로 이전하는 것 사이에 양자택일적으로 체념해서도 안 되며 그럴 필요도 없다. 공적 서비스의 제공은 광범위한 협력적 활동을 통해 정부와의 협력관계에 시민사회를 참여시키는 것을 필요로 한다. 경제적 정치적 제도들을 쇄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또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에 관한 법적 제도적 형식에서도 혁신을 이루어야만 한다.

셋째로, 이러한 의제는 시장의 조직과 공적 서비스의 제공을 위한 안배들을 포함하여 사회의 기성구조를 압력과 시험의 대상으로 삼는 고에너지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고에너지 민주주의는 위기를 변화의 조건으로 요구하지 않으면서 구조변화를 일상적 경험의 평범한 연장으로 만든다. 고에너지 민주주의는 우리가 사회와 경제의 형성적 안배들과 가정들을 부분적이고 단계적인 형태로 바꾸도록 허용한다. 고에너지 민주주의는 정치의 온도를 높이고 정치의 속도를 촉진하는 정치 제도 하에서 그렇게 한다.

심화되고 보급된 지식경제, 변증법적인 교육, 공적 서비스 제공에서 국가와의 협력을 통한 시민사회의 자체 형성, 고에너지 민주주의 등은 상호보완적인 기획들이다. 그것들 중 어느 하나에서든 진전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모든 것에서 우리의 진전이 제약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일련의 기획들은 어떤 체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상황과 선택은 다른 전선에서 전진의 실패로 부과되는 제약조건에 봉착하기 전에 어떤 전선들에서 우리가 먼저 전진해야 할지를 정해야만 한다.

이와 같이 결합되고 불균등한 발전의 과정에서 포용적 전위주의 프로그램은 주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모든 도덕적 이익뿐만 아니라 물질적 이익도 상당한 경제적 침체와 무력화의 상황에서는 달성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경험, 권능, 보수를 공유할 기회를 거부한다.

일단 우리가 이러한 노선을 따라 사유하고 행동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정치에서 좌파, 우파, 중도파 사이의 관계를 재해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대중적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환상적인 비제도적인 지름길로서 포퓰리즘이라는 정치적 사고와 행동 형식을 더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제성장과 생산역량의 발전에 대한 우리의 물질적 이익과 행위주체성(개인들로서, 나아가 국가의 보호 아래 조직된 사람들로서 경제와 국가의 기성제도에 대해 작용하고 혁신하고 형세를 전환시키는 우리의 능력)의 고양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이익을 연결시킨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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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8/2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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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국의 실패규모는 숨이 턱 막힐 정도입니다. 그것은 민주당지도자나 공화당지도자의 실패가 아니라 미국 정치문화의 끊임없는 실패이며, 이는 미국 정책입안자들이 다른 사회를 이해하는 데 무지하며 관심이 없다는 점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개발도상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은 예외없이 부패를 경험했습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전반기에 미국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인도차이나에서 싸웠습니다. 이에는 민주당의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그의 후임자인 공화당 리처드 닉슨 대통령도 책임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거의 같은 해에 미국은 라틴아메리카 전역과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 독재자들을 세우고 지원했지만, 수십 년 동안 참담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1961년 초에 CIA가 파트리스 루뭄바 암살을 암암리 지원한 이후, 콩고 민주 공화국의 모부투 독재 정권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1980년대에는 로널드 레이건 휘하의 미국은 좌파정부를 방해하고 전복시키기 위한 대리전쟁으로 중앙아메리카를 황폐화했으며 해당지역은 아직도 치유되지 못했습니다.

1979년 이후 중동과 서아시아는 미국의 외교정책의 어리석음과 잔혹함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아프칸 전쟁은 42년 전인 1979년 지미 카터 대통령 행정부가 소련이 지원하는 정권과 싸우기 위해 이슬람의 지하디스트를 은밀히 지원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곧바로 CIA가 지원하는 무자헤딘은 소련의 침공을 도우며 역설적으로 소련을 쇠약하게 만드는 분쟁에 가두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을 폭력과 유혈 사태의 40년 동안 끝없는 나락의 상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아프칸을 포함하여 중동과 서남아 지역 전체에 걸쳐 미국의 외교 정책은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1979년 이란의 샤(미국이 설치한 독재자)를 축출한 이란혁명에 대응하여, 레이건 행정부는 이란의 신생 이슬람 공화국과 전쟁과정에서 이라크 지도자 사담 후세인을 지원하고 무장시켰습니다. 당시의 이란-이라크의 전쟁에는 대량 유혈사태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 화학전이 뒤따랐습니다. 황당하게도 상기의 유혈사태(이라크의 실패)는 사담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이어지고 1990년과 2003년 두 차례 미국 주도의 걸프 전쟁을 야기시켰습니다.

‘아프간의 비극’이라는 마지막 라운드는 2001년에 시작되었습니다. 9.11 테러 공격이 있은 지 겨우 한 달 만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지원했던 이슬람 지하디스트를 전복시키기 위해 미국 주도의 침공을 명령했습니다.

그의 뒤를 이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쟁을 계속하고 더욱 많은 군대를 추가했을 뿐만 아니라 CIA에 사우디아라비아와 협력하여 시리아 대통령 알-아사드를 전복시키도록 명령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잔인한 시리아 내전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듯이, 오바마는 NATO에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엘-카다피를 축출하라고 명령했고, 리비아와 이웃 국가들(리비아에서 전투기와 무기 유입으로 불안정해진 말리 포함)에게 10년 간의 불안정을 조장했습니다.

이들 사례의 공통점은 단지 정책실패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의 기저에는 모든 정치적 도전에 대한 해결책이 군사개입이나 CIA가 배후인 불안정화(CIA-backed destabilization)이라는 미국외교 정책기관의 믿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미국 외교정책 엘리트들이 극심한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다른 나라들의 욕망을 완전히 무시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대부분의 경우에서 보듯이, 미군 및 CIA 개입은 심각한 경제적 궁핍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가군에서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고통을 완화하고 대중의 지지를 얻는 대신, 일반적으로 이들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소수의 기반시설을 폭파하는 한편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이 목숨을 걸고 해외로 도주하도록 결과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지출을 얼핏 보기만 해도 아프가니스탄 정책의 어리석음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아프가니스탄재건 특별감찰관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01년에서 2021년 사이에 약 9,460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그러나 1조 달러에 달하는 지출을 했지만 미국은 아프칸인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9,460억 달러 중 8,160억 달러, 즉 86%가 미군을 위한 군사비로 사용되었습니다. 더구나 너머지 1,300억 달러 중에 830억 달러가 아프간 보안군에게 지원되고 약 100억 달러는 마약금지 작전에 150억 달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미국 기관에 사용되는 등,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미국의 지원에 혜택을 실제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경제적 지원” 자금으로 210억 달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테러를 지원하고 국가경제를 강화한다는 명분으로 효과적이고 접근가능하며 독립적인 법률시스템의 개발을 우선 지원했기 때문에, 이마저도 지출의 많은 부분이 실제 발전과는 거의 관련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 지출의 2% 정도, 아마도 2% 미만이 기본 기반시설 또는 빈곤감소 서비스의 형태로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미국은 깨끗한 물과 위생, 학교건물, 진료소, 디지털 기반투자, 농업 장비 및 확장, 영양 프로그램 및 기타 많은 프로그램에 투자하여 경제적 궁핍에서 국가를 구제했어야만 했습니다. 대신 기대수명이 63세, 산모사망률이 10만명 당 638명, 발육부진아의 비율이 38%인 나라를 남겼습니다.

미국은 1979년에도, 2001년에도, 그리고 그 이후 20년 동안도 아프가니스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군사개입이 불가피했다면, 미국은 산모의 건강, 학교, 안전한 물, 영양 등에 투자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이고 번영하는 아프가니스탄을 육성 지원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했어야 했습니다.

특히 아시아 개발은행과 같은 기관을 통해 다른 국가와 함께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의 인도적 투자는 아프가니스탄과 기타 빈곤한 지역에서 유혈 사태를 종식시키고 미래의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지도자들은 그런 사소한 일에 돈을 낭비하지 않을 것임을 미국 대중에게 강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슬픈 진실은 미국의 정치계급과 대중매체가 가난한 나라에 가차없이 무모하게 개입하면서도 그들 나라의 사람들을 경멸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미국 엘리트들은 미국의 가난한 사람들조차 비슷한 경멸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카불 함락 이후 (한때 미국의 중동개입을 충동질한) 미국 대중매체는 예상했다는 듯이 아프가니스탄의 회복불가능한 부패를 미국의 실패 탓으로 돌립니다. 미국인의 문제의식에 대한 부재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지에서 전쟁에 수조 달러를 지출한 후 미국이 행한 노력의 결과물로 보여줄 것이 모래 위의 뿌려진 피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1-08-18.

Jeffrey D. Sachs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로 해당대학의 지속가능개발센터 소장이자 3대째 UN사무총장의 자문역으로 SDGs를 주도하였으며 현재 지속가능개발솔루션 네트워크의 의장을 맡고 있다

월, 2021/08/30-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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