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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포커스] 제28회 좋은기업상· 제5회 좋은사회적기업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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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포커스] 제28회 좋은기업상· 제5회 좋은사회적기업상 시상식

admin | 화, 2020/02/04- 19:33

[월간경실련 2020년 1,2월호 시사포커스(4)]

제28회 좋은기업상·제5회 좋은사회적기업상 시상식

김건희 재벌개혁본부 간사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는 2019년 12월 16일 월요일 경실련 강당에서 ‘제28회 좋은기업상’과 ‘제5회 좋은사회적기업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임세은 경제정의연구소 기업평가위원이 사회를 맡아 진행된 이번 시상식은 정미화 경실련 공동대표의 인사말과 이광택 한국ILO협회 이사장의 축사로 시작되었다.

제28회 좋은기업상 수상기업은 서울도시가스(주)(비제조·서비스업 최우수기업)와 휴켐스(주)(금속·비금속·화학업 최우수기업)였다. 제5회 좋은사회적기업상 일자리부문 최우수기업에는 사임당푸드(영)가 선정됐고, 지역사회공헌·사회서비스 제공부문 최우수기업은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 우수기업은 ㈜희망하우징이 선정됐다.

제28회 경실련 좋은기업상은 2018년 한국거래소 코스피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했으며, 6개 평가항목에 의한 정량평가 및 정성평가 후 정밀한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기업을 선정했다. 이번 평가대상기업은 총 383개사로, 비제조·서비스업 부문에는 서울도시가스(주)가, 금속·비금속·화학업 부문에는 휴켐스(주)가 최종 수상기업으로 결정되었다.

좋은기업상 평가지표는 건전성·공정성·사회공헌·환경경영·소비자보호·직원만족의 6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항목별 세부 평가항목들을 평점화해 점수를 산정한다. 이번 수상기업들의 경우 서울도시가스(주)는 건전성 16.18점, 공정성 16.86점, 사회공헌 10.77점, 소비자보호 10.00점, 환경경영 5.60점, 직원만족 10.69점으로 총점 70.08점을 받았다. 특히, 사회공헌과 직원만족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서울도시가스(주)는 가정 및 산업용 천연가스를 공급하고 해외자원 개발에도 많은 투자를 하는 등 대표적인 에너지 종합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국민의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과 환경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서울도시가스 장학회를 설립하여 꾸준히 지역 봉사활동을 해오는 등 기업의 공익적 활동 또한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기업이다.

휴켐스(주)는 건전성 18.07점, 공정성 16.35점, 사회공헌 6.08점, 소비자보호 10.25점, 환경경영 7.00점, 직원만족 10.97점으로 총점 67.72점을 받아 금속·비금속·화학업 부문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다. 휴켐스(주)는 특히 건전성과 환경경영 항목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정밀화학 핵심소재 전문기업인 휴켐스(주)는 질산을 기반으로 폴리우레탄 핵심재료 및 산업용 화약연료와 매연저감 촉매제를 공급하고 있다. 환경 관련 인증을 획득하고 연구개발을 포함한 생산 전 과정에 걸쳐 환경친화적 경영방침을 실천하고 있다. 2004년 윤리경영을 선포한 이후 기업윤리에 근거해 경영활동을 수행하며 후원활동 또한 지속적으로 이어 오고 있다.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고부가가치 사업영역 확장 및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기업이다.

경실련 좋은사회적기업상은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유도하고 정착시키기 위해 2015년 처음 제정하여 시상해 오고 있다. 좋은사회적기업상 평가대상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 자율경영공시를 하는 인증 사회적기업으로, 3년 이상 공시한 이력이 있어야 한다. 제5회 경실련 좋은사회적기업상은 공익적가치, 경제적가치, 윤리적가치 항목의 평가점수에 따라 일자리제공과 지역사회공헌 및 사회서비스제공 2가지 부문에서 수상기업을 선정했다. 일자리제공부문 최우수기업으로는 사임당푸드(영)가 선정됐고, 지역사회공헌 및 사회서비스 제공부문 최우수기업은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 우수기업은 ㈜희망하우징이었다.

일자리부문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된 사임당푸드(영)의 평가 총점은 64.33점으로 공익적가치 26.01점, 윤리적가치 27.80점, 경제적가치 10.52점이었다. 특히, 평가항목 중 공익적가치와 윤리적가치 항목에서는 최상위 수준의 점수를 받았다. 전통한과와 떡 등을 생산·판매하고 있는 사임당푸드(영)는 총 매출의 5% 이상을 기부활동에 사용하고,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를 제공하며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된 이후 재정지원사업 우수업체로 선정되기도 하며 제품의 경쟁력 강화뿐만이 아닌 지역발전 공헌을 위해서도 노력해 오고 있다.

사회적협동조합 희망나래는 공익적가치 20.19점, 윤리적가치 27.80점, 경제적가치 14.18점, 총점 62.17점으로 지역사회공헌 및 사회서비스 제공부문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다. 평가항목 중 윤리적가치 및 경제적가치 항목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건축서비스업을 영위하고 있는 희망나래는 취약계층에 대한 일자리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공공형 주간보호시설을 위탁운영하는 등 사회적기업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희망하우징은 공익적가치 23.39점, 윤리적가치 24.05점, 경제적가치 13.17점, 총점 60.61점으로 지역사회공헌 및 사회서비스 제공부문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었으며 특히, 공익적가치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실내건축 전문기업인 ㈜희망하우징은 저소득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각종 집수리공사와 노후주택 개선 등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경실련 제1회 좋은사회적기업상을 수상하기도 한 ㈜희망하우징은 기업을 설립한 당시의 신념을 가지고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변함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 향상 및 사회적기업의 정착을 확대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다. 또한 추후 기업평가에 있어 유효한 방향으로의 평가지표 개선 등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을 발굴하는 데 힘쓸 예정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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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1,2월호 특집. 2020년 경실련이 바란다(1)]

21대 국회의원 선거, 국민주권실현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

윤철한 정책실장

21대 국회의원 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다. 선거는 우리 사회의 비전과 국정운영 방향을 결정하고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중요한 계기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부동산 가격폭등, 청년 일자리 부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심화되는 양극화와 사회 갈등도 극복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국정농단에 저항하는 촛불시민의 힘을 받들겠다고 했고 문재인 정부 출범과 맞물려 순탄하지 않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적폐 청산과 국정교과서 수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부자 증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다. 촛불 민심은 잊고, 오직 당리당략과 기득권 유지에 매몰되었다. 여당은 소통과 화합보다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으로, 야당은 개혁 발목잡기로 일하지 않는 국회로 국민에게 실망을 줬다. 정치에 국민은 없었다.

국민은 광장으로 다시 모였고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나뉘어 국론은 분열됐다. 정치인은 분열을 부추겼고, 정치는 기득권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정당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국민은 실망을 넘어 정치를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젠 국회가, 정치가, 정당이 스스로 바꾸길 기대할 수 없다. 국민이 정치를 바꿔야 하고,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21대 총선은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놀고먹는 국회의원, 막말하는 국회의원, 선거 때만 기웃거리는 국회의원, 재산만 불리는 국회의원, 재벌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국회의원은 없어져야 한다. 국민의 아픈 목소리를 듣는 국회의원, 국민을 존중하는 국회의원, 정책을 개발하는 국회의원, 소신투표 하는 국회의원, 공부하는 국회의원, 국민과 소통하는 국회의원이 뽑혀야 한다.

경실련은 2020년 4월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권자정보공개운동’을 넘어 ‘국민주권실현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과거 선거에서 국민은 정당을 기준으로 투표했고, 정당이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바랐고, 민생을 안정시켜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신만을 생각했고, 정당의 이해득실만 관심이 있었다. 국회의원은 국민에 무관심했고 무능했다. 국민을 존중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과거 경실련의 유권자운동은 투표권이 있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후보자들의 정보를 제공하고 바른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이었다. 유권자의 올바른 선택을 돕기 위해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분석했고, 쉽고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후보를 골라주는 후보선택도우미(Wahl-O-Mat)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나아가 공명·정책선거와 투표참여 캠페인을 지속해 전개했다.

21대 총선 국민주권 운동은 국민이 주권자로서 무능하고 소신 없이 권력만 탐하는 정치인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걸러내는 적극적 행동을 기반으로 한다. 주권자들의 주권재민 인식의 확산과 실현, 기본 자질과 자격을 갖추지 못한 정당과 정치인 물갈이, 국민에 무관심하고 무능했던 정당과 정치인 탄핵, 이념과 소신 없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심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당과 후보자의 정책을 검증하고 후보자의 자질을 평가해 시민과 함께 온라인에서, 현장에서, 거리에서 “21대 총선 IN·OUT 캠페인‘ 전개할 예정이다. 또한 개혁의제 제안 및 공약검증, 헛공약 및 반민생·반개혁공약 발표, 20대 국회의원 의정평가, 정당선택도우미, IN·OUT 대자보, 국민주권실현 헌법소원, 역대총선 공약이행평가, 공천기준제시 및 공천반대명단 발표, 전과·병역·재산증식·막말·반개혁입법발의 의원 발표 등 다양한 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최악 중 최악으로 꼽히는 20대 국회. 국정농단으로 시작된 촛불과 탄핵은 이제 20대 국회의 정당과 국회의원으로 향할 차례다. 21대 총선에서는 국민이 주권자고, 정치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월, 2020/02/03-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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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7,8월호 – 전문가 칼럼]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거리둔 협력’으로

 

박만규 아주대 교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가 멈출 줄 모르고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다행히 지금까지 방역이 가장 잘 된 나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 요인들은 무엇일까?

많은 요인들이 있겠지만 우선은 감염원을 끝까지 추적하는 정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포기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할 때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추적을 포기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바이러스를 관리할 수 있었다. 또한 코로나19의 출현을 염려해서 진단법을 준비했었고 출현하자마자 바로 키트를 만들었으며 정부는 긴급사용승인 허가를 내주었던 상호 협력, 즉 소위 3T, 즉 Test(진단), Tracing(추적), Timing(타이밍)의 3박자가 모두 잘 맞아떨어졌던 이유도 있었다.

왜 정부와 보건당국과 민간이 서로 협력할 수 있었을까? 이는 평소에는 서로 헐뜯고 싸워도 위기 때는 뭉치는 한민족 특유의 민족성에 기반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 하나를 든다면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손 씻기와 더불어 생활방역의 핵심 중 하나인 마스크 착용의 적극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서양인들과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은 마스크 하나는 참 잘 쓰고 다닌다.

그렇다면 왜 서양인들은 마스크 쓰는 것을 싫어할까? 이는 마스크라는 단어에 대한 이미지와 관계가 있다. 우리가 쓰는 ‘마스크’라는 말은 영어의 mask에서 왔다. 우리말에서의 ‘마스크’는 병균이나 먼지 따위를 막기 위하여 입과 코를 가리는 물건이라는 제한된 의미로만 쓰이지만, 본래 영어에서는 보다 광범위하게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얼굴의 일부뿐 아니라 전체를 가리는 물건을 두루 가리킨다. 그러니까 방독면, 검투사용 투구 등까지도 mask가 된다.

이 mask는 프랑스어 masque에서 왔고 이는 중세 라틴어 masca에서 왔다. 그리고 이는 프로방스어(provençal, 남부 프랑스 방언)의 mascarar에서 기원했다고 본다. 이는 ‘검게 만들다, 어둡게 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눈화장을 위해 칠하는 ‘마스카라’(mascara)도 바로 여기에서 온 말이다. 요컨대 얼굴을 ‘검게, 어둡게 한다’는 뜻에서 얼굴을 ‘가린다, 차단한다’는 뜻이 나온 것이다. 또한 여기에서 비유적으로 ‘가장(假裝)하다’, ‘은닉하다’, ‘가리다’, ‘감추다’라는 뜻이 나왔다. ‘가장무도회’를 영어에서 masquerade(프랑스어 mascarade)라고 하는데 이것도 물론 mask와 같은 어원이다. 요컨대 마스크는 검게 만든다는 뜻에서 출발하여 가린다는 뜻이 되었고 얼굴을 가리는 물건을 가리키게 되었다.

반면 한국어에서 ‘마스크’가 차지하는 지위는 다르다. 우리말에는 얼굴을 가리는 ‘탈’, ‘가면’, ‘복면’, ‘마스크’라는 단어들이 다 달리 존재한다.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등 유럽의 언어들에서는 이들이 모두 하나의 단어이다. 최초의 시작이 가리는 물건에서 시작했다가 연극용 가면으로 확장되었고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와서 보건용의 의미를 추가한 것뿐이다. 만약 우리가 ‘마스크’라는 외래어 대신에 ‘탈’이나 ‘복면’(覆面), 혹은 ‘가면’(假面)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고 상상해 보면 간단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도 부정적이었을 텐데 우리는 보건용만 ‘마스크’라고 하니까 부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는 미세먼지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니 ‘탈’이나 ‘가면’과 달리, 마스크가 생활에서 친숙한 물건이 되어 있다.

서양인들에게 마스크의 핵심적 의미는 얼굴을 가리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부정적 이미지가 아주 강하다. 자기의 정체(identity)를 가리는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둑이라든지 테러범이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이미지가 덧붙여지고, 특히 이슬람의 히잡에 대한 거부감도 가세를 하면서 마스크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다. 특히 프랑스가 19세기 말에 세계에서 제일 먼저 신분증을 도입할 때 사진을 붙인 나라인데, 이때 마스크나 히잡 등을 착용하지 못하게 한 역사도 있어서 유럽인들에게는 더욱 더 부정적인 의미가 강화되었다, 얼굴이나 신체를 가리는 의상을 가진 이슬람에 대한 반감이 그것을 가속화한 것이다.

요컨대 한편으로는 언어·문화적인 요인으로 마스크 착용을 꺼리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문화적인 이유로 마스크 착용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에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덧붙여지는데, 이는 서양인 특유의 개인주의와 관련이 있다. 겸손이 미덕인 동양과 달리, 그들은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강하다, 그러니까 굳이 내가 마스크를 쓸 필요가 없다’는 일종의 자신감을 표현하려 한다. 특히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러한 심리적 경향의 극단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영도력하에 있는 한 국민들은 별 문제가 없을 것이란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코로나19 자체를 폄하했었다. 그러다 막상 사망자가 너무 많이 발생하니 뒤늦게 입장을 바꾸었다. 하지만 회의나 행사 시에 다른 참석자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는 상황에서도 한동안 본인은 쓰지 않았다. 그것은 ‘나는 강하다’는 자의식의 표출이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자신감으로 퇴치하는 게 아니지 않는가!

이처럼 서양인들은 마스크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지만 반대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의 코드로 접근한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써야 감염을 시키지 않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예의인 것이다. 이처럼 마스크 착용을 사회적인 예의로 접근하다 보니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방역은 마스크 착용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어서, 적절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감염원으로부터의 격리가 동반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끈질긴 감염원 추적으로확진자를 조기에 찾아내고 이들을 체계적으로 격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K-방역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격리’에 해당하는 영어 어휘가 quarantine(쿼런틴)인데 이 말의 본래 뜻이 참 아이러니하다. 이 말은 40을 뜻하는 옛 이탈리아어 quarantina에서 온 말이다. 1660년대에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베네치아 세관에서 페스트 발생국들로부터 입항하는 배들을 40일 동안 대기하도록 조처하였다. 40일이 지나도 특별한 증상이 없을 때 입항을 허가했는데 이는 당시에 잠복기를 40일(quarantina giorni, 즉 forty days)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40일’을 의미하는 quarantina가 1670년경부터는 아예 ‘격리 기간’을 뜻하게 되었고 이후 이 단어가 영어에 들어와 quarantine이 ‘격리’와 ‘검역’을 뜻하게 되었다.

현대 의학에서는 림프절 페스트와 패혈증 페스트의 잠복기는 1-6일이며, 폐 페스트의 잠복기는 1-3일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 당시에 잠복기를 너무 길게 잡았었음을 알 수 있다. 요즘은 항생제 치료 개시 후 48시간까지 격리를 한다고 하니 이래저래 예전에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격리를 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의학이 발전하여 코로나19의 잠복기를 14일로 잡고 있는데, 만일 이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면 40일 동안 격리를 하고 있을 테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처럼 잠복기 파악도 되어 있고, 의료체계도 비교할 바 없이 발전했는데도, 현재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각국이 손쉽게 대처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경제의 몰락 우려가 확산되는 등, 사회 전반에 더욱 큰 파장이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왜일까? 치사율이 예상보다 높은 측면도 있지만,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유럽으로 가는 데 단 하루가 걸리지 않는 초연결사회로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좋든 싫든 전 세계가 톱니바퀴와 같이 서로 꽉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따라서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만을 실행해서는 결코 이를 해결할 수 없다. 이와 동시에 사회적 ‘협력’도 실천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우리 모두가 처해 있다.

그런데 동양과 서양이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식이 다르다.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에는 소위 ‘책임지는 자유’, 즉 개인의 책임하에서 사회적 접촉과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권리를 많이 주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는 경제 살리기 명분도 있지만 방역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유럽 정부들도 경제를 손상시키기 싫어 많이 느슨하게 접근하는 바람에 초기 대응에 실패했었다. 특히 네덜란드나 스웨덴 같은 경우는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서 개인의 권리를 더욱 우선시했다. 반면에 동양의 경우, 우선 중국은 봉쇄에 개인의 권리를 희생시켰다. 한동안 바이러스가 잘 잡혀가는 듯 하였지만 전문가들은 재확산의 우려를 표명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수백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 내고 거주와 이동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면서 얻은 결과라서, 이것이 과연 올바른 해결책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상당히 특이한 사례인데 봉쇄를 선택하지 않아 경제활동을 유지하면서 비교적 자율적으로 많은 국민들이 방역 조치를 따르는, 경제와 방역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노력한 케이스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좋은 결과를 도출하였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제는 바이러스와 공생해야 하는 시대에 돌입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제는 일상이 달라져야 한다. 새로운 표준이 일상이 되는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로 가야 한다. 봉쇄를 해서 일상을 정지시키고 경제를 죽여서도 안 되고,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일시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정책에만 만족해서도 안 된다. 이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일상화해면서 여기에 사회적 협력을 추가하여 이를 시스템화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위축되어 가는 경제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이제 사회적 협력을 동시에 시행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거리 둔 협력’이라 부르고자 한다.

IMF 위기 때 보여준 금 모으기 운동 때처럼 다시 한번 우리 국민들이 단결하면 ‘거리 둔 협력’을 통해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보건, 의학, 과학기술, 사회적 시스템, 인문정신 모두!

인류의 역사를 보면 많은 민족과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전염병이 그 동인이 된 경우가 많았다. 위기 때 위기로부터 잘 배우는 나라가 흥한다. 우리는 잘 배우고 있는가? 아직은 그런 것 같다.

계속 잘하자! 더욱 잘하자!!

금, 2020/07/3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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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9,10월호 – 시사포커스(4)]

공매도 금지 기간 동안 반드시 제도 개선 이뤄야

 

권오인 재벌개혁본부 국장

금융위원회는 8월 27일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주식시장 리스크가 증대하자 9월 15일자로 종료되는 한시적 공매도 금지조치를 추가로 6개월 연장했다. 금지 기간 동안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와 개인 투자자 공매도 접근성 제고 등 시장에서 요구하는 제도 개선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한 주식시장 불안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발표한 제도 개선 방향을 봤을 때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우려감이 크다.

불법이 허용되는 공매도 거래시스템
현행 공매도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진다는 점이다. 차입계좌에 실제 입고되지도 않은 무차입 상황에서 공매도를 한 후, 결제일 전에만 갚으면 매매시스템에서 적발되지 않는다. 불법 세력들이 실수로 결제일 전에 갚지 못할 경우 간혹 적발되곤 한다. 2018년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의 무차입 공매도 사건이 대표적이다.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은 이틀 동안 156개 종목에 대해서 무차입 공매도를 쏟아 냈고, 거래량 중 합법보다 불법 수량이 많은 종목도 다수였다. 이러한 거래 환경을 봤을 때,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적발된 81건의 무차입 공매도 건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공매도를 위한 차입시스템은 골드만삭스인터내셔널의 사례에서 나타나 있듯이 전화 또는 메신저로 협상이 완료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차입결과 수동 입력 칸에 차입하지도 않은 주식을 수기로 입력할 수 있게 되어있다. 사실상 무차입 공매도를 허용해주는 거래시스템인 것이다.

도입 시부터 불공정
공매도를 위한 대차기간, 종목, 절차 등에 있어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는 거의 제한을 받지 않는 반면, 개인투자자는 자본력과 신용도가 낮기 때문에 일부 종목만 허용되고 있어 형평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다. 특히 대차기간도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의 경우 1년 정도인 반면, 개인 투자자는 60일로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공매도는 자본력과 정보력이 있는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의 전유물인 것이다. 때문에 공매도 거래의 1% 남짓 되는 개인투자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시장조성자(LP)에 대해서 직전 가격 이하로 공매도 호가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업틱룰을 예외로 허용해주고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이를 악용할 경우 특정 종목을 공매도하여 하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 김병욱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업틱룰 예외 거래대금이 2014년 2조 6,138억 원에서 2018년 19조 4,625억 원으로 약 17조 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업틱룰 예외 거래대금이 전체 공매도 거래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14년 4.6%에서 2019년 8월 말 기준 20.3%까지 증가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불법 등으로 번 돈 외국으로 유출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통해 수익이 창출되는 포지션인 만큼, 주체 세력들은 하락을 조장하기 위해 한국경제와 기업들에 대해 온갖 악성루머를 퍼뜨린다. 때문에 건전한 기업의 가치마저 하락한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거래의 70% 가까이 개인투자자가 차지하는 만큼, 공매도에 대한 방어가 쉽지가 않다. 2018년 8월 박용진 의원실 보도자료를 보면, 11개 외국계 증권사가 2017년까지 5년 동안 불법 공매도 등으로 번 1조 7,300억 원을 본사로 송금했고, 같은 기간 외국계 은행 40곳도 본사에 배당한 돈이 3조 4,500억 원에 달했다. 공매도 거래의 60%를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가 공매도에 취약한 한국 주식시장에서 번 돈을 외국으로 유출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 10명 중 6명 이상, 공매도 폐지하거나 금지 기간 연장해야
경실련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는 8월 1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리얼미터)을 통해 실시한 공매도 관련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지난 8월 7~8일(2일)간 진행됐다.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3.1%p이었다.

여론조사결과 첫째, 국민 10명 중 6명(63.6%)이 공매도를 폐지하거나 금지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답했다. 둘째, 국민 10명 중 7명(71.5%)은 공매도 제도가 개인 투자자에 피해를 집중시킨다고 응답했다. 특히 우리 주식시장 전체 공매도 거래의 대부분을 외국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가 차지하고 있어, 진입 형평성 논란과 피해 또한 개인 투자자에 집중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공감한다’는 응답이 71.5%(매우 공감 43.1%, 다소 공감 28.4%)로 압도적이었다. 셋째, 국민 10명 중 7명(70.5%)은 공매도 제도가 미래 주력산업 발전을 저해한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9월 15일 만료되는 한시적 공매도 금지조치를 6개월 연장한 기간 동안 개인 투자자와 국민의 목소리를 담아 제도 개선을 제대로 이뤄내야만 한다.

공매도 폐지안도 반드시 검토해야
금융위원회, 증권업계, 외국인 투자자 등 공매도를 옹호하는 세력들은 유동성 공급과 가격발견이라는 순기능을 내세운다. 공정한 거래 환경이 조성된 상황에서 순기능을 이야기한다면 모르지만, 불법이 가능한 거래시스템과 주가지수가 3000포인트도 되지 않는 우리 주식시장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금지 기간 동안 해야 할 일은 우선 최근 5년간 공매도 거래에 대해 전수조사하여 불법이 있을 경우 엄벌부터 해야 한다. 다음으로 무차입 공매도를 적발할 수 있는 시스템을 조속히 도입하고, 불법에 대한 형사처벌과 징벌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정보력과 자본력이 없는 개인에게 공매도를 확대한다는 계획은 철회해야 한다. 오히려 시장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이러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지 못할 경우, 공매도 폐지안도 검토해야 한다.

금, 2020/09/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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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1년 1,2월호 – 특집. 코로나19와의 불편한 공존(1)]

코로나 1년, 방치된 자영업자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 총연합회 사무총장

 

지난 14일 정부의 방역 조치 조정안 발표를 앞두고 중소상인, 자영업자 단체들이 모여 정부에 ‘거리두기 지침을 전면 재검토하라’라는 요구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해당 단체들은 헬스장, 필라테스, 코인노래방, 실내 골프연습장, 스터디 카페 등 집합 금지 및 제한 조치가 적용된 업종의 단체들이다. 단체들은 대부분 그간 영업 제한에 따른 손실 보상과 향후 정상적인 영업을 요구하는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번 집단행동은 그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변화에 따라 집합 금지 및 제한을 반복했던 중소상인 및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임계점에 도달했으며, K방역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그들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2020년 1월 20일은 한국에서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날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19의 위력은 전 세계의 사회, 경제 활동을 마비시켰고 국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동안 한국은 K방역의 성과를 통해 전 세계에 방역 모범국가로 맹위를 떨친 적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되면서 방역체계의 균열이 시작됐고, 몇 번의 위기 상황을 통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한 정부의 핵심 방역 정책은 바로 집합 인원의 제한이다. 사적 모임의 인원수를 제한했고, 사적 모임의 장소로 지목된 소매업과 서비스업종에 대해 집중적인 집합 금지와 제한 명령이 내려졌다. 대표적으로 실내 스포츠업은 영업이 전면 중단됐고, 카페업은 매장 내 취식이 금지되고 테이크아웃만 허용됐다. 수도권에서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밤 9시 이후의 전면 영업 제한 조치가 이루어졌다.

피해업종에 대한 지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난지원금의 형식으로 지원된 피해업종에 대한 지원은 1차의 경우 지역사랑상품권의 방식으로 전 국민에게 보편 지급되었는데, 이는 경기 활성화가 주된 목적이었다. 2차와 3차의 경우에는 영세 업체들에 대한 집중 지원이 목적이었고, 여기에 집합 금지와 제한 업종들에 추가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업체별로 2~300만 원 정도가 지급됐다. 그 과정에서 선별 지원과 보편 지원의 양자 선택을 두고 효율과 타당성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제는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 선별과 보편 지원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선 집합 금지와 제한 업종에 대한 두터운 손실 보상을 해야 한다. 손실 보상 내용이 전혀 없는 현행 감염병예방법과 지자체 고시에 의한 집합 금지와 제한은 더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오죽하면 헌법 소원의 대상이 됐을까. 가까운 일본에서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보상으로 하루 63만 원에 이르는 금액을 지급하는 사례를 살펴야 한다. 경직된 소비 시장과 오프라인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 지원과, 집합 금지와 제한 업종을 대상으로 하는 소비 쿠폰 역시 필요하다. 거의 모든 업종에 걸쳐 소득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에 소비 활성화를 위한 보편 지원과 맞춤형 소비 활성화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의 피해의 핵심인 상가 임대차 문제도 이번 기회에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정부의 선별 재난지원금에 대해 집합 금지, 제한 업종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이유도 임차료가 원인이다. 한 달에만 수백만 원에서 1~2천만 원의 임차료를 여전히 지급해야 하는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에게 재난지원금은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임대료 멈춤법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법안이 발의되긴 했지만,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라는 기득권의 주장에 힘을 잃고 있다. 과연 임대인의 재산권 침해만큼 임차인의 재산권 침해는 존중받았던 적이 있는가?

지금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할 시점이다. 특히 재정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기재부 장관이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 대기업 규제 완화를 약속할 게 아니라, 영업 중단과 제한을 통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을 만나야 한다. ‘코로나로 죽으나 굶어 죽으나 어차피 죽는다면 그냥 장사하면서 죽겠다’고 불법 영업 선언을 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의 심정을 아는가? 결국 이러한 불법 영업으로 인해 코로나가 더욱 확산된다면, 그것은 방역의 차원에서도 결코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당한 보상만이 방역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다. 그것만이 훗날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들의 몰락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치르게 될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예방하는 유일한 정답일 것이다. 가래로 막기 전에 호미로 막아야 한다.

화, 2021/02/0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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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경실련 2020년 11,12월호 – 우리들이야기(2)]

[전문가칼럼]
‘아버님’, ‘어머님’, ‘언니’, ‘이모’ – 이상한 호칭의 기원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

“이모, 여기 젓가락 좀 갖다 줄래요?”
“여기 있어요, 언니.”

식당에서 들은 옆 테이블의 손님과 종업원 사이의 대화인데, 둘 사이의 관계는 무엇이길래 ‘이모’라고 부른 사람한테 ‘언니’라고 하는가? 물론 막장 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요즘 이런 이상한(?) 호칭들이 난무한다. 예컨대, 중년의 남성이나 여성이 상점이나 병원 같은 곳에 가면 기본적으로 듣는 호칭이 ‘아버님’, ‘어머님’이다. 이런 식의 호칭에 이제는 만성이 되어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전히 어색해 하거나 심지어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왜 이런 호칭이 사용되기 시작했을까?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실 이런 현상은 낯선 것이 아니다. 우리말에는 오래전부터, 본래 친족을 가리키는 단어를 비슷한 연령대의 일반인을 가리키는 말로 확장하는 기제가 있어 왔기 때문이다.
우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러하다. 이들은 본래 조부(祖父)와 조모(祖母)를 가리키는 친족어이지만, 어린아이를 기준으로 볼 때 조부모와 비슷한 연령대에 있는 사람, 즉 노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분명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닌데도 말이다. 영어에서는 친족어로서의 의미, 즉 조부, 조모의 의미로는 grandfather, grandmother라고 하지만 단지 노인을 가리킬 때는 old men, old lady라는 다른 단어를 쓴다. 우리말에 ‘할아버지’가 이렇게 두 가지 뜻이 있다 보니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는데, 예전에 어떤 젊은 학생 통역이 ‘저 할아버지가 물건을 가져갔다’고 하는 말을 ‘the old man’이라고 하지 않고 ‘the grandfather’로 통역하는 것을 보았다.
다음으로 ‘아주머니’, ‘아저씨’가 있다. 이 말들도 본래는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항렬의 친척, 예컨대 오촌 당숙을 지칭하는 친족어이지만, 요즘은 오히려 일반인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사실 요즘은 사촌들도 잘 안 보는데, 오촌을 볼 일이 있겠는가!
그 다음으로 또 ‘형’, ‘언니’, ‘누나’, ‘오빠’ 같은 단어들도 그러하다. 이들도 본래는 친족어이지만, 전혀 피가 섞이지 않은 학교 선후배나, 그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친근감 있게 부를 때 많이 쓴다. 특히 ‘오빠’는 남자친구를 부를 때 쓰는 말로 워낙 많이 쓰여서 친오빠와 함께 있을 때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헷갈릴 수 있다. 심지어 결혼 후에 남편이 되어도 계속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용법까지 사전에 수록한다면, ‘오빠’의 뜻풀이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손위 남자’라는 본래의 의미뿐 아니라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친한 남자’에서부터 ‘남자친구 또는 애인’과 ‘남편’까지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의미의 전이가 심해도 너무 심한 편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괜찮다. 이런 단어들을 친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쓰는 것은 이제 전 국민적인 동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일단의 단어들이 보여주는 이상한 의미의 확장은 사람들 사이에 아직 완전한 동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우선 식당의 종업원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이모’와 ‘삼촌’으로 부르는 것을 들 수 있다. 아니 도대체 처음 보는 사람을 왜 이렇게 부를까? 어린아이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이 이모와 삼촌의 연령대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친근하게 부르는 것이다. 여성 종업원의 경우에는 ‘언니’라고도 불리는데, 심지어 머리가 백발인 할아버지(‘조부’가 아니라 ‘노신사’)도 이들을 ‘언니’라고 부를 정도이다. 처음엔 이런 분들이 여종업원에게 ‘언니’라고 부를 때면 한 번 돌아다 보기도 하였다. 성전환을 한 것도 아니고, 화자가 나이 지긋한 남성임에도 ‘언니’라고 부를 정도이니 이 정도면 친족어적인 기원을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급기야는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단어들까지 여기에 가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아버지’, ‘어머니’라고까지는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과연 이렇게까지 진척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처럼 친족에게만 쓰는 호칭을 피 한 방울 안 섞인 일반인을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상대방에게 그만큼 친하다는 느낌을 주고자 하는, 즉 친근감을 기반으로 관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심리적 의도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 친근감!
그런데 바로 이 친근감이 문제이다. 말하는 이에게는 ‘친근감’이지만 상대에게는 ‘부담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제 봤다고 친한 척하느냐고 불쾌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또 다른 하나의 동인은, 모르는 사람을 아이에게 설명할 때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가 “저 사람 누구야?”라고 할 때 설명하기도 어렵고 복잡하게 느껴질 때 어떻게 하겠는가? 그냥 이미 알고 있는 ‘삼촌’에 빗대어 그냥 삼촌 같은 사람이라고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삼촌’이라고 부르면 편할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우리말에는 친족을 가리키는 말이 그 의미를 일반인으로 확장하는 시스템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언니’, ‘오빠’를 넘어 ‘이모’, ‘삼촌’의 영역까지 침범(?)해 왔다. 그리고 급기야 ‘아버님’, ‘어머님’의 영역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아버님’, ‘어머님’ 호칭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 생각에는, 사람들이 이 두 단어를 친족용어 확장의 마지노선으로 느끼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닐까 한다. 아마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른 친족과 비교할 때 가까워도 너무나 가까운, 그래서 결코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이리라. 부모는 결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지 않은가!
아니 어쩌면 그보다 이 같은 친근감을 담보로 하는 상업적인 마케팅이 우리의 원초적 혈연관계까지 위협한다는 불쾌감과 불안감 때문은 아닐까?

월, 2020/11/23-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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